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용의 기행에세이] (18)강진~해남~보길도 문학기행
▲ 문학기행, 문학의 육체성에 대하여요즘 들어 문학은 순전히 묵독(?讀)의 대상이다. 혼자 읽고 혼자 생각하며, 역시 홀로 외롭게 골방에서 글을 썼을 작가와 텍스트를 사이에 둔 고독한 대화를 시도하는 것… 이런 관행의 반복 속에서 문학은 점차 더 깊이 내면화되는 과정을 걸어왔다. 소리 내어 책을 읽던 것이 묵독으로 바뀐 지금, 몸을 부려 문학 현장을 찾는다는 문학기행은 마치, 다시 낭독의 육체성을 회복하자는 것만큼이나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겨질 때도 있다.작품은 작가의 육체적 노동을 통해서 탄생하고, 그가 살고 있는 현장의 시공간과 정직하게 결부된다는 것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애써 외면한다. 사실 이것은 독서 또한 몇 시간 이상의 육체적 집중을 요구하는 일이란 것과 깊이 관련이 있을 거다.책을 읽고 그 텍스트의 시공간을 마음대로 상상하는 것에 많은 이들이 익숙한 지금, 여기가 작품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라고 내려놓으면, 감탄보다는 실망이 먼저 터져 나오기 일쑤이다. 이렇게 구질구질한 곳이었어요?… <토지>의 악양 들판, <혼불>의 서도역, <지리산> 칠선계곡에서도 작품 따로, 풍경 따로…사실 작품과 현장의 관계란 것이 그렇다. 어떤 현장이든 실제로 가서 보면 작가의 미학적 재구성에 의해 구축된 작품의 내적 풍경만 못할 수밖에 없다. 난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문학기행이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말하곤 한다. '우리 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잡동사니 같은 부스러기 풍경들을 모아, 한 작가는 혼신의 힘을 다 해 그걸 새로운 풍경으로 재구성한다. 문학은 멀리 있지 않다, 찬찬히 들여다보고 깊이 생각하는 동안의 그 시간과 육체적 고련을 견디는 사람은 누구나 문학의 한 진경(眞境)에 다가갈 수 있다는 걸 이 풍경들이 일러준다'하지만 텍스트의 독자들은 밖에 나오면 완벽한(?) 풍경의 관람객으로 돌아선다. 텍스트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자연스럽게 오버랩시키거나 텍스트와 풍경 사이에 빚어지는 팽팽한 긴장에 자신을 던지려 하지 않는다.▲ 해남~강진~보길도로 가는 길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학생들이 함께 하는 가을 문학기행 코스가 강진~해남~보길도 잡혔다기에, 박성우 시인과 함께 얼른 동참 신청을 했다. 찾아보면 전국에 산재한 것이 문학기행 코스들이고, 그 모두 소중한 문학 유산과 추억을 담고 있는 곳이지만, 이 지역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는 곳을 찾아내기도 쉽지 않다. 다산초당과 백련사, 김영랑생가, 김남주 생가, 고정희 생가, 보길도 부용동과 같은 본 코스(?) 외에도 윤두서 자화상을 볼 수 있는 녹우당, 영암 월출산과 해남 대흥사, 미황사, 땅끝마을과 마침내 우리 앞에 펼쳐지는 남해 바다…산과 바다, 눈 돌릴 곳이 너무 많다는 것, 좀 과장하자면, 완물상지(玩物喪志)를 경계해야 할 정도이다. 길의 아름다움에 의해 나도 모르게 두 발이 길 바깥에 나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하지만, 원래 문학기행이란 말 속에는 작가와 작품의 행로를 따라 가는 추체험(追體驗)과 함께 이를 통해 스스로 문학적 감동에 이르는 자발적 행위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어디 보길도가 윤선도만의 보길도이고, 목련이 김영랑만 울리겠는가…▲ 유배의 원초성터럭 한 올까지 모두 불불이 일어서 있는 윤두서의 자화상… 나는 이곳에서 만나는 모든 풍경들이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이 지역은 서울에서 멀다는 이유로 왕조가 지탱되던 시기 내내 유배지로 활용되었던 곳이다. 이런 유배지들은 대개 당시 집권자들의 눈으로 보았을 때 왕화(王化)의 손길이 덜 미치고, 풍파의 흔적을 고스란히 노출한 원악지(遠惡地)들이었다. 이곳이 이제는 절경이 되었다.아름다움이 극에 달하면 서럽게 여겨진다는 말을 나는 한동안 대책 없는 낭만 지상주의자들의 철없는 소리처럼 여겼었다. 그걸 수정하게 해준 것도 이 지역이었다.영암 월출산에 뻗어내린 산기운이 바다로 쑥 밀고 들어간 자리에 해남반도가 들어서고, 이에 질세라 바다는 땅거죽에 이빨자국을 새기듯 강진만으로 밀고 들어왔다. 진도와 완도는 좌청룡 우백호처럼 서 있고, 다도해 군도들이 시립해 있는 곳… 철을 가릴 것 없이 언제나 이곳의 풍경은 변화무쌍하다. 인간의 손을 타지 않는 자연의 원초적 관능이 이 지역 전체를 휘감는다. 여름이면 한없이 짙푸르고, 겨울이면 당당하게 스산하다.아…한데, 여기서 이 풍경들만 보고 있으란다. 다른 말은 하면 안 된단다… 이만치 폭폭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아름다운 풍경 앞에 서면 인간의 궁벽함은 스스로 유난하다.다산초당에서도 보길도에서도 난 간혹 이런 환청에 시달린다. '나라고 왜 서롭고 억울하지 않겠는가, 왜 울고 싶지 않겠는가?'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고통스러운 단어가 '억울(抑鬱)'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으로 인해서든 남을 통해서든 상처받은 자는 누구나 울분을 느낀다. 한데, 그 울분을 토하면 안 되는 것, 누르고 또 억누르는 것이 '억울'이다… 이중의 상처, 끝끝내 말하면 안 되는 것! 그러니 피를 토하고 죽을 일이다. 자신이 가련해 울고 싶어도 참고, 짧은 인생의 부침이 가소로워도 웃을 수 없었던 이들… 그중에 몇 명만이 간신히 독락(獨樂)의 경지를 이뤘을 것이다. 윤선도나 정다산, 흑산도에서 <자산어보>를 썼던 정약전이나 제주도에 유배되었던 추사 등이 그런 사람들이다.▲ 냇내나는 밤불을 피울 때 나는 매캐한 연기와 함께 옷에 배는 냄새를 말하는 '불내'나 '냇내'라는 단어는 이제 곧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불을 피우고 거기 옹기종기 둘러 선 경험이 줄어드는데, 그 상황에서만 쓸 수 있는 말이 저 혼자 아무데나 가 붙어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보길도의 밤. 몇몇이 모닥불을 피우고 둘러섰다. 황당한 생각이긴 하지만, 나는 원(圓)이라는 개념은 모닥불 주변에서 탄생했을 거라고 제멋대로 상상하곤 한다, 어차피 문학기행이니까…타오르는 불의 기운을 정점으로 그 따뜻함을 공평하게 나누는 방법은 둥그렇게 둘러서는 것이다. 또, 따뜻함을 욕심내 더 가까이 가 봐야 뜨겁기만 할 뿐이다. 데지 않고, 춥지도 않은 그 적당한 거리…! 자연스레 불기운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은 테두리를 만든다. 이 속에서 나는 온전한 개인이며, 또한 자발적인 집단의 일원이다. 불기운에 맞춰 통나무를 밀어 넣을 때는 내가 그 풍경의 주인이고, 박성우 시인이 불땀 조절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면 구경꾼이다. 오늘도 그렇다. 고정희의 서재에서, 김남주가 하염없이 내려보았을 해남벌에서, 다산과 초의선사의 강진만에서 우리는 구경꾼이었다가 펜을 들어 메모를 하거나 카메라의 앵글을 고민하는 순간, 내 문학의 주인이 된다.불을 쬐는 옆 학생에게 오늘 문학기행이 어떠했느냐고 물었다. "여긴 너무 멀어요. 근처에 너무 슈퍼도 없고 길은 너무 캄캄하고 너무 무섭고…", 연발되는 '너무'가 자신을 겨냥하진 못 한다. 다시 물었다. "그럼, 여기 다시 오고 싶지 않겠네?" 잠시 고민하더니 이렇게 답한다. "너무 멀지만 너무 보고 싶을 것 같아요."… 나는 그 학생에게 언젠가 다시 물어볼 것이다, 무엇이 그토록 너무 보고 싶은지…물론, 선생 된 자의 희망으로는 '그때 너무, 너무…라고 말했던 저를 보고 싶어요' 라는 대답을 듣고 싶지만, 지금부터는… 묵언(?言)이다. 내게도 박 시인에게도, 선배 교수들에게도 모두 '너무'의 시기가 있었을 것이다, 거길 넘어오는 과정이 문학의 길이다. 냇내 나는 이 밤을 언젠가 '너무' 그리워하게 된다면, 저 학생은 이 길을 다시 밟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때는 묻지 않아도, '너무'라는 말로 뭉개버린 감동의 세세함을 먼저 말하지 않겠는가./김병용(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