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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124) 6장 해상강국(海上强國) 20

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이것을 받으시오.”

 

김춘추가 비단으로 감싼 서찰을 내밀면서 말했다.

 

“여왕께서 보내신 서찰이오.”

 

“나한테?”

 

계백이 눈을 크게 뜨면서 웃었다.

 

“신라 여왕이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고 백제군의 침입을 알았다고 하더니 과연 그 신하에 그 여왕이구려.”

 

그러면서도 계백이 서찰을 받았다. 배 안의 모든 시선이 계백과 계백이 쥔 서찰로 모였다. 심지어 부사(副使) 김문생도 이쪽을 주시하고 있다. 그때 계백 옆으로 나솔 윤진이 다가왔다. 윤진은 손에 장검을 쥐고 있었는데 두 눈이 번들거렸다.

 

“덕솔, 궁금하오. 그 편지를 보시지요.”

 

그때 계백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내가 신라여왕이 바라는 대로 할 필요가 있겠는가? 나중에 읽겠다.”

 

머리를 돌린 계백이 김춘추를 보았다.

 

“이제는 내가 수군항에서 김공을 대접하겠소. 백제로 돌아갑시다.”

 

김춘추는 대답하지 않았고 계백이 윤진에게 지시했다.

 

“수군항으로 돌아가세.”

 

여왕의 편지를 급하게 읽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곧 북이 울렸고 활기찬 수군들의 부르고 답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세 척의 대선이 나란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포한 신라 대선에는 계백이 올라 대장선(大將船)이 되었다. 생포한 신라 관인과 병사, 수군은 65인이 되었는데 다른 4척의 신라선은 침몰했고 그 배에 탔던 신라인은 모두 죽었다. 계백은 김춘추와 아들 김법민을 제외한 나머지 신라인을 모두 묶어서 선창에 가두었고 발에 족쇄까지 채워 놓았다. 선창 감옥은 배 밑바닥인 데다 올라오는 출구는 1개뿐이다. 갑판 위 2층 누각에는 계백과 나솔 윤진, 장덕 백용문까지 셋이 둘러앉아 있었는데 김춘추 부자는 선미 쪽 창고에 가둬 놓았다.

 

“덕솔, 김춘추가 여왕의 편지를 내민 순간에 온몸에서 소름이 돋아났소. 여왕 자매는 귀신이 붙은 모양이오.”

 

윤진이 말하자 계백이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담로에 있을 때 당(唐)의 장수 하나가 귀신을 부린다는 소문이 났어. 그놈이 나타나기 전에는 꼭 불이 났네.”

 

둘의 시선을 받은 계백이 빙그레 웃었다.

 

“다음날 그놈이 나타나면 군사들이 겁을 먹었지. 그래서 그놈 소문이 화귀(火鬼)였네.”

 

“그놈이 미리 불을 질렀군요.”

 

백용문의 말에 계백이 머리를 끄덕였다.

 

“미리 군사를 시켜 나타날 곳에 불을 지른 것이지. 난세에는 민심이 불안해서 쉽게 흔들리는 법이야.”

 

“그래서 그 화귀는 어떻게 되었소?”

 

윤진이 묻자 계백이 쓴웃음을 지었다.

 

“불을 지른 곳에 매복하고 있다가 활로 쏘아 잡았네. 그래서 화귀(火鬼)가 제가 죽을 곳을 미리 알려준 셈이 되었지.”

 

“여왕의 편지는 언제 읽으실 것입니까?”

 

“이 편지가 바로 화귀의 불일세.”

 

가슴에 든 비단 보자기를 꺼낸 계백이 앞에 놓인 탁자에 놓았다. 그리고는 윤진과 백용문을 번갈아 보았다. 웃음 띤 얼굴이다.

 

“병사 둘을 이 비단 보자기 경비로 세우고 하루 3교대를 시키게. 수군항에 도착하면 병사들이 이 비단 보자기를 함에 넣고 청으로 옮기라고 하게.”

 

“알았습니다.”

 

윤진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여왕이 화귀였소. 김춘추는 불을 지르려고 온 화귀의 부하였고.”

 

그때 계백이 정색하고 말했다.

 

“저 편지는 대왕이 계신 자리에서 읽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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