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계백이 말이 끝났을 때 성충이 반쯤 입을 벌리고는 옆에 앉은 흥수를 보았다.
오후 유시(6시) 무렵, 이곳은 도성 중부에 위치한 영빈관 안이다. 오늘도 한산성에서 말을 달려온 계백이 성충과 흥수를 만나고 있다. 계백이 급한 보고를 할 것이 있다고 했더니 성충이 흥수를 데리고 온 것이다. 그때 흥수가 탄식했다.
“허어, 괴이하구나.”
성충과 흥수는 외부 12부, 내부 12부로 나뉘어 있는 백제 24개부(部)의 각각 수장(首長)이다. 성충은 외부(外部)의 수석인 병관부의 좌평이며 5좌평의 수장인 상좌평이니 관리 중 최고위직이다. 흥수는 내부(內部) 12부의 수석인 전내부(前內部)의 장으로 왕명 출납과 인사를 맡는다. 계백은 둘을 함께 만나는 중이다. 계백이 품에서 서전한테서 받은 편지를 꺼내 성충에게 내밀었다.
“이것이 6년 전, 신라여왕이 태왕비께 보낸 친필 서한이랍니다. 보시지요.”
그러자 성충이 편지를 받더니 빨려드는 것처럼 읽는다. 그리고는 숨도 쉬지 않는 것 같은 얼굴로 편지를 흥수에게 넘겨주었다. 흥수까지 편지를 읽는 동안 방안에서는 숨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윽고 흥수가 머리를 들었을 때 계백이 먼저 말했다.
“그 편지를 선왕(先王)께서는 읽으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왕께는 말씀드리지 못했다는군요.”
“요사하군.”
성충이 겨우 그렇게 말을 뱉었을 때 흥수가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그렇다면 태왕비께선 신라로 돌아가시겠다는 말씀이신가?”
“그렇습니다. 좌평나리.”
“신라에 가면 여왕의 후계자가 된다는 보장이 있을까?”
“지난번에 연기신이 신라에 갔을 때 여왕한테서 약속을 받았다고 합니다.”
“죽은 놈은 말을 할 수가 없지.”
그때 성충이 어깨를 펴고 말했다.
“궁중에 요괴가 활보하고 있었구나. 큰일이다.”
“덕솔, 지금 그년을 잡아놓고 있나?”
다시 흥수가 묻자 계백이 대답했다.
“예, 좌평나리.”
“베어 죽입시다.”
불쑥 성충이 말하더니 둘을 번갈아 보았다.
“그럼 태왕비는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어서 궁 안에서 죽든 살든 할 것 아니오? 우선 날개부터 잘라냅시다.”
흥수는 숨만 쉬었고 성충의 말이 이어졌다.
“얼마 전부터 궁안에 여우가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돌았소. 또 언젠가는 대백제는 안에서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소. 이것이 다 이 여우들 때문이오.”
“이보시오. 상좌평.”
흥수가 목소리를 낮췄다.
“이제 사건의 근원을 알게 되었으니 현명하게 대처 하십시다. 그런데 이 내막을 대왕께 말씀드리는 것이 낫지 않겠소?”
그때 성충이 숨을 들이켜고 나서 말했다.
“태왕비께서 신라여왕의 후계자가 되어서 신라왕이 된다고 합시다. 그리고서 신라가 백제에 합병이 될 것 같소?”
계백이 시선을 내렸다. 성충이 과격하지만 지용을 겸비한 무장(武將)이다. 앞을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흥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신라에 김춘추, 김유신, 비담 같은 무리가 왕위를 노리고 있는 상황에 태왕비께서 어떻게 견디실지 불안하오.”
그러자 성충이 말을 맺었다.
“대왕께 은밀하게 말씀 올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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