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부담 없는 건강 반찬…기운 없을 때 심신에 활력
햇살 고운 가을날이다. 봄에 뿌린 씨앗들이 결실을 기다린다. 남원 상신마을에도 가을 수확을 시작했다. 이른 봄에 핀 가시오가피잎은 차로 만들었고, 뒷산에서 따온 고욥 열매는 효소로 담가 놓았다. 눈 내리는 겨울날, 동네회관에서 함께 마실 따뜻한 차가 될 것이다. 처마밑까지 가을 햇볕이 깊숙하게 드리운다. 바람에 실려 날아온 꼬들빼기도 햇볕이 필요했다. 처마밑 햇볕드는 곳에 자리 잡아 잘 자라고 있다. 김장하는 날, 쪽파를 넣고 꼬들빼기 김치를 담글 것이다. 이렇게 우리 주부들은 일년 내내 먹거리를 준비한다.
옆집 할머니 마당에서는 매일 가을 햇살을 기다린다. 고구마순을 따서 삶아 까만색 덕석에 말리고, 시래기는 삶아 빨래줄에 널고, 호박은 깨끗한 토방에서 말리고, 고추부각은 채반지에 놓고 툇마루에서 말린다. 채소가 가지고 있는 특성에 따라 말리는 데도 차례가 있고 장소가 있다. 서울 할머니는 참 부지런도 하시다. 언제 고추부각까지 했을까. 오랜만에 맛본 고추부각이다. 나의 말 한마디에도 "맛있다" 하더니 할머니는 먼저 마른 부각을 따로 추리신다. 밥 먹을 시간도 아닌데 점심먹고 가라며 부각을 튀기신다. 맛있게 하려면 연한 고추보다 칼칼한 맛이 나는 '약찬' 고추가 좋다고 하신다. '약찬' 고추는 파란 고추에서 빨간 고추로 변화되기 전 고추다. 함께 점심밥상을 마주하고 동네 아낙들 손맛 솜씨에 대해 이야기 하신다. 산골에 살아도 손맛차림은 얌전했던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다. 대대로 내려온 동네음식이며, 힘든 농사일 하려면 음식을 잘 먹어야 한다는 소소한 이야기꽃이 핀다. 할머니의 맛난 고추부각 밥상이었다.
아이들 아버지는 매년 가을만 되면 고추부각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작년에는 나의 게으름을 탓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하루 이틀 미루다 보니 첫 서리가 내려 고추가 얼어버린 것이다. 고추잎절임 할 때 함께 했으면 좋으련만, 마음은 있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오늘은 미루지 말고 시작해야겠다. 추수하기도 바쁜 일손이지만 겨울반찬거리 장만하느라 마음은 더 바쁘다.
고추의 매운 맛은 기운이 없을 때 몸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입 안과 위를 자극해 소화액의 분비를 촉진시키고 식욕을 돋우기 때문이다. 또한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 체액 분비가 왕성해지고 혈액순환에도 효과가 있다. 고추의 매운 맛은 캡사이신이라는 성분인데, 젖산균의 발육을 도와 음식을 발효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풋고추에는 비타민 A·B·C 등 다량의 비타민이 있어 피로 회복에도 좋다. 특히 비타민 C에는 감귤의 9배, 사과의 18배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 저녁은 무슨 반찬을 해줄까?" 주부들은 이렇게 남편, 아이들에게 묻는다. 마치 당신들이 원하는 음식을 선물이라도 하려는듯 선심을 써본다. 그럼 선택권을 갖은 사람들은 어떤 말을 할까. 아마 대부분의 남편들은 당신이 알아서 준비하라는 답을 할 것이고, 아이들은 맛있는 것, 고기를 선택해서 답할 것이다. 저녁 반찬거리의 고민을 덜기 위해 질문했더니 결국은 내가 선택해 맛있는 저녁밥상을 차려야 한다는 결론이다. 이쯤에서 바구니를 들고 고민한다. 첫번째 맛난 것, 두번째 가족들 건강에 좋은 것, 세번째 가격이 부담되지 않는 것을 선택하고 싶다. 세 가지를 다 충족시켜줄 반찬거리는 무엇일까. 나의 선택은 현재 가장 많이 잡히는 생선과 채소다. 요즘 시장에 나가면 할머니께서 끝물 고추라며 파란 고추를 많이 가지고 나오신다. 고추부각을 만들어 특별한 저녁밥상을 차려보자.
▲ 만드는방법
재료 = 고추, 찹쌀가루, 소금, 찜솥, 식용류
1. 고추를 깨끗하게 씻어 채반에 바친다.
2. 크기가 큰 고추는 반으로 자른다.
3. 고추와 찹쌀가루, 소금을 넣고 버무린다.
4. 버무려진 고추를 찜솥에 넣고 5분 정도 찐다.
5. 채반에 놓고 햇볕에 말린다.
6. 식용류에 튀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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