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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연극제 대통령상 수상작'상봉' 앵콜공연

'한밤중에 일어나/불을 켜고/다시 보는 어머니 얼굴…//열 여섯에 집을 떠나/쉰이 퍽 넘을 때까지/대답해줄 어머니가 곁에 없어/단 한번도 불러보지 못한 어머니/어머니…'(북의 계관시인 오영재의 '부르다 만 그 이름'부분) 2000년 8·15 남북이산가족 상봉 당시 서울을 방문한 오영재 시인(67)은 "별(형제)들 다섯이 모여도 햇볕(어머니)만 못하다. 체제가 달라도 체온은 같다”며 어머니의 영정 앞에서 상봉의 소회를 시에 담았다. 이 수난의 역사, 피눈물의 역사가 또다시 되풀이된다면 혈육들이, 가슴이 터져 죽는다고, 민족이 죽는다고….제21회 전국연극제에서 대상(대통령상)과 희곡상·연출상·연기상을 수상한 극단 창작극회의 '상봉'(최기우 작/류경호 연출)이 23일 오후 3시와 6시 전주소리문화의 전당 연지홀 무대에 오른다. 지역관객들을 위한 앵콜 무대. 북송된 비전향수 아들을 가진 노인과 남편을 전쟁으로 잃고 두 아들마저 북한에 빼앗겼다고 믿어온 노인의 반목과 갈등을 통해 개인에게 씌어진 정당하지 못한 역사의 굴레를 형상화한 작품. 당시 심사위원들은 '좌우 이데올로기의 갈등이 우리 삶에 끼친 고통을 정면으로 다루려 했다는 의미와 바로 이 시점의 우리 사회정서로 볼 때 그 작품 의도에 있어 어필하는 힘이 컸다'고 평가했다. 김기홍, 류영규, 박상원, 이부열, 홍석찬, 오진욱, 김영주, 배건재, 김순자, 임정용, 이지현, 이영경, 이혜지, 박영준, 주서영, 류가영, 오하늘이 출연한다. 문의 063)282-1810/270-8000

  • 문화일반
  • 최기우
  • 2003.08.21 23:02

SALE 정기전, 21일까지 전북예술회관 전시실

지난 15일부터 전북예술회관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추상화 모임 'SALE'의 열 번째 전시회장. 새만금, 방폐장, 전쟁, 부안, 실업, 자살… 최근 우리를 정신 없게 만들었던 사건들이 조각조각 스크랩돼 소나기 오듯, 곶감 말리듯 전시장 한 쪽에 매달려 있다. 이 작품을 '집중호우'라고 이름 붙인 김삼렬·이일순 부부는 선택된 내용들은 "전시장을 찾는 분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세상살이”라고 말한다. "단어나 문장들을 보면 그 때 상황을 떠올릴 수 있고, 관찰자적 입장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될 수도 있겠지요”추상화 모임 'SALE'이 창립 10주년을 맞아 선택한 주제는 '집중호우·815'.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젊은 정신이 전시장을 가득 메운다. '날 것을 파는 정육점''창고 대 방출''오늘 소 잡는 날''日本(일본)=曰犬(왈견)' 등 지금까지 보여준 전시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실험성 강한 작품세계가 특징. 이번 전시에서도 분노처럼 쏟아지는 반전 구호들을 담은 이정아씨의 '함성'이나 물질만능 행태를 만원 지폐에 비꼬아 놓은 홍성일씨의 '주인공'처럼 시사적 문제를 소재로 해 일반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발자국 소리 요란해도, 아이들이 떠들어도 좋습니다. 멀티 등에게 보여주는 전시가 아닌 사람이 봐주는 전시여야만 우리는 좋습니다” 각기 다른 화풍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SALE' 회원들의 말이다. 이번 전시는 오늘이 마지막이다.

  • 문화일반
  • 최기우
  • 2003.08.21 23:02

화음쳄버오케스트라 전주연주회 25일 소리전당 연지홀

샤갈과 스트라빈스키, 칸딘스키와 쇤베르크, 피카소와 사티. 이들은 같은 시대를 살면서 예술적 정신세계를 공유했던 예술가들이다. 화가는 음악으로부터, 음악가는 그림으로부터 예술적 영감을 얻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위대한 예술작품을 탄생시켰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 미술과 음악이 만나는 세계는 경계를 넘어서는 설레임과 미지의 대상이다. 좀체 흔하지 않은 연주회가 열린다. 음악과 미술이 만나는 예술적 의미를 오늘의 무대에서 더욱 더 새롭게 가꾸어온 화음쳄버오케스트라가 25일 오후 7시 30분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연지홀에서 연주회를 갖는다. 화음쳄버오케스트라는 90년대 초반부터 화랑에서 여는 실내악 연주로 음악과미술의 만남을 시도해온 실내악단 화음을 모태로 지난 96년 창단한 연주단체.미국 인대에나 음대 교수인 바이올리니스느 배익환, 독일 엣센음대 교수인 첼리스트 조영창, 독일 퀼른 음대 교수인 비올리스트 라이너 목, 뷔르쯔부르크 음대 교수인 베이시스트 미치노리 분야를 비롯해 단원 모두가 국내외의 유명 콩쿨을 통해 데뷔한 이후 세계 무대에서도 활발한 음악활동을 펼치고 있는 연주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바로크에서 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레퍼토리로 음악애호가들 뿐 아니라 문화계의 폭넓은 주목을 모아온 이들은 특히 바르톡, 스트라빈스키, 힌데미츠, 쇼스타코비치 등 현대음악 거장들의 작품을 통해 음악적 역량과 높은 예술성을 인정받아왔다. '화음'(畵音)이라 이름 붙인 전주 연주회의 주제는 '죽음과 상실'.예술가들의 삶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던 '죽음'과 '상실'은 두려움과 탄식의 어두운 이미지로 드러나지만 그 어두움은 수채화처럼 맑고 영롱한 세계를 그려내게 한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연주 작품은 야나첵의 '현악을 위한 합주곡', 백병동의 창작곡,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 '가장 커다란 상실 앞에서 자신도 언제 숨겨 놓았는지 알 수 없는 존재의 이야기를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풀어낸' 음악들이다. 죽음으로 얼룩진 삶을 살았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고 낭만적인 선율을 끌어낸 야나첵의 합주곡은 죽음의 환영으로 인해 평생 섬뜩한 그림을 절규하듯 그려냈던 뭉크의 대표작 '병실에서의 죽음'과 만난다. 거기에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던 두 예술가의 삶과 죽음을 향한 응시가 있다. 백병동의 창작곡은 소아마비와 교통사고와 수술로 평생을 정신적 육체적 고통속에서 살아야했던 멕시코출신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의 '부러진 기둥'에 닿아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기원하는 '상실'의 세계는 프리다 칼로의 슬프지만 강렬한 그림으로 더 선명해진다. '죽음과 소녀'는 죽음의 문턱에서 슈베르트가 써낸 생애 마지막 작품이다. 죽음을 기리는 이 곡에는 무한한 애수와 관능적 아름다움을 남긴 모딜리아니의 '잔느 에뷔테른느의 초상'이 놓여진다. 잔느는 모딜리나이와 죽음까지 함께 했던 연인. 오버랩되는 에곤 쉴레의 '포옹'과 함께 죽음은 더이상 묵시적이고 음습한 이미지가 아니다. 에곤 쉴레는 가난속에 과음과 방랑을 일삼았지만 짧은 생애동안 누구보다도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그림으로 남겨놓은 예술가였기 때문이다.음악으로 그림을 만나는 설레임의 무대.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이 문득 가까워져 있는 가을의 길목에서 기획했다. 문의 270-8000

  • 문화일반
  • 김은정
  • 2003.08.21 23:02

[한문속 지혜] 몸을 바짝 굽히는 뜻은

큰 굽힘에는 반드시 큰 펼침이 있다(큰 굴욕을 당한 사람도 언젠가는 당당하게 다시 일어설 날이 있다).大屈에 必有大伸이라대굴 필유대신청나라 때의 극작가인 이어(李魚)가 쓴 희곡 《풍구봉(風求鳳)》의 제30회에 옛 말을 빌어 나오는 말이다. 우리 속담에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는 말이 있다. 지금은 아무리 곤궁하더라도 언젠가는 형편이 쭉 펼 날이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의미인즉 그러하나 사실 쥐구멍에 볕이 들고나면 그 날로 쥐는 그 집을 버리고 떠나야 한다. 사람이야 볕이 환히 드는 집을 좋은 집으로 여기겠지만 쥐에게 있어서 볕이 환히 드는 집은 결코 좋은 집이 아닌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속담은 사람위주로 되어 있다. 또 우리 속담에 "개구리가 바짝 주저앉는 뜻은 좀더 멀리 뛰기 위해서이다”는 말도 있다. 부러 몸을 웅크려 큰 도약을 준비한다는 뜻이다. 사람은 본인의 뜻과는 전혀 무관하게 좌절과 굴욕을 맛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그 굴욕과 좌절의 성질을 잘 파악해야 한다. 자신은 정당했는데 남의 실수나 모함으로 인하여 맞게 된 굴욕인지 아니면 자신이 부당했기 때문에 맞게 된 굴욕인지를 잘 가늠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만약 전자의 경우라면 일부러 라도 몸을 웅크려 재도약의 그 날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만약 후자의 경우라면 뼈를 깎는 각오로 반성을 해야 한다. 요즈음 정계와 관계에는 하루아침에 굴욕적인 추락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억울한 추락일까? 반성해야 할 추락일까? 답은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이다.屈:굽힐 굴 必:반드시 필 伸:펼 신

  • 문화일반
  • 전북일보
  • 2003.08.20 23:02

[새로나온 책] 차복수 장편소설'빛의 소리'

△ 차복수 장편소설'빛의 소리'시성 괴테의 색채론에 담긴 의미에 근거한 장편소설. 지각과 감성, 심미감이 빼어난 예술가이며 미술학 교수인 헨리가 아름다운 사랑을 위해 불륜의 성벽을 넘지만 배신당하고 가정의 파편을 맞지만, 사랑과 미움의 감정이 예술로 승화해 인류를 위한 커다란 사랑으로 변한다는 내용이다. 군산출신 작가 차복수씨는 "인간의 상상력이 현실화되고 있는 밀레니엄 시대에 소설 속 공상과학 만화의 상상에서 인류 미래의 희망을 조망해 보고자 했다”고 밝혔다. 신아출판사/1만원.△ 유인숙 시집, '에큐머니칼 사랑'하나의 마음, 하나의 종교, 순종적 사랑을 뜻하는 제목이 말해주듯 시집에는 사람과 사물에 대한 아름다움, 종교적 절대주의에 대한 믿음, 삶에 순응하는 종교적 색채가 가득 깔려 있다. 2001년 '한맥문학'으로 등단한 유인숙 시인은 등단이후 필명 '해송'(海松)으로 인터넷을 중심으로 문학활동에 몰두해왔다. 김제 부용교회 사모로 독실한 종교인이며, 김제시립합창단 단원으로 활동하는 음악인이기도 하다. 한국지저스작가회, 대한문학인협회 회원. 작가마을/7천원. △ '청소년을 위한 현대 꿈풀이사전'청소년들이 즐겨 찾는 꿈해몽사이트만 해도 수십 여곳. 상당수의 청소년들이 자신의 꿈을 게시판에 올리고 해몽을 부탁한다. 그러나 대부분 막연한 추측이나 신비주의적 감상이 주류를 이뤄 궁금증과 호기심만 더해갈 뿐이다. 도서출판 화남이 '현대 꿈풀이 큰사전'에 이어 청소년에게 해당되는 부분을 별도로 엮은 이 책은 이승철(시인) 송미정(시인) 김영현(시인) 현준만(평론가) 등 문단의 현역 시인과 중견 작가가 책임편집자와 책임감수자로 나서 믿음이 간다. 도서출판 화남/1만2천원.

  • 문화일반
  • 전북일보
  • 2003.08.20 23:02

[주제가 있는 책읽기] '일본인이 본 한국'

일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원폭 피해자는 70만명. 그 중 10%가 방사선 등에 노출된 조선인 피해자다. 살아남은 자는 겨우 3만 여명, 이 중 2만3천명이 광복과 함께 조국 땅을 밟았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린 것은 2세까지 이어진 질병과 억울한 삶뿐이었다. 지난해 말 일본 정부가 외국에 거주하는 피폭자에게도 수당을 지급키로 했지만 이 역시 완벽한 생색용. 까다로운 신청 절차로 배상을 신청한 국내 피해자는 1천여명에 불과하다. 정쟁에 정신이 없는 우리 정부는 그들의 아픔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 탓에 광복 반세기를 훌쩍 넘긴 2003년 8월, 대한민국의 하늘은 그리 쾌청하지 않다. '20세기 백년의 분노,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은 누구인가'를 부제로 한 이치바 준코의 '한국의 히로시마'(역사비평사 펴냄)는 가해자 입장에 있는 일본의 한 지식인이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의 삶을 추적한 글이다. 저자가 칭한 '한국의 히로시마'는 경남 합천군. 조선인 피폭자의 절반 이상이 합천을 고향으로 두었기 때문이다. 책은 저자가 합천을 찾아 의문을 풀어쓴 보고서. 한국 원폭피해자들에 대한 체계적 접근보다 단순한 자료에 의지해 쓴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나 아쉽지만,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작업이다. "한국인은 정이 많다고 하는데, 소년소녀 가장은 왜 그렇게 많지? 어째서 아이들을 해외 입양시켜? 외국인 노동자는 왜 때리는 거야?”라고 묻는 일본 저널리스트 이토 준코의 '한국인은 좋아도 한국민족은 싫다: 이웃나라 일본 여성의 한국 민족주의 비판'(개마고원 펴냄)를 읽어도 부끄럽긴 마찬가지. 1990년부터 10년간 한국에서 살았던 저자는 '한국인은 외국인에 지나친 호의를 보이지만 민족 이야기만 나오면 앞 뒤 설명도 듣지 않고 자기 주장만 펴는 이중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한다. 실체에 접근 못한 표피적인 비판이 적잖게 눈에 띄지만, 한국인의 왜곡된 민족주의를 '3류 제국주의자' 일본에게 근대를 배웠던 불행과 오랜 군사정권에 의해 왜곡·발전된 것으로 분석하며 '일본의 국수주의 성향까지는 닮지 말라'고 당부하는 저자의 말은 새겨 볼만하다. '전라도 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일본인'으로 널리 알려진 미즈노 순페이(전남대 강사)가 한국내 34종의 일본관련 '엉터리 책'을 도마 위에 올려놓은 '한국인을 바보로 만드는 엉터리 책 비판'(아이디오 펴냄)은 엉터리를 엉터리로 꿰뚫어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그가 한국인 아내와 10년간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느꼈던 양국의 문화차이와 국민성을 솔직하게 비교 분석한, '다테마에를 넘어 일본인 속으로'(좋은책만들기 펴냄)도 훑어 볼만하다.

  • 문화일반
  • 최기우
  • 2003.08.20 23:02

최명희 청년문학상ㆍ혼불 독후감 공모

소설'혼불'의 작가 고(姑) 최명희를 추모하고 '혼불'을 통해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되새기는 문학상과 독후감을 공모한다.작가의 모교인 전북대학교 신문사와 혼불기념사업회(위원장 두재균)가 2001년부터 함께 추진해온 '최명희 청년문학상'과 올해 초 소설의 배경인 남원에서 결성된 '혼불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혼사모)의 '혼불 독후감' 모집. 올해로 세 번째인 청년문학상은 대학과 일반으로 나눠 소설(1편 이상·70매 내외)과 시(3편 이상)를 30일까지 모집하며, 작품과 재학증명서 1부를 함께 제출해야한다. 상금은 소설 부문 2백5십만원(고교생 1백5십만원) 시 부문 1백5십만원(고교생 1백만원). 전북대신문사 편집국(전북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1가 664-14)으로 제출하면 된다. 문의는 전북대신문사(270-3536)와 혼불기념사업회(275-3666). 남원시와 한국문인협회가 후원하는 '혼사모'의 혼불 독후감은 다음 달 20일까지 모집한다. '혼불'독자면 누구나 응모할 수 있고, 25장 이내(200자 원고지)의 감상문을 '혼사모'(남원시 월락동59 남원국악정보고등학교 내 혼불독후감 담당자 앞)로 보내면 된다. 대상인 혼불상 1명에게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상과 상금 50만원, 으뜸상 1명에게 남원시장상과 상금 30만원이 주어진다. 입상자 발표는 9월 30일. 문의 063)633-7701.

  • 문화일반
  • 최기우
  • 2003.08.20 23:02

[책과 사람] '모항 막걸리집의 안주는…'펴낸 박형진 시인

모항으로 가는 도로는 흠뻑 젖어있다. 가까이 올듯 말듯 산 안개 자욱한 변산반도도 물이나 산이나 젖을 대로 젖어 우울하다. 곰소 읍내, 방폐장 반대 투쟁에 나섰다가 잠시 숨고르고 있는 도로변 자동차도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장맛비에 젖을 대로 젖었다. "징허게도 오요. 올해 비는 유난헌것 같소." 어둠이 막 쏟아지려는 시간, 그림처럼 놓여있는 아름다운 흙집에 들어서는 손님을 맞느라 질퍽해진 마당 앞까지 마중 나온 시인이 들릴락 말락 중얼거렸다.시인 박형진(46)이 산문집 '모항 막걸리 집의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디새집)를 펴냈다. 92년 창작과 비평 봄호에 '봄편지'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의 산문집은 두 번째다.이 책은 그가 나고 자란 모항과 그곳 사람들이 살아온, 살아가는 그만그만한 이야기다. 시골 어느 마을치고 마을의 내력이 없을 리 없다. 그 내력은 마을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개인사나 가족사로 꿰어지는 역사다. 모항은 변산반도의 한 귀퉁이 빼어난 풍광이 감싸안은 조그만 어촌이다. 이곳에서 순박한 아내와 이름도 예쁜 딸 푸짐이와 꽃님이, 아루, 늦둥이 아들 보리와 '알콩 달콩' 살고 있는 시인은 이웃들이 '지지고 볶는' 이야기를 쉽고 편하고 맛깔 나게 엮었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평생 땅을 파먹고 살아온 시인이 '어인 판 속인지 살림은 늘지 않고 빚만 늘어가는 심란한 농촌살이'로 잠 못 이루는 밤이 깊어질 때마다 '옛이야기 속에 해답이 있을까 싶어' 써온 이 글들은 저 깊은 바다에서 끌어올린 반짝이는 은빛 고기와도 같다.꽁댕잇배에 늙은 아버지와 어린 아들을 태우고 고기잡이 나섰다가 밤썰물에 밀려 삼대가 몰살한 갑열씨, 아들딸 낳고는 어쩐 일인지 3년을 폐인으로 지내다 요절한 자맥질 선수 종태씨, 어릴 때 하도 울어싸 아버지가 포대기 채로 내팽겨쳐 실성해버린 고막녀, '오징개' 양반이 바람피우다 들킨 사연, 남의 배를 타면서 받은 삯을 조금때 술집에 붙어살며 술로 다 먹어조져버린 '조지기', 눈을 끔쩍이는 버릇 때문에 남자를 줄포장에서부터 뒤따라오게 한 '눈끔쩍이', 술 마시고 조갈증으로 오강 단지 안 오줌을 다마시고도 사람들이 왜 웃는지 모르는 공진씨 등 더도 덜도 아닌 꼭 그대로 펼쳐놓은 이야기는 소설이 따로 없는 재미와 애틋한 감동이다.동네 들머리에 자리잡은 막걸리 집에서 텁텁한 막걸리 한 사발에 꼬인 속내를 풀어버리고 알큰하게 취기가 오르면 '니캉 내캉' 오고갔을 이야기들이 시인의 마음에 다 담아졌을 터이다. 옆사람에게 이야기하듯 꾸밈없이 써 내려간 시인의 글은 가슴 짠한 애틋한 내력에도 종국에는 웃음 짓게 하는 묘미가 있고, 삶의 진리를 곰씹게 하는 맛이 있다. 위로 딸 둘을 낳고 다시 딸을 낳은 며느리가 나란히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도끼로 팬 것들만 모두 넷이더라'고 한탄했던 그의 어머니는 시인이 늦둥이로 본 아들 보리가 8개월 되던 해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눈을 감기전 당신의 젖가슴에 혀놓은 손자의 손을 쥐고는 "못키와주고가서 미안허다'는 말을 남겼다. "삶의 진리가 따로 없지요. 마을 사람들의 내력이 모두 스승인걸요."그러나 정작 시인은 동네사람들이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시인의 얼굴에 쓸쓸함이 스쳤다. 더러는 감추어두고 싶었을 이야기의 속내가 들추어지자 적잖은 입담들이 오고간 모양이었다. '근래 밥한끼 마음놓고 못먹을 정도로 마음 고생이 심했던'시인은 늘 삶에 힘이고 위안이 되었던 글이 마을사람들에게 상처를 안겼다는 사실에 마음 아파 했다. 방폐장 반대 시위로 하루걸러 읍내에 나가 풍물을 잡았던 터에 몸이 지쳐있는 시인 또한 마을 사람들과의 갈등으로 안게된 상처가 꽤 오래갈 것 같았다. 돌아 나오는 길, 토끼 한 마리가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하고 불빛을 바라보며 한참을 허둥대다가 제갈길을 찾은 듯 숲으로 뛰어들어갔다. 어두움을 드리운 밤, 변산반도는 적막하다. 그래도 시인은 안다. 내일이면 다시 환한 빛으로 바다와 산이 깨어나리라는 것을. 그런 희망으로 살아가는 시인의 글은 우리에게 다시 위안이자 힘이 된다.

  • 문화일반
  • 김은정
  • 2003.08.20 23:02

전라문화연구소 '판소리 단가' 펴내

전북대 전라문화연구소(소장 임명진)가 기획한 판소리총서의 첫 결실, '판소리단가'가 나왔다. 조선 후기 민중들의 삶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면서도 판소리 다섯 바탕이라는 주류에 밀려 소홀히 취급 받아온 판소리 단가(短歌)의 사설을 정리한 의미 있는 책이다. '허두가'라고 불린 단가는 판소리처럼 길고 어려운 소리를 하기 전에 목청을 가다듬기 위해 불렀던 노래. 산천유람, 인생무상, 역대고사 등 짧은 사설과 부르기 쉬운 가락으로 돼있어 민중의 삶에 깊이 파고들었다. "여러 계층과 집단을 아우르는 단가는 판소리의 부분적 독자성을 충족시키며 다른 장르와의 교섭창구가 될 수 있는 형식과, 단편화되는 예술의 현대적 추세에 부합하는 면이 있습니다”함께 책을 낸 우석대 정양 교수(시인·61)와 전북대 임명진 교수(평론가·51), 군산대 최동현 교수(시인·49)가 단가에 주목한 이유다. 책의 특징은 현재 불리고 있는 단가를 우선 고려해, 현장예술로서의 판소리 특성을 살린 점. 판소리를 공연예술로 규정하고 사철가, 백구가, 호남가, 만고강산, 초한가, 고고천변, 백발가, 충효가, 호남가, 한노가, 편시춘 등 현재 노래로 부르고 있거나 과거에 노래로 불려졌던 확실한 증거가 있는 43개의 단가를 창자별로 추려 엮었다. '남원에 봄이 들어 각색 화초 무장허니, 나무나무 임실이요, 가지가지 옥과로구나. (중략) 농사허는 옥구 백성 임피 상거가 둘러 있고, 정읍에 정맥법은 납세 인심 순창허니, 고부 청청 양류색은 광양 춘색이 팔도에 왔네'(아세아레코드, 입방울 창· 한일섭 고수) 조선말기 전라감사였던 이서구(李書九·1754∼1825년)가 전라도 54개(전북26, 전남27, 제주1) 고을이름을 빌어 지은 '호남가'는 경복궁 낙성식(1867년) 이후 전국으로 퍼지면서 한말(韓末) 일제치하에서 고향을 그리는 향수로, 나라를 잃은 망국의 한(恨)을 달래는 비원의 노래로 애창되었다. 지금까지 채록된 이본만도 수백 가지. 창자마다 자신의 기호에 맞춰 내용과 음을 달리하며 구비 전승됐기 때문이다. 책에는 창자마다 조금씩 다른 6가지 이본(임방울·오비취·김종기·오정숙·강정렬·박헌봉)이 소개됐다. '판소리단가'에는 판소리 사설의 어려운 한자 투나 고사성어, 관용적 용법 등을 풀이한 어구사전이 있어 쉽게 내용을 파악할 수 있지만 단순히 음반 채록본과 음반 가사지에 실린 내용을 중심으로 이본들을 소개하는데 그쳐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후속작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전북대 임명진 교수는 "이후 판소리 사설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과 함께 판소리사전 등 판소리총서를 발간함으로써 판소리가 세계음악의 하나로 발전하는데 기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정양 임명진 최동현 지음, 민속원 펴냄, 값 1만6천원.

  • 문화일반
  • 최기우
  • 2003.08.20 23:02

전북작가회의-북한문단 교류 '물꼬'

전북 문학인 단체와 북한 문학인 단체 교류의 물꼬가 트였다. 민족문학전북작가회의(회장 김용택)가 올해초부터 내부적으로 추진해온 '6.15 공동선언 실천과 민족화해를 위한 남북 공동 통일문학 연구사업' 제안서가 북측에 정식으로 전달된 것으로 알려져 앞으로 진행될 과정과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관련기사 8면) 전북작가회의 회원인 시인 안도현씨는 지난 15일 평양에서 열린 '평화와 통일을 위한 8.15 민족대회'에 8.15 민족공동행사 방북단 일원으로 참가한 자리에서 북측 계관시인인 오영재시인에게 이 제안서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제안서는 시인 백석을 비롯해 월북 작가와 북한작가를 연구하는 '통일문학 연구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는 내용을 비롯해 민족간 민간교류를 활성화하는 문학사업을 북측의 조선작가동맹과 공동으로 벌이자는 제안을 담고 있다. 올해초 남북 공동 '통일문학 연구사업'을 기획했던 전북작가회의는 사업 제안서가 북측에 전달된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사업을 추진해나가는데 힘을 받게 됐다. 안씨는 "현재 민족문학작가회와 북측의 조선작가동맹이 추진하고 있는 '작가대회'가 조만간 실행될 것으로 보이지만 전북작가회의가 추진하는 '통일문학연구사업'은 그와는 별도로 추진하는 사업인만큼 문학교류의 폭을 넓히는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전북작가회의가 1차로 추진하는 백석연구 작업은 재북·월북 작가 중 남한에서 가장 왕성하게 연구되고 있는 백석시인에 관한 남측의 출판물과 연구성과를 전달하고, 분단 이후 남측에서 출판된 백석을 비롯한 재북작가들의 저작권료 지급에 관한 실무도 점진적으로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전북작가회의는 서신을 통해 구체적인 실무작업을 진행하면서 남측 문학인들의 북한방문을 추진, 양측의 협의회를 구성하고 자료수집을 이어갈 계획이다.안씨로부터 제안서를 받은 오영재시인은 북한문단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조선문학축전상'(2001년)을 수상한 시인. 지난 2000년 이산가족 상봉단으로 서울을 방문해 언론의 주목을 모았던 그는 '늙지마시라 어머니여'를 발표해 온국민의 가슴에 이산의 슬픔을 적시게 했으며 그가 작사한 북한가요가 한국에서 발매되기도 했다.

  • 문화일반
  • 김은정
  • 2003.08.19 23:02

전주시립국악단 21일 여름방학 특별연주회 '아리랑'

전주시립국악단(지휘자 심인택)이 제118회 정기연주회를 '여름방학 특별연주회, 아리랑'으로 준비했다. 21일 오후 7시30분 전주덕진예술회관. 아리랑은 단순한 민요 가락이 아니라, 남과 북의 겨레를 묶어주는 놀라운 에너지를 담은 '힘의 노래'. 고(故) 문익환 목사가 "'아리랑'은 과거의 노래가 아니라 미래의 노래”라며, '아리랑'을 통일 이후의 국가(國歌)로 생각한 것도 아리랑이 지닌 응집력 때문이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민요'아리랑'을 소재로 한 작곡가들의 작품을 모은 '아리랑 접속곡'(편곡 박범훈)과 북한의 공훈예술가 최성환이 1968년 작곡한 관현악곡 '아리랑'(편곡 이인원), 전라도의 진도아리랑과 경상도 밀양아리랑을 원곡으로 작곡된 '남도 아리랑'(작곡 백대웅)이 연주된다. 관현악곡은 북의 원곡을 박범훈 교수가 한중일 민족악단이 모인 '오케스트라 아시아'가 연주할 수 있도록 편곡한 곡을 다시 국악관현악 단독으로 연주할 수 있도록 편곡한 곡이다. 서울대 국악과 임재원 교수(대금연주자·중요 무형문화재 20호 이수자)와 대금협주곡 '새로움'(작곡 이병옥)을 협연하는 무대도 마련됐다. 1990년에 작곡된 이 곡은 대금의 악기 기능을 확대 개발하고, 서양 음악적 기법을 수용해 고난도의 기교를 요하는 노래다. 여름의 끝자락, 청초하면서도 힘이 담겨 있을 아리랑 가락에 가을바람이 먼저 설렌다.

  • 문화일반
  • 최기우
  • 2003.08.19 23:02

[그들의 특별한 선택] (3)미래산업의 최전선, 문화기획자

소나기 내리듯 쏟아지는 도내 대형축제와 문화행사들. 꽃피고 열매 맺으면 열리는 축제들까지 꼽으면 숫자 새기도 민망하다. 이런 대형 이벤트들은 누가 어떻게 꾸려 가는 것일까. 연출·감독·사무국장·기획실장·기획팀장·이벤트팀장…. 다양해지는 이벤트 덕에 이들은 일복이 터진 셈. 그러나 '일은 많지만 사람이 없다'는 탄식이 문화계의 오랜 화두다. "문화는 일이 아니라 삶이죠. 삶의 흔적과 의식의 표현이 층층이 쌓이고 묵으면 문화가 됩니다. 기획도 스스로 가꾸는 즐거움에서 시작돼야 합니다.”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문화기획자도 마찬가지. 문화기획자가 아니라 '문화일꾼'이라고 말하는 산조예술제 오종근 사무국장(42)은 "후손들에게 물려줄 문화유산을 준비하는 씨앗과 거름이라는 생각이 앞서야 한다”고 말한다. 문화기획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기름진 토양을 먼저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판의 정신'을 강조하는 그다운 생각이다. "길들여지는 것은 포기하는 것과 같죠. 판에 끼여들거나 기댈 생각보다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먼 곳이 아닌 내 주위에도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거든요”일반인에게 여전히 생소한 '문화기획자'는 축제·전시·박람회·음악회 등 문화산업 시스템을 전문으로 기획하는 사람과 극장·박물관·예술단체의 컨설팅 매니저, 인력관리 전문가, 마케팅 전문가들을 일컫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배우·감독·출판·미술 등을 하다 우연히, 혹은 잘 안 풀려 옆길로 새는 분야라는 생각이 강했지만 최근 '문화기획자' 영역에 뛰어든 젊은 인재들이 늘었다. 21세기 문화환경도 이들의 역할을 새롭게 만들고 있다. 지난해부터 도내에서 ㈔마당이 문화인력을 키워내기 위한 전문 교육프로그램을 선보여 문화계의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 있고, 대학에도 문화기획을 공부 할 수 있는 정규교육과정이 개설돼 앞으로 이 분야의 양·질적 발전은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공연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해온 소리축제 임진택 총감독(53)·전통문화센터 곽병창 관장(44)·전주풍남제 안상철 사무국장(45)과 황토현문화연구소 신정일 소장(48), 심홍재 행위예술가(41), 혼불기념사업회 김병용 사무국장(38), 인터넷신문 군산타임즈 이근영 편집장(36) 등이 도내 문화기획자의 한 축을 형성한다. 문화기획자란 틀에서 활동하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이들의 행보는 그 범위에 있다. 김승민(36)·김병수(35)·성기석씨(33)는 최근 주목받는 젊은 문화기획자. 세세하게 따지면 ㈔마당 김승민 기획실장과 영화와 이벤트 등 문화행사 경험이 많은 성기석씨는 문화산업시스템 매니저, 도시계획을 꿈꾸는 김병수씨는 시티마케팅 매니저에 가깝다. 2001년 소리축제 예술총감독으로 활동한 강준혁씨(53)와 소리문화의전당의 서현석 전(前) 예술감독(49) 등은 이 지역을 거쳐간 대표적인 문화기획자로 꼽힌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문화기획자의 기본 조건은 무엇보다 인간을 탐구하고 이해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 문화일꾼에게 가장 소중한 자산도 사람이다. 하지만 아직 이들을 한데 엮을만한 틀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은 아쉽다. 체험을 공유하고, 정보를 나누고, 기록을 남기고, 인맥 그물을 만들어 후배들을 끌어줄 수 있는 디딤돌이 되자고 손잡을 날은 언제일까. "지금 여건은 넉넉하지 못하죠. 그렇지만 가능한 똘똘 뭉쳐야 우리 문화가 새롭게 꽃피울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혼자 가는 길이 아니라 함께 가야할 길이니까요.”좀 더 많은 동지들을 만나고 싶다는 '문화일꾼'의 바람이다.

  • 문화일반
  • 최기우
  • 2003.08.19 23:02

안도현시인의 평양 방문기

2000년 6월, 분단 사상 처음으로 이루어진 남북한 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온국민은 바로 눈앞에 다가온듯한 통일에의 희망에 들떠있었다. 금강산 육로 관광길이 트이고, 남북을 가르는 철도가 개설되면서 통일의 열망은 더 뜨거워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2003년 8월 지금 남북 관계는 다시 안개속이다. 대내외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정세로만 보자면 6.15 남북공동선언의 화해와 협력 정신은 좀체 회복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분위기를 극복하고 민족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일에 이제 문학인들이 나섰다. 전북작가회의가 북측에 제안한 '통일문학연구사업'은 남북화해와 협력 정신을 민간 교류 차원에서 일구어내겠다는 실천의 의지가 담긴 소중한 시도다. '평화와 통일을 위한 8.15 민족대회' 방북단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해 전북작가회의의 제안서를 북측 문학인에게 전달한 안도현시인은 "통일문학사업 제안서를 오영재시인에게 전달하면서 가슴 설레었던 기분이 아직 채 가시지 않았다."며 이제 '시작'은 해놓았지만 갈길이 멀다고 말했다. 18일 오전에 만난 안시인은 전날 저녁 전주에 도착했지만 평양방문의 감동을 식기전에 후배들에게 나누어주느라(?) 늦게까지 술자리를 가졌다고 했다. 술자리의 분위기를 짐작할만했지만 그 어느때보다 얼굴이 밝았다. "평양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워낙 북한에 관한 자료들을 많이 접한터여서 낯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의외로 활기가넘쳤어요. 이번 행사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북한은 지금 엄청난 속도로 변하고 있는 것이 확실했습니다."시인이 북한 땅을 밟은 것은 이번이 다섯번째. 그러나 세차례의 금강산 답사와 두만강의 도문을 통해 한발 들여놓았던 것이 전부여서 평양 방문에 유난히 가슴 설다. 시인은 자유롭고 활발하게 이야기하고 스스럼없이 사진을 찍는 북측 사람들을 보면서 북한의 변화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문제와 관련해 미국에 대해 강온 양대 전략을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분위기도 북한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았어요. 전해듣기로는 북한 내부에서도 '변해야 산다'는 의식이 확산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8.15 민족대회 본행사에서도 북한은 기존의 관행과는 달리 '미제'라는 용어 대신에 '외세'나 '반통일세력' 정도의 완곡한 표현으로 우리를 놀라게 했어요." 이러한 변화는 문학인들과의 만남에서도 그대로 전해졌다. 평양에서의 3박 4일동안 북한 문학인들과의 만남은 두차례 이루어졌다. 북측에서는 시인 오영재 장혜명씨, '청춘송가'로 남한에서도 잘 알려진 소설가 남대현씨가 나왔다. "전북작가회의의 제안서를 받은 오시인은 비교적 자유롭게 북측의 문학 환경을 자세히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아마도 여러 단계의 절차를 거쳐 일이 정리 되겠지만 순수한 민간 차원의 문학 교류인 만큼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전북작가회의가 1차 사업으로 내놓은 백석은 정작 북한에서는 크게 주목 받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고 안씨는 밝혔다. 몇가지 새로운 사실도 확인했다. 백석은 재북작가 중 남한에서 가장 활발하게 연구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작고년도 조차 60년대와 90년대로 갈려 있는 등 북한으로 돌아간 뒤의 행적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백석은 60년대 초까지 평양에서 활동하다가 전원생활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 말년을 보냈다고 하더군요. 작고한 시기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옥구 출신으로 월북한 소설가 이근영에 대해서도 중요한 사실이 확인됐다. 그가 말년까지 활발한 창작활동을 했다는 것, 그리고 83세에 작고했다는 사실이다. 북측 문학인들은 안도현시인이 전한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과 어른들을 위한 동화 '증기기관차 미카'를 하루만에 읽고 와서는 '시가 좋고 이해하기 쉽다. 생활의 철학을 담은 시여서 더욱 좋았다'거나 '통일이야기를 매우 감동적으로 그렸다'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이자리에서 오영재시인은 남쪽의 고은시인에게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했다. 고은 시인을 '시로써 시의 혈맥을 잇자하는 시인'으로 칭송한 오시인은 '앞으로도 6.15의 이념을 실천하는 길에서 좋은 시를 써달라. 건강하시라'는 당부를 부탁했다.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문학으로서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지요"안씨는 평양 방문길에 뜻밖의 즐거운 기억도 안았다. 일전 북경 여행길에서 들렀던 북한 음식점 해당화의 종업원을 다시 평양에서 만난 것. 작은 해프닝으로 시인의 기억속에 남아있던 '은숙 동무'와의 재회는 시인에게 '만남'의 신선한 즐거움이 되었다."북한 사람들이 호전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쟁보다 평화를 갈망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북한의 사회 변화 중심인 386세대들은 매우 자유롭고 자신들의 한계를 드러내는데도 스스럼이 없었어요. 지금 북한이 변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 문화일반
  • 김은정
  • 2003.08.19 23:02

[한문속 지혜] 덕(德)에 멱감기

선비는 몸을 깨끗이 씻고 덕(德)으로 목욕을 한다儒有?身而浴德이라 유유조신이욕덕《예기(禮記)》〈유행(儒行)〉편에 나오는 말이다.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강이 있는 풍경을 그린 화가가 그림을 그린 후 그림의 상단에 "영욕애하(永浴愛河)”라는 제화(題畵)의 글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永浴愛河! "사랑의 강물에 영원히 목욕하라”는 뜻이다. 약간 속스러운 감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멋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평생을 사랑의 강물에 목욕하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예(禮)를 기록한《예기》가운데 선비의 행실에 대한 글이 실려있는〈유행(儒行)〉편에서는 "선비는 덕으로 목욕을 해야한다”고 했으니 선비에게 있어서 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덕이란 내가 쌓아 놓은 것으로 인하여 남에게 베풀어지는 바를 일컫는 말이다. 그래서 덕을 '득(得)'이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내가 몸을 깨끗이 하고 인품을 수양하여 내 마음 안에 쌓아 놓은 것이 많이 있게 되면 그 쌓인 것이 밖으로 윤기를 내뿜어서 나를 대하는 다른 사람이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감화도 받게 된다. 그게 바로 덕의 힘이다. 그러한 덕의 힘을 갖추기 위해서는 날마다 덕에 잠겨 목욕을 하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살기가 어디 쉬운 일이랴! 특히 오늘날 같이 험한 세상에서는. 그러나, 선비는 힘들어도 덕을 쌓아 야 한다. 돈으로 목욕하려 들지 말고 덕으로 목욕할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다. 儒:선비 유 ?:씻을 조 浴:목욕 욕 德:큰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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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03.08.1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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