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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고속도로 건설구간내의 발굴조사를 통하여 마한 분묘유적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마한 사람들의 집자리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고고학 연구에서 죽음의 공간인 분묘와 삶의 공간인 집자리는 매우 중요한 대상이 되고 있다. 그것은 분묘를 통해서 축조 집단의 계통을 살필 수 있고, 집자리를 통해서는 당시의 자연환경이나 기후, 그리고 생업경제와 밀접한 관계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시골의 자연부락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 마한 사람들도 삶의 터전인 취락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집단적으로 분묘를 축조하고 있어 삶과 죽음의 끈끈한 연결 고리 속에서 살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것은 아마 한 곳에 오랫동안 정착하면서 농업을 주 생업으로 삼았던 마한 사람들의 혈연 중심적인 사회적 현상이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먼저 마한 사람들이 선호했던 집자리의 위치는 낮은 구릉의 남동쪽의 사면을 선택하여 취락을 형성하고 있었고, 유구의 중첩이 이루어진 곳도 많아 오랜 기간 동안 정착생활을 영위했던 것으로 보인다. 집자리는 대부분 나지막하게 기반토를 판 소위 움집형태인데, 청동기시대 집자리에 비해 현저히 낮게 파서 축조하고 있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구릉의 사면을 파서 집자리를 축조하고 있기 때문에 발굴조사에서는 높은 쪽의 벽면은 잘 남아 있는 반면에 낮은 쪽의 벽면은 유실된 경우가 많았다. 마한 집자리의 평면형태는 방형이 대부분이며 한쪽 벽에 입구처럼 돌출된 예도 있다. 그 규모는 소형에서 대형까지 다양하지만, 평균적으로 각 변이 57m 정도로서 45인이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다. 한편 한 변이 11m이상 되는 대형도 발견되는데 이는 공동의 집회장소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내부시설 가운데 눈에 띠는 것은 네 벽의 하부를 따라서 도랑을 두르고 밖으로 출구를 두고 있는데, 이는 집 내부의 습기를 배출하기 위한 시설이다. 또한 지붕을 결구하기 위해서 내부에는 기둥을 세웠던 구덩이가 노출되기도 하는데, 방형을 이루고 설치된 네 개의 기둥을 세웠던 방식은 마한 특유의 구조로서 알려져 있다. 취사시설과 관련된 부엌자리는 한쪽 벽에 붙여 시설되어 있고, 솥을 받칠 수 있도록 장란형토기를 뒤엎어서 두 개를 세운 받침이 발견되고 있다. 때로는 부엌 아궁이 턱받침 토제품이 발견되기도 한다. 마한 집자리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주로 생활용 토기로서 귀때토기나 장란형토기, 시루, 단경호, 이중구연토기 등 다양한 기종이 발견되고 있다.
배동신 작품 '누드' (1983) 예술이란 무엇인가? 하루 종일 이 질문에 기다려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질문이 잘못된 것일까? 그건 아닌데, 지금은 답이 없는 시대인 모양이다. 이런 답답한 시대를 살다보니 모든 게 헷갈린다. 얼마 전 광주 출신 수채화가 배동신에 대한 글을 썼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가 열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수채화가였지만 위대한 화가였다. 그가 그린 무등산이나 여체 그리고 과일 그림들은 조형의 본질을 열정적으로 추구한 예술 작품들이었다. 생전에 그의 작품들에 대한 평가가 높게 언급되었지만, 그는 잘 팔리는 인기 작가는 아니었다. 오로지 그림 밖에 모르고, 그림을 통해서 자신이 제일 관심이 있는 조형의 비밀을 표현했지만, 생전에 그의 진면목을 알아보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조형의 비밀 속에는 곧 존재의 비밀, 너와 내가 세상을 사는 이유 같은 게 옹골지게 들어있지만,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예술이란 그런 것이다. 시대를 앞서 갈수록 그것을 알아보는 지인을 만나기 어렵다. 적당히 포장해서 예술적으로 사람들을 속이는 경우는 많지만 진정한 예술성을 들이대고 그것으로 승부를 거는 작가는 매우 드물다. 관객의 눈 역시 진짜를 알아보는 경우는 드물다. 예술품을 투자 대상으로 보는 심리 역시 진정한 예술계와는 먼 풍경이다. 예술 역시 예술을 아는 사람들 경계를 넘어 일반화하기 어려운 동네이다.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코로나로, 삶의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로 고민스러운 사람들에게 예술은 무엇으로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을까? 사실 삶의 고뇌에 빠진 사람들에게 예술은 그 무엇도 말을 건네기 어렵다. 그러나 삶도 하나의 그림자일진대, 예술 이외에 그 무엇이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다는 말인가? 지극한 고통 앞에서도 예술을 즐길 수 있다면 그 인생은 성공한 삶이다. 그리고 그 만한 역량을 가진 위인은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튼튼한 바탕을 형성한 것이 틀림없다. 인간은 한없이 약한 존재이다. 그러나 그 연약한 틈 사이로 마음으로 느끼는 진정한 가치에 눈을 뜬 자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강한, 가치를 아는 개체가 된다. 진정한 시민은 민주적 평등성 너머로 삶의 개체적 진실에 눈을 뜬 사람이다. 그것을 덮고 단순이 평등성만을 주장하다면 저열한 바닥으로 추락한다. 그것은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기도 하다. <끝>
올해 공연영상계는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예술인들이 무대에 서지 못하는 등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그간 꺼려왔던 온라인 송출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다양한 시도들이 진행됐다. 소리의 고장 전북의 뭉개진 자존심을 이번 3명의 국가무형문화재로 선정되면서 우뚝세웠고, 전북 연극인들은 전국대회에서 각종 상을 휩쓸며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 사상초유의 무관객, 비대면 공연 전주 국제영화제 개막날 매년 4월초 열리는 전북 연극인들의 축제인 제36회 전북연극제가 비대면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코로나19로 인해 한 달 연기 돼 지난 5월 7일부터 9일까지 전주 우진문화공간에서 펼쳐진 연극제는 관객없는 연극제를 진행하고 온라인 송출을 시도했다. 같은 달 28일 진행된 전주국제영화제도 그 타격은 컸다. 축제기간에 넘쳐나던 영화의 거리에는 사람을 보기 힘들었고 전주국제영화제의 심장인 옥토주차장에는 상징인 전주 돔도 세워지지 못했다. 영화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레드카펫 행사도 축소됐다. 개막식에도 한국 경쟁과 한국 단편 경쟁, 국제 경쟁 등 3개 경쟁 부문 감독과 심사위원 등 최소 인원만 참여했다. 무관객 영화제를 지향, 세계 38개국 영화 180편(장편 115편단편 65편)이 국내 실시간동영상서비스(OTT)인 웨이브(WAVVE)를 통한 전례없는 온라인 상영형태로 진행됐다. 전주세계소리축제는 파격적인 시도를 택했다. 개막공연인 잇다(Link)는 직접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볼 수 없었지만 전 세계 아티스트들과 실시간 온라인 합주를 진행했다. 러시아, 대만, 독일, 캐나다, 이란, 스페인 등 해외 9개 지역에서 14개국의 아티스트들은 시간도, 장소도 각기 다른 곳에서 온라인을 통한 하나된 연주를 선보였다. 하지만 각기 다른 기술적 문제에 대한 아쉬움도 컸다. 소리축제는 많은 아티스트들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행사 이후에 전주역 광장에 마련된 특설 무대에서 19X19 챌린지를 진행하기도 했다. △ 소리고장 전북의 자존심을 되찾다. 이난초, 김수연, 김일구 명창 국가무형문화재 선정 올해 전북은 판소리 다섯마당 중 수궁가, 적벽가, 흥보가 등 3마당에서 국가무형문화재를 배출했다. 그 시작은 지난 4월 남원을 중심으로 활동한 이난초(59여)명창이다. 남원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이난초 명창이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흥보가) 보유자로 인정됐다. 이어 지난달 전북에 기반을 둔 김수연(72) 명창과 김일구(80) 명창이 각각 수궁가와 적벽가 보유자로 인정됐다. 이난초 명창은 1980년대 남원 국악의 상징인 고(故) 강도근(본명 강맹근) 명창에게 소리를 배우고 이어받아 적통의 자리에 우뚝 서게 됐다. 군산출신인 김수연 명창은 8세 무렵 군산국악원 소리 선생이었던 고 김재경 명창에게 소리를 배우면서 판소리에 입문했다. 이후 우아하고 기품 있는 소리로 잘 알려진 김세종제 춘향가와 심청가를 성우향 전 보유자로부터 전수받았다. 이후 고 박초월 명창에게 흥보가와 수궁가를 배웠다. 김일구 명창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적벽가의 이면을 잘 표현하며 소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다. 무엇보다 판소리외에도 아쟁, 가야금 등까지 섭렵했다. 그는 전남 화순 출신이지만 2001년부터 예향의 도시 전주에 정착해 한옥마을에 온고을 소리청을 개관하고 활동하고 있다. △ 전국대회서 전북예술팀 수상 휩쓸다. 올해 세종에서 열린 제38회 대한민국연극제에서 전북대표로 출전한 극단 까치동의 조선의 여자가 단체상 은상(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상)을 수상했다. 또 최우수연기상에는 조선의 여자에서 세내댁을 맡은 김경민 배우가, 신인연기상에는 송동심 역을 맡은 지현미 배우가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선배들에 이어 청소년연극제에서도 전주제일고가 최우수상 수상을 수상하며 연극계의 겹경사였다. 전주제일고등학교 연극부 까멜레온은 경남 밀양에서 치러진 제24회 전국청소년연극제에서 최우수상(문화체육부장관상)을 수상했다. 까멜레온에 속한 육송 학생과 유단우 학생은 각각 최우수연기상(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상)과 우수연기상(경남교육감상), 김송비 학생은 스태프상(한국연극연출가협회장상)을 받았다. 우수지도 교사상(한국대학연극학과 교수협의회장상)도 까멜레온을 지도한 오귀선 교사에게 돌아가 개인수상도 휩쓸었다.
전주시가 전주역사박물관과 어진박물관 직영운영을 위한 인수인계에 돌입한 가운데 큰 관심사였던 고용승계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시가 공개채용을 진행하면서 당초 직원들을 고용승계하지 않고 사실상 해고한 것이라는 비판이 이는 것. 이와 관련해 해고 없는 도시를 내세우던 시와 직영을 촉구한 시의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전주시는 지난 17일 전주역사박물관 및 어진박물관 직영 전환에 따라 전주시 지방임기제공무원 임용계획을 공고했다. 박물관 학예분야 5명, 사무분야 2명 등 총 7명을 뽑는다. 임용 형태는 시간선택제와 임기제 마급으로 1년 단기 계약직 형태이고 임금 수준은 비슷하다. 하지만 시는 고용승계를 고민하면서도 법적으로 불가하다는 원칙을 내세우며 공개채용을 선택했다. 사실상 현재 직원들을 해고한 셈이다. 시는 채용 조건을 사실상 박물관 직원들에게 맞췄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임용 자격에는 1년 이상, 임용예정 직무분야의 실무경력이 있는 사람으로 여타 다른 자격과 비슷한 수준이다. 기존 전주역사박물관 및 어진박물관 직원들에 대한 경력 우선순위를 두지 않으면서 사실상 해고 통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 같은 상황에 해고 없는 도시를 내세운 시가 졸속 직영전환으로 직원들을 거리에 내몰았다는 비난을 피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시 관계자는 여러 부분으로 고용승계를 검토했지만, 법적인 문제가 있어 공개채용을 결정했다면서 최대한 현 박물관 직원들의 경력과 현실을 적용했다고 해명했다. 시의회를 향해서도 준비가 안 된 시의 입장을 철저히 무시하며 직영전환을 무리하게 밀어붙였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앞서 시는 문경위원들에게 예산과 직제개편이 아직 준비가 안 돼 있다며 민간위탁 연장을 요청했었다. 하지만 시의회 문화경제위원회(문경위)는 지난달 27일 시가 제출한 전주역사박물관과 어진박물관의 민간위탁 연장 동의안을 부결시켰다. 김승섭 시의회 문경위원장은 부결 과정에서도 직원들을 최대한 보호해달라고 주문했었지만, 법적인 문제로 이 같은 선택을 한 것으로 안다면서 임용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이 같은 시각이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다라고 해명했다.
정아현 양 △ 어려운 환경서도 빛을 바라는 가야금 병창 유망주 정아현 양 얼쑤 하얀 저고리를 입은 정아현(19)양이 손가락을 튕기며 힘차게 가야금을 연주한다. 가야금 선율에 맞춰 힘찬 판소리도 울려퍼진다. 판소리 다섯마당을 완창하진 못했지만 힘찬 목소리의 울림이 그의 노력을 가늠케 한다. 정 양은 가야금 병창의 떠오르는 샛별이다. 어린시절 할머니의 손을 잡고 떠난 그 날, 지금의 정 양을 만들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흥이 많고, 그림, 노래 등으로 많은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주변의 관심을 받아온 탓에 그의 꿈은 예체능 분야로 가야겠다고 정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 할머니는 정 양과 함께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49호 가야금병창 예능보유자 박애숙 명창을 찾아갔다. 여러 번의 간곡한 부탁 끝에 박 명창의 제자로 들어갔다. 그렇게 박 명창과의 오랜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정 양의 재능은 지난해 꽃을 피웠다. 지난해 제12회 낙안읍성 전국가야금병창 경연대회 고등부 장려상을 시작으로, 제26회 청주박팔괘 전국학생국악대제전 고등부 장원, 제10회 뫼솔 전국국악경연대회 고등부 장려상, 제27회 정읍전국청소년국악경연대회 고등부 별창 우수상, 제2회 전국국악경연대회 고등부 최우수상, 제1회 익산삼기농요 전국국악경연대회 고등부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각종 대회를 휩쓸었다. 전국 대회에서 입상한 그의 다음은 국악 등용문이라 불리는 전주대사습놀이였다. 많은 노력을 펼쳐온 정 양은 올해 펼쳐진 제38회 전주대사습놀이학생전국대회에서 가야금병창부 장원을 차지했다. 이렇게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정 양의 인생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집안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 양은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으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키웠다. 할아버지는 회사 택시 운전, 할머니는 학교 급식소에서 근무하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척추측만증이 악화되면서 일을 그만두면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격게됐다. 2015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아이리더로 선정되면서 지원을 받았고, 현재는 후원자도 매칭돼 더 큰 무대를 향한 꿈을 키우고 있다. 정 양은 집안 사정이 너무 힘들다보니 주변에서 많이 무시당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후원자의 격려의 말과 초록우산의 도움으로 꿈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며 아직은 고등학생에 불과하지만 향후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한국을 빛내는 이날치 밴드와 같은 퓨전국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애숙 명창 △ 정 양의 스승이자 엄격한 선생님 박애숙 명창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49호 가야금병창 예능보유자 박애숙 명창과 정 양의 만남은 남들과 달랐다. 할머니 손을 잡고 따라 온 정 양을 본 박 명창은 그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찡함을 느꼈다. 정 양의 할머니는 레슨비를 낼 형편이 안돼 걱정하는 모습을 본 박 명창은 그부분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취미로 하던 정 양은 1년 뒤 박 명창의 권유에 각종대회에 출전하며 차근차근 경험을 쌓았다. 아끼는 제자였던 정 양을 향해 채찍질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박 명창은 정 양의 장점으로 배우는 자세와 암기력을 꼽는다. 그는 아현이가 소리를 한 번 알려주면 다음 레슨때 완벽히 습득해 선보였었다면서 완벽을 추구하는 노력과 근성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현이는 수 십 년간 한국을 대표하는 재목으로 성장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면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물려줄 수 있는 제자 중 한 명이라고 치켜세웠다. 박애숙 명창은 홍정택조소녀 선생에게 판소리를 사사했고, 김정열 선생으로부터 가야금산조 및 병창을 배웠다. 최일권 임실 에뜨락 카페 대표 △ 정아현 양의 든든한 후원자 최일권(63) 임실 에뜨락 카페 대표 최일권 대표는 어려서부터 어려운 환경에서 생활했다. 그렇다보니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싶어한다. 특히 가난으로 인해 꿈을 포기하는 이를 보면 더욱 가슴이 아파온다. 그렇게 그는 초록우산을 후원하던 중 지난 2017년 정 양를 알게됐다. 부모님의 이혼 후 조부모 밑에서 커가는 아이를 보고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특히 가정형편으로 무시당하는 정 양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다. 정 양의 재능이 아까웠던 그는 정 양의 후원을 자청했다. 후원자가 된 이후 그는 정 양을 만날때마다 돈이 없어도 꿈과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 자신감과 자존심을 높게 가지고 자랑스럽게 살아가라고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시대에 흐름에 맞는 예술도 중요하다며 많은 악기를 사주고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는다. 최 대표는 우리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어린 학생들을 후원 등을 통해 양육함으로서 사회 발전에 이바지 해야할 기성세대의 책무가 있다면서 쉽지는 않지만 앞으로도 어려운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완규 원광대학교 교수, 마한백제문화연구소장 대규모 국토개발에 앞서 필수적으로 이루어지는 문화유적 조사는 많은 고고학적 자료를 생산하게 된다. 이렇게 얻어진 자료는 문헌에 기록되지 않았던 우리 선조들의 사회와 문화를 재구성하는데 매우 유용한 기초적인 연구자료로 활용된다. 서해안고속도로는 전라남도 무안군 삼향읍을 기점으로 전남과 전북, 충남과 경기 등의 지역을 서해 연안을 따라 건설된 총연장 340.8km로서 고속도로로서 1990년 12월에 착공하여 2001년 12월에 완공되었다. 우리나라의 대부분 고속도로의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고 있지만, 서해안 고속도로는 서해안을 관통하는 지리적 명칭을 갖고 있다. 한반도 서해안 지역은 높은 산맥에 막힘없이 경기에서 전남 무안까지 내달릴수 있는 노년기 지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서해안고속도로 건설 구간내 문화유적 조사는 마한의 옛 영역을 관통해서 이루어지는 샘플조사와 같은 의미가 있어서 마한의 역사와 문화를 파악하는데 귀중한 기회가 되었다. 전북지역을 통과하는 총연장 77.5km에 대한 지표조사는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서 1997년에 이루어졌는데, 무려 50개소에서 유물 산포지가 확인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전북지역의 각 대학 박물관과 국립전주박물관 등이 연합으로 발굴조사단을 구성하여 2~3년에 걸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결과 마한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몇 가지 점에서 주목되는 결과들이 도출되었다. 먼저 분구묘(주구묘)로 대표되는 마한 분묘들이 서해안을 따라서 잇달아 발견되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매장주체부가 확인되지 않아 그 성격에 대한 많은 의문이 있었는데, 고창 성남리에서 주매장부로서 토광묘와 주구나 대상부에 옹관이 안치된 양상을 통해 혈연관계를 기본으로 축조된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개별 주구묘들이 또 다른 주구묘와 인접하거나 중첩되고 있어서 대형 분구묘로 변화 발전하는 이른 단계의 양상도 확인하게 되었다. 이러한 주구묘들의 평면 형태는 각 지역마다 특징을 달리하고 있어서 54개국으로 구성된 마한 소국을 구별할 수 있는 기준으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출토유물에서 과거 백제토기로 분류되었던 이중구연토기와 양이부호 등은 마한 고유의 토기임이 밝혀져 마한과 백제문화를 구분하는 기준이 마련되었다. 특히 다량의 옥류가 부장되어 있어서 마한인들은 금은보화보다 구슬이나 옥을 소중히 여겼다는 문헌기록을 뒷받침하고 있다. 결국 서해안고속도로 구간의 조사는 마한문화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2020년 12월 현재 서학동사진관에서 열리고 있는 AX 그룹의 코로나-사막-AX 전시 장면 코로나 때문에 카페에 가도 앉지도 못하고 테이크아웃만 되며, 코로나 때문에 경기는 침체되어 거리를 걷노라면 곳곳에 임대, 매매 현수막이 걸려 있다. 코로나 때문에 예술계도 활기를 잃어 거래도 없고 전시도 없다. 예술회관 전시실도 들어가는 절차가 복잡할뿐더러 전시 공간도 텅 비어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 될수록 삶은 황폐한 환경에 직면한다. 사막 같은 환경에서 AX 그룹은 코로나-사막-AX 전을 개최했다. AX는 그 취지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황폐해진 삶, 인내하며 버틸 수밖에 없는 생활환경, 언제나 마스크를 쓰고 보이지 않는 세균에 대하여 방어적 자세를 지키며 지내야 하는 그 간의 상황은 모든 사람들을 지치게 한다. 그러나 인간은 살지 않으면 안 되고, 아무리 힘들어도 이겨내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 6월 창립전을 가졌던 AX 그룹이 연말에 임하여 두 번째 전시를 갖게 되었다.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 결과 이번 전시의 주제는 코로나-사막-AX로 정했다. 코로나가 몰고 온 황폐한 상황을 사막으로 규정하고, 우리가 직면한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든 극복하자는 의지를 담았다. 삶도, 예술적 환경도 좋지 않다. 그러나 예술은 얼마든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코로나 시기에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예술이 작품을 팔기 위해서 지속되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 여건이 취약한 시기에는 예술적 생존과 관계된 싸움을 피할 길이 없다. 과거 한국전쟁 당시에도 이중섭, 박수근 등의 작업이 전개되었던 것을 감안하면 예술가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예술적 태도를 견지하려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최악의 상황은 예술적 문제를 더 본질적인 특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중요한 예술적 태도 중의 하나는 생존을 위협하는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도 예술가는 자신이 추스르는 예술적 문제를 그 외의 다른 조건과 쉽게 타협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려울수록 모든 것을 걸고 자신의 길을 가려는 예술가의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러나 그것은 예술가에게나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가혹한 일이기도 하다. 어느 날 문득 코로나가 종식되기를 바란다. 예술적 평화가 있는 곳에 진정한 평화가 깃들고, 예술적 창의력이 빛을 발할 때 가장 행복한 기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전북기자협회(회장 남형진)가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범도민 운동에 동참했다. 전북기자협회는 21일 전북도청 브리핑룸에서 남 회장과 12개 회원사 지회장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고 사회적 공기로써 공익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온 기자협회가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모임 취소, 거리 두기, 마스크 생활화 등 3대 약속을 실천하고 이를 회원뿐 아니라 도민 모두에게 알릴 수 있도록 공익 보도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연말연시 모든 행사를 취소하고 불가피한 일정은 참석 인원을 최소화랄 것과 매년 연말에 치른 송년의 밤은 코로나19 종식 때까지 연기하고 올해 기자상 시상도 모든 절차를 생략하고 상패만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겠다고 덧붙였다. 특히 행사 취소로 불용한 회비는 지역 소상공인을 돕기 위한 온누리상품권 구입을 통해 회원들이 사용토록 한다는 계획이다. 남 회장은 우리협회는 연말연시뿐 아니라 코로나19가 종식될 때까지 이러한 약속을 굳게 지켜나가겠다고 밝히고 더불어 코로나19를 비롯한 모든 감염전염병의 상황을 도민들께 정확하고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국립전주박물관장 공석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전북박물관미술관협의회(박미협) 수장에 전주박물관 관장 직무대리가 선출 되는 등 문화예술계의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전북박미협은 지난 15일 정상기 국립전주박물관장 직무대리를 협의회장으로 선출했다. 정상기 직무대리의 실제 직책은 학예실장(5급 상당)이다. 이를 두고 문화예술계에서는 정상기 신임 협의회장이 직무대리 상태에서 박미협을 제대로 이끌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먼저 전북박미협은 전북지역 박물관미술관의 발전과 지역문화 발전에 기여하고자 2007년에 창립된 전라북도 박물관미술관 협의체다. 현재 도내 박물관미술관 가운데 총 45개관이 회원관으로 가입되어 있다. 이사회는 대부분 도내 박물관장과 미술관장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데, 특히 이사회 내에서도 전북의 거점박물관 역할을 수행하는 국립전주박물관의 영향력은 크지만 계급을 역행한 구조상태에서 박미협 의견조율을 과연 잘 이끌어 내고 전북 박물, 미술관계의 발전을 도모할지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동안 전북박미협은 관장직급을 유지하고 있는 이가 회장을 맡았다. 전북 문화예술계에서는 정상기 직무대리의 능력을 의심하긴 보단, 박미협의 위상과 역할에 맞는 인물이 이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문화예술인은 박미협은 박물관과 미술관 등 상호 간의 협조체계를 마련하고, 연구발표회, 학술대회 등을 후원, 주최, 주관, 유치한다며 각 기관대표들이 참여하는 단체이니 만큼 그에 맞는 인물이 회장을 역임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상황을 빠르게 종식할 수 있는 방법은 문체부가 빠른 관장 인사를 단행하는 것이다. 전북 박미협 관계자는 총회에서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이번 회장을 맡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나왔다면서 차기 관장인선이 이뤄질 경우 협의회장직을 승계받는 것으로 협의가 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한편, 전주국립박물관은 지난 6월 30일 천진기 전 관장이 2년의 임기를 마치고 연고지가 있는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로 발령이 난 이후 현재까지 공석이다.
김영 시인 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 제32대 회장 선거 공고(선거관리위원장 전길중)를 지난 19일 마감한 결과 현 부회장인 시인 김영(본명 영자) 씨가 단독 접수해 무투표 당선이 확정됐다. 전북문인협회 59년 역사상 여성이 회장에 당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와 관련 전북문인협회는 내년 1월 정기총회를 통해 김영 시인의 당선을 확정할 예정이다. 임기는 내년 2월부터 3년 간이다. 김제 출신인 김 시인은 전북대 사범대학원을 졸업했다. 두리문학회장, 전북여류문학회장, 한국문협김제지부장, 전북시인협회장 등을 거쳐 현재 김제예총 회장, 전북예총 부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를 맡고 있다. 1995년 <자유문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은 시집 <다시 길눈 뜨다> <나비 편지> <수평에 들다> <파이디아> 등과 수필집 <뜬 돌로 사는 일> <쥐코밥상> <잘 가요 어리광> 등을 내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김영 차기 회장은 전북문인협회의 발전과 문인들의 위상과 권리 증진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봉사하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와 함께 차후 전북문인협회 운영과 관련해 △지역문인협회 활성화-지역문협 협의체 구성운영 △해외 문학단체와 교류 △회원 작품 다국어 번역 출간 △문화 관련 잡지사와 협약 체결-회원 작품 발표 지면 확보 △취미동아리별 문학 관련 행사 △지역문화예술 육성 지원사업 신청 대행 등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사)전라북도박물관미술관협의회(이하 전북박미협)는 올해의 박물관인상에 이현명 원광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사, 미술관인상에 이보미 교동미술관 학예팀장을 선정했다. 이번에 박물관인 상을 수상한 이현명 학예연구사는 익산지역 박물관의 연합과 공조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고, 미술관인상을 수상한 이보미 학예팀장은 지역의 작가들을 전주시민에게 소개하는 기획특별전을 개최한 공로가 인정됐다. 이 밖에도 전라북도지사 공로표창상에 전주역사박물관어진박물관 이동희 관장이, 협의회장상에는 나상형 대한민국술테마박물관 학예연구사와 박은지 전주대학교박물관 학예연구사가 수상했다.
지난 16일 세상을 떠난 허소라(본명 허형석) 시인을 기리는 고별식이 17일 전주예수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서 전북 문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이날 고별식에는 국중하 곽진구 김계식 김기화 김남곤 김영 박귀덕 서정환 서재균 소재호 양영아 윤석정 정군수 전일환 조미애(가나다순) 등 도내 문화예술인들이 참석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고별식은 고인의 아들 허영채 씨가 유족 인사를 하고, 조미애 시인이 고인의 약력을 소개했다. 뒤이어 김남곤 시인의조시 소라여, 소라여! <흐느끼는 목마> 타고 이 추운날 어디로 가시나이까를 낭독했다. 고인은 임실군 임실읍 정월리 태평교회동산에 영면했다.
며칠 전 청와대에서는 한 독지가의 기증을 감사하는 자리가 있었다. 기증한 작품은 국보 제180호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로 그가 1840년 세도정치에 휘말려 제주도 귀양살이를 할 당시 청나라에서 유학 중이던 제자 이상적이 많은 책을 보내와 어려운 시절을 이겨냈는데 그러한 자신을 잊지 않고 귀한 서적을 보내준 마음에 감사하며 그린 그림이다. 또한, 장무상망란 단어는 세한도 밑에 찍힌 도장의 내용으로 오래도록 함께하자라는 뜻의 글이다. 세한은 새해 설 전후의 혹독한 추위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인생의 시련과 고난을 표현한 단어이기도 하다. 추사 김정희는 귀양살이로 고통받고 있는 자신을 잊지 않고 책을 선물한 제자가 너무나도 고마웠다. 그 당시 중국에서 이상직이 구매한 귀한 책은 보통 집 한 채의 가격으로 쉽게 소유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그러한 책을 구해 개인의 출세를 위한 도구로 사용치 않고 외롭고 힘없는 스승을 위해 오로지 전달되었으니 그 신의는 참으로 뜻이 깊고도 고마운 일이었다. 김정희는 그러한 제자 이상직의 사시사철 늘 한결같은 모습을 소나무와 측백나무로 표현하여 세한도로 만들었으며 자신의 마음을 네 글자 장무상망에 담았다.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고 했네. 그대가 나를 대함이 귀양 오기 전이나 후나 변함이 없으니 그대는 공자의 칭찬을 받을 만하지 않은가? <세한도> 中 신의(信義)는 믿음과 의리를 아울러 한 말이다. 김정희와 제자 이상직에게는 신의가 있었다. 믿음은 어떤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을 뜻하며 의리란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바른 도리를 말한다. 신의가 없음에 불신이 생기며 불신은 시기와 논란을 만든다. 시기와 논란이 쌓이면 증오가 되고 증오는 원수(怨讐)를 만들어 낸다. 원수는 결국 한(恨)과 파멸을 자초하는 근원이 되기도 한다. 행복한 사연과 역사 뒤에는 때론 슬프고 안타까운 역사가 존재했었고 우리는 그러한 과거를 반복하지 않으려 많은 노력을 했다. 추사 김정희 세한도의 기증에는 많은 의미와 감사함이 있겠지만 필자에게는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무가지보(無價之寶)의 문화재를 아무런 이익 없이 국가에 기증한 마음의 감사함이요, 둘째, 추사 김정희의 예술적 가치가 후손 대대로 올곧이 간직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감사함이며, 마지막으로 셋째, 선조들의 신의를 생각하며 우리의 마음을 깊게 돌아볼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준 것에 대한 감사함이다. 세한도의 아름다움은 이제 후손에게 안전하고 바르게 전해질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함과 더불어 다시금 필자의 바람이라면 오래도록 함께하자란 장무상망의 신의를 내포한 단어가 다시금 우리 마음속에 각인되어 교훈을 담아 추사 김정희의 작품과 함께 영원토록 후대에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 김남곤 시인전 전북일보 사장 한 잎 낙엽이 지듯 12월을 밀며 떠나가는 이 땅의 시인 소라여! 꽃도 보고 임도 보고 더 살다가 간다면 누가 뭐라 하십니까 그런데도 꼭 가야하는 그 길이 뭐하는 길이기에 도대체 다 뿌리치고 표표히 가시나이까 우리가 더 푸르게 살던 어느 날 당신은 <이 풍진 세상>이라는 시집 한 권을 짊어지고 나타나셨습니다 지난 폭설에도, 산불에도 온전히 죽지 못하고 썩지 못한 것들 마침표 없이 출렁이는 저 파도 속에 떠밀려 가는데 비로소 그 큰 눈을 감는데 발을 구르는 자 하나 없더라 증언자는 더더욱 없더라라는 구절을 서로서로 소주 찍어 읊으면서 우리는 바람에 날리는 티끌 같은 세상을 슬퍼했습니다 소라여! 당신은 이 시대의 굴곡진 아픔에 눈물짓는 참으로 순정한 시인이었습니다 겨울 한 밤중 설한풍에 등껍질 벗겨지는 통한도 눈물 한 방울로 웃으며 돌아서는 참으로 다수운 시인이었습니다 우리가 굳이 떠밀리지 않아도 겨울이 떠나고 우리가 굳이 손짓하지 않아도 봄은 저렇게 절룩거리며 오는데 개나리 진달래 흐드러지게 피는데 그러나 그 어느 곳에도 팔짱 낀 구경꾼은 없더라고 당신은 <이 풍진 세상>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또 그렇게 한숨지었습니다 대학 강단에서 이 나라 동량들을 무쇠처럼 키웠고 전북문인들 앞에 큰 깃발 들고 앞장서서 휘날렸고 석정문학관의 주춧돌을 다듬기까지 온갖 정성을 쏟았습니다 그 아름다운 영혼을 이 땅은 오래도록 기억할 것입니다 이제 그 먼 나라에 가시면 그렇게도 그립던 석정님도 뵈옵고 목마 타고 흐느끼는 어여쁜 밀어들도 더 고운 이야기로 꽃을 피우시겠지요 그리고 더 넓고 크신 당신의 믿음, 절대자의 품에 안겨 빛나는 큰 재목으로 영생을 누리시겠지요 남아 있는 우리들 머나먼 길 잘 가시라고 손을 흔듭니다 부디 소라여!
고 허소라 시인 한평생을 신석정 시인(1907~1974) 연구에 바친 지역문단의 대표적인 원로시인이자 문학연구자 허소라(본명 허형석) 교수가 16일 영면에 들었다. 향년 84세. 1936년 진안에서 태어난 고인은 금산동중, 금산농고를 졸업하고 전북대 국어국문학과, 고려대 교육대학원을 거쳐 경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북대 국문과에서 허 시인은 석정 시인을 만나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맺었다. 1959년부터 그 이듬해까지 〈자유문학〉에 시 지열 피를 말리는, 도정 등 3편의 시를 추천받으면서 등단했다. 당시 시 추천을 해준 사람도 석정 시인이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석정 시인의 <촛불>, <슬픈목가> 등을 구해 읽으며 그의 시 세계를 동경해왔던 허 시인은 저평가된 스승의 문학사적 위치를 바로잡고자, 학문의 길에 들어선 이후 줄곧 석정 문학 연구에만 매달려왔다. 석박사 논문도 모두 석정 시인의 문학세계를 주제로 했다. 전주신흥고 교사로 시작해 군산 수산고등전문학교와 수산전문대학을 거쳐 군산대 교수로 정년 퇴임할 때까지 재직했다. 이밖에 대만 국립정치대학 동어계 교류교수, 연변대학 객좌교수, 한국기독교문인협회 회장, 전북문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허 시인은 군산대에서 정년 퇴임 한 이후에도 시 쓰기와 석정 문학 연구로 시간을 보내왔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석정의 문학과 삶을 조명정리하는 일에 바쳐온 셈이다. 살아생전 고인은 석정 시인에 대해 스승과 제자 관계로 뿐 아니라 부모와도 같은 분이셨다. 그만큼 제 생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제게는 늘 미치지 못하는 거목 같은 존재였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허 시인은 활발한 문학 활동으로 후학들에게 모범을 보여왔다. 1964년 첫 시집 <목종>을 낸 이후 <풍장> <겨울나무> <아침 시작> <겨울밤 전라도> <누가 네 문을 두드려> <이 풍진 세상> 등을 출간했다. 산문집 <흐느끼는 목마> <파도에게 묻는 말> <숨기고 싶은 이야기>, 평론집 <못다 부른 목가> 등을 펴냈다. 전라북도문화상, 전북대상, 백양촌문학상, 모악문학상, 윤동주문학상, 석정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석정의 문학 세계를 조명한 논문 50여 편을 발표했다. 2012년 개관한 부안 석정문학관 조성작업에 참여하는 등 건립을 주도했다. 석정문학관 초대관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석정 시인의 수많은 시를 발굴수집했으며 2009년에는 미발표 저항시 11편을 공개해 석정 문학을 새롭게 연구하는 전환점을 마련하기도 했다. 빈소는 전주예수병원 장례식장 202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18일 오전 7시 30분, 장지는 임실군 임실읍 정월리 태평교회동산.
이상훈 진안 마령고 교사 진안 마령고등학교에서 역사과목을 가르치는 이상훈(56) 교사가 제13회 진안문학상을 수상했다. 진안문학상은 지역 문학의 위상을 높인 작가를 선정, 3년마다 시상한다. 진안문인협회(회장 이병율, 이하 협회)는 지난 15일 오후 문화마실 진안에서 진안문학상 시상식을 열고 이 교사에게 상패와 상금 200만원을 수여했다. 이 교사는 칼럼집 <진안, 가슴으로 담다(청어람M&A, 2020)>에 자신의 지역사랑 진정성을 녹여내, 이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시상식은 코로나19 감염 차단과 예방을 위해 방역수칙과 사회적 거리두기 원칙을 엄격히 지키며 최소 인원으로 진행됐다. 수상자인 이 교사는 지난 2003년 <좋은 사람> 가을호에 돌의 생명력, 영험함 인간 속에서 나타나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등단한 문인(수필가)이기도 하다. 교직에 종사하면서도 8년가량 진안문인협회 사무국장을 역임한 전력이 있는 이 수상자는 진안지역의 마을, 민속신앙, 풍속 등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권의 책을 출판한 관련 분야 중견 연구가로 통한다. 진안문학상 운영위원회 김영화 위원장은 교사이지만 지역주민과 활발히 교류하면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지역사회의 현안 문제를 고민하면서 해법을 찾아내려는 모습은 다른 사람에게 귀감이 된다면서 이 교사의 칼럼집 <진안, 가슴으로 담다>는 단단한 문장력과 필체가 돋보이며 지역사회의 시기별 현안문제에 대해 균형 있는 대안이 제시돼 있다고 수상자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 교사는 귀한 상을 받게 되어 정말 영광이다. 글을 잘 썼다는 의미보다 앞으로 더 열심히 쓰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 교사는 1991년 진안고등학교(진안공고 전신)에 첫 부임해 진안과의 인연을 시작했으며 이후 교편생활의 많은 시기를 진안에서 보냈다. 진안을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하는 그는 현재 마령고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최완규 원광대학교 교수, 마한백제문화연구소장 요즘 박물관을 관람하다 보면 전시유물의 이해를 돕는 설명 패널과 유물 명패에서 어렵지 않게 마한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나주에 자리하고 있는 국립박물관이 영산강유역의 마한문화를 정리하고 발굴조사에서 수집된 자료를 중심으로 건립된 박물관이라는 점은 격세지감마저 들게 한다. 사실 지금처럼 명쾌하게 역사적 정치체로서 마한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오늘날 시각에서 보면 영산강 유역의 마한문화를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대형 옹관마저도 1990년대 초까지는 광주 박물관 전시유물의 명패에 「백제시대 5~6세기」라 쓰여 있을 정도였다. 그것은 90년대 초반까지 마한과 백제문화를 구분할 수 있는 학계의 연구가 미미한 수준의 현실을 그대로 방증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또한 마한은 백제에 의해 일시적으로 정복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병합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마한과 백제의 관계를 대나무와 죽순에 비교될 정도로 두 정치체를 구분하는데 어려움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1917년 일본인 학자 야쯔이에 의해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나주 신촌리 9호분에서 금동관모와 금동신발 등이 발견됨에 따라 이 지역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곧 신공황후의 삼한정벌설에 심취했던 그는 무덤 주위에 들러진 도랑을 근거로 왜인의 무덤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1999년에는 국립문화재연구소 주관으로 재발굴조사가 이루어져 일인 학자들의 발굴에서 소홀히 다루었던 정보를 구체적으로 얻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마한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은 1970~80년대에 걸쳐 국립광주박물관의 설립과 호남지역 대학교에 고고학 관련 학과가 설립되면서 본격화되게 된다. 국립광주박물관과 각 대학 박물관이 주동이 되어 영산강유역의 영암과 나주일대의 대형 옹관고분에 대한 발굴조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이 지역의 문화양상이 백제문화는 뚜렷이 구분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조사를 바탕으로 영산강유역의 마한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지역별로 역사문화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많은 노력이 이루어졌다. 1990년대에 건설된 서해안고속도로 구간에 대한 문화유적 조사는 비로소 마한문화의 정체성을 좀 더 분명하게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곧 마한의 옛 영역에서 서해안을 따라서 이루어진 조사는 마치 마한 전역에 대한 샘플 조사와 같은 효과를 보여 백제문화와 구분되는 마한문화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2021년 초 각종 기관들의 인사철을 앞둔 가운데, 전북 내 국립박물관장의 임명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15일 문화체육관광부 등에 따르면 현재 국립박물관 2곳이 이번 인사 대상이다. 국립전주박물관은 관장이 공석이고, 국립익산박물관 신상효 관장이 이달 내 임기를 마치고 내년 1월 1일부터 공로연수에 들어간다. 도내 2곳의 박물관장 인사가 임박한 셈이다. 먼저 전주국립박물관은 지난 6월 30일 천진기 전 관장이 2년의 임기를 마치고 연고지가 있는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로 발령이 난 이후 공석상태다. 현재 정상기 학예실장이 직무대행을 하고 있다. 천 전 관장이 임기를 마친 후 곧바로 관장인선이 되거나 늦어져도 2~3주 후 내정 또는 인사발령이 나지만 계속해서 늦어지면서 수장이 없는 지역국립박물관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때문에 지역 내 거점 박물관의 수장 공백이 장기화 되면서 이를 두고 도내 문화예술계에서는 문체부가 전주박물관장으로 적정한 인물을 찾지 못해 발령이 늦어지고 있다, 인사가 내정되어 있지만 담당 부서에서 일을 마무리 하지 못해 마무리 후에 올 것이라는 등의 추측이 나돌고 있다. 이런 추측을 종결시키기 위해서라도 이번 인사에서는 반드시 관장인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지역문화예술계의 말이다. 한 지역 문화예술인은 지역 내 거점 박물관 수장 공백이 장기화되면 문화예술의 중심을 잡아줘야 할 구심점이 없는 것과 같다면서 계속해서 인선이 길어지는 것의 지역에 대한 소홀함으로 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국립전주박물관과 국립익산박물관은 고위공무원단에 속해 인사가 늦어질 수 있다며 특히 국립전주박물관(3급 상당)의 경우 인사혁신처의 결정이 늦어지고 있는 것 같다.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지역 내에서는 이번 관장인사가 빠르면 이달말, 늦어도 1월에는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장 유력한 시점은 국립민속박물관 인사와 함께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인디전주 뮤직 어워드는 전북 최초의 대중음악 시상식입니다. 지역음악의 가치와 위상을 높이고, 지역민들에게 지역음악 문화를 선사하며 함께 호흡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문화기획사 포풀라가 전북 최초 대중음악 시상식 인디전주 뮤직 어워드를 제정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시상식은 오는 27일 유튜브 포풀라 채널을 통해 공개한다. 심사는 2018년 12월 1일부터 2020년 11월 30일까지 전주에서 발표된 대중음악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 시상은 종합 부문(음원상, 음반상), 장르 부문(힙합, 재즈, 발라드R&B, 포크블루스, 락메탈) 등 총 7개 부문에 걸쳐 이뤄진다. 제작을 맡은 포풀라 박석영 대표는 이번 시상식을 통해 코로나19로 인해 얼어붙은 문화예술계에 잠시나마 따뜻한 기운이 돌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종로 감로암에 중광 스님이 계실 때에 가끔씩 양담배 한 보루씩 사가지고 다닌 적이 있었다. 내가 가면 스님은 좋아서 활짝 웃었다. 어느 날 아침 감로암을 찾았을 때에 스님은 기분이 좋아서 법문하기를, 진정한 깨달음은 스승 없이 깨닫는 거야. 그게 진짜지! 하시는 게 아닌가. 나는 느낀 바가 있어서 그것을 글로 써달라고 했다. 그러자 스님은 망설이지 않고 무사독오(無師獨悟)라고 붓을 들어 써주셨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환생하셨다는 조선시대 진묵스님 일화를 보면 이런 게 있다. 상운암에 계실 때에 모시고 있던 스님들이 약 한달 예정으로 탁발을 나갈 때에 진묵 스님은 창가에 손을 걸치고 앉은 채 작별을 했고 곧 선정에 들었다. 한달 후 탁발을 마치고 돌아 온 스님들이 보니, 진묵 스님은 여전히 그 자세로 앉아 선정에 들어 있는데, 그 사이 바람이 세차게 불어 창가에 걸친 손은 닫히고 열리는 문틀에 망가지고 피로 얼룩져 있었다. 진묵 스님의 얼굴은 거미가 몇 겹으로 집을 지어 더럽혀져 있었다. 스님을 깨우자, 곧 눈을 뜨고, 너희들 벌써 왔느냐?고 했다는 장면이다. 선정이란 그런 것이다. 내가 지금부터 정신 차리고 선정에 들어야지 하면 그것은 선정이 아니다. 어느 순간 선정에 들어 삼매에 들 수 있어야 선정이다. 그것이 순일하고 전일한 경지이다. 그리고 정신의 가장 자연스럽고 깨어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요동치기로는 천둥번개가 번쩍일 때처럼 강렬하다가도 고요할 때에는 잔잔한 연못에 나뭇잎 하나 떨어지는 순간보다 더 고요한 것이 그 세계이다. 마음의 세계가 미묘해서 그 극단적인 모순을 지니면서도 전혀 불편하지 않게, 순간순간 미묘한 작용을 스스로 하는 것이 또한 그렇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늘 마주치는 마음의 문제는 진정한 깨달음을 추구할 때에도 똑같이 작용한다. 이러한 묘미를 터득하지 못하면 그 어떤 옷을 입었든 가짜이다. 공무원이든, 상인이건, 가정주부이건, 사기꾼이건, 스님 또는 목사이건 모두 가짜이다. 가짜가 되지 않으려면 깨달아야 한다. 공중에 걸쳐놓은 줄 위에 아슬아슬하게 발걸음을 떼는 곡예사처럼 모두를 걸고 걸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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