[여성! 새로운 힘] 사랑도 푸져야지
"김장 김치 한 접시가 이렇게 푸지구만.” "아따, 다 누구 덕인디?” "다 내 덕이제! 당신말여, 서방 잘 만난 덕에 평생 푸지게 살았제.” "아니, 그게 무슨 소리다요?” "안 그렁가?” "푸진 것 좋아하는 당신땜시 내 몸은 잔일로 문드러졌다요.” "나도 알어, 당신 말이 맞어, 그 동안 당신, 고생 좀 했제. 내가 모르간디?” "왜 그런 말을 인자사 헌다요.” "진즉에 당신 고마운 줄 알았제. 말로 표현을 못했을 뿐여.” "푸진 거 좋아하는 당신이 왜 말은 푸지게 못했다요?” "아따,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당신이 내 맘 다 아는 줄 알았제.” "어이구, 얄미운 양반, 얼렁뚱땅 피해갈라고.” "그건 그렇고, 제수씨네랑 서울 애들네랑 다 챙겨 보냈능가?” "오늘사 말인디, 당신은 참 편리한 사람이요.” "늙으막에 또 무슨 강짜가 남았는감?” "인제부터 나도 당신맹이로 손은 까딱도 않고 말로만 다 챙길랑게, 입장 바꿔서 해보드라고.” "아, 못할 것도 없제. 김치 어딨는가?” "평생 한 집에 살았는디, 어떻게 된 사람이 매 끼 먹는 김치가 어딨는 줄도 모른다요?” "이게 뭔 소리여? 오늘 우리 각시가 왜 이런당가?” "내사, 동서네 퍼주는 것도 안 아깝고 서울사는 내 새끼는 안 주려고 안 주려고 해도 주어지는디, 왜 당신은 각시한테 마음 하나 못 퍼준다요?” "나 정도면 애처가 아닌가? 더 뭘 바라는가?” "당신 각시가 평생 집안 식구에 일가 친척까지 챙기느라 애쓴지 알았으면, 이제 챙김을 받도록 해줘야 하는거 아니요?” "당신 말이 백 번 옳제. 그런데 제수씨나 서울 애들이 뭐 할 줄 아는 게 있어야제. 헝게, 우리가 수족 놀릴 수 있을 때까정 내친 김에 마저 살펴줍시다.” "당신은 맘 퍼주는 게 얄상도 허요.” "인자 서방을 잡도리할라고?” "옛날 우리 동네선 도둑잽이굿이란게 있었는디, 지 몸으로 땀흘리지 않고, 지 손으로 만들지도 않으면서 남의 것만 축내는 사람들을 대포수라는 이가 잡도리 합디다.” "그건 그 때고.” "그 때고 지금이고 다를 게 뭐 있다요? 내 입으로 들어가는 거, 내 몸에 걸칠 것을 지 손으로 못해내는 인간이 인간이요?” "어허, 오늘 우리 각시가 쎄게 나오는구만.” "강도, 절도만이 도둑이 아니라요.” "아, 또 뭔 잘난 소리 할라고?” "각시한테는 어찌 그리 말도 함부로 허요?” "어허, 이것 참.” "읍내 미장원 아줌마가 그 놈의 일가 친척이 많아서 여기를 뜬다요.” "별 소릴 다 듣네. 일가 친척 많은 게 좋제, 쌩판 남 모른 데 가서 외로운 게 좋당가?” "그 놈의 일가 친척들이 미장원에 오면, 기다리는 손님 제치고 새치기 하는 건 다반사고 돈도 안주고 웃고만 가는 통에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랍디다. 제대로 돈을 내면 정이 없는 것 같다나요?” "우리 각시는 그 놈의 돈 꽤나 좋아허지.” "이 양반 봐! 돈은 제 2의 생명인지 모른다요?” "그렁게 사랑은 주는 것이고 오래 참아야 헌다지 않는가?” "나도 사랑 겁나게 좋아허요. 사랑 주는 것도 좋아허고 사랑받는 것도 정말 좋아허요. 왜 나한테만 평생 집안식구 일가친척한테 사랑을 주라고만 허요. 왜 집안 식구들은 고사허고 당신부텀 나한테 사랑을 줄 생각은 안허요?” "내가 우리 각시를 사랑 안허간디? 나같이 끔찍이 각시 위하는 놈도 없어.” "사랑은 말로 하는 게 아니라요.” "아, 그렇지. 마음으로 허는 거지.” "그렁게 아니라, 사랑에도 반찬이 있어야 헌단 말이요, 반찬이.” "그게 무슨 소리당가?” "사랑은 말하자면 밥과 같은 거라요. 매일 먹어야 하고, 먹으면 배부르고 안 먹으면 배고프고.” "허허, 우리 각시 똑똑헌 줄 내 오늘사 알었네. 긍게 내가 지금까지 당신 배부르게 해줄라고 얼마나 애썼는디!” "밥만 배불리 먹을 수 있당가요? 밥에는 반찬이 있어야제. 그것도 맛있는 반찬 말이요. 어디 그 뿐이다요? 매 끼 똑같은 반찬만 주면 물린다요. 끼니마다 새로운 반찬이 있어야제.” "그런 사랑은 실제로 어떻게 허는 것이당가?” "푸진 밥상마냥 사랑도 푸져야제. 자식 주라고만 말고 자식시켜 꽃다발도 들려 보내고, 동서시켜 립스틱도 가져오게 허고 당신 동생시켜 형수씨 고무장갑 하나 사주라고 못허요?, 아니, 당신 동생말고 당신이 가끔씩 나 업어주면 어디 덧나요?” "내사 얼마나 그러고 싶었는디, 그런데 당신이 무거워서 내가 허리라도 삐끗허는 날이면 당신이 더 고생될까봐 생각허고 또해서 참았는디.” "뒤로 못 업으면 앞으로 안아주면 안된다요?” /장미영(전북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