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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화백의 미술 이야기] 지후갤러리, 김승학·이승우 작가 2인전

지난 2일부터 이번달 말까지 새해 벽두에 구산(九山) 김승학 한국화가와 소야(少野) 이승우 서양화가가 2인전으로 별로 시행되지 않던 한국화와 서양화의 콜라보전을 갖는다. 장소는 전주시 덕진구 숲정이2길 46번지에 있는 지후갤러리다. 수채화가인 이정희 지후갤러리 관장은 개인전 같은 2인전으로 기획했나보다. 구산 김승학은 일가를 이뤘던 벽천 나상목 미술관의 초대 관장을 했으리만큼 전통 산수에 탁월한 한국 화가이다. 한국화가 구산 김승학과 소야 이승우가 교분을 맺게 된 것은 몇십 년 전, 젊은 이승우가 군산미협 지부장일 때 미술관 면적 관계로 한 회기에 한 지역씩 전북 각 시지부들 릴레이전을 마련했을 때 미술협회 김제 지부장으로 처음 만났다. (나중에는 예술인 총연합회 김제지부장까지 역임) 만나자마자 친숙감을 느낀 것은 그와 내가 같은 것과 다른 것 때문이다. 같은 것은 나이였고 다른 것은 성격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동갑이어서 동질감을 가졌고 또는 전혀 말이 없는 것이 나와는 정반대인 까닭에 이질감을 느껴서 진지하게 안면을 튼 것이 시작이었으나 자주 연락은 못하고 그냥 그리워하는 사이였다. 부언이지만 그 때(릴레이 전) 만나 친구가 된 사람은 또 한 사람이 있다. 당시 남원시 미협 지부장이고 지리산 작가라 불리는 이경섭 작가인데, 그는 술자리에 손가방을 놓고 갔다. 남원 작가인데 군산에다 가방을 흘리고 갔으니 아마 포기했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어찌어찌해서 남원지부 회원이 놓고 간 것 같다고 지부장한테 연락이 되었고, 그 지부장이 바로 가방을 놓고 간 정신 나간 장본인이어서 친해진 경우이다. 다시 김승학 작가로 돌어오자. 그러다가 며칠 전에 끝난 나의 향교길 68 전시에서 오랜만에 얼굴을 맞대니 얼마나 반가웠던지. 그래서 그려놓고 발표 안 한 그림 몇 점이나 있냐는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이 전시가 기획되었다. 특히 두 사람의 다른 장르 그림이 한 공간에 전시된 일이 드물었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 지역 행사로는 기억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 연유로 전통 한국화와 서양화의 콜라보전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이 말은 아직도 흥행을 해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림은 세월 따라 항상 변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나 둘 다 다 나이가 암만인데 얼마나 더 변화를 추구할 것인가? 이젠 미켈란젤로의 말처럼 ‘아름다운 죽음’이란 말도 마음 한구석에 슬며시 준비할 때이니 말이다. 익은 감도 떨어지고 땡감도 떨어진다 한다. 그러나 익은 감이 더 많이 떨어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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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1.08 17:46

[이승우 화백의 미술 이야기] 기린미술관, 김준기 작가 개인전

현대로 오면서 사진은 회화에게 회화는 사진에게 서로 무한애정을 품고 서로가 서로에게 닮으려 했다. 아니 서로 뛰어넘으려고 하는 경쟁을 통해 가까워졌는지도 모른다. 하이퍼 리얼리즘이(hyper realism)이 그렇고 김준기 작가가 지금 발표하려는 작품들이 그렇다. 김준기 작가가 생애 맨 처음 사진으로 알아 충격을 받았다는 하이퍼리얼리즘은 사진기가 한 점의 포커스 부분만 확실하고 나머지 부분이 흐릿한 약점을, 포커스를 공간 모든 곳에 확대하려는, 즉 샤프 포커스 리얼리즘(Sharp Focus Realism)에 착안한 화가들의 도전이었다. 포커스를 화면 전체에 날카롭게 들이민다는 뜻이다. 김준기 작가는 이와는 반대로 사진의 냉혹한 기록성에, 찰나를 영원히 기록하리라는 기록성에 회화의 서정을 덧붙이는 작업이다. 기계에 인간성을 입히는 작업이다. 두 상반된 입장은 애초 사진기가 만들어질 때부터 과학자와 화가의 협업으로 이루어졌으니 오히려 그 역사적 배경이 깊다 하겠다. 발명가인 니엡스(Niepce)와 화가 다게르(Daguerre)가 바로 그들이다. 원래 니엡스가 발명한 사진기로는 찍는 시간만 8시간 가까이 걸려 인물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그것은 다게레오타이프(Daguerreotype)에 의해서 해결됐다. 이때가 1840년대 초의 일이다. 그때는 발명가의 행위를 화가가 풀어냈는데 지금은 사진작가가 그림에서나 표현할 수 있는 붓 터치, 질감 등을 도입해 작업을 한다. 예전에도 이런 사진 작품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작품들을 직접 대면한 나로서는 대단히 흥미로웠다. 인공지능이 이세돌과 바둑을 둘 때도, 인공지능이 장착된 판자가 축구선수 이영표의 슛을 100% 막아낼 때도 그저 남의 일이었는데 내 앞에 나타난 김준기 작가의 결과물들을 보면서는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랐음은 비슷한 업종이어서였나보다. 교육학박사이면서 원광대학교 교수였던 묵암 김준기의 졸수 기념 사진초대전 ‘사진작가 그림을 만나다-사중유화 화중유사(寫中有畵 畵中有寫)’ 전이 내년 벽두인 1월 2일부터 전주 기린미술관에서 초대전으로 전시하게 됐다. 초대일시는 1월 6일(토요일) 오후 3시이며 1월 15일까지 14일간 계속된다. 90세를 졸수(卒數)라 하는지도 처음 알았다. 이 노익장은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작품에 대한 생각뿐인 것 같다. 후기 인상주의 작가들의 그림을 책으로 독학하고, 사진 작품을 위해 직접 그림도 그려보려고 어느 인사를 찾아갔으나 "유화 맛을 알려면 10년은 해야 한다"는, 화가 지망생에겐 지당한 말이지만 당시 팔순의 중반이었을 작가이며 동시에 학생에게는 전혀 비교육적인 말로 낙담을 한 일도 있는 영원한 학생이다. 세기의 예술가 겸 단테의 신곡을 줄줄 암송했던 인문학자 미켈란젤로도 89세로 죽는 그날까지 영원한 학생임을 주장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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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25 16:08

[이승우의 미술이야기] 기린미술관, ‘제13회 전라청년미술상’

전라청년미술상 수상 작가전이 열리고 있는 기린미술관을 찾았다. 찾아가 보니 무심하게도 전라청년미술상 운영위원장이 조각가 아들 이호철이었다. 미술상의 태동에 대한 정보로는 내 또래의 동료 서양화가 김치현 선생이 갑자기 요절 한 후 김치현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2011년에 도내 청년 작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발족해 오늘에 이른다. 처음에는 김치현 청년미술상으로 시상하다가 2019년에 상의 내실을 다지고 외양을 넓혀 전라청년미술상으로 하게 됐단다. 수상자에겐 ‘예사랑문화연구소’에서 창작지원금과 개인전을 후원한다고 한다. 1관에서는 금년도 수상자로 선정된 이선정 옻칠공예가의 개인전이 있고, 2관에서는 역대 수상자들이 작품 1~2점씩을 찬조하여 수상자를 축하하고 있었다. 공간예술을 총망라한 예술인들의 구성이었다. 1관의 올해 수상자는 옷칠공예 작품들을 선보였는데 입체 평면 등 다양했다. 옛날 옛적에 대불대학에서 미학 강의를 할 때 한 여학생이 한 주는 결석을 했다가 그다음 주에 출석을 했는데 마치 벤허라는 영화에서 나오던 문둥병자처럼 온 몸을 싸매고 나온 것을 보고 난 다음엔 두려움에 옻닭도 못 먹었었다. 문헌에 의하면 옻칠은 우리나라에선 한참을 거슬러 이미 청동기 시절에서부터 발견되기 시작했으며 현대 과학제품에도 쓰일 만큼 광대하게 사용된다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자료를 본 대한민국 전통 자수 명장인 조미진 향교길68 관장이 한 마디를 곁들인다. 올해 전라미술상 수상자인 이선주의 작품도 훌륭하지만, 이 작가의 춘부장이신 이의식 선생의 업적을 극찬한다. ‘진정한’이나 ‘최고의’라는 수식어들이 남발 되리만치 많이 표현되는 것으로 보아 존경을 받아 마땅한 분의 대를 잇는 가업이 된듯하다. 이선주 작가도 일본 교토대학에서 석·박사를 취득한 재원이라 한다. 2관에서는 역대 수상자 김용수, 이광철, 이홍규, 이호철, 서완호, 탁소연, 장영애, 정소라, 김성수, 이보영, 황유진, 강유진과 김동헌, 문리의 작품들이 각자 1~2점씩 출품돼 수상자를 축하하면서 전라청년미술상의 권위를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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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호
  • 2023.12.18 17:43

[이승우의 미술이야기] 소찬섭 조각가, '달빛에 젖은 정'

소찬섭 조각가가 ‘달빛에 젖은 정(情)’이라는 다소 서정적인 제목의 개인전을 연거푸 열었다. 전시는 서울 인사 아트에서 지난 4일까지 열렸으며 전주 우진문화공간에서는 오는 20일까지 진행된다. 먼저 받은 작품 사진들을 보며 재료가 되는 돌의 재질이 심상치 않았다. 이 근처에서 채석되는 돌의 질감이 아니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나 피에타상 등의 조각상에서나 봤음 직한 재질로 보였다. 이탈리아의 ‘까라라석(石)’이다. 직접 다뤄보지 않아서 모르겠으나 알고 있던 소문에 의하면 면도칼로도 깎일 만큼 부드러우나 풍상에서 오래 견딜수록 단단해진다는 돌이다. 그것을 수입하기도 하나 보다. 제곱미터당 가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상상됐다. 결국 작가의 제작비 상승으로 이어진다. 여유롭지 않을 소 작가의 단심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조각가들끼리의 농담 하나가 생각났다. 조각품으로 환원되는 여체는 아주 뚱뚱하거나, 쟈코메티처럼 해골만 남았거나, 헨리 무어의 것처럼 변형(deformation)돼야 한다. 컬렉터의 아내보다 날씬하거나 예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 애환(?)을 가지고 제작을 감수하는 조각가 중에서 굳이 찾자면 소찬섭 작가의 작품은 세 번 째라고나 할까? 적당히, 어느 작품은 크게 변형된 작품들이었다. 그들의 농담을 받아들이자는 말이 아니다. 소찬섭 작가의 여체 왜곡(변형)을 말하고자 함이다. 작가의 심상으로 제작되는 어떤 변형은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도 있다. 작가의 소양에 따라 다르다. 소양이 깊은 작가일수록 실패하는 비율도 낮아진다. 그의 조상들은 경상도 진주에서 금마 미륵산자락으로 왔을 것이다. 본(本)이 하나뿐인 소 씨는 이곳 금마 도천마을로 이주해 불세출의 문장가이며 송설체의 대가인 소세양을 배출하고 오늘에 이른다. 대과에 급제한 뒤로 호조, 형조, 이조판서를 역임하고, 우찬성까지 지낸 소세양은 송도 3절인 황진이를 애끓게한 사랑으로 더 유명한 풍류객이기도 했었다. (황진이가 소세양을 얼마나 그리워했는가는 황진이가 작시하고 대중가수 이선희가 부른 ‘알고싶어요’를 들으면 그 애달픈 황진이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남의 족보까지 꺼낸 이유는 그런 분의 후손이어서인지 전시 제목 ‘달빛에 젖은 정’도 서정시의 한 구절이어서 그런 선조들의 피가 오늘까지 이어져 온 것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문에서이다. 더구나 서문을 쓴 문리마저 정으로 ‘정(情)을 나눈다’는 표현으로 우선 제목만으로도 조선의 명문장가 소세양을 생각게 하는 고도의 문학 지대를 지나기 때문이다. 이 글은 유독 소 씨 집안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조국의 역사다. 아무튼 소찬섭 작가의 작품들은 변형에서나 분위기 등 모든 면에서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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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11 17:56

[이승우의 미술이야기] 그림값에 대하여

피카소는 이런 말을 했었다. "그는 말도 안 되는 큰돈을 날마다 가져온다." 화상 칸바일러와 볼라르를 향해서 하는 말이다. 떡을 만지니 떡고물이 안 묻을 수 없는 이들도 많은 돈을 벌었다. 이중 볼라르는 가난한 화가들을 상대로 고리대금을 했다고 한다. 될성부른 가난한 화가에게 최저 생활비를 주고 생활비를 지급하는 동안에 가난한 화가가 그린 그림들을 모두 가져가는 계약이다. 이 마수에 조르쥬 루오가 걸려들었다. 내일이면 볼라르에게 그림을 다 줘야 한다. 루오는 망설이다가 자신의 그림을 모두 태워버렸다. 볼라르는 매우 분노하며 계약위반에 대한 사기죄로 루오를 고소했다. 그 유명한 판결은 "인간의 영혼은 사고 팔려지지 않는 것이다."로 루오가 무죄판결을 받았다. 피카소와 칸바일러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그림값을 올렸으며, 볼라르는 그 반대로 고리대금을 하다 폭삭 망했다. 우리나라도 장애인 요절화가 손상기작가의 그림은 화랑가에서도 보기 힘들다. 그 모두를 샘터사에서 소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북도립미술관 행사도 손상기 작가 그림은 샘터사에서 빌려와야 한다. 몇 년 전 서울에 사는 후배가 우연히 손상기 작가의 그림을 발견했는데 10호짜리에 1억이 붙어있다는 전언이었다. 서양미술을 받아들인 일본은 서양화를 문과에 두지 않고 공대에 두었다. 과학적 기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문학적 요소를 제거한 서양미술은 난이도가 높은 기술이었으며 그냥 공산품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계산하기 좋게 1호~100호 등의 크기로 나누었다. 포장지로 이용했던 우끼요에는 서구에서 난리가 나고 그들의 그림은 공산품의 일종으로 취급받았던 것이 지금의 인간미 하나 없는 그림의 호당 가격이다. 1호는 22,7×15,8Cm로 일반 우편엽서보다는 약간 크다. 그렇다고 10호가 그 10배인 227×158Cm이지는 않다. 그림이 크다고 좋으리란 법은 없다. 그때 당시는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어 크면 비싸다는 등식이 성립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틀린 이야기인데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10대 작가는 호당 10만 원, 나같은 70대 작가는 호당 70만 원이라는 현실성 없는 믿지 못할 분류도 보았었다. 저 사람이 호당 얼마를 받았으니까 나는 얼마를 받아야지 하는 자존심 값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림의 판매 방식은 경매가 제일 좋다. 그러나 전문 경매사가 절대량 부족이라 현실성이 없다. 이 지역에서 대가이셨던 고(故) 하반영 선생님은 말년에 10호 하나에 2만 원을 받아 젊은 미술인들의 눈총을 받은 일도 있다. 선생님의 의견은 "그림값에 거품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고 일부 젊은 작가들은 너무나 에누리 치면 전업 작가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다였다. 그림은 원작 1점 주의라서 판화나 사진에 비해 그림값이 비싸졌다. 그러나 터무니없이 비싸지는 것은 주머니가 가벼운 진정한 컬렉터들에겐 못 할 짓이다. 그렇다고 똑같은 그림을 차등 판매하는 것도 공평하지 않다. 이것은 우리가 안고 가야 하는 영원한 숙제이다. 수요가 많아지고 공급이 줄면 가격이 올라가고,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아지면 내려간다는 자본주의 법칙도 그림 시장에서는 도무지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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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04 17:41

[이승우의 미술이야기] 우진문화공간, 최춘근 개인전

조각가이자 도예가인 최춘근 씨가 지난 22일까지 우진문화공간에서 ‘최춘근 조형전’을 열었다. 화를 낼지도 모르지만, 독거노인이 될락 말락 한 중늙은이의 전시 소식에 시간 늦지 않게 전주에 위치한 우진문화공간까지 장애인 택시로 달렸다. 조금 이른 시간이었는데 병색이 완연한 할머니 한 분이 아는 체를 한다. 자세히 동공을 줄이고 바라보니 못 알아보게 변한 황순례 교수(조각)여서 반가운 마음에 환담을 나누는 중 오늘의 최 작가를 향하는 말에 애정이 듬뿍하다. "죽다 살아났어. 지금도 병원에 다녀야 하고, 그런데 '우리 춘근이'가 전시한다는데 안 나올 수 없어서" 발걸음을 하셨단다. 마치 막내아들을 생각하는 것처럼 애정이 뚝뚝 흘렀다. 짐작해 보니 최 작가가 대학 시절에 지도교수가 아니었나 싶다. ‘우리 춘근이’라는 말씀이 너무 정겨웠다. 작가는 인사말 앞에 대금을 연주했다. 고독을 벗 삼으려 작업실에서 혼자 연습했을 것을 생각하니 콧등이 시려왔다. 내장산 가는 길에 있는 그의 집 겸 작업실에 두어 번 방문한 일이 있었다. 마당을 정리한다고 해봤자 조각가의 집이라 옛 작품이 파손된 것까지 마당 구석에 널려있어 정갈하지는 못했다. 한번은 작업실 앞 마당에서 소주 파티를 하는데 작가들 특유의 정갈치 못하고 부실한 대접을 기억한다. 가게에서 파는 과자부스러기로 마른 흙이 묻어 있는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마셨던 것 같다. 혼자 살고 있어 더욱 커 보이는 마당이 넓은 집이었다. 그래서 갑자기 ‘독거노인’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나 보다. 평소 조용하고 그윽해 사람들이 많이 좋아한다. 이날 개막식만 해도 다른 전시회보다 두어 배는 손님이 더 있었다. 최태근이라는 친형이 도예가여서인지 평소 조각 말고도 도자기를 많이 제작했다. 집에 가보면 조각가인지 도예가인지 분간을 못 할만큼 이 두 가지에 모두 열심히 했다. 아마 도자기로는 육신의 양식을, 조각으로는 영혼의 양식을 구했던 것은 아닐지 생각된다. 이번 전시의 차림새만 봐도 조각에 소조, 도자기까지 소화해 냈다. 재료가 나무이면 밖에서 안으로 깎아 들어가야 하는 조각이고 테라코타는 안에서 밖으로 살을 붙여가야 하는 소조이다. 목조와 테라코타, 도자기가 함께 있었다. 표정과 스토리텔링 또한 다양하여 스스로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있었다. 깎아내는 거야 자신의 의지로 되지만 테라코타와 도자기는 최종적으로 불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집에 가스가마 인지 전기가마인지는 잊었으나 가마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테라코타 흙과 도자기 흙이 같은 종류인지는 모르겠으나 흙을 치대고 제작하고 굽는 것까지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고독하게 일하는 것을 보며 브랑쿠지의 작업실 벽에 걸려 있었다는 문구가 생각난다. "네가 예술가임을 잊지 말라. 신처럼 창조하고 왕처럼 주문하고 노예처럼 일하거라." 혼자 일인삼역을 해야만 한다. 물론 모든 미술가도 마찬가지지만 유독 최춘근 작가에게서 그것을 느끼게 되는 까닭은 혼자 살기에 고독하게 느껴져서일까? 나는 오늘 아름다움을 보았다. 즉 개성을 보았다. 최 작가는 모방이란 단어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고독해서, 자유로워서 더 남의 것을 빌리지 않고, 타협하지 않는 우직함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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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27 17:08

[이승우의 미술이야기] 향교길 68 갤러리, '망초의 계절' 전

선(Line) -직선의 그림이 싫다는 캐나다 예비 미술관장 친구 딸에게- 곡선(曲線)은 연속적으로 굽은 선이다. 그래서 태초의 선(線)이며 자연의 선이다. 태초에 창조주가 만들어 낸 온갖 형태는 곡선이다. 그래서 곡선에서는 포근한 친밀감이 느껴질 것이다. 잉태되었을 때부터 곡선 속에 있었으니 아예 향수 속에서 본능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본능은 쉽게 수정될 수 없다. 그러나 문명의 발달과 함께 직선이 생겼다. 직선은 두 점 사이의 최단 거리이다. 그래서 학습의 선이다. 즉 문명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아야 했던, 생전에는 볼 수조차 없는 선(線)이었다. 그것이 점차 필요를 통해, 학습을 통해, 교육을 통해 만들어지고 변화된 선(線)이다. 현대문명의 축을 이루는 과학의 발달에서는 곡선을 거부한다. 직선이 훨씬 기능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 와서는 다시 곡선을 대입하게 되었다. 직선과 곡선의 충격적인 만남이다. 이 역시 곡선을 선호하는 본능, 과학에서는 절대 필요하지 않을 것이 사람의 정서 때문에 다시 등장하게 됐다. 그래서 곡선은 자연의 선(線)이요, 직선은 학습된 선이다. 초현실 작가 마그리트는 담배 파이프를 실감나게 그려놓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밑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친절하게 글로 표기해 둔다. 이것도 학습이다. 그런 사건을 통하여 사람들은 사고(思考)한다. 사고하며 그 뜻을 이해하고 그렇게 학습된다. 왜 파이프를 잘 그려놓고, 파이프임을 글로 부인했는지 알게 되고 "아! 그랬었구나" 할 것이다. 첫 번째 시인은 "하늘이 파랗다"라고 했을 것이고, 그것을 학습한 두 번째 시인은 "당신의 눈은 하늘처럼 파랗다"라고 했을 것이다. 이 모두를 학습한 세 번째 시인은 "하늘과 같은 당신의 눈"이라고 표현하여 ‘하늘=눈’이라는 이상한 등식을 만들 것이다. 이후에는 하늘=눈이라는 등식이 상식이 될 것이다. 사람은 학습의 동물이다. 그래서 만물의 영장이라고 떠들어댈 수 있었을 것이다. 선사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동굴에 각종 형태의 동물들을 그렸다. 그것도 이 동물을 잡을 때는 어떻게 해야한다는 학습의 일환이었다. 우리 사람들은 모두 학습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는다. 그런 경험을 토대로 ‘술에 취한 눈(무의식)’으로 창조되었다는 추상, 그 뜨거운 추상의 칸딘스키는 곡선을 주로 했고, 이지적(의식)인 차가운 추상의 말레비치는 직선을 주로 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러시아라는 같은 풍토에서 시대도 비슷하게 살았던 사람들임을 잊지는 말자. 의식만큼 중요한 것이 무의식임은 프로이트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참고로 어리다면 어린 나이에 안달을 하다 결국은 포기했지만 처음 생각한 나의 석사논문 제목은 ‘현대미술에 나타난 의미되어진 무의식’이었다. 그때 만난 전북대학교 철학과 교수였던 고(故) 한단석 박사의 "이건 박사 논문으로도 너무 방대해서 쓰기 어려워"라는 말씀을 핑계 삼아 포기했었다. 그때 이미 교직에 나가있는 생활인이었기에, 실로 방대한 양의 서적과 수 많은 철학자들과의 교류만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이달 28일에 시작하는 향교길 68 갤러리에서의 초대전에는 장소 문제로 직선을 주로 한 작품이 몇 점이나 발표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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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20 17:40

[이승우의 미술이야기] 향교길 68 갤러리, 'art is the artist' 전

"art is the artist.(예술은 예술가다.)“ 이번 전시 제목이다. 먹물깨나 든 제목이다. 적어도 세계적 미술사학자인 곰브리치(E, H, Gombrich)의 미술사를 통독한 사람이 아니면 이런 제목이 있을 수 없다. 곰브리치의 미술사는 전공자는 물론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필독서이기도 하므로 가져올 수도 있지만 심각하게 몰두하지 않으면 놓치고 마는 "우리 뒷세대에는 예술 작품보다는 예술가만 남는다"는 그의 말을 세련되게 재해석한 문장이어서이다. "예술이 예술가"라니, 참신하고 심오한 제목이다. 이 말이 가지고 있을 행간의 의미는 정작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아직 잘 이해를 못하고 있다. 향교길 68 갤러리에는 두 명의 브레인이 있다. 강찬구 대표와 조미진 관장이다. 제목을 누가 지었느냐니까 서로 상대를 지목하다가 둘이 합의했다 한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기획전이다. 이 기획이야말로 둘이 머리를 맞댔을 것이다. 이 지역에서 영향력 있는 작가로 크게 성장할 조짐이 보이는 젊은 작가이거나 인성이 좋은 작가들, 기획자의 입장에서 섭외하기 용이한 작가들 30여 명을 선별하여 아트페어 형태로, 구매자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한 전시다. 다년간 갤러리를 운영한 경험으로 작가들과 합의 하에 거품을 뺀 가격으로 전시회를 했다. 작은 작품이 주를 이루는 첫 번째 이유는 공간 문제이고, 두 번째는 부담 없이 소장할 수있는 기회 마련이고 세 번째는 갤러리를 찾는 관객의 70%가 외국인이라는 특성에 맞춘, 다시 말하자면 까다로운 세관의 검열에도 직접 작품을 소지하고 비행기에 올라야 하는 외국인을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작가 명단은 고보연, 고형숙, 김승연, 김승주, 김연경, 김영란, 김영순, 김용수, 김하윤, 박마리아, 박지영, 서혜연, 심홍재, 유기준, 이강원, 이기홍, 이수아, 이올, 이일순, 이적요, 이호철, 장미연, 정은숙, 조미진, 진창윤, 최지영, 한숙, 한준, 홍성미 등이다. 대부분이 서양화를 전공한 작가들인데 조각가도 2명이 있고 설치작가도 있는가 하면 동양자수의 명인도 있다. 이 작가들의 작품들을 집대성하여 놓으니, 개성의 난투장이어서 관객들에게는 30여 개의 개성으로 다가갈 테니 조금만 발품을 팔면 낚시가 아니라 그물로 영혼의 양식을 잡을 수 있다 하겠다. 노란 은행잎이 멍석보다 두껍게 깔려있을 향교, 그 앞길에 있는 ‘향교길 68갤러리’이다. 전시는 오는 19일까지 진행되며, 월요일은 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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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13 17:38

[이승우의 미술이야기] 교동미술관, 김숙경 '숲속을 거닐다' 전

대학에서 만난 인연으로 교동미술관의 김숙경 개인전을 찾았다. 김숙경 작가의 선배되는 김수귀 작가가 내 작업실로 데리러 왔다가 늦은 밤 술에 취한 나를 무사히 귀가시켰다. 그 친구도 술이라면 말 마디깨나 하는데 나의 무사 귀가를 위하여 시종일관 맹물 소주로 대신했다. 많이 고마웠다. 전시장에 도착하니 아직 시작 전이었다. 그림부터 천천히 둘러보고 사진을 찍다 보니 시원찮은 다리가 아파, 다리 쉼을 하며 잠깐 앉아 있었더니 개막식을 하는데 ‘한 마디’를 원했다. ‘킹더랜드’라는 연속극에서 회장으로 출연한 이름 모를 배우가 "오늘 연설을 잘하려고 전문가를 초청해 물어봤더니 가장 명연설은 짧게 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라는 말을 기억했다. 나이 훔친 죄로 더러 이런 자리가 있어서 그 말이 귀에 쏙 들어왔었다. 개성이 곧 아름다움이라는 내용을 말했다. 작가의 그림들에서 개성이 많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림은 거의 풍경화였는데 닮게 그리려는 풍경화가 아니라 작가의 마음속을 그리려는 풍경화였기에 더 개성적으로 보인 것이다. 이런 그림을 주로 동양화에서 쓰이는 말로 사의(寫意)를 그렸다고 한다. 닮게 그리기도 어렵지만 닮게 그리면서 사의를 그리는 것은 쌓은 내공이 있어야 가능하다. 고도의 문학 지대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고도의 문학지대를 지나가는 작가들은 아무래도 초현실을 그리려는 슈르리멀리스트 (surrealist)들일 것이다. 닮게 그리면서 사의를 그리려는 화가들이다. 김숙경 작가의 그림에선 현실에서는 있지도 않을 숲속의 동물들이 있다. 자기의 마음을 표현한다는 구름만 그린 것도 있다. 욕심이 많은 작가다. 그러나 주부라 바빠서 그런지 꾸준히 그림에만 몰두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조금 아쉬웠다. 제작 과정에서 느꼈을 답답함이 보였으나 실망하기엔 이르다. 어느 날 갑자기 뿌연 안개가 걷힐 것이다. 그리고 창조는 항상 서툴다. 아니 서툴어야 창조다. 생각을 표현하는데 이미 성립된 자연을 보고 베끼는 것처럼 매끄럽게 기술적으로 나올 리 없다. 이런 것이 바로 화가들의 고통이다. 안 해도 그만인 스스로에게 가하는 형벌이다. 그리고 무릇 화가를 표방한 사람들은 그 고통이 즐거워야 한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마조키스트(masochist)가 돼야 한다. 그래서 그 고통을 즐겨야 한다. 상처가 아프면 아플수록 아프다는 것을 느끼는, 비로소 ‘살아있다’는 명확한 증거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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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30 17:44

[이승우의 미술이야기] 군산 리오하우스 카페 갤러리, 김덕신 작가 '짬' 전

‘짬전’이라고 했다. 짬은 바쁜 사람들이 본업을 잠깐 쉬면서 시간을 쪼개는 말이 아니던가? 김덕신 작가에게서 카톡으로 알림이 왔는데 ‘짬’전이란다. 그래서 실 생활인들이 짬을 내어 작업을 하는 아마추어 동호인 모임인줄 알고 그저 스쳤다. 며칠이 지나 다시 카톡을 살피다가 김덕신 작가의 인터뷰를 보면서 본인 작품이 폐품예술이라 했다. 호기심이 당겼다. 그것은 정크아트라는 이름으로 1950년대에 산업 쓰레기가 많았을 미국 로젠버그의 작품을 필두로 세자르, 팅겔러리, 체임벌린 등에 의하여 세계적으로 풍미하던 예술운동 아니었던가? 다시 김 작가에게 카톡으로 당신의 작품이 많이 궁금하다고 연락해서 가게 됐다. 조각 분야에서의 정크 아트는 본 일이 있지만 과연 회화의 정크아트는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궁금했다, 그룹전보다 김 작가의 정크 작품들을 빨리 보고 싶어 구도심의 작업장에 먼저 데려다줄 것을 원했다. 그곳에서 정크만으로 물감의 도움 없이도 매우 풍부한 색상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작업실에는 작품을 위한 이것저것 수많은 정크(쓰레기)가 수집돼 있었다. 이후 전시가 열리고 있는 군산 우체국 앞에 있는 리오 하우스라는 카페 갤러리에 갔다. 거기에 가서도 놀라움은 이어졌다. 아주 세련된 미니멀의 공간이어서다. 쥔장의 예술적 깊이와 넓이에 감탄해서이다. 꾸미지 않은 최소한의 예술성이었다. 도무지 상식적이지 않다. 이렇게 꾸며서는 일반 손님의 배척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겠다 싶은 공간이었다. 예술사조에 대한 일가견이 있어야만 출입이 가능한 공간이었다. 그곳에서는 짬 동인들의 작품들이 훨씬 잘 보였다. 작품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다른 공간을 미니멀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었다. 창조는 항상 서툶을 동반한다. 서툶이 보여야 창작이다. 그러나 기능이 없는 서툶과 창작을 위한 서툶은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곳에 모인 작품들은 가히 개성의 난투장이었다. 조소, 도자예술, 공예, 서양화, 한국화의 여러 장르가 있었으나 어떤 감상자라도 그 점은 쉽게 간과할 수 있었다. 의미 없는 기술의 숙달로 표현돼 수공적인 매너리즘의 재생산에 불과한 작품들이 의외로 많았다. 다시 말하지만, 미술은 개성이어야 하고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라고 했다. 세종대왕의 명으로 수양대군이 번역한 불교 경전 석보상절에도 아름다움은 ‘나답다’라고 했다. 개성이 진짜 아름다움이란 것을 생각지 않고 ‘잘 그린다’는, 기술적인 재생산이라는 것으로 평가하려는 잘못 생각된 작품들이 많이 보였다. 물론 일반인들의 평가에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화가의 태도는 아니다. 이미 600년도 넘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화가는 인문학자임을 표방했다. 인문학자란 미술의 궁극적 목표인 ‘아름다움’에서 다움이라는 형용사를 빼면 ‘아름’이 남는데 아름을 한마디로 고치면 ‘앎’이고 오는 곧 알지(知)이다. 많이 아는 사람이 곧 인문학자인 것이다. 하물며 현대에서야 말해 무엇하랴. 이것이 아름다움의 또 다른 의미이다. 그림 그리는 행위를 하려면 누구보다 앞서 나가야 할 인문학자임을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튼 오늘의 큰 수확은 김덕신 작가의 개성 있는 오브제 작품을 만난 것과 군산 우체국 앞의 리오하우스 실내의 세련된 미니멀리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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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23 17:29

[이승우의 미술이야기] 향교길 68갤러리, 서혜연 초대전

가을비가 이따금 가랑비로 내리는 날에, 전주 한옥마을의 유서 깊은 향교 앞길. 향교길 68 갤러리(관장 조미진)에서는 그간 환상적인 그림을 그려왔던 서혜연 작가를 초대해 "Welcome to my world(내 세상에 온걸 환영해)–서혜연-"이라는 전시를 열었다. my(나의)와 world(세계)사이에 Fantastic(환상적인)이라는 단어가 하나 더 들어가도 좋을 뻔했다. 나서지도 않지만 물러서지도 않는 올곧은 성격의 조미진 관장과 천생 여인이지만, 이 지역 미술계에서 자리매김을 확실히 하는, 이젠 나이가 아니라 연세가 되었을 방부제 미인 서혜연 작가가 만난 것이다. 이 작가는 잘 연마된 인체 크로키 실력을 바탕으로 인물의 몸짓을 그리고 완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섬세한 무늬의 헝겊을 정교하게 오려 붙이는 콜라주를 많이 이용해 환상적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었다. (헝겊을 이용하는 콜라주나 종이를 붙이는 빠피야 콜레 기법은 모두 처참했지만, 가치 있었던 미술 파괴 운동, 즉, 다다가 폭풍이 돼 지나간 직후에 발생한 초현실주의나 입체파에서 연유한 기법) 그래서 미술의 3대 요소인 그리기, 만들기, 꾸미기를 하나의 화면에 같이 시도하는 작업을 했었다. 시인 이상의 ‘거울’에 나오는 마지막 시 구절, "나는 거울 속의 나를 근심하고 진찰할 수밖에 없으니 퍽 섭섭하오"처럼 거울에 비치는 본인의 연민을 연일 그리고 지우고 또 그리는 행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요즈음 신작들은 콜라주를 이용한 기막힌 효과보다는 효과가 떨어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보다 단순하게 그리기만으로 완성하고 있었으며, 즐겨 그리던 인간들마저 하나의 정물로 바라보려는 자세, 높은 경지 관조의 세계로 몰입해가고 있는 듯했다. 그러고도 하고싶은 말이 많은 것인지 그녀의 그림들은 전보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싶어 했다. 즉 많은 말을 하고싶지만, 말을 아끼는 거 같은 심정? 입맛으로 생각해 보면, 일관했던 단맛은 많이 줄고 그 자리를 쓴맛, 신맛, 매운맛 등 갖가지 오묘한 맛들로 채워가고 있다고나 할까? 그러면서도 오히려 색채와 형태는 더 단조로워지고 있었다. 극렬한 배색에서 오는 화려함보다는 더욱 온화한 유사 색상의 배색 등으로 편안해지는 마음을 표현해서 화려함보다는 온화함을 강조하여 원숙한 나이가 되어감을 은연중에 나타내고 있었다. 어느 원로시인이 나이가 들어가니 당신의 시도 늙어가서 걱정이라더니 요즘은 나이 따라 늙어가는 글이 더 좋아졌단다. 딱 그 모양이다. 대저 늙은 시나 그림이 무엇이던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기는 여유와 관용일 것이다. 거기에 연유해서 관조의 경지에도 도달할 것이다. 우리도 이제는 나를 비춰주는 거울 속의 나를 또다시 바라봐야 할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회화뿐만 아니라 조소 작품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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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16 17:37

[이승우의 미술이야기] 우진문화공간, 이희춘 개인전

전주 우진문화공간 전시실에서는 11일까지 이희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장 입구부터 인물 군상이 눈에 보인다. 정보가 전무했던 나는 잘못 알고 온 줄 알았다. 불과 2년 전쯤 교동미술관 개인전에선 ‘화양연화’라는 제목답게 큰 꽃들을 많이 그렸다. 가장 화려했던 영광의 나날들을 그리기에 꽃이라 쓰고 아름다움이라 부르는 꽃을 그리는 것으로 설정해야 마땅했으리라. 그런데 인물화라니. 전시장에는 유난히 인물화들이 많았다. 화양연화의 시각과 생각이 아직 이어지는 꽃과 인간이 어울리는 그림도 있었으나 대부분이 새로 제작한 인물화였다. 모델링보다는 추억 속의 인물들을 그렸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정밀 묘사를 좋아하는 작가들이 본다면 더 그리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들 만큼 그리다 말은 그림처럼 묘사는 많이 생략했다. 마치 대상이 중요하지 않은 스쳐 가는 사람들처럼, 제3자의 눈으로 무심하게 보는 것 같았다. 담백한 눈길이었다. 대신 그 붓질 하나하나엔 인간미가 있었다. 숨을 쉬고 있었다. 로트렉이 바로 연상됐다. 믿기 어렵겠지만 그는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다시 말하자면 전공을 하기 위해 전통 산수도 한 경험이 있을 것이란 이야기다. 구도에선 전혀 느껴지지 않으나, 애써 살피자면 채색에서나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그가 한국화를 전공했다는 사실을 알고, 아무 필요 없이 굳이 찾아보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그의 개성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알다시피 그림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름다움"이라면 바로 개성만이 아름다움이다. 국내 최초로 15세기에 세종대왕의 명령으로 수양대군이 한국어로 번역한 불경 석보상절에서도 아름다움은 ‘나답다’로 번역됐다. 또 ‘아름’은 ‘앎’으로 번역되어 지(知)의 뜻이 되기도 하지만, 아름은 두 팔 벌린 한 아름, 두 아를 등으로 생각해 아름 속에 들어온 것은 내 것이라 한다. 곧 아름다움은 내 것다움이고 내 것다움을 한문으로 하면 개성이 된다. 느닷없는 인물화는 짐작건대 최근의 파리 체류에서 얻어진 발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타국에서의 외로움 때문에 절실히 생각나는 고국에서의 만남이 흑백사진 속의 추억이 돼 인물화 속에서 표현되지 않았나 싶다. 물론 파리 체류 시에는 수십 년 전 이 지역 출신으로 파리에 유학을 갔다가 머물며 성공한 손석이라는 작가가 있어, 그 집(작업실)에서 숙식하며 안정된 마음으로 그림에 몰두할 수 있었다는 것도 큰 역할을 했겠지만 말이다. 참고로 이제는 파리시민이 되어버린 손석 작가는 군산의 근대미술관에서 지금 전시하고 있다. 군산에도 작업실을 마련했다 하니 파리와 군산을 오가며 작업을 할 모양이다. 옛날에 샘 프란시스의 작업실이 뉴욕과 동경, 파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부러운 마음이었는데, 비로소 내 주변에 있었던 사람도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이희춘 작가는 이번 우진문화공간에서의 전시가 끝나면 또 한 번의 파리 전시를 하기 위해 도불을 해야 한단다. 그동안 파리에서 작업한 작품 중에는 한 변의 길이가 270cm를 넘는 대작(大作)도 있다 하니 성공리에 파리 전시도 마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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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09 16:29

[이승우의 미술이야기] 익산 예술의 전당, 홍경준 개인전

원래 인물화로 잘 알려진 한국화가 홍경준이 익산 예술의 전당 2층, 느낌으로 100여 평이 넘는듯한 넓은 공간에, 그나마 더 많은 그림을 전시하기 위해 중간중간에 간이 벽을 설치해 지난 21일까지 전시회를 마련했었다. 이번에도 인물화가 거의 대다수였다. 인물화는 탄탄한 드로잉 실력은 물론 모델이 되는 사람의 심상(心像)마저 빨리 파악해야 비로소 인물화를 한다고 할만하다. 또 인물화는 다른 그림에 비해 단점이 빨리 간파당하는 염려가 있어서, 어쩌면 화가들이 기피하는 경향도 있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전시장에 들어서자 상당한 크기의 인물화들이 만개하였다. 보면서 또 느낀 것은 한국화는 인물 이외에는 여백으로 처리하여 여운을 남기는 여유를 보이는 데 반해 그의 인물화는 서양화에서처럼 여백이 없이 장식적으로 꽉 채워 주인인 인물과 서로 대화를 하는 점도 특이했다. 여기서 옛날 에피소드 하나만 소개하자면 대화하시는 두 분은 대학원 서양화과 주임교수이셨던 고화흠 교수와 한국화 주임교수인 벽천 라상목 교수였다. 저녁 식사 중이었고 각각 당사자는 나와, 나중에 본교 교수를 했던 벽강 류창희 교수였다. 고화흠 교수는 먼저 "아니 맨날 서양화만 억울하지. 우리는 꽉 차게 그리지 않으면 그리다 말았다고 하고 한국화는 똑같이 그리다 말아도 여백이라고 하니 말이요“라고 농을 건네셨다. 그러자 벽천 라상목 교수는 "그럼 서양화 졸업생이 100호 한 점을 과제로 그린다면 내 학생에겐 열 점을 그려내라 할게요"라고 화답했다. 정작 열 점이건 백 점이건 그려야 되는 사람들을 옆에 두고 참 한가로운 농을 하셨다. 거기서 두 분이 결정이라도 내리면 정작 죽어나는 사람들을 옆에다 두고. 그때 상황이 만약 지금, 이 그림들이었으면 그런 대화는 아예 없었을 것을 이라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다. 또 하나 특이점은 누드도 어려울 터인데 인물화 대부분이 코스튬이다. 누드라는 것은 여러분들이 아는 것처럼 옷을 벗은 것은 아니다. 옷을 입지 않은 것이다. 무엇이 다르냐는 분들에게, 말장난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대답하자면 벗는다는 것은 목적 외에도 수치심을 유발하지만, 옷을 입지 않았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건강미가 있다는 차이가 있다. 코스튬이란 옷을 입고 있다는 것으로 모델이 거의 여성인지라 옷 주름의 표현도 만만치 않았으리라. 미술을 크게 3가지로 분류하면 그리기, 만들기, 꾸미기이다. 장식적이라는 것은 꾸미기에 해당할 것이니, 장식성이란 주제와 관련해야 하니 더 많은 생각이 필요할 것이다. 장식성이 더하여져, 따로 비구상도 선보였는데, 서양의 몬드리안의 부기우기에 버금가는, 아니 진일보한 작품들도 선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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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9.25 18:01

[이승우의 미술이야기] 향교길 68갤러리, 유기준 초대전

전주 한옥마을이 관광 명소가 된 것은 꽤 오래다. 그 한옥마을에는 그 마을의 심장 격인 향교가 있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 향교길 68번지 주소에 ‘향교길 68갤러리’가 있다. 그곳에는 누구보다도 갤러리 경영에 진지하면서도, 어느 누구의 작은 이야기에도 경청할 줄 알며, 항상 미소를 잊지 않는 68갤러리 관장 조미진(한국자수 명장)이 있다. 그곳에서 오는 24일까지 유기준의 ‘묘금도 부귀도’라는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특이하게도 이번 전시는 직장인들을 위하여 오후 8시에 전시장을 닫는다고 한다. 아주 먼 옛날 쫓겨나서 유배지로 갔던 부귀중학교에 부임한 내 일성이 부(富)자가 얼마나 귀(貴)하면 이름이 부귀냐고 억 소리를 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부귀의 뜻이 그렇지 않음을 익히 알고 있다. 부귀란 재산이 많으면서도 지위가 높아진다는 뜻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기복의 첫 번째 명제이다. 사람들은 부귀를 원하며 덕담처럼 그림을 선물하는데 그 그림에 많이 등장하는 것이 부귀의 목단과 영화의 해바라기 그림이다. 첫 번째 전시장에 들어서니 목단꽃들이 각각 저마다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중에는 어린 날에 장터에서 보았던 혁필화에 집어넣은 목단꽃도 보였다. 보이는 것이 혁필화라는 것이 아니라 대표적인 민화 형태인 혁필화의 양식은 맞는데 뭔가 생소하다. 기억 속의 혁필화는 달필의 한 문자에 갖가지 그림을 첨가한 것이었다. 그러나 바탕을 이루는 글자가 한글이었고, 그 획 안에 목단을 어떻게든 몰아넣었다. 이 작은 변화가 나로 하여금 낯설게 했고, 이런 조그만 발견이 창작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바탕이 되는 한글 꼴도 전혀 달필이 아니라 어느 시인의 원고지에서나 봄 직하게 서툴지만 진지한 글씨였다. 그러고도 아이가 색칠 공부를 할 때 선(line) 밖으로 색칠이 삐져나가지 않게 하려는 조심성을 보인다거나, 문자도에서도 글 꼴 안에 있는 꽃은 많이 설명하고 꼴을 벗어난 배경에는 설명이 없는 형태만 표시하는 것으로 군주 제적 종속 원리를 철저하게 지키는 것으로 보아 가급적 사회와 순응하려는 작가의 심성이 보인다. 2관 격인 다음 공간에서는 다소 옛날 작업을 선보이고 있어 "벌써 회고전여?"라는 말로 주위를 환기시키며 좌중을 웃겼다. 작가들이 작품들을 전시할 때 가장 많이 신경 쓰는 것 중의 하나이다. 같은 양식의 작품을 선보이느냐 아니면 섞어서 보일까다. 듣자니 조 관장이 옛날 그림이 너무 좋아 일부러 끄집어 왔다는데, 이런 것으로 고민하는 작가들이 너무 많다. 작가들이 나에게 의견을 물을 때면 나는 언제나 모두 보여줘도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이 작가의 어제와 오늘도 구분하지 못한다면, 또는 작가의 다양성을 외면한다면 감상할 자격을 운운해봐야 할 것이다. 그쪽 방에는 오늘의 자유스러움을 위해 기초체력을 단련하던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인물화의 표정들이 압권이어서 그가 다닌 대학의 교수 중 하나가 인물화를 중히 여기고 인물화에 일가견이 있었던 것을 상기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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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9.18 17:33

[이승우의 미술이야기] 군산 장터미술관, 류인하 개인전

독일 유학파인 고보연 설치 미술작가는 항상 그 넓은 시야로 미술판을 바라본다. 고 작가는 옛 군산을 대표했던 상권의 골목인 영동 상가를 이용하여 임시 갤러리를 마련하고 본인의 설치작품을 비롯해 고인이 된 후배 작가의 작품들을 모아 뜻깊은 전시회를 마련해준 바 있다. 이번에도 지금은 군산시에 흡수되었으나 군산의 위성 면이었던 대야의 장날에만 문을 여는 장터 미술관을 만들었다. 전북의 미술 문화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보배스러운 작가가 아닐 수 없다. 그 첫 번째 전시로 수채화 화가인 류인하 작가의 작품과 작가와 같이 성당에서 마련해준 장소에서 미술 놀이를 하는 발달 장애우들의 미술 놀이 결과물들이 전시됐다. 두 평 남짓한 공간이었다. 이렇게 작은 갤러리는 일본 전시에 참석했을 때, 일본의 알프스라는 ‘이다’ 현에 갔을 때, 일본 여류작가가 운영하는 아주 작은 카페와 전시실을 본 이후로 처음이다. 일본의 그 갤러리는 두 평 남짓의 카페와 역시 그 크기의 갤러리가 장난감처럼 각각 있었다. 우리 생각은 카페와 갤러리를 합하여 좀 더 넓은 공간에 의자도 몇 개 더 놓고 벽면만 이용했었을 텐데 그곳은 그랬었다. 장터미술관 그 좁은 공간에 그래도 조명은 갖추었다. 그 좁은 공간에 지도 교수격인 류인하 작가와, 류 작가와 3년 이상 부대끼며 호흡을 같은 장소에서 나눴던 다른 세 명의 발달장애우 작품들이 결코 옹색하지 않게 전시되고 있었다. 류 작가의 작품 3점, 한명희, 박성원, 현재원 등의 작품이 여유롭게 있었다. 다만 장터미술관에서 류 작가의 작업실이 멀지 않기에 류 작가의 작업실을 들러보기로 했다. 그곳도 도심에서는 많이 벗어난 옛 성산면이었기에 가능했다. 2024년 4월에 있을 명동성당 갤러리에서의 개인전 준비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이었기에 더 보고 싶기도 했다. 오고 가면서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문을 들어서면서 그 정돈 상태를 보며 "아! 여류의 작업실"임을 느꼈다. 그곳에서 지금 그리고 있는 그림에 대한 심정과 정물에 집중하는 이유도 알게 됐다. 얼마 전 몽골 여행 이야기도 하면서 일상에서의 느낌과 여행지에서의 심경 변화에 대해서도 심도있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류 작가의 섬세함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딱 류 작가의 그림과도 일맥이 상통이다. 하긴 그 그림들은 그 사람이 그렸으니 동떨어질 수 없다. 타인에 대해서는 나쁜 말을 한마디도 안 하고 좋은 말만 하는 그 성격은 많은 그림의 주제인 꽃을 바라보는 시선도 그렇게 맑고 향기로운 거 같다. 다양한 기법들이 적절한 곳에 알맞게 나타나 있었다. 오랜 세월 연마한 인체 크로키의 자유롭지만, 엄격한 영향도 많이 받은 거다. 제작 과정에서는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무보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라는 행위에 대한 즐거움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역시 그림이라는 작업도 긍정적인 성격의 사람들에게서 더 섬세한 관찰과 표현이 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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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9.11 17:38

이승우의 미술이야기] 군산 예깊미술관, 선명희 초대전

아담한 체격을 가졌으나 배포만은 200kg의 거구 안록산이도 못 당할 정도의 여장부 선명희가 군산의 팔마예술공간(대표 임성용)의 예깊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갖는다. 예깊미술관은 옛 농협 창고를 개조한 미술관으로 여느 미술관에 비해 넓고 높은 공간을 소유하고 있다. 지난달 15일부터 오는 30일까지 약 한 달 반 동안 진행될 예정의 선명희 초대전은 그동안 유럽에서 보고 듣고, 갈고 닦은 선명희 작가의 모든 것을 보여줄 예정이다. 항상 당당하고 그래서 매사에 자신만만한 그녀는 30대 초반의 나이에 단돈 50만 원을 들고 혈혈단신으로 독일로 향했다. 그 거금을 마련하기 위해 한 달에 6만 원을 봉급으로 받으면서 남의 집 가정부(본인의 표현은 식모살이)도 마다하지 않았다. 당시 군산에 살았던 나는 50만 원을 들고 독일에 갔다는 소문에 깜짝 놀랐으나 그 당사자가 선 작가임을 알고 ‘역시’라는 반응을 보인 것 같다. 실제 상황은 100만 원을 들고 갔다 한다. 그녀의 고교 친구가 가는 길에 50만 원을 보태주는 우정 때문이었다. 인간관계의 승리다. 50이든 100이든, 세계지도 속의 한국이라는 나라도 눈곱만한 데 그중에서도 조그만 항구도시의 젊은 처자가 마음을 다짐하고 실행하기엔 너무 벅찬 행동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유럽살이는 베를린과 브뤼셀, 파리, 스위스 등으로 옮기며 27여 년간 계속됐다가 완전히 귀국했다. 출국 2년 만에 갑자기 선 작가가 군산 KBS 광장에서 결혼식을 한다기에 가본 기억이 있다. 배우처럼 잘생긴 파란 눈의 유럽 청년이 파트너였다. 누가 봐도 미모만 보면 신랑이 아깝다 했던 기억이다. 더구나 신랑은 집안이 아주 거부이기도 하고 많이 공부한 사람이었다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독일 유학파들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그들의 그림은 다른 나라 유학생들보다 대체로 이유 없이(?) 어렵게 표현한다는 선입관 때문이다. 그러나 선 작가의 그림은 1940년대 말쯤의 미국에서 태동했던 추상표현주의라서 일단 안심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칸딘스키류의 뜨거운 추상도. 말레비치류의 차가운 추상도 아니고 그 중간 상태인 마크 로스코 풍의 색면추상이었다. 그러나 로스코가 비교적 정돈된 정형의 추상화라면 선 작가의 것은 불안감을 내포한 비정형의 색 면에 ‘계획된 오토마티즘(자동기술법)’을 가미한 그림이었다. 또 로스코가 색의 혼합을 통해 중간색을 선호했다면 선 작가의 그림은 역시 불안감을 고조시키려는 듯, 가급적 원색과 사선으로 화면을 즐겨 만들어 가면서 완성을 해갔다. 추상표현은 이미 우리에게 많이 다가와 있어 그리 어렵지는 않다. 유럽의 자유분방함의 영향인지 그림에 옷을 입히는 프레임은 모두 생략되었다. 그녀에게서는 항상 격식과 제도를 파괴하는 반항아의 신선한 향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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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9.04 18:30

[이승우의 미술이야기] 우진문화공간, 이올 작가 '돐' 전

전시장에 들어서자 우선 시야를 꽉 차게 만드는 팔각조형물의 대형 초상화들이 있다. 우선 이 팔각기둥을 돌고, 다음에 벽면의 그림들을 보며, 철학자의 후손이었던 아일랜드의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2)과 앵포르멜의 선구자였던 장 포트리에(Jean Fautrie 1898~1962), 그리고 휴머니즘의 깊은 철학을 표현하였던 조르쥬 루오(Georges Rourault 1871~1958)와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거장이었던 박서보 선생의 젊은 날의 그림 제목‘원형질’이라는 단어들과 인물들이 생각났다. 사상은 뚜렷한데 붓질은 거칠기만 해서 무척 속도감이 있고 자유로웠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규칙과 제도와 상식을 파괴하는, 작가의 화가 난 내면을 표현하는데 어울리는 붓질은 정말 미쳤다는 생각이 들 만큼의 속도가 넘치는 붓질이었다. 그가 아이의 돌을 주제로 정한 사상과 일맥상통하는 가히 광란에 가까운 속도감의 붓질이다. 아이는 돌잡이 때부터 부모가 원하는 상식을 교육받는다. 명주실이나 연필 등을 놓고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며 즐긴다. 그러면서 제도와 규칙, 그리고 상식 있는 어른으로 키워져 가는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작가는 이런 현실에 분노하며 붓을 들었다. 이런 생각과 몸짓은 경험이 많은 자칭 어른도 하기 어려운데 아직 아이도 없는 30대 중반의 어린 새댁이 해냈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그림을 전시한 방법도 너무 특이하다. 중앙의 팔각기둥은 150F(227,3×181,8Cm)크기의 캔버스를 이어서 기둥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림이 더 잘 보이게 하는 조명도 그림마다 다르다. 신기하게도 조명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 그림도 오늘 보니까 가까이 가면 다 보인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토록 심오한 삶의 철학과 지혜에 나도 모르게 감탄한다. 흔하디흔한 돌쟁이 아이의 웃는 표정은 없었다. 뭔가의 고뇌에 가득찬 어린 돌잡이의 원초적 표정뿐이다. 미술의 기본인 창작은 같이 살아가는 일반인들과 똑같은 규칙과 제도 또는 상식의 선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우리 미술인들에게 권장되는 것이다. 무리를 지어가는 사람들을 저만치 떨어져서 응시하고 관조하고 있는 것이다. 미술이란 그런 것인지를 알고 있는 것이다. 부럽다. 참고로 이올 작가의 집안은 대부분 미술인이다. 아빠, 엄마, 형제자매, 신랑까지 모두 미술대학 출신이다. 그렇지만 시댁은 차고 넘치는 재력이 있는 집이기에 그림 같은 거 그리느라고 애써 머리를 감싸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도 하물며 본인이 느낀 부조리를 이 사회에 고발까지 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가는 아주 몸에 익은 예절과 타인에 대한 배려로 주변의 사람들에게는 행복감을 준다. 가냘픈 촛불이 주위를 밝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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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28 18:13

[이승우의 미술이야기] 교동미술관, '환상의 미학' 전

위대한 전쟁 영웅이라는 더글라스 맥아더조차도 "노병(老兵)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라 했다고 배웠는데 사라지기는커녕, 빛을 잃어가지도 않고 젊을 때보다 더욱 빛을 내는 힘이 충만한 노장의 전시를 실로 오랜만에 보았다, 내 나이도 암만이라 나보다 선배의 개인 전시는 거의 없다시피 한다. 그런 추세에도 불구하고 77세의 박종수 선배가 전북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교동미술관 1, 2층에서 개인 초대전을 한다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갔다. 1~2년 전쯤에 전통문화 예술회관에서 회고전 형식의 큰 전시를 했었기에 이번에도 그런 모습이겠거니 생각하고 갔다. 그러나 큰 오산이었다. 비교적 큰 크기의 작품들 51점 모두 신작이었다. 힘도 좋지. 그 연배에 그 정열이라니, 스스로 부끄러움에 고개가 숙여진다. 나도 밤잠을 멀리하고 작업을 하지만 완성된 작품은 찾기 힘들고 맨날 습작인데, 완성된 그림만 골라서 51점이다. 모두 초현실주의 계통의 그림인데 맨 먼저 보이는 그림이 편상(片想)으로 구성한 전상(全想)도 있어서, 즉 복합적이지 않은 한가지 생각들을 담은 작은 화면을 이어 붙혀가며 스토리텔링을 하여 비로소 여러 개의 캔바스를 합쳐 하나의 생각으로 정리하는 그림이 처음 눈에 띄어 그 생각의 젊음에 일단 놀랐다. 엉겅퀴로 대변되던 민초들의 그림을 그리던 젊은 시절을 지나, 이야깃거리가 많아 최고의 문학 지대를 통과해야 하는 반 구상(具象) 그림에 열중하다가 말년에는 마침내 초현실주의 화풍에 몰두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생각되는 것이 초현실 계통의 그림을 그리려면 색과 형태를 어린아이 떡 주무르듯 화면을 마음대로 조작해서 그릴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현실이 아니라 현실을 뛰어넘는 새로운 세계를 표현할 수 있다. 초현실주의 자체가 전통과 제도, 그리고 상식을 철저하게 파괴했던 다다 운동의 적장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의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줘야 한다. 충격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깊고 깊은 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 스토리텔링도 그렇다. 그래서 박종수 화백이 자주 만나 회포를 푸는 사람 중엔 진동규, 호병탁, 김익두 등 내로라하는 문학가들이 많다. 아무튼 고령이라면 고령인데도 끝없이 샘솟는 그의 정열에 숙연해지면서 무늬만 화가인 젊은이들에게 충분한 귀감을 주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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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21 17:24

[이승우의 미술이야기] 갤러리 1898, '이남규 30주기' 전

나의 영원한 은사님인 고(故) 이남규(1931-1993) 선생님의 전시 소식이 왔다. 우리는 흔히 세계적인 미술교육가로 구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를 든다. 그의 영향을 받은 화가들이 마티스, 루오 등이 엄청난 화가였기에 더욱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지만, 살로메로 대변되는 상징주의 화가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에 못지않은 삶을 사셨던 분이 있다. 공주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미대에 다시 진학하여 마치고, 그때까지는 미개척 분야였던 스테인드글라스를 공부하러 유학길에 올랐다가 온 곳이 나의 모교인 원광대학교였다. 3학년때 추상화 시간에 처음 본 선생님의 첫 수업은 80호 캔버스에 선생님의 아무것이나 자유롭게 그리라는 명령에 느꼈던 캔버스의 하얀 공포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모든 수업은 자율적이었으나 학생들 모두 벽에 캔버스를 기대어 작업을 하는데 선생님은 가운데 평상에 앉아 본인의 그림을 그리고 계셨다. 나중에 생각하니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작은 색 면을 놓아가고 계셨다. 방학 때도 학생들을 소집하여 같이 그림을 하시던 선생님, 학생들이 고마워서 중국음식점에라도 모시고 가면 제일 먼저 값이 싼 짜장면을 선택하시던 분, 학생들이 고마움의 표시로 어설픈 자신의 그림이라도 드릴 생각을 하게 하던 선생님, 자발적으로 넥타이를 선물하는 학생에게 "화가에게는 넥타이와 양말은 선물하는 것이 아니다" 라며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시던 분, "네가 그렸는데 그 평가를 누구에게 맡기냐“며 공모전 출품을 말리시던 분이었다. 기교로 완성된 그림보다 늘 '늘 폼'의 가능성을 더 중요시하던 분, 당시 암막 시설의 부족함 때문에 학생들을 밤에 불러 환등기에 슬라이드를 잔뜩 꽂아 미술사를 진행하시던 분, 당시에 시골 학생들에게는 넘을 수 없던 벽이었던 유경채, 임영방 교수들을 자주 초빙해서 특강을 마련하고 스스로 슬라이드를 조작하시던 분이었다. 그때 서울대학교 유경채 교수가 했던 말씀을 이 나이에야 이해하는 일도 있었다. 아주 잘 그린 추상화 앞에 선 유경채 교수님이 "넌 너무 잘 그려서 오래 그리지 못해. 그 점을 항상 명심해" 라 하셨고 세월이 지나고 보니 ‘과연’이었다. 그런 유명 교수들을 모셔 조교를 자처하시던 분, 여러 모습이 겹친다. 난 졸업하고 교사가 되었음에도 공모전에 출품할 때 선생님께 구구절절한 편지로 허락을 얻었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중앙미술대전 특선)하고 북가좌동으로 선생님을 찾아봬었을 때, 선생님이 아주 편찮으셨던 관계로 사모님이 잔을 하나만 가져오자 사모님을 핀잔하시던 분, 조각과 교수를 피해 반지하의 흙이 풍부한 조각실을 이용하지 못하고 1층의 디자인실에서 성모상을 기가 막힐 정도로 아름답게 만들던 분, 그 많은 에피소드를 좁은 지면에 어떻게 모두 소개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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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07 17:46

[이승우의 미술이야기] 삼례문화예술관, 유혜인 작가 '꿈꾸는 해바라기' 전

식물학자가 아니라서 해바라기의 원산지는 모르겠으나 고흐의 편지에 의하면 페루라고 한다. 이는 고흐가 아를르에 머물 때 고갱을 환영하는 마음으로 고갱이 어릴 적 살았던 페루의 꽃, 해바라기를 그려 축하를 대신하였다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에도 미쳐버린 듯이 해바라기의 열풍이 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은 소피아 로렌이 주연한 영화 해바라기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의 해바라기 열풍은 차라리 광풍이라 할만했다. 여인들의 신발에도 원피스에도 심지어는 머리핀에도 온통 노란 해바라기로 가득했었다. 요즘도 목단 그림과 함께 해바라기는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부를 이룬다는 속설이 있어 특히 매매가 잘 되는 그림이다. 처음 그림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는 해바라기가 만만해 보여 쉽게 도전했다가 스케치 이후에는 바로 포기하는 꽃이 해바라기다. 꽃 이파리의 노란색에서의 명도와 채도의 변화도 만만치 않고. 겨우 꽃 이파리를 해결했어도 바로 씨방의 처리에서 꽉 막힌다. 또 해바라기는 여러 가지의 몸짓을 하고 있어 군집 된 해바라기를 그리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들어가기에는 쉽게 보여 웃고 시작했다가 탄식으로 끝나는 꽃이 해바라기이다. 태양을 향한 젊은 해바라기가 있는가 하면, 늙어서 고개를 숙인 해바라기, 이빨 빠진 해바라기 등 그의 몸짓과 표정은 다양해서 초보자에겐 거의 풀어내지 못하는 난제가 된다. 이런 해바라기 그림 60여 점으로 영화 해바라기에서처럼 해바라기의 물결을 이루어 낸 전시가 바로 지금 하고 있는 유혜인 작가의 ‘꿈꾸는 해바라기’ 전이다. 그의 화력도 수십 년이니 이 어려운 것을 해내고 있다. 사실적 그림을 지향하는 목우회 계통의 회원만 해도 수백 명인 전미회 회장을 역임하고 원광대 동문회 성격의 노령회 회장도 역임하는 등 어느새 이 작가는 이 지역의 여류를 대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유혜인 작가의 해바라기는 내가 위에 열거한 난제들 속에서도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그러면서 아직도 고뇌 속에 있다 한다. 어쩔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제도와 규칙을 깨서 창작해야만 하는 그림쟁이의 숙명이니까. 독창성은 사회의 규범으로부터의 탈출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작업실에서 귀가하는 순간부터는 어머니고 할머니이니 일상을 벗어나는 상상은 작업실에 국한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갖 상상력을 동원한 꽃들은 단일 색상으로 또는 호랑이와 토끼를 등장시켜 우화화하는 등 그림마다 개성 있게 그리려는 노력이 다양해서 좋았다. 아크릴 물감이 유행하는 시절인데도 이 작가는 아직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오일페인팅을 고집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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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31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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