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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세계복합유산으로 - 18. '하늘아래 첫 동네' 경쟁

고지마을까지 도로, 접근성 좋아 관광객 북적 / 정화시설 감당 못해 계곡물 오염 부작용 심각

지리산에는 '하늘아래 첫 동네'가 많다. 최근 10년 사이 고지마을까지 도로가 놓이면서 접근성이 좋아지자 관광객들이 몰리기 시작했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던 주민들이 요식·숙박업에 뛰어들면서 지역 간 차별화 전략으로 내건 슬로건이 바로 '하늘아래 첫 동네'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몰리면서 생겨난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긴 하지만 현재 이 마을들은 지리산 고지대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지리산이 세계복합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케이블카, 댐과 함께 이 부분도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주민들이 자유의지로 이전을 하겠다고 하지 않으면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앞서 세계복합유산으로 등재된 중국 무이산의 경우 지정 전에 거주하던 주민들을 모두 이전시켜 유네스코 위원회로부터 경관 보호 지속 가능성에 대해 인정을 받았다.

 

△전남 구례군 산동면 심원마을

 

구례군 산동면에 있는 심원마을은 원조 '하늘아래 첫 동네'로 불린다. 노고단으로 가는 길목인 성삼재를 지붕삼아 해발 750~800m에 걸쳐 있는 마을이기 때문이다. 심원마을은 조선 고종 때인 1800년대 후반, 약초를 캐고 토종꿀을 채취하려 사람들이 모이면서 형성됐다.

 

현재 19가구 30여명이 살고 있는 미 마을은 지난 1988년 성삼재를 통해 남원과 구례를 잇는 861번 지방도가 완공되기 전까지는 오지 중의 오지였지만, 지금은 여름철 무더위를 피해 관광객이 몰리면서 최고의 피서지가 됐다. 매년 여름 이곳을 찾는 피서객은 하루 평균 2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관광객이 몰려들자 주민들의 생활 패턴도 점점 변하면서, 약초와 꿀 채취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주민들은 이제 대부분 식당과 민박집을 운영한다. 이 때문에 지리산 3대 계곡 중 하나로 꼽히는 심원계곡이 몸살을 앓고 있다. 마을에 있는 오수정화 시설은 몰려드는 관광객의 수요를 감당치 못하고 있다.

▲ 해발 800m 고산지대에 형성된 요식·숙박업소로 인해 계곡이 심하게 오염되고 있다.

구례군이 심원계곡에 대한 수질검사를 진행한 결과, 매해 평균 7월 BOD(생물학적산소요구량)는 1ℓ당 0.5~0.6mg이었지만, 피서객들이 빠져나간 뒤인 9월에는 1.3mg으로 상승했다. 오염된 물은 달궁계곡을 거쳐 뱀사골계곡까지 그대로 흘러가면서 주변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게 환경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지리산국립공원관리공단 남부사무소는 심원마을에 대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이주를 추진한다. 남부사무소 관계자는 "그간 보상금을 두고 주민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현재는 이주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면서 "다른 지역의 고지 마을들도 심원마을과 비슷한 일을 겪고 있지만 주민들이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이주는 어려운 현실이다"고 말했다.

 

△경남 산청군 새재마을

 

해발 800m 가까운 곳에 위치한 경남 산청군 새재마을의 역사는 비교적 짧은 편이다. 제주 4·3항쟁과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낮에는 아군으로, 밤에는 적군 편으로 살아야 했던 화전민들을 위해 50여년 전 정부에서 무상으로 지어 준 게 마을의 시초다.

 

이병주 작가의 소설 '지리산'의 한 부분에서는 "지리산을 찾은 빨치산들은 조개골 등에 숨어 이곳 달뜨기능선 위로 떠오르는 달을 보며 고향과 가족을 생각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빨치산들이 능선 위로 뜨는 달을 보며 가족을 그리워했다던 조개골 초입이 바로 새재마을이다.

 

대원사에서 유평-중땀-아랫새재마을을 거쳐야 갈수 있는 새재마을은 오지였지만 수년 전에 도로가 연결되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이 때문에 이 마을 주민들도 약초 등을 채취하며 살아왔지만 현재는 대부분 민박과 식당을 겸하고 있다. 심원마을처럼 계곡이 수려한 것은 아니어서 마을 주민들은 '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이름을 걸고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새재마을엔 정화시설이 없다. 아랫동네인 유평 집단시설지구엔 정부에서 설치한 대형 정화시설이 있지만 새재마을의 오수는 그대로 계곡으로 흘러가고 있는 실정이다.

 

마을 주민들도 이 부분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지만 관계기관의 반응은 냉담한 현실이다.

 

한 마을 주민은 "기존 가정용 정화조로는 오수 처리는 어림도 없고 시설을 개인이 설치하기엔 전기료 등 경제적 부담이 크다"면서 "상류부터 정화시설을 설치하는 게 맞는데 그렇지 못하는 현실이라면 차라리 심원마을 같이 이주대책을 세우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 세계복합유산 되려면 문화·자연 어우러져야

▲ 김재병 전북환경운동연합 생태디자인센터 소장

아름다운 자연을 가까이에서 보고, 느끼고 싶은 것은 누구나 가지는 욕망이다. 하지만 이러한 욕망이 자연을 해치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이루어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늘 아래 첫 동네, 심원마을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생활이 이루어지던 곳이다. 그러던 곳에 1988년 861번 지방도로가 생기면서 변화가 생겼다. 도로 신설은 종종 많은 것을 바꾼다. 이전에 흥성하던 곳을 쇠락시키는가 하면, 거꾸로 한가롭고 깨끗하던 곳을 번잡하고 지저분한 곳으로 만든다.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민박집과 식당이 들어서면서, 탐방객은 성수기 주말에는 하루 평균 2000여명이 찾아오게 되었다.

 

성수기에는 마을 오폐수 처리시설이 탐방객이 만들어내는 오염 물질을 다 처리하지 못하므로 오수가 계곡으로 흘러들게 된다. 악취 문제뿐만 아니라 계곡의 생태계에 변화를 주게 된다. 인과 질소는 하천의 부영양화를 일으킨다. 용존산소에 변화가 생기면, 그에 따라 수서곤충과 어류, 그리고 계곡 주변까지 변화가 일어난다. 깨끗한 계곡을 즐기기 위한 탐방에도 문제가 생긴다. 이런 문제 때문에 2006년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자연환경 복원을 위해 심원마을을 이전시킨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하지만 예산 문제 등으로 인해 이 계획은 자꾸 미뤄지고 있다.

 

세계복합유산이 되려면 문화와 자연이 어우러져야 한다. 깨끗한 '자연'이 있어야 하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의 문화'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지리산과 더불어 사는 산촌 마을 만들기의 모형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은 세계복합유산으로 지정받는 과정에서 반드시 부딪힐 질문일 것이다. 또한, 세계복합유산으로 지정받은 후에는 지리산 주변 마을을 운영하는 데 있어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지리산의 깨끗한 자연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도록, 심원마을의 갈등이 재현되지 않도록, 몰려오는 세계인과 지리산이 조화롭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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