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분석한 한국문학 100년
한국 근대 문학의 효시로 꼽히는 최남선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발표된 것이 1908년이니 올해로 한국 근현대 문학은 꼭 100주년을 맞이했다. 봉건 사회를 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포스트 모더니즘까지 진폭 큰 변동을 겪은 지난 100년 동안 한국문학은 나름의 근대성을 구축하기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해왔다. 계간 '문학과 사회' 봄호는 '한국문학 100년의 키워드'를 특집으로 마련해 '연애', '도시', '가족', '젠더', '꿈', '육체', '민족', '나' 등 여덟 가지 틀로 지난 한 세기 동안의 우리 문학을 들여다봤다. 문지문화원 '사이'와 공동으로 기획해 2회에 걸쳐 선보이는 이번 특집은 8명의 연구자들이 참여해 지난 100년간 한국문학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추출했다. 문학평론가 권보드래는 '연애, 한국문학의 은밀한 욕망'이라는 글에서 한국문학이 '연애'라는 키워드에 의지해 근대를 비로소 자기화하는 과정을 밀도있게 분석했다. 권 씨에 따르면 한국문학은 연애를 통해 자아의식과 사회 비판과 글쓰기 능력을 학습했다. 사랑에 눈뜨면서 '나'의 개성과 욕망을 확인하고, 사랑을 위해 싸우면서 세계와 정면 충돌하고, 연애편지를 쓰고, 지우고, 고쳐 쓰면서 문학을 연습했던 것이 한국 근대문학의 첫 장면이다. 한국문학에서 처음으로 연애의 서사를 개척한 사람은 '무정'을 쓴 이광수. 연애의 자유와 권리로서 근대를 표현한 이광수에서 출발한 연애의 서사는 사랑에 대한 짙은 회의를 가지고 연애의 역설을 보여준 1920년대의 김동인과 염상섭, 1960년대의 최인훈, 김승옥을 거쳐 오늘날의 신경숙, 은희경, 정이현에 이른다고 권씨는 설명했다.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불우한 산책자들의 도시'에서 "한국 현대문학은 도시에서 태어났다'고 단언했다. 한국 현대사의 지배적인 병동 요인이 산업화, 자본주의화라고 할 때 도시는 그 생활공간의 정치경제학적 문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는 것. 이광호는 "표준화, 평균화의 방식으로 개인성을 소모시키고 빼앗아가면서, 동시에 개인적인 것의 가치를 과장하도록 촉구하는" 도시가 1930년대 경성 거리를 담은 박태원의 소설부터 2000년대 서울의 편의점을 배경으로 한 김애란의 소설에 이르기까지 작품의 주요 무대가 되고 있음에 주목했다. 한편 이번 호에는 윤대녕, 하성란, 조경란, 편혜영, 백가흠의 신작 소설과 김형영, 김광규, 장석남, 정끝별, 이진명, 이영광의 신작시, 한강의 장편 연재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 등 다양한 창작물이 실렸다. '선택, 젊은 소설'란에는 정소현의 '양장 제본서 전기'가 소개됐고, '이 작가'란을 통해서는 지난 2일 1주기를 맞이한 오규원 시인을 조명했다. 프랑스 비평가 클로드 무샤르가 이청준 소설에 대해 쓴 '생을 삼켜버리는 노래'는 동서양을 관통하는 문학적 상상력의 가능성에 대한 흥미로운 탐색이다. 문학과지성사. 468쪽. 1만3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