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관저로 들어선 계백을 고화가 먼저 맞았다. 얼굴이 상기되었고 웃음 띤 눈이 가늘어졌다.
“오느라고 고생했어.”
계백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고화를 보았다. 청으로 올라간 계백의 옆으로 고화가 다가서며 물었다.
“들으셨지요?”
“들었어.”
청에 앉은 계백에게 가장 먼저 우덕이 와서 인사를 했다. 반가운지 활짝 웃는다.
“주인자리, 관직에 오르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오. 넌 몰라보게 고와졌구나.”
계백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더니 고화는 외면했고 우덕은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졌다. 덕조와 우덕은 이제 한방을 쓰는 것이다. 청 아래에 서있던 덕조가 헛기침을 하면서 시치미를 떼었고 우덕은 도망치듯이 청에서 내려갔다. 이어서 남녀 종들이 차례로 올라와 계백에게 인사를 했다. 계백과 고화가 나란히 앉아서 인사를 받는다. 이윽고 10여 명의 종들 인사가 끝났을 때 청에는 두 부부가 남았다. 그때까지 청 아래에 서있던 덕조가 계백에게 물었다.
“주인, 부를까요?”
“내가 안으로 들어갈 테니 객실로 오라고 해라.”
태왕비의 시녀 서진을 만나려는 것이다. 계백이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고화가 말했다.
“저는 내실에 가 있겠습니다.”
자리를 피해 주겠다는 말이다. 머리를 끄덕인 계백이 안쪽 객실로 들어섰다. 손님을 맞는 방이다. 계백이 자리 잡고 앉았을 때 곧 상민 차림의 여자가 들어섰다. 분홍색으로 물들인 저고리와 남색 바지를 입었는데 얼굴을 본 순간 계백은 숨을 들이켰다. 미인이다. 흰 얼굴, 검은 눈동자, 곧은 콧날과 단정한 입술, 조금 상기된 얼굴로 들어선 여자가 계백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바닥을 짚은 두 손이 눈부시게 희다. 절을 한 여자가 머리를 들더니 입을 열었다.
“태왕비마마의 시녀 서진입니다.”
낮지만 맑고 울림이 있는 목소리다. 계백이 시선만 주었고 여자의 말이 이어졌다.
“마마께서 저에게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계백은 보료에 한쪽 팔을 기대고 앉아서 시선만 준다. 머리도 끄덕이지 않는다. 서진이 당황한 듯 두어 번 눈을 깜박였는데 속눈썹이 길어서 창이 닫혔다가 열리는 것 같다. 서진이 말을 잇는다.
“마마께서는 신라 여왕마마의 친동생이십니다. 다 아는 사실이나 마마께선 먼저 그것부터 말씀드리라고 하셨습니다.”
“……”
“그동안 마마께선 언니인 신라 여왕께 자주 연락을 하셨습니다. 이번에 죽은 덕솔 연기신이 갈 때도 있었고 때로는 제가 남장을 하고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서진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점점 열기가 띄워졌다. 반짝이는 두 눈이 계백을 응시한 채 떼어지지 않는다.
“선왕(先王)께서는 알고 계셨습니다. 때로는 선왕께서 마마를 통해 신라 여왕께 말씀을 전한 적도 있었습니다.”
“……”
“신라여왕께서 돌아가시면 후사가 없는 터라 태왕비마마께서 왕위를 이으실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몇년 전까지만 해도 신라여왕과 태왕비마마께선 그런 약조를 하셨습니다.”
계백이 숨을 들이켰다가 길게 뱉었다.
그리고는 처음으로 말을 뱉는다.
“이년, 그것이 가능할 것 같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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