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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전주박물관(관장직무대리 정상기)이 상설전시실 선비문화실을 새롭게 단장했다. 선비문화실은 지난 2018년부터 국립전주박물관이 추진해 온 조선 선비문화특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박물관 본관 1층에 마련됐다. 조선의 지도자이자 실천하는 지식인인 선비의 성장, 역할, 문화의 힘에 초점을 맞추어, 전시품이 지니는 역사적 맥락과 기능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국보 제110호 이제현 초상(李齊賢 肖像) 보물 제568호 윤봉길 의사 선서문(尹奉吉 義士 宣誓文), 보물 제569호 안중근 의사 유묵(安重根 義士 遺墨)을 비롯해 전주의 대표 선비 가문인 전주 류씨 종중 분묘 출토 문화재, 송시열(宋時烈)의 초상과 유품, 김정희(金正喜)의 최고 수준의 글씨를 보여주는 무량수각無量壽閣 편액 등 총 88건 226점이 마련됐다. 전시는 제1부 조선, 선비를 기르다, 제2부 선비, 조선을 이끌다, 제3부 문화, 선비 정신을 지키다로 구성됐다. 1부에서는 선비가 성장하여 지도자가 되는 과정을, 2부에서는 조선의 지도자 선비가 올바른 정치는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3부에서는 선비가 사회 변화에 대처하고 선비정신을 지키는 바탕이 되는 문화의 힘을 보여준다. 아울러 전시실 안에 선비와 자연-실감 콘텐츠 공간을 만들어 관람객들이 선비 문화를 감각적으로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게 했다. 박물관은 이번 개편사업에서 진열장은 최고급 저철분 유리를 사용하였고, 전시실 조명을 LED로 교체해 쾌적한 전시 환경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를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게 했다. 국립전주박물관은 재개관 때까지 선비문화실 관련 자료들을 온라인으로 계속 공개할 계획이다. 박물관 관계자는 조선시대는 현대와 가장 가까운 시기로 당시 선비들의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선택과 의지가 오늘날 사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새롭게 선보이는 선비문화실이 현재의 사회를 돌이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판은 건물의 멋을 내는 수단임과 동시에 건물 명칭과 성격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당대 명필이나 유명 인사들의 글씨를 내거는 경우가 많다. 복원작업이 마무리 되고 있는 전라감영 핵심시설의 현판 글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전라감영의 역사성과 위상을 높이는데 현판이 갖는 상징적 의미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전주시에 따르면 복원된 전라감영의 주요 건축물은 조선시대 관찰사 집무실이자 전라감영의 핵심 건물인 선화당(宣化堂)과 관찰사가 민정과 풍속을 살피던 누각인 관풍각(觀風閣), 관찰사 휴식처인 연신당 등으로 구성됐다. 그 중 선화당과 관풍각 현판은 일제강점기 때 촬영된 사진 글씨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복원했다. 그러나 연신당은 과거 자료가 없어 새로 제작해야 하는 상황에서 현재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당초 연신당 현판은 중견 서예가 이당 송현숙 선생의 기증한 작품을 걸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당이 최근 전주시에 현판을 내려달라고 요청하면서 원점에서 새 현판 글씨를 찾을 수밖에 없게 됐다. 시 관계자는 이당 선생이 직접 현판을 내려달라는 의견을 제출한 것으로 전달받았다면서 본인의 의견을 존중, 최근 현판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전라감영 재창조위원회에서 적합한 연신당 현판 글씨를 찾고 있다. 현재 재창조위원회에서는 △창암 이상만 선생의 글씨 △젊은 지역서예가의 한글글씨 △조선왕조실록 글씨 등 3가지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창조위원회는 일단 창암 선생 글씨에 무게를 뒀으나 창암의 글씨 중에 연신(燕申)이란 글자를 찾지 못해 난항에 빠졌다. 이를 대처할 다른 방안으로 관찰사의 행정 일기인 <완영일록>도 거론됐지만 글씨가 가늘어서 현판으로 재현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전라감영은 재창조 복원이라는 점을 강조, 한문이 아닌 젊은 서예가들 중 한글로 현판을 재창조 하자는 의견도 제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의견으로 조선왕조실록 완판본 글씨로 현판을 제작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조선왕조실록은 태조부터 태종때까지 필사본이 있으며 이는 활자로도 제작되어 있는 점이 강점으로 부각된다. 이를 활용한 현판은 현재 전주경기전 내에 위치한 전주사고가 대표적이다. 재창조위원회 관계자는 전라감영의 작은 부분이라도 역사와 전통 그리고 위상을 찾기 위한 노력이 위원회 내에서 많이 이야기되고 있다면서 좋은 결과를 도출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무형문화재의 보전과 진흥을 위해 9월 한달간 진행되는 국가무형문화재 공개행사가 전국 각지에서 무관객으로 전환된다. 국립무형유산원(원장 김연수)은 국가무형문화재 9월 공개행사가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진옥섭)의 진행으로 전국 각지에서 무관객으로 펼쳐진다고 1일 밝혔다. 국가무형문화재 공개행사는 무형유산의 대중화와 보전전승 활성화를 목적으로 매년 개최되고 있다. 당초 내달 한달 간 전국에서 총 35건의 공개행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코로나19가 장기화 되면서 기능 종목은 전시 위주로, 예능 종목은 무관객 공연으로 전환된다. 무관객 공연은 행사 종료 후에 약 한 달 전후로 국립무형유산원 누리집(www.nihc.go.kr, 전승지원 통합플랫폼)에서 온라인으로 영상을 공개할 계획이다.
담장이 너무 높아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아 답답하네요. 전주 전라감영 재창조 복원 사업지 동편 담장 옆에서 바라본 감영 풍경은 파란 하늘뿐이다. 재창조된 전라감영의 내부는 2층 높이의 지붕 일부만이 보였다. 높은 높이의 관풍각(觀風閣)은 누각까지 보였지만 그 외 건물은 잘 보이지 않았다. 담장 높이가 성인 키보다 높은 대략 2m에 이르면서다. 담장은 지대석 세 줄로 기초를 다진 후 크고 작은 돌을 강회 중간 중간 섞어 쌓아올렸다. 그리고 그 위에는 기와를 얹었다. 까치발을 들고 쳐다보려해도 감영의 내부는 볼 수 없는 높이다. 재창조 된 전라감영의 새로운 출입문인 내삼문(內三門)에 위치한 담장도 마찬가지였다. 까치발을 들어도 건물의 지붕만 보일 뿐이다. 인근 시민은 담벼락이 너무 높아 멀리 떨어져서 보지 않고서는 내부를 들여다보기 어렵다면서 담이 너무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감영 담장은 설계 당시 전라감영 재창조 위원회에서도 쟁점이 됐다. 인근 상인들은 전라감영을 외부에서도 일부 보일 수 있게 담장을 낮췄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고, 일부 위원들은 지나가는 시민 및 관광객들이 외부에서도 내부를 볼 수 있도록 담 높이를 낮추자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건설전문위원들은 전라감영의 위상을 위해 더욱 높일 필요성을 역설했다. 전주시 관계자는 당시 담장 높이를 두고 재창조위원회에서 의견이 갈렸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두 의견을 절충한 결과가 2m가량의 높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과거에 전라감영은 전라감사가 있는 일종의 보안시설로 외벽이 높았을 수 있지만 복원된 감영은 그 성격이 달라 굳이 높은 담장으로 권위를 앞세워야 하는지 재검토의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전통과 고증을 우선적으로 복원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외벽은 누구나 접근 할 수 있는 높이가 설정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어깨너머로 보일듯 말듯한 우리 전통 여백의 미가 아쉽다는 제언들을 하고 있다. 일부 예술가들은 복원된 전라감영을 볼수 있도록 어차피 높은 외벽이라면 중간중간 안을 들여다볼수 있는 구멍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안하고 있기도 하다 최영기 전주대 관광학과 교수는 최근 공공시설 등을 비롯한 외벽공사는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높이로 만들어지는 것이 현재의 트렌드라면서 남원의 경우도 과거 광한루원 외벽이 너무 높아 접근성을 제한한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남녀노소 누구나 내부로 들어가지 않더라도 볼 수 있는 높이가 현재 가장 이상적인 외벽높이라고 조언했다.
전북의 거점박물관인 국립전주박물관장이 2개월 가까이 공석상태인 데 대해 뒷말이 무성하다. 27일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전주박물관에 따르면 지난 6월 30일 천진기 전 관장이 2년의 임기를 마치고 연고지가 있는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로 발령이 난 이후 현재까지 전주박물관장은 공석이다. 현재 정상기 학예실장이 직무대행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두고 전북의 문화예술계에서는 관장 인선이 늦어지면서 여러 추측이 나돌고 있다. 천 전 관장이 임기를 마친 후 곧바로 관장인선이 되거나 늦어져도 2~3주 후 내정 또는 인사발령이 나지만 계속해서 늦어지고 있어서다. 실제 지난 21일 문체부는 국립중앙박물관 미래전략담당관,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장, 춘천박물관장 등 인사를 단행했지만 공석인 전주박물관장 인사는 빠졌다. 문체부 관계자는 전주박물관장의 직급은 3급이상인 고위공무원단인데 인사가 생각보다 지연된 것은 사실이라면서 자세한 이야기는 민감한 부분이라 말할 수 없지만 조만간 인사발령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도내 문화예술계에서는 문체부가 전주박물관장에 앉힐 적정한 인물을 찾지 못해 인사발령이 늦어지고 있다., 인사가 내정되어 있지만 아직 현재 부서에서 일을 마무리 하지 못해 마무리 후에 올 것이라는 등의 추측이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 문화예술계는 이번 전주박물관장이 전북에 대해 관심이 높고, 지역사회와 융합을 중요시 하는 인물이 배정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박물관에 종사하는 한 직원은 그동안 지역의 거점인 국립전주박물관장이 잠시 있었다 가는 그런 상황이 많았다면서 이번 박물관장 인사가 늦어지는 것이 지역을 사랑하고 아낄 줄 아는 관장을 인선하기 위한 고민으로 보고 싶다. 지역을 위한 관장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호남의 수부였던 전라감영의 모든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어진박물관과 전주역사박물관(관장 이동희)은 감영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토크콘서트를 28일부터 내달 25일까지 전주역사박물관 강당(꽃심관)에서 개최한다. 이번 토크콘서트는 5번에 걸쳐 진행된다. 28일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의 전라감영과 전라감사, 9월4일 홍승재 원광대 교수의 전라감영과 감영건축, 9월12일 조법종 우석대 교수의 포크의 기록으로 본 전라감영, 9월18일 이태영 전북대교수의 전라감영과 문화예술, 9월25일 하태규 전북대교수의 옛길을 통해서 본 전라감영의 공간영역 등이다. 참가대상은 해설사와 일반인이며, 참가인원은 코로나로 인해 선착순 50명으로 제한한다. 토크콘서트 상황은 전주역사박물관 유튜브 채널로 실시간 송출 예정이다. 콘서트 방식은 1시간가량 강연을 진행하고, 이후 1시간은 궁금한 내용을 묻고 답하는 토론방식으로 진행한다. 이동희 관장은 복원된 전라감영의 개관을 앞두고 전라감영의 역사와 문화를 살피고, 전라도 천년의 중심 전주의 위상과 정체성을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참가 신청은 21일까지이며 전주역사박물관 홈페이지(http://www.jeonjumuseum.org/)에서 하면 된다.
전북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더욱 잘 알고 미술과 음악적 관점에서 이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한국문화예술교육사업연합회 정읍지부(지부장 이미정, 이하 한문연 정읍지부)가 주관하고 전북문화관광재단에서 후원하는 패스트힐링(Fasthealing) 인문학 강좌가 11일을 시작으로 오는 9월 29일까지 매주 화요일 오전 정읍 시암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이번 강좌는 모두 여덟 차례로 구성했으며, 문화예술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에 힘입어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개최하게 됐다. 한문연 정읍지부는 올해 우리 지역의 유명 강사를 초빙해 시민들에게 수준 높은 인문학강좌를 선보일 계획이며,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강좌 장소를 철저하게 소독하는 등 방역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방침이다. 11일 열리는 제1강에서는 강미미 정읍시립미술관 학예사가 정읍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작가작품 소장품전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현대미술을 주제로 강의할 예정이다. 이후 강의는 △배옥영 한국서예심리치료학회장 나를 찾는 마음 여행 △김현조 전북시인협회회장 선비문화와 서원 △장현진 백세건강발전소장 웃음으로 행복한 삶 △박현수 도예가 도예가와 라꾸가마 소성 △이금섭 정읍국악원 연출감독 백제가요 정읍사와 수제천 △이용찬 시사매거진 기자 임계기사와 조선실록 △신정일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동학농민혁명과 정읍시민의식으로 진행된다. 이미정 한문연 정읍지부장은 정읍은 세계인류문화유산에 등재된 무성서원을 비롯해 남고서원, 옥산서원, 고암서원, 도계서원, 동죽서원, 창동서원 등이 있는 유서 깊은 선비의 고장이며, 백제가요 정읍사와 가사문학의 시조인 상춘곡과 민주화의 효시 동학혁명의 근원지를 간직하고 있다며 이번 강좌를 통해 시민들이 우리 고장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더욱 잘 알고 미술과 음악적 관점에서 체험하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번 강좌에 대한 문의는 한문연 정읍지부(010-5548-6800)로 하면 된다.
조선왕조실록은 태조때부터 철종 까지 조성 왕 25대, 총 472년간의 정치경제사회문화천문풍속예술 등 조선사회의 제반 모습을 총망래해 기록한 방대한 역사서다. 다만, 고종과 순종 실록은 일제의해 편찬돼 통상적으로 실록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1973년 국보 제151호로 지정된 후 1997년 세계적으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크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기도 했다. 조성왕조실록은 선조들의 기록정신을 엿볼 수 있다. 이런 실록의 위대한 기록을 한 눈에 엿볼 수 있는 뜻 깊은 전시가 마련됐다. 전주어진박물관은 만세의 공론, 조선왕조실록 기획전시를 오는 16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진행한다. 전시는 총 3부로 나눠져 있다. 1부 조선왕조실록의 편찬과 봉안, 2부 조선왕조실록의 위대함, 3부 역사를 지킨 전북, 전주사고 등이다. 특히 이번 전시의 핵심은 10여년에 걸쳐 완간된 조선왕조실록 복본 전권을 전시한 것이다. 태조부터 철종까지 그 방대한 양의 복본을 전시해 많은 이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실록의 편찬과 관리 이번 전시에서 실록이 어떻게 편찬되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실록은 왕이 승하하면 그 왕대에 있었던 일을 모아 실록으로 편찬했다. 실록 편찬을 주관하는 관서는 춘추관으로 실록편찬은 초초, 중초, 정초 세 단계를 거쳤다. 실록을 어떻게 봉안하고 관리했는지도 잘 설명되어 있다. 실록은 전국의 4대사고(춘추관, 충주사고, 성주사고, 전주사고)에 모두 봉안했는데 붉은 비단 보자기에 싸여 궤어 넣어 보관했다. 궤에는 방충방습을 위해 천궁, 창포가루를 담은 주머니를 넣어두었다고 한다. 사고 전반적인 관리는 참봉이 했고, 주변 사찰의 주지를 실록수호총섭에 임명해 사고를 수호토록 했다. 이번 전시는 봉안 재연과정을 동영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전북과 전주 없인 조선왕조실록도 없다 실록은 전북과 전주사고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다고 평가된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해 한양 춘추관, 충주사고, 성주사고의 실록이 모두 불타없어졌다. 이후 경기전 참봉 오희길, 태인의 선비 안의와 손홍록 등이 조선사고에 보관 된 실록과 태조어진은 정읍 내장산 용굴암에 이안했다. 이후 무사 김홍무, 영은사(현 내장사) 승려 희묵을 비롯한 승려 5여명, 인근의 산척 100여명이 1년을 왜적으로부터 지켜왔다. 전북의 선조들의 노력으로 전주사고에 보관된 조선왕조실록만이 유일하게 남은 것이다. 임란 이후 전주사고가 폐지되고 무주 적상산성에 사고가 새로 설치돼 묘향산사고에 보관하던 실록을 옮겼다. 전주사고본은 임란 후 정족산사고에 봉안되었다가 현재는 서울대 규장각에 옮겨져 있다. 어진박물관 관계자는 지금까지 실록 전체를 전시해 그 방대함을 보여준 경우는 없었다면서 조선왕조실록의 위대함과 이를 만들어낸 조선의 정신을 새겨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20년 전 제가 제자들에게 건네 준 부채가 나린선의 시작이 됐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소중한 인연이 하나둘 늘어 오늘을 만든 거죠. 나린선은 부채의 전통을 버리지 않으면서 세상에 없는 새로운 부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0호 방화선 선자장과 제자들이 함께 하는 부채 동아리 나린선이 아홉 번째 전시를 열고 감각적인 단선부채 40여점을 선보인다. 바람의 전설... 후예들이라는 전시 주제로 매년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데, 올해 방화선 선자장과 제자들은 각자의 개성으로 완성한 창작 단선부채 작품을 3~4점씩 내놨다. 전주부채문화관에서는 오는 25일까지 비녀의 형상을 담은 비녀선, 민화 문자도, 태극선, 모란도, 단청 등 다채로운 단선 부채의 매력을 감상할 수 있다.(월요일 휴관) 작가가 선호하는 모양으로 외곽의 모양이나 부채 자루의 변화가 가능하다는 점은 단선부채의 매력으로 꼽힌다. 작가들은 부채를 제작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버리지 않으면서 그 위에 현대적인 이미지와 조형성을 담았다. 나린선의 얼굴인 방화선, 구순주, 박삼희, 박수정, 배순향, 송서희, 심성희, 이미경, 이정옥, 이지숙, 장선희, 정경희 씨는 바람의 후예로서 단선 부채의 맥을 이어가면서도 작가 개개인의 개성이 담긴 현대적인 작품을 선보여왔다. 부채를 통해 만들어진 12인의 인연으로 해마다 시원한 여름을 선물해주고 있는 것. 지난 2017년 창립전을 시작으로 이어온 이들의 활동은 바람의 전설이라는 전시 주제처럼 거침없는 이야기를 그려왔다. 방화선 선자장은 故방춘근(전라북도무형문화재 제10호 선자장)의 장녀로, 유년 시절부터 100년 동안 가내수공업으로 이어져 온 단선부채를 제작하면서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더불어 매 전시 때마다 감각적인 단선부채를 선보이며 창작활동은 물론 제자 육성에 열성을 쏟고 있다. 방화선 선자장은 부채를 통해 만들어진 소중한 인연을 지켜나가는 게 나린선의 큰 목표라며 올 여름도 나린선과 함께 시원한 날로 채워가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방화선부채연구소가 자리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국제회의장 1층 공예관에서도 이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 관련 문의는 전주부채문화관 063-231-1774~5.
어린이들이 한국의 무형유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국립무형유산원은 올 10월까지 초중생을 대상으로 e-무형유산 배움터 참가자를 모집한다고 밝혔다. e-무형유산배움터는 온라인을 통해 강령탈춤과 진주검무, 금박장, 평택농악 등을 다양한 체험을 담은 온라인 동영상체험교육이다. 참가비는 무료로, 참가인원을 사전 접수받는다. 문의 063)280-1657.
정재숙 문화재청장. 국립민속국악원(원장 왕기석)은 29일 오전 11시 국립민속국악원 예원당에서 정재숙 문화재청장을 이야기 손님으로 초대해국악콘서트 다담을 연다. 이날 오래된 미래, 문화재 이야기를 주제로 이야기를 전하는 정 문화재청장은 정읍 무성서원을 비롯해 소수서원, 남계서원 등 지역의 유림을 키우는 인문학의 성지였던 한국의 서원 9곳을 소개할 예정이다. 또한,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와 관련된 이야기와 더불어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을 위해 우리 문화재에 대한 이야기를 보다 흥미롭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계획이다. 더불어 6.25전쟁 군사 기록물을 문화재로 등록한 이야기, 무형문화재 전승 현황에 관련된 소식을 전하고 문화재청의 역할과 문화유산을 활용한 마음 치유 콘텐츠, 360도 VR영상으로 보는 덕수궁 등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는 문화 콘텐츠 활용 방안을 두루 소개한다. 강연에 이어 우리음악 즐기기시간에는 원초적국악집단 이드가 출연해 격동, 배치기, 여우놀이, 석양이 진다 등 이드만의 젊은 감성이 담긴 음악을 선보인다. 국악콘서트 다담을 관람하려면 전화(063-620-2324)나 국립민속국악원 카카오톡 플러스친구를 통해 사전 예약하면 된다.
자이언트 펭TV의 주인공으로 남녀노소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펭수가 전주에 위치한 국립무형유산원을 찾아 청년 무형문화재 이수자들에게 무형유산을 배웠다.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원장 김연수)과 한국교육방송공사(EBS, 사장 김명중)는 자이언트 펭TV의 주인공 펭수가 청년 무형문화재 이수자들과 함께 무형유산을 배우며 협업 공연에 도전하는 일화를 촬영하고 지난 20일 오후 7시 45분 방송한 EBS 자이언트 펭TV중 펭수, 진짜 K-펭귄편으로 방송했다고 21일 밝혔다. 이번 이야기는 해외 진출을 꿈꾸는 펭수가 무형문화재 이수자들과의 협업 공연을 만들어 도전한다는 설정을 담았다. 펭수는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놀이와 제16호 봉산탈춤 이수자들에게 남사당놀이 중 상모돌리기와 버나돌리기, 봉산탈춤의 사자춤을 배우고, 이수자들과 함께 연희를 완성해 선보였다. 촬영은 국립무형유산원 꿈나래터 전시관과 소공연장 등에서 진행했다. 펭수와 무형문화재 이수자들은 무형유산 협업 공연과 더불어, 무형유산의 소중함과 공연의 가치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영상은 문화재청 유튜브와 자이언트 펭TV 유튜브 채널에서 다시 볼 수 있다. 한편, 펭수와 함께 협업 공연에 도전한 청년 무형문화재 이수자들은 오는 8월 13~15일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열리는 K(케이)-무형유산 페스티벌에서 남사당놀이, 봉산탈춤, 판소리, 산조, 현대국악 등 정통공연과 다양한 협업 공연으로 관객들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웅장하고 남다른 크기를 자랑하는 익산 백제 유적지. 하지만 그 규모와 명성에 비해 인근 주변 볼거리는 초라하기만 하다. 익산 미륵사지 유적지는 현재 도로 확장공사가 진행 중이다. 미륵사지 유적인근에는 주차장 등 편의시설 등만 들어와 있다. 왕궁리 유적은 일대는 더욱 초라하기 그지없다. 도로 옆 인근에 위치한 유적 인근은 그 어떤 건물도 풍경도 없어 마치 황량하기까지 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공주 공산성과 부여 관북리 유적 바로 앞에는 맛의 거리 등 테마거리가 조성되어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찾게 만드는 구조로 돼있다. 특히 공주 공산성 맛의 거리는 2009년 공주시가 공산성 인근에 금성동 연문 1길에 4억6000만원을 들여 조성하기 시작했으며 위치가 공산성 건너편에 있고, 백제의 맛과 여러 가지 맛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담기 위해 마련됐다. 일종의 관광객 유치를 위한 사업이었다. 익산의 경우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 익산쌍릉과,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미륵산성, 금마 도토성 등이 범위가 10km가 넘는 거리에 산재해있어 중간중간을 매울 수 있는 특화 거리 및 별다른 콘텐츠 조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산시도 이같은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해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배석희 익산시청 역사문화재과장은 익산시 관내 여럿 백제의 상징적인 유적지들은 걸어다니기는 멀고, 차로다니기에는 애매한 거리인 것은 사실이라면서 백제유적지를 연결할 수 있는 또 다른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익산시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단, 왕궁리 유적 옆에 구절초와 국화 등을 심어 색다른 매력의 관광단지를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밖에도 금마지역에 214억(국비,시비 포함)세계유산 탐방거점센터를 세우고 이를 중심으로 삼아 유적지 인근 도시재생을 통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 계획이다. 배 과장은 왕궁리 유적 발굴 당시 복숭화, 국화, 구절초 등 씨앗이 발굴됐다면서 이를 기반으로 왕궁리 유적의 풍경을 확대하고 새로운 사진명소 등을 목표로 관광객 유입을 위한 콘텐츠 개발에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익산이 부여공주를 비롯한 익산 인근의 문화자원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최영기 전주대학교 관광학과 교수는 익산의 유적지들이 광범위하게 퍼져있지만 익산역 등을 통해 이동할 수 있는 교통편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익산의 백제유적을 연결할 수 있는 교통편 제공 및 신설이 가장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왕궁리 유적에서 야행이 진행되고 있지만 눈으로 볼 수 있는 상품화 된 콘텐츠 발굴이 시급하다며 공주부여와 함께하는 콘텐츠 개발과 함께 익산 문화재단과 시가 적극적으로 자체적 문화콘텐츠 개발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700년 역사의 백제. 이 중 익산의 백제유적은 공주부여와 다른점과 강점은 무엇일까. 한국언론진흥재단과 백제세계문화유산센터가 진행한 백제세계문화유산기행에 참가한 기자들은 부여공주에는 없는 왕궁터의 규모에 일단 놀랐다. 또 선화공주와의 사랑이야기로 잘 알려진 서동 설화는 익산의 백제역사를 풍요롭게 한다. △부여공주에선 볼 수 없는 온전한 왕궁터 익산의 백제유적지는 오로지 단 한명의 왕의 흔적이 남아있다. 바로 무왕(재위 600~641)이다. 강력한 왕권을 꿈꾸던 무왕은 익산으로 도읍을 옮겼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증거는 왕궁면 왕궁리 유적(사적 제408호)다. 왕궁리 유적은 백제 후기 궁궐의 구조와 기능, 축조과정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익산 용화산 남측 끝자락의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궁궐을 둘러쌌던 직사각형 담장은 동서 약 230m, 남북 약 495m로 총 길이 1454m에 달한다. 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쌓아올린 담장은 잔존 부분의 최고 높이 1.2m, 폭 3m 내외다. 전반부에 대형건물, 후반부에 후원공방대형 화장실 등이, 전반부와 후반부 경계에 정원이 조성되었던 것으로 조사결과 밝혀졌다. 이 유적에는 백제 무왕 때인 639년에 건립했다는 제석정사 터를 비롯해 그 안에 관궁사, 대궁사 등의 절터와 토성터 등이 남아 있어 이곳이 왕도였거나 왕도와 직접 관련이 있는 유적이라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익산읍지 등의 문헌들은 이곳이 옛날 궁궐터 무왕이 별도(別都)를 세운 곳, 마한의 궁성터라고 적고 있어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주목되는 자료는 일본 교토의 청련원에서 발견된 <관세음응험기>의 필사본이다. <관세음응험기>는 백제30대 무왕이 익산으로 천도하여 제석사를 창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왕궁리유적을 중심으로 한 백제 무왕의 익산 경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헌 자료다. 후백제의 왕궁터, 마한의 궁성터라고 보기에는 이곳에서 출토된 기와 및 토기 등 유물이 백제 무왕시기의 유물과 굉장히 유사하다는 점이다. 또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도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 석탑은 언제 세워졌는지 알려진 바가 없어 탑이 세워진 시기에 대해서도 이견이 많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온 사리장엄구는 미륵사지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와 문양과 양식이 매우 비슷하다. 이러한 목적이 분명하고, 온전히 왕궁의 터가 존재, 백제후기의 왕궁 건축양식을 확인할 수 있는 왕궁터는 현재 익산이 유일하다. 부여와 공주 등에서는 일부 왕궁터 추정장소가 있지만 이토록 온전히 남아있는 왕궁터는 없다. 익산이 익산백제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주장에도 이 같은 유적지가 있기 때문이다. 배석희 익산시청 역사문화재과장은 같은 백제역사유적지구라도 익산은 왕궁의 크기, 처음 발굴조사 때부터 그 목적이 분명한 곳은 왕궁리 유적뿐이라며 왕궁리 유적은 백제문화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 무왕의 본래 이름인 장은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가 아름답고 고운 것이 짝할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듣고 머리를 깎고 신라로 넘어가 노래를 지어 여러 아이들에게 가르쳐 부르게 했는데, 이 노래가 신라에 궁중에 이르자, 진평왕은 선화공주를 내쫓았고, 선화공주는 서동과 결혼했다.는 내용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서동요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는 익산백제가 다른 백제문화권과 다른 또다른 강점이다. 부여공주가 부러워하고 탐을 내는 이 서동과 선화공주의 이야기는 아직 안타깝게도 유물을 통해 세상에 드러나진 않았다. 하지만 익산의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이 이 설화의 배경 위에 만들어졌다는 것만으로 값진 유산이다. 익산시는 이러한 서동을 바탕으로 현재 서동축제를 여는 등 다양한 문화예술 및 축제를 이어나가고 있다.
우아함과 발전된 문화를 만들어온 우리의 고대국가 백제. 660년에 신라에 의해 멸망하면서 잊혀진 역사가 됐다. 하지만 현재는 익산부여공주에서 옛 도읍지 터 및 유물들이 오랜기간 발굴, 조사되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백제는 크게 초창기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한 한성도읍기(기원전 18기원후 475), 웅진도읍기(475538), 사비도읍기(538660)로 시기를 구분한다. 현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웅진도읍기와 사비도읍기의 흔적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백제세계문화유산센터이 이러한 백제문화유산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지난 9일과 10일 익산, 부여, 공주에서 진행한 백제세계문화유산기행을 동행 취재했다. 백제유적의 현 상황과 함께 익산 백제유적의 앞으로 과제를 짚어본다. △웅진백제의 숨결 공주 연수의 첫 장소는 충남 공주시에 있는 공산성이었다. 현 공산성은 백제의 두 번째 도읍지인 웅진 백제의 심장이라 할 수 있다. 총 연장 2660m의 고대 성곽으로 해발 110m의 능선에 위치한 공산성은 475년 백제가 고구려에게 한성이 함락되고 난 후 급하게 시절에 도읍지로 삼았던 곳이기 때문에 산세가 험하다. 공산성의 현 입구는 서쪽문으로 당초 흔적조차 찾기 어려워 1993년에 고증을 거쳐 복원된 상태였다. 성벽을 따라 5분정도 이동하면 공산정이라는 정자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금강과 공주의 전경을 볼 수 있는 명소이기도 하다. 과거 백제시대에는 이곳이 적군의 침입을 살피는 망루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공산성의 중심부에는 왕궁터로 추정되는 공간이 있다. 현재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공주의 또 다른 백제문화유산은 송산리 고분군 유적이다. 이 곳에는 웅진백제의 태평성대를 이룩한 무령왕과 왕비의 능, 즉 무령왕릉이 있는 곳인데 현재는 폐쇄된 상태다. 과거에는 일반인에게도 관람이 허용됐지만 훼손이 우려돼 현재는 모형으로 고분군 전시장에서만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무왕의 염원이 담긴 익산 익산은 무왕의 꿈이 담긴 도시다. 강력한 왕권을 꿈꾸며 익산 천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 중 하나가 미륵사지다. 용화산(해발 342m) 밑에 조성된 탁 트인 미륵사지(터)의 위용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삼국유사>는 백제 무왕(재위 600~641)이 부인(선화공주)와 함께용화산 밑의 큰 못가에 이르니부인이 이곳에 큰 절을 지어달라고 해서 하룻밤 사이에 전과 탑과 낭무를 각각 세 곳에 세우고, 절 이름을 미륵사라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삼국유사>의 기록이 얼마나 정확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도 미륵사터에는 3금당 3탑의 형태, 즉 서탑(2019년 원형 복원국보 제11호)+금당, 중앙탑(목탑 터만 남음)+금당, 동탑(1993년 모조탑으로 복원)+금당 등의 흔적이 잘 남아있다. 또 다른 익산의 유적으로는 왕궁리 유적이 있다. 그 넓이는 백제문화유적지 중 가히 최고이며, 목적이 가장 분명한 왕궁터로 많은이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특히 이곳에는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이 무왕을 기리기 위해 제작한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이 있다. △백제의 마지막 희망 부여 부여는 백제의 마지막을 함께한 도시다. 사비백제의 중심지로 이 곳에는 많은 백제유적지가 남아있다. 부여의 가장 대표적인 사찰은 정림사지다. 정림사지는 부여의 한 가운데 위치한 사찰터로, 도심에 세워진 사찰 중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그 크기가 비록 크지 않지만 소박하지만 정갈한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높이 5.62m의 석불인 석조여래좌상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또 중문탑금당강당이 남북 자오선상에 일직선으로 놓이고 강당 좌우의 부속건물과 중문을 연결하는 회랑이 둘러싸고 있는 일탑식가람 배치로 백제 가람배치의 전형적인 공간으로 평가되고 있다. 부여는 백제의 마지막을 알 수 있는 삼천궁녀의 이야기가 담긴 낙화암도 있다. 의자왕의 후궁들이 차라리 죽을지언정 남의 손에 죽지 않겠다며 이곳에 와서 강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절벽 아래에는 빨간글씨로 落花岩(낙화암)이라 써있는데 이 글씨는 조선시대 우암 송시열이 삼천 궁녀들이 떨어지면서 바위에 부딛혀 피로 물들지 않았겠냐는 상상을 통해 빨간 글씨로 새겼다고 한다.
소박하지만 보편적 교육기관을 자처한 무성서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지 1주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를 활용한 콘텐츠는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현재 정읍 무성서원은 체험형 콘텐츠가 대부분이다. 초중고 및 대학생과 유학생 등을 대상으로 무성서원, 예(禮)에서 놀다라는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이 프로그램은 30명의 참여자를 미리 신청받아 예절과 다례, 사자소학 등을 배우고 체험하는 1박 2일 서원 스테이 프로그램이다. 또 서원의 풍류를 이어가기 위한 강연과 연주프로그램, 문화답사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지만, 시각적인 콘텐츠 발굴에는 매우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정읍의 무성서원 곳곳에 굳건히 닫혀있는 작은 공간들을 활용해 옛 서원의 모습 등을 디지털을 접목해 보여주는 것도 한 개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개관을 앞두고 있는 전라감영의 경우 선화당 내부에 최첨단 ICT(정보통신기술) 기술을 접목한 콘텐츠를 개발해 구한말 미국 공사대리였던 조지 클레이튼 포크 중위의 사진자료대로 재현했다. 단순한 건축물 복원을 넘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을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겠다는 의지가 돋보인 대목이다. 정읍시 관계자는 여럿 콘텐츠 개발을 고민하고 있다면서 VR콘텐츠 같은 것을 활용해 상시적 시각적인 효과를 강화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꾸준한 연구를 통한 지역 박물관과 미술관을 연계한 문화콘텐츠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김성희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는 양질의 문화 콘텐츠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무성서원에 대한 연구 성과가 두텁게 축척해 총서를 지속적으로 간행해야 한다면서 이를 기반으로 박물관전시관교육관 등 서비스 인프라의 구축이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학수 한국학중양연구원 교수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인문학강좌, 한문전문가 양성 등을 목표로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설계해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도 제안했다. 도시재생을 통한 관광객의 유입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안도 제안됐다. 이규철 한국외대 KB연구교수는 지역의 역사문화자원 답사를 역사학자들의 학술답사 수준의 코스가 아닌 관광객들의 트렌드에 맞춰야 한다면서 무성서원 인근의 맛집과 쇼핑이 가능한 코스 배치가 이뤄져야 하며, 이는 인근 마을을 개발하는 도시재생을 통해 소재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무성서원 인근의 역사유적지를 더불어 전주, 익산 등 인접도시와도 역사문화자원을 연계하는 프로그램 개발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끝>
지난해 7월 6일,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무성서원을 포함한 한국의 9개 서원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무성서원이 대한민국 문화재를 넘어 세계의 문화유신이 된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1주년을 맞은 무성서원의 현 모습과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2번에 걸쳐 살펴본다. 정읍 칠보에 위치한 무성서원은 마을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서원 입구의 오른쪽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비석이 서 있고, 기존 하얀 비석은 왼쪽으로 옮겨졌다. 풍화작용으로 희미해진 비석에는 領相李最應不忘碑(영상이최응불망비)라고 적혀 있다. 무성서원의 가치를 나타내는 비석 중 하나다. 이 비석은 1882년 고종 19년에 세워진 것으로, 당시 흥선대원군인 이하응의 형인 이최응이 하사했다. 당시 영의정이었던 이최응의 하사품이다. 1868년(고종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정책이 펼쳐질 당시 살아남았던 원동력 중 하나였다. 정문인 현가루(絃歌樓)를 지나자 트인 마당에 옛 유생들이 공부했던 공간인 강학영역이 보였다. 강학영역에 위치한 건물은 강당이라 불리는데 양 옆에 방이 존재하고 앞뒤가 트인 마루가 있었다. 이 강당의 건축에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었다. 강당 앞 마당은 왼쪽이 높고 오른쪽이 낮았다. 하지만 강당을 지탱하는 축대를 왼쪽은 낮고 오른쪽은 높게 만들어 수평을 이루도록 지어졌다. 1500년 전에 선조들의 지혜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강당 뒤에는 또 하나의 문이 보였다. 바로 재향영역으로 들어가는 내삼문(內三門)이었다. 내삼문을 들어가자 천장은 매우 낮았다. 이는 자신들이 모시는 재향공간으로 들어올 때 자연스레 예를 갖출 수 있도록 고개를 숙이도록 지어졌다. 내삼문을 지나자 최치원의 초상를 모신 태산사(泰山祠)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태산사의 문을 열자 그 안에 최치원의 초상화가 북쪽 벽에, 눌암 송세림, 영천자 신잠, 명천 김관이 왼쪽에, 불우헌 정극인, 묵재 정언충, 성재 김약묵의 위패(位牌)가 오른쪽에 봉안되어있다. 태산사는 일년에 두 번 그 문이 열리는데 이들에 대한 제사를 지낼 때만 열린다고 한다. 강당 마당 오른쪽 문을 통과하면 유생들의 숙소인 강수재(講修齋)가 있었다. 무성서원의 또 다른 아름다움은 현가루와 강당, 내삼문, 태산사가 모두 일직선으로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다. 보통 한국의 서원은 재향공간을 왼쪽켠에 높게 위치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런 무성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첫 번째는 무성서원에 안치된 최치원이란 인물덕이다. 타 서원에는 조선시대의 성리학자를 모셨지만 최치원은 통일신라시대 사람이다. 당시 신라의 신분제인 골품제에서 6두품(六頭品)출신의 지식인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또 다른 부분은 마을 한 가운데 존재했다는 점이다. 무성서원은 교육의 기관이 아닌 마을 사람들과 소통을 하는 역할도 했던 셈이다. 적자들만의 교육기관 즉 엘리트 교육기관이 아닌 학문을 원하는 자면 누구나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받아줬던 보편적인 교육기관을 자처했다는 점이 높게 평가된 것이다. 이흥재 무성서원 부원장은 무성서원은 일반 서원과는 다르게 마을 한 가운데에 존재해 교육을 도맡을 뿐아니라 소통의 공간이었다면서 건축의 양식 또한 자연의 섭리를 거스리지 않고 꾸미지 않은 성리학 그 본연에 바탕을 둔 서원이라고 강조했다.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원장 김연수)은 무형유산 예능 분야 전승자의 역량을 강화하고 전승 활성화 기반 조성을 위한 2020 무형유산 예능풍류방(레지던시) 결과를 발표한다. 2020 무형유산 예능풍류방(레지던시)은 지난 2월부터 6월까지 추진해왔다. 결과는 8일 오후 7시 30분, 15일 오후 7시 30분, 25일 오후 4시에 국립무형유산원 공연장(전라북도 전주시 소재)에서 공연으로 발표한다. 무형유산 예능풍류방(레지던시)는 국립무형유산원에서 기획한 예능 분야 전승자를 대상으로 하는 국립무형유산원 입주 활동 프로그램이다. 여러 지역에 흩어져서 각자 활동하고 있는 서로 다른 종목의 무형문화재 전승자들 4명이 국립무형유산원에 한데 모여 5개월간 각자의 기량을 재점검했다. 참여자들이 상호 교류하며 새로운 공연물을 창작하는 것이 이 사업의 중요한 목적이다. 이를 계기로 전승자들이 무형유산을 새롭게 바라보는 역량도 높였다. 이 프로그램의 성공적 결과물을 도출하기 위해서 공연기획 분야 등 분야별 전문가의 도움도 얻었다. 서로 다른 종목의 전승자가 협업하여 결과물을 도출하는 것은 무형유산의 전승 현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도전이다. 각자의 전공 분야에 대해 서로 학습하며 타 장르에 대한 안목을 공유하고, 이해를 바탕으로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무형유산 기반의 창작물을 만들었다. 이번 프로젝트의 결과물은 첫발을 딛다라는 주제로 공연된다. 2020년 예능풍류방에 참여한 △신희라(국가무형문화재 제13호 강릉단오제 이수자) △조현일(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이수자) △김연정(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이수자) △김태호(국가무형문화재 제73호 가산오광대 이수자)가 무형유산의 본질적 가치에 중점을 두고 제작한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공연은 사전예약으로 운영되며, 국립무형유산원 누리집(www.nihc.go.kr)과 전화(063-280-1500, 1501)로 예약할 수 있다. 전석 무료로 진행되며, 더 자세한 사항은 국립무형유산원 누리집을 참고하거나, 전화로 문의하면 된다.
어진(御眞) 화가로 유명한 석지(石芝) 채용신 선생이 그린 칠광도(七狂圖)를 국가 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북연구원(원장 김선기)은 무성서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1주년을 맞아 110년 전 무성서원을 품은 칠광도, 보물지정을 위한 도약이라는 이슈브리핑(226호)을 통해 칠광도의 역사적 가치를 검토하고, 국가지정 문화재로 추진하는 방향을 제안했다. 연구책임인 박정민 박사는 칠광도의 작가는 어진(御眞) 화가로 유명한 석지(石芝) 채용신(蔡龍臣)으로, 최근 밝혀진 칠광도의 사실적 작풍과 역사적 의미를 보았을 때 1910년 당시의 무성서원과 그 일대를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성서원의 고유한 특성을 잘 보여주는 칠광도는 역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당대 향촌 사회의 모습을 구현한 귀중한 자료로 충분히 국가 문화재로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다는 평가다. 또한, 유네스코에 등재된 9개 서원 가운데 조선시대 서원을 그린 그림은 도산서원과 무성서원뿐이다. 도산서원과 관련된 그림은 보물 제522호의 도산서원도(陶山書院圖)와 천원 신권의 배경으로 유명한 보물 제585호의 퇴우이선생진적(退尤李先生眞蹟)에 포함된 계상정거도( 溪上靜居圖)가 있다. 반면 그동안 무성서원이 그려진 칠광도는 문화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전북연구원은 보물로 승격하기 위한 추진체계를 밟고 무성서원의 역사적 가치를 재확립하는 자료로 위상을 확보하여 각종 사업의 기초자료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옛 선비들이 호연지기를 기르던 아름다운 우리의 문화유산 서원의 진면목을 만나볼 수 있는 뜻깊은 전시가 전주에 마련됐다. 국립전주박물관(관장 천진기)과 (재)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이사장 이배용)이 한국의 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1주년을 기념해 9개 서원 및 주요 박물관의 중요 문화재를 한 자리에 모은 것. 30일 국립전주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서원, 어진 이를 높이고 선비를 기르다를 주제로 문을 연 특별전은 오는 8월 30일까지 두 달간 이어진다. 조선시대 대표 교육기관인 서원을 중심으로 조선시대를 이끈 지도자인 선비의 정신을 살펴보고 세계유산으로서 서원의 가치와 우수성을 살펴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학문 공동체를 키워 이상적인 인재를 키우고, 지역문화발전을 위한 공론의 장을 만들었던 서원은 조선 선비문화의 핵심을 간직한 공간이다. 이번 전시 기획을 담당한 이기현 학예연구사는 서원은 조선시대 지성의 요람이자 성리학 발전의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각 지역의 교육과 문화, 여론의 구심점이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안향초상(국보 제111호, 소수박물관 소장) △송시열 초상(국보 제239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계상정거도(보물 제585호, 삼성미술관 리움) 등 국보 2건과 보물 19건 등의 중요 유물도 만나볼 수 있다. 더불어 국가가 서원에 내린 사액현판을 비롯해 각 서원에서 모신 대표 유학자의 초상과 그들의 정신이 담겨있는 유품도 주요 전시물 중 하나. 서원 입학과 교육과정, 후배 선비들이 서원을 방문해 남긴 그림과 글, 책과 책판을 보관한 서원의 보물창고 장판각을 돌아보며 만인의 뜻을 모아 왕에게 전달한 선비들의 사회 참여 정신을 만인소에서 읽어볼 수 있다. 또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서원의 제향 의례를 조명하는 등 서원과 선비에 관한 종합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서원은 학문에 힘쓰기 위해 세웠지만 덕(德)을 높이고 공에 보답하는 제향(祭享)도 함께 거행한다. 반드시 지역의 스승 중에서 후학(後學)들이 본보기로 삼을 사람을 모시어 사당을 세우고 공경을 다함으로써, 많은 선비들이 현인(賢人)을 따르기 바라는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율곡선생집> 권13, 이이 도봉서원기 中) 천진기 국립전주박물관 관장은 본보기를 삼고 공경을 다하며 현인을 따르는 마음이야말로 서원에 담긴 선비정신의 핵심이라며 전국 곳곳에 있는 서원을 이곳에 다 옮겨다놓을 수 없으니 각 건물의 속살인 현판을 빌려왔다. 이번 전시를 통해 선비의 고장인 전주에서 서원과 조선 선비의 모든 것을 만나보시라고 강조했다.
우려가 현실로?…전북도의회, 전북문화관광재단 예산 대폭 삭감 '논란'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전북일보 신춘문예를 소개합니다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지역을 넘어 대한민국의 문학 이끄는 '전북일보 신춘문예' 출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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