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주보기] 꿈을 꾼다
오른 손으로 기린봉을 움켜쥐고, 왼발을 승암산 자락에 걸쳐, 힘써 올라서는 달님 턱 밑에 구름 목도리 두른걸 보니 추웠는지, 사 나흘 전 뿌린 비가 계절을 재촉했나 보다. 슬치재를 넘어 전주로 입성하는 네발 달린 자동차 꽁지에는, 낙엽 댕기가 물려져 있고, 맨 먼저 겨울이 찾아오는 황방산 서부능선을 오를 정오 즈음, 엊그제 불던 남동풍이 기수를 북서풍으로 돌렸다.서고사 입구에는 연녹색 옷을 갈색으로 갈아입은 강아지풀이 살랑거리며 반겨준다. 효자동 박물관을 지나 우전다리를 사이에 두고 이 지역 원로시인 화두 한 자락 내려놓는다.'나는 이때면 이 햇살에 보여지는 모든 것들이 하얗게 눈언저리에 내려앉는다.' 라고, 중얼거린다.저 시인 가슴 팔레트에는 지성과 감성이 섞인 인생만고 겪어 온 총천연색 색깔이 담겨 있고, 연륜이라는 붓으로 이색 저색 다 쓸어내려, 하얗고 깨끗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가 보다. 나는 아직도 이색저색 쓰다 보니 채도가 높아지는 검정색 가까이로 다가갔는데, 지울 줄 알아야 하는데, 이렇듯 저러하듯 동으로 서로 남으로 북으로 우리 사는 이곳 예술동리에로 어김없이 겨울이란 놈이 노크를 한다. 곧 올 것이라고, 왔다고, 문 열라고.화가의 겨울은 연탄 백장에 쌀 두가마니 반, 한가마는 술 바꿔먹고, 반가마니는 물감 구하고, 또 한 가마 화실 식구와 밥 지어 허기 채우며 꿈을 꾼다.소극장 무대 뒤 큰 김치독, 객석 뒤 라면 열두 박스 쌓아두고, 유료관객 하루 백 이십 명 주연급 배우로도 발탁되고, 연극인 꿈을 꾼다. 다락방 20촉 전구 밑에서 원고료 장당 만원, 1500매 공모전에 당선되어 몽블랑 만년필 구입하고, 마누라 신발도 갈아주고, 지지난 봄철 책을 상재할 때, 밀린 인쇄비 청산하고 문인은 꿈을 꾼다. 패션 사업이 두 계절 앞서가듯, 예술가도 계절을 앞서간다.이 겨울 맞이 하면서 다음에 올 겨울을 기획한다. 어쩌면 날마다 겨울일수도 있겠지만.지난 날, 전북의 사계절은 분명하고 자연 풍토가 기막히며 오곡백화 또한 가득하여 시서화와 소리가 풍만한 이 고장 일진데, 지금에 와서 고귀한 예술인들 등 돌리고 떠나지 않을 지.요즘, 정치, 경제, 사회는 예술 문화가 정착되지 않는 곳엔 아예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찬란한 전북 예술을 꽃피려고 하는, 기존 선후배 예술인들이 이곳에 살아가며, 끊임없는 작업으로 소통해 가며, 자라나는 꿈나무 예비 예술인들 가슴에, 전북 예술의 위상과 자긍심을 불어넣어 주고, 희망의 샘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가뜩이나 순수예술이 사라져가고 힘들어지는 이 시기에 좋은 행사가 행하여진다.목정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제 1회 전북 고등학생 미술 실기대회가 지난 토요일 경기전 뜨락에서 개최되었고. 앞으로는 음악 콩쿠르와 백일장이 펼쳐진다. 또 며칠이 지나고 나면, 기성 작가들을 위한 목정문화상 열아홉 번 째 시상식을 갖게 된다. 이 취지는 전북지역 문학, 미술, 음악 순수예술을 훌륭하게 지켜온 예술인들을 위한 전북예술의 위대한 꿈과 현실을 묶어내자는 뜻에서 출발 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