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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문화콘텐츠 50] 그곳에 가면 사람도 풍경이 된다

전국 곳곳에 잘 알려진 훌륭한 사찰은 많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불보사찰인 양산 통도사가 있고, 부처님의 가르침인 팔만대장경의 경판을 모시고 있는 법보사찰로 합천 해인사가 있다. 또 보조국사 지눌을 포함하여 16명의 국사를 배출한 승보사찰인 순천 송광사가 있으며, 도내에도 후백제 견훤의 역사와 국보 62호인 미륵전을 포함한 7개의 보물이 살아숨쉬는 금산사가 김제에 있다. 국내 유일의 십자형 건축물과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면 대웅전에 모신 불상이 땀과 눈물을 흘린다는 송광사가 완주에 있으며,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로 잘 알려진 선운사가 고창에 있다.완주 불명산 화암사는 잘 알려진 다른 사찰에 비해 규모도 작고, 가는 길도 잘 닦아놓지 않아 오르는 길이 험하다. 그렇지만 유구한 역사와 빼어난 경관을 가지고 있어서 오랜 세월 찾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 절집이다. 문화콘텐츠로만 보자면 귀한 원석인 셈이다.판소리, 한옥마을, 한지, 비빔밥 등 이미 전북의 대표 문화콘텐츠로 그 지위를 인정받은 문화콘텐츠를 잘 가꾸어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발굴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화암이라는 이름은 전설에 의하면 화암(花岩)이란 반석 위에 하얀 모란꽃이 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모란꽃은 관음조가 물고 와서 뿌렸다는 설이 있다. 또 모란꽃에서 비친 서광이 당나라까지 뻗어 당나라에서 이 곳까지 사신을 보내 그 꽃을 따오게 하여 병든 공주에게 먹여 치료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또 선덕여왕이 이 곳에 있는 별장에 와 있을 때, 용추에서 오색찬란한 용이 놀고 있었고 그 옆의 큰 바위에 무궁초가 환하게 피어 있어 그 자리에 절을 짓고 화암사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전설도 있다. 다른 전설로는 신라시대 임금님의 딸 연화공주가 부처님이 일러준 바위 위 꽃을 먹고 병이 낫게 되었고, 꽃이 있던 자리에 화암사를 지었다는 설도 있다.그러나 화암사가 언제 처음 지어졌다는 정확한 기록은 없다. 조선초의 기록인 '화암사중창비문'에 따르면 신라시대인 7세기 경 원효대사와 의상대사 두 스님이 이 곳에 절을 짓고 수행했다고 하므로 그 이전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옛날 신라의 원효와 의상 두 조사께서 중국에 유학을 갔다가 도를 얻고 귀국하여 이 곳에 주석하였다. 두 분은 사찰을 짓고 머물렀는데, 절 법당의 주불인 수월자용(水月姿容) 보살은 의상스님이 도솔산에 수행하러 갔다가 친견했던 지용과 등신(等身)으로 조성한 원불(願佛)이었다. 절의 동쪽 고개에는 원효대(元曉臺)라는 법당이 있고 절의 남쪽 고개에는 의상암(義湘庵)이라는 암자가 있으니, 모두 두 분 조사께서 수행하시던 곳이다…."'중창비'에 전하는 창건내력대로 화암사는 당시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의 수행처로 알려져 있고, 사찰 동쪽과 남쪽 고개에 원효대와 의상암이라는 암자가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이후의 연혁이 없으나 고려시대에 문인 백문절(白文節, ?~1282)이 화암사에 들린 후 남긴 시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전하여, 고려 말까지 화암사가 건재하였음을 말해주고 있다.조선초기인 1425년(세종 7)에 와서 성달생(成達生, 1376~1444)이 절터만 남아 있던 이 곳을 자신의 원찰로 삼기 위해 중창하였으며, '화암사중창비문'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1441년(세종 23)에 성달생이 써놓은 글로, 그 후 130여 년이 지난 1572년(선조 5)에 비가 건립된 것이다.이후 전란으로 일부 건물이 소실되어 1606년(선조 39)에 극락전을 중건하고 이후 1711년(숙종 37)에 이르기까지 6번에 걸쳐 중창을 거듭하였으며 19세기에서 20기초반에 이르기까지 사찰의 불화를 새롭게 단장하였다.근래에 와서는 1981년과 2002년에 각각 노후한 극락전을 해체 보수하였고, 1982년에 산신각의 산신탱을 조성하여 현재의 가람으로 정비하였다.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다. 화암사가 간직하고 있는 천년의 세월에는 크고 작은 의미가 있지만 국가 정치 사회 중심의 거시사보다 소소한 필부들의 발길이 천년을 이어온 미시사가 담겨 있음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미 지나간 사건의 장소가 아니라 지금도 진행형인 우리의 생이 포개지는 생활사적 의미로 채워진 공간이며, 영웅의 역사보다 친구 가족 애인과의 추억이 갈무리되고 인간의 역사보다 오랜 자연의 역사와 조용한 대화를 나누는 생태적 공간으로서 더 깊은 의미가 있는 곳이다.그런 의미에서 가는 길에 철제 다리를 놓고, 푯말을 고치는 인공적 노력보다 그것을 모두 걷어 내고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는데 중점을 두어야한다. 직접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닌 문화적으로 재생산해야 한다는 것.그동안 문화콘텐츠 개발이라는 접근을 통해 문화콘텐츠의 원형 자체를 소비하고 또 훼손하기도 하는 기존의 방식과는 또다른 방식으로 화암사를 주목하여 보존할수록 새 것이 되는 화암사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 곳에 가면 그 곳에 간 사람도 그 곳 풍경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양승수 문화전문객원기자(전주세계소리축제 프로그램팀장)

  • 문화일반
  • 전북일보
  • 2009.07.03 23:02

[전북의 문화콘텐츠 50] ⑤완주 화암사

전북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 1078번지.화암사(花巖寺)로 가는 길은 입구가 흐릿하다. 그래서 더욱 눈을 번쩍 뜨고 정신을 차리게 된다. 17번 국도 고산∼운주간 용복마을을 지나 4.5km. 갈림길마다 안내판이 있지만 다음 안내판이 나와야 그 이전 안내판을 제대로 읽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길이다. 구불구불한 시멘트길이 밭머리를 지나 흙벽집 옆구리도 살피고, 시골처녀 같은 감나무, 대추나무 허리 휘감았다가 놓는다. 그렇게 길에 얹혀 오르다보면 자동차 10여대 세워 둘 수 있는 주차장이 나온다.화장실 한 칸 덩그러니 웅크리고 있는 공터이지만 목욕에 앞서 먼저 알몸이 되어야 하는 목욕탕 탈의실과 같은 곳이다. 진짜 화암사에 가기 위해서는 이 곳에서 차를 두고 핸드폰도 꺼야 한다. 시계도 풀어야 한다. 여기에서부터 1km 남짓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화암사다. 천년이 훨씬 넘은 절집이니 어림잡아도 1m에 1년이다. 천년을 거슬러 오르는 길치고 경사가 완만하다.오르는 길은 둘이 나란히 걷기에는 노폭이 좁다. 일행이 있어도 혼자가 되는 길이다. 길가에 나무들이 명찰을 달고 있다. 고로쇠나무, 갈참나무, 느티나무, 떡갈나무, 편백나무…. 키가 큰 나무가 명찰을 달고 있으니 어딘가 모자라 보인다. 그렇지만 내색은 못하고 낯선 방문객도 제 이름을 낮게 일러준다. 이렇게 통성명을 했으니 친구가 된 셈이다.도시의 길이 컴퓨터 워드 글씨라면 이곳의 길은 손으로 쓴 연필 글씨다. 엎드려 침을 묻혀 쓴 연필 글씨가 구불구불 계곡을 타고 산기슭을 오른다. 침묵과 고요 사이 계곡물만 음표를 그렸다가 지웠다가 한다. 지금은 초여름이라 꽃은 보이지 않고 짙푸른 녹음 사이 산새 소리만 아련하다.오르다 보면 계곡물과 오솔길이 몇 번 교차하게 되는데 전봇대가 누워 다리가 되고, 건축공사장에서 쓰는 비계용 철판이 다리가 되던 길이 말끔하게 새 단장을 했다. 누워 있는 전봇대를 뒤뚱뒤뚱 건너던 것보다 한결 편해졌는데도 왠지 서운한 것은 무슨 심사일까.바위 절벽에 다다르니 위압적인 철재 계단이 폭포 위로 벼랑을 감싸고 있다. 시계를 두고 왔지만 2009년이란 시간의 분침과 초침이 여기까지 들어와 있음을 실감하는 풍경이다. 매번 보는 모습이지만 언제나 낯설다.애써 철재 계단을 외면하고 바위 절벽 위쪽 옛길을 더듬더듬 찾아간다. 조심조심 올라 난간에 서니 시야가 탁 트인다. 지나온 길이 훤하게 보이고 산의 능선과 협곡의 골짜기가 밀착해서 주고받는 곡선이 드러난다. 이곳은 남들 눈에 잘 띄지 않아 사랑이 꽃피는 연인이라면 바위 위 단단한 입맞춤 새겨 두기 좋은 곳이다. '화암사'라는 절 이름에 대한 전설이 바위 위의 꽃 이야기인 것을 상기해 보면 묘한 울림이 생긴다.난간을 뒤로 하고 폭포소리를 지나친다. '잘 늙은 절집' 조용히 앉아 있다. 대둔산의 지맥인 불명산 시루봉 중턱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금산사의 말사 화암사. 하나하나 뜯어보면 검버섯도 피었겠지만 아주 곱게 늙어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꽃비가 내린다는 우화루 처마 아래에 '佛明山花巖寺(불명산화암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낡았지만 정정한 기둥을 따라 시선을 낮추니 밑동 시작되는 높이가 제각각이다. 자연석을 딛고 있는데 어디까지가 건물이고 어디부터가 자연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천 살을 넘기면 저런 여유가 생기는 것인지 희미한 단청을 다시 칠하지 않고 사철 변하고 조석으로 춤추는 하늘빛과 산빛을 낯빛 삼고 있다.화암사는 그 흔한 일주문도 없다. 우화루 옆 작은 대문이 경내로 들어가는 문이다. 문지방은 움푹 파인 달문이다. 좌우를 살펴보아도 금강역사나 사대천왕은 보이지 않는다. 문을 넘어서면 우화루와 극락전이 남북으로, 불명당과 적묵당이 동서로 마주 바라보고 서 있다. 마당을 가운데 두고 입구(口)자형으로 배치되어 각 건물들은 지붕이 서로 연결되거나 거의 붙어있어 아늑하다. 사찰이라기보다 살림집 분위기가 더 짙다. 외곽으로 극락전 왼쪽에 입을 놀리는 것을 삼가라는 철영제가 있고 적묵당 뒤편 바위 위에는 산신각 그리고 우화루 옆으로 명부전이 자리 잡고 있다.밖에서 보면 2층 누각이던 우화루가 마당에 들어서니 단층 건물이다. 기둥에 눈이 툭 불거진 목어가 내장을 비운 채 매달려 있다. 물고기 모양에 충실한 여느 사찰의 목어와 달리 머리 모양이 용의 머리를 닮았다. 안쪽 기둥 옆구리에 크고 투박한 목탁이 운치를 더한다.우화루 맞은편으로 극락전이 하늘을 이고 서있다. 내부에는 범종과 관세음보살상 모신 닫집이 있다. 극락전은 처마를 길게 늘이기 위한 건축기술 중 하나인 하앙구조를 갖추고 있는 국내 유일의 법당이라고 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바라본다. 극락전 지붕이 요사채 적묵당 지붕까지 넉넉하게 덮어주고 있다. 그리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검은 기와선이 은은한 곡선을 그리고 있다. 뾰족하거나 화려하고 웅장한 일본이나 중국의 기와선과 달리 우아한 한복의 선이 겹쳐진다.적묵당 마루에 걸터앉아 화암사 마당에 떨어지는 햇살을 보며 한동안 해찰을 한다. 국가적 보물과 문화재를 여럿 간직하고 있는 화암사를 하나하나 살펴보는 일도 좋지만 켜켜이 쌓인 천년이라는 시간과 그 사이 자연과 하나가 된 화암사 풍경에 들어앉아 보는 일로도 족하다.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속사정 침묵으로 묻고 고요로 답한다.화암사는 지나쳐 갈 수 있는 절이 아니다. 되돌아 나와야 하는 절이다. 방문객은 천년이라는 묵은 시간과 자연의 일부인 화암사 풍경에 푹 빠졌다가 빨랫감이 마르듯이 천천히 2009년으로 되돌아 나온다. 화암사를 향해 있던 마음이 이제는 세상을 향하게 된다. 이제 한동안 화암사는 잊고 살게 되리라. 그것으로 화암사의 몫은 끝이다.화암사도, 오르는 길도, 풍경은 매번 다르다. 봄을 타지 않는 듯 싶지만 살펴보면 보랏빛 머금은 현호색, 얼레지 그리고 산자고, 복수초 드러나는 봄이 있다. 그리고 봄도 다 같은 봄이 아니고 때죽나무 흰 꽃잎이 계곡물 웅덩이 가득 떠 있는 봄도 있다. 어디 봄 뿐일까. 흰 눈이 덮여 오래된 흑백 풍경이 된 길이며, 만산홍엽에 깊은 한숨이 나오는 늦은 오후도 있다.하지만 어떤 화암사의 얼굴도 잘 꾸며지고 가꿔진 모습은 아니다. 누가 옆에 서도 어색하지 않은 민낯의 제 어미 얼굴이다. 하여 화암사를 찾고 찾으며 그 모습 변치 않기를 바라게 된다. /양승수 문화전문객원기자(전주세계소리축제 프로그램팀장)

  • 문화일반
  • 전북일보
  • 2009.07.03 23:02

[꿈을 job는 당신] 호텔리어 되는 길

호텔리어는 우리에게 친숙하고 꾸준히 인기있는 직업이다. 더욱이 지난 2001년에는 배용준 송혜교 등 인기 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호텔리어' 드라마가 큰 흥행을 거두면서 한 때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직업 1순위로 오르기까지 했다.관광산업이 21세기 유망직종으로 부각되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관광산업이 국제 비즈니스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호텔경영 분야의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유능한 호텔리어가 필요하다.호텔리어가 되는 길을 알아보고 미래의 유능한 호텔리어로 거듭나보자!▲ 서비스 마인드 갖춰라!호텔리어는 호텔을 이용하는 고객에게 정중하고 다양한 편의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지 않은 일이 있어도 웃어야 하며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수단으로 생각한다면 성공할 수 없다. 친절·봉사 정신이 있어야 한다.긍정적인 마음, 밝은 표정은 필수지만, 억지스러운 표정관리는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남보다 빠른 정보를 얻어라!대부분의 호텔은 정해진 공채가 없다.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뽑기 때문.호텔리어를 하고 싶으면 원하는 호텔의 채용계획을 알아보고 그에 맞게 준비를 항상 해야 한다.수시로 각 호텔 홈페이지나, 관련 사이트, 블로그를 활용하면 좋다.▲ 이론·자격증 선호!호텔리어가 되기 위해서 꼭 대학교를 졸업하고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문 호텔경영학 수업을 받으면 이론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고, 자격증이 있는 사람을 선호하는 편이다.AHLA(미국호텔협회)에서 수여하는 국제공인 호텔실무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외국어는 필수!어학 실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더욱이 호텔은 국내 고객뿐만 아닌, 국외 고객도 찾는 곳이기에 외국어는 필수 사항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중국인 고객이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중국어를 할 수 있으면 유리하다.도움말=전주코아리베라호텔 김용두 지배인참고=한국호텔리어 교육원 홈페이지

  • 문화일반
  • 신동석
  • 2009.07.03 23:02

[꿈을 job는 당신] 전주 코아리베라호텔 호텔리어 김용두씨

"하늘에서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스튜어디스라면 땅에서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은 호텔리어(hotelier)라고 생각합니다."'최연소 지배인'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라 불리는 김용두씨(28)는 전주코아리베라호텔 식음연회팀 지배인을 맡고 있다."스물한살에 입사해 2년 전 지배인으로 승진했어요. 전(前) 지배인님이 갑작스럽게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최연소 나이에 지배인이 됐죠. 그 때는 제 경력도 부족했고 한 팀을 이끌어 나가는 리더가 돼야 한다는 부담감에 몇 번을 거부 했었지만, 많은 분들이 격려해 주고 도와주셔서 용기를 내 시작했어요."그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고 어떤 일이든 '척척'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열정이 풍만했던 고등학교 시절. 그에게는 너무 이른 나이에 아픔과 시련이 찾아왔다. 그러나 힘든 주변 환경이 지금의 김씨를 있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1때 어머니가 사고로 돌아가시고 연이어 2학년 때는 아버지마저 병으로 하늘나라로 가셨어요. 제 밑으로 중학생 동생이 있었는데, 한 순간에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돼 버린거죠."부모님을 잃은 슬픔도, 방황도 그에게는 사치였다. 돈을 벌어야 하는 처지에서 방황할 시간 조차 없었다. 그 후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꾸려 나가는 동시에 학업도 병행해야 했다."안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죠. 스무살 때에는 집 근처 레스토랑에서 일을 했어요. 손님들이 맛있게 음식을 먹으면서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면 내가 즐거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죠. 아마 그 때부터 이 일이 제 적성에 맞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현재 그는 식음연회팀 지배인으로 후배 직원들에게 인사·친절 교육부터 음식·와인에 이르기까지 호텔리어의 자질과 필수교육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김씨는 "리더로서 팀을 이끌어가고 있지만, 선장으로서 여전히 부족함이 많다"고 겸손해 했다."아직 저도 배워야 할 것들이 많은데, 저를 믿고 따라주는 후배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지 못하는 것 같아 가끔 미안할 때가 있어요. 더 많이 연구하고 노력해서 한 팀이 아닌, 한 가족으로 만들어 나가야죠."김씨는 후배 직원들 사이에서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라 불린다. 그 이유는 교육 또는 예절을 가르칠 때는 호랑이 선생님, 호텔 밖에서는 친한 형이자 동생처럼 편하게 대해주기 때문이다."말은 안해도 후배들 고생이 많을 겁니다. 저는 숙제를 많이 주는 편이거든요. 달랑 백지 한 장 주고 메뉴에 있는 음식 종류부터 가격까지 작성하게 하거나 고기·와인 종류 및 색상까지 적어보라고 하거든요. 가끔씩 제가 '너무 심하게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지만, 후배들을 위한 행동이라며 스스로 위로하죠."호텔리어가 된 지 어느덧 8년째. 그는 단순히 호텔리어의 깔끔한 겉모습과 화려한 호텔에서 일하는 모습에 반해 아무 준비없이 무턱대고 업종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호수에서 떠다니는 오리의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름답거나 평온해 보인다고 말하죠. 그러나 수면위의 모습이 아닌, 수면 밑을 보면 상황은 정반대거든요. 호텔리어도 마찬가지죠. 손님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것을 알았으면 해요."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더 나아가 최고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그는 "우리 호텔을 다녀간 손님 또는 관광객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기억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열심히 노력해서 총지배인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가장 큰 꿈이라면 성공한 외식업 CEO가 되는 것이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 문화일반
  • 신동석
  • 2009.07.03 23:02

[강준만의 책으로 읽는 세상] ⑬재미있는 완주 이야기

대한민국 인구의 반이 수도권에 몰려 살지만, 이 가운데 54.9%가 서울·인천에 몰려 산다. 지방도 비슷하다. 경남권의 60.2%가 부산·울산에, 경북권의 58%가 대구·포항에, 전남권의 57.2%가 광주·여수에, 전북권의 49.2%가 전주·익산에, 충남권의 57.2%가 대전·천안에, 충북권의 55.7%가 청주·충주에, 강원권의 50.7%가 춘천·원주·강릉에 몰려 산다. 이 통계를 보고 있자면, 대한민국의 땅이 좁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넓게 퍼져 살아도 모자랄 판에 죽어라 하고 큰 도시에만 몰려 사는 주제에 왜 국토 사이즈 타령을 한단 말인가.한국인의 행복도가 세계적으로 하위권에 속하고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고 평균의 두 배에 이른다는 건 무엇을 말하는가? 그게 단지 먹고 살기가 어려워서 빚어진 일인가? 물론 그런 이유가 없진 않겠지만, 우리가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공간의 사회심리학'이다.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는 「인간동물원」에서 좁은 공간에 밀집돼 있는 동물원의 동물들이 병에 걸리고, 새끼를 죽이고, 난폭하게 싸우고, 자기 몸을 불구로 만드는 자해행위를 하는 이상(異常) 징후를 보였다는 점을 지적했다. 우리 인간은 다를까?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과밀은 스트레스·불안·질병·범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게 밝혀졌다. 그런데도 우리는 과밀이 무슨 선진국의 상징이라도 되는 양 과밀을 향해 미친 듯이 질주하고 있다. 100층이 넘는 마천루는 현재 세계에 5개 뿐이지만, 5년 뒤 한국에만 10개가 들어선다지 않는가.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광역시·시보다는 군(郡)에 관심과 더불어 애정을 가져야 마땅하다. 완주군과 선샤인뉴스가 엮은 「재미있는 완주이야기」(인물과사상사, 2009)에 주목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은 '콩쥐팥쥐' '선녀와 나무꾼'으로 대변되는 완주군의 민속을 스토리텔링(storytelling)과 접목시킨 작품으로, 지역의 우수 문화콘텐츠를 발굴하기 위해 완주군과 선샤인뉴스가 진행한 '2009 완주군 전래동화 공모전'의 수상작들과 현장 취재물을 담고 있다.'전래동화 다시쓰기'엔 '필리핀 엄마'(이유리), '목남과 부선의 사랑이야기'(김요안), '팥쥐는 왜?'(이현주), '선녀 설희, 소년 승우 그리고 새하얀 여름'(김정현), '선녀가 가르쳐 준 연날리기'(정해민), '창작동화'엔 '단우와 여의주'(이영미), '엄마 나무, 안녕?'(강혜림), '두메장수와 연이'(전경진), '루위유성과 김만수'(박은숙), '물고기마을'(채민경) 등 모두 10편의 동화가 실려 있다. '완주군 전래동화 공모전'과 더불어 '캐릭터 공모전'도 같이 진행되었는데, 국민적 참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국의 많은 분들이 참여를 했다.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전북의 스토리텔링'에 대해 고민을 해보왔다. 전북은 빼어난 자연·문화유산에 상응하는 인지도를 전국적으로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가끔 '전남 전주시'로 써보내는 우편물을 받거나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을 접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전북의 정체성이 스토리로 각인되지 못한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전북이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자연?문화유산 '베스트 10'을 뽑아보자. 거기에 무슨 스토리가 있는지 스스로 검증을 해보자. 너무 낡았거나 빈약하거나 없다. 이게 참 이상한 일이다. 전북은 상대적으로 그 어느 지역보다 더 탁월한 문필가·언론인들을 많이 배출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 분들이 전북이라는 지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전국을 포용하는 건 아름다운 일이긴 하지만, 너무 통이 큰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전북 어느 도시에서건 그 지역의 대표적인 서점을 가보자. 한 구석에나마 지역을 소개하는 책들이 따로 꽂혀진 서가를 만날 수 있는가? 아니 그 이전에 한 도시의 탄생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걸 개략적으로나마 정리한 책을 찾을 수 있는가? 남들이 전북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를 말하기 이전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답은 모두 부정적이다.내가 약식으로나마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봐도 '전북의 정체성'을 인식하는 학생이 거의 없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그 따위 정체성 이야기를 하느냐고 반문한 분들도 있겠지만, 지금 무슨 편 가르기를 하자는 뜻으로 정체성 타령을 하는 게 아니다. 젊은이들이 자신이 태어나서 살고있는 지역에 대해 최소한의 자긍심조차 갖지 못한 채 언제건 기회만 닿으면 떠나려고 한다면, 그 지역에 미래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우리는 지역발전을 위해 인재를 육성하자고 외친다. 모든 이들이 찬성할 수 있는 옳은 방안이다. 그런데 우리의 인재육성 전략은 여전히 '인재 서울보내기 운동'의 틀에 갇혀 있다. 거칠게 말하자면, 지역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인재일 수 없다는 전제를 공공연히 유포시키는 자해(自害) 행위를 범도민 차원에서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학생들은 그런 몹쓸 프로파갠다에 주눅 들어 자기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 자신감이 약하다. 졸업후 서울로 뜬다는 '패자부활전'만을 기다리는 형국인데, 이게 또 기가 막힌 이야기다.우리는 서울로 가지 않고 지역에서 일을 해보겠다는 젊은이들을 존중하고 존경하지 않는다. 기껏 해준다는 말이 "너 정도면 얼마든지 서울 갈 수 있다"는 격려다. 친구들조차 "너 정도면 얼마든지 서울 갈 줄 알았는데 왜 전북에 남았는지 모르겠다"는 말로 지역에 남은 야망 있는 젊은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게 우정의 표현이다. 스스로 전북을 '저주받은 땅'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해 안달하는 것만 같다.지금 나는 자기 자식을 서울로 보내고 싶은 부모들의 마음을 감히 탓하는 게 아니다. 그건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나 역시 대학입학을 앞둔 딸에게 "전북대도 좋다"고만 말할 뿐, "너는 꼭 전북대에 진학해야 한다"고 말하진 않는다. 본인이 서울로 가겠다면 보내겠다는 게 나의 뜻이다. 지금 나는 스스로 모순을 범하고 있는 건가? 그렇게 생각할 분은 그렇게 생각하는 자유를 말리고 싶은 뜻은 없지만,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우리 모두가 다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원칙에 관한 것이다.공적 차원에서 개입해 돕지 않아도 서울로 갈 사람은 서울로 가게 돼 있다. 가족 차원에서 어련히 알아서 잘 할까. 그건 그냥 '시장 논리'에 맡겨두자는 뜻이다. 그러나 공적 자금과 지원만큼은 지역에 남겠다는 학생들의 몫으로 돌아가게 하자는 것이다. 이들에게 장학금을 더 주고 이들의 기숙 시설에 지원을 더 해주고 이들에게 격려를 더 해주자는 것이다. 왜? 이들이 전북을 지킬 진짜 인재들이기 때문이다.엉뚱한 독법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재미있는 완주 이야기」를 읽으면서 얻은 메시지는 바로 그것이다. 나는 큰 도시들보다는 군(郡)이 번영을 누려야 나라가 잘 되는 건 물론 한국인의 전반적인 행복도도 올라갈 것이라고 믿는다. 완주군민, 아니 전국의 모든 군민 파이팅!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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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09.07.02 23:02

[미디어법 강행, 지역신문은] ②거꾸로 가는 신문지원

지난해 5월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은 언론관계법을 바꿔 신문·방송 겸영을 허용하고 대형 미디어그룹을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같은 선언은 격심한 찬반논란을 불러일으켰고 같은 해 10월 인쇄매체국민회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국민회의는 100여 차례의 토론 끝에 올 초 이른바 '미뇽보고서'를 제출했다. 핵심은 '신문산업 진흥을 위해 신·방 겸영 확대가 아닌, 좀더 적극적인 국가지원이 필요하다는 것'. 프랑스는 이전에도 해마다 총 인쇄매체 산업매출액의 8%를 국가가 지원해 왔다.서구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신문산업 육성을 위해 광범위한 지원제도를 실시해 왔다. 스웨덴 프랑스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네덜란드는 '디지털화 추진 지원 지원금' 등의 직접지원을, 미국 영국 독일은 '신문제작 보조금' 등의 간접지원 제도를 두고 있다. 이같은 서구 선진국 지원제도의 특징은 '여론 다양성 확보'를 위해 시장지배적 신문을 제외한 중소신문과 지역신문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우리나라 신문지원 정책은 2004년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 2005년 '신문법'이 재개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이같은 신문지원이 '언론 자유 침해'라는 조중동 등 독과점신문들의 격렬한 반대와 견제로 제기능을 하지 못했다.이명박 정부 들어 신문지원은 아예 몇몇 독과점 특정매체를 위한 지원으로 변질되고 왜곡되고 있다. '지역신문의 건전한 발전기반 조성' '여론의 다원화' '민주주의의 실현 및 지역사회의 균형발전'을 목적으로 제정된 '지역신문발전법'의 경우 두차례나 기금이 삭감됐다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핵심사업들의 예산이 전액 또는 부분 삭감됐다.'독자 신뢰도·만족도 상승'등의 효과를 토대로 6년 한시법인 지역신문법을 일반법 내지는 연장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 사이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유선진당이 연달아 개정안을 냈지만, 아직도 국회에 계류중이다. 반면 문화체육관광부가 입법청원한 뉴스통신진흥법 개정안은 한나라당 주도 속에 법안 발의 1개월여 만인 지난 4월 국회에서 특별법이 일반법으로 전환됐다. 이에 따라 연합뉴스는 앞으로 매년 3백억원 정도를 국가로부터 지원받게 된다. 지역신문 모두에게 해당되는 지역신문법에 대해서는 특별법이 일반법으로 전환된 사례가 없다는 등을 이유로 들며 손사례를 치던 정부가 특정매체를 위한 뉴스통신진흥법은 일사천리로 진행한 것이다.여타 신문지원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정권때 신문지원을 반대했던 조중동이 최근 신문협회 등을 통해 입장을 바꾸자 문광부도 태도를 바꾼 것이다. 문광부는 지역신문기금 중 '소외계층구독료 지원 및 NIE지원'을 전액 내지 대폭 삭감했다. 반면 허원제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4월 중순 내놓은 정부 예산으로 전국 11만여개의 중·고등학교에 한 학급당 4종의 신문을 보급하겠다는 정책에 대해서는 찬성했다. 'NIE 지원'이나 '신문보급'은 크게 다른 사안이 아니다. '신문보급'이 조중동 등 특정신문들이 대대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길인 반면, 'NIE 지원'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두드러질 뿐이다.신문지원의 하나로 진행돼 온 정부광고의 경우도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동아일보가 433%(총 9억3천476만원), 조선일보가 410%, 중앙일보가 160% 늘었다. 반면 지역일간지 비율은 6.4%에서 절반에 가까운 3.5%로 줄었다. 문광부는 한발 더 나아가 내년부터는 신문부수공사(ABC)를 받지 않은 신문에 대해서는 정부광고를 주지 않겠다고 지난 5월 발표했다. 또한 유가부수 인증기준을 구독료의 80%에서 50%까지 낮추겠다고 덧붙였다. 경품과 무가지로 유가부수를 늘릴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고루 배분했던 기존 방식을 뒤짚고 부수를 기준으로 정부광고를 집행하겠다는 것은 특정신문에 대한 특혜다.한나라당의 경우는 신문법 개정을 통해 신문지원 기준인 '여론 다양성'을 전면삭제했다. 또한 신문발전위원회를 심의기구로 전락시킨 뒤 사실상 문광부 장관이 임의적으로 신문지원 및 정책을 결정할수 있도록 허용하려고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언론관계자들은 "신문지원의 최대 목표는 여론 다양성 확대·강화가 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한나라당은 거꾸로 가고 있다"며 "특정신문의 시장 독점을 더욱 심화시키며 지역일간지 등 중소신문들은 고사시키려는 잘못된 신문정책은 즉각 수정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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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휘정
  • 2009.07.02 23:02

한예종 총장, 음악원이냐 영상원이냐

황지우 전 총장의 사퇴로 공석이 된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의 신임 총장이 전통적으로 총장을 배출해온 음악원에서 나올 것인지 최근 학내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영상원 출신이 될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3일로 예정된 한예종 총장 선거는 투표권을 가진 교수 130여명이 입후보자들을 대상으로 비밀투표를 벌여 상위 득표자 2명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추천하면 장관은 그 중 1명을 대통령에게 제청하고, 대통령의 임명으로 최종 확정된다. 현재 총장 후보로 경합하고 있는 이들은 김남윤 음악원장, 박종원 영상원장, 임웅균 음악원 교수, 허영일 전 무용원장 등 4명이다. 후보들이 투표권을 가진 교수들과 개별적으로 접촉하며 선거 운동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학내에서는 이번 선거가 김남윤 음악원장, 박종원 영상원장의 1,2위 다툼이 될 것으로 예상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바이올린 대모'로 불리는 김 원장은 개교 때부터 학교에 몸담으며 제자들을 길러내고, 음악원의 기틀을 다져 학교 안에서 신망이 두텁다는 평가다. 김 원장이 총장이 될 경우 9년 동안 재임한 초대 총장 이강숙, 2002년 2월부터 4년간 총장을 지낸 이건용에 이어 음악원 교수로는 3번째로 한예종 수장에 오르는 것이고, 음악원으로서는 연극원 출신 황지우 총장에게 넘겨줬던 총장직을 3년 반 만에 되찾아 오는 셈이다. 영화 '영원한 제국',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을 감독한 박종원 영상원장은 대내외적으로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학계 뉴라이트 단체 발기인으로 참여하는 등 현 정권과도 이념적으로 멀지 않다. 박 원장이 임명되면 한예종 역사상 최초의 영상원 출신 총장이 나오는 것으로 영상 언어의 시대에 영상원에서 총장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냐는 이유에서 박 원장을 지지하는 교수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학내의 여론을 보면 이번 선거가 김남윤-박종원의 2파전이 될 가능성이 크지만 적극적으로 선거 운동을 펼치고 있는 임웅균 교수가 다크호스로 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임 교수는 2006년 국민중심당 소속으로 서울시장에 출마하고, 현재 한국폭력대책국민협의회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등 그동안 펼쳐온 학교 외적인 활동이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무엇보다 신임 총장은 문화부 감사 사태로 뒤숭숭해진 학내 분위기를 수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어 학교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한다는 기류가 강하기 때문이다. 2004년 허위 학력 논란에 휘말렸던 전력이 약점으로 꼽히는 허영일 전 무용원장도 "국제 콩쿠르를 진행하고, 세계민족무용연구소를 운영하며 축적된 경험을 살려 한예종 제2의 도약을 위해 일하고 싶다"면서 조용히 선거운동을 지속할 것이란 뜻을 밝혔다. 김홍준 한예종 기획처장은 선거와 관련해 "예술가들은 본래 독자적인 세계를 갖고 있어 패거리를 짓기 싫어한다"면서 "한예종 총장 선거는 원(院) 대결과는 거리가 멀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현재 차분히 선거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투표권을 가진 교수들이 각자 염두에 둔 인물이 있겠지만 6-7일 서초동 교사와 석관동 교사에서 열리는 후보들의 소견발표 이후에야 (유력 후보에 대한) 구체적인 윤곽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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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7.02 23:02

"청소년에 좋은 생각 열어주는 인문서 필요"

"사춘기에는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죠. 이런 청소년의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책입니다. 책은 아이들의 선생님이 되어 창조력과 상상력을 키워주고, 생각을 스스로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어른이 되도록 기준을 세워 줍니다." 방한 중인 일본영어덜트출판회의 시모무카이 미노루(58) 회장은 1일 오후 파주출판도시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청소년 책이 왜 필요한가'라는 물음에 이런 답을 내놓았다. 그는 일본영어덜트출판회와 한국청소년출판모임(회장 김완중)이 함께 이날 오후 개최하는 '한일 청소년출판 세미나' 참석차 한국을 찾았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아침독서운동'을 일본이 먼저 시작했는데도 한국에서 오히려 자리를 더 잘 잡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한번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또, 일본은 인터넷을 통한 책 매매가 한국만큼 활성화하지 않았는데 어떤 식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한국청소년출판모임은 2005년 출범했지만 일본영어덜트출판회는 올해로 창립 30년을 맞은 '중견' 단체다. 일본 출판계는 '청소년' 대신 갓 성인이 된 18∼19세까지 포함한 '영어덜트(Young Adult)'라는 용어를 쓴다. "공공도서관에 영어덜트책 담당 사서가 따로 있는 미국 시장에 비하면 아직도 부족하지만, 일본 영어덜트 시장의 성장률은 어린이책, 어른책보다 높습니다. 요즘에는 어린이용 책과도, 어른 책과 비교해 차별성을 갖는 좋은 청소년책이 많죠."일본영어덜트출판회가 영어덜트 책 시장을 넓히려고 먼저 팔을 걷어붙인 일은 어린이책이나 어른 책과 달리 따로 없던 유통체계를 세우는 것이었다. 공공도서관에 대한 영어덜트 책 유통체계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고, 공공도서관유통센터를 통해 정기적으로 도서 세트를 납품하는 체계를 2년 전에 시작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아침독서운동'에 참여하는 9천개 중ㆍ고교에는 서점을 통해 책을 주문받아 공급하는 시스템을 쓴다. 또, 서점에는 출판사 30∼35개사의 책 120종을 한 세트로 만들어 전국 450개 서점에 배본하기도 한다. 시모무카이 회장은 어른이 되고 나서도 책을 읽는 습관을 지니려면 청소년 시절에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하면서 어린이 책과도, 어른 책과도 다른 영어덜트 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만화책과 달리 글로 된 청소년 책은 어른이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않으면 금세 읽지 않게 됩니다. 청소년이 쉽고 가까이 좋은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어른들이 만들어 줘야 해요."그는 청소년 책으로는 '쉽게 읽히면서 우수한 인문서'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면서 서구에 비해 역사는 짧더라도 어린 시절부터 좋은 책을 읽고 자란 일본 청소년 책 작가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모무카이 회장이 대표로 있는 리론샤(理論社) 역시 1947년 계간지 '이론' 창간과 함께 시작된 창작 아동문학 전문 출판사로, 영어덜트를 노린 문학 시리즈를 내놓고 있다. 한국 청소년 출판계를 위한 조언을 요청하자 시모무카이 회장은 "좋은 책을 만드는 것, 그것뿐"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좋은 책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디자인의 질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겠죠. 무엇보다 청소년에게 좋은 생각을 열어줄 수 있는,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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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7.02 23:02

소설가 이외수 "악플에 법적대응 결심"

최근 악플러들을 고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는 소설가 이외수(63) 씨가 "대응하지 않으면 동일한 사태가 반복될 것이라 생각해 법적대응에 나설 것을 결심했다"고 털어놓았다. 이 씨는 1일 오후 3시께 야후코리아에서 생중계한 '송지헌의 사람IN'에 출연해 많은 연예인들을 자살로 몰아가고 어린 학생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치는 악플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하기 위해 이같이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네티즌들에게 시달리느라 잠을 잘 자지 못했다"면서 "사람이 할 일이 있고 짐승이 할 일이 있는데 아무리 인터넷 상이라고 해도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수위는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고 호소했다. 그는 이어 "악플은 감성이 메마른 현대인들의 욕구불만을 반영하는 현상"이라면서 "조그만 꼬투리를 계기로 공격성을 표출하지 않으려면 음악회나 전시회를 찾아가고 양서를 읽으면서 정신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씨는 "악플러에게 사과할 기회를 주고 용서하려 했다"면서 "당초 반성문을 보고 혹시나 싶어 2장만 더 올리라고 했는데 새로 쓴 반성문들에 욕설을 숨긴 것을 발견해 용서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악플의 대상이 된 까닭에 대해서 "대개의 경우 악플러들은 이름이 알려진 사람을 공격해야 자신의 위상이 올라간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이 씨는 마지막으로 네티즌들에게 "온갖 사이트를 다니면서 여러분들의 고견을 '눈팅' 하니까 늘 곁에 있다고 생각해달라"면서 "가급적 악플은 달지 말고 한 마디를 해도 남을 기쁘게 하는 소중한 말을 하라"고 전했다. 한편 이날 방송을 시청한 네티즌들은 "4시간 간격으로 반성문을 요구해 반발을 사지 않았냐", "이외수 씨도 악플을 달았는데 그건 풍자고 남의 악플은 욕설이냐" 등의 댓글을 남겨 앙금이 풀리지 않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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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09.07.02 23:02

[전주 재발견 현장답사] ⑥전주에 뿌려진 천주교인의 성혈

11일에 진행되는 '전주재발견 우리땅밟기' 현장답사 주제는 '전주에 뿌려진 천주교인의 성혈'이다. 초남리·숲정이·서천교·초록바위를 거쳐 풍남문과 전동성당에 이르는 코스다. 답사 중 신앙의 본보기가 되는 윤지충(바오로) 권상연(야고버) 유항검(아우구스티노) 유중철(요한) 이순이(누갈다) 동정부부 등의 순교자들을 두루 만나볼 수 있는 의미있는 코스이다.초남리는 전라도의 사도로 유명한 유항검이 교우촌을 이루어 살았던 마을이다. 전라도 사람으로 천주교에 대한 이야기를 맨 처음 들은 사람은 진산에 살고 있던 윤지충이었지만, 복음을 맨 처음 받아들인 사람은 유항검이었다. 이종사촌인 윤지충으로부터 천주교에 대한 소식을 전해들은 유항검은 당시 사회의 모순을 극복할 복음으로 여기고 1784년 늦가을에 스스로 양근의 권철신 집을 찾아가서 권일신에게 교리를 배우고 그를 대부로 삼아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고 초남리로 돌아왔다. 그는 자기 가족·친척·친지·노비 등에게 복음을 전해 초남리를 교우촌으로 만들었고, 여러 고을에 산재해 있는 전답의 소작인과 마름에게도 전교해 복음을 전라도 각지로 전파시켰다. 10여 개 고을에 줄잡아 15,000마지기(9,900,000㎡)나 되는 막대한 전답을 소유한 그가 재산을 덜어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면서 전교를 하자 사람들이 대거 입교, 전주·금구·김제·영광 등에까지도 천주교가 전해졌다.전라도의 복음 전파는 윤지충에 의해서도 널리 이뤄졌다. 그는 1784년 겨울에 서울 명례방 김범우 집에 들러 정약전에게 천주교 서적인 「천주실의」와 「칠극」을 빌려다가 3년 동안 공부한 뒤 부족한 교리를 정약전에게 배우고 그를 대부로 삼아 1787년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았다. 어머니와 고종사촌 형인 권상연 등 가족과 친척들에게 복음을 전했으며, 그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무장의 최여겸(마티아), 고산의 양언주, 무안의 고시윤 등에게도 교리를 가르쳤다.이승훈에 의해 신부로 임명돼 견진성사와 미사성제까지 집전하던 유항검은 풍부한 교리지식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성사집전이 독성죄에 해당된다는 것을 깨닫고 즉시 이를 중지하고 북경교회에 밀사를 파견해 선교사들의 지시를 받도록 촉구했다. 그의 요청으로 1789년과 1790년에 윤유일을 연거푸 북경에 밀사로 파견해 구베아 주교의 지시를 받고 성직자 영입 운동을 추진했다. 이 때 유항검은 밀사를 파견하는 데 드는 비용을 지원했다. 그는 필요할 때마다 항상 교회를 위해 돈을 선뜻 내놓았다. 1795년에 입국한 주문모 신부의 사택 구입비로 300냥을 내놓았고, 1796년에 주문모 신부의 지시로 전라도 신앙공동체가 선교사 영입을 추진할 때도 밀사 파견에 필요한 경비 400냥을 후원했는데, 전라도 신앙공동체는 이 일을 1800년까지 추진했다.전주는 첫 순교자를 배출한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조선교회가 1790년에 밀사로 파견된 윤유일을 통해 유교식 조상제사에 대한 고민을 묻자 구베아 주교는 조상제사를 미신으로 규정해 금지하는 사목교서를 내렸다. 이 지시에 따라 전라도교회의 지도자들인 유항검·윤지충·권상연 등은 즉시 조상들의 신주를 묘 옆에 묻거나 소각하고 유교식 제사의례를 거부했다. 이 일은 곧 유생들에 의해 패륜적 행위로 규탄을 받아 두 사람은 체포됐고 전주감영에서 심문을 받았다. 두 사람은 천주교의 가르침에 따라 제사음식을 차려놓지 않고 신주를 모시지 않은 것은 정당하다고 논리적으로 반박했지만, 결국 사형 판결을 받고 1791년 11월 13일 남문 밖에서 참수형을 당해 순교했다. 그들의 머리는 5일 동안 장대 끝에 높이 매달려 전시됐다.전라도교회는 1801년 신유박해로 다시 큰 피해를 입었다. 1800년 6월 28일 정조가 사망하자 노론 벽파는 정조의 개혁정치를 주도했던 천주교와 연결된 남인 시파를 제거하기 위해 1801년 1월부터 천주교에 대한 탄압을 대대적으로 단행했으며, 그 여파가 전라도에도 미쳤다. 전라감사 김달순은 좌·우 포도청에서 보내준 자료를 토대로 3월에 신자들을 수색해 200여 명에 이르는 많은 신자들을 여러 고을에서 체포했다. 현존하는 기록에 의하면, 그들 중 20명은 처형당했고 42명은 유배를 당했다. 처형된 20명 중 유항검·윤지헌 등 지도층 신자 5명은 1796년부터 추진해 왔던 선교사 영입운동(大舶請來사건)과 무력을 이용해 개교하려 했던 일이 탄로나 사형 판결을 받고, 1801년 9월 17일 전주 남문 밖에서 처형당했다. 이 때 유항검의 목은 풍남문 누각에 매달아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갖게 했으며, 그의 재산은 모두 몰수되고 그가 살던 집은 헐려 연못으로 만들어졌다. 이처럼 윤지충·유항검 등이 순교한 남문 밖 순교터에는 1915년에 전동성당이 건립되었고, 유항검이 살던 집터는 현재 사적지로 가꾸어졌다.아울러 전주 감옥에서는 유중철이 교수형을 당해 순교했고, 숲정이에서는 유항검의 가족들인 신희·이육희·이순이·유중성(마태오) 등이 참수형을 당해 순교했다. 이들 중 관심을 끄는 순교자는 다블뤼 주교가 '한국 순교자들의 보석'이라고 표현했던 이순이·유중철 동정부부이다. 1795년에 주문모 신부에게 성사를 받고 성체를 영한 두 사람은 각자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자신의 몸을 소중하게 지키기 위해 동정생활을 결심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주문모 신부는 두 젊은이의 동정성소를 보호해 주고자 중매를 하여 1797년에 9월 혼인식을 올렸고, 이듬 해 10월에 전주 초남리 부모 앞에서 동정서약을 했다. 두 사람은 1800년 12월에 몇 차례 육체적 욕정의 유혹을 받았으나 기도로 끝내 이겨내고 남매처럼 살았다고 한다.이처럼 전라도 교회는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윤지충·유항검·이순이 등 신앙의 본보기가 되는 순교자들을 대거 배출했다. 이에 따라 현재 추진하고 있는 시복시성 대상자 124위 명단에 병인박해 이전에 전라도에서 순교한 24명의 고귀한 순교자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고, 그 중에서도 윤지충이 124위의 대표 순교자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서종태(호남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 이번 답사는 '전주에 뿌려진 천주교인의 성혈'  (안내 서종태 호남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 11일 오후 2시 전주역사박물관 출발  초남리(유항검 생가터·교리당)→숲정이성지(이순이 루갈다 순교터)→서천교→초록바위→전동성당※ 다음 답사는 25일 '소리따라 길따라-동편소리의 또다른 맥, 고창 소리를 찾아'(안내 유장영 전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장)※ 답사신청은 전주문화사랑회(www.okjeonj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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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7.02 23:02

[미디어법 강행, 지역신문은] ①신문고시 폐지

<< 정부와 한나라당이 6월 임시국회에서 미디어법 강행처리를 시도한 가운데 각종 신문 관련 정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하나같이 조중동 등 특정신문 중심으로 지역신문에 대한 배려나 관심은 찾아보기 힘들다.지역신문은 지역여론을 형성하며 지역민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공적 존재다. 지역문화 창달로 지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소수 전국신문의 독과점이 지역여론을 왜곡하고 여론 다양성을 파기하는 등 갖가지 부작용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이미 오랜 역사 속에서 검증된 사실이다.서구 선진국이 지역신문을 보호·육성하기 위해 많은 정책을 펴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거꾸로 가고 있는 정부와 한나라당의 미디어법과 신문정책. 그 문제점을 '지역신문 공동기획'으로 3회에 걸쳐 짚어본다.'지역신문 공동기획'에는 전북일보를 비롯해 한라일보, 제민일보, 부산일보, 국제신문, 경남신문, 경남일보, 경남도민일보, 경상일보, 매일신문, 영남일보, 충청타임즈, 중부매일, 강원일보, 강원도민일보, 경인일보 등 전국 지역일간지 16개사가 참여했다. >>고가의 경품·무가지로 대표되는 '과당·불법·출혈경쟁'과 '강제투입'. 우리처럼 왜곡되고 무질서한 신문시장을 가진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신문의 공공성 및 신뢰도 추락으로 이어져 신문 산업의 위기를 자초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적돼 왔다. 특히 고가의 경품과 무가지는 사실상 독자의 선택권을 유린하는 여론 매수행위로, 자본력을 앞세운 몇몇 신문들에 의한 인위적인 '여론 독과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 문제가 심각하다.1년 구독료의 20%를 상회하는 경품과 무가지를 규제하는 신문법 제10조 신문고시는 이같은 배경하에 도입됐다.하지만 조중동 등 거대 전국지들은 합헌 판결 이후에도 끊임없이 신문고시를 위반하며 신문시장 질서를 유린해 왔다. '기자협회보'가 2008년 4월 공정거래위원회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04년∼2007년 신문고시 위반 537건 중 445건이 조중동 3개 신문사에 의한 것이었다.현 정부 들어 조중동의 신문고시 위반은 더욱 노골적으로 행해져 1년 구독료를 상회하는 경품과 무가지까지 등장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지난 6월 조중동 지국 90곳에 대해 신문고시 준수 실태를 조사한 결과 89곳이 신문고시를 위반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위반율은 100%였으며, 중앙일보 역시 단 한 곳만 제외하고 신문고시를 준수하지 않았다.이처럼 '반칙'이 난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신문시장 질서를 바로잡기는 커녕 오히려 신문고시 폐지에 앞장서며 조중동 입장만을 대변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신문고시 재검토 방침을 밝혔다가 시민사회 및 언론단체의 거센 반발에 부딪쳤던 공정거래위원회는 한발더 나아가 오는 8월 23일 이후 신문고시를 폐지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는 경품과 무가지를 뿌려대는 조중동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정책으로, 특정신문에 대한 편애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과 같다.이와 관련 한국지방신문협회는 지난달 25일 열린 정기총회에서 "무가지, 무상 경품제공 등 불공정행위 규제를 완화하는 신문법 개정을 반대한다"며 강력대처하기로 결의했다. 전국지방신문협회도 지난달 26일 긴급 회장·고문단 회의를 개최하고 "한나라당과 MB정부는 몇몇 독과점 매체를 위해 대한민국 모든 지역신문의 기반을 붕괴시킬 수도 있는 길을 열어주려고 한다"며 "전신협은 이에맞서 국민들과 함께 끝까지 강력히 대처해 나갈 것"이라는 내용의 긴급결의문을 발표했다.이처럼 비난 여론이 확산되자 신문고지 폐지를 검토했던 한나라당은 지난달 29일 당 소속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회의를 긴급 소집, 신문법 제10조를 유지하기로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문방위 소속 한나라당 간사인 나경원 의원은 "당초 신문고시 폐지안을 내려고 했는데 반발이 워낙 심해 이를 백지화했다. 더 이상 신문고시 폐지문제가 거론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방신문협회에 통지했다.언론노조 김순기 수석부위원장은 "대부분의 신문들이 찬성하고 시장질서에도 부합하는 신문고시를 폐지하는 것은 친정부신문으로 돌변한 조중동에 대한 보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며 "신문고시 폐지는 과당출혈 경쟁을 초래해 신문산업 전반과 특히 지역신문의 위기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 뻔한 만큼 오히려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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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휘정
  • 2009.07.01 23:02

[열린마당] 가정에서 복분자를 즐기는 문화 만들기 - 김종운

우리지역의 특산품인 복분자 수확의 시기가 돌아왔다. 복분자는 전라북도 대부분지역에서 6월 15일부터 7월10일까지 생산되어 전국 생산량의 80%정도를 점유하는 전라북도의 대표 특산품이며 대한민국 대표상품이다.우리지역에서는 매년 1만톤이상의 복분자 생과가 생산되고 있으며, 생산량 대부분이 주류회사로 일괄 납품돼 일반 소비자들이 생과를 직접 구매해 엑기스나 복분자주를 담은 문화는 아직 미미한 것이 사실이다.복분자를 대한민국 대표품목으로 지속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대형주류회사에 일괄 판매하는 것보다는 외국의 포도주 문화처럼 가정에서 쉽게 음료로 마시고, 필요에 따라서 직접 제조하는 문화를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먹고 소변을 보면 요강이 뒤집어진다는 복분자, 전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복분자, 도시 소비자가 지역을 찾아와 맛보시고 즐기고, 소비하고, 구입하여 가정에서 복분자 엑기스 및 복분자를 담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웰빙식품인 복분자는 건강에 좋은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동의보감 등 옛 문헌에 전해오고 있으며 전문가들이 의학적으로 검증하고 있다.첫째로 신장 기능을 튼튼하게 하고 눈을 밝게 하며, 여성의 불임치료에 효과가 있으며, 둘째로 탈모를 방지하며 머리카락을 검게 하고 노화방지 및 신진대사를 촉진 시킨다.셋째로 학생들의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되며 여성의 피부미용에 효과가 있고, 넷째로 복분자 물이나 복분자 조청을 만들어 먹으면 야뇨증에 좋고, 술을 담궜던 복분자를 약한 불에 말려 분말로 만들어 먹으면 남성정력증강에 도움이 있다.다섯째로 콩팥으로 오는 음위증, 유정몽설, 강장제, 혈액을 맑게 해주며 간을 보하고 눈을 맑게 하는 등 많은 효능이 있다고 한다.복분자는 수확기에 생과를 구입하여 내손으로 직접 만들 때 우리 몸에 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우리 건강에 좋은 웰빙 특산물인 복분자를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로 정착해 나가야 한다.전라북도 도민 나아가서는 전 국민이 직접 생과를 접촉하고, 활용하여 다양한 식품을 만들어 가족 및 지역과 함께 할 때 자연스럽게 복분자의 문화가 생긴다고 본다.먼저 전라북도 도민이 나서야 한다. 이제 특정지역에서만 생산되는 품목이 아니기 때문에 전북도민 모두가 복분자 엑기스 및 복분자주 등 담기운동을 실천해 나가야 한다.전북농협은 복분자문화를 새롭게 하기위해 가정에서 웰빙식품인 복분자를 구입해서 엑기스 및 복분자주를 직접 만들어 나가자는 캠페인 운동을 벌이고 있다.대부분 가정에서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만들 수 있고, 인터넷을 통해서 만드는 방법을 쉽게 알 수 있다.우리가족 건강도 지키고 평소에 고마운 분들께 직접 만들어서 선물을 하면 두 배의 효과가 나타나 받는 사람은 한층 더 고마워할 것이다.이러한 운동이 성과를 발휘한다면 복분자 문화는 계속적인 성장해 나갈 것이다. 전북도민들이 이 운동에 참여해 웰빙식품 섭취를 통해 가족건강을 지키고, 농가들은 소수 대기업 판매 의존도를 줄여 다수의 도시민들에게 직거래 판매량을 늘려 안정하게 생산할 수 있어 복분자 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해 전라북도 경제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이 운동이 도시와 농촌, 생산지와 소비지, 지역과 지역이 하나 되고 함께 할 수 있는 상생과 협력의 실천운동으로 확산되어가길 기대하며 전북도민의 아낌없는 동참을 기대해 본다./김종운(전북농협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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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09.07.01 23:02

[모집] 제일 예쁜 '지렁이' 누구 손에 잡힐까

연필을 꾹꾹 눌러가며 일기를 쓰고, 지우개 가루 날리며 몇 번이고 고쳐쓰기를 반복하며 편지 한 통을 완성했던 시절. 그러나 컴퓨터에 익숙해진 요즘 아이들은 손으로 글씨 쓰는 것을 귀찮아 한다.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손글씨. 전북일보와 혼불기념사업회, 최명희문학관이 손글씨를 정성스럽게 쓰는 습관을 통해 우리말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제3회 전북지역 초등학생 손글씨 공모전 '날아가는 지렁이, 고사리 손에 잡히다'를 개최한다.손글씨로는 도내에서 유일한 공모전. 글씨를 예쁘게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박또박 깔끔하고 쓰여지고 특별한 글씨체를 가진 손글씨를 더 환영한다.공모대상은 손글씨를 쓰고 싶어하는 전북지역 초등학생. 친구나 부모님, 혹은 누군가에게 손으로 직접 쓴 편지나 A4 크기 종이에 필기구를 사용해 직접 쓴 글이면 된다. 연필, 볼펜, 만년필 등 필기도구 제한은 없다.접수기간은 9월 19일까지로, 작성된 손글씨 원본을 우편 또는 방문접수하면 된다. 수상작은 10월 10일부터 18일까지 최명희문학관에서 전시될 예정이다.손글씨 공모전은 최근 디지털 활자 대신 다시 손글씨를 주목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2007년 1회 대회 참가자만 1652명. 지난해에는 2473편의 작품이 접수됐다. 손글씨 공모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올해는 시상규모를 총 89명 학생과 우수학교 4개교로 확대하기로 했다. 문의 및 접수는 최명희문학관 063) 284-0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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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휘정
  • 2009.07.01 23:02

[문학] 침대 밑에 들어갔더니 빛의 세계가…

어린이들은 침대 밑으로 들어가면 우리가 사는 곳과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지 않을까 상상에 빠진다. 그 속에서 펼쳐지는 세상이 여러 빛깔의 색이 어우러진 그림의 세계라면 어떨까?'난 분홍색이 싫어', '10일간의 보물찾기' 등을 선보여온 동화작가 권재원 씨의 '침대 밑 그림여행'(창비 펴냄)은 어린이에게 미술의 세계를 꿈처럼 펼쳐 보여주는 책이다. 개구쟁이 그림이가 침대 밑으로 들어갔다가 마르크 샤갈과 페르난도 보테로,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빈센트 반 고흐, 조르조 데 키리코, 오귀스트 로댕, 윤두서, 에드바르 뭉크, 호안 미로, 앙리 마티스의 그림과 그 속의 주인공들을 만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림이는 파란 눈물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우아하게 생긴 아줌마를 만난다. 아줌마의 손을 잡고 빛을 따라 밖으로 나갔더니 노란 하늘과 태양이 있는 올리브 숲이 나타나고, 무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표정으로 밀짚모자를 쓴 아저씨가 그림이를 돌아본다. 그림이는 뾰족한 수염을 기른 호랑이 할아버지 때문에 놀라 꽁지가 빠지게 도망을 가거나 엉덩이가 크고 팔다리가 토실토실한 발레리나를 보고 깜짝 놀라기도 하며, 검푸른 물결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에서 얼굴을 감싸쥔 채 절규하는 사람과 함께 비명을 지르기도 한다. 강렬한 색채나 모호한 형상으로 인간과 사물을 표현한 명화들은 어린이의 눈에 이상하고 낯설어 보일 수 있지만, 명화들을 단순하게 지면에 옮기지 않고 기발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그림으로 재탄생시켜 흥미를 높인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그림을 보고 느끼는 것에 정해진 방법이 있지 않다"며 "개구쟁이 꼬마 친구 그림이를 따라가면서 화가들의 마음과 생각을 마음껏 상상해 보라"고 권한다. 44쪽.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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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09.06.3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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