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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교수의 한문속 지혜찾기] 나날이 새롭게

湯之盤銘에 曰: "苟日新하고 日日新하며 又日新하라"하더니라탕지반명 왈 구일신 일일신 우일신상(商)나라 탕(湯)왕의 세수 대야 바닥에 새겨져 있는 글에 이르기를 "진실로 새롭게 하고 날마다 날마다 새롭게 하며 또 날로 새롭게 하라"라고 하였다.《대학(大學)》의 전(傳) 10장 중 세 번째 장인 석신민(釋新民:'新民'에 대한 풀이)장에 나오는 말이다. 상(商)나라는 곧 은(殷)나라를 말한다. 은나라의 탕(湯)왕은 하(夏)나라의 부패한 군주인 걸(傑)왕을 몰아내고 오늘날의 하남성 안양현으로 도읍을 옮김으로써 은나라의 기반을 확실하게 다진 왕이다. 그는 나라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새롭게 해야 한다는 생각아래 청동으로 만든 세수 대야의 바닥에 이 말(苟日新, 日日新, 又日新)을 주입(鑄入)해 놓고서 매일 아침 세수할 때마다 그것을 읽으며 자신을 경계하곤 하였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그는 새로운 상나라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새로워진다는 것!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는 정말 어렵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지금까지 살아온 구습이라는 것이 있는데 몸에 익은 그 구습을 하루아침에 벗어내고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고, 나아가 건실한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며 위대한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국민 각자가 날로 새로워지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자신은 새로워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채 구습에 안주해 있으면서 주변이 새로워지기를 바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새 대통령이 뽑혔다. 그리고, 2003년 새해가 밝았다. 우리 국민 모두가 날로 새로워짐으로써 나라가 날로 새로워지기를 기원하도록 하자. 湯:끓을 탕 盤:쟁반 반 銘:새길 명 苟:진실로 구

  • 문화일반
  • 전북일보
  • 2003.01.01 23:02

[박남준시인의 새해편지] 우리 새해에는 ‘광장’을 만들자

이렇게 모악산 자락에 들어와 살게 된지도 어언 10여년을 넘겼다. 매순간을 처음처럼, 그 초발심의 마음처럼 살기는 어려운 것이지만 한달 두달 달력을 넘길 때마다 한해 두해 어느덧 해가 가고 또 바뀌어 갈 때마다 너 혹 부끄러움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 아니냐 반문해본다.며칠전 일요일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산에 가지 않겠느냐는 말, 새해 해돋이를 보려고 사전답사를 해야겠는데 모악산에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 어디 다른 곳을 찾아보려 한다는 것이다. 선배와 함께 운암호를 끼고 돌며 국사봉에 올랐다.능선을 타고 오르는 동안 그 아래 펼쳐지는 구불구불 운암호의 물길이 맑고 투명한 겨울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멀리 겹겹의 산능선들 우리도 이제 이렇듯 어깨동무를 하고 서로를 껴안으며 나아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내 안과 밖의 불화를 일깨운다. 저 산을 넘고 넘어 저 멀리 반달곰의 지리산이 있을 것이다. 남으로 노루들이 뛰노는 한라산이 저 너머 바다건너 있을 것이며 북으로 나 아직 발걸음 한번 새겨보지 못한 금강산이며 묘향산 그 너머 흰눈의 장관을 이루고 있을 천지의 백두산이 있을 것이다.거기 산 위에 서서 나무를 바라보았다. 한 그루 나무로 태어나 자라오기까지의 시간을 생각했다. 때로 바람 앞에 떨며 가지가 꺾이고 흔들렸을 날들을 떠올렸다. 더운 여름날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며 지친 것들을 쉬게 해주었을 가지 많은 나무의 그늘을,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던 나무를 생각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도 때로 그러하리라. 가지 많은 나무처럼 품안이 너그러워져서 함께 껴안고 나가야 할 것들이 많아지는 것이리라. 돌이켜 보면 나이 사십에 들어서면서부터 남의 말을 귀담아 듣는 일도 들어주는 일도 귀찮아지기도 했다. 불쑥불쑥 노여움이 잦았던 것도 사실이다. 내 생각이 더 옳다고 남의 말을 무시해버리는 일들도 많았다.거리로 나가본다. 거릴 것 없는 옷차림과 머리빛깔의 젊은 청년들을 대할 때 처음에는 거부감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 생각 이내 바뀌고 말았다. 나도 좀 젊었으면 저렇게 해볼 수 있었을까. 아니다 아니었을 것이다. 내 젊음이 그렇게 골방 속에서 유폐되며 흘러갔듯 나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이름 붙여진 광장하나 없는 내가 사는 전주의 집회에, 광화문의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추모시를 낭송하면서 나는 다시 생각했다. 이제 우리 사회도 광장으로 나아가는 사회가 되고 있구나. 그건 성숙한 시민사회로 들어서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거기 나온 아이들을 보며 청년들을 보며 이 나라의 젊은 내일과 희망이라는 믿음을 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그건 저 젊은이들이 개울을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되는 일일 것이다. 강을 건너는 다리가 되어주는 일일 것이다. 거친 바다를 건너는 튼튼한 나룻배가 되는 일일 것이다.그러기 위해서는 이 땅이 올바르게 가는 길에 한 자루의 삽이나마 들고 작은 땀을 보태야 하리라. 새해 뜨는 해를 바라보며 다짐해야 할 일이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 그건 자신이 살아온 길 위에 서서 조용히 반문하며 아이들에게 돌려 주어야할, 이제 비로소 해야할 일을 찾아 다시 주먹을 불끈 쥐어보는 일일 것이다. 이 땅의 희망처럼 솟는 아침해처럼 붉은 주먹을.../빅남준(시인)* 모악산방에 살고 있는 박남준씨는 57년 전남 법성포에서 태어났으며 84년 시 전문지 ‘시인’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1990), ‘풀여치의 노래’(1992),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1995),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2000)이 있고, 산문집으로 ‘쓸쓸한 날의 여행’(1993),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1998), ‘별의 안부를 묻는다’가 있다.

  • 문화일반
  • 전북일보
  • 2003.01.01 23:02

[이제는문화산업이다] 2003 전북문화전략, '눈에 띄네!'

-영상의 옷을 입는다지난 2001년 시작된 영화돌풍은 전북 문화지형에도 큰 변화를 안겼다. 영상산업 육성이 전북도는 물론 각 시군의 전략산업으로 급부상한 것. 전북도는 올 초 ‘전라북도 영상산업육성 중장기 계획’용역을 발주, 영상산업 육성 사업의 틀을 짜고 본격화한다. 부안 영상테마파크는 물론 전주권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종합촬영장 유치, 변산반도의 서부 해안권과 섬진강 상류에서 남원∼임실∼전주에 이르는 동부 내륙권을 벨트화시킨다는 것이 도의 구상. 도는 영상산업의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육성을 위해 자문기구인 영상산업추진위원회를 발족했으며, 관련 조례를 제정·운영할 방침이다.전주시도 제4회 전주국제영화제와 영상위원회 활동을 통해 ‘영화도시’이미지를 확고하게 굳힐 계획. ‘자유 독립 소통’을 주제로 4월 25일부터 5월 4일까지 10일동안 열리는 전주국제영화제는 전주 고사동 영화의 거리를 집중, 부각하고 보다 대중적이고 쉬운 영화제를 꾸려 시민 곁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선다.-문학적 자산도 산업문학작품 속 배경이 되는 지역이나 작가를 조명하는 사업이 더욱 활발하게 전개된다. 남원시의 혼불문학마을 조성사업은 故 최명희의 작품 ‘혼불’의 주 무대이자 작가의 고향인 사매면 노봉마을에 49억원을 투입, 유물전시관과 기념탑 등을 가꾸는 대규모 문화사업. 시는 이와 함께 서도역사 등 소설의 주요 배경지로 등장하는 각종 시설물을 매입, 활용할 계획이다.전주시는 내년에 전주시 풍남동 최명희 생가터 인근 부지 3백여평에 국비 3억원 포함, 15억원을 들여 한옥 형태의 문학관을 짓는다.김제시도 조정래씨의 역사소설 ‘아리랑’배경지인 부량면 용성리에 아리랑문학관을 건립하고 근대사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한다. 옛 벽제초교를 리모델링, 지난해 11월 완공된 문학관은 3월 개관식을 갖고 근대사의 흔적이 담긴 전시시설과 문화예술인들의 창작 스튜디오로 활용된다.하지만 이들 사업이 군산 채만식기념관과 고창 미당시문학관 처럼 ‘건물만 있고 기념은 없는’문학사업으로 흐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문화계의 지적이다.-지역 역사와 문화는 곧 콘텐츠문화산업 중 각광받는 분야가 바로 콘텐츠 발굴이다. 문화상품화를 위한 콘텐츠 개발에 주력하는 자치단체도 있다. 뮤지컬 ‘서동요’와 ‘무영탑’등을 문화상품화하는 익산시와 동학상징 캐릭터 개발에 나서는 정읍시.익산시는 문화예술인과 문화 관련 전문가 등 9명으로 꾸려지는 문화산업자문위원회를 두고 뮤지컬 ‘서동요’와 ‘무영탑’을 전국적인 문화상품으로 개발한다. 이 사업은 문화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문화원형 콘텐츠화’사업으로 채택됐다.익산시는 7월부터 12월까지 매주 수요일 익산솜리문화예술회관에서 상설 공연으로 서동과 선화공주·아사달과 아사녀의 사랑 이야기를 펼침으로써 백제 문화의 중심지였던 익산의 문화적 위상을 높일 계획이다.정읍시는 1억5천만원을 들여 갑오동학제를 여는 것을 비롯해 동학농민혁명을 상징하는 캐릭터를 개발, 문화관광상품으로 육성한다는 전략. 올해 예산만 3천만원을 들여 용역을 마치고 생활소품 등 친숙한 상품을 개발할 예정이다.-축제, 지역특화가 관건문화관광부는 해마다 문화관광축제를 선정, 지원하고 있지만 도내 축제가 그 대상에 뽑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다. 축제를 놀고 먹는 단순한 ‘유희의 장’으로 생각하는 비문화적 행정이 각 지역이 안고 있는 문화적 자산과 특징을 축제에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하지만 김제 지평선 축제를 비롯해 무주 반딧불축제, 남원 춘향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2년 연속 문화관광축제로 선정돼 시사하는 바가 크다. ‘00아가씨’등 미인선발대회나 먹을거리 장터를 연상하는 여타 축제와는 달리 김제는 농경문화와 너른 평야, 무주는 청정 이미지, 남원은 고전에 바탕을 둔 사랑이야기 등 차별화된 프로그램 운영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생활 속으로’를 주제로 9월 27일부터 10월 26일까지 한달동안 전주에서 펼쳐지는 2003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도 눈에 띈다. 서예 예술의 멋과 한자 문화의 정수를 한자리에서 만끽할 수 있는 서예비엔날레는 전북의 서예술을 특화, 세계화하는 창구로 터닦음하고 있다.

  • 문화일반
  • 임용묵
  • 2003.01.01 23:02

[이제는문화산업이다] 문화자산 지역경제 새로운 활력소

1960년대 초반 경제 상황이 비슷했던 한국과 가나, 두 나라가 30년 뒤 엄청난 발전 격차를 보인 결과를 놓고 세계적인 석학 사무엘 헌팅턴은 그 결정적인 요인을 ‘문화’라고 분석했다. 한 사회의 성공을 좌우하는 잣대가 문화라는 이야기다. ‘문화적 가치가 21세기를 지배한다’는 세계 석학들의 목소리가 아니더라도 금세기는 문화가 산업이 된 시대다. ‘문화산업’이라는 말이 전혀 낯설지 않다.현 정부가 지난 2000년 ‘문화예산 1%’시대를 연 뒤 문화산업에 기울인 노력은 눈에 띌 만큼 유별났다. 민선 3기에 접어든 전북도 또한 남원∼임실∼전주∼부안을 잇는 영상산업벨트 구축을 문화산업의 화두로 내세웠다.문화를 산업으로 이어내는 일부 자치단체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전주시는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전통문화를 산업화 하고 있다. 수년 동안 이어진 전주의 전통문화산업은 한 걸음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고, 산업의 거점이 되는 문화시설 건립은 진지한 고민을 반복해 낳은 결실이다. 고창군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고창 고인돌군을 축제와 관광산업으로 연결시키고 있고 남원시도 고전 소설 속 주인공인 춘향을 ‘절개의 여인’으로 이미지화, 춘향제를 전국적인 축제로 만들어냈다. 이들 시군의 움직임이 현 시점에서 성공했다고 장담할 순 없지만 타 자치단체보다 한걸음 먼저 문화산업에 눈을 뜨고 정책에 반영, 작지만 알찬 결실을 하나씩 쏟아내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하지만 문화를 돈으로만 셈하려는 대다수 자치단체의 그릇된 사고는 적잖은 폐해를 낳고 있다.각 자치단체가 문화예술회관을 비롯한 각종 기념관을 지어놓고도 프로그램 개발과 창작은 외면, 대부분 외형만 그럴듯할 뿐 시설 유지에 급급한 한 게 사실이다. 건물만 덩그렇게 서 있는 기현상은 자치단체의 문화적 불균형과 과시행정이 낳은 기형의 상징인 셈이다.민선자치 이후 우후죽순으로 팽창한 축제도 마찬가지다. 각 자치단체가 지역의 문화자산을 문화상품으로 연계하는 창구로 축제를 기획하고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서둘러 외형만 화려하게 포장, 축제의 ‘외화내빈’현상을 빚어내고 있다.산업·경제적 논리로 문화를 바라보는 자치단체의 왜곡된 시각이 문화를 건강하게 발전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황폐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이제는 ‘개발논리’로 문화를 접하는 과도기적 태도와 현상을 버려야 할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문화를 문화 그 자체로 인식하고 산업으로 연계시킬 때 문화의 가치가 높아진다는 인식의 전환점을 마련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계미년, 올해도 각 시마다 군마다 지역 문화전통과 정체성을 앞세워 문화산업에 뛰어든다. 영상산업을 전면에 내세우는가 하면 문학을 관광상품화 하려는 곳도 있고,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캐릭터 상품으로 개발하려는 시군도 있다. 그러나 기실 그것들이 가져올 경제적 효과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누구도 제대로 가지 못한 전인미답의 길이기 때문이다. 미래 사회를 이끌 가능성이 높은 문화산업이 지역경제를 견인할 희망으로 솟구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문화 전문가들은 문화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인적 자원이라고 조언한다. 인적 인프라 구축이 자치단체의 문화경쟁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어있다는 것이다.문화인력을 양성하는 행정의 발상 전환과 인적 인프라 구축. 여기에 전북이 갖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품고 있는 문화자산의 원형을 보존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산업적 접근이 필요한 시기다.

  • 문화일반
  • 임용묵
  • 2003.01.01 23:02

[영화세상] 신년 극장가 볼만한 영화

신년을 맞은 극장가엔 흥행 대작들이 즐비하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나갔다가는 낭패보기 십상. 좋다는 얘기만 듣고 몰려갔다가 매진으로 허탕치거나, 영화 선택을 잘못해 극장을 나오며 썰렁한 눈초리만 주고받을 수도 있다. 게다가 각 영화관마다 다른 할인혜택을 챙기지 못한 과오를 저질렀다면 동행인과의 관계 회복(?)은 더 심각해진다. 지난해처럼 영화 열기가 뜨거웠던 해도 드물다. 한 해에 78편의 작품이 만들어지고 점유율이 50%에 육박한 이 환경은 이제 자부심을 가질만하다. 하지만 올해 도내 극장가의 신년은 외색이 짙다. 여전히 반지의 괴력과 꼬마 마법사의 무용담이 극장가를 강타했기 때문이다. 스크린을 많이 가진 곳일수록 증세는 심해 좀처럼 영화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아쉬운 속내에도, 선택에 있어 가장 안전한 것은 역시 흥행작품. 두루두루 평균 이상의 평점을 받을 만한 영화로 ‘반지의 제왕 : 두개의 탑’(피터 잭슨)과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크리스 콜럼버스)을 꼽을 수 있다. 지난해 초, 판타지 블록버스터의 괴력이 얼떨떨하게 만들더니 2003년에는 그 이상의 내공으로 후려치는 형국이다. ‘반지∼’는 전편보다 더욱 스펙타클한 화면과 사운드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지만 웅대한 스케일처럼 상영시간도 2시간 57분이나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스카이다이빙, 산악자전거, 스케이트 보딩, 스노우 보딩 등 여러 종류의 익스트림 스포츠를 한 스크린에서 만끽할 수 있는 ‘익스트림 OPS’(크리스찬 드과이)도 추천 영화. 짜임새가 부실하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시원한 겨울 스포츠를 대리 충족할 관객에게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80년대 고교생의 알싸한 추억을 되살리고 싶다면 ‘품행제로’(조근식)를 권한다. 고교 캡짱 중필의 학원무림신화와 중필을 사이에 둔 두 여고생의 삼각관계가 명랑만화처럼 펼쳐지며 가수 김승진, 롤라장, 디스코 바지 등 80년대 히트상품 퍼레이드가 야릇한 향수를 자극한다. 90년대 대학생의 성풍속도를 엿보려는 이들은 ‘색즉시공’(윤제균)이 좋다. 임창정·하지원이 출연하는 이 영화는 한국판 ‘아메리칸 파이’, 대학생 버전의 ‘몽정기’(정초신)다. 정준호·김윤진과 더불어 올해 최고 다작배우로 꼽히는 설경구의 ‘광복절 특사’(김상진)는 그의 이전 출연작 ‘오아시스’‘공공의 적’과 비교해 감상하는 것도 독특한 재미. 그 재미는 남북이 특급 공조한 코믹 프로젝트 ‘휘파람 공주’(이정황)도 만만치 않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개봉된 ‘007어나더데이’(리 타마호리)가 한국을 비하하는 일부 장면으로 비난받았다면, 이 영화는 반미에 가깝다. 남북한이 힘을 모아, 남북 화해무드를 저지하고자 하는 CIA를 물리친다는 뼈대를 갖고 있기 때문. 다소 황당하지만 속은 시원해진다. 북적이는 극장을 찾는 것뿐 아니라 한가로이 TV로 영화를 즐기는 것도 이번 연휴는 손쉬운 즐거움이 되겠다. 특히 철지난 영화를 놓친 분이라면 여느 때와 다른 지상파 방송 3사의 특선 영화를 눈여겨보는 것도 좋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 ‘에린 브로코비치’,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등이 안방에서 새해를 맞이할 시청자의 선택을 기다린다.

  • 문화일반
  • 최기우
  • 2003.01.01 23:02

[영화세상] 흥행 실패한 영화에 ‘프로포즈’

“영화 좋다”“간판 내렸다”의 사이. 개봉영화들의 빛과 어둠이 명확한 것도 한국 영화산업의 현실이다. 지난해 개봉된 영화 중에도 흥행성적 저조나 매머드급 영화의 개봉으로 채 1주일도 채우지 못하고 간판을 내린 작품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그 속상한 작품들을 찾아 ‘프로포즈’를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패자부활전’정도로 치부한다면 곤란하다. 흥행영화가 안기지 못한 ‘부족한 2%’를 채울 수 있는 ‘깨소금’같은 영화들이기 때문이다.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논리에 밀려 극장가에서 외면 당했던 영화 몇 편을 소개한다. 대표적인 한국영화는 홍경인·정준·여현수 등 섬마을 삼총사가 세상을 향해 날리는 골든 펀치 ‘남자, 태어나다’(박희준)와 서해안 작은 포구에서 벌어진 중년 남녀의 하룻밤 사랑 이야기 ‘낙타(들)’(박기용)이다. 단 하루만에 극장에서 모습을 감춰 올해 가장 노골적으로 홀대받았던 ‘남자, 태어나다’는 ‘챔피언’(곽경택)의 돌주먹은 아니지만 순박한 소년들의 ‘꿈 찬 아기주먹’이 희망을 엿보게 한다. ‘낙타(들)’은 ‘어설픈 불륜영화’라는 혹평 속에서 제16회 프리보그 국제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의 작가인 허버트 셀비 주니어가 원작자인 ‘레퀴엠 ’(대런 아로노프스키)도 놓치기 아깝다. 마약과 TV·게임·섹스 등 무언가에 중독될 수밖에 없는 세상사와 무기력한 현대인들을 마약에 빗댄 일화다. 이외에도 동성애 영화의 상큼한 도발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찰스 허먼 윔펠드)와 야릇하고 신비한 시간 관념으로 관객을 헷갈리게 하던 ‘도니 다코’(리차드 켈리), 남자 수중발레단 이야기 ‘워터 보이스’(야구치 시노부), 거장 감독 7명이 모여 만든 ‘텐 미니츠 트럼펫’(베르너 헤어조크), 남성 중심 세계에 맞서는 씩씩한 소녀의 강펀치 ‘걸 파이트’(카린 쿠사마) 등도 홀대받은 상처를 어루만져줄만 하다. 극장가에서는 찬밥신세였던 작품일수록 비디오나 DVD는 날개가 달릴 가능성이 높다. 오직 선착순 1명만이 행운아. 좋은 영화를 위해서라면 뛰자.“두들겨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니…”

  • 문화일반
  • 최기우
  • 2003.01.01 23:02

계미년 양띠해 띠풀이, 동서양 막론하고 온순한 이미지

2003년은 간지로 계미년(癸未年)이니 양띠 해다. 양(未)은 12지 중 여덟번째 동물로서, 시각으로는 오후 1-3시를 가리키며 달(月)은 6월에 해당한다. 방향으로는 남남서를 지키는 신이다.양은 흔히 순박하고 온순한 동물이라 해서 양띠 사람 또한 온화, 온순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이 해에 며느리가 딸을 낳아도 구박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양에게 부여된 이런 긍정적 이미지는 서양에서도 비슷하다. 성서에는 무려 500회 이상이나 양이 반복적으로 인용되고 있다. 이 때문인지 양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제사의 희생물로 애용됐다. 다른 띠동물에 비해 양은 한국문화와 친연성이 덜하다. 아무래도 양은 농경민보다는 유목민과 가까운 동물이기 때문인 듯하다. 따라서 양과 관련된 민속 또한 적은 편이다.통일신라 시대에 축조된 십이지신상을 보면 다소곳이 꿇어앉은 양이 형상화돼 있다. 경기도 개풍군 고려시대 고분인 수락암동 1호분 현실 서벽에는 양을 형상화한 벽화가 보인다.양꿈 해몽이란 것도 있다. 꿈에 양을 죽여 신에게 바치는 것은 어떤 진리를 깨닫거나 일이 성사됨을 의미한다고 한다. 양젖 짜는 모습을 보면 사업에 성공한다고도 한다.새해 첫 양날(혹은 염소 날)은 상미일(上未日)이라고 하는데 전남 지역에서는 염소가 방정맞고 경솔하다 해서 해안지방에서는 출항을 삼가기도 한다. 양은 약으로도 애용되었다. 한의학에서는 양은 양(陽)을 돋우는 보신보양 동물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우리의 대표적 식육(食肉)이 쇠고기인데 반해 고려 말 양고기를 으뜸으로 삼는 몽고족이 들어옴으로써 양요리 또한 덩달아 수입됐다.쥐는 양의 배설물을 가장 싫어한다. 그것이 조금만 몸에 묻어도 몸이 썩어들어가고 털이 빠진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쥐띠는 양띠를 피한다. 반면 쥐띠와 원숭이띠, 용띠는 잘 어울린다.양띠는 토끼띠, 돼지띠와는 궁합이 잘 맞는 편이라는데 그 설명이 재미가 있다. 토끼는 코가 양, 돼지의 그것을 반반씩 닮아 그렇다는 것이다. (자료제공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 연구원)

  • 문화일반
  • 전북일보
  • 2003.01.01 23:02

[역사속 오늘] 1월 1일

▲일력(日曆)1월 1일(水). 음력 11월 29일. 신정(新正) ▲출생수필가 전혜린(田惠麟.1934-1965), 근대 올림픽 창시한 프랑스 귀족피에르 드 쿠베르탱(1863-1937), 미국 연방수사국(FBI) 창설자 존 에드가 후버(1895-1972), 20세기폭스사 설립한 헝가리 출신 미국 영화제작자 윌리엄 폭스(1879-1952) ▲타계프랑스 샹송가수.영화배우 모리스 슈발리에(1888-1972), 프랑스 4공화국 초대 대통령 오리올 뱅상(1884-1966) ▲국내외 주요사건 1115년 = 여진족 추장 아구다(阿骨打), 중국 금(金)나라 건국 1785년 = 영국 신문 `더 타임스'(The Times) 창간 1804년 = 아이티, 프랑스로부터 독립 1863년 =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의 노예해방선언 발효 1883년 = 제물포항 개항하며 인천항으로 개칭 1886년 = 영국, 미얀마를 식민지로 편입 1896년 = 조선, 음력(陰曆)대신 양력(陽曆) 사용 시작 1897년 = 서울에 석유 가로등 첫 등장 1900년 = 대한제국, 만국우편연합 가입. 나이지리아, 영국의 보호령으로 편입 1901년 = 호주연방국 출범 1905년 = 경부선 철도 전구간 개통. 파리-블라디보스토크 시베리아 횡단철도 개통 1911년 = 일본 경찰이 민족운동 탄압위해 신민회원 다수를 체포 고문한 `105인 사건' 발생 1912년 = 조선표준시, 일본표준시와 동일하게 맞춰짐. 쑨원(孫文), 난징(南京)에서 수립된 중화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에 취임 1917년 = 이광수(李光洙), 장편소설 `무정'(無情)을 매일신보에 연재 시작 1922년 = 상설 국제사법재판소, 네덜란드 헤이그에 개설 1945년 = 프랑스, 유엔 가입 1946년 = 히로히토(裕仁) 일왕, 자신의 신격성을 부인하고 인간임을 선언 1949년 = 미국, 대한민국 정부 공식 승인 1951년 = 중공군 6개군단, 38선 넘어 대규모 공세 개시 1955년 = 문예지 `현대문학'(現代文學) 창간 1956년 = 수단, 영국으로부터 독립 1958년 = 유럽경제공동체(EEC) 발족 1959년 = 피델 카스트로, 쿠바혁명 성공 1960년 = 카메룬, 프랑스로부터 독립 1962년 = 정부, 연호를 단기(檀紀)에서 서기(西紀)로 변경 1963년 = 부산시, 직할시로 승격. 군사정부, 민간인의 정치활동 재개 허용 1964년 = 정부, 미터제 실시 1967년 = 대구 서문시장에 큰불, 점포 337개 소실 1968년 = 국보 난중일기(亂中日記) 도난(1월 9일 회수) 1971년 = 정부, 근대화백서(1961-1970년) 발간 1972년 = 정부, 언론자유 제한위해 프레스카드제 도입 1975년 = 미국 대법원, 워터게이트 사건 관련자 4명에게 유죄 선고 1978년 = 동력자원부 발족 1979년 = 미국, 자유중국과 단교 및 상호방위조약 파기하고 중공과 수교 1981년 =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로 개칭 1983년 = 고위공직자의 재산등록 등을 규정한 `공직자 윤리법' 발효 1984년 = 브루나이, 영국으로부터 독립 1987년 = 농수산부, 산림청을 흡수해 농림수산부로 확대 개편 1988년 = 김일성, 신년사에서 남북연석회의 제안 1989년 = 김일성, 신년사에서 남북지도자급 인사로 구성된 `남북정치협상회의'를 제의. 해외여행 자유화 전국민 대상으로 확대 1990년 = 정부, 문화공보부를 폐지하고 문화부와 공보처 신설. 환경청, 환경처로 승격. KBS, 문자다중방송 실시 1995년 = 체코슬로바키아, 체코와 슬로바키아 공화국으로 분리 1994년 = 서울시, `서울 정도(定都) 600년의 해' 선포.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발효 1995년 =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정부, 쓰레기 종량제 전국에서 실시 1996년 = 정부, 146개 농산물에 대해 원산지 표시제 실시 2000년 = Y2K(밀레니엄버그) 대란 우려 불발 2002년 = 유럽 단일통화인 유로(Euro) 공식 사용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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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01.01 23:02

[2003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작 "로드픽션"

로드픽션- 디스토피아를 찾아서-1. 아버지의 구속 소식을 전해 듣던 날 나는 수(秀)와 함께 이국의 호텔 안에 있었다. 아버지가 구속되었다고, 혹시 알고 있었느냐고 수화기 저 편에서 동생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이명처럼 울렸다. 나는 어쩌면 잠결에 허튼 소리를 들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나중에 다시 전화할께요. 내게 별다른 정보가 없음을 깨달은 동생이 맥빠진 목소리로 짧게 전화를 끊었다. 그 순간 머리 속을 재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짧은 단상들이 어쩔 수 없이 나를 혼란으로 이끌고 갔다.정지된 실물 크로키처럼 재빠르게 지나가는 몇 개의 단상들은 꿈이 아닌 현실이 되어 견고하게 서 있었다. 아버지는 흡혈귀다. 무언가에 기생하여 끊임없이 빨아먹고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아마도 상대는 선금을 주고 원고를 떼였거나 어떤 종류의 중대한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 당한 자일 것이다. 그의 험난한 고통의 이력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심원하다못해 뿌리째 박혀 헤어나지 못하는 오랜 간난함을 통털어서 나는 그것들을 불시착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한 마리 벌레가 된 것처럼 자신이 징그러워지기 시작했다. 2. 한 낮의 태양은 크고 위대했다. 기차는 도심의 변두리 한 켠으로 나를 데려다 놓고 떠났다. 미로처럼 구부러진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나는 뜨거운 대로 위에 서 있는 익명의 인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잔인하게 작열하는 태양 빛을 따라 걷는 동안 세계는 목마른 침묵에 휩싸여 거리를 굽어보고 있었다. 흐린 먼지를 뒤집어 쓴 플라타나스 잎들 속에서 가볍고 신속하게 노란 택시 한 대가 나타나 멈추어 섰다. - P교도소로 갑시다. 짧고 건조한 내 억양에 택시기사가 백미러로 힐끗 이 편의 얼굴을 훑어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 시선에서 얼핏 연민이라고 부를만한 어떤 느낌이 묻어져 나오는 것을 나는 애써 외면하지 않았다. 자동차 앞쪽으로 언덕을 오르는 마을 버스 한 대가 힘겨웁게 아스팔트 위를 오르고 있었다.이미 만원이 되어 버린 좁은 버스 안에서 무더위에 지친 사람들의 얼굴에 섞여 어린아이를 등에 업고 손잡이에 매달린 젊은 여인의 눈동자가 무심히 이 편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여인의 좁은 등에 업힌 잠든 아이의 꺾여진 고개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아이를 업은 여인의 얼굴은 더위 탓에 반쯤 일그러져 있었다. 여자의 지치고 고단한 얼굴은 젊은 날의 내 어머니를 닮았다. 대기실 난로 앞에서 스물 세 살의 젊은 어머니는 이제 막 젖을 뗀 어린 아이를 둘러 업고서 젊은 아버지의 면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 날은 억수로 추븐디 면회는 댕기야 쓰겄고 어린 너거를 엎고 순서를 기다릴 때는 을매나 춥던지. 발이 꼭 언 동태마냥 얼얼한디 똑 죽을 맘으로 늬 아부지 옥바라지를 댕겼다 아이가. 어머니는 젊은 날을 떠올릴 때마다 유난히 추웠던 교도소 면회대기실을 회상하곤 했다. 고향에서 식을 올린 후 서울로 온 지 얼마 안되어서 어머니는 아버지의 옥바라지로 신접살림을 시작했다. 한 번은 정 살기가 힘들어가 늬 아부지 서가를 죄 뒤져 이광수 전집을 찾아 들고 청계천에 내다가 안 잽혔나. 그 때만 해도 책이 돈이 되는 시절이라, 금박으로 테를 두른거라 좁은 소견에도 집안에 있는 물건 중에 그래도 제일로 값이 나가겠지 싶었제. 청계천 헌 책방에 들어가 아무나 주인을 붙잡고 다짜고짜 통사정을 했제. 사정이 있어가 부득이 책을 잽혀야 쓰것는디 돈이 되는대로 꼭 배로 쳐주고 찾으러 올 테니까네 그 때까지만 기다려달라꼬 신신당부를 한기라. 그 길로 책을 잽히고 얻은 돈으로 중고 미싱을 사다가 부지런히 바느질감을 얻어 근근히 너를 멕이고 입히고 안 했나. 참말로 그 때 생각허믄 인자도 눈물이 난다. 그래 겨우 책 찾을 돈을 마련했는데 어쩌다보니까 딱 책 한 권 값이 모자라는 거라. 느그 아부지 출소 날은 낼 모레로 다가오고 책 잽혀서 돈을 썼다는기 발각되믄 불호령 떨어질 거이 분명하고 해서 얼마나 맴이 졸이든지. 하는 수 없이 책방 주인을 찾아가 사정을 했제. 책값을 마련하긴 했는데 어찌하다보니까네 딱 한 권 값이 빈다꼬, 오늘은 그냥 돌려주시면 내 은혜를 잊지 않고 꼭 마저 갚아드리겠다꼬. 그랬더니 책방 주인이 내 얼굴을 한참동안 요래 훑어보더니 하는 말이 아지매요, 무슨 사정인줄은 몰라도 아지매 얼굴을 보니 참말로 이런 데 나올 분이 아인데 안됐심더. 괘념치 마시고 그냥 가져가십시요 이라는기라. 내가 어찌나 고맙든지 아마 평생 그 아저씨 얼굴을 못 잊을 끼다. 그 길로 책을 받아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펑펑 안 울었나. 왜 그런지 끝도 없이 자꾸만 눈물이 안 나오더나...... 기억은 빠르게 햇볕 속에서 이내 부서져 버린다. 택시는 정문 앞에 나를 내려놓고 간단히 떠났다. 정문 입구는 작은 소읍을 연상시킨다. 작은 국밥집과 때묻은 행상들, 그리고 먼지에 덮여 윤기를 잃은 흑백의 풍경들이 낡은 셋트장처럼 공허해 보인다. 숲 사이로 난 하늘빛은 창백하도록 푸르다. 정문 앞쪽에서 면회소로 향하여 숲 속으로 난 작은 길을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소풍을 나온 사람들처럼 경쾌해 보여서 나는 순간적으로 조금 어리둥절해진다. 한 무리의 사람들 틈에서 경쾌한 차림의 남녀가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서 숲길을 스치듯이 걷고 있다. 무릎 아래께가 찢어진 연한 청바지 차림의 여자와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남자가 어깨동무를 하고서 숲길을 걷고 있는 모습은 다정해 보인다. 교도소 안의 면회소로 향하는 여로가 아니라면 그들의 행보는 누가 봐도 다정한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쯤으로 보인다. 아마도 그들 일행중의 누군가가 자유를 박탈당한 채 감옥소 안에 갇혀 있는 듯. 그들의 분별 없는 옷차림에서 나는 엉뚱하게 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항공기의 거듭된 연착으로 인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컴컴한 새벽이었다. 공항을 빠져 나오자 울긋불긋한 원색의 복장을 한 두 명의 여인이 환히 미소지으며 목에 꽃다발을 걸어주었다. 그들의 환영의식 속에는 열대의 음습한 열기가 그대로 배어 나와서 비로소 이국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생생한 현실로 다가왔다.거리에는 새벽녘이 되어서도 쉽사리 식지 않는 열대의 더운 기운이 환생한 원주민들처럼 우리를 맞이했다. 셔틀버스를 타고 숙소인 호텔로 이동할 때에 수가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습지 않아? -뭐가?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자기 위해서 치루어야 할 절차가 너무 복잡하다는 거 말이야. 수의 말을 들으며 나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우리의 비밀 여행을 생각했다. 차창 밖 어둠 속으로 도마뱀들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 네모나게 설계된 전신주들의 모습이 희미하게 지나쳐 갔다. 숙소인 호텔의 실내에 들어서자 창가에 비현실적으로 화려한 원색의 열대과일들이 시원의 방문객을 환영하듯 신비롭게 놓여 있었다. 수가 창가로 다가가 붉은 빛이 선명한 이름 모를 과일을 한 입 베어 물며 말했다 -먹어볼래? 나는 수가 먹다 만 붉은 과일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기 시작했다. 태초의 아담과 이브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선악과 의식을 치루었지만 네모난 전신주를 타고 와서 여자를 먼저 유혹했을 도마뱀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맛이 없어. 나는 수에게 과일을 도로 건네주며 말했다. 현란한 빛깔의 열대과일들은 결정적인 달콤함이 빠져버린 것처럼 왠지 싱거운 맛이었다. 수는 과일을 호텔 방 아무데나 내던져 버렸다. 수와 나는 멀고 긴 여행을 떠나왔다. 수가 내게 처음 여행을 제안했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동의했다.언제부터인가 나는 나를 둘러싼 단단한 것들로부터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선악과를 먹고 나자 수와 나는 원죄를 알아버린 사람들처럼 갑자기 조금 어색해졌으므로 냉장고에서 양주를 꺼내 마시기 시작했다. 웬일인지 눈물이 조금 나오려 했지만 이내 평온한 기분이 되었다. 취기로 몸놀림이 자유스러워지자 수와 나는 침대로 들어갔다.수와 나는 어색하고 뻣뻣한 자세로 나란히 누웠다. 처음에 나는 수를 천천히 애무한 후 정상위로 결합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긴장한 나머지 애무는 부자연스럽고 불편했으며 내 얼굴은 저절로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그러지마. 이제 우린 곧 하나가 될거야. 나는 고개를 돌리려는 수를 달래듯 속삭이며 말했지만 수는 긴장으로 온 몸이 딱딱하게 굳어져 버렸다.나는 이미 단단해진 내 몸을 억지로 수에게 밀어 넣으려고 했지만 긴장으로 굳어진 수의 몸은 나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 몸은 중요한 과제를 눈앞에 둔 사람처럼 다급하게 허둥거렸지만 그럴 수록 비명에 가까운 수의 목소리가 나의 시도를 방해했다.그만해.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나는 수의 몸을 뒤집듯이 반듯이 누이고는 뒤쪽에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뒤쪽에서 거칠게 몸을 움직일 때마다 수의 몸도 따라서 함께 출렁거렸다. 갑자기 수의 입에서 찢어질 듯 고통스러운 파열음이 흘러나왔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그대로 진입했다. 자유로 가는 길은 언제나 낯설고 껄끄럽다. 수와 나는 영혼이 날아가 버린 벌레들처럼 딱딱하게 교미했다. - 이제 끝났어..... 수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전분투 끝에 수와 내 몸은 온통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내가 수에게서 천천히 몸을 떼어내자 흰 침대 시트에 군데군데 핏자국이 얼룩처럼 드러났다. 마치 누군가에게 한꺼번에 유린당한 것처럼 빈 껍데기만 남은 수의 몸은 가벼워보였다.천천히 일어나 욕실로 걸어나가는 통로 위로 수의 찢긴 가랑이 사이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점점이 떨어져 있었다. 선명한 혈흔들은 비로소 내가 서 있는 곳을 명징하게 깨닫게 해 주었다. 트윈 침대에서 욕실입구까지 간헐적으로 이어진 혈흔들을 바라보며 나는 엉뚱하게도 교도소 안에 갇힌 아버지를 상상했다.어쩌면 이번에야말로 내가 아버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와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거라는 기묘한 희망이 나를 들뜨게 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나는 수를 혼자 버려 두고 호텔을 떠났다. 3. 둥글고 흰 모자를 쓴 헌병들에게 신분증을 제시하고 나서 면회 신청서를 작성한 후에 나는 대기표를 받아 면회대기실로 들어섰다. 예닐곱평 정도의 좁은 대기실 안은 불량한 냉방 시설로 인해 찜통 속을 연상시킨다. 무자비한 더위 속에서 허공을 회전하는 두 개의 낡은 선풍기는 턱없이 무력해 보인다.더위에 지쳐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은 반쯤 넋이 나가 있었지만 면회를 기다리는 설레임 때문인지 대기실 안의 풍경은 그런 대로 들뜬 술렁임이 느껴졌다.나는 수인번호가 적힌 쪽지를 펴보았다. 천백십사번. 아버지는 하루에 한번 면회가 허용되는 미결수였다. 자리에 앉았을 때 나는 대기실 안 쪽에서 다소곳이 앉아 있는 챙이 넓은 흰 모자에 흰 원피스를 받쳐입은 한 여인을 보았다.목선을 타고 흐르는 부드러운 곡선과 단정하게 틀어 올린 검은 머리칼이 챙 넓은 모자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여인의 얼굴이 왠지 미인일거라고 추측하게 했다.반쯤은 음울함이 깔린 면회 대기실에서 화사하게 차려입은 여인의 존재는 어쩔 수 없이 이채롭고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사람들은 여인의 환한 옷차림에 이따금 힐끔 힐끔 눈길을 주곤 했지만 여인은 그들의 시선과는 무관하게 다만 혼자만의 상념에 잠긴 듯 물끄러미 앉아 손수건으로 흐르는 이마의 땀을 찍어내고 있을 뿐이었다.천 사백 육십 오번, 천 사백 육십오번 면회소로 와 주십시오. 천 백 사번... 벽 면 위에 매달린 스피커에서 굵은 목소리로 재차 수감 번호가 흘러나올 때마다 번호가 불린 사람들 사이에서 나오는 들뜬 환호성과 아직 호명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탄식들이 뒤섞여 어수선하게 대기실을 교차했다.나는 갑자기 할 일이 없어졌으므로 무료함을 달래듯 대기실 사방 벽면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출입문 정면으로 교도소 안내와 홍보용 사진들이 꼼꼼하게 붙어 있었다.교도소,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재소자의 인권 보호를 위한 우리의 방침... 거기에는 재소자들에게 제공되는 세끼의 식단과 내부 배치도까지 상세한 해설을 덧붙인 안내문이 게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홍보용 사진들은 이미 설치된 지 오래된 낡은 것들뿐이어서 마치 오래된 구호처럼 아득해 보였다.재소자 권익 말도 마라. 나와 있는 사람도 멀거니 눈뜨고 당하는 시상인디 누굴, 가막소 안에 있는 사람들 권익을 다 지켜준다 말가. 내가 그 안의 꼴을 한 두번 봤노. 아버지를 옥바라지하고 돌아온 날이면 어머니는 늘상 끝도 없이 되풀이되는 혼자만의 푸념을 이렇게 되뇌이고는 했다.그기 너거가 두살 묵던 해였는갑지 싶은데 햇빛 쨍쨍 내리쬐는 한 여름에 보안법위반으로 삼년을 때려 맞았는데 그 안에서 얼마나 목이 타겠노. 그래가 내가 커다란 수박 한 덩이를 사가 계란 한 판하고 영치금하고 같이 안 넣었나. 그래놓고 한 삼일 지나 새끼를 등에 업고 고생고생해가 다시 면회를 가보니까네 느그아부지 얼굴이 더위에 쩔어가 똑 반쪽이 된기라. 그기이를 보니께 마음이 심란하지 않겠노.그랬더만 거까지 찾아간 사람한테 턱 한다는 소리가 동료들 다 고생하는데 나만 수박이 웬 말이냐고 면회실 간수가 힐끔 쳐다 볼 만큼 호통을 치는거라. 그러면서 느그아부지 하는 말이 수박을 받은 대로 그 자리서 깨부솨 버렸다고 안 하나. 내가 기가 막혀 눈물도 안 나오더마. 평생을 식솔들에게는 무심한 양반이라. 본디 청천벽력 같은 양반이긴 하지만도 내가 언제 저런 인사와 한 시절을 다 살아 냈노 싶더라. 어머니의 오랜 푸념을 들으면서 나는 아버지의 서가에서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던 어느날의 성난 파도와 같은 책들을 떠올렸다. 하루해가 몹시도 지루하게 느껴지던 나른한 봄날이었다. 짧은 스포츠 머리를 한 낯선 두 명의 남자가 집으로 찾아온 것은 어스름해질 저녁 무렵의 일이었다. -아버지, 어디 가셨니? 유난히 눈매가 서늘한 검정 자켓의 사내가 물었다. 아버지는 이미 오래 전부터 기나긴 부재중이었고 그들이 아버지를 찾아온 날은 내 여덟번째 생일날이기도 했다. 전날 밤 아버지는 모처럼 집으로 한 통의 전화를 걸어왔고 나는 언제나 부재중인 수화기 너머의 아버지에게 생일선물을 사달라고 졸랐다.수화기 너머의 아버지는 잠깐 새에 짧은 한숨을 토해 내고서 낮게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은 꼭 집에 들러 선물을 사다 주마. 나는 간절히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기도했다. 그것은 이미 기도가 아니라 주술이었다. 처음부터 나는 아버지에게 어떤 위험이 닥칠지 미리 예감한 것처럼 깜찍하고 악마적인 힘으로 아버지를 유인했다.아버지가 단 한번도 평범하고 진실한 가장이 아니었다는 사실이야말로 기필코 스스로 고난의 운명을 그 대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피할 수 없는 암묵적인 계시일거라고 나는 믿었다. 애초에 내 답변을 기대하지 않은 듯 두 남자는 구두를 신은 채 이내 성큼성큼 방안으로 들어섰다. 마루 위로 네 개의 구두 발자욱이 어지럽게 찍혔다.선명하게 찍힌 네 개의 발자국들은 얼핏 군화 발자욱처럼 크고 육중해 보였다. 아버지는 군화를 신는 사람들을 끔찍이 싫어했다. 두 남자의 짧은 스포츠 머리와 군화 모양의 발자욱은 군인들을 닮았다. 나는 그들이 아마도 정치하는 군인일거라고 생각했다. 정치하는 군인이란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었다.사람들은 나와 동생 앞에서 아버지가 군인이 정치를 하는 시절에 군인을 미워해서 감옥소에 들어간 거라고 수군거렸다. 군인을 싫어한 아버지는 군인들을 미워하는 글을 세상에 발표한 죄목으로 기나긴 도피 중이었다.언젠가 아버지는 명령 밖에 모르는 무지한 군인들이 나라를 망쳤다고 동생과 내게 말했다. 나는 불쑥 조바심이 일었다. 만일 아버지가 자신의 서재에 그토록 싫어하던 군인이 침입한 것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가.군인들은 아버지의 서재에서 무언가를 찾고 싶어했다. 마침내 아버지의 서가로 들어선 검정자켓의 사내가 어지럽게 쌓여 있는 책들을 천정 꼭대기에서부터 한번에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책들이 천정 위쪽에서부터 천천히 갈라지며 무너지는 광경은 세상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공포만큼 두려운 전율이었다.만일 사내들에게 끌려간다면 아버지 역시 자신의 책들처럼 산산조각이 나서 죽고 말리라. 그게 아버지의 운명이 되고 말리라. 무서워, 동생이 내 손을 불끈 잡았다. 어이없게도 그 순간 나는 언젠가 아버지가 읽어주었던 책 속의 한 구절을 떠올리고 있었다. 파괴하지 않으면 건설할 수 없나니.나는 무너져 내리는 책 더미들 속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기묘한 쾌감을 느꼈다. 그렇다. 나는 무너지는 책들 속에서 일상적이고 성실한 가장의 자리에 서본 일이 없는 아버지의 파멸을 꿈꾸었던 것이다. 그 때 아버지가 기척도 없이 거짓말처럼 성큼 성큼 대문을 들어섰다.아버지의 얼굴은 무표정에 가까웠지만 아버지의 오른 손에 들린 네모난 크레파스 상자 위에는 어지러울 만큼 선명한 일곱 빛깔의 무지개가 그려져 있었다. 아버지가 내게 성큼 성큼 다가와 말했다. -바깥에서 무서운 일이 일어났다. 동생 데리고 잘 있거라. 아버지의 눈빛 속에는 이상한 기운 하나가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체념을 닮은 것인가 하면 어떤 희망을 품은 것 같기도 한 기묘한 눈빛이었다. 두 명의 사내가 간단히 아버지를 포박했다. 나는 현기증이 나도록 아스라한 여덟 번째 생일의 봄 빛 속에서 내 곁을 떠나는 아버지의 모습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봄볕이 어쩐지 무서운 일을 잉태하고 있다는 걸 아버지는 다 알고 있었지만 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흰 복사꽃이 비릿한 향기를 내뿜으며 송이 째 스러지는 환영을 보았다. 아버지는 그로부터 다시는 건너가지 못할 정겹고 아스라한 동심의 세계가 되어 내 곁을 떠났다.아버지가 떠나고 난 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아 버린 아버지의 책들은 아버지가 평생을 묻어온 청춘의 찬란한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청춘의 상징이자 동시에 고난의 징표이기도 했다. 책 속에 탐닉하여 청춘을 바치는 일이란 사람을 얼마나 외롭게 하는 것인지 어머니는 잘 알고 있었다.느그 아부지 글 쓰다 빚져가 망해 먹으면 일년들이로 이사를 댕기 쌓는디 가난한 세간살이에 책은 또 얼마나 징하게 많노. 한 트럭이 넘는 책을 실어가 날르라 카면 무겁고 싫다고 짐꾼들이 다들 도망을 가 뿌리는기라. 아무리 지켜세도 소용이 없어가 한번은 책을 길바닥에 부려놓고 안즉 집안에 들이지도 못했는데 날은 어두컴컴하니 어두워오고 일꾼들은 다 도망가 뿌리고 어쩌겠노. 느그 아부지야 워낙 집에 붙어 있는 양반도 아니고 내가 하나 하나씩 들어 나르다가 이러다 책 도둑맞음 어쩌노 싶은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어가 안즉 어린 너를 어둑어둑한 길가에 세워 두고 누구 나쁜 아저씨가 책 집어가는가 정신 똑바로 채리고 지키라고 했제. 그러다가 그만 짐 정리를 하느라고 깜빡 너를 길가에 세워둔 걸 잊어 묵은기라. 깜깜한 한밤중이 되어서야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달려가 보니께 어린 너가 안즉도 꼼짝없이 가로등 밑에 앉아서 쭈그리고 있는기라. 날도 어두운데 그 많은 책들을 지키고 섰느라고 어린기 한 데서 얼마나 추웠을꼬 싶어, 아나, 얼른 들어가자 했더니만 너가 꽁꽁 언 손으로 내 손을 꼭 붙잡으며 한다는 말이 이대로 책들을 내버리고 가면 나쁜 아저씨들이 죄다 집어 가면 우짜노 이카는기라..... 그 날 이후 아버지는 감옥으로 들어갔고 어머니는 또 다시 오랜 옥바라지를 시작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젊은 아버지와 그의 어린 자식이 남루한 흑백사진 속에 갇혀 버린 오랜 비밀 이야기하나를 끝내 알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어머니는 나를 아비를 팔아먹은 나쁜 자식이라고 욕할 것이다. 잊지 못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나는 종종 아버지의 환영을 보았다. 그러나 찰라와 같이 사라지는 허망한 꿈속에서조차 아버지는 한결같이 뒷모습으로만 존재할 뿐이었다. 어젯밤 불쑥 나를 찾아온 어머니는 갑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우겼다. -내가 인자 영영 그 인간하고는 몬 살겠다. 안즉도 마감일에 못 대어 쓴 원고 독촉은 사 방에 널려 있제 사무실 임대료조차 밀려가 다 쫓겨가다시피 감옥소에 들어간 마당에 그 새 어디에서 나 몰래 다 쓰러져 가는 사무실을 하나를 또 얻어 놓은거라. 주인도 없는 사무실이라고 들어가 보니 하수구가 막혀서 내가 한나절 걸려 다 뚫어 놓고 혼자서 책을 일일이 들어다 나르느라고 허리가 부러질 뻔 안 했나. 나는 암담한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살아있는 현실이었다. 아버지는 마음을 다잡아 착실히 원고에 매달리다가도 갑갑증이 일면 간단히 계약을 깨버리기 일쑤였다. 마치 그렇듯 태연히 사회적 관계들을 저버리는 일이 젊은 날 자신을 곤고하게 한 세상을 향한 유일한 항거의 길인 것처럼.끊어질 듯 이어지는 아버지의 돌연한 절필선언은 종종 주위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그런 아버지는 자신이 곧 감옥소에 들어가게 되리라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엉뚱하게 어머니 몰래 일을 준비했을 것이고 어머니가 또 다시 빚을 얻어 사무실 임대료를 충당했으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느그 아부지 구치소로 이감되기 전에 내가 서에 가가 한 분 보기는 했는데, 영락없이 한 밤중에 자다말고 끌려온 행색이라. 급한 대로 속옷하고 양말 몇 개 넣어 보내긴 했지만도 그기 참말로 별 소용이 닿겠나. 돌아서면서 늬 아부지 뒷모습을 보니까네 참말로 인자는 빼도 박도 못하게 늙어 버린기라.오는 세월을 저 혼자 다 맞은 사람 마냥 멀대 같이 큰 키에 허옇게 내려앉은 흰머리를 하고서 등허리가 구부정허니 휘었는데 그 와중에도 눈매만큼은 안즉도 쨍쨍하등만. 아무케도 이분에는 상대를 잘 못 만난가 싶다. 상대가 여간 숭악헌 놈이 아니라는구나. 느그 아부지는 안즉 고료를 다 못 받았다고 주장하지만도 그 놈은 아부지가 돈 다 받아 묵고 나서 청탁한 원고를 안 해줬다고 고발해 부린거 아이가.아무리 그래도 민사라 설마 끝까지야 갈까 싶었더니 또 다시 이렇게 되고 말았구나. 아나, 이 애야. 나는 다시 그 속을 딜여다 보긴 싫다. 내가 니 어릴 적에는 새끼들 데꼬 먹고 살라고 어짤 수없이 붙어댕깄지만은 머리 허얗게 되어가 안즉도 그 짓을 해야 된다 말가.그래도 젊어 그 안에는 젊은 글쟁이들끼리 피가 더워 바른 말해가 감옥소 간거라 남들이야 옥바라지하는 여편네라고 날 우습게 대해도 내 자신은 떳떳했지만도 인자는 민사에 걸렸으니께 똑 잡범한가지로 다를기 없는기라. 늘그막에 낭패스러버서 그 일을 어찌 다 당한다 말고. 내는 몬 간다. 암만해도 이 분에는 금방 나오긴 틀렸지 싶다.올 겨울은 거기서 나야 될지 싶은데, 서슬 퍼런 시절 때 비하믄 못 배기랴 싶지만도 찬바람 불면 가막소는 칼 추위니라. 니가 가가 솜 내복이나 좀 넣어드리고 오니라. 마누라가 안 딜여다봐도 자슥 얼굴이라도 보면 마음이 좀 안 풀리겠나... 어머니를 보내고 나서 나는 큰 거리를 향해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홀로 집을 향해 터벅터벅 걷고 있을 어머니가 떠올랐다. 문득 어머니에게 오래된 흑백 사진 속의 아버지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나는 오던 길을 되돌아가 어머니가 건넜을 건널목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신호등의 파란 불이 금방이라도 아슬아슬하게 꺼질 듯 점멸해 가고 있었다. 그 푸른빛을 놓치면 영영 끝이 날 것 같아서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그러나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어둠 속에서 홀로 고단한 한 생애를 터벅터벅 걸어가 집에 당도했을 것이다. 그 길은 어머니 혼자서 걸어야 할 길처럼 고독해 보였다. 어쩌면 어머니는 아버지가 생애 처음으로 시국사범이 아닌 잡범으로 걸려들었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어머니가 시국사범에 자존심을 걸어왔다는 건 생경한 일이어서 나는 처음으로 어머니가 낯설게 느껴졌다. 대기실 스피커에서는 오 분 간격으로 연달아 수인들의 번호를 쏟아놓았다. 천백십사번. 나는 아버지의 수감 번호를 마음속에 되뇌었다. 그러나 끈질기게 달라붙는 더위처럼 기다림은 지루하고도 길었다. 나는 대기실 밖으로 나가 접견창구로 다가갔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죠? 창구 안의 직원은 거듭되는 업무와 더위로 지쳐 보였다.그는 내 말을 미처 알아듣지 못한 듯 이마를 찡그려 보였다. 얼- 마- 나- 더- 기- 다- 려- 야- 하- 죠? 나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천천히 되풀이해 물었다. 그제서야 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번호가 어떻게 되시죠? 천백십사번이요. 천백십사번, 조금 더 기다리세요. 명단을 힐끔 바라보고 나서 직원이 짧고 건조하게 대답했다.천백십사번, 천백십사번. 그 순간 아버지는 아버지가 아니라 천백십사번이라는 네개의 낯선 기호로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나는 대기소로 발걸음을 돌리려다가 갑자기 어떤 생각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서 창구로 되돌아가 물었다. 저, 천백십사번 영치금을 넣고 싶습니다만. 천백십사번이요? 창구 안의 직원이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천백십사번. 영치금이 꽉 찼어요. 더는 초과할 수 없습니다. 대신 음식물로 넣으세요.나는 얼떨떨한 기분이 되었다. 아버지에게 영치금을 넣을만한 다른 누군가의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이 웬일인지 껄끄럽게 느껴졌다. 아버지의 지인이나 출판 관계자들이라면 아버지를 위해 미리 영치금을 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아버지의 구속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게다가 영치금을 넣을 만큼 가까운 사이라면 아마도 어머니가 내게 먼저 언질을 주었을 것이다. 나는 가방 안에 든 솜 내의를 만져보았다.그것은 얌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무더위에 솜 내의라니. 웬 일인지 그 물건이 새삼 우스꽝스러운 이물질처럼 여겨져서 아버지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 도무지 현실감 있게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대기실로 되돌아와 막 자리에 앉았을 때 발 밑으로 작은 동전 하나가 굴러 왔다. 이제 겨우 막 걸음을 떼기 시작한 어린 아이 하나가 동전을 향해 아장아장 걸어오고 있었다. 어린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젊은 여인이 선풍기 아래에서 땀을 닦고 있었다.젊은 부인은 아기를 향해 얼른 되돌아오라고 연신 손짓을 하고 있었지만 아이는 동그랗게 굴러가는 동전에 한 눈이 팔려서 정반대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동전을 아이에게 들려주었다. 펼쳐진 아이의 작은 손바닥 안이 땀에 절어 따뜻했다. 손바닥 안에 동전을 쥐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이가 까르르 미소지으며 웃었다. 아이의 환한 미소가 엷은 희망처럼 반짝이자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에도 작은 미소가 번졌다.아이의 미소 속에는 애처로운 연민이 숨어 있다. 어린 것, 가여운 것, 반짝이는 것에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다. 아이의 여린 미소가 무감동한 사람들의 표정을 일순간 환히 밝혔다가 사라졌다. 땀에 젖은 손수건으로 이마를 꾹꾹 누르며 아이의 얼굴을 마주보며 함께 미소짓던 젊은 여인도 다시금 시름에 찬 얼굴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미소가 걷힌 여인의 얼굴에는 텅 빈 허공만 남아있다. 아마도 아이의 젊은 아빠가 감옥에 갇힌 것일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인의 얼굴은 앳된 젊음을 감추고 있다. 기껏해야 스물 대 여섯살 쯤? 감옥에 들어간 남편을 기다리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다. 나는 고난받는 여인의 삽화에 익숙해져 있다. 기억의 풍경 속에서 여인들은 다만 남자를 기다릴 뿐이다. 어머니는 평생 아버지를 기다리며 살았다. 4. 일천 구백번 지금 즉시 3번 면회소로 오십시오. 스피커에서 호명을 하자 두 명의 남녀가 벌떡 일어섰다. 색이 바랜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커트머리 여자아이와 노랗게 머리를 물들인 남자 아이. 그 순간 여자아이가 가방 속에서 무언가를 뒤지더니 민첩하게 네모난 물건을 꺼내들었다. 가방 속에서 돌돌 말린 채로 나온 물건은 뜻밖에도 작은 플랑카드였다.여자아이가 플랑카드를 펼쳐드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플랑카드에 적힌 선명한 고딕체 글씨로 쏠린다. <오빠, 사랑해요> 플랑카드에 적힌 글귀는 브로마이드에 나오는 잘 생긴 스타의 콘서트 장소에서나 어울릴 듯한 대사이다. 사람들의 얼굴 위로 잠깐 어이없는 듯한 표정이 스치고 지나간다. 감옥소에 갇힌 여자애의 오빠는 진짜 오빠일까, 혹은 애인일까, 그렇다면 함께 동행한 노랑머리 남자애는? 나는 부질없는 상념으로 젊은 남녀를 바라본다.그들의 자유는 유치하지만 싱싱해 보인다. 어쩌면 수도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면회를 기다리며 플랑카드를 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수를 떠난 후 수는 내게 마지막으로 편지를 보냈다. 나는 천천히 편지를 읽어내려 갔다. 너를 지나간 과거라고 믿기 시작했다. 너를 지워진 과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너를 익명의 이름에게 빼앗기고 홀로 선 나는 자유롭다. 그 문구들은 이제 수가 내 안에서 또 하나의 과거로 지워짐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수의 말처럼 내 마음을 빼앗은 것은 익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수를 떠나온 것처럼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버지를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여자애가 플랑카드를 들고 발랄한 동작으로 대기실을 빠져나가자 남자애가 그림자처럼 그 뒤를 따른다. 그들이 마치 콘써트를 관람하러 가는 사람들처럼 의기양양하게 사라져버리고 나자 대기실에는 다시 그들이 남기고 간 적막이 우울하게 남았다. 그러한 모든 풍경들은 두 남녀가 문을 열자마자 잠깐 사이에 작열하는 탐스러운 태양 빛 속에서 환히 빛났다가 문이 닫히자마자 순간의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린다.문 밖의 눈부신 태양 저 편에서 여자아이는 불과 오분여만에 스쳐 지나갈 짧은 재회에 감격하며 그간의 애틋한 마음을 고백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노쇠해져서 등이 구부러져 푸른 수의에 가려진 늙은 아버지를 나는 무엇으로 마주할 것인가. 갑자기 참을 수 없이 요의가 다급해졌으므로 나는 대기실 뒤켠의 화장실로 갔다. 뒷 켠의 화장실 건물은 햇살이 잘 들어오지 않아서인지 한 낮인데도 칙칙하고 어두컴컴하다. 용변을 마치고 나서 수도꼭지를 비틀자 수도물이 짤짤 소리를 내며 빈약하게 흘러내렸다. 바닥은 타일을 깔았지만 시멘트가 그대로 드러난 벽면에는 실내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거울하나가 어색하게 붙어 있다. 나는 벽면에 붙어있는 거울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거울 속의 내가 나를 붙잡으며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차라리 이대로 멀리 도망을 가버려라. 그냥 이대로...? 거울 속의 또 다른 내가 놀란 표정이 되어 물었다. 수도꼭지를 잠그고 돌아서려 할 때 문득 나를 쳐다보는 시선 하나가 느껴졌다. 문득 바라 본 거울 속으로 놀랄 만큼 아버지의 눈빛을 빼 닮은 눈길 하나가 쏘는 듯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이글이글 불타는 것 같기도 하고 어딘가 애원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대로 문을 닫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무더위 탓에 문이 활짝 열려 있는 대기실은 여전히 부산해 보였다. 찜통 같은 대기실 안으로 곧바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나는 대기실을 조금 벗어나 정원 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뜨겁게 쏟아지는 태양 빛을 피해 산책로로 들어서자 도로 오른 편으로 몇 개의 나무그루가 만들어낸 빈약한 그늘이 눈에 띄었다. 뜨거운 더위였지만 대기실의 칙칙한 어둠보다는 그런 대로 견딜만한 장소이다. 나는 어두컴컴한 곳을 유난히 싫어했다. 어머니가 있는 풍경은 늘상 칙칙한 어둠 속이었다. 창이 너무 작아서 햇살이 겨우 들어오는 작은 실내에서 어머니는 언제나 재봉틀에 매달려 있었다. 창 밖으로 바람소리가 윙 소리를 내며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나는 벤치에 비스듬히 앉았다. 날이 웬만큼 추워야제. 바람이 몹시 분다. 어머니가 추위로 몸을 부스스 떨며 말했다.- 일전에 느그 아부지가 내 손에 죽을 뻔했다 안 하나. 어머니가 손으로 매만지던 옷감의 실을 탈탈 털어 내며 태연하게 중얼거렸다. 느그 아부지가 장충동으로 사무실을 이전했을 때 였는갑다, 무거운 전집을 들고서 나 혼자서 낑낑대는데 느그아부지는 그 와중에도 태연히 의자에 앉아 선비 마냥 책에 눈을 박고 있는 기 아이가. 그때 내 속에서 고마 확 불길이 일더마. 그래가 손안에 들고 있던 육중한 전집 책 한 권을 가슴팍에 확 던져버렸더니 그대로 고꾸라지는기라. 그런걸 내가 다시 달려들어 멱살을 붙잡고 이리저리 휘두르고 가슴팍을 요래 쥐어뜯고 악을 썼다 아이가. 니가 뭔데 나를 이리 만드노. 대체 니가 뭔데 나를 이리 고단하게 만드노 말이다. 그래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네 느그 아부지 얼굴이 반쯤 넋이 나가 있는기라. 그라고 보니께 인자는 참말로 늙었데. 내 손아귀에 잡혀 이리 저리 따라 흔들리는데 참말로 벨 수 없데. 그때 내가 제정신 안돌아왔으믄 단단히 일 낼 뻔 했제.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어머니의 눈길이 이상하게 번질거렸다. 사백십구번 면회소로 오십시오. 사백십구번. 다급한 마이크 소리가 평화로운 잔디밭 벤치 위로 울렸다. 나는 빠르게 벤치 위에서 일어섰다. 어쩌면 내가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에 번호가 불려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마음이 급했다. 면회소 앞에서 막 면회를 마친 듯 흰 모자를 쓴 여인이 그림자처럼 재빠르게 앞쪽을 스쳐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침착해야 한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가방 속의 솜 내의를 만지작거렸다. 그것은 여전히 안전하고 따뜻하게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곧바로 대기실 옆 창구로 다가갔다. 접견번호를 재차 확인해서 안내원에게 불러주자 안내원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천백십사번이라구요?머리를 바짝 치켜 깍은 남자직원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 이상하군요. 바로 조금 전에 다른 분이 면회를 다녀가셨는데요. - 그럴 리가 없어요. 나는 갑자기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아득해져서 창구 직원에게 되물었다. -이거 안되었군요. 죄송하지만 오늘 면회는 곤란하겠는데요. 뭔가 행정상의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아, 여기 있군요. 김 아네스라고 조금전에 흰 모자를 쓴 여자분인데 혹시 모 르는 분이세요? 오늘 그 분이 다녀가셨어요. 본의 아니게 이중접수가 된 건 유감입니다 만 규칙상 하루에 두 번 면회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알고 계시겠죠? 김아네스라..., 나는 마음속으로 낯선 여인의 이름을 상기해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머리 속에서 그것은 생경한 타인의 기호처럼 낯설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자, 보세요. 여기 면회일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요...? 창구의 직원이 확인하듯 내게 면회일지를 바짝 들이대며 물었다. 나는 면회일지에 적힌 여인의 간단한 프로필을 훑듯이 살펴보았다. 그러나 아버지와의 관계란에는 다만 지인이라고 간략히 적혀있을 뿐이었다. 나는 흰 모자를 쓴 여인의 잔영을 되살리려고 애썼다.그러나 미명의 여인은 몇 개의 단편적인 실루엣으로 드문드문 떠오를 뿐이었다. 여인은 허공에 뜬 가상의 존재처럼 어떤 단서도 남기지 않고 떠났다. 나는 아버지와 김아네스라는 여인의 상관관계를 헤아려보려고 애썼다. 만일 그녀가 영치금을 차입한 장본인이라면 아마도 아버지와는 가까운 지인 사이일 것이다. 그러나 감옥 안에서 아버지의 현재 속에 관여하고 있는 인물이 누구이든 어쩌면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닐 지도 모른다. 그건 다만 아버지가 이미 오래 전에 증발해 버려서 없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어떤 증거일 뿐일테니.나는 대기실 창구 앞에서 길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망연히 서 있다가 이내 허둥거리며 오던 길을 되돌아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익명의 누군가가 나보다 먼저 아버지를 대면하였으며 아버지는 내게 여전히 부재중이라는 사실이 움직일 수 없는 진실처럼 분명해졌다. 나는 가방 속을 더듬어 어머니가 전해준 솜 내의를 만져보았다. 그것은 여전히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안도감을 주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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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01.01 23:02

[2003신춘문예] 소설 부문 심사평

일차 예심을 거쳐 올라온 총 18편을 읽었다. 결심에 오른 작품은 다음 네 편이었다. ‘점멸’(박태원)은, 사건을 차분하게 전개해가는 구성력이 돋보였다. 정신과 의사가 외래 환자의 보호자에게 보내는 서간문 형식의 구도와 문장은 안정되어 있었지만 두 집안의 부부불화도 설득력이 부족했고, 전체적으로 소설적 갈등이 애매하여 긴장도가 떨어지는 것이 가장 큰 약점이었다. ‘거울’(노령)은 1930년대 작가 이상의 시편을 바탕에 깔고 전개되는 구도가 성공적이라고 느껴졌다. 유전병 때문에 어릴때 부터 거울에 집착하는 주인공의 처지도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 다만, 부자갈등이 쉽사리 해소되는 것 등 일부 사건 설정이 작위적이고, 장면묘사가 충실치 못했다. ‘낯선 방문’(전예주)은 어느 젊은 주부의 일상으로부터 일탈하고자 하는 욕구를 다룬 심리소설로 깔끔하게 정리된 것이 장점이었다. 전체적으로 잘 완성된 소품이랄 수 있겠는데 오히려 이 점이 불만이었고, 특히 이 작품을 요즘 유행하는 일부 젊은 여성작가들의 ‘존재의 가벼움’을 다루는 내면 소설들과 어떻게 변별시킬 수 있을지 심사위원들은 자신할 수 없었다. 더구나 이런 방식의 소설의 품격을 유지하는 첫 번째 조건인 문장의 참신성을 이 작품이 충분히 담보해내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로드픽션’(로사)은 언어적 감각과 상징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서술자의 지문은 물론 인물들의 대사에서도 그 감각은 생동감을 지니고 있어서, 웬만한 주제는 그 문장력으로 소화해낼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가족을 팽개쳤던 아버지의 삶에 대한 불만을 ‘수’라는 여성에게 간접적으로 투사하는 기법이 일정한 성공을 거두었고, 또한 인물의 성격 변환에서도, 주제를 설정하는 시각에서도 상당한 설득력과 균형을 지니고 있엇다. 그렇다고 이 작품에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무런 복선과 암시도 없이 작품 말미에 낯선 여인이 불쑥 등장하는 것이나 아버지와 ‘나’의 삶이 서로 별개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 등이 그렇다. 심사위원들은 ‘낯선 방문’과 ?00000?을 놓고 논의한 결과 후자를 당선작으로 밀기로 했다. 전자의 완성도보다는 후자의 신뢰도에 더 점수를 준 셈이다. 그 신뢰도란 소설의 여러 요소들, 이른바, 문체?구성?인물?주제 등이 서로 유기적으로 교직되어 있는 데서 생겨난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당선을 축하하며 정진하시기를 빈다. 심사위원 : 이병천(소설가), 임명진(문학평론가, 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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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01.01 23:02

[2003신춘문예] 소설 부문 임진아씨 당선소감

일천구백팔십칠년의 작열하는 여름, 나는 전남 화순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농촌 봉사활동 중이었다. 아직 덜 아믄 푸릇푸릇한 벼이삭들이 빼곡이 심겨진 논바닥 위에서 피사리 작업에 열중하다가 어느 순간 피와 벼가 혼재되면서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끈끈한 습기에 포박 당해서 그대로 드러누워 버린 하늘은 무심히 맑았다. 삶이란 다만 한 편의 로드픽션보다도 남루하고 부박할 따름인데, 하여 잠시라도 닦거나 매만지지 않으면 이내 삐거덕거리고 마는 집요한 일상 속에서 희망을 품는다는 건 얼마나 무모한 짝사랑인지. 예술이란 늘상 날 것 그대로인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고 현상이란 늘 본질에 선행하나니...., 문학의 본질이란 과연 무얼까하는 의구심에 내내 시달렸다.이천이년의 겨울, 국도에서 당선소식을 접했다. 전북일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엉뚱하게도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를 생각했다. 흠모하는 작가가 태어난 곳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였다. 내 안에서 이제 그곳은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곳이다. 빈곤하고 나약한 소시민, 다만 반짝이는 아홉켤레의 구두로 정체성을 확인하는 사내의 모습은 또 다른 나였다. 글을 쓰는 일이 내 안의 오랜 부채감을 아주 청산해주진 못하겠지만, 삶의 여정 속에서 디스토피아를 말하는 건 또 다른 유토피아의 미래에 닿아 있노라고 믿기에 의심 없이 정진하련다. 모쪼록 큰 상을 허락해주신 심사위원선생님들과 여러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리며 내 부족함에 부쳐주신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그리고 내게 소설의 걸음마부터 조언해주신 정수남선생님과 희망을 보여주신 현길언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해 드리고 싶다.약력 1967년 서울출생1990년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 졸업1998년 동대학원 졸업2002년 교원문학상 (단편소설) 최우수상 수상현재 서울 여의도여고 교사로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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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01.01 23:02

[2003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왕오천축국전"

왕오천축국전지금도 무릎이 시큰거리느냐 천 삼백 년이면 불심 강한 이도 한 수 접고 가는 길 어쩌면 너도 천축(天竺)서 관절 꺾고 절 마당 목욕탕인냥 푸욱 담그고 싶었겠지북녘땅 접어들 때엔 미처 예측 못했겠지 살아 있는 부처 만나기 위해 떠났던 기약 없는 길이었기에 다들 흑백사진 속 표정 없는 얼굴과 써금써금 해진 활자 이야기로만 기억하지만 너만은 또렷이 알고 있지 총령(蔥嶺) 거쳐 오대산 한 달음에 달려오던 발길이 꼬이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지 중국 공안에 쫓기던 어린 눈동자 고향이 함흥이랬지단속 피해 신발만 챙겨든 채 훈춘 화룡 거치면서 몸은 숨 죽이는 일에 더 빨리 익숙해졌다지 장춘행 기차에서 매운 기침으로 쏟아지며 안겼을 때 네 몸은 후끈 달아올랐다지 부처님 진신사리 접했을 때보다 예정에 없던 일이라 변변히 옷가지도 못 챙기고 도문 국경* 저편에서 물끄러미 강 이쪽으로 씁쓸히 시선만 던지던 아우여!돌아오지 않는 다리 안으로 성큼, 건너 설 때는 언제인가 이 땅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부처 때문인가, 꽃제비 때문인가 그도 아니면 무심한 우리 때문인가 오늘도 목숨을 승인 받기 위해 연변, 길림, 용정으로 떠돌면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혜초, 내 어린 아우여!* 북한과 중국의 국경 사이에 있는 다리로 이 다리를 통해 경제와 인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진다./장창영(2003전북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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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01.01 23:02

[2003신춘문예] 시 부문 심사평

전반적으로 시의 수준이 높았다. 다들 엇비슷해서 그런지 우뚝하게 빛과 향기를 발하는 수작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과거와 비교하면 주제와 어법이 다양해진 것은 보기 좋았지만, 길이가 길어지고 말이 많아진 것은 별로 좋게 보이지 않았다. 꼭 필요해서 길어졌다고 보기보다는 손길과 생각이 거칠어서 간추려지지 못한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시를 사랑하는 일은 말을 사랑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아껴 고르면서 부심하지 않는다면 좋은 글을 기대하기 어렵다. 부심해서 고른 말로 이룬 시는 전체와 세부가 모두 방만하지 않은 법이다. 유희수, 김일영, 이광찬, 최용만, 장창영 제씨의 작품들을 남겨서 거듭 읽었다. 저마다 귀한 장점이 있는 개성적인 시들을 보내셨다. 장점과 단점을 저울질하여 마지막에 남긴 작품은 ‘산수유’(최용만)와 ‘왕오천축국전’(장창영)이었다. 전자는 개성적인 어법이 서사적 소재와 만나 빚어낸 아름다운 작품이었으나, 통일적이고 일관된 주제 효과를 거두는 데 부족함이 보였다. 동봉한 다른 시들도 고른 수준을 보여주었고, 특히 풍자와 알레고리의 방법이 돋보였는데, 역시 전자와 같은 단점을 나누어 가지고 있어 아쉬웠다. 후자는 선에 오른 작품들 가운데 가장 무거운 주제를 다룬 시로서, 비교적 침착한 어법과 안정된 서정시의 감각, 그리고 시대를 넘나드는 상상력을 보여준 작품이었으나 또한 세부에 문제가 없지 않았다.숙의 끝에 ‘왕오천축국전’을 당선작으로 고른다. 천삼백 년 전 머나먼 구도의 길을 떠난 조상을 상상의 묘법에 기대어 오늘의 아우로 바꾼 기지와, 아우의 방황과 그에 대한 연민이 결국 우리 겨레의 묵은 염원으로 연결되는 스케일, 그리고 동봉한 시들이 뒷받침하는 다양한 시적 고민과 탄탄한 언어적 능력를 사기로 한 것이다. 번번히 낙선의 쓴 잔을 들면서도 꾸준히 시의 길을 다져온 장창영씨의 당선을 축하하며, 아울러 선에 오르지 못한 분들께 간곡한 위로와 격려의 뜻을 전한다./최승범(전북대 명예교수, 시인)/이희중(전주대 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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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01.01 23:02

[2003신춘문예] 시 부문 장창영씨 당선소감

줄기차게 두드렸던 문이 끝내 열리지 않았던 날들이 있었다. 어느날인가부터 불현듯 마음 한켠에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복수란 무서운 것이어서 나는 한참 동안 복수의 순간을 꿈꾸며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딘 시의 칼을 갈고, 헐거워진 정신을 다시 수습하면서 그렇게 십여 년을 보냈다. 그 덕에 나는 이 질긴 침묵의 시간을 버텨올 수 있었다. 다른 이들처럼 원고를 보내면서 소감을 함께 보낸다거나 보낸 이후 호기롭게 술을 마실 여유조차 상상할 수 없었다. 살아 남기 위해, 그리고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두 눈을 부릅뜨며 시를 썼다. 나에게 시는 복수의 도구였고, 나를 살아 있게 만들었던 힘이었다. 그러나 최후의 복수를 위해 칼을 빼어 들었을 때, 이미 날은 무디어 있었고 칼집에는 어디선가 왔는지 모를 꽃씨가 떨어져 조금씩 싹을 티우고 있었다. 끈질기게 나를 괴롭혀왔던 복수의 끝은 그렇게 허망했다. 나는 모르고 있었다. 나는 복수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정작 복수야말로 나를 버티게 만들었던 힘이었다는 사실을, 올해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그때문인지 올해는 다른 해와 달리 원고를 보내고 난 후에도 유난히 마음이 설레었다. 긴장이 막바지에 달하면서 점점 더 안절부절 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기다림에 지쳐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연락을 받았다. 이렇게 해서 나의 복수는 달성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면서 나도 모르게 복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어렴풋하게나마 시를 쓰는 일이 복수가 아니라 생명을 향한 몸부림이며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이제 나는 서툴게나마 다시 시작할 것이다. 아직 나의 복수는 끝나지 않았으므로, 더 좋은 시를 쓰는 것만이 나를 이 길에 들어서게 만들어주신 이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즐거운' 복수리라. 시를 쓰는 일이 복수라는 치졸함으로부터 나를 구원해주었으므로, 그것만이 나에게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에 대해 깨닫게 해주었으므로, 이 자리에 설 수 있기까지 참으로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 가족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의 정성어린 격려와 도움이 없었더라면 나는 이 자리에 결코 설 수 없었으리라.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한다. 약 력 1967년 전주생전북대 국어교육과 졸업전북대 국어국문학과 문학박사(현대시)현재 전주대 교양학부 객원교수/장창영(2003전북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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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01.01 23:02

[2003신춘문예] 수필 부문 당선작 "협죽도"

작년 여름, 우리 집에는 식구가 하나 더 늘어났다. 교회 집사님이 분식(分植)해 주면서 녀석에 대한 자랑도 함께 따라왔었다. 꽃이 오래오래 피어나고, 체리 향 신사라느니... 녀석에 대한 칭송이 자자했었다. 아직 가꾸지도, 꽃을 피워보지도 않은 초면이라, 추상적으로만 들리는 이야기들을 귀담아 듣는 척 했지만, 그건 순전히 인사치레일 뿐 그 내용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칭찬들 속에 정작 꼭 있어야할 녀석의 이름이 빠져 있었던 사실을 몇 일이 지나서야 알 수 있었다. 별 수없이 녀석의 이름도 모른 체로 한 가족 되기 위한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층으로 오르는 층층이 계단 왼편으로 제일 높은 곳에 터를 잡아 주었다. 이제부터는 강한 생존의지로 먼저 식구 된 녀석들과 동등한 취급을 받으며, 스스로의 자생력을 키워가야만 한다. 분식 된지 얼마 안 돼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한 처지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녀석은 어려움이 적잖을 것이다. 숨막히게 내리쬐는 태양열도, 뿌리 체 뒤흔드는 사나운 강풍도 온몸으로 견디며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해야만 한다. 그렇게 강한 불굴의 의지를 키워오던 상강(霜降)지난 어느 날, 예년보다 빠르게 들이닥친 추위가 크게 앙탈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상고절(傲霜孤節)의 굳은 절개를 지켜가고 있던 국화들이 또 한해를 접으려고 제 몸을 바싹 말리며 몸무게를 줄여가고, 그 밖의 화초들도 자신의 체온을 지켜내려고 육신을 바짝 움츠리고 있었다. 예고 없이 몰아닥친 한파를 피해 거실로 입주를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 넓지 않은 거실에는 난·소철·만냥금·철쭉·쟈스민·알로에·선인장 같은 식구들이 자리하는 바람에 더욱더 좁아졌지만, 아직 발 디딜 틈 정도는 남아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아무리 엄동설한이 매서워도 우리 집 거실이나 주방은 보일러의 동맥이 차단된 체, 그 흐름이 끊겨있어 늘 추울 수밖에 없었고, 그런 환경 속에 길들여진 우리가족들은 누구라도 아내의 알뜰 정책에 인내할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새 식구인 녀석에겐 아내의 자그마한 배려가 주어졌다. 가스렌지 바로 옆자리였는데, 그곳은 거실을 지나 주방에서도 제일 깊숙한, 월동하기엔 그래도 좀 낫다 고 생각이 드는 곳이었다. 그래서 식사준비를 하는 잠깐이라도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가스렌지 부근의 위치적 배려는 아주 각별한 것이라 할 만 했다. 그런 덕분이었던지, 녀석은 추운 겨울을 무사히 견디고 건강한 모습으로 새봄을 맞아 식구들 모두를 기쁘게 해줬다. 특별하게 보호받은 적 없어도 주어진 환경을 잘 참고 이겨낸 끈질긴 자생력, 바로 그것이야말로 우리 집안의 율법(律法)과도 같은 강인한 정신이라 할 만한 가치였다. 이제부터 녀석을 위해 쏟는 관심과 사랑은 제 스스로를 잘 지켜낸 보상 같은 것으로, 제일먼저 녀석의 족보를 찾아보기로 했다. 잘 가꿔진 정원이나 화원을 기웃거리며 녀석의 혈통을 찾아 나섰으나, 보름정도를 헤맸어도 허사였다. 녀석을 닮은 모습마저도 찾을 수 없이 공전만 거듭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매일 같이 집에 있는 시간 대부분을 투자해가며, 녀석과의 정분을 넓히는데 힘을 쏟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녀석을 향해 의미 없는 넋두리 같은 푸념 하나를 늘어놓고 있었다."너는 도대체 국적이 어디란 말이냐?" 그 때 순간적으로 식물도감을 생각해냈다. 곧바로 식물도감을 샅샅이 뒤진 끝에서야 녀석의 이름이 "협죽도(夾竹桃)"라는 걸 알게 되었고, 인터넷을 통해 녀석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는데도 성공했다. 그 이후부터 나는 녀석에 관한 기록을 축적했다. 녀석은 터전에 뿌리내린 선대로부터 짧게 자란 후에 자손 셋을 퍼트렸다. 가지런히 30도 각도로 벌려가면서, 어른들의 키를 넘길 정도로 하늘을 향하여 높다랗게 뻗어 올랐다. 잎은 약간 두꺼운 편인데 길다란 선형이며, 상하로 약 5쎈티미터 간격을 두고 3장씩 규칙적으로 돌아나는 질서 같은 것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자라나는 모습에서 녀석은 곧고 꿋꿋한 기상(氣像)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추운 겨울을 나면서 맨살 앙상할 줄 알았던 녀석은 겨우 내내 늘 푸른 상록수의 얼굴이었다.드디어 개화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녀석에게는 초산(初産)과도 같은 첫 개화가 다가오자 호기심보다는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이 앞서고 있었다. 가지 끝마다 맺힌 수많은 꽃봉오리들이 눈의 피로를 씻어줄 것처럼 생기로 넘쳐나고, 지난밤 내 꿈길에 잠시 머물렀던 녀석은 화단 속 백미(白眉)로서 군중들의 눈길을 독차지 하고있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환한 웃음을 내보이고 있었는데, 어설픈 미동(微動)도 못 견디고 몸체에서 떨어져 나가는 불행한 녀석들을 수없이 목격했던 게 오늘의 현실이었다. '개화' 그 집념 하나로 365일 낮과 밤 굽이굽이를 달려와 애타게 그리던 꿈을 여는 그 목전에서, 천길 아래로 낙화하는 최후 모습은 무척이나 슬픈 장면으로 남아있다. 꽃봉오리 속에 빨갛게 꽃심 머무르던 석 달여(餘) 동안, 시기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우리가정에 꿈과 희망은 물론 곱고 아름다운 마음까지도 더불어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세상에 나온 갓난아이가 움켜쥐었던 손을 펼쳐주듯 핑크 빛 꽃잎들이 한 겹 두 겹 열리면서 하늘의 메시지를 수신하고 있다. 하늘의 신성한 기운들이 만개한 화신의 몸을 통해 집안 구석구석 스며들고, 마치 체리 향과 흡사할 것 같은 천상의 향수를 집안 곳곳에 뿌려대고 있다. 그 곁을 지나는 가객(佳客)마다 녀석의 해맑은 미소 앞에 발길을 멈춰 세운다. 향기에 취하고, 모습에 반하면서,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이가 없다. 어느새 소식 듣고 찾아들었던 벌·나비들의 날갯짓마저 조심스러운 한 낮이 소리 없이 흐른다. 어떤 의식이 오늘 이보다 더 아름답고 장엄하랴! 오늘 이 엄숙한 순간들을, 영원히 퇴색 없는 내 마음 속 인화지에 담아 오래 오래도록 걸어두기로 했다. 머지않아 시절을 뒤로한 체, 어느새 땅을 헤집고 나와버린 녀석의 분신(分身)을 떼어가 기를 지인에게, 나는 꼭 한마디만 일러두고 싶다. "이 녀석 이름은 '협죽도'입니다." /박종기(2003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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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01.01 23:02

[2003신춘문예] 수필 부문 심사평, 기억의 단순 복구에...

예심을 거친 24명의 51편을 통독하였다. 이번 응모의 특징은, 첫째, 여성 응모자가 주류를 이루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둘째, 응모자의 분포가 전국적이었다. 수필에 대한 관심의 폭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셋째, 수필쓰기라는 문학 행위를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는 감을 지울 수 없다. 지나간 경험의 단순 기록이 수필문학일 수 없다. 수필 역시 문학작품이어야한다. 수필이 고백 문학 또는 관조 문학이라하여 생각없이 과거를 회상하는 복고조의 타령만으로 이룩되는 것은 아니다. 인생에 대한 성찰이 글감과 잘 배합되어 감동을 자아낼 때 수필읽는 즐거움이 배가된다. 고희숙의 '그 은행나무'는 초등학교 때 관사에서 살았던 은행나무와 관련하여 네 번의 사건을 기억의 추에 실는다. 이야기 전개가 좀더 압축되어 속도감을 지녔으면 좋았을 것이다. 순임의 불임과 죽음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은행나무와 연계 시키고 싶었던 속뜻을 독자들의 몫으로 돌리지 못한 것이 아쉽다.문 영씨의 '고물상의 시계'는 함께 보낸 다른 세 작품과 마찬가지로 문장력이 고르고 단아하다는 장점과 수필의 길을 알고 쓴다는 점이 우선 호감을 얻었다. 글감을 일상의 경험에서 발견하고 차분히 들여다 보는 안목도 탁월하다. 기차 길옆의 고물상 시계는 늘 8시 35분을 가르킨다. 고장났기 때문이다. 그곳의 폐품들은 지금보다 훨씬 좋았던 시절의 8시 35분에서 기억을 멈추었을 것이라는 작가의 비평적 안목을 높이 사고 싶다. 다만 쉽게 버리는 세태와 자신의 경험이 은유되었더라면 울림이 깊었을 것이다. 그 점이 당선에서 밀린 이유이다.박종기의 '협죽도'는 사물에 대한 섬세한 관찰력과 끈질긴 추구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성취를 기대하며 문운을 빈다. /박영학(원광대 교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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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01.01 23:02

[2003신춘문예] 수필 부문 박종기씨 당선소감

응모작품을 보내놓긴 했어도, 감히 쉽게 넘볼 수 없는 높은 장벽일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처음 몇 일 동안은 조심스럽게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으나, 발표 날이 다가올수록 자신감은 떨어지고, 설마 하는 기대마저 지우려고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려가고 있었다.그리고 뜻하지 않게 당선소식을 받았을 때는 퇴근을 서두르고 있던 중이었다. 오랜 번민과 긴장의 터널을 벗어난 느낌이다. 이런 큰 영광을 위해 그 동안 작품들을 함부로 남발하지 않고 꼭꼭 묶어 두었던가보다며, 기뻐하는 아내가 제일먼저 소감을 꺼내 놓는다.두 아들들이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눈에 띄는 소재들이 있을 때마다, 틈틈이 적어 남겨 오고 있는 중이다. 큰 아들의 나이만큼, 20년 동안이나 아빠에게 수많은 습작을 시켜왔던 선생님은 바로, 나의 사랑스런 두 아들이었던 셈이다.글이 좋아 습관처럼 읽고 쓰고 해오면서, 언어라는 조형물을 하나 둘 씩 다듬고 더 놓이 세워보려고 노력해왔다. 이젠 좀더 체계적인 또 다른 문학세계로 접근해 보고자 노력할 각오이다.올 겨울의 완성을 위함일까? 지금 창문 밖에 흩날리는 눈송이들이 내려앉아 어둡고 짙었던 만감의 시간들을 덮어 잠재우고 있다.이렇게 부족한 글을 선택해 주신 심사 위원님과 전북일보사에 마음깊이 감사를 드린다.내 몸높이보다 훨씬 큰 키를 하고 서있는 협죽도에게 다가가 당선소식과 함께 고마움을 가만히 전해주었다.오늘 이처럼 나에게 주어진 영광들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닌, 내 생활주변을 함께 해온, 어느 것 하나도 빠뜨릴 수 없는 결집의 산물임을 알기에 더욱더 소중하게 간직해 두려한다.내가 벌여놓는 일마다 늘 마음 조려가며 기도로 후원해 주신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 모두에게 이 기쁨과 영광을 돌리고 싶다./박종기(2003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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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01.0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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