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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 앉아 묵은 신문지 깔아 놓고 손톱을 자르다가 문득, 손톱 밑에 낀 검은 때를 본다. 한번도 더러운것 긁어먹은 적 없는데 도대체 어디서 묻어온 것일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아아, 마음에서도 때가 우러나는 것이라면 부끄럽구나 아직도 묻어 나오는 내 마음의 때. /송희철
물을 나무(木)에 주듯이 물을 부어 씻으니 목욕할 목(沐)집에서 나무(木)로 만들어 쓰는 것이니 평상 상, 책상 상(床)나무(木) 밑으로 두 사람(人人)이 오니 올 래(來)<참고> ①沐 목욕할 목, 축일 목 (wash, wet)沐浴(목욕) 온몸을 씻는 일. * 浴(목욕할 욕)②床 평상 상, 책상 상 (wooden bedstead, desk) 寢床(침상) 누워 잘 수 있게 만든 평상. 同床異夢(동상이몽) ‘같은 자리에 자면서 꿈은 다르게 꿈’으로, 겉으로는 같이 행동하면서도 속으로는 각각 딴 생각을 함. * 寢(잠잘 침), 同(같을 동), 異(다를 이), 夢(꿈 몽)③來 올 래 (come, return) * 원래는 보리 이삭의 모양을 본 뜬 글자로, 밀과 보리는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전설에서 ‘올 래(來)’라는 글자가 생겼다고 합니다.來日(내일) ‘오는 날’로, 오늘의 바로 다음 날. 往來(왕래) 가고 옴. 由來(유래) ‘말미암아 옴’으로, 어떤 것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 說往說來(설왕설래) ‘말이 오고 감’으로, 변론하느라고 옥신각신하는 것. * 往(갈 왕), 由(말미암을 유), 說(말씀 설, 달랠 세)<본 란의 학습요령> 순서대로 읽으며 이해한 다음, 제목을 중심으로 외고, 제목을 보면서 각 글자의 어원과 쓰인 예까지 떠올려 보십시오.
아중문화의집(관장 임병용)이 직장인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설, 9월 가을 강좌 수강생을 모집한다.요가교실, 디지털카메라 제대로 활용하기, 디지털영상 제작교실, 한국화, 인물드로잉, 나만의 개인기 마술, 오카리나, 장구교실, 가족과 함께하는 놀이춤, 자녀의 진로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등 각 강좌별 수강기간은 3개월이다.이 중 디지털카메라 제대로 활용하기와 자녀의 진로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는 무료다. 강의시간도 7시 전후로 시작, 퇴근 후 부담없이 찾을 수 있다. 문의 063) 241-1123
“연주자가 즐겁지 않으면 좋은 음악이 나올 수 없습니다. 어린이 연주자들이 즐겁게 연주할 수 있으면서도, 관객들도 공감할 수 있는 곡들을 골랐습니다.”전라북도 어린이교향악단(지휘자 유수영)이 26일 저녁 7시30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제8회 정기연주회를 연다. 지난 3월 말 유수영씨가 지휘를 맡게 된 후 여는 첫 무대다. “어린이교향악단을 위임받을 때만 해도 단원이 21명으로 턱없이 부족했었죠. 단원을 확보하고 호흡을 맞추는데 주력한 결과, 지금은 63명의 단원 모두 정상궤도에 올라왔다고 생각합니다.”어린이교향악단은 절제된 아름다움의 선율 구노의 ‘파우스트 모음곡 중 No.7’과 그의 영향을 받은 비제의 ‘아를르의 여인 모음곡 중 No.2 파랑돌래’ 등을 선보인다. 유씨는 “무겁지 않으면서도 가볍지 않은, 듣기 편안하면서도 재밌는 레퍼토리”라고 소개했다. 진안군립합창단(지휘자 박영근)과 이리동남초등중창단(지도교사 박현자)도 함께 무대에 올라 ‘노래로 세상을 아름답게’ ‘아빠랑 꿈이랑’ 등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동요를 부른다. 2000년 창단, 정기연주회와 소리축제·오스트리아 빈 초청연주회 등 탄탄한 실력으로 수준있는 무대를 펼쳐온 어린이교향악단은 이번 연주회를 통해 새로운 출발을 다짐한다.
전라북도익산지구문화유적지관리사업소(미륵사지유물전시관)가 제2회 토요 전통문화 강좌를 연다.도민들에게 역사와 전통문화에 대한 전문지식을 제공하기 위한 이번 강좌의 주제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Ⅱ’. ‘일본 속의 한국문화’ ‘가야사’ ‘옛 절터 발굴 후 보존 및 활용방안’ ‘발해사’ ‘통일신라’ ‘후삼국’ 등 가야에서 후삼국까지 이르는 역사와 문화유산을 답사를 통해 짚어본다. 정영호 박경식(단국대) 김태식(홍익대) 박천수(경북대) 윤덕향(전북대) 송기호(서울대) 김수태 (충남대) 이한상(동양대) 조법종 교수(우석대)와 신종환 관장(대가야박물관) 홍보식 연구관(부산복천박물관)이 강사로 참여한다.강좌는 9월 18일부터 12월 4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미륵사지유물전시관 강당에서 11주 동안 열린다. 오는 31일까지 선착순 50명을 모집한다. 063) 836-7804
악기를 가슴에 대고 연주하는 첼로는 사람의 마음과 맞닿아 있어 가슴 깊은 울림을 남긴다. 첼로의 낮고 고혹적인 소리를 닮은 사람들. 필하모닉 첼리스트 앙상블(리더 김홍연)이 27일 저녁 7시 30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명인홀에서 제22회 정기연주회를 연다.한가지 악기로 만난 앙상블이 거의 없었던 시절부터 군산시향·전주시향·글로리아실내악단 등 전북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첼리스트들이 모인 필하모닉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꾸준히 무대를 열어왔다. 1993년 창단 이후로 1년에 두차례씩 정기연주회를 이어가고 있는 만큼 단원들의 자부심도 대단한다. 연주를 할 때마다 필하모닉의 고민은 곡 선정. 순수하게 첼로 앙상블로 작곡된 곡이 드물어 외국에서 편곡된 악보를 구하거나 리더 김홍연씨가 직접 편곡하기도 한다. 이번 연주에서는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의 브람스 ‘교향곡 제2번’과 오페라 ‘이고르 공’ 중 타타르인의 토속적인 춤곡 보로딘의 ‘Polovtsian Dance’, 푸치니의 ‘토스카’,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의 소프라노 아리아 ‘Caro Nome Che IL Mio Cor’ 등으로 풍부한 첼로 선율을 전한다. 김홍연 양희종 김창수 신진양 김어랑 김윤주 김자원 인덕희씨 등 작은 숫자가 만들어 내는 앙상블이 잔잔한 감동을 전한다.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8월의 문화인물 김창조(1865-1920). 가야금 산조를 만들고 개척한 명인 김창조의 음악세계를 기리는 무대가 열린다. 남원 국립민속국악원(원장 곽영효)이 기획한 ‘김창조의 달’ 기념공연 ‘금의 환향(琴의 還鄕)’. 27일 오후 7시 30분 국립민속국악원 공연장에서 열리는 이 무대는 가야금 뿐 아니라 다양한 악기를 빼어난 기량으로 연주하며 한국음악사의 새로운 장을 연 김창조를 추모하고 업적을 기리는 의미를 담았다. 김창조는 빼어난 연주자로서 뿐 아니라 ‘가야금산조’라는 획기적인 음악 장르를 개척한 인물. 오늘날 전해지는 대부분의 가야금산조 유파는 김창조의 계보로부터 이어진 것들이고, 거문고와 대금, 해금, 아쟁 등으로 확장되어 있는 산조도 김창조의 가야금산조에 뿌리를 두고 있다.초대된 연주자는 전남대 성애순교수와 우석대에 출강중인 송화자씨, 솜리 가야금연주단(대표 임재심)과 전북가야금연주단(대표 박희전)이다. 성교수가 연주하는 ‘최옥삼류 가야금산조’는 김창조를 사사한 최옥삼(예명 최옥산, 1905-1956)이 완성한 가락. 최옥삼은 6.25 직후 월북한 이후 행적이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그의 가락을 물려받은 함동정월(1917-1994, 중요무형문화재 23호)에 의해 맥이 이어졌다. 거의 모든 산조가 허튼가락을 살리는 선율구성이 특징이지만 최옥삼류는 긴장과 이완, 음과 양으로 대비되는 선율전개가 분명해 선율구성이 논리적이라는 평가. 절제되고 진중한 농현의 맛으로 남성적인 느낌이 강하다.송씨가 연주하는 ‘김죽파류’는 조변화가 다양하고, 섬세하고 심오한 농현이 특징. 김죽파는 조부인 김창조와 역시 가야금 명인인 한성기로부터 배운 가락을 바탕으로 이 산조를 완성하고 발전시켰다. 솜리가야금연주단의 ‘성금련류 가야금산조’는 현재 연주되는 가야금산조 중 가장 긴 산조. 농현과 장식음이 많아 특별한 기교가 요구된다. 전북가야금연주단의 ‘강태홍류’ 역시 김창조의 제자인 강태홍이 가락을 더해 완성한 것. 때문에 가락이 복잡하고 불규칙하지만 경쾌한 느낌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가야금산조를 일별해 만날 수 있는 무대지만 이지역에서 탄탄한 맥으로 이어지는 ‘신관용류 산조’가 빠진 것은 아쉽다. 장고 장단은 조용복, 박은지씨.(620-2322∼7)
천변을 따라 흐르는 전주 사람들의 삶이 전주의 역사로 이어진다. ‘역사는 왜곡해도 문화는 왜곡될 수 없다’. 문화의 힘을 믿는 의식있는 젊은 작가들의 실험이 올해는 전시장 밖 삶의 현장 전주천을 판으로 삼았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과거와 현재를 소통하는 설치영상미술제가 열린다. 26일부터 29일까지 전주 다가교와 전주천 일원에서 열리는 쿼터그룹(회장 홍현철)의 ‘전주의 역사’.다가산 밑에 신사를 차려놓고 참배를 강요했던 일제의 치욕. 약탈의 상징인 군산항을 향하는 전군도로의 시작 기점이었던 다가파출소(구 청석동) 입구. 다가산 근처에서 펼쳐지는 전시는 신사참배지와 아픔의 시발지인 다가교를 중심으로 상처의 기억을 씻고 우리 문화와 역사를 새롭게 살려내려는 시도다.다가교를 중심으로 상하 50미터·수면 위 1백여미터 공간에서 펼쳐지는 오방색의 천과 화려한 띠를 이용한 공동작업은 전주 문화와 역사의 조화를 의미한다. 다가교 교각 주변의 작가 개인 설치작업은 화합과 공존의 새로운 소통문화다. 26일과 27일 야간에는 조명작업과 프로젝트로 전주 역사의 여정을 소개하는 역사 사진 멀티쇼가 진행될 예정. 참여작가는 김영란 김용수 박부연 박은주 서희석 심홍재 이경곤 임승한 이정웅 장광선 전철수 홍현철 김준우 박정용씨. 작가들은 설치영상미술제를 통해 우리의 정체성과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발견하고, 동시에 과거와 현재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홍현철 회장은 “세월의 변화 속에서 우리 역사와 지역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며 “전주를 우리 문화의 중심축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고 말했다. 미술제가 개막하는 26일 저녁 7시에는 심홍재 김용수씨의 퍼포먼스와 한국전통문화고 풍물패 연주가 전주 역사 되살리기의 시작을 축하한다.1983년 창립한 쿼터그룹은 올해로 스물한살 청년이 됐다. 회원들은 힘든 길에 뛰어든 후배 작가들을 위해 추천을 통해 전시에도 참여시키고 12월 쿼터인의 밤에서는 신인작가 1명에게 창작지원금을 전달하기로 했다.
이광웅이라는 이름을 잊지 않으려고 시인을 아끼고 따르던 이들은 십여 년 전 금강 하구둑에 그의 시비 하나를 세웠다. 시비를 세우는 날, 사람들은 떡도 먹고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불렀다. 그래야만 시인의 영혼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는지 모두들 취했다. 한쪽에서는 두 눈이 벌개지도록 울다가 눈물을 닦고는 벌떡 일어나 춤을 추는 이도 있었다. 금강 하구둑에 있는 그의 시비를 찾아가는 날, 그날의 풍경이 전군가도 벚나무들 사이로 언뜻언뜻 비쳤다. 전주에서 군산까지 쭉 뻗은 자동차 전용도로를 피하고 나는 옛 도로를 택했다. 시인이 생전에 버스를 타고 오가던 길을 되밟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80년대 초, 이 길을 달리던 직행버스 안에 제자 하나가 시인한테서 빌린 오장환의 시집 필사본 ??병든 서울?? 한 권을 놓고 내렸는데, 그만 그 일이 시인의 생을 송두리째 격류 속으로 몰고 가지 않았던가. 생전에 시인이 즐겨 부르던 노래들을 나는 어느 날 술집에서 재미 삼아 녹음을 해둔 적이 있다. 물론 시인의 동의를 얻은 뒤에 말이다. 맥주 잔 부딪치는 소리, 이런저런 잡담들이 섞인 이 녹음 테이프를 나는 시인의 육성이 그리울 때 틀어보곤 한다. 시비를 찾아가는 길에도 빠뜨릴 수 없다. ?금강선녀? 한 소절이 휘영청 들려온다.이광웅 시비는 농업기반공사에서 흔쾌히 자리를 내준 잔디밭에 있다. 바다로 진입하기 직전 금강의 물결이 잔잔하게 보이는 곳이다. 시비는 십여 년 동안 그 물결을 바라보며 이 곳을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자주 돌보지 않은 우리들 탓에 시비 주변은 풀들이 무성하였다. 개망초와 바랭이 풀들을 손이 닿는 대로 뽑아든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꿈꾸었던 시인이 보면 뭐라고 할까. 그냥 두어도 괜찮다고 손을 내저을까. 시비에 음각한 시 한 편이 마음을 붙든다.“이 땅에서/참된 술꾼이 되려거든/목숨을 걸고 술을 마셔야 한다.//이 땅에서/참된 연애를 하려거든/목숨을 걸고 연애를 해야 한다.//이 땅에서/좋은 선생이 되려거든/목숨을 걸고 교단에 서야 한다.//뭐든지/진짜가 되려거든/목숨을 걸고/목숨을 걸고......”이 시처럼 이광웅 시인을 잘 보여주는 시도 없을 것이다. 참된 술꾼, 참된 연애, 좋은 선생이 되는 일을 그는 가장 중요한 삶의 목표로 삼았던 사람이다. 평소 시인과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맑은 사람’이라는 표현을 아끼지 않는다. 도대체 사람이 얼마나 순수하면 맑다는 말 한 마디로 그를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시인의 맑음을 이해하려면, 또한 한 인간이 역사의 중압감 속에 어떻게 좌절하고, 그러면서도 어떻게 그의 신념을 지켜나갔는지를 알아보려면 늘 시인을 따라다니는 ‘오송회(五松會)’ 사건을 살펴봐야 한다. 5공 초기 신군부파쇼집단에 의해 저질러진 수많은 용공조작사건 중에 대표적인 예로 기록되고 있는 이 사건은 여기에 연루된 사람들이 대부분 현직교사였다는 점에서 당시에 엄청난 충격과 파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고교교사 불온서클 적발’이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된 당시 신문 사회면은 오송회가 “용공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기도”했다고 쓰고 있다. 거대한 간첩단을 ‘일망타진’했노라는 전북도경 대공분실의 발표는 그후 고문에 의한 유치한 조작품으로 판명이 났지만 이광웅 시인을 비롯한 당사자들과 직, 간접으로 이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의 상처는 그들의 삶에 치유될 수 없는 아픔을 안겨주었다.시인은 천성적으로 맑은 성품의 소유자였기에 이 세상의 때가 덕지덕지 묻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불온한’ 사람으로 비춰졌는지도 모른다. 그는 양심적인 지식인이자 교사로 살고 싶었기에 자신이 다니는 성당의 문규현 신부로부터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 김지하의 ‘불귀’, 천주교에서 나온 ‘부산미문화원사건의 진상’ 등의 책을 빌려 읽었다. 그것도 죄 중의 하나였다.그는 이 땅의 훌륭한 시인이 되기 위한 꿈을 키우며 시공부를 광범위하게 하는 과정에서 몇몇 카프 계열의 시를 읽었으며, 신석정 시인을 따르고 좋아했다. 그런데 검찰 공소장은 신석정 시인마저 ‘좌경시인’으로 몰면서 그의 영향을 받아 오랫동안 “사회주의를 동경해왔다”는 것이었다.그는 북한 방송이 “어딘가 모르게 조악하고 엉성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국어교사로서, 시문학도로서, 국어를 사랑하고자 하는 한 사람으로서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원양어업’이라는 한자어보다는 ‘먼바다 고기잡이’라는 순우리말에 마음이 끌린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아무렇지도 않게 무서운 나날을 살아가는 나, 한 발짝 비켜서서 나도 한번 대밭처럼 하늘 덮는 갈가마귀떼나 길러 보고 싶은’(‘버림받은 하늘’) 시인은 인간다운 삶의 교육을 실천하지 못하는 자신의 비애를 ‘강의 한 시간에 담배 두 갑 값 줍기 위해’(‘보충수업 10년’) 밤길을 가는 교사로서 인식하기에 이른다. 오송회 사건으로 이광웅 시인이 가지고 있던 대부분의 책이나 원고는 경찰에 압수 당해야 했지만 그나마 누이들이 가지고 있던 시 원고들은 1985년 ‘대밭’이라는 옥중시집으로 묶어져 이광웅 시인의 삶과 문학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1989년에 나온 ‘목숨을 걸고’는 문익환 목사의 서문처럼 ‘극도로 절제된 언어, 극도로 절제된 서정’의 세계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1992년 12월 시인이 운명하기 한 달 전쯤에 나온 세 번째 시집 ‘수선화’를 두고 김진경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이광웅 선생의 시는 놀라운 연금술을 생각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터무니없이 맑으면서도 ‘역사의 토양에 깊이 뿌리 내리고/미래의 하늘에 주렁주렁 열매 맺는’ 의미의 빛으로 가득 차 있다. 아마도 엄청난 중압과 열로 들끓는 한국이라는 역사의 지층이 아니고는 만들어질 수 없는 천연의 금강석인 것이다.”‘터무니없는 맑음’으로 살다간 시인의 시비는 우리에게 늘 반성의 표지가 된다. 저녁이 되자 군산 시민들이 잔디밭 군데군데 자리를 펴고 삼겹살을 굽기 시작한다. 소주병도 보인다. ‘목숨을 걸고’ 굽고 마시되, 이곳이 찬연히 살다간 한 시인의 시비가 서 있는 곳임을 잊지는 않았으면 좋겠다.이광웅 시인의 삶이광웅 시인은 1940년 전북 익산에서 출생했다. 익산 남성중학교에 전체 수석으로 입학을 한 그는 문학에 심취하면서 학교 성적은 어른들의 기대를 벗어나게 되지만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김노인’이라는 단편소설과 시를 교지에 발표하면서 문학에의 꿈을 키워나간다. 고등학교에서도 각종 백일장대회에 나가 장원을 차지하는 등 문학적 재능을 발휘했는데 남성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외국어대 불어과에 입학하지만 집안형편도 어려워지고 각박한 서울 생활이 벅찬 탓에 한 학기만에 포기하고 만다. 그 무렵 시인 신석정 선생을 따르면서 전북대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역시 도중하차하고 1971년 원광대 국문과를 졸업했는데, 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2년만의 일이었다.1967년 ‘현대문학’에 청마 유치환 시인의 초회 추천을 받고 1974년 지금은 폐간된 ‘풀과 별’지를 통해 신석정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하면서 시인의 길을 걷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1971년부터 1975년까지 원광여종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다가 1976년부터 군산제일고등학교로 옮겨 제자들로부터 ‘인기 높은’ 교사가 되어 근무했지만 오송회사건으로 삶의 크나큰 변화를 맞이한다.그는 법정에서 7년형을 선고 받고 4년 8개월째 복역중 1987년 사면조치로 감옥에서 풀려나게 되지만 그의 몸과 영혼은 온갖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교단에 다시 서고 싶다는 꿈이 실현되어 공립인 군산서흥중학교에 복직하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1989년 전교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다시 해직교사의 길을 걷게 된다. 1992년 12월 1992년 12월 위암으로 투병 중 운명했다. 시집으로 ‘대밭’ ‘목숨을 걸고’ ‘수선화’가 있다./안도현(시인ㆍ우석대교수)
△ 소년문학 7·8여름방학 마무리로 ‘춘천인형극제2004’의 추억들을 엮었다. 시골 사는 태영이의 ‘서울 나들이’와 남북통일과 ‘북한 친구 얼굴 그리기’를 관련시킨 나라의 글처럼 동심을 깨우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소년문학사 펴냄/4천원 △ 사회교육 수시학습 교재반봉건·반외세·반부패를 외치며 들풀같이 일어난 민초들의 역사. 지난 5월 개관한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 동학농민전쟁의 지역성과 연구, 계승사업의 현황과 향후 과제 등 동학농민혁명 기록들을 엮었다. 동학농민혁명기념관 펴냄△ 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잘못 쓰는 말글, 번역문투, 외래어와 외국어 문제, 남북 말글 이어주기, 말글 순화, 땅 이름, 어문정책 등 우리 말글 제대로 쓰는 324가지 방법. 8명의 우리말 전문가들이 2002년부터 한겨레신문에 연재했던 글. 한겨레신문사 펴냄/1만3천원△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단편소설 1·2타고르, 셀마 라게를뢰프, 파울 폰 하이제, H. 시엔키에비치, 카를 겔레루프, 크누트 함순 등 1905년부터 64년까지 세계문학의 큰 흐름을 이뤄낸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들의 단편들을 모았다. 일송미디어 펴냄/각권 8천7백원, 9천원
아중문화의집이 독서습관을 기르고 그림책을 통해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엄마와 함께 하는 올챙이 책마을’을 연다.‘알록달록 동물원-내가 누굴까?’ ‘울퉁불퉁 매끌매끌-만져봐요’ ‘누구야, 누구-엄마찾기’ 등 오감을 자극하는 그림책과 체험이 어린이들의 호기심과 창의력을 키운다. 3∼4세 어린이(A반 9월 6·13·20일, B반 9월 9·16·22일)와 5세 어린이(9월 6·13·20일)를 대상으로 오전 10시 아중문화의집 2층 도서관에서 진행된다. 20일부터 각반 5쌍씩 선착순 모집하며, 참가비는 1만원이다. 문의 063) 241-1123
전북대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기초반 김정근씨(59)가 격월간 좋은문학 2004년 8·9월호 신인상을 수상했다.당선작은 ‘수박’ ‘여보, 나 방구뀌었어’ 등 두 편. 체험을 바탕으로 한 일상적 소재를 미적으로 승화시켜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다. 제일공사청주관리소장으로 정년퇴직한 김씨는 “문학과는 거리가 먼 직업에 종사하면서 가슴에 쌓인 삶의 흔적들을 내 글로 토해내고 싶었다”며 “그 꿈을 이뤄 한없이 기쁘다”고 말했다. 서원대 평생교육원 문예창작과정을 이수한 김씨는 전북대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기초반에서 수필을 공부하고 있다.
“지금껏 나는 나를 ‘전쟁시인’이라고 소개해 왔어요. 전쟁과 나를 소재로 한 존재문학을 해왔다면, 이제는 시간도 흐르고 여유도 생겨 생활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려고 합니다.”“여태 묵혔던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고 69수를 마무리하고 싶었다”는 이목윤 시인(69)이 네번째 시집 ‘지리산 연가’를 펴냈다.한국전쟁이 끝나고 60년 공병 소위로 임관해 근무하다 훈련 중 부상을 입게 된 이씨에게 전쟁은 비켜갈 수 없는 작품의 중요한 소재. 그동안 발표해 온 세 권의 시집에서 전쟁에 대한 날카로운 고발을 담았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80·90년대 썼던 자연주의와 낭만주의 시들을 엮었다. “예전에 썼던 시들을 골라내고 손질하는 게 더 어렵더군요. 소설가를 꿈꾸며 공부했던 영향인지 시가 비교적 숨이 길어요.”‘지리산 연가’ ‘영동기행’ 등 이씨는 주로 연작시들을 내놓았다. “한 편 가지고는 성이 안 풀린다”고 말하지만, 모두 대상에 대한 끈질긴 관찰과 고민 끝에 탄생한 작품들이다. 2000년 이후 작품들은 12월쯤 발표할 계획. 단편소설집도 준비하고 있다.“자연과 인간, 영혼은 결국 하나”라고 말하는 시인은 “내가 어디로 귀의할 것인가”라는 인생문제를 담은 시를 쓰고싶다고 했다.전주대 국문과를 졸업한 이씨는 90년 ‘월간 한국 시’를 통해 등단했다. 한국예술총연합회장상과 한국전쟁문학상·전북예술상 등을 수상했고, 한국문인협회 이사와 한국전쟁문학회 이사, 문예가족·두리문학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형적인 현모양처 스타일의 ‘서인숙’, 성을 맛있는 음식 정도로 생각하는 자유분방한 ‘주상희’, 그리고 현모양처가 될 수 있었지만 환경에 의해 성의 문란한 영역에 빠지게 된 ‘오명혜’.‘행복이란 좋아하는 사람과 한 이불 속에서 나와 커피를 마시며 조금 쑥스럽게 씩 웃는 것’. 그러나 세 여자와 나누는 ‘아랫도리의 행복’은 순간적일 뿐 지속적인 따뜻함이 없다. 현대사회에 분명 존재하고 있는 세 여자의 삶이 한 남자 소설가의 시각으로 펼쳐진다. 소설가 형문창씨(56)의 장편소설 ‘여자이야기-아랫도리의 변증법, 혹은 변명’.“성은 현재 우리 사회의 심각한 이슈라고 생각해요. 은밀한 성을 중심으로한 세 여자와 한 남자의 관계를 통해 성적인 쾌락에 탐닉하면서도 정신적 공황에 허덕이는 현대인들을 모습을 담고싶었습니다.”형씨의 첫 장편소설이기도 한 이번 작품은 계간 ‘문예연구’에 연재했던 것. 그는 “‘여자이야기’가 도식적이고 상투적일 수도 있지만, 한번은 꼭 하고 싶고 반드시 해야 할 이야기였다”고 말한다.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20여년간 교단에 섰던 그는 1999년 소설에 전념하기 위해 전업작가로 변신했다. 교직에 대한 약간의 미련 덕분에 소설 쓰기에 더 치열하게 매달릴 수 있었다. “특별한 소재에 집착하지 않고 사회의 전반적인 분야를 다양하게 다루고 싶다”는 그는 종교적인 소설을 준비하고 있다. 신앙소설은 인간성과 생명의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지점이다. 남원에서 태어난 형씨는 현재 전북문인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월간순수문학신인상, 표현문학상 등을 받았으며, 지난해 소설집 ‘엉클린 머리를 비다듬다’를 발표했다.
조선후기 농민들의 삶이 괴로웠다는 사실은 주지하는 바이다. 계속되는 자연재해, 이로 말미암은 흉작,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어만 가는 각종 세금, 이런 환경 속에서 농민들의 처지는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열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세금은 농민들에게 가장 괴로운 부담이었다. 이 점은 매매문서인 명문이나 진정서인 소지들을 통하여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세금 외에도 농민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경제적 부담도 감당해야 했다. 예를 들어 신임 사또가 왔을 때 벌이는 잔치 경비도 그들 몫이었고, 또는 자기가 사는 고을에서 만약 살인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사인(死因)을 밝히기 위해 실시하는 검시(檢屍) 비용 역시 피할 수 없는 족쇄였다. 특히 이 검시 비용을 둘러싸고 수령이나 아전, 그리고 힘 있는 자들이 부리는 농간(弄奸)은 한마디로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어느 고을에서는 검시할 때 백성들로부터 거두어들이는 명목이 무려 90여 가지가 넘는 예도 있었다. 그 중 몇 가지 특이할만한 항목을 들어본다면 다음과 같다. 즉 죄인 호송한 자들 및 길 안내한 자들에게 주어야 하는 급여, 이들이 먹고 마시는 밥 값 및 술 값, 시신 운반할 때 이용한 말과 그 말을 몰았던 마부 일당, 그리고 그 말의 먹이 값, 검시보고서 작성할 때 사용한 종이 값, 검시 과정에 참여한 자들이 피우는 담배 값, 시신 운반비 등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이러니 살인사건이 나도 보고조차 하지 않은 사례도 적지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물론 이러한 부담은 어느 한 사람만의 것은 아니었다. 마을 주민이 공동으로 부담해야 하는 일종의 공동납(共同納) 형식이었다. 그러니 만약 자기가 사는 마을에서 일년에 두 어 차례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면 모든 것이 거덜 나지 않을 재간이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조선후기에 들어와 수백 년 살던 정든 고장을 버리고 이리 저리 떠돌며 걸인(乞人)생활을 하는 자들이 왜 그렇게 많이 발생했는지 또 하나의 이유를 여기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정부에서는 이들을 잡아 여비까지 주면서 어서 어서 집으로 돌아가게 하였지만, 한번 고향을 등진 자들이 다시 고향을 찾은 예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모두 다 견뎌내기 힘든 경제적 부담 때문이었던 것이다. 얼마 전 조선시대의 법의학 지침서인 '증수무원록언해(增修無寃錄諺解)'이라는 책을 소개하며 조선시대의 법의학이 매우 과학적이었다는 말씀을 한 분이 있었다. 그 분은 조선시대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반드시 두 번 검시를 하였는데, 이것은 “백성들의 원통함을 없게 함이 어진 정치의 기본이라 여기는 위민(爲民)사상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하였다. 억울한 죽음의 원인을 밝혀내고자 한다면 두 번이 아니라 세 번이라도 그 누가 뭐라 하겠느냐 만은 한 번의 검시에 무려 90여 가지나 항목을 들어 백성들의 주머니를 털어간다면 그 누가 진실이 밝혀지기를 원하였겠는가.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가장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는 교훈을 얻자는 데 있다. 과거의 잘못된 일을 보면서 다시는 그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 진정한 역사의 교훈이다. 사회의 악을 물리치는 일에 참여하도록 만들고 싶다면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 범죄 신고를 해서 범인을 잡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사람을 오라 가라 하는 것은, 신고자의 처지를 감안한 처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송만오(전주대 문화콘텐츠학부 겸임교수)
“영남과 호남을 아우르는 영호대접주로 활동했던 김인배는 동학의 10대 지도자 안에 들 정도로 비중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업적에 비해 우리 역사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묻혀있었던 것이 늘 아쉬웠어요.”동학농민군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통과로 110년만에 재평가되고 있는 동학농민혁명. 동학농민혁명 연구에 몰두해 온 이이화 사단법인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67)와 우윤 전주역사박물관 관장(49)이 사료 속에 단편적으로 남아있던 김인배의 삶을 추적했다. ‘대접주 김인배, 동학농민혁명의 선두에 서다’. 금구현 하서면 봉서마을, 지금의 김제시 봉남면 화봉리가 고향인 영호대접주 김인배(1870∼1894)는 25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역사적 삶을 살아왔다. 손화중 휘하에서 출발, 전쟁을 치르는 동안 김개남 측근에서 활동하며 남원 이남을 맡았다. 그가 중심이 된 영호도회소는 동학농민전쟁사에서 다른 지역과 연대한 유일한 조직이었고, 전봉준의 주력군이 우금치에서 패퇴한 뒤에도 최후까지 전투를 벌이다 처형당했다. “김인배는 죽음을 앞두고 처남과 같이 있었는데, 처남은 고향으로 피신시키면서도 자신은 끝까지 남아 싸우다 처형당했죠. 그런 점만 봐도 얼마나 책임감이 강한 인물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죠.”두 저자는 김인배 고향에서 살고있는 후손들과 지역민들의 증언, 사료총서·김제지역 자료들·일본 신문기사 등 문헌기록과 현장답사 등을 통해 그의 윤곽을 그려냈다. 역사적 활동은 물론, 인간적 측면도 담아냈다. “농민전쟁 관련 특별법이 통과되면서 우리가 해야될 중요한 일 중 하나가 농민군을 밝혀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는 작업입니다.”우관장은 “농민군 관련자료가 부족하다는 것이 항상 난점이지만, 특별법 관련 위원회가 구성되는 9월부터 본격적으로 농민군 개인을 조명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엄마란 어떤 존재일까. 작가는 ‘늘 곁에 있지만 무심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어느 어머니나 희생과 사랑으로 자식을 키우지만 자식들은 그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죠. 그리고 나중에 그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야 얼마나 소중했던 것인가를 알게 됩니다.”정읍 출신 방송작가 고혜정씨(36)가 최근 펴낸 ‘친정엄마’(함께)는 시집간 딸이 엄마에게 바치는 헌사다. 결혼한 딸이 아이를 낳고 살면서 문득 문득 엄마의 사랑을 깨닫는 순간, 그때마다 생각나는 추억들을 촘촘하게 엮은 이 책은 작가의 체험이 고스란히 배인 한편의 비망록과도 같다. 이 책속에 그려진 엄마의 모습은 때로는 애잔하고 눈물나게 하다가도 웃음 터뜨리게 하는 다양한 풍경이다. 그 풍경들은 이 세상의 모든 딸들이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 그대로다. 그러니 낯설지 않은 친숙함이 절로 고개 끄덕이게 하는 대목은 적지 않다. 한달 용돈타러 고향집에 다니러 온 딸에게 ‘콩나물 이백원어치 살라믄 백오십원치만사고, 두부도 반모씩 사다 먹으면서 라면봉지에 모은 동전’을 “아무리 먹어도 허기진 것이 객짓밥인디 오죽 허겄냐”며 쥐어주는 엄마. 서울로 딸을 보낸후로는 “내 새끼 좋아하는 반찬은 안 히먹었다”는 엄마. 시집보낸지 10년이 다되어가지만 아직도 김치며 밑반찬을 바리 바리 싸서 보내는 엄마를 되레 많이 보냈다고 타박하는 딸에게 “딸은 말이여, 주고 자픈 도둑이여”라고 말하는 엄마. 집안 기운다며 결혼 반대하는 시집쪽에 당당하게 딸을 내세우는 엄마. 분만대기실 앞에서 발만 동동구르며 “엄마 여기 있다”며 대신 아퍼줄 수 없어 눈물 흘리던 엄마. 동네 사람들이 모두 재미있게 보는, 딸이 쓴 프로그램을 얼마나 고생하며 썼을까를 생각하며 차마 TV를 못본다는 엄마. 신부님께 고해성사하고도 딸이 고생하는 듯 싶으면 주저없이 점집에 가서 듣고온 좋은말만 전해주고 또 고해성사하는 엄마. 이 책 속 작가의 엄마는 약속이나 한듯이 그렇게 ‘나’의 엄마가 되어 마음을 붙잡는다. 배운 것 없어 딸에게 기역니은은 가르치지 못했어도 어디에도 비할데 없이 큰 사랑과 희생을 주는 엄마가 어디 책속의 엄마 뿐 이겠는가. 작가의 의도도 그 지점에 맞닿아 있었던 모양이다. “어느날 친정나들이를 갔다가 엄마가 마당에서 넘어지시는 걸 봤어요. 정말 충격이었죠. 우리엄마는 늘 젊고 건강한 줄 알았는데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엄마가 너무 늙고 초라해져 있음을 느꼈던 겁니다.”'아, 나에게도 효도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엄마가 내 곁을 곧 떠나게될지도 모르겠구나'하는 생각에 많이 울었다는 고씨는 영원한 내 편인 엄마가 우리곁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세상의 딸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고 밝혔다.일상적인 일들을 맛깔스럽게 써내려간 이 책의 미덕은 작가의 만만치 않은 필력에 맞닿아 있지만 무엇보다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 잡는 것은 따로 있다.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한번도 말하지 않아서, 언제나 외롭게 해서, 늘 내가 먼저 전화 끊어서 미안하다’는 작가가 들려주는 말. “늘 미안한것 투성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미안한 건 엄마는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데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건 엄마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세상의 어느 딸도 고개 끄덕이지 않을 수 있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다 보니 좀 부끄럽기도 했다”는 작가는 방송작가 15년차. MBC 일요일 일요일밤의 '인생극장' "그래 결심했어" 코너와 KBS 농촌시트콤 '금촌댁네 사람들'을 쓴 작가다.
나무(木)에서 긴 가지(一) 끝이니 끝 말(末)나무(木)에서 짧은 가지(一)니 아직 자라지 않았다는 데서 아닐 미, 아직 ~않을 미(未) <참고> ①末 끝 말 (end) 結末(결말) 일을 맺는 끝. 끝을 맺음. 本末(본말) ㉠일의 처음과 끝. ㉡사물의 근본과 대수롭지 않은 일.* 端(끝 단, 바를 단), 結(맺을 결), 本(근본 본)<본말(本末)이 전도(顚倒)되다> 이 말은 일의 순서가 잘못 바뀌거나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이 구별되지 않은 상태를 이르는 말이에요. 학생이 공부하는 것보다 노는 것에 열중하는 것도 본말이 전도된 것이지요. * 顚(꼭대기 전, 넘어질 전), 倒(넘어질 도)②未 아닐 미, 아직 ~않을 미 (no, not ~yet) <가능성이 있어서 좋은 未> 세상에 '아닐 미, 아직 ~않을 미(未)'보다 더 좋은 말이 또 있을까요? 이 ‘미(未)’자는 가능성이 있어서 좋아요. 그래서 이 ‘미(未)’자는 ‘아닐 불(不)’이나 ‘아닐 막(莫)’처럼 완전부정사로 해석해서는 안되고 가능성을 두어 '아직 ~ 아니다'로 해석해야 하지요. 예를 들어 '미완성(未完成)'을 ‘완성이 안된 것’보다 ‘아직 완성이 덜된 것’으로, '미성년(未成年)'을 ‘성년이 아닌 것’보다 ‘아직 성년이 덜된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 完(완전할 완), 成(이룰 성), 年(해 년)<본 란의 학습요령> 순서대로 읽으며 이해한 다음, 제목을 중심으로 외고, 제목을 보면서 각 글자의 어원과 쓰인 예까지 떠올려 보십시오.
나무(木) 위의 과일(田)을 본떠서 과일 과(果) 또 과일은 그 나무를 알 수 있는 결과니 결과 과(果) * 田(‘밭 전’이나 여기서는 과일의 모습)나무(木)에 아침 해(日)가 걸려 있는 쪽이니 동녘 동(東)나무(木)를 다발로 묶어놓은 모습(口)이니 묶을 속(束) * 口(‘입 구, 말할 구, 구멍 구’나 여기서는 묶어놓은 모습<참고> ①果 과일 과, 결과 과 (fruit, result) * 열매를 보면 그 나무의 좋고 나쁨을 알 수 있지요. 나무(木) 위에 과일(田)을 본떠서 ‘과일 과(果)’고, 또 과일은 그 나무를 알 수 있는 결과라는 데서 ‘결과 과(果)’도 됩니다.果實(과실) 먹을 수 있는 나무의 열매. 成果(성과) 일이 이루어진 결과. 因果(인과) 원인과 결과. * 實(열매 실), 成(이룰 성), 因(말미암을 인, 의지할 인)②東 동녘 동 (east) 東問西答(동문서답) ‘동쪽을 물으니 서쪽을 답함’으로, 물음에 전혀 엉뚱하게 대답함을 이름. 東奔西走(동분서주) ‘동쪽으로 달리고 서쪽으로 달림’으로, (일을 처리하기 위하여) 사방으로 바삐 돌아다님. * 問(물을 문), 西(서녘 서), 答(답할 답), 奔(달릴 분), 走(달릴 주)③束 묶을 속 (bind)束縛(속박) 몸을 자유롭지 못하게 얽어맴. 約束(약속) ‘묶고 묶음’으로, 장래 일을 언약하여 정함. * 縛(묶을 박), 約(묶을 약)
전주공예품전시관(관장 백옥선)이 상품지원 담당자(남·1명)와 샵매니져(여·1명)를 채용한다. 상품지원 담당은 28세 이상으로 홈페이지와 쇼핑몰 관리가 가능해야 하며, 샵매니저는 28세 이하 미혼으로 전문대 이상 졸업 및 공예전공자를 우대한다. 1차 서류전형 합격자에 한해 2차 면접을 치른다.27일까지 전주시 교동 공예품전시관으로 제출서류(이력서·자기소개서·주민등록등본·최종학교졸업증명서·신용조회서·경력증명서)를 접수하면 된다. 문의 063) 285-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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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근 의원 제기한 전북문화관광재단 본부장 심사 개입 의혹…법률상 '위법 사항 없음'
삭감된 예산에 뿔난 지역예술인, 반면 전북예총·전북민예총은 '무덤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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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 선율에 취하다, '시조와 가곡으로 듣는 우리 소리' 공연
전북특별자치도 콘텐츠융합진흥원 입주기업 ‘아가미림’, OTT 시장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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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 미소능력개발센터, 방화선 선자장 홈페이지와 쇼핑몰 제작 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