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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택의 알쏭달쏭 우리말]남·북 언어는 모두 한국어

서울을 중심으로 한 남한에서 사용되는 언어도 한국어이고, 평양을 중심으로 한 북한에서 사용되는 언어도 한국어다.금강산을 오르는 남한 관광객들은 북한 안내원과 의사를 소통하는데 거의 어려움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북의 한국어와 남의 한국어가 완전히 균질적인 것은 아니다. 오래 전부터 있던 방언적 차이 외에 한반도에 실질적으로 두 체제가 존재해 온 지난 반세기 남짓 동안 남과 북의 언어는 적잖은 이질화를 겪었다.그 중에서 김일성 부자의 우상화를 노린 북한의 '우상화 언어'가 우리들의 거부감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보숭이'라는 말을 응용해 아이스크림에 '얼음보숭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 준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북한은 우리말을 지키고 살려 쓰기 위해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데, 이런 노력은 모든 것을 떠나 높이 사 줄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그 중에서 외래어에 대응해 만들어 낸 말 가운데 듣기만 해도 재치가 느껴지는 귀엽고 예쁜말 몇 가지만 소개한다.(브래지어→가슴띠, 칼라(collar)→목달개, 깃받이·부츠→목달이 구두, 원피스→달린옷, 투피스→나뉨옷, 도넛→가락지빵, 카스텔라→설기과자, 젤리→단묵, 시럽으로 된 약→단물약, 볼펜→돌돌붓, 피스톤→나들개, 스위치→여닫개, 롤러→굴개, 스크랩→오려붙이기, 후프(hoop)→돌림틀, 셀로판지→빨락종이, 로터리→도는네거리, 모자이크→쪽모이, 상들리에→무리등, 탬버린→방울북)하나같이 원래의 뜻을 다치지 않으면서도 말맛을 제대로 살려내고 있잖은가.외국어의 직수입에 분별력을 잃은 우리들로서는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 문화일반
  • 전북일보
  • 2004.06.03 23:02

최명희 문학관 건립 탄력

예산을 확보해놓고도 건립부지 문제로 어려움을 겪던 전주시의 최명희문학관 건립사업이 최근 새로운 장소를 확보하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 전주시가 문학관 건립지로 확보한 곳은 전주한옥마을 내 옛 BYC 건물(중앙초등학교 뒤) 부지. 전주시 풍남동 3가 74-11, 74-12, 67-5, 67-11 번지 등 9필지이며, 모두 9백5평이다. 문학관은 3백여평 규모로 건립될 예정. 토지소유주가 부지 전체 매입을 요구하고 있어 현재 협상 절차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주시는 최명희문학관의 부지로 5백9평을 먼저 매입하고, 추후 예산을 편성해 3백95평을 추가로 매입, 문화공간 등으로 활용방향을 모색중이다. 혼불기념사업회(위원장 두재균)와 유족들도 환영하는 분위기다. 전주시의 입장에서도 올해까지 사업을 시작하지 못하면 확보된 국비를 반납해야 하기 때문에 사업 추진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전주시는 대하소설 '혼불'의 작가인 故 최명희씨의 문학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출생지인 전주시 풍남동 한옥마을 일대 3백여평에 12억원(국비 3억원 시비 9억원)의 예산으로 한옥 형태의 문학관을 짓기로 했지만 건립예정 부지였던 최명희생가터 일대의 토지가격이 전체 예산을 웃돌아 부지선정에 줄곧 어려움을 겪어왔다. 문학관에는 최씨의 출생과 성장이 그대로 담긴 작가의 방과 영상자료실, 문인쉼터, 자료실, 세미나실 등이 마련되고 작가의 방에는 최씨가 생전에 사용했던 서재와 도서, 원고, 필기도구, 애장품 등이 비치될 예정이다.

  • 문화일반
  • 최기우
  • 2004.06.02 23:02

[문화마주보기]구로사와 아키라 회고전

헤세는 깨달음의 소설『싯다르타』를 썼고 베르톨루치는 자금성의 <마지막 황제>를 제작했다. 대만출신 감독 이안은 19세기 영국을 담은 <센스, 센서빌리티>를, 새파란 소설가 히라노는 중세 유럽을 담은일식』을 쓰지 않았던가. 이렇듯 동과 서는 서로를 그리워하여 받아들이고 표현한다. 모네가 도자기를 쌌던 포장지에 그려진 일본 목판화(우끼요에; 浮世畵)에 영감을 받고 인상파 시대를 연 것처럼. 창포가 고운 5월말, 전주 시네마테크에서 구로사와 아키라 회고전이 열렸다.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라쇼몽>이 서방에 일본영화가 최초로 얻어낸 그랑프리였다는 것을 누가 모르랴. <7인의 사무라이>는 에이젠슈타인 풍의 웅장함, 헐리우드 영화의 빠름을 다 갖춘 고수의 솜씨임을 확인한 바지만, 동안 VTR로도 보지 못했던 세 편의 영화를 보았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것이 아니기에. 일본 노오(能) 드라마적인 무대와 연기 형식을 빈 <거미집의 성>. 하얗고 긴 얼굴의 여인이 기모노 입은 채 종종거리고 걷는 모습은 우끼요에의 이미지 그대로였다. 그는 동구 작가주의 감독처럼 관객의 인내를 요구하지도 않고 복잡한 방법의 의사소통 아닌 기승전결의 내러티브를 갖는다. 볼 만하다.패전 직후를 다룬 <들개(1949)>는 숏과 숏이 너무 정교해 리얼리티가 떨어질 정도. 배경음악인 줄 알았는데 부잣집 여인의 피아노 치는 사운드에, 아하 하고 무릎을 쳤다. 클럽 댄서들의 피곤에 절은 다큐적인 화면을 보면서 아버지 세대의 쓸쓸함과 가난을 새기고. 비토리아 데시카가 만든 <움베르토>의 퀭한 이탈리아 노인의 눈보다 훨씬 재미도 있었고 실감이 났다. 원폭 만화『맨발의 겐』장면들이 씨줄을 이루고 구로사와의 화면이 날줄을 이루어 전쟁전후의 그물망이 한층 촘촘해진 느낌이다. 타인의 생각을 읽는 가치경험의 시간, 행복했다.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은 심하게 '비 내리는' 16밀리 화면이었다. 루카스에 의해 <스타워즈>의 인물 모델로 다시 살아난 것을 보면 '영화의 학교'는 얼마나 적확한 표현인가? 후반부 불꽃 축제 장면은 일본인의 역동적인 춤과 노래를 보여준다. 문학 아닌 영화가 잡을 수 있는 세계인의 공통된 기호로 춤과 노래라 할 때, 우리 영화에 이런 장면이 있을까 싶어 안타까웠다. 그래도 <서편제>의 진도아리랑 돌담 신만이 춤과 노래가 깃든 원 컷 원 신의 역동성이라는 점에서 임권택의 고독에 존경과 위로를 보낼 이유를 헤아릴 수 있었다. 부드러운 바람이 피워 올리는 꽃창포로 천변이 아름답다. 악동 타란티노의 화끈한 영화 <킬빌1>에서 우마 서먼이 입은 트레이닝복 빛깔. 칸에서 타란티노가 <올드보이>를 화끈히 띄우고 박찬욱이 감독상까지 받았다는 뉴스가 꽃처럼 반갑다. 존포드와 루카스가 구로사와에게 배우고 박찬욱은 히치콕이 영화의 길에 들어서게 했단다. 동과 서는 이제는 이제 교직을 넘어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펼치는 중이니, 한국영화에도 '싸부' 한 분 나올 때가 되었다.전주 시네마테크는 부잣집 홈씨어터 만하지만 문제는 사이즈가 아니다. 이제 밤꽃이 후끈 피어날 것인데 그 냄새를 잠재울 또 다른 작가의 회고전을 기대한다. /신귀백(영화평론가)

  • 문화일반
  • 전북일보
  • 2004.06.02 23:02

초심으로 녹아든 젊음의 첫발

‘처음’은 언제나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 나를 전부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더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버렸다. 지금까지 차곡차곡 쌓아온 것들을 세상 속으로 들고나온 두 명의 젊은 작가. 젊음 하나 만으로도 그들의 첫 발걸음은 경쾌하다. 3일까지 전북예술회관. △ 정하영 ‘공간의 은유’“그동안 개성있는 작품을 하지 못했어요. 나만의 색깔을 가지고 싶었고, 내 마음대로 해도 이해받고 싶었지요. 그렇게 찾아낸 것이 설치입니다.”공간 안에 시간이 공존하는 ‘공간의 은유’를 열고있는 정하영씨(29). 기발한 상상과 독특한 개성이 묻어나는 작품들은 과거와 현재의 갈등, 현재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미래를 보여준다. ‘무엇이든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 탓에’ 10년 동안 모은 상표와 렌즈 용품들도 작품의 재료가 됐다. “장르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것이 요즘 미술의 흐름이지만, 나의 근본인 한국화의 성향은 버리지 못할 것 같아요.”종이와 먹, 민화적인 소재 등 그의 작품에는 한국화의 기운이 흐른다. 그는 설치를 통해 원하는 것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것을 배울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전북대에서 한국화를 전공했지만, 동 대학원에서는 조소를 선택한 것도 자유로운 표출을 위한 작가의 노력이다. △ 이희종 ‘한 기운’“‘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는 문구에 끌려 스무살 때 원불교를 선택했지요. 처음에는 학문적으로 접근했지만, 지금은 작품 속에 신앙이 들어있어요.”세상 모든 것에 기운이 서려있다고 믿는 이희종씨(30). 우주만물이 하나의 기운으로 만난다는 것을 주목한 이씨는 빗방울이 떨어졌을 때의 둥근 원과 원불교의 ○을 ‘한 기운’의 형태로 생각했다.“수행이라 생각하고 작품 속에 정신적인 안정을 담고 싶어요. 작년부터 집중적으로 한 작품이라 규격화되고 비슷한 경향을 보이지만, 종교적 색채를 유지하면서도 다양함을 담고싶어요.”평면적으로 보이지만 입체적이고, 단색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무한한 색이 담겨있는 이씨의 작품은 반복적인 형태로 편안함을 전한다. 한지와 아크릴이 주재료로 사용된 작품들은 캔버스에 뿌려진 아크릴과 한지의 독특한 재질이 어울려 밝은 느낌을 내고있다.원광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4.06.02 23:02

전북무용 새지평 연다

제18회 전북무용제가 3일 오후 7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열린다. 현대무용 2팀, 발레 1팀, 한국무용 1팀 등 다른 해에 비해 외국무용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올해 무용제는 대학에 재직 중인 교수들의 노련함과 젊은 춤꾼들의 참신함이 만나는, 전북 무용의 미래를 짐작할 수 있는 자리다. 올해는 시상과 상금을 대폭 늘렸다. 최우수상 1팀에서 대상·최우수상·우수상·장려상 각 1팀으로 시상을 늘리고 개인 무용수를 위한 연기상을 신설했다. 대상(전라북도지사상)에게 창작지원금 1천만원을 수여하고, 출전팀 모두에게 격려금 1백만원을 지원하는 등 지역 무용 발전을 위한 투자도 아끼지 않는다. 무용제를 주관한 한국무용협회 전북지회 김숙 회장은 “30분 정도의 작품을 창작한다는 것은 그대로가 노력과 실력이 요구되는 작업”이라며 “실력있는 안무가들의 참여로 대회와 지역 무용계 수준이 함께 성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북대 손윤숙 교수 발레단은 계절과 인간을 접목시킨 ‘雨林의 사계’를 공연한다. 전북대 이혜희 교수의 대본에 손교수가 정통발레를 기초로 안무했다. 숲 속의 사계를 연기하는 이 무대에 손교수도 직접 오른다. “제자들이 테크닉이 좋아 난이도가 있는 봄·여름·겨울을 연기한다”고 소개한 손교수는 연륜이 묻어나는 감성과 표현력으로 가을에 짙게 배어나는 쓸쓸함과 고독을 담아낸다. 1997년 전국무용제에서 우수상과 연기상을 수상했다.우석대 양순희 교수가 이끄는 ‘청호무용단’은 힘든 세상살이로 붉은 태양이 검게 변한 ‘Black Sun’을 올린다. 현대인들의 지친 삶과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다.양교수는 “마임을 도입하고 온 몸에 검은 천을 두르고 발로만 춤을 추는 등 현대인의 내면을 드러내고 무용 속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기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고 소개했다. 명확한 주제 전달을 위해 테크닉 보다 연기가 뛰어난 무용수들이 출연한다. 현대무용의 폭을 넓혀 종합예술을 추구하는 청호무용단의 색이 또렷하게 묻어나는 무대다. 2000년 전국무용제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중견 안무가들 사이에서 젊은 안무가들의 도전도 의욕적이다. 지난해 전북대표로 출전, 전국무용제에서 은상을 수상한 ‘C·D·P 무용단’은 소중한 추억들이 들어있는 기억창고의 공간을 열어나가는 현대무용 ‘기억창고’를 발표한다. 변질되고 희미해져 가는 기억들의 재생이 불가능함을 깨닫게 되는 안타까운 몸짓이다. 지난해 춤과 사람들 ‘젊은 작가전’에 참가, 우수안무가상을 수상한 최재희씨가 안무를 맡았다. 출연자 수는 적지만 힘있는 무대를 전한다. 일상에서 발견한 소재들을 사회적 문제로 연결시켜온 ‘류 무용단’은 ‘혼령의 제(祭)’를 소개한다. 전주 출신으로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안무가 유영수씨의 경험을 과장시키고 각색해 이미지화 시켰다. 할머니의 죽음으로 느끼게 된 영혼에 대한 생각들을 상여 나가는 장면, 제사 지내는 장면 등으로 재현하고 사실적인 소품을 이용해 연출했다. 제(祭)를 통해 부정적인 것들을 풀어내는 의식적인 춤이다. 전북무용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팀은 9월 8일 대전에서 열리는 제13회 전국무용제에 전북대표로 참가하게 된다. 시상식은 공연이 끝난 후 현장에서 진행된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4.06.02 23:02

[문학기행]채만식의 ‘탁류’를 찾아서

나는 오늘 군산에 간다. 군산을 생각하면, 눈앞에는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떠오른다. 길가에 구름송이처럼 화사하게 피어난 벚꽃은 보는 이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월명 공원의 벚꽃은 시내보다 일주일 정도 늦게 피는데, 그 꽃들은 길가를 빗겨 산 위 나무들 속에서 피어 그런지 그 자태가 한결 맑고 고우며 마치 부끄러운 새색시 속살 같이 뽀얗다. 아득하게 하늘 가득 피어있는 꽃잎들이 나풀거리며 쏟아지는 모습을 보면 왜 그렇게 슬프고 가슴이 아리던지……. 어떤 작가는 그 모습을 보고, ‘하늘은 흩날리는 꽃잎으로 아슴해지고 사람들의 심경도 혼미해진다’고 했다던가. 군산 가는 길엔 설레임과 함께 조금은 가슴을 누르는 듯한 이름 모를 애처로움도 함께 따른다. 천지에 가득했던 꽃잎들은 어디론지 사라지고, 오월 하순경의 군산은 신록에 휩싸여 있다. 연푸른 초록에서 짙푸른 녹색으로 치장한 나무들은 어느새 꽃잎들을, 그 꽃들의 세월을 잊고 있다. 군산의 오월은 채만식의 ‘탁류’가 시작되는 계절이기도 하다. 군산은 100여년 전 부근 평야지대의 쌀을 수탈하기 위해 일본에 의해 개발된 항구다. 항구 주변에는 쌀을 쌓아두던 창고며 ―그 일대는 지금도 쌀을 저장하는 곳이라는 뜻으로 장미동(藏米洞)이라 불린다―, 쌀을 사고 팔던 미곡상, 현물없이 쌀 시세의 등락을 이용하여 쌀을 사고 팔던 미두장, 그곳의 돈이 모이던 은행이 있었다. 쌀이 나는 땅과 땅에서 나는 쌀과 쌀을 팔아 생긴 돈이 모두 이곳을 통해 일본으로 흘러들었다. 먼저 채만식문학관이 있는 금강하구둑을 향했다. 금강 주변에는 갈대가 푸르고, 이미 꽃잎을 떨군 유채의 씨앗이 영글고 있다. 그 곁엔 행복해 보이는 부부들, 다정한 연인들, 한가로운 노인들, 개를 데리고 노는 아이들도 보인다. 가끔 하얀 갈매기들이 강 위를 스칠 듯이 날았다 솟아오르곤 하는 모습이 보였다. 문학관은 하구둑에서 군산 시내 쪽으로 가는 길에 있다. 군산 시내에 있던 문학관을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강가에 외롭게 덩그러니 서있는 문학관은 망각의 강에서 버티고 있는 작가 채만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채만식의 ‘탁류’는 금강 미두장에서 시작되고 있다. 문학관에서 서쪽을 보면 건너다 보이는 강의 에돌아가는 부분이 미두장이 있던 째보선창이다. 오월 오후 째보선창의 여객터미널에는 크고 작은 배 몇 척이 떠 있다. 바다쪽으로는 횟집과 생선 가게가 즐비하다. 그 옛날 붐볐던 미두장은 이제는 활력을 잃었으나, 쌀을 저장하던 창고들 중 몇 개는 가게나 볼링장 따위로 개조되고, 몇 개는 아직도 옛 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 있다. 눈앞엔 문득 강가로 뻗친 찻길과 방정맞은 기관차 소리, 내숭스럽게 낮은 소리를 내는 기선 소리 사이로 낮은 돛대를 단 크고 작은 목선들이 빽빽이 몰려들고, 준설선이 저보다도 큰 크레인을 무겁게 들먹거리며 시커먼 개흙을 파 올리던 광경이 펼쳐지는 듯 했다. 칠산바다에서 잡아온 조기며 은빛 싱싱한 준치가 번쩍이는 사이로 번지는 사공들의 아우성이며, 장사꾼의 셈하는 소리, 지게 진 짐꾼과 광주리를 인 아낙네들의 분주한 발걸음 소리도 들리는 듯 했다. ‘오늘’이 아득했던, ‘내일’이 없던 사람들이 인생을 걸고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던 미두. 마지막 밑천마저 날리고 더 이상 잃을 것도 걸을 것도 없으면서 미두장을 서성여야 했던 초봉의 아버지 정주사. 자신의 무능함 때문에 죽고 싶었고, 죽고 싶으면서도 죽지 못하고, 그저 죽고싶은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그. 입만 가졌지 손발이 없던 무능했던 아버지. 무능한 아버지 때문에, 소심했던 정주사의 큰 딸 초봉은 사랑보다는 돈을 쫓고 돈을 찾아 남자를 쫓았다. 그러나 가족을 위해 쫓았던 그 돈도 남자도 초봉을 배반했다. 초봉의 남자들인 고태수, 박제호, 장형보는 돈이 있나 싶으면 돈이 없고, 사랑이 있나 싶으면 사랑이 없고, 인정이 있나 싶으면 인정도 없었다. 마지막까지 믿었던 첫사랑마저 잃고,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죽음을 동경하던 초봉. 형보가 딸 송희를 학대하던 모습을 보고 두 눈이 벌컥 뒤집히고 분기가 치솟다 못해 독기가 오른 그녀. 갑자기 살기스럽게 포효하며 형보를 모질게(?) 때려 죽인다. 이제까지의 수동적이고 음전했전 모습에 비하면 그녀의 행동은 조금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삶의 나락으로 밀어붙이는 비정한 숙명에 분노하여 온 힘을 다하여 마지막으로 몸부림쳤던 순간이다. 그리고 그 순간 돈의 비정한 흐름에 섭쓸려 사랑도, 청춘도, 희망도 잃고 그녀는 그 흐름과 한 몸이 되어버렸다. 강물은 초봉의 깨어진 꿈과 삶이 자신 속에 묻혀있음을 아는지? 강물은 무심하게 흐르고 있다. 강물에는 바닷물이 섞인 듯, 강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끈적거리는 습기와 비린내가 섞여 있다.선창가에서 벗어나 시내로 들어서니, 그 옛날의 화려했던 큰길과 상점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러나 화려함은 빛을 바래고, 지금은 그 거리며 가게들이 왠지 좁고 옹색해 보인다. 정주사가 한참봉을 찾아 걷던 개복동과 둔뱀이(지금의 둔율동) 사이의 콩나물 고개를 지나 월명공원에 오르니, 무성하게 오른 잎들 사이로 철늦은 철쭉이 한 두 점 붉다. 철쭉이 푸르른 사이,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백릉채만식선생문학비’가 서 있다. 내려다보니, 하염없이 흐르는 강 끝에 바다가 있다. 그 강 끄트머리에서 작가 채만식은 이 나라를, 그곳에 살던 민초를, 어여쁜 초봉을 휩쓸고 간 식민자본주의의 거대한 발자취, ‘탁류’를 읽었다. 월명공원을 내려와 바다 쪽으로 향하니, 그곳에선 군장산업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멀리 중국을 향하는 바다는 트럭들이 들이부은 흙으로 몸을 뒤척였다. 백제인들의 발걸음이 잦았던 바다. 멀리 보이는 대륙엔 그들의 못다 이룬 꿈과 포부가 아직도 퍼렇게 살아 있는 듯 하다. 느리지만 도도하고 양양하게 흐르는 금강. 간간이 비행장에서 떠오른 비행기들이 커다란 은빛 새처럼 낮게 날면서 굵은 울음소리를 냈고, 트럭들도 질세라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달렸다. 강물은 여전히 무심하게 바다를 향해 흐르며 몸을 섞고 있다. 채만식의 문학세계1902년 지금은 군산시로 통합된 임피면에서 태어난 작가 채만식은 다양한 장르에 걸쳐 300여편이 넘는 글을 남겼다. 그의 문학 작품을 연구한 글이 500여편을 넘는다는 사실은 채만식이 한국현대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대변해준다. 그는 뛰어난 글쓰기의 장인이다. 그는 소설과 희곡, 수필, 동화, 시나리오, 방송대본 등 다양한 장르에 속하는 글을 썼다. 그의 작품에는 ‘놀보’나 ‘심청’ 같은 고전소설의 인물 유형이 등장하며, 판소리나 민담 형식이 전라도 방언과 독특한 부호들과 어우러져 사용되었다. 그의 글에는 전통적 글쓰기와 현대적 글쓰기, 그리고 구술적 글쓰기와 문자적 글쓰기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채만식의 문학에는 비록 현실을 변혁하려는 정열은 미약하지만, 정확하게 진단하고자 하는 이성과 판단이 있었다. 채만식은 사회주의에 우호적이면서도 사회주의자는 아니었고, 남한의 자본주의 체제를 선택했지만 비판적 시각을 유지했다. 그러한 태도 때문에, 그는 사회의 권력구조에 민감했던 당시 문단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바로 그 거리가 있었기에, 그는 당대 사회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태평천하’나 ‘탁류’, ‘치숙’, ‘미스터 방’, ‘논이야기’, ‘소년은 자란다’ 등을 쓸 수 있었다. ◎ 채만식의 대표 작품 : 소설 ― ‘태평천하’, ‘탁류’, ‘치숙’, ‘논이야기’, ‘미스터 方’, ‘소년은 자란다’ / 희곡 ― ‘제향날’, ‘당랑의 전설’, ‘심봉사’ / 시나리오 ―‘무장삼동’/윤영옥(전북대 전라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

  • 문화일반
  • 전북일보
  • 2004.06.02 23:02

[아름다운 외도]유백영씨, "관객과 하나된 무대 이미지로 담죠"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문화예술인들이 많다. 전업작가 선언의 그 날. 그러나 그 꿈은 대개 허무하다. 이 땅에서 ‘예술’과 ‘문화’의 영역만으로 사는 일은 너무 팍팍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화예술인들은 전혀 별개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외도(外道)다. 그러나 이들의 외도는 아름답다. 소설가 이병천씨의 직업은 방송국 프로듀서, 이봉명 시인은 양봉업을 한다. 화가 정진흔씨는 사과농장을 운영하고, 화가 이주리씨는 카페를 운영한다. 자신의 분야를 또다른 활동의 지렛대로 활용하는 이들도 있다. 명인·명창들은 ‘산공부’를 넘어 강단에서 제자들을 만나고, 곽병창·김정수·홍석찬·오진욱·정진권·김안나·임정룡씨 같은 연극인들은 방송인으로 활동하면서 끼를 발휘한다.전주독립영화협회장이자 중학교 교사인 조시돈씨나 대중가요 음반을 꾸준히 발표한 전북대 공대 김종교 교수 같은 이는 어릴 적부터 간직해온 꿈을 실현하는 경우다. 두갈래 길을 가는 이들에게 본업은 따로 있지 않다. 과거의 꿈과 현재의 꿈, 그리고 또다른 미래의 꿈을 위해 자신을 새롭게 투자하는 사람들. 그들의 아름다운 외도에 동행하는 일은 즐겁다. [아름다운 외도](1) 아름다운 외도 법무사이자 사진작가인 유백영씨지난 4월 동초제 심청가로 완창발표회를 연 송재영의 소리를 듣고 그는 눈물을 흘렸다. 고된 연습으로 굳은살이 배긴 목을 뚫고나오는 소리가 그의 가슴을 울렸다고 했다. 감성적이고 여릴 것만 같았다.그러나 “법원에서 20년 동안 사나움만 피우고 살았다”는 그에게는 날카롭고 꼼꼼한 면이 동시에 존재했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첫 공연부터 절정의 순간을 기록해 온 사진작가 유백영씨(50). 사각 프레임을 벗어나면 그는 법무사가 되고, 네모난 사무실을 벗어나면 그는 사진작가가 된다. 어느 한 쪽도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이중생활(?)이다.“저 사진 엄청 좋아해요. 사진도 직업 못지않게 사명감을 가지고 있어요.”법원에서 근무했던 그는 3년 전 자신의 이름을 걸고 개인 사무실을 냈다. 사진에 더 많은 시간을 내고 싶어서다. 그에게 사진과 법무는 상호보완적이다.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에서 사진은 휴식과도 같고, 법원에서 기른 사람보는 눈은 사진을 찍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가 사진을 한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1995년 남북사진작가공동사진전 대표로 뽑혔고, 지난 2000년에는 ‘얼음’을 주제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사실적인 사진들 속에서 추상적인 그의 작품을 두고 ‘독특하다’ ‘이상하다’ 등 의견이 분분했다. “다른 사람들이 찍으면 찍지 않겠다”는 평소 고집이 자신의 색깔로 확실하게 묻어났다.“교과서적인 사진은 재미가 없어요. 창작은 어차피 혼자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사진도 혼자 찍으러 다녔지요. 대상을 축소하고 집중시켜 ‘내 사진’을 찍고 싶었어요.”까다롭게 촬영 대상을 선택하는 그는 화려한 것보다 느낌이 있는 것을 좋아한다. 봉오리를 맺고있는 연꽃을 보면 ‘애기연이 엄마한테 기대고 있구나’하고, 폐교에 버려진 슬리퍼에서도 ‘그래, 나 너 좋아해’라는 따뜻한 이야기를 찾아낸다. “자연을 오래 찍다보니 새로운 소재를 찾고 싶었어요. 마침 소리전당이 개관을 했고, 운이 좋아 다양한 공연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죠.” 처음 공연사진을 찍기 시작했을 때는 무대 전체가 나오도록 무조건 크게만 찍었다. ‘공연에 방해되지 않을까’하는 걱정 때문에 좋은 장면에서도 셔터를 누르지 못하고 머리 속으로만 사진을 찍을 때도 많았다. 공연을 보는 눈은 덤으로 따라왔다. “이젠 저 사람이 공연에 몰입하고 있는지 아닌지가 느껴져요. 공연을 하는 사람과 정신적 교감을 이루지 못하면 몇 백 컷을 찍고서도 제대로 된 사진 한 장이 나오지 않을 때가 있거든요.”지난달 열렸던 ‘장사익 소리판’은 리허설부터 공연을 봐도 감이 안오는 경우였다. 본 공연 중반 ‘찔레꽃’을 부르며 서서히 양 팔을 들어올릴 때, 그는 몸과 마음으로 소리를 받아들이는 장사익을 포착했다. 기막힌 순간이었다. 동남풍 조상훈의 무대에서는 관객들을 음악 속으로 끌어당기는 힘을 느꼈고, 지난해 만난 홍신자의 춤도 인상 깊게 남아있다. 공연자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다가서야 했다. 오케스트라 연주는 무대 뒷쪽에서 지휘자의 손짓과 표정을 보며 음악을 익혔고, 낯선 곡은 미리 들어보고 가는 수고도 잊지 않았다.“처음에는 사진기가 만능인 줄 알았어요. 사진이 좋지 않으면 카메라 탓을 했는데, 더 좋은 카메라를 샀는데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죠. 사진기는 사람이 받아들이는 것의 만분의 일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이제 그는 ‘사진기는 멍텅구리’라고 말한다. 사진기가 아닌, 사진을 찍는 사람의 역할이 중요했다.“20년만 부지런히 찍으면 우리나라 예술인들은 다 내 시야를 거치게 되겠죠. 사진도 적게는 30년 정도 숙성이 필요해요. 내가 죽고나서 1백년 정도 지나고나면 사진들은 소리전당 역사가 되겠죠.”지난해 그가 촬영한 소리전당 공연만 해도 2백30여개.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이라도 관련 신문기사와 공연 내용, 팜플렛과 함께 필름을 보관해 뒀다.지금까지는 공연사진의 특성을 익히기 위한 연습이었다. 5년 후면 정말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다는 그는 빠짐없이 눈으로 문화를 기록해 나간다. 그리고 그것은 한 장의 역사가 된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4.06.01 23:02

[이제는 지역혁신]전북의 지역혁신, 문화산업이 힘이다

증폭되는 다양한 문화산업에 대한 욕구문화가 산업이 된지 이미 오래. 아직도 문화의 산업적 가치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십중팔구, 미래를 내다 보지 못하는 산업적 마인드 부재이거나 아니면, 산업화의 도도한 흐름을 애써 무시하려는 자가당착의 시행착오에 빠져있는 것이 틀림없다. 문화관광부가 2003년에 펴낸 '2002문화백서'에 따르면 2001년 세계문화산업시장 규모는 1조 630억달러, 향후 2006년까지 6% 내외 성장을 통해 1조 37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1999년부터 문화산업시장의 성장률은 연평균 21'1% 윗선을 유지하고 있고 2002년 한해만해도 국내문화산업 시장 규모는 39조원을 넘어섰다. 문화전문가들은 이러한 추세에 현재 확산중인 웰빙문화바람과 증폭되는 대안문화에 대한 관심까지 더해지다면 현대문화와는 차별화된 다양한 문화상품에 대한 구매욕구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예고한다. 정부의 문화산업정책의 방향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정책 주도의 틀에 있다. 그동안 철저하게 중앙정부 주도로 이루어졌던 문화산업정책은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에 기초한 협력적 분권체계로 전환중에 있다. 지역간 균형발전 차원 뿐 아니라 우리나라 문화산업의 자생력과 국제 경쟁력을 증진 하겠다는 취지다. 문화산업은 전북의 경쟁력있는 자산 참여정부가 내세우는 국가균형발전은 '자립형 지방화'를 통해 '전국이 개성있게 고루 잘사는 사회건설'이 목표다. 지역의 특성과 강점을 살리는 특성화된 '역동적 균형 발전'과 함께 물리적 인프라의 '통합적 균형 발전'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취지가 맞닿아 있다. 지역혁신체계는 이른바 지역마다의 특성과 강점을 살리는 특성화 프로젝트랄 수 있다. 전라북도가 육성 발전시키겠다고 내세운 전략산업은 5개분야다. 자동차부품과 기계산업, 생물과 생명산업이 ‘핵심 전략산업’으로, 방사선융합기술 및 대체에너지산업, 전통문화와 영상 관광산업, 물류산업이 ‘준 전략산업’으로 배치되어 있다. 지역혁신 비전과 목표를 달성하는데 가장 적합한 산업으로 고용 및 창출에 크게 기여할 수 있고, 개발과 환경이 조화되는 모범적 지역발전 모형의 구축에 적합한 산업을 기준으로 삼았다고 밝히고 있다. ‘전통문화와 영상관광산업’은 일단은 핵심전략산업에서 빗겨나 준전략산업으로 배치되어 있다. 중장기적으로 지역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고양시킬 수 있는 산업이거나 타 지역에 비해 경쟁력 우위를 가질 수 있는 분야로서 장점은 있으나 고용 및 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 정도가 낮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문화산업’이 산업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미래의 산업화 동력이라고 조언한다. 지역혁신 전략이 새로운 산업을 찾아내는 것보다 지역이 갖고 있는 독특한 강점과 자산을 특성화시키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킬때 더 승산이 있다는 점을 들어 여전히 산업화의 가치는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해 뒷전으로 밀린 ‘문화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 아쉽다고 이들은 지적한다. 전주, 전통문화중심도시로 가꾸기 이런 점에서 근래들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는 전주시의 ‘전통문화중심도시 만들기 정책’은 눈길을 모은다. 전국 시군단위 자치단체에서는 처음으로 지역혁신협의회를 발족시킨 전주시가 선정한 전략산업은 기계산업 문화영상산업 생물생명산업 대체에너지산업 등 4개분야. 이중에서도 전통문화중심도시 육성에 바탕을 둔 문화영상산업은 전주시가 지역혁신체계 구축을 위해 가장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분야다. 문광부는 올해초 지방도시를 각각 특성화된 문화중심도시로 지정해 대대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광주가 첫번째 대상이고 경주(역사문화중심도시)와 부산(영상문화중심도시)이 각각 육성 대상으로 계획되어 있다. 광주에 지원하는 예산이 2조원에 이르니 그 지원의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이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전주시가 전주를 '전통문화중심도시'로 지정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현재로서는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전주시정발전연구소 문윤걸연구원(문화평론가)은 “전주를 전통문화중심도시로 가꾸는 일은 풍부한 전북지역의 각 시군을 전통문화권역으로 묶는 거대한 문화클러스터의 거점을 마련하는 작업이자, 문화산업의 다양한 콘텐츠 개발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가치있는 전략산업의 통로가 될 수 있다”며 “지역혁신은 그 지역의 가장 큰 장점을 전략으로 삼는 것이 중요하고, 그런점에서 전북의 문화산업은 보다 강력하게 추진되어야 할 당위성이 있다”고 말한다.실제 전주와 전북을 찾았던 많은 전문가들이 전라북도와 전주의 도시 특성을 ‘전통문화’로 꼽고 있다는 사실도 지역혁신을 위한 전략산업 방향 설정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 문화일반
  • 김은정
  • 2004.06.01 23:02

민화ㆍ설화 바탕둔 풍자와 해학

1969년 7월 암스트롱이 달 위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달에 토끼가 살고있을 것이라는 신화가 깨져버렸다. 호랑이는 날아가는 까치를 향해 주먹을 날리고, 길을 걷던 황소는 ‘난… 지금 어디까지 온 걸까?’하고 생각에 잠긴다. 과거를 회상할 수 있는 공간. 조각가 윤여일씨(31)가 민화와 설화를 바탕으로 풍자와 해학이 있는 ‘여1개인전’을 열고있다. (다음달 3일까지 전북예술회관)“대학 4학년 시절 ‘탈춤’을 소재로한 작품을 하게되면서 전통과 설화에 매료됐어요. 전해오는 옛 이야기를 상상하면서 오늘의 이야기를 찾는 것이지요.”벌써 5년째 그는 옛 이야기 속에서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찾고있다. 생각은 많지만 그 자리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현대인들, 상처받는 세상살이, 그럼에도 작가는 친구가 있고 살아있어 즐겁다고 말한다. 전통에서 빌려온 작가의 기발한 상상이 한바탕 웃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한다. “스스로 지쳐버릴 것만 같아서 개인전을 하고 싶었어요.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즐거운 작품을 하고 싶습니다.” 첫 개인전에서 작가는 결코 쉽지않은 작업과정을 선보였다. 그는 황동, 철, 돌 등 차가운 이미지의 재료에서 따뜻한 이야기들을 찾아냈다. 전시장에는 또하나의 작가가 있다. 작업 도중 짜증을 내는 자신의 모습이 보고싶었다는 윤씨는 실행으로 옮겼고, 이 작품은 2004전북미술대전에서 특선을 수상했다. 전주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4.05.31 23:02

110년 되살린 농민군 함성...바로 서는 역사

농민들의 용기가 하늘을 꿰뚫고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을 함락시킨 110년 전 그날. 전주성을 울렸던 농민군의 함성이 후텁지근한 밤공기를 뚫고 전주 풍남문에서 울려퍼졌다. 29일 저녁 7시 전주 풍남문광장에서 열린 동학농민혁명 110주년 기념대회 ‘바로서는 역사! 다가서는 통일!’.잠들어있던 동학농민군의 혼을 부르고 그들의 넋을 기리며 해원상생을 기원한 타악그룹 동남풍의 비나리가 동학농민군 전주입성 재현 굿판을 열었다. 농민군과 관군의 전투는 전통민속놀이 기싸움으로 상징화됐다. 농민군의 흰 깃발과 관군의 용기가 기싸움을 펼치다가 관군의 깃대가 무너졌다. 더욱 커지는 풍물패의 신명나는 소리는 전주 입성의 함성이고 기쁨이었다. 놀이패 우리마당의 힘찬 모듬북 소리는 동학농민군의 활약이었고, 익산시립무용단은 봉기 후 전주 입성 과정을 춤으로 형상화한 ‘동학농민의 횃불’을 선보였다. 하늘을 울리는 김연 명창의 동학농민혁명 일대기 ‘김계남 장군가’와 연극인들이 재현한 농민군들의 대화는 역사에 대한 이해를 더했다.동학농민군의 최대 전승지이자 농민군 자치기구 ‘집강소’가 처음 설치된 전주성은 동학농민혁명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구심점이 된 역사적인 장소다. 사단법인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김정기 이사장은 “올해는 동학농민혁명군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의 국회통과로 농민군의 명예가 훼복된 의미있는 해”라며 “110년 전 인간존중정신으로 농민들이 정신적 물질적으로 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때”라고 말했다. 하늘 위로 떠오르는 죽창 깃발을 보며 시민들은 막걸리 한 사발로 동학정신을 새기는 밤이었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4.05.3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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