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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동시·동요계의 기념비적 작품 '오빠생각' 그림동화로 재탄생

박상재 아동문학가와 김현정 그림작가와 함께 동요 '오빠 생각'을 모티브로 한 그림 동화책 <오빠생각>(샘터)을 펴냈다. 작가는 그동안 시와 동요로 사랑받아 온 '오빠생각'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림동화로 새롭게 선보인다. 그림책은 비단구두를 사가지고 돌아오겠다는 오빠를 한없이 기다리는 주인공 '순이'와 친구 '홍이'의 여정을 담고 있다. 작가는 이 여정에서 배어나는 그리움과 아픔을 오늘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유려한 문장으로 그려냈다. 동화에 나오는 '순이'는 오빠 생각을 쓴 시인 최순애다. 홍이는 순이의 둘도 없는 단짝으로 그려진다. 순이는 살구꽃이 만발한 나무 아래에서도, 꽃망울이 톡톡 피어나는 사과나무 아래에서도 오빠 생각 뿐이다. 그리운 오빠 생각에 기운이 없는 순이에게 힘을 더해주는 건 단짝인 홍이. 순이는 오빠 생각을 애써 뒤로 하고 언젠가 오빠에게 들은 이야기 속 장소들을 단짝 홍이와 함께 찾아 나선다. 수원 화성과 광교산을 배경으로 두 소녀의 여정은 그림과 함께 아름답게 펼쳐진다. 토끼와 노루가 물을 마시러 온다는 신비한 약수터를 향하는 힘찬 발걸음은 희망의 색으로 지면이 가득 채워진다. 하지만 끝내 희망을 이루지 못하고 두려움에 쫓기듯 내려오는 아이들의 잰걸음은 당시 스러져가는 조국의 암담한 상황을 은유하듯 소멸의 색으로 뒤덮는다. 책은 원작 시의 의미를 살려 이야기를 시처럼 음미할 수 있도록 지면에 그림과 여백을 조화롭게 배치했다. 장수에서 태어난 박상재 아동문학가는 단국대 대학원 국문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1년 <아동문예> 신인상에 동화 '하늘로 가는 꽃마차'가 당선됐다. 이후 198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었고, 초등학교에서 40년 간 아이들을 가르치며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하여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한국아동문학상, 방정환문학상, 이재철아동문학평론상, 펜(PEN)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한국아동문학인협회 이사장, 국제 펜 한국본부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림을 그린 김현정 작가는 20년 가까이 동화 그림을 그려왔다. 현재 개인전과 화실을 운영하고 있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4.11.06 17:50

김옥녀 시인, 시선집 '가슴에서 말발굽 소리를 내는 꽃잎은' 발간

“가슴에서/ 말발굽소리를 내고 있는 꽃잎은/ 갈라붙는신열로/ 뜰 가득/ 불을 지르고/ 행여 누가 제 몸에/ 손을 댈까 봐/ 가슴이 콩닥거리고 있다.”(시 ‘꽃잎’ 전문) 김옥녀 시인이 시선집 <가슴에서 말발굽소리를 내는 꽃잎은>(월간순수문학)을 펴냈다. 시집은 총 6부로 구성돼, 최근 김 시인이 창작한 120여 편의 시를 선보인다. 시인은 200여 페이지의 이번 시선집을 ‘해바라기’와 ‘봄바람’, ‘우렁’, ‘달’, ‘사루비아 꽃’ 등과 같은 자연물과 관련한 시어로 채우는 등 자연에 대한 예찬을 듬뿍 담아냈다. 특히 이번 시집의 끝머리인 6부에는‘논둑 콩’을 주제로 한 총 32편으로 구성된 연작시도 실려 시어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아내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논둑 콩은 논으로 들어갈 해충들을 콩으로 유인함으로써 피해를 줄이려는 의도로 논두렁에 심는 콩으로, 시집에서는 김 시인 본인을 지칭하는 대상이다. 한 편의 시로써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글감이 있거나 혹은 긴 시간 동안 하나의 테마나 모티브를 집중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집필되는 연작시를 통해 시인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과 과거 여성이라는 받았던 차별에 대한 설움 등을 표현한다. 1960년 호운 방항식 시인에게 사사하며 시 쓰기를 시작한 김 시인은 1989년 동양문학 3월호로 문단에 등단했다. 이후 그는 안개문학 동인회장을 역임했으며, 전북문인협회와 전북시인협회의 회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처서로는 <수수밭>, <목이 쉬도록 너를 부르면>, <좋은 아침>, <시가 폭포가 되어>, <낮 달>, <단오 시선>, <수박이 대박을 다 낳았어> 등이 있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4.11.06 17:29

"누가 뭐래도 산타는 꼭 올거예요"…김영주 '크리스마스에 온 선물'

열두살 소년 지율이는 크리스마스 산타를 기다린다. 같은 반 친구들은 산타의 존재를 믿지 않지만, 지율이는 "누가 뭐래도 산타는 꼭 온다"는 믿음으로 산타를 기다린다. 지율이가 이토록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어떤 크리스마스 선물을 바라는 걸까. 자신의 힘으로 아픔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어린이를 그려 온 김영주 작가의 신작 동화집 <크리스마스에 온 선물>(단비어린이)이 출간됐다. 동화 '크리스마스에 온 선물'은 중학생이 되어도 산타를 믿고 싶다는 초등학생 5학년 지율이의 이야기다.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는 지율이는 집에서는 외롭고 학교에서는 조용한 아이다. 다른 아이들은 존재감 없는 지율이를 신경쓰지 않지만, 유독 같은 반 정수는 지율이에게 시비를 걸고, 폭력을 가한다. 학우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만, 항상 바쁜 아버지에게 말할 수 없는 지율이는 홀로 외로움을 견뎌낸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지율인 눈을 크게 부릅떴다. 눈을 깜빡이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짐작했고, 그래서 들어 봐야 변할 건 없어 보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바쁘니까 빨리 말하라는 말투더니, 아빠는 아무 말이 없다. 핸드폰을 귀에 댄 채 지율이도 가만히 있었다. 지율인 오히려 기죽어 움찔해졌다. 전화 너머로 숨소리인지, 한숨 소리인지 들려오다 아빠가 말했다.”( 본문 중에서) 책은 한부모 가족, 외로움, 따돌림, 폭력 등 직시하기 어려운 상황과 감정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다. 동시에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독특한 서사 방식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열두살 지율이의 성장 과정을 보여준다. 작가는 섬세한 필치로 우울, 트라우마, 불안 등 마음의 문제를 내밀하게 다루어 어린이, 청소년, 성인 모두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크리스마스에 온 선물>을 펴낸 김영주 작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수필 '마카코 언니'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같은 해 동화 <가족사진>으로 동양일보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동안 <레오와 레오 신부> <가족이 되다> <구멍 난 영주씨의 알바 보고서> <너의 여름이 되어 줄게> <쉬, 비밀이야> 등을 펴냈다. 이번 동화집 표지와 삽화는 최은석 작가가 맡았다. 사계절 집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으며 그린 책으로는 <붓질하는 짱짱이>가 있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4.11.06 15:44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황지호 소설가-'초승달과 밤배, 정채봉'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사람, 사건, 책이 있습니다. 대학생 때 세를 살았던 서완산동 언덕집은 오가는 골목길이 퍽 좁았습니다. 새마을 사업 때 길을 낸, 리어카 한 대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좁은 실골목이었으나 제법 많은 행인이 오갔습니다. 효자동과 중화산동을 연결하는 지름길인지라 이른 새벽에는 막노동하시는 분들이, 다음에는 학생들이, 밤중에는 막걸리에 취한 행인들이 흥얼거리며 왕래했었습니다. 한번은 그 골목길에 할머니 한 분이 쓰러져 계셨습니다. 쓰러진 사람을 뛰어넘어 등교할 수는 없고 곁에 앉아 이유를 물으니 ‘너무 어지러워 걷지를 못하겠다’는 겁니다. 언덕 너머에 있는 인력사무소를 통해 조적‘메지’일을 다니시는데 오늘은 갈 수가 없겠다고 하십니다. 당신 인생 같은 좁은 골목길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다고 서러운 말씀을 하십니다. 사시는 곳은 삼천동. 소주병과 담배꽁초가 너저분한 자취방에 모실 수 없어 부축해 큰길로 나왔습니다. 주머니를 뒤지니 학생 식당 식권 몇 장과 현금 4.000원이 전부였습니다. 택시 잡아 뒷자리에 모시고 기사님께 현금 전부를 드리며 댁까지 모셔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여유가 있으시면 들어가시는 모습을 지켜달라 말씀드렸습니다. 기사님이 염려 말라고 그러겠노라고 눈을, 고개를, 곰처럼 끄덕였습니다. 출발하기 직전 할머니께서 창문 너머의 저를 지긋이 바라보셨습니다. 그 찰나에 참 많은 말들이 오고 갔습니다. 압니다. 제가 지금 이렇게 고기반찬을 먹고, 자가용을 타고, 두 아이를 키우고, 따뜻한 방에 누워 시집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때의 그 공덕 때문임을 압니다. 할머니의 눈빛, 그 간절한 축원으로 저와 우리 식구들이 살아올 수 있었음을 압니다. 「초승달과 밤배」란 책도 그랬습니다. 예민한 사람으로 태어나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술주정을 겪는 사춘기 소년을 위로해 준 책. 자칫 더 그르칠 뻔했던 심성과 인생을 바로잡아 준 책이 초승달과 밤배입니다. 저를 글 쓰는 사람으로 만들어준 책 한 권을 고르라면 저는 또「초승달과 밤배」를 고르겠습니다. 훗날, 아내가 ‘이제 마지막 책을 써야지’라고 권하면 저는 그때야 비로소「초승달과 밤배」를 쓰겠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책은 삼신할매인지도 모를 그 할머니의 시간을 초월한, 미리 준 선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책을 통해 정채봉 선생님을 알았고 그래서 읽었던‘숨 쉬는 돌’, ‘오세암’ 등은 제 안에 글을 쓰게 하는 슬픔 같은 것, 그리움 같은 것을 심어주었습니다. 나머지 서평은 그 정채봉 선생님의 서문으로 갈음하겠습니다. ‘(사춘기) 떡잎을 제치고 나타난 본잎에는 악성이 깃드는 것일까. 부단한 외부와 내면의 충동은 자신을 혼란케 한다. 작은 것을 원하던 꿈이 거대한 것으로 바뀌기도 하고, 목적지 없는 방황에 흐르기도 하며, 심지어 까닭 없는 분노에 시달리기도 하는 것이 이때이다. 난나의 방황과 반항은 청춘의 영원한 명세서이기도 하다. 이 세례를 받음으로써 비로소 인생 여정을 다스려 나갈 힘을 얻게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4.10.30 18:55

류인명 시인 4번째 시집 '화엄사 홍매화' 출간

“간밤을 설치고/ 달려왔다/ 산수유 노란 물결 따라 달려온/ 구례 화엄사/ 절 마당 가로질러/ 대웅전 앞 돌계단을 올라서니/ 각황전 곁에/ 삼백 년 예불로 키운/ 홍매화 한 그루/ 그 향기/ 도량에 가득하다/ 활활/ 타오르는 저 불꽃 찾아/ 전국/ 여기저기서 날아든 불나비들의/ 야단법석/ 그 속에/ 나도 풍덩 빠져버렸다.”(시 ‘화엄사 홍매화’ 전문) 류인명 시인이 네 번째 시집 <화엄사 홍매화>(신아출판사)를 발간했다. 책은 총 다섯 부로 구성돼, 연기적 세계관과 철학적 담론의 메시지를 전하는 65편의 신작 시로 채워졌다. 시집 속 작품은 쉽게 읽히는 등 난해하지 않고, 간명하다. 동시에 근원적 불안을 지닌 고독한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위안을 전한다. 김광원 시인은 평설을 통해 “시인의 시를 감상하게 되면, 그의 시 창작 과정은 결국 자신의 천명을 발견해, 실천하고 그 도의 세계를 익혀나가는 긴 수련의 과정이었음을 알게 된다”며 “긴 과정을 거쳐 마침내 네 번째 시집을 상재하는 류인명 시인께 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도 계속 주옥같은 시들을 굴리어 내길 축원한다“고 말했다. 류 시인은 부안 출신으로 1998년 전북경찰청에서 정년퇴임 후 2006년 <한국 시>로 등단했다. 현재 그는 전북문인협회와 전북시인협회 이사, 온글문학 운영위원장, 표현문학·미당문학·전북불교문학·전주문인협회·부안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시집으로는 <바람의 길>, <둥지에 부는 바람>, <바람 한 점 손에 쥐고> 등이 있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4.10.30 17:36

등단·비등단 구분 없이 좋은 작품 한곳에… 문학전문지 '저널문학가 동행' 4호 발간

등단·비등단 작품 구분 없이 좋은 작품이면 실릴 수 있는 문학전문지 <저널문학가 동행>(수정샘물)의 4호가 새롭게 나왔다. 총 400여 페이지 이상으로 구성된 문학전문지에는 포토시조·포토시·포토에세이·포토픽션 등 세상에 처음 태어난 장르를 비롯해 일반 시, 소설, 수필 등의 작품이 실렸다. 많은 작품이 실린 만큼 작품을 창작해 낸 작가들의 연령대 역시 20대부터 80대까지 고루 분포됐다. 알록달록 다채로운 색감으로 책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그림이 있는 풍경-특집’에서는 20명의 수정샘물문학회 회원의 작품을 다룬다. 이번 초대석에서는 류선희 시인의 ‘바람의 비가(悲歌)’, ‘조율하기’와 장현숙 시인의 ‘수박은 여름’이라는 작품들을 소개한다. 이어지는 ‘수정샘물문학회 수상작’ 소개 코너에서는 시·수필·포토시·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작가 엄세원·강기영·황민자·이연옥·김정량·박경화·허춘자 등 7인의 작품과 함께 심사평도 만나볼 수 있다. ‘재외 작가 코너’에서는 포토에세이로 밴쿠버의 풍경을 전하는 노순자 작가, 35년 이민 생활에도 식지 않는 모국어 열정을 보여주는 조예인 작가의 단편 소설, 낯선 캐나다 땅에 새로이 발을 붙인 민정희 작가의 수필이 연재돼 있다. ‘유년의 명작노트’ 코너에는 이연옥 작가와 정희정 작가의 글을 다룬다. 책의 마지막은 ‘저널문학가 동행 신인상’의 영예를 안게 된 작가 8인의 수상작과 수상소감 등을 소개하며, 작가로서 첫발을 내딛는 수상자들의 수줍음과 설렘을 그대로 담아냈다. 문학전문지 동행 운영위원회는 편집 후기를 통해 “한 권의 책을 만들어내기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번 책을 마주할 독자들을 생각하면 설레는 마음이 가득하다”라며 “해마다 발전해 갈 ‘저널문학가 동행’을 앞으로도 지켜봐 주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4.10.30 17:28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담은 김용택 신작 에세이 '아침산책'

김용택 시인(76)이 약 5년 만에 에세이 <아침산책>(나남)을 펴냈다. 모든 귀중한 것이 그러하듯 시인의 글을 읽기 위해서는 잠시 기다림이 필요했다. 침묵 끝에 세상에 나온 에세이 <아침산책>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순환하는 사계절이 담겨 있다. 무료한 시골의 시간을 아름다운 풍경화로 표현한 글에는 정겨운 이웃들의 모습과 자연에 대한 애정, 삶에 대한 통찰이 어우러져 반짝인다. “지금 네가 괴로운 것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곳을 향해 지금 당장 한 발을 내디뎌 보라. 내일은 두 발이 될 것이고 모레는 세 발을 가고 싶고 그다음은 나도 몰래 서른 발을 떼고 있을 것이다(…중략…)어떤 시작이든 시작은 언제나 늦지 않다”(236쪽)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따뜻한 사유는 에세이집 전체에 번뜩인다. 봄날 홍매화로 물든 순천의 풍경 얘기나 자신이 한 일로만 글을 쓰겠다는 시인의 다짐, 콩 심은 밭을 쪼아대는 비둘기와 실랑이하는 마을 이웃 종길 아재의 모습, 아내와의 일상 등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얻은 사유와 지혜는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특히 김훈, 이문재, 김사인 등 동료 문인들과의 인연을 담긴 글도 읽는 맛이 있다. “김훈은 우리 마을에 처음 온 기자다(…중략…) 집이 눈 속에 갇혔다 (…중략…) 깊고 추운 밤이었다. 눈떠 보니 김훈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자고 있었다. 외풍이 심했을 거다. (…중략…) 그가 <문화일보>인지 <시사저널>인지, 근무할 때다. 김훈은 어디에 있나 두리번거리는데, 저쪽 끝에 웬 근사한 사내가 커다란 파이프를 물고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가만 보니 그였다. 엄청 멋있었다.”(200~201쪽) 시인은 1982년 섬진강을 담은 시로 등단, 시를 쓰며 초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쳤다. 덕치초등학교 교사로 정년퇴직했으며 지금도 그곳에 살며 강을 걷고 시를 쓴다. 시집 <섬진강>,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 <모두가 첫날처럼>, <그때가 배고프지 않은 지금이었으면> 등이 있다. 김용택 에세이 <아침산책> 출간을 기념해 오는 11월 13일 오후 7시 전주한옥마을 공간 봄에서 북토크가 열린다. 이번 북토크는 스승과 제자로 만나 이제는 같은 길을 걷고 있는 후배 문인 하기정 시인과 대담 형식으로 꾸며진다.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며 오랜 시간 따뜻한 언어로 세상을 이야기 해 온 만큼, 이번 북토크에서도 시인만의 따스한 삶과 문학세계에 관한 이야기 등을 나눌 예정이다. 북토크는 사회적기업 마당이 주최·주관하며 30명을 선착순으로 모집한다. 참가비는 2만 원이다. 행사에 대한 자세한 문의는 사회적기업 마당 기획팀(063-273-4823)으로 하면 된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4.10.30 17:27

감정의 진폭을 섬세하게 표현…박미혜 시집 '꽃잎에 편지를 쓰다'

호소력 짙은 어휘를 구사하는 박미혜 시인이 시집 <꽃잎에 편지를 쓰다>(인간과문학사)를 출간했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막힘없이 술술 읽히는 유려한 글솜씨로 감정의 진폭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봉우리가 언제 피었는지/겨울 빈 가지만 추위에 떨고 있다가/어느새 꽃이 만발했다//돌이켜 보면/내면에서부터 피어오른/소복 입은 아낙네 치맛자락이다//하늘을 향해 손을 저어 팔랑거리는/한 송이로 핀/내 어머니 얼굴이다//해질 무렵/내 신장보다/높은 곳에서 내 인생을 묻는/목련꽃이여/마음을 슬프게 하는 아련한/눈빛 안에/하늘 육신의 순백이다//”(‘목련’ 전문) 시인은 시 말미에 목련의 꽃말을 떠올릴 수 있는 문장을 배치하여 ‘어머니=고귀함’을 연상시킨다. 오랜 세월 자식을 위해 헌신한 ‘고귀하고 숭고한 정신’을 표현한 것이다. 호병탁 문학평론가는 평설을 통해 “시인은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숨김없이 토로한다”며 “문학작품이 발휘하는 지속적 호소력의 원천 중 하나인 ‘진실의 제시’ 기능에 정확히 부합한다”고 밝혔다. 이어 “어려운 관념적‧추상적 언어를 사용해 난해함을 야기하지 않는다. 투박하지만 절실한 정감을 독자들에게 토로하여 감정의 진폭을 살려내는 특징이 인상적”이라고 덧붙였다. 전주에서 태어난 시인은 2018년 월간 <한맥문학> 11월호에 시 ‘십일월의 어머니’ ‘그 눈빛’ 외 3편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등단 후 전북문단, 전북펜문학, 신문학 등에 꾸준히 시를 발표하면서 다양한 시적 실험을 통해 독창성을 확보해가고 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 한국문인협회 전주지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4.10.30 17:24

용기와 위로를 주는 일상의 동시, '동물원에 간 마법사'

“아침 뉴스에서/ 동물원 우리에 갇힌 늙은 사자를 보았어요/ 푸석푸석한 갈기를 털며/ 반짝, 눈동자에 힘을 주었어요/ 헤어진 가족들이 텔레비전 보고/ 반가워 손을 흔들지도 모르잖아요/ 오늘은 사자한테 갈래요/ 양탄자 타고 갈래요/ 열려라 참깨, 주문을 외치면/ 스르륵, 사자 우리 열리고/ 예쁜 나비와 초롱초롱 아기별 따라/ 멀고 먼 길을 떠나요/ 어릴 적 고향으로”(동시 ‘동물원에 간 마법사’ 전문) 최성자 동시 작가가 동시집 <동물원에 간 마법사>(청개구리)를 펴냈다. 동시집은 ‘1부 수리수리 치치치’, ‘2부 바람인형처럼’, ‘3부 아기 두꺼비 이사 가라고’, ‘4부 내 사과를 받아 줘’ 등 총 4부로 구성돼, 60여 편의 동시를 수록하고 있다. 책 속에서 할아버지는 까치밥으로 감나무에 홍시를 넉넉하게 켜 놓고, 하굣길에는 수리수리 치치칙 주문을 외우는 야채 튀김이 친구들을 홀랑홀랑 다 꾀어내고, 바람 부는 날은 선생님 파마머리가 솜사탕처럼 부풀고, 개구쟁이 풍선들이 까불까불 신나게 날아다닌다. 이처럼 최 시인의 동시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사물과 자연, 사람 등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주위의 흔한 이야기들이 멋진 시의 옷을 입고 새로운 동시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준관 시인은 이번 시집을 “힘과 용기와 위로를 주는 따뜻하고 정감 있는 일상의 동시”라고 평했다. 그는 해설을 통해 “최성자 시인은 이해심과 배려심 많은 가족의 이야기를 동시로 썼다”며 “가족들이 서로 화목하고 배려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따스하고 훈훈하게 동시로 표현했다. 그리고 자연과 사물에 사람과 같은 생명을 불어넣어 정감 있게 동시로 썼다”고 말했다. 완주 출신인 최 시인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했고 동시, 동화, 그림책으로 수업 현장에서 학생들과 어린이들을 만나고 있다. 2023년 <한국서정문학> 동시 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했고, 저서로는 동시집 <참 달콤한 고 녀석>(공저), 그림책 <방울방울 사랑이>가 있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4.10.24 17:17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기우 작가-이정환, ‘이정환 문학전집’

뜻한 대로 되는 일은 드물고, 일을 그르치는 때는 숱하다. 그러나 실패는 얼룩진 삶의 실제 무늬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오늘의 명백한 실패와 좌절이 새로운 시도와 내일의 성공에 결정적인 공헌을 할 수도 있다. 전주 출신 소설가 이정환(1930∼1984)의 삶과 문학이 그렇다. 1976년 단편집 『까치방』으로 작가의 입지를 굳히고, 1978년 『창작과 비평』에 장편소설 「샛강」을 연재하며 인기 작가가 된 이정환은 이문구(1941∼2003)에 의해 실명(實名) 소설이 쓰일 정도로 문단 안팎의 큰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당뇨로 인한 실명과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고 독자들에게 잊혔다. 그러나 작가정신이 무엇인가를 묻는 말에 그의 굴곡진 삶과 문학은 통째로 답을 들려준다. 이정환은 평생 책더미에서 살며 책 읽기와 소설 습작에 몰두했다. 부친이 전주에서 서점을 했고, 자신도 1959년 전주남부시장에 <덕원서점>을 열어 9년 동안 운영하다 전동으로 옮겨 1년 동안 <르네상스서점>을 했다. 1970년 서울로 옮긴 그는 『신동아』 논픽션 공모 당선 상금으로 가판서점을 냈고, 4년 뒤 <대영서점>을 열었다. 워낙 책 읽기를 좋아해 군대에서도 호주머니 빽빽하게 책을 넣고 다녔는데, 한국전쟁 당시 어느 전투에서 따발총 총알이 책이 든 호주머니를 맞혀 목숨을 구한 일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그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그의 20대는 1년의 군 생활과 7년의 수감생활로 가탈이 많았다. 전주농업학교 재학 중에 터진 한국전쟁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학도병으로 참가해 포로가 되었으나 탈출했고, 육군에 입대했다가 휴가 중 모친의 숙환으로 귀대날짜를 넘겨 탈영병이 되었다.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몇 차례 감형으로 7년 만에 석방됐다. 이정환은 1970년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안인진 탈출」이 당선돼 문단에 나온 뒤 도시 빈민과 수감자들의 삶을 사회 구조적 시각으로 고발하는 7편의 장편과 67편의 단편을 쓰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친다. 그러나 10년 넘게 고생하던 병마는 1980년 그의 눈을 뺏고 만다. 그래도 창작 열정은 여전해 자를 대고 써내는 원고를 아내가 해독했고, 손가락이 부어 볼펜을 제대로 쥘 수 없을 때는 아내와 딸이 그의 구술을 받아 적었다. 가난도, 병마도 막을 수 없는 글쓰기. 소설은 곧 그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이정환은 수인 생활과 빈곤으로 굴곡 많은 삶을 살았지만, 이때의 삶이 훗날 소설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 직접적인 바탕이 되었다. 자신이 겪은 사형수와 무기수라는 극한의 상황과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과 상처를 소설로 치유한 것이다. 오랫동안 잊혔던 그의 작품도 여러 사람의 힘으로 세상에 다시 나왔다. 열권으로 묶인 『이정환 문학전집』(국학자료원·2020)이다. 전집에는 전북일보에 연재한 「부부」를 비롯한 소설들과 미발표 유작들, 전집 준비 과정에서 발견된 유고 시(詩), 육필 원고 등 그의 모든 자료를 담았다. 책을 펼치면 곡절을 알고, 책을 덮으면 곡절이 풀린다. 최기우 극작가는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소설)로 등단했다. 희곡집 <상봉>,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은행나무꽃>, <달릉개>, <이름을 부르는 시간>, 어린이희곡 <뽕뽕뽕 방귀쟁이 뽕 함마니>, <노잣돈 갚기 프로젝트>, <쿵푸 아니고 똥푸> 등을 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4.10.23 18:42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송하선 시인의 답은

한국 서정시의 맥을 이어온 송하선 시인이 <여든 무렵의 고독>(푸른사상)을 출간했다. 이번 시집은 송 시인이 그동안 써온 700여 편의 작품 중, 인간의 심연에 가로 놓인 고독을 노래한 61편의 시가 실렸다. 때문에 시집에서는 ‘평소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사물을 이해하고 노래한다’라는 평가받던 시인을 만나보기 어렵다. 대신 서늘한 가을 날씨 같은 공허하고 쓸쓸한 시어를 사용한 작품을 통해 노년의 절망과 퇴락에서 오는 ‘고독’을 가득히 담아냈다. “저승 같은 검은 구름이/ 황홀한 고독을 말해주네요./ 여든 무렵의 고개를 넘으니/ 친구들도 그 구름 속으로 많이들 갔고,/ 친척들도 그 구름 속 마을로/ 멀리멀리 떠나갔지만,/ 구만리 머나먼 그곳을/ 혼자서 저벅저벅/ 어이 갈지 두렵고 두렵네요./ 그 마을은/ 아내와도 함께 가지 못하는 마을,/ 어떻게 이별해야 할지도/ 두렵고도 두려운,/ 여든 무렵의 고독,”(시 ‘여든 무렵의 고독’ 전문) “바람 부는 언덕에/ 나무들이 한 천 년 기다리며 사는 듯한/ 몸짓을 하고 있는 것은/ 이ᄄᆞ금 한 번씩/ 예쁜 새 떼들이 날아와 조잘대기 때문이다./ 바람 부는 마을에/ 노인들이 한 백 년 기다리며 사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도/ 이따금 한 번씩/ 옛날의 소녀들 날아와 조잘대기 때문이다.”(시 ‘노인과 나무’ 전문’) 이처럼 한 작품 한 작품 시인이 직접 선정해 엮어낸 시집 속에는 지나버린 생을 돌아보고 깊고 그윽한 명상과 관조에서 나오는 애수가 느껴진다. 진정구 전북대 명예교수는 해설을 통해 “죽음과 대면이 ‘나이와 직접 관계’돼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생의 종점을 서성거리는 여든 무렵이 되면 그것은 일상사에 자주 숙고의 대상이 된다”며 “석양에 지는 해를 보며 젊음의 뒤안길을 반추할 때마다 지상과의 아쉬운 작별을 고해야 하는 마지막 시간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모든 노년 세대에게 부여된 과제인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시인의 시집 속에서 찾아낸다”고 덧붙였다. 1938년 김제에서 태어난 전북대 및 고려대 교육 대학원 등을 졸업한 송 시인은 중국문화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는 1971년 <현대문학>에 작품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1980년에는 우석대 교수로 부임해 도서관장, 인문사회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우석대 명예교수다. 그의 저서로는 시집 <자신 長江처럼>, <겨울풀>, <몽유록>, <유리벽> 등이 있으며, 전북문학상, 전북 대상, 풍남문학상 등을 받았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4.10.23 17:37

사계절 자연의 아름다움 동시로 활짝…한재숙 '마시멜로 맛집'

한재숙 아동문학가는 자신의 첫 번째 동시집 <마시멜로 맛집>(청개구리)을 통해 아이들에게 사계절 자연의 아름다움을 말해주고 싶었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이 경험해보지 못했을 자연의 자유로움과 안정감을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동시집에는 봄에서부터 여름과 가을을 거쳐 겨울에 이르는 사계절 자연의 아름다움을 수채화처럼 그려낸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사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봄이 왔다고’‘봄맞이’에서는 봄의 정령이 기지개를 켜는 순간을 보여준다. 여름날이 담긴 ‘매미네 노래방’과 ‘학교운동장’에서는 뜨거운 활기를 표현했다. 이외에도 동심의 눈으로 바라본 가을‧겨울의 풍경을 소박하고 정감 있게 그려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함께 동시집에는 가족 간의 사랑도 녹여냈다. 가족 구성원 간의 갈등과 사랑, 반려견에 대한 일화 등도 읽을 수 있다. 이준관 아동문학가는 추천평을 통해 “사계절 자연의 아름다움이 수채화처럼 그려져 있다”고 밝혔으며 박예분 아동문학가는 “다정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눈을 반짝이게 만든다”고 추천했다. 저자는 동화구연가와 책놀이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동안 <똥방귀도 좋대>(공저), <반달, 디카동시에 물들다>(공저)등을 냈다. 현재 전북동시문학회 회원이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4.10.23 16:27

선조들이 사랑한 가사 문학, 동화집으로 재탄생

다섯 편의 가사문학(歌辭文學)을 엮은 양정숙 가사 동화집 <인사 잘하면>(단비어린이)에는 리듬감 넘치는 운율과 정겨운 우리말이 담겨있다. 작가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민족문학으로 사랑 받은 가사문학 특유의 ‘4음보 연속체’ 형식을 동화로 녹여냈다. “인사 받는 할머니 활짝 웃는 얼굴로/어떡하냐 어떡해/미안해서 어떡해/공손히 인사하는/손자 같은 아이 보며/미안해하네…(중략)…/어른에게 인사 잘하면/자다가도 떡이 나오는 거야…(중략)…/할머니, 할머니/소리쳐 불러 세워 놓고서/인사 꾸벅 하고는/쑥스러운 듯/환하게/웃는 얼굴로/되돌아간단 말이요”(‘인사 잘하면’ 중에서) 동화 '인사 잘하면'은 가사문학의 전형성이 잘 나타나있다. 4음보 단위의 말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면서 시가(詩歌)의 분위기를 풍긴다. 운율이 담겨있지만, 아이와 할머니의 관계성과 서사상도 드러나 산문(散文)적 정서도 읽을 수 있다. 작가는 '인사 잘하면' '모이 값' '할아버지와 라떼' '가사 문학 유적지' '회화나무 작은숲공원' 등 책에 실린 다섯 편의 가사동화를 통해 고전 문학의 매력과 가치를 전파한다. 최한선 한국가사문학학술진흥회장은 “고유의 운문체를 생생히 살려 쓴 운문 동화 '인사 잘하면'을 통해 어린이들이 가사 문학을 쉽고 재미있게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며 "선조들의 삶을 오롯이 담아 온 가사문학이 현대적 동화로 재탄생 돼 어린이들의 정서와 감성을 풍부하게 북돋아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순창에서 태어나 부안에서 자란 양정숙 작가는 조선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광주교육대학원에서 아동문학교육을 전공한 뒤 무등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저서로는 동화집 <구리구리 똥개구리> <감나무 뒤 꿀단지> <알롱이> <까망이> 그림책 <섬진강 두꺼비 다리> <새롬 음악회> <전쟁과 소년> <달빛다리> 등이 있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4.10.23 15:16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특별기고⑦] 한강작가의 노벨상 수상에 부쳐

소설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에 온 나라가 축하와 감격의 일주일을 보냈다. 세계적으로 한국 문화의 위상이 높아진 요즘이지만 세계 최고 권위의 노벨 문학상 수상의 의미는 남다르다. 한국인으로 최초라는 자랑스러움과 함께 여성으로서, 아시아의 여성으로서 최초인 것도 그간의 노벨 문학상의 수상 행보를 본다면 큰 의미가 있는 일이다. 문학계 최고 권위인 노벨 문학상은 1901년 수상자를 선정한 이래 현재까지 역대 수상자 119명 대부분이 북미나 유럽이 남성이었고 여성의 수상은 17명뿐이었다. 최초 선정 당시 여성들의 권리나 사회 참여가 당연한 것이 아니었던 시대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도, 120여 년이 지나는 과정에서도 여성 수상자가 17명뿐이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는 선정과정에서부터 남성 중심으로 구성되어 온 선정위원회의 운영과 무엇보다 여성 작가 작품의 문학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던 편향된 사회적 인식의 결과이며 지속적으로 논란이 돼 왔다. 여성으로써 18번째 주인공이 된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여성의 문학작품에 대한 저평가와 수상자가 일부 국가에 국한되었던 지역적 차별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의 결과이기에 더욱 의미 있고 기쁜 일이다. 또 다른 의미 한가지는 한강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인간이 저지르고 경험하는 폭력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1980년 5월, 부조리한 국가 권력이 휘두르는 잔인한 폭력과 살인에 온몸을 내던지는 중학생 동호와 시민들의 이야기<소년이 온다>와 제주 4.3 사건 속 인선과 인선의 가족 이야기인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힘을 가진 자의 폭력과 그 시간을 지나온 인간의 이야기를 섬세하고 서정적이지만 힘 있는 문장으로 표현해왔다. 특히 <채식주의자>는 한국 사회에 공기처럼 녹아있는 가부장제 속 여성에 대한 폭력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채식주의자>는 잔인한 폭력의 잔상에 괴로워하다 채식을 선택하는 주인공 영혜와 평범하기 그지없던 아내이자 딸의 변화에 각자의 방식으로 영혜를 ‘정상’으로 돌려놓으려 하며 시작되는 가정 내 폭력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올바르지 않은 길’을 가려는 딸을 무자비한 폭력으로 통제하려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강압적인 태도로 영혜를 단속하는 엄마의 모습은 여전히 존재하는 가족 안의 권력관계와 힘을 가진 가장의 폭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큰 딸이자 언니인 인혜는 텅빈 눈으로 말라가는 동생을 보며 묵묵히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진실의 무게를 견디며 모두를 돌보려 한다. 가족 모두는 자신도 모르게 내면화시킨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누가 봐도 아무렇지 않은 가족의 모습이 되기 위해 잔혹한 폭력을 휘두른다. 인간은 무엇을 저지르고 있는가 인간은 무엇이기를 바라나 한강 작가는 관계와 폭력, 그 앞에 서 있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약자와 소수자의 시선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모두가 알지 못하고 눈치채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리며 우리 모두를 깨우고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혐오, 편견과 폭력이 멈추기를, 그 터널을 온 몸으로 견디고 기억하기를 이야기한다. <끝>

  • 문학·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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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23 15:05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특별기고⑥] 한강의 붓 세계를 품에 안다

현실감각이 없다. 믿기지 않는 걸. 정말 우리 한강 맞는거야. 가짜 뉴스겠지. 이는 세계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는 날 대한민국의 반응이다. 시간이 가면서 사실로 다가왔을 때 우리는 ‘이렇게 꿈이 이루어지는구나’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기쁘기만하다. 어떻게 축하를 드려야 할까? 시인이자 소설가인 한강은 세계를 품에 안은 붓으로 대한민국 국위를 선양한 애국자가 확실하니 축하 인사를 정중하게 드리고 싶다. 한강 소설가님!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노벨문학상 수상을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 기쁜 소식을 정작 당사자도 믿기 어려워 가짜 뉴스로 오인하였다는 것 자체가 본 상이 세계 최고의 상임을 느끼게 한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한강처럼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 역시 정말일까? 하는 조바심을 한 순간 느꼈으리라 믿는다. 그 이유는 그간 수 년 동안 학수고대했던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모 시인이 거명되었던 기억이 남아 있으니까 그렇다. 예견이나 예상마저도 없었던 사막에 천둥이 치고 목마른 갈증을 풀어주는 단비처럼 시인이자 소설가인 한강은 그간의 노벨 문학상과 다르게 세계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문단에 은하수 같은 거대한 문맥을 펼쳐줬다. 사실 우리 전북에서는 노벨 문학상에 대하여 그렇게 생소하지가 않다. 언론에서도 피력했지만 장장 7년 동안 이맘때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것이라며 방송국 중계차량까지 그 분의 집 근처에서 진을 치고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끝내 수상소식은 듣지 못했고 당시에도 혹자는 문학적 가치는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그 작품의 가치가 전달돼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 가교역할은 다름아닌 국제적 수상이 있어야 하고 더욱이 작품이 다국적으로 번역돼 국제적으로 평가가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분의 수상후보로서의 경력에 국제적인 부분이 있었는가. 아니면 다국적 언어로 번역돼 국제적 평가를 받았는가를 말할 때 이 부분이 많이 아쉽다고 한 것은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결국 국제적으로 작품성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국내가 아닌 외국에서 읽혀져야 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 나라의 언어로 번역이 되어 책방에서 독자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한강을 살펴보면 그는 국내에서의 활동의 폭보다는 국제적 활동의 폭이 훨씬 두드러진 것 같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하니 난데없이 국내의 어줍잖은 푼수들이 그의 수상에 대해 왈가왈부하며 작품성에 썩은 잣대를 드리우며 글줄을 올리는 것을 보면 표현에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분수를 알았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더욱이 아직도 광주 5.18에 대해 옳고 그름과 무엇이 정의인지를 판단하지 못하고 한강의 광주 5·18 투영에 대해 몰상식하게 빗대어 힐난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어 가슴 아프고 우울하게 했다. 이제는 저 넓은 광야로 뛰쳐 나가야 한다. 그 발판을 한강이 놓아 준 것이고 그의 글줄에서 우리의 모습들이 더 폭넓게 세계인들에게 각인이 될 것으로 보이며 우리의 글에 대한 관심이, 아니 그 이해도가 더 가까워질 것으로 확신하기에 이 기회를 단목에 그치지 않고 장목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문학적 역량 발휘에 많은 문우들이 산고를 치르고 있겠지만 우리 전북 역시 한국문단에서 걸죽한 인물들이 맥을 이어왔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이제는 문단의 활동계획이나 컨퍼런스 등도 우물안보다는 적어도 주변의 외국과도 더 많은 교류를 확대하고 역량을 강화할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보여진다. 그리하여 문단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게 하고 문학인들이 일취월장해 ‘제2의 노벨 문학상’이 이곳 전북에서 반듯이 배출되기를 기대해 본다. / 이형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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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22 15:17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특별기고⑤]고통받은 몸의 상처가 써 내려간 글

지난 10일 저녁 8시(한국 시각) 노벨문학상을 주관하는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 작가를 수상자로 발표했다. 한국문학의 위대한 승리다! 한국인으로서도 처음이지만 아시아 여성으로서도 처음인 한국문학의 대단한 쾌거다. “한강은 모든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범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각각의 작품에서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지니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로 자리매김했다.”라는 선정 이유이다. 2016년 5월 ‘채식주의자’(2007)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을 했을 때 책을 탐독했었다. 미국 월간잡지인 오프라 메거진에서는 “충격 때문에 손으로 입을 막고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놀라운 평을 하기도 했다. 제주 4⸱3을 소재로 한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도가 바다와 한라산보다는 팽나무와 핏물이 붉게 묻어나올 것 같은 돌담이 걸어온다. 무섭다.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 있었던 광주시민과 전라남도민이 중심이 되어 조속한 민주 정부 수립과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의 퇴진 및 계엄령 철폐 등을 요구하며 전개한 민주화운동 시 유혈진압을 전개한 소설이다. “죽지마, 죽지마라 제발” 소설 뒤표지를 덮을 때까지 생각을 흔드는 소리였다. 눈을 뗄 수 없는 보편적인 깊은 울림을 준다.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은 2011년 5월 민주화운동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정식 등재되었다. 이때 충장로에 사는 절친한 친구 때문에 전화 개통이 시작되고 두절 된 교통이 트이고 해서 달려갔다. 친구 집에서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친구 아들이 발바닥에 사인펜으로 이름을 쓰고 있었다. 청년들을 무조건 잡아가면 시체도 찾지 못한다는 소문이 떠돌아서 몰래 쓰고 있다고 공포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태극기에 덮인 주검을 보고 돌아온 나는 며칠 잠을 설친 기억이 떠올랐다. 손가락 사이에 볼펜으로 주리를 튼다는 상처를 위로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볼펜을 한데 모아 깊숙이 서랍에 감췄다. 한강의 소설은 고통받은 신체의 리듬이 묻어난다. 고통받은 몸의 상처가 써 내려간 글이었다. 삶의 비극성에 대한 상처를 응시하는 탄탄한 서사적 냄새가 글 속에 숨어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는 뼈에 사무치도록 새겼다. 2016년에 출간된 독특한 형식의 산문 소설 ‘흰’은 마치 스페인의 건축가 가우디의 조개 모자이크 기법을 활용한 것처럼 시적인 단어들을 조합하여 구성된 시적인 글이었다.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는 국가 권력에 의해 자행된 폭력과 그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잔혹성과 폭력성을 묘사한 소설에서 시적 묘사를 느낀다. 폭력과 억압이 남긴 상처가 시간이 흘러도 쉽게 치유되지 않음이 책에서 보인다. 그래서 작가는 진실을 외면하고 침묵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살아남은 자들이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하여 연대해야 한다고 강하게 말한다. 그렇다. / 이소애 시인, 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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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21 16:02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특별기고③] 가을이 가기 전에 ’한강‘을 읽자 한국문학 노벨상을 품다

그것은 소름이었다. 대한민국 작가가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켜 두 주먹을 쥐고서 방안을 서성거렸다. 나도 모르게, 1901년 제1회 노벨문학상을 프랑스 시인이 받은 이후 몇 년이 흘렀는지를 계산하고 있었다. 지면과 영상으로 보았던 그녀의 모습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고 나직한 목소리에 담긴 무거웠던 느낌들이 되살아났다. 대한민국 소설가의 노벨문학상 소식이 발표된 이후 우리는 꿈같은 순간들을 맞고 있다. 다음 날 아침 중앙지의 1면은 온통 한국문학 노벨상 수상 소식으로 가득했다.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이 한 권씩 들고 서점을 나가는 작가의 소설이 클로즈업되고 이내 품절을 알리는 게시대가 올라왔다. 부지런히 돌아가는 파주출판단지 인쇄 업체의 기계 소리와 제본되어 쌓이는 소설책의 모습은 마치 딴 세상을 만난 듯하다. 어제와 오늘이 이렇게 달라졌다. 책 읽는 유튜버들도 연일 작가의 소설을 읽고 있다. 라디오와 TV에서는 신속하게, 구성한 자료와 소식 등을 모아 대담을 기획하고 예전 영상 등을 모아 특집을 구성하였다. 새롭고 놀라운 뉴스가 쏟아지는 가운데 ‘한국문학’이라는 세 글자가 특별하게 눈에 띈다. 신문을 읽는 것이, 뉴스를 보는 날들이 요즘처럼 즐거운 적이 있었던가 싶다. 한국문학이 노벨상을 품은 올해 가을은 따가운 햇볕마저 고맙다. 그런데 오히려 한강 작가는 “나는 평화롭고 조용하게 사는 것을 좋아한다. 글쓰기에 집중하고 싶다.… 나는 조용히 있고 싶다. 세계에 많은 고통이 있고, 우리는 좀 더 조용히 있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시를 닮은 소설, 한강의 소설은 시를 읽고 있다는 착각을 하도록 한다. 그의 시작은 시였다. 대학 시절 그의 시에는 ‘신들린 느낌’이 있었다고 들었다. 1993년 시인으로 등단한 한강은, 등단 20년 만인 2013년에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출간했다. 노벨상 수상자 한강에 대하여 아버지 한승원 소설가는 “시적인 감수성을 가진 좋은 젊은 소설가”라고 한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한강’을 읽자. 지금이 한강의 글을 다시 읽을 시간이다. 기억을 기억으로 마감하지 않고 문학 작품에 담아 세상에 펼쳐 내는 일이 바로 문인의 사명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역사적 상처에 직면하고 인간 삶의 취약성을 노출하는 한강의 시적 산문’을 이유로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폭력이 인간을 지배함으로 인해 황폐해진 현실에서 역사의 피해자를 대신해 목소리를 낸 소설로, 대한민국에 노벨문학상을 선물한 그녀의 고통에 우리는 한없이 기쁘고 즐겁다. ‘그의 문장은 악몽마저도 서정적인 꿈처럼 느끼게 만든다.’고 한다. 시대와 상황을 넘어 인간의 보편성을 지향하고, 진실을 향해 걸어가는, 한강의 문학에 담긴 소중한 인간의 가치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구도자의 시선으로 상처 입은 영혼을 문장에 담아 저 밝은 빛을 향해 길을 열어 주는 것은 작가의 중요한 사명이다. /조미애 표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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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21 10:07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특별기고④] 다시 쓰는 '한강의 기적'

노벨 문학상 수상의 열기가 좀처럼 식을 줄 모르고 한반도를 달구고 있다. 가히 신드롬급이다. 그럴 만도 하다.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고대하던 상이었나. 이웃 나라 일본에서 한 번씩 수상자가 나올 때마다 부러움의 눈초리로 바라만 봐야 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평화상 수상이 있었지만 매번 기대와 실망을 반복했던 문학상에 대한 미련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한강의 기적” 식민지 시대의 단절과 6.25 전쟁의 참상을 극복하고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이루었을 때 세계는 대한민국을 그렇게 불렀다. 그런데 노벨상 수상 이후 요즘 그 “한강의 기적”이라는 단어가 다른 의미에서 다시 소환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책이 없어서 못파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고 하니, 이제 그동안 세계를 휩쓸어 오던 K-컬쳐의 반열에 문학이라는 장르를 하나 더 얹게 되었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노벨 문학상 작품을 번역본이 아닌 원문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때로는 수상작을 읽으면서도 원문과 번역본이 갖는 괴리감 때문에 그 깊이를 온전히 느낄 수 없었던 아쉬움을 이번에는 말끔히 털어버릴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여성이다. 아시아 여성 최초다. 그동안 고은, 황석영 같은 남성 작가들에 가려 후보로 언급조차 되지 않았기에 이번 수상이 더욱 놀랍고 반갑다. 요즘처럼 ‘백래시(backlash)’를 비롯하여 여성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분위기 속에서 한강 작가의 작품들은 잊지 말아야 할 가치들을 담고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수상 발표에서, 그녀의 작품이 “폭력, 슬픔, 가부장제 등 다양한 장르를 탐구하며 경계를 넘나든다”고 했다. 또한 아사히 신문은 “전쟁과 분단,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보편성을 지닐 것”이라고 평했다. 문학계에서는 한국 문단에서 비주류에 머물러 있던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성차별적 해석의 패러다임을 바꿔놨다고 보고 있다. <아무도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과 그 역사적 상흔을 세 여성의 시각으로 그려낸 것이다. <채식주의자>는 ‘고기를 어떻게든 먹이겠다는 아버지’를 통해서 한국의 폭력적인 가부장적 세계를 투영했다. 또한 작가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폭력과 악, 그것을 처절하게 거부하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약자들의 상처와 비극을 직시하고 있다. 그러나 5.18과 제주 4.3을 모티브로 쓴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두고는 이념의 공격까지 난무하고 있다. 게다가 경기도에서는 유해 도서로 분류해 폐기한 곳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러한 비판들이 노벨상의 권위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최근 들어 여성 작가들의 해외에서의 활약이 눈부시다. 2016년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면서 일반 국민들에게 ‘한강’이라는 이름이 알려진 이후, 여성 작가들이 세계 유수의 국제문학상에 대거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이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는 간극에 대해서도 대답이 필요할 것 같다. 한강은 전체 노벨 문학상 수상자 120명 가운데 아시아 최초의 여성 작가다. 그녀의 수상을 계기로 아직 빛을 발하지 못한 많은 여성 작가들이 우리 문학계에서 중심에 우뚝 서게 되기를 기대한다./전정희 전북여성가족재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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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20 17:53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특별기고②] 문학적 토양과 예술적 확장성, 그리고 우리

1. 문학적 토양 한승원 선생님의 토굴에 간 적이 있었다. 마침 방문객이 없어서 방 한가운데 찻상을 펴 놓고 제법 오래 말씀을 들었다. 물론 소설 쓰는 따님 이야기도 하셨다. ‘아버지 한승원’을 뵈러 간 자리라 ‘따님 한강’ 이야기는 곁들이 정도로 들어 넘겼었다. 내가 ‘한강’의 작품을 처음 읽은 것은 「몽고반점」이다. 단행본이 아닌 철 지난 문학잡지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그때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처절하고 슬프고 안타깝고 아픈 이야기를 이렇게 감정을 달래면서 써 내려갈 수 있구나. 읽는 내내 오히려 독자인 내가 감정을 다스리기가 힘들었다. 나중에야 이 작품이 『채식주의자』 속에 있는 작품인 줄 알았다. 그리고는 ‘한강’의 다른 작품을 찾아 읽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과 함께 소설가 아버지 한승원과 소설가 오빠와 동생, 그리고 국문과에 다니는 아들, 소설가가 직접 운영한다는 작은 책방까지 모두 떠올랐다. 한강 소설가의 삶은 문학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을 만큼 문학적 토양이 정말이지 비옥하고 찬란하기도 했다. 이 토양이 한강 소설가를 성장시킨 것이다. 2. 예술적 확장성 한강 소설가의 「소년이 온다」라는 작품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사진을 본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한강 소설가가 직접 부른 노래도 다시 떠오르고, 그가 거론한 악동뮤지션의 노래도 다시 떠오른다. 소설가의 작품을 연극으로 옮긴 ‘휴먼 푸가’도 찾아보고 굴렌 굴드도 다시 찾아본다. 때를 만난 듯, 모두 손잡고 떠오르고 있다. ‘한강’의 작품은 수상 이후에 더 많은 연극과 영화로 제작될 것이다. 사진 한 점에서 촉발된 예술적 영감은 소설로, 음악으로, 연극으로, 영화로, 다양한 예술 장르로 변주될 것이다. 사람들은 한강 소설가의 작품을 다시 읽을 것이다. 벌써 출판계와 서점가가 흥성이지 않은가? 나도 오래된 책더미를 몇 번이나 뒤적거렸다. 이젠 우리가 받았던 위로와 감동을 전 세계 사람들도 받게 된다. 한강 소설가가 우리에게 던졌던 삶의 본질에 관한 질문은 세계인들에게 같은 질문으로 던져져 그 파문이 널리 번질 것이다. 이것이 한강 소설가와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증명된 예술의 힘이요 확장성이다. 3. 그리고 우리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듣는 그 시각에 나는 컴퓨터 앞에서 보조금 정산과 씨름하고 있었다. 갑자기 이런 문단 행정 따위는 집어던지고 마을의 작은 모퉁이를 돌아가서 혼자서 노을을 바라보고 싶어졌다. 거기서 바람이 버드나무의 머리카락을 쌀쌀 씻어주는 소리에 가만가만 귀를 열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일도 더 좋은 작품을 창작하고 싶어 하거나 그럴 가능성이 얼마든지 열려있는 예술인들에게 봉사하는 일이라며 애써 나를 달랬다. ‘한강’의 작품은 우리 문학을 끌고 가는 손잡이고 기둥이 될 것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소설가는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문학도 드디어 부력을 얻을 것이다. 번역의 문제나 지원의 문제, 심지어 이데올로기의 문제 등으로 터덕거리던 한국문학이 스스로 해법을 터득하고 세계의 하늘 높이 떠오를 것이다. 몇 번을 축하해도, 몇 날을 기뻐해도 오히려 모자란 날들이다. 축하드린다. /김영 석정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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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16 18:18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정숙인 작가-전희식,김정임 '똥꽃'

인류는 이런저런 이유로, 지구 곳곳에서 다른 목소리와 생태로 살며 갈등과 경쟁을 하면서도 서로를 그리워하고, 의지하고, 돌본다. 혼자이든 둘이든 여럿이든, 사회 공동체라는 스펙트럼에 고였다 사라진다. 『똥꽃』은 원시적인 모자간의 이야기이고 둘의 이야기이다. 그 모자(母子)의 일상을 따스한 시선으로 쫓을 때 독자는 그들의 삶이 아닌 내 삶의 사다리를 조금은 더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똥꽃』 의 저자 전희식은 ‘가족을 돌보고, 요양원을 지키고, 누군가를 챙기느라 수고하는 분들께 위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15년의 시간차를 두고 개정판’을 냈다 한다. 초판에서 개정판으로 재구성되기까지의 십몇 년의 시간 사이에는 전희식, 김정임 두 저자의 생(生)과 사(死)가 있다. 멀찌감치 파도가 밀려간 해변을 걷다, 이미 사라진 물결의 각인을 발견했을 때의 가슴 아린 그리움처럼 어머니와 아들의 시간이 부려놓는 삶의 깊이에 저절로 숙연해지고 만다. 어머니와 2년 가까운 날의 일상을 초판으로 읽었던 독자라면 어머니와 함께한 6년여의 세월 이후 추모의 시간까지, 숨은 그림처럼 덧붙여진 이야기를 찾는 재미도 있다. 어머니를 돌보던 아들의 깨달음은 수없이 많은 아포리즘으로 완성되어 마치 소설 같기도 한, 두 저자의 이야기는 독자의 가슴에 생생하게 부딪혀온다. 전 권에 흐르는 모자의 에피소드는 큰형님 집에 사시는 어머니를 찾아뵌 어느 날로부터 시작된다. 어머니의 환각 증상을 접했을 때의 충격은 아들의 말을 거둘 만큼 컸다. 당신 삶의 여정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무시당한다고 느꼈을 어머니의 좌절감을 생각해 본다. 치매란 가족 모두에게 있어 당황스럽고 난처한 일임은 분명하다. 어머니가 그린 똥꽃을 생각하면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고통이나 아픈 감정으로 바로 연결 지어 돌봄이 힘들다는 것으로 귀결시키는 것은 신중해야 할 일이다. 아들은 어머니의 치매를 ‘포기한 삶의 틈새로 끼어든 이물질들’이라고 결론 냄으로써 진정, 어머니의 망각을 ‘잠재된 고의’였다고 이해한다. 필자는 이런 생각이 든다. 노쇠한 몸을 더 이상 통제하지 못하기에 느끼는 참담함에 이어 자신을 수용하는 대신 자신의 기억을 거세시킴으로써 일탈에 성공하는 것이 치매가 아닌가 하고. 사회적 존재로서 살아온 당신의 존엄을 침해당하지 않기 위한 거스를 수 없는 손실, 꼬리 밟힌 도마뱀이 몸의 일부분을 포기하듯 무의식적 자아가 자신의 기억을 내치는 건 아닐까 하고. 우리가 즐겨하는 ‘알아서’의 코드를 작동시켜, 통제되지 않고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세포들이라서 그랬을 거라고. 인간의 육체에 담긴 가늠할 수 없는 수의 우주의 작업 방식이라고. 모자의 관계는 선택할 수 없는 일이라 해도 무엇보다 자신의 존엄을 위해서 식물적 삶을 산다고. 두 저자인, 어머니와 아들의 일상을 보면 현재를 재조합하는 설계자가 되는 어머니와 그 세계의 파동으로 같이 순항해 가는 아들의 극적인 돌봄의 경지에서 독자도 덩달아 환희를 경험하게 된다. 치매를 겪는 어머니의 세계를 아들이 사는 평행 세계 어디쯤이라고 상상한다면 놀랍게도, 분명 우리가 유레카라고 할 수 있는 존엄의 키워드를 찾아낼 수 있다. 독자는 어머니 자신과 어머니가 아닌 그 누구의 세계로 각기 존재한다고 믿고 싶어진다. 정숙인 작가는 2017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백팩'으로 등단했다. 작품으로는 몇 편의 단편소설과 채록집 <아무도 오지 않을 곳이라는, 개복동에서>(2017)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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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16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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