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나 모르는 문화이야기] (33)무용에도 악보가 있다?!
음악은 악보, 미술은 그림, 연극은 대본. 시간과 함께 사라지고 마는 현장예술 무용은 어떻게 기록될까?무용에도 악보가 있다.2003년 3월 한국무용기록학회가 주최한 '세계 춤표기법 심포지움'에서는 무보화로 기록된 춤을 직접 무대에서 실연하는 무보 재현 공연이 펼쳐졌다. 이날 공연에서는 고대 상형문자 표기로 접근한 중국 나시족 동바의식무용과 보샹-훼이예 무보법에 기초한 프랑스 바로크 무용, 라바노테이션으로 표기한 처용무, 자모식 무용표기법에 의거한 북한 민속춤 등이 재현됐다.무보법(舞譜法)은 춤을 종이에 기록하는 것으로, 움직임을 기호화시켜 옮긴다. 그림과 기호가 적절하게 조합돼 무용의 동작을 보여주는 것.현재 전 세계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무보법은 20세기 초 독일의 무용이론가 루돌프 폰 라반이 고안한 '라반 무보법'이다. 국내에서는 '라바노테이션(Labanotation)'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영미권에서 주로 쓰는 용어이며 유럽에서는 '키네토그라피 라반(Kinetographie Laban)'이라고 부른다.'라반 무보법'은 움직임을 형체(shape)와 작용력(effort)으로 구분하며 시간, 공간, 무게, 흐름 등 움직임의 주요 4요소를 분석해 기록한다.무보에는 머리, 어깨, 무릎, 팔, 다리 뿐만 아니라 흉부, 가슴뼈, 척추, 복부 등에 대한 기호를 넣어 움직임을 세밀하고 정확하게 기록했다. 세로 줄을 신체의 중심으로 하고, 칸 안에 움직임의 방향과 시간, 크기 등을 기록하는 방식. 사람의 움직임 뿐만 아니라 기쁨, 슬픔, 분노, 화와 같은 감정도 기록해 놓았다.무보법의 장점은 시간이 지나도 무보를 바탕으로 똑같은 동작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단순한 움직임 하나를 나타내려고 해도 그 양이 방대해 진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라반의 연구는 그의 제자 겸 동료였던 알브레히트 크누스트에게 계승돼 오늘날 완성된 모습에 이르렀다. 무보법은 이외에도 '베네시 무보법', '보샹-푀이예 무보법', '자모식 춤표기법' 등이 있다. 이 중 '자모식 춤표기법'은 북한이 유네스코 산하 국제무용협회 지원을 받아 연구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군무와 총체극 위주로 발달한 북한의 춤에서 무보법의 역할이 크다고 말한다.유럽에서는 안무자는 물론, 무용수들도 동작 개발과 분석을 위해 무보법을 공부한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 무보법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 라반이 만든 무보법은 현대무용의 기록에서는 최초라고 할 수 있지만, 움직임이 형성되는 시간 단위를 서양의 2분박으로 표기해 3분박에 바탕을 둔 한국 춤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 부터 무보가 존재했다. 조선 후기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시용무보(時用舞譜)」가 대표적인 무보. 작자나 연대를 알 수 없는 이 책은 종묘 일무(佾舞:사람을 여러 줄로 벌려 세워서 추게 하는 춤)의 무보로, 1행을 크게 6칸으로 나눠 오음약보(五音略譜:조선 세조가 창제하여 19세기까지 사용해온 국악 기보법)로 된 악보에 맞춰 춤사위를 하나하나 그려 넣고, 그림 왼쪽 옆에 춤동작에 붙여진 용어를 적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