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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을엔 4월 하순에도 봄 서리는 하얗게 내렸는데 빨간 철쭉이 불꽃이 되었네 하늘 불 받은 뜨거운 사랑 봄 서리 맞아도 봄꽃들 강건하게 꽃 피어 산천은 무지개 빛 형형색색 예쁘네 하늘 은혜 내려 만 가지 꽃이 의연히 피네 세상이 꽃이네 -------------------------------------- △세상은 항상 꽃 천지다. 봄이면 봄꽃이 피고. 여름이면 여름꽃 피고 가을이면 가을꽃 온다. 겨울에는 눈꽃 피고, 서리는 다시 피어나는 봄꽃을 이기지 못한다. 하늘 은혜가 내리기 때문이다. 해서 세상의 모든 꽃은 서리를 이기고 마침내는 의연히 피어나고, 꽃을 보는 사람도 꽃이 되어 함께 피어난다. 세상은 이렇게 항상 꽃 천지가 된다. /김제김영 시인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취객처럼 비틀거리는 풀꽃들 흐느적거리는 것들은 슬퍼 보여 더 아프다 산을 올려 보아도 들을 내려 보아도 풀어헤친 머리칼처럼 오매불망 눈 뜬 물고기처럼 잠을 잊고 휴식도 잊고 주저하지 말고 가자 느끼는 대로 가자 바람에 젖어 함께 가자 탁한 대지가 청명해질 때까지 -------------------------------- △흔들리는 나뭇가지나 취객처럼 비틀거리는 풀꽃들이 슬퍼 보인다. 나뭇가지가 제힘으로 흔들리던가? 풀꽃들이 제 흥으로 비틀거리던가? 나뭇가지나 풀꽃처럼 외적 환경에 의해 주체적 삶이 흔들린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우리 인생이, 우리의 밥이, 그리고 우리의 신념이 매번 흔들린다면 세상은 위태롭고 슬플 것이다. 주저하지 말고 바람과 함께 꿋꿋하게 가자 /김제김영 시인
시인은 아무나 되나 싶기도 하고 아무렇게나 토막 내서 행이니 연이니 괴발개발 그리면 모두가 시가 되는 거냐고 시비도 여러 번 났다 나는 시란 반드시 꽃이요 별이어야만 하느냐는 물음표를 짊어지고 괴롭고 괴로운 밤 시작詩作의 시작始作이 깊은 밤을 밝혔다. ---------------------------------------- △남들 다 곤히 자는 깊은 밤, 먹물 같은 어둠은 시작詩作의 시작始作이 되는 시간이다. 깊은 밤이란 시어가 어디 시간적인 개념뿐이겠는가, 마음 안에 깃들어 있던 깊은 밤과 시대 안에 깃들어 있는 깊은 밤, 그리고 나이 안에 자리 잡은 깊은 밤을 독자들은 이미 짐작하고도 남는다. 시인이 깊은 밤의 속살을 경작하여 시란 /반드시 꽃이요 별이어야만 하느냐고 묻는 물음은 기존의 시인들 내지는 문학인을 향한 서늘한 일갈로 읽힌다. 맞는 말이다. 시가 꽃도 아니고 별도 아니고 그냥 깊은 밤에 겨우 얻은 한 줌 진흙이라 한들 그게 어디 그른 말인가? /김제김영 시인
동구 밖까지 나와 손을 흔드는 어머니 처음에는 가라는 것 같더니 자꾸 바라보니 오라는 손짓 같아 마음을 지평선에 걸어놓고 온종일 발끝 살피며 출렁인다. ---------------------------- △좋은 시는 심장을 건드리며 말을 걸어온다. 머리로 읽히는 시가 아니라 뜨거운 가슴으로 스며든다. 그리움을 떠올리게 한다. 보고픔을 달래준다. 동구 밖까지 나와/ 손을 흔드는 어머니 모습이 눈에 오래도록 아른거린다. 지금은 손을 흔들어 주는 가족이 없어 코로나19 시대에 막혀버린 가족관계다. 별천지 세상에서 산다. 그래서 이 시가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지평선이 가물가물할 때까지 어머니 손짓은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온종일. /이소애 시인
연둣빛 손가락으로 매달려 타박타박 발걸음 딛던 네가 혼자서 걷고 혼자서 오르고 무성한 덩굴의 끝에서 걷다가 지칠 때 옆을 보게 되고 오르다 지칠 때 쉬어갈 줄 알아 너른 세상에 또 하나의 나를 찾은 날 5월의 좋은 날 맞잡은 손으로 빛나는 시작 다가서야 보이는 담쟁이꽃처럼 작은 웃음 곳곳에 숨겨두고 걸음걸음이 선물 같은 일상이길 빛이 되는 사랑으로 밀어주고 살아있는 사랑으로 끌어주며 서로에게 든든한 일상이길 --------------------------------------- △이 시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랑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시 한 편에 고스란히 묻어나는 고귀한 사랑의 색이 화려하다 못해 순결하다. 과연 나는 담쟁이 사랑을 체험하고 있는 걸까. 작은 웃음 곳곳에 숨겨두고 마치 신이 인간을 사랑하듯 무조건 배려하는 사랑을 나누고 있을까. 서로를 밀어줄 수 있어 서로에게 든든한 일상을 보낸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를 멈칫 떠올려보는 부끄러운 오후였다. /이소애 시인
남루하게 구겨진 비닐봉투가 검은 창자를 드러낸 채 나뭇가지에 갇혀 왕바람에 울고 있다 버려져 환지통에 신음하는 비닐봉투 등을 돌린 주인들의 누린내 나는 배려로 세상 변두리 어딘가에서 고향이 없으므로 타향도 없는 밥을 위해 방황하는 울음이 있다 ---------------------------------- 분명, 생각만 하여도 온몸이 떨리는 실직이란 단어. 험난한 바위에 올라 시퍼런 파도가 고함을 지르는 공포의 유혹. 그래서 시인은 팔다리를 절단한 환자가 이미 없는 수족에 아픔을 느끼는 현상을 떠올렸다. 나뭇가지에 갇혀/왕바람에 울고 있는 실직자의 통곡이 귀에 쟁쟁하다. 그래, 고향이 없으므로 타향도 없는 게지. 실직자의 처참한 모습이 온종일 날 우울하게 만든다. 시가 가슴 한쪽을 찌른다.실직이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구겨진 비닐봉투로 환유되었을까. /이소애 시인
명료하다 치마폭을 휘감고 질끈 동여맸던 어머니 허리끈 같은 길이 있다 한끝은 한산한 신작로를 물고 있고 한끝은 번잡한 신작로를 물고 있고 풀어놓은 허리끈만 한 그 길을 오가면서 나는 자랐다 동쪽으로 줄레줄레 걸어가면 먼지 폴폴 날리는 길 서쪽으로 달려가면 시꺼멍 아스팔트 찰지게 깔려 있는 길 지금껏 양극을 오가며 산다. 나는, ----------------------------------- 어머니의 허리끈 같은 길은 어떤 길일까. 양극을 오가며 산다라는 화자의 생이 그림처럼 보인다. 꽃길을 생각한다. 그리고 먼지 폴폴 날리는 길을 오가며 생을 이어가는 화자의 곱디고운 땀방울에서 고단한 삶을 생각한다. 길이 곧 삶일 터. 분명 꽃길은 아름다워서 아픈 영혼을 위로해 줄 것 같았는데, 꽃의 무게에 눌리며 사는 또 다른 생명의 비명이 들릴 때가 있다. 허리끈 같은 단단한 언어들이 힘겨운 화자를 오가며 길을 터주고 있다. 마치 상처를 치유하듯 시가 외로움을 만나러 왔다. /이소애 시인
손대중 물리치고 물 마구 퍼부은 무쇠 솥단지 된밥 되지 말고 진밥 되거라 어머니 생솔가지 태울 때 넘치는 밥물 보고서야 그 눈물 알았다. ------------------------- 절로 어머니 생각이 나게 하는 눈물의 시다. 서너 번 읽고 나면 왠지 가슴이 찡하게 아려온다. 어린 시절, 진밥과 죽은 아예 숟가락도 대지 않았던 내가 어머니의 눈물이었을 게다. 손대중 없이 물 마구 퍼부은/무쇠 솥단지는 틀림없이 진밥 아니면 죽이 된다. 아무리 생솔가지를 활활 태워도 넘치는 밥물은 된밥이 되지 않는다. 화자는 밥물이 넘칠 때 어머니의 깊은 한숨 소리를 듣고서야 진밥도 맛있게 먹었을 것이다. 아픈 그리움을 짧은 시에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 /이소애 시인
가지마다 눈부신 빛 칠일 천하의 벚꽃 아쉽고 서러운 눈물 숨기려 소소리바람은 꽃잎에 뒤엉켜 이별의 비 불러들였나 보오. 이 비 그치면 진달래 수줍어할 게고 온 산 불 지른 영산홍에 가시 치켜세운 덩굴장미 새빨간 립스틱의 손짓을 또 어찌 감당할까요. 눈물은 마를 테고 자국일랑 씻어낸다지만 가슴 깊이 자리한 흔적에 뭉클 솟아오르는 하얀 그리움 사근사근 다가올 붉은 유혹들. 이 비 그치면 나, 어찌 견뎌낸답니까. ===============================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하던 봄의 영랑처럼, 이 비 그치면 하얀 그리움과 붉은 유혹을 참아내야 한다. 이별을 아쉬워하는 벚꽃이 이별의 비를 데려오면, 영산홍이며 진달래며 목련이며 덩굴장미까지 한꺼번에 와-와- 피어날 테고, 우리는 견디기 어려운 꽃멀미를 각오해야 한다. 한시절 호되게 앓고 난 자리에 열매를 불러 앉히는 것은 신의 섭리, 그러니 어쩌랴 후일의 열매를 데려오는 꽃멀미를 하냥 견디는 수밖에... /김제김영 시인
소문 없이 스며들어 열꽃 피워대던 갈증 굽이마다 부풀어 오른 물집 속 내 것 되지 못한 물방울들이 몸 밖으로 빠져 나오려 겹겹 비가 내린다 봄 여름 지나 뼈마디 다 녹아 불구 된 자벌레 한 마리, 푸른 문장들 이끌고 기어간다. ======================================================== 대지에 가득한 푸른 문장은 누가 쓸까? 세상에서는 별 쓸모없어 보이는 자벌레가 쓴다. 제 생을 관통해 오느라 불구가 된 자벌레가 온몸으로 이끌고 가야 비로소 써지는 문장이다. 오늘도 겹겹 비가 내린다 진즉에 감당할 수 없는 열꽃으로 피어나 시인의 몸에 물의 집을 짓고 살았던 눈물이 끝내 터져버렸다. 겹겹 내리는 빗속에 자벌레 한 마리가 놓쳤던 문장을 다시 쓰기로 한다. 세상이 더 푸르러질 것이다. /김제 김영 시인
4월, 강가에 나가 루어를 던져보았다 오전에 내린 봄비가 오후 늦게 물색을 흐렸다 역풍에 강물은 비늘을 곤두세웠고 일렁거렸고 조금 깊어졌다 채비를 바꿔가며 배스를 쫓는 동안 강둑 벚꽃은 만개하고 사람들도 3월보다는 다정해지고 의표를 찌르듯 마른 갈대에서 속잎이 돋았다 어디선가 물오리 자맥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게으른 햇살만 루어 꼬리를 물었다 놓곤 했다 루어를 던지고 느리게 거두어들이는 사이에 빈 입질처럼 강물은 입술 끝으로 반짝거렸다 4월에는 깜빡이는 것들에게는 모른 척 속아줄 일이었다 -----------------------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가? 언 강물 스르르 풀리고 개나리 필두로 온갖 꽃이 피어난다. 어디 꽃뿐인가? 영영 회생할 기미가 보이지 않던 갈대가 우리들의 의표를 찌르며 송곳송곳 속잎을 피워낸다. 강둑엔 벚꽃 흐드러졌는데 흐려진 물색을 더듬어 낚시를 던진다. 가짜 미끼를 던져 진짜 고기를 얻으려는 시인에게 잠깐 속아주는 햇살이 다정하다. 깜빡깜빡 자주 잊어서 몇 번이고 생의 강물에 자맥질하는 물오리에게 4월은 짐짓 속아주는 시간이다. /김제김영 시인
여기서 아시아의 별이 뜨고 빛난다 7천만 민족의 궁지宮趾와 인류의 희망이 복합된 서해 시대의 꿈을 이룬 곳 천지개벽을 머금은 새만금 미래를 보라 고군산군도 섬들을 안고 1억2천만 평의 바다를 메워 산업용지, 농지, 호수를 만들겠거니 국제해양관광단지 조성은 물론 21세기의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드는 땅 억만년의 역사를 창조한 새만금의 장중한 출발을 보라 동서가 따로 없이 타오르는 태양은 세계에서 몰려들 인산인해의 물결을 이룰 터이니 우리네 심장을 요동치게 하는 광활한 역사 용틀임하는 억센 파도를 잠재운 새만금의 요람을 보라 세계에서 가장 긴 백리길 방조제는 기억을 낳게 했고 서해를 가로지른 바다를 관통한 삶의 통로 명물로 우뚝 솟아 뽐내는 넓은 광장을 보라 삼천리 수려한 강산에 수繡 놓은 대한민국 분명 세계인을 경악케 했다 노도처럼 몰려들 인류에게 환희를 안겨줄 새만금 역사의 땅을 보라 ------------------------------------------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를 휘도는 바람처럼 시가 당차고 강렬하다. 군산시와 고군산군도, 부안군을 꽁꽁 묶은 방조제가 믿기지 않을 만큼 심장을 요동치게 한다. 시에 몰입하다 보면 용틀임하는 파도에 환희의 꿈이, 넓은 광장에는 사람들이 밀려오는 발자국과 함성이 들린다. 역사를 재창조하는 아시아의 별빛이 반짝일 것이다. 시인은 우주 삼라만상의 환호 소리까지 들리는 새처럼 날고 있을 것이다. 새만금 땅으로 가고 있을 것이다. /이소애 시인
어둡다고 말하지 말자 밝지 않을 뿐이니까 희끄무레하게 끌고 가는 생의 붓질, 아무래도 나는 예능보다 예술을 더 사랑하나 보다 남들 앞에서 장기자랑 한번 하지 못했으니 호탕하게 한번 웃지 못했으니 두터운 유화의 밑바닥에서 끝없이 망설이며 수없이 고치고 지운 흔적이 내 몸 안에서 울고 있다 늘 덧나는 생의 높이, 나는 상처로 세운 나목이다 자꾸 헐벗는 나이에 오늘 또 바람이 불지만 이제 춥다고 말하지 말자 따뜻하지 않을 뿐이니까 생의 밑바닥에 귀 기울이면 더운 뿌리 한 줄기가 끝없이 어둠을 파고들며 수없이 초록을 새기고 있을 테니. ================== 생의 밑바닥에 귀 기울이면 상처투성이 나목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나목이 어찌 상처를 품지 아니하고 생존할 수 있단 말인가. 어쩜 그 상처는 가장 가난해서 버려진 생명에게 순백의 아름다운 한 모금 물 자국일 것이다. 그 자비가 초록으로 고개를 내밀 때 희끄무레하게 끌고 가는 생의 붓질이 아니라 초록빛 오로라 같은 황홀한 세상으로 따뜻하게 끌고 갈 것이다. 시인은 비움에서 시가 쌓인다. /이소애 시인
마루 밑 기어가던 벌레 손이 닿자 도르르 둥글어진다 불처럼 뜨거웠다 싶은 지난 삶도 돌아보면 날 선 모서리뿐인데 어찌 알았을까 가던 길 멈추고 둥글어져야 살 수 있다는 걸 모난 세상 공처럼 굴러보는 것이다 불신투성이인 세상을 껴안아 보는 것이다 그 옛날 어머니가 내게 이르시던 말 두고두고 꺼내 보아도 닳아지지 않는 그 말 ======================= 공벌레의 존재에 대해서 인식하고 화자의 삶을 통찰하고 각성하게 하는 시다. 생존을 위하여 둥글어져야 살 수 있는 삶을 터득하기까지 우린 수십 년 걸렸다. 불신투성이인 사람과 사회를 보듬어야 하며 마음에 침묵으로 담아두어야 하는 습성은 인간관계 생존 방식을 성찰하게 한다. 공벌레는 곤충이 아니라 인유적 비유와 마술적 상상력으로 허기를 채워 준다. 모나게 살고 있는 나에게 보내는 몸짓 메시지였다. /이소애 시인
이발소 의자에 앉아 빗소리 들었다 일흔의 이발사도 같이 듣는지 가위질 소리가 못내 예전만 못하였다 몸 낮춘 빗방울들이 일흔 살의 느린 선율 같아 때때로 사무쳤다 아무렴, 견줄 바 없도록 귀밑머리는 짧아지고 이발소 거울 속에서 한 생이 우기처럼 종일 흘러가고 있었다 턱선을 긋는 면도날이 무디어지매 까닭을 물으니 귀에 빗물 고이는 날이 잦다고 하였다 아, 한 마리 초식동물이어라 조만간 이 우기를 혁명처럼 건너가겠구나 나는 이발의 표정까지도 차곡차곡 숫제, 여러 날 간곡해져 버렸다 ============================ 일흔의 이발사 생이 시 한 편에서 고단함과 땀방울로 절절하게 마음을 사로잡는다. 정감이 가는 「단골」 손님은 서로를 신뢰할 터. 무디어진 면도날과 느린 가위질 소리에도 몸 낮춘 빗방울처럼 숫제 이발사의 몸놀림에 사무치기까지 한다는 단골. 턱선을 긋는 면도날이 무디어지매는 깨소금 같은 시의 맛을 체험한다. 거울 속에서 화자의 얼굴이 보인다. 빗물 고인 귓속에서 화자의 애틋함이 느린 선율에 이입되어 온종일 시가 유혹한다. /이소애 시인
그는 오늘도 아내를 가두고 집을 나선다 문단속 잘해, 아내는 건성 듣는다 갇힌 줄도 모르고 노상 즐겁다 라랄랄라 그릇을 씻고 청소를 하고 걸레를 빨며 정오의 희망곡을 들으며 하루가 지나간다 나이 들수록 해가 짧아지네 아내는 제법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상추를 씻고 된장을 풀고 쌀을 안치는데 고장 난 가로등이나 공원 의자 근처 그는 집으로 가는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맨다 그는 혼자 술을 마신다 그는 오늘도 집 밖의 세상에 갇혀 운다 ========================= 평범한 부부의 가식 없는 실체를 본다. 집으로 가는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매는 남편이 짊어지고 갈 슬픔의 무게가 알만큼인지, 혼자 마신 술잔을 감당해내는 힘은 있는 건지.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강한 힘은 까닭도 없이 밀려오는 내부에 파도치는 격랑이 아닐까. 갑자기 안식처를 잊고 바람처럼 방황하고 싶을 때가 있다. 꼼짝달싹 못 하게 갇혀 있다고 스스로 생각할 때가 있다. 마음이 묶인 감옥에서 울어 본 사람은 안다. 감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감옥에서 산다. /이소애 시인
지난겨울의 추위는 차라리 슬픔이었다 누가 알았을까 저 땅속에 숨어 있었다는 것을 폭설이 한참을 헤집고 있을 때에도 미세한 파동으로 꿈틀거리면서 신호를 보내왔던 것인데 지면의 압력과 대립하면서 두텁던 씨앗의 껍질을 깨고 흙과 함께 숨 쉴 날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여린 색깔로 여린 몸짓으로 여린 생명이 제 스스로 고개를 들고 세상에 나오던 날 땅속 물질과 땅 위 물질이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공기를 호흡하면서 그렇게 봄이 시작되었다. ---------------------------------------------------- 봄도 산통을 한다. 씨앗의 껍질을 깨고 미세한 파동으로 꿈틀거리며 온다. 담장 아래 납작 엎드려 고개를 내민 봄꽃은 밟히지 않으려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마스크를 쓰고 외면했을 뿐 그렇게 힘든 생명이 꿈틀거리는 몸짓에 관심이 없었음을 고백한다. 그냥 지나쳤다. 가장 해맑고 신선한 그리고 찬란한 향기로 위로해줄 봄이 왔다. 누군가에게 함께 호흡하는 공간에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보고 싶다고 전하고 싶은 봄날에. /이소애 시인
그리움을 쪼아 먹다가 덫에 걸린 어미 새 빈들에 머무는 생각 한 조각 젖고 추억은 한 줌 정을 두고 꺼억꺼억 웁니다. ===================== 어찌 정이 한 줌밖에 안 되겠습니까? 잊으려고, 어떻게든 잊어보려고 애를 썼겠지요. 그리움이란 건 아무리 쪼아 먹어도 소화되지 않는 덫이라네요. 정을 나누고 살던 사람이 곁을 떠나자 들판은 텅 비어버렸지요. 홀로 남은 저 새 울다가 그리워하다가 가끔 날개를 조심스레 펴 보기도 하겠지요. 지난 일들을 기억하는 것만큼 잊는 것도 우리 삶에 힘이 되지요. /김제 김영 시인
무조건 넣어두면 오래 가리라 믿었다 언제 두었는지 모를 온갖 욕심들 곰팡이 꽃을 피워내고 마침내 시들어 가는 동안에도 완전하게 얼린다면 가장 온전하게 머물 것이라 믿었다 무엇이 담겼는지 기억조차 못 한 채 갖가지 욕망들 서로 뒤엉켜 잠들어버렸다 힘껏 문을 열고 살아있는 듯한 그 얼굴들 찬찬히 꺼내 보자 켜켜이 쌓여 굳어버린 상념들 ====================== 냉장고가 욕심의 창고구나. 무엇을 들여놓는지도 모르는 채, 얼마나 필요한지도 모르는 채, 일단 이것저것 잔뜩 들여놓았구나. 냉동실을 믿지 말아야 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본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이미 맛이 간 관계들, 최소한의 인연을 지어야 했다. 이미 맺은 인연을 더 잘 가꾸어야 했다. 무작정 맺은 습관적인 관계들로 내 속도 저 냉장고 같았던 것을 반성한다. /김제김영 시인
당신은 내게 쉼표 같은 가시가 되고 나는 당신께 도돌이표 같은 버시가 된다면 당신과 나는 한뉘, 다솜 같은 삶이 되겠죠. ========================= △ 겨집과 남진이 가시버시를 이룬다. 가시버시는 가족을 구성하는 기초단위다. 세상일에 지치고 피곤할 때 쉼표 같은 아내는 예쁘다. 번번이 고비에 휘말려도 언제나 변함없이 제 자리로 돌아와 주는 도돌이표 같은 남편은 믿음직스럽다. 이들이 이루는 가정은 따뜻하다. 한평생 도타이 사랑하며 산다. /김제김영
안호영 의원 '통합의 길'
난 웹툰 작가이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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