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4-11-28 23:56 (목)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기획 chevron_right 백제古都 잠에서 깨다
일반기사

[백제古都 잠에서 깨다 ⑨ 백제역사유적지구 실태] 훼손·균열·파손…세계유산 등재 문화재 곳곳 부실 관리

▲ 미륵사지 석탑 복원 현장, 지난 17일 문화재청 국립문화재 연구소가 6층까지 복원한다고 밝힌 뒤, 본격적인 재조립에 들어갔다. 안봉주 기자

“세계유산 등재의 근본 목적은 보존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잘 활용해서 관광수입을 올릴 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잘 보존할 수 있을지를 우선순위로 정해야 합니다.”

 

한국 백제사 1호 박사인 노중국 계명대 명예교수의 말이다.

 

역사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문화재 관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백제역사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후에도 문화재 보존·관리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세계유산의 관광자원화를 위해서는 유산의 정확한 고증, 체계적인 관리와 보존이 전제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그러나 한국의 세계유산은 ‘깨지고 뒤틀리고 있다’는 지적이 매년 제기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백제 역사지구에 앞서 등재된 여러 유적들이 문화재청에서 실시한 안전도 검사에서 가장 낮은 등급을 받는 등의 문제를 보이고 있다. 문화유산의 현황과 보존실태를 파악해 본다.

 

△유네스코 등재만으로 끝?… ‘치료’가 시급한 문화재들= 지난해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남한산성. 문화재청이 실시한 안전도 특별점검에서 천장균열, 기둥 옹이 탈락, 여담 균열 및 파손 등으로 보수정비가 필요한 ‘E등급’ 판정을 받았다. 앞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경주역사유적지구의 첨성대, 수원화성도 상태가 심각했다. 첨성대는 표면에 지의류(地衣類)에 따른 오염과 변색, 균열현상이 조사됐고, 수원화성은 화홍문 누각 바닥 일부가 습기와 관리부실로 부식이 심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첨성대는 자동계측 모니터링이 필요한 D등급을, 수원화성은 남한산성과 마찬가지로 E등급을 받았다.

▲ 익산 왕궁리 유적지에 있는 왕궁리 5층 석탑. 표면이 이끼류, 지의류 등에 오염돼 흑화현상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였다. 또 석탑 부재들이 일부 빠지고 옥개석 등에도 일부 균열 현상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올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어떨까. 역시 좋은 평가를 받진 못했다. 백제역사지구에서 세계유산에 등재된 문화재는 공주의 공산성과 송산리 고분군, 부여의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능산리 고분군, 나성, 익산의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이다. 이들 8개의 유적가운데 5개가 E등급이 나왔다. 공산성과 송산리 고분군, 나성,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과 왕궁리 5층 석탑 등이 그것이다.

 

공산성은 기초 불안정, 부분 침하, 이격(벌어짐), 돌출 등이 문제였고, 송산리 고분군은 무덤 내부의 전돌과 석회에서 열화 및 훼손이 발생한다고 지적받았다. 특히 공산성 내부 11개 구간은 국립문화재연구소로부터 위험구간으로 판정받았다. 현재 공산성은 공주대학교 주관으로 정밀 안전진단을 실시하고 있고, 송산리 고분군은 내부 보존관리상태를 조사하고 있다.

 

부여의 나성 같은 경우 문화재 관리부실로 E등급을 받은 건 아니다. 문화재청은 보존관리를 위한 지표·발굴조사, 정밀실측, 종합정비계획 수립 등이 필요한 문화재도 E등급으로 판정한다. 실제, 나성은 발굴·정비가 진행되고 있다.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은 종합정비계획이 시행중이기 때문에 E등급을 받았다. 이 석탑은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한 차례 무너졌다. 이 때 일제는 콘크리트를 들이부어 보수했다. 결국 일제가 바른 콘크리트 185톤을 치과 치석용 드릴로 떼어 낸 끝에, 지난 2010년 해체를 완료했다. 이달부터 본격적인 재조립에 들어갔다. 지난 16일 현장설명회가 열렸고, 기단부 가운데 세 번째 심주석을 올리는 작업이 진행됐다. 문화재청은 석탑에 대해 ‘보수정비 과정 및 결과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익산 왕궁리 5층 석탑은 관리·보존에 문제가 있었다. 표면이 이끼류, 지의류 등에 의해 오염돼 흑화현상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였다. 또 석탑 부재들이 일부 빠지고, 옥개성 등에 일부 균열 현상이 일어났다는 게 문화재청의 설명이다.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보존처리를 추진하고 있다.

 

당장 보수정비가 필요하지 않지만, 문화재의 변형, 균열 때문에 정밀조사가 필요한 유적도 두 개나 있다.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과 익산 미륵사지 동탑으로 D등급을 받았다.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은 남측면 1층 옥개부가 일부 파손됐고, 석탑의 뼈대를 이루는 부재(部材)간 이완현상이 나타났다. 지난달 20일 들렀던 현장에서는 실시간 모니터링을 하는 전기장치가 설치돼 있었다.

 

익산 미륵사지 동탑은 1층 탑신 기둥, 면석, 옥개석 받침 등에 일부 균열이 관찰됐다. 특히 이 탑은 지난 1993년 복원 후 고증 논란에도 휩싸였기 때문에 문화재청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립문화재 연구소는 고증연구를 통한 재정비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연구소에서는 이 탑에 대해 구조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다.

 

△문화재 관리계획 유럽과 대조=우리보다 훨씬 앞서 문화유산의 가치를 주목해 보존과 관리에 힘써온 유럽에서는 문화유산으로 세계의 관광객을 끌어모으는데 성공한 도시가 적지 않다. 이들의 문화유산 보존과 관리 정책은 치밀하고 지혜롭다. 자치단체마다 세부적인 문화재 관리계획을 갖고 있으며, 중앙의 문화유산 관련 행정체계가 국가의 핵심부서로서 기능한다. 수십 년에 걸쳐 장기적으로 행정체계를 마련해온 결과다. 문화유산 관리 예산을 확보하는 데도 탄력적이다. 예산이 부족할 경우 포럼을 개최해 대기업들을 상대로 홍보활동을 벌이기도 한다.

▲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위)과 파리 센 강변 일대 도심 전경(아래). 정림사지 5층 석탑이 주변 경관과 맞지 않아 문화재가 부각되지 않은 반면, 파리는 도심전체가 문화재로서 부각된다. 프랑스는 세계유산인 센 강 일대의 역사성을 부각시키고, 주변경관과의 조화를 위해 건물의 색깔, 조망권의 스카이라인까지 고려해 도시건축 개발을 제한했다. 안봉주 기자

한국도 유럽과 같이 체계적인 계획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서는 중앙과 자치단체, 전문가들이 공감하고 있다.

 

복수의 관계자는 백제역사유적지구 평가결과를 토대로 “오랜 시간 유지되어온 문화재 중 보존 과학의 미비로 구조적 결함이 발견된 문화재들은 긴급 보수가 요구된다”며 “체계적인 마스터 플랜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세계유산에 등재된 후 내년 신규예산으로 89억원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확보 예산은 주로 공주 공산성 주변 불량경관 지역 토지매입, 부여 관북리 유적 주변 토지매입 및 나성 성곽 정비, 익산 왕궁리 유적 정비 등에 투입될 예정이다.

 

그러나 현재 문화재청은 아직 세부계획을 수립하지 않은 상태다. 지난 4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현재 문화재청과 자치단체가 합동으로 ‘백제왕도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 준비단’이 백제왕도 핵심유적 복원정비 기본계획을 수립 중에 있다. 내년에 이르러서야 지역별·단계별 세부 추진계획을 마련해 복원 정비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인증마크를 단 세계유산의 관리와 운영이 부실한 상황에서 대책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김미란 전라문화유산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세계유산 등재에만 무게를 실을게 아니라 평소때부터 문화유산 자체에 먼저 관심을 갖고 고증과 정비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비뇽 시청의 미쉘갈반 문화관광디렉터도 “문화재 관리계획은 단기, 중기, 장기간으로 나뉘어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세우는 것”이라며 “그 만큼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미쉘갈반 디렉터는 이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기 전에 문화재 상태 점검표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중앙과 자치단체, 문화재 전문가와 연관시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세부계획을 세워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산문제 핑계되며 보수정비 미뤄= 지난해 6월 남한산성이 문화재청의 ‘문화재특별종합점검’에서 사적 57호가 E등급을, 행궁이 D등급을 받은 뒤, 경기도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이효경 의원(새정치연합·성남1)과 경기도 문화체육관광국장 간 갑론을박이 벌어진 적이 있다.

 

당시 이 의원은 매년 엄청난 돈을 쏟아 붓고도 이런 등급을 받은 것은 문화재 관리에 허점이 있는 것이라며 관리부실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 문화체육관광국장은 ‘예산부족 때문’이라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본지가 지난 4일 공주, 부여, 익산 등 자치단체의 해당부서에 전화를 걸었을 때도 마찬가지의 예산부족이라는 앵무새 답변만 되돌아왔다.

 

이들 각 자치단체들은 문화재 관리담당부서를 세분화시켜 업무를 나누고 관리대상 문화재에 대해서 정비 계획을 세워놓고는 있다. 그러나 복수의 관계자들은 “관리가 부실한 문화재가 수시로 점검을 해서 전문가의 고증과 전통공법에 맞춰 정비에 들어간다”면서도 “긴급보수 사업비로 문화재청에 예산신청을 했을 때, 청으로부터 예산이 들어와 부족한 예산이 메꿔져야 본격적인 정비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역시 자치단체의 예산 문제 호소에 대해 공감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계획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한다. 장기적인 계획으로 방향성을 잡고 가야 부족한 예산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남해경 전북대 교수는 지난 3일 열린 전북역사 재조명 백제문화융성프로젝트 학술포럼에서 “전북도의 백제관련유산 정비는 방치된 부분도 있고, 정비를 하더라도 기초적인 수준의 안내판, 탐방로, 잔디식재, 부분정비 등이 이뤄져 있다”고 지적하면서 “관광자원화를 위해 적극적인 정비를 할 수 있는 계획을 수립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남 교수는 이어 “문화재 지킴이 등을 세워 문화재 정화활동 등을 할 수 있는 자생적인 보호관리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기획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