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누가 보냈느냐?”
계백이 묻자 여자가 숨을 들이켜고나서 대답했다.
“네, 사다케님이...”
이번에는 계백이 숨을 들이켰다. 사다케에게 다른 무장한테 보내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그때 여자가 시선을 들고 계백을 보았다. 눈동자가 또렸했고 맑은 눈이다.
“제가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내가 네 오빠를 죽인 사람이다.”
“네. 압니다.”
“왜 나한테 보내달라고 했느냐?”
“소실이 될 바에는 무신(武神)의 소실이 되고 싶었습니다.”
“내가 거부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그때 여자가 잠깐 망설이더니 대답했다.
“네. 살겠습니다.”
“누구하고?”
“사다케님이 골라주신 무장하고...”
“그럼 돌아가라.”
고개를 끄덕인 계백이 덧붙였다.
“너는 잘 살 것이다.”
여자가 절을 하고 몸을 돌렸을 때 계백이 어금니를 물었다. 숨을 들이켜면서 외면했던 계백이 문 닫히는 소리를 듣는다.
다음날 아침, 청에서 조회를 마친 계백이 슈토, 하도리 등 무장들과 함께 영지 시찰을 나갔다. 위사대와 기마군 500여기를 대동한 영주의 행차다. 후쿠토미가 장악했던 영지는 제대로 관리가 되어있지 않다. 그래서 농지 대부분이 버려져 있는데다 농사를 지어도 후쿠토미의 무리가 약탈하듯이 소출을 빼앗아 가는 터라 수확을 하자마자 야반도주하는 농가가 많았다. 무법천지다. 후쿠토미 일당 뿐만이아니라 야적떼가 많아서 아예 괭이를 들 힘만 있으면 야적 무리에 가담하는 농군이 많았다.
한나절을 말을 달렸지만 농가 서너 채밖에 발견하지 못한 계백이 신시(4시)무렵이 되었을때 한숨을 쉬고 탄식했다.
“당분간 이곳에 거성을 만들고 주민을 끌어모아야겠다. 땅은 비옥한데 농민이 보이지 않다니 이럴수가 있단 말이냐?”
계백이 슈토에게 지시했다.
“군사들에게 방을 붙이도록 해라. 앞으로 이곳 새 영지에서는 3년동안 농작물 세를 걷지 않고 부역도 하지 않을 것이다.”
“네. 주군.”
슈토의 두 눈이 번들거렸다.
“이웃 영지에서도 주민이 쏟아져 올 것입니다.”
“법을 엄격히 시행해서 관리의 포탈이 절대로 없도록 할 것이며 야적은 보는대로 잡아 죽일테니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고 해라.”
“예. 주군.”
이곳 영지는 말이 25만석이지 실제 경지 면적으로 보면 40만석이 넘는 땅이다. 주민이 다 도망가서 소출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백이 한나절동안 1백여리를 달렸어도 영지의 절반밖에 보지 못했다.
그날 저녁, 내실의 청으로 다시 사다케가 찾아왔다.
“주군, 미사코님을 이곳 거성의 내실 집사로 임명했습니다. 허락해 주시지요.”
“네가 알아서 해라. 그런데 미사코가 누구냐?”
계백이 묻자 사다케가 정색했다.
“예. 후쿠토미의 동생입니다.
“아니, 다른 장수의 소실로 보낸다고 하지 않았느냐? 본인도 그런다고 했고.”
“예. 그것보다 내실 감독이 맞을 것 같아서요.”
이맛살을 찌푸린 계백이 사다케를 보았다.
“너는 나한테 충심(忠心)으로 대하는 줄은 안다. 그런데 잘못하다가는 네 목이 먼저 떼어지고 나서 진심이 알려질 수도 있겠다.”
“예. 주군의 곧은 성품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는 제 머리통쯤이야 별것 아니올시다.”
“닥쳐라!”
“예. 주군.”
“속셈이 무엇이냐?”
“미사코님이 이곳 영지에서 주군을 훌륭하게 모실것입니다.”
사다케가 똑바로 계백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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