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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시간

장세길 전북연구원 사회문화연구부 연구위원 문화를 한마디로 말하면 사회구성원이 공유하는 가치체계이다.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고 생각해보자. 익숙하지 않은, 이질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거부하고, 헝클어트리고, 경험하는 과정을 거쳐 사회구성원이 공유하게 되었을 때, 그 현상은 하나의 문화가 된다. 문화 활동가들이 문화사업으로 결과를 얻으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가 이래서다. 가까운 사이라도 마음을 얻으려면 긴 시간 동안 공을 들여야 한다. 문화사업은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일이니 오죽할까. 문화의 시간은 이렇듯 길다. 정책의 시간은 다르다. 회계연도와 관련하여 대개 1년이 주어진다. 짧게는 2~3달에 성과가 나와야 한다. 지자체 역점사업이더라도 길어야 4년이다. 기초를 다지고 주민을 설득해 무언가 성과를 보이려는 순간, 자치단체장이 바뀌면서 사업이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완주군에 정신장애인 문화공동체가 있다. 구성원에게 예술교육을 제공하려고 2019년에 문화사업에 참여하였다가 공동체로 발전하였다. 사진교실을 진행하면서 구성원의 생각과 행동뿐 아니라 정신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달라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작년에는 독자적인 완주형 매드 프라이드(Mad Pride) 축제를 열었다. 이 축제는 정신장애인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자리이다. 5년의 시간이 정신장애인 자조모임을 완주형 매드 프라이드 축제로 만들었다. 사적인 공동체는 사회적 활동을 하는 공동체로 발전하였고, 구성원은 정신장애인의 사회적 시선을 바꾸는 활동가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신장애인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바뀌는 효과가 나타났다. 매드 프라이드 축제만으로 완주군은 문화다양성을 실천하는 도시가 되었다. 정작 구성원들은 이 사실을 모를 수 있으나, 그저 좋아서 한 활동이 많은 성과를 이루었다. 이러한 성과는 5년 동안 단계별로 지원하는 문화도시만의 독특한 사업체계 덕이다. 문화도시 조성사업은 사람을 발견하고, 역량을 키우고, 연대하고, 콘텐츠를 발굴하고, 사회화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수행하는 연차별 사업평가에서도 느리지만 하나하나 기반을 다지는 과정을 세심하게 들여다본다. 지방선거 이후에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문화 현장에서는 오랫동안 공들여온 사업이 어느 순간 사라질 수 있다며 걱정한다. 수장이 바뀌면서 담당자도 바뀌고, 사업이 폐지되거나 대폭 축소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더 큰 문제는 문화사업은 긴 호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겨우 심어놨는데 수장이 바뀌어 이 과정을 다시 밟아야 한다는 점이다. 문화 현장에서는 문화의 시간과 정책의 시간이 늘 부딪힌다. 행정이 공공예산을 투입하고 성과가 나올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는 없지만, 문화사업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만이라도 해주면 좋겠다. 일하는 이들이 조급하지 않도록 말이다. 문화 활동가들은 공공예산이 투입된 만큼 사람의 생각을 바꾸려는 지난한 시간 속에서 어떤 성과가 있는지를 스스로 증명하여야 한다. 행정을 설득하려면 말보다 구체적인 지표가 필요하다. ‘문화사업 최소시간 보장제’ 같은 법을 만들면 좋겠지만, 쉽지 않을 일이다. 현재 제도로도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다. 수장이 바뀌어도 정책 기조가 확 바뀌지 않으면 된다. 순환보직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전문적인 문화 행정인력의 배치가 그 방안이다. 사회복지 행정인력처럼. /장세길 전북연구원 사회문화연구부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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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9.04 18:22

걷기, 다시 신흥계곡으로

갑자기 흙냄새가 콧속으로 훅 들어오면서 후두둑 비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느긋하게 천변을 산책하다 깜짝 놀라 함께 온 강아지 두 마리와 정신없이 달리는데, 소나기가 계속 뒤를 따라온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우릴 따라붙은 소나기 때문에 신흥계곡은 검은 바닷속이 되었다. 나는 깊은 바닷속 풍경 앞에 모종의 두려움 섞인 경이로움에 꼼짝 못 하고 현관에 서 있었다. 리호이나키였나, 한 장소를 안다는 것은 그 땅의 영기에 사로잡혀, 거기에서 두려움과 공경심, 겸손과 감사의 마음으로 산다는 것을 뜻한다고 했던 이가. 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은 계곡물 속에 자유로이 유영하던 물고기, 새우, 다슬기, 가재 등 온갖 수생물이 점점 사라져가고, 자연의 풍광은 쓸쓸하고 황량한 것으로 되어가고 있다. 신흥계곡이 점점 무시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계곡을 먹어 치운 자본의 욕망이 그려놓은 지금의 풍경이 신흥계곡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의 위기이다. 지금의 이 풍경에 익숙해진다면 우리는 영영 풍경의 기원을 찾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걷기 시작했다. 매주 토요일, 한 주도 빠지지 않고 걸었다. 지난주에 161회를 걸었으니 그간 흔들렸지만, 오래 걷기에 필요한 근기나 결기는 입증되지 않았나 싶다. 소수였기에 ‘지는 싸움’일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지만, 걷기는 “신흥계곡을 모두의 품으로”라는 구호를 가슴에 안고 현실의 벽 앞에서 속절없이 주저앉는 대신 출구가 돼 주었다. 욕망의 기분에 이끌려 호락호락 호출당하지 않고 매주 토요일 오전이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진득하게 따라 걸으면서 주고받은 충만한 대화는 연대의식을 솟아오르게 했다. 비록 사소해 보이지만 걷기는 동무들을 신흥계곡으로 매주 불러들였고, 신흥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자본제적 체계 밖으로 나가는 길을 함께 모색하게 했다. 언제쯤 발전이나 개발에 식상해하며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다 쓰지 않고 남겨둘 수 있을까. 자본주의의 동선과 속도를 벗어난 사라진 기원을 회복하는 것이 가능할까. 특히 걷기는 우리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어 주었다. 걷기를 시작한 후로 위기 상황이 아닌 적이 없었지만, 사회가 바뀔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가능하게 했다. 무엇보다 자본의 탐욕은 무시간과 탈역사로 터질 듯 채워져 있으니, 그 속을 느리게 걸으며 바람과 구름, 금낭화와 찔레꽃, 하늘을 나는 새가 이렇게 가까이 있음을 느끼며 어떤 삶의 양식을 몸에 익혔다. 조금씩 탈자본주의적 시간성과 역사성을 회복하여 둔해져 버린 감수성을 벼리고 비틀거리면서 지속할 수 있었던 어떤 삶의 양식, 그것이 바로 걷기였다. 신흥계곡에 살면서 갖게 된 기이한 느낌이 있다. 그것은 가끔 어떠한 장소가 오히려 나에게 먼저 다가와서 자신을 열어 보이는데, 그때 느끼는 그 친숙함은 무어라 설명할 수가 없다. 이러한 설명할 수 없음은 마치 이곳에 우연히 그러니까 아주 우연히 들어간 복덕방에서 그곳에 놀러 온 아저씨와 몇 마디 나누다가 그 아저씨의 소개로 이사 오게 된 이 사건이 사실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신흥계곡이 나를 이곳으로 부른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여전히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니 걷는다. “내가 위태로운 길 진물 나게 걷는 동안 그대는 다만 무사하신가”(권경인) /이선애 농부∙완주자연지킴이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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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28 16:06

변했으면 하는 교통 문화

12년 전 방문 교수로 이타카라는 미국의 아주 작은 대학 도시에서 생활 한 적이 있다. 미국 시골에서는 차가 없으면 모든 생활이 불편하기 때문에 미국 운전면허 시험을 보고 16살, 17살 나이의 중·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안전 교육을 받는 경험을 했는데 교육 중에 내가 느낀 우리와 가장 다른 교통 문화는 신호등 없는 교차로 통행 방법이었다. 미국에서는 신호등 없는 교차로에 어김없이 스탑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스탑 표지판 앞에서는 무조건 차가 멈춰서야 하고 먼저 온 순서대로 한 대씩 교차로를 통과해야 한다. 동시에 차가 멈춰 섰을 경우에는 우측에 위치한 차가 우선권을 가지고 먼저 출발하면 된다. 한번은 내 차와 맞은 편 차가 동시에 교차로에 멈춰 선 적이 있었다. 이 경우는 정면 대치라 두 차 모두 오른 쪽 차량이 될 수가 있다. 나는 이방인이기도 하고 나름 양보 한다고 앞 차가 먼저 지나가도록 기다려 주는데 앞 차가 갑자기 나에게 하이 빔을 날린다. “아니 저자식이... 내가 양보 해주는데 그냥 갈 것이지 매너 없이 하이 빔을 날려?” 나도 분노의 대응으로 하이 빔을 날려 주었다. 그랬더니 앞 차가 또 나에게 하이 빔을 날린다. 우리는 서로 하이 빔을 마구 날렸다. 마치 서부영화에서 두 총잡이가 총질을 하듯이 말이다. 다음 날 수업 시간에 어제 있었던 이 매너 없는 운전자에 대해 이야기 했더니 학생들이 웃으며 나에게 말 해 준다. “이럴 때 하이 빔은 내가 양보 할 테니 당신이 먼저 가세요란 뜻이에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의미였던 것이다. 갑자기 상대방 운전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생각해 보면 상대방 운전자는 서로 양보하겠다는 아름다운 경험으로 생각했을 터이니 마음의 빚은 생기지 않았다. 하이 빔 사용에 대한 극명한 문화 차이는 나에게 꽤나 신선한 충격을 주었지만 신호등 없는 교차로 통행 방법은 사실 처음에는 익숙하지도 않았고 불합리해 보이기까지 했다. 차량 한 대 안 보이는 교차로에서도 무조건 멈춰서야 하고 다시 출발 하는 게 낭비처럼 보였다. 더군다나 신호등 없는 교차로가 연속적으로 나타날 때에는 세상에 이런 비효율이 있을까 싶었다. 이런 이유로 스탑 표지판을 무시하고 그냥 통과하는 차들이 종종 눈에 뜨이기도 하는데 이럴 때면 어김없이 숨어있던 경찰차가 나타나 딱지를 뗀다. 미국에서의 이런 운전에 익숙해질 무렵 한국에 귀국해서 운전을 할 때 가장 신경이 쓰였던 부분은 신호등 없는 교차로를 지날 때였다. 주변을 잘 살피며 서행을 하라고 하는데 내가 선의로 양보를 하면 상대방 차들이 그냥 오리 떼 마냥 줄줄이 지나간다. 한 대씩 차례로 보내주는 경우를 거의 경험하지 못했다. 내 뒤차는 왜 거기서 양보해 가지고 우리 쪽이 못 가게 하냐며 경적 음과 함께 하이 빔으로 항의 표시를 한다. 여·야, 아군·적군이 있듯이 도로에서도 생판 남남이지만 네 편·내 편이 생성된다. 도로교통법 26조를 보면 대로 우선, 우측 차량 우선, 직진 우선 등 신호등 없는 교차로 통행 방법이 나와 있기는 하지만 사고 예방 보다는 사고 발생 시 과실 비율을 나누는데 사용되는 용도로 느껴진다. 요즘 한국의 교통 문화도 보행자 보호 위주로 변화되어 가는 모습이 좋아 보이는데 다른 나라의 합리적인 교통 문화는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우리의 교통 문화도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해 나갔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민성욱 전주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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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21 15:34

문화유산 개념의 확장

올해 5월 국가유산기본법이 제정되면서 ‘문화재’라는 용어 대신 ‘국가유산’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관련 정책 환경의 변화와 유네스코 등 국제 추세에 맞추어 ‘재화’의 의미를 담는 문화재보다는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유산’으로 명칭을 변경, 확장하고 세계유산과 유사한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의 세부 분류체계를 갖춘다는 취지이다. 이 법에서는 ‘문화유산’을 우리 역사와 전통의 산물로서 문화의 고유성, 겨레의 정체성 및 국민생활의 변화를 나타내는 유형의 문화적 유산이라 정의하고 있다. 일반 대중에게 낯설지 않은 문화유산이라는 개념은 서구에서 헤리티지(heritage)라는 단어의 의미로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라는 사적 차원에서 출발했다. 즉, 개인이나 가문을 상징하거나 가치 있는 물건이 대대로 내려온 상태를 의미했다. 이후 민족국가(국민국가)가 성립되며 문화유산의 민족적 또는 민족주의적 가치가 부각되고 국가의 보호를 받으면서 공공의 문화유산 개념이 성립되었다. 문화유산은 민족, 국가와 같은 공동체의 의미 있는 특정한 과거를 환기시키고 공동의 기억을 형성시킬 수 있는 유형의 증거로 이해되었다. 공동의 기억 저장 창고와 같은 문화유산은 공동체의 가치 확립에 도움을 주고 그 상징처럼 역할하였다. 민족국가가 성립되는 시기 서구에서 문화유산은 국가의 긍정적인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하여 국가의 자부심을 확립하고 국가 구성원들의 뿌리를 확인시켜 주는 ‘아름답고 찬란했던 황금기’를 창조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국가의 기억이 결집된 이러한 문화유산에는 궁전이나 박물관과 같은 유형의 유산뿐 아니라 국기나 국가(國歌)와 같은 무형의 유산도 포함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네스코의 활발한 활동에 의해 문화유산은 인류가 공동으로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문화유산의 범주가 개인, 국가, 인류로까지 확장되면서 ‘문화적 산물’로서의 개념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문화유산은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만들어져 그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적 산물로 인식되어 그 의미가 고정된 정적인 개념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20세기 말 이후 문화유산은 현시대의 해석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동적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우리 시대에 문화유산이라는 개념은 정부, 전문가, 시민, 이해관계자 등이 특정 대상에 대해 갖는 집단 기억과 가치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이들 간의 사회적 합의에 따라 변화하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즉, 문화유산은 현재 우리 시대의 정치, 사회,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우리의 해석에 따라 변화해 갈 수 있는 것이다. 문화유산을 문화적 산물로 인식하기 보다는 문화적 과정으로 인식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문화유산에 대한 이러한 동적 인식을 ‘문화유산화(heritagization)’라고 개념화하고 있다. 문화유산화는 현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특정 과거를 선택하고 이를 대표화하는 과정과 맞물려 있어 그 특정 과거와 관련된 많은 사람의 서로 다른 의견이 취합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논쟁과 사회적 쟁점, 정치적 분쟁이 수반된다. 국가나 공동체의 기억 및 정체성 형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문화유산은 이러한 사회 정치화 과정 속에서 재해석되며 재평가되는 것이다. 이제 문화유산은 과거로부터 내려온 고정된 가치이기 보다 현재를 사는 시민의 참여로 만들어져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송석기 군산대 건축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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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07 17:37

인정만 하면 된다. 그뿐이다.

가을이면 서로 다른 종교인이 손을 잡고 걷는다. 종교 간 화합을 말하는 세계종교문화축제, 총을 겨누는 게 아니라 손을 잡고 걷는 모습에 세계가 놀란다. 누구는 이게 다른 이를 포용하는 전북의 문화라고 말한다. 그런데 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주교, 이른바 4대 종교 외에 다른 종교인도 참여하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이왕이면 무슬림 손도 잡으면 좋지 않을까? 이게 진정한 화합이지 않나? 전주국제영화제를 부르는 다른 말이 있다. ‘영화표현의 해방구’. 다른 영화제에서 상영이 불허된 영화, 소수를 다룬 영화를 어떤 검열도 없이 당당하게 스크린에 올리는 영화제, 그래서 많은 영화인이 전주국제영화제를 칭찬한다. 누구는 이게 전주 문화의 힘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2018년 전주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던 섬뜩한 피켓을 모두가 기억한다. 전주에서도 스크린을 벗어난 표현은 자유롭지 못하다. <문화혼종성>을 펴낸 피터 버크 교수는 이질적인 문화를 접하는 사회는 용인, 거부(저항·정화), 분리, 적응이라는 네 가지 특징을 보인다고 말한다. 자기 집단에 위험을 느끼는 문화는 철저하게 거부하거나 분리하지만, 위험이 적은 문화는 용인하거나 이질적인 문화에서 필요한 부분을 자기 문화에 맞게 변형하여 적응시킨다는 게 피터 버크 교수의 설명이다. 우리와 다르거나, 소수인 문화를 대하는 방식은 문화별로 다르다. 앞에서 살펴본 두 사례처럼, 어떤 문화는 용인하나 어떤 문화는 철저하게 분리하거나 내친다. 같은 소수문화라도 소수집단 간 ‘차별의 차등화’가 나타나고, ‘소수문화집단 내 소수자 문제’도 심각하다. 존재를 부정당하는 성소수자처럼 같은 소수자라 하더라도 차별의 무게가 다르다. 소수문화의 차별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민사회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비혼공동체를 단순한 ‘여자들 모임’으로 치부하며 “남자들 모아서 집단 미팅하자”라며 건네는 농담, 성소수자의 강간을 ‘교정’강간이라며 합리화하는 태도 등 특정 소수문화에 대한 차별은 여전하다. 아시아 관광객은 반갑지만 아시아 무슬림은 내키지 않는다. 선별적 포용과 배제, 정책에서도 나타나는 문제이다. 전북연구원 조사(2020년)에서 사회적 소외도가 큰 범주 1위는 성적지향이었다. 그런데 정책적 시급도를 묻는 말에는 장애문화가 1위로 조사되었다. 중요도가 높다고 응답한 성적지향과 종교는 오히려 정책 시급도가 낮아졌다. 사회적 갈등이 첨예하고 혐오표현이 일상적인데도 이렇다 할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정책 뒷순위로 미뤄두는 정부의 한계가 지역에서도 나타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인식은 문화정책에 반영된다. 성적지향이나 특정 종교의 표현과 관련된 사업은 지자체에서도, 지자체 출연 문화기관에서도 만나기 어렵다. 소수자는 구성원이 적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반복적인 차별과 배제를 받는 집단을 말한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분배의 정치’가 아니다. 자기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인정의 정치’(Politics of Recognition)를 원한다. MZ세대의 다름을 인정하듯, 우리 이웃인 그들의 문화가 다름을 인정하면 된다. 그뿐이다. 다름을 인정하면, 여러 문화가 적응되어 새로운 가치가 창출된다. 이것이 2014년에 법률로 제정되고 2019년에 도조례로 제정되었으나 아직 갈 길이 먼 문화다양성이다. /장세길 전북연구원 사회문화연구부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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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31 14:56

여기, 신흥계곡에서

그걸 한번은 봤어야 한다. 수백 마리의 나비 떼가 현관 앞을 마치 자기 집인 양 점령하고 있는 모습을. 그 나비들이 추는 춤을 적어도 일생에 한 번은 봤어야 한다. 어느 봄날 현관을 나서는데, 수백 마리의 뿔나비 떼가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것은 검은 눈이 휘날리는 사위로 분분히 털어내며 흩어지는 형국이었다. 그 기세가 자못 하늘과 땅을 뒤덮을 정도였다. 나는 모종의 두려움 섞인 경이로움에 꼼짝 못 하고 서 있었다. 그 검은 눈에 현기증 났던 감동을 몇몇 마을분과 나누니, 한 어르신이 그러신다. “나는 어떨 때는 유리창에 나비가 커튼처럼 달라붙어서 빗자루로 쓸어내려”. 그 이후로도 여러 차례 길게 돌아오던 산책길 천변에 마치 카펫처럼 새까맣게 펼쳐져 있는 나비들을 보았다. 그러다 나비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6~7년 전부터는 뿔나비를 한두 마리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대체 이게 무슨 경우란 말인가? 하늘을 뒤덮을 듯 흩날리던 나비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사라져버린 나비에 대한 부채감을 눈곱만큼이나마 가지게 되면서 나비가 살던 이 신흥계곡이라는 장소는 단지 물리적 입지도 추상적 개념도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 장소는 인간과 나비가 생활하는 ‘생활세계’임을 깨달았다. 인간이 취하는 태도에 따라 나비가 살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가, 나비를 떠나게 하는 장소상실의 곳이 되기도 한다. 아무리 장소상실이 우리의 환경이 되어가고 있다 하더라도 인간과 나비는 장소와 별개가 아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저마다 주변의 장소와 오랜 시간을 통해서 얻은 친밀감으로 긴밀하게 관계를 맺으면서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장소를 자본제로 여기면서 단순한 위치로 환원시켜버린 이곳 어디에선가 지금도 장소를 빼앗기거나 장소에서 뿌리 뽑힌 뭇생물들이 항의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항의를 외면한다. 장소가 우리 모두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무지하기 때문이다. 한 장소에 뿌리내리고 산다는 것이 존재들로 가득 찬 실재임을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의 존재 자체가 ‘생활세계’인 장소를 훼손시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엄마, 학교에서 오는데, 나비들이 내 앞에 양탄자처럼 깔려 있어서 내가 공주가 된 기분이었어요.”라며 마치 꿈으로부터 끌려 나온 모습으로 재잘거리던 아이의 이야기는 이제 전설이 되어 떠돈다. 하지만 여전히 이곳은 나비골로 불리고 있다. 무언가 해야 했다. 인간 중심적인 것에서 벗어난 다른 세계를 보여준 나비를 떠올렸다. 꼬리명주나비를 선택했다. 아주 우연한 선택이었다. 그 우연성은 차라리 운명적이었다. 어떤 필연적인 선택보다 강렬하게 하나의 목적을 세우기에 충분했다. 닭울음과 산그늘로 이어지던 시골의 시간은 아니더라도, 여기 신흥계곡에 나비만큼은 예전의 모습으로 돌이키겠다는 위험한 희망을 품었다. 꼬리명주나비의 유일한 식생인 쥐방울덩굴을 심고, 열심히 가꾸었다. 이제 쥐방울덩굴이 어느정도 무성해졌다. 며칠 전 애벌레를 이주시켰다. 굼뜨게 움직이던 애벌레를 손가락으로 잡으니 그 말랑거리면서 부드러운 벨벳 같은 촉감이 낯설었다. 이 낯선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희망을 품고 쥐방울덩굴잎에 조심스럽게 올려놓고, 붙여놓고, 매달아 놓았다. 애벌레의 이주는 단순한 재배치만이 아니라 재구성이다. 어렵게 배운 희망을 향해, 꿈틀거리는 애벌레와 함께 느리게 걸어가련다. /이선애 농부∙완주자연지킴이연대 활동가 △이선애 활동가는 젊은 날 '사진가'로 살겠다며 세상을 카메라 렌즈로 바라보던 일을 접고, 지금은 자신이 밟고 있는 땅으로 시선을 두며 완주 신흥계곡 안에서 블루베리 농사를 짓고 열심히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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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24 16:21

OTT 시대에 영화관은 과연 살아남을 것인가?

올봄 전주국제영화제를 앞두고 기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중 하나가 “관객들이 영화관에 찾아와 줄 것인가”였다. 코로나 시절 사람들이 영화관을 찾는 대신 집에서 OTT로 즐기는 것에 익숙해진 상태라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의 물음이었다. 내 대답은 “많이 찾아주실 것”이었고 다행히 코로나 이전 가장 성대하게 열렸던 20회 영화제의 관객에 근접한 성과를 이루어 냈다. 아직까지도 영화관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영화제의 경우 일반 영화관처럼 티켓 값을 올리지도 않았고 영화제가 아니면 보기 힘든 작품들을 상영하였기 때문인데,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한 장소에서 다수의 관객들이 영화를 관람하며 감정을 공유하는 집단의 경험이 바로 영화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집 안에서 자유로운 복장, 편안한 자세로 내가 보고 싶을 때 마음대로 볼 수 있는 OTT의 편리함이 크다고 해도 영화관에서 관객들과 함께 경험하는 영화의 본질은 뛰어 넘을 수 없는 것이다. 세계 최초의 영화는 뤼미에르형제가 1895년 그들이 개발한 시네마토그라프로 관객들에게 입장료를 받고 상영한 단편영화들이다. 시기적으로는 에디슨이 1891년 개발한 키네토스코프가 빠르지만 이것은 영화를 한 사람만 볼 수 있는 거라 최초의 영화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즉 영화란 혼자 보는 것이 아닌 집단의 관람 형태라는 것이다. 영화는 OTT 이전에도 수많은 도전에 직면했었고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TV의 등장에는 큰 스크린과 블록버스터 영화로, 비디오 테이프와 DVD의 등장에는 멀티플렉스 복합상영관으로 이를 이겨냈다. 집 안에서 편하게 혼자 즐길 수 있는 형태의 것을 영화관에서 집단의 관객이 감정을 공유하는 형태가 이겨낸 것이다. OTT의 도전도 영화관이 극복해 낼 것이다. 폰이나 TV로 음악을 듣거나 축구나 야구를 볼 수 있지만 사람들이 콘서트 장에 가고 축구장이나 야구장 혹은 거리 응원에 나서는 것은 혼자만의 관람이 아닌 집단의 관람이 주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전주국제영화제에 많은 관객들이 찾아오고 뒤를 이어 <범죄도시3>이 천만 관객을 넘기며 흥행몰이를 해주었지만 아직 영화관들이 코로나 이전의 수준으로 회복되지는 못하고 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보고 있는데 첫째는 너무나도 올라버린 티켓 가격이고 둘째는 그 가격에 걸맞은 영화가 마땅히 없다는 것이다. 코로나로 파산 직전까지 간 영화관들이 코로나 시기임에도 영화관을 찾아와 주는 충성 관객들을 대상으로 가격을 너무 많이 올려버린 것이다. 어차피 이 사람들은 가격이 올라도 영화관을 찾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 예측은 틀리지 않았고 영화관들은 숨을 돌리게 되었다. 문제는 충성 관객이 아닌 일반 관객들이다. 이들이 영화관을 찾아야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좋은 영화가 상영된다면 관객들이 다시 영화관을 찾을 것인데 문제는 티켓 가격이다. 한번 올려버린 가격을 내리기는 정말 힘든 일이다. 이 때 코로나 전에 <신과함께>의 제작자 원동연 대표가 한 말이 떠오른다. “제작비 100억짜리 영화나 1억짜리 영화나 티켓 값이 똑같아. 100억짜리 영화는 티켓 값을 만오천원 정도 받고 1억짜리 영화는 오천원 정도 받으면 안 되는 걸까? 50억짜리 영화는 한 만원 정도 받고” 티켓 값을 내리기 힘들다면 원대표의 제안이 대안이 될 수도 있겠다. /민성욱 전주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 △민성욱 위원장은 백제예술대학교 방송연예과 교수로 백암아트홀 대표이사∙극장장을 역임했으며 방송∙시나리오 작가, 공연기획∙제작, 영화투자∙제작 등의 활동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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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17 18:02

도시 공간의 문화적 가치

일상의 삶이 이루어지는 도시 공간은 그 익숙함으로 인해 어떤 특별한 가치를 갖는 공간으로 인식하기 어려운 경향이 있다. 특히, 시간이 더디 가는 것처럼 보이는 구도심의 좁은 길과 낡은 건물로 이루어진 공간은 하루빨리 현대식 건축물로 대체되어야 할 쓸모없는 공간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고도성장기를 거쳐오는 동안 우리는 구도심에서 별다른 가치를 찾지 못했고 시원하게 넓은 자동차 도로와 반듯하게 정돈된 아파트 단지로 대표되는 신도심의 편리성과 기능성에 높은 가치를 두고 살아왔다.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가까운 과거에 형성된 도시 공간에 대해 어떤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최근까지 쉽사리 공감하기 어려운 얘기였다. 서울 사대문 안의 조선시대 궁궐이나 전주 경기전처럼 문화재로서의 역사적 가치가 명확한 공간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론이 없지만 근, 현대기에 조성된 도시 공간이 갖는 가치는 그동안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충분하게 인식되지 못하였다. 최근에야 가까운 과거에 조성된 도시 공간이 갖는 가치에 대한 관심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낡고 침체된 도심에서 일정 영역의 도시 공간이 갖는 유·무형의 자산을 활용하여 도시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하는 도시재생을 통해 근대기에 형성된 도시 공간이 갖는 잠재적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10여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기능적 편리성과 단기간의 부동산 가치 상승의 효과는 있으나 도시 공간이 갖는 누적된 시간의 흔적을 지워버리는 전면 철거 후 재개발에 비해 도시재생은 보다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도시 공간에 대한 인식 변화에 기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근대기에 형성된 도시 공간에서 우리 민족 문화의 자랑스럽고 찬란한 정수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공간에는 변화무쌍했던 근대기의 시간을 지나면서 만들어진 그 지역 공동체의 다양한 생활 문화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그것은 별로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닌 어쩌면 부끄럽고, 감추고 싶고, 잊고 싶은 모습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까운 과거 그 시간을 살아온 적나라한 우리 모습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도시 공간에 남은 흔적은 지역 공동체가 갖고 있는 누적된 생활 문화의 일부이다. 국토교통부의 ‘건축자산진흥구역’이나 문화재청의 ‘근대역사문화공간’도 도시 공간의 다양한 가치에 주목하는 정책이다. 여러 정부 부처에서 도시 공간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에 주목한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도시재생사업은 도시 공간의 고유한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채 조급하고 천편일률적인 사업으로 흐르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또한 국토교통부의 건축자산진흥구역은 예산 투입이 불명확하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떨어지고 문화재청의 근대역사문화공간은 여전히 개별 문화재 중심의 활성화 사업으로 진행되는 한계점을 갖고 있다. 도시 공간이 갖는 다양한 가치에 관심을 가진지 이제 10년 정도 지났다. 여러 정부 부처에서 관련된 정책과 사업을 시행하고 있으나 현실적인 문제점이나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 있다. 그러나 우리가 오랫동안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던 도시 공간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주목하게 하고 이를 보전하고 활성화하려는 정책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정책이 올바르게 자리 잡고 더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만큼 우리 주변의 도시 공간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올 것이다. /송석기 군산대 건축공학과 교수 △송석기 교수는 근대도시건축연구회 부회장, 한국예총 군산지회 부회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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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10 17:04

센터장님, 잘 계시죠?

‘토사구팽’은 전쟁터나 선거판에서만 쓰는 말이 아니다. 국비를 유치하는 공모에서 진두지휘하던 전문가가 공모가 끝난 뒤 행정에서 손절 되곤 한다. 많은 국비를 지원하는 사업공모가 없던 문화계에서는 이런 일이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그런데 200억 원이 투입되는 문화도시 사업이 등장하면서 용병, 손절, 토사구팽이 문화계에서도 흔한 말이 되었다. 문화도시는 법으로 지정받는다. 두 단계를 거치는 지난해까지의 문화도시 지정 절차는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경쟁을 뚫고 예비도시로 지정되더라도 1년 동안 지자체 예산으로 예비사업을 진행한 뒤, 다시 예비도시 간 경쟁을 이겨내야 본도시로 지정된다. 절차가 까다로운데도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절반 가까이가 지정 공모에 참여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삼수, 사수 끝에 예비도시로 지정받은 도시가 한둘이 아니다. 경쟁이 치열하면 다른 도시보다 더 많은 사람과 재정을 투입한다. 문화적 자부심이 큰 도시일수록 문화도시를 희망하는 요구가 크고, 지정은 당연할 걸로 생각한다. 치열한 경쟁, 높은 관심, 심지어 단체장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으니 '지정은 영웅, 탈락은 역적'이 된다. 재수 끝에 예비도시 지정에서 탈락한 뒤 실패의 책임을 떠안은 채 도시를 떠난 이들이 적지 않다. 문화도시의 영웅이라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영웅 대접은 법적 지정을 축하하는 자리까지이다. 전쟁이 끝나면 용병이 홀연히 사라지듯, 공모사업을 진두지휘한 전문가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은 도시가 많다. 전북만이 그런 게 아니다. 전국이 그렇다. 선정과 탈락, 두 가지밖에 없는 사업공모와 선정 이후 사업실행은 분명 다르다. 공모에서는 짧은 시간에 모든 힘을 쏟아부어야 한다. 문화도시 사업에서는 긴 호흡으로 도시를 바꾸는 역량이 중요하다. 강력한 카리스마의 영웅보다 여러 이해관계자를 아우르며 함께 가는 덕장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정 이후에 역량이 있는 문화도시센터장으로 바꾸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센터장이나 사무국장이 행정과 마찰을 겪으며 스스로 물러나거나 지방선거 뒤에 바뀐 지역도 있다.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예비사업을 진행한 문화도시센터장은 긴 호흡의 도시 바꾸기를 꿈꾸며 2년 동안 사활을 걸고 문화도시를 준비한다. 지정 이후에는 5년 청사진을 그렸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유야 어쨌든 받은 결과가 용병 대접이라면, 이게 토사구팽이지 않을까. 2년 동안 주민과 함께 문화도시를 학습하고 사업을 구상한 사람이 바뀌면 5년을 위한 예비기간 2년이 사라진다. 리더가 바뀌면 방향도 바뀌는 법, 이게 더 문제일 수 있다. '용병문화'는 글로벌 금융업계에서 한때 널리 쓰인 말이다. 금융기업은 눈앞의 수익을 좇아 경쟁기업보다 연봉을 더 주고 사람을 채용한다. 돈 버는 데만 이들을 활용한다고 해서 용병문화라 불렀다. 이 용병문화는 장기적으로 금융산업을 망가뜨리는 원인이 되었다. 성과주의적 용병문화, 사람의 사고를 바꾸는 문화 영역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자기는 용병이 아니라는데 결국 용병이 되는 현실,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 “용병 취급하려면 성공보수라도 주던가!”라는 그들의 외침이 이해된다. “ㅇㅇㅇ 센터장님, 잘 계시죠?”, 전국의 문화도시센터장과 만나거나 통화할 때 건네는 안부가 왠지 서럽다. 누구라도 문화쪽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문화행정의 인식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 /장세길 전북연구원 사회문화연구부 연구위원 △장세길 연구위원은 전북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11년부터 전북연구원에서 연구위원으로 일하며 현재 전북학연구센터장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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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03 17:06

지금 종이 신문을 읽고 있는 나와 당신-기성세대에게 고함

종이 신문으로 이 칼럼을 읽고 있는 독자는 아마도 대부분 중, 장년층이상 그러니까 기성세대일 것이다. 반면 2~30대 젊은 세대에게 신문이나 책, TV, 심지어 극장에서 보는 영화까지 올드 미디어는 흥미롭지 않고 시간낭비일 뿐이다. 이들은 20시간짜리 드라마를 30분 남짓 요약본으로 보고 영화를 소위 ‘짤(긴 콘텐츠의 핵심만 잘라 짧게 편집한 영상)’로 감상하는 것을 선호한다. 학생들과 영화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보면 ‘그런 장면이 나왔어요?’로 마무리되고 만다. 솔직히 전체 이야기와 극적인 장면 몇 개에 불과한 ‘짤’이 한 영화, 드라마의 전부라면 뭔가 씁쓸하고 괜히 서운하지만 이건 비단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만이 아닌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종이 책장을 넘기며 소설을 읽고, 4시간 넘는 영화를 보고 뿌듯해하며, 온 가족이 모여 하나의 콘텐츠를 시청하고, 방송사 시상식을 보는 것으로 한 해를 마감하던 시대는 이미 끝난 것이다. 더 나아가 부당한 폭력과 권력에 저항하기 위해 광장에 모였던 다급했고, 간절한 신념들도 점차 과거의 유산이 되어가고 있다. 예전처럼 분노해야하고 함께 행동에 나서야 할 일들은 여전히 현실에서 차고 넘치지만, 우리는 침묵을 선택하고 인터넷 뉴스 댓글창과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텍스트로만 표출한다. 이런 미디어에는 전문가처럼 보이는 글재주와 과거 유산에 대한 그리움, 현재에 대한 냉혹한 비판의 글이 가득하다. 젊은 세대들은 원래 자신들의 놀이터였던 이 곳을 버리고 조용히 짐을 싸 어른들은 모르는, 새로운 미디어로 옮겨갔다. 남은 건 컴퓨터와 인터넷을 글로 배운 기성세대뿐이고 그 공간에는 미래와 젊은 세대를 걱정하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런 우리를 젊은 세대는 이렇게 바라본다. 풀기 어려운 숙제를 잔뜩 미뤄둔 채로 작디작은 권한조차도 포기하지 않는 세대. 혼내고 가르치려고만 하면서, 매너는 없고 막무가내로 말만 많은 세대. 정의와 민주주의의 수호자처럼 굴다가 스스로의 모순과 탐욕으로 무너지는 세대. 애초부터 돈과 권력만 좇는 세력으로만 기능하는 꼴통 세대. 자본과 부동산을 독식하고 더 불리려 젊은이를 상대로 사기 치는 세대. 무엇보다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대...... 이런 기성세대가 주축이 되어 수립한(지지했든 아니든) 윤 정부가 들어선 지 400일이 넘었다. ‘아님 말고’ 찔러대기 식 말잔치 혹은 고도의 막말 전략이 반복되고 있다. 상징적으로 보이지만 이 프로세스에는 미래에 대한 숙고와 배려, 공감이 전혀 없다. 이런 식이다. 술자리든 어디서든 누군가의 가십/의견을 듣는다 > 지난 정부 탓인지 판단한다 > 공식 석상에서 강하게 말한다 > 반응을 살핀다 > 사고 쳤음을 깨닫는다 > 부정한다 > 우리 편 중 책임질 사람을 정해놓고 질책한다 > 외부 공격 대상을 특정하고 화력을 집중한다 > 편을 갈라 우리 편은 챙겼으니 됐다고 평가한다 > 공론화(?) 과정을 수행한 카리스마 넘치는 개인기를 자화자찬한다 > 후폭풍은 무시하고 잊힐 때까지 모른척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국민 대다수가 노동자이고 G7을 꿈꾸면서도 선진국의 노동조합이나 복지, 소비자 권력에는 무관심한 나라를 기어이 만들고 말았다. 젊은 세대들을 자본과 착취의 틈에 끼워 넣고 MZ니 뭐니 이름 붙여 무시한다. 좋은 일자리는 독차지하고, 젊은이들은 도전정신으로 창업해야 한다고 내몰더니 결코 그 상점의 고객은 되지 않는다. 우연히 들러 핀잔과 잔소리만 늘어놓는다. 그런 우리에게 젊은 세대는 한마디 대꾸도 없고 소통을 포기한다. 여러분이 있는 곳이 조직이든 회사든 어디든 젊은이를 보라. 맘대로 떠드는 입을 다물고 그들의 목소리를 먼저 듣고, 작은 것부터 점차 큰 것까지 그들이 결정내릴 수 있도록 하자. 우리에게 염치란 게 있다면 이제부터라도 반드시 그래야 한다. /박형웅 전주대 실감미디어혁신공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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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26 17:44

도쿄에서 만난 사람들

일본의 피아니스트 도고 노리코 씨는 혼자서 한국어를 익혔다. 뿐더러 한국어로 음악회 진행을 도맡아 한다. 노리코 씨는 무엇보다 음악을 통한 한국과 일본의 문화 교류에 진심이다. 지난해 12월 한국슬로푸드협회 주최 송년음악회에서 한국말로 해설하고 연주하는 최초의 일본인 피아니스트로 큰 관심을 모았다. 「행복한 응접실 김사은입니다」 방송에 노리코 씨가 전화로 출연한 것이 인연이 되어 5월 13일 도코 시부야 미타케살롱에서 열린 『한일, 일한 국제교류 콘서트』 취재차 3박 4일 일정으로 일본 도쿄에 출장을 다녀왔다. 한국의 신정혜 피아니스트, 일본의 도고 노리코 피아니스트가 출연하는 연주회다. 노리코 씨는 기획과 피아노 연주는 물론 사회도 맡았다. 김포 공항에서 하네다 공항까지는 피아니스트 신정혜 씨와 음악회 관계자 등 네 명이 함께했지만 귀국할 때는 나 혼자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도쿄 아사가야에 있는 호텔 로비에 도착했을 때, 딱 봐도 에너지가 뿜뿜 넘치는 여성이 도고 노리코 피아니스트임을 직감케 했다.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전화 통화와 똑같은 하이톤으로 반겼다. 한국어가 유창하다. 별도의 통역 없이 노리코 씨가 일정에 대해 콕콕 찍어 브리핑해 주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동안, 뛰어난 미모에 실력을 겸비한 노리코 씨는 3대째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음악가로서 탄탄대로를 달리던 20대 초반에 ‘자율신경 실조증’이라는 큰 병을 앓아 연주활동을 포기해야 했던 아픔이 있다. 힘든 시기를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한국 드라마였다고.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어를 배웠고 언젠가 한국어로 연주회 사회를 보는 꿈도 꾸었다. 큰 호평을 받으며 연주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고 한국어로 연주회 진행을 하는 꿈은 드디어 현실이 되었다. 노리코 씨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한일 교류가 왕성하다. 공연일인 5월 13일 토요일에는 비가 내렸다. 빗속을 뚫고 시부야에 있는 미타케 홀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간간히 한국어도 들렸다. 노리코 씨와의 친분으로 연주회를 찾은 사람들이다. 40대 여성은 전주출신이라고 소개하고 “유튜브에서 봤다.”며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일본의 유명한 연구요리가 조선옥 씨는 김제출신이다. 도쿄 조선옥요리연구원을 운영하면서 한국의 음식은 물론,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그녀는 스스로 “요리하는 예술가”라고 자부한다. 역시 문화라는 접점에서 노리코 씨와 인연이 되었다. 이번 출장에서 일본 도쿄에 있는 명문대학 ‘릿쿄대학교’ 출신의 연극배우 니노미 아사토씨와 만난 것도 의미가 크다. 20년 전 윤동주 선생을 주인공으로 한 연극에서 윤동주 역할을 맡아 윤동주에 대한 애정이 깊다. (윤동주 시인은 1942년 릿쿄대학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1학기를 마치고 교토에 있는 도시샤대학으로 편입했다.) 릿쿄대학에서는 윤동주 시인을 기리며 해마다 <윤동주 추념제>를 지내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주었다. 그는 “윤동주 선생이 어려운 시절에 어쩌면 그리 아름다운 시를 쓸수 있는지 감동했다.”라고 말했다. 일본 화가 니시하마 사치코 씨는 “음악회가 입체적이어서 좋았다.”라고 ‘한국어’로 말했다. 요코하마에서 온 우메하라 씨 역시 한국어로 “음악을 통해서 좋은 교류가 되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인터뷰를 한 사람들 대부분 한국어로 응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일본 도쿄의 심장부 시부야에서 일본인과 한국인이 소통하고 문화로 교감하는 특별한 연주회였다. /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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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19 15:07

고구려와 보덕국, 후백제

고구려는 도읍에 두 개소의 성을 두었다. 고구려 왕은 평상시 평지성에 머물러 있다가 유사시 전쟁이 일어나면 산성으로 이동하여 장기전에 대비하였다. 고구려 두 번째 도읍 지안에서 평지성인 국내성과 산성인 환도산성이 가장 유명하다. 후백제의 도읍 전주도 평지에 왕성과 산봉우리에 산성을 두어 고구려의 도성체제를 그대로 닮았다. 후백제 도성은 반달모양으로 인봉리 추정 왕궁 터만 유일하게 도성 안에 위치한다. 전주 인봉리는 관아가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서쪽을 바라보았다는 구전의 내용도 충족시켰다. 전주 동고산성이 아홉 차례 발굴조사로 후백제 피난성으로 검증되었고, 견훤왕은 통상시 인봉리에 머물다가 비상시 전주 동고산성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장수 침령산성은 고대 축성술 전시장이다. 장수군 장계분지 서쪽 산봉우리에 그 터를 잡고 500년 이상 산성이 운영되었다. 금강 최상류에 지역적인 기반을 둔 봉화왕국 반파가야가 산성의 터를 처음 닦고 신라가 4배 이상 확장한 뒤 거점성이자 전략상 요충지로 삼았다. 후백제는 치(雉)와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아 고구려 산성의 성벽을 연상시킨다. 장수 합미산성은 후백제 축성술의 랜드마크이다. 성돌은 방형 혹은 장방형으로 잘 다듬고 그 길이가 상당히 길어 견치석(犬齒石)으로도 불린다. 성벽은 줄을 띄워 줄쌓기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들여쌓기와 품(品)자형 쌓기 방식으로 쌓았다. 성벽이 90% 이상 잘 보존되어 국사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고구려 백암성 못지않게 아주 튼튼하다. 남원 교룡산성은 축성술의 최고봉이다. 아직은 산성의 터를 처음 닦은 주체가 파악되지 않았지만 성벽의 하단부가 고구려 산성의 성벽처럼 축성술의 압권이다. 모두 두 개소의 집수시설도 거의 빈틈이 없을 정도로 잘 쌓아 돌의 마술사를 떠올리게 한다. 전 세계인들이 최고로 인정하는 잉카제국 도읍 쿠스코 로레토 거리의 건축술 못지않다. 고구려의 축성술과 후백제의 도성체제 전달자로 보덕국(報德國)이 가장 유력하게 떠오른다. 고구려 유민들이 익산시 금마면 금마저(金馬渚)에 세운 나라가 보덕국이다. 674년 신라는 고구려 부흥운동을 이끈 안승을 보덕국 왕으로 임명하였고, 684년 보덕국 사람들이 봉기하자 이를 진압하고 남원경 등 남부의 여러 지역에 나누어 이주시켰다. 보덕국 등장 이후 전북에서 축성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익산 오금산성은 달리 보덕성으로 그 축성술이 후백제까지 그대로 계속된다. 순창군 동계면 합미성 등 후백제 산성에서 일관되게 관찰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전주로 향하는 교통의 중심지와 전략상 요충지, 철산지를 방어하기 위한 후백제의 국가전략이 투영되어 있다. 전북 동부는 대규모 철산지로 후백제 국력의 화수분이었다. 장수 명덕리 대적골 제철유적 발굴조사로 그 역사성이 검증되었다. 그러다가 후백제 멸망 5년 뒤 남원경이 남원부로 이름이 바뀌면서 중앙에서 지방으로 그 위상이 낮아졌다. 보덕국 사람들이 전북에 전해준 고구려의 축성술도 후백제 멸망과 함께 그 맥이 끊겼다. 전주 동고산성, 장수 합미산성 등 전북에서 고구려 백암성 성벽을 쏙 빼닮은 산성들은 보덕국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전북과 인연을 맺은 보덕국 사람들이 고구려의 축성술과 도성체제를 전북에 전수(傳授)해 주었고, 후백제가 한층 더 승화시킨 것이 아닌가 싶다. 고고학 자료로 보덕국은 고구려와 후백제를 연결시켜준 매개자였다. /곽장근 군산대 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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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12 15:35

[지난 주 '핫클릭' : 6. 4~9] 이차전지 특화단지 새만금 지정 당위성은 '국가 균형발전'

△6월 4일~ 6월 9일 호국보훈의 달 6월 둘째 주, 전북일보 홈페이지 방문자들은 김윤정 기자의 '이차전지 특화단지 새만금 지정, 균형발전 당위성 부합'을 가장 많이 클릭했다. 이 기사는 우리나라 미래 산업을 지탱할 이차전지 산업을 선점하기 위해 전북 새만금을 비롯해 울산·경북 포항·충북 청주 오창 등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가운데, 새만금이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측면과 이차전지 밸류체인을 형성하는 관련 기업의 집적화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두 번째로 많이 본 기사는 이환규 기자의 '일본산 참돔이 국내산이라고?⋯군산 수산 활성화에 찬물'이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으로 수산물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에 따르면 원산지를 속여 판매하는 행위가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세 번째는 육경근 기자의 '흔들리는 교권, 전북 교원단체 뿔났다'로 학교 교육력 회복을 위한 전라북도교원단체 총연합회 등 지역 교원단체의 목소리를 전했다. 이들은 "교육활동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교사와 학생 간 물리적, 정서적 접촉이 수반되는 경우가 많은데, 아동학대 신고만으로 직위해제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교육적 방임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정윤성 화백의 기린대로418 '가수 영탁 없었으면 아태마스터스대회 어쩔 뻔', 박정우 기자의 '임실군, 전북도 공모 2023년 전북형 치유관광지 선정', 김선찬 기자의 '남원시, 5000세대 규모 은퇴자마을 조성한다' 등이 주목을 받았다.

  • 기획
  • 이용수
  • 2023.06.10 13:44

지역 경쟁력의 원천은 사람, 인재를 모시자!

전북일보에 여섯 번 글을 쓸 수 있어 행복했다. 전주에서 나고 자라 초중고를 마치고 20대에 고향을 떠나 40여년을 서울과 수도권에서 살았다. 대학에서 도시를 공부하면서 또 박사학위 뒤 서울연구원에서 13년 도시정책을 연구하면서 늘 전주와 전북을 마음에 담고 살았다. 수도권 대학으로 직장을 옮긴 뒤에는 이곳 대학으로 오는 꿈을 꾸고 도전했지만 이루진 못했다. 4년 뒤 정년을 맞으면 남은 삶은 고향에서 더 행복하고 더 보람 있게 살고 싶다. 마지막 글은 <사람> 이야기로 마무리 하려 한다. 지역 발전의 요체는 무엇보다 사람이다. 인구가 아니라 인재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지역을 지켜온 인재들을 귀하게 모시고, 더 많은 인재들을 지역으로 초대해야 한다. 지난해 일본 도쿠시마현 가미야마정에 출장을 다녀왔다. 인구 6천명 남짓의 작은 산골마을에 오래전부터 인재들이 몰려왔고 올해 4월에는 고교 3년, 전문대 2년의 5년제 고등전문학교가 문을 열었는데 200명 정원에 교육비는 무료다. 가미야마 사람들은 <창조적 과소>를 지향한다.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시대에 인구수를 유지하거나 늘리려는 노력은 허망한 일이니, 인구가 아닌 인재 초대에 목표를 두었다는 뜻이다. 이런 비전으로 1990년대부터 국내외 예술가들을 초대했고, 대도시에 본사를 둔 IT기업의 위성사무소를 유치했으며, 창업과 취업을 꿈꾸는 청년과 중장년을 꾸준히 영입했고, 마침내 똑똑한 청소년들을 초대하기 위해 정규 학교까지 세웠으니 소멸 위기의 작은 지역이 할 수 있는 <인재 초대>의 모든 노력을 다 해낸 쾌거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정현종 시인의 절창처럼 사람의 초대와 인재의 방문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개발 프로젝트보다, 기업의 유치나 프랜차이즈 입점보다 훨씬 더 강력한 지역 경쟁력의 원천이 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인재들이 우리 전북으로 올까? 먼저 할 일이 있다. 바깥 인재의 초대에 앞서 지역 내 인재들부터 보살피고 섬겨야 한다. 여기서 창업하거나 취업해 열심히 일하는 청년들이 행복한지 묻고 미흡한 게 있다면 무엇이든 해결해주자. 아이 낳아 키우는 30~40대 젊은 부모들이 겪는 불편과 불안도 알아내어 행복하게 아이 낳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자. 고향을 지켜온 중장년들이 은퇴 뒤 자존감 있게 여생을 보내도록 세심하게 지원하자. 지금 여기 사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초대의 말에 힘이 실리고 진정성 또한 커질 것이다. 인재 초대의 또 하나 선결조건은 <집>이다. 빈집 등 유휴공간들을 활용해 인재들이 와서 머물고 살 양질의 집을 많이많이 마련해야 한다. 전남 화순군이 신혼부부들에게 월 1만원 임대료의 아파트를 제공하듯 전북을 삶터로 꿈꾸는 청년과 중장년,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집을 제공하면서 초대한다면 아주 효과적일 것이다. 전북에 오면 한 지역에 고립되지 않고 전북 어디든 편히 오갈 수 있도록 대중교통 연결을 혁신해주는 것도 인재 초대의 선결과제다. 지역의 경쟁력을 재는 지표는 과연 무엇일까? 인구수일까? 소득이나 고용과 관련된 경제적 지표들일까? 아니다. 진정한 경쟁력 지표는 그곳에 사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의 수일 것이다. 전북에 사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전북에 살고 싶은 사람들의 수도 늘 것이다. 여기 사는 게 행복한 사람들, 그들이 전라북도 경쟁력의 요체다. 인재를 모시자. 무엇보다 사람으로 전북을 키우자!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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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29 15:33

자기 착취를 통한 성과주의가 만든 피로사회

‘일이 많아져서도 아니고, 스트레스가 늘어난 것도 아닌데 요즘 왜 이리 계속 피곤하지?’ 만성 피로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병원에 가고, 약을 먹고, 운동도 해 보지만 원인을 모르니 잘 낫지 않는다. 만성질환으로 굳어진다. 피로, 피곤함, 두근거림, 우울증,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등은 모두 현대인의 만성질환이다. 철학자 한병철은 저서 <피로사회>에서 현대인들은 이러한 질환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 유발자라고 진단하며, 이는 스스로를 착취하며 성과를 달성하는 피로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으로 본다. 보통 착취는 누군가-타자가 나를 향할 때 성립해왔지만, 지금은 우리 스스로가 자신에게 착취를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극도의 ‘성과주의’ 때문이다. 예전에는 ‘성과’를 강요하는 주체가 바깥에 있었다면, 현대에는 그것이 욕망이든, 되고 싶은 자아든지 내 안에 있다. 스스로 성과 목표를 설정하고 도달하지 못하는 자신을 꾸짖고 더 높은 목표를 세우고 돌진하는 식의 굴레에 갇혀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착취를 통한 성과 달성 방식은 생산성 향상에 최적이다. 노동자를 감시하는 장치도 필요 없고, 능률 향상을 위한 경쟁 유발 전략도 필요 없다. 개개인을 스스로의 경쟁자로 만들어 놓기만 하면, 과거의 자신보다 성과를 올리기 쉽고, 낙오한다고 해도 그것은 개인의 결함-무능력, 게으름-때문이니 스스로를 탓할 것이다. 시스템은 개인의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만 지급하면 된다. 누가 왜, 얼마나, 더 많이 받았다더라 등의 정보는 철저히 숨긴 채로. 이래야 자기 착취 구조를 만들기 쉽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해야 되는지 알려주지 않으므로, 항상 그 이상의 목표를 스스로 세워야 한다. 결국 이렇게 만들어진 성과 주체들은 감시하지 않아도 스스로 열심히 일한다. “우리 ㅇㅇ맨은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당연히 인공지능을 활용해 효율적으로 일합니다.” 식으로 툭 던지면, 현대인들은 스스로의 시간을 투자해서 그런 사람이 기꺼이 되려고 한다. 운동도 열심히 해서 감기에 걸리지도 않아야 하며, 몸매 관리도 열심히 해야 한다. 그걸 우리는 자기관리 라고 부른다. 내가 세운 내 기준은 저 멀리 높고, 이를 쟁취하는 과정이 삶이고 기쁨이라는 생각. 이 틈을 만성 피로와 공황, 우울증이 파고든다. 자기를 착취하는 줄도 모른 채, 스스로 세운 성과 목표를 달성하고 보상받는 동안 정신과 몸은 망가지고 만다. 목적을 상실하고 성과만 존재하는 자기주도 학습, 스스로 달성 목표를 세우는 기술, 성과에 따른 공정한 보상에 대한 찬미 등에만 매몰된 성과주의사회는 초경쟁사회의 세련된 버전일 뿐이다. 그렇다면 만성 피로가 나를 덮치기 전에, 불안감과 초조함에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바로 ‘멍 때리기’를 실천하는 것이다. ‘휴식’이나 ‘느리게 살기’가 아니다. 이런 방식은 성과 달성을 위한 재충전 시간이거나 바쁘게 살기의 반작용이므로 결코 자기 착취 구조를 깨지 못한다. ‘멍 때리기’는 많은 전문가들이 실제로 제시하는 꽤 효과적인 치료법이다. 여기에 걷기를 추가한다면, ‘사색하는 산책’ 솔루션이 만들어진다. ‘멍 때리며 걷기’의 핵심은 아무 생각 없이(최대한), 목적지를 정하지 말고, 무작정 걷는 것이다. 강변이든, 골목길이든, 공원이든, 운동장이든 어디든 상관없다. 평소에 익숙하지 않은 곳, 익숙하지 않은 시간이면 더 좋다. 계획하지 않고, 측정하지 않고, 방해받지 않고(휴대폰을 끄라는 뜻), 음악도 듣지 않고, 주변의 소음과 변화를 온 몸으로 느끼면 된다. 산들바람과 새소리, 물소리, 새벽의 먼지 냄새, 계절의 변화가 우리를 시간을 초월한 존재로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러는 사이 달콤하게 보이던 성과 목표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우리 존재를 천천히 조금씩 채워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박형웅 전주대 실감미디어혁신공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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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22 17:34

화장실 문화

문화라는 말을 여기저기 가져다 쓰면서도 높은 교양과 깊은 지식, 세련된 생활, 우아함, 예술적 요소와 어울려 쓰기를 원하는 것 같다. 그래서 정작 오늘 주제인 ‘이것’과 연관 지을 수 있을지 주저하는 바가 적지 않았는데 이 또한 문화에 대한 나의 편견일지도 모른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이것’은 바로 화장실 문화다. 1993년 예술의 전당 개관식 즈음, 조간지 칼럼에 화장실 관련 글이 실렸다. 여성기고가는 여자 화장실 칸수가 적다는 현실적인 상황을 작파하고 이를 우려했는데 연주회 중간 휴식시간에 화장실을 찾은 여성 관객들이 크게 불편을 겪었다고 밝혔다. 당시 이 칼럼을 읽고 화장실 문화를 지적한 기고자의 용기에 큰 박수를 보냈던 것이 생각난다. 공연장의 화장실 상황은 개선되었겠으나 주변에서도 여성 화장실 칸수가 적어서 당황한 일을 적잖이 경험했을 것이다. 내 경우도 난감한 상황이 있었다. 회사 상사들을 모시고 서울 출장 가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실에 잠시 들렀다. 일행 네 분은 남성이었고 여자는 나 혼자였다. 하필 그 시각 관광버스가 들이닥치더니 여자 화장실을 순식간에 점령했다. 남자분들은 미리 나와서 기다리는데 나 혼자 여자 화장실 긴 줄에 갇혀서 전전긍긍했던 일을 떠올리면 오래전의 일이지만 지금도 낯 뜨겁다. 이것도 경험인지라, 이후에는 눈치껏 화장실을 사용하는 요령이 생기긴 했다. 최근에 아들로부터 들은 얘긴데, 어느 휴게실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볼 일이 너무 급한 나머지 남자 화장실을 사용했다고 한다. 여자 화장실은 길게 줄을 섰고 남자 화장실은 여유 있게 비어있으니 급한 대로 남자 화장실로 뛰어간 것이다. 이 얘기를 듣고 유럽의 화장실이 생각났다. 남녀 구분 없이 줄을 서서 화장실이 비는 순서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내 경험에 실용적이지만 그다지 위생적이지는 않은 것 같았다. 급한 사람에게 양보하는 미덕도 화장실 문화일 것이다. 인식이 개선되면서 여성 화장실 칸수도 늘어나고 장애인, 가족 화장실도 잘 운영되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공공시설 화장실은 아쉬움이 많다. 전주 시외버스 터미널 여자 화장실의 경우 화장실의 전체 면적은 넓은데, 정작 화장실 내부는 협소하기 그지없다. 캐리어와 같은 부피가 큰 짐을 소지한 승객이 이용하기에는 형편없이 부족하다. 개선되면 좋겠다. 대학교, 관공서의 경우 기존 화변기를 양변기로 교체하는 곳이 꽤 늘었다. 위생적이고 편리해서 반기는 사람이 많다. 문제는 화변기를 양변기로 교체했을 때 내부 면적은 같은데 실제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은 크게 줄어든다는 점이다. 양변기가 떡하니 공간을 차지한 곳에서, 정작 사용자는 몸을 그로테스크하게 꼬아서 협소한 공간에 구겨 넣어야 하는 비참한 심정은 나같이 덩치가 큰 사람만의 비애일까. 칭찬하고 싶은 화장실도 있다. 전주에서 익산으로 출근하면서 21번 국도 공덕교차로 졸음 쉼터를 애용한다. 자동차가 늘어나고 잦은 사고로 정체가 심한 도로여서 예상보다 출근길이 길어지곤 하는데, 쉼터에서 잠깐 바람도 쐬면서 컨디션 조절하기 좋은 곳이다. 화장실에 들를 때마다 관리가 잘 되어있어서 고마운 마음이 든다. 화장실은 죄가 없다. 화장실을 만든 사람의 생각, 화장실을 사용하는 사람의 태도가 화장실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화장실 청소하는 분들께 더욱 고개를 깊이 숙여 감사인사를 한다. 화장실 문짝 함부로 여닫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 더 문화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 /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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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15 16:45

전북 도자문화 메카였다

우리나라에서 오직 초기청자만을 굽다가 문을 닫은 중국식 벽돌마가가 전북에 있다. 진안 도통리와 고창 반암리로 모두 다 후백제 영역에 속한다. 진안 도통리는 벽돌가마가 참담하게 파괴된 뒤 길이 43m의 진흙가마를 다시 앉혀 우리나라에서 그 길이가 가장 길다. 후백제 멸망 이후 유통 문제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가마터의 문을 닫았다. 고창 반암리는 후백제 멸망으로 벽돌가마가 파괴되자 도공들이 병풍산을 넘어 용계리로 이동했던 것 같다. 고창 용계리는 길이 38m, 31m, 14m의 진흙가마가 서로 중첩되어, 도공들이 도전과 끈기로 진흙가마를 완성시킨 산실이다. 12세기 초 진흙가마의 원리를 완벽하게 터득한 도공들은 줄포만을 건너 부안 진서로·유천리 일대로 이주한다. 부안 유천리는 천하제일의 부안청자를 탄생시킨 명소이다. 흔히 상감청자로 상징되는 부안청자는 전북 도자문화의 최전성기를 대변한다. 구리로 문양을 그린 동화청자도 부안 유천리만의 자랑거리이다. 당시 국보급 도공들의 지혜와 고령토가 하나로 응축된 부안청자는 우리나라 도자문화의 아이콘이자 최고의 걸작품이다. 1350년부터 남해안과 서해안에 왜구가 출몰하기 시작한다. 왜구의 피해가 무자비하고 극악무도해 도공들이 호남정맥을 넘어 전북 동부로 대거 이동한다. 이 무렵 진안 반송리, 순창 심초리 등 섬진강유역에서 고려 말기 청자가 홀연히 등장한다. 전북 동부의 풍부한 백토가 도공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 보약 같은 자양분이었다. 진안 도통리를 떠난 도공의 후예들이 400년 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진안군 백운면 반송리와 성수면 중길리에 정착한 도공들이 그들의 끼를 맘껏 발휘해 중국식 벽돌가마에서 초기청자를 구운 진안고원을 도자문화의 중심지로 다시 가꾸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건강했던 가마터가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어 몹시 애통하다. 백두대간 품속으로 이주한 도공들도 있다. 남원시 운봉읍 공안리 도요지로 왜구의 피해가 얼마나 잔인했던가를 헤아릴 수 있는 곳으로, 전북에서 유일하게 백두대간 동쪽에 위치한다. 어느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가마터가 모조리 사라져 안타깝다. 전북도자사의 역사책과도 같은 도요지가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그 보존대책이 절실하다. 조선 건국으로 전북의 도자문화가 한 단계 더 도약한다. 한국도자사에서 15세기를 분청사기, 16세기를 백자 시대라고 한다. 부안청자의 상감기법으로 무장한 도공들이 섬진강유역을 분청사기 메카로 일구었다. 기형과 색깔을 강조한 고려청자와 달리 분청사기는 해학과 풍류를 강조했다. 그때 남원은 광주, 고령과 함께 도자문화의 자웅을 겨루었다. 전북 일원에 도요지가 골고루 산재해 있지만 임실 학정리·필봉리 등 가장 핵심적인 유적이 섬진강유역에 모여 있다. 임진왜란 때 심당길, 이삼평 등 최고의 도공들이 남원부에서 포로로 붙들려가 일본 도자문화의 서막을 열었다. 우리나라 도자문화의 애환과 흥망성쇠를 간직한 전북 동부는 엄밀히 표현하면 도자문화의 극치이다. 당대의 시대상과 사회상을 가장 잘 웅변해 주는 것이 도자문화이다. 전북은 도자문화의 메카로 초기청자부터 백자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고 풍성하다. 전북의 도자문화에서 부안청자만을 기억하는 것은 한그루의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최소한 도자기전쟁 때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의 영혼이 담긴 가마터만이라도 꼭 찾아야 한다. /곽장근 군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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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08 18:22

그곳과 그들이 여전히 아름다운 이유

샌프란시스코에 처음 가본 건 1995년이었다. 서울연구원 시절 해외 도시들의 구릉지 경관관리 사례조사를 위한 출장이었다. 가을 햇살을 받고 반짝반짝 빛나던 샌프란시스코의 도시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건물들은 지형과 어울렸고 서로서로 조화로웠다. 언덕 위 고층건물들도 흉하지 않았고, 언덕에서 바다를 보는 시야를 가린 건물도 없었다. 당시 서울에는 보광동, 옥수동의 구릉지에 들어선 덩치 큰 아파트가 보기에도 흉했고, 강변 쪽의 아파트로 인해 뒤쪽 언덕 위 주택들은 종일 해를 볼 수 없었다. 한강을 바라보던 시야도 차단되고, 고층에서 훤히 내려다보여 사생활 침해까지 심각한 상황이었다. 서울과 달리 언덕 위 건물들이 서로 피해주지 않고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의 구릉지 경관관리 비결이 궁금했는데, 시청 담당자를 만나 얘길 듣고 관련 자료들을 받아 꼼꼼히 공부한 뒤 이유를 알게 되었다. 샌프란시스코는 1972년 ‘도시디자인계획(Urban Design Plan)’을 세웠고 도시경관 관리의 원칙과 방법들을 여기에 담았다. 언덕과 바다가 만들어내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도시형태가 훼손되지 않도록 도시 전역에 일일이 최고높이를 지정했고, 높이 규제에 더해 건물의 전면폭과 대각선길이까지 제한했다. 여기저기 불쑥불쑥 솟는 고층건물을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물론이고 병풍처럼 시야를 가로막는 덩치 큰 건물까지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2002년 북경에서 반년 연구년을 보내면서 북경의 역사도시 보전을 위한 엄격한 높이규제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난개발이 횡행했던 1960년대와 70년대를 반성하며 1982년부터 시작했던 역사도시 보호 노력은 매우 엄중했는데, 자금성 가까이에는 새로 정해진 높이기준보다 높아 윗부분을 잘라낸 건물도 여럿 목격했다. 2006년 말 국립싱가포르대학에서의 한달 연수도 싱가포르의 개발과 보전정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마리나베이 같은 신개발지역은 고층개발이 허용되지만 오랜 역사를 간직한 원도심 지역은 높이규제는 물론 건물의 형태까지 엄격히 규제한다. 우리가 감탄하는 아름다운 도시들은 모두 다 똑같다. 아름다운 도시경관은 결코 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엄격한 규제의 결과다. 용적률을 완화해주면 그만큼 많이 지을 수 있게 되고, 개발이익은 상승한다. 개발압력도 당연히 커진다. 끝없이 사익을 추구하는 민간 개발의 속성은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그래서 용적률과 높이를 규제하고 건물의 형태까지 제한하는 것이다. 파리도, 런던도, 프라하도 예외는 없다. 그곳과 그들이 여전히 아름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센티브 조닝(incentive zoning)’은 1961년 뉴욕에서 시작된 도시계획 수법인데, 공익에 기여하는 민간 개발에 용적률 보너스를 주는 게 핵심이다. 시애틀시도 이 제도를 도입했고 이후 폭발적인 개발붐을 맞게 된다. 30층을 넘지 않던 도심부에 이런저런 보너스를 받은 건물들이 60층까지 올라갔고 개발밀도도 껑충 뛰었다. 과도한 개발을 우려하던 시민들이 가만있지 않고 나섰다. 매년 개발총량을 제한하고 용적률을 낮추며 최고 높이를 규제하는 ‘시민대안계획’을 1988년 11월에 마련했고, 1989년 5월 시민투표에서 62%의 찬성으로 가결되어 시애틀 도시계획으로 정식 채택되었다. 시애틀이 여전히 아름다운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아름다운 시민들이 있어서다. 용적률 상향으로 고민이 많을 전주시민들에게 꼭 전하고픈 이야기다.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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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01 17:41

내 ‘돈’은 그들의 돈과 완.전.히. 다.른., 소중한 것

사기꾼 한명이 수백 명의 인생을 담보로, 2700채의 집을 지어, 돈을 쓸어 담다가 붙잡혔다. 이런 부동산 사기꾼들에게 ‘빌라왕’, ‘빌라왕자’, ‘빌라의 신’, ‘건축왕’, ‘원조 빌라왕’ 등의 별명을 붙여준 언론의 어휘력과 뒤떨어진 감수성에 기가 막힌다. 새로운 봉건 빌라 국가가 탄생하고 몰락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마을, 특히 청년이 많이 사는 동네가 이들의 주 무대이다. 왕들은 여러 명이 동업하는 방식으로 통치력을 발휘한다. 지도를 촥~ 펴 놓고는 건축회사, 투자 컨설팅, ~하우징, ㅇㅇ주택 대표들과 함께 찜한 곳을 나누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서로 신용을 만들어준다. 이들 패거리들은 값싼 신축 빌라를 만들고, 보증금과 빚을 담보로 새 빌라를 무한정 만들어 ‘세’를 받아먹는다. 결국 보증금보다 집값이 싸지고, 빌라가 경매로 넘어가는 깡통주택이 되면서 돈을 떼이는 사람들이 폭증한다. 이들 대부분은 청년들이고, 독거노인이다. 전셋돈이 전 재산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어렵게 모은 인생 첫 목돈을 사기꾼에게 맡긴 채, ‘그래, 이렇게 묶어두지 않으면 (방탕한) 나는 돈을 막 다 써버리고 말거야’라며 죄 없는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탓하며 살아왔다. 그런 그들이 지금 벼랑 끝 죽음에 몰려있다. 힘든 몸 누일 공간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들의 보증금은 ‘돈’이 아니고, ‘돈’으로 바뀐 그 ‘무엇-인생의 어떤 모든 것(달리 묘사할 단어가 없다)’이다. 누군가는 이들의 무지를, 전 세계 유일한 우리나라 전세 제도를, 중개인과 탐욕에 눈먼 자들을 탓한다. 과연 그게 진짜 이유일까? 모든 것은 ‘갓물주('신'을 뜻하는 영단어 '갓’과 '건물주'의 합성어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한다는 뜻)’에서 시작했기에 여기서 끝내야 한다. 아이들의 장래 희망이 ‘건물주’인 국가라면, 빌라왕이든 상가왕이든, 황제든 뭐가 등장해도 이상할 게 없다. 어린 아이들이 건물을 소유하고, 세를 받아, 불로소득으로 즐기는 인생이 최고라는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되었을까? 부모도, 선생님도, 좋아하는 연예인도, 검사, 판사, 대통령, 정치인, 그들의 배우자, 가족까지 총동원 되어 열심히 추구한 결과다. 이런 세상에서는 투기를 해서라도 ‘돈’은 무조건 많아야 하고, 다들 그렇게 사는 거 아니냐며, 너희들도 그러고 싶으면서 못 해놓고 왜 나한테만 그러냐며, 당당히 따져 묻는 자들이 권세를 누린다. ‘갭투자’라는, 마치 최신의 투자 기법인 것 같은 신조어를 만들어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투기를 조장하고, 영리한 투자라며 부채질하는 자들. 그들에게 매달 노동을 통해 모아가는 적금은 멍청한 짓이고, 그렇게 모인 전셋돈은 먹잇감일 뿐이다. 감옥에 잠깐 들어갔다 나오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갓물주다. 그런가하면, 대기업 사원 중에는 월급을 100% 용돈으로만 쓰는 부류도 있다. 이들은 집을 사거나 미래를 위해 돈을 모을 필요가 없어서-부모나 조부모가 이미 이들 소유의 집과 돈, 건물을 마련해놨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은 부모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 재산까지 결국 내 것이 될 테니, 지금 자신이 번 돈은 소비와 자기 계발에만 계획적으로(?) 사용한다. 미래 역시 이들의 것인 셈이다. 부동산에서 시작해, 주식∙가상화폐 등으로 이어지는 투기 광풍은 대부분 보통 사람과 공동체를 훼손하고도, 여전히 ‘내가 지금 들어갈 타이밍을 내가 놓치고 있지 않나?’라는 집단 불안감을 퍼트린다. 위험 신호는 한참 전부터 시끄럽게 울리고 있는데, 국가는 침묵하고 있다. 국가는 국민들에게 돈을 어떻게 벌고, 쓰는 게 공정한지 친절하게 알려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노동 이외의 재산, 불로 소득, 상속 재산에 대해서는 기업, 개인 할 것 없이 철저하게 감시하고 높은 세금을 물리고 징수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벌어도 벌어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끝도 없는 빈곤감과 피로, 주위를 둘러보면 샘솟는 박탈감, 경쟁심에서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박형웅 전주대 실감미디어혁신공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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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24 17:27

1박 2일

경민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의정부 베이비부머 행복캠퍼스에서 생애설계교육 특강을 맡았다. 목요일과 금요일 오후 두 시부터 네시까지, 이틀에 걸쳐 진행하게 되어 휴가를 내고 1박 2일의 일정으로 다녀오게 되었다. 경기도는 용인을 비롯하여 포천, 화성, 의정부, 양주, 안성, 양평 등 7곳에 베이비부머 행복캠퍼스를 운영하고 있다. 1955년~1974년 출생한 중장년의 미래를 위한 종합서비스 공간으로 재사회화 교육, 취업, 창업 관련 전문교육 등의 교육과정과 상담, 소통, 휴식, 동아리 활동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경기도에서만 일곱 군데를 운영한다니 그 규모가 부럽다. 의정부 경민대학교 베이비부머 행복캠퍼스는 시니어플래너, 인지재활 놀이상담사, 부동산 경매재테크, 커피바리스타 등 4개 반을 운영하며 4주 생애설계과정과 8주 기술과정 100여 명이 수강하고 있다. 교육비는 전액 무료다. 강사나 사회자로서 연단에 서서 첫인사를 하면 대충 분위기가 파악되고 행사의 맥이 잡힌다. 청중의 수준과 결이 느껴진다. 배움에 대한 열의가 있고 인생 후반기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실천의 의지가 엿보인다. 하기야 자의든 타의든 어떠한 교육기관을 찾아오기까지 목적의식과 용기가 있으니까 가능한 일 아니겠는가. 강의를 듣는 의정부 시민들의 품격 높은 태도는 강사인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50+, 신중년 중장년, 베이비부머 명칭은 달라도 어쨌든 동시대를 호흡하는 사람들이기에 무작정 애정이 간다. 나는 「나의 삶을 스토리텔링한다」라는 주제로, 각자의 삶을 ‘나도 PD’라는 인식으로 당당하고 멋지게 기획, 구성, 연출하여 살아가자고 말했다. 많은 분들이 큰 박수로 피드백해 주어 이 또한 감사했다. 엘리베이터에 탄 여성분이 수줍게 “오늘 강의 잘 들었습니다. 참 좋았어요..”라고 말씀해 주셔서 내 책을 한 권 드린 것을 인연으로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그분은 65세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는 다른 과정에 등록하셨다고 한다. 나의 강의에 대해 “머릿속에서 다음 문장을 미리 만들어 놓고 말하는 것 같다.” “겸손하고 청중을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졌다.”라고 평가하셨는데 그 말에 깜짝 놀랐다. 강의에 임하는 나의 마음이 전해져서 반가웠다. ‘누군가는 진심을 알아준다.’는 생각이 확신이 되어 행복했다. 그분은 또 “나이 들수록 수입이 없으니 지출을 줄여야 한다.”며 “30분 이내에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곳”에서 일과를 해결한다고 하셨다. 이 말씀만 들어도 생애 후반을 어떻게 살 것인지 목표가 분명한 분 같아 감동되었다. 짧은 시간에 오히려 내가 더 배우는 것이 많았다. 가까이 살면 자주 뵈면서 마음으로 배우고 싶은 분이다. 이튿날 강의도 성황리에 마쳤다. 강의실에 도착하여 마시는 아이스티가 시원한 음료인데도 마음이 훈훈해진다. 어딜 가든 참 다정하고 속 깊은 사람이 많다. 이 나이, 이 시점에서 공감할 수 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어 기쁘다. “나의 삶을 스토리텔링하자”라고 말했지만, 그날은 정작 내 인생에도 잊을 수 없는 스토리로 남았다. 간혹 삶의 경계에서 지치고 힘이 들 때 그날의 선명한 기억을 떠올리면 맑은 눈빛과 다정한 손길, 격하게 공감하며 고개 끄덕이던 따뜻한 분들이 생각날 것이다. 꽃송이 분분하고 빗방울 살포시 맺히던 의정부와 서울 북촌의 그곳에서 행복했던 순간순간들이 산소 방울처럼 떠오를 것이다. 그 교훈만으로 앞으로 살아갈 날이 든든하여 행복하다. /김사은 전북원음방송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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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17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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