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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다종교 '아시아 화합 기폭제'

올해 초 순창군 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으로 부임했다. 전 부임지 남원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다문화업무를 봐 왔던 터에 법인의 인사방침에 의해 순창군으로 옮겨온 것이다. 순창군센터는 개신교 법인에서 3년간을 운영해 오다가 작년에 원불교 산하 법인으로 운영주체가 옮겨졌다. 덕분에 직원들의 종교성향이 다양하다. 개신교와 천주교, 불교, 원불교를 신앙하는 직원들이 함께 다문화라는 공동 목적지를 향해 올곧게 노력하는 것이다. 사실 다문화와 다종교는 한 의미이다. 인류역사에서 종교를 배제하고 다양한 문화를 논할 수 없는 것이다. 일례로 한국의 문화를 보면 불교와 유교, 그리고 근현대사 문화재로 등록되는 천주교와 개신교 건축물이 상당수에 이른다. 유교의 합리주의에 바탕한 불교, 천주교, 개신교가 한집안에서 사이좋게 공존하는 것이다. 이런 점은 외국에서는 사례를 찾을 수 없어 미국 국무성이 다종교 화합국 연구로 한국을 주목할 정도란다. 필자가 근무하는 순창군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센터장실에는 일원상과 십자가가 함께 모셔져 있다. 처음에는 일원상만 걸었었는데 직원들이 어려워하는 것 같아 베트남에 갔을 때 어렵게 구해온 나무십자가를 함께 걸었다. 일원상을 위로 하고 그 밑에 십자가를 모셨는데 교회에 다니는 직원이 눈치를 주어서 십자가를 위로 하고 일원상을 밑으로 하니 이번에는 원불교 직원이 센터장님 정체성이 의심된다고 되레 눈치를 주어 할 수 없이 수평으로 하여 모셔놓았다. 그 밑에는 역시 중국, 베트남과 일본, 캄보디아에서 모셔온 성모마리아, 부처님 등 종교의 상징물들을 안치하고 인류 성현들의 뜻을 받드는 기도를 올리고 있다. 원불교에서는 1년에 재사를 두 번 올린다. 육일대재와 명절대재가 그것이다. 육일대재는 원불교 교조이신 소태산 대종사의 열반기일을 맞아 합동으로 모든 선진열위전에 공동으로 향례를 올리고 명절대재는 한 해 동안 조상님들의 은덕으로 오곡백과를 풍성하게 거두고 건강하게 잘 살게 되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추수감사절의 성격이다. 그런데 두 번의 재사에서 이 세상의 정신사를 열어주었던 모든 종교 스승님들(선성각위 - 先聖各位)의 위패를 모시고 예를 올린다. 불교와 유교, 천주교, 개신교, 천도교, 증산교 등 자비와 인의, 사랑, 박애, 은혜를 전해준 모든 성자들의 뜻을 받들고 정신을 이어받아 이 땅에 낙원세상을 건설하자는 것이 원불교 문을 열게 된 동기이다.원불교의 2대 종법사를 역임했던 정산 송규(1900~1962)는 삼동윤리(三同倫理)라는 게송을 남겼다. 한울안 한이치에 한집안 한권속이 한일터 한일꾼으로 일원세계를 건설하자는 내용이다. 삼동윤리에 바탕한 원불교의 복지사업은 지구촌의 무지와 질병과 빈곤을 물리치는 일을 벌이고 있다. 다문화가족지원사업도 예외가 아니어서 아시아 각국의 이주여성들이 한국어와 한국문화적응교육을 받고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더불어 이주여성들이 한국의 문화를 배우는 피동적인 관계가 아니라 이제는 자신들의 나라 언어와 문화를 가르치는 적극적인 관계설정을 하고 있다. 참 고무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 속에 다문화 다종교가 21세기 대한민국을 정신사적으로 선진국 반열에 올리고 아시아가 함께 대동화합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다문화센터를 운영하는 관계로 아시아권 외국에 곧잘 나간다. 일본을 제외한 동아시아들은 우리보다 소득수준이 열악하다. 하지만 제국주의 식민지 시절을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나라는 해방 후 6·25 전쟁을 겪는 아픔 속에 유엔에서 원조를 얻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첫 번째 나라이다. 그만큼 한국인들은 부지런하고 머리 좋고 열정적이다. 다문화 다종교를 좌우 날개로 삼아 한국을 정신의 지도국 도덕의 부모국으로 자리매김 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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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1.12 23:02

목사님은 행복하세요?

재수해서 대학입학을 하게 된 친지의 딸이 엄마 왜 이렇게 인생이 힘들어하더란다. 원하는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서울에 가서 1년 동안 학원에서 공부하고 고시원에서 지냈으니 어련할까?부모 품에서 공부만 하다가 낯설고 물선 곳에서 밥해 먹으며 공부하랴, 빨래하랴 힘도 들었으리라. 더구나 원하는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아서 차선에 만족해야 했으니 어찌 힘들지 않았을까? 하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이라면 몰라도 그래도 공부가 가장 쉬운 일이거늘, 어찌 보면 더 힘든 일들을 이겨내도록 입시전쟁을 통해서 우리 자녀들을 연단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래도 그때는 그것이 가장 힘든 일이리라.언젠가 헬스장 샤워실에서 한 수험생을 만났던 기억이 있다. 반갑게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그 학생이 내게 "목사님은 행복하세요?" 라고 물었다. 나는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그 의도를 파악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다시 물었다. "왜 행복하지 않니? "나의 질문에 "아니, 그런 것은 아닌데요…." 라고 대답을 시작한 아이는 "목사님을 뵈면 늘 행복하고 여유가 있게 보여서요"라고 대답했다. 곧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입시문제로 지금 마음이 편치 못하구나, 그래서 목사인 나에게 행복하냐는 물음으로 마음 한 자락을 보여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대답했다.그럼 믿음으로 사니까 늘 행복하지. 하나님을 믿고 산다는 것은 우리의 염려와 걱정과 근심을 다 맡기고 사는 것이기 때문에 혹 세상에서 힘들고 고달프고 실패했다 해도 좋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드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시리라 믿기에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거야! 그러니 입시나 다른 세상사가 네 뜻대로 되지 않아도 믿음으로 살면 행복하고 넉넉하게 살 수 있을 거야! 힘내라 화이팅!그 아이가 나간 후 나는 새삼스럽게 믿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과연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믿음이 무엇이길래 사람의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고, 생명과 사망으로 갈라놓기도 하는 것일까? 한 사람의 인생을 여유롭게 만들기도 하고 쫓기게 살게도 하는 것일까?성경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라고 단순하게 정의한다. 쉬운 성경은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대해서 확신하는 것입니다. 또 한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이 사실임을 아는 것입니다 라고 해석한다.비록 눈에는 안 보이시지만 좋으신 하나님께서 내 곁에 계시고 나를 선한 길로 인도하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거늘 어찌 행복하지 않으리?어찌 여유롭게 살 수 없을까?좋으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세상의 염려와 걱정과 근심을 혼자 지고 끙끙대는 것은 불신이리라.오늘 지면을 통해 부족하나마 나의 종교 칼럼을 본 독자들에게 묻고 싶다.지금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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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1.05 23:02

WCC는 세계 교회의 신앙축제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WCC)는 성경에 따라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이며 구주로 고백하며, 성부,성자,성령의 영광을 위하여 공동의 소명을 함께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교회들의 교제이다. 그러므로 WCC는 세계교회협의회에 영어 이니셜이다.세계교회협의회(WCC)는 세계의 흩어진 모든 교회의 일치를 도모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대표적인 기구이다. 에큐메니칼은(Ecumenical)은 헬라어 오이쿠메네(Oikoumene)에서 시작됐으며 뜻은 "하나님의 집에 살고 있는 모든 식구들" 즉 하나님의 권속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태초에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풍성한 생명을 주시고 번성하며 살라고 하셨다. 창조후 하나님은 보기에 좋다고 하셨고, 사람을 지으시고 매우 좋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집 이름을 기쁨이란 뜻인 에덴으로 지으셨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조화로운 세계가 깨어졌는데 이 깨어진 하나님의 한 세계를 회복하는 것이 곧 에큐메니칼 운동이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에큐메니칼 운동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됨을 목적으로 하는 교회의 본질에 속하는 개념이다. 교회의 일치와 연합, 이를 통한 선교의 의미를 담고 있는 에큐메니칼 운동이 구체적으로 진행된 것은 바로 세계교회협의회(WCC)를 통해서이다. 지금의 WCC는 1910년 스코틀랜드에서 열린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에서 태동되었고 194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전세계 150여개 교단들이 참석한 가운데 세계교회협의회가 창설되었던 것이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전세계 140개국의 349개 회원교회 약 5억8000만 그리스도인들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기독교 협의회로서 세계에서 가장 폭넓고 포괄적인 에큐메니칼 기구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과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 성공회가 회원 교회로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다. 특히 WCC가 말하는 일치란 거대한 하나의 교회를 만드는 구조적인 일치가 아니라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삶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일치라고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일치는 기본적으로 교회가 온전한 교회가 되는것(being the Church) 이다. 그것은 바로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리고, 모든 교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하게 하는 일이다. 쉽게 말씀드리면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게 하는 일치이다. 이를 통해 교리와 질서, 그리고 삶에서 나타나는 차이점과 반대되는 견해들을 상대화 시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강화시킴으로써 차이점과 반대 견해들을 줄여 나가는 것이 일치의 중심인 것이다. 이처럼 소중한 세계교회협의회(WCC)제10차 총회가 30일부터 11월 8일까지 대한민국 부산에서 열린다. WCC 총회는 7년 혹은 8년마다 한번씩 열리며 세계의 다양한 전통의 교회들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이 시대의 공동의 선교적 사명을 분별하고, 공동의 증언과 공동의 봉사의 과제를 설정하는 전세계 교회들의 신앙 축제이다. WCC제10차 부산 총회는 1961년 인도 뉴델리 총회 이후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개최되는 총회다. 313년 로마에서 시작된 서구 중심의 기독교가 2013년 대한민국 부산에서 개최됨으로 복음이 동아시아 중심인 우리나라에서 21세기 새역사를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이며 한국교회의 위상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해방이후 세계에서 경이적인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를 꽃피운 나라 선교를 받은 나라에서 세계 제2의 선교대국으로 발전하여 세계에서 선교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발전하였다. 이번 WCC제10차 총회는 한국교회의 영성, 선교의 열정, 새벽기도회, 금요철야기도회, 섬김과 나눔의 경험을 세계 교회와 나눌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뿐만아니라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우리나라의 평화와 통일이 남한과 북한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세계 교회가 함께 기도하고 함께 이루어가야 하는 공동의 신앙과 제임을 확인하는 장이 되기도 할것이다.WCC총회가 전세계 기독교인들의 축제일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과 국격을 높일 수 있고 국제신인도를 향상시킬수 있는 국제적 행사이기도 하다. WCC제10차총회는 한국교회가 세계교회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며 축복이다. 이를 위하여 한국 교회는 일치와 화합, 섬김과 봉사의 마음으로 성공적인 총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 협력해야 할 것이다.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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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29 23:02

금산사 개산대재·성우 주지스님 취임식 열려

금산사 창건 1414년 기념식 겸 제15대 주지 취임식이 지난 26일 금산사에서 2000여명의 사부대중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행사는 역대 조사스님들의 뜻을 기리는 다례제를 시작으로 부도전 참배, 창건1414주년 기념식, 17교구 본말사 신도 합동 보살계수계식, 만등불사 순으로 진행됐다.성우스님은 주지 취임사를 통해 "역사는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교량이다. 과거가 없는 현재는 없고 현재가 없는 미래는 상상할 수 없다"며, "대한민국의 역사와 항상 함께하셨던 조사 스님, 태공 월주 대종사님, 그리고 선배 주지 스님께서 걸어갔던 길을 따라 오늘 새로 내딛는 길이 험난하고 외롭더라도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정신으로 감내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금산사 조실 월주스님은 개산대재 법어에서 "함께 나누고 서로 위할 줄 아는 자비정신이 성숙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게 될 것 이다"며, "개산대재와 금산사 신임주지 취임식에 함께하신 모든 이들의 발심 정진이 대한민국과 온 우주의 상생, 정토, 복지, 평화를 실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불국사 주지 성타스님, 통도사주지 원명스님, 강현욱 전 전북도지사, 최규성유성엽 국회의원, 조배숙 전 국회의원, 송하진 전주시장, 이건식 김제시장, 문동신 군산시장, 박성일 전북도 행정부지사, 유광찬 전주교대 총장 등이 참석해 축하했다.

  • 종교
  • 김원용
  • 2013.10.29 23:02

생수의 강

어느 병원 응급실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새벽에 환자가 급히 실려 왔습니다. 당직 의사가 살펴보았는데, 심장마비로 이미 죽은 후였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시신을 수습하려고하는데 좀 이상하였습니다. 오른 손은 펴고 있는데, 왼손은 꽉 쥐고 있었습니다. 대개 죽으면 손을 펴잖아요. 그래서 왼손을 펴주는데, 손 안에서 뭔가 툭 떨어집니다. 의사가 자기도 모르게 말했습니다. 어! 삼팔 광땡이네! 사연인즉슨 이랬습니다.밤새 화투를 치는데 계속 잃었습니다. 얼마나 속이 상했겠습니까? 그런데 밤을 새고 끝 무렵에 판돈이 수북하게 쌓였는데 화투를 받고 펴 보니까 삼팔 광 땡인 겁니다. 너무 마음이 벅차올라 그만 심장 마비를 일으킨 겁니다.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살아가지 않습니까? 세상에서 삼팔광땡 잡아보려고 기를 씁니다. 못 잡으면 못 잡는 대로 속상해 하고, 잡으면 잡는 대로 허무하게 떠나는 게 세상의 모습 아닌가요?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나 심령에 흐르는 생수의 강으로 인생의 참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토니 에반스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하루는 침실 벽에 균열이 생긴 것을 발견 했습니다. 그는 기술자를 불러 고치게 했습니다. 시멘트 몰타르 바르고 그 위에 다시 페인트를 칠했습니다. 그런데 몇 달 뒤 보니까 다시 갈라졌습니다. 다시 기술자를 불러 고치게 했습니다. 시멘트 몰타르 갈라진 틈을 메우고 그 위에 페인트칠을 했습니다. 완벽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며칠 뒤에 보니 다시 균열이 갔습니다. 그때 기술자가 하는 말이 "주인님, 이것은 벽의 문제가 아닙니다. 집의 기초가 문제가 있습니다. 기초가 문제가 있어 벽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집을 헐고 다시 짓기 전에는 이 벽을 고칠 수가 없습니다."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겉으로 선하게 보이려고 애를 써도 우리 인간은 기초가 되는 본선에는 죄의 품성을 갖고 있어서 선함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본성과 사회구조 속에 이미 죄가 창궐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죄를 짓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미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이기 때문에 사탄이 유혹하고 침투시키는 죄를 막을 길이 없어 스스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에 의해서만 구원의 길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선함이나 노력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의한 용서를 받아드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영화 「벤허」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벤허는 류 월리스의 소설인데 영화화 된 겁니다. 월리스는 본래 미국의 남북 전쟁 당시 북군의 장군 출신입니다. 하나님을 부정하던 무신론자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을 공박하려고 성경을 연구하다 뒤집어졌습니다. 무릎 끓고 예수님을 향해 고백했습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여! 그 후 이 소설을 쓴 겁니다. 그래서 부제가 아예 '그리스도의 이야기'입니다. 벤허는 유대인 귀족이었는데, 애매하게 노예로 끌려가고 인생이 꼬입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누이도 감옥에 갇혔다가 나병에 걸렸죠. 그런데 마지막 예수님이 운명하실 때 하늘에서 비가 쏟아집니다. 그 비를 맞으며 어머니와 누이가 나병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벤허는 쌓이고 쌓였던 원한이 사라짐을 경험합니다. 그 비가 흐르고 흘러 시내가 되고 큰 강을 이룹니다. 이게 바로 생수의 강입니다. 이 생수의 강이 내 심령에서부터 가정으로 직장으로 사회로 나라로 세계로 흘러넘치게 해야합니다. 이게 먼저 경험한 성도들의 사명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사막화된 세상에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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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22 23:02

욕심

빈대 네 마리가 살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네 몸집이 너무 작은 게 항상 불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이 빈대들에게 새해 소원을 각각 물어보았습니다. 먼저 첫 번째 빈대에게 물었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네, 저는 몸집이 너무 작아 힘이 약합니다. 그래서 힘이 센 소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 그럼 소가 되어라." 그러자 빈대는 소원대로 소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빈대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무엇이 되고 싶으냐?" "네, 저는 하늘을 나는 새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 그럼 너는 새가 되렴." 두 번째 빈대도 소원대로 새가 되었습니다. 세 번째 빈대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무엇이 되고 싶으냐?" "네, 저는 배고픈 건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굶지 않고 매일 음식을 뒤져 먹을 수 있는 쥐가 되게 해주세요." "그래? 그럼 너는 쥐가 되거라." 세 번째 빈대 역시 소원대로 쥐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빈대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무엇이 되고 싶으냐?" 이 때 네 번째 빈대가 슬그머니 욕심이 생겼습니다. '어차피 원하는 대로 다 받는다면 실컷 구해보자.' 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소처럼 힘도 세고요, 새처럼 하늘도 날고요, 쥐처럼 굶지도 않는 그런 것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빙긋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그럼 네 소원대로 '소새쥐'가 되어라." 그런데 이 세상에는 '소새쥐'라는 동물이 없었기 때문에 그만 그 이름과 가장 비슷한 소시지가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빈대도 낯짝이 있지!"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이 빈대는 너무 뻔뻔하게 욕심을 부리다가 낭패를 보고 말았습니다. 무엇이든 과욕을 부리면 그 때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만 해도 그렇습니다. 음식은 우리가 한 생을 살아가는 동안 꼭 필요한 것입니다. 음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음식이 아무리 좋고 필요하다 해도 적당히 먹어야 유익합니다. 욕심을 부려서 자꾸 과식하면 위장에 부담을 주고 결국에는 탈이 나게 마련입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이 땅의 동물 중에서 위장병으로 고생하는 동물은 사람뿐이라고 합니다. 개나 돼지가 위장병에 걸렸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오직 사람만이 식탐을 하고 그 결과 위장병을 얻습니다. 이는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은 우리가 한 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합니다. 돈이 있어야 양식을 얻고, 돈이 있어야 편안하게 살고, 돈이 있어야 온갖 혜택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대로 돈을 많이 벌면 좋습니다. 많이 저축해 놓으면 좋습니다. 그러나 돈이 아무리 위력이 있고 좋다 해도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 문제가 됩니다. 돈에 대한 탐욕은 돈을 우상으로 만들고, 범죄하게 만듭니다. 사람에게서 인간미를 빼앗아가고, 삶의 목적을 상실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인간을 파멸로 몰아갑니다. 그러므로 돈이 좋을지라도 지나친 욕심은 금물입니다. 신약성경 누가복음 12장에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밭에서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되었는데 그것이 고민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다다가 마침내 결론을 내렸습니다.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지은 다음에 내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두자." 그리고서 자기 자신을 향해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나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날 밤에 이 사람의 영혼을 도로 가져가셨습니다. 결국 그가 애써 모아놓은 재물은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되고, 그는 헛수고의 인생을 살다간 인물이 되었습니다. 소유에 대한 지나친 욕심의 종착점은 비극이요, 실패입니다. 인류 역사상 한 번도 승리를 가져다 준 적이 없습니다. 인생의 참된 가치는 소유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철학자 '에릭 프롬'은 '무엇이 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무엇을 가졌느냐?'가 인생의 승패를 좌우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한 오늘의 시대 속에서 우리 스스로 던져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지금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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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15 23:02

공감을 얻으려면

성경 잠언에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다"고 했다. 지혜로운자는 신중하게 말하고 신중하게 일을 처리함으로 공감을 얻지만 신주하지 못하면 공감을 얻을 수 없다. 똑똑한 바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때 강력한 힘을 자랑했던 사자가 늙고 병들어 배고픔에 허덕인 체 새끼양을 뒤쫓고 있었다. 있는 힘을 다해 추격했지만 새끼양은 사자를 비웃듯이 자유자재로 도망쳤다. 굶주린 사자는 먹이를 구할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리고 자기가 갇혀서 죽게 되었으니 동물들이 방문해 주었으면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다고 말을 퍼뜨렸다. 그러나 찾아오는 동물들이 없었다. 그런데 여우 한 마리가 찾아왔다. 나무 틈사이로 천천히 엿보고 있는데 사자가 그 모습을 보고 "어서 내게로 가까이 오게, 이리와서 나를 위로해 주게나" 그때 여우가 "사자님의 말은 믿을 수가 없어요 평소에 저희들에게 신뢰를 주지 않았고 신중하지 못함을 알고 있으니까요" 사자는 굶어 죽었다는 것이다. 공감을 얻지 못한 말은 군중을 움직일 수 없다. 자신의 잘못된 가치관과 부정적 시각의 말은 공감을 얻을 수 없다. 기존의 질서와 규범, 전통과 양식, 방법과 생활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비판적인 말은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주장과 생각, 의견과 논설에 대한 공감을 얻기를 바란다. 공감을 얻고,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희망이다.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 속에서 항상 있어야 할 공감은 사람됨의 소중한 윤리이며, 가치이며, 힘인 것이다. 공동체 속에서 공감은 자신의 신뢰를 돈돈히 하는데서 나오며 존경과 사랑을 실현하는데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눈으로 타인을 보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입장에서 타인을 평가하는 것도 아니다. 타인의 입장에서 살펴보고 생각하는 태도가 진정성을 가질 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공동체에서 자신의 의견과 뜻을 공감시키려면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식할 뿐만 아니라 그 삶의 방식과 의견과 감정과 주장을 더 깊이 이해하며 존중해야 한다. 공감을 얻는다는 것이 우리 안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공감의 인격을 향상 시키는 노력을 기울려야 하고 지속적인 수련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공감을 얻으려면 다른 사람의 곤경과 실패, 아픔과 역경, 갈등과 반목에 대한 이해와 사랑, 관심과 위로, 희망과 용기의 말로 북돋아 줄 수 있을 때 얻어지는 것이다. 공감을 얻으려면 배타적이 아니라 보완적이여야 하고, 이기적인 아니라 이타적이여야 하며, 소유적이 아니라 공유적이여야 하고, 분열이 아니라 일치를 이루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비난이 아니라 존중함으로 나아가야 하며, 비협력적이 아니라 협력적이여야 하고, 관망이 아니라 참여적이여야 하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려 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자신이 좀 더 희생적일 때에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다. 공감을 얻으려면 내가 남에게 기대한 만큼 남도 나에게 기대하고 있음을 깨닫고 희생과 헌신의 마음으로 존중히 여기고 배려할 때에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공감을 얻어야 질서가 확립되고 협력적 미래 비젼도 실현할 수 있다. 신앙 공동체에서의 성공적인 사역을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공감을 얻는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공감은 신앙 공동체를 구성하는 교우들에게 우리의식을 증진하고 상생하는 조정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정체성을 갖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공감은 매우 소중한 가치이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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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08 23:02

천주교 고창성당 '최여겸 순교 성지 축성식' 개최

천주교 고창성당(주임신부 조정오 요셉)은 지난달 28일 고창군 공음면 개갑장터에서 이강수 군수, 박래환 군의장,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와 고창·김제·정읍·부안지역 신자 등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최여겸 순교 성지 축성식 및 순교자 현양대회'를 개최했다.최여겸(마티아) 순교자는 1763년 고창군 공음면 갑촌에서 태어나 전라도 진산 땅의 첫 순교자 윤지충(바오로)에게 교리를 배우고 '내포의 사도'라 불리는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을 만나 독실한 신자가 됐다.그는 무장, 흥덕, 고창, 영광, 함평 등 전라도 서남해안 지역에서 전교활동을 펼쳤으며, 기록에 의하면 그가 입교시킨 신자로는 무장의 최수천(횡성에 유배), 최일안(전주에서 형벌로 옥사), 흥덕의 김처당(청도에 유배), 영광의 이화백(영광에서 순교), 함평의 남중만(평산에 유배) 등 28명으로 전해진다.신유년(1801) 천주교 박해시 4월 13일(음) 처가인 충청도 한산에서 체포되어 무장현으로 압송됐으며, 전주감영을 거쳐 한양으로 압송되어 문초와 형벌을 받았으나, 끝까지 신앙을 증거했다. 이때 형조는 중죄인은 고향에서 처벌하여 본보기로 삼는 해읍정법(該邑正法)의 명을 내려 개갑장터에서 그해 7월 19일(음) 참수형을 받아 38세에 순교했다. 그는 현재 '하느님의 종 윤지충(바오로)과 동료 순교자 124위'에 포함되어 시복시성이 추진되고 있다.공음 개갑성지는 2004년 6월 고창향토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된 후 고창군과 천주교의 협의하에 순교지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2011년부터 개발을 추진했다. 군은 부지매입과 주차장, 화장실 등 기반시설을 건립했고, 고창성당은 현양탑, 야외제대, 14처, 조경사업 등을 추진해 이날 순교자 축성식을 개최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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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규
  • 2013.10.01 23:02

사랑이 열매를 맺으려면

월간지 '좋은 생각'에 나온 일화입니다. 두 사람의 연인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뜨겁게 사랑했고 결혼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남자의 집안에서 절대적으로 반대를 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여자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어려움을 물리치고 마침내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결혼식 날이 되었습니다. 신랑의 입장 후에 신부가 들어오는데 그야말로 선녀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이 모습을 본 하객들은 신랑측 부모가 결혼에 반대했던 이유를 더욱 알 수 없었습니다. 주례자는 신랑의 대학 은사였는데, 머리카락이 몇 올 남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화려한 조명 밑에 서자 머리는 불빛을 받아서 잘 닦아놓은 자개장처럼 번쩍였습니다. 이윽고 주례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검은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서로 사랑하는 것도 좋지만 검은머리가 저처럼 대머리가 될 때까지 변함없이 서로 사랑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 순간, 식장 안 여기저기서 폭소가 터져 나왔습니다. 이어지는 주례사는 신랑, 신부와 하객들에게 재차 웃음을 던져주었습니다. "제 대머리를 한문으로 말하되 딱 한 자로 표현하면 '빛 광', 즉 '광(光)'이라고 할 수 있지요. 신랑, 신부가 백년해로하려면 광나는 말을 아끼지 말고 해주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의 세 치 혀입니다." 하객들은 모두들 진지한 눈빛으로 주례자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키라는 '광(光)'같은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부부라고 해도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여보, 사랑해. 당신이 최고야!'라는 말은 검은머리가 대머리 될 때까지 계속해도 좋은 겁니다." 그런데 그 때, 하얀 장갑을 낀 신랑의 손이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신랑은 신부에게 수화로 주례 내용을 알려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순간 모든 하객들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주례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광나는 말로 주례사를 마쳤습니다. "여기,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신랑이 가장 아름다운 신부에게 가장 아름다운 말을 해주고 있습니다. 군자는 행위로써 말하고 소인은 혀로써 말한다고 합니다. 오늘 저는 혀로써 말하고, 신랑은 행위로써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여기 서있는 신랑, 신부는 둘 다 군자의 자격이 있습니다. 두 사람의 제2의 인생에 축복이 가득하길 빌면서 이만 소인의 주례를 마치겠습니다." 하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례자와 신랑, 신부를 향하여 힘껏 박수를 쳤고, 하객들의 박수 소리에 예식장은 떠나갈 듯 했다는 것입니다. 사랑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감동이 있습니다. 특히 장애를 극복하고 모든 어려움을 뛰어넘는 사랑은 두고두고 여운을 남깁니다. 그러나 사랑은 언제나 희생을 요구합니다. 순간의 감정과 동정만으로는 사랑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상대방의 눈이 되고, 손이 되며, 발이 되어주는 희생이 있어야 사랑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입술만의 사랑으로는 아무런 결실을 거둘 수 없습니다. 언젠가 한 모임의 낙서판에 이런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아가야, 울지 마라. 엄마가 네 빵 다 먹었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지만 아직까지 기억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말이 재미있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자식을 사랑한다면 자신이 배고픈 것을 참아가며 자식부터 먹여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이 엄마에게는 그런 희생이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사랑을 노래한다 해도 믿어주지를 않습니다. 사랑은 자신을 희생하여 상대방의 필요를 채웁니다. 나누어줍니다. 디딤돌이 되어 줍니다. 아파도 참습니다. 눈물을 노래로 바꾸어갑니다. 기꺼이 손과 발이 되어 줍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랑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희생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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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9.24 23:02

내장사 대우 스님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 후보 등록

내장사 백련선원 회주 대우 스님이 다음 달 10일로 예정된 대한불교조계종 제34대 총무원장 선거 후보로 등록했다.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진행된 후보등록에 대우 스님을 비롯, 현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 전 중앙종회 의장 보선 스님, 전 오어사 주지 장주 스님,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등 5명이다.대우 스님은 지난 29대, 32대, 33대에 이어 네 번째 선거에 나선다. 대우 스님은 지난 17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나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종단이 안고 있는 비승가적인 구조적 병폐를 치유하기 위해 정화와 개혁은 봉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돈과 조직 없는 사람도 선택받고, 그런 사람들이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시대의 명령이다"며, "선거에 출마하는 것은 선택의 양심이 살아있는 승단이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대우 스님은 종책 공약으로△총무원장 선거 직선제 △재가신도에 선거권 부여 △비구니 특별교구 신설 △재정 공영화 △승려노인복지 △종교 화합운동 등을 제시했다.조계종은 25∼29일 선거인단을 확정한 뒤 다음달 10일 차기 총무원장을 선출한다.한편, 불국사와 법주사, 금산사 등 금오문도회의 추대를 받으며 출마가 유력했던 전 포교원장 도영 스님(전 완주 송광사 주지)은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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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원용
  • 2013.09.23 23:02

서로 화목하라

화목이란 서로 뜻이 맞고 마음과 생각의 느낌이 일치함을 이루는 것입니다. 서로 화목하라는 말씀은 사람과 사람, 세상의 사람과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의 나라가 서로 화목하라는 것입니다. 서로 화목하는 일이 가장 시급한 일입니다. 우리 사는 세상이 반목과 쟁투, 대결과 대립, 분열과 분쟁, 갈등과 싸움으로 점철되어 가고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싸움으로 국론이 분열되며 지역간, 계층간, 세대간에 서로 상처만 안겨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회는 서로 화목하기 보다는 극단적인 대결로 치닫고 있는 실정입니다. 높은자와 낮은자, 강한자와 약한자, 부자와 가난한자, 권력있는자와 권력이 없는자, 기업주와 노동자, 갑과 을의 관계가 대결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입니다. 윗사람은 자기 체제 수호를 위하여 싸우고, 아랫사람은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싸우게 됩니다. 시장 상인에서부터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층이 대결 양상으로 점철되는 현상입니다. 이러한 대결은 상대를 정죄하고 미워하며, 비판하고 배척합니다. 상대의 약점을 잡아 쓰러뜨리고자 합니다. 이런 우리의 심사를 아신 주님은 서로 화목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대결보다는 화목하는 것이 훨씬 더 가치있고 생산적이기 때문입니다. "나쁜 화해가 좋은 소송보다 앞선다"는 영국 속담처럼 서로 화목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합니다. 잠언17:1절에도 "마른떡 한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서로 화목할 수 있을까?서로 화목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잡아주고, 이해하고 포용해야 합니다. 결코 정죄하지 아니하며, 비방하지 아니하며, 사상과 견해가 다르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 해주는 마음의 폭을 넓혀야하는 것입니다. 서로 화목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히 여기며 서로의 차이를 대화로서 좁혀 가면서 온유 겸손으로서 이해시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상대방의 약점을 꼬집어 헐뜯는 것이 아니라 덮어주고, 감싸주고, 믿어주고, 사랑의 마음으로 손잡아 주어야 합니다. 서로 화목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내게 맞추기보다 나를 상대방에게 맞추는 것이며 내가 조금 희생하고, 양보하고, 손해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서로 화목하기 위하여 소금을 치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음식에 맛을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소금을 쳐야 하듯이 사람과 사람사이에 화목하기 위해서는 소금처럼 녹아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관용의 소금, 신뢰의 소금, 위로의 소금, 긍휼의 소금, 사랑의 소금, 희생의 소금, 온유겸손의 소금을 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서로 화목하여 분쟁을 잠재우고 평화를 만들것이라 했습니다. 서로 화목하는 것이 구성원 됨이며 행복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화목하는 삶이 아름답고 화목하는 것이 더불어 사는 사회의 최상의 가치입니다. 화목은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기에 충분한 사랑으로 가득차 있고, 자비로 가득차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는 세상에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서로 화목하는 것입니다. 생존 경쟁의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일이 서로 손을 잡아 주는 것입니다. 오리를 가자고 할 때 십리를 가주는 것이며 속옷을 가지고자 할 때 겉옷까지 주는 것입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지 말아야 하며 꾸고자 하는 경우 거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헤게모니와 기득권을 내려 놓고 원수까지도 사랑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화목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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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9.10 23:02

치유·명상·평화… 5대 종단 '화합의 노래'

호남 종교인들이 종교인들의 심성과 감성을 일깨우는 제1회 호남종교인 영성문화제를 연다. 불교개신교천주교원불교천도교 성직자들이 8일 저녁 7시 전남 보성 대원사에서 영성문화제를 열어 종단간의 소통과 화합을 노래한다. 5대 종교가 연합으로 치유와 명상평화를 테마로 한 시낭송과 음악회로 진행하는 종교인 축제다.광주기독교연합회 김용성 목사는"호남의 5대 종단이 힘을 모아 문화라는 공통의 키워드를 바탕으로 서로의 종단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믿음으로 하나 되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했다"고 행사 취지를 밝혔다. 영성문화제는 각 종단의 대표 성직자들과 재가 신자(교도)들이 참여해 영성함양과 소통에 주안점을 두게 된다. 이날 행사는 호국 승군 무예로 분위기를 돋운다. 호국 승군무예는 임진왜란 때 승군(승병)을 지휘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운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시작으로, 현재는 담양 금성산성 동자암의 청산스님이 그 맥을 잇고 있다. 본 행사는 불교 의식인 법고 타종의식으로 문을 연 후 천도교개신교불교원불교천주교에서 준비한 행사로 하나되는 세상을 열어간다. 천명공연(천도교), 시 낭송 및 합창(개신교), 보살춤과 어린이 시범단의 전통 무예수벽치기(불교), 시낭송과 독창(원불교), 가톨릭성가대 합창 등으로 진행된다.2부는 다함께 하나되어는 5대종단 성직자 인사와 촛불제를 통한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의식, 참석자들과 어울린 대합창과 풍등띄우기가 펼쳐진다.모임 대표인 대원사 현장 스님은 "종교의 이념과 교리는 다를지라도 거기에 깃든 영성은 하나로 통할 수 있어 하나됨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며 "영성을 통해 만나고 문화적 교류를 하다보면 호남의 종교문화행사로 발전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원불교 육관응 교무(원불교신문 편집장)의 제안으로 올 처음 시작하는 문화제는 전국적인 모임인'묵방도담'(默芳道談)에서 활동하는 호남지역 종교인들이 뜻을 모아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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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원용
  • 2013.09.04 23:02

당신도 날 수 있습니다

미국의 '타임(Time)지'가 선정한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인물은 미국의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Thomas A. Edison. 1847-1931년)'이고,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인물은 독일의 물리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년)'입니다. 이 두 사람의 천재성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똑같이 학습장애아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에디슨은 학교에 입학한 지 3개월도 못 돼서 '바보'로 낙인찍힌 학습장애아였습니다. 교육의 전문가였던 교장이 학교를 방문한 장학사에게 그를 '바보'라고 보고할 정도였습니다. 이 사실을 안 에디슨의 어머니는 강력하게 항의하고 즉각 학교를 그만두게 했습니다. 결국 에디슨이 받은 공식적인 교육은 3개월도 채 안 된 셈입니다. 그러나 에디슨은 전등, 전축, 현대 전화기의 전신인 탄소송화기, 백열 전구, 발전기, 가정용 영사기 등을 발명했고, 특허만 무려 1093개를 받아 특허의 기록까지 세웠습니다. 에디슨은 19세기를 빛낸 대표적인 인물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입니다. 아인슈타인도 독일에 사는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어린 시절에는 학습장애아로 낙인찍힌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학교를 다닐 때 언어의 발달이 늦어서 학습이 부진했고, 행동이 산만하여 문제아 취급을 받았습니다. 장래를 염려한 부모는 여러 번 이사하면서 전학을 시키곤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원리와 중력에 관한 이론으로 과학적 탐구의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1921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그는 우주에 대한 인간의 이해에 크게 기여했으며, 지금까지 위대한 과학의 거인으로 남아 있습니다.이 두 사람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은 이런 의문을 가집니다. "학습장애아였던 그들이 어떻게 그와 같은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었는가?" 물론 자녀 교육에 있어서 남다른 관심과 열성을 가졌던 부모를 간과할 수 없습니다. 부모의 헌신적인 교육과 지도가 천재성을 개발시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많은 교육학자들은 그들의 인생과 사물을 보는 긍정적 태도를 결정적인 요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삶의 자리가 어렵고 힘들어도 그것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매사에 긍정적인 입장에서 보는 자세가 천재성을 개발시켰다는 것입니다. 시련과 역경이 올 때 그것을 부정적인 관점에서 저주로 보면 저주가 되고, 긍정적인 관점에서 기회로 보면 기회가 되는데, 이들은 모든 것을 기회로 여겨 놀라운 결실을 거두었다는 얘기입니다. 사람은 한 생을 살면서 숱한 고난과 역경을 만납니다. 그 때마다 거기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긍정적인 관점에서 보고 도전하는 것이 승리로 향하는 첫 번째 단계인 것입니다. 부족한 것, 없는 것, 잃은 것에만 집착하고, 원망과 불평만 일삼으면 절대로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무한한 잠재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 능력을 주셨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활용하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을 붙잡는 사람은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하늘을 비상할 수 있는 능력을 행할 수 있습니다. 지금 힘든 상황에 처해 있습니까? 믿음의 날개를 펴십시오. 힘껏 날개 짓을 해보십시오. 당신도 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로버트 슐러' 목사의 인상 깊은 고백을 소개합니다. "절벽 가까이로 나를 부르셔서 다가갔습니다. 절벽 끝에 더 가까이 오라고 하셔서 더 다가갔습니다. 그랬더니 절벽에 겨우 발을 붙이고 서 있는 나를 절벽 아래로 밀어버리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나는 그 절벽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때까지 내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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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9.03 23:02

새벽은 개벽이다

아침에 일어나기 전 먼저 가슴에 설레임을 담고 감사한 마음을 먹습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나는 행운아다!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얼씨구, 좋구나." 새벽은 그런 설레임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아직 먼 동이 터오르기 전이라 낯설기 때문인가 봅니다. 오늘 하루 어떤 일이 생길까? 오늘은 어떤 경험을 할런지 가슴이 설레입니다. 그래서 매일이 설날입니다.자리에 누운 채로 하늘을 향해 두 손과 발을 높이 들어 흔들어줍니다. 손과 발의 파동을 온몸으로 느끼고 깨어납니다. 일어나 법신불 사은님께 아침 심고를 올립니다. 오늘 하루도 선의 심정으로 깨어나 만나는 사람과 사물을 부처님으로 보고 불공하는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자리에 앉아 몸을 풀어주면서 몸이 움직이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움직이는 것을 알아차리고 왼쪽으로 움직이면 움직이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목탁을 치며 일상 수행의 요법을 암송합니다. 암송할 때는 내 목소리를 잘 들어봅니다. 목소리를 귀로 들어보면 잡념이 끊어지고 둥근 마음이 되어 소리만 허공에 가득참을 느낄 수 있습니다.그런 뒤 하단 전에 기운을 주하고 좌선을 합니다. 크게 들이쉬고 약하게 내쉬면 심장 뛰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고요해졌기 때문입니다.밖에 나와 하늘을 봅니다. 떠오르는 해와 햇살을 느끼고, 구름의 모양도 구경합니다. 바람이 뺨을 스치고 나뭇잎이 나부끼는 것을 처음 보듯 신비롭게 바라봅니다.그 다음은 청소 시간입니다. 진리가 텅 비어 깨끗하여 빛이 나듯 때와 먼지를 닦아주면 빛이 나기 마련입니다. 내 손길 닿는 곳마다 빛이 나는 것을 구경합니다. 언제 끝나나 하는 생각이 앞서면 지루해집니다. 그냥 몸이 움직이는 것을 마음이 지켜보면 힘들지 않습니다. 아주 재밌게 놀이하듯 청소를 할 수 있습니다.청소를 마치면 원불교 전서를 낭독합니다. 소리 내어 읽으면 대종사님의 말씀이 파도치듯 가슴에 담깁니다. 아침 식사는 간단하게 합니다. 음식을 나에게 주신 천지님, 부모님, 동포님, 법률님의 은혜에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모양과 색깔을 잘 봐주고 좌우 골고루 잘 씹어주면 미각이 살아납니다.차를 타면 맘껏 웃는 연습을 합니다. 차 안에서는 아무리 크게 웃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음 하하하하하하 , 음 헤헤헤헤헤헤, 음 히히히히히" 하고 허리가 끊어지고 배가 아플 정도로 웃습니다. 그러면 소리내어 웃지 않아도 저절로 미소가 머금은 얼굴 표정, 흐뭇한 표정을 지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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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27 23:02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