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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그 어지러움에 대하여

나는 누구인가?나는 서류를 검토하고 공연을 모니터하고 평가 작업을 한다. 가끔은 사업진행을 하기도 하고 공연제작을 하기도 했다. 요즘은 굳어버린 머리에 끊임없이 압박을 가하면서 책을 보고 밤을 새워 숙제를 하고 어린 동기생들과 강의실에서 토론을 한다. 나는 행정가인가, 기획자인가, 학생인가?K씨는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으며 일한다. 소소한 일들은 아랫사람들이 다 한다. 그런데 주말이 되면 배우는 입장이 되어 열심히 악기를 연습한다. 몇 달 후에 있을 공연 연습에 매진하다 보면 행복하다. 의료행위보다 첼로 현을 켜는 그 자체가 더 인생에 여유를 주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실력을 가늠해보기 위해 부지런히 공연을 보러 다니기도 한다. K씨는 의사인가, 예술가인가, 관객인가?우리 주위에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경계에 서있다. 굳이 경계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그것이 결코 본업이 아니기도 하지만 또한 본업이 되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학교에 열심히 다니고 학생이라는 또 하나의 신분을 가지고 있다 보니 성적에 신경을 쓰게 되고 장학금이란 단어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장학금은 공부하려는 목적을 가진 전업학생에게 그 공부에 대한 의지를 격려하고 미래를 위한 투자 개념으로 생긴 것이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 주는 것이다. 그러면 예술가에게 주는 장학금(혹은 지원금)은 어떠해야 할까? 동일한 관점에서 보면 예술행위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고 생계를 꾸려나가는 전업예술가 중 창조적인 행위자체를 위해 지원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그런데 갈수록 그렇지 않음이 보여진다. 전업예술가가 존중되어져야 하고 전업예술가를 위한 정책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데 갈수록 동호회나 아마추어 예술인들에게 지원금이 편중되기도 한다. 내가 장학금을 받지 않아도 충분히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만족할 수 있는 것처럼 그들도 그런 지원금을 받지 않아도 경계에 선 예술활동을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아 무엇인가 이상하다. 학교에서는 무용학과가 없어지고 있고 국악과 졸업생의 설 자리가 없어지는데 동호회만 늘어난다고 하면 이건 뭔가 아닌 것 아닌가? 기초예술이 무너진 상태에서 취미활동으로서의 예술활동이나 공연마케팅은 존재할 수 없지 않는가?경계를 허문다는 것은 긍정적이기도 하지만 때론 타 영역에 있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그리고 자칫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본연의 목적과는 달리 경계를 허물어가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현재 하고 있는 일을 더 유연하고 폭넓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K씨는 첼로를 켜는 행위로 마음을 편하게 하고 스트레스를 줄여 좀 더 다감한 의료행위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와 K씨는 경계에 선 사람들이라 어지럽기는 하겠지만, 경계를 넘어서서 혼동을 야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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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2.19 23:02

전북의 문화 전통과 반계 유형원

일찍부터 호남, 특히 전북 지역은 어느 지역보다 새로운 문화와 학술의 기풍이 배태되고 숙성된 곳이었다. 드넓은 평야를 끼고 흐르는 강(江). 그리고 그것과 연결된 서쪽 지역의 해안은 배제와 차별이 아닌 열림과 수용이라는 문화적 속성을 형성하였다. 특히 주목되는 것 중 하나는 우리 지역이 전통시대의 지식인들에게 새로운 이상을 펼치기에 충분한 최적의 은거지로 인식되었고, 이러한 지식인들을 우리 지역은 아무런 차별 없이 수용하여 한국의 문화와 사상을 혁신시키는 배태지로 승화시켰다는 점이다.이러한 우리 지역의 문화적 전통 속에서 우리 지역을 근거로 활동한 대표적인 지식인 중 한 사람이 바로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이다. '실학의 비조(鼻祖)'로 일컬어지는 그는 격변과 혼란으로 점철된 당시의 시대적 상황 하에서 자기 자신을 우리 지역인 부안(扶安)으로 유폐시키고, 당대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모색을 시도했던 사상가이다. 그는 현실 문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도피나 은둔이 아니라 궁벽한 농촌에서 백성들과 삶을 같이하면서 얻은 경험, 수많은 서적을 섭렵하고 깊은 사색을 통해 얻은 지식, 그리고 전국을 여행하면서 얻은 실제적 경험과 생생한 자료를 어울러 국가체제 전반의 새로운 토대를 구축하고자 '개혁 지향적 은둔'을 지향하였다. 그리고 짧지 않은 그의 노정은 '반계수록(磻溪隧錄)'을 비롯한 여러 저작을 통해 결실을 맺었다.'반계수록'은 17세기 이후 정파를 초월하여 모든 유학적 지식인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영조의 명에 의해 간행되기도 하였다. 박지원(朴趾源)은 '허생전'을 통해 유형원을 군량을 조달할만한 재능 있는 인물로 묘사하였고, 매번 "유형원의 평생 경륜은 큰 유학자라 할만하다"하다고 극찬하였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유형원은 실학 연구의 중심에 서있다. 한국은 물론 미국의 한국학 연구를 주도한제임스 팔레(James Palais)의 연구 중심 주제도 유형원일 정도로 그의 학술사상이 가지는 의미는 담대하다.근본적이면서도 포괄적인 그의 개혁안에서 지금도 관심을 끄는 것 중 하나는 지역적 편중 해소를 위한 개혁안이다. 물론 그의 시대에도 중앙과 지방, 지방과 지방간의 사회적 경제적 불균형이 큰 현안이었겠지만, 21세기에 진입한 현재에도 '지역 간 균형 발전'이라는 것이 국가 운영의 중요한 화두로 제기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그의 혜안은 높게 평가받을 만하다. 하지만 그 동안 우리 지역에서 유형원에 대한 관심은 소홀하였다. 지금은 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몇 해 전 학생들과 함께 부안 보안면에 소재한 그의 생거지(生居地)를 찾았을 때 도지정 문화재임에도 불구하고 황폐하게 방치되었던 모습은 학생들을 인솔했던 사람으로서 부끄러울 정도였다. 다행히 지난해부터 부안군을 중심으로 선양사업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올해 5월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것을 비롯하여 문화자원의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니 늦었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동안 유형원에 대한 연구가 학계를 중심으로 어느 정도 집적된 만큼 다시 그의 사상을 재론(再論)하기보다는 보다 대중적이고 진일보한 학술대회가 진행되길 기대하며, 이를 통해 단순한 선양이 아니라 우리 지역의 문화적 자산을 재문화화하는 계기가 마련되길 희망한다. 아울러 지역민들의 우리 지역 문화자산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관심과 접목되어 전북의 정신문화자산이 성숙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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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2.12 23:02

완판본의 명성, 유지에서 확산으로

우리고장은 역사수호의 고장, 기록문화의 메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전주사고의 실록보존이나 완판본의 등장은 역사와 기록의 중심지로서 상징적인 사례이다. 특히 완판본은 전주와 전주인근 지역에서 제작된 고도서를 총칭하는 것으로 판매용으로 제작된 방각본을 함께 포함하고 있다. 완판본 문화관을 건립할 수 있을 정도로 출판문화도시로서의 명성은 충분하다.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위탁 보관 중인 전주향교 완영책판은 전국적으로도 유일한 문화재로 그 중요성은 더할 나위 없이 크다. 현재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목판을 지정하려는 안동의 한국국학진흥원에 6만4천여 점의 목판이 보존되어 있지만, 감영에서 제작 사용한 목판은 단 1점도 없다. 우리 지역에서 판매하기 시작한 방각본 고소설 역시 경상도 지역에서는 한 책도 간행된 적이 없다. 전주는 조선시대 단일 도시로 서울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책을 출판한 도시이다. 현존하는 완영책판은 5,059개로 총 9,830장 19,660면에 해당하며, 모두 유학사상의 교육서이거나 업무 지침서들이다. 아울러 방각본 고소설과 사서삼경 언해본의 출간 역시 지식 보급과 향유의 중심지로서 전주가 가지고 있는 문화코어이다.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사업과 완판본 문화관의 개관은 지역의 문화자산을 활용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한지산업의 진흥을 위한 일련의 노력도 기록문화도시의 이미지와 무관하지 않다. 기록문화도시 조성이라는 커다란 비전은 그려지지 않았지만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단편적인 자산들을 퍼즐 맞추듯이 하나씩 모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때 그때의 일상에 쫓겨서 넓은 숲을 조망하지 못한 채 눈앞의 단위 사업에만 집중해 왔지만 이제는 고개를 들어 숲을 그려보아야 할 때이다. 먼저, 조선왕조실록, 완판본, 한지, 인쇄출판 등 기록문화요소를 담아 낼 큰 그림이 필요하다. 개별 사업의 목표를 어디에 둘 것인지를 고민하고 추가로 추진해야 할 사업과 추진 중인 사업의 방향성을 재검토해야 한다. 다음으로 문화자산의 가치를 더 높이고 알려야 한다. 어진을 국보로 승격시켰듯이 현재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204호로 지정된 전주향교 완영책판을 보물로 높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지방문화재 지정을 위한 조사 이후 완영책판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 연구와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완판본 문화관의 역할이 더욱 필요한 부분이다. 끝으로 문화자산을 확대 수집하는 것이다. 완판본의 고장이라지만 완판본을 집중적으로 수집한 기관은 없다. 완판본의 고장에서 모든 완판본을 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지금까지 확인된 완판본 도서를 모두 모아 연구ㆍ보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완판본아카이브센터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일련의 노력을 통해서 문화 산업화를 모색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 복본화사업은 한지 도서 출판으로 이어져야 하며 이를 위한 기술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전통한지만 복원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완판본은 한글서체의 개발과 서체 집자프로그램 등과 같은 응용 분야로 확대되어야 한다. 아울러 지역출판문화 진흥을 위한 지방정부의 지원책을 만들자. 지역에서 간행한 도서 중 정말로 좋은 책을 선정하고 적극적으로 구입 배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지역 출판사가 아무리 좋은 책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으면, 대형 도서유통업체에 헐값으로 넘기는 지역의 출판 시장을 탄탄하게 할 때, 가장 좋은 책을 잘 만드는 도시, 완판본의 명성을 이어나가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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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2.05 23:02

문화바우처, 소외계층과 문화나눔

정부에서는 문화소외계층에게 문화이용권을 지원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른바 문화바우처 사업이다. 이 사업은 문화예술을 향유하지 못하고 있는 소외계층에게 공연·전시·영화 등 다양한 문화예술프로그램의 관람료 및 음반·도서 구입비를 지원하는 문화복지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2년도 전라북도 문화바우처 예산은 34억 원 정도였다. 전라북도의 대상자 10여만 명 가운데 약6만여 명이 이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예산의 집행내역을 살펴보면, 2013년 1월 24일 현재 문화카드는 98.2%가 발급되고, 소진율도 80%에 임박하고 있다. 2011년과 비교하면 같은 시기에 비해 이용률이 대폭 신장되었다. 문화바우처 사업이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일선 현장에서 문화카드 발급과 충전 업무에 최선을 다한 담당 공무원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지역예술인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재능기부, 사회복지 관련 근무자들을 비롯한 각계의 보이지 않는 후원의 손길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현장에서 문화바우처 이용자들을 찾아 바우처를 소개하고, 이용을 촉진하였던 20여명의 문화복지전문인력들의 노력이 값지게 배어 있다. 그런데 바우처 활동은 아직도 어려움이 많다. 먼저 문화카드 발급과 충전업무를 전개하는 행정담당자의 이해가 충분하지 않아 발급이 원활하지 않다. 또한 문화카드를 이용할 수 있는 카드가맹점이 도시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군·면단위 마을사람들은 카드를 가지고 있어도 이용이 제한적이다. 문화부에서 추진하는 '스포츠 바우처'와 '여행 바우처'는 문화바우처와 사업명이 비슷하여, 도통 어느 게 어느 것인지 구분하기도 어렵다. 문화바우처의 이용기간 또한 적절하지 않다. 4월이나 5월경에 사업이 시작되어 그 다음해 2월까지 운영되기 때문에 일선에서는 사업비의 소진에 급급한 측면도 없지 않다.무엇보다 큰 문제는 도시 밖의 마을에 살고 계신 고령의 어르신들이 이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선순위에 밀리고, 고령이라는 이유로 충분한 설명도 듣지 못한 채 발급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한다. 지리적 소외와 함께 사회에서 배제된 연령층이라는 이중의 소외 속에 갇혀있는 셈이다. 우리 사회에는 가난하고, 병들고, 나이 들어 외로운 분들이 많다. 그 고통을 분담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이다. 또한 이용자들은 적은 금액이지만 문화적 권리로써 문화바우처를 이용하여 삶의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문화바우처 지원기관이 이름을 내세워 시혜자로서 군림해서는 안 된다. 전달자가 드러나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사회의 무관심에서 시작된 문화바우처사업이 벌써 8년째를 맞고 있다. 이 과정에서 많은 감동이 있었다. 가깝게는 지난 가을 고령의 어르신들이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송대관과 태진아의 공연을 관람하셨다. 평생 마을에만 일만 하셨던 어르신들은 공연을 관람하시고 난 후, "내 평생 여한이 없다"고 했다. 그 관중 속에는 60여년 만에 처음으로 마을 밖을 나와 일반인들과 함께 공연을 관람한 한센병 환우들도 있었다. 한 번 문화바우처를 이용해본 한센병 환우들은 이후 300여명이 문화바우처를 아무 거리낌 없이 이용하였다. 전라북도 내 300여 마을을 방문하여 마을사람들의 삶을 사진으로 담아 전시회도 진행하였다. 이 밖에도 거동이 불편한 분들을 직접 찾아가 흥겨운 놀이판을 벌이기도 했다.문화바우처가 소외계층의 어려움을 모두 해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작은 행동이 우리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이다. 끝으로 2012년 문화바우처 사업은 오는 2월에 종료하고 다시 2013년 문화바우처 사업이 전개된다. △ 김 단장은 전주 출신으로 전북대 한국음악학과를 졸업한 후 안동대에서 석 박사(민속학) 과정을 마쳤다.(사) 문화연구창 소장으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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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1.29 23:02

보고와 정산의 시기에 부쳐

2013년 새해 첫 달이 벌써 중반을 넘어가고 있다. 1월은 야심찬 새해 계획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시기임이 분명한데 나는 여전히 2012년을 붙잡고 있다. 2012실적보고서, 2012정산보고서, 2012결과보고서, 2012평가보고서란 이름하에 온갖 텍스트 및 수치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른바 지금은 보고와 정산의 시기인 셈이다. 보고(報告)는 지시 또는 감독하는 자에게 주어진 일의 내용이나 결과 따위를 말이나 글로 알림을 뜻하고 보고서는 보고하는 내용을 적은 글이나 문서를 말한다. 정산(精算)은 정밀하게 계산하거나 또는 그 계산하는 행위를 말한다. 국어사전에서 정의한 대로 두 단어의 뜻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지금 나는 일년동안 일한 내용을 정확하게 거짓을 고하지 않고 수치로 표현하여 상급기관에 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제한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인간의 희로애락을 표현해야 하는 예술 행위는 매우 지난한 작업이다. 일년내내 보고서와 씨름하고 공연을 모니터하며 회의하는 것에 익숙한 나에게도 버거운 것이 예술활동의 보고서 작업이다. 느낌표와 웃음으로밖에 표현될 수 없는 것들을 수치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물며 창조적 생산 활동에 매진해야 하는 예술가 집단은 오죽 할까 잠시 생각을 해본다. 그들은 본디 자유로운 영혼들인지라 계산과 얍삽함에 능통하지 못하다. 일전에 한 작가의 문예진흥기금 신청서 작성을 도와준 적이 있는데 돌이켜 보면 매우 어려운 문서작업이었다. 신청서 내용중에 흥미로운 항목이 하나 있는데 '전년도 정산을 하지 않은 단체는 신청불가'라는 조항이다. 기금을 받고도 정산을 하지 않는 단체는 다음연도 기금 수혜자가 될 수 없음은 당연하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왜 이런 조항이 생겼을까'이다. 정산서를 제출하지 않는 단체가 많은 것일까? 정산이 어려워서 하지 못했나? 정산을 할 사람이 없었나?무대에서는 예술가 집단이 가장 빛나지만 정산의 시기에는 너무도 당연하게 행정가-기획자-예술가의 계급피라미드가 생성된다. 창작 작업에 대한 열정과 수많은 백스테이지의 노력은 보이지 않고, 논술과 미적분보다 어려운 '목적에 맞게 만들어 내는 보고서' 작업이 우선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 작업의 보고 및 정산 작업은 필요하다. 창작 작업에 대한 평가가 피드백이 되어 더 나은 예술활동의 밑거름이 되는 깨알정산작업은 필수적이다. 다만 이런 작업을 예술가 집단이 아닌 기획자 집단이 해야 하며, 이 기획자 집단은 행정가나 자금 제공자와는 별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행정가는 기획자 집단을 압박하지 않아야 하며 예술가 집단을 다그쳐서는 안된다. 기획자 집단은 동등하게 협업자로서 예술가 집단과 함께 창작활동의 한켠에 자리해야 한다. 아울러 이런 작업이 단순한 결과 보고와 수치상의 정산이 아닌 다음 작품을 위한 밑거름이 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실현되지 않을 희망사항이겠지만 관객수, 유료율, 비용대비 회수율, 공연실행에 대한 증거용 자료 제출 등을 취조하듯이 요구하지 않았으면 한다. 관객들은 어떤 표정을 지었으며 어떤 소리를 질렀으며 무빙라이트와 모니터 스피커가 보컬의 소리와 표정을 얼마나 섬세하게 표현하고 전달했는가? 공연 후 객석을 나가는 커플은 얼마나 행복해했으며 밴드들은 우리 공연장의 생동감에 만족했을까? 내년에 이 밴드를 다시 섭외한다면 어느 계절이 가장 좋을까? 앞으로 소수 매니아가 아닌 다수가 좋아하는 공연장르로서 지속가능성은 있는가? 이런 보고와 정산을 하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 이 팀장은 소리전당 개관 멤버로 현재 운영팀장으로 재직중이며, 전북대 문화인류학과 박사과정을 밟으며 문화전반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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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1.22 23:02

한국학호남진흥원 설립을 기대한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는 박제화된 유품이나 기억의 편린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지역의 문화유산은 지역의 문화를 특징짓고 지역의 정체성을 확인시키며, 지역민의 동질적 유대감을 일깨우는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러한 점에서 호남학을 연구하는 학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호남의 문화적 기반을 체계화하고 현재화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추어지길 소망해 왔고, 지난 10여 년의 망설임과 시행착오를 넘어 올해 들어 '(가칭)한국학호남진흥원'의 설립을 구체화하고 있다.일반인에게는 자칫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한국학호남진흥원은 호남의 전근대와 근·현대 기록문화유산 등을 종합적·체계적으로 수집·정리·보관·연구하고, 이를 재문화하는 동력을 생산하고자 하는 학술문화기관이다. 수도권에는 오래 전부터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설립되어 한국학 연구와 문화 생산을 주도하고 있으며, 영남지역의 경우에는 지난 1990년대 중반 영남문화를 체계적으로 수집 정리하고 대중화하는 중추로서 '한국국학진흥원'이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유독 호남 지역만 이러한 기관이 설립되지 못한 채, 고립 분산적으로 호남 문화의 집산과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러다보니 타지역에 비해 문화 연구의 활성화, 특히 전통 문화의 현재화와 재문화화에 한계점을 노출해왔다.지방 분권이라는 현실적 조건, 확대되어 가는 지방 문화에 대한 관심, 그리고 중앙 중심의 거대 담론이 아니라 다양성과 일상성을 탐색하는 한국학 연구 경향이 맞물리면서 지역학 내지 지역 문화는 이제 역사와 문화 연구의 중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역학으로서의 한국학은 그 내용을 충분히 담아야 할 미완의 그릇이고, 향후 역동성을 갖춰 미래의 삶에 투영되고 재문화화해야 할 대상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미래로서의 전통 문화유산, 특히 호남 문화 유산은 소실 및 유출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고 있다. 고문헌(古文獻)의 경우, 호남 인물들의 문집 3천여 종, 지방지(地方誌) 2천여 종 등 모두 20여만 권 이상이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10만~15만 점에 이르는 고문서(古文書), 수십만 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고서화(古書畵), 2만 여 장 정도로 추정되는 고목판(古木板) 등이 아직도 방치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더욱이 지역의 기초학문과 문화의 재생산 기반이 더욱 약화되어 새로운 지역 문화의 기초마저 흔들리는 현실을 감안할 때, 호남지역의 한국학 연구자들이 '한국학호남진흥원 설립을 위한 호남지역 연구자협의회'를 최근 결성하고, 각계에 건의문과 호소문을 전달한 것은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시의적절하다고 하겠다.호남지역에 이 진흥원이 건립되면 그 역할과 기능은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북 안동에 위치한 한국국학진흥원은 지난 10여 년간 30여만 점에 달하는 기록문화 유산을 수집하고, 이를 기반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록을 목표로 목판 수집운동을 벌이고 있는 점에 비추어 우리 지역에 동 진흥원이 설립되면 호남을 배경으로 하는 보다 진전된 문화유산의 집적과 활용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더하여 전통문화 자원을 기반으로 한 차원 높은 현대의 지방 문화 창출이 기대된다.한국학호남진흥원의 설립을 위해서는 앞으로 지난한 과정이 예상된다. 하지만 우리 지역민이 문화유산이 사라지면 지역의 역사와 문화도 함께 사라질 수 있다는 절박함을 인식하고, 진흥원 설립을 위해 뜻을 모은다면 반드시 이룩될 수 있는 사업임에 틀림없다. 한국학호남진흥원 설립을 위한 지역민의 관심을 기대하며, 특히 곧 출범할 새 정부가 지역 발전을 위한 토대로서 한국학호남진흥원 설립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 주길 촉구한다. △ 박 교수는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蘆沙 奇正鎭의 哲學思想 硏究〉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공군사관학교 전임강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군산대학교 철학과에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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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1.15 23:02

새 포대에 담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뜨거운 대선을 뒤로 하고 이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구성도 마무리되어 본격적인 인계인수가 시작될 것이다. 인수위원회의 활동은 당선자 통치기간 5년의 국정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 주 업무이다. 지난 5년 동안 이명박정부는 그 이전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잃어버린 10년'으로 압축하여 평가 절하해 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하지만 무조건 잘못되거나 틀린 정책은 없다. '잃어버린 10년'은 모두 버리고 바꾸려 했다는 점에서 시행착오를 겪었던 것이다. 18대 대통령 당선자는 신년사에서 '공생과 상생의 정신'을 이야기하고, 행복한 100% 대한민국을 천명하고 정권교체가 아닌 시대교체를 선언하였다. 중산층 70%의 시대를 열겠다고도 하였다. 새 포대에 담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주사위는 던져졌다. 장강의 강물이 거꾸로 흐르지 않은 다음에야 바뀔 수 없다. 민주통합당의 텃밭으로만 여겨졌던 전라북도에서도 두 자리의 지지율이 나왔다. 더디지만 분명 변하고 있다. 이제는 움직여야 할 때이다. 정당이나 후보들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지역'은 늘 아린 가슴처럼 애틋하다. 대선기간 동안 전라북도는 물론 각 시군에서 지역발전 공약을 건의했다. '공약'의 모든 것이 실천되지는 않는다 해도 공약에 들어갔느냐하는 것은 지역발전에 중요한 시금석이다. 박근혜당선인의 문화분야 공약은 '다함께 누리는 문화! 세계인도 즐기는 문화! 세계는 지금 한국스타일입니다'이다. 문화재정을 2012년 1.14%에서 2017년 2%대로 늘리겠다는 것과 '문화기본법'의 제정, 문화복지 전문인력양성, 장애인 문화권리 국가 보장, 지방 특화 문화예술도시 개발, 문화예술단체 지원 강화, 창작지원 및 문화콘텐츠 공정거래 환경 조성, 시설확충, 문화유산 관리체계 강화, 체육 복지 강화, 남북문화교류 확대, 세계문화 다양성 증진, 관광 복지 실현 등으로 정리된다. 이제 지역의 문제를 고민해 보자. 향후 5년 동안 가시적으로 눈에 띄는 것은 문화기본법의 제정과 문화복지 전문인력양성이다. 문화예술진흥법에서 국민의 문화기본권 보장을 떼어 별도의 법률로 제정하고 복지 전문인력을 양성하겠다는 것이다. 우리 지역에서 노력한 문화바우쳐ㆍ코디네이터 등과 같은 문화복지사의 직렬 신설이 가능해 보이는 분야이다. 한편 광주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에 부합한 문화예술산업 지원'을, 경기도가 '한류지원을 위한 기반조성' 전북은 '고도 익산 르네상스를 위한 관련 사업지원' 경남은 '신문화광관 실크로드 구축'을 새정부 공약에 포함시켰다. 우리 지역의 강점이 전통문화산업은 중앙 공약이 아닌 지방 공약으로 경북지역에 '한반도 역사문화산업 네트워크 구축'이 포함되어 있다. 새 포대에 넣어 달라 요청할 과제 개발이 시급하다. 우리 지역에서 잘할 수 있는 것과 지역 발전을 위해 필요한 그림들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쉬지 않고 제안해야 할 것이다.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실천과제를 그려낼 수 있도록 여야가 아닌 가슴 아린 지역의 관점에서 노력해야하지 않을까? △ 홍 교수는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에 근무하다 전주로 내려와 전주시청 연구원, 전북대학교 박물관을 거쳐 현재 전주대학교 역사문화콘텐츠학과에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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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1.08 23:02

예술을 선물하는 산타

오늘은 크리스마스, 일주일후면 새해 1월1일이다. 누구나 나이를 한 살 더 챙기게 되고 자연스럽게 지난 1년을 곱씹어보는 시기이다. 문화계에서 일하다 보면 많은 예술가들을 만나고 천이면 천 가지 요구를 갖고 있는 관객과 접한다. 관객의 요구는 일정하지 않아서 시대와 환경의 흐름에 따라 바뀌게 마련이다. 어느새 우리 주변에서 공중전화박스가 사라졌듯이 정신차리고 보면 무엇인가가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자리를 잡아간다. 이 와중에도 변함없이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예술이라는 매개를 통해 같이 어울리면서 이웃을 돕는 이들이 있다. 갖고 싶은 물건을 선물하는 산타도 고맙지만 영혼을 위로해주는 예술을 선물하는 산타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우진문화재단은 1998년부터 국내 주요 전시를 관람하는 미술기행을 진행해오고 있다. 매달 40명 내외의 미술애호가와 함께 블록버스터 전시는 물론이고 우리나라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의 기획전, 비엔날레 등을 빠뜨리지 않고 챙겨보는 프로그램이다. 이 기행에는 전주지역 보육시설 청소년들이 함께한다. 우진문화재단이 참가비를 대고 전주지방법원 봉사모임인 '어울림회'가 아이들의 용돈과 인솔을 책임지고 있다. 11월 기행을 다녀온 날이었다. 보육원에 일이 있어 선생님이 아이들 마중을 못 왔고 가는 방향이 같아 아이들을 태워다주게 되었다. 뒷좌석에 앉은 둘은 저희들끼리 대화를 시작했다. "너는 오늘 어떤 작품이 좋았냐?" "카푸어도 좋았지만 최보람 끝내주더라!" "그렇지? 야 어떻게 기계로 미술을 만드냐, 쇳덩어리가 숨을 쉬는데 정말 내 숨이 딱 막히데!!" "어머 너희들도 그렇게 생각했어? 실은 나도..." 아이들의 대화에 끼어들어 인도출신의 영국작가 아니쉬 카푸어의 설치작품과 한국작가 최보람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보육원에 도착하였다. 보육원 아이들이 미술기행에 참여한 것도 5년이 다되어 간다. 전주지방법원 봉사모임의 총무를 맡고 있는 사무관(지금은 서기관이 되어있지만)의 제안으로 어울림회가 보육원 아이들을 미술기행에 보내는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부모가 있는 아이들도 미술기행에 참여하는 것은 극히 드믄 일이다. 매달 40여명 중에 청소년은 서너명에 불과하다. 미술에 대한 인식이 남다른 부모를 가진 아이들이 누리는 혜택이다. 미술기행에 오는 보육원 아이들은 처음엔 서먹서먹해하고 그림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저 색다른 소풍을 간다는 것만으로도 미술기행은 아이들에게 매력적인 일이었다. 횟수를 거듭하면서 아이들은 미술작품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앞에서 보고 뒤에서 보고 가까이서 뜯어보고 작가의 의도를 생각하고. 지루한 그림도 있지만 아니쉬 카푸어와 최보람의 설치작품처럼 깜짝 놀랄만한 것들도 많다. 12월 기행에서는 고흐에 푹 빠질 수 있었다. 문화계 생활을 하면서 한 가지 분명하게 느끼는 것은 예술이 사람의 내면을 바꾸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악기를 가르쳐 오케스트라를 탄생시킨 베네수엘라의 엘시스테마 사례가 그걸 입증하였다. 국내에서도 엘시스테마를 벤치마킹한 수 많은 프로그램이 가동중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그림을 보는 중년여성은 주말에 백화점 대신 전시장에 가고 명품백 대신 그림을 산다. 그림을 보는 청소년은 영화속에 등장하는 그림을 알아보고 인터넷으로 작가를 검색한다. 새해는 예술을 권하고 선물하는 산타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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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2.25 23:02

베네수엘라 특별전-미술과 과학

몇 년 전 영국 팝아트 작가인 데이비드 호크니가 펴낸 〈명화의 비밀〉은 충격적인 책이었다. 호크니가 〈명화의 비밀〉에서 주장하는 것은 단 한 가지이다. 서양의 많은 화가들이 15세기 초부터 광학기구(거울, 렌즈 등)를 이용하여 그림을 그려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물화를 그린다고 한다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모델을 앞에 놓고 화가가 손과 눈만을 사용하여 그리는 것이 아니라 모종의 도구들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모종의 도구라는 것이 바로 카메라 옵스큐라(바늘구멍 사진기인 핀홀카메라와 같은 원리를 가진 광학기구)를 통해 대상물의 정확한 상을 얻고, 그 위에 종이나 화폭을 대고 베껴 사실적인 인물화를 그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면 평소 대가와 명화에 대해 품고 있었던 신비감이 어느 정도 반감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화가들의 호기심과 탐구적인 태도로 인해 진공관 시대를 거쳐 오늘날 디지털 컴퓨터 시대가 오지 않았느냐는 긍정적인 생각도 해 불 수 있다.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미술과 과학은 상생과 공생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해 왔다. 현재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미술거장전의 특별전 추상의 세계" 작품들을 보면 기학학적인 추상에서 화가들의 과학적 호기심과 탐구 정신을 발견할 수가 있다. 쿠르즈 디에즈와 오마르 까레뇨의 작품에서는 연속된 줄무늬가 겹치면서 여러 가지 재미있는 기하학적인 곡선무늬가 생기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을 모아레(인쇄물이나 모니터 같은 전자화된 화상 등에서 규칙적인 모양을 겹치게 했을 때 화소가 서로 간섭해서 생기는 주기적인 스트립형태의 패턴)현상이라고 한다. 이를 옵티컬아트(Optical art)로 기하학적 형태와 색채를 이용하여 시각적 착각을 다룬 미술이라고 한다.이들은 평행선이나 바둑판무늬, 동심원 같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형태를 통해 복잡하고 역설적인 광학적 공간을 만들어 내거나 명도가 동일한 보색(반대색)을 병렬시켜 색채의 긴장상태를 유발시켜 사람의 눈에는 색채와 형태가 실제로 진동을 일으켜 동요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라파엘 소토와 게고는 키네틱 아트(kinetic art)로 알려져 있는 작가다. 소토는 투명하고 유동적인 튜브로 인터랙티브(상호소통)적인 조각을 만들고 관람자의 착시현상을 유도하는 작업들로 유명하다. 여기서 키네틱 아트란 움직임을 본질로 하는 미술을 지칭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현대 사회에서 기계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작품에 도입하고자 했던 것이다.움직임을 본질로 하는 미술은 실제로 움직이는 모빌을 중심으로 칼더의 작품이 있으며, 실제로 움직이지는 않지만 시각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이 보이는 작품 등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라파엘 소토와 게고는 후자에 속하는 작가로 옵티컬 조각과 설치작품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들 키네틱과 옵아트 작품이 진화되어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탄생될 수 있었다. 또한 전자 공학의 발달로 레이저 아트, 홀로그래피 아트 등 미술 표현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대시키고 있다. 미술과 과학은 이제 스스로 새로운 계층을 형성하여 움직이는 실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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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2.18 23:02

'청춘들의 문제'인 관심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짧은 시가 있다. 불과 이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골목마다 연탄재가 수북하게 쌓여 있곤 했다. 그 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차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았다. 시인은 그걸 관심을 갖고 주의깊게 보았기 때문에 알 말한 사람은 다 아는 좋은 시를 쓸 수 있었다.'눈이 칠 할'이라고 했다. 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우리는 대부분의 정보를 보거나 읽어서 내것으로 만든다. 책을 보고 새로운 지식과 지혜를 얻는다. 신문을 읽어서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알아낸다. 꽃을 보아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축구경기를 보면서 열광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볼 수 없다면 그건 또 얼마나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겠는가.관심은 '보는 마음'이고, '보려고 하는 적극적인 행동'을 일컫는 말이다. 눈에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보려고 하는 만큼만 보인다. 누군가 일러주는 만큼 아는 것도 아니다. 관심을 갖고 알기 위해서 노력해야 지식이나 지혜도 생기고 냉철하고 합리적인 판단력도 갖출 수 있는 법이다. 그게 바로 관심의 힘이다.일주일 후에 우리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지게 될 대통령을 뽑는다. 그냥 뽑거나 뽑아지는 게 아니라 뽑아야 한다. 앞으로 살아갈 우리 사회의 지형이 우리가 뽑은 그 한 사람에게 달려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20대 청춘들의 앞날이 좌우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잘 뽑아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의 전도유망한 20대 청춘들은 왜 선거에 무관심하고 투표장에 가지 않는가. 자신들의 미래를 왜 기성세대에 떠맡기는가. 관심이 부족해서다.'독재자의 딸'이면서도 '준비된 여성 대통령'을 표방하고 있는 박근혜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누가 어떻게 강탈해서 내준 준 돈으로 얼마나 '공주'처럼 살아왔는가. 자기 손으로 단돈 100원도 벌어본 적 없는 사람이 과연 서민들의 고통을 진정성 있게 나누어가질 수 있겠는가. 아무 잘못도 없는 수많은 사람을 잡아다 고문하고 죽였던 바로 그 아버지와 박근혜는 어떤 점에서 닮았고 다른가. 그의 말과 행동에는 거짓이 없는가. 인류 역사상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국민이 하나라도 있었는가. 젊은이들이 열광했던 안철수와 함께 힘을 모아서 반드시 정권교체도 이루고 새정치도 실현하겠다고 국민 앞에서 굳게 약속한 문재인 후보는 또 어떤 삶의 이력을 가진 사람인가. 그의 생각과 신념은 박근혜와 어떻게 다른가. 그는 우리 정치와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싶어하는 사람인가. 안철수를 비롯한 이땅의 뜻있는 지식인들 모두 그에게 적극적인 지지와 성원을 보내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문재인 후보가 우리의 청춘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미래의 대통령으로서 그가 만들어가겠다는 '사람이 먼저'인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했다.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방황하고 몸부림칠 줄도 아는 건 물론 청춘의 특권이자 의무이다. 마찬가지다. 관심을 가져야 청춘이다. 후보들에 관해 틈날 때마다 인터넷도 뒤져보고, 남은 TV 토론도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관심만이 미래를 바꿀 수 있다. 그러니까 관심이 문제인 것이다. 관심을 가져야 청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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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2.11 23:02

전북의 신라문화유산에 관심을

고려 인종 때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를 읽다보면 전북에도 신라 땅이 등장한다. 전북 무주군 무풍면과 남원시 운봉읍 일대가 여기에 해당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시대 3대 예언서로 꼽히는 '정감록'에 사람들이 살기 좋은 십승지지(十勝之地)에도 그 이름을 함께 올렸다. 아마도 신라가 두 갈래로 전북 동부지역으로 진출했음을 말해준다. 1500년 전 진안고원과 운봉고원에 남겨 놓은 신라의 유적과 유물을 소개하려고 한다.70년대 전북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북리마을에서 신라토기가 발견됐다. 신라 무산현이 설치된 곳으로 정감록에 삼재를 피할 수 있는 명당 중 명당이다. 아직껏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그 성격을 예단할 수 없지만 일단 신라고분으로 추정된다. 이를 근거로 6세기 이전에 이미 신라가 백두대간을 넘어 진안고원으로 진출했음을 증명해 주었다. 백제의 웅진기 이후 백제와 신라의 간선교통로는 무산현 동쪽 백두대간의 덕산령을 넘어 성주와 대구를 거쳐 경주까지 이어졌다.진안 용담댐 구제발굴에서도 신라토기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진안 황산리 가야고분에서 가야?백제토기와 공반된 상태로 출토되어 많은 관심을 모았다. 진안군 안천면과 금산군 추부면에서 신라계 유물이 신라고분에서 상당량 출토됐는데, 그 시기는 대체로 6세기 중엽 경으로 비정됐다. 진안고원 일대에서 6세기 전반기 이른 시기부터 등장하는 신라의 유적과 유물은 신라의 진출을 암시해 주는 결정적인 증거이다.일제강점기 때 만든 나제통문은 백제와 신라의 국경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백제는 웅진으로 도읍을 옮긴 이후 갑자기 정치적인 불안에 빠지자 이를 틈타 장수가야가 진안고원 일대에 대규모 축성과 봉수망을 구축한다. 이 무렵 신라도 진안고원에 큰 관심을 보여 한 동안 장수가야와 갈등관계에 빠진다. 진안고원을 차지하려고 삼국이 치열하게 각축전을 펼쳐 백제와 가야, 신라의 유적과 유물이 공존한다.달리 신선의 땅으로 유명한 운봉고원은 신라의 모산현이 설치된 곳이다. 최고급의 철이 생산되던 철의 왕국이자 백제와 가야를 연결해 주던 간선교통로의 관문이다. 삼국시대 때 운봉고원의 철을 확보하기 위해 백제를 중심으로 대가야, 소가야가 앞 다투어 최고급 위세품을 운봉가야에 보냈다. 그런데 백제와 가야 연합군이 관산성 전투에서 패배하여 신라가 운봉고원을 복속시켰다. 이를 계기로 백두대간에서 백제와 신라의 국경이 한 동안 형성되었다. 남원 봉대리 신라계 무덤에서 삼국의 유물이 함께 출토되어 고고학 자료로 운봉고원의 역동성을 방증해 주었다.백두대간에서 최고의 격전장이 신라 아막성이다. 백제는 무왕 3년부터 아막성을 차지하기 위해 신라와 치열하게 전쟁을 벌였다. 당시 20년 넘게 계속된 아막성 전투에서 백제가 승리함으로써 백두대간을 넘어 운봉고원을 다시 백제의 영역으로 예속시켰다. 신라문화유산의 보고인 진안고원과 운봉고원은 삼국의 역사와 문화가 잘 응축된 야외박물관이다.지난 7월 강원도 영월읍에서 전국 십승지지 읍면장이 한 자리에 모여 십승지지의 발전방향과 협력방안을 모색했다고 한다. 이제부터라도 진안고원과 운봉고원을 무대로 찬란히 꽃피웠던 전북의 신라문화유산을 찾고 알리는 데 학계와 행정당국의 큰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린다. 그럴 때 전북의 역사와 문화가 올곧게 자리매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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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2.04 23:02

민간위탁 10년, 질적 성장을 위한 전제

오래전부터 막연히 이런 생각을 해왔었다. 언젠가 밥집을 차린다면 상호를 '노규황량(露葵黃梁)'으로 지어야겠다고.어느날 다산과 추사가 강진의 선비 황상의 집을 방문했다. 황상은 다산에게 글을 배운 처지였다. 가난한 황상의 처는 급히 아욱을 뜯어 국을 끓이고 쌀이 없어 조로 거친 밥을 지어 손님을 대접했다. 빈한하지만 정갈한 밥상을 받고 다산은 "남쪽밭에 이슬 젖은 아욱을 꺾고 동쪽 골짜기의 누른 조를 밤에 찧는다."는 시를 지었고 추사는 이 시에서 '이슬 젖은 아욱과 노란 조'를 길러내 '노규황량사(社)'라는 제액을 써주었다. 이후 이 제액은 남쪽 지방 선비들 사이에 가난하되 고귀한 선비의 표상이 되었다. 어쩌면 '노규황량'은 가난하지만 당당하고 싶은 이들의 자존감의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스스로 선택한 가난과 강요된 가난은 차이가 크다. 강요된 가난에는 자괴감이 있을 뿐이다. 전주시 민간위탁 문화시설이 어느새 설립 10년을 맞았다. 그 세월은 한옥마을 변천의 시간과 같다. 10년 사이 한옥마을의 땅값은 치솟고 관광객이 넘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은 문화일꾼들의 가난이다. 일이 좋아 가난을 선택했고 나름 보람도 있지만 오랜시간 희생이 강요되면서 문화일꾼들의 누적된 피로감이 상당하다. 10년전 한옥마을은 근대한옥의 집결지라는 건축사적 의미는 있지만 가난하고 보잘것없어 누구나 떠나고 싶어하던 곳이었다. 전통문화관과 공예품전시관, 한옥생활체험관, 술박물관은 한옥마을 활성화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2002년 설립됐다. 역사박물관은 효자동으로 자리잡았고 최명희문학관의 출발은 몇년 뒤의 일이다. 전주시는 문화시설을 신축하고 공무원을 파견하는 대신 시설의 운영을 전문성과 열의를 갖춘 민간에 위탁했다. 지금은 거버넌스라는 말이 흔해졌지만 당시 시립시설의 민간위탁은 전국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었다. 민간의 열정은 인정하지만 역량은 검증되기 전이었다. 위수탁기간은 3년, 위탁금과 운영협약을 놓고 전주시는 갑, 민간단체는 을의 관계에 놓였다. 3년간 열심히 해 성과를 내지 않으면 위탁자는 바뀔 수 있다. 이런 긴장감은 일의 강도를 높이고 창의성을 끌어내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다행히 10년을 맞은 민간위탁 문화시설은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 중평이다. 시에서 직접 운영했다면 훨씬 많은 비용을 들이고도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전주 한옥마을은 10년전의 우려를 씻고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큰 성공을 거둔 곳이다. 그 중심에는 시립 민간위탁 문화시설 활동가들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시립 문화시설들은 공공성과 자립화라는 대립하는 두 개의 과제를 안고 줄타기해왔다. 위탁금을 줄이고 자립도를 높이려면 수익을 내야하는데 공공성이 중시되는 시립시설이기 때문에 제약이 많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내핍은 필수다. 그 과정에서 직원들의 급여와 복지는 늘 양해대상이었다. 결과를 놓고 보면 지역 문화계의 저임금구조를 고착화하는데 시립시설들이 앞장서온 셈이다. 이제 전주시는 민간위탁 10년의 피로감을 맞은 시립 문화시설들의 고용의 질을 높이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문화일꾼도 부양할 가족이 있고 노후를 준비해야하는 생활인들이다. 적어도 시립시설의 직원들이 자기 급여를 부끄러워할 정도는 면해야 하지 않을까. 열심히 일하고 적정한 대우를 받을 때, 경력 쌓고 거쳐 가는 직장이 아닌 누구나 지원하고 싶은 일터가 된다. 전주시 민간위탁 문화시설의 질적 성장은 구성원의 자기 존재감이 확고할 때 자발성과 창의성의 발현으로 달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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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1.27 23:02

현대미술 가늠할 수 있는 전시

미술은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는 역할을 해준다. 우리 주변에도 쉽게 볼 수 있는 건물과 간판, 실내장식까지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의 요소가 여러 가지 형태로 우리 주변을 아름답게 꾸며 준다. 이제 미술은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들어 우리들의 정서를 순화시켜 삶을 좀 더 윤택하게 해준다. 이처럼 생활과 밀접한 미술은 거부감이 없이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회화 또한 미술관에서 마주치는 사실적인 경향의 작품은 전문가의 도움과 설명을 곁들이지 않아도 편하게 감상할 수 있다.그러나 복잡하고 다양하게 전개된 현대미술 작품 앞에 서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난감해하면서도 나름대로 현대미술 감상에 대한 어색함을 감추며 이해하려한다. 현대미술이 난해하고 어렵다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현대미술 이전에는 그림에 무엇을 표현할 것인지 내용과 이야기가 담겨 있어 읽혀지는 그림이었다면, 현대미술은 내용 보다는 형식이 우선시 되어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즉 기법과 방법적인 문제가 고려되어 그림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시각이 우선 시 되기 때문이다. 창작이라는 개념이 전위성으로 직결되어 새로운 것에 대한 집착이 가져온 결과이다. 그래서 대중들이 그림을 감상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오늘날 작가들은 더욱 더 새로운 기법과 방법을 펼쳐 보여 주기 위해 새로운 것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미증유의 새로운 기법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해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이전의 화풍이 새롭게 변형되고 첨삭되면서 현대미술은 조금씩 진화되어왔다. 이번 기회에 현대미술에 대하여 포괄적으로 감상하고 이해하고 싶다면 현재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미술거장전'을 추천해주고 싶다.마치 패키지 상품을 보듯이 현대미술 작품을 각 시대와 장르 및 작가별로 선보임으로써, 다양하고 흥미로운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 어렵게만 보아왔던 현대미술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현대미술에 대한 진화 과정을 마음껏 즐기며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단지 샤갈의 오리지널 작품 한 점만이라도 전시가 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대부분의 판화가 대작인데다 피카소의 미공개작인 '누드와 앉아 있는 남자'가 전시의 비중을 떠받쳐주고 있다. 또한 우리가 한층 더 가벼운 마음으로 현대미술에 다가갈 수 있도록 기초적인 설명과 접근법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미술을 친근하게 가늠할 수 있는 교과서적인 전시이다. 잘 그린 그림과 좋은 그림의 차이점은 독특함이다. 현대미술은 바로 독특함을 담아내기 위해 조형적 실험의 연속이었다. 이번 작품전을 감상하면서 얻을 수 있는 큰 재미는 작품마다의 특징과 독특함을 발견해 내는 것이다. 꼭 이해하려고만 든다면 감상하는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으니, 아 저렇게도 표현하고 그릴 수 있구나 부수적으로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기는 하지만 자기만의 생각 속에서 그려내고 찾아가는 상호소통의 즐거움과 여러 가능성을 유추해 가며 스스로 자신 안의 안목과 창조성을 깨우쳐 가는 재미를 느낀다면 어느덧 현대미술은 우리 가까이 다가 와 있을 것이다. 요즘과 같이 자본주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빠르게 격변하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성과 모호함, 정체성의 부재들 이러한 시대상황이 현대미술에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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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1.20 23:02

12월을 기다리며

이태리 가수 살바토레 아다모(Salvatore Adamo)가 부른 〈Tombe la Neige〉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눈이 내리네 당신이 가버린 지금 눈이 내리네 외로워지는 내 마음 꿈에 그리던 따뜻한 미소가 흰눈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네 하얀 눈을 맞으며 걸어가는 그 모습 애처로이 불러도 하얀 눈만 내리네'라고 우리나라의 이숙이라는 가수가 이 노래를 〈눈이 내리네〉라는 제목으로 번안해서 부르기도 했지요. 어쨌든 대학시절부터 나는 아다모의 이 곡만 들으면 삼복더위에 수박화채를 먹다가도 눈앞에 하얀눈이 펑펑 쏟아지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곤 했습니다. 이십여 년 전 12월 어느날인가는 첫눈이 아주 풍성하게 내렸습니다. 그날 저녁 나는 괜히 싱숭생숭해져서 집으로 곧장 가지 못하고 대학로를 그야말로 정처없이 서성거렸지요. 그러다가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습니다. 백미현의 〈눈이 내리면〉이었습니다. 눈이 내리면 떠오는 모습 그대의 그 까만코트 주머니에 내손을 넣고 마냥 걸었지 첫눈 올 때면 무작정 우린 만났지... 백미현 특유의 부드럽고 청아한 음성과 어우러진 그 노래의 구절구절이 내 가슴 속에 흰눈을 아주 그냥 펑펑 쏟아붓고 있었던 겁니다. 그날 나는 레코드가게에서 그 노래가 담긴 LP와 맥주 몇 병을 사들고 자취방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밤이 늦도록 〈눈이 내리면〉을 듣고 또 들었습니다. 물론 간간 이정석의 〈첫눈이 온다구요〉와 이선희가 부른 〈겨울애상〉도 턴테이블에 얹었지요. 하얀눈 하늘 높이 자꾸 올라가네로 끝나는 이문세의 〈옛사랑〉과, 저 유명한 〈러브 스토리〉의 주제곡인 〈Snow Frolic〉도 다섯 번씩은 족히 들었을 겁니다. 창밖에는 하염없이 눈이 내리고 있었고, 맥주에 취하고 음악에 취해서 나는 새삼스럽게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렸고, 불확실한 미래에 몸을 떨면서도 이 아름다운 세상에 생생히 살아 있음에 또한 무한히 감사를 드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게 12월이었는데도 나는 예나 지금이나 딱 한 달만 꼽으라면 11월입니다.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이지요. 푸른잎도, 울긋불긋 요란하던 단풍도 웬만큼 지고 쌀쌀한 바람이 불어 겨울을 기다리게 하니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11월만 되면 12월을 눈앞에 두고 있어서 하루하루 그저 설레는 것이지요. 확실히 뭔가를 기다리는 건 가슴벅찬 일인가 봅니다. 특히 이 11월은 5년 주기로 찾아오는 12월 '그날'이 예정되어 있어서 더 각별합니다. 지난 5년 동안 나(뿐만 아니라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도)는 부글거리는 속을 달래며 다음달에 있게 될 '그날'을 내내 기다려 왔던 것이지요.돌이켜보면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저린 무릎을 두드려가며 어둡고 긴 터널을 견뎌왔습니다. 세상이 하도 위선투성이라 그랬는지 첫눈 한번 제대로 쏟아지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꾹 참고 오래 기다렸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12월이 성큼 와서 팍팍하기만 했던 모든 사람들이 '사람사는 세상', '사람이 먼저인 세상'의 희망을 벅차게 안고 활짝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어느날 온누리에 첫눈이 펑펑 내리면 나는 또 〈Tombe la Neige〉와 〈눈이 내리면〉에 밤새도록 푹 젖어들고 싶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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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1.13 23:02

전북, 해양문물교류의 허브

우리나라는 바다로 갇혀있지 않고 바다로 열려있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은 바닷길로 해양문물교류가 활발했다. 옛날고속도로인 강과 바다는 일찍부터 문물교류의 큰 통로였다. 우리나라에서 강과 바다를 하나로 묶어주는 천혜의 교역망이 잘 갖춰진 곳이 전북이다. 그리하여 전북의 서해안이 해양문화의 메카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원동력으로 작용했다.현재까지 전북에서 발견된 40여 개소의 신석기시대 유적이 대부분 서해안에 모여 있다. 군산지역의 패총에서 서해안과 남해안의 해양문화를 비롯하여 내륙문화의 요소도 함께 확인되어, 전북이 신석기시대부터 해양문물교류의 허브였음이 입증됐다. 금강과 만경강, 동진강, 인천강의 내륙수로와 해상교통망이 거미줄처럼 잘 구축됐기 때문에 가능했다.우리나라에서 철기문화의 전래와 해상교통의 발달로 패총의 규모가 갑자기 커진다. 군산 개사동 패총은 그 규모가 100m 내외로 우리나라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군산의 역사책으로까지 불리는 군산지역의 패총은 100여 개소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다. 아마도 군산이 소금생산을 기반으로 발전했던 해양경제의 보고였음을 증명해 주었다. 그러나 군산지역 패총의 성격을 밝히기 위한 한 차례의 발굴조사도 추진되지 않아 그 존재가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금강과 동진강하구에 마한의 지배층 무덤으로 알려진 말무덤이 밀집되어 있다. 군산지역에는 17개소의 말무덤과 관련된 분묘유적이 분포된 것으로 밝혀졌는데, 그 밀집도가 전북에서 가장 높다. 최근 군산대 캠퍼스 내 말무덤에 대한 학술발굴에서 그 의미가 마한의 분구묘로 파악됐다. 마한의 말무덤과 패총이 많은 군산지역에는 해양경제를 토대로 발전했던 마한의 소국들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우리나라의 해양문화를 가장 일목요연하게 보여준 곳이 부안 죽막동 제사유적이다. 백제와 가야, 왜가 연안항로를 따라 항해하다가 잠시 들러 무사항해를 기원하며 해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고창 봉덕리에서 중국제 청자와 일본계 토기가 출토됐는데, 당시 한·중·일의 고대문화가 해상교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됐음을 암시해 줬다. 백제가 웅진으로 수도를 옮긴 뒤 후백제까지 동진강하구의 가야포 등 거점포구를 통해 국제교류가 빈번했다.삼국시대 해양문화의 심장부인 전북의 서해안은 한 동안 전쟁터로 그 무대가 바뀌었다. 당나라 소정방 13만 군대가 상륙했던 기벌포와 백제부흥군이 나당연합군과 치열하게 격전을 벌였던 백강전투, 676년 당나라와 신라수군이 최후의 해전을 펼친 곳도 전북의 서해안으로 추정된다.고려는 해상왕 장보고가 구축해 놓은 해상교역망을 그대로 계승해 해양강국으로 발전했다. 송나라 휘종이 200여 명의 대규모 사절단을 고려에 파견했는데, 군산도에서 김부식 주관으로 영접행사가 열릴 정도로 당시 국제관문으로 번영을 누렸다. 현재 선유도 망주봉 주변에는 숭산행궁과 군산정, 오룡묘, 자복사 등 국제해양문화유산이 잘 남아있다.조선시대 해양활동을 금지하는 해금정책과 공도정책으로 해양문물교류가 그다지 활발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전북의 서해안은 진성창과 안흥창 등 조창과 조운선으로 여전히 해양문물교류의 허브로 융성했다. 전북의 서해안에 찬란히 꽃피웠던 해양문화를 재현하려는 새만금국제해양관광단지와 새만금신항만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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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1.06 23:02

전북도립미술관의 세계미술거장전

가을색 완연한 전북도립미술관에 다녀왔다. 미술관을 나서면 눈앞에 펼쳐지는 모악산 풍경이 일품이어서 미술관 방문은 일석이조의 기쁨을 준다. '세계미술거장전-나의 샤갈, 당신의 피카소'전이 열리고 있는 미술관은 단체로 방문한 학생들과 삼삼오오 짝 지어 나들이한 관람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미술을 아직 멀게 느끼는 학생과 시민들이 대중적으로 친숙한 세계거장들의 작품을 통해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 블록버스터 전시의 매력일 것이다. 전시장 입구 티켓부스와 화려하게 채색된 전시벽면이 서울시립미술관이나 예술의전당의 블록버스터 전시장을 보는듯하다.2008년 가을 예술의전당에서 '서양미술거장전-렘브란트를 만나다'전이 열렸었다. 한 방송사와 블록버스터미술기획이 주관한 이 전시를 보고 나온 많은 사람들이 "낚였다"는 표현을 쓰며 주관사를 비난했다. 이 전시에는 부쉐의 걸작인 '헤라클레스와 옴팔레', 피터르 브뤼헐2세의 '스케이트 타기' 등 다른 거장들의 유명한 유화들이 포함됐지만 정작 렘브란트 작품은 유화는 한 점뿐이었고 에칭 등 판화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2시간쯤 걸릴 것으로 예상한 도립미술관 관람은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다. '나의 샤갈'을 느끼게 할 샤갈의 유화는 한 점도 없었고, 피카소의 유화는 단 한 점이었다. 단체관람온 학생들이 "샤갈이 그린거래"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얼핏 보면 살포시 터치한 유화처럼 착각할 수도 있는 샤갈의 판화들이다. 샤갈이 '색채의 마술사'로 불린 것은 독창적인 구성과 강렬하고 화려한 색감의 유화덕분인데 저 밋밋한 판화들만으로 '나의 샤갈' 운운하는 것은 억지이지 싶었다. 오히려 앤디워홀의 마릴린먼로 판화 10장이 눈길을 끌었지만 전시위치가 관객의 시선보다 높아 불편했다. 마네와 몬드리안 등 우리에게 익숙한 거장들의 판화가 대부분이었다. 전시제목이 차라리 '세계미술거장의 판화전'이었다면 피카소의 유화를 만났을 때 보너스를 받은 것처럼 기쁘지 않았을까. 내용과 동떨어진 제목, 과도한 홍보와 관객몰이...공공성을 띄어야할 도립미술관이 상업미술기획사들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쉬웠다. 전북도립미술관의 블록버스터 전시는 당초 '밀레에서 피카소까지'란 이름으로 기획됐었다. 바르비종파와 인상파, 입체파를 아우르는 전시를 기대하게 하는 이름이다. 전시일정을 두 차례 연기하는 우여곡절을 거친 결과는 처음의 의도와 많이 달라져있었다. 예산과 경험이 부족한 미술관이 블록버스터 전시를 개최하려니 미술관 직원들의 고충과 노고가 어떠했을지 충분히 짐작된다. 이제 겨우 개관 8년을 맞은 미술관이 굳이 이런 전시를 무리하게 추진해야했을까. 올해 초 취임한 서울시립미술관장의 제일성은 "더 이상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블록버스터 대여전을 갖지 않겠다"였다. 블록버스터전시는 미술의 대중화라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미술관 자체 기획력을 위축시키고 상업적 규모화가 미술 자생력을 침해하기 때문에 공공미술관이 할 일은 아니라는 미술계의 지적을 수용한 말이었다. 전북도립미술관 올해 예산은 26억7천만원, 이 중 기획전시비가 2억7천만원, 작품구입비가 2억원으로 공공미술관으로는 영세한 수준이다. 블록버스터전시에 8억원을 쏟아붓는 일과 작품구입과 기획전시예산을 늘리는 일,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시급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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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0.30 23:02

세계미술거장전 기대 크다

예술의 진정한 의미는 생활 속에 있다. 예술이 생명력을 지니려면 생활과 결합이 되어야 한다.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언제든지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예술 공간의 인프라 확충은 건전한 생활문화를 키워내는 산교육장이 될 것이다. 보통사람들의 일상적인 생활에서 문화적인 소양이 자라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선진국들처럼 박물관 전시관 음악당 등 문화시설을 충분히 갖추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당장 이런 하드적인 시설이 없이도 가능한 부분들도 있지만 여러 기능이 다각도로 맞물려 쌍두마차처럼 균형을 유지해야 진정한 문화예술이 꽃피울 수가 있다. 우리사회는 개인의 능력개발 중심의 여가문화가 필요한 시대로써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접하며 살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사회 인프라 구축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미술관에서의 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에 따라 교육활동도 점차 다양화 되어야 한다. 사회적, 문화적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는 문화사회교육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으며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 생활 문화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차별화되고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 교육적 기능으로써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미술관에서의 교육은 미술관의 소장품과 기획 전시품을 활용한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학교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고 미술교육과정을 보다 확장하고 심화해나갈 수 있으며 보다 효과적이고 질 높은 학습의 장이 될 수 있다. 나아가 개인의 삶의 질적 향상을 이루어주며 미술문화의 이해를 돕는데 중요한 평생교육의 장으로 기대할 수 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보더라도 미술관이 많지 않은 나라는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난하다. 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우리는 빈곤 앞에서 노동의 노예로 전락해 바로 눈앞에 닥친 것에만 연연하게 된다. 극장이나 도서관처럼 미술관은 자유로 통하는 길이다. 미술관에서 우리는 개인적인 걱정이나 실망감을 잠시 접고 광활하고 안정적인 인간의 창조성이라는 세계에 빠져든다. 그곳에서는 지금까지 우리 인간이 창조한 가장 아름다운 것들과 모든 시대와 모든 문화의 산물이 전시되어 있어 우리에게 기쁨과 깨달음을 준다. 우리는 이곳에서 인간의 이성과 감성의 정수를 맛보고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깨닫는다. 진정한 선진국은 부의 평등한 분배와 대부분의 국민들이 문화적 향수를 체험하고 실천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마련된 나라일 것이다. 현재 여러 나라의 유수한 미술관 중에서도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추천할 만한 미술관은 테이트 모던 미술관을 그 첫 번째 예로 들 수 있다. 전북도립미술관도 그간 수많은 기획전과 특별전을 통해 도민들의 미의식을 한층 끌어 올리는데 기여해 왔다. 전시뿐만 아니라 공연과 교육을 통해 단순한 미술관으로서의 기능이 아닌 미술관을 통해 많은 이야기들을 전달하여 왔다.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요소들이 역사, 문화와 함께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담겨있는 메시지로 전달 될 때 우리는 이야기가 있는 도시로 기억하게 되는데 이들 중에서 미술관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10월 19일부터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세계미술거장전'나의 샤갈 당신의 피카소전'이 열리기 때문에 사뭇 기대가 크다. 성공적으로 개최되어 도민들뿐만 아니라 타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깊어 가는 가을, 명작과 함께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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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0.23 23:02

술꾼들의 수다

말도 마라. 지금이 몇 신데 어디서 술 퍼먹고 인제사 들어오냐고 된통 얻어터졌다, 야. 목구멍에 생선뼈 걸린 소리가 내 뒷덜미로 달려들었습니다. 하긴, 우리가 노래방 나와서 택시 탈 때가 아마 한 시 가까이 됐을 걸? 뭐, 한 시? 집에 도착하니까 두 시도 넘었더라. 호기심에 뒷자리를 힐끗 돌아봤습니다. 사십 중반쯤으로 보이는 세 남자가 지글거리는 진안오겹살을 앞에 두고 소주잔을 부딪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식당에서 후배들을 만나기로 돼 있었는데, 먼저 도착해서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 마누라는 어쨌는 줄 아냐? 등 뒤에서 다른 친구가 아까 그 말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퍼마시면 간이 배겨나겠냐고, 술을 좀 제발 작작 마시라고 숫제 애원을 하더라. 하여튼 여자들은 왜들 그러냐? 싸나이들이 말야, 술 한 잔 빨다 보면 늦을 수도 있는 거잖아, 안 그래?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속은 있었던 것이지요. 야, 근데 이거 할 말은 아니지만, 상철이네 제수씨보다는 형선이 마누라가 기중 나은데? 건 또 무슨 강아지 풀 뜯어먹는 소리? 나는 무료하기도 해서 그들의 얘기에 귀를 세웠습니다. 이 엉아가 어린 중생들한테 한 수 지도를 아끼지 않으마. 봐라, 상철이 너는 어제 늦게 들어가니까 제수씨가 지금이 몇 신데 어디서 술 퍼먹고 인제사 들어오냐고 바가지를 긁었다고 했지? 맨날 그러는디? 형선이 마누라님께서는 제발 작작 마시라고 했고? 그랬지. 근디, 그게 뭐가 어쩐다고? 이런 띨빵들을 보게. 제수씨는 상철이 니가 술을 많이 퍼먹어서가 아니라 집에 늦게 들어와서 열을 받은 거란 말이다. 그러니까 남편이 술을 많이 퍼먹은 건 별로 관심없다 이거지. 문제는 술을 먹고 어디서 뭐하다 늦, 게, 들어왔는지가 중요하다 그 말씀이다. 그럼 내 마누라는? 형선이 마누라는, 에... 뭐랄까. 비교적 현모양처라고 할 수 있지. 건 또 무슨 해괴망측한 스피크? 니 마누라님은 니가 늦게 들어온 것보다 술을 많이 마셔서 속이 상했던 거지. 말하자면 사랑하는 내 낭군님의 건강과 안녕을 염려했다고나 할까? 꼭 궤변 같게만 들리지는 않았습니다. 상철이 너는 한잔 하고 들어간다고 신고하면 제수씨가 틀림없이, 일찍 들어와, 그럴 거다. 어떠냐, 이 엉아의 말이 맞냐 틀리냐? 아, 불쌍한 중생 상철이라는 친구의 표정이 궁금해서 나는 뒤를 돌아보고 싶은 걸 꾹 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이다, 형선이 니 마누라는, 술 쫌만 마셔, 그러지? 정말 그런 거 같네? 늦게 들어오는 건 괜찮으니까 건강 생각해서 적게만 마셔달라는 뜻이지. 그럼 나는, 얼마든지 퍼먹어도 좋으니까 늦게는 들어오지는 마, 이런 거게? 그 목소리가 구멍난 타이어 같았습니다.그렇게 잘난 너는, 어제 집에 들어가니까 제수씨가 뭐라더냐? 그렇게 되물은 것도 보나마나 상철이라는 중생이었을 겁니다. 나? 이 엉아로 말씀드릴 거 같으면, 벌써 코를 드렁드렁 골면서 자던데? 아, 왜냐고는 묻지 마라. 그건 이 술꾼 서방님을 일찌감치 포기했다는 뜻이니까. 그리고는 이어서, 야야, 건배나 하자. 쭈욱! 술잔 부딪치는 소리가 등뒤에서 쨍, 했습니다. 그날 그 세 사람은 서로에게 참 정겨운 술친구들인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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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0.16 23:02

견훤의 전주사랑과 그 자취들

흔히 경주와 전주를 소개할 때마다 천년고도라는 수식어가 꼭 따라 붙는다. 신라의 경주는 천년 동안 한 왕조의 도읍이었다면, 전주는 천 년 전 후백제의 도읍이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900년 견훤은 무진주에서 완산주로 도읍을 옮긴 뒤 나라의 이름을 후백제로 선포하고 백제의 계승과 신라의 타도를 선언했다. 936년 고려에 멸망될 때까지 전주는 후백제의 도읍이었다.비록 37년의 짧은 역사였지만 전주 동고산성에 남겨놓은 후백제의 문화유산은 참으로 대단하다. 80년대부터 시작된 학술발굴을 통해 전주 동고산성의 전모가 파악됐다. 이 산성의 중앙부에 자리한 주건물지는 길이 82.4m로 우리나라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조선시대 전주부성을 쌓을 때 대부분 헐린 성벽은 두부처럼 잘 다듬은 성돌만을 가지고 쌓아 최고의 축성기술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견훤은 평상시 평지성에 머물러 있다가 위급할 때 전주 동고산성으로 이동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전주시 중노송동 전주고 동북쪽 '물왕멀' 부근에 있었던 토성이 후백제의 평지성으로 추정된다. 마치 평지성과 산성이 짝을 이루고 있는 고구려의 도성체제와 상통한다.후백제의 도성인 전주를 지키려는 견훤의 의지도 무척 강했다. 금강과 섬진강의 발원지를 동시에 거느린 금남호남정맥에 그 자취가 잘 남아있다. 이 산줄기의 큰 고갯길인 자고개 북쪽에 장수 합미산성이 있는데, 후백제의 위엄이 돋보이는 최고의 산성이다. 마치 두부처럼 정성스럽게 잘 다듬은 성돌로 성벽을 쌓았는데, 성돌과 성돌 사이에는 삼국시대 토기편과 기와편이 박혀있다. 이 산성의 동쪽 기슭에 견훤이 잠시 올라 쉬었다는 왕바위가 아주 늠름한 자태로 견훤의 방문 사실을 전해주고 있다.금남정맥의 금산 백령성에도 견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성을 쌓기 위해 일부러 일양현을 설치할 정도로 견훤의 전주사랑은 매우 깊었다. 전주 동고산성과 축성기법이 거의 흡사한 산성들이 백두대간과 금남정맥, 금남호남정맥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삼국시대 최대의 격전지로 유명한 백두대간의 남원 아막성도 여기에 속한다. 현재 남아있는 산성들은 후백제의 도성인 전주를 방어하기 위해 견훤에 의해 개축됐을 것으로 추측된다.우리나라에서 가장 내륙에 위치한 초기청자 가마터가 진안고원에 있다.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 중평마을로 갑발을 사용해 최상급의 순청자를 생산했던 가마터이다. 문양이 시문되지 않고 녹갈색을 띠는 초기청자만을 만들다가 갑자기 가마터의 문을 닿았다. 후백제는 월주요의 후원을 기반으로 발전했던 오월과 국제교류가 활발했다. 중국 절강성 월주요는 해무리굽과 벽돌가마로 상징된다. 진안 도통리 초기청자 가마터에서 해무리굽과 불에 그을린 벽돌이 발견됐기 때문에 월주요의 영향을 받아 후백제 견훤에 의해 처음 개발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우리나라에서 초기청자 가마터는 그 역사성을 인정받아 대부분 문화재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진안 도통리의 경우만 유일하게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아 관리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않고 있다. 동시에 후백제 산성의 분포양상과 그 성격을 밝히기 위한 한 차례의 학술조사도 추진되지 않았다. 아무쪼록 전주를 무척 사랑했던 견훤의 모습을 떠올린다면 견훤의 전주사랑이 깃든 후백제의 문화유산을 찾고 알리는 지표조사만이라도 조속히 모색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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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0.09 23:02

힐링전주, 전주독립영화관

지금 우진문화공간 '비밀의 정원'은 달콤하고 새콤한 금목서 향이 진동하고 있다. 물푸레나무과의 상록수인 금목서는 큼지막한 몸피에 비해 새의 혀만큼이나 작고 앙증맞은 꽃을 피워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해마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시작되어 추석 무렵이면 꽃대에서 잘디잔 망울이 맺혀 십자모양의 노란꽃이 피어나 일주일 가량 지속된다. 정원의 벤치에 앉아 등을 세우고 턱을 약간 들어 눈을 감고 있으면 금목서 향이 코끝을 스쳐 온몸을 휘감는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와 어울려 지난 여름 더위와 태풍에 시달린 심신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다. 의자는 힐링벤치가 되고 비밀의 정원은 그대로 힐링가든이 된다. 슬로우시티를 지향하는 전주에는 이처럼 천천히 찾아보면 보배로운 곳이 많다. 그 중 이 가을에 한번쯤 왕림을 권하고 싶은 곳이 옛 보건소 자리에 있는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이다. 영화 '카모메식당'을 처음 만난 곳이 바로 전주독립영화관이다. 영화 속 대표적 힐링식당으로 꼽히는 카모메식당은 향긋한 계피향의 시나몬롤과 핸드드립커피라는 아이콘과 함께 정성과 안식을 파는 가게를 상징한다. 이 영화는 일본의 여성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작품인데 역시 전주독립영화관에서 그가 만든 '토일렛'과 '요시노이발관'을 만났고 배우 모타이 마사코가 이 감독의 페르소나라는 것을 알게 됐다.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를 영상으로 보여준 곳도 전주독립영화관이다. 마약과 범죄에 노출돼있던 거리의 아이들을 모아 음악을 가르치고 이들의 숨어있던 재능을 발굴하여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를 통해 발현시킨, 세계적인 음악 사회적기업의 롤 모델이 되었던 엘 시스테마 스토리는 얼마나 감동적이었던가. 시몬 볼리바르 유스 출신이 베를린필의 단원이 되고 역시 그 출신인 지휘자 구스타프 두다멜이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의 콜을 받는 이야기에 또 얼마나 가슴벅차했던지.일체의 대사 없이 3시간 가까이 상영됐던 '위대한 침묵' 역시 전주독립영화관이 있었기에 볼 수 있었다. 알프스 깊은 산중에 있는 묵언수행 수도원의 일상을 영상으로 접하며 우리가 듣는 대부분의 소리가 '잡소리'일 수 있다는 반성을 하였다. 전주독립영화관은 이처럼 영혼의 안식을 주는 영화 외에도 젊은 감독들의 실험적인 영화와 상업 영화관이 틀기 거부하는 비대중적 영화들을 꾸준히 소개하고 있다. 일반극장에서 보기 힘든 귀한 영화를 '흔한 영화'보다 더 저렴하게 볼 수 있고 회원에 가입하면 값을 더 깎아주고 매달 소식지도 보내준다. 전주국제영화제가 막 시작됐던 2000년 즈음 전주에도 멀티플렉스 파동이 밀어닥쳤다. 시당국은 1극장 1상영관이라는 오랜 체제를 유지해온 극장주들을 설득하여 시설 개선을 시키고 시민들에게는 상영관이 많아지면 더 다양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했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흐르지 않았다. 블랙버스터영화는 거의 모든 상영관을 장악하여 더 많은 관객을 끌어 모았고 자본과 마케팅이 취약한 영화는 극장에 걸리지도 못하는 현실이 됐다. 애덤 스미스가 말하던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지 않는 조작하는 손'에 의해 무력해졌다. 전주독립영화관은 이러한 영화시장 구조에서 희생되는 영화와 관객을 위한 보루로서의 존재감을 갖는다.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베니스영화제에서 상을 받지 않았다면 전주에서 그 영화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극장은 바로 전주독립영화관이었을 것이다. 10월에는 또 어떠한 영화의 성찬이 차려질까 하는 기대감, 전주시민의 이 특권이 오래 지속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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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9.2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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