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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반암리서 ‘초기 청자’ 가마 확인

고창 반암리 청자요지에서 우리나라 청자의 발생과 변화과정을 보여주는 초기 청자 가마가 확인된 가운데, 가마와 출토유물 등으로 볼 때 10세기 후반 초기 청자를 생산했던 가마유적으로 판단돼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14일 고창군 등에 따르면 문화재청 2020년 긴급발굴조사 공모사업을 통해 (재)호남문화재연구원은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 계명산 줄기 서쪽 기슭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최근 들어 가마터 일부가 훼손됨에 따라 유적의 훼손 방지와 성격 규명, 보존 관리 등을 위한 발굴 조사였다. 그 결과 벽돌가마(전축요, 塼築窯) 1기, 진흙가마(토축요, 土築窯) 3기, 퇴적구릉(폐기장) 3개소, 건물지 2동 등이 확인됐다. 특히 벽돌가마는 1호 진흙가마 아래에서 중첩돼 확인됐다. 이같은 사례는 최근 사적으로 지정된 진안 도통리 중평 청자요지에서 처음 확인됐다. 하지만 진안 도통리 가마는 벽돌가마를 파괴한 후 그 위에 진흙가마를 축조한 반면, 반암리 가마는 벽돌가마 폐기후 퇴적층과 퇴적구릉(1.5m 내외)이 형성된 다음 진흙가마를 조성해 벽돌가마가 비교적 잘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벽돌가마에서 진흙가마로 바뀌어 간 양상이 잘 남아 있어 앞으로 초기청자 가마의 발생과 변화 과정, 구조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또 이번 시굴트렌치를 통해 확인된 1호 가마는 길이 35~40m, 폭 1.2m 내외로 추정돼 전형적인 초기 청자 가마의 형태를 보여준다는 것이 발굴팀의 설명이다. 퇴적구릉은 다량의 청자편과 청자를 구울 때 씌웠던 갑발(도자기를 구울때 담는 큰 그릇), 가마 축조재료인 벽돌 등이 2~3m 정도로 쌓여 있었고 건물지에서는 官, 坪 명 등의 명문기와도 출토돼 반암리 청자요지의 성격과 시기 등을 추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 일대는 사적 제345호 고창 용계리 청자요지, 사적 제250호 고창 분청사기요지, 전라북도 기념물 제115호 고창 용산리 분청사기요지 등 다수의 지정비지정 가마유적이 분포하는 곳으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도자 문화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고창군은 반암리 청자요지의 보존관리를 위한 방안과 함께 유적의 가치와 중요성을 알릴 수 있는 추가발굴조사를 실시할 방침이며, 전라북도 기념물과 국가사적 지정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 문화재·학술
  • 김성규
  • 2020.12.14 17:42

희귀수첩 전북유형문화재 제148호 ‘이용화 백세영수첩’ 남원시에 기증

전북유형문화재 제148호로 지정된 이용화 백세영수첩이 24일 남원시에 기증됐다. 이번 기증은 지난 1991년부터 1998년까지 남원군의회 제1, 2대 의장을 지낸 전주이씨 종중 이권기 씨가 조상의 소중한 문화재를 도난, 훼손 등으로부터 보호하고 시민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는 기부의사를 남원시에 밝힘에 따라 이뤄졌다. 시는 이날 기증식을 개최하고 이환주 남원시장이 이권기 씨에게 기증증서를 수여했다. 이용화 백세영수첩은 1865년에 만들어진 필사본으로 상, 하 두 책에 걸쳐 구성된 관직첩이자 축하시문첩이다. 이 수첩은 100세가 넘은 이용화의 장수를 축하하기 위해 고종이 관직을 수여한 일을 기념해 제작된 경수시첩(慶壽詩帖)이다. 특히 이 수첩은 이용화가 100세까지 장수하자 조정에서 이를 축하하기 위해 지중추부사(중추부 정이품 무관벼슬)라는 관직을 수여하고, 조정백관들이 축하의 시문을 모아 상, 하 두 책으로 만들었다. 학계에서는 좌의정 김병학이 지은 이지추옹서(李知樞翁序)라는 서문을 비롯한 원로대신과 조정 대신 108인의 송축(頌祝) 자필 시문(詩文)이 기록돼 있는 희귀한 수직첩으로 꼽히고 있다. 상권의 크기는 가로 35.5cm, 세로 50cm로 60매이다. 하권은 가로 34.8cm, 세로 50.2cm로 62매 등 상, 하 모두 122편이다. 역사 연구의 사료로서 가치 있을 뿐 아니라 서예와 문학 연구에도 가치가 있어 1995년 6월 20일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48호로 지정된 바 있다. 이환주 남원시장은 이권기 전 의장의 소중한 문화재 기증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향토박물관 수장고에 유물을 안전하게 보존하고 향후 전시나 학술연구 등에 활용해 문화재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하겠다고 밝혔다.

  • 문화재·학술
  • 김영호
  • 2020.11.24 17:43

남원 아막성(阿莫城), 신라시대 대형 집수시설 발견

남원 아막성(阿莫城)에서 신라시대 대형 집수시설이 발견됐으며 그 내부에서 다양한 유물이 발견됐다. 남원시는 17일 전북도와 함께 이같은 내용을 담은 남원 아막성 발굴조사 학술자문회의를 열었다. 시에 따르면 아막성은 봉화산(919.6m)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에 위치한 퇴뫼식 석축 산성으로 둘레 640m로 전북 동부지역에 분포하는 고대 산성 중 최대 규모에 해당한다. 삼국사기에는 백제 무왕 3년(602년)과 무왕 17년(616년)에 백제가 신라의 아막성(또는 모산성)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있다. 아막성은 20여 년 간 철 산지인 운봉고원을 차지하기 위해 백제와 신라가 치열하게 각축을 벌였던 역사적 장소로,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그간 문헌사적으로 추정됐던 아막성 실체가 드러났다는 평을 받고 있다. 조사 결과 집수지 1기와 도수로 목주열의 잔존현황이 확인됐다. 집수지는 길이 9.5m, 너비 7.1m, 최대깊이 2.5m로 전북지역 최대급에 해당한다. 집수지 주변으로는 외부에 이물질이 직접 유입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도수로가 폭 50cm 내외로 축조돼 있다. 또한 도수로 일대에는 집수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 구조물의 흔적으로 보이는 목주열이 9기 확인됐다. 최완규 원광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이번 조사에서 성벽의 축조수법 및 집수시설의 조사가 꼼꼼하게 진행됐다며 집수시설의 경우 축조 방식이 특이해 추가 발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집수시설의 내부에서는 삼국시대 신라 말 고려 초기에 이루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 유물은 6세기 중반에서 7세기 초반에 제작된 신라 토기로서 아막성의 축조운영 시기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줬는데 기록상 등장하는 아막성의 운영시기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출토된 유물 중 칠 원료가 담겨져 있는 토기류가 있어 주목되는데 국내에서 최고로 손꼽이는 남원 칠기 문화의 전통과 역사성을 복원할 수 매우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는 것이 고고학계의 설명이다. 이 외에도 목제 유물과 동물 유체가 상당수 출토됐으며, 목제 유물의 경우 글씨가 새겨진 목간과 목검이 출토돼 주목을 끈다. 동물 유체는 곰과 말, 소, 자라 등이 확인돼 당시 군사들의 생활방식은 물론, 식생 환경을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판단되고 있다. 특히 곰 유체의 경우, 신라 월성에서 출토된 예가 있는데 삼국사기에 신라인들이 곰의 가죽으로 장군 깃발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기도 하다. 시는 집수시설 내부에서 확인된 목간에 적혀 있는 글자를 판독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적외선 촬영 등을 시행하고 학계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아막성 목간의 정확한 성격을 규명하는 동시에 과학적 분석방법을 통해 아막성의 연대를 파악할 계획이다. 박광춘 동아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집수시설 외에도 주변 공간에 대한 장기적인 조사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며 체계적 조사가 완료된 후 사적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 문화재·학술
  • 김영호
  • 2020.11.17 17:24

“구석기 유물 쏟아져나왔는데…” 정읍 구절초 지방정원 조성 사업 논란

정읍시가 수십억원을 들여 지방정원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업 부지에 묻혀 있던 구석기 시대 유물이 대량으로 발견됐다. 하지만 정읍시는 추가 발굴은 없다는 의사를 보이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구절초 지방정원 공사 중 발견 정읍시는 산내면 구절초 테마공원(면적 41만5000㎡) 일원(약 30만㎡)에 국비ㆍ시비 60억원을 들여 구절초 지방정원 조성 사업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착공해 내년 말 완공이 목표였지만 지난해 매장 문화재 시굴(시험적으로 파 보는 일) 및 지표 조사에서 각각 조선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기와와 구석기 유물 70여 점이 발견됐다. △정밀조사결과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지 (재)전주문화유산연구원은 정읍시 의뢰를 받아 지난 3월부터 8월까지 정밀 발굴 조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구석기 유적 1000여 점이 발굴됐다. 대형 석재와 좀돌날(잔석기를 만들기 위해 몸돌에서 떼어낸 아주 작은 돌 조각), 돌도끼, 망칫돌, 갈돌 등이다. 긁개와 밀개 등 성형석기도 출토됐다. 특히 석기 제작에 쓰인 망칫돌과 화덕 흔적이 발견되며 학계에 관심을 끌고 있다. 일단 그간 정읍에서 단 한번도 보이지 않던 구석기 시대의 흔적이 발견됐다는 점에 귀추가 쏠린다. 발견된 흔적을 분석해보면 해당 지역은 석기제작소로 추정된다. 구석기인들의 임시 공간이 아닌 거주 공간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얘기다. 또 약 8000년 전 후기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넘어가는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발견됐다. 한반도에서 후기 구석기에서 신석기 시대로 변화되는 시기의 유적은 제주도 고산리 유적이 유일하다. 도내의 한 고고학 교수는 탄소연대측정이 나와야 정확하겠지만 여럿 흔적을 봤을 때 추측이 맞다면 구석기에서 신석기 시대로 넘어가는 흔적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존해야한다는 학계, 난감한 정읍시 문화재청으로 올린 발굴보고서에 각계 전문가들은 유적의 역사적 가치가 높고 매우 중요하다며 자치단체와 협의해 추가 발굴하고 보존을 해야 한다고 의견을 적었다. 김재영 정읍역사문화연구소 이사장은 정읍에서 처음나온 구석기 유적지는 매우 상징적이라며 공사계획을 당장 중단하고 인근의 부지에서도 유물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 서둘러 발굴에 들어가야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읍시는 수만 년 전 유물을 발굴ㆍ보존하려다 완공을 눈앞에 둔 사업이 자칫 차질을 빚을 수 있어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정읍시는 결국 추가 조사는 하지 않고 유물이 발굴된 장소를 잔디 등으로 덮어 공원으로 조성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읍시 관계자는 (가을에 피는) 구절초만 가지고는 관광객을 모으는 데 한계가 있어 사람들이 1년 내내 와서 쉬고, 먹고, 즐길 수 있는 아이템을 채우는 지방정원 조성 사업을 추진했다면서 현재 문화재청의 지시가 나와봐야 알지만 우리가 훼손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잔디 등을 통해 공원으로 조성한다면 유적지 훼손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최정규
  • 2020.11.16 17:37

문화재청, 서원향교문화재 20건 보물지정예고, 전북은 ‘전무’

문화재청이 전국의 서원향교 20여 곳에 대한 보물지정 예고를 했지만 전북에서는 단 한 곳도 지정이 안된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문화재청은 강릉향교의 명륜당, 안동 병산서원의 만대루와 도산서원의 도산서당 등 20건의 서원향교 문화재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하지만 강원, 경기, 경상, 충청, 전남 등의 서원향교만 지정됐다. 서원(書院)은 조선시대 향촌에 근거지를 둔 사림(士林)이 성리학 이념을 바탕으로 설립한 사립 교육기관으로, 선현(先賢)에 대한 제사부터 학문 연구와 후학 교육까지 담당했다. 향교(鄕校)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걸쳐 전국의 각 지방에 설립된 관립 교육기관으로, 그 건물은 엄격한 유교적 예법에 따라 명확한 직선 축과 좌우 대칭의 배치로 이뤄졌다. 특히 이들 서원과 향교가 보물로 지정 예고된 배경에는 건물들의 가치가 결정적이었지만 전북도내 향교와 서원들이 배제된 것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전북도에 따르면 전북의 서원향교는 약 255곳이 존재한다. 이중 도가 관리하는 문화재는 전주향교, 옥구향교 등을 포함한 향교 26곳, 서원 23곳 등 49곳에 달한다. 이 중 대표적인 곳이 전주향교다. 사적 제379호인 전주향교는 그 부지가 사적으로 지정됐을 뿐, 내부 건물들은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다. 문화재청이 설명한 순천향교의 보물 지정이유는 호남지역교육기관으로는 순천, 나주, 전주 3곳뿐이라며 이러한 중요성과 위상 때문에 1407년 순천도호부의 향교로 설치되어, 여수ㆍ광양ㆍ돌산 등 인근 군현들의 향교를 관할하게 된 점이 크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전주향교만 하더라도 순천향교에 절대 밀리지 않는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고, 건축양식또한 훌륭, 지역별 안배와 위상을 생각해 전북에도 보물지정이 이뤄줘야 한다고 말한다. 전주향교는 고려 말에 창건됐다고 전해지는데 태조 이성계 영정봉인을 위해 현재의 장소로 이전됐다. 전주향교는 나주향교와 마찬가지로 만화루, 일월문, 대성전, 명륜당이 하나의 중심축을 이루는 전묘후학의 배치를 하고 있으며, 계성사가 서북쪽 뒤에 위치하고 있다. 특히 대성전은 1653년(효종 4)에 고쳐 세워졌는데 이기발이 쓴 중건기가 있다. 이후 1907년(융희 1)에 군수 이중익이 중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내부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4성인, 10철학자, 송나라 6현의 신위를 모시고, 동무와 서무는 각각 정면 9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건물로 전면에 퇴칸이 구성되어있다.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은 전주향교는 전라감사가 위치한 지역의 대표 향교로 오히려 보물로 지정된 순천향교보다 역사적 가치가 높다면서 건축물로서의 가치도 충분히 크다고 말했다. 도도 도내 서원향교의 중요한 가치를 분석해 문화재청에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을 요구할 방침이다. 도 관계자는 현재 다양한 서원과 향교에 대한 용역을 진행 중으로 내달 초쯤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전북에도 국가지정문화재가 선정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최정규
  • 2020.11.09 17:52

무형문화재 인정예고 김수연·김일구 명창 “판소리 전승, 후진 양성 매진”

문화재청이 최근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수궁가 보유자로 김수연(72) 명창을, 적벽가 보유자로 김일구(80) 명창을 인정 예고하면서 소리 고장 전북이 자존심을 높게 세웠다. 김수연 명창과 김일구 명창은 기쁘고 영광스럽지만, 너무 늦은 나이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선정돼 시간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후계자 양성 등 자신들의 문화재를 전수할 시간이 부족해서다. 평생 소리 외길을 걸어온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판소리와의 운명적인 만남 김수연 명창 이번에 판소리 수궁가 보유자로 인정예고 된 김수연 명창은 군산 출신이다. 어린 시절 김 명창의 놀이터는 국악원이었다. 마을에 놀이터가 없어 뛰어놀 공간이 부족했던 그는 국악원 연습실을 헤집고 다녔다. 그곳에서 매일 같이 소리를 듣다 보니 소리에 귀가 트기 시작했고, 어깨너머로 본 소리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당시 군산국악원장이었던 김재경 명창은 어린 김수연 명창의 소리에 빠져들었다. 김재경 명창은 김수연 명창의 어머니를 찾아가 수연이가 소리에 소질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본격적으로 소리를 전공할 수 있도록 직접 가르쳐보고 싶다고 제안했다. 본격적으로 소리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주변에서 어린 나이에 한이 있다는 극찬을 받았다. 최고의 칭찬이었다. 김재경 명창이 떠난 후 김수연 명창은 이리(현재 익산)에서 배움을 이어나갔고, 21살 무렵 박초월 명창을 찾아 서울로 상경했다. 당시 박 명창은 소리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박 명창은 돈도 없고, 연고지도 없던 그에게 숙식을 제공해주는 등 큰 힘이 됐다. 김 명창은 정말 어려웠던 시절 선생님(박초월 명창)께서 베풀어 주신 정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박 명창에게 흥보가와 수궁가를 배운 그는 춘향가와 심청가를 배우기 위해 성우향 전 보유자를 찾아가 전수받았다. 스승의 은혜를 잊지 않아서일까. 김 명창은 현재 서울에서 학원을 운영하며 스승의 가르침대로 어려운 제자들을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는 박초월 선생님 밑에서 공부할 때 선생님의 가족이 우리가 죽이라도 같이 먹고 살자고 했던 따뜻한 마음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면서 스승의 가르침대로 어려운 환경에 있는 제자들을 위해 도움을 주려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가난이 선물한 소리 김일구 명창 판소리 적벽가 보유자로 인정 예고된 김일구 명창이 소리를 시작한 직접적 동기는 가난이었다. 소리를 좋아하는 어른들로부터 소리꾼들이 용돈을 받는 등 경제적인 도움을 받는 모습을 본 그는 소리만 배우면 대우를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김 명창은 평소 소리를 즐겨하신 아버지를 통해 소리에 입문한다. 지독하고 혹독했던 가난이 그를 소리의 길로 인도한 셈이다. 20살이 된 김 명창은 1960년 광주 호남국악원에 활동하고 있던 공대일 명창을 찾아가 흥보가를 배웠다. 이후 박봉술 전 보유자에게 적벽가 등을 배웠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변성기가 찾아왔다. 무리해서 소리를 하다간 목이 꺾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그는 악기에 관심을 갖게 된다. 22살이 되던 해인 1962년 목포 유달국악원에서 활동하고 있던 장월중선 명창을 찾아가 아쟁산조를 배웠고, 1968년에는 부산에서 활동 중이던 원옥화 명인으로부터 가야금을 배우며 전통악기의 대가로 성장하게 된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많은 공연을 한 그는 예향의 도시 전주에 상당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특히 판소리의 고장인 전북에 있는 전주대사습놀이와 전주세계소리축제가 펼쳐진다는 점에 더욱 큰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 서울 생활을 청산한 그는 2001년부터 예향의 도시 전주에 정착해 한옥마을에 온고을 소리청을 개관했다. 그의 목소리에 반한 당시 김완주 전주시장은 전주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 명창은 청년 시절부터 전주에서 언젠가는 정착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다면서 생각만으로 쉽지 않았지만 당시 김완주 시장의 도움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주는 명예를 안겨주고 제자 양성이라는 또 다른 목표를 세우도록 한 도시라면서 앞으로 전통 판소리를 전승계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최정규
  • 2020.11.05 17:51

조경단, 조경묘 저평가 되어있다.

전북사학회(회장 이동희)가 조경단조경묘의 국가문화재 승격을 위한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전북사학회는 전주시와 함께 국가문화재 승격을 위한 조경단조경묘 학술대회를 30일 오후 1시30분부터 전주역사박물관에서 개최한다고 29일 밝혔다. 이번 학술대회는 조경단의 사적 승격과 조경묘의 보물 승격을 위해 이들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국가적 차원의 관리보존 방안을 찾아보고자 마련됐다. 전주는 태조 이성계의 선조가 대대로 살아온 조선왕실의 본향으로, 조선왕조 전 시대에 걸쳐 태조어진을 봉안한 경기전을 비롯해 조경묘, 조경단, 오목대, 이목대 등 풍패지향으로서 전주의 위상을 공고히 하기 위한 여러 시설이 조성됐다. 하지만 이러한 위상을 자리매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조경단과 조경묘는 그 중요성에 비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북사학회는 이번 학술대회를 조경단과 조경묘의 위상을 재정립하고자 마련했다. 발표는 총 5주제로 이동희 관장(전주역사박물관)은 조경묘 창건과 역사적 의미라는 주제로 영조대 조경묘의 창건 이유와 창건 당시 정국과 어떻게 관련됐으며, 그 의미는 무엇인지 규찰한다. 안선호 교수(원광대)는 조경묘 건축과 문화유산적 가치라는 주제로 유교적 묘제의 보편성과 특수성, 희소성 및 조선왕조의 상징성으로서 가치 등 조경묘 건축이 주는 가치를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한다. 이욱 연구원(한국학중앙연구원)은 조경단 조성과 그 역사성이라는 주제로 대한제국기 조경단의 건립이 오랫동안 구전되어오던 시조묘 관련 이야기의 역사화라 주장하며, 당시 조경단 건립의 의미를 추적한다. 홍승재 교수(원광대)는 조경단 건축과 문화재구역 설정이라는 주제로 조경단의 가치를 역사적건축적학술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조경단이 국가 사적지로 지정될 가치를 지녔음을 알린다. 홍성덕 교수(전주대)는 조경묘, 조경단 보존관리와 활용방안이라는 주제로 조경묘와 조경단이 지니는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확충하는 등 이를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 문화재·학술
  • 전북일보
  • 2020.10.29 19:48

복원된 전라감영 현판, 누구 글씨일까

전라감영 현판 글씨는 누가 썼을까? 조선왕조 500년 간 전북과 전남, 제주를 관할했던 전라감영이 복원된 가운데 전라감영에 걸린 현판 글씨를 쓴 인물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전라감영은 1951년 625전쟁 당시 불에 타 없어졌다가 70여 년 만에 복원됐다. 주요 건축물로는 조선시대 관찰사 집무실이자 전라감영의 핵심 건물인 선화당과 관찰사가 민정과 풍속을 살피던 누각인 관풍각, 관찰사 휴식처인 연신당 등이 있다. 현재 전라감영의 선화당과 관풍각에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는 옛 사진 자료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확대해 복원한 것이다. 흑백 사진으로 필획이 선명하지 않은 부분을 바로 잡았다. 이를 위해 김병기 전북대 교수와 이용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총감독, 윤점용 한국서예협회 이사장이 자문을 맡았다. 전주시 등에 따르면 1884년 전라감영을 방문한 미국 임시 대리공사 조지 클레이튼 포크가 찍은 선화당 사진 속 현판은 오른쪽으로 15도가량 기울어져 있었다. 자문위원들은 이 사진의 촬영 방향 등을 고려해 정면에서 쓴 느낌이 들도록 필획을 일부 보강했다. 최대한 외형은 그대로 유지한 채 판각했다는 설명이다. 이 사진 속 선화당 글씨를 쓴 인물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1792년(정조 16) 선화당 중건 당시 전라감사인 정민시 등이 거론되고 있다. 정민시는 조선시대 정치가로 1773년(영조 49) 문과에 급제해 예조 판서공조 판서 등을 역임했다. 또 관풍각 현판은 전주부의 역사를 담은 전주부사 속 사진 자료를 토대로 복원 작업을 진행했다. 정면 사진이 남아있어 비교적 복원이 용이했다는 후문이다. 다만 연신당은 사진 자료 등이 현존하지 않아 현재까지 복원되지 않은 상태다. 1688년(숙종 14) 연신당 창건 당시 전라감사가 이유였다는 기록만 남아있다. 이와 관련 전라감영 재창조위원회는 연신당 현판 제작과 관련한 방향성을 논의하고 있다.

  • 문화재·학술
  • 문민주
  • 2020.10.27 20:06

도내 국립박물관 유물 긴급보수 69년 소요

전북지역 국립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된, 긴급조치가 필요한 유물을 보수하는데 70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긴급보수유물 수에 비해 가능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대책마련이 요구된다. 2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배현진 의원(국민의힘, 송파을)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립전주박물관은 긴급보수조치가 필요한 유물이 1만3737점에 달했다. 하지만 긴급보수를 할 수 있는 인력은 단 3명에 불과했다. 산술적인 수치로 봤을 때 한해 긴급보수가 가능한 유물은 200점으로 1만3000여 점에 달하는 유물을 모두 보수하기까지 자그만치 69년이 소유되는 셈이다. 배 의원은 현재 전주박물관의 수장고 보관 유물이 7만8765점에 달하고 수장고가 87.7%의 수용률을 보이는 점에 비춰볼 때 앞으로 더욱 많은 유물에 대한 긴급보수가 필요한 것으로 봤다. 국립익산박물관은 긴급보수조치가 필요한 유물수는 4131점으로 이를 담당한 보존가능인력은 단 1명 뿐이었다. 배 의원은 수장고에 잘 보관되리라고 믿고 있던 우리 소중한 역사의 유물들이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며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물들도 긴급보수조차 적시에 받지 못해 날이 갈수록 훼손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립박물관들은 수장고에 방치해놓고 인력이 없어서 혹은 아직 파악하기 어려워서라는 이유를 대고 있다면서 국립박물관이 문화재 훼손의 주범이 되지 않도록 속히 실현 가능한 대책을 마련해야한다고 촉구했다.

  • 문화재·학술
  • 최정규
  • 2020.10.27 17:46

“마한의 본향 전북, 역사문화특별법에 포함해야”

마한의 시작지이자 중심지인 전북을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이하 역사문화특별법) 상 마한권역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한 역사문화특별법은 마한 역사문화권을 영산강 유역을 기반으로 한 전남으로 국한하고 있어 올바른 역사의 복원과 전북의 고대사 위상 재조명이 필요하다는 것. 실제로 지난 5월 20일 20대 국회를 통과한 역사문화특별법은 역사문화권을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마한, 탐라 문화권으로 구분하고 있다. 전북은 백제와 가야 역사문화권에 포함되지만, 마한 역사문화권은 영산강 유역을 기반으로 한 전남만 포함하고 있어 법이 시행되면 전북지역의 마한사 연구, 발굴, 복원 등은 사멸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전북도는 2021년 6월 해당 법의 시행에 앞서 학술대회, 국회 토론회 등을 거쳐 마한 문화권에 전북이 포함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며 이번 학술대회 발표집은 정책 추진을 위한 학술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전북연구원 전북학연구센터는 26일 전북도청 중회의실에서 마한의 시작과 꽃을 피운 땅, 전북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를 열었다. 역사문화특별법 상 전북이 마한권역의 설정에서 제외된 것에 대한 대응으로, 마한의 시작지이자 중심지였던 전북의 역사를 강조하고 조명해 전북을 포함하도록 하는 학술적, 논리적 토대를 다지기 위해 진행됐다. 이날 학술대회에는 최완규 교수(원광대, 마한백제연구소장)가 전북지역의 마한 역사문화권 포함의 당위성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박순발 교수(충남대)가 마한의 시작과 전북의 연관성을 설파했다. 또한 김승옥 교수(전북대)가 마한의 대표적 묘제인 분구묘(墳丘墓)가 출토되는 완주 상운리 유적지를, 김중엽 선임연구원(마한백제문화연구소)이 전북지역의 후기 마한 분구묘를, 김병남 교수(전북대)가 문헌으로 검토한 마한과 전북의 연관성을 발표했다. 좌담자로는 김주성 교수(전주교대), 성정용 교수(충북대), 오춘영 소장(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이택구 원장(조선문화유산연구원), 한수영 연구원(호남문화재연구원)이 참석했으며 최흥선 학예연구실장(국립익산박물관), 이재운 교수(전주대)가 사회자와 좌장을 맡는 등 도내외 마한 역사 전문가들이 함께했다.

  • 문화재·학술
  • 천경석
  • 2020.10.26 19:33

보물급 문화재 ‘금산사 미륵전 향완’이 일본에...정부가 나서야

일본도쿄국립박물관이 소장한 금산사 향완 / 김제시 제공 김제 금산사의 보물급 문화재인 금산사 미륵전 향완(공양할 때 쓰는 향로)이 일본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돼 반환요구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김제시와 금산사 측은 정유재란(1597~1598년) 당시 일제가 약탈한 문화재라 주장하며, 반환요구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26일 김제시에 따르면 금산사의 중심건물인 미륵전 향완이 현재 일본도쿄국립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일본도쿄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향완은 현재 몸체는 잃어버리고 대좌만 남아 있다. 굽은 2단으로 둘레가 보통보다 굵은 것으로 보아 향로의 몸체가 비교적 컸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노대(爐臺)의 상부에는 이중의 앙련판(仰蓮瓣)을 두르고, 그 아래에는 뇌문(雷文)파상당초문(波狀唐草文)와문(渦文) 등이 은입사(銀入絲)로 장식되어 있다. 받침의 기둥은 석류문이 당초문 형식으로 표현되었는데, 이러한 무늬는 상감청자의 무늬에서 나타나는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무늬다. 현재 국보 제75호로 지정된 밀양 표충사 청동은입사향완과 비슷한 양식이다. 현재 일본도쿄국립박물관 측은 이 향완이 원래 일본 나라현 법륭사에서 보관하다가 1877년 재정난을 겪던 법륭사가 일본 왕실에 헌납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유화돼 도쿄국립박물관이 소장하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향완 표면에는 금산사 대전 미륵전이란 명문과 하단에는 고려시대 명종 8년이 글자로 새겨져 있다. 이는 미륵신앙의 성지인 금산사의 문화재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향완은 미륵신앙 성지인 금산사의 유물이란 점에 주목된다. 특히 정유재란 이후 복원된 현 미륵전 이후가 아닌 고려시대 때 만들어져 그 가치는 더욱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야기이다.시는 정부에도 향완 요구를 위한 도움을 요청할 계획이다. 백덕규 김제시 학예연구사는 일본이 향완의 첫 공개시 뒤집어 전시한 점, 몸체에 금산사 대전 미륵전이란 표시가 있는 점 등을 볼 때 정유재란 당시 약탈했던 문화재로 추정된다면서 일본은 이 향완이 법륭사로 흘러간 과정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면 약탈문화재로 간주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최응천 국외소재문화재단 이사장은 미륵전 향완은 부정할 수 없는 우리 문화재라면서 김제시보다도 금산사와 정부 측에서 소중한 우리 유물 반환을 더욱 적극적으로 요구해야한다고 말했다. 김제시는 내년에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을 찾아 금산사 미륵전의 상징과도 같은 향완의 국내 환수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 문화재·학술
  • 최정규
  • 2020.10.26 19:23

남원 만복사지, 역사·문화적 연구 필요

남원에 위치한 만복사지 유적은 사적 제349호로 지정돼 유서 깊은 사찰이자 보물 제43호인 만복사지 석조여래입상 등 경내에 현존하는 문화재와 출토 유물의 가치가 매우 높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1979년부터 현재까지 총 10여 차례의 발굴조사에도 불구하고 창건 시기부터 중창 과정에 대한 내용을 명확히 알지 못하고 최종 사찰에 대한 확인만 이뤄져 후속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학계 주장이 나왔다. 남원시와 한국건축역사학회는 23일 남원예촌에서 만복사지 조사 성과와 과제란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공동개최하고 주제발표와 토론을 진행했다. 고려시대 대표적인 불교사원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만복사지는 관광자원과 사회교육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조사와 정비가 요구되고 있다. 이로 인해 학계에서도 여러 차례 고려시대 불교 가람에 대한 학술자료를 얻기 위한 발굴조사가 진행됐지만 그 실체가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윤덕향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는 만복사지 발굴조사 성과와 과제란 주제로 발표에 나서 만복사지 발굴조사가 시작된 1979년 이후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람 배치와 변천과정에 대해 적지 않은 의문이 남아있다며 민가 등에 의한 제약으로 충분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북동쪽(강당지 동편)에 대한 정밀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윤 교수는 조사만이 아니라 만복사와 관련된 역사적 가치와 문화적 의미를 찾는 연구가 필요하다며 남원지역 정체성과 관련한 만복사의 연구 주제를 설정하고 지속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선호 원광대 건축학과 교수는 토론자로 나서 만복사지의 경우 전체 사역에 대한 토층 확인과 일부 건물지에 대해서는 추가 발굴조사도 이뤄질 필요가 있다며 서금당지 서쪽 구역에 대해서도 발굴조사가 필요하며 사적지의 범위도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남원시는 이번 학술세미나에서 나온 의견들을 토대로 만복사지에 대한 체계적인 문화재 보존관리와 활용에 나설 계획이다.

  • 문화재·학술
  • 김영호
  • 2020.10.25 18:02

찬란한 역사 ‘후백제와 견훤’을 알아보자

견훤의 어머니가 일을 하느라 어린 견훤을 강보에 싸서 숲에 두었더니 호랑이가 와서 젖을 먹였다.<삼국사기> 후백제를 세운 견훤의 이야기다. 삼국사기는 어린 시절부터 체격과 용모가 웅장하고 기이했으며 생각과 기풍이 활달하고 비범했다. 성장한 후에는 종군을 하게 되었을 때 서남해(西南海) 지방에서 공을 세워 비장(裨將)이 되었다.라고 견훤을 설명하고 있다. 견훤이 건국한 후백제는 전주에 도읍을 두고 2대 45년간 존속하면서 신라태봉고려 등과 삼국의 패권을 다퉜다. 이런 내용을 짐작해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돼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립전주박물관(관장 직무대리 정상기)은 전라북도(도지사 송하진), 전주시(시장 김승수), 상주시(시장 강영석), 완주군(군수 박성일), 장수군(군수 장영수), 진안군(군수 전춘성)과 공동으로 오는 27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개관 30주년 특별전Ⅱ 견훤, 새로운 시대를 열다를 개최한다. 견훤의 활약과 그가 건국한 후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조명한다. 이번 전시는 고대국가의 도읍이었던 전주와 전북지역의 역사 정체성을 확립하고 견훤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영호남 교류라는 시대적 요구의 역사적 당위성을 정립하기 위해 마련됐다. 전시장에서는 역사의 패배자로 기록되어 있지만 암울했던 구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던 개척자 견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됐다. 1부 화무십일홍, 영웅 탄생에서는 후백제의 연호, 정개(正開)가 유일하게 남아 있는 남원 실상사 편운화상 승탑(전북 유형문화재 제247호)을 1대1 크기로 복제전시한다. 또 삼국사기 및 조선시대 상주지도에서 역사적 인물로 기록되어 있는 견훤의 모습을 보여준다. 혼란스러웠던 통일신라 최말기의 문화상 조명하며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한국사의 전환기가 다가오고 있었음을 살펴볼 수 있다. 2부 견훤, 그 꿈의 시작은 견훤의 웅기와 초반 활동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견훤은 청년기에 지금의 광양순천지역에서 활동하다가 전남 광주에서 처음 나라를 선포한다. 이와 관련된 광양 마로산성과 광주 무진고성에서 출토된 옛 백제의 지명(馬老官, 마로관)이 찍힌 기와들, 희귀한 청동거울, 봉황과 도깨비무늬의 기와 등이 주로 전시된다. 특히 봉황은 왕권이나 신성함이 필요한 곳에서 주로 발견되는 문양으로 무진고성이 견훤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3부 견훤, 새로운 시대를 열다의 주요 전시품은 길이가 80m에 이르는 전주 동고산성의 대형건물지에서 출토된 전주성(全州城)이 새겨진 기와들과 전북지역에서 최대의 집수시설이 조사된 장수 침령산성의 유물들이다. 특히 침령산성에서는 글씨가 남겨져 있는 자물쇠와 목간이 발견되어 당시 후백제인의 생생한 모습을 전한다. 이외에도 우리나라 초기청자 도입과 생산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진안 도통리초기청자가마 유적의 청자 생산도구와 유물들도 전시장을 빛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후백제의 왕실 사찰로 논의되고 있는 완주 봉림사지 출토 석조 삼존불상의 본존불은 이번에 최신의 3D 스캐닝 기술을 이용해 정교하게 복원해 전시한다. 특별전의 개막식은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으로 개최된다. 오는 26일 국립전주박물관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오후 2시 30분 생중계될 예정이다. 또 내달 27일에는 연계 학술대회 후백제 문화의 형성과 그 특징이 국립전주박물관 강당에서 예정되어 있다.

  • 문화재·학술
  • 최정규
  • 2020.10.22 17:19

시민 곁으로 돌아온 호남의 수부 전라감영

복원된 전라감영이 7일 준공식을 갖고 시민의 품에 안겼다. 이날 공개된 전라감영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들고 있었다. 전라감영 내부의 세 번째 출입문이었던 내삼문(內三門)은 복원된 전라감영의 새로운 출입문으로 자리잡았다. 내삼문 입구 양 옆에는 전라감영의 의미와 과거 역할을 담은 정보를 담았다. 임금의 덕을 베풂으로써 백성을 교화한다는 뜻을 품고 전라감사 집무실이었던 선화당 내부는 1884년 미국 임시 대리공사인 조지 클레이튼 포크가 촬영한 과거 사진을 디지털병풍을 통해 선보였다. 좌청룡, 우백호가 그려진 병풍 앞에는 관찰사의 자리가 마련됐다. 부녀자들이 거처하던 관청의 안채인 내아에는 3D로 제작된 콩쥐팥쥐 영상과 다양한 교육과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설치됐다. 내아의 부속건물인 내아행랑에는 통인청(소리), 선자청(부채), 지소(한지), 인출방(출판)에 대한 감영의 특별함을 담은 소재로 채웠다. 전라감영은 과거 전주한지를 이용한 완판본 고소설 70여종을 간행해 조선 인쇄 문화 발전에 기여했다. 또 단옷날 임금께 진상하는 최고의 부채를 만드는 선자청 등을 뒀고, 판소리 최고 등용문인 전주대사습놀이를 열어 오늘날 전주가 소리의 고장으로 자리매김하는 토대가 되는 등 과거부터 현재까지 감영의 특별함을 담은 소재로 채워졌다. 전라감사의 휴식공간인 연신당에는 감영의 건축양식과 역대 감사를 360도 VR시스템을 도입했다. 이외에도 관풍각에는 전라감사가 지역을 순회하는 코스와 그 장면을 담은 만리경 VR시스템을 통해 역사로의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전라감영이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재탄생될때까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1996년 전북도청사 이전이 확정된 후 전라감영 복원 문제가 본격 거론됐다. 복원이 논의되자 구 도청사에 입주했던 시민단체의 반발이 거셌다. 구 도청사가 가진 역사적인 시간도 무시할 수 없고, 현대사의 문화재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의 이유로 전라감영복원에 부정적인 시각들이 존재했다. 여기에 감영복원에 관련해서도 완전복원과 외적인 상징복원, 부분복원에 대한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면서 20년 넘는 시간이 허비됐다. 2004년 12월 전라감영복원 재창조위원회가 발족한 후 현재까지 18차례의 전체위원회의 및 39차례의 실무위원회 등 총 57차례의 회의가 이뤄진 것을 보면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다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게 2016년 전라감영지 발굴조사를 통해 관풍각, 내삼문, 비장청 등의 연관 시설을 확인하고,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까지 추정되는 건물터 등이 확인되면서 전라감영 복원이 급물살을 탔다. 이후 2018년 7월 25일 선화당 건물에서 상량식을 개최하고 지난해 11월 30일 선화당을 비롯한 현재의 동편부지가 재창조 복원됐다. 이명우 전라감영재창조복원위원장은 전라감영은 현재 미완의 상태라며 감영의 대문인 포정루, 대사습놀이의 기원이 된 통인청 등이 있던 서편, 현 완산경찰서가 있는 남편부지까지의 재창조복원도 관심을 가지고 풀어야할 문제이자 숙제라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최정규
  • 2020.10.07 19:10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 ‘전라감영’ 7일 개방

1951년 한국전쟁 당시 소실된 전라감영 건물이 복원돼 70여년 만에 시민 곁으로 돌아온다. 전주시는 7일 오후 3시 전라감영에서 찬란한 꽃, 천년의 열매-전라감영을 주제로 준공식을 개최한다. 준공식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최소의 인원만 참석해 유튜브로 생중계된다. 준공식은 1884년 미국 임시 대리공사인 조지 클레이튼 포크가 전라감영 방문 당시 선보인 승전무 공연으로 시작한다. 전라감사를 지낸 이석표의 <호남일기(湖南日記)>에 기록된 내용을 토대로 전라감사 업무 인수인계식도 재연된다. 전라감사의 집무실이자 전라감영의 상징인 선화당 등 핵심건물의 현판 제막으로 전라감영의 복원을 만방에 알린다. 복원된 전라감영은 이날 준공식 이후 시민들에게 완전 개방된다. 전라감영은 조선왕조 500년간 전라도와 바다 건너 제주도까지 56개 군현을 관할하던 지방통치행정기구다. 한국전쟁 당시 감영 주요 건물이 소실됐으며, 2015년 옛 전북도청사 건물 철거 후 2017년 11월부터 전라감영 재창조 복원공사를 시작했다. 이번에 복원된 동쪽 부분은 104억원을 들여 전라감사 집무실이었던 선화당을 비롯 내아, 내아행랑, 관풍각, 연신당, 내삼문, 외행랑 등 핵심 건물 7동이다. 복원된 7개의 건물은 ICT(정보통신기술)기술을 접목한 콘텐츠가 마련됐다. 전라감영의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시 관계자는 전라감영 서측부지 등을 어떻게 활용하고 정비할 것인지에 관한 용역이 끝나는 대로 2단계 복원에 나서는 한편, 이 일대를 전주 정체성을 담아 문화와 역사의 중심지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최정규
  • 2020.10.06 17:07

전북 각 기초단체, 무형유산 보존 전승의지 ‘전무’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이 매년 선정하는 무형유산도시에 전북이 제외됐다. 전북의 기초단체가 이번 사업에 단 한 군데도 신청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전북기초단체가 지역 무형유산을 보존하고 전승, 발굴할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올해의 무형유산도시 사업은 2014년부터 국립무형유산원이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협력을 통해 지역 무형유산의 발굴과 전승을 유도하고, 이를 토대로 지역 무형유산의 자생력 도모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이번에 2021년 올해의 무형유산도시로 삼척시충주시공주시서울 동대문구대구 수성구 등 5개 도시가 선정됐다. 전북이 제외된 셈이다. 하지만 이번 공모사업에 전북의 각 기초단체는 단 한 군데도 신청하지 않았다. 전북의 각 기초단체가 문화유산 전승, 보존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무형유산이 많은 남원과 전주는 각각 지난 2016년과 2017년 선정된 바 있어 공모신청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국립무형유산원 관계자는 전북의 전주와 남원은 과거 한 차례씩 선정된 바있다면서 한 번 신청한 도시도 다시 신청할 수 있지만 전국에 많은 기회를 줘야하는 상황이라서 재선정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이번 공모사업에 전북은 단 한 곳도 신청하지 않았다면서 선정을 위해서는 지역에 각 기초단체의 적극적인 공모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북이 소유한 무형문화는 상당 수 많다. 24일 전북도에 따르면 현재 전북의 무형문화재는 총 55개다. 전주와 남원을 제외한 익산, 군산, 정읍, 임실, 순창, 부안 등 각 기초단체가 보존, 전승해야할 무형유산도 수두룩하다. 무형유산도시에 선정될 경우 정부로부터 국비 1억원을 지원받을 수 있고, 문화재청이 지역의 구전, 설화 등 당초 확인하지 못한 다양한 문화 등도 발굴해 문화관광적 측면에서 큰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무형유산도시 선정이 중요하다. 도 관계자는 무형유산도시 선정에 지난해 정읍시가 의지를 잠시 보이긴 했지만 다른사업신청에 집중했다면서 분명 이점은 많은 사업이다. 앞으로 전북의 기초단체가 무형유산도시 선정에 적극적으로 신청할 수 있도록 독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최정규
  • 2020.10.05 16:54

신재효 선생의 판소리 사설, 필사본 완질로 발견

판소리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고창 출신 동리(桐里) 신재효 선생이 집대성했던 판소리 여섯바탕 사설이 필사본 완질로 발견됐다. 고창 동리문화사업회 이만우 이사장은 최근 고창 고수면의 박종욱씨 댁에서 동리 신재효 선생이 쓰신 사설집의 필사본을 완질로 발견했다고 15일 밝혔다. 1906년 무렵에 필사한 것으로 보이는 필사본은 거의 완벽한 상태로 보존됐다. 신재효 선생(1812-1884)의 판소리 사설집은 판소리 열두 바탕 중 여섯 작품을 개작한 작품으로, 19세기 말 판소리 사설 형태를 온전하게 파악할 수 있는 문집이다. 동리의 판소리 사설 필사본들은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치고 시간이 지나면서 손상이 됐으며, 이에 후손과 판소리 애호가들이 다시 필사해 소멸을 대비했다. 동리 선생이 직접 만든 원본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다. 판소리 필사본은 원본과 같이 한글로 쓴 것과 정확한 이해를 위해 한자를 병기하거나 국한문 혼용으로 쓴 두 종류가 있다. 현재 많이 알려진 이병기 선생이 필사한 가람본과 강한영 선생이 필사한 새터본, 그리고 북으로 넘어간 김삼불이 필사한 김삼불본 등이 있지만, 이들은 모두 1940년대 이후 필사됐다. 이번에 발견된 고수 청계본이 지금까지 발견된 필사본 중 가장 오래된 셈이다. 새로 발견된 고수 청계본은 1900년대 초기에 학정 박정림 선생이 삼농당 정자에서 필사한 것이다. 이만우 이사장은 이번에 발견된 필사본의 연구를 통해 동리 신재효 선생의 판소리 사설이 어떻게 이루어졌고, 전승되었는가를 보다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무엇보다도 신재효 선생이 고창을 판소리의 성지로 만들었다는 구체적 실증 자료가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판소리 고증의 완결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발견된 필사본은 오는 18일 오전 10시 고창군청에서 위탁관리 전달식을 통해 동리문화사업회에 전달될 예정이다.

  • 문화재·학술
  • 최정규
  • 2020.09.15 17:09

전라감영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전라감영을 전주의 역사문화 관광자원을 아우르는 구심점으로 삼아 문화콘텐츠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이 제기됐다. 전북사학회가 지난 11일 전라감영 선화당에서 가진 전라감영 복원 기념 학술대회에서 김순석 전통문화연수원 원장은 복원된 전라감영을 전주의 역사문화관광자원을 아우르는 구심점으로 삼고, 전라감영 문화콘텐츠를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완영일록으로 본 전라감영 문화콘텐츠와 활용방안이라는 주제로 발제한 김 원장은 전라도감찰사 서유구의 행정일기인 <완영일록>에서 그 활용법을 모색했다. 김 원장은 전라감영을 한옥마을 문화관광자원의 구심점으로 삼고 무형문화는 14개 시군으로 영역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민관상화 정신에 입각한 주민참여형 5집강소 문화관광산업 운영조직을 통한 문화콘텐츠 방안을 제시했다. 민관상화는 동학농민혁명 때 관(官)과 민(民)이 협력을 한 자치체제인 관민상화(官民相和)에서 나온 말이다. 김 원장은 복원 감영 건축물의 위용에만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감영문화로 한옥마을 콘텐츠를 연계, 한옥마을 역사문화 관광자원의 구심점이자 전북 문화관광의 연결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전주한옥마을정체성을 6대 한스타일(K-STYLE)을 활용한 한류문화 체험으로 채워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옥마을 주민과 전북문화예술인이 함께 6대 한스타일을 일상생활에서 구현할 수 있도록 개발운영할 조직인 문화콘텐츠 5집강소 운영조직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원장이 제안한 5집강소 운영조직은 전라감영 문화관광 자원의 볼거리, 먹을거리, 놀거리, 체험거리, 그리고 이를 모두 아우르는 총괄벼리로 묶어내는 민관상화의 집강조직이다. 5집강소가 실현될 경우 주민참여를 구조적으로 제도화하는 강점과 전주 정체성이 문화관광 사업속에서 발현되는 감영 문화콘텐츠 활용효과가 높다고 봤다. 그는 5집강소의 세부적인 역할도 제안했는데, 전라감영 및 전주관련 기록물 수집, 전시와 디지털 아카이브 제공 등을 전담하는 지집강(知緝綱), 음식 맛 문화관광산업 집강소로 발효식품을 중심으로 전라도 맛 콘텐츠 개발 운영하는 미집강(味執綱), 멋스런 풍류 문화 집강소로 전라도 문화예술인의 사상과 놀이, 음악, 춤, 무예 콘텐츠 개발 전담인 풍집강(風執綱), 한옥마을 놀이 체험 집강소인 주민 문화상품 콘텐츠 개발 점담인 숙집강(宿執綱), 전라문화예술관광 산업 대 집강소인 각 집강 사업을 연결할 융복합 축제 관장인 강집강(綱執綱) 등을 제안했다. 또 <완영일록>을 통해 전라감영의 상징인 감영에서 일어난 일 또는 감사의 집무행위나 집무 내용, 진상품과 기우제 등 유무형의 감영문화를 전반적으로 문화관광 자원화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감영문화를 시대에 맞게 재탄생시키는 계기로 삼아 문물교류의 장, 민의 수렴의장, 역사 체험의 장, 기록물 집대성의 장으로 활용해야 한다면서 그래야만이 끊임없는 변혁의 몸부림과 국난을 함께 극복해온 전주시민의 문화예술작 자부심에 전주의 문화예술 관광산업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원장 외에 이날 학술대회는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의전라감영의 역사성과 그 의미 △홍승재 원광대 건축학과 교수의 전주부성과 전라감영의 건축 △유철 전주문화유산연구원 원장의 전라감영지 발굴조사 내용 및 성과 △조법종 우석대 교수의 조선후기 외국인에 비친 전라감영 △장경희 한서대 교수의 전라감영 선화당 내 기물과 의식구의 원형 고증 연구 등 7개의 주제 발표와 토론으로 진행됐다.

  • 문화재·학술
  • 최정규
  • 2020.09.13 16:36

남원 유곡리·두락리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신청 대상 선정

남원 유곡리두락리 등을 포함한 1가야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국내 최종 관문을 통과했다. 전북도는 10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세계유산분과) 심의 결과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등 가야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신청 대상에 선정됐다고 밝혔다. 당초 가야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은 2013년에 3개 고분군(김해 대성동, 함안 말이산, 고령 지산동)을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로 시작했지만, 2017년 문화재위원회에서 3개의 유적만으로는 세계유산의 가치를 증명하기 어렵다는 결정이 있었다. 이에 가야고분군 104개소 중 선정 평가를 통해 4개 고분군(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성 송학동, 합천 옥전, 창녕 교동과 송현동)을 확대하면서 2019년 1월에 7개의 고분군을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했다. 이후 문화재청과 10개 광역기초지자체간 업무협약을 체결해 세계유산 등재를 본격 추진해 왔으며, 특히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기준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에 대한 구체적 근거를 증명하기 위하여 많은 연구와 노력을 거듭한 결과, 국내 최종 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윤여일 전북도 문화체육관광국장은 국내 심의 과정은 통과했지만 세계유산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유네스코에서 요구하는 자료 보완, 현지 실사 등 험난한 일정들이 남아있다면서 세계유산에 등재될 수 있도록 가야고분군 내 10개 지자체 협력하고,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고분군에 대한 정비와 홍보관 건립 사업 등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가야고분군은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사적 제542호), 김해 대성동 고분군(사적 제341호), 함안 말이산 고분군(사적 제515호), 합천 옥전 고분군(사적 제326호), 고령 지산동 고분군(사적 제79호), 고성 송학동 고분군(사적 제119호),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사적 제514호)의 7개 유산으로 구성된 연속유산이다.

  • 문화재·학술
  • 천경석
  • 2020.09.10 19:1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