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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

이번 설날에도 판소리 <흥보가>를 여러 번 들었다. 명절이면 가장 많이 듣는 레퍼토리인데, 아마도 흥보가 아내와 함께 탄 박속에서 돈과 쌀이 나와서, 음식도 풍성하게 차리고 비단옷도 입고 좋은 집에서 살게 되었다는 결말 때문인 듯하다. <흥보가>는 형제간의 우애 문제를 다루면서 조선 후기 서민 사회의 궁핍한 정황을 살갑게 그려내고 있는 예술 작품이다. 흥보의 착한 성품과 놀보의 심술궂고 악착같은 성품을 대조하여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긴장감과 흥미를 이끌어간다. 흥보는 제비의 부러진 다리를 고쳐준 대가로 박씨를 얻는다. 그렇게 열린 박에서 돈과 쌀이 나오고, 비단과 기와집이 나와서 흥보네 가족은 행복하게 살게 된다. 한편 형인 놀보는 일부러 제비다리를 분질러서 부자가 되려고 욕심을 부리지만, 악행을 저지른 것 때문에 오히려 봉욕을 당하고 재물을 빼앗기게 된다. 권선징악의 환타지구조에 충실한 작품이다. <흥보가>는 「흥보 매품을 파는 대목」, 「가난타령」, 「돈타령」 등 눈대목을 통해서 가난한 서민들이 고생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흥보가 타는 박에서 밥과 옷과 집이 차례로 나오는데, 이것은 조선 후기 민중들의 의식주에 대한 꿈을 환상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흥보가> 가운데 특히 흥미로운 것이 「돈타령」이다. 흥보는 박속에서 꾸역꾸역 나왔던 돈을 들고 춤추며 「돈타령」을 부른다. 노랫말은 돈의 생김새, 돈의 권능, 돈의 효과 등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못난 사람도 잘난 돈, 잘난 사람은 더 잘난 돈”이라는 구절에는 돈에 대한 적극적 평가가 나타난다. 돈에 의하여 만사가 좌지우지되는 현실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 지배 양반들은 손에 돈을 만지지도 않는다고 위선을 떠는 데 반하여, 민중들은 그것의 중요함을 솔직하게 구가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돈타령」은 화폐경제의 시작을 알리는 하나의 증거가 된다. 다른 전승에 의하면 이 부분은 “잘난 사람도 못난 돈, 못난 사람도 잘난 돈”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못난 사람도 잘난 돈’은 이해가 되는데, ‘잘난 사람도 못난 돈’이 되는 이유는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잘난 사람’은 야유의 표현일 듯하다. 진짜 잘난 사람이 아니라 돈 있다고 으스대며 거드럭거리는 이들을 ‘잘난 사람’이라고 총칭했다. 그러니까 졸부들이 으스대며 쓰는 돈이야말로 못난 돈이 되는 것이다. 흥보네 가족은 박속에서 나온 돈과 쌀로 상상을 초월하는 부자가 되었다. 궤짝을 비워내도 거듭 거듭 나오는 돈과 쌀은 무한대에 가까운 우리의 욕망을 표상한다. 그런데 부자가 된 다음 흥보가 보여준 태도에서, 나는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풍성한 리더십을 찾아낸다. 흥보는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아, 박흥보를 찾아오소. 나도 오늘부터 기민을 줄란다”고 노래한다. ‘기민(飢民)을 준다’는 것은 굶주린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눠주어 배고픔을 면하게 하는 행위다. 부자가 된 흥보는 가장 먼저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을 생각했다. 전통사회에서 흉년이 들 때면 부잣집에서는 곳간을 열어, 굶어 죽기 직전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주어서 모두 함께 살아남았다. 지금 우리 주변은 2년 넘게 지속되는 역병으로 인해, 정상적인 삶의 일상을 빼앗기고,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 가장 쓸쓸한 설날을 보냈고 있을 이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에게, 흥보는 돈과 쌀을 나눠주겠다고 자기 집으로 부르고 있다. 그야말로 ‘잘난돈’이고, 이런 태도야 말로 공동체를 유지해나가는 힘이다. /유영대 국악방송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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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2.07 19:08

문화강국 KOREA,  세계가 한국을 주목 한다

심가희 아트네트웍스 대표 세계인의 축제가 열리고 있는 2020 두바이 엑스포에서는 지난 16일부터 20일까지 한국의 날과 한국주간을 맞아 특별행사가 열렸다. 16일 열린 한국의 날은 세계엑스포 참가국별로 열리는 국가의 날 공식 행사로서 두바이 엑스포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알 와슬 프라자(Al Wasi Plaza)에서 개최됐다. 행사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대표로 문승욱 산업부장관, 정의용 외교부장관, 유정렬 코트라사장 등 우리 측 인사 50명과 2020 두바이 엑스포 정부대표인 나흐얀 UAE 관용공존부 장관 등 두바이 측 인사 50명이 참석했다. 문화공연에는 리틀엔젤스 예술단과 태권도 시범단 K타이거즈, UAE 현지 인기그룹인 한국 아이돌그룹 스트레이 키즈가 출연해 전통을 바탕으로 한 역동적인 퍼포먼스로 눈길을 모았다. 문대통령은 이날 연설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과 사막의 기적을 실현한 UAE는 번영의 길을 함께 열어가고 있다며 지속가능한 미래로 가는 길에 한국의 혁신기술과 문화가 힘이 되길 바라며, UAE와 함께 세대와 국경을 넘어 함께 회복하며 함께 도약 할 것을 역설했다. 나흐얀 UAE 관용공존부 장관(두바이 엑스포 총괄책임) 또한 연설을 통해 우리 꿈에는 한계가 없다, 불가능이라는 단어는 없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주고 있다면서 마음의 연결, 미래창조라는 엑스포 주제로 세계를 연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관은 2020 엑스포 관람객들에게 한국의 신기술을 보여주고 있고 4차 산업 혁명을 체험하도록 하고 있다며 두바이 엑스포를 넘어 한국과 특별한 동반자 관계를 한층 더 격상시켜 상생과 번영을 도모하고자한다고 했다. 우리정부는 두바이 엑스포 내 한국관 건립을 위해 총 471억 예산을 투입해 192개 참가국 중 5번째 큰 규모를 자랑한다. 두바이 엑스포 한국의 날 부대행사로 마련된 K-Pop 콘서트는 두바이 엑스포장 내 가장 큰 야외공연장인 쥬빌리 공원에서 진행됐다. 이날 공연에는 한국관 홍보대사인 가수 스트레이 키즈를 비롯해 싸이, 선미, 여자아이들, 골든차일드, 포레스텔라 등 6팀이 출연해 6천여 명의 관객들로부터 큰 환호를 받았다. 현지 대학마다 한류클럽소속 학생들은 한글을 알리기에 여념이 없었고, 관객들은 모두 한국어 노래를 따라 불렀다. 이번 2020 두바이 엑스포에는 새만금개발청 관계자도 한국의 날과 한국주간에 맞추어 참석했다. 새만금 개발에 총력을 다 하고 있는 새만금개발청 관계자들은 192개국이 참가한 두바이엑스포를 방문해 각 국가관을 둘러보며 최첨단 기술과 세계문화가 한 곳에 모여 있는 엑스포에서의 다양한 컨텐츠를 체험하며, 새만금 문화엑스포 추진계획과 새로운 문화 컨텐츠 개발을 구상하였다. 또 하나의 기적! 새만금의 기적을 기대해본다. 필자는 두바이엑스포를 보며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문화의 힘이다! 예전에는 한국을 알리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야만 했지만, 이제는 안으로의 세계화가 필요한 때이다. 정부는 2023년 새만금세계잼버리 대회 등 대규모 국제 행사나 전시회를 메타버스 이벤트로 개최할 방침이다. 한국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눈을 크게. 더 멀리, 시선을 높이 두어야 한다. 한국은 최첨단 정보통신기술(ICT)과 문화가 결합된 새로운 컨텐츠 개발로 더욱 찬란한 문화강국을 이루어야 한다. /심가희 아트네트웍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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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1.24 19:48

호랑이는 있다 함부로 날뛰지 말자

-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조선시대 호랑이 그림이 적지 않다. 민화 속의 호랑이들은 익살스런 표정이 많아서 무섭기보다 오히려 친숙한 감이 든다. 유명한 호랑이 그림으로는 김홍도(金弘道1745~1806?)가 호랑이를 그리고 스승인 표암 강세황(姜世晃1713~1791)이 소나무를 그린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삼성미술과 리움 소장)와 임희지(林熙之1765~1820)가 대나무를 그리고 김홍도가 호랑이를 그린 「죽하맹호도(竹下猛虎圖)」(개인소장), 호랑이의 늠름한 모습만 그린 「맹호도(猛虎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등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맹호도」에는 다음과 같은 제화시가 쓰여 있다. “영맹마아숙감봉(獰猛磨牙孰敢逢), 수생동해노황공(愁生東海老黃公). 우금발호횡행자(于今跋扈橫行者), 수식인중차안동(誰識人中此顔同).”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사납게 이를 간 이 호랑이에게 맞설 자 누구이겠는가?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았다는) 동해의 노황공도 이 호랑이를 보고선 겁을 내겠네. 오늘날 제멋대로 날뛰는 사람들 중에 아직도 세상에는 이 호랑이처럼 위엄이 있고 엄한 분이 있다는 것을 아는 자 누구일까?” 위풍당당한 호랑이에 걸 맞는 시 한 수를 써넣음으로써 명작이 되었다. 우리의 옛 그림은 이처럼 그림과 시가 한 화면에서 만나 상승작용을 함으로써 풍미와 운치를 더한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명화에 쓰인 이런 시를 읽는 사람이 거의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광복 후 미 군정청에서 법률로 제정하여 시행한 ‘한글전용법’을 1948년 대한민국정부 수립 후 한글날을 기해 공포함으로써 오늘날까지 국어기본법의 근간이 되어 우리의 문자생활을 제한하고 있다. 미 군정청은 한국에서 한자만 말살하면 한자로 기록해온 반만년의 역사와 문화를 지우고 그 자리에 미국의 문화를 이식할 수 있다는 속셈으로 한글전용법을 서둘러 시행했는데 우리는 얼결에 그런 어문정책에 호응해 버렸다. 게다가 일부 교육정책 입안자와 친미적인 사람들은 실은 어렵지도 않은 한자에 대해 어렵고 불편하다는 왜곡선전을 계속함으로써 한자를 도태시켰다. 그 결과 우리는 과거 2000년 동안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해온 문자인 한자를 읽지 못하는 문맹국민이 되었다. 자신의 역사를 기록한 문자를 읽지 못하는 국민이 문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세계의 문자는 소리글자와 뜻글자로 대분하는데 소리글자도 많은 장점이 있지만 뜻글자의 장점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양자의 장점을 다 살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소리글자인 한글과 가장 발달된 뜻글자인 한자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복 받은 나라인데 얼결에 미국문화에 경도됨으로써 한자문맹을 자초했다. 한자를 안 가르친 탓에 학생들은 한글로 쓰인 책을 읽기는 해도 속뜻을 몰라 문해력이 형편없이 저하하였고, 사회는 단어의 뜻도 이해하지 못한 채 함부로 말하며 날뛰는 무리들이 많다보니 걸핏하면 말꼬리를 잡는 시비가 벌어지곤 한다. 특히 정치판은 온통 말싸움으로 얼룩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명화 속의 호랑이처럼 위엄을 갖춘 인물들이 많다. 그런데 발호하고 횡행하는 사람들은 자신 외에는 인물이 없는 줄로 알고 더욱 날뛴다. 임인년 새해에는 살쾡이나 여우 무리들이 호랑이 무서운 줄을 아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자교육이 이루어져서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볼 수 있기를 아울러 바란다. *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는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총감독을 역임했으며, 강암연묵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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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1.19 13:55

메타버스 시대 살아남기

이영로 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원장 최근 많이 듣는 신조어중의 하나는 메타버스일 것이다. 유명 소셜네트워크 기업이 사명을 메타플랫폼으로 바꾸었다니 미래 유망 투자처로 한두번은 들었을 것이고, 한 정치인이 매주 타고 다니는 버스를 매타버스라 해서 귀에 어느 정도 익숙해 진 듯하다. 메타버스는 가공, 추상을 의미하는 Meta와 우주 또는 세상을 의미하는 Verse의 합성어로 현실세계와 같은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의 가상세계를 의미한다. 1월초 개막한 소비자가전전시회(CES 2022)의 주제가 일상을 넘어서였는데, 메타버스가 올해의 새로운 트랜드로 추가되었다. 한편 인류 역사를 보면 펜더믹이 있을 때마다, 인류는 지혜를 발휘하여 혁신기술이 나오고 삶의 방식도 급격히 변하였다고 한다. 혹자는 인류역사가 코로나전(BC)와 코로나후(AC)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간의 행동반경은 급격히 좁아졌지만, 상상력의 범위는 획기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 상상력의 산물이 메타버스다. 온라인상에서 단순한 재미꺼리나 게임으로 시작된 서비스가 이제는 그 안에서 삶을 영위하고 상거래까지 가능하게 됨으로서, 새로운 라이프를 꿈꾸는 세대를 열광하게 하고 있다. 반면, 코로나19는 전통적인 문화산업에는 부정적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관객중심의 공연전시산업은 타격이 컸다고 한다. 2021년 상반기까지 문화예술분야 공연, 전시 취소로 인한 관람수입은 급격히 줄었고, 하반기 들어서 상당부분 회복 되었다고 하나, 12월 또다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하면서 찬물을 끼얹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이다. 필자는 과거 인터넷 보급과 이를 활용한 국가정보화 사업을 하면서, 신기술이 인간의 관습까지 바꾸는 것은 꾀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경험한 바 있다. 반면 한번 익숙해지면 되돌아가는 것은 더 어렵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문화충격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새로운 문화를 접하면 큰 스트레스를 받다가 2년이 흐르면 적응을 마친다고 한다. 코로나가 우리나라에 첫 발견된 지 1월 말이면 만 2년이 된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싫든 좋든 2년 동안 우리의 생활방식도 거리두기에 익숙해지고 있는 듯하다. 젊은 직원들과의 회식문화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집단문화로 돌아가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꼭 만나야 할 일이 아니면 화상회의가 더 편하고, 경제적이다. 대학에서의 수업도 상당부분 온라인으로 대체될 것이다. 대신 시간이 나면 가상세계(메타버스) 환경에서 그동안 못했던 체험이나 취미활동을 하거나 친구를 사귀거나 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익숙했던 현장 공연전시문화는 어떻게 될까? 메타버스 환경에서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수준의 감동을 준다면 공연전시 시장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일어날 것이다. 실시간 공연에 메타버스 환경을 접목시 서로 다른 공간에서 협연도 가능하고, 온라인 관객 확대도 가능하다. 문화콘텐츠 제작에 있어서도 인공지능,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시 쉽고 빠르게 제작이 가능하게 된다. 그만큼 편리하게 컨텐츠의 공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문화콘텐츠 제작산업은 발전 가능성이 높다. 놀랍게도 팬데믹은 기존 시장의 변화 이외에 새로운 산업의 발전을 가속화 할 촉매가 될 것으로 보인다. 10년후 우리의 삶의 방식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메타버스 시대에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미래의 주역이 될 MZ세대가 지금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에 열광하는지 자세히 관찰해 보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올 것이다. /이영로 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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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1.17 19:20

호랑이는 있다 함부로 날뛰지 말자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조선시대 호랑이 그림이 적지 않다. 민화 속의 호랑이들은 익살스런 표정이 많아서 무섭기보다 오히려 친숙한 감이 든다. 유명한 호랑이 그림으로는 김홍도(金弘道1745~1806?)가 호랑이를 그리고 스승인 표암 강세황(姜世晃1713~1791)이 소나무를 그린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삼성미술과 리움 소장)와 임희지(林熙之1765~1820)가 대나무를 그리고 김홍도가 호랑이를 그린 「죽하맹호도(竹下猛虎圖)」(개인소장), 호랑이의 늠름한 모습만 그린 「맹호도(猛虎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등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맹호도」에는 다음과 같은 제화시가 쓰여 있다. 영맹마아숙감봉(獰猛磨牙孰敢逢), 수생동해노황공(愁生東海老黃公). 우금발호횡행자(于今跋扈橫行者), 수식인중차안동(誰識人中此顔同).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사납게 이를 간 이 호랑이에게 맞설 자 누구이겠는가?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았다는) 동해의 노황공도 이 호랑이를 보고선 겁을 내겠네. 오늘날 제멋대로 날뛰는 사람들 중에 아직도 세상에는 이 호랑이처럼 위엄이 있고 엄한 분이 있다는 것을 아는 자 누구일까? 위풍당당한 호랑이에 걸 맞는 시 한 수를 써넣음으로써 명작이 되었다. 우리의 옛 그림은 이처럼 그림과 시가 한 화면에서 만나 상승작용을 함으로써 풍미와 운치를 더한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명화에 쓰인 이런 시를 읽는 사람이 거의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광복 후 미 군정청에서 법률로 제정하여 시행한 한글전용법을 1948년 대한민국정부 수립 후 한글날을 기해 공포함으로써 오늘날까지 국어기본법의 근간이 되어 우리의 문자생활을 제한하고 있다. 미 군정청은 한국에서 한자만 말살하면 한자로 기록해온 반만년의 역사와 문화를 지우고 그 자리에 미국의 문화를 이식할 수 있다는 속셈으로 한글전용법을 서둘러 시행했는데 우리는 얼결에 그런 어문정책에 호응해 버렸다. 게다가 일부 교육정책 입안자와 친미적인 사람들은 실은 어렵지도 않은 한자에 대해 어렵고 불편하다는 왜곡선전을 계속함으로써 한자를 도태시켰다. 그 결과 우리는 과거 2000년 동안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해온 문자인 한자를 읽지 못하는 문맹국민이 되었다. 자신의 역사를 기록한 문자를 읽지 못하는 국민이 문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세계의 문자는 소리글자와 뜻글자로 대분하는데 소리글자도 많은 장점이 있지만 뜻글자의 장점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양자의 장점을 다 살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소리글자인 한글과 가장 발달된 뜻글자인 한자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복 받은 나라인데 얼결에 미국문화에 경도됨으로써 한자문맹을 자초했다. 한자를 안 가르친 탓에 학생들은 한글로 쓰인 책을 읽기는 해도 속뜻을 몰라 문해력이 형편없이 저하하였고, 사회는 단어의 뜻도 이해하지 못한 채 함부로 말하며 날뛰는 무리들이 많다보니 걸핏하면 말꼬리를 잡는 시비가 벌어지곤 한다. 특히 정치판은 온통 말싸움으로 얼룩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명화 속의 호랑이처럼 위엄을 갖춘 인물들이 많다. 그런데 발호하고 횡행하는 사람들은 자신 외에는 인물이 없는 줄로 알고 더욱 날뛴다. 임인년 새해에는 살쾡이나 여우 무리들이 호랑이 무서운 줄을 아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자교육이 이루어져서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볼 수 있기를 아울러 바란다.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 *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는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총감독을 역임했으며, 강암연묵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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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1.10 19:17

임인(壬寅)년을 생각한다

유영대 국악방송 사장 2022년이 되었다. 시간은 그저 흘러가는 것인데, 사람들은 경계 표식을 위하여 선을 그어두고 기억의 기준으로 삼아왔다. 서양의 시간인식은 직선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예수의 탄생을 기원으로 삼아 2022년이 흘렀다는 뜻이다. 동양에서는 순환적인 시간인식을 갖고 있다. 사람의 생애를 60으로 삼고, 이것의 순환을 시간인식의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니까 동양에서는 60년을 기준으로 삼아 시간이 끝없이 순환되는 것이다. 임인(壬寅)은 60갑자 가운데 39번째를 말하는 숫자로서, 올해는 특히 검은 호랑이해를 상징하여 기억한다. 임인년의 기록 가운데, 지금부터 180년 전 조선 말 가객 안민영의 금옥총부(金玉叢部)의 사연이 흥미롭다. 안민영은 임인년(1842년) 가을에, 주덕기를 데리고 운봉으로 명창 송흥록을 찾아왔다. 그때 송흥록의 집에는 신만엽・김계철・송계학 등 여러 명창들이 있었는데, 그들 일행은 함께 송흥록의 집에 머무르면서 수십 일을 실컷 놀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가왕 송흥록이야말로 당대를 대표하는 명창이었지만, 그의 집에 함께 있던 명창들도 역시 19세기 중반 판소리 문화의 핵심에 있었다. 주덕기는 창평군 출생으로, 송흥록과 모흥갑의 고수로 활동했는데, 판소리에 전념하기 위하여 깊은 산에 들어가서 소나무를 베어가면서 독공을 하여 명창이 되었다. 김제철은 충청도 출생으로 석화제 스타일을 개발했으며, 신만엽은 여산 출생으로, 가녀리게 소리한 것으로 당대를 풍미했다. 이들은 수십일 동안 판소리와 가곡을 부르고 춤을 추면서 최고의 공연을 질탕하게 즐겼다. 안민영의 기록에 의해 180년 전 임인년의 명창들이 소환되는 이 추억이 흥미롭다. 안민영은 남원・진주 일대 지방에 묻혀있는 뛰어난 명인・명창・명무를 발굴하여, 대원군의 거소인 운현궁으로 데리고 왔다. 안민영의 안목으로 선택된 명인과 기생들은 대원군의 운현궁에서 당대 최고의 공연을 펼쳤다. 대원군은 조선의 예술가를 후원하는 패트런이었고, 그로 인하여 조선풍류를 선도하는 새로운 무대가 완성되었다. 180년 전 임인년에 안민영이 조선의 스타들을 끌어 모아 운현궁에서 경연을 벌였던 일은, 요즘 인기를 누리고 있는 풍류대장과 같은 국악 오디션 프로그램에 국악 명인이 모여 경연하는 것과 비슷하다. 오디션의 심사위원들은 빼어난 실력과 감식안을 갖춘 이들이다. 그런데 국악인인 경연자들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면, 내로라하는 심사위원들이 입을 쩍 벌리며 그들의 기량에 연신 감탄하고, 다물지 못했다.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DNA 속에 오래 담겨왔던 국악의 저력이, 이 경연대회를 통하여 발휘되었고, 그 신명에 온 국민이 놀라며 경탄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풍류대장에 참가한 우리시대의 예술가들이 모두 국악방송 경연대회를 통하여 배출된 인재라는 사실이다. 국악방송은 일찌감치 인재를 발굴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운영해왔고,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인재들을 키워왔다. 그들의 기량이 정점에 올랐을 때, 때마침 생겨난 경연대회를 통하여 제대로 평가받는 무대를 만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안민영의 임인년을 되새기는 매우 흥분되는 새로운 임인년을 맞이하고 있다. 국악방송은 최근 K-MUSIC의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이 변화의 흐름을 이끌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 새로운 국악의 도약을 위하여 임인년에 안민영이 했던 프로젝트를 되새겨야 한다. /유영대 국악방송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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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1.03 19:44

야누스의 달 1월(January)을 맞이하며

이승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회장 임인년(任寅年)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이 편치 않다. 코로나가 몰고 온 암운 탓이리라. 해마다 이맘때면 설렘으로 가슴이 뛰었었다. 벽걸이 달력의 12월과 내년 1월을 한꺼번에 훑는 자신을 발견하고 흠칫 놀란다. 야누스를 생각한다. 영화 <파도가 지나간 자리>와 함께다. 영화는 간접화법으로 야누스에 대해 설명한다. 1월(January)이란 단어의 어원이 야누스야. 야누스 신의 이름에서 온 거지. 야누스는 앞뒤로 얼굴이 하나씩 있어. 늘 양쪽을 바라보고 있어서 두 개의 시선 사이에서 괴로워하지. 1월은 새해를 바라보기도 하고, 지난해를 바라보기도 해. 영화의 배경은 야누스 섬이고, 섬 위에 우뚝 솟은 등대는 불빛으로 형상화된 앞뒤 얼굴로 양쪽 바다를 비춘다. 여전히 삶을 이어 가야 하기에 폭풍우 몰아치는 밤에도 항해하는 배가 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전쟁영웅 톰(마이클 패스벤더 분)은 야누스라는 이름을 가진 외딴섬 등대지기를 자원한다. 보급선 기다리는 것이 유일한 낙이 되어버린 그에게 어느 날 이자벨(알리시아 비칸데르 분)이란 여인이 나타나 결혼에 골인한다. 꿈같이 행복한 시간도 잠시. 이자벨은 두 번의 임신에 두 번 다 유산하는 아픔을 겪는다. 어느 날 파도에 이끌려 한 척의 쪽배가 섬에 당도한다. 배에는 젊은 남자의 시신과 울고 있는 아이가 타고 있다. 상부에 보고하려는 톰에게 이자벨이 매달린다. 그냥 키우자는 것이다. 부부는 자기들이 출산한 것처럼 아이를 키운다. 몇 년 후 육지에 간 둘은 아이 친엄마인 한나의 존재를 알게 된다. 톰은 이자벨에게 말하지 않고 아이 딸랑이를 한나의 집에 슬그머니 놓고 나온다. 이게 증거가 되어 투옥된다. 무슨 짓을 한 거야. 날 사랑하지 않는 거지. 살아있는 한 절대 용서 못 해. 이자벨은 남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남자는 섬에 도착할 때 사체였어요. 이 한 마디면 톰은 풀려나겠지만 이자벨은 말하지 않는다. 부부의 고뇌가 깊어진다. January는 야뉴스에 관한 것이란 뜻의 라틴어 야뉴아리우스Januarius에서 왔다. 야뉴스는 문의 신이다. 안쪽과 바깥쪽을 동일시하는 신은 한 손에 열쇠를 들고 있다. 열쇠는 문을 열고 잠그는 기능이 있다. 예쁜 아이지만 우리 아이가 아니야. 보고하고 정당하게 입양 받아 기릅시다. 톰의 제안에 이자벨은 누가 무인도 등대에 아기를 보내?라며 고집을 피웠다. 이때부터 이들은 서로 다른 방향을 보게 된다. 한쪽은 미소를 띠고 있지만, 다른 한쪽은 일그러진 양쪽 얼굴. 언제부터인가 표리부동과 이중성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슬픈 야누스. 로마인이 가장 숭배했다는 야누스 신은 다른 문화와 다른 사람을 포용하고 융합하는 정신적 지주였다고 전해진다. 영화 <쿵푸팬더>에서 쿵푸 마스터인 국숫집 아들 팬더 포와 우그웨이 대 사부가 나누던 대화가 떠오른다. 시푸 사부에게 지친 포가 쿵푸 그만두고 국수나 팔러 갈까 봐요.라고 하자 대 사부가 말한다. 포기냐 전진이냐, 국수냐 쿵푸냐. 너는 과거와 미래에 너무 집착하고 있구나. 어제는 역사고, 내일은 아무도 몰라. 하지만 오늘은 선물이지. 선물을 소중하게 다루렴. 포는 쿵푸 최고수가 되어 악을 타도한다. 잔잔한 쪽빛 바다만 희구하는 나의 집착이 희망으로 부푼 마음에 몽니를 부리고 있다. /이승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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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27 19:24

힘을 든 미련한 사람

송준호 우석대 교수 지하철역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이렇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깨끗이 잊어버리라고, 이 미련 곰탱아! 그 목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눈길이 한꺼번에 그쪽으로 몰렸다. 서른 살 조금 넘어 보이는 청년이 휴대폰을 손에 쥐고 씩씩대고 있었다. 그는 수많은 시선을 의식하고는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화급히 찔러 넣었다. 열차에 올라 빈자리에 앉았는데 아까 청년이 외쳤던 말이 귀청을 서성대는 것이었다. 그가 말한 미련 곰탱이는 짐작컨대 그의 절친이거나 가까운 후배 아닐까. 얼마 전에 헤어진 여자친구일 수도 있었다. 그들 가운데 누군가가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된 일이나 어떤 사람을 깨끗이 잊어버리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걸 알고 답답한 마음이 앞서서 자신도 모르게 공공장소에서 그토록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호기심이 슬그머니 발동했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서 곰탱이를 검색해 보았다. 행동이 느리고 둔한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예문을 보니 청년의 표현대로 그 앞에 하나같이 미련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 게 아닌가. 이번에는 검색창에 미련을 입력해보았는데, 거기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찾아냈다. 한자말 미련(未練)은 품었던 감정이나 생각을 딱 끊지 못하는 마음이라고 풀이되어 있었다. 그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말이 집착(執着)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곰탱이 앞에 쓰는 순우리말 미련은 stupidity, silliness, asininity 같은 로마자로 뜻 풀이를 대신하고 있었다. 이 셋 모두 어리석음의 뜻을 가진 말이었다. 모양이 같은 한자말과 순우리말 미련의 조합이 이토록 절묘할 수 있단 말인가. 생각이나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고 굼뜨면 사람한테 대고 뒤에 곰탱이까지 붙여 쓸까만, 복잡하게 따지고 말고 할 것 없이 미련한 사람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일을, 청년이 아까 소리친 대로 깨끗이 잊지 못하는 사람이, 집착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미련한 사람인 것이었다. 가운데 번호 하나가 어긋나는 바람에 1등 당첨을 놓친 복권이든, 오래전에 조용필이 외쳐 부른 <허공> 한 대목처럼 돌아선 마음 달래보기엔 너무나도 멀어진 그대든, 미련(未練)을 버리지 못하면 결국 미련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그토록 아깝거나 후회막심해도 지나버린 날로 되돌아가는 건 불가능한 일. 복권이든 허공 속에 묻힐 그날들이든 곁에 없는 시간에 더 이상 가슴 태우지 않는 이들이야말로, 그리하여 앞에 놓인 시간에 눈빛을 반짝일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지혜로운 사람인 것이었다. 하긴 이것도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고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아는 체를 좀 했더니 웬걸, 못말리는 아재 개그 본능이 발동한 거냐면서 누군가 나를 놀려대는 것이었는데, 다른 누군가는 이런 말을 슬그머니 들이미는 것이었다. 살다 보면 어떤 일이 힘들어 죽겠다고 하소연할 때가 있지 않으냐고, 그 까닭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그건 바로 힘을 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힘을 기꺼이 내려놓으면 힘들지 않아도 된다고, 정 내려놓기 싫거든 가까운 사람하고 나눠 들면 된다고, 그러면 적어도 힘을 절반으로 덜 수 있을 것 아니겠냐고, 그걸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사람이, 진짜로 미련한 사람인 거라고. /송준호 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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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20 19:24

객미(客味), 손님 맛이라니?

김병기(전북대 명예교수) 12월 중순, 지금쯤은 대부분의 가정이 김장도 마쳤을 것이다. 추수동장(秋收冬藏)이라는 말이 있다. 천자문의 한 구절이다. 가을 추, 거둘 수, 겨울 동, 감출 장. 가을철에 거둬들여 겨울철엔 잘 저장한다는 뜻이다. 겨울철의 저장을 대표하는 일이 바로 김장이다. 그래서 혹자는 김장의 어원이 침장(沈藏:담글 침, 저장할 장) 즉 담가서 저장하는 데에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요즈음이야 농사기술과 자연저장 기술이 발달하여 겨울철에도 싱싱한 채소를 얼마든지 먹을 수 있지만 아직 냉장고 보급률이 낮았던 1970년대까지만 해도 김장은 겨울철 먹거리를 장만하는 필수행사였다. 많은 양을 오래 저장하기 위해 시골에선 김치나 동치미 항아리를 땅에 묻기도 했다. 잘 익은 김치는 겨울철 밥상을 풍성하게 했다. 김치 그대로도 먹고, 찌개나 볶음도 해먹고, 전도 부쳐 먹었다. 이렇게 김치를 다양하게 조리해 먹으면서 그 맛을 평할 때면 다른 지방은 몰라도 전라도에서는 개미가 있다 혹은 계미가 있다는 말을 하곤 하였다. 어떤 이는 갱미가 있다고도 한다. 물론 김치뿐 아니라 어떤 음식이라도 맛이 있을 때면 으레 이런 표현을 하곤 하였다. 무슨 의미일까? 우선 바른 말부터 찾자면 개미도 계미도 갱미도 아니고 객미이다. 한자로는 客味라고 쓰며 각 글자는 손님 객, 맛 미라고 훈독한다. 글자대로만 풀이하자면 손님 맛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의 예술은 전통적으로 상외지상(像外之像), 운외지운(韻外之韻), 미외지미(味外之味)를 숭상해 왔다. 外는 밖 외라고 훈독하고, 之는 흔히 갈 지라고 훈독하지만 의라는 뜻으로 많이 쓰는 글자이다. 따라서 外之는 밖의라는 뜻이다. 像은 형상 상이라고 훈독하며 韻은 운 운이라고 훈독하는데 시나 음악의 운율, 사람이나 예술작품의 멋스러움인 운치(韻致)를 뜻하는 글자이다. 그러므로 상외지상은 형상 밖의 형상이라는 뜻이고, 운외지운은 운치 밖의 운치라는 뜻이며, 미외지미는 맛 밖의 맛이라는 뜻이다. 시나 그림이나 음악에 직접 표현된 형상이나 운치나 맛 말고 그 이면(裏面) 즉 행간에 숨어 있는 또 하나의 형상과 운치와 맛을 그렇게 표현해온 것이다. 배추에 소금, 젓갈, 고춧가루 등을 넣고 버무려 담은 것을 일정기간 발효시킨 후에 맛 봤더니 배추 맛도 아니고 젓갈 맛도 아니며 소금 맛은 더욱 아닌 제3, 제4의 오묘한 이면(裏面)의 맛이 난다. 정말 감칠맛이 난다. 바로 그 맛을 일러 전라도 사람들은 손님 맛 즉 객미라고 표현한 것이다. 음식을 이룬 주체(주인) 즉 사용한 재료는 배추, 젓갈, 고춧가루 등인데 그 주체의 맛은 어디로 가고 제3의 손님 같은 맛이 난다고 해서 객미라고 표현한 것이다. 참으로 맛깔 나는 멋진 표현이다. 판소리를 가르치는 스승들도 이면(裏面)을 무척 강조했으니 이 또한 객미에 다름이 아니다. 겉으로 드러난 맛과 멋만이 아니라, 숨어있는 깊은 맛과 멋을 더 중시한 것이다. 오늘 날 국어사전은 객미를 객지에서 겪는 고생의 쓰라린 맛으로만 풀이하고 있다. 삭막한 현실의 반영이다. MSG로 위장한 사특한 맛이 아니라 곰삭은 김치 같은 객미를 느끼고 창조하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김병기(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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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13 15:22

[문화마주보기]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

송희 전 전북시인협회장 며칠 전, 남고산성 길을 갔다. 학교 때 간 이후, 수십 년 만의 일이다. 올해 유난히 가을볕이 길고, 어딜 가나 나무의 낯빛이 무르익었다. 세상은 또 찬란한 이파리의 춤을 보여준다. 이 지역 도민이면서도 남고산성이 있는 줄도 모르고, 역사에 관심도 없다는 해설가의 말에 공감했다. 자신만의 왕국에 갇혀 살면서부터, 기계가 친구이고, 허상이 실제가 되는 시대의 불균형이 아닐까 생각했다. 지난 달, 14일부터 25일까지 전 세계 감사 챌린지(challenge), 캠페인 기간이었다. 날마다 다른 테마로 12일간 계속 되었다. 고대명상에서는 가슴에 자비심이 피어나는 것을 12장의 연잎으로 상징한다. 어머니, 아버지, 파트너, 형제자매, 친구, 자녀, 동료, 내 몸, 지구, 도전, 스승, 신 등에 대한 돌아봄이다. 그들에 대해 감사했던 기억을 떠올려 감사함에 흠뻑 젖고, 그들의 웰빙을 빌어주는 과정이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은 늘 들었으나 진심어린 감사는 쉽지 않다. 우리는 각자 이 행성에 발을 디딜 때부터 이 몸과 함께 왔다. 어머니 아버지를 통해...매 순간 성장하면서 자녀 친구 동료 파트너 스승 등과 한 써클로 삶의 과정을 진행 중이다. 부모와 이웃과 주변이 없다면 나도 없다. 웃고, 싸우고, 떠들고, 뒹구는 매 순간마다 그들과 함께 한다. 그 중 우리를 품고 있는 지구는 우리의 지지자이자 양육자이다. 우리의 존재와 웰빙은 지구의 웰빙에 달려 있다. 지구는 모든 강 바다 사막 산 계곡 숲 동물 및 수백만의 생명체이다. 바다와 숲이 숨쉬기를 멈춘다면 우리의 숨도 멎는다. 지구가 식량을 생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굶어죽을 것이다. 강이 불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도 바싹 말라버릴 것이다. 창밖의 나무를 바라보려고 잠깐 멈춘 적이 있는가? 지구의 날숨은 우리의 들숨이다. 우리를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는 지구에게 나는 무엇 한 가지라도 할 수 있을까? 요즘처럼 질병이나, 삶의 위기에 처했을 때, 감사노트를 써보는 것도 좋다. 그날그날 그저 주어지는 선물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매일 써나가다 보면 실제 어떤 어려운 일이 풀리기도 한다. 감사함이 많은 사람에게는 기적이 자주 일어난다. 어느 프로그램에서는 환자에게 3일간 어머니 아버지 감사합니다만 소리 내어 말하게 한다. 놀랍게도 치유가 일어난 사례가 많다. 기적은 어마어마한 것이 아니다. 삶의 궁극적 기적은 흔들리지 않는 평화, 삶의 어떤 조건에서도 평화로운 상태로 사는 것이다. 삶의 진정한 기적은 분리가 없는 밝은 삶의 방식, 나와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의식, 이것이 원래의 당신이며, 진정한 인간의 유산이다.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기적은 사랑하는 사람과 낯선 사람 모두를 향한 사랑으로 사는 것이다. 나와는 다름에 짓눌리지 않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가슴이 열리면, 이유 없는 사랑이 피어난다. 살아있는 순간들, 보고 듣고 만지는 모든 것이 기쁨이다. 주변에 아무도 없고 혼자 있는 나를 상상해보라. 당신 둘레의 사람들이 없다면 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나와 인연이 닿은 사람은 내게 큰 선물이다. 나를 아프게 하는 그 모든 것도 나를 성장시키는 스승이다. 매 순간 세상이 내게 쏟아 붓는 선물을 바라보라. 이따금이라도 나의 존재는 이 세상에 선물이 되는가 하는 관찰도 참 중요한 것 같다. /송희 전 전북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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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06 14:57

영화 '데몰리션'과 마음에 쓴 가면 벗기

이승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회장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지옥>의 열풍이 거세다. 늘 보던 풍경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다. . 대중의 취향은 무엇을 향하는가. 나의 시선은 주로 가면(假面)에 머물렀다. 의미를 알고 싶었다. 오징어 게임은 참가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게임의 공정한 진행과 비밀 유지를 위해 썼다.라고 말한다. 지옥에서는 가면 쓴 사람들을 VIP라 칭한다. 우리가 아는 가면은 두 종류가 있다. 보이는 가면과 보이지 않는 가면. 다시 말해 얼굴에 쓰는 가면과 마음에 쓰는 가면. <데몰리션>이란 영화가 있다. 마음에 쓰는 가면 벗는 과정을 조명하는 영화다. Demolition은 파괴, 해체라는 뜻이다. 가면(假面. Persona)은 집단이 개인에게 준 역할, 의무, 약속 그 밖의 여러 행동양식을 뜻한다. 내가 나로서 있는 게 아니라 남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나를 더 크게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벗어야 할 것이다.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데이비스란 젊은이가 있다. 장인 회사에서 투자분석가로 일하는 촉망 받는 사람이다. 그의 행동이 이상하다. 눈물 한 방울 안 흘리고, 장례식 다음 날 정상 출근한다. 장인과 슬픔을 나누는 자리에서 생뚱맞은 말로 분위기를 망치는가 하면 장모가 차려주는 밥을 맛있다.라고 말한다. 아내가 절명하던 날 병원에서 초콜릿을 사려다 자판기 고장으로 25센트를 날린 것에 분노한다. 자판기 회사에 장문의 항의 편지를 쓴다. 내용은 항의 반, 신변잡기 반이다. 왜 이럴까 이 사람. 영화의 설명은 이렇다. 친밀한 사람 하나 없이 감정을 억압하며 살았고, 내면의 충동에 따라 매사를 결정했다. 핸드폰 음성사서함을 비우지 않아 아내가 메시지를 남길 수 없는 상태였고, 집 냉장고는 고장 난 채 방치되었다. 회의 시간에 란 곡이 슬프냐고 물어 주변을 뜨악하게 만들고, 무엇인가에 과몰입하여 눈앞 대상도 인식하지 못한다. 05:30에 일어나 운동하고 기차로 출근하여 열심히 일하는 모범 샐러리맨인데? 마치 카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뫼르소 같다. 모친이 돌아가셨는데 무덤덤하게 꾸벅꾸벅 졸고 있는. 원숭이들이 털 손질〔Grooming〕하는 영상을 보며 싫다고 독백하다가, 결혼 초기에 장인에게 구박받던 기억을 끌어낸다. 원숭이 취급당했다고 생각하는 것 이리라.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친구 중 가장 빨리 달리고 싶었던 심정을 밝히며 군중 속을 배회한다. 치유 과정은 은유로 표현한다. 〔〕안은 주관적 해석임을 양해 바란다. 고장 난 냉장고와 컴퓨터 그리고 에스프레소 머신을 해체한다〔비정상〕. 회사 화장실 고장 난 문을 분해하고〔감정 배설〕, 처갓집 전등을 해체〔장인과의 관계〕한다. 길을 가다가 철거하는 집을 보자 돈을 내고 부순다〔타인과의 불편한 관계〕. 급기야 사방이 유리로 된 자기 집을 사정없이 파괴한다〔꽉 막혔던 가정생활〕. 세상에, 자기 내면에 갇힌 사람. 돌파를 이렇게 형상화했다. 무엇인가를 고치고 싶으면 모든 것을 뜯어내야 해. 장인이 그렇게 말한 적 있다. 데이비스를 공감해 주는 사람은 자판기 회사 직원 카렌과 그녀의 아들이다. 항의 편지에 응답하며 인연을 맺었다. 아내가 잠든 곳에 다녀오다가 운전석 밑에 떨어진 메모지를 발견한다. 아내가 쓴 것이다. 바쁜 척 그만하고 나 좀 고쳐줘요. 회한의 눈물을 흘리고, 장인과도 화해한다. 드라마 속 얼굴에 쓴 가면이 궁금하다. /이승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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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1.29 16:43

덤으로 얻은 날

송준호 우석대 교수 가는 곳마다 명언이라는 이름의 짧은 몇 마디 말을 적어 붙인 작은 팻말이 즐비하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도 그런 곳 가운데 하나 아닐까. 짧은 시간이라도 허투루 쓰지 말고 그 안에 담긴 귀한 뜻을 차돌처럼 새겨 실천하라는 뜻이리라. 어떤 가치 있는 행동을 하지 아니한 날, 그날은 잃은 날이다. 어느 휴게소에 들렀다가 눈앞에 적혀 있는 이 명언을 읽었다. 그런데 다른 것과 달리 이 말은 어찌 된 일인지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 들고 버스에 올라서까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짧은 문장에 날이라는 체언을 세 번이나 썼기 때문이어서는 적어도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해내야 가치 있는 행동을 한 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은, 좀 뜬금없는 의문이 꼬리를 물었던 것이다. 맘에 쏙 드는 원고에 마침표를 찍은 날? 회사의 핵심 프로젝트 작업에 참여해서 큰 진척을 이룬 날? 오랫동안 서먹하게 지내온 친구하고 소주 한잔 나누면서 유쾌하게 화해한 날? 영어 단어와 숙어를 100개 이상 새로 외운 날? 적어도 책 한 권은 몰두해서 읽은 날? 여덟 시간 넘게 편의점 알바를 해서 학과 MT 경비를 스스로 마련한 날? 하다못해 단풍구경이라도 가서 맘에 쏙 드는 셀카를 스무 장 넘게 찍은 날? 이런 일을 해야만 가치 있는 날인가? 어떤 행동의 가치는 또 누가 정하는 거지? 아니, 그보다는 인생이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하루도 빠짐없이 그렇게 가치 있는 행동만 하면서 살아야 하는 건가? 하루종일 삼시세끼 밥이나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서 TV 리모컨을 손에 쥐고 소파에서 뒹굴었다면 그건 정말 가치 있는 행동을 하지 아니한 날일까? 아무 의미 없이 허비해버린 잃은 날이라고 함부로 단정해도 되는 걸까? 오전에 깡마른 국화꽃 웃자란 눈썹을 가위로 잘랐다/오후에는 지난여름 마루 끝에 다녀간 사슴벌레에게 엽서를 써서 보내고/고장 난 감나무를 고쳐주러 온 의원(醫員)에게 감나무 그늘의 수리도 부탁하였다/추녀 끝으로 줄지어 스며드는 기러기 일흔세 마리까지 세다가 그만두었다/저녁이 부엌으로 사무치게 왔으나 불빛 죽이고 두어 가지 찬에다 밥을 먹었다//그렇다고 해도 이것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어느 한가한 일상에 상상을 입히고 거기에 <일기>라는 제목을 얹어 안도현 시인이 쓴 짧은 시다. 이게 문인들이 뽑은 2011년 올해 최고의 시에 선정되었단다. 그건 이 땅에서 글깨나 쓴다는 이들은 적어도 날아가는 기러기의 숫자나 헤아리면서 한가하게 보낸 하루도 더할 나위없이 소중하다는 데 공감의 박수를 보냈다는 뜻이리라. 차창 밖으로 눈부시게 펼쳐진 단풍꽃을 바라보면서 좀 전에 읽은 명언의 가치 있는 행동을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다가 나는 그걸 이렇게 바꿔보았다. 국화꽃의 속눈썹을 다듬어주었든, 무당벌레의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여주었든, 길고양이하고 오랫동안 눈을 맞추었든, 예쁜 들꽃 이름 하나를 새로 알았든, 거칠어진 손마디를 매만지며 제 어머니로 살아주셔서 고마워요.라고 말했든, 문어다리를 얇게 썰어 넣고 라면을 끓여 먹었든, 아니면 언젠가 쑥스럽게 미소 지으며 교수님이 쓰신 글 재밌게 잘 읽고 있어요.라고 말해주어서 이렇게나마 계속 쓸 수 있도록 용기를 준 고마운 그이와 늦가을 어느 날 저녁밥을 함께 먹었든 살아가면서 무언가 처음 해본 일이 있는 날, 그날은 덤으로 얻은 날이다. /송준호 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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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1.22 16:39

낙엽 쓸기의 현실과 낭만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 가을의 끝자락에서 대부분의 나무는 잎이 다 졌고 듬성듬성 몇 나무가 마지막 정열의 단풍을 불태우고 있다. 아파트 단지 내에 쌓이는 낙엽의 양이 며칠 전에 비해 크게 줄었다. 낙엽이 한창 지던 때 이른 아침 산책길, 아파트 경비원이 낙엽을 쓸고 있었다. 마치 흥부 내외가 돈 궤와 쌀 궤를 쏟아 부을 때처럼 쓸고 돌아보면 낙엽은 도로 수북이 쌓였다. 아침 식사 후, 출근길에 보니 경비원은 아까 그 자리에서 또 낙엽을 쓸고 있었고, 어둠발이 내릴 무렵 퇴근길에 봤더니 경비원은 오전에 쓸던 그 자리를 여전히 쓸고 있었다. 비오는 날 나무에 물을 주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일을 고생스럽게 하고 있는 경비원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말을 건넸다. 놔뒀다가 3~4일 후에 한꺼번에 쓸어내시지 그러세요? 경비원이 답했다. 그런 말씀 마세요. 낙엽이 조금만 쌓여있어도 관리소장한테 주의를 받습니다. 내가 되물었다. 아니, 가을에는 낙엽이 날리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밟기도 해야 주민들 정서에도 좋고 아이들 교육에도 좋을 텐데요 제가 관리소장께 2~3일 만에 한 번씩만 쓸자고 건의해 볼까요? 감사한 말씀입니다. 아마 관리소장도 2~3일 만에 한 번씩 쓸자는 생각을 했을 거예요. 그러나 일부 주민들로부터 강한 항의가 들어오니까 어쩔 수 없이 계속 쓸어내기로 방침을 세운 거지요. 내가 다시 물었다. 주민이 항의를 한다고요? 그럼요, 화단에 떨어진 낙엽도 안 긁어내면 청소를 안 했다며 항의하시는 주민도 있습니다. 그랬었다. 낙엽이 쌓이는 걸 두고 보며 가을 정취를 느끼다가 한꺼번에 쓸어내자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낙엽을 지저분하고 귀찮은 존재로 여겨 빨리 청소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다음날 오후, 아파트 다른 동 앞을 지날 때 다른 경비원이 낙엽을 쓸고 있기에 내 딴에는 노고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애쓰십니다. 모아 두었다가 한꺼번에 쓸어내면 될 텐데 매일 쓸어내시려니 힘드시지요? 경비원이 말했다. 아니요, 그때그때 쓸어내야 합니다. 저는 쌓여 있는 나뭇잎을 보면 제 마음까지 심란해져요. 개운하게 쓸어내 버려야지! 그랬었다. 비질이 힘든 게 아니라, 쌓여있는 낙엽을 두고 보는 것이 더 어렵고 심란한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의견이 다르니 아파트 단지 내에 쌓이는 낙엽은 그때그때 쓸어낼 수밖에 없다. 쌓아둔 채 2~3일만이라도 낙엽의 정취를 느껴보자는 의견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가을이 깊어지면 대한민국의 모든 아파트 단지나 동네 골목은 획일적으로 그때그때 낙엽 쓸기를 해야 한다. 언젠가는 쓸어낼 것 그때그때 깨끗하게 쓸어내자는 의견 앞에서 낙엽을 밟아보자는 낭만적 이야기는 발붙일 곳이 거의 없는 것이다. 김일로 시인은 떡이 좋다는 소리가 진동하는 자리에서 꽃도 좋다는 이내 말은 실낱같은 모기 소리.라고 읊고서, 이 시를 다시 7자의 한시(漢詩)로 바꿔 병화일치하세월(餠花一致何歲月)이라고 썼다. 어느 세월에나 떡과 꽃이 일치할까?라는 뜻이다. 낙엽을 깨끗이 쓸자는 건 쓰레기를 치우자는 현실적 요구이다. 낙엽을 밟자는 것은 하면 좋지만 안 해도 그만인 낭만이다. 현실과 낭만이 일치하는 아름다운 세월은 언제나 찾아올까? 낙엽이 말하는 것 같다. 돌아갈 흙이 없어 귀찮은 존재, 쓸려서 실려 나가는 도시가 슬퍼요!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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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1.15 16:35

눈을 크게 떠라! 청소년들이여

송희 전 전북시인협회장 여러분이 미래다. 코로나 확진자률, 사망률처럼 전 세계 청소년 자살률도 심각하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상위로 파악된다. 세계가 한류를 외치고 있고, 선진국대열에서 부상하고 있는데 왜 이런 현상이 계속될까? 청소년 펜데믹은 우울증과 불안감이다. 같은 시대, 같은 환경에서 사는데 자기 삶에서만 유독 희망이 없어 보인다. 빠른 속도로 지구 환경이 바뀌고 있다. 인간의식이 지구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데에서 충돌이 일어난다. 경쟁에서 비교의식은 더 늘고, 직업 선택의 폭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교육부분도 우왕좌왕이다. 무방비상태의 젊은이들은 미래가 깜깜하다. 스스로 도전을 포기한다. 자신이 겪는 우울과 불안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이 시대의 것이다. 나를 잉태했을 때 부모의 상태를 그대로 받는다. 혈액형만이 아니라 감정이나 생각들도 물려받는다. 불안감은 기쁨이나 슬픔처럼 하나의 감정임을 알아야 한다. 나약한 상태일 때 드러나는 것이다. 자신에게서 불안감이 올라올 때마다 이건 이 시대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라고 단언해 보라. 처음엔 잘 안될 수도 있지만 우울과 불안을 겪고 있는 많은 내담자들이 순조롭게 이겨냈다. 내게 이런 것이 있구나! 알아차리며 지나갔다. 사람으로 태어나 산다는 것은 무척 위대한 일임을 알아야 한다. 이 몸은 내가 만든 게 아니다. 자신을 만드는데 무슨 노력을 한 적이 있는가? 나라는 이 몸은 당신이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인디언 추장과 주고받은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인디언 마을에 커다란 기지를 짓고 싶은데 땅을 팔 생각이 없냐고 묻는 내용이었다. 인디언 추장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햇볕의 따스함과 강물의 반짝임과 맑은 공기를 돈으로 살 수 있습니까? 짐승들의 소리와 풀벌레 울음을 돈으로 살 수 있습니까? 요즘 야생말과 독수리는 다 어디로 갔습니까? 독수리가 사라졌습니다. 숲이 사라졌습니다. 벌레들도 다 사라졌습니다. 저 강물은 그냥 흐르는 강물이 아니라 우리 조상이 준 강물입니다. 저 비는 절로 오는 비가 아닙니다. 저 바람은 우리 할아버지의 입김입니다. 이 흙은 모든 미생물과 땅에 묻힌 우리 조상들의 집합입니다. 이것들을 돈으로 살 수 있습니까? 위 메시지는 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 중에 성취도 있고, 업적도 쌓인다. 성공이란 관계, 부, 건강, 지성, 기여 등이 고루 성장하는 것을 말한다. 명예나 돈을 쫓다가 건강을 잃고, 사람을 잃게 되면 그건 성공이라 할 수 없다. 청소년들이여, 주위를 둘러보라. 주변에는 지혜로운 친구가 더 많다. 우리는 자신만의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어떤 이는 농사지어 밥을 제공하거나,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나라를 구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타인의 고통을 들어주고, 그들을 살리는 손을 가졌기도 하다. 이 보물을 발견할 틈도 없이 좌절하고 해치려하는가? 부모 세대처럼 지금이 전쟁 중이라면, 자신에 대한 고민은커녕, 싸움터에서 살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기념일에는 광복절도 있고, 곧 순국선열의 날도 다가온다. 우리는 왜 한없이 그들을 우러르는가? 조상들이 피를 토하고 뼈를 깎아 지켜낸 이 나라에, 우리는 숟가락 하나 얹어 기름지게 살고 있다. 청소년들이여, 부디 눈을 크게 떠라. /송희 전 전북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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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1.08 16:39

힐링 시네마, ‘연상적’ 영화 보기

이승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회장 연상적 영화 보기란 영화를 꿈이나 투사를 위한 도구로 가정하고, 영화 관람 후 자유 연상되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중요한 타인에게 갖는 감정을 힐링에 활용하는 것이다. 영화 시작할 때 가끔 한 소년이 반달 아래쪽에 앉아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는 이미지와 함께 Dream Works란 문구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명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사 로고인데, 영화를 통한 꿈 작업 의지를 이렇게 천명했다. 꿈은 무의식을 드러내고 억압된 자료를 규명하는 단서이기에 낚아 올려 의식화하겠다는 것이다. 많은 영화가 정신분석학에서 다루는 꿈, 자유연상, 퇴행, 투사, 상징 등을 재료로 쓰고 있다. 영화가 가지는 재현성과 핍진성 또 정서적 통찰이라는 특장점과 잘 조화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영화 <몬스터 콜>에는 엄마의 불치병으로 인해 밤마다 꿈속에서 고통받는 코너라는 소년이 등장한다. 어느 날 그에게 주목 몬스터가 찾아온다. 다짜고짜 너의 진심을 알고 싶다.라고 말한다. 폭풍우에 지진까지 일어나 천 길 낭떠러지에 매달린 엄마 손을 잡고 울부짖는 꿈을 꾸다 깨는 코너다. 친밀감이 형성되자 코너가 울면서 말한다. 차라리 빨리 끝나라. 매번 꿈속에서 엄마 손을 놓았어. 연상적 영화 보기는 내담자의 방어 수준을 낮추고 안전한 퇴행을 돕는다. 내면 아이(Inner Child)도 만나게 해준다. 내면 아이란 성인이 된 내 안에 아직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가 존재한다는 심리학 이론이다. 존 브래드쇼는 상처 입은 내면 아이를 방치하지 말고 의식 수준으로 초대하여 돌봐줌으로써 심리적 외상을 아물게 하고 성인 자아로 성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상적 접근의 치유요인을 소개한다. 첫째, 의식화이다. 무의식에 갇혀있던 외상적 기억과 불안이 의식의 표면으로 나오게 되면 기억 자체가 재해석 되고 축소될 수 있다. 상담실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들 들어보면 자신의 상처와 외상적 기억이 무엇인지 모른 채 불안 속에 사는 경우가 있다. 영화 <연을 쫓는 아이>는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할 당시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아미르란 남자가 성인이 되어 내면 아이를 찾는 내용이다. 암울했던 시절 그와 함께 자란 핫산이라는 소년은 하인의 아들인데, 알고 보니 아버지의 외도로 태어난 이복동생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도련님 노릇을 하며 함께 힘들게 살다가 헤어졌다. 핫산이 죽었다는 연락이 왔다. 아미르는 목숨을 걸고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 핫산의 아들을 구한다. 탈레반이 점령한 그곳에 아미르와 핫산을 억압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둘째는 은유화이다. 연상적 기억을 통해 내담자가 언어 또는 시각적으로 표현한 여러 상징은 그가 토해낸 일종의 은유라 할 수 있다. 많은 영화 치료자들은 영화가 여러 가지 감각 양식으로 작용하면서 은유 혹은 상징이나 의미를 전달한다고 주장한다. 피트니스에 열중하던 한 중년 여인은 몸이 쇳덩어리에 눌린 것 같아요.라고 했다. 예뻐지려고 운동하는데, 무거운 쇳덩이에 눌린 것 같아 우울하다는 것. 영화 <아이 필 프리티>를 본 후 자기감(Sense of Self) 회복에 도움을 받았다. 연상적 접근에서 스크린은 관객의 무의식적 욕망을 반영하는 하나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동기 감정 양식을 촉발하는, 진한 정서와 감동을 주는, 강렬한 시청각적 자극을 주는 영화를 선택하는 게 좋다. /이승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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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1.01 16:42

내 친구 오동진

송준호 우석대 교수 어느 분야든 남다른 성과를 거둔 이들에게는 그만의 노력과 노하우가 반드시 있는 것 아닐까. 맨주먹 붉은피로 맨땅에 헤딩하면서도 눈앞의 이윤보다 고객의 즐거움을 앞세울 줄 아는 you first 마인드로 남부럽지 않게 부를 이룬 많은 이들 가운데 하나가 내 가까운 곳에도 있다. 적어도 등소평보다는 키가 훨씬 큰 그를 나는 속으로 작은거인이라고 부른 적 있는데, 오동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내 친구 얘기다. 금속회사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3년 만에 퇴사한 그는 서른 살 비교적 어린 나이에 석재 절단용 톱을 생산하는 작은 공장 하나를 동업으로 꾸렸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은 동창생들 사이에서 남부럽지 않게 성공한 사업가로 인정받고 있다. 이 친구가 얼마 전에 작은 책 하나를 펴냈다. 그간 몸소 부딪치거나 생각한 바를 정리했다는 것이었다. 그의 오늘을 만든 숨은 까닭을 그간의 여러 술자리를 통해 웬만큼은 알고 있었는데, 막상 책장을 넘기다 보니 새삼스레 눈길을 끄는 대목이 하나 있었다. 1984년 4월,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 무렵 나는 도서관을 거의 매일 드나들고 있었다. 드넓은 캠퍼스 제일 높은 곳에 자리잡은 도서관 로비 한쪽에는 그날 발간된 몇 가지 일간신문이 게시되어 있었다. 어느 날인가는 도서관에 들어섰다가 그 앞에 발걸음을 멈췄다. 중국 덩샤오핑 주석의 생애를 정리한 기사가 보였다. 그 무렵 중국은 개혁개방의 아이콘인 덩샤오핑 주석이 통치하고 있었다. 저 유명한 흑묘백묘 이론을 주창한 덩샤오핑은 시장경제를 적극 도입해서 오늘의 중국 경제를 이룩하는 초석을 다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정규 학교 교육을 하나도 받지 못한 사람이었다. 신문기자가 덩샤오핑에게 물었다. 주석께서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신 걸로 압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토록 많은 지식을 갖게 되었습니까? 덩샤오핑의 대답은 이랬다. 나는 매일 두 시간 이상 신문을 열심히 읽습니다. 내가 가진 지식이나 지혜의 대부분은 신문을 통해 얻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이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날부터 지금껏 35년 넘게 하루 한 시간 이상을 할애해서 신문을 열심히 읽고 있다.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큰 자산이 되어주었다. 나는 지금도 활자신문을 읽어서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읽고 지혜를 얻는다. 기사의 행간에 숨겨진, 학식과 식견이 풍부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공유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좋은 습관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건 세상을 살아가는 훌륭하고도 유용한 자양분이 된다. 그걸 꾸준히 실천하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동력이 생긴다. 또한 성공의 지름길로 들어서는 최선의 방법일 거라고 믿는다. 내 경우는 신문 읽기가 그 역할을 대신해주었다. 활자신문 읽기의 소중한 가치를 한눈에 요약한 대목 아니고 무엇이랴. 그건 공돌이 출신인 그만의 노력과 노하우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던 것이다. 내 친구 오동진이 앞으로 며칠만 지나면 명실이 상부한 예순 번째 생일을 맞는다. 적어도 80살까지는 나한테 밥과 소주를 사겠다고 굳게 약속한 바 있는 이 친구한테 그날만은 내가 술을 한잔 내려고 한다. 우리 앞의 노을빛 고운 나날들을 소주잔에 담아 정겨운 대화를 이어가기에는 아무래도 서해가 넓게 펼쳐진 어느 창 넓은 횟집이 제격 아닐까 한다. /송준호 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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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25 16:36

상량, 상량식, 상량문

김병기(전북대 명예교수) 신축하는 전북대학교 컨벤션센터가 멋진 모습을 드러내며 한옥 세 채에 상량식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월 18일에는 주건물인 컨벤션실의 상량식이 있었고 10월 중에 나머지 두 건물에 대한 상량식도 가질 것이라고 한다. 상량은 한옥 구조의 맨 윗부분에 해당하는 종도리(宗道里)를 이르는 말이다. 종도리는 마룻도리, 마룻대라고도 하는데 서까래를 걸기 이전에 마지막으로 올리는 재목으로서 상량을 올린다는 것은 곧 집의 골격이 완성되었다는 뜻이며 이를 기념하는 의식이 상량식이다. 상량의 한 면에 건물이 영원히 보존되고 사는 사람이 큰 복을 받기를 축원하는 상량문을 쓴다. 양 끝에는 대개 용(龍)자와 귀(龜)자를 쓰고, 이어 상량을 올리는 연월일시를 쓴 다음, 그 아래에 두 줄로 축원의 문장을 써 넣는데 이게 곧 상량문이다. 대개 응천상지삼광(應天上之三光), 비지상지오복(備地上之五福)이라고 쓰는데 하늘의 3광(해, 달, 별)에 부응하여 땅위에 5복을 갖추게 하소서라는 뜻이다. 상량문은 반드시 앞 구절과 뒤 구절의 서로 대응하는 각 글자(應-備, 天-地, 三-五, 光-福 등)가 같은 품사로 이루어지는 대구(對句)로 지어야 한다. 집을 짓게 된 내력이나 의미를 자세히 기록하여 보전하고자 할 때는 장문의 상량문을 따로 지어 오동나무 상자에 담아 상량에 홈을 파서 그 안에 넣고 뚜껑을 덮는다. 이런 상량문은 훗날 그 집의 역사를 밝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필자는 전북대학교 컨벤션센터에 들어서는 세 채의 한옥에 상량문을 짓고 또 글씨를 썼다. 컨벤션실의 상량문은 응천상지삼광(應天上之三光)이집천하만사함초상(集天下萬士咸招祥), 비지상지오복(備地上之五福)이성세계일화공장춘(成世界一花共長春)이라고 지었다. 하늘의 3광에 부응함으로써 천하의 많은 선비들을 모아 함께 상서로움을 불러들이고, 땅위의 5복을 구비함으로써 세계가 하나의 꽃을 피워 다 함께 봄날을 오래 누리세라는 뜻이다. 앞부분의 응천상지삼광, 비지상지오복은 상용문투를 그대로 따오고 뒷부분만 지어 붙였다. 컨벤션실이 장차 천하의 학자들이 모여 세계평화를 논의하는 장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은 글이다. 커피숍 건물에는 상용문투 뒤에 득광명정대지정신(得光明正大之精神), 온함영저화지아취(蘊含英咀華之雅趣)라는 상량문을 썼다. 광명정대한 정신을 얻고, 좋은 문장을 가슴속에 새기는 고아한 흥취를 쌓아가게 하소서라는 뜻이다. 세계의 석학들이 커피숍에 모여 광명정대한 정신으로 고상하게 담론하기를 축원하는 마음으로 지었다. 또 다른 한 건물에는 양백년청풍지상금(養百年淸風之爽襟), 개만대태평지성세(開萬代太平之盛世)라고 썼다. 영원히 맑은 바람이 부는 상쾌한 가슴을 함양하고, 만대로 이어지는 태평성세를 열게 하소서라는 뜻으로 천하의 학자들이 청백한 마음으로 태평성세를 열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혹자는 굳이 한문으로 써야할 이유가 뭐냐고 할지도 모르나 한문이 아니고서는 좁은 공간에 이처럼 함축적인 말을 써넣을 수 없다. 우리에게 한문은 영어권의 라틴어와 같은 의의가 있음을 헤아려 한문을 내치기보다는 오히려 배우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가장 과학적인 소리글자인 한글과 의미심장한 뜻글자인 한자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큰 복을 받은 나라임도 자각해야 할 것이다. /김병기(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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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18 16:39

알바트로스의 꿈

송희 전 전북시인협회장 <알바트로스의 꿈>은 크리스 조던의 작품 중 가장 사랑받는 다큐 영화이다. 크리스 조던(Chris Jordan 1963~ 미국)은 문학과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로 활동하기도 한 작가이다. 그는 미국과 전 세계의 미술관, 화랑에서 100회가 넘는 개인전과 그룹전을 가졌으며, 한국에서는 첫 전시이다. 팔복예술공장에서 크리스 조던의 사진전을 감상했다. 그의 렌즈는 우리가 막대하게 소비하고 버리는 쓰레기에 고정되어 있다. 매분 마다 미국에서 낭비되는 전기 32만 킬로와트, 10초마다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비닐봉지 24만 장, 미국 한 나라에서 30초마다 소비되는 10만 6000 개의 캔, 매일 농약으로 죽는 새의 숫자 18만 3000 마리, 매주 미국에서 접수되는 개인 파산 건수, 2만 9000 등등을 백열전구, 폐기된 핸드폰, 버려진 신용카드 등으로 꾸몄다. 명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라던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등의 그림에 패러디한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환경오염 때문에 어떤 행동이라도 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오래 전부터 외쳤다. 그런 외침을 듣고 사람들은 쓰레기 하나라도, 화학제품 조금씩이라도, 줄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누구라도 오염을 줄이고 있다면, 모두 실천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구가 살아날 거라는 희망 때문이다. 그의 사진전과 영화는 천 마디 외침보다 폐부에 깊숙이 닿았다. 무딘 감각을 두드리며 환경오염이 인간의 책임임을 명료하게 전해 주었다. 작가는 인간이 전 지구적 생명의 그물망에 가하는 거대하고도 다층적인 파괴의 양상이 있다고 전한다. 또한 현대의 대량소비문화에는 누구도 제어하기 힘든 군중심리가 숨어 있다고 토로한다. 익명을 핑계 삼아 아무도 책임지려 들지 않는 집단적 환각 상태 속에서 우리는 지구 생명체와 우리 자신의 영혼까지 회복 불가능하게 만드는 폐해를 끼치고 있다. 열린 눈으로 세계의 고통을 함께 직시해야 협력, 인간적 사랑에 기초한 글로벌문화 구축이라는, 인류 진화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촉매가 될 것이다며 이런 미래를 꿈꾸기에 작가는 힘겨운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외침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가슴을 두드릴 것인가. 태평양 한 복판 미드웨이 섬을 8년 간 오가며 알바트로스라는 새를 관찰한 작가는 부모 새가 물어 나르는 먹이를 먹고 아기 새가 죽어가는 걸 목도한다. 왜 죽는 줄도 모른 채, 죽어가는 것이다. 바람이 죽은 새의 살을 서서히 데려간 뒤, 속을 보여줬을 때, 새의 몸속에는 병뚜껑, 라이터 등 온갖 플라스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전 세계 해양에는 2015년 기준, 1억 5천만 톤의 쓰레기가 있다고 한다. 그 물과 물고기를 먹고 사는 우리 몸속에도 이미 미세 플라스틱이 스며든 지 오래이다. 그래서 계속 희귀병이 생겨나는 게 아니겠는가. 또한 충격적인 말도 들었다. 산모가 출산할 때 양수에서 세제와 락스 냄새가 진동한다는 것이다. 석유 찌꺼기로 만든 그 독한 것을 어떻게 사용했길래. 아픈 아이가 탄생하는 것은 어른의 책임이다. 용기 뒷면에는 써야할 용량이 표기돼 있는데, 보통은 그 양보다 더 넣는다. 무의식적으로 많이 쓰고 버릴 때, 본인이 자기의 생명을 해치고 있는 것이다.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자. 쓰기 전에 1초만 생각하자. 의식으로 먹고, 의식으로 사용하고, 의식으로 버리자. /송희 전 전북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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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11 16:49

힐링 시네마, ‘정화적’ 영화보기

이승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회장 정화적 영화 보기란 영화관람을 통해 기쁨, 슬픔, 분노, 우울감 등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웃고, 울고, 화를 내다보면 감정이 더욱 증폭되고 내면의 억압된 감정을 방출하는 정서적 환기(Emotional Ventilation)를 느낄 수 있다. 이른바 카타르시스(Catharsis, 淨化)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처음 사용한 이 용어는 지금도 후련함의 대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당시는 특히 비극〔슬픔의 정서〕의 정화적 힘이 강조되었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해 우울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답답함, 불안과 두려움, 무기력 등. 전문가들은 지금 내가 왜 우울한지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감정을 관리하는데 영화도 효과적인 도구임을 강조하며 치유 요인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첫째는 감정의 승화이다. 영화를 보면서 체면 보지 말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억눌림을 승화시킨다. 여기서 승화란 정서적 긴장이나 원초적 욕구를 타인과 사회가 용납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형시키고 적응하도록 돕는 것이다. 우리 영화 <플랜맨>은 강박과 우울에 절어 사는 한 청년을 조명한다. 자기 프레임에 갇혀 직장 생활도 사랑도 원만하지 않아 외톨이로 살아가는 사람인데, 영화는 상담 장면을 계속 보여주며 문제를 탐색하고 해법도 제시한다. 둘째는 심리적 위로이다. 영화 속 등장인물은 관객과 마찬가지로 삶의 여러 문제로 고민하고 고통받는다. 예술치료가 닐은 고통이 들어오는데 내보내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라고 했다. 우리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는 서번트 스킬인 천재 피아니스트 진태와 그의 외제(外弟)인 한물간 복서 조하가 나온다. 엄마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가율은 형제가 꿈을 이루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다. 모두 몸이 아픈데. 영화 내내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이 이들을 감싸준다. 셋째는 대리만족이다. 영화의 요소와 메시지는 고통받는 현실과 여러 가지 문제로 복잡해진 머리를 식히도록 돕는다. 정서적으로 고양된 상태에서 현재 문제와 결부된 감정들을 탐색할 힘을 얻는다. 영화 <조커>가 세상에 나오자 많은 사람이 열광했다. 뉴욕시 브롱스 난개발을 배경으로 했다는 영화는 사회적 모순에 대항하는 광대 아서 플렉을 앞세워 이해할 수 없는 폭력을 자행한다. 혼란의 가장 큰 미덕은 공평함이라 했던가. 영화에서 Joker(우스갯소리를 잘하는 사람)는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사람이다. 관객은 이런 모순을 보며 자기 분노의 실체를 알아차리게 된다. 감정과 정서는 문화와 관습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물려받은 게 극기복례(克己復禮)다. 감정이나 욕심, 충동 따위를 이성적 의지로 눌러 이기자는 것. 화병(火病)이 자기 소진 적 신경증과도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삐친 감정을 자주 삼킨다. 영화 <이퀄리브리엄>에는 감정 없이 이성만으로 살자고 주장하는 세력이 등장한다. 전쟁도, 이기심도, 질투도 없는 세상. 감정을 느낀 자는 처형 당한다. 당신은 왜 살지? 심문자가 묻자 여인이 답한다. 느끼기 위해서요. 그것은 숨 쉬는 것만큼 중요해요. 사랑이 없다면, 분노나 슬픔이 없다면, 숨 쉬는 것은 시곗바늘이 내는 소리와 같을 뿐이에요. 감정은 사람의 활동을 뒷받침한다. 고통이 들어오는데, 내보내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승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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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04 16:39

세상에 대한 예의와 범절

송준호 우석대 교수 책 한 권을 다시 읽었다. <비밀정원>이라는 제목의 장편소설이다. 제4회 혼불문학상 당선작인 이 소설은 노관이라는 이름의 유서 깊은 종갓집을 배경으로 가문의 질서를 거역할 수 없어서 끝내 이루지 못하고 만 남녀의 올곧고 강렬해서 더욱 안타까운 모습으로 다가온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문학작품을 읽으면 교훈과 미적/언어적 감흥 두 가지를 동시에 얻게 된다는 걸 아주 오래전 <문학개론> 강의시간에 구체적으로 배웠다. 그 가운데 소설은 작가가 그려낸 인물의 독특한 성격이나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의 힘을 빌려서 간접적으로나마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게 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실제로 그걸 읽다 보면 작중인물의 몇 마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곤 한다. <비밀정원>에도 그런 게 있었다. 젊었을 때 경계해야 할 것은 무지와 천박이란다. 부지런히 학문에 힘쓰고 예절을 익히렴. 예절이란 단순한 생활 범절을 넘어서 세상을 예우함을 말하는 거란다. 사람은 물론이고 자연과 사물에 대한 애정과 온순한 마음가짐이 바로 예절이지. 나는 그의 조카 요와 함께 주인공 율이 삼촌이 건넨 이 말에 귀를 기울이며 거기 적힌 활자에 눈길을 잠시 멈추었다. 무지와 천박을 경계하라는 말은 일부러 못 본 체하고 지나쳤다. 이제는 젊었을 때를 훌쩍 지났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오만해서거나. 내 마음의 눈길을 붙든 말은 세상을 예우함하고 온순한 마음가짐이라는 두 구절이었다. 세상을 예우할 줄 아는 온순한 마음가짐을 몸에 배도록 익히라는 것, 언제 어디서든 그처럼 낮은 자세로 사물과 사람을 대하면서 살아가도록 노력하라는 것. 그 대목을 속으로 몇 번 더 읽다가 나는 책을 잠시 내려놓았다. 이십여 년 전에 들었던 말씀 하나가 마치 어제 일인 듯 생생하게 되살아나서였다. 지금 일하고 있는 대학의 전임교수 발령을 앞두고 나는 학과의 어른들 가운데 한 분인 정양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려고 그분이 사시는 아파트를 방문했다. 시골집 골방처럼 퀴퀴한 냄새가 배어 있는 서재로 내 손목을 이끄신 선생께서는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다면서 교수가 되신 걸 축하한다는 덕담부터 꺼내셨다. 그런 다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끝에 선생 특유의 굵고 낮은 소리로 내게 이런 당부 말씀을 들려주셨다. 우리나라 교수들은 사회적으로 대접을 비교적 높게 받는 편이라고, 누릴 수 있는 게 참 많은 직업이라고, 그럴수록 연구하고 학생들 가르치는 본업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머리를 꺼낸 선생께서는 내게 따뜻한 시선을 건네면서 이렇게 덧붙이시는 것이었다. 오로지 혼자만의 노력으로 교수가 되었다는 생각은 하지 말았으면 해요. 그 어려운 공부를 해낼 수 있는 재능을 부모님께서 물려주셨지 않습니까. 송 선생의 오늘이 있기까지 옆에서 희생하고 도움을 준 사람들의 정성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우리 사회 도처에는 교수가 가진 역량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참 많지요. 그들에게 더욱 낮은 자세로 다가가도록 하세요. 내가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눠 쓰는 일이야말로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 사회에 대한 기본적인 도리이고 예의가 아닐까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돌이켜보니 그날 그 어른이 내게 들려주신 말씀도 세상을 예우하는 온순한 마음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바로 교수이기에 앞서 더불어 살아가는 한 개인이자 사회인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예의와 범절이었던 것이다. /송준호 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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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27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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