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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경옥 작가 - 뻐라짓 뽀무 외 34명 ‘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이색적인 시집을 읽게 되었다. 한국에서 일하는 네팔 이주 노동자 35명이 쓴 시집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산을 바라보며 살아온 그들이 고층빌딩 숲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낮은 노동자로 살아가면서 느낀 삶의 소회를 담은 내용이다. 현재 한국 사회 노동 현장에서는 이주 노동자들이 없으면 농수산업에서부터 건설 현장까지 유지할 수가 없을 정도다. 즉, 한국 경제는 이주 노동자들을 착취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수준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쓴 시를 통해 이주 노동자의 노동 현실의 진상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과 그들의 전통과 관습을 알리는 시도 있지만 35명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정서는 한국 노동 현장의 일그러진 모습을 말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며 ‘기계’가 된 그들의 시에서 ‘한국인들이 보고 싶어 하지 않는 한국’이 여실히 드러나 보였다. 사람이 만든 기계와 / 기계가 만든 사람들이 / 서로 부딪히다가 / 저녁에는 자신이 살아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구나 / 친구야 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 / 여기는 사람이 기계를 작동시키지 않고 / 기계가 사람을 작동시킨다 -<기계>(서로즈 서르버하라)부문 너무나 일상이 되어버린 노동 환경에 대한 것들을,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심하게 느끼고 받아들이고 있는 ‘기계의 노예화’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기계의 도시에서 / 기계와 같이 놀다가 / 어느 사이 /나도 기계가 되어버렸구나 <기계>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기계가 사람을 작동’시킨다는 비판을 넘어 우리가 점점 기계화되어가는 잊었던 현실을 바라보게 한다. 그런데 이 작품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작품 속에서 노동 현장에서 인간적인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로봇 같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나는 이 로봇의 나라에서 밤마다 / 이런 생각을 하다 눈을 감고 / 다음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일어난다 -<어머니의 알람>(덤벌 숩바)부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문맹처럼 /로봇을 만드는 나라에서 로봇이 되어 /자신의 성실한 노동의 시간을 보낼 때 /가끔은 휴대폰의 사진첩을 본다. -<나>(딜립 반떠와)부분 삶이 이토록 어려운 시기가 도래해서 /이제는 당신 기계의 족쇄를 차고 /슈퍼 기계가 되어서 움직이고 있어요 -<슈퍼 기계의 한탄>(니르거라즈 라이)부분 이들의 눈에 비친 한국은 노동자들을 로봇으로 만들어 거대한 기계에 속한 부품으로 종속되어간다는 걸 말하고 있다. 한국을 기회의 땅으로 생각하며 들어왔지만, 오히려 마음의 상처와 영혼을 찢기는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산업현장에서 인간의 부품화 현상이 한국만 그런 건 아니리라 여긴다. 하지만 이들의 눈에 비친 한국 노동의 현실은 암담함 그 자체다. 우리가 간과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네팔 노동자들이 시를 통해 한국의 노동 현장이 여전히 변화되지 않고 있음을 인식하게 하는 부분이다. 단순히 외국인 이주 노동자만 해당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해마다 노동 현장에서 우리 청년들의 사고사를 접하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아직도 열악하기만 한 노동 현장은 이주 노동자와 더불어 비정규직으로 방치된 우리 청년들과 아버지들의 하루하루가 위험의 도가니 속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했다. 시를 통해 영혼과 생각을 표현했다는 데 큰 의미를 갖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노동 현장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면서도 목숨을 담보로 할 수밖에 없는 노동 현실을 보는 거 같아 마음이 착잡했다. 힘겹게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사회 구조적 상황이 언제쯤 달라질지 요연하지만, 다시 한번 우리 노동 현실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 될 일이다. ■ 필자 이경옥 동화작가 - 프로필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동화 <두 번째 짝>으로 등단 - 2019년 우수출판콘텐츠제작지원사업에 선정됨 - 2019년 장편동화 <달려라, 달구!> 출간 - 전북작가회의, 전북아동문학회, 한국아동문인협회회원으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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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15 18:07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아현 소설가 - 임대형 ‘윤희에게 시나리오’

손끝에 꽁꽁 얼어 얼음이 들어앉은 듯하고, 어느 산꼭대기에 첫눈이 쌓였다는 소식이 들리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2019년 11월에 개봉한 영화 윤희에게다. 겨울이 돌아왔으니 별수 없이 영화 윤희에게의 시나리오를 꺼내 읽었다. 이야기는 이렇다. 일본의 노년 여성 마사코가 조카 쥰의 책상에 있던 편지를 둘러보다 우체통에 넣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편지는 바다를 건너 한국으로 날아간다. 한편 한국의 중년 여성 윤희는 딸 새봄과 함께 살고 있다. 남편과는 이혼했고 한 회사의 구내식당에서 일하고 있지만, 삶이 퍽 활기찬 것은 아니다. 어느 날 해외에서 편지가 도착하고 그 편지는 윤희보다 새봄의 손에 먼저 닿는다. 편지를 먼저 읽은 새봄이 윤희에게 일본의 오타루로 여행을 제안한다. 윤희도 도착한 편지를 발견했고, 새봄과 함께 일본으로 떠난다. 오타루의 마지막 날 밤, 마침내 윤희는 오랫동안 잊지 못했던 옛 연인 쥰을 만나게 된다. 겨울이면 이 이야기를 떠올리는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시나리오 속 배경인 오타루는 겨우내 눈이 오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쌓인 눈, 내리는 눈, 쌓였다가 녹는 눈. 눈이 언제쯤 그치려나.(『윤희에게 시나리오』, 中) 시나리오에서 입버릇처럼 반복되는 마사코의 대사가 무색할 정도로 말이다. 눈으로 가득한 오타루가 배경인 이야기니, 겨울이면 자연스레 떠오를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눈의 고요한 따듯함이 인물들에게 녹아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서로를 향해 애틋하고 조용한 마음을 전한 것이 모여 결말이 됐다. 때때로 윤희의 꿈을 꿀 때면 부치지 않는 편지를 쓰는 쥰. 발송되지 못한 편지를 우체통에 넣은 마사코. 편지를 먼저 읽고 일본 여행을 계획한 새봄. 그런 새봄을 따라 무턱대고 일본으로 따라간 경수. 나에게 그런 용기가 있을까? (중략) 언젠가 내 딸에게 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용기를 내고 싶어. 용기를 낼 수 있을 거야.(『윤희에게 시나리오』, 中)라며 용기를 낸 윤희까지. 찬 바람이 부는 날이면 모두의 용기와 온기를 내 곁에 두고 싶어 자꾸만 꺼내 읽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실은 이 시나리오를 모든 계절에 꺼내두고 읽었다. 봄에는 겨울이 간 것이 아쉬워 읽고, 가을에는 곧 올 찬바람을 맞이하며 읽었다. 여름에는 너무 덥다고 읽었고 겨울에는 알맞은 계절이 돌아왔다며 읽었다. 잘 지내니? 오랫동안 이렇게 묻고 싶었어. (중략) 갑자기 너한테 내 소식을 전하고 싶었나봐.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지 않니? 뭐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질 때가.(『윤희에게 시나리오』, 中) 어쩌면 부치지 못하는 편지와 내지 못하는 용기를 영화로 대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아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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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08 17:46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형미 시인 - 복효근 시인 시집 ‘예를 들어 무당거미’

남원시 주천면 해발 200m의 중산간 지대에 위치해 있는 범실마을. 마을 형상이 호랑이를 닮았다 해서 이름 붙여진 이 마을에 등단 30년 저력을 가진 복효근 시인이 산다. 마을 생김새야 찬찬히 살펴봐도 당최 호랑이를 닮았는지 모르겠으나, 좌측으로 뻗어 있는 산이 엎드려 있는 호랑이를 닮았다는 데에는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이런 범상치 않은 마을에 시인이 어떻게 들어가 살게 되었는지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다. 남원에서 교사생활을 했으니, 보다 자연 가까이로 가 있고자 함은 아니었을까 내심 짐작해볼 뿐이다. 그보다 은퇴한 후에도 이 곳을 떠나지 않고 있는 이유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시인은 1991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하여 문단활동을 시작해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새에 대한 반성문』,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목련꽃 브라자』 등의 시집 다수와 에세이집을 발간했다. 시집을 받아볼 때마다 단 한시도 등을 바닥에 뉘어본 적 없는 부지런한 시인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해 까마득한 문단 후배로서 매번 긴장을 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시인의 시선집 『어느 대나무의 고백』(문학의전당, 2006)을 특히 좋아해서 곁에 두고 늘 펴보곤 했다. 굽어질지언정 절대 꺾이지 않고, 사시사철 푸른빛을 잃지 않는 강직함의 대명사인 대나무에게서 사실은 참새 한 마리의 무게로도 휘청거리는 나약한 존재임을 발견한 시인의 눈이 감격스러워서다. 사실 평소 중저음의 깊고, 차분한 시인의 목소리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일말의 단호함이 느껴지곤 했다. 때문에 여간해서 말 한 번 붙여 보기 힘든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시를 통해 우리가 지금까지 인식하고 있던 대나무하고는 전혀 다른 속성을 보여줌으로 해서 시인에게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마음을 낮추어준 것만 같았다. 나는 전혀 어색하거나 촌스럽지 않게 공감을 준 그 배려가 좋았다. 복효근 시인은 2021년 한 해가 다 가기 전, 아홉 번째 시집 『예를 들어 무당거미』(현대시학,2021)로 다시 한 번 우리나라 대표 서정시인의 무게를 전해왔다. 내가 시집을 받았을 때쯤, 시인은 허리통증으로 고생 중이라며 범실마을의 산과, 물소리와, 바람소리와, 꽃 내음을 놓아두고 훌쩍 제주에 가 있었다. 그리고 제주의 파도소리와, 숲길에서 만난 가까이 다가가도 달아나지 않는 노루와, 저지오름을 페북을 통해 바다 건너 이 곳 전라도 하고도 전주에 부려놓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시집을 읽는 동안 내내 남원 지리산 자락의 범실마을에 가 있다가, 늦가을 파도가 부서지는 제주에 가 있다가 하면서 잰걸음을 놓아야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시인이 머물러 있는 이 곳이나 저 곳이나 모두 한 곳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한결같은 시인의 어조와 음성, 내지는 시인의 내면속에 침잠되어 있는 대자연에 대한 사유와 철학 때문일 것이다. 아무래도 시는 울면서 웃는 방식이다. // 지독한 빚쟁이처럼 꿈결에도 나타나곤 했다. 서로의 정체를 모르는 채 / 야멸차게 떨치고 돌아설 재간이 없어서 여기까지 왔다. // 누군가는 몇 걸음에 도달할 거리를 돌아보니 30, / 300년을 걸어도 닿지 못할 것임을 알 즈음이다. 시집 『예를 들어 무당거미』를 통해 내비친 시인의 속내에 가슴 한 곳에 찌르르하니 통증이 건네져 온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거라. 지독한 빚쟁이처럼 꿈결에도 나타나곤 한다는 시와 시인과의 운명에서 느껴지는 인연의 무게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운명을 지고 끊임없이 걸어온 시인의 발자취 때문일지도. 어쩌면 시인은 시 그러고 보니 우리 처음이네요 에 등장하는 빠진 발톱과 나처럼 그렇게 시와의 인연을 맺어온 것은 아니었을까. 문틈에 끼여 발톱 하나가 빠졌습니다 / 빠진 발톱은 버렸지요 / 빠진 발톱도 나를 버렸고요 / 난 버려졌습니다 / 시간이 지나고 / 울퉁불퉁 못생긴 발톱 하나가 새로 돋았지요 / 발톱에게도 내가 하나 새로 돋았겠지요 / 우린 처음처럼 / 처음 만났습니다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시인과 시는 서로를 버렸다가, 시간이 지나 새로 돋은 마음을 확인하기도 하며 그렇게 30년을 몸 부비며, 부대끼며, 조금은 짠한 마음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그로 인해 그 품 안은, 시 종소리의 품 안에서 풀어놓았듯이 간절하면서도 따뜻하고, 넉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종소리를 산 너머로 전하기 위해 / 산사의 종이 저 홀로 울었던 것은 아니다 // 도라지꽃 한 송이 / 돌멩이 하나까지 울었다 / 산이 온통 함께 울었던 것이다 // 같이 울 수 있는 거기까지가 품 안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시인이 몇이나 될까. 종소리 하나를 산 너머로 전하기 위해 도라지꽃 한 송이, 돌멩이 하나까지 온통 함께 울어줄 수 있는 품 안을 지닌 시가 말이다.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한나라 시대에 구리산이 무너지려 하자 궁중 대궐 용마루 끝에 매달려 있던, 그 산에서 캐내어 만든 구리종이 따라 울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서로 아무 말 않고 있어도 아픔을 느껴서 우는 구리산과 구리종 이야기처럼 울림이 있는 시. 그리고 그 힘의 원천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자연에서 얻어진 것이기에, 더욱 위대하게 다가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리산 자락 범실마을에 깃들어 살며 호랑이와는 무관하지만, 호랑이를 닮은 것도 같은 시의 발톱을 산 위 밤하늘에 훌쩍 던져놓고 사는 복효근 시인. 언제 어느 때 읽어도 좋은 시집『예를 들어 무당거미』를 머리맡에 두고 있자니, 늦가을 풍경을 건너는 일이 거뜬하기만 하다. /김형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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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01 16:36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헌수 시인 - 김사인 ‘시를 어루만지다’

시인이란 자기 삶의 가장 순결한 형식으로 시를 섬기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별 흥미를 못 느끼는 이에게는 하잘 것 없을 글 몇 줄에 자신의 심혈을 기울이는 사람이 시인이다. 한 인간이 무엇인가 자기 삶을 걸어 애쓸 때 거기엔 그럴 만한 곡절이 있게 마련이며, 그 사람 나름의 절실함이 깃들어 있게 마련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절실함을 향해 우리는 겸허히 눈과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김사인 시인의 <시를 어루만지다> 에 나오는 구절이다. 미덥고 어진 그가 쓴 책을 만났을 때 나는 습작생이었다. 닥치는 대로 읽고 쓰던 시절이었다. <밤에 쓰는 편지>, <가만히 좋아하는>, <어린 당나귀 곁에서> 등등, 여러 시편들 중에서 <가만히 좋아하는>에 나오는 <비>라는 시를 좋아했다. 가는 비여 가는 비여 가는 저 사내 뒤에 비여 미루나무 무심한 등치에도 가는 비여 스물도 전에 너는 이미 늙었고 바다는 아직 먼 곳에 있다 여읜 등 지고 가는 비 가는 겨울비 잡지도 못한다 시들어 가는 비 <비> 전문 여읜 등을 지고 가는 비를 생각하며 외웠던 시다. 김사인 시인을 좋아했던 나는 그의 책에 밑줄을 그으며 읽고 또 섭렵하며 나아갔다. 시 창작교실을 기웃거리고, 시창작법을 읽고 열심히 쓰고 신춘문예에 도전하던 시절이었다. 시의 숨결을 그토록 만지길 원했지만, 시는 쉽사리 품을 내어주지 않았다. 써지지 않는 글 앞에서 자괴감이 들었고 시가 멀게만 느껴졌다. 마음의 채비를 달리하여 시 앞에 임했다. 김사인의 <시를 어루만지다>에는 다양한 시들과 감상평이 곁들여져있다. 산문화되어가는 시류에 가려있는 마음의 보석인 서정 시편들과 삶의 애환을 담은 인생의 맛이 담긴 시, 우리말의 독특한 맵시와 정갈한 모습이 말의 결과 말의 저편들로 묶여있다. 그가 이끌어내는 시에는 겸허와 공경, 공감과 일치의 능력, 시를 읽고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일을 말하고 있다. 정맥이 들여다보일 만큼 투명하게 전해져 오는 시 앞에서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과 그 힘의 정체성을 궁금해 하기도 했다. 실물적 상상력을 토대로 시의 전부를 어루만져 보고 냄새 맡고 미세한 색상의 차이를 맛보는 일, 성글게 짜여진 문자 기호들 속에서 마음과 느낌을 들이밀어 새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시를 새겨 읽고 쓰고 깁고 다듬는 일이 시를 어루만지는 일임을 시인은 말한다. 사랑이 없는 얄팍한 시와 생경한 것을 들춰보고. 사물과 사람을 바라보며 신기해하고 애써서 하는 말임을 전한다. 시 공부는 말과 마음을 잘 섬기는 데 있다는 김사인 시인의 말이 맴돈다. 마음을 관통하는 정서의 줄기를 단단하게 세우며 좀 더 그윽해지고 싶다면, <시를 어루만지다>를 펼쳐보자. 마음이 자유로이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전주출생 우석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삼례터미널 당선 시집 다른 빛깔로 말하지 않을게 조금씩 당신을 생각하는 시간 시화집 오래 만난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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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1.24 17:54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오은숙 작가 - 직업의 광채(블루칼라 화이트갈라 노칼라 2)를 읽고

밤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사고가 난 것도 아닌데 이차선 도로를 지나는 차들이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앞 차가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던 나는 무슨 날인가 싶어 휴대전화 검색 창을 열었다. 알아낸 것이라고는 평일 오전 8시 20분, 출근 시간이었다. 한동안 샛길로 다녔던 탓에 그곳이 전주로 드나드는 차량으로 인해 출퇴근 시간이면 정체가 심한 곳이라는 걸 깜박했다. 엉뚱하게도, 꽉 막힌 도로 위에 갇혀서 나는 생각했다. 나는 매일 무엇으로부터 나를 소외시킨 것일까, 하고. 『직업의 광채』에 실린 단편 <앨리스 먼로/어떤 연인들>에 나오는 록산느처럼 나는 간호조무사다. 그녀가 121p.~~일은 조무사가 다하고 간호사들은 이래라저래라만 하죠. 어쨌든 나는 사람 돌보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듯 나 또한 치기 어린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줌파 라히리/병을 옮기는 남자>의 카파시 씨가 아내에게는 죽은 아들을 떠올리게 하는 병원에서 통역 일을 하면서 일주일에 두 번 하는 관광 가이드 일로 일상을 회복하듯 글을 쓴다. 독백체로 진행되는 <제임스 앨런 맥퍼슨/닥터를 위한 솔로 송>에서 화자가 100p.누구나 서비스는 할 수 있지만 서비스 그 자체가 되기는 어려워. 닥터가 찻주전자를 들어서 잘게 부순 얼음이 든 유리컵에 뜨거운 차를 붓는 모습은, 마치 차가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았어. 닥터와 쟁반과 찻주전자와 유리컵과 모든 것이 하나의 몸처럼 움직였어.라며 철도 웨이터 닥터를 전설적인 인물로 묘사한 것처럼 나도 언젠가는 작가와 텍스트가 분리되지 않으면서 자연스러운 글을 쓰겠다는 야망을 품는다. 야망은 <조이스 캐럴 오츠/하이 론섬> 161p. 일은 그렇게 벌어진다. 뭐가 뭔지 알아챌 겨를도 없이 빠르게 벌어진다.는 문장을 만나기 전까지 어느 정도 실현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엄마의 의붓 아빠인 할아버지를 팝이라 부르며 팝이 죽었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보기 전까지 그의 이름이 핸드릭이라는 것을 몰랐던 <하이 론섬>의 화자가 168p. 그날 드레이크가 내 자리로 와서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내 이름만 불렀어도 나는 그를 용서했을 거다. 정말 용서했을 거다.라며 자신의 죄책감을 사촌에게 투사하는 대목을 보고는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실현되지 못한 나의 야망을 현실 탓으로 돌리지는 말자고 다짐도 한다. 단편소설집 『직업의 광채(블루칼라 화이트칼라 노칼라2)』에는 폭넓은 직업군에 종사는 인물들이 나온다. 시대 변화와 함께 사라진 철도 웨이터나 카우보이, 간병이나 관광 가이드 같은 비상근직을 비롯해 신부, 변호사, 경찰 등. 각각의 인물은 자신의 일을 하는 와중에 소외되거나 후회할 일을 벌이고 관계의 미묘함을 알아차리거나 상대를 이해하기도 한다. 그럼으로써, 직업(직장)은 현대인의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경제활동의 한 축을 넘어서 보다 많은 의의를 부여받는다. 출퇴근 시간이면 어김없이 목적지로 향하는 우리가 잠시나마 각자의 직업(일/직장)으로부터 소외당하지 않으려면 에서 신부를 시중드는 스토너 부인처럼 대범해져야 할지도 모른다. 211p. 그녀의 전략은 공격, 언제나 공격이었다. 의외의 방법으로 상대를 헷갈리게 할 때도 있었다. 몇 패 정도는 그냥 잃을 수도 있었다. 마지막 몇 패만 딸 수 있다면, 마지막 몇 패를 하나씩 내리치며 상대의 애간장을 끊어놓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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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1.17 17:32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근혜 동화작가 - 어린이 시집 '감꽃을 먹었다'

사교육 시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세월이 꽤 길었음에도 여전히 어려운 것이 있다면 시 지도가 아닐까 싶다. 시가 무엇이다.라고 딱 꼬집어 정의 내리기 어렵기도 하지만 그보다 아이들로부터 시적 감성을 끌어내는 것이 내겐 가장 힘든 일이었다. 시 창작을 잘 지도하는 방법이 없을까 두리번거리다 발견한 책이 있다. 바로 <감꽃을 먹었다/ 학이사어린이>라는 어린이시집이다. 이 어린이시집은 군산 푸른솔초등학교에 근무 중인 송숙 선생님의 지도아래 탄생한 아홉 살 아이들의 자작시를 담은 어린이시집이다. 쑥국 선생님으로 더 유명한 송 교사는 오래전 김용택 시인이 그러했듯 아이들의 삶에서 시어를 건져 밥상을 차린 뒤 시똥 잘 누는 걸 도왔다. 아이들 삶에 가장 밀접한 대상은 부모와 형제, 자매다. 그래서 아이들 시에는 엄마, 아빠 그리고 형제자매 이야기가 가장 많다. 우리 집에는 괴물이 있다. 약점은 없다. 본명은 엄마, 엄마다.. 엄마는 집에서 가장 약점 없는 괴물이면서 여자 배우가 예쁘니? 엄마가 예쁘니? 묻는 천생 여자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사춘기로 까칠한 언니를 둔 아이는 우리 언니는 왜 이렇게 못 댔는지 모르겠다.며 하소연을 하고 동생과 놀아주다 지친 아이는 동생은 힘들지 않네. 내가 만히 늘건구나.하며 신세 한탄을 하기도 한다. 다양한 가족 이야기가 담긴 시는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여린 감정들이 꽃다발처럼 엮여서 진한 감동으로 때론 저릿한 마음으로 다가온다. 가족 다음으로 아이들에게 시적 영감을 주는 대상이 있다면 학교가 아닐까 싶다. 선생님은 부모님을 대신해 교실이란 농토에 아이라는 씨앗을 정성과 사랑으로 키우는 분이다. 아이들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분이란 뜻이다. 성장은 외적인 성장만을 뜻하지 않는다. 친구들이 나를 놀려서 가만이 있어다. 선생님이 받아쓰기로 놀리는 건 나는 겄이라고 해서<중략> 선생님이 우리안태 엄마 갔았다.처럼 선생님이 엄마 같기도 하고 때론 잘못된 행동을 바로 잡아주는 길잡이기도 하다. 그런 선생님이 계시는 학교는 매일 가고 싶은 곳이 된다. 내일은 학교에 간다. 벌써 주말이 지나간다.처럼 말이다. 주말이 끝나가는 걸 아쉬워하기보다 만날 친구들 생각에 내일이 기다려지는 학교는 얼마나 꿈에도 그리던 곳인가. 코로나로 인해 간헐적으로 가게 된 학교는 갈 때마다 새롭다. 학교를 처음 오는 듯이 설ㅤ레었다. 교실에 들어섰는데 모든 것이 새로워 보였다.. 질병이 인간에게 익숙했던 삶을 낯설게 만들면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주었다. 오늘은 선생님과 동대문 놀이를 했다, 민호가 걸렸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학교를 무대로 웃고 떠드는 모습이 얼마나 그리웠던가. 학교가 공부와 규율만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시는 말해주고 있다. 코로나 시대에 부대끼고 어울리는 공간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쑥국 선생님 반 아홉 살 친구들은 선생님이 들려주는 시를 읽고 시똥을 누었다. 코로나로 만나는 날도 부대끼는 시간도 평소보다 현저히 적었지만 시똥을 누면서 격려를 건네고 위로를 받았다. 소리 나는 대로 쓰다 보니 주석이 있어야 해석 가능한 시도 있지만, 쑥국 선생님은 틀리면 틀린 대로 마음껏 시똥을 누게 했다. 그렇게 질펀하게 싼 시똥이 아이들을 건강하게 하는 건 당연지사. 쑥국 선생님은 오히려 자신이 시를 통해 아이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사랑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밝혔으니 시는 가르치는 교사도 지도받는 학생 모두에게도 감사를 선물하는 특별함을 지닌 문학임이 분명하다. 생일이 너무 멀어 속상한 마음, 나보다 동생을 더 예뻐하는 엄마에게 서운한 마음, 죽으면 어떻게 될지를 고민하는 마음까지 아이들의 세계는 그야말로 고민과 아픔, 두려움과 평범함으로 좌충우돌이다. 모두의 얼굴이 다르듯 생각과 마음이 다른 아이들이 쑥국 선생님과 함께 시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어쩌면 나보다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에 한발 다가가는 기회를 만드는 것인지 모른다. 아이들은 아이들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고 살아낸다. 그 모든 것이 시똥에 담겨 삶의 거름이 된다. 감꽃을 먹으려다 아름다워서 차마 먹지 않는 아이, 자신이 손으로 구긴 나팔꽃잎이 펴지지 않을까 조바심을 내며 지켜보다 활짝 펼쳐지는 모습에 미소를 짓는 아이의 시를 읽으면서 정화된 마음에 해맑은 웃음이 가득 차게 된다. 오늘, 아홉 살 아이들의 향긋한 시똥 냄새에 흠뻑 취해보는 건 어떨까. 201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동화로 등단. 동화 <제롬랜드의 비밀> <나는 나야!> 청소년 소설 <유령이 된 소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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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1.10 17:44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영종 시인 - 안희연 시집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여름이 가고 겨울이 왔습니다. 가을은 없습니다. 두 계절을 잇는 게 없어 눈 내린 사막에 서 있는 기분이 듭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닷속에 탄소를 잘 흡수하는 해초를 심는 잠수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산소 방울이 코끝에 매달리는 것 같습니다. 안희연 시인의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을 펼칩니다. 가을 속을 헤엄치고 싶어서입니다. 그런데 여름과 겨울은 잘 보이는데 가을은 그렇지 않습니다. 온몸에 눈을 매달아야 겨우 볼 수 있습니다. 휘황한 모호성 속에 가을을 감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부의 공(工) 자엔 하늘과 땅을 이으려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꼿발을 들고 하늘 우물을 파려는 정성을 다해야 가을이 몇 방울 떨어질지도 모릅니다. 불은 꺼진 지 오래이건만/ 끝나지 않는 것들이 있어/ 불은 조금도 꺼지지 않고(불이 있었다 중). 불이 꺼졌습니다. 그런데 꺼지지 않았습니다. 끝나지 않는 것들이 있어서라네요. 생각해 보니, 내 생명도 아직 끝나지 않았군요. 당신을 향한 사랑도 아직 끝나지 않았네요. 돈벌이도 아직 더 해야 하고요. 걷기도 더 해야 합니다. 술도 좀 더 마셨으면 합니다. 부스터 샷도 맞아야 할지 모릅니다. 끝나지 않는 것들을 열거하자면, 이 맑고 맑아 지구 끝이 보일 듯한 날을 다 써도 모자랄 것입니다. 그래요. 불이 꺼져도 끝나지 않는 것들을 생각하게요. 그러면 따스한 불을 쬐며 불멍이라도 때릴 수 있을 겁니다. 첨단(尖端)은 뾰족할 첨에 끝 단입니다. 영어로는 cutting edge이고요. 나는 우리말을 참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 단어는 영어가 좋아요. 첨단이란 날카로운 모서리를 둥글게 자르는 거라고 말하니 혹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안희연 시인은 독자가 손 베이지 않도록 시어를 부드럽게 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게 첨단을 달리는 것이라니요. 훅 끌립니다. 털실은 강물 같았다. 굽이굽이 흘러가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보기에 좋아야 한단다 아가야, 허물 수 없다면 세계가 아니란다. 털실의 길이는 제각기 달랐지만 어떤 뭉치든 빛과 어둠의 총량은 같았다(내가 달의 아이였을 때 중). 옛 고구려 영토인 백암산성에 갔어요. 그 앞을 아름다운 털실같이 흘러가던 태자하도 나도 빛과 어둠의 총량은 같았지요. 허물어져야 다시 세울 수 있겠지요. 나는 무엇을 없애 세상의 예리한 모퉁이를 만질 만하게 할 수 있을까요. 손대지 않아도 저절로 숲이 되는 숲을 바라봅니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서도 스스로 변하는 것들은 많지요. 어쩌면 그 변화가 진짜 변화입니다. 한밤중에도 우두커니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이 숲을 완성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미동 중). 자꾸 무엇을 완성하려고 살아온 것은 아닌가 반성합니다. 물론 이것도 중요하지요. 하지만 완성하려 하지 않아도 완성되는 경지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손대지 않아도 저 갈 길을 가는 코끼리처럼. 마음속에 있는 거울에 인과 너머의 것을 쓰고 자주 바라봅니다. 언젠가는 초인과를 따서 인과의 박스에 담는 소리 낭자하겠지요. 2012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2020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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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1.03 17:41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장은영 작가 - 미확인 바이러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하찮게 생각했던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가족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함께 식사를 하고, 편히 잠들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고,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친구가 귀한 존재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려움을 겪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이라야 작가가 쓴 동화 『미확인 바이러스』에도 위기에 봉착한 건우네 가족이 나온다. 그 시작은 아주 사소하고 시시했다. 어느 날 아빠가 자신의 손톱과 발톱이 자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건망증이라고 무시하던 엄마도 2년 전에 손질한 머리가 그대로라는 것을 알게 된다. 누나와 형은 살이 딱딱해지면서 움직일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나고 몸이 굳어가는 상황이다. 처음엔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시했지만 신종바이러스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에, 진화론과 퇴화론 논쟁이 겹치더니 결국 가족들이 각각 격리되기까지 한다. 유일하게 증상이 없는 건우는 가족을 구하기 위해 친구 재이와 함께 그 원인을 찾아 나선다. 해답은 이 집으로 이사 오기 전에 각자의 물건을 담아놓은 상자 안에 있었다. 건우는 일기장에서 가족들과 함께 했던 추억을 찾아내고 사진을 보면서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결국 엄마는 가족과 함께 하는 행복, 즐거움을 자신의 성공과 맞바꾼 스스로가 어리석었다고 후회하고, 아빠는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마음껏 가족을 사랑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작가는 함께하는 시간이 일주일에 10분 미만일 정도로 대화가 거의 없고, 밥도 따로따로 먹었던 건우네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관심바이러스라고 말한다. 위대하고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이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면 서로에게 행복이라는 큰 에너지를 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작품 속 건우네 가족의 문제는 어쩌면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 모두에게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상일 수 있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일들이 오히려 그것에서 더 멀어져가게 만드는 것이라는 걸 너무 늦게 깨닫지 않았으면 하고 바래본다. 200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통일 동화 공모전에서 수상했다. <으랏차차 조선실록수호대로> 전북아동문학상과 불꽃문학상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마음을 배달하는 아이>, <내멋대로 부대찌개(공저)>, <책 깎는 소년>, <으랏차차 조선실록수호대>, <설왕국의 네 아이>, <바느질은 내가 최고야>가 있다. <책 깎는 소년>은 2018년 전주의 책으로, <으랏차차 조선실록수호대>는 2020년 전주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요즘에는 지역의 역사를 소재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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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27 17:30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영주 작가 - 소리 공책의 비밀

아버지가 군인이었던 이유로 나는 일곱 살 때까지 이사를 열세 번을 다녔다고 한다. 희미한 기억 속에 가득 차다라는 느낌, 두 가지가 있다. 처음으로 본 상여 행렬과 추수 때 집 마당이다. 비가 왔었는지 질퍽한 진흙길 위에 상여는 유난히 느리게 갔다. 가다 쉬고, 가다 쉬고. 상여 뒤를 길게 늘어선 무리만큼이나 시간은 길게 느껴졌다. 상여 위에서 종 치는 할아버지, 상여 뒤를 따르는 상주들의 울음, 마지막 가는 고인을 배웅하는 사람들로 길 위가 가득 찼다. 그리고 추수하는 날은 집채만 한 가마솥에서는 연신 뿜어내는 김만으로 마당은 그득했다. 그때는 뭐였든 서로였고, 함께였던 정서 때문이었을까! 임실에는 그때처럼 모두 함께 하는 필봉굿이 남아있다. 그곳 3대 상쇠였던 고 양순용 보유자의 희생과 노력, 계승 정신이 명맥을 잇는 데 큰 힘이 되었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이 마을에 있는 모든 사람과 떡과 술을 나눈다는데, 이는 고인의 유언이었다. 풍물놀이와 그 모습을 지켜보는 관중도 온전히 하나 된 나눔인 것이다. 동화작가 윤미숙의 『소리 공책의 비밀』은 임실의 필봉 농악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다. 갈등 속 두 소년의 화해와 성장하는 모습은 족히 큰 감동과 긴장감을 준다. 개인적으로 윤미숙 작가는 20년 전에 한 글쓰기 모임에서 만났었다. 늘 조용했고, 무슨 생각인지 깊이 빠져있는 듯 보였다. 그때만 해도 동화작가가 되리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었다. 우연히 그가 대교문학상을 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후 한참이 지나서야 작가의 책을 읽게 되었다. 침착하고 잔잔한 그의 이미지답게 꼼꼼한 짜임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읽다보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재회한 인연의 감회였을까! 읽는 내내 몇 번의 소름 돋는 전율을 느꼈다. 즐겨 쓰던 챙 넓은 모자는 사라지고, 멋들어지게 반백이 된 머리색이 스쳐 지났다. 글을 쓰면서 깊은 사색에 빠져 있었을 모습이 겹쳐졌다. 책 속, 진성의 일방적인 갈등은 참 감칠맛을 냈다. 청력을 잃은 먹이의 노력은 보려하지 않고, 천재성이라 단정해 시기 질투하는 진성의 숨겨진 내면은 헝클어졌다. 드러내지 않고 경쟁하는 모습에 갈증이 날 정도이다. 반면에 가장 절박함 속에 이뤄낸 간절함으로 소리를 그려내는 먹이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소리를 그리는 모습은 전통을 잇고자하는 이들의 갈망과 절묘한 맞춤이었다. 간신히 물에서 구한 먹이가 열이 내리는 것을 보고, 마당으로 나와 기원이라도 하듯 임실댁이 소고 없이 춤추는 모습이 나온다.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었다. 무릎을 살짝 굽히고, 양손을 가슴께에서 한 번 부딪치면서 머리 위로 올린 다음, 얼굴을 스치듯 내려 가슴에 모았다. 두 손을 가슴에서 모았다가 다시 크게 벌렸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춤을 추었다. 마당을 돌며 당면한 위기로 쌓인 상념을 떨쳐내듯 마음을 정화한다. 마치 의식과 같은 장면이다. 기원을 담은 몸짓을 그려낸 작가의 섬세함이 보이는 대목이기도 했다. 또 글 속에는 나오는 비그이 비설거지라는 예쁜 순우리말은 이야기 흐름에 맞춰 살며시 스며서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임실 필봉 농악을 실감나게 그려낸 것은 이야기 속 먹이만큼이나 깊이 빠져 있었을 것이다. 전통을 이어온 이들처럼 작가 또한 이야기 내내 흐트러짐 없는 일치가 이 동화의 핵심이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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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20 17:18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장창영 시인 - 고등학생, 전주를 이야기하다

10대 무렵, 고향인 전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때도 남부시장 옆에는 전주천이 흐르고 있었고 고풍스러운 전동성당은 운치가 있었으며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경기전은 쓸쓸했다. 지금이야 옛정취가 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한벽루에 앉아서 바라보는 풍경도 제법 근사했다. 가끔 향교 근처를 걷다 보면 스러져가는 허름한 한옥 사이로 평상에 앉아 졸고 있는 할아버지들이 보였다. 오랫동안 전주는 외지 사람들의 관심 밖의 공간이었다. 지금이야 전주하면 누구나 한옥마을을 떠올리지만 내 10대의 기억 속 한옥마을은 보고 있으면 한숨이 저절로 나오던 동네였다. 그런 전주에 대해 전주 신흥고에 다니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솔직 담백하게 그려낸 책이 나왔다. 바로 『고등학생, 전주를 이야기하다』(북컬쳐)이다. 고등학생의 시각으로 전주 한옥마을부터 남부시장, 서학동 예술인마을, 전주의 음식문화, 영화의 도시 전주 등 다양한 소재를 대상으로 자기 목소리를 담아낸 책이다. 어른의 시각에서 전주를 다룬 책은 많아도 이처럼 청소년의 눈으로 전주를 구석구석 훑은 책은 거의 없다. 이 책을 접하면서 전주에 사는 10대 청소년들은 전주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지역에 살면서도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잃고 자괴감에 빠져 사는 이도 많은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내가 책에서 만난 10대들은 전주에 대해 좀 더 비판적이고 생산적이었으며 지역에 대한 관심과 사랑도 뜨거웠다. 비록 다양한 시각에서 전주를 바라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쓴 글에는 전주에 대한 열정과 청춘의 뜨거움이 고스란히 엿보인다. 10대 청소년들이 쓴 책이 뭐 별거 있겠어하고 가볍게 시작했다가 내려놓을 때쯤이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그들의 고민에 어느 정도 공감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일반 고등학생들의 평범한 관점을 거부하며 진지하다. 고등학생의 단순한 시각이라기에는 내공이 상당하고, 전주를 바라보는 독창적인 관점을 성실하게 담아내는 실력도 갖추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상상이나 머리로만 쓴 전주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저자들은 전주의 곳곳을 발로 뛰면서 직접 인터뷰를 한 후 글을 썼다. 글을 읽다 보면 곳곳에서 그들이 이 책에 들인 정성과 노력이 만만치 않음을 깨닫게 된다. 나는 이 책에서 전주를 향해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는 아홉 명의 멋진 저자를 만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렇게 찬란하고 빛나는 생각을 가진 청소년을 만난 게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당신이 이 책을 덮을 때쯤이면 그동안 알고 있던 전주와 다른 전주가 보일지 모른다. 이 가을에는 이 책을 곁에 두고 내가 알던 전주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나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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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13 17:25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정경 시인- 도대체, '그럴수록 산책'

아버지에게 불효한 얘기부터 해야겠다. 때는 바야흐로 2021년 9월 20일, 추석 전날의 일이다. 부모님과 동생 내외, 두 조카와 나. 식구들이 둘러앉아 배불리 저녁 식사를 마쳤다. 명절 연휴에 설거지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설거짓거리가 정말 끝도 없이 나온다. 설거지 당번이었던 나는 꼼짝없이 서서 화수분처럼 자꾸만 솟아나는 빈 그릇들을 해치워야 했다. 고독한 분투를 끝낸 뒤 버릇처럼 아이고, 허리야.라고 한 모양인데, 그 말을 들으신 아버지가 나가서 좀 걸어라! 하고 말씀하신 것. 나는 그만 욱하고 말았고, 예순 중반에 접어든 늙으신 아버지와 마흔 중반을 바라보는 늙어가는 딸이 서로에게 삐쳐서 쌀쌀한 밤을 보냈다. 그래서 이 책이 생각났다. 『그럴수록 산책』! 『그럴수록 산책』은 도대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작가의 여덟 컷 만화와 짧은 에세이가 어우러진 책이다. 작가는 산책길에서의 에피소드를 특유의 유머 감각으로 버무려낸다. 「노래하는 돌」, 「지렁이의 보은」, 「개미 정도는」 등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만화와 「오디가 익어가는 동안」, 「가방의 무게」, 「오리도 그랬구나」와 같이 통찰력이 돋보이는 에세이가 곁들어져 있어 뜻밖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필코 즐거움을 찾아내고, 거기에서 웃음 나는 이야기를 추출하는 데 탁월한 기술을 가진 작가다. 억지스러운 교훈과 섣부른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는 것도 이 책의 미덕이랄 수 있겠다. 다만, 자연 속에서는 아무도 초조해하지 않고 각자 다른 빠르기로 찬찬히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그림과 글로 보여준다. 「잘했어, 순록들!」에서는 눈이 많이 오기로 유명한 일본 홋카이도에서 순록을 이용한 피자 배달 서비스를 계획하고 있다는 기사를 소개한다. 그 무렵 영혼 없는 직장 생활을 하던 작가는 순록들에게 감정이입 해서는 순록이 과연 피자를 배달하는 게 맞단 말인가? 하고 착잡해 하다가 피자 회사가 순록 배달 시스템을 최종 보류했다는 후속 기사를 보고는 환호한다. 순록들이 빈번히 길을 벗어나고, 집 앞에 멈추기를 거부하고, 심지어 피자를 길가에 버리고 가버리는 통에 순록 길들이기에 참패했기 때문. 작가는 세상의 순록들이 엉뚱하게 피자를 나르지 않고 눈 쌓인 길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닐 수 있기를 기원한다. 어쩌면 산책도 그런 게 아닐까.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면서 나에게 집중했다가 서서히 바깥으로 관심을 돌리게 되는 것. 또는 그런 힘이 생기도록 만들어주는 시간. 저는 많이 걷습니다. 이유는 대체로 별거 없습니다. 날이 화창해서 걷고, 날이 흐려서 걷고, 기분이 좋으니까 걷고, 기분이 나쁘니까 걷습니다. 좋아하는 길이라서 걷고, 걸어보지 않은 길이라서 걷고, 버스를 타기엔 어정쩡한 거리여서 걷죠. 그리고 슬플 땐 좀 더 많이 걷습니다. (『그럴수록 산책』, 4쪽, 프롤로그 걷기 시작했습니다 부분) 나는 이 책을 일터에 놓아두고 야금야금 읽었다. 점심시간에 책상에 앉기 전에 잠깐, 야근할 때 스트레칭을 하려고 일어선 채로 몇 분. 그렇게 틈틈이 내키는 대로 어느 날은 조금 오래, 어떨 때는 아주 짧게 책 속으로 산책을 떠났다가 돌아왔다. 이것은 내가 즐기는 산책의 방식과도 닮았다. 발바닥이 아프지만, 조금 더 걷고 싶을 때가 있고 왠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날도 있으니까. 그게 바로 산책의 묘미 아니겠는가. 산책하기 전과 산책 후의 기분이 미세하게 다른 것처럼 『그럴수록 산책』을 읽기 전과 읽고 난 후의 기분이 달라졌다. 아무렴, 어때. 하고 싱긋, 웃을 수 있게 된다. 아버지, 다음에는 꼭 우리 같이 나가서 함께 걸어요. 2013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시 「검은 줄」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 시집 『골목의 날씨』가 있다. 자칭 산책중독자. 오래된 골목을 유람하며 채집한 이야기로 시도 쓰고, 산문도 쓰며 살고 있다. 현재 전주문화재단 문예진흥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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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06 16:46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경종호 작가 - ‘윤동주의 동시’를 그리는 시간 ‘윤동주 동시 컬러링북’

누나의 얼굴은/해바라기 얼굴/해가 금방 뜨자/일터에 간다.//해바라기 얼굴은/누나의 얼굴/얼굴이 숙어지어/ 집으로 온다. (해바라기 얼굴전문) 귀뛰라미와 나와/잔디밭에서 이야기 했다.//귀뚤귀뚤/귀뚤귀뚤//아무에게도 알으켜 주지 말고/우리 둘이만 알자고 약속했다.귀뚤귀뚤/귀뚤귀뚤//귀뚜라미와 나와/달 밝은 밤에 이야기했다.(귀뚜라미와 나와전문) 대부분 한 번쯤은 보았을 듯한 동시이다. 하지만 이 시가 윤동주 시인의 시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오늘은 윤동주 시인의 동시 29편을 정갈하게 모아놓은 신간 한 권을 소개하고자 한다. 시인의 청소년기인 십 대부터 이십 대의 젊은 나이로 요절할 때까지 삶을 따라가는 길이기도 할 것 같다. 그 길에 시만이 아닌 시의 세상으로 함께 들어갈 수 있도록 안내를 받을 수도 있다. 바로 [윤동주 동시 컬러링북]이다. 살뜰한 시와 애교 넘치는 그림 속으로 풍덩 빠져들고 싶다. 세상살이에 쫓겨 마음이 폭폭해진 이들이여, 이 풀잎 같은 책을 보시라 김용택 시인의 추천글이다. 그런데 동시라고 하면서 이 책의 대상을 어린이가 아닌 ~이들이여라고 하고 있다. 그렇다. 이 책은 동시이지만 어린이만을 대상으로 한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은 시만 실리지 않고 시와 함께 애교 넘친다는 그림도 함께 실려 있다. 왼쪽엔 동시와 그림이, 오른쪽엔 빈 공간과 스케치를 한 그림이 배치되어 있다. 동시를 옮겨 쓰고, 스케치한 그림에 직접 색을 입혀 보는 것이다. 즉, 동시를 공부하는 초등학생부터 주름살이 얼굴 가득 새겨진 어르신들까지 시의 세상으로 들어 갈 수 있는 안내서인 것이다.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먼저 생각한 것이 초등학생들이었다. 1~2학년은 왼쪽의 시와 그림을, 오른쪽에 그대로 옮기는 것이었다. 3~4학년은 왼쪽의 시를 그대로 옮기지만 그림은 자기의 상상에 따라 다르게 칠해보는 것이었고, 5~6학년은 왼쪽의 시를 자신이 고쳐 써보고 그림의 색 또한 다르게 칠해보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한 예시일뿐 다양한 활용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의 생각에 따라 얼마든지 좋은 방법이 있을 것 같다. 이에 더하여 어린이가 아닌 성인, 팔순의 어르신들도 자신이 생각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을 것 같다. 좋은 동시와 그 동시를 좀 더 가깝게 만날 수 있는 책 한 권이 이렇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윤동주 동시 컬리링 북], 우리가 쉽게 놓치며 가고 있는 감성의 한 자락을 슬며시 내밀어 주고 있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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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22 17:35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안성덕 시인 - ‘코스모스’

유년에는 별이 많았다. 여름밤 멍석에 누워 올려다본 하늘에 쏟아질 듯 가득했다. 별을 따고 싶었다. 별처럼 반짝이고 싶었다. 장대 들고 뒷동산에 올라가면 몇 개쯤 어렵잖게 딸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서 어른이 되고 싶었다. 알퐁스 도데의 별, 윤동주의 별, 이문구의 별, 가람 이병기의 별, 초롱초롱 별이 참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 여행자에게는 길을 농부에겐 씨뿌릴 계절을 알려주는 별, 은하계에 별이 1011개 그런 은하가 우주에 1011개란다. 광막한 공간과 영겁의 시간 속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커다란 기쁨이었다, 무겁고 두꺼운 책 《코스모스》의 첫머리다. 저자 칼 세이건이 아내이자 동료 과학자인 아내 앤 드루얀에게 받친 고백이다. 영겁의 시간과 찰나의 순간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겁은 사방 사십 리 바위를 비단옷을 입고 백 년에 한 바퀴씩 돌아 옷소매에 그 바위가 닳아 없어지는 시간이며, 찰나는 소수점 아래 18번째 자릿수라고 한다. 우주는 영원하고 우리 인간은 한없이 하찮다는 말 아니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13개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누구에게는 역사책으로 읽히고 또 누구에게는 과학책, 철학책으로도 읽힌다. 어느 챕터는 술술 읽히고 어느 챕터는 비탈을 기어오르는 듯 턱턱 숨이 차오른다. 천체 물리학, 신화, 철학, 윤리 등에 해박한 저자가 쓴 과학책 아닌 과학책이기 때문이리라. 현재도 팽창 중이라는 우주, 50억 년 후면 백색왜성이 되어 사라진다는 태양, 도무지 실감할 수가 없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한없이 하찮은 존재인 인간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기껏해야 100년도 못 살고 가는 우리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우주를 알게 되면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허무함을 느낀다고 한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고민하게 된다고 한다. 코스모스라는 말은 기원전 5세기 때 피타고라스가 우주는 어떤 질서로 움직인다라며 카오스와 반대 개념으로 처음 사용했다. 꼭 한번은 읽어야지 하고 책장에 꽂아두지만 잘 읽지 않는, 잘 읽히지 않는 《코스모스》는 천문학을 철학적인 내용과 결합해 대중의 수준에 맞춰 썼다지만 지루하고 어려운 책이다. 빅뱅과 별들로 가득한 우주와 태양과 지구의 생성, 지구에 번개와 자외선과 물이 풍부해 수많은 화학작용으로 생명체가 탄생했단다. 인간은 10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졌으며 그 세포는 탄소, 수소, 산소 등의 원자란다. 은하계의 먼지 같은 별이 태양이며, 그 주변을 도는 창백한 푸른 점이 우리가 사는 지구란다. 허무하다. 거대한 우주 속 먼지 같은 한 점 지구, 아웅다웅해보지만 우리는 하찮은 존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하찮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쳐가는 그 하찮은 존재는 위대하다. 벌써 십수 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나보다 어린 형이 숨이 안 쉬어진다며 퍽 퍽 주먹으로 가슴팍을 쳤다. 형, 하늘을 한번 올려다봐! 돌아가 별이 되어버린, 지금은 가고 없는 형이 하늘을 올려다봤는지는 이제 와 알 수 없으나, 그때 그 순간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위로였다. 자꾸 멀어지는 시력 탓일까, 별 밭에 별이 흉년이다. * 칼 세이건, 《코스모스》, 홍승수 옮김, (서울: 사이언스북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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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15 17:12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황지호 소설가 ‘백석 문학전집 · 시’(서정시학)

막 걷기 시작했다는, 같이 키우는 늙은 개와 어떤 말들을 주고받는다는, 그 개를 형으로 여기는 것 같다는 아직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처남의 둘째 아이를 언젠가는 만나겠지요. 제 손으로 마스크를 벗지 않고 여름을 견뎌냈다는 그 작고 당찬 아이를 팬더믹이 끝나면 만날 수 있겠지요. 처음 만난 고모부가 낯설어 사슴 새끼처럼 제 아빠의 다리 사이로 숨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 안아주는 날이 언젠가 오겠지요. 아이가 저를 노나리꾼*이나 멧돼지, 혹은 늙은 곰으로 생각해도 그냥 꼬옥 안아주렵니다. 수염의 순결을 따라 볼 비비는 법을 체득할 때까지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렵니다. 국경 봉쇄가 풀리는 그때라면 우리는 같은 집에 머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겠지요. 그 집이 우리 집이 아니더라도, 어느 깊은 산골 마가리*이거나 가난한 목수에게 잠시 빌린 집이어도 우리는 이를 둥지라 여기고 느긋하게 머무를 겁니다. 끼니때마다 제비꼬리, 마타리, 가지취, 고비, 두릅순과 같은 나물, 햇콩두부 같은 순한 것들로 밥을 먹을 겁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 땀에 젖은 축축한 셔츠를 칼칼한 새 옷으로 갈아입고 돌나물김치에 백설기를 먹으며 오후의 출출함을 달래렵니다. 늦은 밤 다시 그런 때가 오면 슴슴하고 고담한 국수나 기장쌀로 쑨 호박죽을 나누어 먹겠지요. 온 식구가 후룩후룩 소리를 내며 먹을 것입니다. 그 소리에 낯선 이가 쭈뼛쭈뼛 사립문을 맴돌면 손을 길게 뻗어 고향 사람을 만난 듯 환하게 맞이 하겠습니다. 아니 그냥 그 마을의 의젓한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수런거리며 나누어 먹겠습니다. 사내들이 섞박지에 찰진 돼지고기를 얹어 따끈한 35도 소주를 나누어 마시며 빈 잔에 다정한 말을 담아 건넬 때 엄마들은 아랫간에서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의 손을 쓸어주며 갑자기 눈물을 흘릴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울어도 괜찮아요. 아이에게 옛 놀이를 가르치렵니다. 꼬리잡기, 가마타기, 비석치기는 괜찮은데 쥐잡이는 사양하겠습니다. 제비손이구손이*를 가르치다가 사타구니에 간지럼을 태우고 밀치고 웃고 뒹굴고 안아주며 체온을 나누겠습니다. 늦은 오후 땅강아지가 울기 시작하거나 시간의 냄새가 바뀔 무렵 쓰렁쓰렁 마실을 다녀오겠습니다. 늙은 갈댓잎이나 여린 버드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지 몰라요. 아이는 볼이 아릴 때까지 피리를 불다가 노을을 본다며 목마를 태워달라고 조르겠지요. 저는 기린처럼 목을 길게 빼주겠지만 혹시 수염을 움켜잡으면 엉덩이를 찰싹 때리렵니다. 엥~ 하고 울면 벌이 깨물었냐고 햇강아지 같은 엉덩이를 천천히 쓰다듬어 주렵니다. 아이의 발가락이 문득 제 코를 간지럽히면 거리낌 없이 크게 재채기를 하렵니다. 그 재채기 소리가 산 너머 마을에 여우가 태어나는 소리로 들려도, 그래서 저를 교양 없는 사람이나 강낭콩 순을 다 뜯어먹은 노루 새끼쯤으로 여겨도 그냥 내지르겠습니다. 긴 여행의 끝에 식구들이 지치면 잘게 쪼갠 자작나무로 탕약을 끓이겠습니다. 작은 곱돌탕관에 약재를 넣고 토방에 앉아 자작자작 탕약을 끓이겠습니다. 탕약관에서 나는 달큼하고 구수하고 향기로운 내음새와 약이 끓는 삐삐 즐거운 소리가 약보다 더 약이 되겠지요. 아이와 이별하기 전날 밤 돌 속에서 부처를 건져냈다는 아이의 할아버지 이야기와 처남을 큰 바위에 수양아들로 입양시켰다는 할머니 이야기, 그 할머니 할아버지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태몽으로 꾸었다는 크나큰 범, 잉어, 복숭아 이야기, 그 할아버지 할머니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봤다는 벼락을 맞아 바윗돌이 되었다는 큰 살쾡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네들의 힘세고 꿋꿋하고 어질고 정 많은 소 같았던 삶을 아이가 잠들 때까지 해줄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이 참 묘연합니다. 답답해요. 델타에 이어 엡실론, 세타 같은 낯선 이름의 바이러스가 출몰할까 걱정입니다. 그래서 이제라도 아이에게, 아이의 아버지에게 백석 시집을 보내줘야 할까 봅니다. 낡고 닳고 상처 입은 감각과 감정을 되살리기 위해서, 가슴속 바위틈에서 초생달, 바구지꽃, 짝새, 당나귀 같은 것, 슬픔, 사랑, 희망 같은 것, 그런 것, 그런 이야기들이 다시 샘솟게 하기 위해서 백석 시집을 꺼내야 할까 봅니다. 시집을 읽으며 쌀랑쌀랑 눈을 맞을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다시 생각해야 할까 봅니다. 노나리꾼* 소를 밀도살했던 사람. 마가리* 오막살이의 방언 제비손이구손이* 서로 마주 앉아 다리를 엇갈리게 끼우고 손으로 다리를 차례대로 세며 노래를 부르는 놀이 -대부분의 단어와 문장을 백석 시인의 시에서 인용했습니다.- 전북 장수 출생으로 2021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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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08 16:51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길상 시인 - 로맹 가리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로맹 가리는 천의 얼굴을 가졌다. 콩쿠르 상을 두 번 수상한 작가,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투기 조종사, 영화감독, 배우 진 세버그의 남편, 유능한 외교관, 야생동물 보호주의자이며 모든 속박과 권위를 거부한 사회 개혁가이기도 했다. 전쟁과 불평등과 인간소외가 여전한 세상을 향하여 독설을 날리는 냉소주의자였고 반전주의자였고 반문명주의자였던 로맹 가리 읽다 보면 가슴이 아리고 섬뜩하고 어딘가 씁쓸한 이야기들이 그의 삶만큼이나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 소설도 수수께끼 같은 인물들의 대화와 수많은 의문으로 가득 차 있다. 페루 해변에 카페를 차린 사내의 정체는 뭘까. 그 여자는 왜 이곳으로 죽으러 온 걸까. 새들은 왜 하필 페루에 가서 죽는 걸까. 다 읽고 나서도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왜 페루일까. 시베리아, 사할린, 아우슈비츠, 페루는 세상의 끝으로 통했다. 나치나 지배세력의 탄압으로부터 피신한 소수자나 약자들이 그 척박한 땅에서 정체성의 혼란과 전쟁의 후유증으로 죽어갔던 것이다. 그 누구보다 전쟁의 고통을 통감했던 주인공은 그런 기억을 떠올리며 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추동해온 제국주의자들의 근대적 이성과 합리주의에 독설을 내뱉는다. 레지스탕스로 활동한 프랑스에서, 스페인과 쿠바에서 큰 전투를 치른 후 페루 해변으로 몸을 피한 그는 전쟁과 지배권력에 혐오감을 드러냈다. 그 모든 것이 역겨웠다. 물질과 타락한 권력에 종속된 세상,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만행을 알면서도 죄의식 하나 없이 사람들은 시를 썼으며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걸고 식사를 했다. 그들은 도덕적 위기를 사치와 이기적 동기로 해결했던 것이다. 세상의 위대한 사랑을 비아냥거리며, 속물적인 그녀를 도와주면서 싹튼 사랑의 감정도 고독의 아홉 번째 바다일 뿐이라고 단정한다. 값싼 희망과 타협하려는 순간 그 죄의식이 그를 옥죄었던 것일까. 그곳은 죄의식으로 고뇌하는 그의 내면의 바닷가였던 셈이다. 자신을 박해하는 자와 동일시하던 그는 이 새들이 모두 이렇게 죽어 있는 데에는이라고 말을 잇다가 한숨을 내쉰다. 그 새들은 씁쓸한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까. 조국이라는, 정의라는 이름의 폭력 우리는 지금도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일까. 로맹 가리는 결국 권총 자살이라는 실존적 선택을 했다. 이제 아우슈비츠, 시베리아, 사할린, 페루라는 집단적 죄악의 현장은 우리 몫으로 남겨져 있다. 2001년 전북일보와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됐으며, 시창작과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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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01 17:28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황보윤 작가 -탁경은 ‘러닝 하이’(자음과 모음)

모든 운동에는 어느 정도 육체의 고통이 뒤따른다. 가장 무난해 보이는 걷기조차 오래 걸으면 발목이 아프고 발바닥이 당긴다. 그래서 운동을 시작할 때는 고통을 대신할 재미를 찾게 된다. 팀을 이루거나 짝을 지어서 하는 구기 종목은 서로 몸을 부딪고 말을 섞을 수 있어서 힘들지만 즐겁게 뛸 수 있다. 반면 달리기는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고독한 운동이라고 한다. 탁경은 작가의 청소년 장편소설 「러닝 하이」는 달리기를 통해 성장해 가는 두 소녀의 이야기다. 서하빈은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 날, 러닝크루를 검색한다. 충분히 사랑 받고 자랐지만 갑자기 외톨이가 된 듯했고, 자신을 버린 친부모의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하빈이 휴학하겠다고 했을 때 양부모는 사랑하는 딸의 결정을 존중했다. 하빈은 러닝 하이라는 러닝 크루에 가입하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러닝 크루는 주말마다 각자의 사연을 안고 모여 달린 다음 쿨하게 헤어지는 모임이었다. 하빈은 그곳에서 두 살 아래의 열다섯 살 권민희를 만났다. 민희는 스스로 존재감이 없다고 믿는 아이였다. 남자애들은 민희의 살찐 외모를 비하했고, 맞벌이하는 부모는 바쁜 엄마를 대신하여 살림을 도맡아 하는 민희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민희는 러닝 크루 첫날 겨우 2킬로미터를 달리고 주저앉았다. 두 소녀의 두 번째 만남은 마포대교 위였다. 답답함이 턱밑까지 차오르면 민희는 마포대교까지 걸었다. 대교 위에서 강물을 바라보면 마음이 트였다. 하빈은 매주 금요일마다 마포대교를 지켰다. 여섯 살 위의 오빠가 하던 일이었는데 하빈이 하겠다고 나섰다. 대교에는 투신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을 돕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그날 하빈과 민희는 조금 더 친해졌다. 마포대교는 두 소녀를 달리기 멘토와 멘티로 이어준 연대의 다리였다. 민희는 러닝 크루의 하빈, 설이 언니, 하나 언니를 만나며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했다. 민희의 특별한 미각과 요리 솜씨를 알아주는 사람들 덕분이었다. 하빈은 입양아라는 충격에서 벗어나 따뜻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함께 달렸던 사람들은 하빈의 상처가 아물도록 보듬었다. 나 스스로에게 잘 대해 주기로 했어. 그래야 남들도 날 소중하게 대할 테니까.(194쪽) 하빈의 다짐은 민희를 뜨끔하게 했다. 민희는 가족 안에서도, 하나뿐인 친구 시영이한테도, 선생님이나 선배 사이에서도 한 번도 1순위였던 적이 없어서 늘 불만이었다.(194쪽) 하빈의 말은 원망과 분노로 가득했던 민희의 마음을 움직였고 아무도 날 칭찬해주지 않으면 스스로 칭찬해주면 된다.는 답에 이르도록 했다. 두 소녀와 취업 준비생 설이 언니, 하나 언니는 앞으로도 계속 달릴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서 오래 달릴 수 있을 것이다. 탁경은 작가는, 공부라는 중압감에 짓눌려 날마다 자신의 존재를 지워가는 청소년들에게 함께 달리자고 연대의 손을 내밀고 있다. 독자들에게 아이들의 러닝 크루가 되어달라고 청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민희가 자신의 빛나는 가치를 깨닫도록, 아직 닿지 않은 미래가 설렘으로 다가오도록. /황보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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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25 18:50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정숙인 소설가 - 김승옥 소설 ‘무진기행’

「무진기행」은 <무진으로 가는 버스>, <밤에 만난 사람들>, <바다로 뻗은 긴 방죽>, <당신은 무진을 떠나고 있습니다> 네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와 바람은 무수히 작은 입자로 되어 있고 그 입자들은 할 수 있는 한, 욕심껏 수면제를 품고 있는 것처럼 내게는 생각되었다. 햇볕의 신선한 밝음과 살갗에 탄력을 주는 정도의 공기의 저온, 그리고 해풍에 섞여 있는 정도의 소금기, 이 세 가지만 합성해서 수면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다른 어느 곳에서도 하지 않았던 엉뚱한 생각을, 나는 무진에서는 아무런 부끄럼없이, 거침없이 해내곤 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제 점점 수군거림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려들어가고 있으리라. 자기 자신조차 잊어버리면서, 나중에 그 소용돌이 밖으로 내던져졌을 때 자기들이 느낄 공허감도 모른다는 듯이 수군거리고 또 수군거리고 있으리라. 「무진기행」의 나에게 무진은 애써 지우고 싶은 자기이며 잊고 있었던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는 곳이다. 무진은 어둡던 청년시절과 자신을 닮은 이들이 여전히 그들만의 삶을 영위하는 곳이기도 하다. 김승옥의 인물들에게 생활이란 남들이 별 생각 없이 예사로 사는 그런 생활이며, 「무진기행」은 생활과 자기 세계 사이의 갈등이 대립되는 세계를 보여준다. 바다는 상상도 되지 않는 먼지 낀 도시에서, 바쁜 일과 중에, 무표정한 우편배달부가 던져주고 간 나의 편지 속에서 쓸쓸하다라는 말을 보았을 때 그 편지를 받은 사람이 과연 무엇을 느끼거나 상상할 수 있었을까? (중략) 내가 그 바닷가에서 그 단어에 걸어보던 모든 것에 만족할 만큼 도시의 내가 바닷가의 나의 심경에 공명할 수 있었을 것인가? 아니 그것이 필요하기나 했었을까? (중략) 그 대답을 아니다로 생각하고 있었던 듯하다. 무진은 근대적 가치와 전통적인 가치가 혼재된 공간이며, 바빠도 서툴게 바쁜 곳일 뿐 완전한 도시적 성향을 갖추지 못한 곳이다. 윤희중은 무진에서 만난 조, 박, 하인숙에게서 과거와 현실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게 되고, 실패와 환멸의 기억을 되새긴다. 무진을 떠나며 느끼는 부끄러움은 자신이 진정 원하던 세계를 선택하지 못하고 생활로 귀환하는, 환멸의 순환 고리를 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인 것이다. 갑자기 떠나게 되었습니다. 찾아가서 말로써 오늘 제가 먼저 가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대화란 항상 의외의 방향으로 나가버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글로써 알리는 것입니다. 간단히 쓰겠습니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제 자신이기 때문에, 적어도 제가 어렴풋이나마 사랑하고 있는 옛날의 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옛날의 저를 오늘의 저로 끌어놓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할 작정입니다. 저를 믿어주십시오. 그리고 서울에서 준비가 되는 대로 소식 드리면 당신은 무진을 떠나서 제게 와주십시오. 우리는 아마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윤희중이 아내인 영의 전보를 받고 갑자기 무진을 떠나게 되면서 하인숙에게 편지를 쓰지만, 이내 찢어버리는 행위는 독자를 당황스럽게 한다. 독자는 윤희중이 결국 부끄러움을 느끼며 무진을 떠나는 결말에 이르러서야 작가가 텍스트 안에 감춰둔 장치를 재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광주 역구내를 빠져나오며 본 미친 여자의 비명을 들으며, 어머니에 의해 골방에 격리되어 의용군 징발과 국군의 징병 모두를 기피한 후 스스로를 모멸하고 오욕(汚辱)을 견디던, 무진의 골방에서 쓴 일기에 제가 지금 미친다면이라 쓴 문구를 떠올렸던 것과 하인숙이 <목포의 눈물>을 부르는 소리에 시체가 썩어가는 듯한 냄새를 떠올리는 태도는 윤희중이 무진에서 만난 하인숙을 청년시절의 자신과 동일시하는 관계였음을 들추게 한다. 저자가 텍스트 읽기를 유도하고 독자가 몰입하게 되는 지점은 의미생산의 순환이 무한하다. 작가 김승옥은 419, 516 직후의 한국문학에서 반짝이는 별이었다. 감수성의 일대 혁신이었고 문장의 일대 파격이었다. 전후 1960년대 초반, 생존만이 절대가치였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도덕적 가치도 양보해야 하는 사람들로 들끓었던 전후 현실에서는 인간다운 삶의 형식을 위한 문제의식이 필요했다. 그의 소설은 생존을 위한 윤리적 물음에 왜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고 너무나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말한다. 1964년 발표이후 60여 년이 지나는 지금도 「무진기행」이 현재형으로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80년 518 민중항쟁 이후 절필을 하고, 이후 뇌졸중으로 잃은 말 대신 필담을 나누는 소설가 김승옥을 고라니가 뛰어노는 순천만에서 만날 수 있다. 그는 순천문학관의 집필실과 서울 본가를 오가며 무진을 새롭게 만나게 될 우리를 기다린다. 무진에서의 그의 세계는 지금도 여전하지 않을까. 419, 516은 저에게 역사는 집단적 폭력에 의해서 이뤄진다는 실증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저에게서는 절대가치에 대한 믿음을 뒤흔들어 버렸습니다. 모든 가치는 상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상대적인 세계라면 행위의 결정권자는 나의 욕망 또는 나의 이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김승옥, 『싫을 때는 싫다고 하라』 /정숙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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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18 19:09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기우 작가 - 김용택 외 ‘해찰하기 딱 좋은 전북 천리길’

감나무가 보이는 것은 마을이 멀지 않다는 뜻이다. 이름에 감나무가 들어간 길도 마찬가지다. 이곳에는 저마다 살길을 찾아 드나들던 산성이 있고, 간절한 마음을 밝히는 절이 있다. 풍류 깊은 폭포와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마을이 있다. 사람과 가까운 거리에서 오가는 이들을 모두 품어주는 고종시마실길. 전북 천리길 중 하나인 이 길은 완주군 소양면 위봉산성부터 위봉사와 위봉폭포, 동상면 다자미마을과 학동마을에 이르는 11㎞ 구간이다. 이름에 담긴 고종시(高宗枾)는 동상면 특산품인 곶감을 만드는 감의 이름. 언제 걸어도 좋지만, 감꽃 피는 늦은 봄이나 알알이 붉게 물든 고종시가 익어가는 가을은 더 반갑다. 산골짜기를 타고 내리는 서늘한 바람, 생명이 움찔하는 계곡, 밤이슬 젖은 바짓가랑이에 차이는 날벌레들, 놀란 가슴을 털어내며 깔깔대는 달빛, 대숲은 곳곳에서 술렁이고, 댓잎처럼 날카롭고 빠른 바람이 숲에서 불어온다. 그 바람은 적벽에 부는 동남풍처럼 기세가 등등하다. 그 기운에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에도 길을 낸다. 그래서 길을 가다 모퉁이를 만나면 더 반갑다. 그 구부러진 자리에서 손을 잡고 싶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잰걸음을 하거나 뛰어가기도 한다. 느티나무와 참나무, 서나무와 때죽나무, 산벚나무와 소나무가 산 아랫마을과 사람들을 품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이 소담한 길. 이 길을 머금은 숲에 꽃 피고 잎 지고 눈 내리며 세월이 흐르는 동안, 물소리를 귓전 가득 품었을 바람은 이야기를 품은 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길이 있고, 그 길에서 마음과 마음이 만난다. 그러니 길을 나서면 우선 내 마음부터 다정하고 볼 일이다. 전북의 길을 걸을 땐 『해찰하기 딱 좋은 전북 천리길』(전북문화관광재단2018)을 벗 삼으면 더없이 좋다. 길을 보면 길에 서 있는 내가 보인다(완주), 달빛을 찍어 달빛 위에(정읍), 물길 따라 내 마음도 흐르네(장수), 싸목싸목 걷다 보면 솔래솔래 풀린다(김제)와 같이 인문생태적으로 가치가 높은 길을 14개 시군마다 한 곳씩 선택해 전북의 문학인들이 직접 걸으며 영근 생각과 감동을 엮었다. 낯설면 낯선 만큼, 낯익으면 또 낯익은 그만큼 설레고 정다운 전북 천리길의 여정. 이 길에 서면 꼭 해찰해야 한다. 기웃기웃, 두리번두리번. 딴 길로 새면 또 다른 마음과 마음이 만난다. 맑은 바람 소리가 걸음을 떼는 길 위로 푸르게 깔린다. 발자국에 발자국이 놓이고, 그 위에 또 발자국이 쌓이며 사람들은 구불구불 이야기를 담은 길을 낸다. 질기지만 고운 인연과 일상의 소박한 풍경이 자분자분 살갑게 말을 걸어온다. 손잡고 내딛는 걸음과 걸음에, 길과 길을 잇는 선에, 해찰하기 딱 좋은 전북 천리길에 우리가 있다. /최기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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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11 17:06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경옥 작가 - 김근혜 저 ‘유령이 된 소년’

우리는 살아가면서 간혹 자신의 신념을 버리거나 의도하지 않게 왜곡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때때로 불안하고 흔들리는 경우가 있다. 특히나 청소년기의 불안에 대한 농도는 성인의 그것보다 더 아프게 다가온다. 이러한 불안으로 흔들리는 신념과 가치관을 다잡기 위해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얼마 전, 김근혜 동화작가가 청소년 소설 <유령이 된 소년>을 출간했다. 전주 한옥마을을 따라가다 보면 곤지산에 위치한 초록바위가 있다. 이곳은 천주교 신자들의 참수 터였다. 작가는 참수 터에 세워진 소년 조형물을 보고 소설을 구상했다고 했다.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은 아버지와 신념을 버리고도 목숨을 잃은 홍이를 통해 단우의 성장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주인공 단우에게는 등반가인 아버지가 히말라야로 등반하러 가서 실종되는 일이 발생한다. 엄마와 단우의 일상은 깨지고, 방황하는 단우를 데리고 결국 엄마 고향인 전주로 내려오게 된다. 전학을 왔지만 단우아버지의 실종 사건은 꼬리표처럼 다시 단우의 상처를 건드는 사건에 휘말린다. 이일로 국회의원 아들인 경준이와의 갈등은 학교폭력위원회에까지 불려가게 된다. 폭력의 결과는 봉사활동으로 이어졌고, 그러다 초록바위진혼제를 우연히 보게 된다. 진혼제를 보고 곤지산으로 발길을 돌려 천주교 신자들의 참수 터였던 곳까지 귀신에 홀린 듯 올라간다. 그곳에서 이상한 차림으로 서 있는 아이 홍이를 만나게 되고, 그 아이가 천주교 신자였지만 신념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배교한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가족의 만류에도 산으로 간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뒤섞여 반항과 일탈을 일삼던 단우에게 홍이와의 만남은 아버지의 산에 대한 신념을 다시 생각하게 되고,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아빠는 가족을 버리고 자기 목숨을 멋대로 내던졌고, 엄마는 우울증에 빠져 하나밖에 없는 자식은 안중에도 없다. 그래서 나도 내 멋대로 사는 거다. -작품 중에서 단우는 아빠가 그리웠고 엄마의 위로가 필요했다. 혼자서 아버지의 부재를 이겨내기에는 어렸다. 그 아픔을 일탈과 폭력으로 채웠지만, 주변의 선생님과 성당 아저씨, 엄마의 사랑으로 자신과의 싸움에서 당당하게 자신을 일상으로 데려온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된다. 나만을 위한 선택이었어도 그게 다른 부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선택이 늘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특히 청소년기에는 선택의 결과가 대부분 시행착오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행착오는 삶을 더 단단해지도록 한다. 어른들의 기준으로 평가 받을 수밖에 없지만 그 힘겨운 과정을 문학과 함께 한다면 위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론 문학이 모든 문제의 해답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책을 읽는 과정 속에서 수많은 질문을 던지며, 자신과 사회에 묻고 싶은 부조리와 불합리한 것에 대한 끊임없는 대화가 가능하다. 따라서 《유령이 된 소년》을 통해 청소년 독자들이 스스로에게 수많은 질문을 떠올리고 성장의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단우와 홍이에게 이 책을 권한다. /동화작가 이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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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28 16:48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아현 작가 - 시시 벨 저, 고정아 역 '엘 데포'

언제인가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게 분명하다고 믿었다. 어느 날은 학교의 지붕이 열리고 로봇을 조종하며 세계를 구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표지가 귀여워 집어 든 『엘 데포』에서 어린 시절 나의 슈퍼 파워를 다시 찾아냈다. 후천적으로 청각장애를 얻은 시시는 학교에 가기 위해 고성능 보청기를 착용해야 했다. 가슴께가 불룩 튀어나오는 기계를 매달고, 새 학기가 시작되면 선생님에게 다가가 마이크를 건네야 했다. 종일 마이크를 목에 걸고 다니는 담임 선생님 덕에 시시는 선생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게 됐다. 시시는 남몰래 이걸 슈퍼 파워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아이들과의 관계를 쌓는데도 이 보청기가 도움을 주기도 했다. 엘 데포(시시의 영웅 이름)는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슈퍼 파워를 사용했습니다. 보청기를 들고 싱클맨 선생님이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알아내는 일이었지요.(엘 데포 中) 선생님이 자리를 비운 자습시간, 반 아이들이 모두 떠들 때도 시시는 선생님이 교실로 돌아오는 타이밍을 맞출 수 있었다. 아마 아이들에게는 영웅이나 다름없는 재능처럼 보이기도 했을 테다. 나는 오래도록 아토피를 앓고 있다. 어릴 때는 팔과 다리에만 일어나던 피부 습진이 성장기를 지나면서 손과 발에 자리 잡았다. 손에 힘을 주는 대부분의 일을 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고등학생이 되도록 양손의 악력은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에 머물렀다. 덕분에 나는 혼자 할 수 없는 일이 많았다. 특히 혼자서는 캔이나 페트병 음료를 열 수 없는 상황을 자주 마주쳐야 했다. 집에 혼자 남아 생수병을 열기 위해 시도하다 마음처럼 되지 않아 소리를 지르며 잔뜩 성을 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매번 혼자 남을 때마다 물을 마시지 않을 수도, 계속 화를 내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지렛대의 원리를 정확하게 활용하는 아이가 되었다. 지렛대는 어디에서든, 무엇으로든 재료만 있다면 만들어낼 수 있었다. 영수증도, 작게 찢은 조각도, 여러 번 덧댄 실도, 가위도! 남들과 다른 것? 그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부분이 되었습니다. 약간의 창의력과 많은 노력을 기울이면, 어떤 다름도 놀라운 것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들과 다른 것이 우리의 슈퍼 파워 입니다.(엘 데포 中) 손이 불편해 별수 없이 무엇이든 지렛대로 만들던 상상력은 나의 특별한 능력이자 슈퍼 파워가 됐다. 이제는 손에 힘이 없는 것은 큰 어려움이 되지 않는다. 나에게는 수많은 도구가 있으니 말이다. 몇 달 사이 10년이 넘도록 유일하게 멀쩡하던 엄지손가락에도 피부염이 번졌다. 엄지손가락이 편안하지 않은 삶에 또다시 적응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엘 데포』를 만나 꽤 많은 불안이 정돈됐다. 나는 도구를 무척이나 잘 쓰는 사람이니까 또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는 상상력이 있잖아! 하고 자신에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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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2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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