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news
1970년대와 80년대 고교 야구의 열기는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향토애와 동문의식으로 똘똘뭉친 광팬들로 인해 ‘성동원두(城東原頭=성 동쪽 들판이라는 뜻)는 항상 만원이었다. 오늘날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있는 곳이 바로 서울운동장 야구장, 소위 성동원두 아니던가. 이름있는 상업계 고교는 물론, 내로라하는 인문계 명문고들은 고교 야구팀을 운영하며 성가를 톡톡히 누렸다. 고교야구 톱스타들은 대부분 투수와 4번타자를 겸한 대형 스타였고 요즘으로 치면 프로축구, 프로야구, 프로농구 스타를 합친것 만큼이나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고교야구 전성시대 초대 한화그룹 회장이자 천안북일고 설립자인 김종희 이사장은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경향 각지의 선수들을 영입, 창단 3년만인 1980년 이상군 투수를 내세우며 첫 전국대회(봉황대기) 우승을 만들어낸다. 고교 야구는 대부분 지역 예선을 거치게 되나 봉황대기의 경우 전국 모든 팀이 본선에 참가하기에 가장 권위있는 대회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과거 봉황대기 참가팀은 전국적으로 50개 안팎이었으나 이달말 폐막하는 이번 제52회 봉황대기 고교야구대회에는 스포츠클럽 25개팀을 포함해 역대 최다인 전국 103개 고교팀이 출사표를 던졌다. 때마침 봉황대기에 참가한 전주고가 선전하고 있어 최종 결과가 주목된다. 봉황대기 야구를 지켜보면서 최근 일본 고시엔대회가 떠오른다. 1915년에 시작돼 올해로 106회를 맞은 고시엔대회는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고교야구대회인데 올해엔 일본 전역에서 무려 3957개 학교가 출전했다. 마침내 우승컵을 거머쥔 교토국제고의 교가를 부르는 모습이 전국에 생중계됐다.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야마토)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아침 저녁 몸과 덕 닦는 우리의 정다운 보금자리, 한국의 학원’ 재일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의 교가 일부다. 외국계 학교의 우승은 처음이라고 하니 참으로 감개무량하다. 한국계 민족학교의 고시엔 본선 진출은 교토국제고가 처음이나 멀리 일제강점기때로 거슬러 올라가면 스무 번에 걸쳐 조선 대표가 고시엔 본선에 출전했다고 한다. 최고 성적은 휘문고보(현 휘문고)가 1923년 기록한 8강인데 당시 휘문고보는 선수 전원이 조선인이었다. 며칠전 파리월드컵에서 선전한 전북 선수들의 환영식이 열렸다. 이번 파리올림픽에 전북자치도를 대표해 출전한 선수단은 선수 9명, 임원 6명 15명인데 특히 임실군청 소속 김예지 선수는 10m 공기권총 종목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면서 국제적인 관심을 끌기도 했다. 문제는 대회가 열릴때만 반짝해서는 미래가 없다는 거다. 이미 쇠락할대로 쇠락한 전북을 살리려면 초대형 국제대회라도 유치해야 할 모양이다. 지난해 새만금잼버리의 여진이 아직 남아 있기에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미래 먹거리는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복합리조트와 초대형 국제체육행사가 그 해법이 될 수 있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1933년 5월 10일, 독일 베를린의 베벨 광장에 수많은 책이 쌓였다. 토마스 만, 베르톨트 브레히트, 슈테판 츠바이크, 하인리히 하이네, 카를 마르크스, 마르틴 루터, 에밀 졸라, 프란츠 카프카. 나치 정권에 따르지 않는 사회주의 지식인과 종교개혁가, 유대계 작가들의 책들이었다. 산더미 같이 쌓인 책들은 이내 불태워졌다. 나치 정권이 ‘비독일적 정신’을 정화한다며 자행한 분서사건이었다. 책이 불태워졌던 바로 그 자리에 특별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나치 분서 메모리얼>이다. 광장 중앙바닥에 설치된 사방 1미터의 사각형 공간. 투명한 판으로 덮여 안을 환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이 공간에는 비어있는 하얀 책장들만 놓여 있다. 유대인 작가 미차 울만이 나치의 분서 사건을 기억하자는 간절한 소망을 담아 제작한 것이다. 독일 통일의 상징인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포츠담 광장 쪽으로 가다 만나게 되는 또 하나의 공간. 회색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수많은 직육면체 조형물이 놓인 광장이 있다. 가로 세로로 이어지는 조형물은 자그마치 2,711개. 미국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이 설계한 이 공간은 나치에 희생된 유대인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홀로코스트 기념비>다. 독일 하르부르크에도 특별한 기념비가 있다. 땅 위로 솟아있는 기념비가 아니라 땅속으로 파묻혀 흔적만 남아 있는 <반파시즘 기념비>다. 기념비는 해마다 2미터씩 땅속으로 가라앉아 결국은 사라지도록 설계됐다. 흔적만 남은 이 기념비 옆에 안내판이 있다. ‘어느 날 이 탑은 완전히 사라져버릴 것이며 파시즘에 저항하는 이 하르부르크 기념탑의 땅은 비워지게 될 것입니다. 불의에 대항하여 일어서야 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뿐이라는 뜻입니다.’ 베를린 거리 이곳저곳에서 만나게 되는 작은 동판들. 돌바닥 사이에 끼어 있는 이 사방형 동판들도 추모 기념물(?)이다. ‘슈톨퍼슈타인(Stolperstein, 걸려서 넘어지게 하는 돌)'이라 이름 붙인 이 동판은 1992년 독일 예술가 군터 뎀니히가 기획해 시작했다. 나치에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과 태어난 해, 추방된 해나 사망 장소 등을 새겨 희생자가 살던 집 앞 보도블록에 설치한다. 나치가 저지른 만행을 기억하고 희생자를 추모하자는 소망을 담은 ‘슈톨퍼슈타인’은 이후 유럽의 여러 도시로 확산되어 지금은 베를린에만 5,000여 개, 유럽 전역에 4만 8천 여개가 놓여있다. 독일이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은 이렇게 치열하다. 일상에서도 과거를 기억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슈톨퍼슈타인은 그 절정이다. 우리가 처한 현실을 보니 걷다가 걸려 넘어지는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역사를 기억하겠다는 그들의 의지가 더 또렷해진다./김은정 선임기자
이대로는 안 된다. 기존 생산·유통 체계의 대전환, 혁신이 필요하다. 우리 농업·농촌 얘기다. 수확기를 앞두고 가슴 부풀어 있어야 할 농민들이 논을 갈아엎었다. 끝 모르게 추락하는 쌀값에 농심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그렇다고 뾰족한 대책도 없다. 이대로라면 인구절벽 시대, 지방소멸의 비극은 조만간 농촌에서 시작될 게 분명하다. 활로는 없을까? 미래 농업의 대안으로 제시된 게 ‘스마트팜’과 ‘식물공장’이다. ICT 융합기술을 접목해 온도와 습도·일조량·인공조명 등 농작물 재배환경을 제어하는 시스템으로 계절에 상관없이 작물을 생산할 수 있다. 전북에서 첨단 미래농업이 관심을 끈 것은 지난 2013년 전북대 익산캠퍼스에 국내 최대 규모의 ‘LED 식물공장’이 건립되면서부터다. 그리고 몇 년 후 국내 모 기업이 새만금에 대규모 스마트팜 단지를 건설하겠다고 밝혀 다시 눈길을 모았다. 지난 2021년 전북대를 시작으로 국내 대학에서도 스마트팜학과를 속속 신설해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정부와 각 지자체에서도 농업의 미래, 청년농업인 육성이라는 청사진을 내세워 식물공장, 스마트팜에 지원을 몰아주고 있다. 또 ‘스마트농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도 제정돼 올 7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반도 농경문화의 중심지인 김제에서 지난 2021년 11월 전국 최초로 문을 연 ‘스마트팜 혁신밸리’가 주목을 받았다. 2018년 농림축산식품부 공모에 선정돼 국비와 지방비 등 1000억 여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그런데 이 스마트팜이 최근 논란의 대상이 됐다. 지난 장마 때 유리온실에 심각한 누수와 침수 현상이 발생하면서 애지중지 키운 작물이 다 죽는 바람에 이곳 임대형 스마트팜에 입주한 청년농업인들이 빚더미를 떠안게 된 것이다. ‘우리 농업의 갈길’이라며 첨단 농업시설 홍보에 열을 올렸지만 정작 농업인들의 목소리는 흘려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 식물공장과 스마트팜은 어느 순간 우리 농업정책의 중심에 자리잡았다. 하지만 막대한 초기 시설 투자비로 인해 청년 농업인과 소농업인들의 진입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주로 기업이 운영하고, 일반 농민은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으로 조성된 시설에서 그나마 임대 형식으로 간신히 발을 들여놓는 구조다. 식물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을 농민이라 부를 수는 있겠지만, 이곳에는 농업에서 빠질 수 없는 농지와 자연, 그리고 농촌, 농경문화가 없다. 땅이 아니라 컨테이너나 유리온실 등 시설 안에서 빛·온도·습도 등의 환경을 인위적으로 조성해서 식물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란이 많다. 그렇다해도 대전환의 시대, 식물공장·스마트팜이 미래 농업의 핵심 인프라가 될 것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미래 첨단농업’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에 치중하기보다는 지금 실의에 빠져있는 농민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기 위해 이 새로운 농업체계를 현장에 어떻게 접목시킬지 다각도로 모색해야 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차기 지방선거에 출마할 후보들 윤곽이 속속 드러난다. 정헌율 익산시장과 심민 임실군수가 3번 연임한 관계로 출마를 못하자 그 지역서 벌써부터 입지자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지난 총선 때 도내서는 10석 전석을 민주당이 싹쓸이해 다음 차기 지선도 민주당 후보가 일단은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난 총선 때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후보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 후보) 현상이 뚜렷, 민주당이 지역구는 싹쓸이했지만 비례대표 선거에서 조국혁신당이 45.53%로 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37.63%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조국혁신당은 비례대표에서 12석을 차지해 돌풍을 일으킴에 따라 그 여세를 몰아 다음 지방선거 때 전 지역구에 후보를 내기로 했다. 이에 따라 벌써부터 조국혁신당을 노크하는 입지자들이 있어 당은 보다 유능한 인재를 영입하려고 알게 모르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 특히 오는 10월에 전남 곡성과 영광에서 치러질 군수 재선거 승리를 위해 조국 대표 등 국회의원 12명이 워크숍을 29∼30일 영광에서 개최키로 하는 등 사전 준비에 철저를 기하고 있다. 민주당은 전당대회가 끝난 후 이재명 대표 체제가 더 굳건해졌지만 10월 재보선 결과에 따라 차기 지방선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간 도내서는 각종 선거 때마다 경쟁체제가 형성되지 않아 민주당 무풍지대를 이뤄왔다. 민주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기정사실화되었기 때문에 입지자들마다 공천 경쟁에 목맸다. 하지만 예전에는 미워도 다시 한번 민주당이었지만 이제는 미우면 다른 당을 선택하는 경향이 생겨났다는 것. 사실 민주당은 권리당원 경선을 통해 후보를 결정하므로 사전에 기득권 세력이 쳐놓은 높은 진입장벽 때문에 유능한 인물들이 진입을 못해왔다. 그러나 조국혁신당이 지난 총선 때 돌풍을 일으킴에 따라 조국혁신당으로 출마하는 것이 경쟁력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 입지자들이 대시하고 있다. 특히 지역 유권자들은 민주당이 매너리즘에 빠져 민생 돌보는 것을 너무 소홀히 한 것에 실망, 지난 순회경선 때도 20%대의 저조한 투표율을 보였다. 지금까지 여야 공존의 정치 대신 민주당 일당 독식구조가 만들어졌지만 지역이 나아지기는커녕 정치적으로 변방으로 내몰리고 있다면서 15만 당원이 밀어준 결과에 실망하는 모습이다. 특히 최고위원 5명도 수도권 지역구에서 모두 차지해 버려 갈수록 민주당에 대한 열정이 식어간다. 특히 22대 개원 때부터 민생 문제는 뒷전인 채로 특검 정국으로 몰아간 것에 실망이 크다. 이 때문에 당 지지율도 정체 상태에 빠졌다. 이재명 사법리스크 때문에 중도 외연 확장이 안 되고 있기 때문에 차라리 그럴 바에는 조국혁신당쪽으로 지지노선을 바꿀려는 유권자들도 많다. 윤석열정권 실정과 상대인 국힘 잘못으로 지지율 올리려는 것은 민주당 패착이다. 스스로가 노력해서 지지율을 끌어올리지 않는 한 이재명 대권 행보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도내 유권자들도 지난 총선을 치르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져 전북 발전을 가져온다면 조국혁신당 지지도 마다하지 않을 태세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지방 의회가 대의 기관인 점을 감안하면 다른 조직과 달리 여론 향배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주민 선택에 의해 정치적 운명이 좌우되는 의원들이 일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 부담감을 안고 의정 활동을 해도 가끔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켜 구설에 오른 경우가 적지 않다. 아무리 당위성을 강조한다 해도 본래 취지와 다르게 의회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일이 발생한다. 최근 물의를 일으킨 전주시의회 갑질 형태의 빗나간 이기주의가 대표적이다. 시의원 전용 헬스장 바닥 보수와 함께 홍보 촬영 스튜디오를 새로 만든다는 구실로 사무실 공간이 부족해지자 의회 사무국이 청사 밖으로 쫓겨나 '한 가족 두 지붕' 신세가 된 것이다. 본연의 의정 내실화 보다는 의원들 편의에 급급하다 보니 정작 자신들과 손발을 맞춰 온 사무국 직원들을 홀대한 셈이다. 의원 편의 시설은 가뜩이나 청사가 비좁은 상황에서 추진돼 논란 소지가 다분했다고 한다. 실제 개인 사무실 마련에 이어 이 같은 전용시설이 청사 규모에 비해 과도하게 들어섬으로써 결국 사무국이 유탄을 맞은 것이다. 사무국도 사실상 의정 활동의 한 축을 담당하는 부서이기에 시의회 건물에서 걸어 5분 거리에 있다는 것 자체가 업무 효율성은 물론 의정 활동 소통에도 악영향이 우려된다. 후반기 의회 집행부가 출범한 지 두 달 가까이 된다. 아무래도 전반기 의정 활동 보다는 기대감이 큰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완주 전주 통합의 중대 분수령이 되는 주민 투표 절차가 진행되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중차대한 시기에 우범기 시장도 전임 시장 때부터 풀지 못한 난제로 인해 골든 타임 놓친 걸 만회하기 위해 강한 드라이브를 건 상태다. 종합경기장과 대한방직 터 개발의 가시적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미래 관광 프로젝트도 역동적으로 추진되는 상황이다. 이런 흐름에 시의회도 지역 발전의 쌍두마차로서 집행부와의 상호 보완적 균형추 역할을 통해 ' 미친 존재감' 을 보여줄 때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전반기 의정 활동을 되돌아 보면 이런 시민들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개인 일탈과 부도덕한 스캔들이 끊임없이 언론에 회자되면서 의회 권위가 추락한 형국이다. 처음엔 초선 당선자가 역대 최다인 17명이나 의회에 입성한다는 소식에 신선한 바람을 기대했으나 역부족이다. 오히려 군기 잡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툭하면 집행부와 대립각을 세워 갑질 의혹까지 번지기도 했다. 이뿐 아니라 가족업체 이해충돌 논란과 해외 연수 적정성 시비, 인사청문회 자질 문제 등이 연달아 터져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저간의 사정이 이럴진대, 사무국 공간이 마땅치 않은 가운데서도 의원 편의 시설은 그토록 절실했는지 묻고 싶다. 여론 악화가 불보듯 뻔한 상황에서도 밀어붙인 걸 보면 새삼 제왕적 의회 권력과 오버랩 되면서 씁쓸하다. 김영곤 논설위원
요즘 정치권의 화두는 김문수 고용노동부장관 후보자의 청문회다. 국회 환경노동위(위원장 안호영)는 오는 26일 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실시하는데 일개 장관후보 한명의 청문회는 큰 관심사가 아니나 김 후보의 경우 지명도가 높은데다 상징성이 크기에 채택 여부가 주목된다. 물론, 장관후보자는 채택 여부에 관계없이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할 수 있으나 모처럼 여야가 정치복원을 시도하는 국면에서 그의 청문회는 하나의 시금석이 될 것이란 시각도 있다. 김문수 후보는 과거 이력과 휘발성 강한 발언이 쟁점인데 전북과 관련된 것도 있다. 김 후보는 지난해 9월 21일 대구 중구 행복기숙사에서 열린 청년 ‘경청’ 콘서트에서 “청춘남녀 개만 사랑하고 결혼도 안 하고 애를 안 낳는다”고 한 발언이 뒤늦게 논란이 되고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2011년 6월 22일 그는 역사에 남을 어록(?)을 남겼다. 경기지사 시절 그는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한국표준협회 초청 최고경영자조찬회에서 "춘향전이 뭡니까? 변 사또가 춘향이 따 먹으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우리 역사에 나타난 관리들의 부정부패에 대한 사례로 든 것인데 당시 지역사회에서 큰 논란이 일었다. 소설 속 '춘향의 고향'인 전북 남원의 시의회가 공식적으로 사죄를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당시 남원시의회는 "김 지사의 발언은 전북도와 남원시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지역 간 갈등을 부추기고 국민화합을 저해하는 막말"이라고 비판했다. 오죽하면 그 당시 네티즌이 뽑은 정치인 망언 2위에 김문수가 올랐겠는가. 포털사이트 '야후코리아'는 2011년 6월 24일 역대 정치인 최고의 망언을 뽑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1만3300여명이 참가한 그 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외국 마사지걸, 얼굴 별로인 여자 골라라" 발언이 38.5%(5119명)의 득표율로 1위에 올랐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물의를 빚은 "변사또가 춘향이 따먹는 것" 발언은 2724표를 얻어 2위, 한나라당 강용석 전 의원이 대학생들과의 대화에서 한 "아나운서, 다 줘야" 발언은 2263표를 얻어 3위를 차지했다. 정치인 뿐 아니라 체육계에서도 문뜩 내뱉은 말 한마디가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왕왕있다. 올 여름 축구로 유럽과 남미 정상에 올랐던 스페인과 아르헨티나가 선수들의 ‘설화’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게 대표적 사례다. 얼마전 배드민턴 국가대표 안세영의 기자회견 발언은 벌집을 쑤신듯 체육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파리 올림픽 금메달로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안세영에게 주목되는 순간, 그는 스포츠계의 변화를 촉구하는 발언을 기자회견과 SNS를 통해 쏟아냈다. 한편에선 시스템 개선을 바라는 MZ세대의 용기있는 발언이라는 반응이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에선 시기와 방법의 적절성 문제 등을 들며 “안타깝다”고 한숨을 짓고있다. 김문수, 안세영 발언의 파장이 어떻게 결론날지 주목되는 가운데 지역 정치인들과 지역 체육계 인사들도 설화의 중심에 서지 않기를 기대한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일본 세토내해에 있는 나오시마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예술의 섬이다. 세토내해의 대부분 섬과 함께 산업폐기물과 오염으로 오랫동안 방치돼 있었던 나오시마의 변신은 놀랍다. 둘레 16km, 3,000여 명이 사는 이 섬을 세계적인 '핫플레이스' 예술의 섬으로 바꾼 주체는 일본의 도서출판그룹 베네세홀딩스다. 베네세는 1980년대 중반, 산업폐기물로 덮여 있던 섬을 사들여 예술을 입혔다. 이 실험적인 도전을 위해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국내외 작가들을 불렀다. 1990년대 중반 시작된 <나오시마 아트 프로젝트>다. 안도가 설계한 예술적인 미술관과 건축물이 들어서고 세계적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이 설치되면서 나오시마는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세계 곳곳에서 이 섬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 후 30여 년이 지났지만 놀랍게도 나오시마는 여전히 관광의 섬이다. 재생 모범사례가 되어 세계 도시들의 벤치마킹도 이어지고 있다. 나오시마에는 안도의 건축물과 현대미술작가들의 설치작품 외에 명소가 또 있다. 행정구역상 ‘혼무라’로 구분되는 지역에 밀집된 ‘집프로젝트’의 현장이다. 마을 사람들이 섬을 떠나면서 늘어난 빈집에서 예술가들이 거주하면서 작품을 설치하는 작업이다. 시작은 빈집 6개였다. 안도 다다오와 제임스 터렐이 완성한 <미나이 데라>를 비롯해 일본의 대표적인 현대미술작가들이 참여한 이 프로젝트로 혼무라 지역의 골목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관광 자원이 되었다. 갤러리로 변신한 아트하우스는 지역 주민들이 관리를 맡았다. 덕분에 죽어가던 골목은 다시 활기를 찾았다. 나오시마의 힘이 ‘멈추지 않고 지속해서 변화하는’데 있다면 그 힘을 만드는 것은 주민들의 삶이 숨 쉬는 바로 이 골목이다. 오래된 도시들이 ‘골목’을 주목하고 있다. 골목이 가진 역사 문화적 가치를 관광의 중요한 자원으로 삼은 사업들도 이어진다. 대구의 ‘근대골목’도 그 하나다. 근대골목의 중심공간은 중구다. 이곳은 역사적 전통과 근대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다른 도시의 구도심이 그렇듯 근대자산은 방치되고 거리는 공동화로 활기를 잃었다. 대구시는 2000년대 중반, ‘일상장소 문화공간화사업’과 ‘근대문화공간디자인개선사업’에 선정되면서 재생사업을 시작했다. 그 결실이 관광상품으로 이름을 얻은 ‘대구 근대골목투어’다. 대구 근대골목투어가 시작되었던 2008년 이후 대구시는 ‘김광석의 길’을 비롯해 그 일대에 문화적 공간을 더하면서 골목을 대구의 대표 명소로 만들었다. 들여다보니 근대골목투어는 지금도 순항 중이다.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힘이 됐을 터. 오래된 도시의 많은 골목이 되살아나길 기대한다. /김은정 선임기자
‘부지깽이도 일손을 거든다’는 농번기다. 바쁜 영농철에는 아궁이 옆 부지깽이도 일을 도와야 할 만큼 농가에 일손이 많이 필요했다는 것을 과장해서 표현한 우리 속담이다. 산업화 이전, 농업이 주업이던 그 시절에도 파종기와 수확철에는 일손이 정말 많이 부족했던 까닭에 이런 속담이 생겼을 것이다. 그러니 탈농촌 시대를 거쳐 인구절벽 시대 지방소멸 위기를 맞은 지금,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 농촌의 인력난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동안 농업 기계화와 각계각층에서 나선 농촌 일손돕기활동 덕분에 부족한 일손을 근근이 메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예견된 한계가 왔다. 농촌의 인구감소·고령화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농촌 일손돕기 캠페인도 시들해졌다. 여름방학 봉사활동을 계획한 대학생들이 농촌이 아닌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는 가운데 익산시가 지난 6일 대학생 1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농활은 핑계고’ 발대식을 열어 눈길을 끌었다. 봉사활동에 관광을 접목한 농촌 특화 관광프로그램으로, 관계인구 창출을 통해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하자는 취지다. 농촌 일손돕기가 주 목적이 아니다. 이맘때면 각 기관·단체에서 앞다퉈 나섰던 농촌 일손돕기 봉사활동 소식도 요즘은 좀처럼 들을 수 없다. 그나마 잡을 수 있는 지푸라기가 ‘외국인 계절근로자’다. 우리 논밭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찾아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아니, 이제 이들이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전북특별자치도에서는 인구문제의 해법을 외국인에서 찾고 있다. 민선 8기 출범과 함께 인구대책의 무게중심이 이민정책으로 급격하게 기울었다. 지난달 조직개편에서는 외국인 지원 및 이민정책 전담부서인 외국인국제정책과를 신설했다. 농촌 인력난 해소 대책도 외국인 계절근로자 제도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그렇다고 외국인 일손을 부지깽이처럼 마냥 쉽게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해마다 외국인 계절근로자가 크게 늘고는 있지만, 지역별로 배정된 인원 범위에서 경쟁을 벌여야 한다. 또 어렵게 구한 근로자들이 무단 이탈해 수확 시기를 놓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게다가 이들의 인건비와 숙식비 등 고용비용이 가파르게 상승해 농가의 부담이 만만치 않다. 시대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농촌문제로 치부하고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농촌의 위기는 농촌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농촌 없는 도시, 농업 없는 국가’는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위기의식이 부족하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과 함께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그 ‘어디서나’에 농촌이 예외일 수는 없다. 농업·농촌의 위기가 임계점에 달했다. 우선 정부가 심각한 국가적 위기로 인식하고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외국인 계절근로자 제도를 농촌 현실에 맞게 재정비하는 동시에 국가 차원의 농촌 인건비 지원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 김종표 논설위원
차기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써부터 경쟁이 치열하다. 1991년 지자제가 부활된 이후 전북에는 묘한 지역정서가 만들어져 선거 때마다 민주당 후보들이 압승을 거뒀다. 민주당 공천만 받으면 국회의원은 말할 것 없고 지사서부터 시장·군수·도의원·시군의원을 싹쓸이했다. 집행부와 집행부를 견제할 지방의회가 같은 당 소속이어서 초록은 동색이라는 공생관계가 만들어졌다. 지금껏 30년 이상 치러진 선거가 깨끗하고 공정하게 치러졌다고 믿는 유권자는 드물 것이다. 거의 돈 선거가 수면 아래서 횡행했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 때 20년 만에 민주당이 10석 전석을 싹쓸이 해 차기 지선도 민주당 싹쓸이가 예상된다. 광역단체장인 지사 후보를 빼고 기초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은 지역 국회의원들이 절대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그들의 관심권에 들어가려고 갖은 애를 쓴다. 지역 국회의원이 지방의원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어 그 위세가 대단하다. 혹여 국회의원 눈 밖에 났다가는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서 지방의원들이나 도전자들은 현역이나 도전자 쪽에서 죽기살기식으로 국회의원 공천을 위해 뛰었다. 주군이 바뀐 전주을, 전주병, 남임순 장수, 익산갑은 선거 직후 살생부가 나돌았다가 지금은 수면아래로 가라 앉았다. 이재명 전 대표가 당 대표로 복귀해 전열정비를 가다듬으면 언제든지 수면위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시장·군수들이 특별한 과오를 범하지 않는 한 3연임 하는게 관례가 되었다.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상황에서 장장 12년간 자기 돈 들이지 않고 고향에서 선거운동 하면서 시장·군수를 한다는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시장·군수들은 인사권을 갖고 있어 마치 전제군주시대 때 영주를 연상케 할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한다. 한번 당선되기가 어렵지 떨어지기가 쉽지 않다는 것. 유권자가 2만대인 농촌 군은 군수 임기동안 전체 군민과 술밥 먹고 남을 정도로 스킨십할 여유가 많다. 하지만 고인물이 썩듯이 그간 여야 간 경쟁 없이 무풍지대로 전북이 자치제를 운영해온 결과, 1인당 GRDP가 가장 낮은 꼴찌로 추락했다. 한국 양궁이 신궁소리를 들어가면서 올림픽 10회 연속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는 내부경쟁이 이뤄져 이같은 위업을 달성했다. 이에 반해 전북 정치권은 지역정서에 철저하게 의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공생관계를 형성하면서 진입장벽을 높게 쳐버려 운동권이나 고위공직자 출신 아니면 범접을 못하게 만들었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3선한 심민 임실군수처럼 무소속 출신을 뽑아서 소신껏 군정을 운용토록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그 전제로 전문성 있고 인적 네트워크가 좋은 역량있는 혁신의 아이콘을 찾아서 단체장을 맡기면 된다. 그간 많은 단체장이 명멸해갔지만 그 가운데 유독 강현욱·유종근·김세웅 전 군수가 잘했다는 평을 듣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그 이유는 시대정신에 맞게 물불 안 가리고 무소처럼 앞만 보고 달렸기 때문이다. 시장·군수나 선출직을 아무나 맡다 보니까 전북이 이렇게 피폐해졌다. 그 누구 없소. 백성일 주필 부사장
전주상공회의소 회장 선거의 '시즌2'가 재연되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3월 출범한 김정태 회장 체제의 선거 과정을 되돌아 보면 그야말로 내홍의 연속이었다. 윤방섭 전 회장과의 악연에 따라 양 측의 소모적 논쟁은 끊이지 않았다. 2021년 회장 선거에서 윤방섭-김정태 후보가 결선 득표에서 동률을 이뤘으나 연장자 원칙에 따라 생일이 1개월 앞선 윤 회장이 당선돼 취임했다. 하지만 김 회장 측의 선거 불공정 제소로 사상 초유의 회장 직무정지 사태가 발생해 감정의 골은 깊어질대로 깊어졌다. 그 뒤에도 양 측간 신경전이 계속되더니 급기야 윤 회장의 재출마를 둘러싼 파동을 겪으며 선거를 치른 결과 이번엔 김 회장이 설욕을 하며 회장에 올랐다. 그런데 선거 이후 6개월 만에 윤 전 회장 중심의 인사들이 새로운 경제단체 설립을 가시화 하면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다음주 출범 예정인 이른바 '기업사랑도민회' 창립 총회가 그것이다. 300명 이상이 동참하는 걸로 알려지면서 설립 취지와는 무관하게 지역 경제계의 분열을 우려하고 있다. 더욱이 상공회의소 회장 선거 때 전의를 불태웠던 상대 세력이 별도의 구심체를 통해 각자도생의 뉘앙스를 띠자 설립 배경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해 8월 잼버리 후폭풍에 따른 새만금 국가예산 삭감 과정에서 겪은 도민들의 참담함과 울분은 뼈에 사무친다. 정부 여당이 잼버리 실패 책임을 떠넘긴 것도 모자라 SOC 사업마저 적정성 검토라는 미명아래 올스톱시켰다. 다행히 지난주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용역 결과가 나와 그동안 멈춰 섰던 현안들이 다시 용틀임을 준비하고 있다. 이 같이 중차대한 시점과 맞물려 경제계 분열로 비춰질 수 있는 움직임이 계속되자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지금 서민 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상황에서 똘똘 뭉쳐도 시원치 않을 판에 혹여 대립과 반목은 기름을 붓는 격이다. 한때 지역 경제를 이끌었던 수장의 '딴 살림' 모양새에 부정적 영향을 걱정하기도 한다. 전북이 직면한 총체적 난국 해결을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경제인이기에 더욱 안타깝다. 마치 정치 집단처럼 주도권 싸움을 방불케 하는 모습은 경제 현실과 동떨어진 감이 있다. 과거 상공인 화합을 해칠 수 있다며 합의 추대를 고집했던 그 마음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지역 현안 해결에서 항상 든든한 동반자 역할을 해온 것도 경제인의 몫이었다. 그런데 승자 독식의 선거를 둘러싸고 파벌이 형성돼 진흙탕 싸움장으로 바뀐 지도 꽤 됐다. 심지어 선거에서 쓴맛을 본 후보와 지지자 일부는 회원 탈퇴도 서슴지 않았다. 오죽하면 정치인 선거 뺨친다는 비아냥도 들린다. 사실 경제계 만큼 직능별로 전문성 있는 조직을 갖춘 곳도 드물다. 그런 상황에서 또 다른 조직 출범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불편하다. 김영곤 논설위원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일상에서 수많은 미디어 기기들이 사라졌다. 카세트테이프 시디플레이어도 그들 중 하나다. LP로부터 카세트테이프를 거쳐 시디로 이어져 온 음악재생 미디어 기기의 쓰임은 수명을 다한 지 오래. 디지털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게 되면서 이제 자동차나 노트북에서조차 시디플레이어를 만나기 어렵다. 그나마 시디는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면서 ‘굿즈’란 새로운 쓰임을 얻기도 했지만, LP나 카세트테이프는 영락없이 유물 신세(?)가 됐다. 그런데 일상에서 사라졌던 그들 음악재생 미디어 기기들이 다시 젊은 세대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케이(K) 팝계에서 불기 시작한 복고 감성, 레트로 바람 덕분이다. 시디플레이어를 포함한 굿즈를 묶어 음반이 나오는가 하면 카세트테이프와 미니어처 LP까지도 등장했다. 어떤 통로로든 버려지고 잊혀진 것들이 다시 돌아오는 이 순환의 풍경을 마주하며 떠오른 공간이 있다. 독일 서남부에 있는 중소도시 칼스루에의 미디어아트센터 ZKM(Zentrum fuer Kunst und Medientechnologie)다. 지상 5층, 길이 500m에 폭이 100m나 되는 이 거대한 건물에는 현대적 미술관과 음악스튜디오, 미디어 뮤지엄, 미디어 도서관과 미디어극장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진 공간이 들어서 있다. ZKM의 전신은 탄약공장이다.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이곳에서는 2차 세계대전까지 탄약과 화약을 생산했다. 전쟁이 끝나자 기능을 바꾸어 제철소로 활용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중공업 제조업체들이 서비스 업종에 진출하면서 제철소의 기능도 중단됐다. 빈 건물로 방치된 지 20여 년. 시는 공간의 쓰임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칼스루에시는 정보과학에 일찍 눈을 떴다. 칼스루에 대학 출신 하인리 헤르츠 박사(‘헤르츠'라는 단위를 만들어낸 과학자)의 영향이 컸다. 새로운 미디어를 주목하고 있던 시는 이곳을 정보 통신, 방송시설, 문화예술 등 3가지 영역을 집적하는 미디어아트센터를 만들기로 했다. 탄약공장을 미디어와 관련된 모든 영역을 통합하는 미디어아트센터로 바꾸는 일은 시민들에게도 큰 환영을 받았다. 시간적으로 소통하고 공간적으로 교류하는 기능을 공간의 가치로 삼은 ZKM은 특별한 공간을 만들었다. 오래전 쓸모가 없어진 낡은 TV나 녹음기 전축 등 다양한 매체기기와 원형을 훼손당한 음반과 비디오테이프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공간이다. ZKM은 그동안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오래된 음반과 비디오테이프로부터 수만 장의 음향 영상물을 복원해냈다. 밀려오는 새로운 것에만 눈을 돌리지 않고 버려지는 비디오테이프로 미래를 만들어내는 ZKM의 선택은 빛난다. 우리도 얻고 싶은 지혜다./김은정 선임기자
꼭 1년이 지났다. 그해 여름 전북이 성난 민심의 화살받이가 됐다. 지난해 8월 1일, 열이틀간의 일정으로 개막한 ‘제25회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가 극한 폭염 속에 파행으로 얼룩지면서 숱한 논란을 남겼다. 국제적인 망신살이 뻗쳤고, 국민 몫이 된 부끄러움은 분노로 바뀌었다.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다. 정부·여당에서 작정하고 지방정부에 책임을 돌렸다. 전북이 잼버리를 핑계로 새만금 SOC 예산 빼먹기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진작 번듯한 ‘수변 관광도시’가 돼 있어야 할 곳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고, 30년 넘게 공들인 이 기회의 땅에 생각지도 않은 야영장이 설치됐다. 행여 개발에 도움이 될까 기대했는데 오히려 발목을 잡혔다. 잼버리 파행을 빌미로 정부가 새만금 SOC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지역사회 응어리진 설움이 폭발했다. 지역 국회의원들이 삭발을 하고 국회 앞에서 규탄대회를 열었다. 도의원들도 삭발 단식투쟁을 이어나갔다. 시민단체와 종교계까지 나서 ‘도민의 명예를 훼손하는 정치공세를 멈추고 책임규명에 나서라’고 외쳤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대폭 삭감된 새만금 국가예산은 우여곡절 끝에 국회단계에서 일부 복원됐다. 그리고 그사이 전북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서 도민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실추된 도민의 명예와 자존심, 전북의 위상은 회복됐을까? 우선 제기된 의혹에 대한 진실 규명, 책임 소재 규명이 필요했다. 논란 직후 감사원에서 대대적인 감사를 예고했다. 김관영 도지사도 “이제 법과 절차에 따라 진실을 밝히고 교훈을 찾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곧바로 잼버리 파행의 원인과 책임소재가 드러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하세월이다. 감사원에서 즉각 감사에 돌입했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감감무소식이다. 김 지사가 공언한 자체 감사는 예견됐던 것처럼 감사원 감사가 시작되면서 곧바로 중단됐다. 그러면서 뜨거웠던 잼버리 논란은 도민의 관심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어쨌든 세계인의 눈이 쏠렸던 새만금 야영장 부지는 지금 잡초만 무성한 채 적막감이 감돈다. 잼버리를 유치하면서 밝힌 국제행사 이후의 계획은 모두 어그러졌다. 기후재난으로 가뜩이나 힘들었던 지난해 여름, 전북도민들은 무기력에 빠져 상실의 시기를 보내야 했다. 게다가 최근에도 ‘국토부 SOC사업 전북 차별’, 여당 전당대회에서의 ‘전북 무시 발언’ 등을 놓고, 지역 정치권에서 1년 전의 외침을 되풀이하고 있다. 다시 상실감이 밀려온다. 얼렁뚱땅 넘어갈 일이 아니다. 정치인의 단식은 오래갈 수 없고, 잘린 머리털도 금세 자라난다. 현실을 바꿔낼 힘과 의지가 미약한 분노는 오래가지 못한다. 보여주기식 결의와 호소만으로는 안 된다. 다분히 정치적 계산이 포함된 그들의 ‘지역 홀대·차별’ 주장도 이제 식상해진다. 지역의 내재적 발전 역량, 지역혁신 역량을 키우는 일이 우선이다. 지금 지역정치권과 지자체가 주어진 역할을 되새겨야 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22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여야간에 피튀기는 싸움으로 민생이 엉망진창이다. 내년도 국가예산 10조원을 목표로 내건 전북도도 빨간불이 켜졌다. 재정자립도가 27.3%인 전북은 중앙정부에 재정지원을 전적으로 의존한다. 정부는 올 국가예산을 전년보다 2.8%가 늘어난 656조3000억으로 편성했다. 전북은 광역단체중 유일하게 전년보다 1.56%가 적은 9조163억으로 편성했다. 전북은 낙후도가 가장 심하기 때문에 국가예산을 증액시켜야 마땅하지만 정치력 부재로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지금 이 시점에서 예산문제를 되짚어 보는 것은 9월부터 본격 국가예산철로 접어들기 때문에 지난해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다. 전북은 보수쪽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불리한 환경이 만들어졌다. 국가예산 편성권은 정부 여당이 갖고 있다. 정부가 예산을 편성해서 국회로 넘기면 예결위를 통해 심의하지만 절대적 권한은 기재부가 갖고 있다. 내년도도 정부의 긴축재정기조가 계속 이어지고 고물가 등 대내외적 환경이 나빠져 국가예산 확보가 산너머 산이다. 전북은 올보다 1조 많은 10조원 확보가 목표다. 김관영지사도 절박함을 갖고 꼭 해야겠다는 자세로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 가면서 정부 여당과 소통하겠다고 말했지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이유는 윤석열대통령의 전북에 대한 인식이 바꿔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정읍에서 27번째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적나라하게 모든 게 드러났다. 윤 대통령이 대광법 개정과 남원공공의대 설립 등 숙원사업에 대한 김관영 지사의 건의를 받고도 확답을 내놓지 않았다. 대선 때 새만금에 기업유치가 잘되어 바글거리도록 하겠다는 약속이 공염불 된 것처럼 전북에 대한 애정이 없어 보였다. 그도그럴것이 윤 대통령은 민생토론회에 앞서 익산수해지구를 시찰할 예정이었는데 느닷없이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가 같은 시간에 방문한다고해서 취소했던 것. 이 전대표가 굳이 이날 익산수해현장을 방문해야 했던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윤 대통령이 수해현장을 방문했으면 상당한 지원이 이뤄졌을 터인데 이걸 놓치고 말았다. 그날 김관영 지사만 이 전대표 영접하랴 오후엔 윤 대통령 모실라 속이 타들어 갔다. 민주당도 윤 대통령의 전북방문 스케줄을 알고 있었을 터인데 왜 하필 이날 이 전대표가 방문해야 했는지 야속하게 비춰졌다. 아무튼 잼버리 1년이 지난 지금 전북이 전방위로 많은 노력을 해서 중앙정부와 관계개선을 했지만 국가예산 확보를 앞두고 걱정스럽다. 지난 총선 때 국힘이 10개 선거구에서 후보를 냈지만 전주을에 출마한 정운천 후보만 20%를 득표했을 뿐 나머지는 한자리수에 그쳤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보니까 정부 여당이 전북 한테 국가예산을 더 줄려고 하겠는가. 지역구 의원이 없는 국힘 한동훈 대표가 또다시 서진정책을 편다고 하지만 자칫 보여주기식 말장난으로 그칠 공산이 짙다. 그래서 도민들은 진정성을 느끼도록 국힘이 먼저 국가예산확보에 함께 신경 써주길 바라고 있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역대급 열대야와 파리올림픽 중계로 밤잠을 설치는 요즘이다. 그나마 연일 금메달 소식을 전하는 한국 선수단의 놀라운 활약상에 통쾌함을 만끽하며 더위를 이겨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전북 출신 사격의 양지인, 김예지 선수가 각각 금메달과 은메달을 따면서 도민들에게 묵직한 감동을 선사했다. 김예지는 일약 SNS 스타로 등극, 전 세계 팬들을 열광케 하며 또 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영화속 주인공 같은 저격수의 이미지로 유튜브 조회수 1위를 기록했다. 이와 함께 정강선 선수단장도 금메달 목표치의 2배가 넘는 12개의 돌풍을 일으키자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전북체육회장을 겸하고 있는 그는 평소 딱딱한 이미지와 달리 연일 환한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세느강 개막식 때도 손을 번쩍 들고 함박웃음을 짓는 등 여느 때와 다른 모습을 선보였다. 이번 한국 선수단의 올림픽 출발은 상당히 불안해 보였다. 48년 만에 역대 최소 규모로 꾸려진 데다 구기 단체 종목은 여자 핸드볼이 고작이었다. 인기 프로 종목은 세계 벽을 넘지 못해 금메달 5개, 종합 15위를 목표로 잡았다. 그런데 초반부터 사격과 펜싱에서 반전 드라마를 통해 금메달 5개를 수확하자 선수단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자신감을 되찾은 상승세는 양궁 여자 단체전의 10연패를 포함해 전 종목 5개 석권이라는 금자탑으로 절정을 이뤘다. 이 같이 한 여름밤 파리에서 금메달 행진이 계속되자 선수단 총괄 책임의 정강선 단장에 대한 언론 관심도 부쩍 높아졌다. 현장 응원 모습과 그의 동정이 SNS를 통해 삽시간에 퍼지기도 했다. 파리올림픽에서 전북 출신의 존재감은 가뭄의 단비처럼 한 줄기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열악한 지역 현실의 벽을 뚫고 세계 무대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전북 체육에 던져 준 메시지는 분명했다. 선수의 경기력 향상에 대한 숙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하위권을 맴도는 전국체전 성적표가 대표적이다. 그런 점에서 전북 체육의 수장 정강선 단장은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지구촌 최고 선수들이 펼치는 올림픽의 뜨거운 함성 뒤에 숨겨진 고민이다. 직접 체험한 글로벌 스포츠의 흐름을 어떻게 전북 체육에 접목시키느냐가 관건이다. 도내 체육인의 숙원 '전북 체육역사기념관' 건립이 추진되면서 스포츠 스타의 유품 기증이 잇따르고 있다. 정강선호를 함께 이끌었던 유인탁(레슬링) 신준섭(복싱) 사무처장은 물론 박성현(양궁) 김동문(배드민턴) 전병관(역도) 임미경(핸드볼) 등이 그들이다.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수많은 금메달 리스트가 배출돼 이곳에 그들 유품이 더 많이 전시되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통' 이미지의 정 회장이 유관 기관과의 연대, 협치 노력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그의 패기와 젊은 리더십이 올림픽 경험을 통해 한층 성숙되길 기대해 본다. 김영곤 논설위원
프랑스 출신 세이는 약 200년전 경제학개론을 썼는데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소위 세이의 법칙을 제시했다. 얼핏 생각하면 살 사람이 있으니까 물건을 만들었을것 같은데, 실은 새로운 물건이 나오면 날개돋친듯 팔리는게 현실이다. 스마트폰이 나오자 너나없이 이를 구입하고, AI 청소기가 출시되면 각 가정마다 이를 앞다퉈 사고있다. 그런 점에서 공급은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의 법칙은 일정 부분 경제현상의 핵심을 잘 설명한다. 물론 이렇게되려면 시장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해서 가격 신호를 통해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된다는 전제가 있어야 깔려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세이의 법칙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관점을 제시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유효수요 이론으로 유명한 영국 출신 존 케인스다. 1930년대 경제대공황 때 정부가 직접 유효수요를 확 늘려서 난국을 타개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과연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가, 아니면 수요가 공급을 창출하는가 하는 문제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다. 얼마전 매우 대조적인 뉴스가 전해졌다. 무안국제공항이 지난해 대비 상반기 이용객이 100% 넘게 늘어나면서 전국 국제공항 중 가장 큰 폭의 증가율을 보였다고 한다. 6월 말 기준 무안국제공항의 이용객은 20만646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9만7631명에 비해 111.5% 증가했다. 이는 전국 8개 국제공항 중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인데, 국내 공항을 포함해서도 전국 15개 공항 중 군산공항 122.7%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증가율이다. 청주공항은 더 가빠른 추세다. 국내선뿐만 아니라 국제선도 13개 노선까지 늘린 청주공항의 경우, 올해 국제선 이용객 100만 명 달성이 확실시된다. 청주공항의 상반기 누적 이용객 수는 모두 231만 명인데 이중 71만 명이 국제선 승객이다. 올 연말까지 일본 삿포로와 인도네시아 발리, 중국 상하이, 홍콩 등 최대 10개국 25개 노선까지 늘어날 예정이기에 청주공항 이용객은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일 전망이다. 이러한 때, 군산공항 관련 뉴스 하나가 전해졌다. 군산에 본사를 둔 이스타항공이 군산~제주 노선 운항 중단을 검토 중이라는 거다. “군산공항 항공기 운항을 올해 동계 시즌(10월께)부터 중단하고자 한다”는 의견을 전북특별자치도와 군산시에 전달했는데 이달중 결론이 날 전망이다. 청주공항이나 무안공항의 사례를 보면 수요가 공급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것을 재삼 확인할 수 있다. 전북권 국제공항의 타당성 논란이 계속되는 수십년 동안 적어도 전북에서는 세이의 법칙도 케인즈 이론도 다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대광법이나 각종 SOC 등의 예타 문제가 화두로 등장한 요즘, 세이의 법칙은 낡고 폐기된 이론이 아닌 현장성 있는 살아있는 논거임을 확인하게 된다.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 즉, 뭐든 만들어놓으면 수요자가 늘기 마련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더워도 너무 덥다. 장마는 지난달 27일 공식 종료됐지만, 장마 끝에 시작된 본격적인 폭염 탓이다. 올해 장마는 예년보다 짧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진 집중호우나 국지성 호우로 강수량은 예년보다 크게 늘었다. 지구 환경 변화로 이어지는 날씨 변화는 예측하기 어렵다. 해마다 찾아오는 장마도 변화무쌍하다. 최근 3~4년 동안의 상황은 더 그렇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2020년에는 54일 동안 비가 내렸다. 역대 최장 장마 기간이다. 그러나 2021년에는 6월 중하순에 찾아오는 장마 기간을 훨씬 지난 7월 초에 장마가 시작되더니 겨우 보름 정도 비가 내렸다. 그래서 그해 장마는 ‘마른장마’가 됐다. 2023년에는 남부 지방에 폭우가 집중적으로 쏟아지면서 역대 강수량 1위를 기록했다. 물론 피해도 컸다. 모두 지구 온난화가 가져온 결과다. 지구의 평균 기온이 지속적으로 오르면서 지구 생태계와 인류의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기후위기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해마다 반복되는 폭우와 홍수 피해는 그 결과물이다.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재나과도 같은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태도와 방식이다. 환경부가 지난달 4대강 유역에 14개 댐을 건설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른바 ‘기후대응댐’으로 명명된 대규모 토목 공사다. 건설 후보지는 낙동강 권역 6곳, 한강 권역 4곳, 영산·섬진강 권역 3곳, 금강 권역 1곳이다. 들여다보니 건설계획은 거창하나 내용은 구체적이지 않다. 댐을 건설하면 기후대응 효과가 어떤지, 건설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에 대한 설명도 부실하다. ‘댐별로 한 번에 80~220mm의 비가 오더라도 이를 수용할 수 있는 홍수 방어 능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환경부가 내놓은 기후대응댐 효과다. 댐 건설을 반대하는 환경단체의 비판이 더 거세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돌아보면 이명박 정부 때 이루어졌던 4대강 사업도 가뭄과 홍수를 예방한다며 ‘기후위기 대처’를 앞세웠다. 16개 보를 만들고 강바닥 퇴적토를 퍼내는 이 사업에 쓴 예산은 23조 원이 넘는다. 효과는 있었을까. 2018년 이루어진 감사원 조사는 ‘홍수에 제대로 기능할 수 없는 구조’로 홍수에 사실상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16개 보가 물의 흐름을 막아 수질이 오염됐다는 평가도 더해졌다. 감사원 감사가 마무리되지 않았으니 4대강 사업에 대한 최종 평가는 유예지만 긍정적 성과를 기대하기는 당연히 어렵다. 환경부의 ‘기후대응댐’ 건설 계획에 논란이 커지고 있다. ‘시대착오적 대응’, ‘기후위기 대처가 아닌 기후 문맹’이란 비판도 거세다. 기후위기에 대응한다며 오히려 위기를 부추기는 듯한 이 형국이 안타깝다. /김은정 선임기자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 했다. 아무리 푸짐한 요리를 먹더라도 밥 한 공기가 빠지면 허전함을 느끼는 게 우리 민족이다. 그런데 이제 옛말이 됐다. 짧은 기간 식습관이 참 많이 변했다. 지난해 우리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56.4kg)은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62년 이래 가장 적었다. 30년 전인 1993년(110.2kg)에 비하면 절반에 불과하다. 쌀의 위기는 농업‧농민의 위기, 그리고 지역과 국가의 위기로 이어진다. 농협이 최근 ‘전국민 아침밥 먹기’ 릴레이 캠페인에 나섰다. 밑바닥을 알 수 없는 쌀값 폭락으로 농가의 시름이 깊어진 가운데 그동안 별 성과도 없이 되풀이 한 ‘쌀 소비 촉진 운동’에 다시 불을 지핀 것이다. 전북특별자치도와 전북농협도 지난달 31일 ‘아침밥 먹기 운동’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캠페인에 동참했다. 사실 아침밥 먹기 캠페인은 학교에서 시작됐다. 그 목적도 쌀 소비 촉진이 아니라 아동‧청소년의 식습관 개선이었다. 2000년대 초 등교 후 1교시 정규수업 전의 시간을 말하는 ‘0교시’가 확산했고, 이로 인해 아침식사를 거르는 학생이 늘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되면서 ‘아침밥 먹기 캠페인’이 벌어졌다. 당시 인기 TV 예능프로그램의 소재가 될 정도로 사회적 반향은 컸다. 그리고 약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똑같은 캠페인이다. 이번에는 쌀 소비 촉진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간 쌀의 위기가 더 심각해져서다. 전남교육청과 전남농협이 최근 ‘쌀 소비 촉진을 위한 아침밥 먹기 캠페인’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전북을 비롯한 각 지역 교육청에서도 캠페인에 속속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에 닥친 심각한 위기다. 풍년 농사를 위해 구슬땀을 흘려야 하는 영농철, 속절없이 떨어지는 쌀값에 농촌 민심이 예사롭지 않다. 다시 대규모 농민집회가 예고됐다. 쌀은 우리 민족에게 식량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쌀농사가 흔들리면 농업인의 삶은 물론 대한민국 식량주권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농업·농촌의 위기가 임계점에 달했다. 이대로라면 인구절벽 시대, 지방소멸의 비극은 농촌에서 시작될 게 뻔하다. 쌀 소비량이 뚝 떨어졌지만 우리 민족의 주식은 여전히 쌀이다.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선수촌 밖에서 매일 쌀밥과 김치가 포함된 맞춤형 한식 도시락을 선수단에 제공했다. 쌀과 김치 등의 식재료를 국내에서 공수하면서까지 선수들이 ‘밥심’을 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올림픽 선수촌 부실 식단 논란 속에 애초 ‘밥 걱정’이 없었던 우리나라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밥심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오는 18일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제정한 ‘쌀의 날’이다. 올해로 꼭 열번 째를 맞는 이 기념일을 앞두고 40도에 육박하는 극한의 폭염이 계속되면서 몸과 마음이 지쳐간다. 우리 몸도 농촌도 활력을 되찾아야 하는 때다. 밥을 먹어야 생기는 힘, 밥심이 필요하다. / 김종표 논설위원
정당은 정권을 잡으려고 모인 결사체다. 이재명 전 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대선 때 0.73%로 석패한 이후 줄곧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이 전 대표는 사법리스크가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선 패배 후 인천 계양을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후 당 대표를 맡아 지난 22대 총선 때 175석을 차지, 원내 제1당을 만들었다. 지금 그는 여의도 대통령으로 불릴 만큼 거침없는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지금 민주당은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전당대회를 개최하는 등 모든 일정을 대선 시계에 맞춰놓고서 움직인다. 전북 의원 10명도 이 전 대표의 대선 승리를 위해 충성심으로 뭉쳤다. 민주당은 22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전열을 가다듬고 윤석열 정권을 압박, 탄핵 정국으로 몰아부치고 있다. 조국혁신당 12석을 포함 야권 192석으로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아가겠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민주당 안방인 전북의 권리당원 수가 15만8000명으로 경기·서울·전남에 이어 4번째로 많다. 전체 권리당원 119만명에서 전북이 13%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렇게 큰 비중을 차지한 전북이 8명의 최고위원 후보 중 단 한명도 없다. 왜 그랬을까. 전주을 이성윤 의원이 최고위원에 출마했으나 컷오프되어 본선진출이 좌절되었다. 문제는 당비 내는 권리당원 수가 전국에서 4번째로 많은 전북 출신이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는 것은 의원 개인의 자존심을 떠나 국회의원이나 대의원 권리당원 문제라는 것이다. 이성윤 의원이 비록 초선이라도 출사표를 던졌으면 전북 출신 10명이 원팀으로 똘똘 뭉쳐 적극적으로 도와줬어야 옳았다. 하지만 무슨 이유로 그를 돕지 않아 전북 출신의 최고위원 진출이 막혔다. 당내 의사결정기구인 최고위원회에 진입하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 그런데도 10명이 원팀이 되어서 도움을 줬으면 무난하게 당선될 수 있었던 일을 각개약진하면서 무관심으로 일관해 이 의원이 꺾였다. 지난 21대 때도 전북 의원들은 당내에서 최고위원이 없어 들러리 역할밖에 못했다. 그것 때문에 전북은 국가예산 확보 때 온갖 수모를 겪었고 전북 몫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 전북은 그간 3차례나 진보정권을 탄생시켰다고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졌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았다. 전북 민주당원들은 당비나 내주고 들러리나 서주는 변방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 전북은 중앙정치권에서 아쉬운 선거 때나 관심을 갖을 뿐 그 이외에는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 당선될 때 원팀으로 똘똘 뭉쳐 전북이 결코 소외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맹약해놓고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아 모든 게 물거품으로 끝났다. 전북 공인 가운데 자신이 한 말에 별로 책임을 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언행일치가 안 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잘 모르고 지나간다. 사소한 것 같지만 그게 지역발전을 가로막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지금부터라도 전북이 아무 대가 없이 민주당한테 안방을 내주면서 일방적인 지지를 하면 안 될 것이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오로지 실력으로만 뽑는 선발 과정이 한국 여자 양궁의 올림픽 10연패 비결이라는 뉴스가 화제를 모았다. 거기에는 선수의 이름값도, 랭킹도 아닌 그야말로 성적 만이 좌우한다. 오죽하면 국가대표 선발전 통과가 올림픽 금메달 획득 보다 어렵다는 게 정설이다. 대표팀 감독 선임을 둘러싼 불협화음으로 올림픽 10회 연속 출전이 좌절된 한국 축구와 대비된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면서 경쟁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 지역 정치권의 일당 독점에 따른 폐해가 오버랩 되기도 한다. 지역 발전을 견인하는 주요 현안마다 지방의원들이 앞장서 반대 여론 몰이에 나서면서 대세를 그르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오히려 주민들을 설득해 미래 성장 동력의 성공 모델을 찾아야 할 입장에서 거꾸로 선거 공학적 유불리 만을 저울질하고 있다. 일각에선 전북 발전의 장애 요인으로 소지역주의와 님비 현상 같은 지나친 이기주의를 꼽는다. 더구나 유권자 투표로 뽑힌 정치인들이 이런 걸 더욱 부채질하는 경향이 있어 문제다. 그들이 내세운 명분은 주민 이익과 지역 발전을 들먹이지만 속내는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우선시한 측면이 강하다. 결국은 민주당의 공천 줄 세우기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일 것이다. 지난주 정치권과 반대 세력의 실력 행사에 막혀 김관영 지사가 참석하는 완주 전주 통합 주민설명회가 무산된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빗나간 정치 행태는 민주당의 제왕적 권력 구조에서 나온다. 공천이 바로 당선이라는 선거 공식은 유권자의 묻지마 투표가 불러 온 적폐 중 하나다. 그렇다 보니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은 주민 이익과 지역 발전 보다는 당내 공천 경쟁에 목을 매기 일쑤다. 특히 지방의원의 경우 생사여탈권을 쥔 지역 국회의원의 눈밖에 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통합 문제로 시끄러운 완주는 안호영 의원의 지역구 핵심 지지 기반이어서 그의 선택에 따라 지방의원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북 발전의 분수령에서 조만간 안 의원이 통합과 관련한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가 어떤 승부수를 띄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완주 전주 통합은 지역 발전의 핵심 축이다. 김관영 지사가 지난주 통합관련 의견서를 지방위원회에 전달하며 본격적인 행보에 나서면서 이 문제가 다시 뜨거워질 전망이다. 무엇보다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메가톤급 이슈로 등장하며 향후 정치인의 역학 구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도내 전체 인구의 40% 이상이 몰려 있는 데다 전북의 중심지란 점에서 정치적 파급 효과는 클 수밖에 없다. 무조건 힘으로 밀어붙여 상대를 굴복시키기 보단 서로 입장 조율을 통해 덧셈 정치로 가느냐가 관건이다. 선수 3명의 끈끈한 팀웍이 한 사람의 순간 실수를 만회하며 금빛 시상대에 오른 한국 양궁 단체전의 저력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김영곤 논설위원
세상사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불확실성의 시대다. 지난 4년간 미국의 차기 대선 경쟁은 바이든과 트럼프의 재대결이었으나, TV토론 한번에 후보가 바뀌고 경우에 따라 첫 여성대통령, 첫 아시아계 인물의 대통령 당선이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지난 6월 27일 대선후보 첫TV토론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리스크'가 만천하에 노출되면서 그는 끝내 대선 후보직에서 사퇴해야만 했다. 여기에 지난달 13일 '암살 미수 사건'이 터지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동정여론을 등에 업고 백악관 문턱을 넘는듯 했으나 세상사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며 후보직에서 전격 사퇴한 뒤 각종 여론조사 결과 트럼프와 해리스는 오차범위 내 반집 계가를 하는 양상이다. 미국 대선에서 TV 토론이 첫 도입된 것은 1960년, 지금부터 무려 64년 전이다. 당시 민주당 후보인 존 F. 케네디 상원의원은 특유의 입담으로 공화당 후보인 리처드 닉슨 당시 부통령을 녹아웃시키며 최연소 미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후 미국에서 TV 토론은 대선 판도를 좌우했다. 컨벤션 효과라고는 하지만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앞서는 분위기다. 불과 얼마전 오바마 등장때 첫 흑인대통령이라고 해서 세상이 떠뜰썩 했는데 어쩌면 첫 여성대통령의 탄생이 이뤄질지도 모를 일이다. 종교나 문화 등으로 인해 아시아권 국가의 경우 상대적으로 서구사회에 비해 여성에 대한 차별과 보수성이 강한 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비롯, 인도, 필리핀, 미얀마,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등지에서 이미 오래전 여성 대통령이나 총리가 탄생했기에 늦게나마 과연 이번에 미국에서 첫 여성대통령이 나올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전북 지역사회에서도 그동안 조배숙, 전정희 등 여성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당선된 전례가 있고, 도의회나 시군의회에서는 여성 의장 탄생이 낯선 일이 전혀 아니다. 하지만 아직 전북에서는 여성 단체장은 단 한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단체장은 커녕 여성 부지사도 전무했다. 오죽하면 유성엽 전 의원은 지금부터 꼭 10년전 도지사 선거전에서 "여성 대표성 강화를 위해 행정 또는 정무부지사에 여성을 임명할 것"이라고 공약했겠는가. 그는 당시 "우리나라는 사회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해 결혼 불안정, 출산포기, 최저 출산 등 심각한 사회문제를 안고 있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여성 경제전문가를 영입해 일자리 창출과 투자유치 업무를 맡길 것"이라고 약속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지금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은 재선인 이인선 의원(국민의힘∙ 대구 수성구을) 이다. 계명대 식품가공학과 교수였던 그는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여성 첫 지방정부 부단체장(경북도 정무·경제부지사)을 지낸 바 있다. 해리스의 전격적인 도약을 보면서 전북의 정치 문화문화와 관행 또한 큰 변화가 필요한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완주군 시(市) 승격, 꿈★을 이루는 가장 쉬운 방법
수소경제의 문을 열며, 전북특별자치도에서 시작하는 청정에너지 전환
충무공 이순신 장군, 어디서 태어났을까?
전북특별자치도 특례 추가 확보가 관건
전주에 사는 것도 스펙이 되어야
첫눈에 곳곳 마비⋯기습 폭설 ‘철저한 대비를’
안호영 의원 '통합의 길'
대광법, 이번에는 기필코 국회 통과시켜라
[금요수필] 김치, 삶을 버무리다
샤모니 몽블랑과 전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