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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령에 선 전북의 운명

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역대 전북도지사 중 김대중 대통령때 도백을 지냈던 유종근 지사 만큼 힘있는 사람이 없었다.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던 그는 1995년 영국에 망명중이던 DJ의 후광을 등에 업고 강근호, 최락도, 강현욱 등 기라성같은 거목들을 누르고 첫 민선지사로 활동하게 됐다. IMF가 터지던 1997년말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유종근의 성가는 가히 하늘을 찔렀다. DJ의 수족같았던 동교동 가신들이 쩔쩔매면서 유종근 지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눈치를 봐야했고, 지방선거때 도내 시장, 군수 공천장은 대부분 유 지사의 낙점없인 안된다는 말이 파다했다. 현직 장관들도 유 지사를 만나기 위해 찾아오는 풍경이 낯선게 아니었다. 서열과 관록이 중시되던 시절, 초임 국장이 부지사로 영전하는가 하면 과장 한두자리 지낸 이가 내무국장, 건설국장을 꿰차는 경우가 허다했다. 무명에서 일약 정계의 중심에 선 그에겐 독선과 편견, 포용력 부족 등 숱한 비판이 따랐으나 크게 보면 공칠과삼(功七過三 공이 칠이고 과오가 삼이다)의 평가를 할 만하다. 공칠과삼이란 중국의 최고 실력자가 된 덩샤오핑(鄧小平)이 마오쩌둥(毛澤東) 사후 격하운동에 휩싸일 때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 한 말이다. 장황하게 유종근 전 지사의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있다. 20년전 도백을 지냈으나 오늘날 처한 전북의 현실이 그 당시와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유 지사때 이룬 3가지 업적과 미완성에 그친 3가지가 떠오른다. 보는이에 따라 다르지만 3가지 성과는 전북도청 이전, 소리문화의전당 건립,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유치를 꼽을 수 있다. 전북도청 이전이나 소리문화의전당 개별 사업에 각각 당시 돈으로 1000억원이 넘게 투입됐다. 혹자는 다른곳에 써야할 예산을 투입했다고 하나 IMF직후 상상도 못할 액수며, 오늘날에 도 쉽지 않은 일이다. 최고 실력자인 대통령의 후광 없이는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는법. 그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동계올림픽 유치가 무산되고 김제공항이 중단됐으며, 환경오염 논란으로 새만금이 중단됐다는 점이다. 무주 동계올림픽을 맨 먼저 들고 나왔으나 결국 강원도 평창에 빼앗겼고, 김제공항은 일부 지역주민과 지역 국회의원의 반대로 무산됐다. 새만금사업 또한 일부 비판을 이겨내지 못한채 오랫동안 중단됐다. 김제공항의 경우 만일 당시 지사와 국회의원이 일부 주민들에게 돌팔매를 맞으려는 더 큰 용기가 있었더라면 벌써 가동됐을 것이다. 당시 김제에서 열린 주민공청회에서 계란세례를 맞는 지사의 모습을 목도한 필자는 직감적으로 김제공항이 무산되기 쉽겠구나란 우려를 했는데 그게 현실이 됐다. 올초 전북몫 찾기를 도정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결코 쉽지않은 일임이 확인되고 있다. 타 시도의 견제 못지않게 지역민들이 에너지를 하나로 모으지 못하기 때문이다. 새만금 재생에너지 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로 지역민들이 하자, 말자는 논리로 양분돼 있다.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크게보면 일자리와 교육 2가지다. 경기장이나 대한방직 부지의 사례에서 보듯 전북인들은 자중지란의 행태를 보이는 것으로 투영될 수 있다. KTX 혁신역을 만들어달라고 모두가 호소해도 될까말까한데 지역 정치인들은 된다, 안된다로 양분돼 있으니 예산을 주기싫은 입장에서 보면 한마디로 불감청 고소원이다. 그런가하면 혁신도시 시즌2, 제3금융도시 운운하는 마당에 외지에서 우수 인재가 와도 부족한데 전북에서 사람을 쫓아내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교육감 한 사람의 편협한 이념에 의해 자사고의 존폐가 기로에 서있다. 일련의 상황을 보면 전북이 더 큰 시련을 겪을것이 너무 뻔하다. 이래저래 씁쓸한 세모다.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8.12.25 19:06

건물의 힘, 도로의 힘

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기차를 타고 서울역 앞에 내리면 맨 먼저 만나는 붉은색 건물이 있다. 바로 서울스퀘어다. 최근 이 건물이 무려 1조원에 매각됐다고 해서 화제가 됐는데 전북도의 예산이 7조원 남짓하니까 얼마나 엄청난 가격인지 알 수 있다. 서울스퀘어는 지금이야 강남, 서초, 송파 등지의 금싸라기 땅에 높게 솟아오른 대형 빌딩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무려 30년 넘게 서울을 대표하는 건물로 평가받았다. 서울역 바로 앞에 위치한 입지로 인해 오랫동안 서울의 상징적인 관문이라는 이미지를 지녔고, 특히 드라마 미생의 소재로 등장해 젊은이들 사이에 더 유명해졌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1973년 당시 돈 약 47억원에 교통센터 부지를 인수해 23층 높이로 1977년에 완공했다. 대우그룹 전 계열사의 본사로 사용했고, 특히 맨 윗층에는 김우중 회장의 집무실이 있었다.이처럼 서울스퀘어가 오랫동안 각광을 받은 것은 교통의 관문에 있었기 때문이다. 강남의 개념조차 별로없던 시절 서울 한복판에 자리잡은 서울스퀘어는 남산 서울타워와 더불어 서울 상징물의 하나였다. 흔히 제3한강교라고 일컬어지는 한남대교의 개통은 서울의 지도를 확 바꾼 일로 기록된다. 한남대교는 경부고속도로와 연결돼 있고, 강남과 한남동, 이태원, 남산 1호 터널을 잇기 때문에 한강에 있는 교량중 하루 통행량이 가장 많다. 남단은 경부고속도로와 강남대로를, 북단은 남산 1호 터널을 통해 도심으로 연결되기에 한강 교량중 통행량이 가장 많다는 거다. 서울시 조사자료에 따르면, 한남대교 강남방향의 하루 평균 통행량은 9만7008대, 도심 방향은 10만4442대 등 일일 평균 20만1450대가 통행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도로하나, 건물 하나가 얼마나 많은 부가가치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두가지 사례다. 며칠전 고군산 열도에 있는 선유도에 잠깐 들른적이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최근들어 현지 땅값이 엄청나게 올랐다고 한다. 현지 해설사에 따르면 최근 이 일대의 땅 1평(3.3㎡)당 거래가는 무려 70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지난해 12월말 고군산 연결도로가 개통되면서 선유도 중심지의 경우 400만원 남짓했던 땅값이 700만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올 여름에는 할리스커피숍이 개점했다고 한다.말이 700만원이지 전북의 가장 중심권인 전주에서도 이같은 땅값은 도심권에 진입해야 일부 형성될 수 있는 가격이다. 왜 이처럼 비싼 가격이 형성됐을까. 그것은 바로 선유도를 중심으로 한 고군산 연결도로가 개통됐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새만금 동서도로의 개통이 눈앞에 다가오면서 이 주변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한다. 새만금 동서도로는 새만금방조제부터 김제 심포항까지 20.5km(4차로)로 오는 2020년 준공 예정인데 일부 부동산 업자들은 김제에 있는 망해사와 심포항 주변 땅값도 꽤 올랐다고 귀띔했다. 만일 새만금 신항만과 새만금 고속도로가 연결되면 이 주변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도로 개통으로 인해 물류수송이 원활해지고, 복합도시 개발 또한 탄력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도민들 사이에서도 새만금 고속도로가 생긴들 뭐하며, 새만금 동서도로가 조성되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며 시큰둥한 사람들이 적지않다. 하지만 맹지와 요지의 운명은 도로 하나에 의해 나눠진다. 또한 그 지역을 대표하는 건물 하나에 의해 어마어마한 가치가 부여되기도 한다.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8.11.06 20:31

농협중앙회 유치가 전북회생의 관건

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한손에는 강력한 규제의 칼날을 휘두를 수 있는 채찍이 있고, 또다른 손에는 뭔가 줄 수 있는 당근이 있다손 치더라도 오랫동안 시장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정부는 없다. 그래서 일찌감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자유로운 경쟁이 이루어지면 정부가 개입하지 않아도 물건의 가격과 품질은 적절하게 정해진다고 주장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가격을 결정해 주기 때문에 정부의 활동은 필요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기에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자동조절 작용은 크게 왜곡되기 마련이다. 공급독점에 의한 폭리, 수요독점에 의한 납품단가 후려치기가 대표적인 경우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성숙함에 따라 사람들의 경제활동에는 더 많은 정부의 관여가 시작됐다. 소위 수정 자본주의다. 오늘날 선진국일수록 외형상 자유로운 선택을 허용하는 듯 해도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일탈이나 과식을 억제하게끔 촘촘한 사회시스템이 갖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화제를 혁신도시로 바꿔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렇게 하려고 했던 수도이전이 서울에 둥지를 튼 기득권층의 집단반발에 밀려 무산된 이래 대안으로 나온게 세종시와 전국 10개 혁신도시다. 능률만 생각한다면 정부부처가 세종시에 내려오고, 공공기관이 전주를 비롯한 지방에 내려오는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시장 원리로는 서울에 있어야 할 기관을 정부가 억지로 지방에 내려보낸 것이다. 양적 가치보다는 질적 가치를 추구했다고나 할까.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겼을때 기득권층의 반발이 있었듯 오늘날에도 국민연금공단이나 기금운용본부 사례처럼 투덜거리는 이들이 적지않다. 문재인 정부가 지방이전을 더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표명한 만큼 이제는 집권층의 결단이 필요하다. 골디온의 매듭을 하나씩 푸는것 보다는 칼로 잘라버린 알렉산더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례로, 어차피 전북을 농생명의 수도, 제3의 금융도시로 육성하겠다는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뜻 이라면 이번 기회에 반드시 농협중앙회를 전북혁신도시로 유치해야 한다. 오늘날 농협이 얼마나 비중있는 곳인지는 구태여 시시콜콜한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만일 유치하기로 하면 해야할 이유가 당장 10가지가 넘게 떠오르고, 안하려고 하면 해선 안될 이유가 10가지가 넘는다. 말이 서울이지 이미 여의도, 서대문, 강남 등지로 흩어져 있는 금융기관을 굳이 전주로 가져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호철이 소설 서울은 만원이다를 발표한게 벌써 반세기가 넘었으나 수도권 분산정책의 실패로 인해 오늘날 상황은 더 좋지않다. 요즘 강남, 서초, 송파, 강동 등 소위 강남 4구는 말할것도 없고, 강북지역인 마용성(마포, 용산, 성동구)도 84㎡ 기준 아파트가 10억원이 넘는곳이 허다하다. 전북 젊은이가 아주 열심히 해서 명문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을 잡았다고 하더라도 서울에서 10억원이 있어야만 집 하나를 산다면 (그가 도둑질을 하지 않는 한) 집장만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뾰족한 대책이 없기에 김현미 국토부장관이 요즘 집값 걱정에 잠도 잘 못잔다고 한숨쉬는 것이다. 과밀도시 서울을 지방으로 분산하는 것은 오늘의 문제를 단번에 푸는 열쇠이고, 농협중앙회의 전북이전은 하나의 사례이긴 하지만 지방이전의 성패를 좌우하는 시금석이 될 수도 있다. 만원 버스에선 누군가 내려야만 한다. 그게 바로 지방이전이다.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8.09.11 19:27

전북의 정치권력 판도 어떻게 될까

▲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프로기사의 세계에서 단을 일컫는 말이 따로 있는데 예를들면, 초단은 수졸(守拙졸렬하나마 제 스스로는 지킬 줄 안다)이라고 하며, 8단은 좌조(坐照앉아서도 삼라만상의 변화를 훤히 내다볼 수 있다), 최고봉인 9단은 입신(入神신의 경지에 도달)이라고 한다. 대통령을 지냈다고 해서 함부로 입신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것을 보면, 정세균 전 국회의장의 경우 8단인 좌조(坐照) 정도의 호칭을 써도 될법하다. 요즘 정세균 전 의장의 향후 행보를 지켜보는 도민들이 적지않은데 만일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였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낙마하지 않았더라면 정 전 의장은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뚜렷한 지역 맹주가 없는 상황에서 정 전 의장은 오늘날 송하진 지사,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만들어내는데 기여한 바도 적지않다. 관료로 출발했으나 전주시장 두번, 도지사 두번의 선거를 거치면서 이미 정치 거목이 돼버린 송하진 지사는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이낙연 총리의 사례에서 보듯 시도지사는 늘 잠재적 총리 후보로 거론될만큼 현직 장관의 반열을 넘어서고 있고, 특히 정치적 영향력 측면에서 중앙당 핵심 인사에 못지않다. 그런점에서 더불어민주당 차기 지도부 선출을 위한 825 전당대회에서 이들의 행보가 주목된다. 이해찬이종걸김진표송영길최재성이인영박범계김두관 등 8명의 의원이 당대표 후보로 출마했고, 5명을 선출하는 최고위원 선거에는 설훈유승희박광온남인순박정김해영박주민 황명선 등 8명이 나섰는데 안타깝게도 전북 출신 국회의원이나 단체장은 보이지 않는다. 관심사는 오는 8월 4일 우석대체육관에서 열리는 더불어민주당 전북도당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새 도당위원장에 누가 선출되는가 하는 점이다. 현역인 안호영 국회의원과 원외위원장인 김윤덕 현 도당위원장이 벼랑끝 승부에 나섰다. 도당위원장 경선은 작아보여도 내후년 차기 총선의 가늠자가 됨은 물론, 당분간 도내 집권여당의 권력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지역위원장들은 저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어느 정도 입장을 표출하는 반면, 송하진 지사, 김승수 전주시장 등 단체장들은 노골적으로 특정인에 대한 지지여부를 드러내지는 않는 분위기다. 핵심은 현역 국회의원을 뽑느냐, 아니면 원외 인사를 선출하는가 하는 점이다. 집권당인 민주당의 거점이면서도 전북은 현재 묘한 상황에 처해있다. 10명의 지역구 선출 국회의원중 이춘석, 안호영 단 2명만 있을뿐이어서 힘이 좀 빠진 모양새다. 지난달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도내에서 압승을 거뒀으나 14개 시군 중 익산, 고창, 임실, 무주 등 4명의 시장군수를 빼앗겼기에 이번 전대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이번 도당위원장 경선의 화두는 과연 누가 더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것인가에 모아진다. 8월 5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리는 민주평화당의 차기 대표 경선 결과도 결코 가볍지 않다. 유성엽, 정동영, 최경환, 민영삼, 이윤석, 허영 등이 나섰는데 당권은 최경환, 정동영, 유성엽 세명으로 압축되는 분위기다. 민주평화당의 당권이 조배숙에 이어 계속 전북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전남광주로 넘어갈지 여부와 더불어, 특히 정동영유성엽 후보간 승패 결과는 초미의 관심사다. 민주당과 민평당의 전대 결과는 전북의 세력판도를 새롭게 형성할 것이 확실하다.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8.07.24 21:20

박노풍과 바이엘 아스피린

▲ 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전북대학교 총동창회는 지난해 박노풍(88부안 출신) 전 호남작물시험장장을 전북대학교 동문대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사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해 보이지만 박노풍이란 이름은 농업인에게 있어 매우 익숙하다. 농학자인 그는 벼 다수확 품종 개발을 통한 육종 기술 개발에 평생을 몸바쳐왔고, 농업 행정가로서 잘 사는 농촌을 만들기 위해 일선에서 헌신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꼭 자랑스럽지만은 않다. 그가 개발한 통일벼 품종 노풍이 벼에 치명적인 도열병에 극히 취약, 한때 흉년농사의 주범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1977년에 새로 등장한 이리 327호는 육종책임자인 호남작물시험장장 박노풍의 이름을 따 노풍으로, 밀양 29호는 영남작물시험장장 박래경의 이름을 따 래경으로 일컬어졌다. 그러다 1978년 한반도를 강타한 변종도열병은 노풍을 쭉정이로 만들어버렸고 정부가 강권하다시피 해서 노풍을 심었던 농민들은 농사를 망치게 됐다. 한동안 노풍이란 이름은 실패한 통일벼의 대명사로 꼽혔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박노풍 개인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수확량이 많은 통일벼를 개발해 굶주림을 해결하려는 열정만큼은 높이 사기 때문이다. 지금은 쌀이 남아돌지만, 반만년 우리 역사에 있어 서민들이 굶주리지 않은 것은 채 50년도 되지 않는다. 1970년대만 해도 농촌지역에서 점심을 굶는 사람은 허다했고, 서민 식탁에 계란이라도 올라간 것은 1970년대 후반이었다. 화제를 바꿔 차범근 선수가 은퇴할 때까지 뛰었던 독일의 레버쿠젠으로 가 보자. 아스피린을 만들어낸 바이엘 회사가 있는 곳이다. 바이엘 아스피린이 나온지 올해로 만 120년이 됐다. 1918년 발병한 스페인 독감은 전세계를 휩쓸면서 무려 250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다. 제1차대전(1914~1918)이 있던 4년 간 전장에서 사망한 사람의 수(800만 명)보다 단 6개월 동안 유행한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3배나 많았다. 당시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스페인 독감(=무오년 독감)으로 인해 한반도 전체인구의 38%인 758만 명이 독감에 걸렸고, 그 중 14만 명이 죽었다. 물론 독감과 감기는 전혀 다른 차원의 질병이기는 하지만, 해열과 진통 효과가 큰 바이엘 아스피린이 전세계적으로 얼마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데 바이엘 하면 아스피린이나 만드는 줄 알았는데 독일의 바이엘사가 최근 전 세계 먹거리를 책임지는 종자시장에서 큰손으로 우뚝 섰다. 바이엘사는 최근 세계 최대 종자 기업인 미국의 몬샌토를 630억 달러(약 67조원)에 사들이면서 세계 종자 시장은 초대형 3개사의 과점 체제로 재편됐다. 바이엘, 다우케미컬, 중국화공이 세계 시장을 삼등분하게 된 것이다. 몬샌토를 인수한 바이엘이 세계 종자 시장의 약 30%를 차지하고, 듀폰과 합병한 미국 다우케미컬이 약 25%의 점유율을 갖는다. 중국화공은 세계 3위 스위스의 신젠타를 인수하면서 도전장을 냈다. 만일 우장춘이나 박노풍 같은 이들의 노력이 꾸준히 쌓이고, 정부와 기업차원의 선견지명이 있었더라면 우리나라도 바이엘같은 회사가 하나 정도는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식품클러스터와 종자산업박람회를 열고 있는 전북이 대한민국의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한 거대한 꿈을 지금부터라도 펼쳐야 한다.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8.06.12 20:33

지방선거 후보에게 묻는다

▲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지방선거가 한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 유력 후보군의 윤곽이 확연히 가시권에 들어왔다. 이번 선거에서는 지사, 교육감, 14개 시장군수, 도의원 39명, 기초의원 197명 등 252명을 선출한다. 중도에 포기한 이들까지 포함하면 얼추 600명이 훌쩍 넘는 후보군이 도전장을 던졌으나 이제 점차 최종 후보만 남는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인해 막 싹을 틔우던 지방자치는 없어지고 관선에 의한 행정이 이뤄졌기에 우리의 지방자치 역사는 일천하기 그지없다. 무려 30년만에 1991년 지방의회 선거의 부활, 그에 이은 1995년 자치단체장 선거를 치르면서 전북의 지방자치는 수많은 에피소드를 남기며 조금씩 발전했다.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지방자치의 부활은 시행초기 수많은 갈등과 시행착오를 거듭했지만 그 방향만큼은 시민권의 확대를 향해 나갔다. 1991년 봄 기초의회와 광역의회 선거는 시종 흥미로웠다. 도내 지역의 경우 전주지역 최대 운수업체 사장이 전북은행 노조위원장 출신 젊은이에게 떨어졌고, 도내 최대 건설업체 사장도 목욕탕 때밀이 출신 후보에게 밀렸다. 특정정당의 광풍이 휘몰아치던 시절에 학력이나 경력, 재력 등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첫 단체장 선거 때 고졸 출신 정당인이 서울법대 출신 명망가를 이겼으나 놀라는 이는 없었다. 1991년 7월 무려 30년만에 도의회가 개원했으나 관선도지사는 듣보잡출신 민선 지방의원을 인정하지 않았다. 최용복 당시 전북지사는 없던 지역 순시일정을 만들어 고의로 도의회 개원식에 출석하지 않았고, 이후 집행부와 지방의회는 지루한 힘겨루기를 벌였다. 도의회를 예로 들면 당시 의원들은 크게 3개 부류였다. 오랫동안 지역위원장을 모시며 지구당 주변을 맴돈 당료나 보좌관 그룹, 사회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정치지망생, 학생운동이나 사회운동가 그룹 등이다. 공직자 출신으로는 도청에서 국장을 지낸 국승록씨(훗날 정읍시장 역임)가 유일했다. 지구당 주변에 있던 정치지망생 중에는 제대로 된 학교를 나오거나 평생 직업 한번 가져보지 못한 사람이 많았으나 정치인으로서 이들은 뚜렷한 결기를 가지고 있었다. 공직사회의 잘못을 제대로 짚어내고 이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성장을 도모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평소 정당 주변에서 놀던 사람이 어느날 의원 배지를 떡하니 달고 왔으나 이를 인정받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대표적인 경우가 도청 이정규 국장과 김세웅 의원의 대결이었다. 집행부에서 통과를 원하던 조례가 계속 태클을 당하자 간담회 도중 이정규 국장은 김세웅 의원에게 폭언을 했고, 김 의원은 국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등 급기야 이 문제는 정치쟁점화되기에 이르렀다. 도의회 초창기 에피소드를 남겼으나 훗날 이정규 국장은 민선 남원시장, 김세웅 의원은 민선 무주군수를 지냈다. 그런가 하면 도의회 행정사무감사 도중 무주군의 한 과장은 감사장에서 담배까지 피울 만큼 지방의회를 인정하기 싫어했고 도의원들은 공개 석상에서 지사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일까지 있었다. 집행부 간부 중에도 결기있는 이들이 왕왕 있었다. 늘 굽히고 겸손하던 하광선 국장은 자신이 모시던 이강년 지사에게 무례하게 굴던 도의원과 공개석상에서 삿대질을 해가며 나름대로 권위를 지키려는 모습도 기억이 생생하다.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 지방선거 후보들은 학벌도 높아지고 경륜도 풍부해졌으나 사명감과 결기를 갖춘 경우를 찾기 어렵다고 한다. 단체장이 됐든, 지방의원이 됐든 이 순간 스스로 물어야 한다. 나는 정녕 자신의 영달을 위해 나섰나, 아니면 주민과 지역사회를 위해 출마했나? 확신이 서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그만둬야 한다.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8.05.01 21:04

초원복국집에서 본 지방선거

▲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며칠 전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 머물 기회가 있던차 문득 생각이 나 바로 근처에 있는 초원복국을 찾았다. 단순히 속풀이용 참복을 들기 위해 방문한 게 아니고, 좋든 싫든 한때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역사의 현장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부산 초원복국은 과연 어떤 곳인가. 제14대 대선을 일주일 앞둔 1992년 12월 11일, 부산 대연동의 음식점 초원복국에 김기춘 전 법무부장관(훗날 비서실장 역임)과 지역 기관장들이 모였다. 참석자는 김영환 부산시장, 박일룡 부산경찰청장, 정경식 부산지검 검사장, 우명수 부산시교육감과 국가안전기획부 지부장, 부산상공회의소장 등이었다. 김기춘 전 장관이 부산 경남 사람들 이번에 김대중이, 정주영이 어쩌냐 하면 영도다리 빠져 죽자, 남들이 비웃을 것이다. 당락을 불구하고 표가 적게 나오면 우리는 멸시 받는다. 바보라고 하면서 지역감정을 좀 자극해서라도 민주자유당 후보였던 김영삼을 당선시키자는 취지로 말했다. 참석자들은 앞다퉈서 자신이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선거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대화 내용은 국민당 측에서 전직 안기부 직원 등과 공모해 도청장치를 몰래 숨겨 녹음을 함으로써 언론에 알려졌으나, 오히려 김영삼 위기론 확산으로 영남을 중심으로 한 지지층이 크게 결집, 대통령에 쉽게 당선됐다. 초원복국은 이 사건으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게 됐고, 무려 26년이 지난 지금도 문전성시를 이룬다. 정작 부산시민보다도 외지인들이 호기심 반, 맛기행 반 해서 찾아온다고 한다. 지역감정의 뿌리는 당나라와 손잡은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키면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있고, 고려 태조 왕건의 훈요십조에서 연원한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아주 가깝게는 1961년 516 이후 박정희와 김대중으로 대표되는 두 정치인의 대선 대결에서 격화됐음을 부인키 어렵다. 지역감정 조장의 원조격으로 꼽히는 인물은 이효상(대구) 전 국회의장이다. 이효상은 1971년 대선 때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영남인은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다며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자극했다. 대선 때마다 호남과 영남은 극도의 대결양상을 보였고, 마침내 전북을 비롯한 호남은 선거 때마다 황색돌풍이 일어나면서 묻지마식 투표가 진행됐다.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을 중심으로 한 소위 3김 시대가 끝나면 지역감정에 의한 투표 행태는 없어질 것으로 기대됐으나 아직도 현실은 현재진행형이다. 앞으로 한달 이내에 도내에서 민주당 후보 공천이 마무리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민주당 공천장을 쥔 후보는 당선권의 9부능선을 넘게 된다. 상대적으로 정당색이 약한 지방선거여서 일부 시군에서는 민주당 이외 후보가 선전할 것이란 관측도 있으나 찻잔 속의 태풍일 뿐 많지는 않을 것이다. 지방선거가 다가올수록 각 정당들은 특정 지역에서의 패권을 노리고 똬리를 트는 양상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선거에서 전북을 비롯한 전라도의 패권을 과연 누가 움켜쥐느냐가 관건이다. 이순신 장군은 (약무호남 시무국가)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고 했다. 과연 이번 지방선거에서 전북을 비롯한 호남의 패권을 장악한 정당이 정국 주도권을 쥐게 될 지 정가의 이목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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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20 20:10

골품제에 신음하는 6두품

정읍 태인면에 있는 피향정(披香亭보물 제289호)은 한창 여름철에 가면 연꽃이 만발한 연못이 장관을 이룬다.통일신라 말기 최치원이 정읍 태산군수(칠보태인산내면 일대 관할)를 하면서 피향정 주변을 거닐며 풍월을 읊었다고 한다. 최치원은 최승우와 더불어 신라말기 문장의 대가인 소위 3최인데 정읍 칠보에 있는 무성서원 역시 태산군수로 재임하던 그가 쌓은 공적을 기리는 곳이다.어릴 때 당나라에 국비유학생으로 다녀오고 그곳에서 장원급제까지 한 그가 신라에 돌아와 큰 족적을 남길 것 같았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그는 태인, 함양, 서산 등지에서 고을수령을 하는 것으로 공직을 마감했다. 바로 신라의 뿌리깊은 신분제도인 골품제 때문이었다.성골, 진골도 아닌 데다 겨우 6두품에 불과했기에 그가 출세할 수 있는 한계는 너무 뚜렸했다.그는 진성왕에게 시무책(時務策)을 올렸으나 진골귀족의 미움만 받았고, 결국 관직은 6두품이 오를 수 있는 최고 관등인 아찬(阿飡)에 그쳤다.통일신라가 망한 이유를 여러가지로 꼽지만 그 중 하나가 바로 기존 질서에 염증을 느낀 6두품들의 변심을 꼽는다.풍부한 식견과 개혁성향,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으나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진골귀족들의 잔심부름꾼 노릇을 하던 6두품들의 민심이반은 결국 후삼국의 분열과 고려창건으로 이어진다.최치원이 골품제의 폐해를 타개하기 위해 올린 시무10조 중 하나를 보자.천하를 다스리려면 먼저 부정 출세를 막아야 하고, 어진 선비의 진출 길을 막아서는 안 된다.당시 사회는 그랬다. 부정 출세가 있었고, 어진 선비의 진출이 막혔던 것이다.그로부터 무려 1000년이 지났다.역사와 사회는 발전하고 사람들의 삶은 풍요로워 졌으며, 신분제는 타파된 지 오래다. 하지만 최치원이 시무10조를 올리던 당시와 크게 변하지 않은 게 너무나 많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타고난 배경에 의해 인생이 좌우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다.어떤 이는 나는 수저를 입에 물고 나오지 않은 무수저였다며 자신의 치열한 노력과 행운에 의해 성공했다고 자랑하기도 하지만 이는 극단적인 사례일 뿐이다.오늘날에도 버젓이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가 거론된다.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이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것이다.취직에서 번번히 미끄러지는 문과생들의 자조섞인 표현이다.이를 패러디한 기사 하나가 눈길을 끈다.건국대라 죄송합니다지난 4일 건국대 학보사 건대신문 온라인판에 게재된 기사 제목이다.KEB하나은행이 2016년 신입 행원 공개채용에서 임원면접 점수를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와 외국 대학 출신에게는 높게 줘 합격시키고, 이들을 제외한 다른 대학 출신에는 낮게 줘 탈락시켰다는 점을 풍자한 표현이다.금감원은 하나국민대구부산광주은행 등 5개 은행의 채용 비리 의심 사례 22건을 적발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곧바로 수사가 시작됐다.일부 은행에서 일어난 일을 가지고 골품제 운운하는 게 과장된 것처럼 보일 것이다.하지만 내 눈에 바퀴 한마리가 발견된 것은 곧 우리주위에 수십, 수백마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은행 몇 곳의 불법, 탈법은 이미 우리사회에 골품제의 폐해가 만연함을 보여준다.서울소재 대학의 학생들이 이처럼 박탈감을 느낄 때 과연 지역 대학생들의 무력감은 얼마나 클 것인가.최치원이 시무10조를 올린지 1000년도 넘었으나 아직도 우리사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골품제의 폐해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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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18.02.07 23:02

'독이 든 성배'를 든 지도자

전주 영화의거리 주변에는 태봉집이라고 하는 작지만 아주 오래된 식당이 있다.매주 토요일 아침 이곳에서는 몇몇 지인들이 함께 식사를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이 모임이 맨처음 만들어진 것은 김생기 전 정읍시장이 한창 서울에서 활동하던 시절, 주말같은때 고향에 내려와 친한 이들과 함께 조찬을 한 것이 계기가 됐다.시간이 지나면서 김 전 시장은 참여하지 않은지 오래됐고, 멤버 또한 다 바뀌었지만 토요일 아침 지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던 관행은 지금도 계속된다.며칠전 김생기 전 정읍시장이 선거법 위반으로 확정 판결을 받으면서 시장직을 잃었다.이미 고희(70세)에 들어선 그는 정권교체 이후 두터운 인맥을 활용해 막판 투혼을 불태우기에 가장 좋은 기회를 잡는듯 했으나,선거법에 발목을 잡히면서 평생 몸담았던 정치권을 떠나게됐다.오랫동안 국회나 정읍에서는 생기가 없으면 원기도 없다는 말이 유행했다.민주당 원내총무, 사무총장, 최고위원 등을 거쳐 국회의장까지 지낸 김원기를 만들어낸 이가 곧 사촌동생이자 보좌관인 김생기였다는 얘기다.앞서 지난달에는 이건식 전 김제시장이 업무상 배임 혐의로 시장직을 잃었다. 황색돌풍이 휩쓸던 1980년대 민정당 훈련국장을 지내다 고향인 김제에 내려와 총선만 4번이나 떨어지는 등 무려 20년 가까이 야인을 지낸 그는 명예롭게 전국 유일의 무소속 3선 단체장으로 임기를 마칠 수 있었으나 골인지점 바로 앞에서 낙마하고 말았다. 이미 3선을 했고 나이도 73세인 이 전 시장의 회한은 명예를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퇴장은 상징성을 갖는다. 그것은 바로 도내 지도자들의 세대교체를 의미한다.지방의원 한두번 했거나 공직을 마무리할 때쯤 운좋게 국회의원이나 시장군수에 당선된 것과 달리 이들 2인은 거의 평생을 현실정치에 몸담아왔기 때문이다. 사실 정치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한편으론 권력과 명예를 누리게 되지만 또 한편으론 무척 큰 위험부담을 갖는다. 몇몇 사례를 더 들어보자.1995년 첫 민선단체장 선거때 혜성처럼 나타나 최락도, 강근호 같은 거물들을 일거에 무너뜨리고 당선된 유종근 전 전북지사는 여세를 몰아 대권까지 넘봤으나, 결국 비리 혐의로 영어의 몸이 됐다.미련을 버리지 못한 그는 지난해 총선에도 나섰으나 결국 5% 득표에 그치며 낙마했고, 최근 평택대학교 총장직무대행에 선임됐으나 교수회와 학생회 등의 사퇴압박에 직면하고 있다.민주당 도당위원장, 정책위의장을 지냈던 강봉균 전 장관은 민선 도백의 꿈을 꾸다 실패한뒤 지난해 총선 때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활동했으나 올해 초 결국 병사하고 말았다.신건 전 국정원장은 만일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나서지 않았더라면 가장 존경받는 원로 중 한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으나 국회의원 한번을 지내고 결국 신병으로 지난 2015년 세상과 하직했다.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많은 도민들은 무엇인가를 더 할 수 있을때 과감하게 용퇴하고 떠나는 모습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당장 지방선거가 눈앞에 다가오면서 수많은 이들이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어떤 사람은 몸불리기 차원에서, 또 어떤이는 공익보다는 자신의 복지를 위해 나서는 이들도 있다.하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도의원들의 경우 1991년 제4대부터 9대까지 100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도전장을 던졌으나 지금까지 시장군수를 지낸이는 곽인희, 국승록, 김세웅, 김진억, 송영선, 임수진, 임정엽, 홍낙표, 이병학, 최진영, 이한수, 윤승호, 황정수 등 13명에 불과하다.국회의원은 강동원, 김세웅, 김성주, 김윤덕, 김광수 등 5명에 불과하다. 임기를 못채운 경우도 많고 본인이나 아내가 감옥에 간 경우가 절반이 넘는다.지역사회에 대한 헌신, 또 독배를 들고다니다 잘못마셔서 죽을 각오가 돼있는 이들이 심판 받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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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17.12.27 23:02

일본의 유신, 한국의 유신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책의 날은 4월 23일이다.1616년 4월 23일 스페인의 세르반테스와 영국의 셰익스피어가 우연하게도 같은 날 사망한 것을 기념해 제정했다고 한다. 말이 그렇지 최초의 근대소설 돈키호테를 지은 세르반테스와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영향력 있는 극작가로 평가받는 셰익스피어가 같은 날 사망했다는 게 우연치고는 참으로 기막히다.가깝고도 먼 나라 한국과 일본에서는 10월 26일이 묘한 여운을 던지는 날이다.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권좌에서 사라지는데, 그로부터 꼭 70년 전인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는 안중근 의사에 의해 이토 히로부미가 역시 제거된다.10월 26일 삶을 마감한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와 한국의 박정희는 유신이라는 공통점을 갖게 된다.유신(維新)은 시경에 나오는 단어로 새롭게 한다는 뜻이다. 본래 의미는 결코 나쁘지 않지만 한국에서 유신은 그나마 유지되던 최소한의 민주주의가 말살된 독재헌법, 독재시대를 의미한다.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정권이 장기집권을 목적으로 단행한 초헌법적 비상조치로 보통 10월 유신이라고 일컬어진다.박정희보다 꼭 70년 전 사라진 이토 히로부미 역시 일본의 메이지유신 당시 주도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1868년, 그동안 꼭두각시에 불과했던 천황이 국가를 직접 통치한다는 친정(親政) 선언을 하면서 일본 근대 국가 수립과 제국주의의 원동력이 된 메이지(明治) 유신의 서막은 올랐다. 메이지 정부는 서구에서 수백 년에 걸쳐 이루어진 일들을 십수 년 만에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이토 히로부미는 우리에게는 식민 침탈의 원흉이지만 일본인들에게는 근대화의 아버지요, 영웅이다.하층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총리만 네 차례를 지낸 그는 일본의 근대적 헌법과 형법을 기초했고, 일본 외교의 큰 그림을 그렸으며 조선 총독, 추밀원 의장 등 정계 요직을 두루 거쳤다.시간적으로 70년의 차이가 있지만 똑같이 10월 26일 삶을 마감한 박정희와 이토 히로부미를 화두로 꺼내는 이유가 있다. 정치적으로 어떤 실적을 거두고, 국내외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가 하는 것은 별개로 치고 적어도 한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일본의 유신은 700년 간 계속된 봉건시대에서 벗어나 바야흐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것이고, 한국에서 유신은 1인독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점이다.이 세상의 모든 사안이 보기에 따라 정반대의 평가를 할 수 있다지만, 적어도 일본의 유신은 국민의 삶의질이 개선되는 쪽으로 진행된 반면, 한국의 유신은 국부(國富)는 신장됐을지언정 국민 삶의 질은 악화됐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그 핵심은 바로 시대 흐름을 제대로 읽어냈는가 하는 점과 결단 과정에 사심은 없었는가에 모아진다.국가간 경쟁, 지역간 경쟁이 극에 달한 요즘, 지도자들이 한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어떤 결정을 할 때 나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공익을 위한 것인가 하는 판단이 우선돼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한 건 올리기 위해 어떤 일을 하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일 뿐, 장기적으로 보면 공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낙후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도민이 몸부림을 치는 요즘 국회의원, 단체장, 지방의원, 교육계 인사 등 전북의 지도자들이 공인으로 나설 때의 초심을 잃지 않았는지 다시 생각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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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17.11.15 23:02

수도이전, 전북도청 이전

지금부터 약 200 여년전, 조선 정조때 전세계를 통틀어 인구 100만명이 넘는 도시는 중국의 베이징, 일본의 에도(오늘날 도쿄), 그리고 터키의 이스탄불 등 단 3곳에 불과했다. 조선 수도 한양의 인구가 20만명 남짓할때 100만이 넘었으니 이들 3대 국제도시의 명성과 규모는 가히 짐작할만 하다.그런데 이러한 수도는 어느날 갑자기 만들어진게 아니고 새로이 정치권력의 주도 세력이 된 집단이 질서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대표적인게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이다. 정치, 종교, 사회적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있지만 어쨋든 기존 수도 로마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치질서를 표방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도시가 바로 오늘날 이스탄불이다. 예나 지금이나 수도를 이전한다고 하면 기존에 터를 굳건히 다졌던 기득권층의 반발은 상상을 초월한다. 강제수단을 동원하고, 당근을 줘가며 만든게 서울을 비롯한 오늘날 대도시의 변천사다.사실, 우리역사에 있어서도 수도 이전과 관련한 논쟁은 적지않다.대표적인게 개경파와 서경파가 맞대결한 소위 묘청의 난이다. 수도를 개경으로 해야하느냐, 서경(오늘날 평양)으로 해야하느냐 하는 논쟁끝에 커다란 내전으로까지 치달은 사건이다. 조선건국 후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하는 과정에서도 공신들 사이에서 숱한 논란이 일었고, 태조 이성계는 골머리를 앓았다. 박정희 정권 때 수도이전을 추진하다 중단했는데 그게 오늘날의 세종시와 별반 멀지 않은 곳이다.노무현 정권 때 헌법재판소의 관습법상 수도는 서울이라는 판결에 수도이전은 무산됐고, 그후 세종시를 행정수도로 만드는 과정에서도 엄청난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 국민의 절반 가까이 수도권에 살고 있고, 국회의원의 2/3 이상이 수도권에 터전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세종시를 명실공히 행정수도로 조성하는것 또한 큰 저항을 이겨내야 하는 상황이다.수도 이전은 단순히 몇개 기관이 옮겨가는데 그치지 않고 국운을 좌우할만큼 중요한 사안이다.오늘날 베이징, 이스탄불, 도쿄 등이 세계적인 중심도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엄청난 저항을 물리치고 수도이전을 강행했기 때문이다.범위를 좁혀 지방행정도시를 옮기는 것 또한 엄청난 저항과 파급효과가 동시에 나타나는 일이다.경북 안동, 전남 무안 등 새로이 도청 소재지가 된 곳은 오랫동안 갈등과 논쟁을 거듭한 끝에 결정됐다.전북도가 향후 장기발전 방향을 새만금으로 잡고 있는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할 과제중 하나는 새만금에 도청 제2청사를 두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서해안 시대에 걸맞게 도정 역량을 집중한다는 의미가 있고, 특히 향후 새만금이 중국의 푸동이나 인천 송도처럼 상전벽해가 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장기적으로 검토할만한 과제다. 다만 새만금이 빠르게 정착되고 살아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전주는 명실공히 역사적문화적 전통을 지닌 고을이라는 점에서 전주를 떠나 도청사를 당장 옮기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렵다.특히, 무진장을 중심으로 한 동부권 발전이 더딘 점을 고려하면 서해안으로 진출하는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역의 비전을 서해안에 둔다면 장기적으로 새만금에 도청 제2청사를 두는 것도 그냥 묵살할 일이 아니다. 경북의 경우 포항에 동해안 발전본부란 기관이 곧 문을 여는데 이곳은 2급 상당 공무원이 책임자를 맡아 도청 제2청사 격으로 활동하게 된다.우리에겐 타산지석이 될 법하다.뭐든 하려고 하면 합당한 이유가 당장 10가지가 생각나고, 하지 않으려 하면 부당한 이유가 10개가 떠오른다고 한다. 향후 발전 방향과 지향점, 서해안 시대의 개막을 앞두고 새만금에 도청 제2청사를 두는 것이 장밋빛 꿈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부터 착실히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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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17.09.27 23:02

민선도백의 승부수 왜 중요한가

1995년 민선단체장 선거가 첫 실시된 이후 도내에선 지금까지 4명의 민선도백이 있었다.유종근 전 지사를 필두로, 강현욱, 김완주, 그리고 송하진 현 도지사가 바통을 잇고 있다.그런데 도단위 지도자들의 승부수는 늘상 성패가 있었지만, 그가 어떤 승부수를 띄우는가에 따라 자신의 정치적 운명은 물론, 지역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지극히 소시민적 시각으로만 보면 이 나라의 대통령이 누가되든, 도지사나 국회의원, 또는 시장군수가 누가되든 나의 삶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게 사실이다.하지만 긴 안목에서 보거나 공동체의 틀속에서 본다면 지도자의 결정 하나하나가 모두 내 삶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극단적인 경우지만 국가 지도자가 전쟁이나 평화를 선택했을 경우 그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 누구도 그러한 결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이런점에서 민선시대 개막 이래 도내 단체장들이 던졌던 굵직한 승부수가 갖는 의미는 심대하다.때로는 결실을 맺기도 하고, 때로는 부메랑이 돼 아프게 돌아오기도 했지만 말이다.22년전 혜성처럼 등장했던 유종근 전 지사는 기존에 봐왔던 관선 도백과는 차원이 다른 인물이었다.그는 지역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으나 무주 동계올림픽 유치, 새만금지역 다우코닝사 유치, 군산 F1 그랑프리 유치를 선언하면서 주위를 놀라게 했다. 김대중 정부의 유력한 인물이었던 그는 역대 전북지사중 가장 파워있는 사람으로 당시로서는 지역주민들이 제대로 감당하기 어려운 대형 프로젝트를 표방하면서 기대를 키웠으나 아쉽게 성사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대형 프로젝트는 결국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무주~전주 도로 확충 등 민선도백의 승부수는 나름대로 지역발전을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IMF 파동 와중에서도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건립, 새 전북도청사 건립을 이뤄냈고 대형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인프라를 크게 구축한 것도 나름의 평가를 받을만 하다. 뒤이어 등장한 강현욱 도지사는 강만금이라는 별명에서 보듯 유달리 새만금사업의 성공을 위해 진력했으나 야당 도지사의 한계는 뚜렷했다.그는 무주 세계태권도공원 유치, 전북혁신도시 유치 등의 성과를 일궈냈으나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기에는 버거웠고 결국 동계올림픽이나 방폐장 유치 실패를 맛봐야 했다. 다만 오늘날 전북혁신도시가 지역발전의 주춧돌이 되고, 무주 세계태권도대회 개최를 할 수 있었던 단초가 된 점은 평가할만하다.김완주 지사때에는 큰 프로젝트를 추진하기엔 더욱 어려운 상황에 내몰렸다.요즘 최대 관심사인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를 유치했고, OCI, 도레이 등 국내외 글로벌 기업 유치에도 진력했으나 정권과의 동질성 부족 등으로 대형 프로젝트는 꿈도 꿀 수 없었다.그는 임기 막판 LH 본사유치, 프로야구 10구단 유치 등에 나섰으나 잇따라 실패하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이제 막 임기 3년을 마친 송하진 지사는 어쩌면 유종근 전 지사이래 가장 좋은 여건을 맞고있다.DJ의 참모를 지냈던 유 전 지사 이후 다시 한번 집권여당의 두터운 후원을 등에업고 있기 때문이다.시기적으로 뭔가 보여줘야 할 상황도 도래하고 있다. 그런점에서 본다면 오늘 아제르바이젠에서 전해줄 세계잼버리대회의 유치 결과가 주목된다.이미 무주 세계태권도대회 유치나 북한 태권도대표단의 전북도청 방문 등 가시적 성과가 있긴 했지만, 새만금, 농생명 중심지, 금융 허브를 표방한 만큼 지금부터 하나하나 성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세계잼버리대회는 사실 그 자체는 작아 보여도 이를 지렛대삼아 SOC를 확충하는 등 새만금사업을 앞당길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늘밤 아제르바이젠에서의 낭보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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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17.08.16 23:02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기타가 오늘날과 같은 위치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은 스페인 출신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타레가의 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지금부터 약 130년 전, 타레가는 바흐, 베토벤, 쇼팽 등이 작곡한 것을 기타로 편곡했는데 그 과정에서 현대적 주법과 새로운 음향을 잘 담아냈다.결정체는 스페인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란 작품이다.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도 타레가의 명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듣다보면 트레몰로 주법을 통해 묻어나오는 애잔한 분위기에 흠뻑 빠질 수밖에 없다.알함브라 궁전은 과연 무엇이던가.건축가들은 인류가 만든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동양의 타지마할과 서양의 알함브라 궁전을 꼽기도 한다. 스페인 남부 그라나다 지역에 머물던 아랍군주의 저택이자 왕궁으로 지금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알함브라 궁전하면 곧바로 생각나는게 있다. 작게는 스페인, 크게는 세계사를 바꿨던 1492년이다.조선의 건국이 1392년, 임진왜란이 1592년인데 딱 그 중간이 바로 1492년이다.1492년 스페인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첫째 마지막 이슬람 왕족인 그라나다왕국이 정복되면서 스페인이 이슬람 치하에서 벗어났고, 둘째 카스티야 왕국과 아라곤 왕국의 연합으로 통합 스페인 역사가 시작됐으며, 셋째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해다. 한 국가에서의 작은 날갯짓 같아도 일련의 역사적 사건은 세계질서의 재편이라는 엄청난 의미를 담고 있다.바로 이 해를 전환점으로 해서 스페인은 유럽의 중심국가, 아니 세계사의 주역으로 우뚝 서게되는 것이다. 그런데 스페인의 부흥과 영광이 동트는 바로 그 순간, 스페인의 몰락은 이미 한쪽에서 움트고 있었다.그라나다 정복 3개월만에 유대인들의 추방을 명하는 알함브라 칙령을 발표한 것이다.가톨릭의 순수성, 이민족의 배제를 골자로 한 이 칙령은 승리의 축배를 들면서 발표했으나, 결국 유대인이 대거 몰려간 네덜란드의 번성과 스페인의 몰락으로 귀결된다. 이 시점에서 갑작스레 스페인의 결정적 시기인 1492년을 회고하는 이유가 있다.전라도 정도 천년을 맞는 2018년을 앞두고 지금이 도민들에게 가장 결정적 시기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전주와 나주의 앞글자를 딴 전라도가 명명된지 천년이 지나는 동안 전북을 포함한 전라도는 번영과 환희 보다는 쇠퇴와 침울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전주가 조선왕조의 발상지라고 하지만, 전라도는 그동안 중추적인 집권세력이 되지 못했다.오랫동안 변방에 머물면서 전라도는 도전을 통한 쟁취보다는 비관과 체념에 빠진 경우가 많았다.하지만, 전라도 정도 천년을 계기로 확 달라져야만 한다. 도민들이 어떤 의식과 결정을 하는가에 따라 그 운명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지금부터 남은 반년동안 더 치밀하게 준비해서 전라도 정도 천년이 웅비의 전환점이 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새정부 장차관 인선 등 주요 인선이 사실상 마무리 됐다. 과거 정부에 비해 내각과 국회, 여당의 핵심 요직에 전북인들이 상당수 포진하면서 지역발전의 호기를 맞고 있다.하지만 정부여당에 주요 인사 몇명이 진출한다고 해서 지역민의 삶이 나아지거나 위축된 도세가 확 달라질 수는 없다.한때 도내 인사들이 국회의장, 장차관, 여당 수뇌부를 차지한 시기가 있었으나 큰 틀에서 보면 그 또한 별개 없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전라도 정도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도민의 단합된 힘을 바탕으로 치열하게 발전전략을 구상하고,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해법을 찾아 나가야 한다.1492년 스페인의 역사가 천지개벽의 전환점이 됐듯 지금 내린 사소한 결정 하나하나가 향후 일백년, 일천년 역사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7.07.0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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