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문화의 발견] ②지역 독립단편영화감독들과의 소통
"부모님께서 촬영장에 다녀가신 뒤로 표정이 좋지 않으세요. 영화촬영은 생각보다 힘든 노동이거든요. '안정된 삶'도 아니고. 비전이 명확한 것도 아니고……” 진영기 감독(27)의 넋두리에 함경록(30), 신동환(28), 박철진(27), 최진영(24) 감독 모두 피식, 웃는다. 지난달 19일 오후 7시 전주 최명희문학관. 영화감독은 이들에게 희망이었고, 지금 이들 앞에 독립영화감독이라는 명함이 당당하게 서 있지만, 오늘 이 시간 가족들의 지지를 받는 감독은 없었다. 10년 뒤 자신의 모습에 대한 질문에도 심드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감독 두 명은 '더 큰 영화'나 '상업영화'를 거론했지만, 다른 이들은 '모르겠다' '관심 없다' '무서워서 일부러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대개 전주국제영화제와 전주시민영화제, 전북디지털영화공모전, 대한민국국제청소년영화제 등에서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은 이들을 풀죽게 한 원인은 무엇일까? ■ 전주에서 영화를 찍는다는 것전주국제영화제 이후 전주·전북은 '영화의 도시' 위상을 갖추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쏟아 왔다. 전주영상위원회, 영상테마파크, 전북독립영화협회, 전주영상시민센터 등 영상관련 기관과 단체들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파급된 효과들이다. 도내 각 대학에서도 해마다 일백 여명이 넘는 영화학과 졸업생들이 쏟아지고, 전공자가 아니어도 영화를 통해 사회와 소통하려는 사람들은 늘어만 간다. 2001년 자원봉사를 시작으로 2006년과 2007년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기술자막팀 스태프로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동환씨도 그 중 한 명이다. "주위 시선이나 가식적인 모습 없이 제가 생각하고 말하고 싶은 것들을 그대로 스크린에 담아서 관객들과 소통하고 싶었어요.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그것 때문이죠. 자기만의 확고한 신념이랄까.” 10대 후반부터 변영주 감독의 다큐멘터리 '지역영화사-전주'(1999) 제작부에서 일했던 동환씨는 전주대 영상예술학부 4학년이던 2005년부터 감독의 호칭을 얻었다. 이후 단편영화 '늪'을 시작으로 '거미','그곳으로 가는 길'을 통해 전북디지털영화제, 호남지역대학생영상제, 국제평화영화제 등에서 수상했으며, 올해는 전라북도·전주영상위원회·전주국제영화제 사전제작지원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동환씨와 동문인 영기씨도 전주국제영화제와 인연이 깊다. 디지털필름워크숍 프로그램으로 영화감독의 꿈을 구체화했고, 영화제에 자원봉사자와 스태프로 참여하며 동지들을 얻었다. 그의 대표작품은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로컬시네마전주 부문에서 상영된 '나의 가족'. "될 수 있으면 외부에서 스태프를 끌어들이고, 캐스팅 할 때도 필름 메이커스나 캐스트넷 같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하지만, 이 작품은 전주라는 지방의 색채를 극도로 끌어올린 작품”이라고 소개한다. 전주에서 영화를 찍는다는 것, 전주에서 독립영화감독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로컬시네마전주 부문에 '장마'로 초청됐던 우석대 영화과 출신 경록씨는 '전주의 이야기를 영화로 담아내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전주 동문사거리나 향교 옆 이발소, 모두 익숙하잖아요.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이니까. 거리 분위기나 배우들의 시선과 동선 찾기도 수월한 편이고. 배우는 전주에 있는 극단에서 캐스팅 하는 경우가 많아요. 학교에서 장비나 인력 도움도 많이 받고 있죠.” '장마'와 '미필적 고의' 두 편 모두 동문거리에서 촬영했던 것도 한 이유다. 특히 '장마'는 동문거리라는 구도심의 상징적인 공간을 내세워 세상의 성장에서 뒤쳐지는 모습들을 사람들에 투영해 보여주었다. 경록씨와 우석대 영화과 동문인 철진씨는 전남 완도가 고향이다. 그는 "전주는 작은 공간이지만 나에게 너무 좋은 영화촬영장소다”고 말한다. 올해 뉴웨이브필름(NEWWAVEFILM)을 설립, 전주영상위원회와 전주국제영화제가 공모한 '중·단편 사전제작지원'에 선정됐다. '온고집의 오류' '매비우스의 띠' '보가잊(보든말든 가든말든 잊던말던)' 등이 대표작품. 10대 후반부터 현장에 뛰었던 그에게 영화는 절박한 현실이다. "특수분장팀과 촬영팀 어디나 가리지 않고 참여했어요. 할 수 있는 것이 영화밖에 없었으니까요……. 저는 담배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보는 이들의 뇌와 폐에 깊숙이 빨려 들어가서 때로는 유쾌하고 매캐하기도 하고, 몽환적인 영화. 그리고 중독성 있는 영화…….”전북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진영씨도 '중·단편 사전제작지원'에 선정돼 첫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생각하고 있는 영화는 소설가 김승옥의 소설 「내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에서 출발한다. 가장 힘든 점은 장비와 인력. 일상적인 재정과 인력 부족으로 독립영화 제작자들 간에는 상부상조가 일반화돼 있지만, 비영화학과 출신이라 상대적으로 장비와 인력, 정보에 있어 상당한 어려움이 있단다. 그에게 전주는 "공간적인 부분에 있어 참 괜찮은 도시”지만, "개발이라는 명분이나 행정 편의적 지시 때문에 긍정적인 이미지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도시”이기도 하다. 일상성에 가장 적합한 공간 자체가 인위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쉽다는 의미다. /최기우 본보 문화전문객원기자(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