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토요야마 성을 나온 우에스기의 행차는 대단했다. 먼저 사냥감을 모으는 역할로 기마군 3백이 앞장을 섰고 그 뒤를 위사대 1백이 기마로 따랐는데 깃발로 뒤덮인 행차다. 뒤로 말을 탄 우에스기가 아끼는 소실 후지코와 함께 나란히 걷는다. 주위에 가신과 시녀, 시종이 1백명 가깝게 둘러쌌고 뒤는 위사대 1백이 치중대와 함께 움직인다. 멀찍이 물러서서 우에스기의 행차를 구경하는 주민들의 표정은 무덤덤하다. 사냥 행차를 여러 번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저 여자가 요즘 얻은 소실이지?”
길가에 서있던 상인 복색의 사내가 옆에 선 사내에게 물었다. 후지코의 뒷모습을 눈으로 가리키고 있다.
“응. 다키성의 보군대장 마누라였다는군.”
옆쪽 사내가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자식이 둘이나 있는 년인데 우에스기가 부르자 냉큼 달려왔다는 거야.”
“싫다는 년이 없겠지.”
“싫다면 남편에다 자식까지 몰사시킬 테니까.”
“저 색골은 누가 잡아가지 않나?”
목소리를 죽였지만 둘러선 구경꾼들 몇은 다 들었다. 듣고도 피식거리며 웃는 것이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것 같다. 주민 대부분이 우에스기의 행태에 대해서 반감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
“저 놈이 없어져도 눈 한번 깜박이지 않겠구나. 잘 되었다.”
다케다가 발을 떼면서 말했다. 다케다는 등에 나무 짐을 짊어졌는데 영락없는 나무꾼이다. 옆을 따르는 오진, 뒤쪽에서 등에 어물 짐을 지고 있는 한고, 미타 등 10여 명도 모두 다케다의 부하다.
“다 들어왔습니다.”
오진이 말하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우에스기의 거성(居城)인 토요야마성 안이다. 우에스기는 사냥을 하러 성을 나가고 다케다 일행은 성에 들어온 셈이다. 한낮, 미시(오후 2시)무렵이어서 성 안은 활기에 차 있다.
“거성(巨城)입니다.”
성 안을 둘러본 오진이 감탄했다.
“이곳을 동방(東方)의 거점으로 삼아도 되겠습니다.”
오진은 다케다의 부장(副將)으로 전(前)에는 다케다와 함께 후쿠토미의 가신(家臣)이었다. 50석을 받던 다케다는 이제 1천석 무장이 되었고 20석짜리 말단 무사였던 오진은 500석을 받는 무장이 되었다. 계백이 능력을 기준으로 녹봉을 주었기 때문이다. 둘 다 검술에 뛰어났고 학문까지 갖춰서 계백의 눈에 띈 것이다.
“오진, 그대가 서문 쪽을 맡게.”
다케다가 말하자 오진이 머리를 숙여 보이고는 몸을 돌렸다. 다케다와 오진은 3백명을 이끌고 토요야마성에 잠입한 것이다. 모두 농부, 장사꾼, 어부로 위장하고 병장기를 숨겨서 한낮에 잠입했는데도 성문지기의 눈길 한 번 받지 않았다. 오늘이 우에스기의 사신 야쿠가 계백을 만나고 돌아간 지 나흘째가 되는 날이다.
“야쿠, 네가 이번에는 미사코성에 한 번 다녀오너라.”
마상에서 우에스기가 옆을 따르는 야쿠에게 말했다.
“지금쯤 계백이 미사코성에 있겠지?”
“아마 그럴 것입니다.”
“미사코가 미인이라고 했는데 아깝다.”
야쿠가 입을 다물었지만 우에스기는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잠행을 해야겠지.”
“예, 주군.”
“계백이 당분간 그곳에 있겠지?”
“예,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가신들이 아야기했습니다.”
“이곳까지는 못 와. 섭정이 책임을 진다고 했어.”
우에스기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후지코는 뒤로 떨어져 있다.
“노부사다가 이끈 5천 기마군이 국경 쪽에 도착했을 거다. 만일 계백이 미사코성에서 다시 이쪽으로 온다면 그때는 영영 돌아가지 못해.”
야쿠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머리만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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