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이화 선생 영면…사학계 녹두장군, 역사가 되다
울릉도에서 아들이 찍은 고 이이화 선생 모습. 사진 제공= 가족. 선생님의 일은 끝나지 않았거늘 - 이낙연 전 국무총리.
바로 세운 우리 역사 국민이 함께 합니다 -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민족사 정립과 역사 대중화에 헌신해온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이 향년 84세를 일기로 21일 경기도 파주 동화경모공원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이이화 선생은 1970년대부터 민족문화추진회, 서울대 규장각, 역사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 등 학술단체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진상규명과명예회복을위한범국민위원회 등 역사 관련 시민단체에서 학술연구와 실천운동에 매진해 100여 권의 역저를 출간하는 등 수많은 연구 성과를 내놓는 한편으로 역사정의의 실현에도 크게 기여해왔다.
최근까지도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 이사장, 식민지역사박물관건립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목표를 달성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다.
1936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이화 선생은 부친 이달 선생에게 한문을 배웠고, 광주 광주고를 다녔다. 광주고에 입할 때에는 교과서 값이 모자라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23세 때 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 문예창작과 장학생으로 입학했고, 이후 생계를 잇기 위해 전국을 돌며 대학입시 문제집을 팔기도 했다. 불교시보 기자로 3년간 일했으며, 동아일보사 촉탁직으로도 근무했다. 이후 1973년 유신정권에 대한 저항의식을 표출한 허균과 개혁사상을 발표하며 역사학자로서의 의미 있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1980년대 초반까지 <뿌리깊은나무>, <월간중앙> 등에 한국사 관련 글을 연재하고 꾸준히 논문과 저서를 집필하며 연구 지평을 넓혔다.
1980년대부터는 이이화 특유의 역동성과 활달함이 돋보이는 대외 학술 활동이 전개됐다. 이이화 선생은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 발기인으로 참여한 데 이어 1989년 설립된 역사문제연구소 운영위원, 소장을 역임했다.
1993년부터는 우리 역사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연구와 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했다. 이러한 노력은 동학농민혁명백주년기념사업단체협의회(1993), 동학농민혁명유족회(1994),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2004) 설립 성과로 이어졌다. 당시 선생이 이끌어낸 연구업적으로 1996년 발간된 <동학농민전쟁사료총서> 30권은 현재도 중요한 연구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2000년대는 오랜 연찬이 활짝 꽃피운 시기로, 평생 역작으로 꼽히는 <한국사 이야기>(총 22권)가년 발간됐다. <한국사 이야기>는 기존의 왕조사와 정치사 중심 서술이 아닌 신기원을 연 민중사적 관점의 역사서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비슷한 시기 <한국의 파벌>, <인물로 읽는 한국사>, <만화 한국사 이야기> 등 수십여 권의 저서를 펴냈는데, 여기에는 아동과 청소년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대중서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역사 대중화를 이루고자 했던 선생의 의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이이화 선생은 친일 청산, 한일과거사 문제,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문제 등 한국근현대사에 있어 미해결의 과제로 남아있는 분야의 활동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한일시민선언실천협의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한국전쟁민간인학살진상규명위원회 등에 참여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또한 동학농민혁명의 땅, 전북과의 인연도 깊다. 전북에서 열리는 다양한 동학농민혁명 기념행사에 참여했고, 무명 동학농민군 지도자의 유골을 전주동학농민혁명 녹두관에 영구 안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해 지난해 12월 138번째 전주명예시민이 됐다. 2014년에는 원광대 명예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녹두대상, 심산상, 단재학술상, 청명학술상, 허균허난설헌학술대상,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출판특별상 등 숱한 수상 경력은 선생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장례는 시민사회장이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고려해 대규모 추모식 등은 생략하고 약식으로 치러졌다. 또 이이화 선생 추모 홈페이지(http://rememberleeewha.com/)를 마련해 고인의 삶와 저술활동, 사진과 영상을 살펴보고 직접 추모글을 남길 수 있도록 했다.
한편 정부는 역사 대중화와 역사정의 실현에 기여한 고인의 공적을 인정해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고, 조문 마지막 날인 20일 오전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영전에 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