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김유신이 황산벌 남쪽 끝에 멈춰 섰을때는 오후 유시(6시) 무렵이다. 북쪽 끝의 산성에 진을 친 백제군과는 20리 거리가 되어서 기마군들이 내달린다면 한식경만에 칼을 부딪칠 거리다.
“내일 아침에 바로 돌파한다.”
김유신이 진막에 모인 장수들에게 말했다. 장수들이 긴장했고 김유신이 말을 이었다.
“기마군이 앞장을 서서 전진한다. 백제군이 대항에 올것이나 밀고 나간다.”
전법(戰法)이 없다. 밀고 나가다가 백제군이 부딪치면 물리치고 가란 말이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발이 흩날리면 눈발을 맞고 가라는 말이나 같다. 이것이 백전노장 김유신의 용병술이다. 그동안 수백번 전투를 치른 김유신이다. 사사건건 세밀하게 적전지시를 하면 오히려 그 지시가 걸림이 되어서 장수들이 제대로 용병(用兵)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다만.”
김유신이 장수들을 둘러보았다.
“선봉군은 김흠춘이 맡고 선봉군과 본군의 사이에 유격군을 두되 수장(首將)은 김품일이다. 각자 방심하지 말라.”
김품일과 김흠춘은 진골 왕족으로 각각 화랑인 아들 관창과 반굴을 데리고 출전했다. 간단하고 명료한 작전지시가 끝나고 장수들이 물러갔을 때 대장군이며 중군(中軍)의 수장인 김행보가 말했다.
“총사령, 계백이 3개 산성에 군사를 배치해놓고 있습니다. 그냥 전군(全軍)을밀고 나가는 것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계백의 기마전술에 유린당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유신과 둘만 있는 자리여서 직언을 한 것이다. 김행보의 말을 들은 김유신이 빙그레 웃었다.
“너, 계백이 처자식을 죽이고 왔다는 말을 들었느냐?”
“예, 신라군에서도 소문이 다 퍼졌습니다.”
“바로 그것 때문이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러자 김유신이 흰 수염을 쓸어내리면서 말했다.
“계백은 결사의 대형으로 부딪쳐 올 것이다.”
“그러니 더욱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군사들도 수장(首將)이 처자식을 베어 죽이고 앞장서 나설테니 모두 죽을 각오로 따르겠지.”
“그렇습니다.”
“단 한차례의 돌격으로 부숴진다.”
김행보의 시선을 받은 김유신이 다시 웃었다.
“파도가 한번 철썩, 바위에 부딪치는 것으로 백제군의 돌격은 끝날 것이다.”
숨만 들이켠 김행보를 향해 김유신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 그 파도는 뭉쳐서 맞는 편이 낫다. 그러고 나면 백제군은 흩어질 것이다.”
“과연.”
“죽음을 무릅쓴 돌격은 한번이면 끝난다. 두 번째에는 일어날 기력도 없이 주저앉아서 죽여주기를 기다릴 것이다.”
“그렇습니다.”
역시 수많은 전투 경험이 있는 김행보가 커다랗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법도 없이 뭉쳐서 나가는 이유를 이해한 것이다. 김유신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을 이었다.
“우리가 진군해 나가면 3개 산성의 백제군이 일제히 달려올 것이다.”
“그리고 한꺼번에 부딪치겠지요.”
김행보가 말을 받는다.
“아마 선봉군은 절반쯤 돌파하고 나서 주저앉게 될 것입니다.”
“그때 유격군이 섬멸하는 것이지.”
이것이 김유신의 머릿속에 든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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