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꾼들의 수다
말도 마라. 지금이 몇 신데 어디서 술 퍼먹고 인제사 들어오냐고 된통 얻어터졌다, 야. 목구멍에 생선뼈 걸린 소리가 내 뒷덜미로 달려들었습니다. 하긴, 우리가 노래방 나와서 택시 탈 때가 아마 한 시 가까이 됐을 걸? 뭐, 한 시? 집에 도착하니까 두 시도 넘었더라. 호기심에 뒷자리를 힐끗 돌아봤습니다. 사십 중반쯤으로 보이는 세 남자가 지글거리는 진안오겹살을 앞에 두고 소주잔을 부딪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식당에서 후배들을 만나기로 돼 있었는데, 먼저 도착해서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 마누라는 어쨌는 줄 아냐? 등 뒤에서 다른 친구가 아까 그 말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퍼마시면 간이 배겨나겠냐고, 술을 좀 제발 작작 마시라고 숫제 애원을 하더라. 하여튼 여자들은 왜들 그러냐? 싸나이들이 말야, 술 한 잔 빨다 보면 늦을 수도 있는 거잖아, 안 그래?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속은 있었던 것이지요. 야, 근데 이거 할 말은 아니지만, 상철이네 제수씨보다는 형선이 마누라가 기중 나은데? 건 또 무슨 강아지 풀 뜯어먹는 소리? 나는 무료하기도 해서 그들의 얘기에 귀를 세웠습니다. 이 엉아가 어린 중생들한테 한 수 지도를 아끼지 않으마. 봐라, 상철이 너는 어제 늦게 들어가니까 제수씨가 지금이 몇 신데 어디서 술 퍼먹고 인제사 들어오냐고 바가지를 긁었다고 했지? 맨날 그러는디? 형선이 마누라님께서는 제발 작작 마시라고 했고? 그랬지. 근디, 그게 뭐가 어쩐다고? 이런 띨빵들을 보게. 제수씨는 상철이 니가 술을 많이 퍼먹어서가 아니라 집에 늦게 들어와서 열을 받은 거란 말이다. 그러니까 남편이 술을 많이 퍼먹은 건 별로 관심없다 이거지. 문제는 술을 먹고 어디서 뭐하다 늦, 게, 들어왔는지가 중요하다 그 말씀이다. 그럼 내 마누라는? 형선이 마누라는, 에... 뭐랄까. 비교적 현모양처라고 할 수 있지. 건 또 무슨 해괴망측한 스피크? 니 마누라님은 니가 늦게 들어온 것보다 술을 많이 마셔서 속이 상했던 거지. 말하자면 사랑하는 내 낭군님의 건강과 안녕을 염려했다고나 할까? 꼭 궤변 같게만 들리지는 않았습니다. 상철이 너는 한잔 하고 들어간다고 신고하면 제수씨가 틀림없이, 일찍 들어와, 그럴 거다. 어떠냐, 이 엉아의 말이 맞냐 틀리냐? 아, 불쌍한 중생 상철이라는 친구의 표정이 궁금해서 나는 뒤를 돌아보고 싶은 걸 꾹 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이다, 형선이 니 마누라는, 술 쫌만 마셔, 그러지? 정말 그런 거 같네? 늦게 들어오는 건 괜찮으니까 건강 생각해서 적게만 마셔달라는 뜻이지. 그럼 나는, 얼마든지 퍼먹어도 좋으니까 늦게는 들어오지는 마, 이런 거게? 그 목소리가 구멍난 타이어 같았습니다.그렇게 잘난 너는, 어제 집에 들어가니까 제수씨가 뭐라더냐? 그렇게 되물은 것도 보나마나 상철이라는 중생이었을 겁니다. 나? 이 엉아로 말씀드릴 거 같으면, 벌써 코를 드렁드렁 골면서 자던데? 아, 왜냐고는 묻지 마라. 그건 이 술꾼 서방님을 일찌감치 포기했다는 뜻이니까. 그리고는 이어서, 야야, 건배나 하자. 쭈욱! 술잔 부딪치는 소리가 등뒤에서 쨍, 했습니다. 그날 그 세 사람은 서로에게 참 정겨운 술친구들인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