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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전주세계소리축제] 눈길 끄는 공연-대학창극

소리는 농익을 수록 좋다지만, 아직 덜 익어 조금 질긴 소리도 그대로의 풋풋한 맛이 있다.전통음악이 낯선 현대인들에게 '젊은 창극'이 찾아온다.'2008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예비 국악인들을 발굴하기 위해 마련한 '대학창극'. 올해는 축제 메인 무대인 한국소리문화의전당으로 자리를 옮겨 보다 많은 관객들을 만날 수 있도록 했다.올해 참여하는 대학은 전국 4개 대학. 30일 전북대 한국음악학과의 '장끼전'을 시작으로 10월 3일까지 우석대 국악과의 '뺑파전-도망자 뺑파, 황봉사를 만나다', 단국대 국악전공의 '마당놀이-놀부와 놀다', 전남대 국악과의 '효녀 심청'이 차례로 판을 벌인다. 오후 7시 소리전당 놀이마당.전북대 '장끼전'(예술감독 정회천, 연출 주호종)은 전통판소리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의 민요를 들여와 극적 재미에, 관객들이 여러가지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교육적 요소도 더했다. 장끼, 까투리, 탁첨지, 공작, 부엉이 등 저마다 등장인물들의 특색을 살려 극의 비중이 주인공에게 치우치지 않고 모두에게 돌아가도록 했다.'심청가' 후반부로 짠 우석대 '뺑파전-도망자 뺑파, 황봉사를 만나다'(원작 김일구, 연출 조용안)는 중장년층에게 강력추천하는 프로그램이다. 황봉사를 버리고 돈 있는 심봉사를 택한 뺑파와 의처증이 심해져 가는 심봉사의 이야기를 풍자와 해학으로 엮었다.단국대 '마당놀이-놀부와 놀다'(총감독 윤명원, 연출 진용석)는 마당극 형식을 그대로 차용하면서도 창극과 마당극의 조화를 시도했다. 국악전공자들 뿐만 아니라 무용, 연극영화과 학생들도 특별출연해 퓨전을 시도한 신개념 창극. '한국판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다.'대학창극' 마지막 무대는 전남대 '효녀심청'(총감독 전인삼, 연출 양재남). '심청가' 초반부터 중반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지는 장면까지를 선보인다. 우석대의 '뺑파전 - 도망자 뺑파, 황봉사를 만나다'가 심청의 주변인물들을 희극화하는데 초점을 맞췄다면 청의 효를 부각 시키기위해 작품 원형에 보다 충실했다.판소리의 사설과 가락을 그대로 살려 부르는 판소리계 전통창극부터 창과 대본을 새로 지어 판소리 가락을 얹어 부르거나 각각의 요소가 강조된 창작창극까지, '젊은 창극'인 만큼 '대학창극'에는 작품을 재해석하는 다양한 시각이 있다. 우리 음악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이 열정적으로 펼쳐놓는 역동적인 무대다.

  • 문화일반
  • 도휘정·윤나네
  • 2008.09.30 23:02

[2008 전주세계소리축제] "김일구·송순섭·조통달의 소리, 당대 천하명창"

명창이란 말이 쉽게 쓰이는 세상. 그러나 하늘이 내린 소리 앞에 명창이란 칭호는 아깝지 않다.김일구(68) 송순섭(72) 조통달(63) 명창. 판소리 땅에 대한 애착으로 전라도에 뿌리 내리고 있는 이들이 '천하명창(天下名唱)'이란 이름으로 한 무대에 오른다.29일 오후 7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열리는 '천하명창전'. 전북일보와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회가 공동주최한 '천하명창전'의 윤중강 예술감독(49)은 "세 명 이외에 '천하명창전'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그동안 여러 공연을 만들면서 잔재주를 많이 부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공연은 소리가 중심이 될 수 밖에 없었다"며 "명창의 소리가 모든 것을 말해줄 것"이라고 말했다."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서양에서는 이 세 명을 가리켜 '쓰리 테너'라고 하죠. 한국의 판소리에서 김일구 송순섭 조통달은 그들을 능가하는 세 명창입니다. 소리축제의 중심은 당연히 판소리이고, 또 그 안에서 '천하명창전'은 그야말로 중심 중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70년대부터 국악공연을 봐왔지만 지난해 소리축제에서 대한민국 최고 여류명창들이 부른 '춘향가'로부터 가장 큰 감동을 받았다는 윤감독. 올해 대한민국 최고 남자 명창들을 모은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윤감독은 "판소리가 여성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남자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시대를 건너오면서 소리판에 여성들이 많아지고 소리 역시 기교적이고 장식적으로 변했지만, 소리의 본질은 호방함. 윤감독은 "판소리는 넓은 공간에서 남자들에 의해 불려지던 것이었다"며 "세 명창들의 소리는 판소리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그는 김일구를 '풍림화산(風林火山)', 송순섭을 '호연지기(浩然之氣)', 조통달을 '사통팔달(四通八達)'이라고 표현했다. 김일구 명창은 예술지향적. 긴장과 이완의 묘미를 잘 살리면서 세 명창 중 가장 기교적이라고 할 수 있다. 송순섭 명창의 소리는 고지식하다. 대중친화력은 떨어질지 몰라도 강한 기운이 느껴진다. 조통달 명창은 그야말로 듣는 사람 위주. 까불어야 할 때 진중해야 할 때를 잘 구분해 어떤 무대에서도 빛이 난다."출연순서는 '가나다'순. 김일구 명창은 '심청가'를, 송순섭 명창은 '적벽가'를, 조통달 명창은 '수궁가'를 부릅니다. 이 시대 최고 명창들이 한 무대에 서는데, 약간씩 서로를 의식하는 모습들이 진정한 프로였습니다."이날 세 명창에게 '천하명창 1호' 기념패가 전달된다. "정말 값진 패가 됐으면 좋겠다"는 윤감독. 차세대 명창으로 주목받고 있는 임현빈 남상일은 세 명창의 삶을 객석에서 소리로 부르고, 다시 무대에 올라 '흥타령'과 '육자배기'를 부른다. 남도민요를 남자 소리꾼들이 부르는 것도 흔치 않은 무대다.윤감독이 생각하는 진정한 명창이란 자연과 인간을 다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소리 속에는 우주 삼라만상과 인간의 희노애락이 다 들어있어야 한다. 토굴 속으로 들어가 혼자 독공을 하는 명창 보다는 사람과 같이 있는 명창. 당대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을 소리로 토해내는 소리꾼. 그가 바로 명창이고, 그들이 바로 오늘 '천하명창전'에 오른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8.09.29 23:02

전국국악대전 대상에 무용부 '박명희' 민요부 '김옥숙'

전북국악협회(회장 김학곤)가 주최한 '제26회 전국국악대전'에서 무용부 박명희씨(47·광주)와 민요부 김옥숙씨(54·경남 창원)가 대회 최고상인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차지했다.'제27회 전라북도 시·군농악경연대회'에서는 익산문화원 서동풍물단(대표 정영환)이 일반부 대상을 수상했다.'전국국악대전'과 '전북 시·군농악경연대회'는 25일과 26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개최됐다.국악대전에는 일반부(판소리, 무용, 기악, 민요, 시조 등 5개 부문)에 60명, 학생부(판소리, 무용, 기악 등 3개 부문)에 33명 등 총 93명이 출전했다.그러나 출전자가 적어 시상을 하지 못하거나 실력차가 크게 벌어지는 등 전국대회로서 위상을 지키지 못하면서 이에 따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중등부 판소리는 수상자가 단 한 명도 없었으며, 초등부 무용은 대상 1명 외에는 수상자를 내지 못했다. 또 출전자들의 실력 편차가 크게 나면서 수준별로 경연을 치르게 하거나 출전에 제한을 둬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시·군농악대회는 소리축제와 일정이 겹치면서 축제 분위기를 높이는 데는 기여를 했지만, 장소 부족으로 일부 경연을 주차장에서 갖는 등 운영상 문제점들이 나타났다.두 대회를 지켜본 전문가들은 "주최측이 과거에 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국악 관련 대회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는 현실에서 대회 위상 정립을 위한 자구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도휘정기자 hjcastle@ 이화정기자hereandnow81@수상자 명단◆ 전국국악대전일반부 △대상 박명희(무용) 김옥숙(민요) 정호영(판소리) 박혜련(기악) 정하준(시조) △최우수상박부임(무용) 임세미(민요) 김옥(판소리) 임재학(기악) 문홍운(시조) △우수상 조경민(무용) 김영숙외 4명(민요) 강지인(판소리) 이은진(기악) 박지혜(시조)◆ 시군농악대회△대상 익산문화원 서동풍물단(일반) 용지중풍물단(학생농악) 샘골아그들(학생사물) △최우수상 순창순풍산풍물보존회(일반) 김제덕암정보고 풍물패(학생농악) 김제덕암정보고(학생사물) △우수상 타&울림 예술원, 전라좌도 장수굿보존회 농악단(일반) 전주금암초 풍물단(학생농악) 남원서원초 사물단(학생사물)

  • 문화일반
  • 도휘정·이화정
  • 2008.09.29 23:02

[2008 전주세계소리축제] 눈 대신 마음으로 전한 '맹아학교 대취타 공연'

혼자서는 무대 위에 올라 갈 수 없어 안내자의 손을 꼭 잡고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서서 공연을 준비하는 아이들. 앞을 볼 수는 없지만,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에 똑같이 가슴이 뜨거워지는 아이들을 2008 전주세계소리축제 현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28일 오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놀이마당에서 열린 '소리열매드림' 특집 콘서트. 전북맹아학교(교장 권현정) 초등부 1∼6학년 17명의 학생들로 구성된 드림팀이 대취타를 연주했다. 대취타는 옛날 임금이 행차하거나, 군대가 행진하는 의식에서 연주했던 우리나라 전통음악.두달여의 짧은 연습기간과 비장애인도 연주하기 어려운 공연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들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희망을 선보였다.반복적인 연습과 교육을 시키기 위해 매일 2시간씩 맹아학교 6명의 선생님이 악기 파트분야로 나뉘어 아이들을 가르쳤다. 아직 어린나이의 학생들이기 때문에 몸보다 무거운 악기를 드는 체력적인 어려움과 단지, 귀로만 듣고 악기소리를 종합해 하모니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많은 어려움도 있었다.하지만 아이들은 점차 적응력이 생겼고, 재미있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는 열망도 높아져갔다. 악기와 악보는 볼 수 없지만, 이들은 자기가 맡은 악기를 손으로 더듬으면서 생김새를 머릿속으로 그리고 손과 귀의 감각으로 소리와 연주를 담아 거칠었던 선율이 하모니를 이루어 하나의 완성곡을 연출했다.정문수 교감은 "원래 대취타는 이동하면서 연주하는 행진곡"이라며 "우리 아이들이 행진 하면서 연주할 수는 없지만, 행진곡 자체를 연주하는 것이 도전적이고 자신감을 불어 넣는 기회로 생각해 시작했다"고 말했다.이 날 공연에서 태평소를 연주한 이국형군(13)은 "처음에는 태평소를 너무 불어 입도 아프고, 오래 서 있어서 다리도 아팠다"며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관객들에게 많은 박수소리를 들어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고 말했다.공연 도중 옆 친구와 박자가 안맞아 반박자가 느리고, 자기부분을 놓치는아이들도 있었지만, 아이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 장애를 극복하고 많은 관객들 앞에서 훌륭하고 아름다운 연주를 무사히 끝마쳤다. 객석 곳곳에서는 관객들이 눈시울을 적시고,아이들이 공연을 끝나고 무대 밖으로 나가는 동안에도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는 끊이지 않았다.

  • 문화일반
  • 신동석
  • 2008.09.29 23:02

[일과 사람] 국악인형극 '덩덩 쿵따쿵' 조용석 대표

"죽어서도, 땅속에서도 하고 싶은 건 인형극 밖에 없어요. 인형이 제 분신 같습니다."'2008 전주세계소리축제' 국악인형극 '덩덩 쿵따쿵'을 무대에 올린 현대인형극회 대표 조용석씨(62).그는 너털웃음 엿장수 아저씨와 소리 여행을 떠나면서 우리 음악과 춤사위를 만나는 이번 작품을 이끌었다. '과연 행복의 소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통해 아름다운 선녀춤과 화려한 부채춤, 장구춤이 번갈아 가며 흥을 돋운다. 국내 특허를 받은 인형들의 까다로운 손놀림과 고갯짓 등 섬세한 춤사위가 살아난다.그는 1962년부터 줄·손·장대·지점토·그림자 인형 등 모든 장르의 인형을 다 다뤄봤다. 특히 줄인형(마리오네트)은 인형 중에서도 조종하기가 가장 까다로운 인형. 전문적으로 하는 곳은 현대인형극회가 거의 유일하다."줄인형은 배우들이 직접 나와서 연기하기 때문에 관객쪽에서 잘 한다는 느낌을 받게 해요. 움직임이 편하게 표현되는 건 손인형이구요. 장대인형은 약간 뻣뻣한 느낌이 있습니다. 다 장단이 있죠."극단 단원들에게 직접 부채춤, 장구춤을 배우게 한 것도 무대에 올라 맨몸으로 줄인형과 함께 연기해야 하기 때문. 현란한 춤사위를 보여주면서도 줄이 엉키지 않게 하는 것도 이들의 노하우다.얼마나 섬세한 표현을 할 수 있느냐에 따라 줄의 개수는 다르다. 경우에 따라서는 줄 40여개가 달린 인형도 있다. 손가락 마디 하나마다 줄을 연결하면 훨씬 더 실감나는 연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인형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걸음 걸이에 달렸다. 발이 지면에 닿을 듯 말 듯, 진짜 걸어다니는 것처럼 보일 때 비로소 '줄인형 조종 잘 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10여년은 수련해야 체득할 수 있는 고난도 기술.이렇게 인형극을 무대에 올리다 보니 나중엔 인형까지 직접 만들게 됐다. 아이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의상도 특수 제작했다. 이번 무대에 등장하는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빛깔의 한복 한벌과 부채 한쌍은 30만원을 호가한다."인형극에 전문성을 갖추려면 30년은 해야 제대로 할 수 있다고 봐요. 대본부터 인형제작, 의상, 음악까지 다 갖춘 종합예술이거든요. 아이들만큼 무서운 고객도 없어요. 집중력이 20분이기 때문에 재미가 없으면 금새 싫증을 냅니다. 50분 내내 극에 쏙 빠져드는 것을 보면 그것만큼 신나는 일도 없어요."TV 인형극 '부리부리박사'를 연기하다 만나 부인 여영숙씨(56), 딸 윤진씨(33)도 인형극에 발을 들인 2대 인형극 집안. 지금도 인형의 몸놀림만 보면 행복하다는 그의 인형극 사랑은 평생 계속될 것 같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08.09.29 23:02

[일과 사람] 동리대상 수상하는 안숙선 소리축제 조직위원장

"판소리의 체계적인 이론과 문학적인 가치를 정립하는 등 우리 판소리의 획기적인 변혁을 이끌어낸 동리 신재효 선생님의 뜻을 기리는 상을 받게 돼 그 어떤 상보다 영광스럽습니다."25일 제18회 동리대상 수상자로 결정된 안숙선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58). 동리대상은 조선말 판소리를 집대성한 고창출신의 동리 신재효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자 (사)동리문화사업회와 고창군이 지난 1991년부터 판소리 진흥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소리꾼이나 고수, 판소리 연구가 중 한 명을 선정해 상장과 부상으로 일천오백만원을 수여한다."역대 수상자를 살펴보면 저를 가르쳤던 스승님도 계신데다 명성이 자자했던 윗대 명창 어르신들이 많아 저로 인해 동리대상의 권위가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안 명창은 '세계속에 우리 소리를 알리는 것'을 소리꾼의 제1 덕목으로 꼽았던 동리선생과 스승님들의 유지를 받들어 수상에 대한 부담감을 원동력 삼아 나태하지 않고 끊임없이 소리에 정진, 대중로부터 사랑받는 소리꾼으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밝혔다.안 명창은 열살 때 전국 학생 명창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고 고창 출신 故 김소희 명창(1917~1995)에게 '춘향가' '심청가'를 배워 소리꾼의 명성을 쌓았다. 훗날 명창 정광수에게 '수궁가'를, 박봉술 명창에게 '적벽가'를, 성우향 명창에게 '강산제 심청가'를 사사했다.1989년 가야금 병창 준(準)인간문화재가 됐고 199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와 병창 예능 보유자'로 지정됐다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이며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오늘 시작되는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우리 소리가 중심이 되어 타 장르와 교류하는 장입니다. 우리 전통음악이 굳건한 토대를 마련할 있도록 혼신을 쏟을 예정입니다."소리꾼으로서 무대에 서는 것은 물론 조직위원장으로서 소리축제의 전방위에서 우리 소리를 알리는데 주력하는 안 명창은 소리축제를 우리나라의 얼굴이 되는 축제로 키우고 싶다는 의중을 내비쳤다."우리 판소리는 우리나라의 모든 것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예술인 만큼 후배 및 후학들이 판소리하는 것을 긍지와 자랑으로 여기며 열심히 정진해 줬으면 한다"는 안 명창의 바람은 소리꾼으로서, 지도자로서 국악이 발전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는 것이다.한편 동리대상 시상식은 동리 신재효선생의 탄신일이자 기일인 오는 11월6일(목) 오후2시에 고창 동리국악당에서 열리며 안명창과 그의 제자들이 축하공연을 마련한다.

  • 문화일반
  • 임용묵
  • 2008.09.26 23:02

고창 동리대상 안숙선 명창 '영예'

안숙선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이 제18회 동리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사단법인 동리문화사업회와 고창군은 25일 동리대상 심사위원회를 열고 판소리 중흥과 대중화에 헌신한 공로로 중요무형문화재 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기능보유자인 안숙선 명창을 수상자로 선정했다.남원이 고향인 안숙선 명창은 아홉 살때 소릿길로 들어섰다. 안 명창의 이모는 가야금의 명인인 강순영이며, 외숙은 동편제 판소리의 명인이자 큰 산맥이었던 명창 강도근(판소리 인간문화재: 1994년 작고)이다. 안명창은 열살 안팎의 나이에 전국에서 열리는 학생 명창대회 1등을 휩쓰는 등 어릴적부터 명창의 자질을 엿보였다.그녀가 본격적으로 소리공부를 하게 된 것은 스무살 무렵 고창출신인 국창 故 김소희(1917~1995)선생의 문하생으로 들어가면서 부터다.안명창은 이무렵부터 김소희 명창에게서 '춘향가'와 '흥보가'를 배우며 소리꾼으로 명성을 쌓았다. 훗날 명창 정광수에게 '수궁가'를, 박봉술 명창에게 '적벽가'를, 성우향 명창에게 '강산제 심청가'를 사사했다.1979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하여 단장 겸 예술감독 직을 역임했했으며 1986년 남원춘향제 명창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고, 87년 KBS국악대상 수상 등으로 명성을 얻은 그녀는 일본 등 아시아권 12개국, 미국 캐나다 콜롬비아 등 북남미, 유럽 12개 도시의 순회공연 등 세계 속에 우리소리를 전파하기도 했다.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이며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시상식은 동리 신재효선생의 탄신일이자 기일인 오는 11월6일(목) 오후 2시에 고창 동리국악당에서 열리며 안명창과 그의 제자들이 축하공연을 마련한다.

  • 문화일반
  • 임용묵
  • 2008.09.26 23:02

[2008 전주세계소리축제] 판소리, 세계음악을 품에 안다

서민들의 삶과 애환이 녹아있는 판소리. 판소리의 땅 전북이 다시 축제로 울린다.'2008 전주세계소리축제'가 26일 오후 8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야외공연장에서 개막한다.10월 4일까지 소리전당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올해 축제에는 공식행사와 국내공연, 해외공연 등 3개 부문에 58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전 세계 14개국 272개팀 3800여명의 예술가들이 전주에서 만난다.올해 소리축제 주제는 '소리 오락(五樂)'. '소리 놀이'와 '소리 몸짓'을 주제로 내세우고 2006년과 2007년 축제를 치렀지만 여전히 대중성에 한계를 느끼고 있는 소리축제가 올해는 대중들이 폭넓게 참여할 수 있도록 축제성을 강조했다. 슬로건 역시 '소리나누기 오락더하기'. 소리축제의 정체성을 담은 판소리 관련 공연들이 축제 중심에 서있지만, 야외프로그램과 무료공연을 대폭 늘려 관객들을 유인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올해 소리축제는 지역의 문화예술적 역량이 모두어졌다.소리축제가 명품 국악 콘서트를 지향하며 올해 처음 기획한 '천하명창전'은 전북일보가 공동주최한다. 개막공연으로 선정된 창작창극 '견훤'은 전북의 대표 국악예술단체인 전북도립국악원 예술단이 창작한 대형창극이다. 국내초청공연에도 호남오페라단의 '흥부와 놀부', 널마루무용단의 '청의 눈물'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각각 판소리를 바탕으로 만든 창작오페라와 무용극이다.안숙선 소리축제 조직위원장은 "올해로 8회째를 맞은 소리축제는 중요한 시점에 와있다"며 "공연예술축제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만큼, 축제성을 더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제로 단단하게 뿌리내리겠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8.09.26 23:02

[2008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덩실덩실 탈춤과 함께 세상 시름 날려보이소

"나는 사대부 자손일세" "아니 뭐라고. 사대부? 그럼 나는 '팔대부' 자손일세""뭐가 어째? 우리 할아버지는 문하시중을 지냈거든" "아. 문하시중.. 그까지꺼. 우리 조상은 '문상시대'인 걸""나는 사서삼경을 다 읽었다네" "사서삼경? 뭐 그런거 가지고.. 어흠 나는 '팔서육경'을 벌써 다 읽었네"양반탈과 선비탈이 허울뿐인 지체 자랑만 한다. 중요무형문화재 69호 하회별신굿탈놀이 중 양반 선비마당이다. 초랭이와 할미, 부네탈이 허풍쟁이 양반 선비를 신랄하게 꼬집는다. 탈춤 마당마다 기막히는 해학과 풍자에 관객들은 무릎을 치고 박장대소하며 배꼽을 잡는다.아침 저녁 소슬한 바람으로 늦더위를 밀쳐내는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요즈음 경북 안동지방에는 탈춤축제 준비에 부산하다. 올해로 열두번째 막이 오르는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 6년 연속 문화관광부 선정 최우수축제의 명성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탈춤 분야 만큼은 한국을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매김됐다. '가장 한국적인 곳' 하회마을은 물론이고 안동시내 전체가 축제를 준비하는 듯 도로 곳곳에 깃발이 나부끼고 시가지가 각종 탈로 뒤덮힐 정도로 지금 축제 준비가 한창이다.탈을 쓰고 얼굴을 가린다는 것은 염치와 예의에 묻혀 있는 인간 내면의 본능적 신명을 끄집어 내 보자는 것.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 그래서 인간 군상들의 신명이 속으로 부터 발현되고 관람객들의 흥이 강물을 이루면서 자연스럽게 한덩어리가 돼 축제판을 이룬다. 즉 탈이 신명의 진실을 드러내는 도구라면 축제판은 신명을 모아 들끓게 하는 용광로. 그래서 올 축제의 컨셉도 축제적 신명에 충실하자는 것으로 정했다. 주최측은 이를 위해 축제장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탈 쓰기를 권한다. 설빔을 입듯이 축제에 맞는 축제 옷 입기 운동을 벌여 누가 공연자고 누가 관람객인지 도무지 헷갈리게 할 작정이다. 북한의 집단 카드섹션같은 일사분란한 질서 보다 축제는 어느 정도 혼돈을 통해야만 신명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러시아를 비롯해 지구촌 7개국 9개팀이 안동 축제장을 찾는다. 모두 14개 외국 민속공연단이 공연신청을 했다가 심사에서 탈락할 정도로 이번 축제엔 외국 공연팀을 엄선했다. 인도네시아 싱가라자 지역의 탈, 중국의 웨이팡의 경극탈, 필리핀 마스카라 탈 특별전을 마련했고 관련된 학술대회도 알차게 준비해 그 어느 때보다도 양질의 탈문화를 관람할 수 있다. 말 그대로 탈을 통해 세계 문화를 이해하는 장을 마련했다.매년 100만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다녀 가는 이 축제에는 물론 하회탈춤을 비롯한 봉산탈춤, 수영야류, 은율탈춤, 가산오광대, 양주별산대, 송파산대놀이, 강령탈춤, 통영오광대 등 한국의 전통탈춤 15가지가 열흘간에 걸쳐 차례로 공연된다. 우리 탈춤을 한곳에서 다 볼 수 있는 곳으로는 유일하다. 200여명의 축제 서포터즈들이 관광객들의 편의를 돕는 탈춤축제는 탈춤 외에도 지역 민속놀이 등 모두 400여 가지의 공연과 전시회가 부대행사로 열린다. 2만6천여㎡의 축제공원에는 관람석 3천석 규모의 탈춤공연장과 3천500대를 수용할수 있는 주차장을 깨끗하게 정돈하고 관광객 맞이를 완료했다.특히 올해 축제는 공연 중심의 축제가 아니다. 관람객들이 함께하며 흥에 취해 느낄 수 있는 축제를 목표로 삼았다. 탈과 춤의 퍼레이드 난장을 관객 자율로 진행하고 대규모 군중이 함께하는 몹씬(mob scene), 마임, 댄스, 퍼포먼스, 인형극 등 탈과 관련된 모든 인간의 몸짓을 축제에 고스란히 녹여낸다며 주최측이 기염을 토한다.중점 볼거리로 '굿모닝 허도령(첫 공연 27일 저녁 9시 탈춤공연장)'이 있다. 하회탈을 깍은 고려 총각 허도령을 짝사랑한 이웃 처녀의 슬픈 사랑을 무대에 올린다. 또 어린이용으로 재구성한 인형극 하회탈춤(maskdance.com)도 볼만하다. 인도네시아 발리탈과 호주탈 등 모두 500여점의 탈이 전시된 세계탈전시회와 200∼300명의 남성과 여성들이 연출하는 차전놀이(10월3일 오후 3시 놀이마당), 놋다리밟기(28일 오후 5시) 등 지역 민속놀이도 꼽을 수 있다. 또 우리나라 전통 불꽃놀이로는 유일하게 전승되고 있는 선유줄불놀이가 하회마을에서 두차례(27일과 10월 4일)에 걸쳐 시연, 깊어가는 가을밤을 화려한 불꽃으로 수놓는다. 관람객들이 신명에 취해보는 행사로는 남녀노소가 저마다 탈을 쓰고 덩실덩실 퍼레이드를 벌이는 탈선(쓴)무대. '어허! 탈난 세상' 해가 어스름 질 무렵이면 성인 남녀가 관심을 보이는 무대다. 탈춤 따라 배우기도 인기 프로그램, 그리고 '축제 왔으면 내것 하나 만들어야지' 50여가지의 만들기 체험부스와 총 상금 4천400만원이 걸린 월드마스크 경연대회도 흥겨움이 넘치는 열광의 도가니이다.때마침 축제기간에 인근 경북 북부지역 영주와 봉화에서도 풍기 인삼축제(10월1일∼5일)와 춘양목 송이축제(27일∼30일)가 열린다. 최상의 건강식품인 인삼을 직접 캐보고 원시림속에서 아침이슬을 머금은 자연산 송이의 독특한 향을 맡아가며 아주 색다른 아침 식사도 즐길 수 있다. 안동한우·안동간고등어·헛제사밥·인삼갈비·송이갈비 등 맛깔스런 토속 먹을거리도 지천에 널려 있다.세계탈문화예술연맹(IMACO) 초대회장인 김휘동 안동시장은 "축제에 참가하는 사람들 모두가 '나만의 탈' 갖기 운동에 참여하고 탈춤을 사랑하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탈춤 한사위, 풍물 한가락 정도는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축제 운영의 기조를 잡았다"며 "가 보기만 하면 모든 근심 걱정을 떨쳐 버릴 수 있는 신명나는 곳이 안동이라고 인식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축제를 마련했다"며 많은 관람을 당부했다. 관람문의 054)840-6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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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9.26 23:02

[김병용의 기행에세이] (11)여수행 새벽 기차

▲ 기차가 등장하기 이전여행의 이동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오랫동안 인류는 생체 근력이나 바람, 물결의 힘을 이용하여 이동해왔다, 걷거나 돛을 펼치거나 노를 저으며… 인류가 존재한 이래 이 같은 이동 방식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따라서, 자연의 리듬이 곧 우리의 이동 생체 리듬이다. 인간은 평균 보행속도 시속 4km 이상이 되면 풍경 식별에 혼란이 온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난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물론, 이같은 원시적 이동에는 여러모로 제약이 따랐다. 옛선비들의 과행(科行)길이나 소금장수 봇짐길에 얽힌 여러 전설이 잘 보여주듯 험난한 지형이나 질병, 사고가 도사리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토지와 노동력을 근본으로 하는 농경시대에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신라장적'이나 '호패'의 이면에는 '거주 제한'이 깊이 음각되어 있었고, 악명 높은 일본 바쿠후 시대의 세키쇼(關所)나 중세 유럽 영주들의 '초야권'도 이같은 정황을 전제하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다.이같은 시대, 여행은 그야말로 '꿈'이었다. '서울에 남대문이 있느냐'를 두고 유쾌한 말장난을 벌였던 조선의 익살꾼 정수동의 시대는 실제로 존재했을 것이다, 먼 곳을 다녀온 사람이 드무니 어지간한 거짓말은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서로 원하는 바였을 것이다.난 곳에서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고개 너머에서 걸어오는 길손은 위험하면서 신비로운 내력의 소유자일 수밖에 없었고, 매혹의 주체이자 대상이었을 것이다. 여행은 빈번한 일도, 반복되는 일도 아니었다. 한 번의 여행은 그 사람 일생을 통해 가장 순도 높게 겪은 영육의 담금질이었을 것이다. 교양으로서 여행을 강조했던 서양의 '그랑 투르(Grand Tour)'나 명산대천을 찾아다닌 신라 화랑의 풍류가 지금도 언급되는 것은 그것이 자주 있는 일도,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전라선을 타봐야 인생을 안다'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세 번째 혁명기에 걸쳐 있다고 말한 미래학자가 있었는데, 그가 언급한 앞선 두 개의 혁명은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이었다.이동이란 측면에만 한정해서 살펴보면, 농업혁명은 우리를 땅에 묶이게 만들었고, 산업혁명은 우리 모두를 떠돌이 혹은 탈주자로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다. 산업혁명의 시발이자 가장 큰 성과물은 인공적인 동력기관을 발명했다는 것, 그에 따라 인간의 탈것에는 혁명적인 변화가 몰아닥쳤다. '기차'가 그것이다.빠른 시간, 장거리 이동, 염가 대량 수송 등으로 정의할 수 있는 기차의 발명에 의해 인간의 여행의 방식과 범위도 대폭 수정되었다. 농경시대에서 산업시대로의 돌입하는 동안 도시가 형성되고, 토지 기반 농경제는 폐지되었으며, 도시민이 된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기 위해서나 귀향하기 위해 혹은 유람하기 위하여 늘 이동한다. 대량 여행, 여행의 평준화가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다.이제 우리의 공간에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속도를 거처로 삼게 되었다. 최명익의 [장삼이사]나 현진건의 [귀향]과 같은 작품 속에서도 승객들은 이동하며 발견하는 주체인 동시에 수송되며 관찰되는 객체로 등장한다. [설국]의 시마무라는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바깥의 어둠에 의해 거울이 되어버린 차창에 비친 자신과 타인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내면으로 잠겨든다. 하여, 시인은 "밤에, 전라선을 타보지 않은 자하고는 / 인생을 논하지 말라"(안도현,[인생])라고 외쳤으리라.▲ 여수행 남행열차전국적으로 시발역과 종착역은 몇 군데 되지 않는다, 호남선의 경우 서울과 목포만이 발착역의 이름을 갖는다. 따라서 전국의 대부분 기차역은 중간기착지라고 할 수 있고, 승객은 상행과 하행 중 하나만 선택하게 된다. 그렇다면… 당연히 하행이다. 여수로 작정하고 기차에 몸을 싣는다.최남선도 말했듯, 조선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남쪽으로 가는 것을 의미했다. '남행열차'란 대중가요 이름이 거저 나온 게 아니다. 상행선을 탄다는 것은 업무나 생계를 위해 상경(上京)한다는 말과 거의 같고, 남쪽으로 간다는 말은 자신을 방하(放下)한다는 뜻으로 해석되어 왔다.철로가 닿지 않는 곳에서 나고 크는 바람에 나는 중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기차를 탈 수 있었다. 그것도, 기차 구경 한 번 못 했다는 조카를 위해 당고모가 전주-이리 구간을 함께 왕복하는 호의를 베풀어줘서 가능한 일이었다. 삼례 쯤이나 되었을 것이다, 기차칸에서 풍기는 역한 기름 냄새에 간신히 적응한 어린 조카에게 당고모는 '사람 몸 중 가장 아름다운 부위가 어디라고 생각하냐' 물었다. 참 뜬금없구나, 생각했던 것 외에 내 대답은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당고모는 사람 목이 가장 아름다운 거라고 말했다, 그 이유가 당시에는 좀 황당했다. '목이 가장 빨리 늙잖아'… 이런 기억 탓일까, 기차만 타면 나도 모르게 사람들의 목주름을 살피다가 황급히 시선을 거둬들이곤 한다. 그 당고모는 이제 내 옆에 없다. 목주름 느는 것이 싫어서 그랬던지, 당신 나이 20대 후반에 당고모는 이 세상을 떠났다.에피파니(epiphany), 진리의 순간적이고 예술적인 현현을 뜻하는 이 단어가 기차를 탈 때마다 지금도 어렵게 어렵게 떠오르는 건 바위만 그리는 무명 화가로 종생하였던 당고모 때문일 것이다.아름다운 것, 소중했던 시간들은 이렇게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인가, 아니 아름다움은 이렇게 순식간에 시간을 관통해 내 앞에 나타나는가… 휙-휙-, 차창 밖으로 세상의 풍경들이 달리는 기차 속도의 갑절로 지나간다. 다시 한 번, 기차 안에서 나는 시간 여행자인 것이다.▲ 문명이 나를 보호한다는 생각기차 객량에 들어설 때마다 난 문명의 보호를 단단히 받고 있단 생각을 하게 된다. 곧게 뻗은 철로와 강철 튜브 같은 객차, 그보다 더 단단해 보이는 차간 연결고리… 승용차나 버스, 배나 비행기 어떤 탈것보다도 기차는 쾌적하고 편안하다. 우리가 우리를 위해 고안한 편안함이다.만약, 신이 존재해 갑자기 인간들 앞에 나타나 그동안 너희들은 무얼 했느냐, 묻는다면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신에게 기차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철의 완강한 아름다움과 이 놀라운 속도를 우리가 창조했습니다…기차를 타는 순간, 여행은 시작되고 동시에 또 완성된다. 어디까지 가든, 얼마나 타고 있든 기차는 나를 공간 너머, 속도 너머 마침내… 여행 그 너머 먼 저 편으로 인도한다.하여, 내가 내 나이와 불화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날이면, 난 늘 새벽기차에 오른다. 기차에서 내려 순천 포구나 선암사 혹은 오동도, 향일암으로 발길을 잡아도 좋고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것도 좋다. 막 교차해 지나가는 저편 기차에 스무 살은 젊은 내가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해도 좋은 곳이 기차칸이다.내가 나와 화해할 때까지 귀로는 걱정하지 말자, 기차가 있지 않은가! 돌아가려고만 하면… 기차는 낮밤을 가리지 않고 늘 정시에 들어온다./김병용(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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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9.26 23:02

[독자 백가쟁명] 아! 그 이름 논개 다시보자 - 김기곤

논개는 1574년(선조 7년) 음 9월 3일 현재의 전북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주촌(朱村) 마을에서 서당 훈장인 아버지 주달문(朱達文)과 어머니 밀양 박씨 사이에서 신안(新安) 주씨(朱氏)의 20세손인 외동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갑술년 갑술월 갑술일 그리고 술시에 태어나 "개를 낳다"라는 경상도 사투리인 "개를 놓다" 즉 "놓은 개"라는 말에서 "논개"로 불리어지게 되었다.그녀는 불행하게도 3세에 하늘같은 부친을 병마에 잃고 주정뱅이 숙부 주달무(朱達武)에 얹혀살게 되었다. 그녀가 5세 되는 해에 어머니 박씨는 숙부가 한 동네 부자 김풍헌에게 민며느리로 어린 논개를 팔아버린 것을 알고 논개를 데리고 친정으로 피신했다. 논개 모녀는 김풍헌에 의해 사기결혼으로 당시 장수 현감 최경회(崔慶會)에게 고발되어 잡혀 갔으나 무죄판결로 방면되었다. 그때 모녀는 갈 곳이 없었다. 마침 최경회의 김씨 부인이 병마에 시달려 항상 약을 먹는 처지여서 논개는 약 수발에, 박씨 부인은 밥 수발로 현감 내외와 함께 관아에서 살게 되었다. 모녀는 그들의 지극한 수벌이 현감내외의 맘에 들게 되어 그 후 현감이 부임하는 곳마다 동행하며 식구처럼 지내게 되었다.논개가 17세 되는 해에 최경회의 김씨 부인이 지병의 악화로 세상을 뜨자 논개는 최경회의 부실이 되었고 이어 최경회는 모친상을 당하여 관직을 버리고 모친 시묘(侍墓)를 위해 고향으로 가면서 논개는 장수에 남게 되었다.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군에 대한 의분을 참지 못해 시묘를 중지하고 의병을 일으켜 장수지방으로 오게 된 최경회를 다시 만난 논개는 왜병과 싸움에서 최경회가 혁혁한 전공을 올리는데 지극한 내조로 큰 역할을 했다.이듬해 그녀는 최경회가 경상우도병마절도사(慶尙右道兵馬절도사)의 임무를 받고 진주로 부임 할 때 함께 진주성으로 들어가게 되었다.일본은 1592년 임진년(선조25년) 4월 풍신수길이 소서행장과 가등청정을 앞세워 15만 대군을 이끌고 부산포로 상륙하여 파죽지세로 서울을 점령했으나 진주성 1차 전투에서 김시민 장군에게 패퇴 당하자 풍신수길은 1593년 계사년(선조26년) 게야무라로코스케(毛谷村六助)에게 조선에 남아 있는 10만 병력을 맡겨 마지막 경남서부지역과 곡창지대인 호남지방을 삼키려 진주성 2차 보복 침공을 감행했다. 6월의 장마철에 일본군의 10여 일 간의 공격에 필사의 혈투를 벌렸지만 중과부적으로 성은 함락되고 6만의 우리 병사와 백성이 최후의 한 사람까지 처참하게 학살당하고 김천일 최경회 고종후 등 살아남은 장수들도 남강 물에 투신 자결하는 수모를 당하고 말았다.그러한 상황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논개는 비분강개한 마음으로 국가와 남편의 원수를 갚기로 맹세하고 칠월칠석날 왜군의 승전연(勝戰宴)에 관기로 가장하여 남강 촉석루 아래 강가 의암(義巖)에서 교태(嬌態)로 왜장 게야무라로코스케를 수장시키는 거사를 단행했다.그녀의 죽음은 첫째 승승장구 달려오는 왜군의 기세를 꺾어 호남지방으로 진격하려는 일본의 전략을 후퇴시킴으로써 호남지방이 무사했고, 둘째는 당시 의기소침한 충청전라경상지방의 선비들로 하여금 의병에 참여하여 일본군에 맞서 싸우게 됨으로서 이 후 丙申年(1596년)까지 소강상태를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논개의 죽음은 임진왜란의 전사(戰史)에서 귀중한 한 획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그러나 당시 관료들은 성리학적 지배이념에 뿌리박힌 남존여비사상에 얽매여 기녀로 가장하여 순국한 논개란 한 부녀자의 죽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으며 사회적 인식 역시 단순한 여성이라는 신분 더욱이 기녀로 각인(刻印)된 채 긍정적이기 보다는 부정적이고 추앙보다는 천시와 멸시로 일관 해 버렸다. 그리고 그 후 역대의 왕마다 그녀의 죽음을 한 천한 기녀로, 후사(後嗣)도 없는 여인으로 치부해 버린 채, 1621년(광해군13년) 유몽인의 <어우야담(於于野談)>에 처음 기록됨을 비롯하여 1651년(효종2년) 오두인의 <義巖記>에 이어 1740년(영조16년) <의기사(義妓祠)> 건립으로 논개의 충절의 정신이 정당한 평가를 받기까지는 그녀가 순국한 후 147년(영조 16년까지)의 세월이 지나서였다. 이것이 바로 논개가 기녀로 오인된 첫째의 주요한 원인이다.더욱이 논개가 순국한 350여 년 후인 1940년 경 한일합방으로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이 주촌(朱村) 마을에 들어와 논개의 비를 파괴하고 신안 주씨 일족을 모조리 잔인하게 내쫓는 등 논개의 충절의의 흔적마저 없애버리는 만행을 자행함으로서 우리의 민족정기를 말살당하는 수모도 당했다.이 후 1945년 해방을 맞아 종래 구전에 의한 졸속한 교과서 편찬으로 논개의 인식이 거듭 왜곡되어 아직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따라서 기녀로 묘사 된 논개가 1650년(효종 1년) 민순지의 <임진록(壬辰錄)> 1884년 송병준의 <일휴당공신도비명(日休堂公神道碑銘)> 1740년(영조 16년) 원적의 <경상우병사증좌최공시장(慶尙右兵司贈左崔公諡狀)> 그리고 충의공 최경회의 집안인 <해주최씨대동보(海洲崔氏大同譜)>에 의하여 최경회의 의암부인 또는 부실로 밝혀지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었다.충절의(忠絶義)를 도덕적 가치로 중시하는 유교적 봉건사회에서 논개의 충절의의 정신을 부정하고 멸시한 것은 바로 나라의 근간인 민족혼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일이었으며 나라를 잃고 민족이 수난을 당하는 치욕의 역사를 벗어나 50여년이 되었는데도 아직 올바른 역사를 정립하지 못하고 왜곡된 사실을 버려두는 것은 치욕스러운 일이다.논개가 진주에 있었던 기간은 1593년 5월 15일경에서 7월7일까지였으니 불과 55일이다. 그것도 진주성 안에서 진주성주의 아내로써 언제 왜군이 진주성을 침공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밤낮 전쟁준비를 하다가 결국 치열한 전투 그리고 순절하는 절박한 나날이었다.진정 혈혈단신 수백리길 사고무친 피비린내 나는 사면초가의 적진 속에서 적장을 유인하여 육탄으로 수장시킨 논개의 살신성충(殺身誠忠)의 결연(決然)한 순국의거는 오직 기생으로 가장하였기에 감히 할 수 있었던 일이다. 당시 기녀가 아니면 승전연에 참석 할 수 없고 승전연이 아니면 왜장에게 접근하여 원수를 갚지 못한다는 사실을 논개는 간파(看把)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논개의 비범한 지혜였다. 논개는 수무살의 어린 연약한 몸으로 죽음을 무름 쓰고 엄청난 거사를 의연(毅然)하게 홀로 결행했다. 진정 논개는 거룩한 죽음을 선택 할 줄 알았고 대의를 위해 자신을 버릴 줄 알았던 참된 의인이었다.그녀가 순국한지 400여년! 그 동안 유교이념에 눈이 멀고 일제의 침략으로 입이 묶여 논개의 진정한 죽음이 왜곡된 채 빛을 보지 못했다. 이제 논개는 기녀가 아닌 양가집 부인으로 거듭나야 하고 그녀의 충절의 정신은 역사적 사실로 정사에 수록되어 청사에 기리 빛날 충절의(忠絶義)의 표상(表象)으로 후세에 바르게 전수되어야 할 것이다.그리하여 논개의 순국의거의 정신은 국민에게 민족혼을 일깨우고 청소년들에게 충절의의 정신을 길러주는 생생한 교육의 귀감으로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김기곤(전북문화유산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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