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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동부 철산지였다

흔히 무쇠를 가진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라는 격언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국력의 원천은 철(鐵)이다. 고고학에서도 제철유적을 최고의 생산유적으로 꼽는다. 예전에 철을 생산하던 제철유적은 오늘날 포항제철과 그 의미가 같다. 한반도에서 700여 개소의 제철유적이 학계에 보고됐는데, 전북 동부에 300여 개소의 제철유적이 모여 있다. 인간의 지혜와 자연의 철광석이 하나로 응축된 제철유적은 전북 문화유산의 백미이다. 어떠한 제철유적도 원료인 철광석과 연료인 숯, 첨단기술 등 세 가지의 핵심조건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한다. 전북 동부는 핵심조건들을 모두 다 갖춘 대규모 철산지였다. 전 세계적으로 철산지는 대부분 나라의 중심이자 경제적 번영을 누렸다. 전북 동부는 철광석의 매장량이 무궁무진하다. 백두대간과 금남정맥, 금남호남정맥을 따라 철분의 함유량이 월등히 높은 흑운모 편마암이 폭 넓게 산재해 있다. 2015년 철광석에서 뿜어낸 검붉은 녹물이 고고학자와 첫 인연을 맺어 주었다. 지금도 제철유적의 긴 잠을 깨우는 지표조사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그 수가 더 증가할 것으로 확신한다. 어디서나 철산개발에서 핵심요소는 첨단기술이다. 용광로의 내부 온도를 1500° 이상 올려야 철광석이 녹는데, 그 과정이 첨단기술이다. 그런데 용광로를 만들려면 좋은 흙이 있어야 하는데, 산죽은 대체로 양질의 흙에서 자생한다. 전북 동부는 천혜의 산죽 군락지로 산죽이 있다는 것은 그 부근에 제철유적이 존재한다는 행운의 시그널이다. 전북은 경기도, 충청도보다 철기문화의 시작이 훨씬 앞선다. 전북혁신도시에서 산더미처럼 쌓인 고고학 자료로 검증됐다. 전북의 철기문화가 육로가 아닌 바닷길로 전북에 전래됐음을 말해준다. 중국 제나라 전횡의 망명 또는 고조선 마지막 왕 준왕의 남래와 무관하지 않다. 새만금은 철기문화가 만경강유역으로 전래되는데 통로이자 마중물이었다. 기원전 3세기 경 전북혁신도시 등 만경강유역을 최첨단과학단지로 일군 선진세력이 한 세기 뒤 철광석을 찾아 전북 동부로 대거 이동한다. 지리산 달궁계곡 마한 왕의 달궁 터와 장수군 천천면 남양리 지배자 무덤에 잠든 사람들이 그 주인공이다. 초기철기시대부터 후백제까지 천년 동안 철산개발로 전북 동부를 고대문화의 용광로로 만들었다. 전북 동부에 기반은 둔 마한세력이 가야문화를 받아들여 가야 소국으로까지 발전했다. 봉화왕국 전북가야가 문헌 속 기문가야와 반파가야로 비정됐는데, 매번 두 나라는 한 묶음으로 등장한다. 기문가야가 동북아를 아우르는 최고급 위세품을 거의 다 모았고, 반파가야 고총에서는 단야구와 말발굽이 나와 당시 철산개발을 유물로 실증해 주었다. 기원전 1500년 전 튀르키예 히타이트에서 철기문화가 처음으로 시작됐다. 히타이트에서 전북 동부까지 이어진 철기문화의 전파 경로가 전북의 아이언 로드이다. 전북 철기문화를 다룬 문헌이나 이야기가 거의 없어서 고고학자들이 고단한 발품을 팔아야 했다. 이제 막 전북 동부 제철유적의 역사성을 검증하기 위한 발굴조사도 시작됐다. 인류의 역사 발전에 공헌도가 가장 큰 것이 철이다. 전북 동부는 엄밀히 표현하면 철이다. 전북에서 꽃피운 마한의 요람도 익산 백제도 전북가야 봉화도 통일신라 남원경도 후백제 전주 천도도 전북 동부 제철유적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전북 철기문화의 탁월성을 홍보할 전북철박물관의 건립과 아이언 로드 복원도 모색됐으면 한다. /곽장근 군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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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10 18:16

파리, 서울, 순천, 전주 시장의 비전

시장은 도시의 운명을 좌우한다. 좋은 시장을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장이 어떤 비전을 갖고 무슨 일을 꾀하는지 늘 지켜봐야 한다. 그것이 도시의 진짜 주인 시민의 책무다. 파리, 서울, 순천, 전주, 네 도시 시장이 최근 벌이고 있는 일들을 통해 이들의 비전을 읽어보자. 안 이달고 파리시장은 2014년에 처음 당선되어 6년 임기를 마친 뒤 2020년 재선에 성공했는데, 재선 당시 내걸었던 공약들이 가히 혁명적이다. 파리12구 베르시-샤랑통 지역 초고층 6개동 건설계획 백지화 및 파리 제3의 도시숲 조성, 파리시 전역 주행속도 30킬로미터 제한, 시내 노상주차장 4분의 3을 없애고 보도, 자전거도로, 녹지로 전환 등 상상을 초월한다. 지하철이 지나가는 도로 지상부에 자전거도로를 조성하는 ‘벨로폴리탄’ 사업비는 3천4백억원인데 이 돈으로 지하철은 2킬로미터, 트램은 7킬로미터를 건설할 수 있지만 자전거도로는 170킬로미터를 만들 수 있다. 대중교통의 주역이 지하철과 트램에서 자전거로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간이 필요하면 새로 짓는 대신 공공건물을 야간과 주말에 개방해 쓰게 한다. 서민주택 공급 방식도 획기적이다. 코로나로 운영이 어려워진 에어비앤비 3만호를 매입해 공공임대로 전환하고, 빈 건물들을 주택으로 리모델링해서 사회주택 비율을 25%까지 올릴 계획이다. 샹젤리제 거리의 차도를 대폭 줄이는 ‘샹젤리제 정원화’까지 야심찬 혁신을 이어가는 안 이달고 시장의 비전은 무엇일까? 기후위기 시대에 맞게 사람을 위한 개발보다 ‘생태’를 중시하고, 약자들과 ‘연대’하며, 도시와 사람의 ‘건강’을 최우선에 두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세운상가 일대를 보면 피눈물이 난다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비전은 무엇일까? 역사도시 서울의 변하지 않는 모습에 참을 수 없다면 그의 비전은 서울의 옛 모습을 다 지우고 새롭게 바꾸는 것일 게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닮은 새빛둥둥섬, ‘런던아이’를 닮은 서울링, 함부르크 ‘하펜시티’를 닮은 여의도 수변개발 등 다른 도시 모방은 계속될 것이고 서울의 정체성은 훼손될 것이다. ‘202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개막되었다. 2006년 선거에서 당선된 노관규 시장은 순천의 비전을 ‘정원’의 도시, ‘생태수도’로 설정한 뒤 2013년 첫 번째 국제정원박람회를 성공시켰고 2년 뒤 순천만은 우리나라 제1호 ‘국가정원’이 되었다. 자연이 남겨준 순천만 습지를 도시경쟁력의 원천으로 인식하고 자연과의 공생을 도시발전 전략으로 삼아 시민과 함께 생태수도 순천의 정체성을 지키고 키워온 쾌거를 이번 박람회가 잘 보여줄 것이다. 우범기 전주시장의 비전도 궁금하다. 올해 초 오목대 주변 향토수종 40여 그루 벌목 소식에 놀랐는데, 최근 야구장이 철거되고 전주천과 삼천의 나무 1200 그루가 잘렸다는 기막힌 소식을 접하며 생각해보니 그의 비전은 ‘오직 개발’인 것 같다. 큰일이다. 전주는 그런 도시가 아니다. 역사, 문화예술, 인문의 도시이고 슬로시티 아닌가. 사람들이 전주에 오고 전주를 사랑하는 이유가 개발 때문일까? 이름처럼 하늘의 섭리를 따라 뚜벅뚜벅 나아가는 순천이 부럽다. ‘온전한 도시’라는 최고의 이름을 가진 전주가 지금 매우 위태롭다. 나무 다음에 또 무엇이 잘려나갈까. 도시는 시장 맘대로 주물러도 되는 떡이 아니다. 망가진 도시는 고치기 힘들다. 막아야 한다. 주인들이.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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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03 15:25

우리의 미래, ‘생존 최우선’의 신인류

현생 인류의 윤택한 삶은 과거 고통에서 이어진 부조리한 현실 극복 의지, 개선 노력의 결과이다. 힘든 노동을 대체하기 위한 지능, 굶주림에서 벗어나려는 처절한 의지, 인간됨의 잣대에 맞지 않는 야만과 폭력으로부터의 저항까지. 결국 인류는 ‘우리 삶은 (과거보다, 지금보다) 더 나아야 한다’의 집단 의지로 지금에 와 있는 것이다. 진보와 발전에 대한 믿음, 편하고자 하는 순수 욕망이 지금의 인류를, 문명을 만들었다. ‘더 나은 삶’이 희망이고 인간의 존재 이유(였)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이 분야의 대표 국가이자 증명 사례다. ‘더 나은 삶’을 위한 투쟁에서 가장 빠르고 드라마틱하게 ‘눈부신 발전’에 도달한 국가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와 비슷한 국가에 비해 ‘새로 태어나는 사람’은 가장 적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가장 많다. 대한민국은 전 인류에게 ‘눈부신 발전’에만 몰두하면, ‘행복’이라는 가치가 사라지고, 결국 인구 소멸로 멸종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사례이기도 한 것이다. 과학기술과 문명이 진보를 가져온다는 믿음으로 달려온 인류는 21세기의 시작부터 바이러스 펜데믹과 전쟁, 기후위기, 극도의 빈부격차로 신음하고 있다. 성장을 위해 인류가 잔인하게 파헤쳤던 지구는 인간에게 더는 내주지 않고 인간이라는 종을 멸종시켜버리겠다고 맘먹은 듯하다. 과학기술이 이 문제 역시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해서, 인공지능에게 물어보았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인류의 미래는 매우 다양한 시나리오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인류는 기후 변화, 인구 증가, 자원 고갈,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갈등 등의 다양한 문제를...(중략)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만, 기술의 발전과 혁신, 지속가능한 발전, 국제적인 협력과 평화 등을......” 영화 <그녀(2013)>와 <칠드런 오브 맨(2006)>은 인류의 미래를 동전의 양면처럼 비춰준다. 전자는 기계와의 사랑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매력 없는지를, 그럼에도 우리 미래는 꽤 괜찮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후자는 멸망이 예정된-바이러스로 인해 더 이상 새로운 인류가 태어나지 않는 디스토피아를 다룬다. 소수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통제 권력과 저항 세력 사이에서 기적처럼 태어난 최후의 인류를 보호하려는 아찔한 줄타기가 이어진다. 영화는 자연스레 각자도생에 빠진 젊은 세대와 창피한 줄도 모르고 부의 축적만이 유일 목표인 기득권이 투쟁하는 대한민국의 미래와 겹쳐지고, 영화 <다음 소희(2022)> 속 현실로 연결된다. 기득권은 젊은 세대들을 상대로 온갖 사기를 치면서, 노력과 성실의 가치를 모른다며 무기력과 좌절감의 가스등 켜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생명을 빼앗는다. 전주에 사는, 계약직 콜 센터 수습직 고등학생 소희와 그 다음 차례가 될 또 다른 소희의 죽음은 이래서야 다가올 인류 미래 따위는 좋을 리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발전이나 진보’가 아닌 ‘생존 최우선’의 인류가 반격을 시작한다. 먹고, 자고, 입는 모든 생산과 소비 영역에서 잉여와 착취를 통한 이윤창출이나 가성비 우선이 아니라 지구에게 온전한 방식이 무엇인지를 먼저 따지는 인류. 자본과 시장을 믿은 결과가 인류 전체 재산의 절반 이상이 1%의 소수 개인의 몫이 된 상황에 저항하는 인류. 기득권의 탐욕과 권력욕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인류. 인류 역사의 진보와 발전에 따른 부작용을 몸소 감내해야 하기에, 그래서 모든 것을 새롭게 시도해야만 하는 인류. 진보보다 생존이 우선인 인류. 바로 이들이 우리의 미래이자 현재다. /박형웅 전주대 실감미디어혁신공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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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27 17:30

“50+ 나도 PD다”

대학졸업 후 일 년여 남짓 서울 생활 접고 전주에 정착한 지 35년, 털끝만큼도 서울 생활 동경하지 않고 지방의 풍요로움을 만끽하며 성실한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한다. 두 어번 직업이 바뀌기는 하였으나, 내 고장에 대한 애정은 변함없으며 이곳의 땅과 물과 바람을 사랑한다. 내가 하는 일의 시작은 지역이며 지향점 역시 지역의 이웃과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것이기에 나의 관심은 온통 지역으로 천착된다. 지역방송의 라디오 PD로서 이왕이면 좋은 말, 좋은 생각을 더하고 실천을 독려하고 있다. 분별하지 않고 시비를 가리지 않아서 또한 내 적성에 맞는 것 같다.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사유와 성찰을 돕는 일도 중요하다. 올해 1월 2일부터 전북원음방송 로컬프로그램 <행복한 응접실 김사은입니다> 제작 진행을 맡아 새롭게 기획한 코너 중 '50+ 나도 피디다'라는 방송은 전주시 평생학습관에서 실시하는 '50+ 어른학교' 프로그램가운데 시민라디오 교육 수료생이 만드는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이다. 시민들의 참여를 위해 원음방송의 문을 열었다. 매주 화요일 전주평생학습관의 라디오 커뮤니티 1기 2기 회원들이 다양한 지역 소식을 가지고 찾아온다. '행복한 응접실 김사은입니다' 생방송과 함께 유튜브로도 제공된다. 나는 PD로서 구성 제작 진행의 과정에 되도록 관여하지 않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담아드리고자 한다. 인터뷰 녹음 과정이나 편집이 다소 서툴기는 하더라도 이 역시 진정성에 무게를 두고 숨소리까지도 귀 기울였다. 전주시평생학습관 낭독프로그램을 통해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CD를 제작하여 전달한 사연을 시작으로 설 명절을 앞두고 환경미화원의 노고와 애환을 담은 ‘엄동설한 달빛아래 선 거리의 천사’, 생활지원사, 작은 도서관 등 알찬 소식이 쏟아졌다.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상식 현장 취재도 다녀와서 수상소감도 생생하게 전했다. 노송동 얼굴 없는 천사 편을 방송할 때는 ‘다소 진부한 소재가 되지 않을까?’라는 나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새롭고 감동적인 내용이 펼쳐졌다. 동장님 인터뷰에는 (라디오임에도) 뭉클함이 전해졌다. 인근 주민들의 자긍심은 매우 높은 편인데 특히 세탁소 주민은 “천사의 마을에 살고 있으니 나도 좋은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깨끗한 돈이 들어올 때마다 이웃 돕기에 쓰려고 따로 모은다.”라고 말해 큰 감동을 주었다. 아, 이렇게 착하고 순한 이웃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지난 14일 방송에서는 새 학기를 시작하는 자녀를 둔 다문화 가정에 대한 내용이 전파를 탔다. 마냥 신나기만 할 것 같은 신학기, 말도 설고 문화도 어색한 다문화 가정 특히 어머니의 애환이 새롭게 다가왔다. 특히 외국인과의 재혼가정이 늘어남에 따라 중도에 입국한 아이들은 적응하기가 더욱 쉽지 않은데, 이 부분에서 다문화가족 지원센터 방문팀의 역할이 크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표면적인 사회문제를 심층적이고 다각도로 접근하고 풀이하는 능력은 커뮤니티 회원 개개인이 갖고 있는 사회적 역할에서 기인한다. 현장요원, 자원봉사 등 다양한 형태로 각자가 처한 사회적 현상을 인식하고 이를 방송으로 담아내고 있기에 어떤 점에서는 더욱 깊이가 있다고 본다. 순수하고 진정성이 있다. 따뜻하고 정겹다. '50+ 나도 피디다' 어떤 내용이 전개될지, PD인 나도 궁금해진다. /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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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20 18:49

후백제 국제외교와 초기청자

중국 청자의 본향이 오월이다. 우리나라 역대 왕조 중 오월과 가장 돈독한 국제외교를 펼친 나라가 후백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청자 연구에서 후백제는 거의 초대를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문헌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요사이 전북에서 검증된 고고학 자료로 초기청자를 논의하는 과정에 후백제가 가끔 거론된다. 흔히 푸른 빛깔의 자기를 청자라고 한다. 청자는 인간이 만든 가짜 옥으로도 비유된다. 청자의 푸른색은 태토 속 3.4% 내외의 산화철이 굽는 과정에 환원된 것이다. 중국식 벽돌가마에서 구운 월요 청자는 대부분 황갈색을 띤다. 절강성 북쪽 소흥, 여요 일원에 밀집 분포된 월요는 당나라 때 월주요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 우리나라 청자의 제작 기술도 그 출발지가 오월 월주요였다. 한나라 때 처음 시작해 당나라, 오월을 거쳐 북송시대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청자를 생산했던 곳이다. 당나라 절도사 전류가 세운 오월은 월주요를 지배했던 나라로 항주에 도읍을 두었다. 978년 송나라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월주요의 후원으로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다. 2012년 필자는 중국 절강성 일대로 청자 국외답사를 다녀왔다. 처음 찾은 상림호 월주요 벽돌가마는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각 속에 가마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벽돌가마는 장방형 벽돌로 대부분 가로 쌓기 방식을 적용하여 아주 정교하게 만들었다. 벽체는 3~5단 높이로 남아있었고, 가마는 길이 40m 이상 이었다. 절강성 청자 답사는 후백제와 오월을 재회시킨 브릿지였다. 항주만 입구 영파는 해상 실크로드 출발지로 본래 이름은 명주였다. 명주와 전주를 이어주던 바닷길로 40여 년 동안 국제외교를 펼친 나라가 후백제이다. 필자는 영파박물관 주관 ‘천봉취색(千峰翠色)’ 월요 청자 특별전에서 청자를 본 순간 진안 도통리를 떠올렸다. 2014년 진안 도통리 청자 요지 첫 발굴조사가 시작됐다. 다행히 문화재청과 전라북도, 진안군 발굴비 지원으로 큰 성과를 거두어 진안군 최초로 국가 사적으로 지정됐다.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 중평마을 모정 아래에서 그 존재를 드러낸 중국식 벽돌가마는 상림호 월주요에서 본 벽돌가마를 그대로 옮겨온 것처럼 쏙 빼닮았다. 안타깝게 진안 도통리 벽돌가마는 끔찍한 모습이었다. 무슨 이유로 최첨단 국가산업단지가 참혹하게 파괴됐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후백제 멸망을 암시하는 변고(變故)가 아닌가 싶다. 만약 고려가 만들고 다시 부쉈다면 그것은 난센스(nonsense)이다. 후백제 멸망으로 벽돌가마를 운영하던 국보급 도공들은 전쟁 포로가 되어 진안 도통리를 떠났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황갈색을 띠는 가장 이른 시기의 청자를 초기청자라고 부른다. 천하제일의 상감청자로 유명한 부안청자보다 200여 년이 앞선다. 진안 도통리 벽돌가마에서 구운 초기청자는 최상급으로 진안청자라고 새 이름도 지었다. 고창 반암리에서도 중국식 벽돌가마에서 초기청자가 쏟아져 후백제와 초기청자의 연관성을 더더욱 높였다. 중국 월주요 청자 제작 기술은 반도체를 능가하는 최첨단 과학의 집약체이다. 고려는 오월과 국제외교가 거의 확인되지 않지만, 후백제는 40년 이상 오월과 혈맹적 국제외교를 펼쳤다. 진안 도통리 벽돌가마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도 잇따라 후백제를 가리켰다. 그렇다면 후백제와 오월 국제외교의 결실로 청자문화가 곧장 후백제로 전래된 것이 아닌가 싶다. /곽장근 군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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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13 18:18

'전북특별자치도’, 대중교통 혁신부터!

‘전라북도’는 이제 곧 ‘전북특별자치도’로 이름이 바뀐다. 이미 과반인구를 앗아가고도 계속 몸집을 키우는 공룡 수도권에 대항하려면 비수도권 지역도 덩치를 키워야 한다는 논리로 ‘대구경북’, ‘광주전남’, ‘충청’이 ‘메가시티 전략’을 전개하고 있고, 제주 강원 전북은 자치권을 강화한 정부 직속 ‘특별자치도’로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덩치를 키우는 ‘메가시티 전략’은 비수도권에 또 다른 공룡을 만들 수 있어서 걱정스럽다. 그보다는 작은 지역들의 연결을 강화해 하나의 생활권을 이루고 함께 상생하는 ‘소도시연합’이 더 좋은 전략이다. ‘전북특별자치도’가 소도시연합의 희망을 보여주는 첫 사례가 되길 바란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대중교통 혁신'이다. 오고 가기 편한 전북을 만들자. 자가용이 없는 청년들도, 운전이 힘든 어르신들도 대중교통으로 어디든 편히 오갈 수 있게 하자. 관광도 생활도 대중교통으로 너끈히 가능한 전북을 만들자. 대중교통이 자가용보다 더 빠르고 더 유리해진다면 전북은 아주 ‘특별’한 곳이 될 것이다. 기대지 않고 스스로 우뚝 서는 ‘자치’의 성지가 될 것이다. 누구나 와서 살고 싶은 희망의 땅이 될 것이다. 사람도 도시도 생명력의 핵심은 원활한 흐름에 있다. 몸 구석구석 막힘없이 피가 흐르듯 이동이 편해야 지역도 살아난다. 문제는 이동수단이다. 기껏 한두 사람 태우면서 도로와 주차장을 가득 메우고 탄소를 내뿜는 자가용은 이를테면 ‘탁한 피’에 비유할 수 있다. 반면에 도시공간을 적게 점유하면서 많은 사람을 실어 나르는 철도, 버스, 트램, BRT 같은 대중교통은 ‘맑은 피’와 같다. 기후위기와 탄소제로를 생각해도 대중교통이 답이다. 시민 대다수가 자가용 전기차를 타는 도시와 친환경 대중교통을 애용하는 도시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환경친화적일까? 제안한다. 전북도청과 14개 시∙군 대중교통 담당자들이 함께 팀을 이뤄 전북의 대중교통 현황을 진단하고 혁신방안을 찾길 바란다. 외부 전문가에게 맡기지 말고 전북을 가장 잘 아는 공무원들이 주체가 되어 답을 구해보자. 전북에 사는 도민들, 전북을 자주 오가는 교류인구, 전북에 체류 중인 생활인구, 전북을 애틋하게 가슴에 담고 사는 관계인구 모두에게 귀를 열고 의견을 구한다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좋은 사례들도 많다. 전국 최초로 완전 공영제를 실현한 신안군 공영버스를 타고 섬 여행도 해보고, 서울과 경기 등 준공영제 개혁 사례들도 열공하자. 건설비가 많이 드는 지하철이나 노면 트램보다 가성비가 훨씬 좋은 ‘BRT’와 수요응답형 대중교통 ‘DRT(Demand Responsive Transit)’도 이미 국내 여러 도시에서 운영 중이다. 지난해 출간된 책 <앙제에서 중소도시의 미래를 보다> 저자들은 자꾸만 활력을 잃어가는 일본 지방 도시들과 달리 여전히 생기 넘치는 프랑스 앙제를 비롯한 작은 도시들의 차이점을 낱낱이 찾아내고, 핵심 원인으로 ‘대중교통’을 꼽았다. 대중교통이 살아야 지역이 산다. ‘대중교통’에 ‘자전거’와 ‘보행’까지 더해 ‘대자보’ 녹색교통 3총사가 편안한 이동을 보장하는 ‘대자보 전북’을 만들자. 한 가지 더 제안한다. 도지사를 비롯한 시장, 군수들부터 대자보 출퇴근을 생활화하자. 자가용만 타면 대중교통의 불편을 모른다. 문제를 몸으로 겪고 알아야 고칠 수 있다. 특별한 자치도 전북, 대중교통 혁신에서 시작하자.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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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06 15:12

인공지능 ‘챗GPT’와의 진솔한 대화

이런 상대가 있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도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딱 좋아할 만한 소재로 매끄럽게 대화를 이끌어간다. 내가 그만두기 전까지 이 흥미로운 대화 상대는 결코 지칠 줄 모른다. 내 취향에 맞춰 이야기를 끌어가면서도, 본인만의 개성을 확실히 드러낼 줄 안다.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대화 형 인공지능 서비스 ‘챗GPT’(ChatGPT; 사전 학습된 자연어 대화 생성 모델) 이야기다. 이 소프트웨어는 마치 인간처럼, 혹은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능숙하고 성숙한 대화를 ‘생성’할 줄 아는 인공지능이다. 출시된 지 불과 1년 만에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곧’ 가져오게 될지를 생각하게 했다. 컴퓨터가 체스나 바둑으로 인간을 이겼을 때보다도 더 극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대화’에 특화된 기계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있어 대화는 참으로 중요하다.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지적 수준을 알게 되고 사회성과 태도, 세상에 대한 가치 판단 요소 등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대화’는 인간성과 지성의 상징이다. 대화는 이야기이고, 좋은 이야기는 정보와 지식이 논리적으로 구조화되어 있으면서도 세밀한 감정 표현이 담겨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말을 지나치게(?) 잘 하는 사람을 경계하기도 한다. 보이스피싱이 바로 창의적이면서도 논리적인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사람들을 속이는 범죄이다. 챗GPT 역시 인터넷을 통해 인간을 학습했고, 학습한 능력을 대화로 풀어낸다. 과학자들은 여기에 숟가락 한 스푼 정도의 ‘예절-인간이 불편하게 생각할 만한 것들을 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추가했다. 그 결과 꽤 그럴싸한 대화가 가능해졌다. 더 나아가 논리력을 발휘해 논문을 쓰고, 창의력을 동원해 시와 소설을 쓰고, 영상 대본을 작성하고, 블로그 글을 쓰고, 피싱 사이트를 뚝딱 만들어 사기를 치고, 주식 투자 가이드를 하는 일까지 담당하고 있다. 검색어에 대응하여 같은 답에 서로 다른 느낌만 주는 미러 사이트를 몇 백 개씩 만들어내서 인터넷 검색 결과를 오염시키기도 한다. 이쯤 되니, 전문가들은 이 인공지능 모델을 약장수, 사기꾼, 허언증 환자, 표절머신 등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만약 누군가가 어떤 책의 목차와 요약본을 보고, 인터넷에서 수많은 리뷰와 독후감, 평론을 읽은 후에 마치 책을 다 읽은 것처럼 자랑하고 다닌다고 해보자. 이 사람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면 과연 대화는 어떻게 흘러갈까? 챗GPT는 마치 우리 주변에서 보지도 않은 책을, 영화를, 드라마를, 듣지도 않은 음악을, 하지도 않은 스포츠를, 사지도 않은 물건을 샀다고, 했다고 하는 사람처럼 누군가의 경험과 지식을 긁어모아서 잘 조합한 결과만을 제공한다. 정교한 알고리즘이 진솔한 대화에 담겨야 하는 숙고와 가치판단, 진실성, 새로운 가능성의 자리를 대체한다. 냉정해지자. 인공지능은 가짜 뉴스가 진실을 호도하는 이 세상에서 팩트 체크가 가능한 수준이 될 때야 비로소 우리가 믿을 만한 물건이 될 것이다. 그러니 아직은 큰 걱정이나 기대를 갖지 말고 한번 경험해보자. 놀랍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바보 같고, 능력 있지만 쉬운 걸 제대로 못하는 최신의 비싼 기계. 덕분에 우리 현실은 가짜, 표절, 기계 창작물 등으로 한바탕 혼란스러울 듯하다. 만만치 않은 상대니 다들 정신 바짝 차리자. 여기에 더해 다음 데뷔 순서를 기다리는 인공지능들이 오디션을 막 마치고 긴 줄을 서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박형웅 전주대 실감미디어혁신공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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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2.27 16:27

“비행기 타고 가요”

모스크바 1세종학당은 러시아에 한국문화를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특히 원불교 모스크바 교당 부설 원광교육센터가 주최하는 「한러친선 문화 큰 잔치」는 30여 년의 역사를 통해 매년 8천여 명이 다녀가는 러시아의 주요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양질의 한국어 교육은 물론, 사물놀이, 탈춤, 한국무용, 태권도 등 한국의 전통문화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모스크바 교당 권은경 교무님이 한국에 다니러 오셨다기에 원음방송 로컬 프로그램 「행복한 응접실 김사은입니다」 인터뷰 요청을 했다. 원광교육센터에서 펴낸 한글 듣기 교재 발간을 위해 몇 년 전 합력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특히 모스크바 1세종학당의 일은 남일 같지가 않았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흔쾌히 방송에 참여한 권은경 교무님은 전쟁의 여파로 비행시간만 20여 시간 넘게 걸려 한국에 왔다고 소식을 전했다. 코로나 19로 세종학당의 활동이 위축되지는 않았는지 매우 궁금했다. 바이러스 때문에 다소 제약이 있기는 했으나 그 가운데도 랜선 한국어교육과 연주 등 꾸준히 활동을 해왔다는 말과 함께 현지의 뜨거운 열정을 소개했다. 가장 인기 있는 팀은 역시 사물놀이라고 한다. 사물놀이에 매료된 러시아 청년 스베타씨는 홀로 한국을 찾아 농악의 메카인 진도에서 공부를 하고 모스크바에 돌아가서 지도를 하고 있다고. 최근 결성된 탈춤반도 관심이 많다고 하니 한국 전통문화 전반에 큰 관심이 있는 듯하다. 최근에는 가야금 병창 반을 만들려고 하는데, 현지에 있는 가야금이 두 대뿐이어서 가야금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행복한 응접실 김사은입니다」 러시아 세종학당 인터뷰는 온-에어뿐 아니라 유튜브로 제작되어 소구 되고 있다. 이 소식을 접한 전통문화마을 김진형 이사장님은 주변에서 가야금을 수배하다가 남원에서 활동 중인 전북무형문화재 김죽파류 가야금산조 보유자 송화자 명인에게까지 연락을 취한 모양이다. 송화자 명인과 남원교당 박지상 교무님의 지원으로 모스크바에 가야금 두 대를 보내기로 일사천리 진행되었다. 남원교당 역시 ‘남원춘향도령 원화어린이예술단’을 운영하며 러시아 모스크바, 독일 레겐스부르크 등 해외 공연을 다녀온 저력을 과시한 바 있다. 가야금은 확보되었으나 이번에는 수송이 문제다. 사려 깊은 송화자 명인이 담양 범음국악사 대표인 허무 명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허무 명인이 남원으로 와서 모스크바까지 안전하게 운송할 수 있도록 손수 포장해주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눈물이 났다. 꽃 한송이 피우는데도 우주의 기운이 함께 한다고 하는데, 가야금 두 대를 모스크바에 보내는 일에 이렇게 많은 분들의 정성과 공덕이 있었던 것이다. 튼튼하게 포장된 남원의 가야금이 비행기 타고 모스크바로 날아갔다. 송화자명인은 “우리나라 가야금 소리가 세계 속에 울려 퍼지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나는 더 나아가 우리나라 가야금 소리가 전쟁을 멈추고 인류의 화합을 촉진하는 평화의 소리로 울려 퍼지기를 염원한다. 세종학당으로 간 가야금 두 대의 공덕이 모스크바로부터 어떤 기적을 불러일으킬지, 누가 알겠는가. 문화는 살아있는 것이니까. /김사은 전북원음방송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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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2.20 15:28

새만금과 세계 잼버리 대회

올해 8월 1일부터 12일까지 세계 스카우드 잼버리 대회가 새만금에서 열린다. 전 세계에서 참가할 5만여 명의 청소년들이 펼치는 젊음의 향연이다. 과연 새만금은 세계 대회를 치를 만한 곳인가? 한마디로 잘 준비된 곳이다. 우리 조상들은 새만금의 흥망성쇠를 유적과 유물에 수놓았다. 이제껏 고고학자가 발품을 팔아 둘러 본 새만금은 글로벌 인문학의 보물창고이다. 선사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새만금의 해양교류사는 차고 넘친다. 새만금은 해양문화의 용광로를 방불케 할 정도로 국내외를 통틀어 압권이다. 조선시대 다소 지치고 벅찼는지 바다를 지키는 수군기지와 유배지로 그 역할이 바뀌었다. 지금까지는 인문학이 거의 초대를 받지 못하고 대부분 국책사업 소식으로만 새만금이 회자되어 안타깝다. 흔히 고고학에서는 강과 바다를 옛날 고속도로라고 부른다. 금강과 만경강, 동진강 물줄기가 군산도에서 한 몸을 이룬다. 새만금이 해양문물교류의 관문으로 융성하는데 결정적인 밑거름이 됐다. 신석기시대 전국의 빗살무늬토기를 거의 다 모아 명품 백화점을 만들었다. 그 잠재력이 어디서 나왔는지 꼭 풀어야 할 새만금의 미스터리이다. 새만금은 또한 패총의 왕국이다. 한반도에서 학계에 보고된 600여 개소의 패총 중 200여 개소가 새만금 일원에 모여 있다. 세계적으로 패총의 밀집도가 월등히 높은 곳이다. 고고학자들이 패총을 찾아 세상에 알렸지만 한 개소의 패총도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너무 아쉽다. 솔직히 패총은 새만금의 역사책이자 타임캡슐이다. 마한의 핵심세력은 해양세력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말무덤이 가장 많은 곳이 새만금 일원이다. 말무덤은 마한의 왕무덤을 의미한다. 새만금을 무대로 해양세력이 번창했음을 수많은 말무덤들이 반증한다. 고창 봉덕리, 군산 미룡동 등 마한의 지배자 무덤에서 동북아를 아우르는 최상급 위세품이 쏟아져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마한이 구축해 놓은 해양 네트워크로 백제와 후백제는 해양왕국으로 더욱 번성했다. 백제가 공주, 부여에 도읍을 둔 200여 년 동안 새만금은 해양문물교류의 관문이었다. 후백제는 군산도를 통과하는 사단항로로 중국 청자의 본향 오월과 국제외교를 당당히 펼쳤다. 이 무렵 군산도가 대규모 항만시설을 갖춘 국제항구로 개발됐을 개연성이 높다. 고려는 군산도를 국제외교의 큰 무대로 삼았다. 1123년 송나라 황제 휘종이 고려에 국신사를 파견하자, 고려는 군산도 군산정에서 김부식 주관으로 국가차원의 영접행사를 열었다. 새만금 최대의 국제행사였다. 군산도에 숭산행궁과 숭산별묘를 두어 제2의 개경으로 인식했던 것 같다. 여기서 숭산은 개경의 진산 송악산의 또 다른 이름이다. 옛 지도와 문헌에는 군산도에 왕릉이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군산대학교 고고학팀이 왕릉을 찾았지만 한 차례의 발굴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군산도 왕릉은 숭산행궁, 군산정과 함께 새만금 해양문화유산의 백미이다. 부안 계화도, 군산 방축도 등 10여 개소의 봉수가 집중 배치되어 새만금은 내내 전략상 요충지를 이루었다. 새만금은 해양문화유산의 메카였다. 중국에서 전래된 철기문화와 도자문화가 새만금을 경유하던 바닷길로 전북에 곧장 전래되어 전북에서 화려하게 꽃피웠다. 해양왕국 백제와 후백제, 고려도 새만금을 무대로 국제외교를 왕성하게 펼쳤다. 새만금 해양문화유산의 국제성과 역동성을 잘 살려 세계 잼버리 대회가 성대하게 개최되길 염원한다. /곽장근 군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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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2.13 16:25

‘튀는 전북’보다 ‘참한 전북’으로!

도시는 사람과 꼭 닮았다. 40년 도시 공부의 결론이다. 좋은 도시는 좋은 사람들이 만든다. 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마을도 지역도 다르지 않다. 좋은 도시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내가 먼저 좋은 시민이 되어야 한다. 도시의 수준은 그곳 시민의 수준과 정확히 일치한다. 전라북도가 지금 여기 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고향을 떠난 사람들과 아무 연고 없는 사람들까지 와서 일하며 살고 싶은 선망의 지역이 되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답은 하나다. 우리가 좋은 시민이 되는 것이다. 14개 시군으로 가르지 말고 모두가 ‘전북시민’이 되어 우리 전북을 돌보고 가꾸는 길밖에 없다. 꿈을 이루려면 목표를 잘 세워야 한다. ‘거리보다 방향’이란 말이 있듯 일들을 벌이기에 앞서 지향을 올바로 두어야 한다. 어떤 전북을 원하는가? 180만 전북시민 저마다의 지향과 목표는 다를 수 있다. 그러니 묻고 토론하고 모아야 한다. 다양한 꿈들의 합의점을 찾아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전북시민에게 묻고 싶다. 어느 쪽인가? ‘튀는 전북’인가? ‘참한 전북’인가? 2013년에 시민들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대중서 <나는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를 출간했던 이유가 있었다. 2000년대 초부터 서울과 전국의 여러 단체장들이 밑도 끝도 없이 ‘튀는 도시’를 향해 내달리고 있어서였다. 물려받은 자연도 역사도 없어 사막 위에 오직 '인공'으로 도시경쟁력을 키우던 ‘두바이’를 배우고 따르자며 우리 도시의 귀한 보물들을 경쟁하듯 지워갔다. ‘자해’가 횡행하던 참담한 시절이었다. 시드니에는 오페라하우스가 있는데 왜 서울 한강에는 없느냐며 ‘모방’과 ‘추종’에 여념이 없던 ‘자학’의 시대였다. 자괴감이 책을 쓰게 한 동기였다. 도시의 경쟁력 키우기는 사람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도시설계’는 아이들이 ‘인생설계’를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도시설계와 인생설계는 두 단계로 이뤄진다. 첫째는 기본을 튼튼히 갖추는 일이다. 어느 도시 어느 사람이든 마땅히 해야 할 이를테면 ‘보편 전략’이다. 제아무리 학력과 외모가 출중하다고 해도 기본이 엉망이라면 누가 그를 귀히 쓰겠는가? 도시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먼저 시민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도시에서 살고 일하며 오가고 쉴 수 있도록 단단하고 촘촘한 도시의 기본을 갖춰야 한다. 남들에 뒤처지지 않게! 두 번째 할 일은 나만의 강점을 살리고 매력을 드러내는 일이다. 다른 사람 다른 도시에 없는 나의 정체성을 알고 이것을 활용해 경쟁력을 키우는 일이다. 남들보다 빼어나게! 이를테면 ‘차별화 전략’이다. 정체성이 곧 경쟁력이다. 남들 따라 하기는 답이 아니라는 얘기다. 전북 지역 발전의 목표를 세우는 일도 다르지 않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기본’을 먼저 다지고, 전북만의 매력과 강점 즉 ‘정체성’을 살려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이다. 재작년 네 곳 로컬에서의 한달살이 뒤 수없이 받았던 질문은 “어디가 가장 좋았는가?”였다. 나의 대답은 이랬다. “하동은 고요했고 목포는 흥미진진했으며 강릉은 상큼했다. 그리고 전주는? 전주는 도시도 사람들도 따뜻했다.” ‘따뜻함’도 어쩌면 전북의 특별한 매력일 수 있다. 또 있을 것이다. 다른 데 없는 이곳만의 강점들이. 가식 없이 진실되고 기본이 반듯하며 고유한 매력을 지닌 사람을 우리는 ‘참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우리 전북도 그랬으면 좋겠다. ‘튀는 전북’보다 ‘참한 전북’이 되자!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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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2.06 16:35

‘메타’와 ‘멀티’에 빠져있는 우리 유니버스

필자는 대학에서 실감미디어로 메타버스(Metaverse)를 구현하는 기술과 콘텐츠를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실제 현실과 대비되는 세계는 메타버스가 아니라 가상, 증강, 혼합, 확장 현실 중 하나거나 경계 혹은 혼합이었다. 그렇다면 메타버스는 무엇일까? 전문가를 제외한, 대다수 평범한 ‘우리’는 정부나 지자체, 기업들이 메타버스를 도입한다며 분주할 때 ‘이런 애들 장난 같은, 유치한 게임 같은 것이 진짜 메타버스야?’라고 생각하면서도 감히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위축된다. 정말 메타버스는 지금 시대의 중요한 화두인가? 인터넷처럼 중요한 미래 기술을 나만 놓치고 있는 걸까? 그저 마케팅 용어 아닐까? 가치 판단 전에 일단 메타버스의 개념을 한번 살펴보자. 메타버스는 초월(Meta)과 세계(Universe)의 합성어다. 지금 세계를 ‘초월한’ 시공간을 의미한다. ‘새로운’도 아니고 ‘복제된’도 아니며, ‘더 나은’도 아니다. 닐 스티븐슨의 SF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에서 등장한 메타버스는 현실 주체가 ‘아바타’가 되어 현실과 얽혀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가상 세계를 의미한다. 메타버스는 현실 세계 혹은 현실의 문제와 긴밀히 연결된 세계이자 해결 방식이었던 것이다.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 메타버스는 격리된 우리에게 따뜻한 소통 채널로, 일하는 나-아바타의 업무공간으로,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과 작품을 생생하게 체험하는 경험으로 구체화되었다. 결국 메타버스를 이해하려면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초월’을 중심에 두고, 우리가 지금 현실에서 무엇을 어떻게 초월하고 싶은지를 자문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는 현실의 부조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인가? 그 해결의 실마리가 메타버스에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내가 꿈꾸는 어떤 평행 세계 메타버스와 더불어 우리 유니버스를 다채롭게 하는 개념은 멀티버스(Multiverse)이다. 미디어에서 묘사되는 멀티버스는 우리 우주와 무관한, 서로 연결되지 않은 우주가 무한히 존재할 수 있다는 다중 우주론에 평행 우주 개념을 혼합해서 사용한다. 즉, 지금 우리와 같은 우주가 무한히 존재하는데 그 각각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설정이다. 문학에서 영화(주로 수퍼 히어로 장르)까지 많은 콘텐츠에서 캐릭터나 세계관을 다층적으로 재해석하고 확장하는, 창의적인 도구이자 규칙으로 사용한다. ‘멀티버스? 애들 오락거리 아냐?’ 라는 의심이 들 때쯤 2022년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개봉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낯설었다가, 충격적이었다가, 감동했다가, 웃었다가, 슬펐다가, 허탈해지며 멍해지는 느낌을 호소했다. 영화의 주인공처럼 갑자기 등장한 멀티 유니버스를 받아들이지 못하다가 점차 익숙한 감정과 마주한다. ‘그때 내가 그 선택을 했다면,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영화가 그려내는 세계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멀티 실험이다. 다양한 내가 멀티 유니버스의 메타버스에서 충실히 살고 있고, 지금 현실의 내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면 우리는 메타와 멀티를 섞은 세계를 만들어 놓고, 현실 도피의 방식이 아니라, 지금의 현실을 극복하고 조금 더 나아진 우리의 삶을 영위하고 싶다는 의지를 절절히 드러내고 있는 것만 같다. /박형웅 전주대 실감미디어혁신공유대학 교수 △박형웅 교수는 전북디지털사회혁신센터 센터장∙전북콘텐츠코리아랩 디렉터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소임포굿연구소 대표∙전주대학교 연구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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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1.30 18:17

“삶을 노래하라”

서울에서 기업체를 경영하며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으로 활동해온 나래코리아 김생기 대표는 전주국제영화제를 축하하며 사비를 들여 음악회를 준비해왔었다. 5년 전 쯤, 처음으로 ‘나래 코리아 음악회’에 참석했는데 그때 신선한 충격이 지금도 새롭다. 공연의 즐거움이 무르익어 가면서 나는 노래 한곡에 꽂혀 뭉클해지는 경험을 했다. 이상규 시, 정애련 곡 「진달래」라는 가곡을 김민지 소프라노가 정말 아련하게 불렀다. ‘먼산 진달래 필 때면 텅빈 가슴 설움만 남아 이별의 아픔 곱게 물들어 갑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아름다운 우리 가곡을 듣고 여운이 남았다. 「진달래」는 나를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성악클래스로 이끌었다. 나래코리아 콘서트에서 인사를 나눈 정애련 작곡가가 악보를 보내주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로부터 4번의 겨울을 맞이하는 동안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송주희 교수의 지도로 한곡 한곡 계절과 정서와 감성이 이끄는 대로 노래를 불렀다. 중고등학교 시절 배운 가고파, 수선화, 목련화, 그리운 금강산, 보리밭, 동무생각, 장안사 등 익숙한 노래도 다시 알아가는 즐거움이 컸다. 아, 동심초의 애잔함을 그때는 왜 몰랐던가, 노래를 하다보면 가만가만 떠오르는 사람도 있다. 첫사랑, 별을 캐는 밤과 같은 새로운 곡도 좋았다. 내 맘의 강물, 강건너 봄이 오듯…… 좋은 노래, 배우고 싶은 노래는 끝이 없다. 블루 코로나의 우울함 속에서, 노래는 유일한 기쁨이었다. 지난 가을, 동문수학하는 사람들끼리 코로나 19 이후 중단된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노래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동안 익힌 기량을 확인하는 학습의 연장선에서 발표의 장을 갖는 것은 더 중요하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201호에서 작은 규모로 시작한 음악회이지만 그래도 부담감은 크다. 오랫동안 교육을 받고 연습을 많이 한 사람은 역시 자신감이 있다. 나로서는 처음 참여하는 음악회인데 하필 그 즈음 코로나 후유증으로 고생하던 시기여서 노래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 속상했다. 그날 참석한 스물네분의 출연자 중 유독 한 출연자가 가슴에 와 닿았다. 82세의 할머니는 아들과 며느리의 부축을 받으며 무대에 올랐다. 검은색 무대복이 반짝반짝 빛났다. 수선화를 선택한 그 분은 가녀린 몸을 보면대에 의지해 “노래 부르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고 수줍게 말했다. 마른 몸, 건조한 성대, ‘찬 바람에 쓸쓸히 웃는 적막한 얼굴이여’에서는 노년의 쓸쓸함이 묻어나왔다. 노래는 클라이막스를 향한다. ‘그대는 신의 창작집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불멸의 소곡 또한 나의 작은 애인이니 아아 내 사랑 수선화야’ 부분에서는 목소리가 잠겨서 꺽꺽 힘들어했다. 보는 나도 안타까웠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나도 그대를 따라 저 눈길을 걸으리’ 마지막 부분에서 눈물이 쏟아지는 것이었다. 삶의 서사가 펼쳐지면서 그분의 일생이 목구멍에서 세상으로 나와서 하염없이 메아리친다. 가슴으로 부르는 노래, 영혼을 다해 부르는 노래, 그래서 그분의 노래는 ‘잘했다, 못했다’ 평가할 수 없는 경건함이 있었다. 아, 그날 이후 나는 “노래를 잘 해야겠다.”는 욕심을 버렸다. 대신 노래 한곡이라도 정성스럽게, 행복하게 불러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삶을 노래하는 것, 그 자체로 이미 멋진 인생이 아닌가. 나를 노래의 날개로 인도해준 인연에 감사한다. /김사은 전북원음방송PD △김사은 PD는 수필가이며 중부대학교 겸임교수와 전북여류문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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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1.16 17:18

장수가야와 반파가야

중국, 일본 문헌에 반파가 모두 등장한다. 일본 문헌에는 기문, 대사를 지키기 위해 백제와 3년 전쟁을 강행했고, 신라 변방에 참혹한 피해를 준 가야계 소국으로 나온다. 반파가 백제와 3년 전쟁을 치를 때 봉후(화)를 운영하여, 가야 봉화는 반파의 아이콘이자 정체성이다. 솔직히 가야 봉화가 발견되어야 반파 논의가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봉화산이 가장 많은 곳이 전북 동부이다. 1990년대부터 군산대학교 고고학팀이 봉화 찾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전북 동부에서 그 존재를 드러낸 봉화는 120여 개소에 달한다. 전북가야는 전북 동부 가야 봉화망에 근거를 두고 만든 신조어이다. 봉화가 국가의 존재와 국가의 영역을 대변해 주기 때문이다. 가야 봉화는 횃불로 변방의 정보를 중앙에 알리던 통신유적이다. 영화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에 등장하는 아몬딘 봉화의 신호 방식과 흡사하다.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신호를 주고받던 조선 봉수의 신호체계와 다르다. 최근 전북 동부 봉화망의 역사성이 상당부분 검증됐고, 이를 근거로 봉화의 구조와 봉화로도 거의 복원됐다. 가야 봉화대의 구조가 파악됐다. 일단 산봉우리 정상부를 평탄하게 다듬고 길이 8m 내외의 봉화대를 만들었다. 봉화대는 깬돌을 이용하여 허튼층 쌓기로 쌓은 석축형으로 토축형, 암반형도 일부 확인된다. 봉화대 정상부에는 불을 피우던 한 개소의 봉화시설만 두어 다섯 개소를 둔 조선시대 봉수와 확연히 다르다. 가야 봉화의 핵심 내용은 최종 종착지이다. 모두 여덟 갈래로 복원된 가야 봉화로의 최종 종착지는 장수군 장계분지이다. 장수 봉화산 등 8개소의 봉화가 장계분지를 감시한다. 가야 봉화로가 실어온 모든 정보는 장수 삼봉리 산성에서 하나로 취합됐고, 그 내용은 산성 북쪽에 위치한 추정 왕궁 터에 보고됐던 것 같다. 가야 정치체의 존재가 고고학 자료로 입증됐다. 장수군 일원에는 봉분의 직경이 20m 내외되는 240여 기의 가야 중대형 고총이 밀집 분포되어 있다. 가야 고총은 봉분이 서로 붙은 연접분으로 장수가야의 독자성이 확인됐고, 목관에 사용된 꺽쇠도 나왔다. 지난해 장계분지 진산 성주산 동남쪽에서 추정 왕궁 터도 찾았다. 유물은 유적의 연대를 결정하는 열쇠이다. 임실 봉화산 등 10여 개소의 봉화에서 삼국시대 토기편만 나왔고,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는 출토되지 않았다. 더욱이 장수가야에서 직접 만든 가야토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장수 삼봉리 산성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도 6세기 전후로 문헌 및 고고학 자료와 일치한다. 전북 동부 가야 봉화망의 연대가 첨단과학으로 검증됐다. 전북 동부 봉화의 역사성이 고증되기 이전까지는 장수가야라는 임시 용어로 불렸다. 2020년 전북 동부에서 축적된 고고학 자료를 문헌에 접목시켜 장수가야를 반파가야로 비정했다. 지금도 가야 봉화의 역사성을 더 고증하기 위한 발굴조사와 제철유적을 찾는 지표조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전국에 봉화망을 구축하려면 국력이 실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일본열도를 포함하여 전북 동부 이외의 지역에서는 가야 봉화가 발견되지 않았다. 역사고고학은 문헌, 금석문을 고고학 자료에 접목시켜 역사시대를 연구한다. 문헌의 내용이 유적과 유물로 증명되면 학계의 논의가 시작되고, 이를 근거로 결론이 도출되는데, 그게 바로 반파가야이다. 단언컨대 반파가야는 문헌의 내용을 고고학 자료로 대부분 충족시켰다. /곽장근 군산대 교수 △곽장근 교수는 군산대 가야문화연구소장·전라북도 문화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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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1.09 18:53

‘전북민국’으로 가자!

2021년 연구년을 맞아 지역살이를 이어왔다. 로컬에서 더 행복하게 일하며 사는 사람들을 찾아가 만났고, 그네들 삶과 이야기를 담은 100여개 영상을 유튜브 채널 <도시의 정석>에 올렸다. 하동, 목포, 전주, 강릉에서는 한달살이를 했다. 대한민국의 로컬을 다시 발견했던 선물 같은 1년이었다. 환갑을 맞는 2022년 새해를 앞두고 여생에 꼭 이루고 싶은 두 개의 꿈을 가슴에 품었다. 첫 번째 꿈은 ‘일백탈수, 일 년에 백만 명씩 탈수도권’ 하는 인구 대이동이다. 국토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1970년대에는 국민의 3분의 1이 살았는데, 2019년을 기점으로 과반을 넘었다. 수도권 인구는 점점 늘어 온갖 문제가 심화되고, 비수도권 지역은 인구를 빼앗겨 지방소멸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답은 하나, 수도권에서 비수도권으로 인구이동 뿐이다. 수도권을 떠나는 인구이동은 이미 시작되었다. 특히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의 지역이주는 점점 늘어가는 추세다. 베이비부머들의 탈수도권에도 기대를 건다. 평생 열심히 일하느라 고생했던 중장년들이 앞으로 남은 30여년을 로컬에서 더 행복하게 살아보자고 ‘강추’한다. 자녀들을 로컬에서 더 잘 키울 수 있다는 믿음이 확산된다면 학부모와 자녀들의 탈수도권도 늘 것이다. 꼭 이루고 싶은 두 번째 꿈은 <지역민국>이다. 수도권을 떠나 뿔뿔이 흩어지지 말고,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여 지역민이 주인인 나라 ‘지역민국’을 세우는 것이다. 2023년 새해를 맞으며 ‘전북민국’의 꿈을 꾼다. 이 꿈을 180만 전북도민들과 함께 꾸고 함께 이루고 싶다. 2021년 고향 전주에서 한달살이를 하면서 전북의 안타까운 현실을 목도했다. 전주에서 군산, 익산까지 편리하게 연결해주는 대중교통이 없어 매우 불편했다. 인근 도시를 연결해주는 대중교통이 없는 이유를 물으니 인구를 뺏길까봐 연결을 원치 않는다고 들었다. 힘이 부치는 전북이 하나로 뭉쳐도 버거울 텐데 서로 인구 뺏기 경쟁을 하고 있다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전북민국’을 만들자. 전라북도 14개 시군이 하나로 합체하여 서로의 장점을 나누며 상생할 수 있도록 새로운 판을 짜자. 약체인 소도시들끼리 서로 뺏고 뺏기는 제로섬 게임을 멈추고, 협력과 연대로 상생하는 하나의 전북을 엮자. 나는 ‘전주시민’, 당신은 ‘장수군민’, 이런 생각 던져버리고 우리는 다 같은 ‘전북시민’으로 생각하고 서로를 부르자. 전북민국의 시작은 ‘전북 BRT’일 것이다. 14개 시군을 가장 빠르게 연결하는 도로 위에 버스전용차로를 긋고 새벽부터 자정까지 촘촘한 배차간격으로 주요지점에만 정차하는 간선급행버스(BRT)를 운행한다면 전북은 하나의 생활권이 되어 상생할 수 있을 것이다. 진안 청년이 하루 일을 마치고 부안 친구를 찾아가 저녁식사에 술도 한잔한 뒤 대중교통으로 집에 올 수 있게 된다면 참 좋지 않겠는가? 수도권을 떠나는 사람들이 가장 오고 싶고 살고 싶은 전북을 만들자. 남녘 유일의 고원과 지평선을 보유하고 시군마다 매력이 넘치는 전북은 대한민국의 축소판 아닌가? 탈수도권을 꿈꾸는 이들에게 이렇게 초대하자. “전북으로 오세요. 전북 어디를 선택하든 나머지 열세 곳을 ‘덤’으로 드리겠습니다.” 새해다. 새로운 꿈을 꾸자. 때마침 전북특별자치도법도 통과되었다. ‘전북민국’으로 가자!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서울연구원 동북아도시연구센터장·서울시 마을공동체위원장 등을 지냈으며, 유튜브 <도시의 정석>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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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1.02 13:52

2022년 마무리, 2023년 새로운 시작

엊그저께 검은 호랑이 새해를 맞이한다고 이야기 했었는데 벌써 한해가 마무리가 되어간다. 2022년은 위드 코로나로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를 해나가면서도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고 새로운 변화에 대한 준비를 일깨워 주는 한해였다. 코로나19를 이겨내기 위해서 문화판 현장뿐만아니라 곳곳에서 비대면 ,거리두기 등 다양한 시도와 경험이 있었다. 지금은 길에서 마스크를 벗고 다니는 사람들도 어색하지 않다보니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았지만 다양한 생각들과 함께 가벼운 미소가 지어진다. 앞서 경험했듯이 재화나 서비스는 생산과 소비가 적절하게 잘 흘러야 그안에서 경쟁도 이뤄지고 좋은 결과도 발생을 하고 성장도 한다. 예를들어 문화와 예술도 소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생산도 멈추게 된다. 문화를 경제적인 논리로만 바라볼수는 없겠지만 먹고사는 문제속에서 쉽게 직업적인 현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코로나 시기에 아무리 좋은 공연이나 행사도 관객이 없어서 취소하거나 연기하고 많은 단체들이 비대면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그래서 침체된 시기속에서도 4차산업시대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고 크리에이터는 학생들이 되고싶은 직업 상위권에 속할만큼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유투버라는 말은 하나의 직업처럼 되었고 취미로 누구나 쉽게 접근할수 있다. 오히려 문화 소비적 관점에서는 비대면을 선호하는 사람도 늘어났고 생산적 측면에서 바라봐도 핸드폰하나 있으면 누구나 예술가처럼 크리에이터가 될수 있다. 이처럼 우리 삶속에 이제 깊숙이 들어와있다. 위드 코로나 다시 일상이라는 의미가 비대면 중심이 다시 대면으로 돌아가는 문제를 이야기할게 아니라 이제는 소비자 선택의 문제이다. 이제는 뮤지컬 배우가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무형 문화재 유투브 콘텐츠도 쉽게 접할수 있다. 오히려 장점은 콘텐츠를 통해서 간접적으로라도 대한민국 아니 전세계 문화를 쉽게 접할수 있다. 땅끝 마을 해남에서의 공연도 마음만 먹으면 서울에서도 즐길수 있다. 2022년 자주 언급되었던 지역소멸위기라는 이슈는 화두가 되었다. 일자리를 찾아 떠나고 인구가 줄어 경제가 활성화되기 힘든 구조 속에서는 지역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지난 문화 마주보기에서 이야기 한것과 같이 정부나 지자체 지자체 B2B 사업을 시작하는게 더 맞을수도 있다. 그러나 위기속에서도 오히려 기회를 찾는다는 말처럼 지역적 한계를 뛰어넘을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 대한민국 어디든 일일 생활권이 되었고 어제 시켰던 택배는 오늘 도착할수 있다. 심지어 오늘 수확하고 잡은 농수산물도 당일에 받아볼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나 전세계 어디라도 유투브를 통해서 노출할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쉽게 지역에서도 콘텐츠를 통해서 지역 공연을 홍보할수도 있고 전시회를 개최 할수도 있다. 코로나19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우리의 노력과 일상으로의 복귀는 오히려 지역소멸위기속에서 다양한 시도를 할수 있는 기반이 자연스럽게 마련되었다고 할수도 있다. 우리 지역의 문화와 예술 그리고 관광까지도 새로운 도전에 대한 오늘의 준비가 내일을 멋지게 맞이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4차산업시대는 지역에서의 경쟁력을 키우고 성장할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동안의 위기와 경험을 내일의 도전와 성장에 대한 발판으로 삼아 멋진 2023년 검은토끼띠의 해를 맞이하고 모두가 잘살고 행복한 한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윤낙중 카피바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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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2.26 13:39

부안 출신 고려 명현 김구선생 시, 2023년 수능 한국사 문제에

2023년도 대학 수학능력시험은 지난 11월 17일에 끝났고, 12월 9일에는 성적까지 개별 통보된 마당에 수능시험문제 얘기를 하려니 다소 뜬금없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이야기를 꺼내는 까닭은 이번 수능의 한국사 문제에 우리 전북 부안출신으로서 고려 말에 목민, 정치, 외교, 학문, 문학 등 다방면에서 큰 공적을 남긴 문정공(文貞公) 지포(止浦) 김구(金坵) 선생의 시 「철주를 지나며(원제:과철주過鐵州」가 제시문으로 출제되었기 때문이다. 김구 선생의 시가 수학능력시험 출제의 자료가 되었다는 것은 선생의 시가 그만큼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절실하게 묘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시를 ‘시로 쓴 역사’라는 뜻에서 ‘시사(詩史)’라고 한다.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으로서 한자문화권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받는 두보(杜甫)의 시를 ‘시사’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두보가 ‘안록산의 난’을 직접 겪으면서 당시의 비참한 상황을 날카로운 필치로 진실하고 처절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 수의 시는 만민을 울리는 노래가 되기도 하고, 후대에 길이 전해져서 역사를 증명하기도 한다. 고려 고종 18년인 1231년, 살리타이가 이끄는 3만의 몽골군은 함신진을 점령한 후 철주성에 이르렀다. 살리타이는 포로로 사로잡은 고려의 서창낭장(瑞昌郎將) 문대(文大)에게 철주성을 향해 “항복하라”고 외치게 했으나 문대는 오히려 “항복하지 마라!”라고 외치다가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철주방어사 이원정(李元禎)과 판관 이희적(李希勣)은 몽고군이 대부분 기병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군민들과 병력 2,500명을 평지에 위치한 철주읍성으로부터 산에 자리한 철주산성으로 옮기고 방어태세를 갖추었다. 보름 동안의 치열한 전투 끝에 식량이 떨어져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자, 이원정은 남은 화약을 적에게 넘겨 줄 수 없다며 화약고에 불을 놓아 처자와 함께 불길에 뛰어들어 자결했고, 이희적 또한 성안의 백성들과 함께 불 속으로 뛰어 들어 방어전을 펴던 관민 모두가 자결하였다. 참으로 처참한 전쟁이었다. 김구 선생은 29세에 서장관으로 원나라에 가면서 철주를 지나게 되었을 때 당시의 처참한 전투와 장렬한 전사를 회고하며 이 시 「철주를 지나며」를 지은 것이다. 시는 이렇게 끝맺음 되어 있다. “화약고가 붉은 불을 뿜던 어느 날 저녁, 즐거이 처자와 함께 재로 변하였네. 충성스런 그 혼과 장한 넋은 어디로 갔나? ‘철주전투’라며 고을이름만 속절없이 남아 있겠지…” 지포 김구 선생은 24세에 초임으로 제주판관이 되어 태풍과 야생동물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하고 경작지의 경계를 분명히 구분하기 위해 밭담 쌓기를 정책으로 시행함으로써 오늘날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제주밭담이 있게 한 인물이다. 빼어난 문장으로 몽골의 원나라에 보내는 외교문서를 도맡아 작성함으로써 외교로 고려를 지켰는데, 『동문선』에 그의 시문이 95편이나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 그의 문장력을 입증하고 있다. 유학진흥에 진력하여 성리학이 유입되는 바탕을 마련하였고,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국립통역관양성기관인 통문관을 설치하는 등 많은 공적을 남겼다. 관직은 정승의 반열인 평장사에 이르렀다. 2023년 수능시험에 선생의 시가 출제의 소재가 된 것을 기회로 전북의 자랑인 선생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가져야 할 것이다.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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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2.19 18:05

추임새, 공감의 힘

판소리와 한국의 전통음악 공연에서 빠질 수 없는 특징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단연코 ‘추임새’ 일 것이다. 추임새란 ‘추어준다’, ‘칭찬하다’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창자 혹은 연주자가 공연할 때 장단을 맞추는 고수와 공연의 관객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형태 중 하나가 바로 이 ‘추임새’이다. 많은 소리꾼이 자신의 소리를 펼쳐 보이기에 앞서 그 날의 관객과 하는 대화에서 가장 먼저 주제로 삼는 것이 추임새이다. 자신의 소리판을 관객들이 함께 만들어주길 바라며, 추임새 그득한 풍성한 공연으로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소리꾼은 추임새에 공을 들인다. 추임새에 어떤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는 ‘얼씨구’, ‘절씨구’, ‘좋다’와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또한 보통은 고수가 주도적으로 행위를 하는데 엄연히 따지자면 고수의 추임새와 관객의 추임새는 그 쓰임이나 역할이 미묘하게 다르다. 고수는 소리꾼 노래에 소리북으로 장단을 연주하는 사람이다. 고수는 추임새로 소리꾼이 하는 장면의 상대역으로 호흡을 맞추기도 하고, 북가락을 대신해 소리 장단을 맞추기도 한다. 관객의 추임새는 그야말로 그날의 판을 만들어내는 힘을 갖는다. 판이라는 장소적 혹은 행위적 개념의 비중이 큰 판소리라는 공연 장르 안에서 판을 이끄는 힘은 소리꾼뿐만 아니라 관객에게서도 나온다. 우렁찬 박수와 총총한 눈빛으로도 관객의 만족도를 가늠할 수 있지만 시종 터져 나오는 소리판의 추임새야말로 가장 직접적인 관객의 호응이 아닐 수 없다. 관객의 추임새는 소리꾼에게도 힘을 싣지만, 함께 관람하는 다른 청중에게도 흥미로운 공연 중 일부가 된다. 그들 눈에는 호흡과 호흡, 장단과 장단 사이 알맞은 구석에 맞추어 추임새 하는 관객이 더 신기해 보이기도 한다. 소리판의 가장 ‘이상적인’ 관객을 ‘귀명창’이라고 하는데 특히나 전주의 소리판에는 귀명창이 많다. 이러한 전주의 소리판은 내로라하는 명창에게도 수준 높은 공연을 원하는 관객들에게도 참 매력적인 도시가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추임새는 공연장의 분위기를 만들고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 넣는다. 공연을 앞두고 소리꾼이 품었던 긴장과 두려움은 설렘과 흥분됨으로 바뀐다. 무엇인가 부족한 것은 채우고 차고 넘치는 것은 나눠 균형을 맞춘다. 절절한 춘향가 쑥대머리 안에서는 슬픔에 공감하며 함께 울고 금은보화가 넘쳐나는 흥보가 박 타는 대목에서는 온갖 부귀와 행운을 나눈다. 추임새를 뱉어내는 찰나의 어느 순간 당사자성을 갖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판소리가 아닌 나의 이야기이며 내가 주인공이 되는 무대. 우리는 그곳에서 공감의 힘을 느낀다. 추임새의 기본 전제는 공감이다. 흥과 한이라는 단순한 단어 속에 명료하게 정리되지 않는 무수한 감정이 담겼다. 흥과 한으로 대표되는 한국 전통음악은 마치 인생과 같다. 그건 판소리뿐만 아니라 모든 음악이 그렇다. 삶을 노래하고 감정을 연주한다. 작용에 대해 호응하는 것. 참 단순하지만, 행동이 어렵다. 누군가 아프다고 이야기하는데 위로가 쉽지 않고, 누군가 기뻐하는데 함께 웃어주기 어렵다. 소리판 안에서는 꽤 쉽다. 칭찬하고 호응해주는 추임새가 넘친다. 한마디 던지는 추임새라는 호응에 여러 작용이, 많은 상대가 반응한다. 우리 사회도 이러한 단순하지만 확실한 효과를 지닌 추임새가 필요하다. 서로의 작용에 칭찬하며 호응하는 것. 그것은 대화이자 표현이다. 우리는 종종 그 단순한 논리를 잊고 사는 듯하다. 서로를 격려하고 칭찬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 그것이 추임새의 가장 큰 힘이자 가치일 것이다. 서로를 격려하고 칭찬해주는 추임새 그득한 한해를 꿈꿔본다. /송봉금 소리꾼․동문창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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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2.12 13:48

전북 아동문학의 미래

2000년 이전만 해도 전북의 아동문학가 수는 다른 문학 장르보다 많지 않았다. 그러나 발전기(2001년 이후)부터 최근까지 출판사의 공모전, 신문사의 신춘문예, 잡지의 신인문학상이 많아지고 아동⸱청소년에 관한 관심 또한 증폭되면서 전북의 아동문학가 수는 몇 배로 늘어났고 비중 있는 작품집 출간도 이어지고 있다. 동화 부분에서는 인터넷 게임을 활용한 판타지, 꿈, 지역의 역사, 전통, 자존감 회복, 가난의 문제, 음식, 장애아, 추리 등의 작품이 많고 동시 부분에서는 역사, 자연, 가족의 사랑과 생태, 전통 놀이 등 다양한 소재가 다뤄지고 있다. 비중 있는 시인들의 동시집 발간, 해마다 치르는 전주의 책에도 김자연, 문신, 박서진, 임미성, 장은영 등이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올 3월에는 전국 최초의 동화 잡지 ≪동화마중≫이 지역에서 창간되어 전북 아동문학의 앞날을 한층 밝게 한다. 2010년 이후 전북 아동문학 작가들의 작품 활동은 활기가 넘쳤다. 동화에서는 김근혜, 김영주, 김양오, 김자연, 박서진, 박월선, 서성자, 이경옥, 오복이, 유수경, 윤미숙, 윤일호, 이라야, 이희숙, 장은영, 전은희 등이 동시에서는 경종호. 김유석, 문신, 신재순, 박예분, 송창우, 임미성, 유강희, 윤형주, 정성수, 하미경, 동시조 부분에서는 유응교, 정광덕이 저마다 활발한 작품 활동을 벌이고 있다. 최기우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동극집을 발간하여 아동극을 선도하고 있다. 비중 있는 시인들의 동시집 출간도 전북 아동문학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김남곤, 김유석, 김용택, 복효근, 박성우, 안도현, 유강희 시인들이 의미 있는 동시집을 선보였다. 이들의 동시집은 전북 동시 문단뿐만 아니라 한국 동시 문단을 풍요롭게 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특히 박성우의 청소년 시집 『난 빨강』과 유강희의 『손바닥 동시』는 한국 동시의 새로운 장을 선도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성과물로 평가된다. 아동문학 작가의 가치 척도는 작가의 등단 시기와 실제 작품 생산 활동 시기상의 차이, 동화와 동시를 교차 생산하는 아동문학가들의 특성상 조금씩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동문학 작가의 문학적 특성은 작품이 많고 적음, 특정 단체 가입 여부, 작품과 별개의 화려한 약력으로 조명되는 것이 아니라, 시기적으로 그 작품이 가지는 고유성과 가치에 의해 평가된다. 따라서 전⸱북 아동문학가들이 시대적⸱ 특성을 잘 살피고 한국 아동문학이라는 큰 물줄기 속에 창작에 임했으면 한다. 전북 아동문학 작품이 한국 아동문학 작품이 되도록 시야를 조금 더 확대해 나갔으면 좋겠다. 이미 기존 작가들이 충분히 다루었던 소재나 인물을 새로운 관점 없이 작품집으로 엮어내는 일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아이들이 처한 현실, 공부⸱상처, 외로움. 지구환경, 인터넷 등 시대성을 반영한 차별화된 작품, 실험성을 내포한 추리, 모험심을 다룬 작품에 대한 과감한 도전, 청소년을 위한 작품, 100세 시대를 사는 어른의 동심을 어루만지는 데도 보다 관심을 기울여 줬으면 좋겠다. 아울러 연구와 평론이 활발하지 않으면 애써 발표한 훌륭한 작품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전북 아동문학 발전을 위해서라도 연구와 평론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길 소망해 본다. /김자연 전북작가회의 회장·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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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2.05 14:10

지역주의와 자생력의 딜레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쟁을 기본적인 원리로 가지고 간다. 그속에서 승자와 패자가 나뉘고 강자와 약자가 동시에 존재하게 된다. 경쟁속에서 살아난 사람은 무엇이든 보상을 받고 더 성장한다. 그러다보니 더 우월한 지위에서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쌓아가기 수월하다. 최근 어떠한 일을 할 때 흔치 않게 들리는 말이 지역 업체인지 아닌지 물어본다. 이전에는 수도권과 지역으로 많이 비교를 했다면 최근에는 전라북도 지역내에서도 더 세분화 하여 관내로 분리한다. 지역의 경우 시장 자체에서 자생력을 갖기 힘들다. 소비자를 직접 만나서 수익을 내는 B2C보다는 기관을 상대로 하는 B2G 혹은 기업이나 단체를 상대로 하는 B2B로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특히 일반 사업의 경우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데 문화예술은 소비의 특성상 지원금 없이 자생력을 갖기란 아주 힘들다. 결국 정부 지자체에 의존성이 크다보니 어떠한 일을 하기위한 다툼이 자생력과 경쟁력 이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지자체도 더욱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여 지역의 구성원이 자생력을 갖고 경쟁력을 키울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도 중요하다. 그러나 일은 제한적이고 하려는 사람이 많다보면 당연히 우리 지역 안에서도 경쟁이 일어나고 다툼이 발생한다. 객관적 지표로 나오지 못하는 일들은 현실에서는 그 외적인 요소가 판단의 명분이 되는경우가 더 많다. 결국 지역에서 힘의 논리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 여기에서 힘의 논리라는 권력만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고 대내외적인 명분과 인지도 등 복합적인 것을 말한다. 지역에서는 어떠한일을 하는데 있어서 누구를 알고가 정말 중요하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를 한다. 비단 지역만의 문제는 아니고 어디라도 사람이 사는 공간이라면 비슷할거라고 생각이 든다. 자생력과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 실력을 키우고 노력을 하자라는 뻔한 이야기를 하려는게 아니다. 사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지역의 특성상 수도권 타 지역과 비교하여 위험을 감수하며 도전만 할수있는 환경은 힘들다. 지역의 민간 기업이나 단체들은 어쩔수 없는 B2G가 차선의 선택일수도 있다. 예를들어 문화예술단체는 연초 정부나 지자체 지원사업 선정에 따라서 일년의 방향이 결정되고 그때 여러 사업에 선정되지 못하면 존폐를 생각할만큼 힘들다. 그만큼 지역에서는 지자체의 권한의 쓰임이 정말 중요하다. 생계가 달린만큼 대부분 경쟁력을 키워 자생력을 키우기보다 권한의 선택안에 들기 위해서 노력할 수밖에 없다. 결국 살기위한 선택이 지역의 경쟁력을 키우는것보다 뒷전이 되고만다. 이러한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로 노력해야겠지만 권한을 가진사람이 기회의 공정이라는 것을 넘어 지역의 발전을 위한 의지도 어느정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생각보다 순수하게 실력과 경쟁력을 키워 성장할 생각만 하지 권한의 선택에 들기위해 지원금을 많이 받기 위해서 정책을 잘 분석하고 준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결국 이러한 노력이 무너지면 다시 경쟁력보다 그 외적인 관계에 더 신경을 쓰며 자생력을 갖기 힘들다는 악순환의 반복이 된다. 지역 관내 업체 및 단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외부적인 관계를 잘하는 것을 명분으로만 삼을게 아니라 누구나 도전하고 노력하면 성공할수 있다는 인식을 만들어져야 발전하는 지역이 될거라고 생각한다. /윤낙중 카피바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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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28 13:55

속인대서 속을까? 내 아이는 죽었어도 봄은 다시 올 텐데

조선시대 시인 홍세태(洪世泰1653~1725)의 「유감(有感)」이라는 시에는 자식을 잃어버린 후에 맞은 어느 봄날의 허전함이 절절하게 배어 있다. “전에는 우리 아이와 옆집 아이가 함께 놀았었는데, 오늘은 옆집 애만 홀로 왔구나. 봄바람에 꽃다운 풀, 고운 꽃들, 어느새 또 못가에 가득건만(昔與隣兒戲, 隣兒今獨來. 東風芳草色, 忽復滿池臺).” 세월은 가고 산 사람이라서 살다보면 이태원에서 죽은 자식도 더러 한두 시간 씩은 잊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풀과 꽃이 새 생명으로 다시 피어나는 어느 봄날 불현듯 ‘내 자식은?…’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부모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참사를 막지 못해서 내 자식이 죽었다’는 사실을 다시 절감해야 하는 부모는 그 원통함을 어떻게 삭일 수 있을까? 이태원 참사는 주최 측이 없는 자발적 집회에 대한 통제 매뉴얼이 없어서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크게 터지고 말았다는 점을 설령 인정한다 하더라도 ‘정부 윗선’사람들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주최 측’, ‘매뉴얼’ 이런 거 따지기 전에 “정부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해야한다.”는 큰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10만 이상의 인파가 몰리리라는 점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행정안전부도, 서울시도, 서울시 지방경찰청도 아무런 예방조치를 안 했다는 점에서 유가족들은 가슴이 찢어질 만큼 억울하고, 국민들은 머리가 쭈뼛거릴 만큼 화가 치미는 것이다. 그럼에도 총체적 책임을 져야할 ‘윗선’은 여전히 ‘주최 측이 없는 자발적 집회’라는 점을 면책의 구실로 삼으면서 참사가 터진 후에 대응을 제대로 못한 사람들에게만 엄정수사와 과학수사의 자를 들이대고 있다.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중국 송나라 때의 학자인 사마광은 “울부짖으며 눈물을 흘린다 해서 다 진정으로 슬퍼하는 것은 아니다.… 감동은 진실에서 나온다. 남을 속이려 들면 발꿈치를 돌리기도 전에 상대방이 먼저 알아차린다.”라고 했다. 국가 애도기간에 슬픔에 겨워 매일같이 조문한 사람도 있을 테고, 지금도 이태원 현장을 찾아 헌화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진심어린 조문은 유가족에게 큰 위로가 된다. 그런데 사람은 왼손으로는 네모를 그리면서 오른손으로는 동그라미를 그리기가 쉽지 않다(人莫能左書方而右書圓也-한비자). 동그라미든 네모든 하나를 택해 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그려야 감동을 주는 그림이 나온다. 누구라도 책임을 면하고자 이중의 마음으로 그저 조문을 위한 조문을 한 사람이 없었기를 바란다. 중국 당나라 때 시인 이상은(李商隱)은 “보는 사람이 없다 해서 하나라도 속이려 들지 말라. 다른 날, 곁에 있었던 돌이 말을 할까봐 걱정하게 될 테니(莫爲無人欺一物, 他時須慮石能言).”라고 했다. 우리가 한 거짓말을 돌(石)이 들어뒀다가 나중에 폭로할 수도 있으니 아예 거짓말 할 생각을 말라는 뜻이다. 참사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말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솔직함이 민심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처방이다. 정직한 사과가 용서받는 최선의 길이다. 엄청난 참사의 근본 원인을 꼬리자르기로 속인대서 국민이 과연 속을까? 내 아이 죽은 자리에 봄이 오면 그 분노, 그 한이 다시 살아날 텐데…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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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21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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