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동문, 신뢰 풍토 조성이 첫 목표"
"전북대가 이렇게 큰 줄은 몰랐습니다. 재학생이 3만1000명이고, 동창만 20만 명이 넘습디다."
30일 공식 취임식을 앞두고 만난 정병하 전북대 제34대 총동창회장(76)은 2008년 10월 모교에 특강하러 왔던 일을 떠올리며 '감개무량'이란 표현을 썼다.
"시계가 없어서 닭만 울으면 밥을 해먹고, (미륵산 밑인) 집에서 학교까지 12㎞를 걸어 다녔다"는 그는 "학교 다닐 때 '동냥 공부'를 했다"고 말했다. '특대'(1등)를 해야 등록금을 면제받을 수 있었던 시절, 책장사·가정교사 등 요샛말로 아르바이트를 해도 매학기 등록금을 대기가 벅차 "은사님들이 도와주면서 공부를 했다"는 것.
그가 지난 22일 전북대에 발전 기금 2억 원을 기탁하고, 2005년부터 꾸준히 후배 94명에게 총 7200만 원의 장학금을 준 배경이다.
농화학과 54학번인 그는 1958년 졸업 후 동원기업(주)과 신동아 운수(주) 대표이사로 자수성가하기까지 미원(주)에서 20년 가까이 '월급쟁이'였다.
1965년 미원(주)에 입사하기 전 이리 농림고에서 5년간 교편(실과)을 잡기도 했던 그는 "(남들보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저를 보고 당시 임대홍 사장님(대상그룹 창업회장)이 후배들을 데려오라고 해서 1년에 (전북대 농화학과에서) 두세 명을 데려와 열댓 명을 키웠다"며 "그 후배들이 지금은 미원(현 대상그룹) 자회사 사장과 연구소장 등이 됐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후배 사랑' 덕분에 "1969년 전북대 입학생 1등부터 10등까지는 농화학과였다"고 이중희 전북대 총동창회 사무총장(고분자·나노공학과 교수)이 귀띔했다.
정병하 회장은 "1970년대 중반 회사에서 공채를 할 때 출제위원을 맡았는데 두세 번 과정을 거치니까 전북대뿐 아니라 지방대생은 못 올라갔다"며 "그때 이 다음엔 후배들을 위해 장학금을 줘서 면학 분위기를 바꿔야겠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총동창회장 취임 동기를 묻는 질문에 "전북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라고 우문현답을 내놓은 그에게 2년 임기 동안의 목표를 물었다.
"학교는 학생과 교수, 교직원이 있고, 여기에 동창회의 후원이 있어야 완전한 모임체가 됩니다. 1982년까지 급료 생활을 한 제가 운수업을 해서 돈을 벌면 얼마나 벌었겠습니까. 대단한 자산가는 아니지만 세계 100대 대학을 지향하는 대학의 구성원으로서 제가 앞장서야지요. 무엇보다 동문과 동창회장, 학교와 동문이 서로 믿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제일 큰 목표입니다. 결과는 2년 후에 평가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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