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장덕 화청이올시다. 나솔께서 연남군에 계실 때부터 용명을 듣고 있었습니다.”
“당(唐)에서 귀화했나?”
계백이 묻자 청 안의 시선이 모여졌다. 칠봉성의 청 안이다. 오전 사시(10시) 무렵, 화창한 날씨여서 산성위로 흰 구름이 지붕처럼 붙여져 있다.
“아니오, 전 수(隋)가 멸망한 후에 귀순했으니 수에서 귀화한 셈입니다.”
계백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수(隋)는 3대 37년만에 멸망한 것이다. 한때 중원을 장악했던 수는 고구려를 침공했다가 대패를 당한 후에 양제가 친위군의 반란으로 살해되면서 사라졌다.
“수가 멸망한지 25년이야. 그대는 수에서 관직에 있었나?”
“섬서성 동관의 교위로 있다가 동관이 함락되자 곧장 동성군에 투항하였습니다.”
계백이 머리를 끄덕였다. 동성군은 대륙의 동쪽에 위치한 백제령 담로의 하나다. 계백이 성장했던 담로 연남군의 윗쪽이다.
“잘왔어, 그대의 경륜이 도움이 되겠다.”
계백이 반기고는 같은 부장(副將)이며 장덕인 해준과 고덕 효성 등 무장들을 소개했다. 이로써 결사대 장수와 병사 준비는 마쳤다. 성안의 군사는 물론 출동시킬 3백 기마군도 아직 대야성 공략은 커녕 출동 날짜도 모른다. 계백과 10여명의 무장만 알 뿐이다. 그날 저녁, 대야성에 밀파되었던 2명중 하나인 진무(振武) 남용이 계백의 사택에 도착했다. 남용은 온몸이 땀과 먼지로 뒤덮여 있는데다 나흘 밤낮을 걸었기 때문에 지쳐 있었다.
“지쳤으니 잠깐 물을 마시고 죽을 먹어라.”
늘어진 남용에게 말한 계백이 덕조를 보았다.
“가서 장덕 화청, 해준, 고덕 효성까지 불러오너라.”
덕조가 몸을 돌렸을 때 계백이 다시 남용에게 말했다.
“다 함께 들으려고 그런다.”
잠시후에 선봉군 결사대의 무장들이 다 모였다. 그들은 남용이 어디에서 온 것임을 아는 터라 긴장하고 있다. 마룻방에 다섯이 둘러 앉았을 때 계백이 남용에게 지시했다.
“말해라.”
“예, 그동안 대야성의 주둔병력이 1만3천5백으로 늘었습니다. 기마군 5천5백에 보군 8천입니다.”
남용이 가슴에서 접혀진 종이를 꺼내 계백 앞에 펼쳐놓았다.
“대야성 지도입니다. 각 부대의 위치와 병력, 창고와 마굿간, 무장과 관리들의 숙소까지 다 표시를 해 놓았습니다. 지도는 대아찬이 그렸습니다.”
무장들이 숨을 들이켜는 소리를 내었다. 계백이 지도를 집어들고 머리를 끄덕였다. 대아찬은 진궁이다. 다시 남용이 말을 이었다.
“대야성 주변에 포진한 신라군은 대략 1만여명이고 중앙군단으로는 삼천당군(軍) 1만이 동쪽 마진성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대아찬은 유사시에 만 하루면 3만여명의 신라군이 모일 수가 있고 사흘이면 5만, 열흘이면 신주로 올라간 김유신군(軍)까지 내려와 10만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대야성 안 분위기는 어떠냐?”
“전쟁 분위기는 아닙니다. 김유신군이 북상했고 의자대왕께서 북쪽에 계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숨을 고른 남용이 계백을 보았다.
“대야성안 주민이나 가야출신 군사들은 신라 임금께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충성을 할 의무감을 느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도를 접은 계백이 길게 숨을 뱉었다. 이제 시간이 된 것이다. 이쪽 준비는 다 되었다.
“수고했다. 넌 오늘 푹 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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