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피아니스트 로랑 권지니] '서양악기 산조 협주곡' 작업 참여
로랑 권지니(Laurent Guanzini)는 프랑스 재즈씬에서 폭넓게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 온 작곡가이자 대학교수다. 무엇보다 피아니스트로 많은 활동을 펼쳐왔다. 16세에 프랑스 대중가수 로랑 불지(Laurent Voulzy)와 함께 녹음한 후, 30여 년 동안 클래시컬 음악을 시작으로 탱고, 집시음악, 연극, 영화, 무용음악과 뮤지컬까지 다양하고 새로운 장르들을 섭렵했다. 로랑 권지니는 2005년, 한불수교 120주년 공연을 위해 강태환, 김덕수 등 명인들과 만나게 됐다. 그는 이를 계기로 처음 한국음악을 접했다. 이 인연을 시작으로 그의 첫 피아노 솔로음반 를 황병준 엔지니어와 녹음했고, 강은영 교수의 음반 녹음에도 참여했다. 전통음악의 여러 명인들을 만나고 음악을 접해오던 그는 2009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음악부분 공동큐레이터로 위촉되었고, 두 번째 솔로음반을 금호아트홀에서 녹음했다. △문화예술위 지원받아 명인들과 작업 로랑 권지니가 본격적으로 한국의 전통음악을 만나게 된 것은 2013년 여름, 문화예술위원회의 특별프로그램을 위해 서울을 방문하면서였다. 유경화 명인과 경기 도당굿 장단에, 안성우 명인의 작품 영풍에, 김영길 명인의 남도 민요조의 선율에는 블루스와 재즈 화성 연주로 마치 대화하듯 화려하게 답했다. 서로의 음악을 존중하면서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곡처럼 연주해냈다.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했던 것은 산조합주였다. 이재화 명인과 김해숙 명인은 한갑득류 거문고산조와 최옥삼류 가야금 산조를 중심으로 20여분 남짓한 산조합주의 틀을 만들었다. 로랑 권지니는 이 곡의 피아노 파트를 완성해야했다. △협업으로 전통음악 본질 이해 그 해 여름, 이재화, 김해숙 명인은 로랑 권지니에게 산조의 정수를 전수했다. 명인들은 단지 산조의 의미를 전하고 공연하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았다. 유럽과 세계를 무대로 삼고 있는 피아니스트에게 우리 전통음악의 본질을 이해시키고자한 것이었다. 그 결과 로랑 권지니는 다스름,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엇모리, 늦은 자진모리, 자진모리, 휘모리까지 이어지는 산조합주 공연에 두 명인과 합류할 수 있었다. 2013년 8월 22일,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로랑 권지니와 명인들의 10월 프랑스 공연에 앞서 오픈리허설이 열렸다. 유경화, 안성우, 김영길 명인들과의 연주와 이재화, 김해숙 명인과의 산조합주까지 이어진 공연에서 로랑 권지니는 피아노 의자를 비울 시간도 없이 무대를 지켰다. △프랑스서 깊은 인상 남긴 산조 그 해 10월, 명인들은 파리에서 로랑 권지니와 다시 만났다. 긴 시간을 공들였던 공연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산조와 장단을 제대로 이해한 프랑스 피아니스트가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지난 3월 초, 국립국악원 관계자는 창작악단의 서양악기 산조협주곡 시리즈의 첫 작업에 로랑 권지니가 동참해 줄 것을 간곡하게 요청해왔다. 라벨의 피아노 소품을 관현악곡으로 편곡했고, 관현악곡을 작곡했던 그에게 어려운 제안이 아니었다. 올해 6월, 그는 완성된 첫 오선보를 국악원에 보냈다. 유난히 길고 느리게 지나갔던 2013년 여름을 함께 보낸 명인들과의 선행학습을 통해 배우고 익힌 산조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면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의 곡은 김대성 작곡가에 의해 국악 관현악곡으로 편곡되어,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의 정기공연에 피아노 산조 협주곡이라는 제목으로 무대에 올려졌다. 로랑 권지니가 한국음악을 무대에서 만나고, 함께 연습하고, 공연하고 녹음해왔던 10년의 여정은 이렇게 흘러왔다. 2005년 첫 녹음을 마친 후, 지금도 좋고 나중에도 좋다며 그가 선물했던 와인처럼, 그의 한국음악 여정도 더욱 깊은 향으로 농익어가길 바란다. <끝> ※ 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를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