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외 장아찌 일본서 인기…조리법 표준화·대중화 과제…고추장 장아찌·매실·감·마늘 등 종류 다양…감칠맛 일품
장아찌와 같은 발효·보존식품은 요리사가 아니라 세월과 바람이 만드는 것이다. '발효 과학'에 가까운 장아찌는 어떤 맛과 섞여도 제 맛을 유지하고, 오래 둬도 상하지 않으며, 어떤 음식과도 조화를 이룬다. '명품 음식, 지역의 식재료의 재발견'에서는 지역 식재료로 만든 짭짤한 밥도둑 장아찌를 소개한다. 다소 희귀한 박과에 속하는 덩굴식물인 울외와 깊은 맛을 자랑하는 순창의 고추장으로 만든 장아찌다.
△ 술지게미로 발효시킨 울외 장아찌 밑반찬
울외를 처음 본 사람들은 호박인지 오이인지 헷갈려한다. 기다란 모양과 푸르스름한 색깔 때문이다.'백과'(白瓜)로도 불리는 울외는 박과에 속하는 한해살이 덩굴식물로 어린 열매는 녹색을 띄나 익을수록 흰색이 나타난다.
군산은 울외의 전국 생산량 60~70%를 차지한다. 울외가 군산처럼 습기가 많고 더운 지역에서 잘 자라서다. 울외의 가공 방법은 술지게미 절임. 술지게미는 청주를 생산하고 남은 찌꺼기다.
군산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울외 생산지가 된 이유는 일제 강점기 시절 항구를 끼고 있다 보니 일본에서 생산된 울외 장아찌가 쉽게 전해졌기 때문이라는 추정만 있을 뿐이다. 더구나 쌀을 원료로 청주 양조장이 당시 군산에만 있어 술지게미를 활용한 울외 장아찌가 만들어지기 쉬웠던 것. 현재 군산에는 술지게미 절임으로 울외를 가공하는 공장이 20여 곳이나 된다.
실제로 청주 양조장이 많은 일본 나라(奈良) 지역 역시 술지게미를 활용해 채소를 절여 먹는 식품이 발달했다. 울외를 '나라즈케'로 불리는 이들이 많은 것도 이곳에서 나온 울외 장아찌가 유명해서다.
울외는 오이와 비슷한 향이 나서 생으로 씹으면 아삭아삭하다. 하지만 단맛이 없고 밍밍해 식감이 떨어지는 편. 참외나 오이처럼 깎아 먹기 보다는 절임 형태로 먹는 이유다.
울외 가공법은 반을 잘라 씨앗을 훑어낸 뒤 천일염으로 하룻밤을 재워 다시 물로 씻어 꾸덕하게 말린다. 잘 건조된 울외를 설탕을 넣은 술지게미에 두면 장아찌가 되는 것. 일본에서는 술지게미를 세 번 바꿔가며 몇 년 간 숙성시키지만, 한국에서는 한 두 번만 시키는 경우가 많다. 3대 째 울외 장아찌를 만들고 있는 황정안 삼학식품 대표는 "한국 사람들이 대개 햇것(신선한 것)을 선호하다 보니 오래 묵힌 것을 내놓으면 잘 시판되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그러나 삼학식품은 일본식과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술지게미를 두 번 정도 바꿔 발효시켜 깊은 맛이 나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는 명품으로 통하는 울외 장아찌는 국내에선 소규모로 생산되는 데다 조리법이 표준화 되지 못해 대중화되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 메주 가루로 숙성시킨 순창 고추장으로 만든 장아찌
고추장은 매우면서도 달착지근한, 감칠맛의 세계로 이끄는 우리 밥상 음식에 안 들어갈 때가 없는 주된 양념이다. 조선시대 영조는 순창이 본관인 조종부가 만든 고추장이 없으면 밥을 못 먹을 정도였다.
숙종의 어의 이시필이 쓴 '소문사설'에는 순창 고추장은 메주를 쓰지 않고 그 속에 전복·대하 등 어패류를 넣어 삭혀 만든, 장조림 혹은 장아찌 같은 음식에 가깝다고 기록됐다.
순창 고추장이 맛있다고 소문이 난 이유는 깨끗한 섬진강 상류의 오염되지 않은 지하 암반수와 사계절 습기가 많은 분지로 둘러싸인 환경이 고추장 발효균을 활성화시키기에 적당해서다.
박영수 순창장류사업소 발효미생물 주무관은 "늦여름에 띄운 메주를 가루로 만들어 겨울에 고추장에 담그는 게 특징"이라면서 "늦여름은 메주의 콩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바꿔주는 바실러스 균이 활성화되는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순창 고추장의 명성이 높아지자 대기업도 순창에 식품 공장을 지어 '순창 고추장'이라는 브랜드를 팔기 시작했다. 순창군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드는 순창 고추장 제조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1997년 '순창 고추장 민속 마을'을 조성한 뒤 2004년 '순창 전통 고추장'의 지리적 표시를 등록했다. 현재 이 마을에는 54가구(39곳 영업)가 고춧가루와 콩·쌀 등 모든 재료를 순창의 농가에서 공동 구매를 한 뒤 전통적인 방식으로 고추장을 담그고 있다.
순창 고추장이 귀한 대접을 받는 이유는 최소한 8개월 이상 발효 기간을 거쳐 제대로 숙성시키기 때문이다. 때문에 '고추장 소스'에 가까운 공장 고추장이 1㎏당 5000원이면, 순창 고추장 민속마을의 고추장은 1㎏당 2만원으로 가격이 비싼 편.
박영수 주무관은 "학교 급식이나 군 부대에 납품하고 싶어도 단가가 맞질 않아서 못한다"면서 "소비자들은 가격이 싸면서 맛있고 품질이 좋은 식품을 내놓길 원하지만, 그러기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밝혔다.
이곳 민속마을에서는 순창 고추장을 응용한 장아찌가 인기 상품이다. 특히 소금에 절여 씨앗(매실·감·마늘·무 등)을 뺀 뒤 설탕에 재운 장아찌 원료에 2~3년 동안(3~4개월 주기) 새로운 고추장을 바꿔 넣는 과정을 반복해 짜지 않으면서도 깊은 맛이 드러나 서울 롯데호텔(본점·잠실점)과 대구 인터불고 호텔(본점 등 3곳) 등에 납품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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