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용의 기행에세이] (20)남해~통영 문학기행
남해~통영으로 흘러간다. 내가 왜 이 곳을 향하는지, 나는 안다, 편애, 넘쳐 기우는 사랑… 그러나 또, 나는 모른다, 내가 왜 이곳들에 대해 편파적인지… 하긴, 세상 어떤 외사랑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홀린 듯, 난 또 이 길 위에 섰다. 자주 찾다 보면, 거기 시간만 누적되는 것이 아니다. 마치 나이테처럼 20대부터 지금까지 내가 이 곳을 찾았을 때의 사연들이 길섶마다 숨어 있다. 나만 아는, 나만 기억하는 사연… 상사암의 아득한 높이 앞에서 나는 수직의 추락을 수도 없이 반복했으며, 항구도시의 좁은 골목길 사이사이에서 나는 종종 길을 잃었다. 사람이 사람을 부르고, 길이 길을 부르는 것처럼 아마도 하나의 추억이 또 하나의 추억을 부르는 시간의 연쇄반응 같은 것이, 내가 나를 이 곳으로 부르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어딘가를 다녀오고, 그걸 이 글과 같은 형식으로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게 되는 경우, 드물지만 가끔 딴소리를 하고 싶은 때가 있다. 마치, 어린애가 제 소중한 것을 형제들도 찾지 못하게 꼭꼭 감춰두는 것과 같은 유치함의 발로로 '난 거기 안 가봤어, 잘 몰라, 아니 별로야'라고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거짓말하고 싶은 몇 곳 중 남해와 통영이 포함된다.내가 여기 숨겨두고픈 것들이 무엇인지 이제는 조금씩 알아간다. 가파른 수직의 떨림, 가물가물한 내 마음의 수평, 늘 출렁여 가늠되지 않았던, 내 청춘의 푸른 한숨 같은 것들… 수직의 산이 보여주는 삶의 엄숙성이나 수평의 바다가 보여주는 시간의 무량함과 같은, 영구히 해독해야 하는 기호들… 나 혼자 새겨두고 나 혼자 해독하는 정밀(靜謐)한 풍경들을 누구와도 나누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남해, 수직의 사랑금산은 빼어난 산이다. 또 보리암은 향일암, 낙산사와 함께 바다를 바라보는데 그만인 3대 절집이라고도 하며, 상주나 미조포구는 비릿한 갯내가 없는 상큼한 해변이고, 편백휴양림은 그윽하고 아늑하여 늘 다시 찾고 싶은 곳이다.하지만, 내게 남해라는 곳은 상사암(想思岩)이 있는 남해이다. 많은 문학도들이 그랬듯이, 나도 이성복의 시 <남해 금산> 때문에 여기를 처음 찾았을 것이다. 무를대로 무르고 단단하다면 단단한 사랑의 신비가 돌과 물의 이미지 속에 응집되거나 풀어 헤쳐진, 한 편의 시가 어떤 초월적 사랑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켰고, 달뜬 내 발걸음을 재촉케 했을 것이다. 세상의 사랑은 모두 수직이라고 믿는 나이였으니까…사실 처음에는 좀 실망했었다. 아니, 막막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금산을 병풍 치듯 둘러싸고 있는 기암들의 빼어난 절경에도 불구하고, 그 풍경들은 내 눈밖에 있을 뿐이었다. 마음에 스미지 않는 풍경 앞에서 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생각하니 그럴 밖에… 백척간두, 생을 던지는 사랑,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을 수 있는 결기를 동경하였을 뿐, 그때 난 내게도 온전히 투신하지 못하던, 어리버리 잔망스러운 나이였다.상사암이 내 마음의 풍경으로 담긴 것은 그 뒤로도 한참 뒤, 외로운 것이 무섭고, 무서운 것에 혼자 분이 나 씩씩대기를 몇 해씩 거듭하고 있던 때였다. 어찌어찌해서 '금산산장'이란 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난 새벽, 일출을 볼 수 있을까 하여 흔들바위 쪽으로 올라갔으나 정작 내 시선은 내가 막 잠자리를 털고 나온 산장과 그 산장 너머 상사암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문득, 참으로 문득… 저 산장에서 잠을 자고 나와 나처럼 이 자리에 섰던 사람이 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70년이 되었다고도 하고, 80년이 넘었을 것이라고도 말하는 늙은 주인의 희미한 기억 저편의 시간부터 이 산장에는 사람들이 들락거렸을 것이다. 내가 잔 방에서 잠을 잔 사람들도 족히 수 만은 헤아릴 것이다, 그런 생각들… 어젯밤 나는 그들이 거쳐간 방에서 유숙함으로써 그들의 생애와 간접적으로 교차했다!그러자, 나 혼자서 '어리버리 상사암'이라고 불렀던 그 바위의 단단한 질감이 갑자기 내 눈앞에 확연해졌다. 지금은 어디로들 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한 때 금산에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수도자, 기도꾼들이 바위를 처마 삼아 풍찬노숙하고 있었다. 그들이 아침 치성을 드리기 위해 조용한 듯 부산하게 바위틈을 들락거리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절박성과 강도의 차이야 있었겠지만, 난 그 수도자들의 마음과 내 마음이 순간적으로 상사암 바위 꼭대기에서 맞부딪친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리고 또… 내가 과정(過程) 중에 있는 사람이라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길 가운데 서 있는 사람은 그 길의 끝을 볼 수 없다, 그렇지만 안다, 내 여행이 언젠가 끝나리라는 것을… 다 걸어본 사람은 자신의 행로에 대해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내가 아직 길 안에서 있어 이처럼 불안하고 흐릿한 것! 나의 열망이 나를 흔드는 것. 환시였으리라, 순간적으로 나는 상사암이 내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았다.오늘 다시 상사암에 오르니 진자앙(陳子昻)의 당시(唐詩) <등유주대가>가 절로 흘러나온다.'나보다 앞선 옛사람 만날 길 없고 / 뒤에 올 사람 또한 만날 수 없으니 / 오직 천지만이 변함없는 것을 생각하네…'한 때, 이 시만 대하면 나도 모르게 왈칵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었다, 그때는 허무의 냄새 같은 것을 맡았을 것이다. 지금은 좀 편안해졌다. 천지간에 사람의 길이 있고, 그 길에 남은 흔적들은 언젠가 풍화한다.무상(無常)이란 말을 난 요즘 변화의 역동성, 무적시의(無適時宜)와 같은 뜻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연기(緣起), 모든 것들은 서로 관련이 있다.▲ 마음의 수평선 그리운 도시, 통영바위도 사람 마음을 흔드는데, 하물며 사람임에야… 사람의 자취가 그리울 때 찾기 좋은 곳으로 통영만한 곳도 드물다. 청마 유치환, 대여 김춘수, 초정 김상옥, <토지>의 작가 박경리의 체취가 묻어 있는 곳, 20세기 세계음악의 거장 윤이상을 낳은 곳, 화가 이중섭이 살았던 곳, '통영오광대'로 이름 높아 전국의 내노라 하는 춤꾼들이 모여드는 곳, 그 외에도 사람의 손땀이 깃든 통영누비며 나전칠기 장인들이 모여 있는 곳…'문화도시'를 표방하는 곳이 전국 여러 곳이지만, 여기 통영만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절묘하게 배합된 도시는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 물려받은 유적(?)은 많지만 그저 관리만 하는 곳, 생육(生育)하는 문화도시를 표방하지만 턱없이 하드웨어가 부족한 곳… 그런 면에서 난 통영이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부럽고, 때로 존경스럽다.통영에 들어서면 맨 먼저 우리를 맞이하는 윤이상의 얼굴, 청마문학관과 내년이면 문학관으로 거듭날 대여유품전시관, 역시 개관 준비중인 박경리문학관이나 전혁림미술관과 연필등대를 둘러보는 마음도 훈훈하지만, 더 감동적인 것은 청마거리, 이중섭거리, 초정거리를 걷는 일이다. 보도에는 이곳 출신 화가들의 작품이 깔려 있고, 인적 드문 골목길에도 문학비가 서 있다. 그야말로 걷는 걸음, 눈 닿는 곳마다 '문화'가 차고 넘친다.이런 도시… 난 정말이지 이런 도시가 사무치게 그립다.통영 오는 길에, 2006년도에 잠시 체류했던 미국 아이오와의 친구로부터 메일이 왔다. 미국 아이오와시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학도시로 선정되었으니 함께 축하해달라는 내용… 체류 당시, 나를 가장 놀랍게 했던 것은 아이오와 국제창작프로그램의 견실함이나 참여작가의 면면보다도 6만 명을 조금 상회하는 소도시 주민들이 보여주는 문학에 대한 애정이었다. '초원의 빛'이라는 동네 서점에서 열리는 시 낭송회에 3~400명이 모여들고, 굳이 외국에서 온 작가들을 자기 집으로 초청해 이야기를 나누려 하던 주민들… '미국 작가치고 초원의 빛에 와서 강연회 한 번 안 해 본 사람이 없다'는 강한 자부심… 난 통영에서 그와 같은 문화적 자부심을 느낀다.대개 항구도시가 그렇지만, 통영 또한 도시의 부피는 그다지 크지 않다. 따라서, 통영은 산보하듯 걸어 다녀보면 더 좋은 동네라고 할 수 있다. 대신 날망진 골목이 많은데, 좀 힘들더라도 물어물어 동피랑 골목을 한 번 찾아보시라… 산동네(?) 비슷한 이 골목은 최근 그려진 벽화들로 거대한 전시장을 이루고 있다. 통영은 청마와 윤이상, 김춘수와 박경리만의 통영이 아니다, 거기 벽화 작업을 한 무명의 젊은 화가들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렇게 문화는 문화를 부르고, 늙음은 젊음으로 이어진다. 수평의 바다가 잔잔히 퍼져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통영의 골목골목을 살펴보라.통영에서 나는 카메라를 다시 가방에 집어넣는다. 분명 나는 이 글을 쓰고 사진을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통영에 갔지만, 메모를 하고 앵글을 맞출수록 이 글 안에, 카메라 안에 다 담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협소한 공간에 역사를 박제화하는 많은 시도들에 대해 내가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게 내가 나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이다.조용히 스며들어 옴팡 안겼다가 또 조용히 돌아나오는 것보다 더 좋은 통영 산책의 방법은 없다. 그렇게 천천히 쏘다니다 보면 '한 번에 다 보려는 욕심, 다 보았다고 말하는 오만을 버리라'고 통영은 조곤조곤 일러준다. 그래도 프레임 아웃된 풍경들이 너무 안타까워 카메라에 손이 간다면, 한 번 더 깊이 숨을 쉬고 마음의 셔터를 길게 눌러보자./김병용(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