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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스님 "자승 총무원장, 정권과 밀착"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 주지 명진스님이 조계종총무원장 자승스님과 현 정권이 밀착관계라고 주장하면서 직영사찰 전환을 계속 저지하겠다는 입장을 28일 재확인했다. 명진스님은 이날 낮 봉은사 법왕루에서 연 일요법회 법문에서 "자승 총무원장은재작년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청와대에서 불교지도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소나기는 피하고 봐야죠"라고 이야기했으며, 대선을 앞둔 2007년 10월13일 이상득 의원을봉은사로 데리고 왔다"고 말했다. 명진스님은 "두 번 거절 끝에 이상득 의원과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내가 반야심경의 '반야'가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묻자, 이 의원은 모른다고 했다"며 "이에 대해나는 이명박 후보가 서울시장 시절 했던 언사들이 앞으로 대통령이 되면 종교갈등을유발할 수 있어 걱정스러우니 불교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를 갖추라고 했고, 자승 스님이 이명박 당시 대선후보의 봉은사 방문을 요청하기에 거절했다"고 밝혔다. 또 "자승스님은 지난해 12월24일 박형준 정무수석과 함께 충청도에 내려가 마곡사, 수덕사 등 지역 절 주지들을 모아놓고 세종시 문제 협조를 요청했다"며 "한국불교 대표종단의 수장이 시비와 논란이 있는 문제에 대해 지역 주지들을 모아놓고 그런 말을 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과 자승 원장 간에 어떤 야합과 밀통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 안건이 지난 11일 조계종 중앙종회를 통과한 이후 명진스님이 일요법회에서 공개적으로 반대 법문을 한 것은 지난 14일과 21일에 이어 이번이 3번째다. 명진스님은 "봉은사 문제는 봉은사의 사부대중과 충분한 소통과 논의를 거쳐 결정할 것을 약속하라"고 촉구하면서 "다음 주 법문에서는 가사를 입고 부처님의 법을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명진스님은 2천여 신도들 앞에서 천안함 침몰사고의 희생자들을 애도하면서 이날 법문을 시작했다. 그는 "36년 전인 1974년 충무 앞바다에서 있었던 해군예인정(YTL) 침몰사고 당시 희생자 159명 중 스무 살의 꽃다운 나이였던 내 동생도 포함돼 있었다"며 눈물도보였다. 명진스님은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에 대한 공격도 계속했다. 그는 "불교계가템플스테이 사업이나 불교문화재 관리 등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정부예산을 쓰고정치권력과 소통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약점 잡아서 나를 '좌파'로 몰아붙였다"며안 원내대표가 해명과정에서 자신을 모른다는 등의 거짓말을 한 것도 문제라고 주장했다. 명진스님은 이날 현 정부 들어 발생한 종교편향 시비와 일부 개신교 목사들의 편향적 발언을 언급하고, 4대강 살리기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지방선거를 겨냥한 듯 "올바르게 주권을 행사하라"고 신도들에게 권하기도 했다. 한편, 조계종 총무원은 이날 법회를 앞두고 지난 27일 오후 총무원 총무부장 영담스님과 기획실장 원담스님을 봉은사로 보내 명진스님과 대화했으나 별다른 절충점을 찾지는 못했다.

  • 종교
  • 연합
  • 2010.03.26 23:02

"아름다운 순례길, 세계 명소로 만들자"

천주교와 기독교·불교·원불교 등 4대 종교 지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전북의 '아름다운 순례길'을 세계적 명소로 만들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사단법인 한국순례문화연구원(이사장 김수곤)은 22일 전주코아리베라호텔에서 '국제종교행사 유치 등 세계 종교문화 명소화를 위한 4대종교 대표 조찬 간담회'를 가졌다.이날 간담회에는 천주교 전주교구 이병호 주교와 전주안디옥교회 박진구 목사, 송광사 도영 스님, 원불교 중앙총부 안민순 교화원장 등 4대종교 지도자들과 김완주 도지사를 비롯한 전북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이들은 종교화합의 촉발제 역할을 한 아름다운 순례길을 알리자는 데 뜻을 모으고, 내년 8월께 4대 종교 1만명 만남의 행사에서 종교별 프로그램 마련 방안을 논의 했다.또 2012년 도내 유치가 확정된 국제종교행사인 '제4회 세계 스카우트 종교 총회'의 성공적 유치와 윤치충 최초 순교 222주년을 기념하는'세계 종교 화해를 위한 평화선언'에 교황방문을 추진하는 데에도 힘을 모으기로 했다.한국순례문화연구원 김수곤 이사장은 "오는 5월께 아름다운 순례길을 알리는 홍보책자를 영어·불어·이탈리아어·스페인어·중국어·일어 등 6개 국어로 발간할 예정"이라며 " 종교행사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순례길을 홍보하는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 종교
  • 윤나네
  • 2010.03.23 23:02

직영사찰 반발 봉은사 주지 "안상수 대표 압력"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의 주지 명진스님이 "조계종 총무원이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전환하기로 한데는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압력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명진스님은 또 직영사찰 전환이 철회되지 않으면 조계종 승려직에서 물러나겠다며 강력 대응을 계속할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명진스님은 21일 오전 봉은사 경내 법왕루에서 가진 일요법회 법문에서 "자승 총무원장이 지난해 11월5일 취임한 후 11월13일 오전 7시30분 프라자호텔 식당에서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현 정권에 저렇게 비판적인 강남의 부자 절 주지를 그냥 두면 되겠느냐'라고 자승 원장에게 얘기했다는 말을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명진스님은 당시 자리에는 안상수 대표와 함께 고흥길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도 있었다면서 당시 배석한 김영국 거사가 11월20일 자신을 찾아와 이 내용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명진스님은 자신이 지난해 8월30일 용산참사 현장을 찾아 1억원을 전달한 것도 안대표가 지적한 것으로 들었다며 "자승스님은 당시 '신도들이 개인적으로 모아준 돈을 용산현장에 전달한 것은 어쩔 수 없다'라고 답한 것으로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명진스님은 봉은사를 직영하려면 봉은사 사부대중과 소통을 해야하는데 총무원은 안대표와 소통한 것이라며 "이것은 소통이 아니라 '밀통', '야합'"이라고 비판했다. 또 "안상수 대표가 자승 총무원장과 이런 야합이나 밀통을 했다면 원내대표직을 내놓고 정계에서 은퇴해야한다. 아무 데나 좌파 딱지를 붙이는 안상수 대표는 정치에서 손을 떼라"고 말했다. 아울러 "만약 내 말이 근거없는 허황된 얘기라고 판명되면 내 발로 봉은사에서 나가고 승적부에서 이름을 지울 것"이라며 "정당한 명분없이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전환하는 것을 40년 중노릇을 걸고 막겠다"고 다짐했다. 명진스님은 총무원을 향해서도 "법정스님이 입적하신 11일 당일 조계종 중앙종회가 후순위였던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 건을 위로 끌어올려 서둘러 가결, 총무원장이 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명진스님은 법문을 마치면서 법회에 참석한 1천500여 신도들에게는 "절대 집단 행동을 하지 말라. 성명서 한 장도 내지 말라"며 "봉은사가 80년대와 같은 싸움터로 변하는 것은 원치않는다"라고 당부했다. 자승 총무원장과 안상수 대표 등의 만남에 배석했다가 나온 얘기를 명진스님에게 전해준 김영국 거사는 현재 조계종 문화사업단 대외협력위원이며, 전 총무원장 지관스님의 특보를 지낸 적이 있는 인물이다. 현재 김영국씨는 연락이 닿지 않는 상태다.

  • 종교
  • 연합
  • 2010.03.22 23:02

거사가 그린 법정스님과의 10년 인연

법정스님의 저서들이 절판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인 가운데 법정스님이 이끌던 시민모임 맑고향기롭게의 변택주 이사가 법정스님과의 10년 인연을 담은 책을 내놓았다. 1998년부터 법정스님과 인연을 맺고 스님으로부터 지광(智光) 거사라는 법명도 받은 변 이사는 '법정스님 숨결'(큰나무 펴냄)에서 스님의 푸근하고도 엄격했던 모습을 여러 일화를 통해 전했다. 책에 따르면 법정스님은 송광사 불일암에 머물 때 불일암 뒷자락에서 고개를 숙여 다리 가랑이 사이로 산을 바라보곤 했는데, 이를 보고 웃는 나그네들에게 "가끔 이렇게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웃으며 말했다. 또, "다른 이들과 시간 약속을 어기는 일은 상대 목숨을 뺏는 짓"이라고 말할 정도로 엄격했던 스님의 모습도 소개했으며, 스님이 어머니의 별세 소식을 들었을 때 '이제는 내 생명 뿌리가 꺾였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한 일화도 전했다. 이 책은 법정스님이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 이후 나왔다. 변 이사는 "출판사에 지난해 12월 이미 원고를 다 넘겼는데 시간이 지체돼 이번에 출간된 것"이라며 "스님 입적 즈음에 출판사에서 책을 배포하겠다고 연락해 와 기다려달라고 부탁했으나 출판사에서 '1주일 정도만 기다릴 수 있다'고 했다. 주변에서 어떻게 볼까, 무척 염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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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0.03.17 23:02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 납득되게 설명하라"

조계종 중앙종회가 최근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전환하는 안건을 통과한 데 대해 봉은사 주지 명진스님이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명진스님은 지난 14일 오전 봉은사 법왕루에서 가진 일요법회에서 "총무원은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전환하는 이유를 봉은사의 주인인 신도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하라"고 강한 어조로 요구하면서 직영사찰 전환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고 15일 봉은사측이 전했다. 명진스님은 또 "다음 주까지 답변이 없으면 전국 사찰과 신도들을 대상으로 직영사찰 전환에 반대하는 1천만명 서명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신도를 비롯한 사부대중이 사찰의 주인인데 총무원은 '소통과 화합'을 한다고 하면서 해당사찰 주인들과 소통을 하지 않고 누구와 소통을 했느냐"고 물으면서 "총무원이 직영사찰로 지정한 이유로 내건 포교벨트 조성이 무엇인지 명확히 말하라"고 덧붙였다.봉은사 측의 이같은 반발은 조계종 중앙종회가 지난 11일 오후 봉은사를 총무원 직영사찰로 전환하는 안건을 통과시킨 데 따른 것이다. 봉은사 측은 봉은사가 과거 조계종 이권다툼의 온상이었으나 명진스님 주지 취임 후 재정공개와 1천일 기도 등을 통해 투명한 경영과 수행풍토를 확립하고, 신도수 확대에도 크게 기여했다며 직영사찰로 전환되면 사찰운영의 자율성이 크게 훼손될 것이라며 직영사찰 전환에 반대해왔다. 명진스님은 이날 법회에서 법정스님의 입적을 애도하고 법정스님이 번역한 '선가귀감'의 내용을 언급하면서 "'선가귀감'에 중도 아니고 속인도 아닌 자를 '박쥐중'이라고 하는데 요즘 '내가 '박쥐중'이 아닌가, '머리 깎은 거사'는 아닌가, '가사 입은 도둑'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또 "이번 결정과 관련해 총무원 측은 나와도 한마디 상의가 없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봉은사 측은 이런 일요법회 내용을 홈페이지에 올리는 한편, 16일 10시부터 열리는 초하루 법회에서 전 총무원장 지관스님을 초청해 법문을 들을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또 한차례 직영사찰 전환의 부당성을 알리는 입장표명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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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0.03.16 23:02

'무소유' 향기 남기고 먼길 떠난 법정 스님

'무소유'의 가르침을 전하고 실천한 법정(法頂)스님이 불길 속에 아름다운 향기를 남기고 먼 길을 떠났다. 14일 오전 전남 순천 송광사를 품은 조계산 언덕에 마련된 전통다비장에서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법정 스님의 습골(뼈를 수거하는 의식) 의식은 추모객 1천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건하게 진행됐다. 삼귀의례와 반야심경을 함께 독송하는 것으로 시작된 습골 의식은 상좌 스님과 문도 10여명에 의해 차분하게 진행됐다. 상좌 스님과 문도들은 전날 오전부터 계속 다비된 후 타다 남은 유골을 수습해 유골함으로 옮겼고 이를 지켜보는 추모객들은 일제히 합장하고 "나무아미타불" 등을 염불하며 법정스님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그러나 당초 이날 오전 10시께 유골이 모두 수습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불이 모두 꺼지지 않아 일부 유골만 수습됐고 약 2시간이 지난 정오께 모든 유골이 수습돼 송광사 지장전으로 옮겨졌다. 밤새 참나무 장작이 타면서 환하게 불을 밝힌 법정 스님의 다비장은 스님과 신도들이 염불을 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법정 스님의 유골은 뼈를 빻는 쇄골(碎骨)' 이후 다음 달 28일 송광사에서 열리는 49재에 상좌스님들이 비공개로 산골(散骨)'을 진행한다. 김재섭(63.광주 남구)씨는 "어제 오늘 봤는데 사람이 한줌 재가 되서 세상을 떠난다는 것이 참 허무하게 느껴졌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돌아가는 삶을 느꼈다"고 말했다.

  • 종교
  • 연합
  • 2010.03.15 23:02

'무소유' 향기 남기고 먼길 떠난 법정 스님

'무소유'의 가르침을 전하고 실천한 법정(法頂)스님이 불길 속에 아름다운 향기를 남기고 먼 길을 떠났다. 14일 오전 전남 순천 송광사를 품은 조계산 언덕에 마련된 전통다비장에서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법정 스님의 습골(뼈를 수거하는 의식) 의식은 추모객 1천여명이지켜보는 가운데 경건하게 진행됐다. 삼귀의례와 반야심경을 함께 독송하는 것으로 시작된 습골 의식은 상좌 스님과문도 10여명에 의해 차분하게 진행됐다. 상좌 스님과 문도들은 전날 오전부터 계속 다비된 후 타다 남은 유골을 수습해유골함으로 옮겼고 이를 지켜보는 추모객들은 일제히 합장하고 "나무아미타불" 등을염불하며 법정스님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그러나 당초 이날 오전 10시께 유골이 모두 수습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불이 모두 꺼지지 않아 일부 유골만 수습됐고 약 2시간이 지난 정오께 모든 유골이 수습돼송광사 지장전으로 옮겨졌다. 밤새 참나무 장작이 타면서 환하게 불을 밝힌 법정 스님의 다비장은 스님과 신도들이 염불을 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법정 스님의 유골은 뼈를 빻는 쇄골(碎骨)' 이후 다음 달 28일 송광사에서 열리는 49재에 상좌스님들이 비공개로 산골(散骨)'을 진행한다. 김재섭(63.광주 남구)씨는 "어제 오늘 봤는데 사람이 한줌 재가 되서 세상을 떠난다는 것이 참 허무하게 느껴졌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돌아가는 삶을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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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0.03.12 23:02

<법정 입적> 길상사 떠나는 스님 "추우시겠다"

"나무아미타불", "석가모니불..."12일 오전 11시 22분 서울 성북동 길상사의 행지실 앞. 행지실 쪽에서 목탁 소리와 요령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합장한 채 "나무아미타불", "석가모니불"을 염송하는 신자들의 목소리도 커졌다.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듯 행지실 주변의 대나무가 크게 흔들릴 정도로바람이 두 번 거세게 불었다. 4분 후 위패와 영정을 든 스님들이 차례로 행지실 밖으로 나오고 뒤이어 법정스님의 법구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자 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시민ㆍ불자들의염불 소리에는 울음소리가 섞여들었다. 법정스님이 이날 대중에게 보여준 마지막 육신의 모습은 스님이 평소에 말했던'무소유' 그 자체였다. '강원도 오두막에서 평소에 사용하던 대나무 평상에 올려서 화장하라'던 스님의평소 뜻을 받들어 다비준비위원회는 강원도 오두막에서 평상을 가져오려 했지만, 눈이 내려 접근이 불가능해지자 똑같은 모양의 평상을 만들었다. 한 사람이 누우면 꼭 맞는 좁은 평상 위에 모셔진 법정스님의 법구는 갈색 가사한 장으로 온몸을 감싼 모습이었다. 근사한 관도, 꽃 장식도 없었다. 매서운 봄바람 속에 입던 승복 그대로 가사 한 장을 덮은 법정스님의 마지막 모습에 여성 신도들은 "스님 추우시겠다"고 안타까워하며 흐느꼈다. 성북동 골짜기 길상사에 이날 모인 인원은 8천여 명. 먹구름 낀 하늘 아래 스님의 법구가 극락전을 향하는 걸음걸음마다 땅에 엎드려 절을 하는 시민이 속출했고,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나무아미타불" 소리는 점점 커졌다. 법정스님의 법구를 멘 스님 10명이 극락전 앞에서 무릎을 세 번 구부렸다 펴 부처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린 것을 끝으로, 법정스님의 법구는 곧바로 영구차에 모셔졌다. 많은 시민이 법구가 모셔진 영구차를 어루만지며 울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영구차는 곧바로 길상사 산문을 통과했고, 신도들과 인사를 나누는 듯 잠깐 멈춰 섰다가이날 낮 12시께 곧바로 송광사로 향했다. 신도들은 줄지어 큰길까지 영구차를 뒤따랐다. 법정스님의 법구는 송광사에서도 13일 조촐한 다비를 치를 예정이다. 다비식에서는 큰스님들의 장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만장도 사용하지 않는다. 법정스님은자신이 창건한 절 길상사를 나서던 모습 그대로 불 속에 몸을 맡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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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3.12 23:02

<법정 입적> "길상사 가시겠느냐 묻자, 고개 끄덕"

11일 입적한 법정스님은 입적 하루 전날 병원에서 덕조, 덕현 등 상좌스님 7명이 모인 가운데 "내 제자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라,정진의 힘으로 죽을 때 어지럽지 않게 하라"고 당부했다. 법정스님 다비준비위원회 대변인 진화스님은 12일 오전 길상사에서 연 언론 브리핑에서 "법정스님은 상좌스님들에게 이같이 당부하신 후 상좌스님들이 길상사에가시겠느냐고 여쭤보니 고개를 끄덕이셨다"고 말했다. 진화스님은 "법정스님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의식을 또렷이 유지하신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스님은 병상에서도 계속 강원도 오두막으로 가고 싶다고 하셨지만,그곳에는 눈이 쌓여 접근이 불가능해 상좌스님들이 길상사로 모셨다"고 설명했다. 진화스님은 법정스님은 길상사를 1997년 창건했지만, 길상사에서는 하룻밤도 잔적은 없다고 설명하면서 "병원에서 돌아가시는 것보다는 절에서 돌아가시는 것이 좋다는 뜻에서 길상사로 가시겠느냐고 물었고 스님이 수락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정스님은 11일 오전 11시50분께 삼성서울병원에서 출발, 12시 30분께 길상사에 도착했다. 진화스님은 "절에 도착한 후에 상좌들이 '여기 길상사 절입니다'하니 고개를 끄덕이셨고, 상좌스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눈을 감으셨다"고 말했다. 한편, 법정스님은 병세가 나빠지면서 주로 필답으로 의사를 표현했으며 따라서스님의 유지 상당 부분은 필답에 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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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0.03.12 23:02

법정 스님 "장례의식 거행 말라"…13일 순천 송광사서 다비식

산문집 '무소유'로 널리 알려진 법정(法頂)스님이 11일 오후 1시51분께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법랍 55세. 세수 78세.법정스님은 2007년부터 폐암으로 투병, 지난해 4월19일 길상사에서 열린 봄 정기법회 법문을 끝으로 지난해 6월7일 하안거 결제 법회, 12월13일 길상사 창건 기념법회에도 참석하지 못했다.지난해 연말에는 제주도에서 요양했으나 올 들어 병세가 악화하면서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해왔고, 입적 직전인 11일 낮 자신이 창건한 길상사로 옮겼다.법정스님은 입적 전날 밤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내가 금생에 저지른 허물은 생사를 넘어 참회할 것이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는 말을 남겼다.조계종과 법정스님의 출가본사인 송광사, 법정스님이 창건한 길상사 등은 장례절차를 논의한 결과 "일체의 장례의식을 거행하지 말라"는 법정스님의 평소의 말에 따라 별다른 장례행사는 치르지 않고 13일 오전 11시 송광사에서 다비식을 거행하기로 했다. 또 조화나 부의금도 받지 않기로 했다.별도의 장례위원회는 구성하지 않았으나 법정스님 입적 전에 장례절차를 논의하던 송광사 문중의 다비준비위원회(위원장 진화 스님)가 다비식을 맡아서 진행하기로했다.성북동 길상사, 순천 송광사, 송광사 불일암 등 3곳에 간소한 분향소가 마련될 예정이다.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법정스님(속명 박재철)은 목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목포상고를 거쳐 전남대 상대 3학년 때인 1954년 오대산을 향해 떠났다.하지만 눈이 많이 내려 길이 막히자 서울의 선학원에서 당대 선승인 효봉 스님(1888-1966)을 만나 대화하고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았다.이튿날 통영 미래사로 내려가 행자 생활을 시작한 스님은 1959년 3월 양산 통도사에서 자운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이후 해인사 선원과 강원, 통도사를 거쳐 1960년대 말 봉은사에서 동국역경원의 불교 경전 번역작업에 참여했다.스님은 1975년 10월부터 17년간은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살았으며 불일암 시절 초반인 1976년 4월 대표적인 산문집 '무소유'를 출간한 이후 불교적 가르침을 담은 산문집을 잇달아 내면서 대중적인 반향을 일으켰다.스님은 1992년부터는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지내면서 외부인과의 접촉을 잘 하지 않았지만 1996년 성북동의 요정 대원각을 기부받아 1997년 12월 길상사를 개원한 후에는 정기적으로 대중법문을 들려줬다.대표적인 저서로는 '무소유', '영혼의 모음', '서 있는 사람들', '말과 침묵', '산방한담', '텅빈 충만', '물소리 바람소리', '버리고 떠나기', '인도 기행',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그물에 걸지 않는 바람처럼','산에는 꽃이 피네', '오두막 편지' 등이 있다.번역서로는 '깨달음의 거울(禪家龜鑑)', '진리의 말씀(法句經)', '불타 석가모니', '숫타니파타', 因緣이야기', '신역 화엄경',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스승을 찾아서' 등이 있다.법정스님은 자신의 건강상태를 의식한 듯 2008년 11월에는 길상사 소식지에 실었던 수필들을 모아 수필집 '아름다운 마무리'를 출간했고, 지난해 6월과 11월에는 2003년부터 했던 법문을 묶은 첫 법문집 '일기일회'와 두 번째 법문집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을 냈다.이달 들어서는 평소 법회 등에서 언급한 책 중 50권을 골라 소개한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이상 문학의숲 펴냄)을 냈다.

  • 종교
  • 연합
  • 2010.03.12 23:02

'무소유' 법정스님 입적

산문집 '무소유'로 널리 알려진 법정(法頂)스님이 11일 오후 1시52분께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법랍 55세. 세수 78세.법정스님은 3-4년 전부터 폐암으로 투병, 지난해 4월19일 길상사에서 열린 봄 정기법회 법문을 끝으로 지난해 6월7일 하안거 결제 법회, 12월13일 길상사 창건 기념법회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지난해 연말에는 제주도에서 요양했으나 올들어 병세가 악화하면서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해왔고, 입적 직전인 11일 낮 자신이 창건한 길상사로 옮겼다. 법정스님은 자신의 건강상태를 의식한 듯 2008년 11월에는 길상사 소식지에 실었던 수필들을 모아 수필집 '아름다운 마무리'를 출간했고, 지난해 6월과 11월에는 2003년부터 했던 법문을 묶은 첫 법문집 '일기일회'와 두번째 법문집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이상 문학의숲 펴냄)을 냈다.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법정스님(속명 박재철)은 목포에서 어린 시절을보낸 후 1955년 오대산을 향해 떠났지만 눈이 많이 내려 길이 막히자 서울의 선학원에서 당대 선승인 효봉 스님(1888-1966)을 만나 대화하고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았다. 이튿날 통영 미래사로 내려가 행자 생활을 시작한 스님은 1959년 2월 양산 통도사에서 자운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이후 해인사 선원과 강원, 통도사를 거쳐 1960년대 말 봉은사에서 동국역경원의 불교 경전 번역작업에 참여했다. 스님은 1975년 10월부터는 17년간은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살았으며 불일암 시절 초반인 1976년 4월 대표적인 산문집 '무소유'를 출간한 이후 불교적가르침을 담은 산문집을 잇따라 내면서 대중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스님은 1992년부터는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지내면서 외부인과의 접촉을 잘하지 않았지만 1996년 성북동의 요정 대원각을 기부받아 1997년 길상사를 개원한 후에는 정기적으로 대중법문을 들려줬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무소유', '영혼의 모음', '서 있는 사람들', '말과 침묵','산방한담', '텅빈 충만', '물소리 바람소리', '버리고 떠나기', '인도 기행',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그물에 걸지 않는 바람처럼','산에는 꽃이 피네', '오두막 편지' 등이 있다. 번역서로는 '깨달음의 거울(禪家龜鑑)', '진리의 말씀(法句經)', '불타 석가모니', '숫타니파타', 因緣이야기', '신역 화엄경',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스승을 찾아서' 등이 있다. 조계종과 길상사, 법정스님의 출가본사인 송광사 문중 등은 현재 장례절차를 논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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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3.11 23:02
문화섹션