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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닦고 닦는다 수건과 행주와 걸레로 깨끗함과 더러움 사이에서 오락가락 닳아지는 수건, 행주, 걸레 이적지 닳게 한 수건 행주 걸레로도 다 닦지 못한 먼지 물때 곤때 같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 △아무리 정성 들여 닦아 놓아도 살아 있는 한은 때가 낀다. 행주와 수건과 걸레의 용모는 다르지만, 용처는 같다. 닦아내는 것이다. 일상의 흔적은 때를 남긴다. 고운 때와 물때와 찌든 때까지 다양해서 닦아내는데도 여러 도구가 필요하다. 하물며 마음의 때야 말해서 무엇하랴, 해서 우리는 마음의 때를 벗기기 위해 묵상, 기도, 여행, 독서, 대화, 상담 등 많은 도구를 동원하는 것이다. 때는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찾아와 우리의 처음 상태를 어둡게 해 놓는다. 때가 끼지 않도록 미리 조심하자. 신독하자. /김제김영 시인
지난 봄 수선화 지지 않았으면 가슴 속 수선화 피지 않았으리 가슴 속 수선화 피지 않았으면 올봄 수선화 지지 않았으리 ======================================== △수선화 한 송이 피고 지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때가 되면 저 혼자 피고 지는 것 같지만, 햇볕 따스하면 제가 알아서 피고 지는 것 같지만, 따뜻한 가슴이 없었으면 어찌 가능한 일이겠는가? 올봄 수선화는 이미 졌지만, 누군가의 가슴 속에서 활짝 피어나 추운 겨울을 건너리라. 수선화도 사람도 서로의 힘으로 어렵고 추운 시간을 견뎌 내리라. 그렇게 품은 수선화가 없다면 우리 가슴은 이미 밭았으리라. 그렇게 품어준 가슴이 없다면 내년 봄 우리는 수선화를 다시 볼 수 없으리라. /김제김영 시인
팔월, 야무진 햇살 상큼한 산들바람에 넉넉히 얹어 보내니 초록 융단 좌르르 펼친 들녘 빛바랜 허수아비 땀방울 한 알 두 알 여물어 가는달 팔월은 논두렁 밭두렁 긴 모서리에 무뎌진 옥수수 잎 쓱싹쓱싹 날 세우는 달 파란 하늘 뭉게구름 망사 날갯짓 고추잠자리 불 댕기는 팔월, 다가올 풍년가(歌) 잔치마당 최종 리허설에 땀방울 쏟는 팔월이다. ======================== △시간은 걸림돌이나 비탈이 존재하지 않은 빈틈없는 사물이다. 시간은 창고에 축적하거나 미리 당겨서 쓸 수도 없다. 그래서일까? 시계를 품고 사는 태양을 야무진 햇살이 상큼한 산들바람에 얹어 보낸다고 한다. 땀방울이 열매를 세상에 내놓는 팔월. 화자는 논두렁 밭두렁 모서리를 밟으며 쓱싹쓱싹 팔월을 끌고 간다. 최종 풍년가 잔치마당을 위한 리허설 때문에 바삐 영글어야 한다. 고추잠자리도 날 세운 옥수수도 팔월의 시간 속에서 지독하게 여름을 견디어 낼 것이다. /이소애 시인
네가 조금 늙어 보이는 건 너무 많이 웃기 때문이지 세상에 웃을 일이 참 많아, 그치? 헤픈 웃음으로 제 한 몸의 말뚝에 매여 사는 웃음밖에 남지 않은 네가 알약 같은 검은 똥을 누는 건 울음도 웃음으로 걸러내는 탓 구절양장九折羊腸 어디쯤 뿔이 돋고 제 풀에 뒷발질도 붙었지만 그걸 왜 달고 있니, 웃음으로 닳아빠진 꼬리도 그렇지만 밀면 동안童顔일 수염이 문제야 ========================= ◇ 코로나19로 생각마저 돌처럼 굳어버린 요즈음 모처럼 웃어본다. 하도 신기해서 웃는 얼굴이 그리워 거울 속에서 나를 바라본다. 분명 수염을 밀고 동안으로 웃어 보이는 염소가 아닌 사람, 나였다. 검은 알약이나 검은 똥을 누는 염소가 되고 싶어 살짝 뒷발질도, 헤픈 웃음도 거울 밖으로 그려보는 오후였다. 세상에 웃을 일이 참 많아라는, 어쩜 시인이 그렇게 사는 자화상 같다. 말뚝에 매여 사는 생에서 웃음으로 산다는 일은 거룩한 마음을 지닌 성스러운 사람일 것이다. /이소애 시인
왜가리, 동진강, 너는 누구의 풍경이었는가 기억 너머 비릿한 바람이었던가 강둑에 서서 찍은 사진 속 유유한 목선들 둑길을 따라 온종일 걸어도 닿지 못할 바다처럼 뱃길은 지워지고 인화된 석양이 걷는다 굳게 닫힌 새만금 수문이 느리게 셔터를 누른다 잘리는 유속 이어지는 암전이 입을 벌리고 천천히 검은 입으로 사라지는 풍경, 풍경 ========================= △동진강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고 흐른다. 바다가 강물을 포용하는 것은 바다는 강물보다 낮기 때문이 아닐까. 내 고향 땅을 휘돌아 흐르는 강물이다. 흐르는 강물은 어린 시절의 내 목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외로움이 아프게 신음하고 있다는 거다. 산외면 풍방산에서 시작해 황해로 흐른다. 동진강 강둑을 거닐면 비릿한 바람을 타고 기억 속으로 왜가리의 우아한 새를 만난다. 어쩌다 낡은 배가 힘없이 출렁이는 풍경은 곧 나의 모습 같아서 유속이 잘린다. 동진강은 누구의 풍경일까. 그래서 시인은 시를 쓴다. /이소애 시인
사방 개 짖는 소리 요란하다 사는 일이 쉬운 적 있었던가 한 고개를 넘어서면 다시 버티고 서있는 산, 수시로 바윗덩이 굴러 내려와 나를 주저앉혔네 늘상 기대하고 희망하는 것들은 등 뒤를 치거나 목에 박힌 가시처럼 따끔거렸네 삶이 주는 최고의 상은 가치 없는 일에 맹목이 되는 것 성성한 가시는 온몸에 꽃처럼 푸르게 돋아나고 빛은 내가 모르는 지름길로 빠르게 지나갔네 가장 두껍고 단단한 어둠이 깃발 들고 나를 점령하고서야 비로소 광막하고 경이로운 나를 알아차렸네 귓속에 별빛 터지는 소리, 오래 욱신거렸네 =================================== △ 광막하고 경이로운 나를 알아차렸네라고 귓속에 별빛 터지는 소리가 통증으로 들려올 때 시인은 하늘의 뜻을 안다. 화자의 온몸에 가시가 꽃처럼 돋아난다면 비로소 지천명의 주름살 계곡에서 어둠의 깃발이 보이는 슬픔에 젖는다. 가시와 산과 바윗덩이가 보일 나이는 생의 황금 시기가 아닐는지요. 미수나 백수의 내가 되면 별빛 터지는 소리, 등 뒤를 치고 달아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화려한 나이, 지천명의 화자는 꽃처럼 피어나는 가시가 생의 이정표일지도 모른다. 시와 동행하는 시인이기를 바란다. /이소애 시인
싸리울 아래 호박씨 한 알 묻어놓고 그 넌출 오르다가 아래윗집 아무 쪽이나 제 맘 드는 울타리에 열려주면 이쪽 건 내 것이고 그편은 네 것이던 게 몹쓸 놈의 유월전쟁 휩쓸고 간 뒤 너는 넘이 되고 나는 남이 되었다 ======================================= ◇ 유월 전쟁 이후 북과 남은 서로 넘이 되고 남이 되었다 이때쯤 싸리울 아래 아버지는 삽을 들고 구덩이 속에 호박씨를 심었었다. 어쩌다 이웃집으로 넘어간 탐스러운 호박이 있으면 내 것이 아닌 이웃집 호박으로 양보했었다. 폭격기가 무서워 깊게 파놓은 굴속에 숨어서 꽁보리 주먹밥으로 배고픔을 달랬던 그해 여름이 슬프게 떠오른다. 이쪽저쪽 가릴 것 없이 동네 사람들은 깊은 산으로 숨었다. 공포에 벌벌 떨었던 6월의 태양은 기억하고 있을 거다. /이소애 시인
눈 감으면 수평선 너머 눈물샘 파도가 먼먼 섬 하나 밀고 쳐들어온다. 목선 한 척 떠돌다가 내 가슴 갑문을 열고 들어와 한가득 싣고 온 안부와 못다 핀 사랑을 와르르 쏟아붓는다. 이방의 길 접고, 접고 나서야 심장 박동이 다시 뛰는 섬 하나. ================================ △화자의 몸속에 울음주머니가 있다. 울다가 눈물샘 넘치면 파도가 섬 하나 밀고 쳐들어온다. 그 섬은 화자의 심장 박동이 다시 뛰게하는 마술을 부린다. 섬은 이방인이 못다 핀 사랑을 꽃피우는 목선이 떠돌아다닌다. 섬은 화자의 가슴을 맘대로 열고 드나드는 생과 사의 신호등이 있다. 파도의 눈치를 보며 숨을 쉬는 화자의 울음보를 건드리지 말자. 혹여 파도에 업혀 우리에게 다가온 詩가 떠날지 모르니까. /이소애 시인
찬란한 아침 서신공원 벤치에서 중절모를 쓴 중년이 혀를 끌끌 차며 보다가 놓고 간 사회면 궁금해 바람으로 넘겨 가며 보고 또 보다가 얼굴을 붉히고 서산마루에 다다라 멈칫 눈시울을 적시며 혹여 내일은 밤새 사회를 비누로 빨아 밝은 얼굴로 말려 놔야 하거니. ================================ △아침 공원에서 신문의 사회면을 보는 중년이 혀를 끌끌 차며 읽은 신문을 태양이 읽었다. 바람으로 넘겨 가며 읽다가 멈추다가 끝내는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저녁노을이 저리 처연하게 지는 것이다. 밤은 반성의 시간이고 다시 태어나기 위한 공간이다. 다시 떠오르는 태양을 위해 밤새 이 사회를 비누칠해 깨끗하게 빨아 놓아야 한다. 그래야 내일의 태양이 찬란하게 빛난다. /김제김영 시인
하루가 천추인 생애 우주를 휑하니 돌고 도는 무한 시공의 여정 하루씩, 천 곱, 만 곱절 하늘엔 흰 구름 가고 바다엔 만파의 물굽이 하루를 살아도 생명은 영원 내 삶이 행복이어라 =================================== △하루만 사는 하루살이에게 내일은 없다. 어제도 없다. 오직 그에게는 현재만 존재한다. 해서 현재는 선물(present)이다. 이미 지나가서 흔적도 없는 어제에 잡히지 말자. 아무 노력도 안 하면서 내일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자. 우리는 지나간 시간을 잡지 못한다. 카이로스(Kairos)의 뒷머리가 머리카락이 없는 대머리인 이유는 사람들이 잡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국어사전을 보면, 대머리는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뜻도 있다. 해서 현재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하루살이는 시간을 살지 않는다. 시각을 살 뿐이다. /김제김영 시인
밤새워 생각했나 보다 정답을 못 찾았나 봐 잎도 없고 대궁에 숭얼숭얼 물음표와 느낌표를 구름처럼 얹어 놓았네 여름의 끝인가 가을의 시작인가. =================================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하는 상사화는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대표하는 꽃이다. 예로부터 많은 시인 묵객들이 상사화를 소재로 하여 그리운 마음을 절절히 읊은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같다. 이 시에서 시인은 상사화를 보며 우리에게 삶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밤새워 생각했지만 잎 하나 피우지 못한 상사화는 물음표와 느낌표를 구름처럼 얹어 놓았다. 이 계절이 끝인가 시작인가? 꼬박 새운 어젯밤이 어제의 끝인가 오늘의 시작인가? /김제김영 시인
오월이 되면 길가에 서 있는 백설기 떡처럼 하얀 꽃잎 쌀밥처럼 풍성한 이팝나무들 여기에는 말할 수 없는 또다른 슬픈 사연이 있다 그 옛날 쌀밥이 없어 보리밥만 먹던 보릿고개 시절 갓난아이 태어났지만 먹을것도 없었던 때 엄마 젖도 나오지 않자 어미 빈 젖만 빨다가 따뜻한 엄마 가슴에 묻고 세상을 떠났던 어린 아기 그 아기를 산에 묻고 자리를 떠나지 못하던 아빠 슬픈 마음 가지고 산속에서 어린 이팝나무를 캐어 아기 무덤 옆에 심었다 천국에서 쌀밥을 바라보며 이승에서 다하지 못한 부모의 간절한 마음을 염원했다 아이들이 죽을 때마다 이팝나무를 그 옆에 심었고 이팝나무의 공원이 되었던 곳 그곳이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마령초등학교 자리이다 오늘도 길가에 수북이 쌓인 하얀 이팝나무 꽃가루를 보며 밥그릇에 쌓아 놓고 그 아기를 생각해 본다. =============================== △ 흔히 춘궁기라고 말하는 이때, 수북하게 담은 쌀밥 한 그릇을 따뜻하게 건네는 이팝꽃이 핀다. 이팝은 이밥, 즉 쌀밥이다. 요즘은 보릿고개가 거의 없어졌다. 그래도 어느 한구석에서 주린 배를 움켜쥐는 아이가 있을 수도 있다. 허리끈을 졸라매는 이웃이 있을 수도 있다. 나무도 쌀밥을 건네주는 때, 어려운 이웃에게 기꺼이 손 내밀자. /김제김영 시인
오! 왔는가. 발과 발이 부딪치고 발등도 밟고 가는 장날이라 농촌 어촌 축산 다 모여 있네 오만가지 밥상 차려 놓았다 물고기가 하늘을 보고 뛰어 오른다 주인 만난다고 계절의 별미 주꾸미 확 터지는 개미알 입맛 다시고 간다. 금.값. 파랑 치마 노랑 치마 싱싱 채소 농부들의 땀 냄새 상다리가 숲을 이룬다 소머리가 웃고 있다 문전성시에 단백질 보충하시오 돼지 콧구멍이 벙긋벙긋 상추에 삼겹살 그 맛 개구리는 비 오는 날 목구멍이 터지고 사람은 삼겹살 먹는 날 볼때기가 터진다. 주머닛돈 쌈짓돈 공유와 상생 재래시장 흐르는 강물이라 강물은 흘러야 산다. 마르면 죽는다. =============================== △모처럼 흥겨운 시장입니다. 시를 읽는 동안 덩달아 즐겁습니다. 요즈음은 배달문화가 발달하고 대형 마트가 많아져서 이런 모습 보기 힘듭니다. 몹쓸 유행병까지 떠돌아 더더욱 그리운 모습입니다. 시인의 사명이 삶을 아름답게 하는 드러내는 일이라면 이 시 한 편으로도 작가는 시인의 목표에 도달한 듯합니다. 강물처럼 흘러가야 할 재래시장을 위해 이번 주말은 재래시장으로 나가보아야겠습니다. /김제김영 시인
쓰레기장 구석에 가죽구두 한 켤레 놓여있다 누군가 내다 버린 체중계 위에서 걸음을 멈췄다 턱에 걸린 숨을 그만 내려놓은 듯 혀를 내밀어보이고 있다 쓰레기장 어둠이 퇴적된 것은 구두가 모든 길을 해감하기 때문이다 채 벗어내지 못한 무게는 320그램, 벼랑 끝 발길을 돌려 와서는 뼛속까지 박아 넣었을 못의 무게다 소리 새어나가지 못하게 못 끝 다져 문 속울음의 무게다 구두가 상처를 비벼 뜨는 순간 고장 난 센서등이 오래된 기억을 깜박, 켠다 언덕길만 걸어왔던 아버지 모서리마다 덧댄 삶을 벗고 빈 잇몸으로 생을 빠져나가던 날을 기억한다 등을 서까래처럼 세워두고 몸만 빠져나간 사막 소의 주검처럼 여전히 제 코뚜레를 풀지 못한 구두의 발등이 한없이 부어 보인다 ================================= △평생을 언덕길만 걸으신 아버지가 생전의 가난과 수고를 벗어두고 가셨다. 끝내 벗어내지 못한 320g의 무게는 속울음의 무게다. 부어오른 발등의 무게다. 뼛속까지 박아넣었을 못의 무게다. 바람이 사막 소의 주검을 어루만지듯, 부어오른 발등을 가만가만 쓸어준다. 쓰레기장 같은 세상의 모든 악취와 찌꺼기를 저 구두가 해감한다. /김제 김영 시인
은빛 가위가 미친 듯이 춤을 추면 꼿꼿하게 버티던 검은 체온이 가차 없이 잘려 나간다 마치 목을 꺾는 동백처럼 대리석 바닥에서 마지막 숨을 거둔다 엄지와 중지에 걸터앉은 시퍼렇게 날이 선 가윗날 날렵하다 못해 비상하는 한 마리 학처럼 우아하다 이발사의 빛나는 가위 손은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신들린 듯 굿판을 벌이고 주인을 떠난 머리카락은 주검이 되어 바람을 탄다 짐짓 고요가 허우적대면 하얀 가운이 가부좌를 틀고 혼백을 이별하는 늙은 이발사의 기도가 시작된다 ============================== △우리들의 머리카락이 늙은 이발사의 가윗날에 잘려 나간다. 학처럼 우아한 가위질은 검은 체온을 가차 없이 잘라낸다. 이발관에 손님이 끊기는 시간이면, 하얀 가운을 입은 채 고요 속에서 가부좌를 트는 늙은 이발사가 있다. 주검으로 돌아간 검은 체온을 위해 기도를 드리는 늙은 이발사가 우리 동네에 있었다. 기도를 게을리하는 지 이발관과 이발사가 사라져 가고 있다. /김제김영 시인
산나물 캐러 산속을 들어갔는데 나물이 기다리고 있을 자리에 노루 한 마리 지키고 앉아서 달아날 생각은 않고 흰꼬리 방둥이 들고 아악아악 너 누구냐, 소리 지른다 나? 사람이다 밤 열시, 낚시를 하다가 물가에 물체 하나 있어 불 비춰 바라본다 고라니 한 마리 물 가운데 서서 허리 굽혀 물을 먹는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저벅저벅 다가가 너 무엇하냐 물으니 나? 사람 아니다 달아난다 =============================== △나? 사람이다/ 나? 사람 아니다 이 시를 읽고 나면 종일 입가에 맴도는 말입니다. 단순히 시가 가진 리듬 때문이 아닙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사람이었다가 다시 사람이 아니었다가 하는 순간들이 되풀이되곤 합니다. 한결같은 순간에도 사람의 모습을 잃지 않는 삶이 진정 문사다운 삶이겠지요? 짧은 시 한 편이 거대한 울림으로 나를 성찰하게 만듭니다. /김제김영 시인
속지 않으려 두 눈을 부릅뜨기보다 속이거든 속아 주자 사랑을 셈하지 말고 우정을 저울질하지 말며 마음의 주판을 털어버리자 용서하지 못할 일도 내가 먼저 용서하고 조건 없이 한 뼘 내어 주자 약삭빠른 자들의 날카로운 눈빛보다 온순한 양의 마음으로 손해 본 것도 잊을 줄 아는 아름다운 바보가 되자 =============================== *요즈음은 바보가 될까 봐 안달인 세상이다. 해서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정보가 최고인 양 우겨대고, 나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일에 서로 옳다고 우기느라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그냥 속아주면 어찌 될까? 이드거니 물러나 기다려 주면 어쩔까? 영원한 바보는 없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진실을 알게 된다. 셈하고 저울질하고 이익을 다투고. 손해 본 것조차 잊을 줄 아는 아름다운 바보가 새삼 그립다. /김제김영 시인
팽팽히 다림질한 수면에 조심조심 산 그리메 드리우다 물방개 길을 내며 나아가고 지워지는 물살에 미끄러지다 촉, 물잠자리 꽁지를 적시고 사라지다 바람이 무늬를 내이며 지나가다 설핏 허공을 지나가는 구름이 스며들다 호수, 파문을 지우느라 온종일 묵묵히 부산하다 ======================================== △산 그림자도 조심조심 드리우는 오송제 호수는 온종일 묵묵히 부산하다 구름이 스며드는 파문을 지우느라 바쁘기 때문일까. 심술부리는 물잠자리 꽁지를 적시고 사라지는 작은 파문이 내 고요한 생각을 흔든다. 물방개의 물길을 조용히 지우며 꼭 기억에서 지워야 할 사람도 지우개로 지운다. 바람의 발자국처럼 아닌 듯 다가오는 포근했던 사랑을 떠올려보는 자투리 시간이었다. /이소애 시인
바다 숲에 풀어 놓은 내 꿈을 거둬 줄줄이 엮어놓고 멀뚱히 세상을 바라보는 네 눈은 무심의 절정 끝도 갓도 없는 바다를 머금고 짭쪼롬하게 세월의 간을 맞추려는 네 몸뚱어리는 순응의 극치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 굴비라는 이름에서 비굴하지 않다는 게 보여 일렬로 묶여있어도 굽히지 않는 너의 자존. -------------------------------------------------------------- △ 회개와 속죄로서 정화하려고 하는 시인의 모습이 보인다. 내가 굴비를 바라보는 눈매가 아닌, 굴비가 세상을 짭조름하게 머금는 세월의 간을 맛보는 시인. 네 몸뚱어리는 순응의 극치라며 일렬로 묶여있는 굴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인의 마음이 참 아름답다. 엮어놓은 굴비보다 낮은 자세로 바라보아야 그 소리가 들린다. 용서와 화해를 실천하려고 할 때 굴비가 세상을 바라본다고 느낀다. /이소애 시인
말없이 떠난 사람 생각 말자 애를 써도 생각나는 사람 하나 멀리 가까이 닮은 모습만 비쳐도 행여 그 사람인가 울컥 다가오는 사람 하나 잊기엔 너무 아파 사는 날까지 가슴에 묻어야 할 그런 사람 하나 그리움으로 그리워하는 그리움 가슴 적시는 것은 그리움도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 △그리움으로 그리워하는 그리움 가슴 속 깊이 묻혀둔 울음보가 울컥 온통 세상 밖을 적신다. 강물처럼 흐른다. 물결은 햇살 드리운 곳에서 사랑의 색으로 반짝인다. 초록으로 얼굴 내민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면 행여 그대의 모습이 보일까? 가슴 두근거리는 봄날이 왔다. 잊겠다는 약속을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외로워지면 흔들리는 것 모두 그대 모습으로 보이는 걸 어쩌랴. /이소애 시인
안호영 의원 '통합의 길'
난 웹툰 작가이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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