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용의 기행에세이] (11)여수행 새벽 기차
▲ 기차가 등장하기 이전여행의 이동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오랫동안 인류는 생체 근력이나 바람, 물결의 힘을 이용하여 이동해왔다, 걷거나 돛을 펼치거나 노를 저으며… 인류가 존재한 이래 이 같은 이동 방식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따라서, 자연의 리듬이 곧 우리의 이동 생체 리듬이다. 인간은 평균 보행속도 시속 4km 이상이 되면 풍경 식별에 혼란이 온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난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물론, 이같은 원시적 이동에는 여러모로 제약이 따랐다. 옛선비들의 과행(科行)길이나 소금장수 봇짐길에 얽힌 여러 전설이 잘 보여주듯 험난한 지형이나 질병, 사고가 도사리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토지와 노동력을 근본으로 하는 농경시대에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신라장적'이나 '호패'의 이면에는 '거주 제한'이 깊이 음각되어 있었고, 악명 높은 일본 바쿠후 시대의 세키쇼(關所)나 중세 유럽 영주들의 '초야권'도 이같은 정황을 전제하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다.이같은 시대, 여행은 그야말로 '꿈'이었다. '서울에 남대문이 있느냐'를 두고 유쾌한 말장난을 벌였던 조선의 익살꾼 정수동의 시대는 실제로 존재했을 것이다, 먼 곳을 다녀온 사람이 드무니 어지간한 거짓말은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서로 원하는 바였을 것이다.난 곳에서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고개 너머에서 걸어오는 길손은 위험하면서 신비로운 내력의 소유자일 수밖에 없었고, 매혹의 주체이자 대상이었을 것이다. 여행은 빈번한 일도, 반복되는 일도 아니었다. 한 번의 여행은 그 사람 일생을 통해 가장 순도 높게 겪은 영육의 담금질이었을 것이다. 교양으로서 여행을 강조했던 서양의 '그랑 투르(Grand Tour)'나 명산대천을 찾아다닌 신라 화랑의 풍류가 지금도 언급되는 것은 그것이 자주 있는 일도,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전라선을 타봐야 인생을 안다'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세 번째 혁명기에 걸쳐 있다고 말한 미래학자가 있었는데, 그가 언급한 앞선 두 개의 혁명은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이었다.이동이란 측면에만 한정해서 살펴보면, 농업혁명은 우리를 땅에 묶이게 만들었고, 산업혁명은 우리 모두를 떠돌이 혹은 탈주자로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다. 산업혁명의 시발이자 가장 큰 성과물은 인공적인 동력기관을 발명했다는 것, 그에 따라 인간의 탈것에는 혁명적인 변화가 몰아닥쳤다. '기차'가 그것이다.빠른 시간, 장거리 이동, 염가 대량 수송 등으로 정의할 수 있는 기차의 발명에 의해 인간의 여행의 방식과 범위도 대폭 수정되었다. 농경시대에서 산업시대로의 돌입하는 동안 도시가 형성되고, 토지 기반 농경제는 폐지되었으며, 도시민이 된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기 위해서나 귀향하기 위해 혹은 유람하기 위하여 늘 이동한다. 대량 여행, 여행의 평준화가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다.이제 우리의 공간에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속도를 거처로 삼게 되었다. 최명익의 [장삼이사]나 현진건의 [귀향]과 같은 작품 속에서도 승객들은 이동하며 발견하는 주체인 동시에 수송되며 관찰되는 객체로 등장한다. [설국]의 시마무라는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바깥의 어둠에 의해 거울이 되어버린 차창에 비친 자신과 타인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내면으로 잠겨든다. 하여, 시인은 "밤에, 전라선을 타보지 않은 자하고는 / 인생을 논하지 말라"(안도현,[인생])라고 외쳤으리라.▲ 여수행 남행열차전국적으로 시발역과 종착역은 몇 군데 되지 않는다, 호남선의 경우 서울과 목포만이 발착역의 이름을 갖는다. 따라서 전국의 대부분 기차역은 중간기착지라고 할 수 있고, 승객은 상행과 하행 중 하나만 선택하게 된다. 그렇다면… 당연히 하행이다. 여수로 작정하고 기차에 몸을 싣는다.최남선도 말했듯, 조선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남쪽으로 가는 것을 의미했다. '남행열차'란 대중가요 이름이 거저 나온 게 아니다. 상행선을 탄다는 것은 업무나 생계를 위해 상경(上京)한다는 말과 거의 같고, 남쪽으로 간다는 말은 자신을 방하(放下)한다는 뜻으로 해석되어 왔다.철로가 닿지 않는 곳에서 나고 크는 바람에 나는 중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기차를 탈 수 있었다. 그것도, 기차 구경 한 번 못 했다는 조카를 위해 당고모가 전주-이리 구간을 함께 왕복하는 호의를 베풀어줘서 가능한 일이었다. 삼례 쯤이나 되었을 것이다, 기차칸에서 풍기는 역한 기름 냄새에 간신히 적응한 어린 조카에게 당고모는 '사람 몸 중 가장 아름다운 부위가 어디라고 생각하냐' 물었다. 참 뜬금없구나, 생각했던 것 외에 내 대답은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당고모는 사람 목이 가장 아름다운 거라고 말했다, 그 이유가 당시에는 좀 황당했다. '목이 가장 빨리 늙잖아'… 이런 기억 탓일까, 기차만 타면 나도 모르게 사람들의 목주름을 살피다가 황급히 시선을 거둬들이곤 한다. 그 당고모는 이제 내 옆에 없다. 목주름 느는 것이 싫어서 그랬던지, 당신 나이 20대 후반에 당고모는 이 세상을 떠났다.에피파니(epiphany), 진리의 순간적이고 예술적인 현현을 뜻하는 이 단어가 기차를 탈 때마다 지금도 어렵게 어렵게 떠오르는 건 바위만 그리는 무명 화가로 종생하였던 당고모 때문일 것이다.아름다운 것, 소중했던 시간들은 이렇게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인가, 아니 아름다움은 이렇게 순식간에 시간을 관통해 내 앞에 나타나는가… 휙-휙-, 차창 밖으로 세상의 풍경들이 달리는 기차 속도의 갑절로 지나간다. 다시 한 번, 기차 안에서 나는 시간 여행자인 것이다.▲ 문명이 나를 보호한다는 생각기차 객량에 들어설 때마다 난 문명의 보호를 단단히 받고 있단 생각을 하게 된다. 곧게 뻗은 철로와 강철 튜브 같은 객차, 그보다 더 단단해 보이는 차간 연결고리… 승용차나 버스, 배나 비행기 어떤 탈것보다도 기차는 쾌적하고 편안하다. 우리가 우리를 위해 고안한 편안함이다.만약, 신이 존재해 갑자기 인간들 앞에 나타나 그동안 너희들은 무얼 했느냐, 묻는다면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신에게 기차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철의 완강한 아름다움과 이 놀라운 속도를 우리가 창조했습니다…기차를 타는 순간, 여행은 시작되고 동시에 또 완성된다. 어디까지 가든, 얼마나 타고 있든 기차는 나를 공간 너머, 속도 너머 마침내… 여행 그 너머 먼 저 편으로 인도한다.하여, 내가 내 나이와 불화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날이면, 난 늘 새벽기차에 오른다. 기차에서 내려 순천 포구나 선암사 혹은 오동도, 향일암으로 발길을 잡아도 좋고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것도 좋다. 막 교차해 지나가는 저편 기차에 스무 살은 젊은 내가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해도 좋은 곳이 기차칸이다.내가 나와 화해할 때까지 귀로는 걱정하지 말자, 기차가 있지 않은가! 돌아가려고만 하면… 기차는 낮밤을 가리지 않고 늘 정시에 들어온다./김병용(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