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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線)의 미학, 손보다 머리를 먼저 작동해야 한다

이기전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형상들은 선(線)으로부터 시작된다. 드로잉 이란 주로 선으로 그리는 회화적 표현이며 일반적 개념으로 보면 많은 선이 그어져서 입체적 작업이 이루어져 가는 과정 속에 데생이라는 용어로 구분되지만 드로잉과 데생은 작품을 완성해 가는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도형의 기본요소가 점선면이라면 그중에서도 선(線)이 지닌 역할은 인간으로 해야 할 역할을 지탱해온 가장 위대한 정신활동이라 할 수 있다. 점이 움직여 시작된 선의 기능은 시간예술이라 하는 음악과 공간예술이라 하는 미술 창작을 리드하는 인간의 우뇌로부터 생성 된다고 볼 수 있다. 르네상스를 태동시킨 문학의 단테는 명확한 언어로 메시지를 드로잉 하듯 표현하였고 서양화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지오토는 기하학적인 드로잉의 형태에서 현실적인 드로잉을 구사하여 르네상스의 전성기에 공기원근법, 스푸마토 기법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피렌체 대성당과 같은 거대한 돔 건축양식과 회화와 조각 등을 드로잉이라는 조형언어를 통해 공간예술의 원천으로 승화시켰다. 동양화에서도 선으로 윤곽을 나타내는 구륵법(鉤勒法)이나 먹의 농담으로 선과 명암을 표현하는 몰골법(沒骨法) 같은 묘법 드로잉이 있다. 선(線)의 예술은 기원전 구석기시대의 동굴벽화에서 보여주는 드로잉에서부터 2018동계 올림픽 때 첨단 기기를 이용 창공에 그려진 드론들의 드로잉과 빙상경기장 피겨스케이트의 날에 의해 그려진 수많은 선들은 인간의 창조적인 천재성이 만들어낸 시공을 초월한 최고의 작품들이다. 드로잉은 인류의 보편적인 조형문화 활동이다. 꼭 필기구와 같은 표현 도구가 아닌 정신적 표현 활동으로서의 드로잉은 인간만이 창조활동으로서의 환희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마당에 막대기로 또는 벽에 숯덩이로 그어대던 그리기 놀이는 본능적 감각의 표출이며 창작의 기본적 놀이행위였다. 창의적 사고에서 비롯된 모든 선은 의도적이든 우연적이든 자신의 자아를 표현하는 행위로서 결정된 명확한 이미지를 더해 형성된 결과물을 만들어 가는 기술이 바로 드로잉 이다. 드로잉이 미술의 기본교육이나 단순한 밑그림 또는 습작 차원의 논리로 미술시장에서는 값싼 의미로 해석된 적도 있었으나 근대 이후의 드로잉은 혁신적 표현을 추구한 인상파와 추상표현주의로 이어지는 미술의 다변화에 따른 새로운 조형 활동은 미래의 가치관을 만들어가는 콘텐츠로서의 가장 중요한 창조행위로 재인식되고 있다. 한국의 드로잉(線) 미학은 우수함이 차고 넘친다, 농악 중 상모놀이는 모자에 매단 기다란 띠가 허공에 그려 대는 공간 드로잉이고 한복의 저고리에서 치마 버선으로 이어지는 곡선미는 3차원의 입체 드로잉이며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유려한 드로잉을 바탕으로 완성된 현대종합예술의 극치이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를 따라가는 손은 그저 따라갈 뿐이다. 손보다 머리를 먼저 작동해야 한다라고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말했다. 머릿속에 과녁의 이미지를 그리고 손끝으로 화살을 당겨 과녁 중앙에 명중시키는 세계 최강 우리나라 양궁 궁사들의 드로잉처럼 팬데믹 사태로 복잡한 우리네 희로애락을 각자의 자아를 찾아 종착점에 이를 때까지 수없이 많은 선을 쌓아보자 반복되는 드로잉의 과정 속에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예술가들과 더불어 우리 모두 드로잉이라는 언어로 편하게 그려보고 대화해 보자. /이기전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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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26 17:47

시를 쓰는 여자

이병초(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말끝이 쌉싸름한 여자. 안방 벽에 죽창과 개펄을 그려놓은 여자.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제 여성성을 지우고 싶은 여자. 담배 연기를 배꼽 아래까지 깊게 빨아들이던 여자. 염소 떼 몰고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는 그녀를 못 만나고 뒤를 돌아본다. 산과 산 사이 오목한 곳에 비스듬히 기운 집들이 오종종 모여 있는 동네, 이 너덜겅을 벗어나면 전북 남원시 인월면 소재지가 눈앞일 거라고 연초록 잎사귀에 햇살이 반짝인다. 눈 씻고 봐도 깡촌인, 산자락이나 부쳐 먹는 게 고작일 사람들에 섞여 그녀도 하루 품을 팔았을 것이다. 어떻게 쓰는 게 시(詩)이고 무엇을 써야만 시가 되는가. 이 문제를 붙들고, 현실이냐 미학이냐를 붙들고 골머리 앓고 있을 때 우리는 그녀를 만났다. 부조리한 현실을 도외시한 언어미학은 시의 직무유기에 속하는 반편이 문학이었고, 언어미학을 고려하지 않은 시의 현실적 문제제기 또한 구호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쳐갈 때쯤이었다.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기 전에 자신의 생활 태도가 일상에 누가 되는 것은 아닌지를 먼저 살피던 시절, 신영복 선생이 어떤 글에선가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제자이자 스승이다.라고 적었는데 그 글귀를 되새겨보던 시절에 그녀는 글판에 샘물같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녀의 시는 농경문화에 뿌리박힌 너나들이의 삶에 관심을 쏟았다. 가난해도 삶의 온기를 잃지 않은 이웃을 아꼈고 살뜰한 언어의 결을 매만지듯 괭이질과 호미질로 양식을 구했으며 스스로 그러하다는 자연의 이치에 닿은 삶의 행위를 시에 담았다. 누구든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는 잣대를 확실히 부러뜨려야겠지만- 입만 열면 정치와 경제를 끄집어내는 말짱 허드렛것들의 치기, 불평등한 현실에 맞서 동료와 결정적인 행동을 보여야 할 때 자신만 쏙 빠지는 노예근성을 그녀의 시는 경멸했다. 대승적 차원이란 말을 입에 달고 범민주적 정의를 내세우다가도, 돈만 보면 전혀 딴 얼굴로 제 잇속에 침이 튀는 일부 지식인의 근천기를 그녀의 시는 단칼에 베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므로 그녀의 시는 자본 또는 문명의 취향과 거리를 두었다. 엄경희가 문명의 위장된 편리함과 편안함에 자신을 내어준 자가 치러야 할 대가는 자유의 박탈이다.(『시인동네』, 2018년 9월호)라고 언급한 대목처럼 그녀의 시는 문명의 이중성에 단호했다. 시 바깥에서 함부로 유랑하는 너무 낡았다, 빨리빨리, 미래에 대한 안목이 근시안적이다.라는 담론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늘 새롭고 매사 빠릿빠릿하고 미래에 대한 안목이 거시적이라면 이런 삶의 태도는 누구를 위한 것이냐, 문명과 자본에 길들여져 살라고 강요하는 노회한 세력에 소용되는 것 아니냐, 그녀의 시는 냉철했다. 도끼로 손전화를 박살낸 여자. 무한경쟁에 짠지가 되어버린 세상일수록 시가 필요하다고 붓끝을 벼리는 여자. 시의 갱신을 잡곡밥알처럼 꼭꼭 씹어 삼키며 한국시의 미래는 바다 밖 강대국에서 오는 게 아니라 죽창과 개펄의 상상력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줄 여자. 된장 풀어 끓인 아욱국같이 어진 사람들에게 목마치는 여자. 장끼가 길게 목 빼는 이 너덜겅을 오가며 제 마음 속 죽간에 글씨 새기듯 시를 쓴 여자. 이맛머리 쓸어 올리며 시의 지도(地圖)를 그려갔을 여자. 오늘도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염소 떼와 더불어 시가 된 여자. /이병초(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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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19 17:35

알아주지 않아도 한다

이지선 전주동네책방네트워크 회장 자본이 없으면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무용지물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양한 문화 창작자들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꿈의 시작점을 찾기도 한다.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은 군중을 뜻하는 영어 크라우드와 재원 마련을 뜻하는 펀딩이 합쳐진 단어다. 보통 온라인 펀딩사이트에 제품 프로젝트를 올리면 여러 사람들이 후원해준 금액으로 다양한 상품을 출시하거나 크게는 창업을 하기도 한다. 물론 목표 금액에 미달하여 실패한 프로젝트도 있다. 얼마 전 진행한 제1회 전주동네책방문학상은 텀블벅이라는 펀딩사이트에서 수상작품집을 만들기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다. 책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서였고, 목표 금액은 250만원으로 잡았다. 다행히도 100% 달성까지는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고 현재는 목표액의 두 배 가까이 후원금액이 모아졌다. 이렇게 모인 금액은 약 1,000부의 책 제작과 사은품 제작비, 편집 디자인비, 작가 원고료, 배송비 등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비록 책방지기의 인건비까지 챙길 수는 없어도 이런 제도가 없었더라면 힘든 시기에 십시일반 돈을 걷어서 책을 만들거나 아니면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은 가진 것 없는 창작자들에게는 기회의 제도이며, 재도약을 위한 발판이 되기도 해서 그 영역이 점차 확장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곧 출간될 <제1회 전주동네책방문학상 수상작품집>에는 대상 수상작을 비롯한 각 책방상의 수상작 외에도 작가 인터뷰, 수상 소감, 심사평이 수록되며 문학상 주제였던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벗어나 자유롭게 작성된 작가들의 신작들도 처음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책 표지의 접히는 양쪽 날개부분에는 책방 소개와 작가들의 소개가 간단히 들어가는데, 개성강한 책방들의 소개도 재밌지만 현역군인부터 70대 작가까지 다채로운 작가들의 소개 역시 감칠맛이 난다. 사실 이 소박한 문학상에 대중들의 관심은 그리 크지 않으며 기관에서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마 후원을 해주신 분들도 책방의 단골이거나 책방지기들의 지인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수상작품집을 만드는 일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필히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 어떤 지원 없이 독자적으로 진행된 국내 최초의 동네책방문학상을 지속하기 위해서도 필요했고, 수상자들이 가져갈 작은 자부심을 위해서라도 책은 나와야 했다. 1회에서 그칠 것이었다면 시작하지도 않았다. 제1회 전주동네책방문학상을 진행한 서점 카프카, 살림책방, 물결서사, 잘 익은 언어들, 오래된 새길, 에이커북스토어, 책방 토닥토닥까지 일곱 군데의 책방은 문학상을 기점으로 앞으로 책을 읽는 독자 외에 글을 쓰는 독자와도 직접 연결할 수 있는 다양하고 새로운 기획들을 고민하는 중이다. 제1회 전주동네책방문학상 수상작품집은 4월 말경에 출간될 예정이며 전주의 동네책방들에서 판매하게 된다. 비록 책방지기들이 전문 문학심사단이 아니어서 부족한 부분들이 보일지도 모르나 소신을 가지고 진행하는 문학상인만큼 우리지역 전주시민들의 관심과 응원을 바라본다. 더불어 전주 곳곳의 도서관에서도 전주동네책방문학상 수상작품집을 만나기를 고대한다. 마지막으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 만났던 독특한 아이디어 상품들과 누군가 크게 알아봐주지 않더라도 묵묵히 만들어가는 작은 프로젝트들을 응원한다. /이지선 전주동네책방네트워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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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12 17:42

먹방과 투우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코로나 발생 이후에 먹방(음식 먹는 방송)이 더 많아진 것 같다. 음식은 문화를 이해하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권에 존재하는 음식들과 그 문화적 연원을 살피기 위해 음식 프로그램을 보지만 모든 프로그램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먹는 양에 집중하는 먹방은 몹시 불편하다. 오로지 먹기에만 집중하는 먹방을 볼 때마다 묘하게 투우장이 떠오른다. 먹방=투우장이라는 연상이 뜬금없겠지만, 재미를 위한 생명살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인간이 먹는 모든 음식은 다른 생명체에게서 왔다. 조미료와 가공식품을 천연식품이 아니라고 기피하지만, 그것들조차 생명체에서 얻어진 것이다. 인간의 미각을 유혹하고, 오래 보존하기 위해 복잡한 추출과 가공 과정을 거칠 뿐이다. 결국, 음식은 다른 생명체의 죽음을 통해서 얻어진다. 살해행위가 있고 나서야 밥상에 오르는 것이다. 음식의 역사에서 조리 과정이 불성(不聖)과 불결로 여겨져 생활공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행해진 시기가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지금도 예외는 아니다. 요리가 예술이 되고, 요리사(셰프)가 스타 연예인이 되고, 주방이 예술 생산의 공간이 되었지만, 식재료를 얻기 위한 생명체 살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78억 명이나 되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단지 생명체 살해와 가공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고, 주방에는 죽음의 흔적이 최소화된 깔끔한 상태의 재료가 도착하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 먹방의 관심사는 많이 먹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보다 최소한 서너 배는 먹어야 관심을 받는데, 그 얘기는 먹방을 위해서 정상치의 서너 배를 넘어서는 생명체 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십 명 분을 먹어치우는 먹기 대회는 상상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하다. 식물의 경우에는 다른 생명체에게 몸의 일부를 주고 살아남는 방식을 택했지만, 옥수수와 아보카도 재배에서 볼 수 있듯이 현대인이 식물을 대하는 방식은 파괴적이다. 동물에게는 더 가혹하다. 동물은 생명을 대신해서 인간에게서 받을 대가가 전혀 없다. 현대 자본주의 문명의 특징은 과잉이다. 현대의 모든 상업적 시스템이 과잉 생산과 과잉 소비에 맞춰져 있다. 한국의 상황을 살피면, 이제 그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했다. 2020년부터 인구가 순감소 국면으로 돌아섰다. 인구 축소는 시장 축소로 이어진다.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과잉으로 채우는 것은 무모하기도 하고, 지속가능성도 없다. 코로나를 겪으며 과잉이 얼마나 치명적인 독인가를 깨달았지만, 독이라고 해서 무조건 피할 수는 없다. 파라켈수스(14931541)의 모든 것은 독이며 독이 없는 물질은 없다. 독이 아닌 것은 그 양이 결정한다.는 말을 빌려야 할 것 같다. 다른 생명체를 먹는 것은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육식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생명과 건강 유지를 위한 음식은 필요악이다. 육식이든 채식이든 넘치지 말자는 것이다. 꼭 필요한 만큼만 먹는 것은 다른 생명체에 대한 존중이고, 코로나와 같은 재난을 피하는 방법이다. 적게 먹고, 적게 여행하고, 적게 입는 3소 운동이라도 하고 싶다. 음식이 곧 생명체라는 인식을 갖지 못하고, 재난을 통해 깨닫지 못한다면 재난은 분명히 다시 찾아온다.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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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05 17:47

전주 남부시장을 스마트 문화관광형 '아고라'로 만들자

이기전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 재래시장이라 함은 지역고유의 자원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상거래문화 중심이 되는 곳이다. 원도심지 과거의 융성했던 우리 남부시장만의 무늬와 형태가 있었을 것이다. 전국의 수많은 재래시장들이 시장부흥을 위해 혁신적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미 주민과 지자체의 행정 그리고 민간협력단체들의 협업으로 성공적인 모범사례들도 나타나고 있다.지붕이 있고 칸막이로 구분된 평범한 상점형태로는 번영을 기대하기 어렵다. 지역의 문화자원과 문화요소 특성을 활용한 내외적 하드웨어의 조형적 공간형성과 전통과 스마트한 컨텐츠의 융합으로 전주남부시장만의 특색 있는 상점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설계해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우리 남부시장,풍남문 주변의 상가들은 대표상품개발, 홍보를 통한 전통시장다운 상점가를 활성화 시키는 일에 여러 가지 사업계획으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고 있지는 않다. 물론 C-19이전 주말에만 펼쳐지던 야시장 사업은 상당히 많은 방문객들이 몰려들어 발 디딜 틈이 없이 인기 있는 사업이었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며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가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도시국가의 시장이나 지금 열거한 남부시장의 분위기나 변함이 없는 시장의 형태는 인류 역사상 실생활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지속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온 생활문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스 도시국가의 시장은 아고라(Agora)라 하였다 시장에 나오다 라는 뜻으로 폴리스에 형성된 광장이며 이곳이 시민들의 일상생활의 중심이 되면서 사람이 모여들어 사람들의 광장이 되었다. 아크로폴리스는 정치, 경제와 종교의 중심 이었으며 아고라는 시민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일상적인 활동과 연극의무대 체육대회를 여는 운동장으로 쓰이는 등 예술 활동을 비롯 철학, 인문, 사상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지던 곳 이었고 민회를 열어 국방과 정치문제에 대한 국가의 정책을 듣기위해 국가와 시민이 소통하였던 곳이다. 흐르는 세월 속에 이곳은 자연스럽게 상인과 시민이 만나 물건을 사고파는 우리 삶의 터전인 전통(재래)시장이 형성이 된 것이다. 지금 남부시장과 시장 인근에는 전형적인 아고라의 모습을 찾아가는 듯 그림이 그려진다. 시장주변에 형성되는 문화 인프라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전통시장만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매채들 이기 때문이다.1960~70년대 옛 도청 이었던 복원된 감영주변은 그야말로 호남문화예술과 경제의 중심이었다.50여개에 이르는 표구점,화랑,들이모여 있어 전주의 인사동이라 할만 하였고 전북의 모든 교통수단 의 중심 배차장이 있었으니 말이다. 근래에는 상인들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사고의 변화로 각 분야의 문화예술의 장인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적은 힘이나마 지자체의 도움으로 터를 잡은 동아리도 있다. 무슨 일이든 독선은 없다. 모든 세대가 시간과 공간을 불문하고 같이 모여 토론하며 정도로 가기위해 노력하고 있듯 고대의 아고라에서 갖춰졌던 요소가 다 모여드는 곳이다. 선거철만 되면 후보들이 맨 먼저 찾아가서 평소 않 하던 상인들의 거친손을 덮석 덮석 잡고 한 표를 호소하는 모습은 우리사회의 구성시스템 으로서 아고라의 역할은 계속될 것이고 상업적인 삶의 터전으로서 아고라는 우리들의 생활에 반드시 있어야 하며 살려 가야할 곳이다. /이기전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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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29 17:55

언어유희 또는 말장난?

이병초 시인웅지세무대 교수 일상의 언어 현실에서 차용된 시어는 생생하다. 입말이 가진 현장성과 행동성은 몇 마디의 어법이나 단어 한 개로 사물이나 현상의 본질을 꿰뚫는 통쾌함까지 갖는다. 이 지점에 언어유희라는 용어가 닿는다. 영어의 pun에 해당될 이 기교는 소리의 유사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실질적으로는 메타언어에 비중을 둔다.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 가리 -「동학민요」, 전문. 동학혁명 당시에 창작되었을 이 민요는 뜻보다도 갑오년에 뒤에 이어지는 을미년, 병신년 등의 입말에 더 관심을 가졌을 터이다. 시어 가보세는 갑오년(甲午年)과 싸우자는 행동성에, 을미적은 을미년(乙未年)과 행동의 미적거림에, 병신되면도 병신년(丙申年)과 비속어인 병신에 주목한 것이다. 이런 내용으로 볼 때 동학군은 갑오년에 대내외적 모순을 끊어내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싸우지 않고 을미적 을미적 굼뜬 행동을 보이다가 병신년까지 가면 필패가 자명하니 죽창 든 해에 혁명을 완수하자는 진군가 역할을 민요에 맡긴 셈이다. 일반인이 사용하는 입말을 절묘하게 버무려 시대의 당위성으로 응집시킨 동학민요 집단창작자들의 언어감각이 놀랍다. 모두가 익히 아는 불과 4개의 단어로 뜻하는 바를 명쾌하게 전한 비유의 미덕은 시의 오랜 관습이기도 하다. 또한 이 민요는, 언어유희는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기발한 기지(wit)이거나 풍자의 형식이 됨과 동시에 메타언어를 생성시킨다는 점을 확인해 준다. 친숙한 단어나 어법에 이중의미를 갖게 함으로써 당대의 집단적 그리움을 떠오르게 하는 기법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민중성이 강조된 판소리나 탈춤, 민요 등에서 해학을 넘어선 말들의 중의적인 쓰임새를 자주 만났기 때문이다. 일상어에 속뜻을 갖고 쓰이는 말이 많고 그런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 중에는 점잖지 못한 말도 다수 섞여 있다. 문제는 말에 잘못이 있는 게 아니라 특정의 말이 비속어적 속성을 가졌을지라도 발화 상황에 적절히 사용되는가가 관건이다. 점잖지 못한 말들 중 일반인에게 가장 익숙한 말이 개이다. 영어 dog를 덕으로 발음하던 광복 후의 현실에서도 개는 요즘처럼 쓰임새의 폭이 넓었던 것 같다. 변영로 시인과 최남선, 두 사람에 얽힌 일화는 시어(詩語) 운용의 측면에서 여전히 흥미롭다. 시 「논개」로 널리 알려진 변영로는 친일파의 우두머리 격인 최남선과는 달리 변절하지 않았던 시인이다. 해방공간이라고 일컬어지는 광복 후의 시기가 혼란의 연속이었음을 모르는 이는 없다. 연일 계속되는 혼란과 좌우익의 정치적 대립 구도에서 문인들도 자유로울 수 없었고 당시 문단의 주도권을 쥔 좌익 문인들에 비해 우익 문인들은 수세에 몰려 있었다. 이런 사정에서 두 사람이 어떤 문인 회의에 참석했다. 이들이 참석한 회의가 <전조선문필가협회>인지 <조선청년문학가협회>인지는 기록을 찾을 수 없다. 더구나 이 글은 회의에 관심이 없다. 그런데 회의에 참석한 문인들의 뜻이 제각각이어서 의견일치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중구난방으로 저 잘났다고만 떠들어대는 소리를 듣고 있던 최남선 씨가 참지 못하고 사람은 덕이 있어야 돼. 라고 말참견을 하자, 변영로 선생이 이 말을 제대로 받았다. 맞아, 덕은 영어로 개야. /이병초 시인웅지세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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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22 17:52

소외받는 사람이 없는 문화평등사회

이지선 전주동네책방네트워크 회장 제 1회 전북여성문화예술제가 이틀간 열렸다. 미지수를 나타내는 알파벳 N을 사용하여 차별과 혐오가 없는 N의 반란이라는 주제로 시작된 전북여성문화예술제에는 전북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여성예술인이 참여했다. 그 안에는 경력단절을 겪은 여성 연극인들부터 전통음악인, 서양음악인, 사진가, 작가, 유투브 영상 크리에이터까지 다채롭고 개성 넘치는 여성 예술인들이 함께 했다. 새롭게 시작된 여성예술인의 연대인 만큼 앞으로도 숨어있는 여성 예술인들을 발굴하고 그녀들의 끼와 열정을 드러낼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라본다. 또한 지역에서의 문화예술 활동은 소외받는 예술인도 없어야 할뿐더러 문화예술의 경계를 낮추어 시민들과 함께 하는 일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작년 코로나로 모든 문화예술인들이 설 자리를 잃고 힘들어할 때 청년예술인들과 지역주민들이 함께 하는 모습에 흐뭇했던 기억이 있다. 남노송동의 오래된 목욕탕을 리모델링해서 동네의 사랑방으로 만든 까페이자 공유공간 기린토월에서는 노송동 주민들의 삶과 애환을 녹여낸 연극을 공연하기도 하고, 달달마을 토끼잔치라는 이름으로 지역의 청년예술인들과 오래된 마을의 어르신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하나 될 수 있는 작은 축제를 마련하기도 했다.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일이 멋지게 차려입고 어딘가를 가야만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동네 안에서도 얼마든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며, 문화예술에서 소외된 오래된 구도심 어딘가에서도 이런 일들이 자주 벌어져야 소위 보편적이지 않음을 추구하는 예술가들도 실험할 수 있는 무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 모 기관에서 중장년층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예술 교육 기획회의에 잠깐 참석한 적이 있다. 50-60대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마련한 수업 기획안에는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가장 많은 나이대임을 고려하여 외국고전소설과 연극을 접목시킨 과목과 클래식 및 와인배우기 등 다채로운 수업 기획안들이 나와 있었다. 나 역시도 한 번쯤은 배워보고 싶은 수업들이긴 했으나 의문이 들었던 것은 과연 이 수업이 일반시민 대상이 맞을까 하는 것이었다. 또한 시의적으로 따져본다면 코로나로 많은 자영업자들이 신음소리를 내며 겨우 버티고 있는 이 시기에 공공기관에서의 수업이 마치 일부 여유로운 사람들의 놀이터마냥 비춰질 수 있다는 점에서 쓴 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문화예술의 분야는 매우 넓어서 물론 타겟에 따라 이런 수업도 필요하고 원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뜩이나 문턱 높아 보이는 예술 영역을 공공기관에서조차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어버린다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시민들이 많을 것이다. 할 수 있지만 안하는 것과 할 수 없어서 못하는 것은 다르다는 걸 인지해야 할 것이다. 또한 공공기관의 문화예술 기획이야말로 주변의 소외된 계층을 감싸 안아주는 기획이라면 어떨까. 대중적인 수업과 더불어 문화예술과 거리가 멀게 살아온 그러나 우리의 가까운 이웃이기도 한 그들에게 예술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따뜻한 삶을 만나게 한다면 떨어진 자존감을 일으켜 세우는 보람까지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가까운 이웃들과 소통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팔복예술공장이 팔복동에 위치해있지만 팔복 5길이라는 미디어아티스트의 활동 외엔 주민들과의 예술 활동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팔복예술공장만을 홍보할 것이 아니라 실제 공장지대와 낙후된 주거 공간 속에도 예술이 스며들 수 있도록 더 아름다운 동네를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이지선 전주동네책방네트워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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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15 17:46

‘책의 도시’가 가야할 길

천세진 인문학 칼럼니스트 전주의 도서관들이 속속 독서 친화적 문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이전의 도서관들은 서가들이 좁게 배치되어 있었고, 독서공간도 편안하지 않았다. 2019년 12월 문을 연 꽃심도서관은 책을 고르는 것도, 읽는 것도 편안하고 여유 있는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2017년, 전주를 책의 도시로 만들겠다는 전주시의 선언이 도서관 인프라를 새롭게 구축하고 확장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더없이 반갑다. 문화는 공간이 있어야하니 도서관 인프라 구축은 책의 도시를 만들기 위한 선결 요건이다. 공간이 먼저 존재해야 그 안에서 시민들과 책이 만나 수준 높은 사유가 탄생하고,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 다음 수순으로는 다양한 장르의 많은 책을 갖추는 것이지만, 책의 확보를 양적으로만 이해하면 안 된다. 전주의 시립도서관 12곳 중 10곳을 이용하는데, 가장 안타깝게 느낀 것은 양보다는 도서의 편중과 질적 문제였다. 공간을 특징짓는 구성요소가 채워지면 문화는 자연발생적으로 탄생할 수 있지만, 그렇게 탄생한 문화는 질적 수준을 따지기 어려운 지점에 머물기 쉽다. 한 문화공간을 대변하는 특징적 콘텐츠나 사물이 양적인 확보를 넘어서서 질적인 측면에서 최고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손길이 필요하다. 도서관 인프라 구축은 선결 요건이지만 고품위의 독서문화를 보장하진 못한다. 고품위의 문화는 결국 질 좋은 책의 선정과 향유에서 결정된다. 당신이 읽는 책을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말해줄 수 있다.는 독서가들의 경구는 결코 개인적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도서관이 어떻게 도서를 선정하고, 어떤 책을 구비하는지에 따라 한 도시의 독서문화 수준과 문화적 사유의 수준도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업 작가 생활을 시작하며 블로그 활동을 함께 시작했는데, 책에 대한 글을 올리는 블로거들의 글을 주로 찾아 읽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여전히 한국인들이 책을 많이 읽지 않고, 질적인 측면에서도 편향된 독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후 오프라인과 온라인 독서회를 만들어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좋은 책을 어떻게 고르고 음미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른 분들과 함께 고민하고 있지만 여전히 책의 질적 문제에 대한 답을 내는 것은 쉽지 않다. 책의 질 문제를 음식문화로 이해해보자. 음식은 고급과 저급이 무게로 결정되지 않는다. 같은 무게의 식재료라도 질에 따라 가격은 현격히 차이가 난다. 자녀들이 원해서 패스트푸드를 주기도 하지만, 정말로 주고 싶은 것은 슬로푸드다. 그런데 책의 세계에서는 그 방식이 채택되지 않는다. 좋은 책도 나쁜 책도 동일하게 책의 페이지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고, 내용을 살피지 않고 광고에 현혹되거나 디자인과 제목만 보고 결정하는 경우도 많다. 책을 고르는 것은 음식을 고르는 것보다 더 심도 있는 이해력이 필요하다. 다양한 음식문화를 경험한 사람이 음식의 가치에 대한 이해가 높은 것처럼, 책의 가치도 다양한 분야의 책을 두루 깊게 읽어 본 사람의 이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책의 도시는 멋진 도서관을 갖는 것이 종착지가 아니다. 책 읽기 좋은 멋진 도서관을 만들었다면, 그 다음으로 전문가 중심의 도서선정위원회를 구성하여 좋은 책들을 선정하고, 도서관을 통해 수준 높은 독서문화가 만들어지도록 지원하는 구조가 정착되어야 한다. /천세진 인문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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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08 17:54

2021년은 팬데믹 시대 마감하고 메디치의 효과 기대해보자

이기전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 15,16세기에 유럽문예부흥의 시대를 활짝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색다른 분야의 전문가들 즉 예술가,사업가,학자,상인들의 상호교류와 소통을 통해서 의지를 모아 경제적 후원과 정치적 후원을 아끼지 않고 적극적으로 후원매체가 되어준 것은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 있었다. 생각이 서로 다른 많은 논리와 연구결과물들을 만들어내고 그 정점을 이루는 교차점에서 융합된 혁신적인 작품이 탄생되었을 때 메디치의 효과라고 부른다. 대가들의 타고난 천재성과 메디치 가문의 후원으로 탄생된 전무후무한 작품들과 이 가문의 영향을 받은 당대의 유명예술가나 학자들은 대부분 1400년경부터 1737년 300여 년 간 펼친 메디치 가문이 주도한 후원 정책으로 이루어 질 수 있었으니 서양화의 아버지 지오토를 비롯 도나텔로,안젤리코,기베르띠,보티첼리,다빈치,미켈란젤로,라파엘외 그들이 남긴 다비드, 피에타, 천지창조, 최후의심판, 프리마벨라, 비너스탄생, 아테네학당 등의 회화작품, 베드로 대성당의 돔 건축과 우피치 미술관을 유럽 여행 중 숨을 죽이며 바라본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갈릴레오를 학문적으로 지위를 상승시킬 수 있었던 것이나 문예부흥기의 발레를 프랑스왕정에서 의 공연으로 귀족들을 매료 시킨 것도 메디치 가문이고 우리가 양식당의 상차림에서 보듯 포크, 나이프, 스푼의 사용방법까지도 이 가문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문화예술 세계사에 혁명적 영향을 끼친 메디치 가문의 역할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겠다. 아카데미 영화상에 빛나는 기생충 역시 봉준호 감독의 뛰어난 작품성과 배우들의 연기력도 중요했지만 전폭적인 물질적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CJENM의 역할도 절대적으로 한목 했다. 사회적으로 높은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 즉 노블리스 오플리제가 있다. 투철하게 바른 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 로마 초기의 사회는 고위층의 공공봉사와 기부와 후원의식이 투철하여 전투에서 수많은 귀족들이 희생되었던 것은 귀족들의 솔선수범과 희생으로 고대 세계의 강국으로 자리 하였었고 도덕적으로 헤이해지면서 쇠퇴하고 말았지만. 한번 살고 가는 인생! 있으나 없으나 보람 있는 삶을 살기가 쉬우면서도 어렵기도 하다. 내 삶을 흔들만한 기념비적인 일을 만난다는 것은 최고의 보람일 것이다. 나 혼자 배부르게 풍족함을 느끼면서 사는 것 보다 함께 나누고 사는 것이야말로 다 같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위한 마음가짐이 진정한 삶의 가치와 진정한 행복이 아닌가? C-19로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을 인간중심의 문예부흥 으로 이제는 감정보다는 이성적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찾아가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예술계의 심각하고 충격적인 피해상황 속에서도 예술가들은 예술 활동의 실천으로 지역사회와의 상생 고리를 연결해가며 펜데믹 상황에서의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 문화예술 활동의 실천이 실의에 빠진 시민들의 사기를 드높이고 지역사회의 구성원의 협동과 결속의 원동력이 되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러한 예술계의 동력은 무엇일까? 바로 정치가,사업가,학자들이 문화예술의 옷을 입는 것이다. 문화예술에 대한 메디치가문의 지원이 수많은 문화유산을 남긴 것처럼 동시대를 살아가는 문명인으로서 의무감을 가지고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새롭게 출범하는 3기 전북문화관광재단 의 메세나 사업을 진행하고 열열히 성원하는 가운데 메디치효과를 기대해 본다. /이기전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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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01 16:57

앞시암의 미학

이병초(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소통이라는 말이 갈수록 낯설다. 더불어 살자는 뜻으로 읽히는 소통 옆에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따라붙기 때문일 것이다. 나라에 대흉년이 들었거나 전쟁 등으로 모두의 삶이 절박할 때 이를 극복하자는 데서 유래된 각자도생이 어째서 저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신고립주의적 탐욕을 빗댄 말로 둔갑해버렸는지. 인간성 회복이 목적일 소통의 뜻을 곰곰이 짚어볼 때면 문득 앞시암이 떠오르곤 했다. 샘을 시암이라고 불렀던 전주시 팔복동 3가 유제리. 일명 버드랑죽이었던 동네 초입에 앞시암이 있었다. 너비는 세 발 가옷을 웃돌았고 깊이는 그보다 더 깊어 보였는데 머리엔 양철지붕을 했다. 두레박이 필요 없는 샘, 왕돌을 테처럼 둘렀던 샘가를 시멘트로 동그랗게 단장했는데 높이가 바닥에서 두어 뼘도 안 되었다. 바가지를 박적이라고도 했으므로, 박적으로 물을 막 퍼먹을 수 있으므로 앞시암을 박적시암이라고도 불렀다. 사람들은 샘 바닥에 염소 대갈통만 한 물구멍이 있어서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철철 넘쳐난다고 믿었다. 정말로 사시사철 물이 철철철 넘쳤다. 울안에 샘을 판 집들도 이 물을 자주 길어먹었고 무더위가 진을 치는 한여름 밤이면 청년들이 몰래 물을 끼얹었다. 아줌마들은 여기서 빨래도 했다. 바가지로 물을 막 퍼서 쓸 수 있고 때도 잘 빠졌으니 조선 천지에 이보다 더 좋은 공동빨래터는 없을 것이었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밤이면 청년들 입담이 낮에는 빨래방망이질 소리가 그치지 않았으므로 앞시암은 동네의 눈이었고 귀였고 입이었다. 살쾡이에 간 빼먹힌 씨암탉을 찾아내어 생기다 만 알까지 정히 갈무리하던 곳. 논밭 일에 지친 어른들이 하루 일을 내려놓고 얼굴을 씻던 곳. 누구네 집에 초상이 나면 물지게가 부산했다. 고인을 모신 꽃상여가 노제를 끝내고 마지막 인사를 고했다. 정원 대보름이면 샘 주위를 돌며 풍장을 치던 곳. 물맛 좋기로 소문나서 택시기사들도 척척 알아들었고 우체부 아저씨가 자전거 받쳐 놓고 목을 축이던 곳. 앞시암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다. 어른이든 아이든 엿장수든 머슴이든 자신을 찾는 이에게 물을 주었고 사람들은 앞시암에서 정다웠다. 소통이란 말이 안 쓰였어도 서로를 아끼고 존중했다. 그러나 1985년, 포클레인을 앞세운 중장비들이 앞산을 파헤쳐버렸고 동네가 까뭉개지기 시작했다. 토지개발공사에 팔렸다던가, 전주시 제2공단에 싸잡혔다던가. 나눔과 베풂의 산실인 앞시암도 콘크리트에 묻혔다. 황방산 꼭대기에서 바라보니 유제리는 흔적도 없다. 누구네 집터인지 누구네 전답인지도 모르고 공장이 즐비할 뿐이다. 경제 성장이 뭔지 개발이 뭔지 나는 잘 모른다. 사람들이 살던 동네를 무덤 속같이 파헤친 뒤 거기에 공장을 들여놓은 행위가 자본과 문명의 몫인지 죄악인지를 따져볼 능력이 내게는 없다. 앞시암이 궁금하다. 그러나 오죽잖은 건물들을 눈알 빠지게 둘러봐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앞시암은 있을 것이다. 땅속 제자리에서 맑은 물, 솟아나는 물, 온도가 일정한 물로 유제리 사람들의 기억을 철철철 넘치게 하리라. 이름도 빛깔도 없이 살아온 분들의 노고가 이 땅의 앞시암이었음을 깨쳐 주리라. 경제학을 이재학(理財學)으로 패대기친 각자도생을 거절함은 물론- 의(義)를 따르는 척하다가도 결국 제 잇속에 동료들을 이용해먹는, 자본가의 이윤창출에 소용될 가짜 소통의 친자식들을 앞시암은 철철철 지우고 있으리라. /이병초(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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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2.22 17:27

살아남은 자의 슬픔

이지선 전주동네책방네트워크 회장 동네에 생긴 지 얼마 안 된 식당을 찾아 갔는데, 임대가 붙어 있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꽤 손님이 있던 곳이었고, 2년도 안 된 것 같은데 코로나에 자영업자들이 쓰러져가는 모습을 보니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건너편에는 새로운 베이커리 카페가 문을 열었고 어떻게 알았는지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요즘 신상 카페들의 흔한 모습처럼 심플한 인테리어에 통창이 있는 공간으로, 포토존이 될 만한 곳도 따로 마련하여 셀카를 찍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인테리어 공사비로 많은 돈을 쓰며 고심 끝에 오픈했을 카페들이 지속적으로 운영되기를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1년 후에 가보면 새로 개업한 카페에 밀려 있는 모습도 가끔 만나게 된다. 자본이 만든 거대한 대형 카페들도 요즘 꽤 많이 들어섰다. 동네에서 오랜 시간 커피 맛과 손님과의 신뢰에 공들이며 카페를 꾸려온 사장님들의 한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유독 카페들의 세상은 총성 없는 전쟁터 같다. 내가 운영하는 서점 양옆으로도 작은 카페가 나란히 있고, 바로 건너편에도 프랜차이즈 카페가 나란히 세 개나 서 있다. 책방 뒷골목은 카페 골목이라고 말해도 될 만큼 개성있는 카페들이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되었다. 결국 넓고 쾌적한 공간과 신선한 원두로 맛을 책임지는 카페들은 살아남았지만, 그렇지 않은 공간은 뜸해진 발길에 살아남지 못했다. 이런 현실에서 카페들의 존폐 여부를 두고 사장들의 운영 능력 때문이라고 절대 말하지 못하겠다. 모든 자영업자들이 살고자 시작한 사업도 자본의 논리에 속수무책일 때도 있거니와 자본을 이기려면 24시간이 모자라게 일하거나 뛰어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미친 듯 노력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고고한 인테리어를 뽐내며 서 있는 카페들을 보고 있노라면 애초에 출발선이 다른 시작에서 어떤 공정을 바랄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자본주의에선 돈이 돈을 번다고 말하며 푸념하는 수밖에. 최근에 『정의란 무엇인가』를 쓴 마이클 샌델 교수는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책에서 지금 서 있는 그 자리, 정말 당신의 능력 때문인가?라며 능력주의에 질문을 던졌다. 능력이 있어도 자본이 없으면 설 자리가 없는 것이 여전한 우리의 현실이고 능력이 없어도 자본이 있다면 만들어진 기회의 땅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기도 한다. 문제는 그 성공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는 일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들어가고 좋은 직업을 갖고 사는 일이 온전히 본인의 실력과 재능 때문이라는 믿음이 과연 맞는가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사교육시장의 어마어마한 편차만 보더라도 기회의 불균형이 만들어낸 결과를 체감할 것이다. 사회적으로 낙오자라 낙인찍히는 사람들이 과연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게 사는 것인지 아니면 이 사회의 공정하지 못한 시스템이 누군가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우리는 눈여겨 봐야한다는 이야기다. 보통 성공을 하게 되면 스스로의 노력 때문이라는 착각에 도취되어 다른 이들이 걷는 길을 보지 않으려 한다. 성공에도 윤리가 있다면 문을 닫은 가게들을 보며 살아남지 못한 이유를 무능력으로 치부하지 말자. 그들에게는 더 적은 기회와 더 적은 자본이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때로 알아줘야 한다. 무한 경쟁 속에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살아남은 자들이 살아남지 못한 자들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지 않을까? /이지선 전주동네책방네트워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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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2.15 16:50

도시의 상상력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전업 작가로 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택한 곳이 전주였다. 전에 살던 곳의 인구가 145만 정도였고, 전주는 65만 정도이니 절반이 채 안 되는 공간으로의 이주였다. 모든 것이 전보다 부족하리라는 예측이 가능했지만, 오히려 작은 도시가 갖고 있을 문화에 마음이 끌렸다. 전주로 온 후에 일상의 파도는 잔잔해졌고, 복잡했던 공간을 헤집던 발길은 한적한 곳을 딛고 다닌다. 누군가는 그 한적함을 결여(缺如)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비어 있는 공간이란 판단은 오해다. 그곳에는 분명 무언가 자리하고 있지만, 그 존재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뿐이다. 공간을 인공적인 것들로 채워야만 문화가 되는 건 아니다. 누군가 결여로 보는 것을 누군가는 여백으로 읽는다. 서울에 있는 것이 전주에 없다는 사실을 결여로 볼 것이 아니라, 문화적 형상이 다른 것으로 읽으면 된다. 한 공간에 사는 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위해 인공적 구성요소들을 선택하는데, 인구 수, 면적, 강과 산, 언덕의 높낮이 등에 맞게 선택한다. 그러고도 비어 있는 공간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상상력이 숨 쉬는 여백이 된다. 공간은 물리적인 것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으로 확장해서 해석해야 한다. 물리적 공간이 문화적 장소가 되려면 사람과 시간이 어우러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우러진 시간이 쌓이면 공간은 지리적 개념을 넘어서서, 정신적 개념이 짙게 밴 장소가 된다. 이―푸 투안이 『공간과 장소』에서 장소는 정감어린 기록의 저장고이며 현재에 영감을 주는 찬란한 업적이라고 말한 것을 떠올려봄직 하다. 옛 법조지구를 두고 전주시와 개발 기업 사이에 견해가 갈린 모양이다. 발전이라는 개념을 생각할 때, 먼저 떠오르는 것이 개발이다. 개발도 문화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다른 문화다. 빅토르 위고는 『레 미제라블』의 원고 대부분을 망명지인 영국 남단의 건지 섬에서 썼다. 1870년 위고가 프랑스로 돌아왔을 때는 나폴레옹 3세가 주도한 파리 개조사업을 지휘한 오스만 남작에 의해 소설 속 공간이 사라지고 난 뒤였다. 위고는 소설의 배경이었던 곳에 자리한 낯선 건물들과 거리를 보고 어떤 심정이었을까. 새로운 파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했을까? 위고가 아름답다고 느꼈다면, 기억의 미학을 배제한 건축적 아름다움에 대한 것에 그쳤을 것이다. 도시는 상상력과 꿈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자신만의, 자신에게 어울리는 상상력과 꿈이어야 한다. 한국의 도시들은 서울을 닮으려고 한다. 장 보드리야르는 『아메리카』에서 뉴욕에 대해 도시의 회전이 그토록 강하고 원심력이 너무나 커서 둘이서 살아간다는 것을 상상하는 것, 누군가와 삶을 공유하는 것은 초인적인 일이다. 오직 부족들, 갱들, 마피아들, 비밀결사집단들 혹은 도착적인 집단들, 확실한 공모 집단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으며, () 이것은 반(反)노아의 방주다라고 말했다. 서울이 그런 뉴욕을 닮아가고 있으므로 서울은 닮을 이유가 없는 도시다. 전주는 어느 도시도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 장소도 다른 도시들과 닮지 않은 때문에, 상상력이 남다른 도시라고 불렸으면 좋겠다. 장소가 갖고 있는 기억을 지키는 것도 상상력이 된다. 새로 만들어진 장소가 푸른 이끼 같은 기억을 덮고 문화적 장소가 되려면 시간이 다시 오래 흘러야 한다.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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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2.08 16:39

포스트 코로나19 예술 재앙을 넘어서

이기전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 문화정책은 국민의 삶의 질과 행복을 좌우한다. 1960년 프랑스 문화부장관 앙드레 말로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문화적 향유를 부르짖었다. 문화를 통해 사회적 갈등과 괴리를 치유하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였던 것이다. 생업에 몰두해 있는 국민에게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문화정책을 펼쳐나가야 하고 경제적으로는 윤택하나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오명에서 벗어나려면 문화예술스포츠 등으로 행복의 최소한의 기준을 설정하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정책을 펼쳐나갔던 것이다.문화예술은 어떤 위기의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고 쉼 없이 그 심장은 뛰고 있다.위기의 시대에 사회불안과 우울증 문제,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감, 사회통합 문제 등의 해결사 노릇을 하는 것은 문화예술일 것이다. "전례없는 변화와 불확실성 시대에도 예술에 대한 지원은 변함이 없다. 500만의 예술과 문화종사자들은 잠재적으로 위험 상황에 있다. 이러한 도전의 시기에도 우리는안다. 예술은 위안, 회복, 지혜, 자기 표현 수단, 연결의 가치를 갖고 있다는 것을 -미국국립예술기금(NEA) 이처럼 미국의 NEA를 비롯한 각 나라의 예술을 지원하는 단체에서는 위기상황에서도 문화예술분야의 사람과 조직을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문화예술정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생태계의 발전이 지속되도록 일시적 행정이 아닌 총체적인 접근방식의 연구가 필요하고 나눠주기형태의 관행에서 벗어난 장기적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프로그램의 공모지원 사업이 되어야 한다. 또한 피해부분에 있어서는 문화예술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적극적인 분석을 토대로 접근되어야 한다. C-19가 금년에도 종식되지 않는다는 상황을 전재로 본다면 현재 실행되고 있는 온라인서비스를 통한 문화예술 활동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적극 추진해 나가야 한다. 즉 가상공간에 기반 한 문화예술 활동이다. 문화뉴딜로 극복하는 새로운 문화예술 활동 문화예술은 불황이 닥치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고 ,가장 늦게 회복이 되는 분야이다. 그동안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마다 겪게 되는 시련이지만 이번 C-19 만큼은 체감정도가 너무 다르다. 팬더믹 사태와 함께 다가올 온라인 디지털 문화들이 예상된 시간보다 빨리 왔다! 완전하게 되돌아갈 수 없는 우리의 지난 시간보다 지속가능한 미래사회를 설계하며 대비해야한다. 우리는 위기 때마다 사회의 불평등이 심화되었고 약자들과 공동체는 더욱 가혹한 직격탄을 맞았다. 하지만 예술가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문화예술로부터 소외되지 않도록 선구자적 문화리더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 온라인 문화에 어려움을 느끼는 디지털 취약계층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으로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개인의 이야기와 추억이 담긴 자서전적 영상을 제작해 보거나, 지역의 유명문화를 직접 소개하고 해설사 역할을 영상으로 제작하여 유튜브등SNS를 통해 송출하는 체험을 해보는 일은 일상적 고립감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또한 평소 문화공연을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저소득층 청소년들의 문화체험 기회확대와 문화감수성 향상을 위한 문화 활동 동아리를 활성화하고 지역사회의 긴밀한 네트워크 협력으로 서로 간에 화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건강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문화예술을 향유하며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 /이기전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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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2.01 16:57

눈부신 아침이 그립다

이병초(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한 편의 시에 전율과 감동이 한꺼번에 올 수 있을까. 사실과 행위의 인간적 형상화를 토대로 시는 삶의 진정성을 획득함과 동시에 역사처럼 생명력을 가질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답하는 시가 정양 선생의 시편들이다. 그의 시편들 중 「내 살던 뒤안에」는 수준 높은 언어감각이 역사에 대한 통찰력으로 확산되면서 비상한 시의 울림을 얻는다. 그는 일상에서 자상한 분이었지만 시대의 질곡에 대해서는 냉철했다. 삶에 얽힌 우여곡절의 원인은 역사의 왜곡에 있다는 점을 꿰뚫어 봤고 이 모순을 시로 형상화했다. 그는 시에 칼끝 같은 면을 가졌다. 시집 『철들 무렵』(2009. 문학동네)이 출간되었을 때 나는 보았다. 출판사가 운영하는 문학카페에 새 시집을 소개하겠다는 연락이 왔던 것인데 당신은 거기에 올릴 시들을 고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선생님, 시집에 수록된 작품을 또 손보시면 어떡해요? 여쭈었더니 시집에 수록되었어도 고칠 데가 있으면 반드시 고쳐야 한다. 눈 감기 전까지는 자기가 쓴 시를 고치는 게 시인의 의무이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정양 선생의 시(詩)가 한국시의 정점이라는 데에 이견은 없다. 일상의 구체적인 정황에서 촉발된 시는 동시대 삶의 통점에 집중되면서 4?16참살과 촛불집회에까지 이르는 게 예사다. 그의 시는 광복 후 75년이 넘도록 독립기념일이 없는 참담한 역사, 여기에 함몰된 이 땅의 가난과 무덤조차 없이 떠도는 혼백들에 무례하지 않다. 불평등한 시대의 한복판에 그의 시정신이 빛났던 것이다. 당신은 「나의 삶 나의 문학」(『유심』, 2015, 3.)에서 모두의 심금을 울리는 고백을 했다. 정년퇴임식 내내 지난 일들이 그야말로 주마등처럼 머릿속에 스쳤다. 직장에서 쫓겨나고 수배되고 투옥당하면서 끝끝내 역사의 흐름을 되찾으려던 이들의 고통스럽던 삶을 상기하면서, 그리고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 40년 넘게 변함없이 교직에 몸담고 살아온 나를 돌이켜보면서 나는 자괴감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5?16쿠데타 이후 장기간의 군부독재와 광주항쟁 그리고 6월항쟁 등을 겪으면서도 한 달도 거르지 않고 40년 넘도록 꼬박꼬박 봉급을 챙겨온 나의 정년퇴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무슨 훈장인가를 받으면서 나는 도둑질이라도 하다가 들킨 것만 같아서 참담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 그 엄혹한 세월에 한 달도 안 거르고 또박또박 봉급을 챙겨먹은 내 처지가 너무 부끄러웠다. 요 근래에 이처럼 뜨거운 고백을 읽어본 적이 없다. 자본증식이라는 소비자본주의의 속도에 말린 시절에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참회록처럼 써내려간 글줄은 백설처럼 순결하다. 삶과 역사에 대한 치열성과 순정을 생경한 언어기호에 가두지 않고 입말의 생동감으로 시에 표면화한 것처럼, 자신의 삶도 이 지점에서 활활 타올랐던 것이다. 이 고백은 문명과 자본의 지배논리에 갇혀 살지 않으려면 속된 것을 일절 끊어버리는 삶의 태도 또한 부조리한 현실을 견디는 뒷심 못지않게 단단해야 함을 나타낸다. 사실과 행위의 인간적 형상화를 토대로 생명력 넘치는 시편을 발표한 현역 시인 정양. 그의 절창 「내 살던 뒤안」에를 다시 읽는다. 시는 진술이 아니라 시어 개개의 인상과 소리맵시가 어울려 새로운 형상을 얻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나는 새삼 깨친다. 당신이 그리워하는 세상, 산도 들판도 골목도 지붕도 평등하게 눈에 덮인- 눈부신 아침이 그립다. /이병초(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이병초 회장은 시인으로, 웅지세무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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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25 16:48

지역을 벗어나지 않고 지역을 넘어서라

이지선 전주동네책방네트워크 회장 몇 년 전부터 로컬브랜드를 양성하기 위한 지역의 노력들이 눈에 띈다. 자신이 가진 전문성을 기반으로 지역의 문제를 찾고 해결해 지역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람을 로컬 디자이너라고 정의내리기도 한다. 그나마 로컬리즘에 희망을 거는 이유는 지역의 인재들이 타지에 정착하기란 물리적, 경제적으로 매우 힘들뿐더러 지역에서는 도전해볼 수 있는 공간이나 기회가 그나마 다양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어느덧 5년차 책방을 운영하다보니 전주 동네책방들의 연합이 로컬브랜드가 될 수 있지 않을까를 고민한다. 책의 도시를 표방하는 전주시의 다양한 도서관 정책과 어울려 동네마다 자리한 개성 있는 책방들이 관광객이나 시민들에게 색다른 문화공간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지역 안에서 우리가 외친다고 로컬브랜드의 자리가 거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전주동네책방네트워크는 지난해 5월, 10곳의 전주책방들이 연대하여 만들어진 단체다. 그러나 작년은 하필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시기를 겪으며 책방들은 보릿고개를 만나야했다. 그럼에도 책방들은 전주동네책방문학상을 기획하며 움츠러든 마음을 함께 다독였다. 또한 문학상의 응모대상을 전주시민으로 한정하기보다 전국으로 넓혔다. 비록 대형 언론사나 출판사가 운영하는 문학상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지역의 동네책방이 주최하는 문학상을 통해 지역의 책방과 전국의 독자가 새롭게 관계를 맺는 방식을 시도해보고 싶었던 뜻도 컸다. 예상외로 문학상에는 40여 일 동안 무려 375편이라는 많은 작품이 도착했다. 여러 차례 심사를 통해 대상과 각 책방상을 선정했고, 다양한 매체에 소식이 당도했다. 책방들은 이 문학상에 더욱 책임감을 갖고 매해 진행할 예정이며 당선작들은 따로 모아 책으로 출간할 계획도 갖고 있다. 상금도, 상품도 비록 소박하지만 책방지기들이 독자적으로 기획한 문학상이기에 갖는 의미가 더 특별하다. 욕심을 부리자면 이 문학상이 전주의 책방들을 전국에 알린 계기가 되고, 전주를 책으로 기억하게 돕는 하나의 문화 키워드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는 지금 책 한 권도 새벽배송이 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아날로그 감성과 경험을 중시하는 시대의 또 다른 트렌드를 살필 때 책방은 단순히 책만 파는 공간이 아님을 주목해야 한다. 동네 안에서 동네사람들과 협업하여 서가를 꾸미고 동네의 작가를 발굴하고 지역의 역사를 알리는 작지만 큰 공간이 바로 책방인 것이다. 지역의 콘텐츠는 비로소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켜온 사람들이 기획자가 되어 그 공간을 비교불가한 콘텐츠로 만들 때 지속가능한 힘을 갖게 된다. 책이 들어선 화려한 공간들 때문에 책의 도시가 되는 것이 아니며 이용하는 독자와 책의 유통이 활발하고 작가 및 출판사 등이 다채롭게 일할 수 있는 도시여야 진짜 책의 도시다. 전주는 지금 그걸 준비하는 중이다. 이제는 맛의 고장과 한옥마을을 넘어 진정한 문화와 예술이 숨 쉬는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 지역에 있는 인재들을 통해 구현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만 전주를 벗어나지 않고도 전주를 뛰어 넘을 수 있는 진정한 로컬의 힘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지선 전주동네책방네트워크 회장 △이지선 회장은 광고대행사에서 카피라이터로 근무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 카피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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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18 16:31

시대의 분기점에서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전 시대에 없었던 특이한 사건은 시대적 분기점이 된다. 스페인 독감이 있었지만 1세기만의 일이니, 코로나 19도 역사의 장에 분기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어떻게 기록될지는 모르지만 1세기 전의 사건과 같은 색조로 기록되지 않을 것만은 확실하다. 한 시대의 탄생은 꽤 복잡한 구성요소들이 녹아든 용광로에서 흘러나온 철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라는 위기의 형태에만 주목하면 안 된다. 주형틀이 아무리 달라도 위기라는 광석의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찰스 디킨스는 『두 도시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한다. 최고의 세월이요, 또한 최악의 세월이었다. 지혜와 우둔의 시대요, 광명과 암흑의 계절이요, 신앙과 불신앙의 기간이요, 희망의 봄이요, 절망의 겨울이기도 했다. 우리들 앞에는 온갖 것들이 갖추어져 있었고, 또한 아무것도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모두가 다 천국으로 곧장 연결될 것들이었으며, 지옥으로 곧장 떨어질 것들이었다. 디킨스는 최고가 되거나 최악이 될 형질이 한 시대 안에 공존한다고 보았다. 어쩌면 같은 형질의 다른 발현일지도 모른다. 디킨스가 말한 두 도시, 런던과 파리는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었다. 파리는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을 기점으로 런던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고, 그 시간적 결과를 벨 에포크라고 불렀다. 1940년 11월 앙드레 알레오가 <라디오 파리>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인 벨 에포크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파리의 시간을 아름답고, 좋은 시대로 만들었지만, 그 후에 어떤 시대가 이어졌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벨 에포크는 20세기 최악의 비극인 제1차,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고, 유럽문학의 주류 목소리는 오랫동안 1, 2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다루는데 바쳐졌다. 르네상스라는 위대한 인문주의를 탄생시켰다고 그토록 자부했던 유럽문화가 홀로코스트를 위시한 무차별적 살육의 역사를 낳은 것에 대해 유럽의 지성들과 작가들이 받은 충격의 여진이 매우 길었던 때문이다. 위기는 사회구성원에게 여지가 많지 않은 선택을 강요한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가장 좋은 것에서부터 가장 나쁜 것까지 탄생한다. 지금이 그런 국면이다. 문제는 위기가 아니라 위기를 대하는 태도에 있다. 위기는 필연적으로 변화를 가져오는데, 그 변화는 사회구성원들을 승자와 패자로, 적응한 이들과 적응하지 못한 이들로 나눈다. 패자 혹은 적응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변화가 곧 재난이다.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때 주목할 것은, 변화가 반드시 선은 아니며 변화에 따르지 못한 것이 악은 아니라는 것이다. 삶은 다양해야 하고, 그 다양성은 변화가 찾아왔을 때 함께 변화하지 않겠다는 것들까지를 존중하고 포함해야 한다. 역사가 야코프 부르크하르트(18181897)의 말을 깊이 새겨야 한다. 중요한 것은 역사를 통해 이후에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지혜를 얻는 것이다. 우리는 분명 이번 위기를 통해 지식을 축적하고 전보다 똑똑해지겠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지식의 축적이 모든 구성원의 삶이 더 나아지게 만드는 역할을 해야만 지혜가 될 수 있다. 같은 위기 속에 있지만, 나라마다 다른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 사회의 선택과 대응이 새로운 시대를 연 지혜로 기록되고, 모두가 따르는 답이 되기를 바란다.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천세진 작가는 시집 『순간의 젤리』(천년의시작, 2016)와 『풍경도둑』(모악, 2020), 문화비평서 『어제를 표절했다』(피서산장, 2019)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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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11 16:38

예술인을 위한 권리장전

이기전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 오래 전 필자가 관장으로 재직하던 미술관 기획전을 준비할 때의 일이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후배 작가 한 명이 찾아와 기획전에 대한 계약서를 내밀어 순간 당황한 적이 있다. 그동안은 전시회에 대한 작품 출품을 부탁하면 구두로 승낙을 받는 일이 당연시 되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후배 작가는 기본 계약 외에도 전시기간 동안 작품에 대한 안전과 책임, 책임성 상해보험 가입 여부, 대외적으로 홍보 시 사전 동의를 구할 것 등을 명시한 구체적인 서류 몇 개를 더 내밀었다. 여러 장의 서류에 사인을 하고 나서야 겨우 후배의 작품을 반입할 수가 있었던 기억은 필자에게 당황스러웠던 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예술인의 서면계약 체결(표준계약서)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행위다. 정부는 지난해 6월부터 서면계약 체결을 의무화하고 예술 활동 분쟁 시 법적판단의 근거, 공정한 계약문화 정립, 불공정 행위 예방, 예술인의 직업적 권익보호, 예술인의 저작권보호 의식강화 등 예술인의 권리 보장 및 보호에 대해 사회적인 환경을 준비하는 데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술인의 권리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는 사회로 성숙하는 것이다. 여기서 불공정행위에 대한 예를 몇 가지 들어 보자. 한 작가가 프로젝트 운영자로부터 작가의 의도와 무관한 내용을 추가하라는 일방적인 지시를 받거나, 공연 기획자로부터 보수의 일부분을 공연티켓으로 지급받았다면 이는 불공정행위에 해당한다. 또한 공연기획 전문회사에서 행사에 참여해주는 조건으로 작품의 사례비 인하를 강요했다거나, 다른 경쟁업체와 계약하지 말 것을 예술인에게 강요하는 등의 경우, 예술인에게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강요한 불공정행위에 해당한다. 예술인들도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예술환경의 변화와 법, 제도 등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가 필요하다. 필자는 크게 세 가지를 강조하고자 한다. 첫째, 예술인 신문고 제도에 신고를 하여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 시정명령 미이행 시에는 1차 300만원에서 2차 400만원, 3차 500만원 까지의 과태료가 부과되며 서면계약 위반의 경우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문화예술기획업자에게는 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둘째, 산재보험이다. 지난 2012년 11월 예술인복지법 시행 및 산재보상보험법 개정으로 인해 이제 프리랜서 예술인도 산재보험 가입이 가능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예술인 고용보험제도다. 지난해 12월 10일부터 시행된 이 제도는 잦은 실업과 고용불안정으로 지속적 창작활동이 어려웠던 직업예술인에게 휴직, 실업 상태에서의 구직활동 기간 동안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제도다. 프리랜서 예술인 중 문화예술용역 계약을 체결한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제도로 1개월 미만의 단기 계약 예술인도 가입이 가능하다. 그러나 근로자인 예술인, 65세 이후 용역 체결 예술인, 계약 건별 50만 원 미만인 예술인은 제외된다. 더욱 자세한 사항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또는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이 운영하는 전북예술인복지증진센터에서 온오프라인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예술인들도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예술환경의 변화와 법,제도 등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가 필요하다. /이기전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 △이기전 대표는 서양화가로 사단법인 목우회 이사장, 전주현대미술관관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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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04 17:40

온고지신의 산실, 한국전통문화전당

김선태 한국전통문화전당 원장 전통이란 모름지기 온고지신 정신으로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통하여 새것을 찾는다는 의미로 보존하고 계승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한국전통문화전당은 시대와 사람, 지역에 머무르는 전통문화가 아니라 역동적으로 변모하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현대와 다음세대에 이어질 수 있도록 발신자 역할에 충실한 전주시출연기관이다. 올 한해 한국전통문화전당에서 발굴한 국가공모 사업은 대략 60억 원에 달하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으며, 첫째, 시민과 함께하는 전통문화 활성화인 방문객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식, 한지, 공예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매우 큰 만족도를 주었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 다중이용시설 방문이 어려운 전라북도 내 학교 및 단체를 대상으로 찾아가는 서비스와 가정에서도 할 수 있는 집콕키트를 제작 배포하여 비대면 체험을 동시에 실시하였으며, 시민과 함께하는 메이커스페이스는 전국 164개 운영기관 중에서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 둘째, 전통문화 R&D사업으로는 공예용 천연 접착제 평가기준 개발, 전통 직조 기반의 수직기 시뮬레이션 및 개량기술 개발, 한지 건축 및 인테리어 산업 육성, 소기업 혁신역량강화사업, KOLAS(전국유일의 지류분야 국제공인시험기관)인증 등 전당만이 할 수 있는 연구실적을 달성했다. 특히 한지보급화로 전주한지 초등학교 교과서 제작 지원사업은 한지지도, 편지지, 색지를 교과서에 삽입하고 배포하여 좋은 반응을 얻어 전국으로 확대해나가는 중이다. 이번 시예결산특위에서 모의원이 독려했던 전주한지 제조 닥나무 수매사업은 전주시 근교에 닥나무를 계약 재배하여 수입산 닥펄프 대신 안정적인 공급과 생산농가의 소득보장을 위한 일거양득과 동시에 내년 초에 전주한지 메카였던 흑석골에 전주한지전통제조시설이 개관하면 전주한지의 원형 복원과 세계 문화유산 유네스코 등재에 한걸음 다가갈 것이다. 여기에 한지 세계화로 재외공간 한스타일 공간연출사업은 외교부에서 대상 국가의 순번을 조정해 줄 만큼 인기가 많다. 또한 맛의 고장 전주에 걸맞은 전주 음식 아카이브 구축사업은 전주음식 명인에 대한 자료를 보존하고 보급하여 세계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 위상을 드높이는 사업이다. 셋째, 전통문화를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한 전통놀이 실태조사와 전통놀이 공간조성사업은 국내 석학을 중심으로 국제 심포지엄을 열었고, 전주한옥마을에 개관한 전통놀이 체험관인 마루달은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연일 예약이 폭주하여 전주한옥마을의 중요 콘텐츠로 가능성을 보았다. 넷째, 전주공예품전시관은 코로나로 문 닫는 날이 많았는데도 온라인과 찾아가는 마케팅으로 작년 매출에 준한 성과를 올렸고, 전국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현대 공예품 경매 옥션은 전품목이 완판 되어 그 가능성을 보았다. 이 외에도 한국공예장인학교, 동네 손 상회, 수공예작가 현황조사 등 대한민국에서 유일무이하게 한국전통문화전당 만이 할 수 있는 사업들이다. 올해 출연기관 외부평가에서 수많은 국책사업을 성실히 수행한 점을 인정받아 A등급을 받았으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내년에도 한국전통문화전당은 대중과 향유하는 전통문화의 미래가치를 재창조하는 기관으로 거듭 나기위해 연구 콘텐츠 개발과 전통문화 발굴 육성을 통해 황소걸음처럼 시나브로 온고지신의 산실로서 그 역할을 다 할 것이다. /김선태 한국전통문화전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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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28 17:54

세계 유일의 ‘천국’을 새만금에 건설하자

소재호 한국예총 전북연합회장 유토피아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을 토마스 모어가 일컬었던 말이다. 이상향 또는 이상국은 플라톤의 <국가>에서부터 유래된다. 뒤에는 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 베이컨의 뉴아틀란티스 등으로 이어진다. 동양에서는 도원경이라 했고 불계에서는 극락이라는 말이 이미 등장해 있었다. 또한 이백의 시구에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란 어구가 이상향이란 뜻으로 회자되었다. 파라다이스 낙원 등도 그 의미의 특색은 조금씩 다르겠으나, 묶어서 보면, 근심 걱정 없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곳, 도덕적 율법이 완전히 구현된 곳, 사악함이 없고 진.선.미의 세계로만 조성된 곳 등등으로 필요 충분 조건을 갖춘다. 그래서 인간계의 최선이며 자연계의 최상인 세상이므로 인류가 오랫동안 꿈꾸워 온 세계이나 결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경지의 땅이다. 자연 환경의 최상은 기화요초(琪花瑤草) 만발한 배경이 가장 먼저 선행 요건이다. 신선이나 선녀가 사는 세상, 천사가 거처하는 세상은 벌써 온 천지가 꽃밭인 것이다. 인간의 미적 감지 능력은 꽃을 보면서 배양되었다는 설이 있다. 꽃에게서 인간의 아름다움은 전이되는 것이다. 필자가 언감생심 인간들의 도덕 국가, 천년지복설(千年至福說)을 논할 엄두도 못내나, 다만 꽃의 천국을 건설하면 곧 이게 지상의 천국일 것이란 주장을 펴고 싶은 것이다. 네덜란드가 꽃의 나라를 조성하여 외화 벌이도 하고 청정 환경 국가도 이루고 나아가 국격이 최상에 이르는 문화 문명이 최고인 나라가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만약에 새만금을 꽃의 천국 그러니까 꽃의 낙원을 만든다면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 이상향인 유토피아를 건설하게 되는 것에 다름 아니리라. 무슨 무슨 공장을 세워 굴뚝으로 공기 오염의 연기만 뿜어낼 궁리를 서둘 일이 아니고, 산업체 무엇 무엇을 유치해 그들이 누리는 영리로 인해 지역 경제가 마비될 일을 궁구할 일도 아니며, 오히려 천년 낙원, 천년 복지의 별천지를 구상한다면 한반도의 영화가 여기서 비롯 몇 백년을 영속할 터이다. 꽃밭이 늘어난 만큼 반비례로 감옥이 줄어든다는 말도 있다. 인간의 숭고한 정신이 고차원 정서 함양에서 비롯됨을 우리는 알아차려야 할 것이다. 천국의 청사진은 빌딩 하나 건설하는 데에 소용되는 기획력의 천분지 일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자연이 심볼이기 떄문이다. 그러니까 진경산수(眞景山水) 이모저모를 모사하면 될 터이다. 무한대의 노동력이 필요하여 일자리도 무한 창출되리라. 뭍과 물이 서로 맞물려 있고, 사방으로 뻗은 육교가 있고, 이미 광활한 빈 터가 마련되어 있다. 작은 폭포 수백개 세우고, 요리조리 오솔길도 만들고, 한 2박3일 주유하다 아름다운 인간성 형성 후에 그들의 일상으로 되돌아 가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숙박시설도 정교한 코테이너 박스를 수천개 꽃 무늬로 배열하고, 음식점도 요지가지로 수백개 도열시키며, 해돋이, 해넘이 관망대도 솟구쳐 놓고, 드라이브 코스도 만들고, 승용차 관람 꽃받 야외 영화관도 만들고, 약간의 위락 시설도 확보 하며 그야말로 힐링의 낙원을 준비해 두는 것이다. 제4의 국격 높이는 사업으로 종합예술 창도는 물론 대규모 화훼 산업도 일으키고, 식물원, 수석원 , 분재원도 구비하며 미술관,도자기 공예품 전시관도 마련하여,손이 손을 부르게 하는 연쇄성 천국 건설을 시도해 볼 만하지 않는가. 예쁜 의상의 고객이 무시로 출현하여 인화(人花) 까지 만발케 한다면 사람의 동네가 바로 천국이러니. 공감 정서에서 곰감 문명으로 다시 공감 문화로 진화 한다면 한국의 국격은 최상이 되리라. 천국,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지상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소재호(한국예총 전북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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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21 17:44

2020 전북 국악계를 돌아보다

김문성 국악평론가 2020년 경자년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코로나19의 급습으로 도내 문화예술계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3차 유행 이전까지는 타시도에 비해 피해가 비교적 적어 각종 사업이 순연되는 가운데 진행되었으나, 3차 유행이 본격화하면서 사실상 올스톱되었다. 그럼에도 2020년, 도내 문화예술계는 비교적 선방한 것으로 평가된다. 눈에 띄는 점은 전북문화관광재단과 전북도의 선제적이고 신속한 피해구제 노력과 위기관리 능력이다. 코로나19 초기 도내 예술인과 단체를 위해 4억 여원의 예산을 긴급 투입해 재난 극복 지원 사업을 실시했다. 공모 대신 지역 문화 예술 육성 지원사업에서 탈락한 190여 예술인과 단체를 대상으로 차순위 선정자로 추가해 지원함으로서, 행정낭비와 시간 지연의 한계를 극복했다. 3억을 투입해 공연예술 창작활성화 지원사업 이름으로 30개 단체를 지원한 것도 시의적절했다. 타시도와 달리 예술인 생계를 위한 재난지원금 사업을 선제적으로 도입한 것도 눈에 띈다. 예술활동 증명을 마친 예술인을 상대로 도가 직접 30만원을 지급해 예술인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이러한 노력에 호응하듯 국악계는 비록 공연부문은 타격이 있었으나, 경연대회, 연구, 콘텐츠 등 사업부문은 어느 정도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경향각지에서 활동하는 전북 출신 국악인들의 낭보가 이어졌다. 도내에서 터를 잡고 활동하는 이난초, 김영자, 김일구 명창이 차례로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흥보가, 심청가, 적벽가 예능 보유자로, 군산 출신 김수연 명창이 수궁가 예능 보유자로 인정되는 개가를 올렸다. 전주 출신 황인유씨가 경주신라문화제 대통령상을, 도립국악원 심미숙씨가 상주전국민요경창대회 대통령상을 수상했으며, 고창 출신 유희경씨가 대구국악제 대통령상을 수상해 전북예술의 우수성을 알렸다. 우려스러운 일도 있었다. 국악과와 음악과를 통합해 음악과로 운영하던 원광대가 폐과를 결정했다. 음악과 폐지 대안으로 실용음악과 설치 가능성의 여운을 남기기는 했으나 우석대에 이어 원광대 국악과 폐지로 도내 우수한 국악 인재 양성에 빨간 불이 켜졌다. 도내 국악계 최대 현안인 통합무형문화재 전수관 설립 여론이 잠잠해진 것도 다소 우려스럽다. 사업비와 부지 문제 등으로 표류하다가 신축이 확정된 도립국악원은 내년에 착공해 2022년 12월 준공할 예정이나, 코로나19로 영향을 받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전주세계 소리축제도 커다란 도전을 맞았다. 전세계 유수 뮤지션의 참여를 통해 규모를 확장하던 축제가 코로나19로 해외 연주자 참여가 불가능해졌고, 미디어를 활용한 실험적인 온라인 콜라보 공연으로 진행했으나, 일정 부분 한계를 노출하기도 했다. 축제 종료 후 전주역 광장에서 19일간 진행된 1919챌린지 릴레이 버스킹 공연은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한 도내 국악인들에게 훌륭한 무대로 역할해 지역 예술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 다만 코로나19가 내년에도 지속될 경우 월드뮤직, 퓨전, 청년화를 키워드로 확장하는 소리축제의 정체성과 콘텐츠 구성에 대한 고민이 과제로 남는다. 2020년 코로나19로 도내 국악계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국악에 대한 도민의 관심과 예술인들의 열정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 있다. 2021년 신축년에는 전북이 K-소리 본향으로서 면모를 일신하며 한단계 더욱 성장하고 도약하기를 기대해본다. /김문성 국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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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14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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