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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 오중석(46)은 인간의 이기심으로 촉발된 무분별한 개발에 경종을 울린다. 그런데 그 방식이 독특하다. 관람객이 작품을 보고 단번에 '무분별한 개발이구나'라는 생각이 떠오를 수 있는 요소를 제거했다. 방법은 이렇다. 먼저 난개발로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풍경, 사라진 곳을 대체하는 사물 등을 박스를 이용해 1000분의 1정도의 크기로 제작한다. 그리고 분무기를 이용해 아크릴 물감을 칠하고 석고 본드 등을 발라 입체감을 더해 미니어처를 완성한다. 미니어처에는 박스로 만든 교량 위에 기차와 버스가 오간다. 교량 아래는 역시 박스로 만든 허름한 집들이 있고 그 뒤로는 깎여진 산의 단면이 추상적으로 표현됐다. 현실에 있는 듯 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풍경이면서 키치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현대 사회는 급격한 변화와 산업의 발달로 무분별한 경쟁과 개발을 초래해 환경을 훼손하는 악순환을 초래합니다. 이런 비극적 현실은 인간이 자연과 공존의 중요성을 배제하면서 발생된 서글픈 결과죠."그는 어릴 적 기억과 경험에 의존해 새로운 공간을 만든다.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동생과 함께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살아온 탓에 그가 바라본 세상은 냉소적이다. 유년 시절 그에게 위로를 줬던 익숙한 풍경을 빼앗은 인간의 헛된 욕망에 대해서 말이다. 그는 낯설게 보이는 현실에서 잊고 있었던 것들을 회상하며 모래사장에 흩어진 조각을 하나씩 찾아 퍼즐을 맞추듯 자아를 찾아간다. 또 조악하면서도 키치적인 연작으로 조명 받지 못하는 작은 공간까지도 초점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래서 일까. 그는 주변에서 쉽게 버려지는 폐기물이나 공산품 등 죽어있는 재료들을 이용해 장난감 블록을 하나하나 쌓아 만든 것처럼 비현실적인 풍경을 창조한다. 이런 행위는 개미의 세상을 관찰하려고 만들어 놓은 개미굴의 단면처럼 도시인들의 삶의 단면을 잘라서 보는 것과 비슷하다."현대 도시인은 방대한 우주라는 숲 가운데 아주 작은 지구라는 행성에 빼곡하게 사는 작은 벌레 집단일지도 모릅니다. 아주 미미한 존재라는 거죠. 미미한 존재일수록 공존과 공생을 통해 살아가는 게 맞는 거 아닐까요."그의 시선은 냉소에만 그치지 않는다. 미니어처 안에 어릴 적 그가 동경했던 풍경을 소환해 돌아올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도 담았다. 그가 창조한 '공작 풍경'에서는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이 뒤섞여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함께 호흡하며 공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담겨 있다. 그의 작업과 마주할 수 있는 자리는 오는 19일까지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에서 계속된다. 원광대 서양화과동대학원와 우석대 교육대학원 특수교육과를 졸업한 그는 현재 전주자림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5일 열네 번째 개인전을 앞두고 방문한 서양화가 이일순(42)의 작업실. 아기자기한 공간에 있는 그림들은 동화적이면서도 무엇인가를 갈망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풍겼다. 소녀와 같은 말투와 행동에서 느껴지는 그의 첫인상과는 대조적이다. 때론 쓸쓸하고 때론 비현실적인 장면들이 담긴 캔버스를 보며 성숙한 아이가 그린 동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익숙함과 낯설음, 실제와 환영이 작품 속 이미지에 공존하는 역설적인 상황만큼이나 그가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이 궁금했다. "어릴 적 친구 아버지가 외국 출장을 많이 다녔어요. 그래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접할 기회가 많았죠. 만화에 나타난 코발트빛 바다, 푸른 초원 등에 매료됐고 그곳에 꼭 가보고 싶었습니다."몇 년 전 화제가 됐던 드라마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8살 아이 '해리'는 자신의 욕구를 채우지 못하거나 이에 도전을 받게 되면 어김없이 "빵꾸똥꾸야"라고 외치며 화를 낸다. 드라마에서 흔히 묘사되는 어린 아이가 아닐뿐더러 욕심과 욕망으로 가득 차있다. 어른 못지않다. 하지만 현실에서 동화는 어린이들의 이런 욕망을 제거한다. 어린이는 어린이다워야 하고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질서에 순응해야 한다는 식이다. 이일순도 사회적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의 그림 속에는 어린 시절 강하게 열망했지만 결국 이루지 못했던 열망을 담은 피아노, 마트로시카 인형 등의 오브제가 여기저기에 출현한다. 그는 작업을 통해 자신이나 주변인들이 처한 힘든 상황에 휴식을 주고 나아가 치유를 염원한다. 이런 치유를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끝내 이루지 못했던 기억 속 오브제를 캔버스로 소환한 것이다. "현실이 주는 각박함을 벗어나 동심의 기억으로 돌아가고픈 욕망과 함께, 이루지 못했던 어릴 적 꿈이 담겨 있기 때문에 내 그림이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그는 데페이즈망기법(depaysement 초현실주의)을 통해 익숙한 일상의 사물들이 낯설게 느껴지도록 한다. 동시에 전혀 다른 요소들을 배치하는 방법으로 현실과 꿈 사이를 오가며 친숙함 속에서 이질감을 보여준다. 이는 그가 배경처리를 단순화해 오브제에 집중케 한 결과다. 그러면서 그는 소소한 일상의 모습을 낯설거나 자극적이지 않은 형태로 표현했다. 보이는 이미지가 전부가 아닌 함축된 이미지를 통해 보는 이에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있는 것. 작품 속에서 보여 지는 숲속의 의자, 잔잔한 잔디, 구름, 첼로의 음악소리, 급한 소나기를 피할 수 있는 우산 등과 같은 이미지들은 마치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면서 편안한 휴식처를 찾아다니는 듯하다."사람들이 좋은 쪽으로만 기억하려고하는 습성이 있어요. 하지만 그 이면에 개인의 욕망이나 욕구는 자연스럽게 소멸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기억들을 꺼내 함께 공유하고 치유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그는 7~12일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에서 개인전을 연다. 그는 이상적인 휴식처를 "꿈과 현실의 경계 어디쯤"이라고 표현했다. 현실의 각박함을 잊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어린 시절 기억을 환기하며 '현실의 결핍'과 '과거의 결핍'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전북대 미술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4회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피에로 만초니는 자신의 똥을 작은 깡통에 채운 뒤 '미술가의 똥, 1961년 저장됨'이라는 문구를 달았다. 이 깡통은 수천 만원을 호가한다. 한 미술가는 비가 내리고 있는 가운데 바닥에 누워 있다 비가 그친 뒤 일어나 젖지 않은 몸 형태를 사진으로 찍어 '청동기 시대의 흔적'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내놨다. 이 작품도 현대미술에서 퍼포먼스와 사진이 결합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와 같이 현대 예술에는 "이게 뭐야?"라는 물음이 드는 것은 물론이고 관객들을 혼란에 빠트리는 작품들이 많다. 흔히 예술을 인간 정신의 고유활동, 진정한 가치를 지닌 것에 대한 모방, 아름다움이라고 정의내리는 것과는 거리가 먼 작업들이다. 미디어 아티스트 송대규(36)는 이처럼 기존의 예술에 대한 굳건한 통념들을 해체한다. 작품을 생산하는 작가로써 위상을 내려놓고 관객과의 소통을 통해 즉석에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것. "작가는 작품을 표현하고 생산하는 주체가 아닌 작품을 통해 화두를 던지는 역할을 한다. 이 화두를 통해 관객이 작가에게 응시와 충동을 보여줌으로써 하나의 유의미한 현상을 만들어낸다."그는 '예술'을 하나의 '재미있는 놀이'라고 표현하면서 '몸이 붓'이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놀이는 무용, 퍼포먼스, 무대디자인, 미디어아트 등을 넘나드는 파격적인 행보였다. 전북도청 사거리 한 가운데서 크레인을 이용해 큰 소나무를 매달고 피아노를 치며 삭발을 하는가 하면 10명의 아티스트들이 머리에 어항을 쓴 채 객사 앞길을 막기까지 했다. 또 온 몸에 물감을 바르고 캔버스 위에서 춤을 춘 뒤 남은 흔적을 작품으로 내놨다. 그는 전위적인 퍼포먼스를 통해 작품 활동에서 '조형적 결과물'을 산출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퍼포먼스에서 던져진 '응시'라는 화두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현실이며, 이 자체를 기록하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작가들이 작품을 생산한 뒤 '내가 표현한 것은 이것'이라며 관객들에게 수동적 관람을 강요하는 것에 반기를 드는 행위였다. "작품 활동에서 깨닫는 철학적 사유와 경험이 곧 삶의 화두이자 문제인식이 된다. 이 때문에 관객과 철학적 사유에 대해 자유롭게 소통하는 방식을 계속해서 탐구해왔다."그는 지난 2009년 관객에게 좀 더 다양하게 화두를 던질 방법을 찾기 위해 프랑스로 떠났다. 음악 무용 설치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그는 미디어 아트를 접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난 2011년 전주 풍패지관(옛 객사)에 미디어 파사드 작품 '연연(戀戀)'을 내놨다. 이 작품은 13분 짜리 영상으로 계절의 변화와 인간의 생활과 삶, 역사의 변화가 맞물리는 영상을 통해 삶과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해 재조명했다.그는 미디어 파사드를 통해 순수미술이 기업의 마케팅과 결합하면서 보다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갈 기회로 여겼다. 두 분야 모두 대중과의 소통이 필수적이라는 점에 매력을 느낀 것. 공연에서 소리를 디지털화해 영상으로 담는 실험적 작업도 병행하며 미디어 아트 분야에 작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예술은 종말을 고했다. 현대 예술은 작품 활동에서 깨닫는 철학적 사유가 곧 작품이다. 지역에서 이와 같은 예술 활동을 하는 이들이 많아지면 문화적 다양성은 더욱 풍부해 질 것이다."그는 미디어 아트 작업을 더욱 정교하고 세련되게 만들기 위해 '30days'라는 팀을 만들었다. '30days'는 음향 영상 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그와 함께 미디어 작업을 생산해 내고 있다. 다음달 15일부터 17일까지는 전주 동문예술거리에서 헌책방, 예술가, 상인 등 동문거리의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야기를 담아 '미디어 파사드 동문예술거리 쇼케이스'를 열 예정이다. 나아가 미디어 아트가 활성화 되지 않은 도내 상황을 바꿔보겠다는 포부도 밝혔다."지역에서 미디어 아트를 공부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곳이 없다. 동문거리의 창작공간 등을 이용해 '미디어랩'을 만들어 미디어 아트를 접하고 싶은 젊은 예술가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겠다."
무대는 사라져도 음악은 남는다. 지난 20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만난 널마루무용단의 '부채, 춤 바람을 일으키다'에서 '보는 재미' 외에 '듣는 재미'로 숱한 갈채를 유도했던 게 음악이었다. 전통과 현대 사이의 지점에 위치한 음악은 과장보다는 절제로 기울이며, 고독과 우수까지 결을 그대로 살려냈던 것. 음악이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작품일 것으로 생각했으나 이제 막 서른을 넘긴 젊은 작곡가라는 점에서 놀라움은 더욱 컸다. 전국 공연·영화계에서 잘 알려진 음악감독 김백찬(32)은 이젠 괜찮은 '보증수표'로 통한다. 영화'쌍화점','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음악 작업에 참여했고, 경쾌한 국악 선율로 만든 지하철 환승역 음악'얼씨구야'로 대중들에게 알려졌으며, 9월 선보일 새만금 상설공연 창작음악과 도내 인디밴드'어쿠스틱'의 음악까지 다 그의 손을 거쳤거나 매만져지고 있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이 모든 작품이 한 가지로 정의되진 않았다. "어떤 무대이건 간에 제작진 의도를 충실하게 살려내는 게 최우선이다", "정의될 수 없는 다양한 소리의 실험을 해나가고 있다"는 말처럼 그의 곡은 극과 극을 오간다. "영화음악은 액션영화에 더 잘 어울린다고 하고, 무용음악은 또 서정적이라고들 해요. 천차만별이죠, 뭐. (웃음)" 그럼에도 국악인들 스스로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음악에 갇히지 않고 대중들이 환호할 수 있는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는 점에서 그의 음악은 '락'(樂)적인 요소가 다분했다. 그가 좋아하는 가야금은 물론 피리·타악·소금·기타 등 국악기와 양악기로 기쁨과 슬픔, 우울, 몽상까지 한데 버무려 총천연색으로 탈바꿈시키는 방식이다. 처음부터 국악 전공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여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으로 음악 이론, 동요 작곡, 시창 등을 고루 익혔고 전국어린이동요작곡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는 등 일찌감치 작곡에 소질을 보였다. 서울국악예고(現 국립전통예술고)를 거쳐 전북대 한국음악과에 진학했고 군악대 입대 전 호기심 삼아 본 한국예술종합학교 입학시험에 덜컥 붙어 작곡가의 길을 걷고 있다. 전통적인 접근에 충실하는 국악계와 거리를 둔 그는 거꾸로 다양한 국악기와 서양악기의 조합으로 국악을 과감하게 재해석한다. "사람들이 눈길을 주지 않기에 직접 창작하고 가깝게 들려주면서 온몸으로 부딪치는 수밖에 없었다"는 이면엔 국악계가 '그들만의 리그'를 펼쳐서는 안 된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얼씨구야'는 본래 휴대전화 벨 소리로 만든 겁니다. 국립국악원이 추진한 '생활 속에 우리 국악' 창작사업에 제 벨소리가 채택되면서 지하철 환승 음악이 됐죠. 여기서 재밌는 것은 승객들의 반응이었어요. 처음엔 고개를 갸웃거리던 승객들도 쉽게 친숙하게 느끼더라는 겁니다. 국악이 대중 속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더 자주 갖게 된다면 대중화가 어렵지 않겠다고 그 때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떤 장르 건 가리지 않고 시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곡에 따라 통째로 다시 창작해나가는 '재건축'도 있고, 구조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손보는 '리모델링'도 있다. 그럼에도 모든 음악은 본격적인 공연을 올리기 한 달 전에 미리 나온다. 협업이라는 공연예술의 특성을 이해하고 일하는 파트너들을 배려하기 위해서지만, "연출자와 감독이 주는 영감을 통해 곡이 만들어진다"며 겸손해했다. 젊은 팬들은 감각적이고 세련된 그의 스타일에 두 손 들고 환영하겠지만, 완고한 애호가들은 이게 무슨 국악이냐며 눈살을 찌푸릴지 모른다. 그러나 해석의 자유를 넉넉하게 열어주는 그의 명민한 곡에 청중들이 먼저 기립박수를 쳐주는 흐뭇한 풍경을 기대해보고 싶다.
미술가가 작업을 이어가는 이유는 각각 다르다.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 때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서 등 각자 다양한 모티브를 가지고 작업에 임한다. 이중에서 조각가 도병락씨(54)의 작업방식은 다소 특이하다. 수도승을 연상케 하는 고된 작업으로 지나 온 시간 속에 묻혀 있던 아픈 기억을 치유한다. 그의 작업과정은 언뜻 보면 개인의 치유과정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관객은 작품에 녹아 있는 그의 아픔을 보고 동질감을 느낀다. "전주고속버스터미널 맞은편 건물 지하실에서 7년 동안 전화, 시계, 라디오, TV도 없이 지냈어요. 너무나도 힘들고 지루한 나날의 연속이었지만, 감성에만 의지하는 작업의 틀을 깨고 싶었죠."조각과 회화의 경계에서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는 그는 회화 작업으로 화가 인생을 열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적어도 10번 이상 물감을 찍으면서 캔버스 꼭대기부터 밑바닥을 채워나가는 중첩의 연속이었다. 이것은 시간의 중첩이기도 하다. 한 번 찍고 이것이 마르면 두 번 찍고 이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며 시간과 물감이 엉겨 붙어 최후에 만들어 내는 회화는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그의 회화 작품 제목에 'Through the time(시간을 통해서)'가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유다. "미술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유일한 친구였습니다. 작업을 하면서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아들의 죽음, 경제적 문제 등 수많은 과거의 고통들이 파도처럼 밀려왔죠. 이럴수록 더욱 작업에 몰입하며 고무와 우드락을 깎고 붙이고 쌓는 과정을 반복했어요." 그의 회화 작업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조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캔버스의 한 지점을 계속 찍어내는 그의 붓질은 재료의 한 부분을 무수히 깎아내는 조각도의 움직임과 같다. 그는 고무와 우드락을 선택했다. 평평한 고무와 우드락 위에 밑그림을 그린 뒤 적절한 깊이와 경사면을 구상해 판다. 그의 조각도와 얇은 절단기는 고무와 우드락 위를 수천 번 지나간다. 같은 지점을 수십 번 왔다 갔다 해야 딱딱한 고무는 유연해지고 쉽게 부서지는 우드락은 견고해진다.고무 작업에서 파내는 행위는 어떤 것을 없애는 것으로 보여 지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과거의 기억을 드러내는 행위에 가깝다.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라는 노랫말처럼 아픔을 찾아내기 위해 다른 아픔을 끄집어내는 다소 역설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그의 고무 작품을 보면 어떤 곳은 조각도가 간신히 비켜나가 아주 얇은 막같이 아슬아슬한 부분으로 남아 있는가 하면 어떤 부분은 아예 구멍이 나있기도 하다. 수많은 인파가 발자국을 남긴 모래밭 같이 말이다."인간은 누구나 사라진 것들에 대해 집착하고 영향을 받습니다. 내가 만든 퍼즐들은 이런 것들의 집약적인 존재로 표현되고 있죠.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교차하는 수많은 연결고리들 속에서 기억은 존재에 대한 이유를 확인시켜주며, 동시에 참혹한 허무함과 아쉬움을 남깁니다."고무 작업이 힘든 기억을 모두 끄집어내 유하게 만드는 과정이라면 우드락 작업은 끄집어낸 기억과 생각을 정리해 다시 쌓아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Memory Existence' 시리즈는 지름이 서로 다른 원형 고리들을 겹겹이 쌓아서 마치 콜로세움을 위에서 본 듯한 모양을 한 작품이다. 바닥에 놓인 원형의 우드락 위에 지름이 좁은 원형 고리가 놓이고 그 위에 조금 더 넓은 원형 고리들이 쌓여 중심을 향해 깊어져 간다.그는 우드락에 알 수 없는 구조물들을 건설하고 발견하고 파괴해나가면서 자신의 내면에 집중한다.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조각들이 맞춰나가듯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들을 구성해나간다. 목원대 미술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개인전 11회와 다수의 기획초대전 및 단체전에 참가했고 국내외(뉴욕, 홍콩, 스위스, 벨기에 등) 아트페어에 참여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소설'토지'는 최참판 일가의 몰락 과정을 통해 격랑의 근현대사를 보여준다. 비록 소설이지만 한 가족의 이야기 속에는 그 시대의 모습이 직간접적으로 묻어날 수밖에 없다. 이는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은 결국 사람이고, 사람과 사람이 모여 역사라고 부르는 한 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미술가 조해준씨(41)는 지극히 개인적인 가족사를 담담히 풀어내면서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있었던 굵직한 사건들을 환기한다. "우리가 과거를 눈여겨보는 것은 잊혀진 사람들의 삶과 어떤 사건에 대한 반추 그리고 그것들을 둘러싼 당시 사회의 여러 기제를 통해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여기 이곳의 역사를 재인식하는 실제적인 행위가 되길 바라는 것이다."그는 우연히 접한 당숙(堂叔) 조일환의 이야기를 다룬 '뜻밖의 개인사'로 주목을 받았다. 다큐멘터리 드로잉이라 불리는 이 시리즈는 당숙의 유서와 가족의 구술을 바탕으로 한 개인의 삶을 발굴하고 가족사적 기억을 재구성한 것이다. '뜻밖의 개인사'에서는 일제강점기에서 총독부 조사원과 동사무소 보조원으로 일하다 광복 후 친구의 해명으로 겨우 화를 면하고, 이후 토지 행정청의 공무원으로 일하던 중 6.25 전쟁을 맞아 인민위원회의 출근 명령을 받고 근무하다 다시 국군의 진주로 공산당으로 몰려 목숨을 잃을 뻔 한 일 등 사회역사적 기억과 맞물려 한 개인의 기억 속에 오롯이 살아있는 역사의 순간들을 기록했다. "뜻밖이란 결국 공동체와 개인, 역사와 개인이 만나는 방식이 언제나 뜻밖이라는 때로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우연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런 식의 어처구니없는 사고들이 뜻밖일 이유는 전혀 없다. 그것은 공동체와 개인, 역사와 개인사 사이의 균열이 없다고 생각할 때만 뜻밖이다. 그러한 균열 자체가 공동체와 개인사를 이어주는 소슬하고 질긴 다리다."그는 우연히 접한 '뜻밖의 개인사'를 근현대사에 있었던 '모두의 개인사'로 확장하면서 흥미로운 작업 방식을 선택한다. 바로 아버지(조동환)와 공동으로 모든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것. 그가 기획과 글을 맡고 미술교사 출신인 아버지가 그림을 그린다. 이런 행위는 흥미롭지만 역설적이다. 말이 없던 아버지와 가부장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그가 '가족의 이야기'를 함께 풀어가는 행위가 말이다. 그래서 일까. 올해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보에 선정돼 오는 19일부터 열리는 '올해의 작가상 2013展'에는 아버지와 자신의 이야기를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 나오는 '낙선작'에 담긴 이야기는 그가 아버지와 공동 작업을 선택했던 이유를 말해준다. 아버지는 1960년부터 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국전(현 대한민국미술대전)에 도전했다. 하지만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아버지에게 돌아온 것은 계속된 낙방 뿐. 결국 그는 화가로서 삶을 포기하고 미술교사로 일하게 된다. 수십 년이 흐른 지난 2007년. 공동 작업을 하며 다시 미술가의 삶을 시작한 아버지는 그간 숨겨왔던 이 이야기를 아들에게 털어놓는다. 그리고 당시 입상하지 못했던 '낙선작'에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서 그림에 붙인다. 그간 공동 작업에서 그림을 담당했던 그가 직접 글을 작성한 의미 있는 변화다. 이처럼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을 관람객에게 보여주는 방식이 눈길을 끈다. 수 십장의 액자를 붙여서 책처럼 넘길 수 있게 하거나 가판 신문대처럼 생긴 판에 드로잉들을 옮기기도 하고 벽면에 만화처럼 화면분할을 해서 부착하기도 한다. 드로잉과 텍스트를 분리하기도 하고 인용된 실물 오브제들을 병렬해서 설치하기도 하며, 때로 다큐멘터리 드로잉 전체가 상자 안에 담겨져 장소를 이동할 수 있는 옛날 방물장수의 이야기 가방처럼 변모하기도 한다. "내 작업은 생애 기억의 상호 연대적 소통 작업이면서 각기 다른 관점을 통해 재구성된 부모와 자식의 이야기이다. 그것은 마치 기억이 망각이라는 거친 파도에 휩쓸려가지 않게 부표라도 만들고 끊어진 그물을 다시 엮어보려는 것이다."원광대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전문사를 졸업한 뒤 독일 뉘른베르크 쿤스트 아카데미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독일 프랑크푸르트 해외작가 레지던시에 선정됐다.
"생선회를 뜨듯이 나무 포를 떴습니다."2일 전주 서신갤러리에서 '별을 이야기하다 展'을 앞두고 만난 조각가 이효문(46)이 이번 작업을 두고 한 말이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작업의 고됨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 그는 나무를 오리고 붙여 별의 형태를 만들었다. 재밌는 발상이지만 그 과정은 녹록지 않다. 전기톱으로 원통형 참죽나무를 일정한 크기로 자르고 다듬어 곡선 형태의 별 모양 석고에 붙였다. 투박하게 붙여진 나무 사이에 드러난 공간은 블록형태의 조그마한 나무들로 채웠다. 가로 160㎝ 세로 150㎝ 높이 53㎝에 이르는 별의 형태에 나무를 붙이기 위해 작업실 천장에 크레인까지 설치했다. 이처럼 어렵고 고된 작업을 고수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나뭇결의 측면부는 수많은 실핏줄로 섞여 있는 생명의 모태인 대지를 상징하며 수평의 형태로 자리하고, 그 사이로 드러난 공간에 수직의 형태로 세워진 수많은 나무 조각들은 대지 위에 뿌리 내린 생명을 뜻합니다."이렇게 만들어진 별은 일종의 자신만의 이상향으로 수많은 별 중 어떤 하나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에 광범위하게 떠다니는 모든 별을 상징한다. 자신의 평생 주제인 인간의 원시적 생명력이 우주의 생성 원리와 맞닿아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반적인 조각의 형태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 이번 작업은 '생명'이라는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그가 끊임없이 실험적 작업을 이어 온 결과다. 나무를 평생 재료로 삼아 온 그의 첫 시작은 철을 이용한 작업. 버려진 철을 이어 붙이는 '덧댐'을 통해 재생의 의미를 담고자 했지만 그의 성격과는 맞지 않았다.과감히 철을 벗어 던지고 선택한 재료는 나무다. 생성소멸재생의 과정을 반복하는 자연과 인간의 생명력을 표현하기에 나무는 더없이 좋은 재료였다. 또 철 작업에서 보여준 덧댐보다는 나무를 깎으면서 무언가를 덜어내고자 하는 철학적 행위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나무는 다루기 어려운 재료이고 그 특성을 알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14년간 나무 작업을 했지만 아직도 모르는 게 많아요."그에게 나무는 어려운 대상이었다. 투박하게 나무를 깎아 자연의 형태를 재현했지만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던 지난 2007년 전남대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며 표현 방식에 변화를 준다. 먼저 단순히 조각을 올리는 데 사용했던 받침대를 조각의 한 부분으로 만들었다. '진화 속으로의 회귀-도시 위를 걷다'에서 받침대를 도시의 빌딩 모양으로 제작한 뒤, 투박하고 거친 손을 가지고 그 위를 내딛는 거인 형상을 올렸다. 도시를 밟고 올라선 거인을 통해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메시지를 전한 것.또 다른 시도는 나무를 깎아 내는 대신에 깎여진 나무를 덧대 자연을 닮은 형태를 만들면서 '별을 이야기하다'의 전초전 격인 작업을 선보였다. "입시에 매여 미술을 시작했더라면 아마도 지금까지 이어오지 못했을 것 같아요. 자유롭게 생각하고 얽매여 있지 않은 상태에서 접한 미술이 현재에 나를 이끌고 있는 힘입니다." 뒤늦게 배운 미술은 그에게 재료가 갖는 일반적인 상식의 틀을 깨게 했고, 재료 안에 그가 구상하는 작업을 끼워 넣는 게 아닌 그의 생각에 재료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만들었다.오는 11월 전북도의 해외전시 지원사업에 선정돼 싱가포르 아트페어에서 선보일 그의 또 다른 작업이 기대되는 이유다. 전주대 미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전남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8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전라미술상을 수상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가 박성민(41)은 파격적이면서 실험적인 사진작업을 한다. 사진을 꿰매고 오려붙이는가 하면 꽃을 자르고 핀셋을 꽂는다. 참치캔과 귤, 사과 등을 썩힌 뒤 그 과정을 찍기도 한다. 'Is this art?(이것도 예술인가)'라고 물음이 절로 나올 정도로 시각적 실험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다. 이는 공대를 다니다 사진이 좋아 홀연히 프랑스로 떠난 그의 이력과도 맞닿아 있다."전북대 재학시절 한 친구가 멋지게 사진기를 들고 다니면서 찍는 모습이 부러웠어요. 하지만 그의 사진을 보면서 '내가 찍어도 너보다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처럼 뜬금없이 사진이 좋아졌던 그는 '공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지난 2003년 프랑스 유학길에 나섰다. 초창기 그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기술적인 부분을 마스터해야 한다는 생각에 암실작업 등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테크닉적인 사진만으로는 예술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사진적 실험'을 시작했다. "사진이 완전한 예술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시각화된 한 장의 사진으로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진의 단점이자 독특한 매력을 가진 장점이기도 하죠." 그는 지난 2007년 '보다'라는 뜻과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를 가진 갤러리 '봄'을 열었다. 아날로그 암실과 조명 등 장비가 갖춰진 99㎡ 정도의 전시장에서도 그의 실험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이미지에 새겨지는 미세한 빛을 잡아내기 위해 손수 제작한 도구들에서 그간 사진적 실험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지극히 시각적인 감각기관에만 의존하는 사진이 가지는 특성 때문에 표현에 한계가 있는 것을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만약 사진이 인간의 다른 감각기관을 자극시킬 수 있고 시각과 함께 표현될 수 있다면 이런 한계는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그는 먼저 지난 2007년 '움직임 그리고 보다(Part1 시각)'전을 통해 동적인 사진 제작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인물의 동작을 포착한 이미지들을 자르고 이어 붙여 만든 사진은 리듬감을 만들어내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인물의 동작을 재구성하게 만들었다. 이후 미각 후각 촉각 등 인간의 다섯 가지 감각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그가 이토록 사진적 실험에 집착하는 이유는 스스로 식상해지기 싫어서다. "아름다운 사진도 의미가 있지만, 화려한 사진보다는 좋은 사진을 찍고 싶어요.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이 특이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시간이 지나면 식상해집니다. 예술 그리고 좋은 사진이란 흐르는 물처럼 항상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진은 관객이 개인적인 기억으로 보는 것이기 이전에 사진가가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과 기억으로 만들어 낸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시각의 기억, 후각의 기억, 청각의 기억, 미각의 기억, 촉각의 기억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실험을 이어간다. 오는 25일 전주 루이엘모자박물관에서 전시를 앞둔 그가 선보이는 새로운 실험이 기대되는 이유다. 프랑스 파리에서 3차례 개인전을 갖는 등 11차례의 개인전을 열었고 현재 사진 전문 전시공간 '갤러리 봄' 대표로 있다.
설치 작품의 운명은 기구하다. 작가가 주제와 전시장 환경에 맞게 작품을 설치하는데 많은 공을 들이지만, 전시가 끝나고 나면 사라져야 하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는 것은 달랑 사진 한 장. 하지만 설치미술가 고보연(42)의 작품은 사진과 함께 남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작품을 체험했던 관객에게 긴 여운을 드리우는 것."주변 사람들이 제공하는 재활용품 그리고 이를 설치 작품으로 만들어 관람객이 체험을 통해 힐링 하기를 바랍니다. 또 전시가 끝나 자신의 역할을 다한 작품은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냅니다." 종교가 불교인 그의 작업 방식은 윤회사상과 닮아 있다. 그는 일상에 있는 오브제를 이용해 설치 작품을 만든다. 그가 바라본 일상에서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모든 물건이 작품의 소재가 된다. 편안함을 추구하는 작업은 불안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작은 휴식처인 셈이다. 독일 유학시절 제작한 '고요한 숨결'은 그의 주제 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수만 개의 티백을 이용해 만든 텐트 모양의 공간에서 관람객들은 수만 가지 차 향기를 맡으며 기분이 유쾌해지는 경험을 했다. 작품에 사용된 티백은 대부분 주변 사람들이 모아줬고 이들이 전시장에 찾아와 작품을 체험하는 독특한 방식이다. 그리고 '고요한 숨결'에 사용된 티백은 모두 자연으로 보내졌다. 이처럼 그의 작업은 시작부터 전시장에서 철거되기까지 모두 열려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작품이 사라져도 관객들은 진한 여운을 간직하게 된다.유쾌하고 편안한 '힐링 체험'을 제공하는 그의 설치 작품은 '쉬엄쉬엄''쉬어가가' 展에서도 이어진다. 관객들은 그가 설치해놓은 구조물에 들어가 낮잠도 자고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낸다. "빠른 시간에 작품을 제작하면 내 삶에 조금더 밀접한 것들을 놓치게 됩니다. 서툰 바느질이지만 한 땀 한 땀 이어가면서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그는 '느린 호흡으로 산보하자'에서 기저귀천에 천연염색을 한 뒤 바느질을 통해 엄마와 아기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전시장 벽에 설치된 엄마와 아이의 모습은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날아다닌다. 관객들은 기저귀천의 보드라운 감촉을 직접 만지고 느끼며 육아에만 전념하는 여성들이 겪는 반복적 일상에 대해 공감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가는 게 미술"이라고 말하는 그는 요즘 씨앗, 흙, 폐지를 이용해 새로운 작업을 선보이려 한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의 작업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가 '느린 호흡'으로 수집한 재생품들이 우리들에게 어떤 '힐링'을 가져다 줄지 기대된다. 군산에서 태어나 전북대 서양화과와 동대학원을 나온 그는 독일 드레스덴 미술대학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10번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을 열었고 광주 신세계 미술상, 전북청년미술상 등을 수상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궁금했다. 얼굴 없는 마네킹에 입혀진 웨딩드레스, 날카롭게 잘린 나무들이 모여 있는 숲, 이런 소재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선명한 피. 섬뜩하면서도 기괴한 그림을 그리는 이가 말이다. 하지만 의외였다. 가냘픈 체구, 여려 보이는 얼굴과 조용한 말투. 서양화가 양순실씨(44)의 첫인상은 그가 그려왔던 그림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평가도 이처럼 실제와는 다른 부분이 있다. 양순실은 페미니즘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소재들이 여성의 억압에 대한 아픔을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하나의 여성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느끼는 억압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페미니즘으로만 그의 작품 세계를 단정 짓기 어려운 이유다. "행복과 불안함은 항상 같이 붙어 다니지만 사람들을 행복 쪽에 무게를 두고 고단한 현실을 외면하려 한다. 그렇지만 삶의 불안한 단면을 드러내 자신을 치유하는 게 내 작업방식이다."그의 불안함은 어릴 시절 '원형체험'으로부터 시작된다. 1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나 여자로서 그리고 막내로서 사회적 역할을 강요받았다. 그는 이런 억압에 대해 끊임없이 내적 갈등을 겪어왔고 이런 갈등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서도 계속된다. 하지만 내적 갈등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행복한 모습을 억지로 연출하는 것을 거부했다. 대신 자신의 삶을 억압하는 환경을 몇 가지 흥미로운 소재를 사용해 은유적으로 화폭에 담았다.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 거리가 있다. 안락함을 상징하는 집, 소파, 침대, 웨딩드레스 등은 날카로운 칼로 베여 피를 흘리고 있다. 또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새는 이런 안락한 소재들을 공격해 피를 흘리게 한다. 그의 그림에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사람인데 모두 등을 돌린 소녀의 모습이다. 이는 모든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픈 욕망을 담은 것. 그는 "평온함을 주는 소재들이 내가 처한 환경이기도 하지만 이런 환경에서 오는 억압 또한 존재한다. 이런 상처를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표현된 것이고 새는 이런 욕망을 자극하는 소재로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크릴 물감을 여러 차례 덧발라 파스텔 색조의 서정적인 색감을 자아낸다. 그렇지만 그림은 서정적이지 않다. 어쩌면 그가 처한 행복하면서도 불안한 역설적인 상황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감을 수차례 덧칠하는 것도 억압에 대한 분출을 표현하지만 이런 억압 속으로 계속해서 자신을 침전시키는 행위의 하나다. "흔히 양순실의 그림을 프리다 칼로와 닮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프리다 칼로처럼 자신의 정체를 공격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게 드러냈다면 양순실은 그리 분열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이미지는 여전히 폐쇄적이고 모호하다. 그가 화폭에 그림을 그린다고 해도 그에게 가해진 억압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 부드러운 색감과 곡선으로 위장하지만 그는 여전히 고통스럽다." 이정훈(전북대 국문학과 출강)의 말처럼 그는 아직 억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 대해 관찰하고 관조하려는 걸음을 내디뎠다. 그동안 골방과도 같던 작업실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이동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에게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억압과 페미니즘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서다. 전북대 예술대학 미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1998년 첫 개인전 이후 6차례 개인전을 가졌다. 지난해 전주우진문화공간의 청년작가초대전에 초대받기도 했다.
인연은 서로 다른 사람들의 만남으로 이뤄진다. 다른 시공간 속에서 살아가던 서로가 만나 새로운 호흡을 만들어 내는 게 인연이다. 부부가 아이를 낳게 되면 아이의 호흡에 맞춰 일상의 속도가 바뀌는 게, 남녀가 만나 발걸음을 맞추며 둘 만의 속도감 있는 호흡을 만들어가는 게 그렇다. 하지만 죽음은 이런 '익숙한 호흡'을 단절시킨다. 생물학적 호흡은 물론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눴던 호흡도 말이다. 이 때문에 죽음은 삶의 언저리를 항상 맴돌지만 피하고 싶은 존재다. 그리고 죽음 즉 어떤 사람의 부재로 인해 '함께 나눴던 호흡'은 다시 '혼자만의 호흡'으로 돌아간다. 미술가 송수미씨(48)는 '함께 나눴던 호흡'과 '혼자만의 호흡' 사이에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은 작업을 이어왔다. 그가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개념을 접한 것은 가족 앨범을 정리하면서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임종과정과 장례식을 담은 사진은 죽음에 대한 막연한 울림으로 자리했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접한 충격도 있었지만, 장례의식에 사용되는 옷도구 등의 소재가 자신이 전공하고 있던 섬유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때부터 삶과 죽음을 이어가는 작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추상적 관념을 작업에 녹여내기에 스스로 많이 부족했다고. 죽음에 대한 막연한 생각은 그의 어머니가 임종을 맞으면서 현실로 다가왔다. 누구나 그렇듯 어머니의 죽음은 그에게도 애틋하고 아련한 마음을 갖게 했고 작업의 원동력이 됐다. 어머니와 '함께 나눴던 호흡'은 사라지고 그 빈 공간을 '혼자만의 호흡'으로 채워가기 시작한 것. 그는 어머니의 부재를 치유하기 위해 사진을 활용했다. 앨범 속에 살아 있는 어머니와 가족의 모습을 실크스크린 기법을 이용해 한지에 옮겼다. '회상', '잠재의식', '의식의 자유' 등의 시리즈를 통해서다. 10여 년 동안 '혼자만의 호흡'으로 스스로를 치유했던 그는 '블랙스완'시리즈를 통해 '인연'이라는 키워드를 꺼낸다(2011년 6월 전주교동아트 스튜디오).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많은 감정들을 화면 위에 옮겨 놓는다. 그것은 사람의 인연, 자연의 인연 등 나의 삶에서 비롯된 많은 인연의 이야기다". 작가는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던 '혼자만의 호흡'에 이렇게 변화를 줬다.이런 변화는 최근 작업 '나눌 수 있는 호흡'에서 명확해 진다(2012년 12월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 그는 이 시리즈를 통해 어머니와 가족의 사진을 불투명하게 배경으로 사용하고 대신 어머니의 유품을 캔버스에 설치했다. 전작에서 보여졌던 선명한 사진 이미지는 사라지고 실제 유품이 전면에 등장한 것. 이런 행위에 대해 그는 "그동안 '혼자만의 호흡'으로 자신을 치유하던 것에서 벗어나 다시 어머니와 '함께 나눴던 호흡'으로 돌아가 모든 이들과 공감하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죽음과 삶을 독특한 시각에서 바라보는 송수미의 작업은 모두 실크스크린 기법을 기반으로 한다. 실크스크린에 전사된 사진 이미지들은 망점이 흐려져 있는데 이는 "죽음은 삶과 반대되는 개념이 아닌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존재한다"라는 그의 주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죽음과 삶의 경계가 무의미하다는 그만의 표현방식인 것.그는 오는 6일 레시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프랑스로 떠난다. 그가 외국 생활을 하며 경험할 '나눌 수 있는 호흡'이 기다려진다.
첫 사랑을 처음 본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 기억, 연인과 이별하고 바라 본 하늘, 군대에서 보초근무 중 쏟아지던 별들.이런 모습들은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감각으로 머릿속에 자리한다. 이 모두가 '찰나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순간들을 온전히 재구성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고 다만 하나의 감각으로 뭉뚱그려져 남아 있을 뿐이다. 서양화가 김영란(52)씨는 이처럼 감각으로 기억된 과거의 흔적을 찾아 화폭에 새기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이런 그의 노력은 작업실 입구에 있는 사진과 여러가지 오브제를 붙여 만든 설치작품에서부터 두드러졌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억하며 그와 형제들이 함께 만든 이 작품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병원 진료 기록들과 예전 사진들이 함께 뒤섞여 있었다. "비록 어머니의 실체는 없지만 병원에서 사용했던 물건을 보면 아련한 감각으로 남아 있는 그 순간들이 떠오른다"는 그는 과거로 시간을 돌려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갔다.이화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그는 고등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다 딱 3년을 채우고 그만뒀다. 다른 사람들은 "왜 좋은 직장을 그만두냐"고 만류했지만 그는 이때가 아니면 자신이 하고 싶은 작업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곧바로 고향인 전주로 내려온 뒤 당시 지역에서 보기드물게 전위적인 작업을 선보였던'쿼터그룹'맴버로 합류했다. 그에게 쿼터그룹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 등 작업에 대한 열정이 흔들릴때마다 그를 잡아주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최근 '화기애애'라는 그룹을 만들어 후배들에게 작업 열정을 불어넣어 주는 역할을 도맡아 한 것도 이때의 기억 때문이다.그러던 중 지난 2001년 그는 전북대 일반대학원 미술학과에 진학하며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나무, 꽃 등을 숯을 이용해 추상적으로 표현한 작품은 당시 그의 작업실이 노인정 바로 옆에 있어서 탄생한 것. 그는 캔버스에 물감을 바르고 그 위에 숯을 덧칠한 뒤 칼과 칫솔 등을 이용해 수백번 긁어내기를 반복했다. "작업실에 가면 매일 같이 어르신들을 관찰했고 그들이 나이가 들면서 생기가 빠져나간 자리에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라며 작업 동기를 설명했다. 이때 전시는 그가 감각으로 기억된 세월의 흔적을 화폭에 담아낸 첫 번째 시도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두번째 개인전 '생명-그 겨울나기'에서는 다른 형태로 '기억'을 담아냈다. 고려청자를 만들때 사용되던 상감기법을 활용한 것. 낙엽, 나뭇가지의 형태를 점토를 이용해 캔버스에 새긴 뒤 이를 긁어내고 그 위에 다시 점토를 덧대는 과정을 수십차례 반복한다. "겹겹이 쌓아올린 무수한 색들은 오랜시간 퇴적과 생성을 반복한 이미지들의 깊이이며 지난 삶의 흔적과 시간의 흔적들을 기억해 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 그는 애써 기억해낸 흔적들을 반투명의 색으로 다시 덮는 작업을 반복하며 하나의 감각으로 남아있는 기억을 되새겼다.기억에 대한 그의 집착은 '일상 위를 걸어보다'시리즈에서도 계속된다. 그는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관능적 관조가 아닌 자신의 공간에서 밖을 들여다보는 호기심 어린 관조로 세상을 조명한다. 이는 그의 어릴적 기억과 맞닿아 있다. 유치원에 가고 싶었지만 집안의 반대로 가지 못해 당시 방안에서 바라봤던 바깥세상을 재구성한 것. 전작에서는 볼 수 없었던 사람, 자동차, 건물 등이 그의 화폭에 등장하는 이유다. 오는 6월과 7월에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는 그는 '일상 위를 걸어보다'시리즈를 올해까지만 이어나갈 생각이다. 그에겐 아직 꺼내야할 기억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기 때문. "미술작업은 오랜 친구(기억)와의 만남을 이어주는 매개체"라고 말한 그는 덧댐 작업으로 갈라진 손을 바라보며 다시 친구들이 그의 화폭으로 새겨지길 기원했다.
진부함의 위기일까, 완성도의 결실일까. 장르 불문하고 어떤 예술가가 한 가지 주제로 계속해서 작품을 내놓는다는 것은 진부함과 신선함의 애매한 경계에 스스로를 기꺼이 내놓겠다는 위험 부담을 감수하는 것이다. 새로운 기획 시리즈 '그 주제, 그 작가'에서는 도내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오랫동안 탐닉해온 주제를 통해 개성있는 작업 세계를 살펴보기로 한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한 작가의 방식이 하나의 주제로 일관되게 나타난다고 봤다.첫 번째 주인공은 '길'을 주제로 작업을 해온 서양화가 류재현(51). 완주군 구이면에 있는 그의 작업실로 가는 길은 화폭에 담긴 풍경만큼 평화로웠다. 그래서일까. 마을 어귀에서 늘어진 잠을 자고 있던 고양이들은 도심 속 고양이와는 달리 경계심이 아닌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낯선 이방인을 맞았다. 작업실에 들어선 그는 3월 코엑스 화랑미술제와 10월 프랑스 파리 전시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작업에 전념하기 위해 지난달 임실중학교 미술교사를 그만뒀다. 작업과 후학양성 모두를 잘하고 싶지만 이제는 여력이 안 따라준다. 인사를 건넨 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재생된 물건'이었다. 벌통을 재활용한 액자, 버려진 폐목재와 벽돌로 만든 침대책장 등 낡아 못쓰게 된 상태에서 생명력을 갖게 된 물건들은 그가 추구하는 작품세계와도 맞닿아 있었다. 전북대 사범대학 미술교육과를 다니던 시절부터 그의 일관된 관심사는 '길'. 그에게 길은 작품의 소재이면서도 작가적 삶을 대변한다.초반 그에게 길은 자연생명의 파괴 등 부정적 면만 부각됐다. 특히 그의 제자가 도로 위에서 교통사고로 숨지게 되자 이런 부정적인 생각은 극에 달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나에게 길은 죽음이었다"는 그의 말처럼 당시 작업에서 길은 음영이 뒤집히거나 색감이 과장 돼 표현됐고, 길 위의 공간은 죽어간 생물들로 채워졌다. 역설적이지만 그의 이런 초기작들은 작업실에서 가장 밝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길에서 그가 기억하는 것들은 죽음, 즉 구체적 사건의 '결과'였다면 10년전부터는 길을 걸어가는 '과정'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자동차를 타고 빠르게 스쳐간 도로가 아닌 숲길을 걸으면서 자연의 생명력에 눈을 뜨게 된 것.그는 숲길에 드리운 빛이 생명력을 극대화시킨다고 보고 이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사진을 활용했다. 특히 5월에 막 새싹이 피어나기 시작할 즈음 아침이나 저녁에 비치는 빛을 사진에 담아둔 뒤 세필을 이용해 최대한 사실과 똑같이 그렸다. 그는 "자연에 존재하는 나뭇가지, 풀 등 모든 것들은 허투루 나지 않고 그 자체가 완벽하기 때문에 이 느낌을 최대한 그대로 그리려는 것" 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그림에 제목이 없는 것도 같은 이유다.이 때문에 그는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흰 캔버스에 검정색 바탕을 칠하고 점차 숲속의 밝은 부분들을 칠해 마지막에 가장 밝은 부분을 채색한다. 한 땀 한 땀 수놓 듯 일일이 세필로 작업을 하는 그는 "어두운 부분을 칠할 때는 작업을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마지막 덧댐인 가장 밝은 부분을 칠할 때 쾌감을 느낀다"고 작업의 고됨을 에둘러 표현했다. 화제를 바꿔 지난해 프랑스 정부가 운영하는 레지던스 '시때 인터내셔널 데 자르(cite international des art)'에 참여했던 경험담을 들어봤다. 그는 "빈 방만 덜렁 있는데 참 막막했다"라고 첫 느낌을 전했다. 할 수 있는 프랑스어는 '봉 주르' 밖에 없던 그에게 이국땅의 첫 인상은 두려움. 하지만 그는 물감과 이젤 구입한 뒤 작업에 몰두했고 파리 시내 갤러리 돌며 "아임 페인터, 스테이 인 시때(I am painter, Stay in cite international des art)" 등 가능한 모든 외국어를 동원해 자신을 알렸다. 그 결과 '라자르 갤러리'에서 그의 가치를 인정해 작품을 구입했고 인근에 있는 '89 갤러리'에서 오는 10월 전시를 할 수 있도록 주선해줬다. 유럽과 미국 미술시장에 진출하는 게 목표인 그는 파리에서 경험을 살려 천천히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오는 15일 코엑스 화랑 미술제 참가를 시작으로 10월 파리 '89 갤러리' 초대전에 이어 KIAF(한국국제아트페어)에 출품할 예정이다."지역작가가 세계에 진출할 수 있다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다"라고 말한 그는 작업실 곳곳에 있는 '재생된 물건'처럼 그의 작업 또한 치유를 통해 생명력을 얻은 캔버스로 나아가길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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