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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배출량이 갈수록 늘고 있다. 쓸모없게 되어 내다 버린 잡동사니가 산처럼 쌓인다. 쓰레기는 하찮고 쓸모없는 물건이나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이것을 담는 용기인 쓰레기통도 똑같은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정작 없으니 아쉽다. 손에 든 쓰레기를 당장 버려야 하는데 길거리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내년이면 꼭 30년이 된다. 도심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쓰레기통은 지난 1995년 ‘쓰레기 종량제’ 전면 시행 이후 사라지기 시작했다. 쓰레기 불법투기 억제와 악취 방지, 도시 미관 등을 위해서다. 일부 시민들이 가정이나 가게에서 나오는 쓰레기까지 길거리 쓰레기통에 아무렇게나 버려 문제가 되면서 공공 쓰레기통은 빠르게 사라졌다. 그런데 정작 쓰레기통이 없어지면서 거리가 지저분해졌다. 길거리 무단투기가 늘어 환경미화원들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코로나 시국때는 시내버스 내 음료 반입이 금지되면서 버스 승강장 주변에 버려진 음료 용기가 쌓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도 곳곳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가 도시 미관을 해치고 있다. ‘쓰레기 버릴 곳이 없다’며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이 늘어나고, 버스 승강장과 번화가 골목에는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모를 쓰레기 수거용 ‘빈 깡통’이 보이기도 한다. 몇 년 전부터 전국 각지에서 길거리 쓰레기통이 속속 부활하고 있다. 도심 거리에 다시 쓰레기통을 설치하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모양과 색상이 확 달라졌다. 화려하게 변신했다. 시민 아이디어를 반영한 참신한 디자인으로 지역주민과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기도 한다. 그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모양의 아이디어 쓰레기통이 시민들의 호응 속에 확대 설치된다면 도시의 새로운 아이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북지역에서는 여전히 길거리 쓰레기통을 찾아보기 어렵다. 전주 한옥마을을 비롯한 유명 관광지나 일부 공원을 제외하면 쓰레기를 버릴 곳이 아예 없다. 전북지역 대다수의 시·군에서는 길거리 쓰레기통 확대 설치 방안을 검토조차 하지 않고 있다. 물론 거리 곳곳에 공공 쓰레기통을 설치하면 종량제의 취지인 생활쓰레기 배출량 감소 효과가 줄어들 수 있고, 집 안에서 발생한 쓰레기까지 일반 봉투에 담아 길거리 쓰레기통에 몰래 버리는 얌체족도 나타날 것이다. 쓰레기통 주변에 분리되지 않고 마구잡이로 쌓이는 오물과 악취로 오히려 도시미관과 거리 환경을 해칠 수도 있다. 또 이를 관리해야 하는 지자체의 부담도 클 것이다. 그렇다고 손사래부터 칠 일이 아니다. 시민들의 의견을 폭넓게 들어야 한다. 먼저 쓰레기 무단투기가 빈번한 거리를 정해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그 효과를 분석해 확대 시행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독특한 디자인을 도입한다면 새로운 도시경관을 만들고, 거리환경 개선에 대한 관심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우려도 있겠지만 믿어야 한다. 시민의식을. / 김종표 논설위원
전북은 몇시인가. 지역에 돈 될만 한 것이 없어 외지인들도 별반 찾지 않는다. 전주 한옥마을도 지금도 스쳐지나가는 경유 관광지밖에 안 된다. 연간 1500만 명이 전주 한옥마을을 찾지만 택시운전사, 콩나물국밥집, 비빔밥집, 막걸릿집, 일부 숙박업소에서나 이삭줍기할 정도이며 관광객들이 돈을 쓰고 가질 않아 윗목 아랫목 구분 없이 전체적으로 온기를 못 느낀다. 도청 소재지인 전주 중심상가가 오래전부터 텅텅 비어 있다. 여수는 엑스포를 치른 이후 관광객이 연중 넘쳐나면서 활기를 띠어 빈 상가가 없을 정도다. 지금 도민들이 바깥세상이 어떻게 빠르게 변하는지를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너무 오랫동안 지금 같은 삶에 익숙한 탓인지 변화에 모두가 둔감해 그저 그렇게 살아간다. 인구나 경제력 면에서 우리 뒤에 있던 강원과 충북이 우리를 휠씬 앞질렀다. 강원도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개최하면서 KTX가 강릉 동해 앞바다까지 연결돼 서울시민들의 앞마당이 돼버렸다.대기업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골프장이나 관광·레저 쪽으로 투자를 계속해 지역발전이 가속화되고 있다. 충북은 오송을 바이어산업단지로 특화해 산학연체계를 구축한 바람에 예전의 충북이 아니다. 바이오 후발주자인 전북이 최근에는 충북한테 한수 배우러 다닌다. 왜 충북도민들이 오송역을 KTX 분기역으로 하려고 사투를 벌였는지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충북은 청주·청원을 통합하고 청주공항이 들어서면서 중부권 물류허브로 급속하게 발전해가고 있다. 수도권 물류가 넘쳐나면서 그 모든 물류를 청주공항에서 처리해 청년 일자리가 계속 늘어간다. 부·울·경 메가시티 건설이나 최근 들어 정치·경제적인 이해가 맞아떨어진 대구·경북의 통합론이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광역단체 간에 통합을 이루려고 양 단체장 간에 의기투합이 이뤄지고 있는 반면 전북은 새만금 행정구역을 놓고 3개 시·군이 피 튀기는 싸움을 하고 전주·완주 통합을 놓고 완주 정치권에서 비토하는 바람에 통합 자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간 전북은 국책사업인 새만금사업에 너무 매몰된 게 패착이었다. 새만금사업 하나에만 올인한 것이 잘못이었다. 지역 간 균형발전을 도모하지 않은 탓이 컸다. 이제 와서 이 모든 것을 함께 다 추진하려다 보니까 힘이 부친다. 성과주의를 내세운 김관영 지사도 도민들에게 뭔가를 보여주려고 혼자 뛰다 보니까 맘만 급하지 뜻대로 잘 안된다. 그도 그럴 것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 하마스 간 전쟁으로 국제 원자재값이나 원유값 그리고 곡물값이 뛰어올라 기업들의 자금 사정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해 새만금에 10조 원 이상 투자 유치했다고 자랑했던 이차전지사업도 미국이 IRA감축법에 따라 중국 자본 비율이 25% 이상인 기업은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키로 해 한·중 합작기업들이 투자계획을 미루거나 포기하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22대 국회의원에 기대가 컸는데 10명 중 4명이 농해수위를 중복 신청해 희망이 절벽으로 바꿔지고 있다. 왜 전북의원들은 21대처럼 이 모양 이 꼴인가 모르겠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10년 전 술자리에서 뺨을 맞았다는 한 교수의 발언을 둘러싼 진실 공방이 갈수록 혼돈의 연속이다. 2022년 당시 교육감 선거를 뒤흔들어 놓았던 이 발언이 법정에서도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 것은 전적으로 그의 말 바꾸기 탓이다. 공개 석상에서 본인이 한 발언을 스스로 뒤집기 함에 따라 자신의 신뢰성을 떨어뜨린 셈이다. 이솝 우화 ‘양치기 소년’ 과 비슷한 양상이다. 거짓말을 반복하다 진짜로 “늑대가 나타났다” 는 소년의 말을 사람들이 믿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치부하기엔 사회적 이슈를 불러온 만큼 기류가 강경한 편이다. 이 사건 당사자 임에도 그가 공인으로서 보여준 모습은 무책임한 말 바꾸기가 고작이다. 얼마 전 진행된 2심 재판에서 그는 1심 무죄 판결 때 발언을 또 뒤집었다. 이렇게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법정에서도 오락가락한 발언이 이어 지면서 그의 진술에 대한 신빙성 여부가 도마에 올랐다. 선거 과정뿐 아니라 경찰과 검찰 조사, 심지어 법정 진술까지 말 바꾸기를 되풀이하는 그의 태도에 시선이 곱지 않다. 진검승부를 가리는 결정적 순간에도 그의 말 한마디에 따라 선거판이 요동치고 후보들 희비가 엇갈렸음은 물론이다. 그에게 책임을 묻고자 하는 건 그의 말 바꾸기가 블랙홀 역할을 하며 모든 이슈를 빨아들여 교육감 선거 때 백년대계를 논의하는 토론 자체가 실종됐다는 점이다. 한때 그의 뜨뜻미지근한 태도에 대해 뒷말이 무성했다. 본의 아니게 오래전 자신과 관련된 일이 선거 국면에서 갑자기 화제가 되자 그가 곤란한 상황에 놓인 걸로 보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가운데 처음에는 스탠스 취하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실제 선거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친 두 후보가 공교롭게도 그와 학교 인연을 맺어 오랜 친분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그런 처지의 상황에서 당사자로서, 공인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회피할 순 없다. 그때 진실을 밝혔더라면 선거 끝난 지 2년이 다 된 지금까지 소모적 논쟁을 겪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말 바꾸기는 분명한 의도가 있기 마련이다. 그의 말 바꾸기로 인해 꼬인 실타래가 결국 부메랑이 되어 그를 옭아 매고 말았다. 여러 번 기회가 있었는데도 진실을 밝히기는커녕 되레 의혹만 부채질했다. 그는 선거 때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기자가 취재 요청을 해도 일절 응하지 않았다. 일파만파 사태가 번지면서 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만 키우더니 결국은 위증죄로 구속되는 최악의 상황에서 재판 받는 신세가 됐다. 사소한 시비로 발생한 가십성 기사인데 그의 발언 뒤집기를 통해 뉴스밸류가 커진 것이다. 수 많은 논란 속 그가 공인으로 부적절한 처신을 통해 남긴 트라우마가 있다. 누구도 이젠 그의 발언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는 것, 혹여 발언이 또 뒤집힐까 두려워서다. 김영곤 논설위원
요즘 까마귀가 사람을 공격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 번식기를 맞아 공격성이 강해져서 그런다는 건데 어쨋든 몸집이 작은 까마귀가 사람을 공격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인 사례다. 살다살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도 새한테 머리가 쪼이기도 한다고 하니 길을 걸을 때 이젠 앞만 잘 볼게 아니라 하늘도 잘 지켜봐야 할 모양이다. 전문가들은 까마귀 공격을 당할 경우, 맞상대해서 흥분시키지 말고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조언한다. 문화권에 따라 흉조로, 또는 길조로 인식되곤 하는데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까마귀는 까치, 앵무새와 함께 새 중에서 최상위권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인간 다음으로 똑똑한 동물 중 하나다. 훈련받은 까마귀의 지능은 6~7세 아이 정도로, 돌고래나 침팬지급의 지능을 자랑하며, 도구 제작 능력과 문제해결 방면에서는 까마귀가 오히려 더 뛰어나다. 우리 속담에 반포지효(反哺之孝)가 있다. 까마귀 새끼가 자라서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효라는 뜻인데 자식이 자라서 어버이의 은혜에 보답하는 지극한 효성을 의미한다. 그런가하면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는 속담도 있다. 우연히 동시에 일이 생겨서 둘 사이에 무슨 관계라도 있는 것처럼 의심을 받을 수 있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오비이락을 말하다보니 문득 지방의원과 지방의회의 위상 문제가 떠오른다. 지방의회가 출범한지도 이젠 만 33년이 됐기에 의원들의 역량이나 의회의 위상은 초창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단계에 올라서 있다. 하지만 아직 뭔가 부족해 보인다. 후반기 2년을 이끌어 갈 의장단, 상임위원장단 선거를 앞두고 아름답지 못한 이런저런 얘기가 귓전을 스치기 때문이다. 헛소문이길 바라지만 영 개운치가 않다. 약 10년전 국회의원을 했던 한 원로가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그래도 국회의원 정도 되면 장차관급 관료를 지냈거나 군 장성급, 명망있는 법조인, 기업체 간부 등이 많은데 원내총무만 하려고 동료 의원에게 지지를 부탁하려고 해도 몇백만원은 줘야되는 관행이 있더라” . 쉽게말해 돈이 그렇게 궁하지 않은 위치에 있음에도 동료의원에게 지지를 호소하려면 최소한의 인사는 건네야만 하는 현실이 정말 의아했다는 거다. 지금이야 이런 구태가 사라졌겠으나 아직도 일부 지방의회에서는 이런 관행이 있다고 한다. 몇년 전, 한 지방의원이 해외여행을 하면서 동료의원들에게 용돈을 좀 챙겨준게 문제가 돼 정치생명이 끝난 사례가 있었기에 지금은 당연히 이런 구태는 없어졌을거라 여겼는데, 아직도 일부 지방의회에서는 진행형이라는 말도 들린다. 국회의원 등 외부의 힘에 편승해 의장단이 되려는 생각도 떨쳐야 하지만, 또 한편으론 금전 몇푼으로 동료의원들의 환심을 사려는 구태가 재발돼선 안된다. 지방의회의 위상을 깎는 일이다. “까마귀 날자 배떨어진다”는 속담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닌, 말 그대로 속담에 그쳐야 한다. 잘못하면 까마귀에 머리를 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소설가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것은 2016년이다.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은 노벨문학상, 콩코드 문학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맨부커상의 한 부분이다. 1969년부터 제정되어 시행되어온 맨부커상과 함께 2005년 비연방국가의 영어 번역소설을 대상으로 새롭게 제정됐다. 맨부커상의 당초 이름은 부커상이다. 영국의 부커사가 북 트러스트의 후원을 받아 제정했는데 2002년부터 맨 그룹(Man group)이 후원하면서 맨부커상(The Man Booker Prize)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다 2019년 맨 그룹이 후원을 중단하자 맨부커상의 이름은 다시 부커상이 되었다. 당시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이 가져온 결과는 놀라웠다. 맨부커상을 수상한지 하루 만에 <채식주의자>는 자그마치 1만여 권이 팔려나갔다. 작품을 발표한 것이 2007년, 10년 동안 통틀어 2만 부가 팔렸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기록이었다. 게다가 채식주의자의 열풍은 다른 소설에도 영향을 미쳐 전해의 같은 기간과 비교해 소설 분야 판매율이 주목할 만큼 높아졌었다. 해외에서도 물론 채식주의자 열풍이 이어졌다. 영국에서는 수상 당일에만 2만 부가 팔려나갔고, 27개국이 출판 계약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올해 부커상은 소설 <카이로스>를 쓴 독일 작가 예니 에르펜베크에게 돌아갔다. 황석영의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가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면서 수상에 큰 기대를 모았지만 아쉽게도 불발됐다. 그러나 부커상은 한국 작가들과 꽤 인연이 깊다. 부커 인터내셔널상은 2005년부터 운영됐지만 2015년까지 격년으로 운영되어 오다가 2016년부터 해마다 영어번역소설을 출간한 작가와 번역가가 공동으로 수상하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그 첫 수상자가 한강이었다. 2018년에도 한강은 소설 <흰>으로 최종후보에 올라 문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 뒤로도 정보라의 SF·호러 소설집 <저주토끼>(2022년)와 천명관의 장편소설 <고래>(2023년)가 연이어 최종후보에 올랐다. 황석영은 2019년 장편소설 <해질 무렵>으로 부커상 1차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한강의 수상작 <채식주의자>를 제외하고도 3년 연이어 다섯 작품이 부커상 후보에 올랐으니 그 결실 또한 주목할만하다. 그래서 눈여겨보게 되는 것이 있다. 한국문학 작품이 세계적인 문학상 후보군에 오를 수 있는 배경이다. 작가들의 문학적 역량도 그렇지만 번역의 질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반갑게도 한국문학 번역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세계적인 문학상들이 한국 작가들을 주목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번역의 힘을 키워 한국문학의 세계 진출이 더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김은정 선임기자
귀한 몸이다.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천연기념물(제330호)이자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건강한 물환경의 지표종’으로 꼽히는 ‘수달’이다. 29일은 ‘세계 수달의 날(World Otter Day)’이다. 밀렵과 서식지 파괴 등으로 위기에 처한 수달을 보호하기 위해 국제수달생존기금이 제안해서 만들어진 기념일로 매년 ‘5월 마지막 주 수요일’로 정해졌다. 국내에서도 기념행사가 열린다. 이렇게 희귀종으로 대접받던 수달이 어느 때부터인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심지어 도심하천에서도 속속 목격됐다. 전주천과 삼천에도 나타났다. 지난 2008년 전주시가 ‘전주천에 천연기념물 수달이 산다’고 발표했고, 곧이어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큰 관심을 모았다. 돌아온 수달은 쉬리와 함께 도심 생태하천으로 복원된 전주천·삼천의 상징이 돼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곧바로 논란의 중심에 서야 했다. 삼천의 언더패스에서 로드킬 당한 수달의 사체가 연이어 발견되면서 환경단체가 언더패스 설치를 강력 반대하고 나섰다. 전주시가 병목현상으로 극심한 교통난을 겪는 서곡교 일대의 교통체증 해소 방안으로 언더패스 설치를 검토했지만 결국 무산되면서 애먼 수달에게 화살이 향하기도 했다. 또 지난해에는 익산 왕궁축산단지 내 저수지(주교제)에서도 수달이 포착됐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축산분뇨와 악취가 넘쳐나던 곳이다. 익산시에서는 생태복원사업의 성과라며, 이를 홍보했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전주천 때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포식자 수달의 개체수가 너무 급격하게 늘어난 것 아니냐’는 냉담한 반응도 나왔다. 확실히 이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넓어졌다. 개체수도 늘었을 가능성이 높다. 국내 하천 생태계에서는 천적이 없는 이 포식자가 인간의 영역으로 들어와 신출귀몰하면서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연못이나 양식장에서 닥치는 대로 물고기를 물어가고, 횟집 수조를 털어가는 일도 빈번했다. 그래도 법으로 보호받는 천연기념물이라 어쩔 수 없다. 딜레마다. 그러면서 천연기념물 지정을 해제하고 개체수를 조절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도심 하천의 진객(珍客)에서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게 생겼다. 환경부에서는 오는 2027년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회의에서 수달의 멸종위기종 등급을 2급으로 하향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생태계에서 한번 자취를 감춘 생물은 복원이 어렵다. 반달가슴곰과 산양·황새·여우 등 몇몇 생물을 대상으로 복원 프로그램이 진행됐거나 진행되고 있지만 그 성과를 장담할 수 없다. 주변에서 빈번하게 출몰하는 수달을 보면 멸종위기종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당장 개체수가 늘었다고 하더라도 성급한 판단은 위험하다. 서식환경이 안정될 때까지는 지속적으로 보호하면서 인간과의 공존 방안을 찾아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누를 범해서는 안 된다. / 김종표 논설위원
정동영만큼 냉온탕을 오가며 부침을 거듭한 정치인도 없다. 22대 총선 경선에서 김성주와 리턴매치를 치르면서 5선이란 자리에 올랐지만 지금 전북도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너무 산적해 이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걱정스럽다. 정 당선자가 지난 4년간 낙선한 후 와신상담해서 권토중래한 케이스라서 더 중압감을 느끼게 한다. 그는 이번 민주당 경선 때 운발이 빳빳하고 좋았다. 지난해 새만금 잼버리 실패 후 도민들 사이에 21대 국회의원들 갖고는 전북 발전을 도모할 수가 없다는 여론이 파다하면서 올드보이였던 정동영을 다시 정치판으로 소환한 것. 그 전만 해도 출마 명분이 약해 고향 순창에서 집 지으면서 지인들과 그 문제를 놓고 결론을 못 내리고 있었는데 위기 상황이 그한테는 기회로 작용했던 것. 특히 김성주 의원이 송하진 전 지사를 컷오프 시키는데 직접 간여해서 낙마시켜 송 전 지사 캠프 사람들이 보복심리로 경선 때 자진해서 정 캠프 쪽을 열심히 도왔다. 여기에 김 의원 지역구 일부 시의원들이 국주영은 도의장의 전주시장 출마 기회를 만들어주려고 우범기 전주시장을 시정질의를 통해 난타질한 것도 정 의원 쪽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 현역인 김 의원이 도시의원 등 지방의원을 끝까지 한명의 이탈자 없이 장악, 유리한 국면을 만들었지만 민심이 돌아서버려 경선에서 패배했다. 너무 김 의원이 자만했고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탓이 결정적 패인이었다. 이재명 당대표가 정동영 당선인한테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우여곡절 끝에 경선판을 만들어준 것도 큰 행운이었다. 정 당선인이 대선 후보 시절 이재명 대표가 선거캠프 부대변인으로 참가, 선거운동을 해준 덕에 정 당선인이 이 대표 성남시장 출마를 적극 도와준 인연이 이번 선거판에 보은으로 작용했다. 인간지사 새옹지마 란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정 당선인은 선거운동 기간 지금은 윤석열 정권과 싸울 때 라고 지적하면서 전북을 살려내기 위해 본인이 팀장을 맡아 전북 발전을 이끌어내겠다고 다짐했다. 그 결과 지난 20일 전주 그랜드힐스턴호텔에서 전북 재도약을 위한 100인 원탁회의를 실질적으로 주도, 전주완주 통합 문제와 새만금특별시 문제를 화두로 끌어냈다. 정 당선인이 다시 등판하는 동안 중앙정치 무대에서 여야 간에 인적 변화가 많이 생겼기 때문에 예전 같은 정치력을 빨리 복원하는 게 관건이다. 다음으로 당 지도부한테 건의해서 10명의 전북 의원들을 중복되지 않고 골고루 배분해야 하는 문제가 생겼다. 본인부터가건교위를 희망하지만 4선 이춘석 당선인이 희망해 제일 나중에 전북 몫 찾기를 위해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정 당선인이 전북 의원을 원팀으로 만들어서 그간 실추된 존재감을 찾겠다고 의욕을 과시하지만 당내 역학구조상 이재명 대표와의 관계 정립을 통해 본인 위상을 찾아야 가능할 수 있다. 다음으로 박찬대 당 원내대표와 최고위원들이 5선인 정 당선인의 무게감을 제대로 인정해주느냐 여부다. 이 모든 게 정 당선인이 풀고 나가야 할 숙제라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된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국회의장 선출을 둘러싼 민주당의 대이변 속에 다음 달로 예정된 도의장 선거에도 이 같은 변화를 기대했으나 실망 그 자체다. 친명 지원사격에 힘입어 사실상 ‘추미애 의장’ 통과의례로 여겨졌던 민주당 국회의장 경선에서 우원식 의원이 당선되는 반전이 일어났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친명 개딸들은 극도의 분노를 표출, 당 안팎 후폭풍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다. 이런 상황의 태풍 영향권에서 비껴갈 수 없는 도의회이기에 혹시라도 선거전의 기류 변화를 주목했는데 일부 국회의원 당선자들의 이중성만 확인하는 꼴이 됐다. 그들은 자신의 대외적 위상을 감안해 국회의장 선거는 소신 투표를 한 반면 도의장 선거는 지역위원장으로서 기득권에 급급한 나머지 당심 투표를 강요하는 이율배반적 행태를 보였다. 도의장 선거를 앞두고 전북 정치권 움직임은 정중동(靜中動) 양상이다. 7월 1일 출범하는 후반기 일정에 맞춰 집행부 선출을 겨냥해 3∼4명의 입지자 경쟁이 물밑에서 치열하다. 벌써 선거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국회의원 당선자, 이른바 지역위원장들이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그들은 친위그룹 확대를 포석으로 특정 후보 밀어주기를 노골화 하고 있다. 이것은 계파색을 뛰어넘어 오로지 국회 위상을 고려해 당심을 거부한 국회의장 경선 때와는 딴판이다. 자칫 당내 갈등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득권 강화의 집착은 시대 흐름에도 역행하는 처사다. 입지자 입장에서도 정치적 역학관계를 고려하면 지역위원장 만한 우군도 없다. 문제는 자기 지역구 의원이 출마하지 않는 위원장과의 전략적 '딜' 을 통해 자충수를 두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12명의 도의원이 몰려 있는 전주는 사전 교감을 통해 지역구끼리 교통정리로 충돌을 피하기도 한다. 실제 예약을 통해 자리를 보장해 줌으로써 원만한 관계는 물론 권력 카르텔을 계속 유지한다. 그들 스스로 선거 취지를 무색케 해 위상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아무래도 후보자 자질 보다는 이해관계로 엮여진 정치적 목적에 좌우되는 모양새댜. 전체 의원 3분의 1을 차지하는 만큼 전주 지역의 표심은 집행부 선출의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한다. 국회의장 경선의 대이변은 정치권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 주었다. 친명 색채가 더욱 강해진 민주당에서 헌법기관으로서의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모처럼 만에 자신들의 위상을 높였기 때문이다. ‘아바타 이재명 당’ 이란 오명을 스스로 부정한 결과이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4월 총선 민심에도 그와 같은 기류가 반영돼 있다. 조국혁신당이 돌풍을 일으킨 배경에는 민주당에 대한 강한 불만과 경고가 담겨 있다. 특히 호남에서 비례대표 지지율이 민주당을 앞선 것은 대표적 예다. 집행부 선출을 계기로 도의회가 자존감을 곧추세우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한 이유다. 김영곤 논설위원
적십자의 역사는 곧 앙리 뒤낭과 함께한다. 매년 5월 8일은 적십자의 날인데 창시자인 앙리 뒤낭의 생일을 기념해 정했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보는 ‘적십자 표장’은 흰색 바탕의 붉은색 그리스식 십자로, 국제적십자 운동 창시자인 앙리 뒤낭의 조국 스위스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스위스 국기 문양의 색상을 반전한 것이다. 다만 튀르키예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교 국가들은 ‘적신월’을 사용하며, ‘적십자’와 ‘적신월’을 사용하지 않는 국가는 ‘적수정’을 사용할 수 있다. 적십자 표장을 사용하는 사람이나 건물은 전쟁 시 공격의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있으나 때로는 공격을 받을 수 있기에 분쟁지역에선 매우 위험하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의 전설적인 영웅 이야기를 다룬 영화 ‘도뷔시’가 오는 23일 개봉해 눈길을 끈다. 우크라이나 영화가 국내에서 상영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18세기 실존 인물인 도뷔시가 귀족의 폭정에 맞서 민중을 지키는 내용을 담은 액션 블록버스터다. 주변국의 귀족, 군벌 세력의 억압에 대항하는 백성들의 모습은 우크라이나가 지금 처한 현실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대한적십자사 김철수 회장이 며칠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있는 보건부 청사에서 긴급후송용 구급차 40대를 우크라이나 정부에 전달했다고 21일 밝혔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에서 신속하게 부상자를 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한 인도적 차원의 구급차 지원이다. 전달식에는 김철수 대한적십자사 회장, 김형태 주우크라이나 한국대사, 빅토르 랴쉬코(Viktor Liashko) 우크라이나 보건부 장관, 막심 도첸코(Maksym Dotsenko) 우크라이나적십자사 사무총장 등이 참석했다. 대한적십자사의 역사도 상당히 오래됐다. 1899년 9월 19일 독립신문에는 홍십자 관련 최초의 논설이 게재됐고, 1903년 1월 8일에는 대한제국정부가 제네바 협약에 가입했다. 대한적십자사의 오랜 역사에서 전북인으론 첫 수장에 오른 이가 바로 김철수 회장(김제)이다. 그는 이번에 만 80세의 노구를 이끌고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방탄 차량을 타고 무려 13시간을 달려 키이우에 도착할 수 있었다며 힘든 여정을 필자에게 전했다. 김철수 대한적십자사 회장은 “한국도 70년 전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나라이기에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고통을 잘 알고 있다”며 “구급차가 필요한 곳에서, 어려움에 처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생명을 구하는데 사용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1월 부산항에서 선적된 구급차 40대는 4월말 우크라이나에 도착했으며, 폴타바, 도네츠크, 자포리자, 오데사, 하르키우, 헤르손, 체르니히우 등의 의료시설에 배치돼 구급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대한적십자사는 현금 70억원, 물품 258억원 등 총 328억원을 모금해 우크라이나 인도적 지원에 사용했다. 70여년 전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는 과정에서 도움을 받았던 우리가 이국땅에서 조금이나마 베푸는 것 같아 푸근하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1997년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어 사회적 이슈를 불러일으킨 다큐멘터리영화가 있다. 제주 4.3사건 생존자들의 증언을 모아 만든 조성봉 감독의 <레드 헌트>다. 당시 여야 정당 총재 등 정치인들도 영화를 관람했지만, 감독을 비롯한 관계자들은 국가보안법으로 수배를 당하거나 구속됐다. 제주 4.3은 1948년 4월부터 1954년 9월까지 7년 7개월 동안 대한민국 군인과 경찰이 공산 빨치산을 소탕한다는 명목으로 주민 3만여 명을 대량 학살한 사건이다. 오랫동안 말하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던 4.3사건이 조명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이다. 학계와 사회단체가 나서면서 4.3은 비로소 우리 역사의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999년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되고 이듬해 2000년에는 제주 4.3 특별법이 제정됐다.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세상에 나온 것은 2003년. 그해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제주를 찾아 '국가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민간인 희생'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공식적으로 국가가 인정한 역사가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제주 4.3의 진상규명과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은 순조롭지 않았다. 비극의 역사 제주 4.3이 또 한편의 다큐멘터리영화로 우리를 찾아왔다. 지난 10일 폐막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목소리들>(지혜원 감독)이다. 영화는 ‘제주 4.3 당시 희생된 수많은 여자와 끔찍한 기억을 안고 살아남은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제주 4.3은 한국 전쟁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민간인 사망자를 낸 국가폭력 사건이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3만 명 희생자의 33%가 노약자와 여성이다. 1949년 5월, 민간인 수용소를 방문한 UN 위원단이 “여성의 수가 남성보다 대략 3배나 많았고 팔에 안긴 아기들과 어린이들도 많았다”고 전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럼에도 여성 희생자는 오랫동안 4.3 관련 연구 대상으로도 주목받지 못했다. 4.3 특별법 또한 희생자를 ‘제주4·3사건으로 인하여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자, 후유장애가 남아있는 자’로 규정하고 있어 성폭력 등 여성들의 희생은 제외되어 있다. 돌아보면 전쟁의 역사에서 여성들이 기억되는 일은 거의 없다. 제주 4.3도 성폭력 등 고통과 치욕의 시간을 지나온 여성들의 희생을 오랫동안 암흑 속에 묻어두고 있었다. 여성을 통해 4.3을 조명하는 첫 번째 영화가 된 <목소리들>을 더 주목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제주 4.3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또 하나의 통로가 될 <목소리들>은 이제 곧 상영관에서 관객들을 만나게 된다. 많은 관객들로 객석이 가득 찼으면 좋겠다. /김은정 선임기자
짝사랑은 서글프다. 화답 없는 구애, 일방적 사랑은 대부분 허망한 결말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제22대 국회 개원을 앞둔 5월, 정치권은 다시 짝사랑의 계절이다. 4월 총선 전과는 양상이 완전히 다르다. 주체와 대상이 바뀌었다. 선거 과정에서는 후보들의 민심 구애 경쟁이 치열했고, 이 중 당선인 한 명을 제외한 다수의 낙선자는 유권자를 향한 짝사랑의 허무한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애초부터 콘크리트 벽처럼 움직이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두드리다 철옹성을 새삼 확인하고 절망한 안타까운 짝사랑도 있었다. 그리고 이제 당선인들을 향한 지자체와 유권자들의 구애 경쟁이 시작됐다. 특히 전북처럼 지역구 의원 수가 적은 곳에서는 지자체가 나서 지역 출신 등 연고자 찾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당선인은 물론 배우자의 연고지까지 따진다. 지역 현안 관련 법안 처리와 국가예산 확보를 위해 기댈 곳, 비빌 언덕이 필요해서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으면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매달릴 기세다. 큰 꿈을 가진 정치인들은 이 같은 이해관계를 적절히 활용하기도 한다. 오는 30일 개원하는 제22대 국회 전반기 의장 자리를 놓고 최근 실시된 더불어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경합을 벌인 우원식 의원과 추미애 당선인도 전북과 연고가 있다. 당선인들을 상대로 득표전에 나선 두 사람은 지난 10일 여의도에서 열린 전북 국회의원 당선인 간담회에 찾아와 전북과의 인연을 내세우며 전북 발전에 힘을 쏟겠다고 약속했다. 대선에 도전장을 내기도 했던 6선의 추미애 당선인은 ‘대구의 딸, 호남(전북)의 며느리’임을 강조해 왔고, 우원식 의원은 명예 전북도민이다. 우 의원은 지난 2021년 전북 서남권 해상풍력 발전사업 추진에 기여한 공로로 명예도민증을 받았다. 스스로 명예 전북도민임을 내세운 차기 입법부 수장에게 거는 지역사회의 기대가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손을 내민 곳이 어디 전북뿐이겠는가. 전북특별자치도는 국가예산 확보와 지역 현안 해결을 위해 해마다 정기적으로 국회의원들을 초청해 예산정책협의회를 갖고 협조를 요청해 왔다. 지역구 의원뿐 아니라 전북과 연고가 있는 의원들도 따로 초청해 도움을 구했다. 선거철 유권자들에 대한 정치인의 구애는 그 결과를 곧바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선거 후 중앙정치권을 대상으로 한 지역사회의 절박한 구애는 그 성과나 인과관계를 쉽게 파악할 수 없다. 지방소멸 위기의 시대, 산적한 현안을 풀어야 하는 지자체의 눈길이 올해도 일찌감치 중앙부처와 여의도로 향하고 있다. 지자체장들은 벌써부터 내년 예산 확보를 위해 중앙부처를 돌며 발품행정을 펼치고 있다. 이들의 발걸음은 다시 여의도로 향하게 될 것이다. 사실 중앙정부와 정치권을 향한 지자체의 구애는 아픈 추억조차 남지 않는 짝사랑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걸 알면서도 20대 청춘처럼 그만둘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 김종표 논설위원
단기필마로 운 좋게 지사직을 거머쥐었던 김관영 지사가 잼버리 개최 전만 해도 욱일승천하는 기세로 도정을 이끌었지만 그 기세가 한풀 꺾이면서 정중동(靜中動)의 자세로 도정을 이끌고 있다. 재선 국회의원을 역임한 김 지사가 50대 젊은 나이에 지사가 되어 영광을 안았지만 그가 풀고 나가야 할 현안이 산적해 그간 잠시도 한눈 팔 겨를이 없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그를 인재로 영입 복당시키면서 단박에 당내 경쟁자를 물리치고 지사 경선전에서 승리, 정치적으로 도약할 부푼 꿈을 꿀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청년들이 지역 대학을 나와도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1년에 8천명 이상씩 인구가 유출되는 등 각종 지표상 전북이 꼴찌 신세를 면치 못한 게 현실이었다. 고시 3관왕이란 타이틀로 지지를 받은 그로서는 전국 최하위라는 초라한 성적표 앞에서 자존심이 상했지만 이를 바라다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공약인 5개 대기업 유치를 위해 서번전번 (서울에서 번쩍 전북에서 번쩍)하면서 대기업 유치에 심혈을 기울였던 것. 다행히도 행시 동기였던 김종훈 전 농림수산부 차관을 경제부지사로 영입, 농림수산부 공모사업을 초반에 연거푸 따내는 등 기업 유치에 남다른 성과를 올렸다. 김 지사가 2차전지 후발주자로서 넘보기 힘들었지만 '도전경성'이란 자세로 경쟁에 뛰어들어 새만금에 2차전지특구를 유치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그가 이차전지에 심혈을 기울인 것은 농업 위주의 전북 산업 생태계를 부가가치 높은 산업으로 바꾸려고 그렇게 노력을 했던 것. 김 지사는 지난 2년 동안 전북발전에 도움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면 밤낮없이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만나서 도움을 요청해왔다. 그가 이렇게 뛸 수 있었던 원동력은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에서 근무할 때 터득한 성과주의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무관 이상으로 하여금 담당 기업을 정해 현장에서 애로를 듣고 해결책을 모색토록 했던 것이다. 특히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만이 생존전략이 될 수 있다고 판단, 도정에 경쟁의 원리를 도입하였다. 탁상행정이 아닌 현장에 답이 있다는 식으로 현장행정을 강조했다. 빨리 도민들에게 뭔가를 보여주려다가 새만금잼버리라는 악재를 만나 한풀 꺾였지만 그후 여야 정치권도 그의 성실성을 높히 인정, 이제는 도움주려고 이해하고 있다. 자존심 상하게 광역단체 중 유일하게 마이너스 예산편성을 했으나 정부와 국힘의 편향된 시각을 바로잡아 나가는 노력을 계속해오고 있어 내년 국가예산 성적표는 나아질 전망이다. 임기 반환점에선 김 지사가 22대 전북 정치권과 어떻게 협력관계를 구축할지 그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 여기에 그간 국힘 정운천 의원의 도움이 컸지만 5선인 조배숙 당선자로 바뀐 관계로 어떻게 계속 협력관계를 이어나갈지도 변수다. 현재로선 지사 선거에 나설 당내 경쟁자가 없으나 아직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오피니언 리더 중에는 김 지사의 청렴성을 높히 평가하지만 측근들의 정무 감각과 전문성 결여로 지사 혼자서만 열심히 뛴다는 지적을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도 고민거리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한 차례 유치 실패의 아픔과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지역 발전에 절박한 사업인 만큼 도전 의지가 꺾이지는 않았다. 호남권 첫 입점이라는 상징적 의미까지 더해져 추진 동력도 훨씬 강해졌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지역 주민들이 쇼핑할 데가 마땅치 않아 대전, 부여, 수도권까지 원정을 다녔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간절함은 비할 바가 아니다. 거꾸로, 그와 같은 당위성이 클수록 쇼핑에 목말라 하던 전북과 광주 전남, 충청 일부 지역 소비자들이 몰릴 것이란 확신도 들었다. 이처럼 험난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것이 코스트코 익산점 유치다. 코스트코는 전국 자치단체마다 눈독을 들일 만큼 소비자 반응이 폭발적이다. 미국의 창고형 할인 매장으로, 전 세계 870여 곳을 운영한다. 국내엔 18개가 있는데 수도권과 광역시 중심에 몰려 있다. “중소 도시는 불리한 여건 때문에 아예 유치 꿈을 못 꾼다" 는 기존 관념을 깼기에 이번 유치 성과가 더욱 돋보인 셈이다. 기업 유치가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지방자치단체에 던져 주는 메시지도 분명하다. 무엇보다 최대 장애물로 지적돼 온 소상공인 보호책을 미리 장착함으로써 논란의 여지를 없앤 게 주효했다. 3~4개 대체 후보지를 제시하며 기업의 구미를 당기는 것은 물론 자치단체장, 지역 국회의원이 코리아 본사를 찾아 유치의 진정성을 보여준 것도 불씨를 살리는데 한몫했다. 투자협약서 서명까지 위기의 순간마다 이 같은 노력들이 상호 신뢰를 뒷받침했다. 코스트코 익산점 유치 과정은 드라마틱한 면이 적지 않다. 6년 전 전주 에코시티에 처음 입점을 시도한 뒤 완주 삼봉 웰링시티에도 도전장을 냈지만 눈물을 삼켜야 했다. 2012년 순천과 2021년 광주에도 노크했으나 소비자 기대와는 달리 소상공인 보호라는 미명 아래 번번이 좌절됐다. 그 뒤 민심이 들끓기 시작한 건 2022년 완주 입점 예정이던 1300억 규모의 쿠팡 물류센터가 토지 분양가 문제로 무산되자 도민 분노는 극에 달했다. “기업 유치가 하늘의 별 따기인데 굴러 들어온 복을 발로 걷어찼다” 며 비난이 빗발쳤다. 쿠팡과 코스트코 유치는 자치단체가 공들이는 매력적인 먹잇감이다. 그래서 유치 조건이 완주군보다 부족한 상황에서 익산의 성공은 시사하는 바 크다. 지역민 고용 창출과 우수 제품 입점을 골자로 한 소상공인 상생 협약 추진은 명분과 실리 면에서 두 토끼를 잡았다는 평이다. 교통 접근성이 뛰어난 호남고속도 익산 IC 근처가 매장 예정지란 점도 경쟁력 중 하나다. 이용객 편리가 확대됨으로써 자금 유출 방지 효과는 물론 타시도 쇼핑객 유치에도 고무적이다. 더욱이 미래 성장 동력인 국가식품클러스터 단지가 마주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단언컨대, 자치단체장 역할이 기업 유치 성패의 관건이란 사실을 이번 과정을 통해 재확인했다. 김영곤 논설위원
언제부터인가 빵지순례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전국의 유명한 빵집을 찾아다니는 일을 ‘성지 순례’에 빗대어 이르는 말인데 유명한 빵집을 다니며 줄을 서고, 맛있게 먹고, 이를 촬영해서 올리는 것도 하나의 유행이자 즐거움이다. 얼마전 매우 쇼킹한 뉴스 하나가 전파를 탔다. 충청도 대전 지역을 기반으로 한 빵집 ‘성심당’의 운영사 로쏘는 지난해 매출 1243억원, 영업이익 315억원을 기록했다. 프랜차이즈를 제외한 단일 빵집 매출이 1000억원을 넘은 건 전국에서 성심당이 처음이다. 1956년 대전에 설립된 성심당의 가장 큰 특징은 대전에서만 매장을 운영한다는 점이다. 한국 최초의 빵집으로 알려진 전북 군산 빵집 ‘이성당’은 작년 매출 266억원, 영업이익 34억원을 기록했다. 이성당은 1945년 해방 직후 일본인이 남기고 간 제빵 기구를 사용해 빵 맛을 재현한 업체로, 당시 개점한 본점을 비롯해 전국에 9개 매장을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다. 대표 메뉴는 단팥빵과 야채빵으로 매 주말마다 1만개 이상 팔린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빵이 이젠 단순한 주전부리 수준을 넘어 지역 경제 활성화에 단단히 한몫 하고있다. 성심당의 폭발적인 성장은 빼어난 맛과 마케팅 뿐만 아니라 철도를 기반으로 한 대전역의 성장과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하나의 재미있는 사례를 들어보자. 일제때인 1931년 대전, 익산, 김제 등은 동시에 읍으로 승격했다. 그런데 이듬해 대전역은 호남선과 경부선 철도의 분기점이 되면서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먼 훗날 경부고속도로, 호남고속도로가 생기면서 대전은 익산이나 김제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대형 도시가 됐다. 도시의 발전과 성장의 원인은 수없이 많지만 하나만을 든다면 철도를 중심으로 한 교통망 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인구 144만명인 대전의 경우 경부선·호남선, 경부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의 분기점이 되는 교통의 요지라는게 결정적 이유다. 1905년 경부선의 통과역으로 결정되고, 1913년에 대전을 출발점으로 하는 호남선이 개통되어 영호남을 연결하는 교통상의 요지로 대두된게 결정타였다. 1931년에 대전면이 읍으로 승격하고, 이듬해 충청남도 도청이 이곳으로 이전하자 신도시 대전은 더욱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익산시의 경우 일제강점기 미곡집산지로 발달하면서 1908년 전군가도(全群街道)가 개설되고, 1912년 호남선, 1913년 군산선, 1936년 전라선 철도가 개통되는 등 육상교통의 중심지가 됐으나 한계가 뚜렷했다. 삼한시대부터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녔던 김제시도 대전, 익산과 똑같이 1931년 읍으로 승격했으나 철도망의 협소, 곡창지대의 잇점 등이 사라지면서 인구소멸과 싸우는 상황이다. 급격히 변화하는 시기에 그 기류를 타느냐, 못타느냐는 훗날 어마어마한 차이를 가져온다. 빵지순례 열풍이 불고있는 요즘 이성당과 성심당을 지켜보는 소회의 일단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트로트(Trot) 전성시대다. 대중가요의 한 장르인 트로트에 한국인이 열광하고 있다. 따라 부르기 쉬운 가락에 구구절절한 삶의 애환을 담은 노랫말이 붙어 중독성이 강하다. 올봄 전국 곳곳에서 열린 꽃축제 무대도 몸값을 불린 트로트 가수들이 장악했다. 그렇게 꽃잔치가 지나간 여름의 길목, 전통문화의 고장이 국악의 향기로 물든다. 국내 최고 권위의 국악인 등용문인 ‘제50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가 18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열린다. 전주대사습놀이의 꽃은 역시 판소리다. 대회 최고상인 대통령상도 13개 부문 중 판소리명창부 장원에게 수여된다. 이 대회 학생부(학생대회), 또는 일반부 판소리 장원의 영예를 차지한 예비 명창들이 엉뚱한 곳에서 속속 얼굴을 내민다. 트로트 가수들에게 활짝 열린 대중가요 무대다. 우리 국악의 미래를 짊어질 것으로 기대를 모은 판소리 신동들의 예상치 못한 행보도 눈길을 끈다. 모 방송사의 인기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에서는 전주대사습놀이 학생전국대회 판소리 장원 출신들이 맞대결을 펼쳐 눈길을 끌기도 했다.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일반부 장원에게는 병역혜택까지 주어진다. 전통문화의 명맥을 잇자는 취지다. 그런데도 굴지의 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낸 예비 명창들의 전향이 이어지고 있다. 당장 엄청난 돈과 대중의 인기가 눈앞에 있으니 그 유혹을 떨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정말 피나는 수련을 통해 득음의 경지에 가까워졌으니 경연에서의 자신감도 충만할 것이다. 학생대회와 함께 열리는 전주대사습놀이가 국악인이 아닌 트로트 가수 등용문으로 변질될까 우려된다. 실제 이 대회 판소리(일반부) 장원에게는 트로트 가수로의 전향 계획을 묻는 질문이 꼭 뒤따른다고 하니 웃지 못할 일이다. 소리꾼의 길을 걷는 예비 명창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충분한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 당장 익숙한 대중가요에 열광하는 시민들을 갑자기 판소리 애호가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소리꾼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꾸준히 마련해 귀명창을 늘린다면 판소리의 위상도 점차 달라질 것이다. 대중에게 친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면 국악 대중화는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시민들이 쉽게 다가가 즐길 수 있도록 판소리를 비롯한 국악무대를 늘려나가야 한다. 소리의 고장 전주가 앞장서야 하는 일이다. 우선 지역 축제부터 달라져야 한다. 축제의 계절, 살인적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인기 대중가수를 굳이 거액을 들여 초청하는 대신 판소리 명창과 꿈나무들의 무대를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다고 하지만 분명 공급이 수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문화예술 분야가 그렇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판소리의 예술적 가치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판소리 전승과 대중화의 필요성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이제껏 성과가 없었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지원 방안을 찾아야 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전북은 이번 총선 때 20년 만에 파란색으로 완전 도배했다. 예견된 결과였다. 전주병, 익산갑, 군산, 정읍고창 지역구에서 민주당 경선이 치열했다. 지난해 새만금 예산이 삭감되면서 정부여당발 한파가 몰아닥쳐 정권심판론이 우세했다. 정책과 공약 대결은 사라지고 지역 정서에 매몰된 싹쓸이 선거가 재현됐다. 정치권의 무능이 극에 달해 민주당 경선전에서 전체 판갈이 여론이 나돌았다. 광주와 달리 군산 신영대 의원만 비명이고 나머지 전원이 친명이라서 현역 2명 물갈이로 싱겁게 끝났다. 새만금 국가예산 삭감으로 촉발된 정치권 물갈이가 선거구 한 석 감소 여부를 놓고 정점에 다달았지만 막판에 현행처럼 유지 쪽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도민감정이 많이 수그러들었다. 이번 총선에서 올드보이 정동영과 이춘석 귀환을 가능하게 했다. 잼버리가 끝난 후 모든 실패 책임을 전북도에다가 똘똘 뒤집어씌워 도민감정을 격앙시킨 게 결국 정동영을 소환하게 했다. 그 전만 해도 정동영은 정치 재개 명분이 약해 뚜렷한 결론을 못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도민들 사이에 전북 정치권의 존재감이 너무 약한 것 아니냐는 여론이 강하게 형성되자 정동영이 구원투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 동냥 벼슬인 국회의원이나 선출직 공직자는 그냥 되는 게 아니다. 3대의 신상이 고스란히 까발려지기 때문에 평소에 덕을 쌓지 않고 갑질한 사람은 아예 생각도 못할 일이다. 전주 을서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낸 이성윤 후보가 정치 입문 2달도 안 돼 금배지를 거머쥐었지만 그의 내공이 결코 만만치 않았다. 교회와 직장 집만을 오가는 범생이 정도로 알려졌지만 윤석열 검사정권이 들어서면서 그를 독사로 만들어줘 승리할 수 있었다. 그는 윤석열 검사 독재정권의 타파를 위해 최일선에서 싸워나가겠다는 게 시대정신을 관통하면서 승리의 월계관을 쓰게 됐다. 정동영 이춘석 이성윤의 당선은 상대 후보보다 인물이 우위에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지방의원들이 주축이 되서 사즉생의 각오로 표심을 집중 공략한 게 주효했다. 경선이 당원 일반시민 50대 50으로 돼 있어 도전자한테는 권리당원을 모르는 상황에서 깜깜이 선거를 치러야 할 형편이었지만 그래도 개미들의 끈질긴 집념으로 승리를 일궈낸 것. 전주을은 경선 전에 지방의원들이 물밑 접촉을 통해 이성윤 후보를 밀기로 다짐하고 그에 대한 지지를 끌어올려 여론조사 1위로 후보 4명을 제쳤다. 사실상 국회의원이 지방의원 공천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공천받기 위해 물불을 안 가리고 뛸 수밖에 없다. 전주병은 지방의원 전원이 김성주 의원을 밀다가 패배해 정동영 당선자와 물기름처럼 묘한 동거를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전원 물갈이냐 아니면 80% 물갈이냐를 놓고 설왕설래하면서 내심 긴장의 끈을 놓치 않고 있다. 지방선거 때 경선을 통해 물갈이가 되겠지만 선거 때 선거운동에 아예 참여치 않은 도의원은 일찍 신상정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주군이 바뀌어 공천관계가 불리해졌지만 지방의원은 주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후반부 의정활동을 잘해야 할 것이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전주시 산하 기관장에 대한 첫 인사청문회가 팽팽한 긴장감 없이 막을 내려 뒷말이 무성하다. 무엇보다 인사청문회에 기대를 걸었던 후보자의 송곳 검증이 크게 못미쳐 후한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전주시의회도 처음 시행하는 만큼 약간의 시행착오를 감안한다 해도 기본 취지가 실종된 데 대해 시선이 곱지 않다. 후보자의 도덕성뿐 아니라 경영 능력, 전문성 등을 짧은 시간 안에 검증한다는 것 자체가 물리적으로 쉽지는 않다. 그런 만큼 고도의 전문 지식과 꼼꼼한 자료 준비가 청문위원에게 요구된다는 목소리다. 실제 사상 처음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 이번 청문회는 여론의 주목도 면에서도 실패했다. 후보자 경력과 관련해 자격 시비가 일부 제기됐지만 이슈를 만들어낼 만한 질의응답도 없었다. 오히려 후보자의 거침없는 답변이 화제가 될 만큼 청문위원들의 존재감은 그야말로 미미했다. 여느 청문회에서 흔히 보았던 가시 돋친 설전은 고사하고 일상적인 회의처럼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물론 여기에는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도덕성 검증이 비공개로 진행됨에 따라 맥빠진 탓도 있다. 일각에선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았다. 민주당 일색 의회와 같은 당 출신 시장이 이끄는 집행부 관계를 보면 원래 한통속인데 뻔하다는 반응이다. 도의회 청문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기억하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청문회 모습은 여야 적대 관계가 뚜렷한 국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지난 2일 전주시의회는 전주농생명소재연구원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열었다. 기초의회에선 군산에 이어 실시한 이날 청문회는 지난해 지방자치법 개정 이후 인사청문회가 가능토록 법적 근거가 마련된 데 따른 것이다. 청문회 대상은 주로 전주시 산하기관이다. 근본적 도입 취지는 인사권자의 독단과 전횡을 예방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절차로 해석된다. 다시 말해 기초단체장의 공정한 인사를 담보하기 위한 의회 견제구 성격이 강한 만큼 청문위원의 준비 여부가 성패를 좌우한다는 점을 깊이 되새겨야 한다. 인사청문회 칼날이 무딘 이유는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종이 호랑이’ 로 전락한 게 결정적이다. 한쪽에선 ‘요식 행위’ 란 비야냥거림도 들린다. 설령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하더라도 인사 강행을 막을 수 없는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부적격 논란의 후보자라도 임명권자가 밀어붙이면 인사청문회 절차는 무의미해 진다. 그러한 핸디캡과 더불어 과도한 신상 털기로 인해 도덕성과 능력 검증이 뒷전인 상황에서도 인사청문회가 주목을 끄는 건 후보자의 정보 제공과 국민의 알 권리 충족 때문이다. 이처럼 인사청문회 무용론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일부 영향이 있겠지만, 지방의회 청문위원들의 자질과 준비 부족으로 ‘맹탕 청문회’ 가 진행됐다면 그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김영곤 논설위원
키맨(Keyman)이란 어떤 조직에서 문제 해결이나 의사 결정을 할 때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한동안 잠잠했던 전주완주 통합 문제가 요즘 화두로 등장하면서 일부 단체들이 찬반 의사를 심심치 않게 피력하고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몇몇 키맨의 손에 이 문제는 달려있다. 김관영 전북특별자치도 지사, 우범기 전주시장, 유희태 완주군수, 그리고 완주를 지역구로 둔 안호영 의원이 이 문제에 관한 한 키맨이다. 그중에서도 결정적인 키맨은 바로 안호영 의원과 유희태 완주군수다. 전주권은 항상 통합 찬성 여론이 높은 만큼 우범기 전주시장이나 전주 출신 김윤덕, 이성윤, 정동영 의원 등은 상대적으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가 어려운 구조다. 사실 전주완주 통합 문제는 전적으로 완주군민과 전주시민들이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결정하면 되는 단순한 문제다. 지난 1997년, 2009년, 2013년 등 모두 3차례에 걸쳐 통합을 추진했으나 결론은 완주군의 반대로 번번히 무산됐다. 통합이 될 경우 과연 득인가, 아니면 실인가 그 부분을 보는 시각부터 찬반양론이 엇갈린다. 찬성측은 역사와 생활권이 같고 광역행정의 잇점이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반대측은 결국 완주군민들만 손해를 볼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면 결정적인 기회였던 2013년 6월로 돌아가보자. 당시 송하진 전주시장과 임정엽 완주군수는 통합에 대해 의견을 함께하고 김완주 당시 지사도 처음엔 이들과 뜻이 같았다. 일부 여론조사 결과 당시 완주군에서의 통합 찬성 비율이, 통합 반대 비율보다 10% 정도 높았기에 주민투표에서 통과가 예상됐으나 결론은 반대가 11%나 많아 부결됐다. 완주를 지역구로 둔 당시 최규성 국회의원이 강력히 반대하면서 완주지역 지방의원 등이 대부분 반대에 나섰다. 김완주 지사도 나중에 방향을 틀면서 결국 통합이 무산됐다는 관측이 나돌았다. 그러면 만 11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은 어떨까. 냉정하게 보면 겉공기는 좋아 보여도 통합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당시엔 송하진 전주시장과 임정엽 완주군수의 통합 의지가 강력했으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우범기 전주시장의 통합의지가 단호해 보이지는 않고, 유희태 완주군수는 말을 아끼고 있으나 결코 통합에 찬성하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최규성 당시 의원에 비해 안호영 현 의원이 덜 격렬하게 반대하기에 가능성은 좀 열려있는 편이다. 안 의원은 “완주군민들의 충분한 숙의과정이 필요하다” 면서도 “전북특별자치도가 더 잘될 수 있도록 동부권 등의 균형발전이 필요하다”고 원론적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내후년 완주군수를 염두에 둔 후보군이나 전현직 완주군의원들은 대체로 찬성보다는 반대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직 완주지역 키맨들이 통합 필요성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완주군민의 마음을 얻는 획기적인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1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서 변수가 된 전주완주 통합 문제에 대해 키맨인 안호영 의원과 유희태 완주군수가 향후 어떤 행보를 보일지가 최대 관심사다. 주민투표가 올해 안에 치러질 공산이 커지면서 키맨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전북일보가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를 조명하기 위해 기획 취재를 시작한 것은 백 주년을 한해 앞둔 1993년이었다. 그 뒤 취재팀은 꼬박 2년 동안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를 답사하며 후손들을 만났다. 전문가들과 함께한 취재였지만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를 알아가는 과정은 결코 평탄치 않았다. 가장 큰 어려움은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역사가 기록으로 말하는 것이라면 이미 대부분 기록이 묻힌 갑오년 역사는 온전한 실체를 얻기 힘든 대상이었다. 갑오년의 역사가 민란이 아닌 혁명으로 제 이름을 찾은 것도 1994년 백 주년을 맞은 즈음이었다. 이후에도 ‘갑오농민전쟁’과 ‘동학농민혁명’을 두고 학계의 명칭 논의가 뜨거웠지만 2004년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갑오년 역사는 비로소 ‘동학농민혁명’이란 이름을 얻게 됐다. 돌아보면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은 역사 찾기의 새로운 분수령이었다. 연구자들의 연구작업이 활발해진 것도 이즈음부터였는데 덕분에 숨겨졌거나 묻혀있던 갑오년 기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학농민군 임명장과 회고록, 동학농민군 진압에 가담한 관료와 진압군의 공문서, 조선 정부 기록, 민간인의 문집이나 일기, 동학농민혁명을 경험했거나 전해 들은 개인의 견문 기록 같은 자료들이었다. 1894년부터 그 이듬해까지 이어진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이 기록물들은 사료의 희귀성에서도 그렇지만 시간과 공간, 사건의 주체가 각각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기록한 자료라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지난해 5월, 유네스코는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했다. 세계기록유산은 유네스코가 1992년부터 세계의 귀중한 기록물을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해 선정해온 문화유산이다. 지금까지 등재된 세계기록유산은 2023년 기준 193개국 1,092건. 독일이 67건으로 가장 많다. 우리나라는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 직지심체요절, 승정원일기, 조선왕조 의궤, 고려대장경판과 제경판, 5·18 민주화운동기록물, 난중일기를 비롯해 가장 최근 등재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까지 12건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세계기록유산이 되면 보존과 관리를 위해 유네스코로부터 재정과 기술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되니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면서도 보존의 길까지 열리는 일거양득의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이들 기록물의 활용이다. 역사적 사료는 보존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잘 활용할 수 있을 때 더 큰 가치를 얻게 된다. ‘조선 백성들이 주체가 되어 자유, 평등,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지향했던 세계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은 이 기록물의 다양한 활용법이 모색되기를 기대한다. /김은정 선임기자
꽃보다 푸른 잎이 더 아름다운 신록의 계절이다. 농촌에서는 한 해 영농을 시작하는 시기, 모내기철이다. 최근 수년간 이맘때면 극심한 봄가뭄으로 농심이 타들어갔다. 다행히 올해는 물 걱정이 없다. 유난히 봄비가 잦았다. 들녘에서 쌀농사를 준비하는 계절, 도시의 거리에서는 쌀밥이 꽃으로 쏟아진다. 화려한 봄꽃이 다 지고 나면 그 아쉬움을 달래주면서 여름의 문을 여는 이팝나무 꽃이다. 이팝은 이밥의 사투리고, 이밥은 입쌀(멥쌀)로 만든 밥을 가리킨다. 꽃 모양이 흰 쌀밥을 닮았다고 해서 이팝나무다. 쌀이 귀했던 시절, 나무를 올려다보며 사발에 소복이 담긴 흰 쌀밥을 연상했을 옛사람들의 고달픈 삶이 엿보인다. 게다가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힘겹게 보릿고개를 넘고 있을 때가 아니던가. 예전에는 이팝나무 꽃송이를 보고, 풍년과 흉년을 점치기도 했다고 한다. 절기상 입하(立夏) 무렵에 꽃이 피기 때문에 이팝나무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 입하인 5일, 이미 절정을 넘긴 꽃무더기에 거센 빗줄기가 쏟아졌다. 한층 빨라진 여름의 문턱, 상춘(賞春)의 계절은 갈수록 짧아진다. 몰랐다. 주변에 이팝나무가 이렇게 흔했는지⋯. 쌀밥 같은 꽃을 무더기로 피워내야 비로소 눈에 띄고, 봄철 꽃놀이가 끝난 후에야 제철을 맞으니 꽃이 필 때까지는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래서 몰랐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확실히 개체수가 늘었다. 가로수로 인기를 끌면서다. 우리나라 자생종이고 병충해와 대기오염에 강하다는 게 장점이다. 예전 도로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플라타너스와 은행나무가 도심에서 조용히 쫓겨났다. 꽃가루와 악취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자리를 이팝나무가 속속 차지하고 있다. 가로수의 세대교체다. 전북에도 이팝나무 명소가 많다. 1960년대 일찌감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고창 중산리 이팝나무와 진안 평지리 이팝나무군을 먼저 꼽을 수 있다. 또 전주 팔복동 이팝나무 철길도 사진 명소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이팝나무 꽃이 만발하면 그 해엔 풍년이 든다’고 했다. 올해는 유난히 이 쌀밥꽃이 풍성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풍년이 들어도 농민들은 웃을 수 없다. 쌀값 폭락이 거듭되는데 마땅한 대책이 없다. 쌀값이 폭락할 경우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사들이도록 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지난해 봄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지만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논란은 해를 넘겨서도 거듭되고 있다. 민주당이 지난달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단독 의결해 본회의에 직회부했다. 그러면서 쌀을 비롯한 농산물 수급 안정 정책이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됐다. 쌀은 생명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지만 쌀 부족은 과잉공급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문제다. 이팝꽃이 다 떨어지고 무성한 잎만 남으면 모내기가 끝난 들판도 온통 푸르게 변할 것이다. 올해도 이팝꽃처럼 풍성한 결실을 기대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안호영 의원 '통합의 길'
난 웹툰 작가이다 4
점술사의 시대
전북특별자치도 특례 추가 확보가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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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곳곳 마비⋯기습 폭설 ‘철저한 대비를’
[금요수필] 김치, 삶을 버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