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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157) 8장 안시성(安市城) ⑬

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계백이 사처로 돌아왔을 때는 술시(오후 8시) 무렵이다. 마룻방으로 들어선 계백을 서진이 맞았는데 웃음 띤 얼굴이다.

 

“나리, 성안에 소문이 다 났습니다.”

 

계백의 뒤에 선 서진이 갑옷을 벗기면서 말했다.

 

“당군이 곧 철군을 한다고 합니다.”

 

“허, 우리보다 성안 주민들이 더 빨리 아는구나.”

 

계백의 얼굴에도 웃음이 떠올랐다. 이제 서진과는 밤에 잠자리를 같이 하는 터라 서로 부담 없는 사이가 되었다. 남녀의 정분은 자연스럽게 몸이 부딪치면서 쌓이는 것이다. 말이 없어도 서먹하지가 않다. 옷을 갈아입은 계백이 저녁상 앞에 앉았을 때 서진이 술잔에 술을 따르며 물었다.

 

“나리, 당군이 철군하면 귀국하시겠지요?”

 

“물론이지.”

 

술잔을 든 계백이 서진을 보았다.

 

“당연한 일을 왜 묻느냐?”

 

“아닙니다.”

 

서진이 몸을 비틀며 웃었다. 옷자락이 스치면서 향내가 맡아졌다. 색향(色香)이다. 한 모금에 술을 삼킨 계백이 지그시 서진을 보았다. 그렇다. 육정(肉情)이 들었다. 남녀가 잠자리를 같이 하면 서로의 몸에 정을 느끼는 법이다. 이것은 떼기가 힘들 뿐만 아니라 오래 지속된다.

 

“왜? 백제로 돌아가기 싫으냐?”

 

“아닙니다.”

 

계백의 빈 잔에 술을 채운 서진이 눈을 흘기는 시늉을 했다.

 

“돌아가셔야지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어. 당군은 필사적이야.”

 

한 모금 술을 삼킨 계백이 말을 이었다.

 

“당군은 총공격을 해올 거다. 그것도 여러 번. 그 공격을 견디어내야 돼.”

 

서진이 머리만 끄덕였기 때문에 계백이 손을 뻗어 허리를 감아 안았다.

 

“아직 돌아갈 날을 세기는 이르다.”

 

“나리, 저는 지금이 좋아요.”

 

계백의 가슴에 머리를 묻은 서진이 낮게 말했다.

 

“전쟁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허어.”

 

쓴웃음을 지은 계백이 서진의 몸을 당겨 안았다.

 

“너는 요물이다.”

 

“나리 앞에서는 아이가 됩니다.”

 

“백제에 돌아가기 싫다는 말이구나.”

 

“백제로 돌아가면 궁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순간 계백이 서진을 보았지만 시선을 내려서 속눈썹만 보였다. 숨을 들이켠 계백이 술상을 물렸다. 서진의 마음을 읽은 것이다. 술상을 치우고 계백이 침상에 올랐을 때 방의 불을 끈 서진이 옆에 누웠다.

 

“나리, 언니하고 나리를 나눠 모실 수는 없습니다.”

 

계백의 품에 안긴 서진이 낮게 말했다.

 

“언니는 함께 모시자고 했지만 저는 그렇게 못 합니다.”

 

“……”

 

“다시 태왕비 마마를 모시겠습니다.”

 

계백이 잠자코 서진의 옷을 벗겼다. 서진도 계백의 바지 끈을 푼다. 방안에 갑자기 더운 열기가 덮어졌다. 오늘 밤 계백은 거칠었고 서진도 적극적이다. 밖에서 가끔 기마군의 말굽소리, 군사들의 묻고 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전장 한복판인 것이다. 그러나 방안은 두 남녀의 몸부림이 이어지고 있다. 이윽고 열풍이 그쳤을 때 서진이 가쁜 숨을 뱉으며 말했다.

 

“나리, 오늘도 군사들이 죽겠지요?”

 

계백은 서진의 알몸을 잠자코 끌어당겨 안았다. 그렇다. 수백 명이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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