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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세월에 묻은 삶의 한자락을 그리며

그리움이 스스로 길을 내고 있었다. 깊이를 더하는 시를 쓰기 위해 그리움의 끝자락에 머물렀다.찬란했던 그리움들이 화살처럼 날아가 심장에 꽃 필 무렵 15년만에 시집이 출간됐다.우미자씨(58·부안여중 교사)의 시집「바다가 길을 내고 있었다」이다."늦동이 출산하느라 산고가 더 힘들었다는 말뜻을 알게 됐습니다. 오랜만에 내는 터라 부담감도 생겨 많이 걸렀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네요."그는 가만히 앉아 시상을 떠올리기 보단 여행을 통해 자신 안에 고여있던 이미지의 상을 연다.그가 나서는 길은 언제나 정갈하게 마무리된 이미지의 정원. 오동도, 향일암, 운주사 등 틈 날 때마다 나들이 다닌 대부분의 곳이 시상의 배경이 됐다. 깔끔하고 청신하게 시간의 때가 묻은 삶의 한자락으로 담겼다.'겨울숲'은 현재 그가 근무하는 부안여중 뒷편의 솔밭. 동안거에 들어 목젖까지 차오르는 푸른 수액, 숲 너머로 날아가는 새 한마리가 흔들어 놓은 겨울숲의 침묵을 형상화했다.16살 때 여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목이 메어 쓴'어머니의 편지'는 그 절절함 때문에 깊이를 더한다.덕분에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앞으론 자기고백적이고 성찰적인 시를 쓰고 싶습니다. 짧으면서도 쉽고, 차고도 밝은 그런 시요. 욕심이 많아 닿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지향은 가슴안에 안고 가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가 시를 계속쓰게 하는 원동력이 될테니까요."전주 출생인 우씨는 원광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1983년 「시문학」으로 등단해 시집 「무거워라 우리들 사랑」「길 위에 또 길 하나가」 등을 출간한 바 있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08.12.30 23:02

[문학] 최승범 시인 '발해의 숨결을 찾아서' 펴내

'이 땅 발해의 나라 / 저 흙과 하늘과 바람 / 해와 달과 별과 / 거기 살아온 겨레의 숨결…'발해. 한 때 주변국으로부터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불릴 정도로 번성했던 우리 땅 아니었던가.「발해의 숨결을 찾아서」(시간의물레)를 펴낸 최승범 시조시인(77). 시인은 "마치 먼 고향을 찾아 나선 것 같았다"고 했다.「발해의 숨결을 찾아서」는 지난해 한국 세계시조사랑협회와 중국 연변시조작가협회가 공동주최한 '2007 민족시 포럼'에 도내에서는 유일하게 참석했던 시인이 발해에서 느낀 감상들을 정리한 것. 발해국 5경 중 하나인 동경 용원부가 자리했던 방천, 본래 고구려의 영토였던 온성, 고구려 발해의 호쾌했던 말발굽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 두만강, 옛 발해 왕들이 휴양을 위해 자주 찾았다는 경박호, 발해 고토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전시된 발해박물관 등 길림성과 흑룡강성을 중심으로 발해의 지난 이야기가 시 또는 시조로 담겼다."짧은 여정이었지만, 눈길 닿는 것마다 마음에 사무치는 정은 놀랍고 새롭기만 했습니다. 고구려의 유민인 우리 겨레가 나라를 세우고 우리의 문화를 펼쳤다고 생각하니 어찌 옛 이야기라고 해서 마음이 달뜨지 않겠습니까."출국하기 전 노트 한 권 챙기는 것을 잊지 았았다는 시인은 "출국에 앞서 민족시 포럼 보다도 발해 유적지 답사에 마음이 더 간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세찬 말 놓아 달리던 / 저 '발해'의 기상도 / 넓은 땅 열매 짓던 / 저 '발해'의 웃음도 / 이제 다 / 어느 구천에 들었나 / '발해'는 / 잠들었나'마지막 작품 '귀로'는 사라지고 만 찬란했던 우리 역사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이다. 꼼꼼한 시인이 적어놓은 노트도 꼭 챙겨봐야 할 일이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8.12.30 23:02

[문학] 라종일 우석대 총장 창작동화 '비빔밥 이야기' 출간

"배가 고파 힘이 없고 기분이 우울할 때 매콤한 고추장을 비벼진 비빔밥을 한그릇 '뚝딱' 해보면, 그 맛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세계적으로 비빔밥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정작 비빔밥의 본향인 전주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아 쓰게 됐습니다."라종일 우석대 총장(68)이 융합의 정신을 비빔밥에 담아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 창작동화「비빔밥 이야기」(우석대 출판부)를 출간했다. 힘 있는 사람과 힘 없는 사람들로 양분돼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는 온고을 사람들이 각자 먹거리를 함께 나눠 비빔밥을 만들며 나눠먹을 때 진정한 구원이 이뤄진다는 철학을 담았다.'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기란 참으로 쉬운 일이다. 우선 시작해보라. 가서 다른 사람과 함께 한 식탁에 앉아보아라.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첫 걸음은 함께 음식을 나누는 것이다.'(「비빔밥 이야기」중에서)비빔밥 정신은 바로 함께 가진 것을 나누는 데에 있다. 그는 온고을 사람들의 시샘과 미움의 과거를 뒤로 하고 비빔밥을 통해 황폐한 마을을 재건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경제 한파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전주도 비빔밥 정신으로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게 되길 기원한다고 덧붙였다.영문으로 먼저 쓰고, 한국어 외에 원어민 교수의 도움으로 일어와 중국어 등 4개 국어로 출간됐다. 전세계 아이들에게 전주의 맛과 멋을 알릴 책으로 거듭날 예정."앞으로 전주시와 전주비빔밥 브랜드를 널리 알리기 위해 '비빔밥 범벅춤'과 세계인의 입맛을 겨냥한'퓨전비빔밥'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개발해 보급할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전주의 비빔밥이 세계화되는 그날까지 '완전'을 향한 정성의 비빔은 계속될 겁니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08.12.30 23:02

[문학] 김제에 소설 '아리랑' 문학마을 건립

일제 강점기 민족의 수난과 독립운동사를 담은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아리랑'의 주요 배경지를 연결하는 관광코스가 만들어진다. '아리랑'은 곡창지대인 김제ㆍ만경평야에서 이뤄졌던 일제 수탈과 민족 수난 및 애환, 항일 독립운동사 등을 주제로 한 역사소설이다. 29일 전북 김제시에 따르면 김제가 '아리랑'의 실제 배경임을 알리고 역사ㆍ문학 교육장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13개 배경지를 잇는 '아리랑 기행벨트'를 내년 초 착공할 예정이다. 기행벨트 대상지는 죽산.광활 들녘과 하시모토 농장, 광활 간척공사장, 김제역, 금구 금광지구, 모악산 금산사 등 13곳으로 작가가 현장을 답사해 선정했다고 시는 밝혔다. 벽골제-심포 들판과 죽산면 내촌마을은 소설에서 주 무대와 쌀 생산지로, 하시모토 농장과 김제역은 토지.쌀 수탈 전진기지, 광활 간척장과 금광지구는 각각 농토 착취와 금 수탈 현장으로 표현됐으며 금산사는 나라를 빼앗긴 백성이 울분과 설움을 토해냈던 장소다. 시는 특히 기행벨트 중심지로 죽산면 홍산리 내촌마을 일대(2.9ha)에 43억원을 들여 '아리랑 문학마을'을 건립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소설 속 생활상을 재현한 초가 시골마을을 비롯해 면사무소.경찰서.우체국 등 일제 통치기구와 연해주 조선마을, 하얼빈역 등 독립운동 현장 등이 세워진다. 또 나머지 12곳도 소설 속 장면을 그대로 재현하거나 당시 사진 또는 자료물, 안내판, 홍보물 등을 설치해 현장감을 높일 예정이며 문학마을과 함께 둘러보는 관광코스로 만들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문학마을과 주요 배경지는 조정래 씨 작품과 '아리랑' 창작과정을 담은 노트, 소품 등을 보관한 부량면 벽골제 아리랑문학관(2003년 개관)과 함께 일제 강점기와 근대 역사를 되돌아보는 생생한 현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문화일반
  • 연합
  • 2008.12.29 23:02

[문학] 조상 재치.낭만 한곳에..'밀양설화집' 발간

경남 밀양시가 조상들의 꿈과 낭만, 재치 등이 녹아있는 설화를 한 곳에 모은 '밀양설화집'을 발간했다. 28일 밀양시에 따르면 밀양지역이 전통과 문화의 고장임을 알리고 시민들의 애향심을 높이기 위해 최근 밀양설화집을 발간해 지역 도서관과 학교, 문화단체 등에 배부했다. 3천만원이 투입돼 발간된 설화집은 지난 1월부터 밀양문학회 회원인 대학교수와 지역 문학가, 시인 등 8명이 삼랑진읍을 비롯해 밀양지역 16개 읍.면.동을 순회하며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설화를 구술로 담고 관련 문헌을 수집 정리해 만들어졌다. 권당 417~474쪽의 분량으로 만들어진 이 설화집에는 조선초 명문장가인 춘정(春亭) 변계량(卞季良)과 조선 전기 영남 사림의 큰 스승으로 알려진 점필재(人+占畢齋) 김종직(金宗直) 등 밀양의 인물과 득대산 처녀무덤, 청운리 효자비 등 밀양의 자연에 깃든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또 주인딸과 결혼한 머슴, 짐승말 알아듣는 며느리, 대문 못찾는 바보사위 등 각 지역에서 구술로 전해져 내려온 민담이 2권에 걸쳐 소개돼있어 옛날 조상들의 언어와 풍습은 물론, 웃음과 낭만, 재치 등 사람사는 세상의 지혜가 망라돼 있다. 시 관계자는 "급변하는 문화속에 설화를 전승하고 보존하는 것은 새로운 문화콘텐츠 개발로 이어져 시민들에게 좋은 읽을거리와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키워줄 것"이라며 "이번에 발간된 설화집 중 가장 재미있는 100선을 정해 소책자 형태로 만들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문화일반
  • 연합
  • 2008.12.29 23:02

[문학] 시낭송과 소리, 영혼을 살찌우다

매달 마지막주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펼쳐졌던 '시민과 함께하는 시와 소리의 만남'이 올해 마지막 행사를 끝마쳤다.26일 오후 3시 스타상호저축은행 부설 고하문예관에서 열린 '제9회 시민과 함께하는 시와 소리의 만남'. '섬진강 시인' 김용택 시인이 대표시 '섬진강15-겨울 사랑의 편지'를 비롯해 '사람들은 왜 모를까' '그 나무'를 낭송했으며, 영문학을 전공한 김연호 전북대 교수는 자신의 애송 영시로 셰익스피어와 존 키츠,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시를 들려줬다.지난 4월부터 시작된 '시와 소리의 만남'은 최승범 고하문예관 관장이 시를 가운데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로 마련한 행사. 양병호 전북대 국문과 교수와 손혜원 전주KBS 아나운서, 유장영 전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장이 함께 기획해 왔다.'시와 소리의 만남'은 지역과 장르를 초월한 많은 예술인들이 교류하는 연결고리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이기반 송하선 김남곤 등 지역 원로시인들을 비롯해 문병란 손광은 허형만 백수인 임원식 시인 등 전남지역 문인들은 단골. 진주에서 활동하는 김보한 시인은 기꺼이 전주까지 찾아왔으며, 시집을 발표하기도 했던 송하진 전주시장은 시인 자격으로 초대받기도 했다.적게는 60명에서 많게는 100여명까지 매회 시민들의 꾸준한 참여가 이어졌으며, 한국음악과 서양음악, 사람의 소리와 악기의 소리 등 소리와의 교감도 다채롭게 이뤄졌다.최승범 고하문예관 관장은 "지역 문인들로만 행사를 꾸리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전주에서 열리는 작은 행사가 전국으로 퍼져나갈 수 있도록 주변 도시의 문인들도 초대해 왔다"며 "문인들이 전국적으로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기회로도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시와 소리의 만남'은 내년에도 매달 마지막주 금요일 오후 3시 고하문예관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최관장은 "내년에는 우리시 뿐만 아니라 외국 문학 전공자들이 외국시를 들려주는 기회를 늘릴 생각"이라고 밝혔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8.12.29 23:02

"인간성 회복 정신문화운동 최선"

"어깨가 무겁습니다. 피폐해진 인간성을 회복하는 정신문화운동이 필요한데 백지상태에서 맡고 보니까, 단발성이 아닌 중·장기 사업으로 이어가기 위한 고민이 깊어집니다."성균관 유도회 전라북도본부 회장으로 추대된 황병근 신임회장(74·사진). 26일 전북본부 회의실에서 열린 회장 선거에서 총 70명 중 57명의 지지로 조중연 전 수석부회장을 누르고 선출됐다. 지난 10월 작고한 윤재옥 회장의 공석을 지난달부터 수석부회장으로 직무대행을 해왔다가 당선된 것.그는 "가족이 해체되고 경로효친사상이 중심을 잃고 있지만, 유교만이 가족과 사회를 지탱하는 굳건한 정신의 뿌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인의예지(仁義禮智) 등 만물 근본원리인 유학의 정수를 알게 하고, 그 정신이 이어지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이어 황회장은 "회장 선거 과정에서 약간의 소란은 있었지만, 감정적인 갈등을 잘 봉합해 유림사회를 하나로 모으고 뜻을 결집시키는데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회장 임기는 2년. 현재 그는 전북도립국악원 자문위원장, 우리문화진흥회 이사장 및 회장 등을 맡고 있으며, 제20대 한국예총 전북연합회장(2000~2004)을 역임한 바 있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08.12.29 23:02

신재민 차관 "이번 총파업은 명백한 불법"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은 26일 전국언론노동조합의 총파업에 대해 "명백한 불법"이라며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 차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준비해온 메모를 꺼내 읽는 방식으로 "이번 총파업은 노사간 교섭 대상에 속하지 않은 사유를 내건 불법파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MBC 등 방송사 파업은 국민 재산인 전파를 특정 방송사의 사적 이익을 위해 사유화하는 행위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비윤리적인 행위"라는 입장을 밝혔다. 신 차관은 이런 입장이 정부내에서 교감이 이뤄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 차관은 "국회 입법을 둘러싸고 파업이 이뤄진 전례를 찾기는 거의 어렵다"면서 "정부는 합법 파업은 보호해야 하지만 불법 파업은 엄정하고 단호히 대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방송법 6조는 방송이 정치적 이해 당사자에 대해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규정하고 있다"면서 "방송사 노조가, 특히 공영방송을 자처하는 노조가 특정 정당과같은 입장에서 국회 입법에 대해 정치 투쟁을 벌이면서 파업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파업 참여자에 대해서는 해당 언론사의 사규에 따른 조치가 있어야 하고조치가 없으면 국민이 그 언론사에 대해 책임을 묻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 차관은 또 "최근 MBC 보도를 보면 상당히 정파적인 보도를 많이 했다"고 지적하고, 지난 19일 MBC의 정명(正名)에 대해 지적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발언내용을 제시하면서 "MBC는 분명히 주식회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영 방송을원하면 공영방송 답게 해야 한다는게 최 위원장의 발언 요지"라고 덧붙였다. 신 차관은 "정부는 특정 방송을 장악할 의도는 전혀 없다. 그러나 특정 이념과이해를 가진 단체로부터 방송을 국민에게 돌려줄 의무는 있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연합
  • 2008.12.26 23:02

[풍경과 사람] 20년만에 다시 뭉친 풍물패 '일터 풍물마당'

"휘몰이 갈 때는 '어이' '어이' 해주세요. 표정이 '노가대' 뛰는 사람 같아. 일그러졌어.""어젠 울고 싶었어요. 스무 번도 더 틀렸어요. 그래도 오늘은 열 번이네."전주 팔복동 한 켠 허름한 건물에서 밤 늦도록 흥겨운 가락이 계속됐다. 꽹과리 장구 징 북이 한데 뒤엉켜 거칠지만 묘한 화음을 이루며, 신명을 이어갔다.아마추어 풍물패인 '일터 풍물마당'. 88년 공단 인근 일터교회에서 마음 맞는 몇 명이 모여 꾸렸다. 노동자들의 문화공간이 거의 없었던 시절이라 풍물만 한다고 해도 '빨갱이' 취급을 받던 스산한 분위기였다. 전통문화를 살리자는 거창한 구호를 대지 않아도 고된 일상을 풀고 싶은 욕구는 당연한 것.90년대 후반 흐지부지됐던 이들의 대오가 지난해 다시 결성됐다. 호남 좌도굿에 바탕을 두고, 사물놀이만 모았다. 지난 20일 첫 공연은 각오를 새롭게 다진 자리.장두종 회장(43)이 총대를 메고 30여명의 회원들을 모았다. 카센터, 기계 부품조립 공장에서 근무하는 사람들도 있고, 자영업자, 가정주부까지 참여했다. 배우겠다는 의지와 무조건 열심히 하겠다는 단순무식한 '단무지' 정신으로 무장됐다고 하니, 연습 부족으로 낙오됐다는 박정하(41)씨를 보면 허투루 나오는 말은 아니다.20년 전 처녀·총각으로 만났던 이들이 이젠 다 제 짝을 찾아 보금자리를 일궜다. 지원 하나 받지 않고 열정 하나로 뭉쳐 연습하는 것을 보면 좋아하지 않고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인상을 받는다.김명곤 부회장(43)은 "그간 누르느라 애썼는데, 이제서야 비로소 내면의 숨어있는 끼가 발산됐다"고 말했다. 아마추어이기에 이들을 이끄는 선생도 필요해 총무 박성우씨(37)의 지기인 김종균(37·도립국악원 단원)씨가 이들의 소리를 지도하고 있다."온몸이 노곤노곤 해질때까지 풍물판에 자신이 녹아나면 그보다 더 좋은 건 없죠. 지금은 악기와 친해져가고 있는 상태에요."현재 연습실은 각자 주머니를 털어내 빌린 공간. 지하에 있다가 같은 건물 2층으로 새단장해 옮겼다. 새단장이라고 해봤자 집에서 안 쓰는 이불을 가져와 창틈과 문틈 사이를 막고, 구해온 계란판으로 천장을 도배해 소리가 밖으로 많이 새나가지 않도록 신경쓴 게 전부. 학교 체육관에서 쓰다 만 중고 매트로 바닥을 깔아 오랫동안 앉아 연습해도 엉덩이가 아프지 않게 했다.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우리만의 연습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손수 꾸린 곳이다.그렇게 방음에 신경을 썼건만, 공연을 앞두고 계속 쳐댔더니 주변 민원이 계속됐다."그 집엔 떡을 안 돌렸는가 보다" 며 서로 우스갯소리를 주고 받는다.이들의 소망은 동네 어르신들을 끌어내 푸진 판을 벌이는 것. 풍물패를 따라다니거나 아버지나 삼촌 어깨에 올라가 목마 타면서 눈으로 배운 춤과 악기가 함께 어울렸던 우리네 문화 원형을 찾고 싶다.여력이 된다면, 맞벌이 부부 자녀들을 위한 문화공부방도 마련해주고도 싶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문화혜택을 못 받는 아이들에게 신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기 때문.세련되진 않아도, 함께 놀고 즐기는 멋과 재미에 빠져든 이들의 입에선 탄성이 절로 난다."역시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 문화일반
  • 이화정
  • 2008.12.26 23:02

[문학] 2009 전북일보 신춘문예 응모작 '현실 반영작 적어…'

"사회 현실을 비판하거나 다양한 상상력이 동원되는 작품들이 크게 줄었다.""지난해 신춘문예 당선작들의 경향을 흉내 낸 작품들이 많았다."올해 전북일보 신춘문예는 다소 활력이 떨어지고 정체된 느낌의 작품이 많았다는 의견이다. 지난 18일 오후 4시 전북일보 7층 회의실에서 열린 신춘문예 예심심사(심사위원장 김유석)에서 심사위원들은 "특히 10년 만에 이뤄진 정권 교체, 광우병 파동으로 인한 촛불 집회, 국가경제의 급속한 하락 등 사회 현실에 민감하게 반응한 작품들이 적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올해 신춘문예는 시 853편, 수필 417편, 동화 54편, 소설 51편 등 총 1375편이 접수됐다. 지난해에 비해 출품작의 숫자는 다소 줄었지만, 출품작이 전국 각지에서 접수됐으며, 고등학생부터 80대에 이르기까지 참가자의 층도 넓어졌다. 특히 장년층 참여가 월등히 높았다.예심은 김유석, 김재희, 이세재, 기명숙, 경종호, 박태건, 최기우, 문신씨 등 전북일보 신춘문예 출신 문인들의 모임인 '전북일보 문우회'가 맡았다. 예심위원들은 "문학은 자신이 세상과 다를 수 있다는 도전과 모험정신에서 비롯되는데 그런 실험성을 가진 작품이 많지 않았다"며 "절박한 자기 체험이 부족하다"는데 공감대를 형성했다.올해 시 응모작의 두드러진 경향은 '추상적으로 흘렀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시어 선택이 분명하지 않아 난해한 시들이 많았다. 지난해엔 시대를 반영한 단어가 많이 눈에 띄었으나, 올해는 엇비슷한 단어들을 나열해 시적 긴장감을 떨어뜨린다든가 감상적 향유에 그친 시가 많았다는 평가다.소설은 지난해에 비해 소재가 지나치게 한정됐다는 평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조가 비교적 탄탄해졌고, 미래 사회를 소재로 한 작품을 다수 선보였다는 점이 눈에 띄는 대목이다.동화는 다채로운 상상력이 드러난 작품은 적었으나, 이야기를 엮어가는 완성도와 문장력이 좋아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노인 문제 등을 유쾌하게 풀어낸 작품도 있어 주목을 모았다. 다만 지난해에 비해 소수자 입장이나 동물의 입장에서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없었다는 점이 아쉽다는 지적이다.수필은 생활이야기를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생활을 담았어도 그 소재를 끄집어낸 이유가 잘 형상화돼야 했는데, 그런 부분이 미흡했다는 설명이다. 대화체가 지나치게 많고, 기존 당선작을 그대로 모작하는 일도 있어 안타깝다고 입을 모았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08.12.26 23:02

클래식계 "관객 부담 줄이자"

경제 불황으로 문화소비 감소가 예상되는 가운데 재단법인과 문화재단 위주로 클래식 공연 티켓 가격을 내리는 등 관객 부담을 줄이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25일 재단법인 서울시립교향악단에 따르면 내년 8회로 예정된 정명훈 지휘의 '마스터피스 시리즈' 티켓 가격을 등급별로 각각 R석 7만원, S석 5만원, A석 3만원, B석 2만원, C석 1만원으로 책정했다. 올해 같은 시리즈 티켓 가격은 R석 10만원, S석 7만원, A석 5만원, B석 3만원, C석 1만원이었다. C석을 제외하고 등급별로 1만-3만원이 낮아졌다. 서울시향 관계자는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관객들의 공연 관람 욕구가 줄어들 수 있다"며 "영리를 추구하기보다는 많은 관객이 공연장에 올 수 있게 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금호아트홀은 새해 연중 기획공연 '아름다운 목요일 시리즈'의 경우 초.중.고교생에게는 좌석 등급에 상관없이 8천원에 티켓을 판매할 방침이다. 금호아트홀은 현재 41석의 학생석(8천원)을 별도로 두고 R석(3만원)과 A석(2만원)을 운영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측은 "성인 관객에게는 기존 가격대로 티켓을 판매하되 학생들에게 질 좋은 공연을 좋은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성남아트센터는 내년 1월10일 여는 신년 음악회 가격을 전석 1만원으로 정했다. 올해 성남아트센터의 신년 음악회 가격은 2만-5만원이었다. 성남아트센터 측은 "앞으로 음악 애호가보다는 시민을 대상으로 한 공연의 경우 가능한 범위에서 가격을 낮게 조정할 계획"이라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 관객 부담을 줄이고 지역 밀착형 공연장으로서 시민에게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운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문화일반
  • 연합
  • 2008.12.26 23:02

[문학] '역사의 사형수' 레닌의 부활

불과 17년 전 레닌은 '과거의 유령'으로 여겨졌다. 동구권이 서구에 편입돼 가는 과정에서 레닌 동상은 무너졌고, 그의 전집은 도서관에서 수거돼 폐기됐다. 당시 "실패한 정치인", "피고 레닌에게 사형을"이라는 말이 회자되기 도 했다. 볼프강 벡터 감독의 영화 제목처럼 '굿바이 레닌' 현상이 옛 공산권을 강타하면서 그는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는 듯 했다.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 등이 저자로 참여한 '레닌과 미래의 혁명'(그린비 펴냄)은 녹고 있는 북극의 얼음, 호흡하기 힘든 중국 도시의 공기, 치솟는 자살율과 바닥을 치는 출산율 속에서 이제 레닌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고 주장하는 책이다. 박노자 교수는 왜 레닌인지에 대해 "레닌의 생각이 다 옳아서도 아니고, 레닌이 사용한 자본주의 전복 방법이 다 옳고 좋아서도 아니다. 단지 자본주의를 초월하는 본격적인 '변화'의 가능성들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고, 이 고민에서 레닌이 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이진경 서울 산업대 교수도 레닌을 조명하는 것은 "레닌의 실패를 통해 새로운 출구를 찾자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레닌을 그대로 복원하자는 건 아니다. "현재의 정세적 조건 속에서, 그가 사유했지만 명시적으로 말하지 못했던 것에 현재적 언어를 부여하자"고 이 교수는 주장한다. 책에는 레닌의 제헌권력을 조망한 조정환 다중네트워크센터 대표의 글을 비롯해, 루이 알튀세의 고전 '레닌과 철학', 올 5월 출간된 '지젝이 만난 레닌'을 분석한 박정수 '수유+너머' 연구원의 글 등이 실렸다. 이밖에 지난 7월 정동에서 열렸던 '촛불시대에 다시 생각하는 레닌과 러시아혁명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의 토론 내용도 포함돼 있다. 360쪽. 1만8천900원.

  • 문화일반
  • 연합
  • 2008.12.26 23:02

서울시 문화재 범위 명확해진다

'일원' 등으로 애매모호하게 지정됐던 서울시 문화재와 문화재 보호구역의 범위가 명확해진다. 서울시는 시 부동산문화재 136건의 지정 범위를 명확히 개선한 지정도면과 개선 내용을 30일 고시한다고 25일 밝혔다. 지금까지 부동산 문화재는 불명확한 개념으로 고시돼 체계적인 문화재 보존.관리가 어렵다는 지적을 받았다. 또 불합리하게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이 적지 않아 재산권 침해 사례도 있었다. 현재 서울 시내에는 유형문화재 제1호 '장충단비' 등 모두 141건이 부동산문화재로 지정돼 있지만 이번에 청와대 등 토지 측량이 어려운 5곳의 문화재를 제외한 136건에서 지정 범위가 명확해졌다. 문화재 지정 범위를 두고 논란이 있었던 유형문화재 제26호 '석파정'의 경우 중국풍 정자뿐 아니라 안채, 사랑채, '소수운련암'이 새겨진 거대바위 등 별장 주요 경관 요소를 모두 포괄하도록 지정 범위가 명확히 재조정됐다. 시 기념물 제4호 '세검정'은 1976년 지정 당시 '하천 앞 부지 약 200평 일원'으로 불명확하게 고시됐지만 복원된 정자가 위치한 바위와 연결된 계곡 내 암반지역(854.5㎡)으로 다시 지정됐다. 아울러 시는 지난 11월 개정된 서울시 문화재 보호조례에 따라 중첩돼 있던 문화재와 보호구역을 명확히 구분했다. 이에 따라 건물이 점유한 토지가 문화재로 인정되지 않아 세제 혜택을 받지 못했던 유적 소유자들도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됐다. 시는 복원된 건축물이나 시설물이 '터'와 함께 문화재로 지정돼 있던 오류도 잡았다. 기념물 제8호 '양천향교 터', 기념물 제9호 '망원정 터' 등에서 새로 복원된 건물은 문화재에서 지정 해제되고 터만 문화재로 지정됐다. 새로운 지정도면과 개선 내용은 한국토지정보시스템(http://klis.seoul.go.kr)과 시 홈페이지(http://seoul.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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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08.12.26 23:02

리뷰-아동극 '제비가 기가막혀'

아동극 '제비가 기가 막혀'는 전주전통문화센터 첫 자체극으로 많은 관심을 모았다. 흥부와 놀부의 뒤바뀐 인물 설정, 판소리·한지·비빔밥 등 전주를 대표하는 상징물을 공연안에 버무리려는 시도는 극의 완성도 측면에선 떨어졌으나, 아이들에겐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좋았다.25일 오후2시 전주전통문화센터 한벽극장 내 250여석이나 되는 객석은 가족 단위 관람객들로 꽉 메워져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경제 한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겨주고픈 부모들의 애정이 느껴졌다.형광 불빛을 띄는 북채를 든 제비들이 신나게 때려대는 북소리에 무대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화려한 색감의 조명이 무대를 들었다 놨다 하고 "쾅!쾅!"대포소리 같은 북의 두드림은 아이들의 시선을 붙잡아두기에 충분했다. 한벽예술단의 흥겨운 타악 퍼포먼스가 아동극 속에 처음 선보였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평가됐다.제비가 물어다 준 박 때문에 돈을 흥청망청 쓰고 난 뒤 신세를 한탄하는 흥부, 그런 아우를 다독이고 어르는 착한 놀부의 설정은 진부하게 보일 수 있었지만, 여성들이 캐릭터를 소화하고 걸쭉한 판소리를 쏟아내면서 신선하게 다가왔다. 아이들이 어렵게만 여기던 판소리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한 기획의도. 반면 구렁이로 설정된 여성 배우는 흥부의 탐욕을 부추긴다기보다 유혹하는 듯한 인상으로 비춰져 아쉽기도 했다.흥부가 구렁이와 힘을 겨루는 장면에 등장됐던 한지 부채는 전주를 대표하는 상징물을 담으려는 억지스런 설정으로 비춰졌다. 회개한 흥부가 놀부와 함께 탄 박 속의 비빔밥도 발상은 좋았으나, 많은 아이들이 비빔밥을 먹겠다고 무대로 몰려가는 바람에 아수라장이 됐고, 몰입도가 좋았던 공연은 마지막 장면에서 힘이 빠져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제비가 기가 막혀'는 아동극으로만 봤을 때는 아이들의 오감을 만족시킬 만한 극이었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08.12.26 23:02

[공여] 송년음악회 등

▲ 송년음악회27일 오후 5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한국소리문화의전당 청소년교향악단(상임지휘 김종헌)이 마련한 송년음악회.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 중 '개선행진곡', 베토벤의 '로망스 2번', 브람스의 '헝가리무곡 5번' 등 가족 모두가 감상할 수 있는 대중적인 곡들로 준비했다. 소프라노 이은희 전북대 교수, 바리톤 강경원씨 등이 협연한다.▲ 마당을 나온 암탉27일 오후 6시 국립민속국악원 예원당국립민속국악원 창극 작품개발 및 브랜드화를 목표로 한 '마당을 나온 암탉'. 청소년 권장도서 「마당을 나온 암탉」을 원작으로 가족음악으로 제작했다. 따뜻한 가족애를 잊은 현대인을 위한 작품. 공연이 끝난 후에는 공연장 앞마당에서 '비나리와 판굿'이 펼쳐진다. 예술감독 박양덕, 각색·연출 지기학, 작곡 김만석.▲ 악극 '장날'27일부터 30일까지 오후 7시 전주창작소극장'제16회 전북소극장연극제' 폐막축하공연. 박채규 우명희 광대부부의 리얼버라이어티 악극 '장날'이 찾아왔다. "아~. 날이면 날마다 오는게 아니야~." 그 옛날 장터의 아련한 추억과 장똘배기 약장수 부부의 애환과 사랑, 그리고 희망을 노래한다.▲ 2008 마임 '서커스 극장'26일 오후 7시30분, 27일 오후 3시·7시40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명인홀세계적인 마임의 거장 마르셀 마르소 원작. 여러가지 상황별 에피소드를 간단한 소품 형식의 이야기로 보여주는 마르셀 마르소 스타일의 판토마임이다. 달란트 연극마을 주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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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휘정
  • 2008.12.26 23:02

[김병용의 기행에세이] (21)대문과 담벽, 골목에 대한 생각

할머니라는 호칭보다는 외할머니가, 고모보다는 이모가 더 정겹게 여겨지는 게 비단 나뿐일까… 다른 이들도 그렇겠지만, 내게도 각별한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있다.'큰집'과 '외갓집'과 '우리집' 말고는 세상 모든 집이 다 '모르는 집'이던 나이 때, 지금 돌이켜보면 한 십여 분 거리밖에 되지 않았던 외갓집까지 한여름 대낮에도 정신없이 뜀박질, 땀으로 목욕을 한 채 대문 앞에서 헐떡거리며 '외할머니, 저 왔어요!', 소리치는 것으로 나는 응석을 부렸다. 드디어 당도했구나, 하는 안도감과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오늘도 또 뜀박질한 것에 대한 때 늦은 부끄러움 같은 것이 뒤섞여 그렇게 소리를 지르게 했을 것이다.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외손주가 소리를 쳐도 외할머니는 '버선발로 달려 나와' 나를 맞아주신 적이 없다. 당신 치성 덕에 유독 '굠'을 타고 났다고 외손주 얼굴이 벌개지거나 말거나 남들 앞에서 자화자찬하셨던 거며, 이종·외종 사촌들에 비하면 편애에 가깝게 나를 끔찍이도 예뻐하셨던 평소 모습만 떠올리던 나이 때에는, 그것도 심통 나는 일이었다. 거듭 소리친다, '외할머니, 저 왔다니까요!'그때마다 외할머니는 댓돌마루에 서서 '어서 오니라! 하이구, 저 땀 좀 봐라. 얼릉 소세부터 하고 오니라' 반갑게 말씀하실 뿐, 여전히 왈칵 달려나올 줄 모르셨다. 눈물이 핑 돌만큼 서운한 순간이었다.'방에 들어오려면 문간에서 마당까지 걸어 들어와야 한다'고 일러줬던 외할머니 말씀을 내가 알아들은 건 언젯적이었을까… 혹간, 우리는 대문 앞에 당도한 것으로 그 집에 다 도착한 것으로 착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대문을 통과하면 마당이 있고, 마당을 가로질러 가야 방에 들어설 수 있다. 아무리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럽다고 해도, 외할머니가 손주를 업어 모시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문턱을 넘어서는 것을 경계로, 길 먼지를 털어내며 마당을 걸어가는 동안 '길손'에서 '집안사람'으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꼭 그에 걸맞는 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짠물에서 민물로 돌아온 연어가 몸의 염도를 조절하기 위해 머물러야만 하는 기수역(汽水域)과 같은 곳, 집안뜰…지금 마당 있는 집에서 사는 이가 거의 없다, 나 또한… 외할머니가 세상을 등진 지도 이미 오래… 아파트 현관을 열자마자 신발부터 벗어제낄 때, 나는 문득문득 내가 사는 집에 대해 염치가 없다, 이렇게 다짜고짜 들이닥쳐도 되는 것인가… 그럴 때마다 나는 마당 저 건너편 섬돌에 서 있던 외할머니가 떠오르곤 한다.▲ 담벽, 제 삶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몸에 금이 간다외할머니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쭈그렁 할머니이셨다. 어찌 그럴까마는, 내 기억 속의 외할머니는 돌아가셨을 당시와 그로부터 삼십여 년 전 모습에 큰 차이가 없다. 아마도, 어린 외손주 눈으로는 헤아리기 힘들만큼 자글자글했던 주름살의 인상이 강렬하게 남은 탓일 게다. 주름 하나 없는 나이에, 삶의 주름을 어찌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내가 지금 사는 고덕산 아랫동네에는 아직도 단독주택이 많아 남아 있다. 들락날락하면서 이 집 대문 저 집 담벽을 스치게 되는데, 대문과 담벽의 표정이 참 다양하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같은 공장에서 일관 생산했을 것 같은 사자 대문(?)들이거나 표준형 블록 담일텐데도, 집주인들의 삶의 양상이 모두 다르듯 대문과 담벽들은 모두 각기 개성적이었다. 왜 그럴까?…눈에 보이는 그대로, 나는 그 이유가 대문의 칠이 퇴색한 정도나 각기 다른 잔금들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바람의 손이나 사람 손 혹은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는 미세한 지각 변동 같은 것에 의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충격이 있을 때마다 담벽은 제 최선을 다 해 그 충격을 몸으로 흡수, 아슬아슬한 붕괴의 위기를 버텨냈을 것이다, 때로는 위아래로 금이 가며, 또 때로는 좌우로 몸을 찢는 아픔을 견디며…이런 점에서, 담벽의 금은 무너짐의 징조가 아니라, 무너지지 않으려는 안간힘의 흔적이다, 제 스스로 감당해야할 자신의 삶의 무게를 안정시키기 위해 스스로 몸에 균열을 가한… 물론, 처음 집을 지을 때 외벽 또한 단단하게 조밀하게 설계되고 시공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적 조밀함이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자신을 옥죄어 올 때, 살을 내주고 뼈를 지키는 방식으로 담벽은 자신의 생애를 지킨 것이다. 분명히 외화(外化)된 존재의식, 존재의 의지… 아! 우리 할머니들의 주름살이 그러할 것이다!젊음이 젊음을 속일 수 없듯이, 나이가 드는 것 또한 숨길 수 없다. 한 집안, 한 건물의 생애가 담벽에 나이테처럼 새겨진다. 외할머니의 잔주름 하나에 자녀들의 좌절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어미의 안타까움이, 또 주름 하나에 집안의 도산과 재기의 시련을 견뎌야 했던 세월이 새겨져 있는 것처럼 저 담벽에도 한 집안의 역사와 이 건물의 내력이 주름져 있는 것이다. 주름살은 숨기고픈 삶의 내력까지도 고스란히 바깥에 드러나게 만들고, 삶의 모진 풍상을 견뎌낸 세월의 흔적을 주름으로 뭉쳐 숨기기도 한다. 은폐와 노출, 나는 외할머니의 주름에서 무엇을 읽고 무엇을 읽지 못 했는가… 외할머니가 그리울 때마다 난 담벽 금간 곳에 손이 간다.▲ 골목, 지혜에 이르는 미로고교 진학을 위해 처음 전주에 왔을 때, 가장 힘든 일이 동네 골목을 익히는 것이었다. 길눈이 그리 밝지 않은 편인데다, 중앙시장이며 남부시장 골목은 그야말로 미로에 가까웠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 좌표와 경계선을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망 속에서만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도시에서의 내 공간적 좌표는 내 거점이 자리한 전주의 지리를 이해해야만, 내 스스로에게도 확연해지는데 그것이 잘 안 되는 것이었다.사실, 시골에서 그 사람이 뜨내기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기웃기웃, 이 골목 저 골목 두리번거리는 사람이 뜨내기 손님이다. 그렇게 한동안, 나는 뜨내기 하숙생으로 전주의 골목 골목을 전전하였다. 내 거처, 이 도시 어딘가에 숨어 있는 나의 주소를 찾기 위해… 나는 꽤 많이 겉돌고 헛짚으며 헤맸다.순전히 이런 내 삶의 이력 때문이지만, 난 골목이 없는 도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골목대장'이란 말을 모르고 클 신도시의 아이들을 보면 때로 측은한 생각마저 든다. 골목길을 누비며, 그 옆의 골목과 골목으로 삶의 반경을 넓히며, 골목의 아이는 마침내 큰 길로 나오는 것… 그런 점에서 골목은 꾸불꾸불한 탯줄과도 같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시점이 되어서야, 한 아이는 '골목 학교'를 졸업했던 때가 있었다, 내겐 골목이 내 인생 최초의 학교였다.모습은 다르지만, 골목 안에는 모든 형태의 떠남과 도착,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의 빛깔들이 스펙트럼처럼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움, 섭섭함, 안도감 그리고 만남과 이별… 개구멍, 연탄재, 낙서와 빛바랜 전단지, 숨어 키득거리던 웃음의 풍경들… 다정한 이것들을 골목 아닌 어느 곳에서 만나고 또 느낄 수 있으랴…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터인지라, 내게 있어 낯선 도시, 낯선 사람들과 가장 빨리 친밀해지는 방법은 언제까지나 골목길 순례일 수밖에 없다. 이 골목, 저 골목 두리번거리며, 무안함을 참고 길을 물을 때… 나는 내 심장 소리를 듣는다.나는 아직도 궁금한 게 많은 나이이다… 쿵쾅거리는 내 심장 소리, 그 심장 소리를 들을 때마다 덤으로 나는 아직도 녹슨 나이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콩당콩당 찾아온다. 이러니, 난 내일도 모레도 어느 마을의 골목길을 또 헤매고 다닐 밖에… 도리가 없다.이 이야기가 너무 과장됐다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도 오늘 퇴근길에 동네 시장 골목길에 한 번 들어가 보시라. 수십 년 살았어도 보지 못한 얼굴, 보지 못했던 가 게나 창고가 먼지 수북하게 거기 눌러앉아 당신을 수십 년 째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틀림없이 알게 될 것이다.주름살 자글자글한 거기, 골목… 당신 마음의 창고에 이르는 길! /김병용(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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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2.26 23:02

[김정현 교수의 철학 에세이] 인간다운 삶과 만남의 의미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다른 사람과 만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왜 윤리적 삶을 살아가야만 하며 어떻게 깨어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의 삶은 근본적으로 인간과 인간의 만남, 즉 인간의 관계성에서 출발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고 있듯이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우리는 항상 타인과 관계하며 삶을 영위하고 자신의 내면적인 세계를 성찰하며 살아간다.우리의 일상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만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그런데 칸트에 따르면 인간은 단순히 값어치를 갖는 수단적 존재가 아니라, 인격이라는 존엄성을 갖는 목적적 존재이다.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 인격을 갖는 '나'와 '너'의 만남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버는 이를 대문자 '나(Ich)'와 '너(Du)'의 관계, 즉 근원어의 관계라고 말한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분명 나와 그것(it, 사물)의 관계가 아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인간관계는 타인을 나의 욕망의 대상이나 소유의 대상으로 여기거나 내 경제적 사회적 이해관계의 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우리는 어떻게 다른 인간과의 참된 관계를 맺으며 깨어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일까? 프랑스의 현대철학자 레비나스는 참으로 사람다운 삶은 있음의 차원에 만족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눈뜨고 거듭 깨어나는 삶이라고 말한다. 인간다운 삶이란 타인과 관계하는 삶이며, 타인과 얼굴을 마주하며 타인의 삶을 깨닫는 삶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몸 전체가 바로 관계의 얼굴이며, 얼굴의 관계는 그 누구도 함부로 죽일 수 없다는 윤리적 몸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윤리란 나와 관계있고 내게 얼굴로 다가오는 것에 대한 책임성이며, 사심 없이 타인을 섬기라는 거룩함의 요청이기도 하다.우리가 타인과 인간으로 만난다는 것은 타인에 대한 책임성과 상호 인정이라는 윤리적 태도를 전제로 한다. 인간 사이의 연합이나 아우름이란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서로 마주하는 어울림이다. 인간의 어울림은 동일성과 종합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전제로 한다. 다름은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전제이며, 만남이란 이러한 차이를 인정하고 함께 인격적으로 어울린다는 것을 말한다.현대 정신분석학이 내놓는 최후의 결론 역시 헤겔이 말한 '인정(認定)'의 문제로 귀결된다. 갈등과 공격성, 폭력의 문제는 바로 인격적 의사소통의 왜곡에서 발생하며 타인을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는 마음에서 유래한다. 타인을 자기 자신에로 동화시키지 않고 하나의 인격적인 타자로 인정하는 윤리적인 만남이야말로 인간과 인간의 만남의 출발점이요, 서로 인정하고 어울릴 수 있는 인간의 진정한 소통의 토대인 것이다. 우리에게 현재 필요한 것은 타인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인격적으로 어울릴 수 있는 만남과 소통의 정신일 것이다. 인간다운 삶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타인과 인격적으로 소통하는 성숙한 삶의 태도에서 시작된다. /김정현(원광대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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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2.2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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