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문화의 발견] "아름다운 삶 가치 공유, 도와드릴게요"
문화창조의 시대다. 그러나 문화가 각광받는 시대라 해도 그 가치를 발견하는 일은 쉽지 않다. 게다가 국가균형발전이 강조되고 지방분권이 시행된지도 이미 오래지만 지방은 여전히 '변방'이다. 그 틈새에서 지역문화 역시 주목받지 못했다. 이제 비로소 지역문화가 새롭게 숨을 쉬는 시대.창작현장을 지키는 문화전문가들이 지역문화의 가치를 발견해내는 작업에 동참했다. 전북일보가 위촉한 일곱명 문화전문객원기자들은 옛것으로부터 새로움을 발견하는 지혜로 지역문화의 소중함을 깨우치고, 그 가치를 찾아내는 작업에 나섰다. 첫모임이 열린 전주 경기전 뜨락. 객원기자들의 얼굴에 웃음이 넘친다. 지역문화의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는 문이 새롭게 열린다.우리 동네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구혜경(미술평론가) "이 동네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동네마다 일어나고 있는 어떤 문화적 행위에 대해 단순한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보니 그 동안 꽤 많은 곳에서 여러 행위들을 만나게 되고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하든 안하든 일정부분 관계를 맺게 된다. 그러나 이제는 범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동네마다 많은 문화적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어서 관계를 맺기에 한계가 느껴질 정도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는 시점인 것 같다. 문화예술과 관련한 일을 하고 있는 나도 고민 중에 가장 큰 것은 누구를 위한 문화예술인가라는 것이다. 문화예술을 주최하는 창작자와 그것을 향유하는 대중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두 부류를 연결하는 매개자들과의 삼각관계 속에서 대부분 자신들의 역할에만 충실하고 있어서 한데 뭉쳐져 있지만 각각의 개별적인 영역으로 보이게 된다. 이제는 서로에 대한 많은 배려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문화예술은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나씩 풀어나가기 위해 다른 부류의 시각으로 들여다보는 눈을 배워보려 한다. 새로운 문화지형도를 그려보자 문신(시인)세상에는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저 산자락의 높고 낮은 가락은 바람이 서로 충돌하여 소용돌이치며 그렇게 출렁거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언덕을 피해 슬그머니 옆으로 휘어져 돌아가는 길모퉁이도 급한 길에 여유를 가졌던 소박한 마음을 반영했을 것이다. 일견 저절로 이루어졌을 법한 것들이 사실은 오랜 세월에 걸친 누군가의 부단한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우리는 지금 그것들을 문화라고 부르고 있다.문화의 시대에 하나같이 문화를 산업화하여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겠단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보다는 기왕에 발굴된 문화자원을 남용하고 난도질하여 오히려 문화를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그렇게 해서는 유의미한 가치를 창출해낼 수 없다. 부단한 노력으로 미지의 영역에 새로운 문화지도를 그려내야 한다. 이제 우리 지역의 문화적 상상력과 창의력을 가늠해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문화생산 영역을 확인하고, 그 지평을 넓혀나갈 수 있는 문화지형도를 그려보는 것도 참으로 괜찮은 작업이 될 거라는 생각이다. 사람 귀한 줄 알아야지 정 훈 / 전주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70, 80년대. 하고많은 청춘들이 밤낮으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외쳤었다. 물론 지금은 뿔뿔이 흩어져 제 갈길 비지땀 흘리며 가고 있을 것이다. 지금 젊은 사람들은 취업에 미쳤다. 특히 매월 20일이 되면 꼬박꼬박 통장으로 들어오는 월급과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에 푹 빠져있다.그러나 내 주위에는 문화예술에 미쳐 있는 사람들이 여럿이다. 장구를 치는 C형, 꽹과리를 치는 K형, 시를 쓰는 L형, 민중노래를 하는 B형, 작은 문화시설에서 일하는 후배 C와 S. 요 사람들은 하나같이 가난하다. 노동하는 시간은 많지, 보수는 적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기는 더더욱 힘들지……. 전라북도에서 이들처럼 살아가는 것은 위험 한 짓일까? 21세기에 공공의 삶의 질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문화예술 창작자와 매개자는 더 이상 봉사자가 아니다. 나름의 기량과 꿈을 갖고 사는 자들이다. 문화판에 있는 인력들을 함부로 보지 말아 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사람 귀한 줄 아는 동네가 되기를 고대하고, 또 고대하면서 '사람 냄새'보다는 '사람 가치'를 알고 싶다. 문화의 '바깥'에서 다시 생각하기성기석(전주국제영화제 정책기획실장)'문화'라는 말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게다가 그 말 뒤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말들-문화'운동', 문화'정책', 문화'산업', 문화'기술', 문화'경제', 문화'콘텐츠', 문화'관광', 문화'도시'-이 붙을 때면 때론 징글징글하다. 뒷말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를 리 없지만 그리고 그 말들을 버릴 수도 없지만 갈수록 그 말들이 차갑다. 그 차가움은 생기 없는 열정, 무기력한의무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 차가움 안에서 '바깥'과의 만남들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 '바깥'은 너무도 익숙한 문화판 안에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바깥'을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어떤 만남은 서로의 열정을 매개하고 조정하면서 긍정적인 힘들을 만들어 내겠지만, 그와 반대로 서로의 열정을 파괴하고 지리멸렬한 힘들을 만드는 만남도 있을 것이다.다소 예상치 못한 이 만남이 문화의 '바깥'에서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그리고 유쾌한 만남으로 지속되기를 바란다.심형래와 지역문화 최기우(극작가, 최명희문학관 기획실장) 비판은 쉽다. 하지만 그것은 상대의 의지를 발전적으로 북돋워줄 수 있을 때 가치가 있다. "심형래가 만들면 40%가 깎이고 들어간다”며 한국영화계의 편견을 지적하던 심형래 감독의 볼멘소리와 갈수록 커지는 '디 워 논쟁'을 들으면, 늘 '지역문화'란 단어가 떠오른다. 감독이 지적하는 편견이 사실이라 해도 그것은 결국 자신이 안고 가야 할 숙제다. "'디워'는 영화가 아니라 70년대 청계천에서 조립에 성공한 미국 토스터기 모방품에 가깝다”(이송희일)거나 '허술한 이야기와 어설픈 연기력, 지나친 애국심 마케팅'의 문제 등은 눈물로 목이 멘 목소리가 아니라 촘촘한 스토리라인과 진일보한 기술 등으로 풀어야 한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기술이 부족해 마음 졸였던 날들. 이제 디 워에서 우리만의 기술을 이뤘다. 두려움은 없다. 앞만 보고 달릴 뿐이다.' 영화가 끝나면서 감독이 관객에게 보내는 편지. 영화 '용가리'의 흥행 실패 후 7년여 동안 아무도 믿어 주지 않는 길을 걸어오면서 오히려 강해진 영화에의 의지와 열정에 관한 감독의 토로에 관객은 힘찬 박수로 화답했다. 지역 문화도 마찬가지다. 쉼 없는 비판, 어지간히 속이 상할 만도 하지만, 지역의 문화는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다. 그 걸음에 작은 힘이 되고자…….소극장부터 시작하자이경진(시인)지난 주 창작극회의 연극 '있을 때 잘해'를 보았다. '청춘향수뽕짝극'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연극은, 시종일관 우리의 7·80년대를 회상시키는 노래와 신파로 이어졌다. 그리고 몇 가지 의문을 남겼다. 그 의문들은 기초예술이 처한 현실에서 출발한다. 문화예술복지 시설이 전주 권역에만 70여 개가 넘지만, 전반적인 문화예술 인프라는 매우 취약하다. 인프라가 시설에만 집중되었고, 그나마 장르도 편향돼 있기 때문이다. 인프라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적 인프라다. 시설은 그들이 활동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전통'문화센터를 짓더니 바로 맞은편에 '무형문화의전당'이 들어서고, 시청에서는 '판소리체험관'도 만든다고 한다. 소극장에서 연극을 보면서 내내 징징거리는 스피커와 공연 시작과 함께 허리에 쥐가 나는 의자가 마음에 걸렸다. 혹, 불이라도 난다면? 끔찍하다. 부끄럽게도 전주는 완벽한 시설을 갖춘 소극장이 없다. 철 지난 이야기지만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 건립된다는 소식을 듣고 그렇게 엄청난 규모로 짓기보다 중·소극장 십여 개를 집중해서 지으면 문화예술인과 향유자에게 훨씬 도움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이런 문제가 드러나는 가장 큰 이유는 현장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현장을 기반으로 수립되는 문화예술정책을 보고 싶고, 그 정책이 다시 현장에서 실험되는 과정을 기록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