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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축제] 전남 곳곳서 해넘이.해맞이축제 준비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해넘이.해맞이 축제'가 전남지역 곳곳에서 열린다. 14일 전남도에 따르면 목포에서는 31일 로데오 거리에서 연말 송년 축제가 열리고 여객선 퀸메리호에서는 1월1일 오전 5시부터 9시까지 선상 해맞이 축제가 열린다. 목포-제주를 왕복하는 대형크루즈에서 펼쳐지는 선상해맞이 축제는 3천여명의 시민과 관광객이 승선해 교향악단과 합창단 공연, 희망풍선띄우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함께 영암 앞바다에서 일출을 감상한다. 여수 향일암에서는 31일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향일암 일출제'가 열리며 2012 엑스포 개최 성공 기원 불꽃쇼와 음악회 등도 함께 선보인다. 남도 최고의 일출 조망지로 인기가 높은 향일암의 새해맞이 행사는 일출기원 제례, 소망실은 풍선 날리기, 소원엽서 띄우기 등 탐방객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위주로 치러진다. 국토 최남단 해남 땅끝 마을은 해넘이제, 땅끝 가요콘서트, 함께 뛰어보는 강강술래, 새해 기원 촛불의식, 달집태우기, 소망 연날리기, 선상해맞이 등을 해넘이.해맞이 행사로 준비했다. 고흥군은 남열 해수욕장에서, 영암군은 호텔현대 야외광장에서'2009 해맞이축제'를 개최하며 영암호의 아름다운 일출을 배경으로 독특한 새해맞이 축제를 선보일 계획이다. 완도에서는 드라마 해신 청해 포구 세트장과 76m 높이의 완도타워, 선상에서 해넘이.해맞이 축제가 열리고 진도군은 최고의 낙조 전망으로 유명한 '세방낙조'에서 진도북놀이와 강강술래 등 민속공연을 마련했다. 장흥군은 정남진과 회진 한재공원, 천관산 정상 등지에서 새해 해맞이 행사를 갖고 보성군에서도 올 한해를 아쉬워하고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하는 대형트리를 녹차밭에서 선보인다. 한편 이번 31일 일몰시간은 여수지역이 오후 5시28분이며 새해 1월1일 일출 시간은 여수지역 7시36분, 목포지역은 7시42분이다.

  • 문화일반
  • 연합
  • 2008.12.15 23:02

[문학] 2008 전북문학상 김은실·이용숙·황영순씨 선정

전북문인협회(회장 진동규)가 수여하는 '2008 전북문학상'에 김은실씨(65·수필)와 이용숙(61·시) 황영순(59·시)씨가 선정됐다.김남곤· 소재호·허호석 심사위원은 중진급 작가로서 묵직한 창작활동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상이 주어졌다고 평가했다.김씨는 1984년 「한국시」로 등단해 수필집「나는 꿈꾼다」 등 총 300여편이 넘는 미려한 수필을 써왔고, 인간성을 고양하는 글로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화두를 담아왔다. '전북수필문학상(1998)' '전북여류문학상(2003)' 을 수상한 바 있다.이씨는 1982년 「심상지」로 등단해 「참 좋은 날」등 5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전주교육대 총장으로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많은 시집과 논문을 펴냈다. 인간과 자연이 긴밀하게 교감하는 서정성이 짙은 시, 인간의 내밀한 심상을 형상화한 상징성이 담긴 시가 특색.황씨는 1984년 「월간문학」 으로 등단해 최근 시집「짧고도 긴 편지」를 통해 그리움을 찾아가는 영혼의 불꽃을 그렸다. 시어의 모순 형용을 통해 긴장감을 주고 함축성을 담아낸 것이 특징. 문학동인 '글벗' 회장, 전북여류문학회 회장등을 역임했으며,시상식은 26일 오후6시 전주 춘향골에서 갖는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08.12.15 23:02

"사회 어려울때 예술이 희망줘야"

사단법인 한국무용협회 전북지회(회장 김숙)가 주최하는 '시대공감 I Love Dance 2008 무용인의 밤'이 12일 오후 6시30분 전주관광호텔에서 열렸다.'무용인의 밤' 행사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순수예술을 추구해 온 전북 무용의 1년을 결산하는 자리. 올해는 '전북무용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손윤숙발레단이 전북 대표로 '전국무용제'에 출전, 대상을 차지해 더욱 의미가 있었다.이날 '춤예술인상'을 수상한 국수호씨(60·디딤무용단 이사장)와 '춤교육자상'을 수상한 정경희씨(46·전주예술고 무용과 교사)에 대한 시상식도 함께 진행됐다. 전북무용협회는 이 자리에서 김남곤 전북일보 사장(전 전북예총 회장)에게 감사패를, 윤정옥(한국훌라협회 공연예술단장) 최태열(익산 종합노인복지회관 교수부) 박흥규(전 전북무용협회장) 곽인순(대한주부클럽연합회 전북지회장) 손윤숙씨(전북대 무용학과 교수)에게 공로패를 전달했다.도내 대학 무용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들 중 김현식(전북대2) 양혜민(우석대4) 김지영(원광대4) 김린씨(예원대3)에게는 상장과 장학금 30만원씩을 수여했으며 전주지부(지부장 노현택)를 우수지부로 선정, 상패와 상금 50만원을 전달했다.전북 출신으로 국립무용단장 겸 예술감독을 역임한 국수호씨는 수상자들을 대표해 "사회가 메마르고 어려울 때일수록 문화가 영혼의 양식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수상소감을 밝혔다.'무용인의 밤'에는 송하진 전주시장, 김대곤 전 전북도 행정부지사, 김희수 전북도의원, 최영환 전북도 문화관광체육국장, 황병근 전 전북예총 회장, 선기현 전북예총 회장, 장명수 전주문화재단 이사장, 김형용 전북도립국악원장, 김학곤 전북국악협회장, 김용철 전북연예협회장, 최무연 전주예총 회장을 비롯해 무용인 200여명이 참석했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8.12.15 23:02

[풍경과 사람] 구세군 역사

한국에 구세군이 전파된 것은 1907년 구세군 창립자인 윌리암 부스의 일본 순회 집회 때였다.당시 조선 유학생이었던 허가두 사관은 한국 선교에 뜻을 품었다.미국과 유럽 등 외세 침입과 일제 강점기 속에서 전국 의병들이 들고 일어서는 불안한 시절이었다.한국에 들어온 많은 선교사들은 선교활동을 벌이다 선교의 혼선을 막기 위해 선교지 분할정책을 썼다. 남장로교는 전라도와 충청도를 맡고 부산은 호주 장로교, 함경도는 캐나다 장로교, 이미 선교가 시작된 곳은 북장로교가 맡았다. 구세군은 내륙 오지를 맡았기 때문에 허가두 사관은 충청도와 전라도, 대구를 순회했다.그는 인천을 거쳐 해안을 따라 오천항을 거쳐 군산항, 외연도까지 이르렀다.하지만 군산 선교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전주로 옮겨졌다. 비교적 인구가 많고, 시장과 관공서가 있어 편리한 데다, 의료·생필품 등이 결집되는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처음 경원동에 자리잡은 전주 본영의 초대 담임사관은 사관학교 제1회 졸업생인 김양수씨. 척박한 환경에서 경원동에서 풍남동으로, 진북동으로 이사에 이사를 거듭해 현재 평화동에 거처를 잡을 수 있게 됐다.구세군은 곧 자선냄비라는 인식은 잘못됐지만, 12월만 되면 전국에서 울리는 자선냄비는 구세군의 상징이다. 가난한 이웃들을 돕기 위해 큰 쇠솥을 다리에 걸어 끓게 하도록 호소한 것이 전 세계로 펼쳐지게 됐다.가난으로 상처입은 사람들을 지역 교회로 연결시키고자 시작된 이들의 활동은 지속적인 현실 변화를 갈망하게 되면서 구세군 사관학교가 세워졌고, 이곳에 몸을 담은 사관들은 평생 신앙과 관련된 일만 하도록 교육 받게 됐다.'여성도 복음을 전하는데 자유로워야 한다'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해 결혼한 부부는 함께 사관학교에 입교해 동일한 지위의 사관으로 임관된다. 성탄절, 부활절, 성령강림절 등 기독교 절기를 따르며, 세례의식과 성찬식 등 특별한 종교의식이 없으며, 전세계적으로 구세군의 브라스밴드와 합창단이 유명하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08.12.12 23:02

[풍경과 사람] "셈하지 않는 맑은 영혼있어 마음따뜻"

1998년 12월 낮 최고 기온은 영하 5도였다.며칠째 퍼붓던 눈이 멈추고, 날은 흐렸다. 흐린 날이 저물자 기온은 급속히 떨어졌다.얼어붙은 거리에 바람이 불었고, 전주 객사 일대에는 몇몇 사람이 추위에 떨었다.따뜻한 온기가 타인에 의해 불붙여지기만을 기다리면서, 기약없는 겨울을 통과해 나갔다.경제 한파로 어수선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구세군 전주본영 교회는 올해도 자선냄비를 끌고 나섰다. 구세군이 한국땅을 밟은 지 100년, 거리의 무쇠솥이 자선냄비로 거듭 발전돼 온 지 80주년을 기념하는 순간이다.크리스마스 이브를 전후해 2주간 온기를 밝혀 줄 이들은 구세군 사관 이승엽(63)씨와 담임보 한세원(40)씨.헌트, 롯데리아, 신포 우리만두, 현재의 금강제화에 이르기까지 가게가 여러 번 옷을 갈아입는 동안 자선냄비도 함께 해왔다. 난로 하나 없는 밖에서 기약없이 오가는 시민들의 애틋한 손길만을 바라보며, 모금액을 달성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버텼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실천하는 이들이다."경제가 어려울수록 모금액이 더 빨리, 더 많이 모입니다. 아이러니한 현실이죠. 도내 올해 모금액은 7300만원 정도로 잡았는데, 경제가 더 어려워진다고 하니 올해도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입니다."이사관의 대답에 한씨는 올해 크리스마스 이브엔 눈이 펑펑 쏟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염없이 눈을 맞아야 하는 고단함은 있지만,'척척' 호주머니를 털어내는 사람들 덕분에 뜻하지 않은 '대박'을 만날 수 있어서다. 순식간에 목표액의 2∼3배가 넘는 성금액이 모인 적도 있으니, 눈은 그야말로 반가운 손님.첫날과 두번째 날까진 줄기차게 모아지다가 뜸해지고, 크리스마스 이브 즈음하면 또다시 자선냄비를 찾는 이들이 많아진다. 5∼6년 째 돼지저금통을, 봉투에 성금을 보내오는 날개 없는 천사도 있다.자선냄비에 100% 헌금하는 이들은 유치원 어린이·초등학교 학생들. 냄비를 보면 호주머니를 만지작 거리다가, 부모· 함께 온 어른들을 졸라 몇 백원이라도 꼭 넣는다고. 한씨는 "말쑥하게 입은 이들은 오히려 곁눈질만 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며 "셈하지 않고, 어려운 이웃들을 돕겠다는 맑은 영혼들의 뒷모습에서 고생한 걸 보상받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사람들이 많이 오고 가는 길목에 자선냄비를 설치하느라, 점포 상인들·노점상과도 갈등 아닌 갈등을 빚기도 한다. 쉴 새 없이 울려야 하는 종소리가 시끄럽다고도 하고,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해야 그날 매상이 보장되는 노점상들의 하소연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구세군 하면 자선냄비를 떠올리는 등식 또한 이들의 진가가 가려지는 대목이다. 구세군은 일년 내내 사회사업과 교회 선교로 바쁘지만, 12월 한달만 자선냄비 봉사활동을 하는 것으로 오인되기 때문.평소엔 독거노인을 위해 매주 반찬을 만들어 방문하고, 도내 병원을 찾아가는 위문 공연과 함께 고아원 등도 꾸준히 도와왔다. 하지만 교인들에 의한 지원금과 자원봉사자로만 꾸려져 각종 반경을 더 넓힐 수가 없다."제 이름이 승(勝)에 빛날엽(曄)입니다. 야구선수 이승엽은 홈런포 한 방으로 사람들의 가슴을 '뻥' 뚫리게 하지만, 저는 영적으로 뜨거운 한 방을 날리기만을 고대하고 있죠."도심 한복판에 있는 구세군의 종소리를 반기는 이들은 아름답다. 그들의 고귀한 사명을 인식하고 응원하고 격려해주는 인기척, 인간이 인간에게 베푸는 절박한 신뢰이며 사랑의 표징이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08.12.12 23:02

[김정현 교수의 철학 에세이] 감정과 삶의 동력

우리의 일상적 삶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의식활동 뿐만 아니라 감정생활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영국의 근대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말하고 있듯이 감정이 이성보다 삶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도 모른다. 감정은 인간의 삶에서 기쁨, 슬픔, 놀람, 분노, 혐오, 시기, 연민 등 다양한 형태의 정서적 언어로 표현되기도 하고, 공분, 정의감과 같이 사회적 언어로 발화되기도 한다. 또 이는 숭고함이나 아름다움과 같이 미적 언어로 표현되기도 하고, 때로는 성스러움, 허무감, 경외감, 구원과 같이 종교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기도 한다. 감정은 인간의 내면적 삶의 정서적 문법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사회, 시대, 문화, 문명 등 거시적 삶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우리는 감정 때문에 타인과 심한 심리적 갈등을 빚기도 하고, 또 사랑으로 인해 타인과 동질감을 느끼며 삶의 보람과 의미를 느끼기도 한다. 또 바닷가에 떠오르는 아침놀이나 지는 석양을 바라보거나 피어오르는 꽃봉오리나 가을의 낙엽을 보며 아름답거나 슬픈 감정을 느끼고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예술 활동을 하기도 한다. 또한 스포츠경기를 관람하며 흥분된 기분을 발산하기도 하며 집단적 감정으로 열광하기도 한다. 감정이란 이렇듯 대상을 인지하며 관계를 맺고 반응하는 인간의 주관적 느낌이자 동시에 인간 상호 간의 관계에서 상호 소통되는 보편적 언어이기도 하다.문화마다 그에 상응하는 다른 감정이 있다는 감정의 문화이론에 반대해 인류학자 폴 에크만(Paul Ekman)이 주장하고 있듯이 인간은 기쁨, 고통, 분노, 공포, 놀람, 혐오 등 기본감정을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 다른 인간들과도 감정의 소통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감정이 표현되는 것은 일정한 형식이 있다. 감정은 분노와 고통, 혐오와 공격과 같이 부정적인 심리적 에너지로 표현될 수도 있고, 기쁨이나 감사, 사랑과 같은 긍정적인 삶의 에너지를 반영하기도 한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말처럼 감정은 심리적 에너지의 흐름과 같아서 개인의 주관적 심리적 세계에 파동을 일으키기도 하며 타인의 감정에 영향을 주는 전염성이 있다.기쁨과 슬픔, 사랑과 미움, 희망과 좌절, 열정과 흥분, 행복과 불행, 안정과 공포, 쾌와 불쾌 등 다양한 감정은 우리의 삶의 회로에 들어와 접속하고 분리되고 또 다시 재접속을 하면서 삶과 끊임없이 호흡한다. 우리의 삶이란 어찌 보면 감정과의 투쟁과정이며 감정에서 인간 삶에 질료적 생명을 부여해주는 동력을 찾아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감정은 삶 자체를 파괴할 수도 있지만 나와 타인의 삶을 살리는 에너지가 될 수도 있다. 긍정적 감정은 생명의 에너지를 담고 있으며 모든 창조의 모태가 될 수 있다. 감정을 삶을 살리는 청정한 인성의 에너지로 발굴해 이를 밝은 사회적 에너지로 사용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몫이다. /김정현(원광대 인문학부 교수)

  • 문화일반
  • 전북일보
  • 2008.12.12 23:02

[이준재 교수의 맛있는 와인] 오크통과 코르크의 신비

오크통은 동양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도자기나 항아리에 술을 담가왔듯이 서양인들은 오크통을 고안해낸 이후 줄곧 오크통에서 포도주뿐만 아니라 브랜디며 위스키를 숙성시키는데 사용해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명품 와인이 되기 위해서는 오크통속에서 숙성시켜야 한다고 한다. 와인은 나무 자체의 향으로 인해 기존의 향을 상실하지 않으면서도 오크 향을 가장 잘 흡수하는 성질을 지녔기 때문에 오크통에 숙성된 와인은 맛과 향이 다르다.오크통은 단순히 향을 와인의 향을 내는 역할을 한다고만 생각할 수 있는데, 오크통이 주는 효능은 생각이상의 좋은 역할을 한다. 먼저 오크통에 와인을 보관하면 포도의 성분인 안토시아닌, 타닌, 폴리페놀, 알코올 등이 오크통에서 나는 나무 향과 복잡 다양한 화학작용을 일으켜 와인의 맛과 향이 더욱 풍부해지는데 기여한다. 물론 모든 와인을 오크통에 숙성하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오크 향에 약한 포도품종이나 날씨가 좋아 햇볕을 많이 받고 자란 해에 생산된 포도품종이나 조생종 포도품종 등은 오크통에 숙성하지 않거나 기간을 짧게 숙성하는 것이 더욱 더 향과 맛이 좋다. 또한 새 오크통에 와인을 담아 숙성하면 바닐라 맛이 나는 것이 사실이고 또한 와인 제조업자들의 희망이기도 하지만, 숙성시킬 수 있는 와인은 타닌이 풍부하고 짜임새가 좋은 와인 이어야한다. 누가 오크통을 만들었는지, 어떤 종류의 오크인지에 따라 다양한 맛과 향이 다르기 때문에 오크통이 미치는 영향은 상당부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신세계 와인들은 오크통에 향과 맛을 기대하기 보다는 과학적인 기술과 기법에 의존하여 오크통을 사용하지 않고 스테인레스 통을 이용하기도 한다.전체적으로 오크통이 주는 이점은 오크통의 통기성으로 공기와 접촉하여 세련되고 다양한 부케를 만들어주며, 60여 가지의 페놀성분을 함유한 오크통으로 인하여 바닐라 향, 양질의 타닌과 바디(body)감, 색상을 선명하고 깨끗하게 해준다.코르크마개는 단순한 병 두껑이 아니다. 코르크(cork)는 20년 이상 된 참나무(떡갈나무)의 껍질로 만든 것으로 신축성, 중성, 비부패성, 압축성이 있는 물질로서 복합적인 가스 교환에 의해 병 내부 와인의 숙성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아주 미량의 산소가 와인 속에 들어가 여러 가지 물질을 산화시켜 와인을 숙성시켜 맛을 좋게 한다. 하지만 와인 병을 눕혀서 보관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코르크가 와인에 젖어서 입구가 밀봉되어 수축으로 인해 필요 이상의 공기가 들어가서 산화작용을 방지하고자 함이다. 와인 마개의 종류는 코르크 마개, 플라스틱 마개, 나사형 마개, 금속마개 등 다양하고 사용용도와 숙성에 따라 각각의 장단점이 있지만 자연산 코르크 마개의 미세한 통기성으로 인해 가장 선호되고 있다."와인 관련 기술은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코르크 마개만은 변함이 없다▲품질 결정하는 떼루아르 - 자연환경·품·재배법 등 전반적 의미와인 품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인 떼루아르는 지정된 포도밭의 특징을 결정짓는 자연적 요소의 전반을 의미하며, 즉 자연환경과 조건(햇볕, 상대습도, 기온, 지온, 강수량, 일조량, 바람, 지형의 지리적 위치, 고도, 경사의 방향, 경사도, 토양의 성분, 토양의 유효수분, 미생물)과 품종, 재배법, 양조방법을 말한다. 유럽지역 와인 생산자들은 와인의 품질을 떼루아르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해 신세계 와인 생산자들은 품종 중심으로 포도재배 및 양조기술의 현대화로 품질을 개선할 수 있다는 이론적 주장을 하고 있다.

  • 문화일반
  • 전북일보
  • 2008.12.12 23:02

[음식의 비밀] ⑭굴

굴이 제 철을 맞았다. 자연산 굴을 먹으려면 한 달 정도 더 기다려야 하지만, 굴 주산 단지인 충남 보령시 천북면에서는 벌써 굴 축제가 한창이다.굴은 '바다의 우유'라고 불릴 정도로 맛과 영양이 좋다. 초고추장에 찍어 '후루룩' 먹는 생굴, 불 위에 철망을 깔고 굴을 올려놓으면 '툭툭' 소리를 내며 벌어지는 굴 구이, 돌솥에 굴과 대추, 인삼, 콩나물 등을 넣고 지은 굴밥, 싱싱한 생굴을 넣고 끓여내는 굴 칼국수 등 굴은 씹는 순간 입안 가득 바다의 향기가 퍼진다.굴은 간 기능이나 혈당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 뿐만 아니라 스태미너 보강과 피부 비용에 좋다. 타우린과 메니오닌, 시스테인 등의 아미노산이 풍부해 피로 회복에도 도움을 주고 간장 해독작용도 한다. 요오드도 풍부해 갑상선의 건강도 지켜준다. 한방에서는 굴이 몸 속의 열을 식혀주는 작용을 해 허약체질을 개선하고 신경쇠약과 불면증을 해소한다고 알려져 있다.굴은 남성을 더욱 남성답게, 여성을 더욱 여성스럽게 해주는 음식이다.남성의 정자를 형성하는 데 필수적인 성분인 아연이 달걀보다 30배나 많으며,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의 활성을 도와준다. 나폴레옹은 전쟁터에서도 매끼 굴을 챙겨먹었다고 한다.'배 타는 어부의 딸은 까맣고, 굴 따는 어부의 딸은 하얗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자에게도 좋다. 칼슘, 철분이 많아 빈혈, 골다공증도 예방해 준다. 불임을 예방하는 비타민E도 많다.굴에 레몬즙을 떨어뜨려 먹으면 철분 흡수율이 높아진다. 그러나 산란기인 5월과 8월 사이는 섭취를 피해야 한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8.12.12 23:02

[김병용의 기행에세이] (20)남해~통영 문학기행

남해~통영으로 흘러간다. 내가 왜 이 곳을 향하는지, 나는 안다, 편애, 넘쳐 기우는 사랑… 그러나 또, 나는 모른다, 내가 왜 이곳들에 대해 편파적인지… 하긴, 세상 어떤 외사랑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홀린 듯, 난 또 이 길 위에 섰다. 자주 찾다 보면, 거기 시간만 누적되는 것이 아니다. 마치 나이테처럼 20대부터 지금까지 내가 이 곳을 찾았을 때의 사연들이 길섶마다 숨어 있다. 나만 아는, 나만 기억하는 사연… 상사암의 아득한 높이 앞에서 나는 수직의 추락을 수도 없이 반복했으며, 항구도시의 좁은 골목길 사이사이에서 나는 종종 길을 잃었다. 사람이 사람을 부르고, 길이 길을 부르는 것처럼 아마도 하나의 추억이 또 하나의 추억을 부르는 시간의 연쇄반응 같은 것이, 내가 나를 이 곳으로 부르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어딘가를 다녀오고, 그걸 이 글과 같은 형식으로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게 되는 경우, 드물지만 가끔 딴소리를 하고 싶은 때가 있다. 마치, 어린애가 제 소중한 것을 형제들도 찾지 못하게 꼭꼭 감춰두는 것과 같은 유치함의 발로로 '난 거기 안 가봤어, 잘 몰라, 아니 별로야'라고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거짓말하고 싶은 몇 곳 중 남해와 통영이 포함된다.내가 여기 숨겨두고픈 것들이 무엇인지 이제는 조금씩 알아간다. 가파른 수직의 떨림, 가물가물한 내 마음의 수평, 늘 출렁여 가늠되지 않았던, 내 청춘의 푸른 한숨 같은 것들… 수직의 산이 보여주는 삶의 엄숙성이나 수평의 바다가 보여주는 시간의 무량함과 같은, 영구히 해독해야 하는 기호들… 나 혼자 새겨두고 나 혼자 해독하는 정밀(靜謐)한 풍경들을 누구와도 나누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남해, 수직의 사랑금산은 빼어난 산이다. 또 보리암은 향일암, 낙산사와 함께 바다를 바라보는데 그만인 3대 절집이라고도 하며, 상주나 미조포구는 비릿한 갯내가 없는 상큼한 해변이고, 편백휴양림은 그윽하고 아늑하여 늘 다시 찾고 싶은 곳이다.하지만, 내게 남해라는 곳은 상사암(想思岩)이 있는 남해이다. 많은 문학도들이 그랬듯이, 나도 이성복의 시 <남해 금산> 때문에 여기를 처음 찾았을 것이다. 무를대로 무르고 단단하다면 단단한 사랑의 신비가 돌과 물의 이미지 속에 응집되거나 풀어 헤쳐진, 한 편의 시가 어떤 초월적 사랑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켰고, 달뜬 내 발걸음을 재촉케 했을 것이다. 세상의 사랑은 모두 수직이라고 믿는 나이였으니까…사실 처음에는 좀 실망했었다. 아니, 막막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금산을 병풍 치듯 둘러싸고 있는 기암들의 빼어난 절경에도 불구하고, 그 풍경들은 내 눈밖에 있을 뿐이었다. 마음에 스미지 않는 풍경 앞에서 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생각하니 그럴 밖에… 백척간두, 생을 던지는 사랑,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을 수 있는 결기를 동경하였을 뿐, 그때 난 내게도 온전히 투신하지 못하던, 어리버리 잔망스러운 나이였다.상사암이 내 마음의 풍경으로 담긴 것은 그 뒤로도 한참 뒤, 외로운 것이 무섭고, 무서운 것에 혼자 분이 나 씩씩대기를 몇 해씩 거듭하고 있던 때였다. 어찌어찌해서 '금산산장'이란 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난 새벽, 일출을 볼 수 있을까 하여 흔들바위 쪽으로 올라갔으나 정작 내 시선은 내가 막 잠자리를 털고 나온 산장과 그 산장 너머 상사암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문득, 참으로 문득… 저 산장에서 잠을 자고 나와 나처럼 이 자리에 섰던 사람이 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70년이 되었다고도 하고, 80년이 넘었을 것이라고도 말하는 늙은 주인의 희미한 기억 저편의 시간부터 이 산장에는 사람들이 들락거렸을 것이다. 내가 잔 방에서 잠을 잔 사람들도 족히 수 만은 헤아릴 것이다, 그런 생각들… 어젯밤 나는 그들이 거쳐간 방에서 유숙함으로써 그들의 생애와 간접적으로 교차했다!그러자, 나 혼자서 '어리버리 상사암'이라고 불렀던 그 바위의 단단한 질감이 갑자기 내 눈앞에 확연해졌다. 지금은 어디로들 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한 때 금산에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수도자, 기도꾼들이 바위를 처마 삼아 풍찬노숙하고 있었다. 그들이 아침 치성을 드리기 위해 조용한 듯 부산하게 바위틈을 들락거리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절박성과 강도의 차이야 있었겠지만, 난 그 수도자들의 마음과 내 마음이 순간적으로 상사암 바위 꼭대기에서 맞부딪친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리고 또… 내가 과정(過程) 중에 있는 사람이라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길 가운데 서 있는 사람은 그 길의 끝을 볼 수 없다, 그렇지만 안다, 내 여행이 언젠가 끝나리라는 것을… 다 걸어본 사람은 자신의 행로에 대해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내가 아직 길 안에서 있어 이처럼 불안하고 흐릿한 것! 나의 열망이 나를 흔드는 것. 환시였으리라, 순간적으로 나는 상사암이 내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았다.오늘 다시 상사암에 오르니 진자앙(陳子昻)의 당시(唐詩) <등유주대가>가 절로 흘러나온다.'나보다 앞선 옛사람 만날 길 없고 / 뒤에 올 사람 또한 만날 수 없으니 / 오직 천지만이 변함없는 것을 생각하네…'한 때, 이 시만 대하면 나도 모르게 왈칵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었다, 그때는 허무의 냄새 같은 것을 맡았을 것이다. 지금은 좀 편안해졌다. 천지간에 사람의 길이 있고, 그 길에 남은 흔적들은 언젠가 풍화한다.무상(無常)이란 말을 난 요즘 변화의 역동성, 무적시의(無適時宜)와 같은 뜻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연기(緣起), 모든 것들은 서로 관련이 있다.▲ 마음의 수평선 그리운 도시, 통영바위도 사람 마음을 흔드는데, 하물며 사람임에야… 사람의 자취가 그리울 때 찾기 좋은 곳으로 통영만한 곳도 드물다. 청마 유치환, 대여 김춘수, 초정 김상옥, <토지>의 작가 박경리의 체취가 묻어 있는 곳, 20세기 세계음악의 거장 윤이상을 낳은 곳, 화가 이중섭이 살았던 곳, '통영오광대'로 이름 높아 전국의 내노라 하는 춤꾼들이 모여드는 곳, 그 외에도 사람의 손땀이 깃든 통영누비며 나전칠기 장인들이 모여 있는 곳…'문화도시'를 표방하는 곳이 전국 여러 곳이지만, 여기 통영만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절묘하게 배합된 도시는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 물려받은 유적(?)은 많지만 그저 관리만 하는 곳, 생육(生育)하는 문화도시를 표방하지만 턱없이 하드웨어가 부족한 곳… 그런 면에서 난 통영이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부럽고, 때로 존경스럽다.통영에 들어서면 맨 먼저 우리를 맞이하는 윤이상의 얼굴, 청마문학관과 내년이면 문학관으로 거듭날 대여유품전시관, 역시 개관 준비중인 박경리문학관이나 전혁림미술관과 연필등대를 둘러보는 마음도 훈훈하지만, 더 감동적인 것은 청마거리, 이중섭거리, 초정거리를 걷는 일이다. 보도에는 이곳 출신 화가들의 작품이 깔려 있고, 인적 드문 골목길에도 문학비가 서 있다. 그야말로 걷는 걸음, 눈 닿는 곳마다 '문화'가 차고 넘친다.이런 도시… 난 정말이지 이런 도시가 사무치게 그립다.통영 오는 길에, 2006년도에 잠시 체류했던 미국 아이오와의 친구로부터 메일이 왔다. 미국 아이오와시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학도시로 선정되었으니 함께 축하해달라는 내용… 체류 당시, 나를 가장 놀랍게 했던 것은 아이오와 국제창작프로그램의 견실함이나 참여작가의 면면보다도 6만 명을 조금 상회하는 소도시 주민들이 보여주는 문학에 대한 애정이었다. '초원의 빛'이라는 동네 서점에서 열리는 시 낭송회에 3~400명이 모여들고, 굳이 외국에서 온 작가들을 자기 집으로 초청해 이야기를 나누려 하던 주민들… '미국 작가치고 초원의 빛에 와서 강연회 한 번 안 해 본 사람이 없다'는 강한 자부심… 난 통영에서 그와 같은 문화적 자부심을 느낀다.대개 항구도시가 그렇지만, 통영 또한 도시의 부피는 그다지 크지 않다. 따라서, 통영은 산보하듯 걸어 다녀보면 더 좋은 동네라고 할 수 있다. 대신 날망진 골목이 많은데, 좀 힘들더라도 물어물어 동피랑 골목을 한 번 찾아보시라… 산동네(?) 비슷한 이 골목은 최근 그려진 벽화들로 거대한 전시장을 이루고 있다. 통영은 청마와 윤이상, 김춘수와 박경리만의 통영이 아니다, 거기 벽화 작업을 한 무명의 젊은 화가들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렇게 문화는 문화를 부르고, 늙음은 젊음으로 이어진다. 수평의 바다가 잔잔히 퍼져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통영의 골목골목을 살펴보라.통영에서 나는 카메라를 다시 가방에 집어넣는다. 분명 나는 이 글을 쓰고 사진을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통영에 갔지만, 메모를 하고 앵글을 맞출수록 이 글 안에, 카메라 안에 다 담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협소한 공간에 역사를 박제화하는 많은 시도들에 대해 내가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게 내가 나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이다.조용히 스며들어 옴팡 안겼다가 또 조용히 돌아나오는 것보다 더 좋은 통영 산책의 방법은 없다. 그렇게 천천히 쏘다니다 보면 '한 번에 다 보려는 욕심, 다 보았다고 말하는 오만을 버리라'고 통영은 조곤조곤 일러준다. 그래도 프레임 아웃된 풍경들이 너무 안타까워 카메라에 손이 간다면, 한 번 더 깊이 숨을 쉬고 마음의 셔터를 길게 눌러보자./김병용(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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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2.12 23:02

[문학] 詩가 사상이 된 시인 전봉건

"피아노에 앉은 / 여자의 두 손에서는 / 끊임없이 / 열 마리씩 / 스무 마리씩 / 신선한 물고기가 /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 쏟아진다. // 나는 바다로 가서 / 가장 신나게 시퍼런 / 파도의 칼날 하나를 / 집어 들었다"('피아노')강렬한 이미지의 감각적인 작품들로 전후(戰後)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시인 중 한 명이었던 전봉건(1928-1988) 시인은 종종 그 문학적 성취에 비해 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시인으로 꼽히곤 한다. 몇 년 전 한 시 계간지가 마련한 기획특집에서도 그는 박목월, 김종삼, 박인환 등과 더불어 과소평가된 시인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전봉건 시인의 시 전집이 그의 20주기를 맞아 처음으로 출간됐다. 시인 겸 문학평론가인 남진우 명지대 교수가 엮은 '전봉건시전집'(문학동네 펴냄)은 '사랑을 위한 되풀이', '속의 바다', '피리' 등 생전에 낸 시집과 시선집에 실린 작품들은 물론, 미처 시집으로 엮이지 못한 말년의 '6ㆍ25' 연작시까지 시인의 모든 작품을 망라하고 있다.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난 시인은 1950년 '문예'지에 서정주와 김영랑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왔다. 시인으로의 활동을 채 시작하기도 전에 발발한 6ㆍ25 전쟁은 그의 시세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징집돼 위생병으로 복무하다 부상을 입고 제대한 전봉건은 이후 세상을 뜨기 전까지 전쟁터에서의 체험을 담은 작품들과 전쟁 후일담격의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했다. "나는 나무를 겨누어본다 / 꼭대기의 잎사귀를 겨누어본다 / 그러다 싫어지면 쑥 총구를 높여서 / 개머리판에 뺨을 비비면 / 하늘이 가늠쇠구멍 속에 들어온다 / (중략) / 나는 하늘을 본다 / 작은 하늘은 눈에 해롭다 / 가늠쇠구멍이 흐려진다 / 나는 장난을 그만둔다"('장난' 중)"이제 / 곧 밝은 / 새벽이다 // 철조망 / 쇠가시가 / 돋는다 // 어둠 / 쓸리는 / 희뿌연 / 38도선 // 한반도 / 가로지른 / 155마일에 / 소름이 돋는다 // 살 / 찢고 / 피도 뿌리는 / 쇠가시가 / 돋는다 // 이제 / 곧 밝은 / 새벽이다 / 소름이 돋는다"('6ㆍ25 7')"사상은 시가 아니지만, 시는 사상이 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던 전 시인은 기교 있는 언어 사용을 통해 하나의 이미지를 사상으로 확장시키는 특유의 작법을 구사했다. 남 교수는 "전봉건의 이름이 지난 연대의 문학사 속에 박제화되지 않고 살아 있는 현재형의 시인으로 되살아나기 위해선 그의 텍스트가 거듭 다시 읽히고 연구되어야 할 것"이라며 "그의 시편들은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와 매력을 구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수이 경희대 교수는 "사후 이십 년이 지나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최초의 본격적인 시선집은 전봉건 시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묵시적으로, 동시에 더이상 미룰 수 없게끔 촉구하고 있다"며 "전봉건 시에 대한 치밀한 읽기과 문제의식을 통해 세부주제들을 마련하고 그것들을 유기적으로 연계해 연구작업의 밀도를 강화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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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2.11 23:02

[문학] "문학은 몰락 이후 첫 번째 표정"

문학평론가 신형철(32) 씨의 첫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문학동네 펴냄)는 무려 724쪽이나 된다. 웬만한 평론집의 두 배인 분량도 분량이지만, 내용 면에서도 시와 소설을 막론하고 최근 몇 년간 국내 문단에서 자주 언급되는 이름이나 작품이 거의 한 번 이상씩 언급됐을 정도로 알차다. 2005년 계간 '문학동네'를 통해 등단한 후 문학동네 편집위원으로 발탁된 젊은 평론가가 문학에 대한 순연한 애정을 바탕으로 부지런히 펼쳐온 색깔있는 비평활동의 결과물이다. "나의 비평은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아름답게 말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신씨가 4년 간의 성과를 정리하면서 전면에 내세운 것은 문학은 "몰락 이후 첫 번째 표정"이며 "몰락이 초래한 '에티카'(윤리학을 뜻하는 라틴어)"라는 명제다. 이는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에 대한 반론이기도 하다. "온 세계가 성공을 말할 때 문학은 몰락을 선택한 자들을 내세워 삶을 바꿔야 한다고, 세계는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문학이 이런 것이라서 그토록 아껴왔거니와, 시정의 의론(議論)들이 아무리 흉흉해도 나는 문학이 어느 날 갑자기 다른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책머리에' 중)이 책에서 저자는 우선 소설과 윤리라는 관점에서 소설에 대해 발표했던 글들을 묶고 이어 2000년대 중반에 등장한 젊은 시인들에 대한 글들을 모았다. 그는 김경주, 황병승, 김민정, 이민하, 김행숙 등의 시를 읽으며 '미래파'(권혁웅)나 '다른 서정들'(이장욱)로 명명됐던 젊은 시인들의 긍정적인 가능성을 높이 샀다. 그는 "최근의 젊은 시인들이 폐쇄적이고 자폐적이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탐색하고 있는 것은 집단적 정치학과 상상적 도덕률이 무의식중에 회피한 어떤 세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뉴웨이브 시인'들의 도래를 환영했다. 이 책에는 남진우, 김행숙, 이민하, 문혜진, 이병률의 신작 시집, 은희경, 이기호, 천운영, 편혜영, 오현종, 김애란의 신작 소설집 등에 붙인 신씨의 해설도 수록됐다. "은희경은 하나의 장르다"라거나 "김애란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도대체 가능한가?"라는, 두고두고 인용되는 해설을 선보여온 그가 섬세하고 유려하면서도 난해하지 않은 문체로 풀어낸 해설들이 한데 묶였다. 시인 겸 평론가인 권혁웅은 추천사에서 "지식이 해박하면 문장이 거칠고, 문장이 유려하면 논리가 성글고, 논리가 치밀하면 애정이 결여된 저 비평과 비판의 악무한 속에서, 신형철의 글은 단연 빛난다"며 후배 평론가의 성취에 찬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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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2.11 23:02

[전북문화의 발견] ④광주의 소극장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 조성되고 있는 광주. 광주의 소극장 역시 연극인들이 중심이 돼 있었지만, 광주지역의 연극판은 의외로 척박했다.소극장 숫자는 도시 규모나 도세 등을 기준으로 했을 때 전북지역에 비해 적은 편. 공연도 띄엄띄엄 열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소극장은 3개, 많아야 4개 정도로 밖에 볼 수 없다. 소극장이나 연극인들간의 교류도 거의 없는 듯 했다. 광주에서 만난 연극인들 역시 "광주는 미술 쪽이 강한 편이어서 우스갯소리로 '예술의 거리'는 '표구의 거리'라고 말한다"며 "광주 정도라면 6개 정도는 활발하게 활동해야 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광주의 소극장도 생성과 소멸을 반복했다. 특히 90년대는 광주의 소극장 문화에 변화가 가장 많았던 시기였다. 90년대 초반과 중반에는 씨엘아트홀과 터소극장, 아리소극장, 연바람소극장, 드라마스튜디오 등이 있었으며 후반에는 문예정터, 민들레소극장, 연바람소극장 등이 부활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부터는 관에서 지원하는 궁동예술극장이 더해졌으며, 현재는 민들레소극장과 씨디아트홀, 문예정터 등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그러나 세월의 부침 속에서도 그 안에는 늘 광주의 소극장을 부흥시키고 역사를 이어가려는 움직임들이 살아있었다. 광주의 대표적인 소극장 '씨디아트홀'과 '민들레소극장'을 찾았다.▲ 씨디아트홀씨디(Creative Drama)아트홀은 올 3월 개관했다. 광주광역시 신안동 '전남대 정문 사거리'에 위치, 대학가에 14년 만에 다시 생긴 소극장이다.씨디아트홀은 대학가에 있는 유일한 소극장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사실 시내 중심가는 임대료가 비싸기 때문에 섣불리 진입할 수가 없었다.지난달 29일 취재차 씨디아트홀을 방문했을 때에는 남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행원 대표는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 보니 돈이 생길 때마다 그 때 그 때 공사를 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씨디아트홀은 광주연극배우협회의 '밑바닥에서'란 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막심 고리키 원작의 '밑바닥에서'를 소극장에서 공연한다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시도. 이대표는 "정통연극은 물론 뮤지컬, 퍼포먼스, 비보이 등 하기로 마음만 먹으면 다 가능한 것이 바로 소극장 무대의 매력"이라고 말했다.씨디아트홀은 70석 규모로, 무대와 객석 이외에도 조명음향실과 분장실을 따로 가지고 있다. 운영을 위해서는 월 30만원 이상이 고정적으로 들어가지만, 다행히도 아직까진 공연만으로 버틸 수 있었다.그러나 짧은 역사에도 씨디아트홀이 주목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오랫동안 연극을 해 온 중견연극인 10여명이 주축이 돼 만들었기 때문. 20년 이상 연극판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은 "기존 극단의 시스템에 불만을 가지고 새로운 창작을 꿈꾸며 만났다"며 "소극장 운영도 두려움이 있었지만, 누군가는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시작했다"고 말했다.씨디아트홀은 '그곳에 가면 늘 공연이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개관 초부터 '극장을 놀리지 않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우선 계절별로 테마공연을 하기로 했다. 봄-따뜻한 연극, 여름-호러 또는 코미디, 가을-서정적 연극, 겨울-가족극 또는 악극 등. 씨디아트홀에 속해 있는 극단 씨디 이외에도 극장 가동률을 높이기 위해 대관도 한다. 대관료는 1일 15만원. 1일 30∼50만원까지 하는 서울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다.소극장 운영도 전략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문화향수권과 지정좌석제가 대표적인 예. 씨디아트홀에서 하는 작품을 모두 볼 수 있는 문화향수권은 1만5000원짜리와 1만원짜리 두 종류. 특히 개관식에서 많이 팔렸다. 지정좌석제 역시 사전예매를 유도할 수 있다. 씨디아트홀은 문화향수권과 지정좌석제를 도입, 소극장 문화를 새롭게 열어가고 있었다.▲ 민들레소극장극단 토박이가 운영하고 있는 민들레소극장은 광주 문화판에 있어 상징적 의미가 크다.1988년 광주항쟁을 다룬 작품 '금희의 오월'을 올려 전국적으로 이슈가 됐으며, 경제적 이유로 소극장이 문닫을 위기에 처했을 때 지역 문화예술인들은 자신의 작품을 내놓거나 자발적으로 모금운동을 펼쳤다.유독 대학 연극반이 활발했던 80년대. 민주항쟁과 함께 연극반원들도 수배생활을 하게되면서 70년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는 연극이나 소극장도 멈춤 상태였다. 그러나 '소극장 운동'에 대한 열망만큼은 강했다. 이해정 대표는 "그러나 연극, 미술, 음악, 문화 등 각 부분들이 결합된 문화운동이라면 모를까 광주에서 소극장들이 연대를 하는 등의 움직임은 없었다"고 말했다.토박이는 1983년 창단됐다. 민들레소극장은 89년 전남대 정문 앞에 처음 개관했다가 94년 지금의 위치인 광주광역시 궁동 예술의거리로 이전했다. 이대표는 "전대 정문시절 돈이 없어 폐관을 생각했던 적도 있었지만, 각계각층에서 민들레소극장을 지켜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폐관을 피할 수 있었다"며 "가끔 이 공간이 특별하다는 생각에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이 극장을 존속시킨 이유에 대해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이대표는 "민들레소극장은 누구나 대관이 가능하지만 아무나 하지는 못한다"고 강조했다. 극단에게 있어 소극장은 자기만의 색깔을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토박이 역시 일정부분 의식을 지닌 극단으로서 민들레소극장을 통해 메시지가 있는 작품들을 공연해 왔다. 때문에 대관에 있어서도 내용 심의는 중요하다. 관의 지원은 내부 규정을 두고 지원사업을 선별해 응모한다.민들레소극장은 1년이면 6개월 정도 가동된다. 대관료는 원래 1일 20만원이었지만, 소극장을 이용하는 이들의 형편이 대부분 넉넉치 않아 1일 10만원으로 내렸다.총 공간은 30평 정도. 객석은 80석 규모로, 가변식으로 해 작품이나 무대에 맞춰 객석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했다. 이대표는 "옛날 건물이라 천장이 낮아 사실 소극장이 들어서기에는 적합치 않다"며 "민들레소극장 역시 장기적 계획을 세우기 위해 여러가지를 모색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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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휘정·이화정·최기우·문신
  • 2008.12.10 23:02

[일과 사람] 조강래 질서문화연구회 명예이사장

"사람이 품격을 잃으면 썩은 꽃과 같습니다. 곱고 아름다운 말이 그 품격을 결정하는데, 퇴고 과정을 거친 편지야 말로 정화되고 진실된 마음을 담을 수 있게 되는 것이죠."이메일과 휴대폰 문자메시지가 아닌 손글씨로 꾹꾹 눌러쓴 편지글이 사라진 지 오래. 그 흔하디 흔한 빨간 우체통도 찾기 어려워졌다. 지난 10년간 편지쓰기 운동을 주도해온 사단법인 질서문화연구회(이사장 김영구)의 조강래 명예이사장(72·전 서울고등검찰청 사무국장)이 아니었다면, 편지를 주고 받는 정(情)은 기억으로만 남을 뻔 했다."31년간 검찰청에서 생활했습니다. 퇴직할 때 쯤 되니,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대요. 청소년이 구속돼 들어오는 걸 보면서 늘 마음 한 켠이 아릿했어요. 그 아이들을 도울 수 없을까 하고 고민했습니다."애초에 그가 염두에 두었던 것은 청소년문제연구소. 하지만 허가가 나질 않아 질서문화연구회로 법인화하면서 초등학생들로 범주를 한정해 꾸렸다. 이들만이라도 따뜻한 정이 담긴 편지를 주고 받는 게 습관화된다면, 중·고등학생으로 성장하더라도 큰 탈이 없을 거라 여겼다.매년 5월부터 모든 학교에 손수 전화를 걸어 편지쓰기 원고를 부탁하는 것은 그의 몫. 일부 학교에선 번거롭다는 이유로 거부도 하지만, 그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출간된 편지글 모음집을 읽고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는 주위의 격려도 있고, 편지글을 한아름 모아 보내주는 고마운 이들도 많다.이번에 출간된 「얘들아! 꿈은 꾸는 자의 것이란다」 (질서문화연구회)는 그의 오롯한 노력의 결과물. 부모와 자녀, 스승과 제자, 스승과 학부모, 친구, 가족·선후배간의 솔직 담백한 이야기가 있고, 코 끝 찡한 감동도 담겼다."교통사고 때문에 하늘로 먼저 간 부모 대신 아이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한 여선생의 이야기가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우리 교육에 아직 희망이 남아있다는 방증 아닐까요."그는 이어 언론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 자살과 폭행사건 등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변화돼야 한다는 것. 매체가 가진 접근성과 파급효과를 살펴볼 때 밝고 행복한 이야기가 지면으로 채워지거나 방송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08.12.09 23:02

르 클레지오, 어릴 적 꿈은 '선원'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68)는 어릴 적 꿈은 선원이 되는 것이었다고 7일 밝혔다. 스톡홀름 뉴스 등 현지언론 보도에 따르면 르 클레지오는 노벨상 수상식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어릴 적 선원이 되고 싶었지만 시력이 나빠 꿈을 접게 되었고 그 후 갖게 된 건축가의 꿈도 수학을 못해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 후 제3의 선택으로 작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선원의 꿈은 비록 이루지 못했지만 프랑스와 미국, 남미 등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문화를 탐구하고 아우르는 글을 쓰는 유목민적인 작가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노벨상 수상자라는 타이틀이 주는 의미에 대해 그는 '마이크' 하나를 얻는 것 같다며 그 마이크를 통해 '이(異)문화간의 교류'의 필요성에 대해 세상에 외치고 싶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같은 맥락에서 국가와 언어를 넘어선 공통된 의사소통 방법이 존재한다고 힘주어 말하기도 했다.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 "쓰고 싶다는 충동이 용솟음쳐 써내려갈 뿐 정치적 메시지나 이데올로기를 대변하기 위한 목적지향적인 글은 쓰지는 않는다"며 그의 작가로서의 성향에 대해 밝혔다. 그는 지금까지 가장 큰 영감을 준 작품으로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꼽으면서 "완벽하게 14세 소년의 시점에서 써내려간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에서 평생 헤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르 클레지오는 12월 10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노벨상 시상식에서 1,000만 크로나(약 118만 달러)의 상금과 함께 메달을 받을 예정이다.

  • 문화일반
  • 연합
  • 2008.12.09 23:02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