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주보기] 며느리 여러분, 설 명절 편안하신지요
어렸을 적부터 명절이, 나는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조상님께는 죄송하지만)크고 좋은 재료를 골라서, 정성을 다해서(할머니께서는 제사음식을 장만하면서 불평의 소리를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셨다.)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설이 되었건, 추석이 되었건, 밥 14그릇(그것도 高捧으로)에 조율이시(棗栗梨枾)니, 홍동백서(紅東白西)니 격식을 따져서 제사상을 차려놓는 일을 '우리 어머니'가 도맡아서 하셨고, 이러한 어머니를 보는 나는 매번 가슴속에 그 무엇이 맺히곤 했기 때문이다.하양(河陽) 허씨, 간숙공(簡肅公)파 종가의 종부로서 시제를 제외하고도 1년에 14번, 한 달에 두 번도 제사를 지내는 어머니의 삶을 보면서 장녀인 나는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의 생활이 무척 안쓰러워 보였다. 전주에서는 그래도 낫다. 고향인 안천(鎭安군 顔川면)에서 제사를 치를라치면 장작불을 때서 음식을 장만해야 했고, 자정에 제사를 지내고 나면 친척들의 음식 뒷바라지에 설거지 등 뒤처리하느라 꼬박 밤을 새워야 했다. 겨울엔 앞 냇가에서 얼음 깨고 시리디시린 물을 떠와 데워서 놋그릇을 짚으로 일일이 닦아내야 했다. 제기 등을 정리해서 들여놓는 것까지 여자의 일은 한도 끝도 없어보였다.어려서 나는 결심했다. 엄마와 같은 삶은 살지 않으리라고.아버지는 제사를 앞두곤 집안 청소하고, 지방 닦고, 밤 깎고, 과일 씻어서 준비하고, 제삿날 진설하는 것으로 장손(長孫)으로서의 몫을 다하셨다.이러한 제사풍경은 이제 보기 어려워졌다. 제사를 간소하게 지내거나 생략하는 집안이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해마다 명절을 즈음해서 대부분의 '며느리'들이 잔뜩 긴장하는 모습을 보면, 명절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힘든 것이 사실이다.(남성들이여, 귀성길 운전 스트레스가 여간 아니라고 말하지 말라.)이번 설은 구제역 때문에 고향 방문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더구나 전북은 구제역 청정지역이기에 이 지역 축산농가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 보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야 할 판이다. 따라서 이번 설 만큼은 '명절 증후군'을 하소연하는 소리가 다른 해에 비해 줄어들 것이다.그러나 설 연휴 내내, 그 가족의 규모가 크건 작건, 음식을 장만하는 쪽은 여성일 것이다. 이번 설엔 남편들이 자청해서 요리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보자. 우리의 아들들과 남편들은, 동아리나 단체 야유회에서 또는 대학 때 MT 가서 요리당번을 자처했던 그 '자상한' 남자들이지 않은가? 1주일여 동안의 훈련을 통해 남편의 가사와 육아가 일상에서도 자연스러워진다면 가사가 한쪽만의 '노동'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여성가족부가 지난해 전국 2천500가구 4천7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제2차 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5.1%가 전통적인 제사를 지내며, 명절에 주로 일하는 사람으로 '어머니, 딸, 며느리 등 여성들이 주로 한다'는 응답이 62.3%로 가장 높았다. 반면, '남자, 여자 모두 같이 한다'는 응답은 4.9%에 불과했다. 이러한 응답결과는 일상생활에서보다 제사나 명절 등 전통의례 시 남녀 간, 세대 간 격차가 생기고 이로 인해 부부갈등이 커질 우려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가사를 아내남편이 똑같이, 딱 반절로 나눠서 할 수는 없지만 즐거운 명절, 기다려지는 명절이 되게 하려면 적어도 현재의 모습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우리의 설 명절처럼 프랑스에서는 크리스마스에 민족 대이동이 벌어지는데 한해는 남편 부모님 댁을, 다음해에는 아내 부모님 댁을 방문하는 식으로 번갈아가면서 부모님을 찾아뵙는다고 한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부부 간에, 가족 구성원 사이에 더욱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