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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문학으로 세상 바꾸자…" 전북민족문학인협의회 창립 20주년

인간만이 인간을 구할 수 있고, 인간만이 인간에게 다가설 수 있으며, 인간만이 인간을 위로할 수 있다는 그 단순 명료한 진리에 '희망'을 걸었던 시절이 있었다.격변기 현실로 청년들의 헛헛한 가슴을 달래줄 문학적 동인이 필요했던 1980년대.'남민시 동인'의 발족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다. 친구나 선후배 사이로 얽히고, 술자리에서 만난 젊은 문학청년 최동현 이병천 고 박배엽 백학기 박남준씨가 문학의 새로운 에너지를 회복하자는데 공감대를 형성해 '남민시 동인'이 창립됐다. 정양 선생의 부추김도 있었지만, 일종의 소명의식으로 제작비도 없는 상황에서 동인지 「빈 들에 쓰러져 우는 사람아」「풀씨여 풀씨여」 등을 발간하며 변혁운동에 동참했다.하지만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시민들의 저항이 터져나오면서 사회 각계에서 조직화된 활동이 시작됐다. 이병천 시인은 소설로 전향했고, 고 박배엽 시인은 시를 쓰지 않았으며, 정인섭 시인은 트라피스트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등 각자의 길을 찾아가면서 내부 동인이 떨어져 '발전적 해체'가 이뤄졌다.민족문학운동을 모색한 '남민시 동인'은 1988년 6월'전북민족문학인협의회(이하 민문협)'을 결성해 '민족공동체의 건강한 생활을 올바르게 반영한다'는 기치로 민족민중문학의 시대를 열게 됐다. 이들은 당시 30대 젊은 문학인들이 주축이 되어 원로와 중견 시인·작가들까지 참여의 폭을 넓히면서'양심수 석방을 위한 문학의 밤''참교육 실현을 위한 시와 노래의 밤' 등을 통해 문학의 사회적 역할에 중심을 두고, '민족문학강좌' '창작교실' '시인학교' 등을 통해 지역문학의 대중화를 위한 큰 얼개를 형성했다.지난 시대에 대한 반성과 시대 성찰을 위해 「사람의 문학」 을 창간했던 것은 괄목할 만한 성과. 역사의 흐름에 노골적인 반기를 들었으나, 결국 희망은 사람에게 있다는 믿음을 담아 이름도 「사람의 문학」 으로 만들었다. 대구경북작가회의가 똑같은 제호의 기관지를 창간해 이름을 두고 티격태격하기도 했지만, 양보하자는 내부 의견에 따라 「작가의 눈」으로 거듭났다. 혼탁한 세상 속에서도 두 눈을 밝히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자는 회원들의 의지가 담겼다.1997년 '좀 더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차원에서 사업을 준비하고 실천하자'는 분위기에서 '민문협'은 법인화가 이뤄졌고,'민족문학작가회의 전북지회'약칭으로는 '전북작가회의'를 사용하게 됐다.같은 해 4월19일 '민문협'은 보다 강력하고 힘 있는 문인들의 모임으로 전환해 참다운 민족문학 지향을 목적으로 '전북작가회의'를 결성했다. 민족주체성 회복의 목소리가 드높았던 시대적 요청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고자 열악한 사회단체를 도와 성명서 발표를 했고, '동학농민혁명역사교실' '광복60주년 기념 다시 찾은 군산항 기행' 등을 통해 역사를 문학정신으로 회복하는 일에도 앞장섰다.'월례문학토론회'는 회원들의 창작활동의 깊이와 너비를 볼 수 있는 자리. 회원들에게는 자신의 문학에 대한 냉철한 중간 점검과 새로운 의욕을 갖게 해주는 자리였으며, 일반인들에게는 문학에 대한 깊은 맛을 느끼게 하는 기회였다.'전북고교생백일장' '전북지역 대학생 문예워크숍'을 통해 문학청년들에게 희망을 담아냈고, 시민을 위한 '여름시인학교' '문학강연'을 통해 문학의 대중화에 기여할 수 있는 행사도 꾸준히 꾸려왔다.최근에 시도했던 '전북문학지도' 발간과 '온라인 전북문학지도'는 가장 긍정적인 반향을 얻었던 작업이었다. 평론가 임명진·이대규씨, 소설가 김병용·최기우씨 등 회원들이 발싸심한 공을 들여 개인적인 글쓰기를 뛰어넘어 도민들을 위해 문학단체가 진정으로 할 수 있는 문필작업이라는데 긍정적인 공감대를 얻었다.창립 20주년을 맞은 전북작가회의의 발걸음을 담아내는 일은 전북 문학의 역사를 엮어내는 작업이다. 지금보다 더 외롭게 글을 쓰는 작가들이 모여 웃고 떠드는 공간으로, 도내 민족예술활동을 확산시키는 구심체 역할을 하는 곳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고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08.12.01 23:02

[김병용의 기행에세이] (18)강진~해남~보길도 문학기행

▲ 문학기행, 문학의 육체성에 대하여요즘 들어 문학은 순전히 묵독(?讀)의 대상이다. 혼자 읽고 혼자 생각하며, 역시 홀로 외롭게 골방에서 글을 썼을 작가와 텍스트를 사이에 둔 고독한 대화를 시도하는 것… 이런 관행의 반복 속에서 문학은 점차 더 깊이 내면화되는 과정을 걸어왔다. 소리 내어 책을 읽던 것이 묵독으로 바뀐 지금, 몸을 부려 문학 현장을 찾는다는 문학기행은 마치, 다시 낭독의 육체성을 회복하자는 것만큼이나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겨질 때도 있다.작품은 작가의 육체적 노동을 통해서 탄생하고, 그가 살고 있는 현장의 시공간과 정직하게 결부된다는 것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애써 외면한다. 사실 이것은 독서 또한 몇 시간 이상의 육체적 집중을 요구하는 일이란 것과 깊이 관련이 있을 거다.책을 읽고 그 텍스트의 시공간을 마음대로 상상하는 것에 많은 이들이 익숙한 지금, 여기가 작품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라고 내려놓으면, 감탄보다는 실망이 먼저 터져 나오기 일쑤이다. 이렇게 구질구질한 곳이었어요?… <토지>의 악양 들판, <혼불>의 서도역, <지리산> 칠선계곡에서도 작품 따로, 풍경 따로…사실 작품과 현장의 관계란 것이 그렇다. 어떤 현장이든 실제로 가서 보면 작가의 미학적 재구성에 의해 구축된 작품의 내적 풍경만 못할 수밖에 없다. 난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문학기행이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말하곤 한다. '우리 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잡동사니 같은 부스러기 풍경들을 모아, 한 작가는 혼신의 힘을 다 해 그걸 새로운 풍경으로 재구성한다. 문학은 멀리 있지 않다, 찬찬히 들여다보고 깊이 생각하는 동안의 그 시간과 육체적 고련을 견디는 사람은 누구나 문학의 한 진경(眞境)에 다가갈 수 있다는 걸 이 풍경들이 일러준다'하지만 텍스트의 독자들은 밖에 나오면 완벽한(?) 풍경의 관람객으로 돌아선다. 텍스트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자연스럽게 오버랩시키거나 텍스트와 풍경 사이에 빚어지는 팽팽한 긴장에 자신을 던지려 하지 않는다.▲ 해남~강진~보길도로 가는 길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학생들이 함께 하는 가을 문학기행 코스가 강진~해남~보길도 잡혔다기에, 박성우 시인과 함께 얼른 동참 신청을 했다. 찾아보면 전국에 산재한 것이 문학기행 코스들이고, 그 모두 소중한 문학 유산과 추억을 담고 있는 곳이지만, 이 지역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는 곳을 찾아내기도 쉽지 않다. 다산초당과 백련사, 김영랑생가, 김남주 생가, 고정희 생가, 보길도 부용동과 같은 본 코스(?) 외에도 윤두서 자화상을 볼 수 있는 녹우당, 영암 월출산과 해남 대흥사, 미황사, 땅끝마을과 마침내 우리 앞에 펼쳐지는 남해 바다…산과 바다, 눈 돌릴 곳이 너무 많다는 것, 좀 과장하자면, 완물상지(玩物喪志)를 경계해야 할 정도이다. 길의 아름다움에 의해 나도 모르게 두 발이 길 바깥에 나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하지만, 원래 문학기행이란 말 속에는 작가와 작품의 행로를 따라 가는 추체험(追體驗)과 함께 이를 통해 스스로 문학적 감동에 이르는 자발적 행위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어디 보길도가 윤선도만의 보길도이고, 목련이 김영랑만 울리겠는가…▲ 유배의 원초성터럭 한 올까지 모두 불불이 일어서 있는 윤두서의 자화상… 나는 이곳에서 만나는 모든 풍경들이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이 지역은 서울에서 멀다는 이유로 왕조가 지탱되던 시기 내내 유배지로 활용되었던 곳이다. 이런 유배지들은 대개 당시 집권자들의 눈으로 보았을 때 왕화(王化)의 손길이 덜 미치고, 풍파의 흔적을 고스란히 노출한 원악지(遠惡地)들이었다. 이곳이 이제는 절경이 되었다.아름다움이 극에 달하면 서럽게 여겨진다는 말을 나는 한동안 대책 없는 낭만 지상주의자들의 철없는 소리처럼 여겼었다. 그걸 수정하게 해준 것도 이 지역이었다.영암 월출산에 뻗어내린 산기운이 바다로 쑥 밀고 들어간 자리에 해남반도가 들어서고, 이에 질세라 바다는 땅거죽에 이빨자국을 새기듯 강진만으로 밀고 들어왔다. 진도와 완도는 좌청룡 우백호처럼 서 있고, 다도해 군도들이 시립해 있는 곳… 철을 가릴 것 없이 언제나 이곳의 풍경은 변화무쌍하다. 인간의 손을 타지 않는 자연의 원초적 관능이 이 지역 전체를 휘감는다. 여름이면 한없이 짙푸르고, 겨울이면 당당하게 스산하다.아…한데, 여기서 이 풍경들만 보고 있으란다. 다른 말은 하면 안 된단다… 이만치 폭폭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아름다운 풍경 앞에 서면 인간의 궁벽함은 스스로 유난하다.다산초당에서도 보길도에서도 난 간혹 이런 환청에 시달린다. '나라고 왜 서롭고 억울하지 않겠는가, 왜 울고 싶지 않겠는가?'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고통스러운 단어가 '억울(抑鬱)'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으로 인해서든 남을 통해서든 상처받은 자는 누구나 울분을 느낀다. 한데, 그 울분을 토하면 안 되는 것, 누르고 또 억누르는 것이 '억울'이다… 이중의 상처, 끝끝내 말하면 안 되는 것! 그러니 피를 토하고 죽을 일이다. 자신이 가련해 울고 싶어도 참고, 짧은 인생의 부침이 가소로워도 웃을 수 없었던 이들… 그중에 몇 명만이 간신히 독락(獨樂)의 경지를 이뤘을 것이다. 윤선도나 정다산, 흑산도에서 <자산어보>를 썼던 정약전이나 제주도에 유배되었던 추사 등이 그런 사람들이다.▲ 냇내나는 밤불을 피울 때 나는 매캐한 연기와 함께 옷에 배는 냄새를 말하는 '불내'나 '냇내'라는 단어는 이제 곧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불을 피우고 거기 옹기종기 둘러 선 경험이 줄어드는데, 그 상황에서만 쓸 수 있는 말이 저 혼자 아무데나 가 붙어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보길도의 밤. 몇몇이 모닥불을 피우고 둘러섰다. 황당한 생각이긴 하지만, 나는 원(圓)이라는 개념은 모닥불 주변에서 탄생했을 거라고 제멋대로 상상하곤 한다, 어차피 문학기행이니까…타오르는 불의 기운을 정점으로 그 따뜻함을 공평하게 나누는 방법은 둥그렇게 둘러서는 것이다. 또, 따뜻함을 욕심내 더 가까이 가 봐야 뜨겁기만 할 뿐이다. 데지 않고, 춥지도 않은 그 적당한 거리…! 자연스레 불기운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은 테두리를 만든다. 이 속에서 나는 온전한 개인이며, 또한 자발적인 집단의 일원이다. 불기운에 맞춰 통나무를 밀어 넣을 때는 내가 그 풍경의 주인이고, 박성우 시인이 불땀 조절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면 구경꾼이다. 오늘도 그렇다. 고정희의 서재에서, 김남주가 하염없이 내려보았을 해남벌에서, 다산과 초의선사의 강진만에서 우리는 구경꾼이었다가 펜을 들어 메모를 하거나 카메라의 앵글을 고민하는 순간, 내 문학의 주인이 된다.불을 쬐는 옆 학생에게 오늘 문학기행이 어떠했느냐고 물었다. "여긴 너무 멀어요. 근처에 너무 슈퍼도 없고 길은 너무 캄캄하고 너무 무섭고…", 연발되는 '너무'가 자신을 겨냥하진 못 한다. 다시 물었다. "그럼, 여기 다시 오고 싶지 않겠네?" 잠시 고민하더니 이렇게 답한다. "너무 멀지만 너무 보고 싶을 것 같아요."… 나는 그 학생에게 언젠가 다시 물어볼 것이다, 무엇이 그토록 너무 보고 싶은지…물론, 선생 된 자의 희망으로는 '그때 너무, 너무…라고 말했던 저를 보고 싶어요' 라는 대답을 듣고 싶지만, 지금부터는… 묵언(?言)이다. 내게도 박 시인에게도, 선배 교수들에게도 모두 '너무'의 시기가 있었을 것이다, 거길 넘어오는 과정이 문학의 길이다. 냇내 나는 이 밤을 언젠가 '너무' 그리워하게 된다면, 저 학생은 이 길을 다시 밟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때는 묻지 않아도, '너무'라는 말로 뭉개버린 감동의 세세함을 먼저 말하지 않겠는가./김병용(소설가)

  • 문화일반
  • 전북일보
  • 2008.11.28 23:02

명동성당 앞서 사형반대의 날 행사

▲천주교와 불교, 원불교, 개신교 인사들이 다수 참여하는 사형제폐지범종교인연합은 30일 오후 5시 명동성당 입구에서 '사형 반대의 날' 행사를 한다. 이 행사에서는 사형폐지 입법을 청원하기 위한 일반인의 서명을 받으며 오후 7시 명동성당에서 사형폐지기원 미사를 봉헌한다. 이어 8시에는 인근 건물에 조명을 비춰 메시지를 전하는 '생명의 빛' 퍼포먼스가 열린다.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2006년 3월 주교단 전원과 신자 11만5천861명이 서명한 사형폐지특별법 입법 청원을 17대 국회에 제출해 국회의원 175명이 법안을 발의했으나 회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불교환경연대와 놀이패 마루는 인간이 자연과 공생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노래로 표현한 마당극 '강의 노래'를 12월11-16일 서울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내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공연한다. 놀이패 마루 측은 "자연과 인간이 교감하며 살아가는 꿈과 생명의 존엄과 소중함이 무너지지 않는 꿈을 꾸어야 한다는 것을 자성하고 서로 격려하고자 이 공연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 마당극은 강을 따라 도보로 순례했던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을 모티프로 삼았으며 강물이 흐르며 물고기와 새떼, 농부와 어우러진 모습을 노래 등으로 표현한다. 관람료는 일반 2만 원, 단체 1만 원. ☎(02) 753-2183▲서해 천수만에 인접한 서산 부석사는 절에 머물며 새해를 맞거나, 천수만 철새를 찾아보는 일정을 포함한 절 체험 참여자를 모집한다. '해맞이' 절 체험은 12월31일과 2009년 1월1일 이틀간이며, '천수만 철새 탐조 여행'은 12월부터 내년 3월까지 매주 주말과 휴일 이틀에 걸쳐 이뤄진다. 참가비는 해맞이가 3만 원, 철새 탐조 여행은 성인 4만 원, 초등학생 3만 원. ☎(041) 662-3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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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1.28 23:02

[문학] 고은 시인 일기 '바람의 기록' 연재 마무리

고은 시인이 월간 문예지 '문학사상'에 연재하던 1970년대의 일기 '바람의 기록'이 23회를 끝으로 연재를 마무리했다. 27일 출간된 '문학사상' 12월호에는 1976년 5월10일부터 6월16일까지 쓴 일기 '바람의 기록 23'이 마지막으로 수록됐다. 지난해 1월호부터 2년간 연재된 '바람의 기록'은 1974년 3월부터 2년 여 동안 고은 시인의 일상과 동료 문인들과의 교류, 시대적 고민까지를 진솔하게 보여줬다. 이번 호에 실린 일기에는 "60년대 말 70년대 초 동성연애로 오해될 만큼 하루하루를 함께 보낸" 소설가 최인훈의 귀국과 민음사 '세계의 문학' 창간, 김지하 공판 등을 둘러싼 시인의 일상이 담겼다. "4년 만에 귀국한 최인훈이 왔다. 껴안았다. 그래 미국 어땠어? 미국, 천국이야 하고 인훈이 반농으로 말했다. 내가, 여기도 유신천국이야 하고 말했고 서로 쓰겁게 웃었다."(5월12일)'시'와 '문학'에 대한 시인의 끊임없는 고민도 확인할 수 있다. "집에 왔다. 시가 또 나왔다. 시가 자꾸 나온다. 무섭다. 자칫 벼랑 끝 바다에 추락하는 무서움이다. 아기의 우물가 위험이다. 시는 환희의 뒤쪽에 웅크린 공포이다"(6월3일)"도통한 시 하나 나왔다. 바보들은 이런 시를 허세라 하겠지. 불쌍한 놈들이다. 이백이나 선의 게송을 통 맛 못 보는 것들이 무슨 시를 안다 하겠는가. 시는 풍경과 내면 묘사의 말재롱으로는 안 된다. 시는 쓰디쓰고 놀랍고 그리고 불인(不仁)함이다"(6월7일)지금도 꾸준히 일기를 쓰고 있다는 고은 시인은 1976년 이후의 일기도 다른 문예지에서 연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문화일반
  • 연합
  • 2008.11.28 23:02

환구대제, 100여년만에 부활

조선의 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국가적 제천의례인 환구대제가 100여 년 만에 서울 한복판에서 재현됐다.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사장 이환의)은 27일 낮 12시부터 약 한 시간 동안 3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 있는 환구단 터(사적 157호)에서 환구대제를 봉행했다. 환구대제란 왕이 하늘을 받드는 둥근 제단(환구단)에서 하늘을 다스리는 신(神)인 황천상제(皇天上帝), 해, 달, 북두칠성, 별자리 28수(宿), 천둥, 바람, 구름, 오행(五行) 등 16신위에 제를 올리는 것을 말한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는 이원(의친왕의 손자) 씨를 비롯한 제관 58명이 환구단 터의 황궁우(신위를 모신 3층짜리 건축물)에서 분향 의식, 세 번에 걸쳐 잔을 올리는 의식(초헌-아헌-종헌례), 제사 때 읽은 축문 등을 태우는 망료례(望燎禮)의 순으로 환구대제를 재현했다. 이환의 이사장은 "고종황제 이후 소멸된 의식을 되살림으로써 국민의 자주성을 고취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평한 후 "앞으로 매년 환구대제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환구대제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천자만 할 수 있다는 명(明)의 압력으로 세조 이후 폐지됐다. 이후 고종 황제가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부활시켰지만 일제 강점으로 또 다시 폐지되는 수난을 겪었다. 환구대제는 선대 왕에 대한 제사인 종묘대제, 땅과 곡식 신에 대한 제향인 사직대제와 함께 '천지인'(天地人)을 상징하는 조선의 국가의례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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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08.11.28 23:02

[김정현 교수의 철학 에세이] 고독과 홀로서기

삶을 살아가는 과정은 어쩌면 고독과의 싸움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매일 친구나 가까운 사람들을 만나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고 갈등을 빚거나 화해하는 등 타인과 삶의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간다. 심심하면 친구들과 백화점에 가서 쇼핑하고 식사하면서 하루를 소일하기도 하고, 마음이 답답하면 하루 종일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하기도 하고, 적적하면 동우회를 만들어 운동하고 취미활동을 하는 등 여가시간을 보낸다.그러나 이러한 생활이 우리를 근본적으로 만족시켜줄 수는 없다. 여가와 취미가 있어도 때로 사람들은 내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무언가 모를 갈증과 허기를 느낀다. '기분전환'을 통해 인간이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로부터 도피하고 있다는 파스칼의 말처럼 우리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주위의 친숙한 사람들 속에서도, 여가나 취미생활 속에서도 여전히 존재의 고독을 느낀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데 가슴 속에는 허전함의 바람이 돌아다니고,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데도 우리는 외로움을 느낀다. 고독은 삶을 관통하는 존재의 동반자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이 고독은 인간에게 절망의 병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적인 성숙을 할 수 있는 존재의 치유제가 될 수 있다. 고독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과 만나고, 무절제, 욕심, 분노, 나태, 명예욕, 질투, 교만 등 자신의 욕망이나 내면과 대화하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영적으로 성숙해지고 자신을 이해하고 인간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고독 속에서 우리는 의존해 있는 인간관계가 아니라 홀로서기의 힘을 발견한다. 고독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인간 존재의 조건이다.현대 프랑스의 철학자 레비나스는 고독이란 타인과의 관계의 결핍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홀로서기와 관계있다고 말한다. 고독과 고통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팽팽하게 지탱할 수 있을 때 오히려 우리는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독을 통해 홀로서기의 힘을 얻은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존재를 걸머지며 타인과 자유롭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독일의 성 베네딕도회의 신부인 그륀은 고독이란 인간적 성숙을 위한 조건이자 영적 성장의 토대이며 동시에 좋은 인간관계를 위한 조건이라고 말한다. 고독 속에서 만나는 우리 안의 고요의 공간이 곧 평화롭고 자유로운 공간이 될 수 있을 때 고독은 생명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삶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사람에게 의존하며 세속의 신고(辛苦)를 겪는 것이 아니라 고독 속에서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 때 무소의 뿔처럼 홀로 선 삶은 모든 사람에게 경쾌한 삶의 에너지를 준다. 연꽃이 진흙 연못에서 피어나듯이 인간의 영혼은 고독 속에서 스스로 열리는 것이다. 고독이 자신의 존재를 여는 영혼의 개화(開花) 에너지가 될 때 인간은 더욱 성숙하고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김정현(원광대 인문학부 교수)

  • 문화일반
  • 김은정
  • 2008.11.28 23:02

[독자 백가쟁명] 전북작가회의 20년을 축하하며 -최기우

호흡이 좋은 시를 쓰고 맥이 탄탄한 소설을 써도, 현실이 마음을 아프게 하던 시대가 있었다. 사명감으로 글을 쓰기도 했던 그 때…. "민족정서를 회복하고 문학의 사회적 실천을 통해 사회구조의 모순을 해결해 나가자"며, 동인을 결성한 김용택, 박남준, 박두규, 박배엽, 백학기, 서소로(서권), 서홍관, 이병천, 정인섭, 최동현. 이들 '남민시'(南民詩) 동인들은 1980년대 중반 전북 문학운동사에 신선한 충격을 준 젊은 시인들이다. 당시 동암고 교사였던 최동현은 "설흔이 넘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우리는/갈라진 조국에서/<참회록>을 가르친다"(「五月에」 중)며 시구를 토혈(吐血)했고, 강원도에서 군복무 중이던 서권은 '서소로'를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전북종합문화지를 내세운 동명의 잡지 「남민」에 글을 발표하던 정렬, 이광웅, 문병학 시인 등도 이들과 바람이 같았던 이 땅 민족문학의 역사다.1988년 6월 "진정한 민족 민중문학"을 표방하고 한데 뭉친 전북민족문학인협의회는 '남민시' 동인 등 당시 30대 젊은 문학인들이 주축이 되어 발족, 원로와 중견 시인·작가들까지 참여의 폭을 넓히면서 전북문학의 새로운 가능성과 기대를 안겨주었다. 특히 "참다운 민족문학이란 수천 년의 역사 안에서 줄기찬 생명을 이어 오고 있는 이 땅의 사람들, 민족공동체의 건강한 생활을 올바르게 반영한다"는 창립선언문의 확고한 인식은 민족주체성 회복의 목소리가 드높았던 시대적 요청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그리고 20년…. 그 사이 이들은 1997년 협의체적인 구조를 '전북작가회의'라는 회의체로 바꿔, 보다 강력하고 힘 있는 문인들의 모임으로 전환, 맥을 잇고 있다.전북민족문학인협의회의 창립부터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한 전북작가회의의 발걸음을 담아내는 일은 전북 문학의 역사를 엮어내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동안 전북작가회의는 민족문학이 지향하는 올바른 역사의식과 문학의 건강한 사회적 역할들을 천명해왔다. 전북의 문화를 발굴하고 그 현황을 객관적으로 점검하며, 이를 통해 전북지역에 민족예술활동을 확산시키는 구심체 역할을 했으며, 문학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기관지의 제호 '작가의 눈'은 혼탁한 세상 속에서도 두 눈을 밝히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자는 회원들의 의지를 담은 것이다.이들의 한결같은 고민은 지역의 정서와 삶에 대한 끝없는 관심과 문학의 깊이를 유지하면서 대중들로 그 폭을 넓히는 일이었다. 민족과 함께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이 지극한 고민들은 전북문학의 찬란한 미래를 위한 초석이 될 것이다.오늘 전북작가회의가 창립 20주년 기념식을 갖는다. 녹록치 않았을 전북작가회의의 20년 역사를 축하하며, 또한 자축한다. /최기우(최명희 문학관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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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08.11.28 23:02

[오목대] 마이산

진안 마이산(馬耳山)은 천의 얼굴을 가졌다. 보는 각도와 계절에 따라 달리 보인다. 두 봉우리가 마주 보이기도 하고, 장소에 따라 겹쳐 보이기도 한다. 지난해 개통한 익산-장수간 고속도로 구간 중 마이산휴게소에서 보면 전경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듯 하다.마이산은 계절에 따라 이름도 다르다. 봄에는 돛대봉, 여름에는 용각봉, 가을에는 마이봉, 겨울에는 문필봉이라 불렀다.오늘날 마이산은 우뚝 솟아 있지만 1억년전 중생대 백악기에는 산 어귀의 호숫가, 즉 선상지였다. 선상지가 4천만여 년에 걸친 지각변동으로 주변보다 600m이상 솟아 올라 산이 된 것이다.마이산은 멀리서 보변 말의 귀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굵은 자갈을 시멘트로 반죽해 놓은 콘크리트 형상이다. 마치 하늘에서 대규모 공사를 하다 남은 콘크리트를 쏟아 부어 놓은 것 같다. 그래서 이국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산은 전체가 우리나라에서 흔치 않은 거대한 역암 덩어리로 구성돼 있다. 두께가 1500m나 된다. 역암층에는 직경이 1m가 넘는 것도 많이 포함돼 있다.(자연사기행·한겨레)마이산의 두 봉우리중 동쪽에 있는 숫마이봉 또는 부봉(夫峰)은 오연하여 자일을 이용해야 오를 수 있다. 반면 서쪽에 있는 암마이봉 또는 부봉(婦峰)은 누구나 받아 준다.탑사군락 또한 마이산의 유명세를 더한다. 100여년 전 이갑룡 처사가 당초 120여 기를 세웠다고 하나 지금은 80여 기가 남아 있다. 이 돌탑들은 태풍이 불어도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 않아 신비롭다. 또 제단위 정화수 그릇에 물을 담아 놓으면 겨울에 10-15cm 의 고드름이 죽순 솟듯 올라가 탄성을 자아낸다.마이산은 역사적으로 조선 창업과도 관계가 깊다. 고려말 이성계가 남원에서 왜구를 무찌르고 개선길에 이곳에 들렸던 것이다. 마이산을 보고 꿈에 신인(神人)이 금으로 된 자를 준 곳이라는 것을 알고 놀랐다고 한다. 그후 금척무(금척무)는 조선 500년동안 궁중 잔치에 올려졌다.이같은 마이산이 2010년부터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다고 한다. 환경과 과학교과서에 각각 생태및 지각변화의 대표적인 산으로 소개된다는 것이다. 우리 고장의 수려한 자연경관이 널리 알려진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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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08.11.28 23:02

[이준재 교수의 맛있는 와인] 라벨 이해하기

와인의 색, 향, 맛에 대한 정보는 직접 마셔보거나, 오랜 경험과 지식 및 시간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지만, 와인 그 자체에 대한 기본 정보는 와인 병에 부착되어 있는 라벨을 읽을 수 있는 기본 상식만 있으면 와인에 대한 거부감 없이 쉽게 터득할 수 있다.와인 라벨(Label)은 와인의 얼굴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병속에 들어있는 와인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이 라벨은 외국어로 되어있고, 생산 국가별로 특징이 있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소비자에게 혼돈을 줄 수 있는 표시는 하지 않으면서 정확히 전달되어야함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모든 와인 생산국에서는 라벨 내용과 표기를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라벨내용은 와인명, 생산지역(국가)명, 빈티지, 포도품종, 와인등급, 생산자 및 병입여부, 용량, 알코올도수, 품평회에서의 시상여부와 같은 기타정보를 표시한다.품질과 원산지 표기가 와인 소비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하지만 해독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신세계 와인 생산국은 라벨에 영어로 표기되어 있고, 와인 등급을 명확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는 반면, 유럽의 주요 와인생산국가인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의 경우 라벨에 기재하고 있는 와인 품질 등급과 원산지 표기는 이해하기 어렵다. 최근 원산지가 유럽 와인인 경우 유럽 연합의 규정을 따르는 추세인데 이것은 자국의 소비뿐만 아니라 유럽 또는 수출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와인에 대한 유럽규정은 두 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제한된 지역에서 생산되는 우수품질와인 등급과 테이블 와인으로 나누고 있다.무엇보다 와인은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끼는 동시에 그 맛을 상승시킬 수 있기 때문에 라벨에 대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병의 뒤쪽에 수입과정상에 와인에 관한 내용이 친절히 표기되어 있으므로 참고하고 전면에 라벨을 읽는 것이다.▲맛있는 음식과 맛있는 와인 - 음식 살 조직·소스에 맞춰 선택음식과 와인의 조화는 서로의 맛을 강화시키는 파트너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대부분이 음식에 와인을 맞추는 경우가 많으므로 다음의 3가지 원칙을 생각하고 와인을 선정하면 될 것이다. 먼저 음식 살의 조직에 따라 와인을 선택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생선에는 화이트와인이 잘 어울린다고 알고 있지만, 생선이라도 살의 조직이 섬세한지, 팍팍한 생선인지, 기름기가 많은지, 담백한지에 따라 레드와인이 더 적합할 경우도 있다. 둘째, 음식의 주재료보다는 소스에 맞추어서 와인을 선택한다. 향신료나 부재료의 맛이 강할 때는 강한 향이 나는 와인을 선택해야 한다. 셋째, 그 지역 음식에는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매칭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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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08.11.28 23:02

[음식의 비밀] ⑫김치

김장철이다. 집집마다 김치 맛은 다 다르지만, 김치가 몸에 좋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에는 언론을 통해 김치가 사스와 조류독감을 예방한다고 알려지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식이 됐다.오늘날 김치는 1600년대 고추가 상용화되기 시작하면서 나타났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김치의 기원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 민족은 농경사회 특성상 채소에서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을 섭취했는데, 한겨울에 채소를 먹을 수 없게 되자 염장에서 생산되는 소금으로 배추를 절이게 된 것이 점차 발전해 오늘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김치는 생체조절, 질병회복, 노화억제, 생체리듬조절, 질병예방 등의 효능을 가지고 있다. 숙성과정 중 발생하는 젖산균은 새콤한 맛을 더해줄 뿐만 아니라 장속의 다른 유해균의 작용을 억제한다. 김치 원료가 되는 채소 자체에 다양한 섬유소가 함유, 변비를 예방하고 장염이나 결장염 등도 예방해 준다. 저칼로리식품으로 다이어트 효과 및 항암효과도 가지고 있다.특히 김치에 들어가는 양념-고추, 마늘, 생강, 파-은 다른 나라의 절임류에는 들어가지 않는 고유한 것으로 김치의 독특한 맛과 향, 색을 내는 것은 물론, 건강에 좋은 작용들을 한다.김치는 '우리 민족의 위대한 발효식품'이라는 평을 받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김치가 짜고 매운 밥반찬이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어 김치의 세계화에는 한계가 있다고 한다. 주음식은 아니더라도 준음식에 근접한 음식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 특히 한국의 김치에 열광하는 일본인들이 김치과자, 김치샐러드, 김치카레 등을 개발한 것을 주목, 한국에서도 김치와 관련된 다양한 음식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8.11.28 23:02

"예술인, 사회보장제도 사각지대에 놓여"

예술인들이 각종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예술인 복지관련 법령 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한준 순천향대 법학과 교수는 26일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이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개최한 '예술인복지법 제정을 위한 대토론회'에서 "예술인들이 국가 구성원으로서 누려야 하는 사회보장제도에서 배제되어 있고 특히 노동관계법상 사각지대에 놓여있지만 예술인의 권리나 국가의 보호의무를 규정한 법은 전무하다"면서 예술인 복지관련 법령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배우 길해연 씨는 "배우들은 소득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보험사로부터 일용직 노동자로 취급받기도 하고, 은행에서 무직자 취급을 받아 카드 발급을 거부당하기도 한다"면서 "배우들이 공연 도중 사고를 당해도 배우 개인이 이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연극인복지재단이 직업연극인 1천5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연극인들의 국민연금 가입율은 23.9%(근로자 평균 80%), 국민건강보험 가입율은 76.8%(평균 96%), 고용보험 가입율은 15.3%(평균 84%), 산업재해보상보험 가입율은 17.4%(평균 94%)로 근로자 평균치에 크게 뒤처져 있다. 특히 응답자의 77%가 연극창작활동 중 상해를 입은 적이 있고 연극인을 위한 산재보험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96%에 달했지만 실제 산재보험 가입율은 근로자 평균을 훨씬 밑돌았다. 또 연극창작활동 중 보수를 받지 못한 적이 있는 응답자가 60%를 차지했고, 86%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표준근로계약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답했다. 김석진 연극인복지재단 사무국장은 "연극인의 사회적 지위의 모호함이 직업연극인을 그 어떤 법으로도 보호받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만들었다"면서 "연극인을 포함한 예술인들이 국가사회복지 시스템 내에 편입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한준 교수는 "예술인복지법을 통해 예술인들에게 근로자에 준하는 지위를 부여, 고용보험법을 비롯한 각종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문화일반
  • 연합
  • 2008.11.27 23:02

[문학] 5·18구속부상자회 전북지부, 구술사료집 발간

해마다 5월은 그렇게 빨리도 오고, 세상은 5·18의 소통과 연대, 평화의 정신을 이어내기 위한 방법을 찾고자 한다. 그러나 그대로 잊을 수 없는 핏빛으로 새겨진 그날의 기억들. 1980년 5월의 이야기다.5·18구속부상자회전북지부(회장 최인규)가 제1차 1980년 5월 전북지역 운동사 구술사료집 「뜨거운 날들의 투쟁」을 발간했다.개인의 구술을 바탕으로 한 구술사료집은 모두 5장으로 구성됐다. '사업의 개요' '다시 기록하는 1980년 5월 전북' '구술과 기록으로 살펴보는 전북의 5월' '문헌으로 살펴보는 1980년 5월' '언론보도를 통해 본 1980년 5월' 등.'다시 기록하는 1980년 5월 전북'에서는 각 단위별 민주화 투쟁의 모습으로 지역 대학의 진행사항을 당시 관계자들의 의견으로 서술했으며, 전북 출신 열사인 전북대 이세종, 원광대 임균수, 전북대 한해수 열사도 소개했다. '구술과 기록으로 살펴보는 전북의 5월'은 개인의 기록을 한 곳에 모아놓은 것. 김성숙 김중길 김완술 김희수 박종훈 양기해 하연호씨 등과의 직접 인터뷰와 심영배 이광철 이상호 정상권씨 등이 작성한 글들을 수록했다.'문헌으로 살펴보는 1980년 5월'에는 '510보안대 자술서'와 '피의자 신문조서' '공소장' 등을 비롯해 1980년 당시 광주의 홍보물에 언급된 전북의 모습을 찾아냈다. '언론보도를 통해 본 1980년 5월'은 당시 분위기를 보도한 전북일보를 비롯해 1980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역 일간지에 소개된 관련기사와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담았다.사업은 올 4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됐다. 연구책임자 최기우씨는 "지역민주화운동을 기술하고 그 내용을 확장시켜 가는 작업은 지역사회의 뿌리를 찾는 것과 같이 중요한 일"이라며 "한 인물의 개인적인 기록의 의미를 넘어 1980년 당시 전주와 전북의 민주화과정에서 기억돼야 할 다양한 인물과 사건, 건물과 사적들까지 기억시켜 역사적 유산으로 보존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8.11.27 23:02

'초록시민강좌' 허아람씨 "매순간 전부 걸어야 꿈 이뤄"

창조의 진원지가 세상의 중심이다. 새로운 희망을 꿈꿀 때 세상은 변화된다.25일 전주시평생학습센터에서 열린 전북일보와 전북환경운동연합이 공동주최한 여덟번째'2008 초록시민강좌'는 더 나은 한국 교육의 미래를 고민하는 세상의 중심이 됐다. '꿈꾸지 않는 자는 청년이 아니다' 주제로 나선 허아람 '인디고서원'대표(38)의 '쪽빛' 강의 덕분이다. '인디고'는 인도어로 쪽빛을 뜻하는 말. 80년대 이후 태어난 아이들을 가리키는 단어로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생각을 하는 세대라는 뜻이 담겼다."청소년 대상 인문교양 서점을 열게 된 것은 90년 9일간 대학 서점가를 돌아다니면서 받았던 충격 때문이었습니다. 10평 남짓한 소르본 대학 서점에서 책을 사려는데, 주인이 잠시 조용히 하라는 포즈를 취하더군요. 순간 자존심이 상했습니다."'내 시간, 내 공간을 방해하지 말아달라'는 주인의 요구였지만, 그는 작은 공간에서 생겨나는 문화권력에 주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값비싼 공항료를 들이며 그곳까지 달려가 그들의 문화를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우리 동네 사람들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책을 읽고 소통의 장을 만들어보자는 '오기'가 생긴 것."저희 서점엔 계산대도, 베스트셀러도 없습니다. 철학·문학·예술 등 6개 분야의 인문 교양책들만 있죠. 대신 한 달에 한 번 꼴로 작가 초청 독서토론회 '주제와 변주'를 합니다. EBS '지식채널 e'를 보며 청소년들과 토론하는 모임인 '정세정체'도 있습니다. 책방에서 청소년들이 토론하고 사유하며 꿈을 꾸는 것이죠."올해 8월에 개최됐던'유스 북 페어'는 그가 일군 가장 값진 성과. 그는 인디고 청소년들과 책을, 신문을, 인터넷을 뒤져 석학, 사회운동가, 예술인을 발굴했다. 상업적 성향의 북페어를 거부하고, 전 세계와 소통의 장을 만들겠다는 프로젝트였다. 1700여명의 '젊은 이상가들'은 그곳에서 가슴을 뛰게 하는 '꿈'을 읽었고, 창조적 실천가로 살아가는 이들로부터 '희망'을 배웠다."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서 만난 마크 호너 물리학 교수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교과서가 없어 자신의 강연 내용을 모두 적는 아이를 보고, 그는 세계 과학 교수들에게 온라인을 통해 무료로 교과서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제공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은 교육을 대표하는 인물로 선정되기엔 무리가 있다며 너무나 아름답게 겸손을 표현하더군요."그는 인디고 청년들과 어렵게 세계 6대륙에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며 세계를 움직이는 창조적 실천가 45인을 인터뷰해 「꿈을 살다」 (궁리)를 출간했다."보통 사람들이 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라,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매순간 저의 전부를 걸었습니다. 변화는 100%를 걸었을 때 일어나더군요."그는 내년 2월엔 미국 대통령 오바마 캠프를 방문할 계획이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초대된 적은 없지만, 선거 캠프에서 그를 지지한 학생들을 만나고 싶어서다. 신념과 사회적 신뢰를 말할 줄 아는 그의 리더십에 감동했고, 한국에도 그런 지도자가 등장하기를 간절하게 원하기 때문이다.지칠줄 모르며 또박또박 자신의 꿈을 향해 걸어가는 그의 발걸음은 다부지다. 자유로운 공동체를 꿈꾸는 인디고 청소년들과의 연대엔 생의 진실함, 교육의 본질적인 것을 찾아가는 진실과 용기, 정의와 순수가 녹아 있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08.11.27 23:02

한국언론재단 이사장에 고학용씨

한국언론재단 이사장에 고학용(高學用·66) 한국신문윤리위원회 독자불만처리위원이 선임됐다.한국언론재단은 25일 오전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제51차 임시 이사회를 열어 고 위원을 이사장으로 제청하고 서옥식(64) 전 연합뉴스 편집국장(사업이사), 김문오(59) 전 대구MBC 보도국장(기금이사), 선상신(48) 불교방송 보도국장(연구이사) 등 3명을 상임이사로 선임했다.고 이사장은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로 언론계에 발을 들여놓았으며, 조선일보 논설위원, 관훈클럽 총무,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이사, 한국언론재단 이사, 교육공동체시민연합 공동대표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기금 이사, 한국신문윤리위원회 독자불만처리위원 겸 윤리위원, 언론중재위원회 제4부 중재위원 등을 맡고 있다.이번에 선임된 상임이사들의 임기는 직전 임원진의 잔여 임기인 2010년 12월 말까지다.언론재단 정관에 따르면 이사장은 이사회의 제청으로 문화부 장관이 임명하며, 이사는 이사장이 이사회의 동의를 얻어 선임하면 문화부 장관의 승인을 거쳐 취임한다.이에 따라 언론재단은 문화부의 임명과 승인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26일 오전11시께 취임식을 개최할 예정이다.한편 언론재단 노조는 이날 오전 이사회에 앞서 조합원 총회를 열어 일부 상임이사의 정치성향 등을 이유로 이사회 개최를 저지하기로 결의하고 회의장 앞을 1시간30분가량 막다 고 이사장으로부터 "임원진이 정치색을 띠면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을 받고 자진 해산했다.

  • 문화일반
  • 연합
  • 2008.11.26 23:02

[전북문화의 발견] ②전북의 소극장, 전북 연극의 역사

▲ 문화공간의 탄생문화공간의 탄생과 소멸은 문화예술의 발전과 후퇴, 성장과 퇴보를 보여주는 지표다. 전북의 공연예술 분야 역시 문화공간을 자양분으로 커왔다. 특히 소극장은 시대적·경제적 위기 속에서도 예술의 생명력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으며, 문화의 다양성을 지켜주는 중요한 공간이 돼왔다.전북에 본격적인 문화공간이 들어선 것은 1960년대 후반. 1967년 개관한 '시민문화관'이었다. 현재의 전북예술회관 자리에 위치했던 '시민문화관'은 기본적인 조명시설이나 음향시설은 물론, 방음장치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지만 전북지역의 유일한 공연장이었다. 700석 규모로 소극장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당시 전북에 있어 최초의 본격적인 무대공간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다방이 곧 문화공간이었던 '살롱문화'가 융성했던 70년대는 전라북도가 운영했던 '공보관'을 꼽을 수 있다. 전주우체국 사거리에 있던 이 곳은 5평 남짓한 무대와 300여석의 객석을 갖추고 있었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는 평면식 공간이라서 단막극, 독무, 독주, 독창 등의 공연이 주를 이뤘다.▲ 소극장 문화를 주도해 온 연극80년대는 문화예술과 그 활동들을 담아낼 문화공간이 양적·질적으로 팽창을 이룬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연극단체는 줄잡아 30여개가 생겨났으며, 1983년 전북 최초의 연극 전용 소극장 '전북문예소극장'이 문을 열었다. 전주시 다가동에 지하 60평, 객석 170여석 규모로 개관한 이 소극장은 당시 극단 '갈채'가 운영했었다. '전북문예소극장'은 연극인들의 큰 기대 속에서 '그 여자 사람잡네' '홍당무' 등을 공연했지만, 운영난으로 재정적 압박이 가중되자 전북연극협회가 소극장을 인수했다. 전북연극협회는 '소극장 운영규정'을 제정하고 '전북연극회관'으로 이름까지 바꾸었지만, 역시 만성 적자의 벽을 넘지 못하고 6개월만에 문을 닫았다.1984년 지하공간에 문을 연 '녹두골'은 진보적 문화운동으로서 의미가 있다. 임진택의 '똥바다', 서울민요연구회의 '어디로 갈거나' 등을 초청해 중앙과 활발하게 교류했으며, 이후에도 놀이마당과 풍물강습 등 2년여 동안 역동적인 문화활동을 펼쳤다.1985년 창작극회가 개관한 '월이소극장'도 이듬해 폐관됐다. '월이소극장'은 시골에서 개를 부를 때 '워리'라고 했던 것처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이름을 '워리'라고 지었으나 후에 한자를 붙여 '월이(月伊)'로 바꾸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창작극회가 1990년 개관한 연극 전문 극장 '창작소극장'은 현재까지 지역 연극의 전통으로 살아있다.극단 '황토'는 1986년 전주시 고사동에 60석 규모의 '황토예술극장'을 마련했다. 연극인들이 후원회를 조직하고 기금을 마련하는 등 연극전용 상설극장의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역시 5년여 만에 문을 닫았다. 익산에는 극단 토지가 운영하던 '미다소극장'이 1989년부터 1997년까지 운영됐다.문화예술이 각광받기 시작한 2000년대 들어서면서 부터는 문화공간의 폭발적인 증가와 함께 소극장 역시 포화상태에 이르게 됐다.현재 전북지역 소극장은 8곳. 전주에만 창작극회 '창작소극장', 문화영토 판 '소극장 판', 극단 데미샘 '아트홀 오페라', 극단 명태 '아하아트홀', 재인촌 우듬지 '우듬지 소극장' 등 5개가 있다. 익산에는 극단 작은 소·동의 '소극장 아르케', 군산에는 극단 사람세상의 '사람세상 소극장', 남원에는 극단 둥지의 '지리산 소극장'이 있다.전북의 소극장들은 모두 연극 극단을 모태로 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한 때 음악인이나 시인이 운영하거나 음악이나 무용 등 연극이 아닌 다른 장르를 위한 소극장이 생겨나기도 했지만, 현재 남아있는 곳은 없다. 때문에 소극장과 연극의 관계를 들여다 보는 일은 흥미롭다.모든 장르의 예술과 예술인들은 자신만의 공간을 꿈꾼다. 특히 연극은 공동작업으로 이뤄지는 데다 장기공연이 일반적이어서 준비단계부터 공연할 때까지의 일정을 소화해 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대관을 통한 연습이나 공연은 수입이 일정치 않은 극단 입장에서는 큰 부담. 또한 극단의 정체성이나 색깔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극장이 필요하기도 하다. 반대로 극단이 상주해 있을 때 비교적 꾸준히 공연할 수 있으며, 다른 장르에 비해 대중성을 가진 연극이 상대적으로 소극장 공연을 통한 수입 창출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다양한 문화의 생산지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에는 다양한 장르에서 민간이 운영하는 공간이 늘어나면서 소극장이 다양한 문화의 생산지로서의 역할을 했다.1987년 김광순 전주대 음악과 교수가 문을 연 '소극장 예루'는 서양음악이 주를 이루는 공간으로 주목할 만 하다. '예루'는 90년대 후반까지 활발한 활동을 벌였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공간은 문을 닫고 기획 위주로 운영하고 있다.권오표 시인은 1991년 전주시 기린로에 소극장 운동의 하나로 '아사달'을 열었다. 8년이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운영됐던 이 곳은 매달 한 차례의 시낭송회와 판토마임 기획공연 등으로 공간의 차별성을 살렸다. 1992년에는 음악전문 소극장 '바리톤'이 전주 효자동에 문을 열고 200여회가 넘는 공연으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지만 지금은 활동이 중단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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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휘정·이화정·최기우·문신
  • 2008.11.2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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